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단편 소설

돌 방 구 네

자한형 2022. 2. 17.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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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방 구 네-오유권

 

흉악하게 게으른 여편네였다. 어린 자식들의 해진 옷구명은 커녕 제 속곳 가랑이 하나 깨끗이 빨아 입지 않는 돌방구네였다. 끼니 끓일 나무가 없어도 나무 걱정을 할까, 장마통에 담벽이 무너져도 그것을 쌓아 올릴 생각을 할까, 그저 어린 자식들이 지게품을 팔고 나무를 해다 주면, 또박또박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밤낮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여기 말 갖다 저기다 옮기고, 저기 말 갖다 여기다 퍼뜨렸다. 마을 사람들의 살림 속이나 뉘집에 어떤 변이 생겼다는 것은 거의 이 돌방구네 입을 통해서 온 마을에 번지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집에 어떤 손이 와서 이러저러하고 갔다든가, 아무와 아무는 어느 때 무슨 시비를 하여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든가, 심지어 성 안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며, 성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까지 갖다 전하였다는 돌방구네의 말이 때로는 마을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마을에 한 여론을 일으키는가 하면, 때로는 운수 사나운 시비 거리가 되어 봉변을 당하는 때도 있었다.

이 돌방구네에게 세 딸과 세 아들이 있었다. 딸 셋은 이태 전까지 십리, 이십 리 밖으로 시집을 보냈는데 그 딸들의 어미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다. 명절마다 성안에 장을 보러 나오는 길엔 꼭꼭 들러서 고깃근이나 쌀되를 들여 주고 가는가 하면, 여름철에는 시어른들 몰래 장만한 푼돈들을 모아서 마포 저고리와 모시치마를 사 보냈다. 더욱 작년 여름에 저의 아버지가 채독을 앓다가 돌아간 뒤부턴 어미에 대한 동정이 극진하였다. 철철이 와서 가세를 살피고, 어미가 조금만 앓아 누워도 겁을 먹었다. 어머니나마 오래까지 살아서 동생들과 한세상을 누려야 한이 없겠다는 것이었다. 반면, 이런 딸들에 비겨, 남은 사내자식들은 모질고 게을렀다. 도무지 어미에 대한 인정이 없는 데다 말들을 듣지 않았다. 밤낮 피둥피둥 자빠져 뒹굴면서 마을에만 나가 놀기를 즐기는 것이다. 딴은 이제 갓 스무 살 안짝의 철부지들이므로 그런 걸 일일이 탓할 수 는 없는 일이지만. 그 세 아들 가운데서 열아홉 살 먹은 큰 놈은 성안 정거장서 지게품을 팔고, 열다섯 살 먹은 둘째 놈은 나무를 하러 다니고, 열두 살잡이 작은 놈은 국민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세 아들의 생김 생김이 어미와 한 모양, 한 빛깔인 데다 게으른 것까지도 그리 똑같았다.

그런 돌방구네에게 요즘 열중한 곳이 한군데 있었다. 석달 전에 성 안에 새로 생긴 천주교회였다. 돌방구네는 이른바 열렬한 예비 교우인 데다 무내리골에 있어서는 회장격이기도 하였다. 그렇듯 게을러빠진 여편네가 남달리 천주교회가 생긴 것을 먼저 알고, 또 마을의 회장격까지 된 것은 오로지 그네가 마을 돌아다니기를 즐기고 입심이 센 까닭이었다. 그네가 마을 아나네들에게 전교하는 말들은 대개 이러하였다.

첫째, 천주교를 믿으면 세상의 괴로움을 잊고, 죽어서는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는 것. 둘째, 천주교는 예수의 어머니 - 곧 예수보다 높은 마리아 성모를 더 받들기 때문에 예수교보다 높고, 유독 여자들이 다니면 복을 많이 받는다는 것. 세째, 천주교는 예수교보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그래서 이렇다는 신사들이 많이 다닌다는 것, 그래서 이런 일을 도맡아 거느리는 신부는 평생을 깨끗이 살려고 장가도 안 들고 지내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끝에는

한 달에 강냉이가리 타 묵는 것만 해도 돈 천 환씩은 돼. 거기다 밀가리 나오겠다, 옷가지것 타겠다.

