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부
노 인 부(老人夫)-송영
1
눈은 온다.
함박 같은 눈은 온다.
이곳은 서울서 얼마 떨어지지 아니한 홍린산이요, 그리고 이 산 속에 하나밖에 없는 홍린사라는 절에 딸려 있는 화장장이다.
서울과 교통이 멀고 또 절에 부속되어 있어서 비교적 조용한 곳이다.
한 달에 잘해야 열 번, 그렇지 아니하면 두 세 번밖에 일을 아니 하는 화장터이다.
사방으로 소나무는 무성하고 산아래 멀리로는 한강이 흘러간다.
바람은 눈발을 몰아서 화장장의 양철지붕을 쾅쾅 울린다.
화장장 안은 어두컴컴하다.
두 개의 아궁이가 가운데에 놓여 있고 그 앞으로는 시체를 모셔놓은 까치발 두 개가 놓였다.
그 앞으로는 유리창 안 조그만 마루가 있고 그 마루에는 향탁이 하나, 목탁이 한 개, 경문이 한 권 놓여 있다. 그리고 아궁이 앞에는 장작 쌓는 광이 있고 그 광 옆에는 화장지기 노인이 묵고 있는 조그만 방이 있다.
박 첨지 영감은 이 방안에 앉아서 담배를 먹고 앉았다.
지금 [ ] 머리가 눈빛같이 [ ]([ ]부분은 원문 확인이 불가능한 곳임. 엮은이 주) 거리는 노인이다. 그러나 허리도 굽어지지 않고 목소리가 쨍쨍한 것이 젊은 사람 같아 보인다.
담배 연기는 방안을 뽀얗게 만든다.
벽은 신문지로 발랐다. 누렇게 더러운 헌 신문지에는 커다란 활자로 이 같은 것이 씌어져 있었다.
'재만동포의 위기'
내어쫓긴 육천 동포는 장차 어떻게 될까?
노인은 이것을 보고 두 눈이 이상스럽게 번쩍하였다.
입으로 "힝"하면서 담배를 더 빡빡 빤다. 바깥에는 눈보라 소리가 더 몹시 난다. 소나무는 팽 팽 쏴- 쏴- 소리를 낸다. 가끔 이 바람 소리를 타고 언덕 너머에서는 새벽을 고하는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노인은 역시 아무 소리 없이 담배만 빡빡 빨고 앉았다. 똥글똥글한 담배 연기는 또 벽에 붙인 헌 신문에 부딪힌다.
그리고 '재만동포의 위기'라는 큰 글자가 또 나타나 보인다.
2.
이 박 첨지 영감도 원래는 만주에서 살았다.
삼십 년 동안이나 연길현으로, 왕청현으로, 간도로, 시베리아로 ---언제든지 눈보라가 넓은 들을 휩싸는 벌판으로 돌아다녔었다.
집은 경기도 포천 땅이었다. 조그만 농토도 있고 부모와 젊은 처도 있었다. 그러나 삼촌도 없고 형과 아우도 없었다. 아버지도 독신이요 자기도 독신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가 서른 살이 될라 말라 할 적에 그는 제일 먼저 상투를 잘라버리고 서울로 뛰어 올라갔던 것이다.
그래서 뜨겁게 불같은 주먹들을 쥐고 날뛰던 김옥균, 서재필, 박영효, 윤치호들과 한패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높은 뜻은 물거품같이 되면서 그만 서로들 헤어지며 떨어지며 하였던 것이다.
이런 통에 이 박 첨지는 만주로 뛰어갔던 것이다. 벌써 그 때에는 만주의 구석구석마다 쫓겨간 무리들이 흩어져 살아 있을 때다.
그는 주먹을 쥐고 악을 썼다.
'죽을 때까지 가르치자 --- 배우지를 못 해서 오늘 같은 일을 당했다.'
이런 결심이 점점 더 굳어지면서 그는 활동하기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조선을 떠나오려고 할 때에 고향에서 편지 한 장이 왔었다. 그것은 아버지 편지였었다.
