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단편 소설

42. 처용단장

자한형 2022. 2. 2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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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 용 단 장-김소진

 

---토껴!

지하철 이호 선 동대문 운동장역에서 내려 사호 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내리막 층계참을 막 돌아서려는 순간 득돌같이 내 귀청을 후빈 외마디소리였다. 어금니가 새곰새곰 시려오도록 앙칼지게 불어 제끼는 호루라기 소리에 뒷덜미가 휘감긴 사내 서넛이 큼직한 가방과 귀퉁이만 간신히 움켜쥔 보따리를 감싸안은 채 아금받게 층계를 치받아 오르고 있었다. 그 뒤를 지하철구내 청원경찰이 삿대질을 해대며 따라붙는 시늉을 했다. 지퍼가 열린 가방과 귀가 벌어진 보따리 틈새에서는 남자용 지갑이나 여자용 액세서리 등속이 헤실바실 떨어져 나와 바닥에 함부로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층계를 내려오던 발걸음을 멈추고 추격을 당하는 사내들처럼 뒤돌아 서서 등을 곱송그리며 겅중겅중 내달렸다. 그러나 곧이어 물밀듯 쏟아져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옆구리로부터 시작해서 허벅지서껀 어깻죽지께며 가릴 것 없이 늘씬하게 쥐어박히는 처지가 되었다.

--조것 싸게 잡아뿌려. 놓쳐 뿔믄 낭패 봉께로. 한 사내가 매몰차게 닫히려는 전동차를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채 숨이 바짝 차 오른 턱을 흐느끼듯 까부르며 외쳤다. 그러자 파키스탄 불법 체류자 모양 검은 가죽옷에 거무뎅뎅한 콧수염을 반지빠르게 기른 이가 자신의 보따리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엉덩이께가 한껏 부푼 청바지가 미어져라 뛰어가더니 문 틈새로 보따리를 던져 넣었다. 닫히던 문이 주춤하면서 다시 열리는 순간 사내들은 어빡자빡 굴비두름 포개지듯 몸을 일제히 전동차 안으로 쑤셔 넣었다. 그 와중에서 엉거주춤하던 나의 옷자락을 잡아채 밀어 넣어 준 사내가 내 귀에다 대고 나지막히 그르렁거렸다. 형씨, 칠 년 묵은 굼벵일랑 회쳐 먹었수? 따라지 신세끼리 민폐는 서로 끼치지 말아야 도리잖겠수 이거. 고개를 돌려보니 하관이 두루뭉술한 게 막걸리깨나 축냄직한 넉넉한 구멍새를 지닌 사내가 희고 고른 잇바디를 고스란히 내밀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일어나 손을 툭툭 털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앞뒤로 옷매무새를 고치는 내내 나는 나의 이 예상찮은 행동이 못마땅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짓이란 말인가. 나는 입 속에서 자꾸 빠져나가려는 단어를 붙들어 토껴, 토껴 하고 짭게 끊어쳐 되뇌보았다. 그러자 온몸에서 맥이 쑥 풀려 오금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그 말 한마디에 그토록 허랑하게 휩쓸려 무너지다니. 가령, 토껴가 아니고 도망쳐라든가 아니면 속된 말로 '튀어라''발라'같은 말이었다면 사정은 영판 달라졌을 게다. 나는 아마도 추적자와 도망자의 스릴 넘치는 추격전의 한 장면을 기왕이면 육박전까지 기대하면서 팔짱끼고 느긋하게 구경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토껴라니.......

대학 삼 학년, 오월의 가리봉 오거리가 불현듯 떠올랐다. 가투가 시작된 지 오 분도 안돼 시위대는 포위를 당하고 뒤늦게 찾아낸 좁은 샛길은 포장마차가 가로막고 있었다. 선배가 먼저 통과할 수는 없었다. 질서, 질서를 외치며 후배와 여학생들을 먼저 보내다가 코앞에 들이닥친 전경들과 각목을 휘두르며 대치했다.

열차강도처럼 입가를 뒤로 처맨 손수건 사이로 최루가스가 마구 헤집고 들었다. 그 와중에서 뭔가가 발목을 잡아채는 바람에 넉장거리로 나가떨어졌다. 내 밑에는 겁에 질려 퇴로를 찾아 밀려든 학생들이 실지렁이처럼 한데 뒤엉킨 채 넘어져 아비규환의 연옥을 이루고 있었다. 한 놈도 남김없이 작살내! 고참인 듯한 전경 하나가 짧게 부르짖었다. 머리 위로 방패가 쉭쉭 칼바람 소래를 내며 스쳐지나갔다. 나는 뒤통수를 두 손으로 감싸며 깐을 보기 위해 고개를 살며시 쳐들었다. 그 순간 잘 구워진 식빵 덩어리처럼 뭉툭한 전투화 코가 크게 확대돼 보이는 듯하더니 내 의식 속으로 무수한 불꽃놀이 파편이 쏟아져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전투화 끝이 내 안경 쓴 오른쪽 눈 두덩이를 파고든 것이다. , 저 짜식 뻗는 거 봐라. 안되겠다. 이쯤 하고 이중대 전원 토껴라, 토껴. 그때 입은 안구파열로 난 오른쪽 눈이 실명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고도약시로 떨어졌다.