속삭이듯이 말하고는,

그렇지만 고런 것을 바라고 댕기면 못 써라우. 이녁 맘 속으로 진실하게 믿어야제.

이와 같이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다. 그때마다 마을 아낙네들은 으례,

게으른 에펜네야, 자네가 진심으로 믿긴 뭘 진심으로 믿어. 남의 일하려 댕기기 싫고, 배고픈게 그러제.

남 가르칠라 말고, 죽은 남편 상방(喪房)이나 깨끗이 좀 손봐 놓소.

이렇게 비꼬는 옆에서 그래도 가난하고 일없는 사람들은 돌방구네의 말에 솔깃이 귀를 기울이곤 하였다.

 

돌방구네는 오늘 저녁에도 희멀건 강냉이가루 죽 한 사발을 마시고 나자, 자식들을 닥달하였다.

, 이 썩은 놈들아, 오늘 같이 따뜻한 날, 무슨 지랄을 하고 놀러만 댕기냐, ? 가 부엌에 좀 가 보아라, 나무 하나가 있는가. 그리고 언제부터 네 애비 상방 좀 손봐 노라 해도…… 그 상복이나 만사가 비에 젖어서 쓰것디야, ? 내년이 대상인디 네놈들이 상방 한번이나 깨끗이 닦어 봤나. 내가 천주교회라도 안 댕기면 벌써 굶어죽었을 것이다. 굶어죽어! 에이, 오살놈들.

매일 같은 잔소리가 시작되자 큰 놈과 둘째 놈은 냉큼 나가 버리고 작은 놈만 웃목에서 못 들은 척 공을 굴리고 있었다.

시상에 복도, 복도 나같이 없는 년은 없을 것이다.

과연 돌방구네는 교회에 열성을 다한 나머지 그 사이 강냉이루 배급을 한 말씩 두 번 탔다. 뿐만 아니라 서양 사람들이 입던 헌 옷도 아래 위 세 벌을 얻었다. 그때마다 돌방구네는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들면서, 까마득히 십년 전, 성안에 예수교가 들어오던 때, 그때 역시 어린 자식들과 헐벗다 못해서 한 해 남짓을 예배당에 다니면서 빵과 과자를 얻어먹던 생각이 되 살아났다.

그러나 돌방구네는, 가난이 두루 죄이거니 하는 생각에서, 이제도 공을 굴리고 있는 세째 놈에,

이놈 냉큼 일어서서 <교리 문답> 가져오너라.

하였다. 교리 문답이란 글자 그대로 교리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을 가르치는 책이다. 천주교인이 되려면 모름지기 이 책을 숙습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 한사코 이 교리 문답을 빠리 외어서 영세(領洗)를 받아야 참다운 교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보다도 배급을 많이 탈 욕심이 많았다. 영세 교우는 영세를 안 받은 예비 교우보다 배급을 배를 더 주는 것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배급을 배를 더 타면 그 벌이가 어디냐는 생각이었다.

냉큼 가져와야, 이놈아.

세째 놈이 농 틈바구니에서 교리 문답을 찾아왔다.

대사 다음이 뭣이야? 그 다음 읽어 봐라.

성체여.

그래 어서 읽어 봐.

아들이 책을 보고 읽어 주면 어미는 그 뒤를 따라 읽었다. 집에 글자를 아는 사람이라곤 국민 학교 삼 학년에 다니는 이놈뿐인 때문이었다.

성체는 무엇이뇨?

면주 현상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니라.

성체 성사는 무엇이뇨?

칠성사 중에 제일 큰 성사요, 천주 교회의 제사요, 또한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니라.

이와 같은 성체절을 열 번도 더 왼 돌방구네는 세째놈이 잠든 뒤에도 십이단을 외었다. 천주경으로부터 성모경, 종도신경, 고죄경을 거쳐서 관유하심을 구하는 경을 외었다.

전능하신 천주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상생에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이튿날 돌방구네는 네 아낙을 데리고 주일 미사에 나갔다.

