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단편 소설

농민 백서

자한형 2022. 2. 1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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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農民) 백서(白書)-오유권

 

올 따라 여름비가 알맞게 오더니 가을이 대풍을 이루었다. 논 곡식은 물론 밭곡식 . 채소 할 것 없이 모두 잘된 것이었다. 결과 남산 양반네도 어저께까지 벼 탈곡을 끝냈는데 스무 마지기 논에서 구십 섬이 나온 것이었다. 그래도 남산 양반은 오붓한 줄을 몰랐다. 말이 구십 섬이지 영농비를 빼고 나면 그놈의 세 칸의 한 칸밖에 안 남을 것 같았다. 거기다 작년의 노풍 피해로 빛이 쌓여서 남은 벼를 다 판대도 빛 정리가 안될 것 같았다. 그걸 아내와 아들놈을 데리고 작석(作石)을 하다 보니 없는 부아가 절로 솟구쳤다. 갈고리를 들고 새끼줄을 잡아당기다가.

너는 왜 또 입술이 쑥 나왔냐?

가마니를 묶는 근수에게 소리를 질렀다. 놈이 아침부터 얼굴을 안 피고 찡핑 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입이 나오기는 무슨 입이 나와라우.

이놈아, 서울 못 가서 그러냐?

내 또래에 흙에 묻혀서 일하고 있는 놈이 몇이나 있습디여.

그럼 애비 혼자 죽으라고 서울로 기어올라가거라. 어서 서울로 가.

농사 이것 지어 가지고 밥이나 묵고 살겄소.

 

그도 그럴 것이 근수 또래의 젊은애들 치고 마을에 엎드려 있는 놈은 별로 없었다. 귀가 트이고 머리가 좋은 놈들은 모조리 서울로 가고 없는 것이었다. 계집애들도 젖통이 나온 것들은 다 올라가고 없었다. 칠십여 가구가 된 마을에서 두 집 평균 하나꼴씩은 서울에 가 있는 것이었다. 어떤 집에서는 둘도 가 있고 셋도 가 있었다, 그래도들 가서 이삼 년만 있으면 다 자리를 잡고 무슨 기술을 배운다, 돈을 벌어 부친다 하여 앞길을 열고 생계를 도웁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연 마을의 일손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산양반도 아들놈을 붙잡아놓고 있는데 놈이 가끔가다 입술을 내밀고 투덜댔다. 그래도 이놈을 붙들고 있어 야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어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살지 갈잎을 먹으면 죽어야. 아무 말 말고 엎드려 있거라. 뭐네뭐네 해도 농사같이 미더운 것이 없니라.

전에도 타이르던 말을 오늘 또 이렇게 되풀이하자,

그런께 이 모양 이 꼴로 사시요. 고등학교 하나도 제대로 못 마쳐주고.

이 말에는 남산양반도 할말이 없었다. 사실 아들 하나 있는 것을 고등학교까지 보내다 못 보내고 만 것이었다. 지방에서는 마땅히 보낼 만한 학교가 없어서 명색 도청소재지로 보냈던 것이 그 밑으로 돈이 겁나게 들어갔다. 학비며 하숙비며 용돈이 매달 십만 원 이상이 든 것이었다. 논농사를 지은 돈이 그 밑으로 고스란히 들어가던 것이었다. 게다 떨어져 있고 보니 나쁜 애들에게 싸여서 버릇이 나빠지고 공부도 시원찮게 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 안일을 도웁게 했던 것이다.

그래도 아들 놈한테 지기는 싫어서,

이놈아, 네놈이 공부를 못해서 그랬제, 애비가 학교를 안 보내줘서 못 갔냐?

공부를 못하께 학교를 더 보내야지라우.

시끄럽다, 이놈아. 가마니나 묶어라.

부자가 다같이 찡찡해 가지고 가마니를 묶는데 홀연 우체부가 편지 한 통을 던져주고 갔다.

남산댁이 주워다 남자한테 주면서.

에시요.

남산양반이 편지를 받아들고 겉봉을 보았다. 뜻밖에 서울에 가 살고 있는 복남씨한테서 편지가 온 것이었다. 이쪽보다 두 살 손위의 친구인데 십 년 전부터 서울로 가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사이 인편으로 구전 안부는 들었지만 이처럼 편지가 온 것은 처음이었다.

 

삼재 받아보소.

세월이 날으는 화살과 같아 자네와 작별한 지도 어언 십 년의 세월이 흘렀네.

오곡이 풍성한 가을을 맞고보니 다시금 고향 생각이 간절하네.

그사이 동생 내외를 비롯하여 아이들도 충실하며 가내에는 큰 변고는 없는가? 올 농사도 잘되었으며 일촌 양반들도 다 안녕하신가? 생각만 같으면 해마다 가고 싶네만 해마다 벼르기만 하다가 한번도 못 내려갔네. 서울 살이가 고달픈 탓도 있지만 내가 하루라도 집을 비우기가 어려운 형편이어서 그러네. 이 점 널리 이해하시소.

그나저나 그새 살림 형편이 어떤가? 들으매 농촌도 요새는 많이 개화가 되어서 살기가 부드럽다고 하데만 자네 형편은 어떤가? 농지 정리도 많이 되고 길도 새 길이 많이 생겼담서 ? 특수 재배도 하고 벼도 신품종이 많이 나와서 예전보다 곱 이상의 수확을 된다는디 자네는 어쩐가? 옛날 우리가 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한심스럽기만 하네. 더구나 내가 고향을 떠나던 때의 참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아롱거리네.

그 가뭄! 그 홍수!

목마르고 답답했다는 말을 어찌 다 말로 하겠는가. 거기다 남의 빛은 산더미 같지, 새끼들은 밥을 달라고 아웅거리지, 오죽하면 조상 전래의 고향을 버리고 타향살이로 떠났겠는가.

서울에 온 지 십 년.

그사이 고생도 많이 했지만 이젠 힘을 잡았네, 좋잖은 장사지만 음식장사를 해서 집 한 채를 장만하고 두 아들을 올까지 대학을 마쳐주었네. 먹는 것도 잘 먹고는 못 살아도 보리밥은 면하고 담배도 순한 담배를 피게끔 되었네. 그러고 보니 고향에서 굶주리고 시달리던 시절이 한결 더 눈물겨웁네. 친구들 생각도 간절하니 동생이 한번 다녀가 주었으면 좋겠네. 아마 추수도 다 끝나갈 것이니 여비일랑 걱정 말고 올라올 차비만 해 가지고 오소. 구경 삼아 올라오면 오랜만에 묵은 회포를 풀고, 그리던 정을 나누세.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 집을 찾아갈 수 있는 버스 번호와 약도를 그려놓았다

, 복남이는 살게 됐네 그랴.

뭣이락 했소

자식놈보고 읽어보락 하소.