그깟것 가지고 식은땀 줄줄 뽑는 걸 봉께 형씨도 속으로 은절은 에지간히 먹은 모양인 게벼? 쯧쯧, 한잔 헐라우? 전동차칸 연결통로에서 마주보고 선 사내는 가슴팍에서 종이팩 소주를 꺼내 귀때기를 물어뜯고 한 모금 쭉 빨아올린 다음 종주먹을 들이대듯 손을 불쑥 내밀었다. 내가 고개를 가로 젖는 걸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 사내는 고개를 빨딱 젖히고 편도선을 심하게 요동치며 팩을 말끔히 짜냈다. 커어, 하며 목젖에 묻은 소주를 털고 나더니 왼쪽 호주머니에서 아오리 사과를 하나 꺼내들었다. 이거 죄송함다. 아까짐에 형씨 안주머니에서 칼을 소인이 잠시 허락 없이 실례했음다.

사내가 호주머니에서 꺼낸 칼은 내 것임이 분명했다. 아직 한번도 쓰지 않아 가죽칼집에 곱다시 넣어 갖고 다니던 칼이었다. 그는 칼을 빼들어 두 눈동자가 가운데로 몰리도록 코앞까지 바짝 치켜든 다음 먼지알갱이라도 불어내려는 듯 칼날에 호 하고 입김을 쐬었다. 그러더니 사과를 찔러 한쪽을 내게 권했다. 나는 군말 없이 사과를 받아들었다. 칼을 품고 다닐 만한 사연이라도 있는게벼? 이녘 얼굴이 허여멀쑥헌 걸 보니 내 어림짐작에 형법 제 삼백삼십일조나 삼백삼십사조를 어길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이고...... 삼백삼십일조나 삼백삼십사조가 무엇인데요? 나는 일부러 내숭을 한번 떨어봤다. , 내가 시답잖은 전문용어를 씨부렀나. 고것이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싸질러뻔진 절도와 강도죄에 해당하는 법조문이라우. 이러믄 나 이력이 다 뽀롱나는디 말이여...... 고건 고렇고 이녘은 도나캐나 지집 문제 쪽이로구먼? 지집은 개구락지나 용수철과 같아서 당최 어디로 뛸지 모르는 벱이라우. 댁이나 나나 그놈의 신세가 알쪼외다. 뜨거운 한숨을 뿜어내던 그의 눈동자가 실성한 사람처럼 희끗희끗 흰자위쪽으로 치우쳐 돌아갔다. 고년이 내가 큰집에 잠시잠깐 다니러 간 새를 못 참고 또 으떤 쇳가루 풍기는 개아덜놈이랑 배때기가 맞아 떨어졌더구먼 잉. 고년이 아무튼 쇳가루 냄새 맡는 데는 인자 아조 도사 다 돼뻔졌어라. 허나 지가 뛰어봤자 베룩이지. 내가 도부꾼 행색으로 댕기지만 맡을 냄새는 다 맡음시롱 댕기단말씨. 이젠 머잖아부렀어. 요맛적 들어선 이년의 냄새가 근방에서 폴폴 나부러 아암. 이번엔 아조 결딴을 내뿌리고 말랑께. 후유, 내가 왜 초면인 형씨 앞에서 그 돼먹지 않은 지집을 들먹거리며 넉장뽑은 소리를 줴치고 있는건지......

그는 벌써 도망친 마누라의 개깨 마른 멱살을 한모숨에 틀어쥔 듯 힘이 들어간 손아귀를 바르르 떨었다.

그 사내가 왜 내게 자신의 가방을 내던지듯 떠맡기고 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저이 씨앙, 하면서 가방을 횡허케 내게 안기며 전동차 밖으로 쏜살같이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혹시 사람들 속에 뒤섞여 지나가는 도망친 마누라의 뒷모습이라도 눈에 띈 것일까.

결과적으로 내 칼을 갖는 대신 물려준 가방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만 원짜리 지폐를 컬러로 확대 복사해 코팅까지 한 복돈 다발이 그득히 들어 있어 한참동안이나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그년이 쇳가루를 맡는 데는 아조 도사거든...... 그가 내뱉은 말을 되새기던 나는 그가 자신의 마누라와 흥감스런 재회를 열렬히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퍼뜩 떠올렸다. 애증(愛憎)!

집으로 향하는 내 가슴이 몹시 답답해졌다.