이윽고 종이 울리자 밖에 섰던 사람들도 성당으로 들어오고, 남자석 왼편에 있는 여자석에는 머리마다 하얀 미사포가 눈부셨다. 돌방구네도 같이 온 아낙들과 함께 왼편 뒤로 가서 미사포를 쓰고 무릎을 꿇었다.

, 천주의 은혜를 의지하여, 오늘날 이 미사를 천주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무리와 만민의 영혼을 위하여, 듣기를 원하오니……」

미사 전송이 교우들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신부가 복사를 양옆에 끼고 제단 앞으로 나왔다.

 

성가대가 나직이, 그러나 힘차게 엘레이션을 노래부르고 헌병이 헌작되었다. 그리고 이윽하여 거양성체가 시작되는 것이다.

쩌르릉.

요령이 울리자 신부가 경건히 허리를 구부리고 면주병을 머리 위로 치올린다. 교우들도 일제히 허리를 구부리고 경건한 기구에 묵묵이 잠겼다.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삼엄한 순간이다. 예수를 불러 일으켜 면주 안에 모신다는 것이다.

쩌릉 쩌릉 쩌릉.

요령이 울릴 때마다 교우들은 약간 고개를 들었는가 하자 다시금 허리를 구부리고 경건한 기구에 예수의 심령을 자기 안에 모시는 것이다. 자못 신성하고 삼엄한 순간이었다. 교우들의 얼굴엔 사욕과 악독은 까맣게 저버린 듯 고요한 정애가 흘렀다. 돌방구네의 표정도 다를 것이 없었다. 하루 바삐 영세를 받아야 한다는 열정이 더욱 굳어지고 있었다. 그네는 주일마다 이러한 미사를 통하여 천주의 성체가 과연 자기 안에 스며들고 있는 듯한 영광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사가 끝난 뒤, 성당 밖으로 나온 여회장이,

이 달 배급이 나왔는데 틈나는 대로 타 가세요들.

이리하여 교우들과 함께 배급 창고로 온 돌방구네는 자못 서운하였다. 오늘 역시 영세 교우들은 강냉이 가루를 두 말씩 주는데 영세를 안 받은 자기들은 한 말씩 밖에 안 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돌방구네는 뜻밖의 소식에 힘이 솟았다.

오는 부활절 날 영세를 준다는 것이다. 그 사이 교리 공부를 열심히 하여 오는 주일 안으로 찰고를 바치라는 것이었다. 곧 신부께 교리 문답을 외어 바치고 영세를 받겠는가 못 받겠는가 그 자질을 심사 받는다는 것이었다.

부활절까지는 앞으로 이 주일 이상이 남았다. 한 주일만 애쓰면 될 것이었다. 돌방구네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째 놈을 욱대기며 교리 문답을 외었다.

종부는 무엇이뇨?

명오 열린 교우를 벙으로 인하여 죽을 위험 있을 때에 돕는 성사니라.

부부 지킬 의무는 무엇이뇨?

서로 사랑하여 동거하고 화목함이요 서로 신의를 지킴이니라.

성사 몇 가지 있느뇨?

일곱 가지 있느니 성세와 견진과 고해와 성체와 종부와 신품과 혼배니라.

그럼 엄니가 인자, 십이단 한번 외어 봐.

십이단 뭣을 욀꺼나?

망덕송.

망덕송.

하고 돌방구네는,

우리 천주여, 네 인자하심과 오 주 예수의 무한하신 공로를 이하여 네 허락하심과 같이 이 세상에서 내게 은총을 베푸시고, 후세에는 상생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더듬더듬 이렇게 외고 나서,

어째, 맞지야.

납죽한 입에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맞어, 그럼 또 소회죄경.

돌방구네는 소회죄경도 다 외었다. 더욱 천주경, 성모경 같은 것은 문제없이 외었다.

그때마다 돌방구네는 자신만만하여 자기가 데리고 다니는 아낙네들을 찾아다니면서,

워이마시 워이. 나는 인자 교리 문답을 모두 외네 워이.

하고, 호도깝을 떨곤 하였다.