근수가 가마니를 묶다가 와서 편지를 소리내어 읽었다.

집까지 장만하고 살게 됐는 것이요 예.

남산댁이 감탄하자 근수가,

두 아들을 대학까지 마쳐주었다고 않소.

만종이, 선종이가 대학을 나왔다고 해야?

.

워따아, 그런 사람은 쓰겄다. 선종이가 지금 네 동갑이지야?

동갑이요.

그런 거 너는 이러고만 있어서 어쩔거나 ! 그 사람들이 올라갈 때는 방세 하나 값밖에 못 가지고 갔어라우 잉?

그랬더라네.

그런디 그렇게 아들들을 둘이나 대학을 보냈소이

남산양반은 뭐라고 응수를 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들과 아내의 부러워하는 말투가 자기를 원망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래 덤덤히 갈고리 질만 하고 있으니까,

그럼 구경 삼아서 서울이나 한번 갔다 오시요. 가을도 끝나고 할일 있겄소?

금매 마시,,,,,,

올라올 차비만 해 가지고 오라는 것이, 돈도 많이 벌고 부자 되었는 것이요. 가서 대접도 받고 쉬었다 오시요.

 

그렇잖아도 찡찡해 가지고 가마니를 묶던 근수는 선종이가 대학을 나왔다는 말을 듣자 손의 맥이 풀리면서 일할 맛이 안 났다. 손을 탈탈 떨고 방으로 바서 옷을 갈아입었다. 건둥건둥 양말을 주워 끼고 뒷께 태봉이네 집으로 갔다. 고등학교를 나온 한마을 친구로 그 역시 집에서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대문을 밀고 들어가자 태봉이가 대청에서 발을 걸치고 누워서 잡지를 보다가,

일 끝났냐?

일은 무슨 일이 끝나야. 나락가마니 좀 묶다가 천불이 나서 뛰어나왔다.

허기사 일 다 하고 죽은 귀신 없단다. 올라오니라.

선종이가 대학을 졸업했다고 않냐.

태봉이가 빨끈 일어나서,

그래야? 누가 그러디야?

선종이 아버지한테서 집으로 편지가 왔는디 선종이형. 만종이랑 다 대학을 마쳤다고 한다야.

오메. 저런!

그 말을 듣고 일손이 안 잡혀서 왔다.

두 친구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하였다. 남은 다 서울에 가서 대학을 나왔는데 흙에 묻혀서 이 무슨 꼴인가 싶은 것이다.

우리가 미련하지?

근수가 나직이 내뱉었다.

글쎄 말이다,

집의 만류고 뭐고 다 뿌리치고 서울로 올라갔으면 어찌 될지 모른디.

기래도 단독으로 올라가서는 밥 벌어먹을라, 학비 댈라, 대학 나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선종이네처럼 부모들이 일찍 각성해 가지고 서울로 갔어야 해.

후우,,,,,, , 술이나 한잔하자.

두 친구는 집을 나와서 느티나무 아래를 지나 신작로로 나왔다. 전봇대 옆에 있는 주막으로 가자 마침 삶은 돼지다리 한편이 걸려 있었다.

술 한 병하고 안주 한 접시 주시요.

술을 불러놓고 방으로 들어가서 담배들을 붙여 물었다.

선종이가 대학을 나왔다.

태봉이가 새삼 이렇게 중얼이곤.

그럼 둘이 지금이라도 서울로 올라갈거나?

의논해봐서 그리 어찌 하자. 답답해서 살겄냐.

가서 뭣을 할까?

뭐든지 닥치는 대로 하제 어째야, 무엇을 하든 여기보다야 못 하겄냐?

그러자. 가을도 끝나고 했으께 가자. 이대로 엎드려 있다간 생전 돈 한번 못 써 보고 죽을 것이다.

그러자. 공부야 이제 글렀고 돈이라도 벌어서 한번 멋지게 써보자.

이윽고 술상이 들어왔다. 네 홉들이 소주 한 병하고 돼지고기 한 접시가 들어왔는데 제법 푸짐하고 먹음직스러웠다,

들자.

들어라.

선종이가 학부를 나왔다는 말을 듣고 축하는커녕 울분이 앞선 이들 두 친구는 실은 고등학교시절부터 대학에 들어갈 것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워낙 살림이, 들어갈 형편이 못된데다 공부 또한 뛰어나게 하질 못했다. 따라서 학부는 그들의 선망의 대상뿐이었지 현실은 이미 그들의 앞을 막고 있었다, 그런대로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그들은 더 이상의 공부를 포기하고 집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 이태 동안 어정버정하다보니 군대에 갈 나이가 되었다. 군에서 고생을 할 때는 제대를 하고 나가면 이것도 해보리라 저것도 해보리라. 하여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었다. 그러나 제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천생 농사일밖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없었다. 재래작물을 심건 특수작물을 심건 온상 재배를 하건 간에 흙과 더불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수입은 장사나 월급보다 한결같이 밑돌았다. 그래도 밑도는 농사밖엔 할 일이 없는 두 젊은이는 한결같이 답답했다. 때로는 숨이 막히고 가슴에서 불이 일었다. 거기다 선종이의 소식을 듣고 보니 발광할 것 같은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미련했어.

아니야. 우리보다 우리 부모들이 더 미련했어. 선종이네처럼 일찌기 서울로 올라붙었으면 우리도 대학을 나왔을지 모른디.

그럼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야. 하루라도 빨리 서울로 가지. 하루라도 빨리 서울로 가는 길만이 성공을 앞당기는 길이지.

들자, 어서,

두 친구는 술이 차츰 취해왔다. 답답한 생각이 가시면서 조그만 희망이 가슴을 훈훈하게 적셨다.

그럼 돈을 어떻게 마련하지?

가을도 끝났으께 집에서 몇 섬씩 도락하제 어째야.

줄까들? ,,,,,,

까놓고 이야기하자. 암만해도 집에서는 못 엎드려 있겄으께 서울로 갈란다고.

그래도 못 가게 하면? ,,,,,

그땐 마지막 수단을 써버리자. 아무도 없을 때 벼를 몇 섬 훔쳐내든가 고렇지 않으면 논문서라도 하나 빼 가지고 달아나 버려.

그럴까, 그럼? ,,,,,,

그러기로 하고 일단 어른들한테 말을 띄워보자.

적이 용기를 얻은 그들은 남은 술을 비우고 집으로들 돌아갔다.

근수가 집에 오차 아버지가 벼를 다 작석하고 마루에 걸터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일하다 뭣하러 갔냐?

바람 좀 쐬고 왔소.

일을 끝내고 가제 기랬냐.

일손이 잡혀야지라우.

편지 보고 그랬냐?