언제부턴가 아내가 블렌딩을 하는 날이 부쩍 잦아졌다. 삘릴리리릭....., 자지러지며 뒤채는 아내의 전화 벨소리가 울리면 웅덩이에 고여 있는 듯 나른한 오후가 보자기처럼 얌전히 펼쳐진 네모진 방안의 한 귀퉁이를, 누군가 홱 낚아채 뒤흔들어놓는 느낌이 들곤 했다. 영태씨 미안해요, 느닷없이 스케줄이 내려와서......, 저녁일랑 거르지 말고 꼭 챙겨드세요. 그녀는 마치 철부지 생떼꾸러기라도 앞에 세워 놓고 존조리 타이르듯 사근사근 목소리를 갑자기 낯설어진 귓속으로 떠 넣었다.

알았어, 근데 그 블렌딩은 낮 근무엔 하면 안 되는 거야? 정말, 영태씨 왜 그러세요, 오늘따라. 지금이 바로 우리 회사에서 일년간 공들인 각고의 노력 끝에 탐스러운 옥동자 탄생을 눈앞에 둔 중요한 시기 아녜요? 그때쯤이면 난 벌써 수화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아마 수화기 저편에서 느닷없이 통화가 끊겨 무안해진 아내는 동료들에게 우셋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럼 알았죠? 후후, 순순히 그렇게 나와야지요, 전화 끊어요, 어쩌구 하는 정도의 귀머거리말을 그럴싸하게 수화기에 대고 욱여 넣고는 뒤돌아 섰을 게다.

아내는 내로라 하는 술회사의 주류연구실에 근무하는 주류연구원이다. 그곳에서는 신제품 개발이나 기존제품의 개선 따위를 주업무로 삼는다고 했다. 식품영양학과를 나온 아내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직장인지도 모른다. 또 원래 그녀는 소주 한 병인 내 주량의 두 배가 넘는 술꾼이기도 했으니깐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기도 할 터였다.

아내가 요즘 죽자꾸나 하고 맡아서 씨름하는 분야는 기타 재제주였다. 일년간 그것도 연구랍시고(혀끝으로 술타령이나 하며 오사바사하는 연구라면 나라고 못할 게 무에 있겠는가) 매달린 끝에 십이 도 짜리 매실주를 내놓으려는 막바지 작업에 들어간 단계다. 보다 순하고 자극이 적으며 숙취는 되도록 없는 술이어야 된다니까...... 그게 까다로운 요즘 사람들의 취향이라는군요. 그것에 맞추다보니 독특한 향과 부드러운 뒷맛이 특징인 술을 연구 과제로 잡은 거예요. 이번 제품은 당신도 진짜 한번 기대해도 좋은 거예요. 아내는 자신이 손수 개발하는 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높았다. 벌써부터 술 이름 사내공모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나보고도 한번 좋은 이름 있으면 톺아보라고 은근히 닦달을 해올 정도였다.

나는 아내가 블렌딩을 한 다음날 이른 아침이면 아무 불평 없이 홍약국으로 숙취 깨는 약을 사러 가는 보람을 놓치고 싶지 않은 착한 남편이기도 했다. 밤새 술에 보깨 뒤척이던 아내가 입가에는 지렁이처럼 끈끈한 침을 매달고 잠이 든 그 시각에 까치발을 제겨디디며 아내의 머리맡을 조용히 지나다녔다. 원액과 첨가물의 배합 비율에 따라 술맛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블렌딩을 하는 날이면 종일 술맛을 봐야 하는 아내를 위해서. 물론 아내가 블렌딩한 술을 목구멍 안으로 넘기는 건 아니다. 취하면 감각이 둔해져 정확한 술맛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혀끝으로 도르르 굴리다가 삼킬 듯 삼킬 듯 그대로 비이커에 뱉어내야 한다. 그러니 블렌딩 때문에 아내가 취할 일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블렌딩을 하는 날이면 아내는 이따금 맨 정신으로 귀가를 하지 않는다. 억병으로 취해 물먹은 솜처럼 흐느적거리면서도 용케도 집까지 찾아와서는 눈 꼬리가 말려 올라간 채 현관문을 따주는 내 품에 새끼줄 풀린 짚단처럼 넉살좋게 풀썩 쓰러지곤 했다. 당신도 한번 어디서 혼자 취해 가지고 술 냄새를 풍덩풍덩 끼얹으며 들어온 아내를 품에 안고 서 있어봐라, 기분이 어떨지. 나는 번번이 한구석이 하릴없이 싸늘히 식어 가는 가슴을 썩썩 부비며 따스한 체온을 돋워내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런 내 심정은 아랑곳없이 아내는 건주정까지 들이대 나를 영 소갈머리 없는 남편으로 만들곤 했다.