신부께 찰고를 바친 돌방구네는 어렵잖이 심사에 합격하였다. 어욱 하늘같이 우러르는 신부로부터 누구보다 잘 알고, 잘 왼다는 칭찬까지를 들었을 때, 돌방구네는 자못 흡족해 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돌방구네는 적잖아 당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 집에 조당(  - 말하면 어떤 다른 신을 섬기거나 믿고, 지키는 것)이 있으면 영세를 못 받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초하루, 보름에 상식(上食)하는 남편의 상방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남편의 상방은 일테면 교회에서 말하는 마귀나 잡귀 그것이라 하였다.

한참 동안 골몰이 생각던 돌방구네가,

그럼 제사는 누구든지 못 지낼 것이요?

신부 옆에 있던 여회장이, 제사는 일 년에 한번씩, 다같이 교회에 모여서 한꺼번에 모시는데, 그렇게 모시면 죽은 임자도 더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하였다.

정말 그러께라우?

여회장은 거듭, 천주교회에서 거짓말하는 법이 어디있느냐고, 교리 공부는 첫째로 하였으니까, 주인의 상방만 없애면 오는 부활절에 영세를 준다고 하였다.

돌방구네는 하룻밤 하루 낮을 골똘히 궁리하였다. 영세를 안 받기도 딱하거니와 남편의 상방을 없애기는 더구나 딱하였다. 대상이 명년이니까 한 해만 상식을 하면 상방은 절로 걷어치워질 것이었다. 천주교도 예수교 모양 제사를 못 지낸다는 말은 들어왔지만 막상 맞닥치고 보니 이러기도 난처하고 저러기도 난처하였다. 하기야 초하루 보름에 물을 떠놓고 제사를 지낸들 정말 즉은 귀신이 와서 운감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렇다더라도 대대로 내려온 제례와 풍습을 하루 아침에 뜯어 없앨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자손을 원하고 자손의 번영을 비는 것은 아비된 사람으로서 살아 생전에 영화를 누리자는 생각도 있지만 보다 뒷날에 물 얻어먹을 것을 염원하고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허다한다. 더욱 어렸을 때부터 들어 온 이야기인즉, 죽은 뒤에 물 얻어먹을 후손을 못 남기고 즉은 혼령은 집집이 돌아다니면서 거지 노릇을 하거나, 그도 못하면 길바닥에 고꾸라져 죽는다지 않던가. 그리고 그와 같은 고혼들은 먼 살붙이 하나라도 있으면 기어코 찾아가서 병을 주고 약을 주어서 자기 물을 떠놓도록 돌볶는다지 않던가.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이녁이 보고, 겪지 않은 일이니까 임자 없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러나 어디까지 자식 있는 표시만은 남기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 같았다. 돌방구네는 그 자식 있는 표시라면 꼭이 내려온 풍습에만 따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천주교회에서도 일 년에 한번씩 다 같이 모여서 제사를 지낸다지 않는가. 도리어 그 편이 더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여회장은 분명히 말하지 않던가. 천주교회에서는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상방을 없애면 죽은 남편이 얼마만큼 섭섭다 하겠지만 그러나 즉은 자기도 생각해 볼 일이라 하였다. 자기가 살아 생전에 논마지기, 밭뙈기만 붙여 두었던들 무슨 신이 들어서 천주를 섬길 것인가 하였다. 말 못하는 혼령일망정 눌러 참을 일이라 하엿다. 자식들을 위하여 남은 지어미가 이같이 애쓰는 것을 족ㅁ은 돌보아 줄 일이라 하였다.

이와 같은 궁리를 되풀이하고 의심하고 또 되풀이하고 또 의심한 돌방구네는 마침네 찰고를 바치고 돌아온 이틀만에 상방을 뜯어서 불사르기 시작하였다. 어쨌든 자식들과 살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백지로 덮은 위패를 비롯하여 남편이 신던 신이며, 곰방대벼, 요줄, 상장, 만사, 행전, 상복을 모조리 뜯어 가지고 뒤꼍으로 갔다. 마른 상재물은 바람에 불려 호닥호닥 타올랐다. 불꽃이 나울거리는 사이로 푸른 연기, 흰 연기가 까닭없이 설레었다. 때때로 역한 체취같은 것이 풍기기도 하였다.