아닌게아니라 그랬습니다. 저도 서울로 좀 보내주십쇼. 농촌에 묻혀 있다간 아무 것도 안 되겠습니다,

농사는 누가 짓고야?

지나마나 농사 이것 가지고 밥이나 묵겄소? 일찌기 서울로 올라간 사람들은 다 힘 안 잡았소.

뱁새가 황새걸음을 걷다가는 다리가 찢어져야.

그런 케케묵은 말씀 그만하시고 서울로 좀 보내주십쇼. 나도 평생을 아버지처럼 살라고 붙들고 있을라고만 하시요?

남산양반은 이놈이 못할 말이 없다고 하고,

내가 평생을 어떻게 살아서 그러냐, ? 평생을 어떻게 살라서 그랫?

눈을 부라리고 쏘아보았다.

이렇게 살고도 잘 살았다고 하시요?

고얀 놈이 애비 앞에서 못할 말이 없네.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

그럴 것이요.

이놈아, 비록 잘살지는 못했어도 이 집하고 이 농토에서 너희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남처럼 호의호식은 못 시켰어도 이 살에서 다 뜯어먹고 살었어. 이놈, 어디서 천직을 모욕하느냐.

그래, 서울로 안 보내주실라우?

하고 근수는 농촌 살이의 어려움과 도시생활의 윤택한 점을 낱낱이 들어서 이야기하고,

더도 말고 벼 열 섬 값만 해주십쇼. 기놈만 해주면 서울에 가서 죽으나 사나 일어 설라우.

빛도 다 못 떨궜는디 열 섬토록이나 줘야.

빛은 뒤에 갚고 그놈만 해주십쇼. 기놈만 해주면 더는 괴로운 말씀 안 그리리다.

남산양반은 아들의 말이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농사지을 것이 무서워서

명년 농사나 지어가지고 주마. 올해는 안 되겄다.

알았소, 그럼 그만두십쇼.

 

남산양반은 마침내 서울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여비 만원과 복남씨 편지를 구겨 담고 집을 나서면서,

집을 잘 보소.

걱정 말고 다녀 오시요. 며칠이나 있다 올라우?

곧 올라네. 불조심 잘 하고 밤에는 대문 잘 잠그소.

누누이 타이르고 집을 나온 남산양반은 버스를 타고 읍으로 왔다. 역으로 가서 찻시간을 알아보니 한시간 뒤에 특급열차가 있다고 하였다.

그럼 서울 표 한 장 주시요.

표를 사놓고 모처럼 고급 담배도 한 갑을 샀다. 그걸 뜯어서 한 개비 태워 물고 대합실을 왔다갔다하다가 눈깔사탕 두 개를 샀다. 행여 깨뜨릴세라 우물우물 빨면서 찻시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윽고 붕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들어왔다.

찻간은 넓었다. 손님들이 띄엄띄엄 한 사람씩 있고 말소리도 나지 않았다. 역시 특급 열차는 다르군, 하고 아무 자리나 가서 앉았다.

팔짱을 끼고 차창 밖을 바라보면서 가는 남산양반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자식놈에게는 언필칭 가르치는 말로,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곤 못 산다느니, 뱁새가 황새걸음을 걸으면 다리가 찢어진다느니 하였지만, 사실 갈수록 농사만 지어 가지고는 못살 것 같았다. 농사벌이가 예전보다는 다소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신 다른 물가가 높이 뛰어서 큰 효험이 없었다.

예전에는 쌀 딴말을 팔면 고기도 무춤무춤 사오고 광당목도 필로 떼어오고 했는데 지금은 돈이 쓸 것이 없었다. 제백사하고 홍어 한 마리에도 만원 돈을 홋가하니 어떻게 고기를 사먹고 살겠느냐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 역시 명절 때나 제사 때가 아니면 고기 한 근 사먹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하였다. 거기다 논 스무 마지기에 밭 다섯 마지기를 가꾸려 하니 온 식구가 일 년내 거기에 매달리듯이 해야 했다. 아니. 바쁜 때는 온 식구가 매달리고도 일손이 모자라서 쩔쩔맸다. 이러니 갈수록 농사를 짓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한 남산양반은 서울에 가봐서 살길만 있으면 발판을 옮겨볼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이윽고 차가 정읍을 넘어서더니 이리를 향해서 쏜살 같이 달렸다, 이 지방도 추수가 끝난 듯 논에 벼 하나가 안 서 있고 군데군데 낟가리만 눈에 띄었다.

 

그로부터 네 시간.

남산양반이 서울역에 가 닿았을 때는 가을의 짧은 해가 곧 넘어가려고 하는 참이었다.

오랜만에 와본 서울거리는 몰라보게 달라 있었다. 역전 광장도 홱 변하고 보지 못한 고가도로와 높은 빌딩들이 어지럽게 붙어서 있었다. 차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다니고 거리마다 사람들이 빽빽하였다.

버스를 타려다가 길을 모르고 해도 곧 저물 것 같아서 택시를 탔다.

어디로 가시죠?

남산양반이 대답 대신 편지 주소와 약도를 내보이면서,

첨 길이라 잘 모르겄소. 이 주소대로만 갑시다.

차가 남대문을 돌아서더니 곧바로 중앙청 앞으로 해서 바른쪽으로 틀었다. 비원 앞을 지나서 고가도로를 타고 창경원 앞으로 왔다. 한참을 가자 삼선교가 나오고 이어 돈암동이 벌어졌다. 은행을 끼고 두 골목을 돌더니,

내리십쇼.

어느 집이요?

저 구멍가게에 가서 물어보십쇼.

복남씨 집은 바로 구멍가게 옆이었다. 술 한 병과 과일 한 봉지를 사들고 집 앞으로 가서,

복남이.

대문을 두드렸다.

복남이.

안에서 슬리퍼를 끌고 나오는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구세요?

쪽문이 열렸다.

오마!

복남씨 아내가 부르짖고 종종종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복남씨가 나와서,

어서 오게.

깜짝 손을 틀어잡았다.

!

전보라도 치고 오제 그랬는가.

택시 타고 오께 수월하데.

들어가세.

두 친구는 손을 잡고 들어가서 저저이 인사를 나눈 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겄네.

내 말이 그 말이시.

편히 앉게.

이윽고 복남씨 아내가 커피를 가지고 들어와서,

그새 애들도 다 충실하요?

덕택으로 잘 있다우.

근수 어머니랑도 잘 있고라우?

.

남산양반은 김이 모락거리는 커피를 휘저으면서 방 치장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한쪽 벽을 깍 채운 까만 자개농 옆에 전축이 번들하고 그 옆에는 텔레비전이 하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시 그 옆으로는 냉장고가 육중하게 도사리고 있고 괘종 시계도 큰놈이 걸려 있었다. 거기다 카세트 녹음기다 믹서다 하여 별별 전자제품이 다 있었다. 보기만 해도 현란하고 무언지 모르게 압도감을 느낀 것이었다.

