가나파이
얼마전 아들의 훈련병 수료식을 다녀왔다. 신병훈련대대의 면회담 후기에 적혀있었던 내용 중에 그런 것이 있었다. 가장 먼저 찾는 것이 가나파이였다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뭔가 하고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것이었다. 쵸코파이와 유사한 파이였다. 그것을 왜 그렇게 선호하고 찾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5주간의 훈련병 생활을 하는데 그것에서 가장 힘든 훈련이 30키로미터 야간 행군이라고 한다. 저녁 7시에 출발해서 새벽 3시경에 돌아오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힘든 행군과정에서 먹게되는 간식이 가나파이라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 때를 기억하고 추억하게 해주는 간식이 가나파이여서 모두들 그렇게 가나파이를 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원에서 실시하는 신입직원들의 극기 훈련 중에 유사한 것으로 오대산 종주훈련이라는 것이 있다. 신규 젊은 직원들이 야간 산악 종주훈련을 하는 것으로 34키로미터 정도이다. 저녁 10시경에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 7시경에 도착하는 훈련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주는 간식으로 오뎅이라는 것이 있다. 그렇게 힘들고 추운가운데 먹게되는 오뎅이 유별나게 뜻깊고 맛있는 음식으로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행복하고 좋은 때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었던 때의 그 고생스러웠던 부분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인가 보다. 얼마전 아들의 훈련병 수료식을 다녀왔다. 아침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5시 30분에 기상을 해서 6시에 출발을 할 것으로 예상을 했으나 기대보다는 20분 정도가 지연되었다. 준비물로는 대일밴드, 로션, 각종 음식물(과자, 사과, 단감, 감귤 등) 그리고 노트북 등이었다.
맨먼저 네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명칭으로 승리상회라는 것으로 했다. 신병교육대대 앞에 있는 상점명이었다. 거리 166키로미터 였고 도착 예정시간이 9시 10분으로 나왔다. 면회담 후기에는 8시 30분까지 가야한다고 나와 있었기에 상당히 초조해 졌는데 반하여 집사람은 느긋하기 그지 없었다. 10시 30분부터 시작인데 급할 것이 없다는 얘기였다. 집사람은 자리를 잡고 취침모드로 들어갔다. 신대방 삼거리 역에서 그곳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멀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다. 큰녀석의 경우에는 한시간남짓한 거리였는데 비하면 천양지차였다. 하필이면 서울 버스가 파업을 하는 날이라고 해서 교통혼잡이 예상되는 날이었다. 여의도쪽으로 해서 88올림픽도로를 탔다. 강일IC로 해서 춘천간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고속도로에서는 안개가 끼여 상당히 시야가 흐렸다. 60키로 정도의 고속도로를 달려 춘천에 도착하니 8시 가량이었다. 화천쪽의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102보충대쪽을 지나서 화천 방향으로 갔다. 그렇게 가던 중에 화천을 15키로미터 정도 남겨둔 상황인데 계성리 방면이 나와서 그쪽으로 좌회전을 해서 갔다. 그곳은 외길로 보였고 인적이 드문 상황이었다. 곳곳에 잔설이 남아 있었고 차가운 날씨가 느껴졌다. 한적한 시골길 분위기였고 꼬불꼬불했고 산등성이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구간이었다. 길을 잘못들어 사창리 쪽으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오기도 했다. 10여분을 허송한 셈이었다. 겨우 다시 길을 찾아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가고 나서 보니 점차 남은 거리가 짧아지고 있었고 입구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신병교육대대의 입구에 진입하니 군용도로여서 그런지 네비게이션에는 나타나지 않는 길이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하고 보니 9시 20분 가량이 된 것 같았다. 위병소를 통과해서 병사들이 안내해주는 대로 주차장까지 갔다. 그리고 차를 주차하고 내렸다. 일단은 몸만 내렸다. 유도하고 인도하는 곳은 병사들이 가는 교회였다. 건물안 입구를 지난 로비에 수료식 인원의 대열의 배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한켠에는 신병교육대대의 지도가 마련되어져 있었다. 좌탁에는 커피와 녹차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교회 내에서는 훈련병들의 생활 등에 관한 영상물이 방영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9시 30분 경에 중대장이 나와서 면회에 따른 제반 사항의 설명이 있었다. 훈련병의 앞으로의 진로와 자대배치 추후 훈련상황 등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야수교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홍천에서 훈련을 받게되고 5주간 운전에 관한 훈련을 받는다고 했다. 중대장의 설명을 마친 후 승리회관이라는 곳에서 수료식이 진행된다고 해서 먼저 내려갔다. 그런데 좌석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모든 면회객을 수용할 정도가 되지 않으므로 일부는 서서 수료식을 지켜봐야 한다는 안내가 있었다. 일단은 내려가 37일만에 만나는 아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곳에서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는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흰 장갑을 끼고 제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가까이에 있는 의자를 확보해서 앉았다. 예행연습이 한차례 있었고 곧바로 연대장의 임석하에 식이 진행되었다. 연습을 철저히 한 탓인지 상당히 절도있고 박력있는 모습으로 식이 진행되어 기분이 좋았다. 