 

돌방구네는 사지가 노곤하게 처지면서 으스스 소름이 끼쳤다. 머릿골도 찌잉하니 당기는 것 같았다. 때아닌 학질을 앓으려는 것일까. 근년에는 머리 한번 싸매고 누운 적이 없는데 그런데 그 다음날 보니까 학질도 아닌 듯하였다. 아침나절만 한속이 좀 덜하고 도로 사지가 자근자근 쑤시면서 열이 올랐다. 입술도 파삭파삭 탔다. 그러더니 밤들면서부턴 온 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올랐다. 마침내 자리 보전을 하고 큰 놈을 시켜서 한약 세 첩을 지어다 먹었다. 효험이 없었다. 다음다음 날은 양약이 어떨까 하고 양약 한 갑을 사다가 사흘을 복용하였다. 그래도 효험이 없었다. 여전히 아침나절만 열이 좀 내릴 뿐.

이미 사흘째 밥숟갈을 못 잡은 돌방구네의 얼굴이 아주 새하얬다.

어느때처럼 교회에 가자고 온 아낙네들이,

언제부터 그러요예?

깜짝들 놀랐다.

예니레 되요.

오메, 얼굴 못 쓰게 되었는걸!

아니 무슨 약이라도 좀 쓰제 그러시요?

첩약도 쓰고 양약도 묵었소.

그래도 안 낫소?

안 낫소.

그럼 어디 가서 점()이나 한번 쳐 보시요. 뭣 놓인 것 없는가.

그러자 옆의 아낙이,

교를 믿는디 점은 무슨 점을 쳐, 병원에를 가제.

대체……」

내일은 병원에나 좀 가 보시오. 여회장도 병이 나면 병원으로 가락 안합디여.

병원엔 가재도 돈이 있어야 가지라우.

오늘, 집에, 나무 폰 돈 몇 닢이 있은께 그놈 좀 돌려 쓰시오.

이튿날 돌방구네는 열이 약간 내리는 아침나절을 타서 병원엘 갔다.

하얀 소독복을 입은 의사는 돌방구네를 의자에 앉히고 병의 증세를 물은 뒤, 체온기를 겨드랑에 안겨 주었다.

왜 진작 오지 안했소? 열이 많이 오르는데.

돈이 없어서 그랬어라우.

그래도 빨리 와야지.

얼굴이 핼쑥한 의사는 이제 청진기를 갖다 귀에 걸고 가슴을 진맥하더니, 여리고 길쯤한 손가락으로 갈비뼈를 콩콩 울려 보았다.

어째 그냥 났겄소?

돌방구네가 묻자,

쉽게 회복하겠소.

모진 병은 아니지라우?

, 학질기니까 주사맞고 약 먹으면 괜찮을 것이오.

의사가 처방전을 써 주고 들어간 뒤, 돌방구네는 간호부한테 주사 두 대를 맞고 가루약 한 봉을 받았다.

이 놈만 묵으면 그냥 낫으께라우?

돌방구네는 다시금 간호부한테 이렇게 물었다. 간호부가 소독물에 손을 씻다가,

나아요, 괜찮아요.

잽싸게 내뱉으면서 손 씻은 대야물을 갖다 창 너머 꽃밭에다 쫙 헤뜨렸다.