들세, 워이.

들세.

남산양반이 말하고,

자네는 많이 트였네 그래.

트였다고 할 것까지야 뭐 있는가. 오래 살다보께 농촌 살이보다는 밥 먹기가 좀 부드럽네.

집은 몇 평짜리나 되는가?

대지 오십 평에 건평이 스물여덟 평이시.

이 정도면 싯가가 어떻게 가는고?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여기서는 한 삼천 만원 남짓 가네.

! 이 집을 팔아 가지고 농촌에 가면 대부자가 되겄네 그랴.

요새 거기서는 중답 한 마지기에 얼마씩이나 한단가?

한 마지기에 오십만 원 돈 가네.

그래도 많이 안 비싼 편이네.

한동안은 고등하더니 요즘은 내렸네.

속은 농토 값도 일정하지 안해잉.

진폭이 심해. 몇 년 동안 잘 먹고 쌀 시세가 살랑하면 올라가고, 홍수와 가뭄으로 못 먹게 되거나 쌀금이 안 좋으면 떨어지네.

그래, 농사도 어떻게 생각하면 도박 같은 놈의 것이여 잉?

그렇게도 볼 누가 있지. 꼭 먹는다고만 장담할 수가 없으께.

사실 그건 그랬다. 어떻게 생각하면 농토가 가장 안전하고 농삿벌이가 제일 미더운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보기에는 흙이 퍽 관대하고 무궁무량한 것 같아도 흙처럼 기후 조건을 잘 타고 천후에 민감한 것이 없다. 기후가 순조로울 때는 그해 농사가 순조롭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영 형편없이 되어버린다.

기후가 순조로우냐 순조롭지 못하느냐 ? 다시 말하면 비가 알맞게 오느냐 안 오느냐? 또 날이 가무느냐 안 가무느냐? 홍수가 나느냐 안 나느냐에 따라서 작황(作況)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더구나 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천후 기상이라 그건 거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가위 도박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작황이나 성과를 좌우하는 것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병충해와 곡가가 그것이다. 이건 어느 정도 인위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것이지만 농가의 소득은 이것과도 불가분리한 관계를 갖는다. 아무리 날씨가 잘해도 벌레가 한번 논바닥을 쓸어버리면 하루 사이에 쑥밭이 되어버리고 또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다 이겨내서 농사가 어느 정도 잘되어도 곡가가 싸면 헛농사를 지은 결과밖에 안 된다. 그러니 가위 도박이랄 수밖에.

술상이 나왔다. 쇠판을 올려놓은 전기 곤로에 불고기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쟁반에는 낙지무침과 과일 등속이 올라 있었다,

남산양반은 이 또한 시골에서는 보지도 못한 고기구이이거니 하고 군침을 삼키는데 복남씨가 고깃점을 집어서 쇠판 위에 얹었다. 한참만에 피식피식 하고 익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내가 코를 찔렀다.

집소, 어서.

들게.

그래, 앞서 편지에도 말했지만 올 농사는 어떻게 되었는가?

가던 중 무던히 되었네. 여름날씨가 잘해서.

몇 섬이나 나왔는가?

한 구십 섬 했네.

오호!

그래도 돈으로 따지면 몇 푼 안돼, 거기다 영농비 나가지, 작년의 빚이 있지, 손에 잡힌 것이 없겄네.

그래?,,,,,, 연간 영농비가 얼마나 들던가?,,,,,,

옴니암니 따지면 논농사 스무 마지기 짓는디 이백만 원이 넘어들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드는가?

자네는 농촌을 떠난 지가 오래여서 잘 모를 것이네.

하고 남산양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었다.

영농비 가운데서 제일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인건비인데 이것이 전체 영농비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였다. 농사 한 마지기를 지으려면 씨뿌릴 때부터 거둬들일 때까지 통상 일곱 사람의 인부가 필요한데 요즘 농번기 때의 남자 한사람 품삯이 사천 원이라고 하였다. 거기다 점심 저녁 해주지, 곁두리 먹이지. 술 사 주지. 담배 사주지, 또 육물기 해주지 - 이래서 인부 한사람의 하루 접대비가 줄잡고 삼천 원 하나는 든다고 하였다. 따라서 놉 한사람을 하루 부리려면 칠천 원 한 장이 든다고 하였다. 그나마 일손이 귀해서 너도나도 없이 찢어가려고 하니 앞으로 품삯은 더 많이 오를 것이라고 했다. 거기다가 종자 값 있지, 쟁기질 삯 있지, 물세 물지, 농약 값, 비료대, 탈곡료 등을 합하면 십만 원 한 장이 넉넉히 든다고 하였다.

그럼 가을에 섬 당 얼마씩에 내는가?

공판장에 내야 삼만 원을 받네.

그러니 올같이 농사가 잘된 해라도 논농사 스무 마지기를 지어 가지고 칠십만 원 밖에 더 떨어지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니 이걸로 어떻게 한해 구입을 하면서 애들을 가르치겠느냐고 하였다.

생각해 보께 그러겄네.

그런디다, 해마다 그 정도라도 일정한 소득을 올리면 답은 먹는디 작년처럼 가물거나 병충해가 쓸어버리면 골탕을 먹는다 마시, 그놈의 노풍 피해 때문에 작년에 진 빛이 백만 원이 넘네. 올해는 영농비에다 이걸 갚고 나면 겨울 살기도 어렵겄네.

그래? 고생이 많겄네. 어서 들세.

복남씨가 쇠판에다 계속 고깃점을 집어 올리면서 술을 권했다. 어떻게 쟁인 고기인지 꽤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입맛 같으면 얼마든지 집어먹겠는데 고기를 안 먹어 버릇해서 그런지 몇 점 먹고 나니까 그냥 질렸다. 그걸 복남씨는 날름날름 집어삼키면서,

어서어서 들어,

먹네, 먹소. 술이 꽤 올라오구만.

취하도록 먹세. 몇 해 만인가.

복남씨가 낙지대가리 하나를 집어넣고,

그래, 논농사가 그러면 밭농사에 힘을 좀 기울여 보제 그런가. 들으매 요새는 특수 작물이다 고등소채다 하여 그런 수입을 꽤 올리는 모양이데.

그도 말은 좋지만 그렇게 안돼.

?

지방 지방의 지질이나 특색이나 지리적 조건이 맞어야제 아무 데서라도 된단가.

그래이? ,,,,,

모르겄네. 전국 농가에서 특수 재배를 해서 이를 보는 사람이 몇 칸에 한 칸이나 되는가,,,,,,

그쪽 지방에서는 뭣이 되던가?

지금 역시 야채 하나는 잘 되네, 그런디 그것도 운이여. 야채가 알맞게 나서 시세가 좋으면 한 수 보지만 올 같은 해는 통 죽쒀 버렸네이.