'너 혼자만이 날뛴다고 세상이 바로잡히는 것이 아니다. 부질없이 엉뚱한 생각만을 말고 곧 내려오너라. 그래서 얼마 아니 있으면 백골이 될 나의 밑에 와 있어다우. 그리고 젊은 아내를 잘 거느리고 살아라. 우리 집에는 너 하나만이 숭종을 하는 줄을 너는 왜 모르느냐. 먼저가 네 몸이요, 다음이 집안이요, 그런 뒤에 나라의 일이다. 때를 기대리어 집안이나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오저께 네 아내는 순산 생남하였다. 이름은 보영(輔永)이라고 짓고 싶다. 네 의향에는 어떠할는지……'
…하는 이러한 내용이다. 그는 이 편지를 받고 감동이 되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기의 큰 뜻을 행하라는 권고나 들은 듯이나 싶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
'저는 먼저 제가 큰일을 하려면 집안을 잊어버려야 할 줄 압니다. 제 대신 새로 나온 보영이 놈이나 잘 기르셔서 재미나 보아주십시오. 저는 지금 만주로 떠나갑니다. 그래서 그곳의 동포를 위하여 교육사업에나 몸을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제 처에게도 잘이나 있으라고 말을 좀 전해주십시오.'
이렇게 떠나와서는 학교를 세우기를 시작한 것이 모두 삼십여 군데나 되었으니 그 중에 중학교도 한 개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다가 그는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생겼다.
이래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다시 홀몸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서울이라고 돌아와서는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 서울을 떠나간 때와는 달리 아주 더운 피가 없어진 셈이다.
주먹은 한숨으로 변하였던 것이다.
고향이라고 찾아왔으나 집까지 없어졌다. 그리고 동네 늙은이에게 얻어들은 것을 모아보면 부모는 물론 돌아가시고 집안도 물론 폐가가 되고 그의 아내와 아들만은 서울인지 어디론지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보다도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여러 가지로 알아보았으나 알 길도 없고 점점 닥쳐오는 것이 당장에 먹고 사는 일이다.
이러다가 우연히 옛날 친구를 만나 그의 소개로 이 화장장의 인부로 붙어 있으면서 겨우겨우 그 날의 연명이나 하고 지내가는 것이었다.
몸은 늙고 기운은 없어졌으나 그러나 그의 가슴에 큰 뜻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래서 언제든지 조선과 만주를 생각하면서 담배만 먹고 지내갔던 것이다.
다시 만주로 가고 싶었으나 자연히 못 가고 하루 이틀 있는 것이 벌써 4년이 넘었으며, 따라서 처음에는 잠시 용신지처로 생각하고 있었던 이곳이 이제 와서는 내어떼칠 수도 없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항상 만주의 일이 눈에 환하며 옛날 서울의 일과 또는 지금 호화스럽게 부자들이 된 옛친구의 보기 싫은 꼴이며 또 자기의 아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차라리 만나보지는 못할지언정 자기의 아들도 자기같이 어디서든지 큰 뜻을 위해서 활동이나 하고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희망이 있었다.
제 아비의 자식이니 아주 못난 놈은 아니 되었겠지 --- 하는 스스로 믿는 생각도 나며 따라서 이 생각이 날 때마다 스스로 기쁨을 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궁이 속에서 송장 타는 소리가 똑딱 핏- 꼬르르! 하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맞는 [칼]로 장작을 탕탕 쪼갤 때에는 어쩐지 쓸쓸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3
날이 훤하게 밝으면서 눈은 더 푹푹 쏟아진다.
노인이 바깥으로 나왔다. 날은 진정 푸근하여진 모양이다. 아직까지 화장장 안 한편 구석은 어두컴컴하였다.
대문을 열었다. 바람은 자고 눈만 쏟아진다. 소나무는 눈꽃이 핀 듯하다. 온 산은 모두 하얗다. 부연 하늘에는 눈발이 찼다.