하이고, 우리 영태 서방님이 잠두 안 주무시고 소첩을 이렇게 기대려주셨네요. 허헝, 눈물겹고 황송하기도 해라...... 근데 나는요, 나는 말예요...... 당신도 알죠? 삐조새예요(내가 알기로는 그 새는 민물가 마우지이다). 왜 당신도 알 거예요. 중국인가 일본인가 어디선가는 왜, 그런다잖아요 끄윽. 어부가 배타고 나가서 적당히 굶겨논 그 새의 목에 노끈을 숨막히지 않을 정도로 동여매어 풀어놓으면 그 새는 호수를 떠다니다 자맥질치면서 고기를 마구 잡아먹는 거예요. 마구마구 바보처럼...... 근데 목을 노끈으로 죄어놨으니 그게 위장까지 들어갈 리가 없지...... 팔짱만 끼고 있던 어부의 손이 목덜미를 싸늘하게 쥐어짜면 삼킨 물고기를 도루

다 그대로 게워놓는 불쌍한 새 알죠 당신두? 당신은 사법고시도 이차까지 문제없이 패스한 수재니깐 알수 있을 거예요 암. 우린 결국 그런 새의 운명을 타고난 건지도 몰라요. 난 그게 두려워. 그래서 오늘도 또 깡술을 마셨어요. 집에 오는 길에...... 삐조새가 되기 싫어서.

예끼, 불효막심한 사람아, 자네 모친 살았을 때 그렇게 애공알이를 말려 돌아가시게 하지 말고 진작부터 철들어 이런 장한 모습 보여줬으면 여북 좋아, 됐네, 젊었을 때의 방황은 누구나 다 한번씩 해보는 거 아냐? 이젠 세상살이에 대해 어섯 눈이 좀 뜨이는 게지. , 막말로 똑똑헌 눔치고 젊어서 맑시스트 한번 안 해보면 그것도 병신이래잖아요. , 그런데 혹 면접에서 말이야 동티가 나 공든 탑이 도로아미타불 되뿔면 으짜지? 동티가 나다니? , 영태가 거 뭐시냐 나랏밥 신세를 진 적이 있잖남, 그것도 시국사범으루다. 에헤, 염려를 팍 잡아 붙들어매 놓으라니깐두루. 뭐 질깃한 악어 백줄이라도 잡았남? 그게 아니고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가 한번 거시키 해본 친구들이 전향하고 나서는 더한다는 거 아녀. 무얼 더해? 각설하면, 예전에는 죽일 눔 살릴 눔으로 싸잡아 매도하며 타도의 대상으로 넘겨짚던 축들의 사타구니에 코를 쑤셔박곤 그곳이 조청이라도 처바른 절편인 양 알랑알랑 핥고 빨 기세라는 거 아냐. 에잉 그런감. 저쪽도 그런 저간의 사정을 아니깐 여보란 듯이 생색을 내며 좀 천한 표현으루다 개씹에 보리알 끼듯 구색 맞춰 방을 붙이는 것 아니겠어? 나의 사법고시 이차합격 소식을 듣고 친지들이 흥감에 겨워 등을 퍽퍽 두드려주며 한마디씩 보탠 말들이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나의 고시합격이 권력의 곁불을 쬐러 들어가는 행위쯤으로 비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였다. 나는 까닭 모를 모멸감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잠자코 데면데면 고개만 주억거려주었다.

블렌딩을 한 다음 날이면 아내는 오후 출근을 한다. 느지막이 일어나 오랫동안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뒤 냉장고에서 포장된 어묵을 꺼내고 냄비에 무와 대파를 쑹덩쑹덩 썰어 마른 북어 부스러기를 한 움큼 넣은 밍밍한 해장국을 끓인다. 식품영양과를 나왔다는 여자의 손끝 재간이 겨우 그 정도였다. 물론 난 결혼 뒤 아내에게서 용트림을 꺽꺽 쏟아놓을 정도로 변변한 해장국 한번 얻어먹은 기억이 없다. 딴 사내들도 다 그럴 것인가. 하긴 다른 음식을 버무려내는 데도 아내는 타고난 손방이니 새삼 엉성한 해장국 솜씨를 버르집고 나올 까닭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아내는 콧잔등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나앉도록 한 대접을 게걸스레 다 비우곤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볼 때의 내 참을성은 가장 취약해진다. 때로는 식탁 위로 숟가락을 거칠게 내던지곤 했다.