그냥 낫는다고 하니, 돌방구네는 말만 들어도, 곧 나아지는 것 같았다. 과연 집으로 돌아올 때는 정신이 맑고 몸이 가벼웠다. 그래 집에 와 닿자마자 베개를 모로 베고 이내 짐이 들어 버렸다. 아물아물한 꿈속에서 남편을 보았다. 까마득하게 넓은 강을 가운데 끼고 그네와 남편은 마주 서 있었다. 남편이 개미같이 작아 보였다 삽시에 그림자처럼 커 보이곤 하였다. 강 건너 저편은 망망한 폐허라 하였다. 그네는 꿈 속에서도 죽은 남편이 어쩌면 저와 같이 멀쩡할까 하고 오히려 무심하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남편은 오른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강물에 던질 듯 말 듯 망설이고 있었다. 뭣이요오?-그네가 목청껏 부르짖었다. 목청껏 부르짖는 고함소리가 자기 귀에도 메아리처럼 들러 오는 것 같앗다. 순간, 개미처럼 작아 보이던 남편이 그림자 모양 확대되면서 육박해 왔다. 그리고 새까남 얼룩에 빨간 이빨응 드러내 놓고 손에 것을 펴 보이면서, 담배라고 하였다. 곰방대가 없어서 담배를 못 피운지가 벌써 여으레째라는 것이었다. 얼굴과 이빨이 변한 것은 전혀 담배를 피우지 못한 여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서 있는 곳도 사실은 육중한 기와집들이었는데 여드레 전부터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이 어쩜 그렇게 무정할 수가 있느냐고, 만일 곰방대와 집을 새로 지어 주지 않으면 그만한 앙갚음을 하겠노라고 하였다. 순간 남편의 장대 같은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자기의 목을 졸라매려고 들었다. ! 돌방구네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잠을 깼다. 이마에는 땀이 송알송알 내돋치고 두 어깨가 빠개지는 것 같았다. 돌방구네는 고함소리와 함께 남편의 꿈은 까맣게 져 버렸다. 그런 돌방구네는 점심때가 지긋하면서부터 다시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입술도 파삭파삭 탔다. 온 삭신이 무너지는 것처럼 자근자근 아리는 것이다. , , 즉일 놈의 의사가 주사를 잘못 놔 준 것이 아닐까. 혹이면 주사 기운이 벌써 다한 때문일까. 의사는 그냥 나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간호부도 그랬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사를 맞고 겨우 서너 시간이 지난 지금, 낫기는 고사하고 더욱 열이 불같이 올랐다. 의사와 간호부의 말이 거짓말같이 생각되었다. 그런 채 돌방구네는 병원에서 가져온 가루약을 한 봉지식 세 차례를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남은 두 봉지를 한꺼번에 다 떨어먹었다. 그래도 효험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돌방구네는 이튿날도 병원엘 갔다.

주사를 맞아도 또 그냥 앓이드란 말이오. 무슨 병인가 똑똑이 좀 진맥해 주시요예.

의사는 어제모양 하얀 소독복을 입고 또 열을 재 보았다. 손맥도 짚어 보고 다리도 세워 보았다. 그리고 안에서 두꺼운 책 한 권을 가지고 나와서 한참 뒤적이더니 역시 학질의 일종이니까 걱정할 것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곤 오늘은 손수 주사를 놓아주면서 계속해서 이삼 일 간만 병원에 더 나오라고 하였다.

틀림없이 학질이오? 다른 모진 병은 아니요?

, 걱정 마시오.

인자 정말 머리 몸이 안 뜨겁겠지라우?

괜찮을 것이오. 내일 이만 때나 한번 더 나오시오.

하고, 주사기를 뽑은 의사는 간호부에게 어제의 가루약을 세 봉지 더 주라고 하였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돌방구네는 오늘도 집에 돌아온 지 겨우 두 시간만에 다시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어제보다도 더 앓이고 더 쑤시었다. 땀 한 방울이 안 나고 목까지 타오르는 것이다. 순간 돌방구네는 버럭 겁이 났다. 더 이상 의사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주사 기운은 아무래도 거짓말 같았다. 그럼 무슨 약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한약도 쓰고 양약도 써 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소용에 닿지 않았다. 보다 좋다는 병원의 주사약도 결국 이 모양인 것이다. 안되겠다. 이러다가는 큰일나겠다. 그런데 이날 밤중께 부터서는 몸이 급기야 반신불수가 되어 다리 하나를 제대로 일으킬 수가 없었다. 온 살가죽이 곧 찢어지는 것같이 당기고 머리골도 쪼개지는 것 같았다. 까무라치듯 정신을 잃었는가 하자 별안간 빈말을 하곤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돌방구네는 어서 일어나서 영세를 받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만은 더욱 굳어지고 있었다. 부활절은 앞으로 닷새밖에 안 남아 있었다.