그래, 자네도 심었던가?

폭 배추 한 필을 심어 가지고 죽쒀 버렸네.

그래이? ,,,,,,

되기는 잘되었어도 너도 나도 없이 심어 가지고 똥금이 되어버렸네. 여름에 한창 팔리는 철에 관에 이백 원씩에 냈더니, 이백 원이면 생산비도 뵐까말까 하네.

복남씨는 서울서도 과연 여름에 김치 감이 쌌었다고 하고,

그래 그래. 쌌었네.

비단 그뿐인가. 올해는 양파도 싸고 마늘도 싸고 고추도 싸고 다 안 싼가. 작년에 비하면 값이랄 것이 없제이.

이래서 전작물 역시 일종의 도박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작년같이 귀한 해는 어쩌다 잘되면 한 그물을 뜨지만 올같이 흔한 해는 대풍은 대풍이어도 농가 수입은 오히려 적자를 면키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런 피해가 없게 하려면 무엇보다 유통구조가 잘 되어야 하는데 어디 그것이 수월하게 되느냐고 하였다.

그러고 보께 나도 들은 말이 생각나네야.

하고 이젠 복남씨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여름 어느 날이었다. 복남씨 내외가 포장마차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한 젊은이가 술을 먹으러 들어왔다.

뭣 잡수실래요?

소주 한 병하고 닭발 다섯 개 주시요.

술을 시켜놓고 짭짭 입맛을 다시더니,

어디 농사지어 먹고 살겠소!

혼자 탄식을 했다.

왜라우?

알타리 무우 한 트럭을 싣고 와서 죽쳐버렸소.

어디서 사신디라우?

용인서 농사짓고 사요.

물건을 어디다 냈는데요?

용산 시장에다 냈소. 미칠 일이요!

젊은이가 술 한잔을 쭉 마시고 닭발을 우지끈우지끈 씹었다.

얼마나 가지고 왔읍디여?

말도 마시요.

하고 다음과 같이 하소연하였다.

한 단에 스무 개씩 묶은 알타리 무우 오백 단을 실어다 용산 시장에 들이댔다. 중간 상인들이 우 하고 몰려들어서 한 단에 팔십 원씩을 봤다. 당초 백오십 원을 불렀는데 그 반을 깍아 버린 것이다.

너무 싸요, 백삼십 원씩이나 주시요.

안 팔라면 싣고 가시요.

그럼 백 원씩만이라도 주시요.

그래도 중간상들은 막무가내고 팔십 원밖에 안 봤다. 하도 천불이 나서 무우를 딴 위탁상회로 가지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차를 돌릴 수가 없었다. 시장은 좁은데다 차가 수백 대 밀어닥쳐서 꼼짝달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시장 입구에서 상회 앞까지 오는 데만 해도 무려 두 시간을 기다렸었다. 게다 천생 생물(生物)이 돼서 시간이 오래 갈수록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팔 수밖에 없었다. 한 단에 팔십 원씩, 사만 원을 받고 보니 눈깔이 씀벅거렸다. 그 동안의 경작비는 고사하고 이곳까지 싣고 온 비용도 다 안 나온 것이었다. 이곳까지 싣고 오는 데 든 돈이, 운임 만사천 원, 위탁 수수료 삼천이백 원. 하차비 이천 원. 청소비 오백 원, 무우 뽑는 노임 이만사천 원 - 이래서 도합 사만이천칠백 원이 든 것인데 사만 원밖에 못 받고 보니 이천칠백 원이 밑진 것이었다.

생산비는 빼놓고도 그랬구만이라우.

그러고 말고요. 이러니 어느 미친놈이 농사를 질라고 하겠소!

젊은이가 노기등등해 가지고 남은 술을 마저 딸곤 자리를 일어섰던 것이었다.

복남씨가 이 야기를 다 하고.

서울서도 이러는디 돈이 귀한 시골서야 오죽하겄는가.

그런다 마시. 쌀은 시세 변동이 심하지 않는데다 오래 두고 먹는 것이라 풍년이 들면 너도 나도 없이 좋지만 채소나 청과물은 그것이 아니라 마시. 풍년이 들면 들수록 물량이 많아서 똥금이 되어버려. 아 글쎄, 아까 말한 그 젊은이 말마따나 생산비가 안 나오는 경우가 있는디 어느 미친놈이 농사를 질라고 하겄는가.

그래 그래, 어서 술이나 들세.

들소, 어서.

두 친구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문득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 가 났다.

복남씨가 술잔을 놓고 일어서면서,

아이들이 왔다냐,,,,,,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나갔다 오더니,

애들이 왔는 것이네. 영화관에들 간다고 가더니.

만종이. 선종이 말이제?

워이.

하고 대청을 향해서,

여봐라, 와서 인사들 드려라.

소리를 치자 과연 장대 같은 두 아들이 들어와서,

뵙시다.

두 손을 방바닥에 짚고 나부죽이 허리를 굽혔다.

근수아버님이다.

, 알겠습니다.

큰아이 가 말하고,

원로에 오시니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작은아이도 뒤따라서,

오시니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아따, 어른들 되었다.

큰아이는 국방부에 있고 작은아이는 지금 전자 회사에 들갈라고 이력서를 내놓고 있는디 오늘이 토요일이라 모처럼 형제간에 구경을 갔다온 모양이시.

, 자네는 쓰겄네.

집하고 이놈들 하나 가르쳐놓은 것밖에 없네.

그 이상 바랄 것이 뭐 있는가.

 

아버지한테 벼 열 섬을 달라고 손벌렸다가 퇴짜를 맞은 근수는 또 태봉이한테 갔다.

어째, 말해봤냐?

태봉이가 물었다.

틀렸다, 너는 어쨌냐?

뭣이락 함서 안 주디야?

빛도 못 떨고 있는디 그토록 주라고 하느냐고 명년 농사나 지어 가지고 주마고 않냐,

뒤에 볼 사람은 무섭지 않단다.

너는 어쨌냐?

서울에 가는 것이 그토록 초원이라면 바람 쐬기 겸해서 한번 다녀오라고 벼 두 섬 값을 주마고 않냐.

그것가지고 뭣하게야.

그럼 둘이 일단 다니러나 갔다올꺼나? ,,,, 가봐서 있을 만한 곳이 있으면 있고, 헛고생만 할 것 같으면 그냥 올거나?

그래가지고 무슨 일을 한다냐. 사내대장부가 일단 결심을 내렸으면 죽어도 그렇게 해야지.

그럼 그러자. 가기로 결심하자.

여비 그것 가지고는 말도 안 되께 오늘내일 새 기회를 봐서 논문서를 훔쳐내든가 창고를 떨어.

그렇게 하마.

태봉이가 이를 사려 물고.