그러나 아내는 언제나 당당했다. 집안에 들어앉으라니요? 고시에 된 사람은 영태씨지 내가 아니잖아요. 뭐야, 이 여자가 보자보자 하니깐. 당신이란 사람 원래 그렇게 이기적이지 않았잖아요. 분명히 알아둬. 원래 어땠는지는 몰라도 사정이 변했으니깐 지금부터라도 달라져야겠어. 아내는 숫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 년간 애오라지 당신 뒷바라지만으로 한세월 보냈어요. 그것으로도 모자라요? 지금 오기라도 부리겠다는 거야, 뭐야. 내 직장 생활은 순전히 밥벌이 수단이었다고요! 근데? 지금은 그게 거꾸로 유일한 목적이라도 됐어? 목적도 아니고 수단도 아니고 그저 내 삶의 한 부분이 됐지요. 당신이 정 그렇게 내 삶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다시 손대겠다고 나온다면 우린 불가피한 선택의 기로에 직면할 뿐이야요. 선택의 기로?!

혁명운동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혁명운동가의 아내가 될 것인가. 아내는 학생운동 시절 술자리에서 햄릿의 절대절명의 독백체를 흉내내던 말투를 그대로 재연해내고 있었다. 그때는 그게 아내의 놓칠 수 없는 매력이었는데 지금은 왜 그리 역겹게 비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갑자기 전의를 상실했다. 이런 식의 말싸움이 돼서는 곤란했다. 사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단 둘이 사는 집안에 무슨 일이 그리 많이 쌓이겠는가. 빨래나 설거지 같으면 차라리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해치울 수도 있는 문제였다. 사태의 핵심은 부부관계였다. 그 동안은 내가 고시 준비를 위해 극도의 절제된 생활을 하느라 다른 부부처럼 일정한 수준과 원만한 횟수를 채울 수 없었다손 치더라도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지 않은가. 닫힌 화덕처럼 억눌러온 아내의 내연하는 욕구의 출구를 활활 열어 젖히고 힘찬 풀무질을 해 줄 의무가 내겐 있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 먹은 대로 잘 돌아가 주질 않았다. 우린 뭔가 주파수가 서로 맞지 않았다. 나사산이 헤먹은 볼트와 너트처럼 겉돌았다. 아내가 신호를 보내오는 날엔 까닭 없이 내 몸이 착 가라앉아 말을 듣지 않았고, 그리고 난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신호를 보낼 기회조차 점차 박탈당하고 있었다. 왠지 몸이 가볍고 속에서 뭔가가 쿨렁거리는, 말하자면 끼가 도는 날이면 난 새벽바람부터 아내에게 넌지시 이태리 때수건을 달래서는 대중 사우나탕에 가서 구석구석을 정성껏 쓰다듬어냈다. 냉탕 온탕을 번갈아 들락거리며. 그리곤 아침 식탁머리에서 아내를 향해 어색한 웃음을 실실 흘렸다. 하지만 오후에 아내에게 귀가를 서두르게 할 양으로 바퀴벌레 찍어누르듯 전화 숫자판을 신속하게 두드리면 영락없이 그날은 황당하게도 블렌딩 스케줄이 맞춰진 날이어서 꼼짝없는 거절을 당하곤 했다. 아내한테서 서너 번 그런 퉁바리를 맞고 나니 우연의 일치치고는 아닌게아니라 정말 공교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와의 관계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지만 나는 진정 파경을 원치 않았다. 꼬인 상황이 잘 풀릴 때까지는 자칫 무책임한 파국을 부를 수도 있을 만큼 웃자란 감정이 곳곳에 파놓은 함정을 잘 걸터듬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똘똘 뭉쳐 수전노 손아귀의 엽전처럼 그러쥐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난 탈에 자주 가야만 했다. 아내의 블렌딩 횟수에 비례해서.

탈은 그저 흔해 빠진 맥주집이다. 녹두가리 맞은편 이팔구번 버스종점에서 서울대학 쪽으로 한 백여 걸음쯤 걷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얼추 예닐곱 걸음 지나친 곳에 멀쩡히 서 있을 것이다. 그 술집은 온통 시커멓다. 문짝이나 겉벽이 콜타르를 진하게 먹인 널빤지를 촘촘히 엮어놓은 것이어서 첫 느낌부터가 우중충했다. 안도 밖과 별다를 게 없었다. 새뮤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 풍의 식어빠진 사진 판넬이 몇 점 걸려 있는 사이로 듬성듬성 탈바가지가 네댓 개 걸려 있는 게 바깥하고 다르다면 다를까. 마치 탈바가지 안에 들어선 듯 갑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일 학년 때 잠깐 서클을 같이 하던 권희조(權熺祚)를 다시 만난 건 바로 그 술집에서였다. 그는 입학하던 해 이학기 초에 반정부 유인물소지 혐의로 경찰서에 끌려가 이십구 일간 구류를 산 일이 있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라 학내가 들끓던 때였다. 그날 나는 한시 오 분 전을 향해 초침이 움직이는 걸 초조하게 곁눈질하며 오 동과 칠 동 사이의 사회대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시위는 주동자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오동 교수연구실의 창문을 깨고 나와 예정대로 이루어지는 듯했다. 유인물이 뿌려지려는 순간 등산모를 쓰고 교내에 상주해 있던 짭새들도 눈치를 채고 우르르 떼지어 몰려들고 있었다. 구월의 짱짱한 하늘로 노란 색종이가 흩날려졌다. 학우여, 학우여. 창문 틈에 올라선 선배는 호루라기를 빽빽 불며 어서 스크럼을 짜라고 독려했다. 그때였다. 부조리 연극의 한 장면처럼 희조가 괴성을 지르며 나타나 품안에서 황급히 꺼내 뿌리느라 둘둘 말린 채 바닥에 떨어진 유인물 뭉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돈 다발이다! 이힉, 돈 다발!