부모님께 대한 경례가 있었고, 계급장 수여 순이 있었는데 그 때 어머니가 손목에 부착되어져 있던 계급장을 가슴에 부착해 주는 것이었다. 마지막 순서는 군가제창이었다. 반동과 함께 진짜사나이를 우렁차게 열창하였고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다음 순서는 부모님 품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식이 종료되었다. 승리회관 앞에서 사진을 몇장 찍고는 곧바로 차로가서 예약해 놓은 곳으로 갔다. 그곳은 셀프한우촌이라는 곳으로 화천 군청 뒤쪽에 있었다. 직접 고기를 골라서 먹는 곳이었고 별도의 세팅비는 없었다. 식대는 따로였다. 등심과 안심 그리고 삼겹살을 먹었다. 식욕이 왕성해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계산은 14만원수준이었다. 그리고 커피와 율무차를 한잔 마셨다. 다음 행선지는 찜질방으로 잡았다. 화천고등학교를 목적지로 해서 갔는데 그런 찜질방을 찾을 수 없어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용암한증막이라는 곳을 소개해 주었다. 거리상으로 2.2키로미터로 나왔다. 옆에는 펜션도 있었다. 자고가는 경우가 아니면 8천원이고 자면 만원이라고 했다. 목욕은 할 수가 없고 샤워만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옷을 간편복으로 갈아 입고 게루마늄 룸에 누워서 얘기를 나누었고 과일 등 먹거리를 또 먹었다. 본래는 음식의 반입이 안되는 것으로 되어져 있었다. 녀석은 친구들과의 전화로 시간을 다 보냈다. 두시정도에 들어가 5시 정도에 샤워를 하고 나왔다. 손전화기가 밧데리가 나가 다시 충전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흡연은 바깥으로 나가서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소금방, 그리고 찜질방이 또 하나가 있었고 런닝머신 실내용 자전거 등도 비치되어 있었다. 큰 외부에는 TV도 1층 2층에 별도로 비치되어져 있고 간단한 간식거리는 매점이 있어 사먹을 수 있었다. 유심히 진열된 간식을 보았으나 가나파이는 없었다. 동전을 넣으면 안마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세 개쯤 설치되어져 있었다. 그곳을 나와서는 화천읍내로 들어와 화천농협 앞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켰다. 대부분 별도의 주차장이 없는 상황이어서 길에 주차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필요한 물품을 사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일단 화장품 가게 같은 곳에 가서 위장크림을 샀다. 그리고 필기구 소수첩, 볼펜, 우표 30장을 샀다. 그리고 치킨집에 들어갔다. 살코기치킨과 콜라를 시켜서 먹었다. 점심때 과식한 탓인지 별로 먹지를 못해 남은 것을 싸달라고 했다. 치킨 값은 16천원이었다. 옆에 칠사단 수색대의 현역이 치킨을 포장해 가려고 와서 물어 보았다. 병장이었다. 제대가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2개월이란다. 마크로 봐서는 공수훈련, 태권 등을 모두 마스터한 것 같았다. 부럽기 그지 없는 상황이었다. 치킨집을 나와서는 다시 차로 갔다. 녀석은 친구에게 40여분 동안 전화했다. 이곳 저곳 슈퍼를 찾아다니며 가나파이를 찾았지만 거의 없었다. 그러다 겨우 한곳에서 가나파이를 한박스를 샀다. 거의 초코파이랑 별다를게 없어 보였다. 그리고 복귀를 위해 출발했다. 6시 38분이었다. 도착예정시간으로 나온 것은 7시 10분이었다. 그들이 부대로 돌아오라고 한 시간은 7시 40분이었다. 아무튼 출발했다. 밤길이어서 상당히 어두웠다. 부대에 도착하니 7시 20분이었다. 24기생들이 야간 행군을 출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후래쉬를 들고 행군을 출발하고 있었다.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갔다. 도착해서 차를 주차해두고 석별의 정을 나누고 들여보냈다. 화천 일대는 그렇게 면회객인 가족과 이등병으로 꽉차 있는 듯했다.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였고 만날 수 있었다. 아쉬움이 하나 있다면 행사진행에 관한 안내 팜프렛을 만들어서 오신 가족 등에게 나눠주면 그것으로 진행되는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서울로 향해 차가 출발했다. 고속도로로 설정하니 166키로미터 였고 추천으로 하니 145키로였다. 일단은 고속도로로 가기로 했다. 한적한 길을 한참 달려야 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7시 30분에 출발하는 것이었는데 도착예정시간이 10시20분으로 나왔다. 9시 가량이 되어서야 춘천 IC로 진입할 수 있었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서울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거의 다온 시점에서는 구간 속도 단속구간이 이어져 제대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밝은 모습으로 자신감을 찾은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제 군인으로서 첫출발하는 아들에게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해본다. 무척이나 철이 없었던 모습에서 이제는 나라를 지키는 역군으로 거듭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다음 면회가는 이들에게 꼭 가나파이를 사가지고 가도록 권고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춘천에 접어들 때쯤해서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면서 들었다. 대뜸 면회를 다녀오냐고 했다. 그렇다고 했더니 15사단이냐고 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러면 봉우리죠라고 했다. 기가막히게 꽤뚫고 있었다. 향후 앞으로 두세번을 왔다갔다 하게되면 전역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대단한 통찰력이라고 여겼다. 모든 곰신과 군인가족에게 항상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가운데 군인이 더욱 훌륭히 군복무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