그럼 가서 먼저 무엇을 하지?

닥치는 대로 하제 어째야. 남들은 다 가서 어떻게 산데.

그래도 첨에는 연줄이 있어 가지고 어떻게들 하는 모양이더라.

찾다 못하면 아파트 공사하는 디라도 찾아가제 어때야. 들으매 그런 디는 인부가 없어서 노는 사람만 보면 환장하고 끌어간닥 하더라.

그럼 먼저 선종이를 한번 찾아가 볼까?

안돼, 그건 자존심 문제야. 짜식은 대학을 나와서 뻔들한 직장엘 다닐 텐데 그놈한테 가서 우리의 추한 꼴을 보여.

그럼 너는 논문서를 내올래, 벼를 끌어낼래?

논문서는 어디가 든지 모른다. 벼를 훔쳐 낼란다.

나는 논문서를 빼낼란다. 인감도장하고만 있으면 되지.

인감증명을 낼라면 신분증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의논한 근수는 마침 아버지가 집을 비우기를 잘했다고 하고.

, 그럼 네가 내일 새벽 일찌기 우리 집으로 좀 와줄래?

뭣하게야?

몰래 벼를 훔쳐 낼라면 천생 사람이 하나나 있어야 안 쓰겄냐.

그래. 가마.

어머니가 일어나기 전에 창고를 열어야 하께 동만 트면 그냥 오니라. 그리고

너도 오늘 안으로 논문서를 빼돌려놔라.

이러고 오다가 근수는 벼를 실어낼 구루마를 말해놓고 집으로 왔다.

근수가 돌아가자 태봉이는 큰방으로 왔다. 아버지가 어딜 가고 없었다. 어머니께 물으니 등 너머 상가에 조문을 갔다고 하였다. 언제나 오시느냐니까, 그런데 간 양반이 오는 것이 시간이지 한정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마침 잘됐다고 하고 어머니가 밥지으러 나간 틈을 타서 장롱을 뒤져보았다. 고지서와 영수증 등 소위 귀중한 문서가 들어 있는 서랍을 열어보았다. 아니나다를까, 거기 한 봉투 속에 논문서가 착실히 들어 있었다. 그 가운데서 두마지기 짜리 문서 하나를 몰래 감추고 다시 책상서랍을 열어보았다. 아버지의 도장과 신분증은 거기에 들어 있었다. 한가한 시골에서, 가지고 다니고 말고 할 것이 없는 것이라 아무 데나 함부로 넣어두고 있는 것이었다. 옳다 됐다 하고 급히 호주머니에 쓸어 담고 오치동 노름판을 찾아갔다. 오래 전부터 이름난 노름판으로 근면의 잡놈들은 다 모여들고 판돈도 많이 왔다갔다하였다.

태봉이가 오치동 노름판을 찾아가는 동안 근수는 집에서 창고 열쇠를 찾고 있었다. 항상 문 위에 걸려 있는 열쇠가 어디 가고 없는 것이었다.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져보고 선반 위에까지 보았다. 없었다. 곁방에도 가보고 부엌 쌀 항아리까지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도 없었다. 눈이 둥그래 가지고 한참을 찾다가 어머니에게 물어볼까 하였다 딴 눈치를 챌까보아 그만두었다. 이런 애통 터질 일이 없다고 머리를 박박 줴뜯는데 아까부터 돼지가 꽥꽥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곤두선데다 머릿속이 더 쏘알거렸다.

빌어먹을 놈의 돼지새끼!

혼잣말을 중얼이고 돼지우리로 달려갔다.

-꿀꿀 꿀꿀.

네 이놈의 돼지새끼!

겨 한바가지를 떠주고 문득 처마기슭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해괴한 일이었다.

창고 열쇠가 거기에 꽂혀 있는 것이었다.

아하!

득의한 혼잣웃음을 웃으면서 열쇠를 뽑은 근수는 이내 짚이는 생각이 있었다.

-아버지가 여기다 감춰두고 갔구나 ! 내가 벼를 달라고 졸라댔더니.-

그런 근수는 이튿날 새벽 과연 눈을 뜨자마자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왔다.

뒷간에 가서 오줌을 누고 대문 앞으로 갔다. 소리가 안 나게 빗장을 뽑아놓고 창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대문 앞으로 오니까 태봉이와 구루마꾼이 거의 동시에 왔다.

가만히 들어와.

근수가 태봉이를 데리고 창고로 들어와서,

하나씩 들어다 싣자.

벼 스무 가마니를 눈 깜박할 새에 들어다 싣고 창고 문을 잠갔다. 열쇠를 갖다 돼지우리에 되꽃아 놓고,

너는 어쨌냐?

귓속말로 넌지시 물었다. 곧 논문서를 어쨌냐는 말이었다.

나도 되었다.

태봉이가 안으로 기어가는 목소리로 응수했다

몇 마지기?

두 마지기다.

어디다 팔았냐?

오치동 노름판에다.

그래, 돈은 네 몸에 지녔냐?

담았다.

그럼 됐다. 구루마 뒤를 따라서 이 길로 뜨자.

새벽 어둠을 타고 마을을 하직한 두 젊은이는 읍에 와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 정미소에 이르러,

여기다 내립시다.

구루마꾼에 게 말하고,

마을에 가면 둘이 이러고 가더란 말 마시요.

말 안 내께 해장이나 한잔 받아주소.

근수는 벼 값 삼십만원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술 한잔을 먹여 보내고 태봉이와 함께 기차 정거장으로 갔다.

 

이들이 열차에 흔들리면서 서울로 가는 동안 남산양반은 복남씨를 따라서 시내 구경을 나왔다.

아침 일찌기부터 나와서 창경원을 구경하고 경복궁으로 해서 명동으로 온 것이었다.

이놈의 사람들 많은 것 보소이!

남산양반이 입을 딱 벌렸다.

그래도 다들 고급으로 안 입고 다닌가.

이 많은 사람들이 뭣을 묵고 살까!

그래도 시골사람들보다는 다 잘 먹고 잘 사니. 아무리 못사는 집이라도 고기 반찬 떨어지는 집이 드물고 밥도 잡곡밥들은 거의 안 먹니.

장관이시!

그럼 미도파 좀 구경하께.

지하도를 건너서 미도파로 데리고 가 가지고,

이것이 예전부터 이름난 백화점이라네.

미도파 안으로 들어선 남산양반은 대뜸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가지각양으로 진열된 물건이며 그 물건을 비추는 쇼윈도우의 전등이며 그 전등불에 비춰진 어여쁜 점원들의 옷차림이며, 또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손님들의 행렬이며가 흡사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 사람도 많지만 물건도 많네.

이래도 딸린 물건이 있다네.

여기 오신 기념으로 라이타나 하나 사 드릴께.

뭣을,,,,,,

하나 사.