나는 순간 먹먹해진 내 귀를 의심했으나 희조는 분명히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경찰들이 몰려들기 전에 스크럼을 짜고 대오를 형성해야 될 마당에 모두들 갑자기 맥이 죽들 빠져 어리둥절해 있었다. 뒤미처 들이닥친 경찰 사복조는 희조를 주동자로 잘못 알고 뒤쫓았다. 우리는 스크럼 한번 짜보지 못한 채 흩어져 시위는 흐지부지되고 그해 처음으로 주동을 뜨고도 잡히지 않는 희귀한 사례를 남겼다. 붙들린 희조를 경찰 쪽에서 아무리 조사해봐도 일 학년인 데다 시위나 서클 활동 경력도 드러나지 않은지라 구속은 하지 않고 구류 이십구 일을 때렸고 학교 쪽에서는 한 학기 유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내가 희조가 사는 곳을 찾아간 것은 그가 구류에서 풀려 나온 뒤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그간 면회 한번 가지 못한 게 미안해서인지도 몰랐다. 그는 청량리 근처의 전농동 달동네에서 자신의 고향 출신인 어느 독지가가 자기의 아호를 따서 이름지은 청암의숙이라는 데 머물고 있었다. 묻고 또 물어 겨드랑이에 땀이 뽀독거릴 정도로 헤맨 다음 찾아간 청암의숙은 뒷골목 전당포로 썼으면 맞춤할 정도로 낡고 좁은 쇠창살 창문이 썩은니처럼 듬성듬성 뚫린 붉은 이층 벽돌건물이었다. 페인트물이다

빠진 나왕목 간판에는 '靑岩義塾'이라고 돋을 새김돼 있었다. 그 고장 출신의 근로청소년이나 고학생들에게 잠자리만 제공해주는 노릇을 하는 곳이었다.

이백팔 호라는 호수가 찍힌 팻말 앞에 섰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문짝에는 흰 도화지에 굵은 매직으로 명토를 박듯 또박또박 쓴 검정 글씨가 흔뎅거리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틈새가 빼꼼 열려 있는 게 보였다. 희조의 방에는 한 켠에 이층침대가 있고 맞은편 구석에는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마침 희조는 이층 침대칸에 담요를 뒤쓰고 옆구리께에 구멍이 뻥 뚫린 낡은 런닝구 바람으로 누워 무슨 책인가를 읽다가 내가 들어서는 걸 보더니 몹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놀랐지? 그는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갑자기 목에서 사레라도 들었는지 걀걀거리며 암탉이 알겯는 소리를 냈다. 몸이 안 좋은 모양이구나. 감기 들었니? 그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그러더니 변비 걸린 사람처럼 얼굴이 빨개지고 관자놀이께 힘줄이 도드라지도록 간힘을 쓰더니 물위로 솟구쳐 태왁을 껴안은 해녀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게야? 정말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니? 소린, 무슨 소리? 그의 눈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그럴거야 아아.

그는 이층 침대칸에서 내려와 책상에 한쪽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며 창문을 마저 활짝 연 뒤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나에게도 권했다. 그새 기독교에 귀의했남? 문짝에 웬 성경 구절이야? , 그거...... 유치장으로 교화설교 나온 새파란 전도사의 말이 어찌나 눈물겹던지. 그랬어? 그런 데선 사람들이 단순해지더구만. 아마 설교 전에 나눠준 단팥빵 때문이었을 거야. 당분간 붙여둘 거야.

여기 머무는 데 얼마니? 하루 백오십 원 꼴이야. 밥은? 매식으로 때우고. 영태야, 나 방금 뭐하고 있었는지 아니? 글쎄. 너 들어올 때까지 복화술 연습하고 있었다. 나는 기껏 복화술로 인사를 한다고 했는데 네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 좀 실망했는걸. 복화술? 그게 뭔데. 왜 있잖아.