노인은 방한모를 눈만 내어놓고 푹 뒤집어쓴 뒤에 비를 들고 나섰다. 그래서 처마가로 돌아다니면서 대강대강 쌓인 눈을 쓸어버렸다.
차차 날은 밝아졌다.
노인은 눈 묻은 비를 탁탁 털어서 화장장 안에다 내어던지고 대문을 닫은 뒤에 눈 쌓인 언덕으로 올라갔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홍린사의 종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다.
"앵히 또 밥이나 좀 얻어먹어야지."
하면서 노인은 눈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노인이 아침을 다 먹고 다시 화장장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눈은 그쳤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은빛 같은 태양은 내리 쏟아졌다. 온 세상은 그야말로 눈이 부시는 은세계가 되었다.
노인이 막 화장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 별안간에 언덕 아래에서 사람 소리가 두런두런 난다.
"에구 미끄러……."
"이거 이따가 큰일났네. 우리들은 홀몸인데도 이렇게 어려운데……."
"그런데 누가 있을까?"
하는 젊은 사나이들의 목소리다.
노인은
"힝 오늘 [ ]재리 생겼군."
하면서 잠깐 멈칫하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세 청년은 나타났다. 목도리와 코와 입을 막고 외투들을 입었다.
"어서들 옵쇼. 퍽들 미끄럽지요."
노인은 친절하게 맞는다.
"네- 네……"
청년들은 '네' 소리로 대답 겸 인사들을 하였다.
"자 추우신데 이리 좀 들어오십쇼."
"네- 괜찮습니다."
세 청년은 하얗게 묻은 눈을 탁탁 털면서 화장터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구 식전이 되어서 화롯불도 없고…… 자, 잠깐만 참으십쇼."
하면서 부엌으로 들어간다.
세 청년은 걸상에 걸터앉으면서 모두 아궁이를 쳐다본다.
"아니 이 안에서 저 노인이 혼자 자나."
"에구 나 같으면 자긴커녕 쳐다보지도 못하겠네."
"그것도 버릇이 되면 관계 없겠지."
"흥 아무리 버릇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꼼짝도 못 하겠네. ……에구 오늘같이 눈이나 쏟아지고 바람이나 휙휙 불면 좀 무섭겠나."
"히히."
모두들 어떻게 송장 냄새가 가득 찬 이 산 속 이 화장터 빈 방에서 혼자서 자나 하는 걱정들만 한다.
그들은 마치 이 '어떻게 자나'를 걱정들이나 하러 온 사람같이들 되었다.
노인은 질화로에다 숯불을 피워서 방으로 들여가면서
"자 추우신데 이리로 좀 들어 앉으십쇼."
"네 네."
세 청년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 중에 한 청년이
"노인께서 여기 일을 맡아보십니까?"
"네. 그렇다우."
하고 노인은 능히 사람의 눈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떻나 사람들인 것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런데―여보슈들 누구의 화장을 하러 왔습니까?"
이번에는 노인이 먼저 물었다.
"네-저희들 친구랍니다."
"네-친구예요."
하면서 노인은 만주에 있을 때에 자기들과 같이 일들을 하던 동지를 자기들 손으로 장사를 지내보던 생각이 났다.
"그런데-노인, 여봅쇼. 한 시간 가량 있으면 일행이 오겠는데요. 먼저 준비를 하여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준비야 별것이 있나요. 차차 모두들 오신 후 하여도 넉넉합니다.-."
"그런데 화장료는 얼마나 됩니까?"
"그저 돈 십 원 되지요. 전에는 십 원씩이었으나 지금은 팔 원으로 내렸고 그 외에 잔돈 몇 푼이 더 들어가면 한 십 원이 됩니다."
"네-그리고는 아무 것도 아니 드나요?"
"그거야 들이려면야 한이 없지요. 허 이 화장터가 절에 부속이 되어 있느니만치 시식을 올리려면 돈이 더 들겠지요. 그렇지만 보아 하니 젊은 양반들이시니까 그까짓 미신의 행동은 아니들 하시겠지요. 허허."