복남씨가 매끄러운 라이터 하나를 사주고 위층까지 두루 구경을 시켰다, 그리고 다시 지하도를 되 건너와서 식당으로 갔다.

배가 안 고픈디.

오소, 점심을 걸러서야 되겄는가.

이층으로 가 자리를 잡은 복남씨가.

뭣 잡수실란가?

아무 것이나 묵세.

아가씨, 여기 불백 두 사람 분하고 맥주 두 병만 줘요.

남산양반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엽차 한 모금을 홀짝 하더니,

어저께는 내 말만 하고 말았네만, 자네는 처음 서울에 와서 어떻게 해 가지고 그런 집까지 장만했는가?

못내 궁금한 말을 이제야 꺼냈다.

첨에는 고생을 많이 했네.

, 고생 않고 성공한 사람이 있겄는가,

나 고향에서 떠나던 해 알제?

그래서 남은 밭을 마저 판 것이 그때 돈으로, 불과 십구만 원밖에 안되데.

그해 쌀 시세가 어떻게 갔던고? ---

쌀 한 가마니에 삼천이백 원, 삼백 원 갔더니,,,,,, 그래 십구만 원 가운데서 빛 오만 원을 갚고나께 십사만 원밖에 더 남는가,,,,,, 그 돈으로 십만 원 주고 게딱지만한 전세방 두개를 얻고 나머지 가지고 살림을 붙였더니.

용기가 대단했네 그래.

오죽하면 그 돈 가지고 여덟 식구나 된 큰 식구를 이끌고 올라왔겄는가.

하고 복남씨는 집을 이룬 경위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처음에 올라와서는 제일 밑천이 적게 드는 고물장사를 시작했다. 리어카 하나에 저울하고 가위하고 현금 몇천 원을 준비하니까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가길를 땡땡거리고 돌아다니면서 빈 병 ,휴지, 철물, 고무신 ,가구 할 것없이 고물을 닥치는 대로 거둬들였다. 그래 남 보기에는 천해 보여도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못 버는 날은 못 벌어도 잘 버는 날은 하루에 천 원도 벌고 이천 원도 벌었다. 이걸로 여덟 식구가 간신히 밥은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교육비까지 당해 내기는 어려웠다. 당시 만종이, 선종이는 중학교에 다니고 밑의 두 애는 국민힉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네 놈의 학비가 무시 못하게 들었다. 그걸 대느라 제 어미가 보세가공을 하고 시장에 가서 떡 장사를 했다. 그리 어찌 이삼년을 지내다가 포장마차에 눈을 떴다. 길가에서 리어카를 받쳐놓고 파는 참새장사인데 이게 돈이 꽤 벌렸다. 남이 보기에는 시원찮게 보여도 그때 돈으로 하루에 사오천 원 벌이가 되었다. 포장마차만 있으면 밑천도 하루에 만 원 안쪽이년 되었다. 하루에 만원 안쪽을 들여놓고 사오천 원 벌이가 되니 얼마나 숱한 장사냐고 하였다. 여기서 힘을 잡아 한푼 두푼 저축을 한 것이 사오 년이 되니까 오백만 원이 앞섰다.

원금에 이자가 붙고 그 이자에 다시 이자가 붙어서 놀랍게 불어난 것이다. 그걸로 처음 칠백만 원 짜리 집을 한 채 샀다. 방 둘을 세 내주고 둘만 쓰니까 칠백만 원 짜리를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걸 한 이년 살다가 다시 삼백만 원을 보태서 약간 큰 집을 천만 원에 샀다. 그걸 다시 이년을 살다가 집을 손봐 가지고 천오백만 원 짜리 집을 샀다. 그게 이삼년 전의 부동산 물살을 타고 오늘의 집 값에 이르렀다고 하고,

돈이 불을라께 이상하게 붇데.

그런디 나는 낮잠만 자고 있는 셈밖에 안되었네 그랴.

워낙 농촌이 돈이 귀한 디라 그런 것 아닌가.

더 벌래야 벌 길이 없다 마시.

들세, 어서.

두 친구는 상을 물리고 담배를 붙여 문 뒤 오후에는 남산구경을 갔다. 택시를 타고 구불구불 산허리를 돌아서 꼭대기로 오자 시가지 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가을햇살 속에 끝간데없이 뻗럭 있는 시-지가 희부옇게 흐려 보이고 높은 빌딩들이 성냥 갑처럼밖에 안 보였다. 지나가는 차들도 한없이 느려 보이고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개미 만끔밖에 안돼 보였다.

서울이 확실히 크기는 크시.

밤에 봐야 좋은디 지금은 안 보이네. 산허리까지 반짝이는 수수백만의 전등불이 꼭 별같이 아름답네이.

그래? ---

두 친구는 그냥 내려오기가 뭣해서 벤치에 걸터앉아 또 간단히 맥주 한 잔씩을 하고 내려왔다.

 

돈암동으로 돌아오자 어느새 해가 지고 사방에 전등불이 켜 있었다. 짧은 가을해라 다섯 시밖에 안되었는데 그새 땅거미 든 것이다.

오소, 가서 우리 장사하는 것이나 한 번 보고 가소.

복남씨가 말하고 아내가 술을 파는 포장마차로 데리고 갔다.

구경 갔다 오시요?

, 장사 나와겠소.

남산양반이 말하고 포장마차를 둘러보았다. 불과 반 평 남짓한 리어카에 포장을 둘러놓은 술 가게인데 안주가 썩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뎅을 비롯해서 낙지 ,오징어 ,돼지갈비 ,곰장어, 닭발, 닭똥보, 우렁, 처녑, 참새 등 보기만 해도 술맛을 돋구었다. 거기다 김밥과 국수까지 겹쳐서 간단한 저녁 요기도 할 수 있었다.

앉세, 이리.

복남씨가 나무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마침 손님 이 뜸하고 조용한 것이었다

남산양반이 옆으로 걸터 앉자,

곰장어에 술 한잔 할란가? ,,,,,,

술은 무슨 술을 또 먹어.

한잔만 하세.

복남씨 아내가 불그스름한 곰장어 두 마리를 석쇠에 얹더니 소금을 뿌리고 칼질을 하였다. 그걸 오그라지도록 구워서 술과 함께 내놓고,

고향에 가거든 이런 술장사 하더라고 숭보지 마시요이.

아따, 별말씀을 다 하시요. 못하는 것이 한이제 누가 숭을 보겄소.

곰장어가 먹을 만하니 들세. 아까도 말했지만 이 장사가 무시 못할 장사라 마시.

그러고 말고제. 집까지 장만했는디.

이래봬도 요즘은 하루에 만오천 원, 이만 원 벌이까지 되네.

그것도 하루내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요맘때 나와서 밤 열두 시면 슬어가네.