입을 벌리지도 않고 뱃속으로 말하는 거 말이야. 그게 가능해? 그럼 얼마든지. 그런 걸 왜 배우지? 내겐 현실적으로 필요해. 현실적으로? 아암, 바로 익명성이지. 말이라는 게 부담스러워졌어. 말이란 곧 굴레야. 복화술을 익히면 난 존재의 굴레에서도 완전히 놓여날 수 있을 거야. 그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이 진지했고 표독스럽기까지 했다. 창문으로 비껴드는 햇살을 받아 그의 눈동자는 투명한 수정체를 눈 밖으로 와락 쏟아놓을 만큼 형형한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한줄기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그가 공동취사장에 가 안주로 삼을 인스턴트 자장면을 끓이는 동안 난 책상 앞으로 다가가 손바닥만한 사진틀에 갇힌 오종종한 여인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니인가? 사진사가 가필을 한 듯한 흔적이 엿보였는데 포동포동한 입술이 한눈에 보아도 색기가 흘러넘쳤다.

이만하면 성찬이다. 그는 뒷발로 방문을 꽝 닫으며 소리쳤다. 곧이어 이층 침대칸 위에 올라 사홉들이 진로 소주 한 병을 권커니잣커니 다 비우면서 희조는 자신의 지난 내력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 권가(權哥)는 우시장의 쇠살쭈였다. 소를 사고 파는 흥정마당에 뛰어들어 얼르고 뺨치며 될 흥정 안될 흥정 싸잡아 붙여주는 게 그의 일이었다. 어따, 어금니가 뭉개진 걸 보니 다된 소구만 뭘 그려 잉? 이눔이 어금니 뿌랭이는 이래도 뼈대허구 털의 윤기를 한번 찬찬히 보더라고.

그러다가 좀 헐하게 흥정이 이루어졌다 싶은 쪽에서 얼마간의 구문을 받고 암만해도 박하게 됐다 싶은 쪽에서는 탁배기 값이나 챙기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천형(天刑)의 습벽이 있었으니 바로 노름벽이었다. 어렵사리 호주머니에 돈푼깨나 모였다 싶으면 고무신 뒤축을 꺾어신고 노름방으로 달려갔다. 물론 번번이 털리고 새벽녘에야 노름방 삽짝문을 열치고 나와 희멀건 달빛 아래 애꿎은 오줌발이나 들입다 세우며 아침 해장국 값으로 얻은 개평이나 속절없이 만지작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게다가 희조의 어머니는 근동에서 호가 난 화냥년이었다. 오죽하면 뭇사내들 사이에서 '권가년 치마끈 말아쥐듯'이라는 말이 무슨 일이든 겉시늉으로만 처리함을 비유하는 유행어로 떠돌 정도였다. 그러나 아버지 권가는 마누라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의 노름판 판돈이 그녀의 치맛말기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비릿한 홑단속곳이 그에게는 마르고 닳지 않는 화수분 구실을 해주고 있는 셈이었다.

희조는 외간남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는 집이 싫어 권가쪽을 택했다. 장터와 노름방을 쫓아다니는 게 그래도 먹을 알이 붙고 심심찮아 좋았다. 원체 노름에는 재간이 없는 권가인지라 판돈을 꼬나박다 못해 언제부턴가 노름방에서 눈속임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게 먹혀 들어가 어쩔 때는 가보낭청을 연달아 외치며 쑬쑬한 판돈을 긁어 갖고 나오는 적도 있었다. 권가는 속임수에 점점 재미를 붙여갔다. 희조는 그 속임수 놀음의 조연급 노릇을 했다. 그는 어린 애였지만 특별히 노름방 출입이 허용됐다. 권가의 등에 얹혀 사는 아이임이 인정됐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술 심부름 같은 잔심부름이나 망보는 아이로 세워두기도 좋아 모두들 군말이 없었다. 눈썰미가 남달랐던 희조는 아버지 권가의 어깨 너머로 노름판이 돌아가는 판수를 어느덧 익히고야 만 것이다. 그가 아버지의 등위로 우뚝 서면 판세가 일목요연하게 잡혔다. 그는 이따금 아버지의 눈짓에 따라서 권가의 등뒤에 찰싹 붙어 있다가 결정적일 때 남몰래 허리춤에 화투짝을 한 짝씩 찔러주곤 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오래갈 리가 없었다. 소 한 마리 값 판돈이 걸릴 정도로 판이 커졌다. 노름이라면 이골이 났다는 노름방의 도꼭지격인 짝눈도 육통이 터질 노릇이라며 손을 턴 뒤 두 손을 짚고는 물러나 앉았다. 어린 희조 자신도 노름판에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아버지가 끝까지 남은 상대방을 한 끗 차이로 누를 만한 패를 허리춤에 찔러주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새 터질 듯한 오줌보를 끌어안고 나갔다가 들어온 험상궂은 짝눈이 그의 등뒤에 다가와 서 있는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쥐알봉수 같은 눔덜 보겠나. 눈앞에서는 불통이 튀었다. 노름판의 불문율은 엄했다.