하면서 담배를 피워 문다.
이 '미신의 행동'이란 말이 화장쟁이 노인에게서 나오는 것을 보고는 세 청년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담배연기를 뿌옇게 내어뿜으면서 흰 눈썹 아래에서 반짝거리는 눈초리로 젊은 그들이 하는 모양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또 "힝!" 하였다.
언제든지 기가 막히는 때에는 이 "힝!" 소리가 나오고 따라서 자기의 옛날 생각이 나는 것이다.
"여보슈들. 그런데 노형들의 친구들일 것 같으면 퍽 젊으실 모양일 터인데요."
"네, 퍽 젊답니다. 겨우 서른 살이 지난 지도 몇 해가 못 됩니다."
"뭐요. 왜 그렇게 젊은 양반이 돌아거셨나요."
이 소리에는 아무 대답들이 없었다. 조금 만에 그 중에 좀 뚱뚱하게 생긴 청년 하나가 좀 얼굴에 강개한 빛을 띠우면서
"말하자면 원통한 죽음이랍니다."
하는데 세 청년의 얼굴은 다 같이 쓸쓸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에 타는 듯한 무서운 빛이 눈구석에 나타났다. 노인은 더 듣고 싶었다.
"왜요, 무슨 몹쓸병에 걸렸든가요."
"차라리 그러면 관계찮게요. 이따가 보시면 차차아시겠지만 XX에서 죽어서 나왔답니다."
"네 XX에서 죽었어요."
노인은 벌써 다 알았다. 그러면서 이 젊은 청년들은 어떤 '회'의 일을 하는 가상한 친구들인 것을 알았다.
(노인은 언제든지 이런 사람을 가상하게 보았다.)
"공연히 말씀만 해서 안됐소만 죽은 친구와 노형네들은 다 같은 회원이십니까?"
이 소리에 세 청년은 확실히 이 노인은 보통 노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소 의심스럽게 대답을 하였다.
"네-그렇답니다. 같은 조합원이랍니다."
"그리고 오늘 장사도 조합장으로 지내는 것이랍니다."
"네! 조합장요."
그러자 한 청년이
"노인, 금융조합은 아니에요."
노인은 침통하게 웃었다.
"허허 나도 금융조합이 아닌 것만큼은 아는 놈이라우……허……."
하면서 다소 영웅심리가 생겼다.
'나도 집안을 내버리고 만주 벌판으로 돌아다니면서 삼십 년 동안이나 일을 하였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무렇게나 말을 하는 것도 도리어 소년배의 하는 일같이 생갹이 되어서 그냥 허허 웃어버렸던 것이다.
금융조합이라고 말하던 청년이 좀 미안하여서
"노인, 괜히 실례헸습니다."
"에구 천만에 말씀을 다하슈."
"그런데 노인께서는 그전에는 무엇 하셨습니까?"
그 청년은 이어서 말을 하였다. 노인은 그냥 담배만 몇 번 빨다가
"에구 그까짓 지난 이야기야 하면 뭐 하나요. 어떻든지 나는 썩은 물건이오. 그러나 젊은 친구들의 하는 일들은 기뻐하는 놈이지요. 나도 젊어서는 큰일을 한답시고 만주로 간도로 돌아다니기를 삼십 년이나 했다우."
"녜!"
세 청년은 일시에 놀랐다.
"네, 그러세요."
"흥, 그까진 거야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유. 어떻든지 나는 썩은 폐물이오. 그저 이 마른 가슴 속에 불같이 치미는 것만 가끔 있는 놈이라우. …… 허 …… 자 --- 여러 노형네들은 그야말로 불덩이요. 주먹이 쇠 같고 태산이라도 옮겨놓을 수 있겠죠. …… 어떻든지 용감하게 처음 뜻을 꺾지나 마시오.……허……."