하루에 만오천 원, 이만 원이면 어딘가, 이사람아.

한 달에 평균 오륙십만 원 벌이는 되네.

두 달만 벌면 우리 같은 사람 일년 농사 지은 놈이 나오겄네 그랴.

그러고 말고제.

하고 거기 양푼에 담긴 노란 닭발들을 가리키면서,

저것 하나에 십 원씩에 사다가 양념 좀 무쳐 가지고 오십 원씩 받네.

남산양반은 돈을 거져 쓸어 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돼지고기 저것은 한 근에 천삼백 원을 주고 사다가 여덟 첩을 만드네. 한 첩에 삼백오십 원이께 고도 얼만가. 오징어도 곱 장사가 넘고 곰장어는 세 곱을 바라보네.

농촌 사람들이 들으면 부황 나겄네.

그래서 다 먹고 살제 어쩐단가.

이러니 사람이 서울로 몰려들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남산양반은 이튿날 차를 타고 째려오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해보았다.

전답을 정리해 가지고 서울로 올라올까, 그대로 주저앉아서 농사를 지을까?

만일 서울로 올라온다면 무엇을 해먹고 살며 애들 교육문제는 어떻게 할까?

수입이 적어도 고향에서 그대로 농사를 지으면 마음은 편하겠는데 살림이 더 이상은 피어날 길이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근수까지 마음이 들떠서 툭하면 서울 노래를 부르는데 그 애가 만일 서울로 올라와 버린다면 일손이 없어서도 농사를 못 지을 것 같았다. 늙은 만년에 허리는 다 굽어들고 무슨 힘으로 농사를 짓겠는가 싶었다.

그렇대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가 밥벌이를 못하면 전답까지 다 까먹고 거지신세가 되지 않겠는가 하였다.

그러니 안전 대책으로 전답은 그대로 두고 몸만 올라와서 뭐든지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갈피를 못 잡고 회의를 거듭하다보니 어느새 차가 고향 역에 닿았다.

가게에 들러서 과자 한 봉지를 사 가지고 집으로 오자 식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인자 오시요?

아버지 다녀 오시요?

다녀 오시요.

허리를 꾸벅꾸벅 숙였다.

큰애는 어디 갔단가?

아내에게 묻자 남산댁이 이마를 찌푸리고,

어저께 아침에 깨고 보께 어디 가고 없어라우.

가기는 어디를 가? ,,,,,,

어저께 하루내 기다려도 안 오고 오늘까지 기다려도 안 오요예.

찾아쏜는가?

가볼 만한 디는 다 가봤어라우.

함께 나간 사람도 없던가?

뒷께 태봉이도 어저께부터 안 보인다고 한 것같습디다.

그래!

이맛살을 찌푸린 남산양반은 묻지 않아 두 놈이 귀를 짜 가지고 어디로 나가버린 것이 아닌가 하였다. 그렇게 서울 노래만 불러 쌓더니.

태봉이네 집에서는 뭐라고 하던가?

우리처럼 기다리고만 있제 어째라우.

개들을 쏜다는 사람도 없고.

없습디다.'

그럼 남의 눈에 안 띄게 할라고 새벽에들 어디로 가버린 것 아닌가?

모르지 라우.

그나저나 물이나 좀 떠오노, 손발 좀 씻을라네.

 

남산양반은 과자봉지를 풀어주고 손발을 씻었다. 막걸리 반되를 받아오게 해서 목을 축이고 뒷께로 넘어갔다, 태봉이네 집으로 가서,

아니, 집이 태봉이도 집을 나가서 안 들어온담서라우

근심스럽게 묻자 태봉이 아버지가 목을 뽑고 있다가,

금매 어디 갔는지 모르겄소.

혹 두 놈이 귀를 짜 가지고 어디로 안 나았는지 모르겄소.

나도 그런 생각이 드요만 본 사람이 없으께 알겄소?

하고 태봉이 아버지가 문득 장롱을 열고 소위 귀중한 문서가 들어 있는 서랍을 열어보았다. 논문서 봉투를 풀어 가지고 이리저리 뒤적이던 태봉이 아버지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서류를 또 한번 뒤적여보고,

아니 ! 논문서가 하나가 없어졌네.

무슨 논문서가 없어졌소?

두 마지기 짜리 논문서 하나가 없소.

사뭇 놀라운 표정을 짓더니,

이놈이 빼 가지고 도망갔다냐 어쨌다냐 ! ,, ,,,

남산양반도 어쩜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아하

자기 모른 새 부르짖고 집으로 달려갔다.

허둥지둥 문을 열고 들어가서 선반 위에 얹어놓은 족보상자를 열어보았다. 논문서 봉투를 내가지고 하나하나 젖혀 보았다. 다행히 하나도 안 없어지고 그대로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돼지우리로 갔다, 처마 기슭을 올려다보니 창고 열쇠도 그대로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겠다 하고 창고로 가 자물쇠를 끌러보았다. 창고 한쪽이 텅 비어 있었다.

아니, 자네 창고 문 열었는가

아니라우, 안 열었어라우.

나락이 없어지고 없네,

오메, 이 무슨 말이란다

남산댁이 달려와서 빈 창고를 보고,

워따, 워따! 이 무슨 일이라우?

필경 근수가 가지고 도망갔는 것 아닌가.

그랬는 것이요. 나는 창고 문을 연 일도 없고 열쇠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디.

그런께 이 사람아, 문단속 잘 하고 집 잘 보라고 않던가.

그놈이 그런 짓을 할지 누가 알았을 것이요. 몇 가마니나 없어졌소

남산양반이 벼 가마니를 세어보고,

꼭 스무 가마니 없어졌네.

그놈이 이 나락 빼갈라고 깜깜한 새벽에 나갔는 것 아니요.

그래도 우리는 이만하기 다행이시. 태봉이는 논문서를 빼 가지고 가고 없데.

오메, 그래라우!

죽을 상이데.

서울 서울 해 쌓더니 기어코 집이 것 훔쳐가지고 가고 없소 그래,

빛은 어떻게 갚고 농사는 또 어떻게 지을꼬!

남산양반이 한숨 사이로 몰아 뱉자 남산댁이,

그럼, 서울에 간 이야기나 좀 해 보시요. 선종이네랑 서울사람들은 어떻게들 하고 삽디여?

가세, 올라가서 이야기하세.

아내를 데리고 마루로 올라와서,

대체 서울이들 잘살기는 잘살데.

하고 서울에 가서 보고들은 이야기를 죽 다 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남산댁이,

그래라우 잉

거듭 감탄을 토하더니,

그럼 우리도 서울로 올라 붙입시다. 이날껏 농사지어 가지고 남은 것이 뭐 있소? 이제는 일손이 없어서도 농사를 못 짓겄소.

그러세, 지금 전답을 내놨다가 명년 봄에나 올라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