 

이러한 이튿날 아침이었다. 벌써 해 그림자가 마당 가운데 와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열이 약간 내릴 무렵이었다. 그런데 오늘 따라 열은 조금도 내리지 않고 소날마저 꺼떡할 수가 없었다. 어찌어찌 정신을 든 돌방구네는 뜻밖의 사실에 깜짝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몸은 역시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느새 십 리, 이십 리 밖에서 사는 세 딸들이 다 와 있는 것이다. 겁을 집어먹은 세 아들이 어머니가 까무라치는 것을 보고 아침 일찌기 각각 누님네 집으로 달려가서 한 누님씩 데리고 온 것이다.

엄니, 정신 채리시오. 어디가 언제부터 편찮아서 이러시오.

가운데 딸이 부르짖었다.

오메, 엄니!

작은 딸이 흐느끼는 숨 사이로 배앝았다.

진작 좀 기별하지 않고……이러다가 돌아가시면 어쩔고잉!

부엌에서 미음을 끓이던 맏딸이 부지깽이를 든 채 뛰어들어왔다. 그런 세 딸의 시뻘건 눈시울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데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딸들의 사이에는 꾀죄죄한 옷을 입은 세 아들이 넋 잃은 사람모양 누님들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왔냐들.

돌방구네가 비로소 눈을 흘깃이 치뜨고 나직한 목안의 소리로 말했다.

엄니, 진작 좀 알리제 그랬겠소!

맏딸이 원망하듯이 어머니의 여윈 손을 잡았다.

이렇게 정신을 놓을 줄은 몰랐다.

약도 쓰고 병원에도 가셨드람서라우?

그랬다.

그래도 효험이 없구만이라우이.

다 소용없더라.

그럼 엄니, 우리 가서 점이나 한번 쳐 보고 올라우.

교를 믿는디 점은 무슨 점을 쳐야. 그만둬라.

그래도 혹 안다우. 우리 얼른 좀 갔다 올라우.

가운데 딸과 작은 딸은 어머니의 간호를 언니에게 맡긴 채 급히 집을 나섰다. 두 딸은 집을 나서되 한 무당한테로 간 것이 아니었다. 제각기 영특하다고 믿는 자기 마을 근처의 무당한테로 따로따로 간 것이다. 그것은 한 무당의 믿지 못할 점괘를 피하고 보다 적확한 것을 알기 위함에서였다. 곧 한 무당의 말을 종합해 보자는 것이었다.

두 동생이 점을 치러 간 동안 맏딸은 미음 끓여서 어머니 입에 흘려 넣은 다음, 물을 데워서 얼굴을 씻어 준다, 동생들 밥을 지어 먹인다 하며 부산하게 싸댔다. 그 사이 잡수신 것인들 오죽하였으며, 동생들 역시 고생이 여북했으랴 생각됨에 뜨거운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다. 한사코 어머니나마 오래까지 살아서 이 동생들의 때를 벗기고 한 세상 편히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점심때가 좀 지나서였다. 점을 치러 간 가운데 딸이 땀을 물 흘리듯 하면서 돌아왔다. 그런 딸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엄니, 아부지 상방을 없애겠소?

쌔근거리는 숨 사이로 이렇게 뱉었다.

오냐, 영세를 받을라고 한 열흘 전에 뜯었다.

어따! 어짤라고 상방을 다 없앴소예? 점을 친께 그것이 곧 드러납디다. 상방을 새로 지어 놓지 않으면 이 달을 넘기시기가 어렵겠다고 합디다.

그러자 맏딸도 깜짝 놀라, 아버지의 상방이 모셔 있던 헷청으로 가,

어따, 상방을 없애겠네이! 겁결에 들어오니라고 나는 그것도 짐작꼴로 봤네.