도도한 웅변은 솓아져 나왔다.
"아니 노인께서는 왜 지금에는 이런 일을 하십니까?"
"허허 기름이 마른 것을 어떻게 허우 ---- 그렇지만 노형네들은 나같이 늙지는 마우. 늙어도 힘 있는 늙은이가 되시유 ---- 외국의 큰 정치가도 실상은 육칠십의 늙은이들이 아니오. 그렇지만 나는 화장지기 늙은이구려. 허허."
하면서 강개한 목소리를 낸다.
세 청년의 호기심 그리고 일종 숭배하는 마음은 점점 커갔던 것이다.
"노인은 자제도 안 계십니까?"
"힝 나는 아무도 없는 독신이라우 ---- 자식이라고 살았으면 아마 당신네만큼은 되었을 것인데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우. ---"
하면서 쓸쓸한 빛이 돈다.
"네 그러세요. 그러면 노인은 누구시라구 하나요."
"흥 그저 모두 박 첨지라고 부른다우 --- 그리고 이름은 '평' 외자라우. - "
"아, 박평 씨이세요."
하면서 모두 세 청년은 무엇이 생각나는 듯이 서로 쳐다볼 때에 밖에서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난다.
"여보게 --- 어디들 있나."
"여기 있네."
하면서 세 청년과 노인은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4
다시 해는 회색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가는 눈발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모두 일행은 한 30은 된다. 그 중에는 여자도 2, 3인이 섞여 있었다. 검정빛 관을 천천히 들고들 올라온다.
"자 이리로 갔다가 모십시오."
하면서 노인은 인도를 한다.
몇 사람은 관을 갖다가 까치발 위에다 고요히 올려 놓았다.
"에구 올라오는데 퍽 미끄럽지 ---"
"말 말게. 내 엉뎅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흥흥 나도 손바닥이 얼얼한데 --- 어떻게 절을 했는지 ---"
한참이나 이런 이야기뿐이다.
그러면서 화장장 안으로 들어와서 아궁지도 들여다보며 경문책도 열어보며 방안도 들여다들 본다,
먼저 왔던 좀 뚱뚱하게 생긴 청년이 (살이 찐 것이 아니라 얼굴이 뚱뚱해 보인다) 노인에게
"자 얼른 일을 시작하여 보시지요."
"네. 그런데 절을 가서 주장중을 불러와야 합니다."
"주장중요. 그럼 어서 불러오십시오."
노인은 그냥 언덕으로 올라갔다.
"여보게들, 저기 간 노인이 보통 노인이 아닐세."
나중 왔던 사람들이 모두 귀를 모은다.
"흥 만주에 가서 학교를 서른 개나 세우던 운동객이라네. ---"
"머 [국]민파 운동객이었었네그려. ---"
"어떻든지 장하지 않은가? 조선의 노인이 모두 저만큼만 되어도 좋겠네. ---"
"그건 그만 이야기를 하고 우리 어덯게 할까."
하고 나중에 온 키 큰 청년이 말을 한다.
뚱뚱한 청년이
"뭐?식(式)말이지. 간단하게 하게그려. 화장을 모시려고 할 때에 간단한 추도문이나 읽고 일동이 오분간 명례(瞑禮)나 하세그려?"
이 소리에 모두들 정숙하여졌다.
그들은 키가 크고 적고 뚱뚱하고 마르고 하였다. 코도 다르고 눈도 다르고 입은 옷도 다르다.
그러나 백색 [테러]의 희생된 …… 아끼는 마음 원통한 마음! 분노 --- 그리고 [혁명]에 대한 불 같은 결심, 아픙로 더 [싸]우겠다는 …… 이 분노와 이 [적개]심은 다 같이 공통이 되어 있었다.
모양은 백 가지나 마음은 한 가지다. 쓸쓸한 가운데에도 기운은 뻗치고 슬픈 가운데에도 새로운 계획은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노인은 돼지같이 생긴 중을 데리고 내려왔다. 살은 뜽뜽히 찌고 두 뺨은 뒤룩뒤룩한다. 두 눈은 조그만 것이 '치게미'가 흘러나온다.
검정 장삼에 기계같이 합장배례를 하면서
"소승 문안드립니다. 원로에 얼마나들 고생이 되셨습니까?"
그 중에 키 큰 청년이 대답을 하였다.
"네. 천만에요. 그런데 얼른 화장을 집행하게 해보시지요."
"네. 그런데 시식은 어떻게 하시나요?"
"시식은 그만두겠습니다."
이 소리에 따라서 흥 시식 흥--- 흥--- 하는 코웃음 소리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났다. 그 중에도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로
"어떻든지 종교도 좋은 장사야. …… 부처님 파먹는 싸구려 종교 …… 호 ……."
"에구 --- 싸구려보다도 우리들의 아편이야!"
주장중은 '아편이야' 소리가 무슨 뜻인지 모르나 어떻든지 반대파의 말인 줄은 알았다. 아마 '천작쟁이[천주학쟁이]'들인가 보다 하였다. 그러나 억지로 참고
"여보 박 첨지. 어서 불이나 때슈."
퉁명스럽게 내던지고
"그러면 화장료나 내시지요."
"얼마인가요?"
"팔 원입니다."
이래서 주장중은 돈 8원과 화장 허가장만 받아 가지고 목탁 한번 뚜드리지도 못하고 가버렸다.
노인은 참나무 장작을 몇 개 잘게 패어 가지고 화장터 뒤 굴뚝 앞으로 갔다.
눈발에 솟은 굴뚝의 밑구멍에는 조그만 아궁이 한 개가 있다.
뚱뚱한 청년과 여자 두 사람이 따라갔다.
"노인, 거기다가 왜 불을 때십니까?"
"네. 다 까닭이 있지요. 이래야 앞 아궁지의 불이 붙는다우. 여기서 타는 불기운은 빨아올리는 힘이 있으니까……. 왜 물리학에 그런 게 없습니까? 허허."
이 소리에 두 여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청년만은 놀라지 않았다.
노인은 불을 붙이고 부채질을 하면서
"그런데 저 양반이 왜 XX으로 들어갔습니까?"
"네. 그건 간단하게 말하자면 XXX사건으로 들어갔답니다."
"네. 그러면 제일차 사건인가요."
"그렇답니다."
"그런데 여기 오신 분들은?"
"네 노동조합, 농민조합장, 청년동맹, 그리고 근우회, 플로레타리아 예술동맹의 맹원들이랍니다."
"네, 참 건방진 소리 같지만 어떻든지 잘들이나 [싸]워 주시구려."
이 때에는 몇 사람의 청년이 와서 있을 때다.
노인은 다시 아궁이 앞으로 왔다 그리고
"자, 어서 시체를 모십쇼."
하면서 노인은 쇠문을 벌컥 열었다. 그 안은 굵은 쇠가 세 개가 가로놓였고 그 위로 굵고 둥그란 나무토막이 십여 개가 놓였다. 그 위에다 시체를 얹었다. 가만히 미는 대로 나무토막이 구르면서 시체는 완전히 아궁이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러면서 흑흑 느끼는 소리도 났다.
키 큰 청년은
"자! 오분간 명례(瞑禮)입니다."
이 소리에 따라서 일동은 엄숙하게 서서 장경례를 하고서 눈들을 감았다.
비장한 광경은 그들의 앞에 벌어졌다. 노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
오분 뒤에
"자. 불을 핍니다."
하면서 성냥을 그어 석유를 칠한 장작에다 던졌다.
확! 하면서 불은 붙었다.
키 큰 청년은
"자. 우리 마지막으로 가는 동지 박 군을 위하여 간단한 조문이나 읽읍시다."
목소리는 떨리었다. 키 큰 청년은 조문을 꺼내들고 읽기를 시작한다.
노인도 한옆에서 서서 있었다.