순간 돌방구네는 이상한 직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요 앞서날 낮에 꾼 남편의 꿈이었다. 까맣게 잊었던 꿈이 지금 꿈속 모양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다. 곰방대와 집이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고 두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목을 졸라매려고 들던 남편의 얼굴. ! 돌방구네는 꿈속에서 모양 고함을 지르면서 남편의 험한 얼굴을 지우고자 애썼다. 그러나 영세를 받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딸의 말 역시 굳이 곧이 들으려곤 하지 않았다. 진정하게 교를 믿으면 마귀가 부접을 못한다고 천주교회에서 누누히 들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밖에서 이젠 작은 딸의 급한 목소리가,

엄니.

하면사, 선뜻 마룻장을 딛고 올라서더니,

어마 엄니, 아버지 상방을 불살라겠소?

맏딸이 황급히,

아 천주교에 다니신다고 아부지 상방을 불살라겠담서라우. 언제 어디서 불살랐다는 것까지 소상하게 말합디다.

저런!

이렇게 부르짖는 방의 두 딸의 얼굴에는 순간 안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당장 상방을 새로 꾸미고, 비손을 하지 않으면 내일을 넘기기가 어렵겠다고 합디다. 그래 바쁘다는 사람(무당)을 졸라서 지금 아주 같이 데리고 왔소예.

과연 작은 딸의 뒤에는 그 마을 무당이 따르고 무당의 머리에는 흰 보로 싼 커다란 징이 이여 있었다. 그 안에는 쌀 담을 전대와 굿에 쓸 고깔이 들어 있을 것이었다.

돌방구네는 눈을 감도 고요히 누워 있었다. 아무 말도 듣기 싫었다. 입도 열고 싶지 않았다. 다들 방에서 나가고 혼자 죽은 듯이 누웠으면 하였다.

무당과 세 딸들은 급급히 짚을 구해다 상방을 새로 짓고 고인의 곰방대와 신을 새로 사 왔다. 만사도 만들고 상복도 꿰맸다. 그밖에, 상장, 수줄, 요줄, 위패 등을 모조리 갖추고 나자 어느덧 해가 저물고 밤이 깊었다.

세 딸들은 부엌에서 떡 시루를 안치고 제삿 나물을 장만하였다. 명태 국도 끓이고 사잣 밥도 지었다. 그런 한편에서 무당은 벌써부터 쌀 바가지에 촛불을 꽂고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징징징징.

징소리 사이사이에 무당의 넋두리는 신명을 울리면서 자지라지게 넘어갔다.

我本逐鬼白馬大將軍으로 益受天命하야 玉皇上帝前去來時佩龍泉劍하야 剌山則山崩하고……(中略)……去來雜鬼雜色神速法千里遠法萬里唵唵隱隱如律 令裟婆呵……」

오방 신장을 부르는 갖가지 경문이 되풀이된 자정 무렵엔 또 긴 천지 팔양경이 시작되었다.

佛說天地八陽神兄經者 夫日月星辰宿 明明示於陰陽四節……(下略)……」

무당은 동이 틀 무렵에야 징소리를 거두고 쌀을 전대에 담았다.

이런 다음날부터였다.

돌방구네는 한결 열이 내리고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삭신도 풀리고 입의 침도 돌았다. 그리고 이삼 일 후에는 어렵잖게 기동까지 하게끔 되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돌방구네는 그저 신묘하다는 생각과 알 수 없다는 생각이 가득 찰 뿐이었다. 거짓말같이 믿고, 교회에서도 말리던 무당의 굿이 이처럼 효험을 가져올 줄은 몰랐다. 그것은 진정으로 믿고, 또 교회에서까지 권유하던 병원의 약이 거짓말처럼 듣지 않은 것과 같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거짓말 같은 무당의 굿과 틀림없는 의사의 약은 서로가 끝까지 동조할 수 없는 동시에 또한 서로가 끝까지 배척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 돌방구네는 이틀이 지난 뒤, 다시금 교리 문답을 옆구리에 끼고 천주교회로 나갔다. 비록 남편의 상방 때문에 완전한 영세 교우는 못될망정 우선 절반의 배급이라도 타서 어린 자식들과 굶어 죽기 않고 지내면, 그것이 그대로 천주의 은총이요 신의 가호라고 심심히 믿는 것이었다.

때마침 자욱한 안개 저편에서 부활절의 새벽 종소리가 땡-- 울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