청년은 목이 메었다. 읽는 소리는 점점 알아들을 수가 없게 된다.
"동지 박보영 군."
이 소리에 먼저 놀란 것은 노인이었다.
"어, 보영이." 덮어놓고 눈물은 났다. 정신은 아찔하였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리었다. 자세히 알지도 못할 일이다. 같은 성명이 있는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군은 우리들의 앞잡이로서 우리들 전……………하여 생떼 같은 ……을 XX기었다.
군은 처음에는 예술동맹의 XX로서 왼 애지프로(선전․선동.-엮은이주)에 전력을 다했으며 뒤에는 농민조합의 한 분자로서 실제 운동에 몸을 바쳤다.
그러나 우리들이 잊지 못할 192X년 X월 X일은 군은 모든 우리들 암술동지와 같이 ……에 XX녀 갔다.
그리고 XX에게 XX하였다.
그리고 우리와 다시 만날 때에는 뻣뻣한 육체로 변하였다. 그리고 ……."
더 읽지를 못하고 울어버렸다. 모두 느낀다.
"우리들은 ………XX 한다. 우리들의 ……."ㄴ
아주 울어버렸다.
불길은 아궁이 속에 가득 찼다. 탁탁하는 장작 타는 소리는 유난히도 들렸다.
일동은 무아몽중이 되었을 때에 미친 듯이 이상스러워진 노인의 목소리가 났다. 여기에 일동은 정신이 다시 났다.
"여보, 이게 박보영이오?"
똥똥한 한 청년은
"네-그렇답니다."
"그러면 부모가 있답니까?"
"네?"
이러면서 똥똥한 청년은 대답을 못하였다.
키 큰 청년은
"아니 왜 그러십니까?"
"글세 알릴 집이 있소.:
"자세히는 모르나 아버지는 박군 어려서 만주 갔었다는데 종무소식이요, 어머니는 서울 와서 돌아갔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홀몸이지요."
"네.-"
하면서 노인은 털썩 주저앉았다. 두 눈은 어옇게 되었다.
먼저 왔던 세 청년은 그제야 꺠달았다. 왈칵 달겨들어서 노인을 부축하면서
"아니 왜 이러십니까?"
노인은 그저 미친 듯이 그저 두 손만 내흔든다. 모두들 깜짝 놀라서 이 노인에게로 덤벼들었다.
노인은 한참 만에야 다시 두 눈을 바로 떴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일어나더니 번개같이 아궁이 뚜껑을 열었다.
그들의 동지! 젊은 일꾼의 시체는 시뻘건 불꽃에 싸여 있다.
"여보슈들, 이게 우리 아들이라우."
노인은 악을 쓰고 다시 주저앉았다.
"내가 내 아들놈을 살라버릴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구려."
하면서 그냥 운다.
모두들 아무 소리도 못 했다. 노인은 크게는 울지 아니하였다.
얼마 뒤에 노인은
"자, 여보슈들 나는 다시 울지도 않겠수. 여러분들은 저 애보다 몇 배 갑절 힘 있게들 ××시오……."
하면서 허허허 웃어버린다.
이 노인의 말소리는 그들의 가슴속 뼛속 살 속까지도 깊이깊이 사무쳤던 것이다. 노인은 그저 허허거리면서 더 굵은 장작을 푹푹 질러버린다. 아궁이 안에서는 심장이 타는 소리가 '빠지지' 난다.
눈은 다시 푹푹 쏟아졌다.
5
며칠 뒤에 이 노인은 화장장을 떠나서 다시 만주로 향해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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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가 지났으나 이 노인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서울과 시골에는 점점 더 큰 ××이 일어났다. 아침에 호외가 나는가 하면 밤중에도 호외는 돌았다. 어느 ……에서는, 어느 ……에서는, 어느 ×장에서는, ××에서는, 어느 강연회에서는 이러이러한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초호 특호의 활자가 뚜렷하게 보였다. □ {조선지광} 94호(1931. 1․2합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