희조는 핏발선 눈에 살기가 번득이는 먹장승 같은 노름꾼들에게 둘러싸였다. 개중 한 사람이 양손가락으로 희조의 입 어귀를 꿰고는 바른 대로 말하지 않으면 평생 말못할 언청이를 만들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새파랗게 질린 희조는 아버지 권가가 시켜서 한 일이라고 토설했고 그 즉시 짝눈의 눈짓에 따라 방안에 작두가 차려졌다. 귄가의 입에 재갈이 물려지고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이 잘려나갈 때 그의 한껏 부풀어오른 흰자위가 뒤집어질 듯 희번덕거리는 게 보였다. 희조는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끝끝내 닫아두느라 촉촉해진 눈까풀을 천천히 열었다. 그 때 내 어린 영혼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거였어. 아버지의 잘린 손가락이 튀어간 방석 위에는 선연한 핏방울 아슴아슴 스며들고 그리고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도 그들이 부정탔다고 놔두고 간 뇌리끼리한 돈 다발을 움켜쥐고는 희열에 들뜬 신음을 내지르고 있었던 거지 후훗. 소주잔을 집어든 그의 손가락이 와들와들 떠는 바람에 차란차란하던 소주가 잔 밖으로 움찔움찔 넘쳐흘렀다. 팔랑거리는 유인물 속을 가로지르며 짐승처럼 뛰어들던 그의 모습이 눈 속으로 아리게 밟혀왔다. 그의 과거와 그 행동 사이에는 석연하지는 않지만 아스라한 줄이 연결돼 있을 것만 같았다.

--몰라. 어떤 긴장감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어. 아무튼 그 자리에선 희생자가 나 하나밖엔 나오지 않았잖아. 그럼 됐어.

나는 두 번이나 깨어나 토악질을 쥐어짜며 속을 말끔히 헹궈낸 끝에 그 이백팔 호 이층 침대칸에서 희조와 땀범벅이가 돼 뒤엉킨 채 생시인지 꿈인지 모르게 덧들린 하룻밤을 묵고야 말았다.

전공이 뭐야?

나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희조에게 다그쳐 물었다. 그는 국문과 대학원을 진학해 박사과정을 밟는 중이었다. 문학이야, 고전문학. 그래, 좋은 일이야. 좋긴? 거기도 분야가 있을 거 아냐? 있지, 향가를 전공해. 야아 향가! 향가라면 나도 몇 수 외우지. 선화 공주님은 남그스기 얼어두고, 맛둥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어때, 쓸만해? 그러자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잘못 짚은 거 같아. 뭔 소리야. 얼마나 뜻깊은 분야인데 그런 말을 해. 우리 고대문학의 엑기스가 담길 것들 아냐. 그래서 그런지 내가 그 길에 들어섰을 땐 앞선 연구자들이 이미 물어뜯고 살을 발리고 뼈를 추리고 요리를 다 해놔서 후학이 건드릴 곳이 없는 거야. 너 알다시피 우리 나라에 현전하는 향가는 이십오 수밖에 안되잖아. 그것도 균여전에 전하는 열한 수는 주제로 보나 형식으로 보나 한 수라고 봐도 될 정도고. 그러니 어디 한군데 오롯이 우려먹을 데가 있겠냐고? 문헌도 한정돼 있고.

, 듣고 보니 그것도 아닌게 아니라 문제긴 문제다 응? 그래 어쩔 셈이야? 이제 와서 다른 우물파기도 뭣한 일 아냐? 그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 나예요. 저녁 무렵 거냉(去冷)이 되지 않아 서늘한 집에 들어가 자동응답전화기의 예약된 비밀번호를 누르자마자 불쑥 튀어나오는 아내의 갈라진 듯한 목소리를 듣는 일이 제일 섬쩍지근했다. 아내라는 존재의 실체가 거처하는 유일한 공간이 바로 자동 응답 전화기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미안하지만, 다름이 아니라 저......, 블렌딩 때문에요. 제가 없더라도...... 잊지 마세요. 잊지 말라구, 낄낄낄. 아아, 블렌딩이여. 나는 찬 벽에 이마를 붙인 자세로 가만히 서 있곤 했다.

아내가 블렌딩을 하는 날 저녁이면 자연스레 발걸음이 탈로 향했다. 한번은 학원에서 막 돌아와 몸살기 때문에 쉬고 싶다는 희조를 억지로 탈로 불러낸 적이 있었다. 그는 생계수단으로 일찌감치 입시학원 강사로 뛰고있었다.

오늘은 맥주 대신 블렌딩한 칵테일을 한잔 마시고 싶은걸. 어 뭐? 너 지금 뭐라고 했냐? , 이 촌놈아, 블렌딩이라고 했다, ? 블렌딩? 그랴. 희조는 내가 블렌딩이라고 말하는 순간 표정을 묘하게 일그러뜨렸다. 그러더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품이 역력했다.

내가 요즘 사련(邪戀)에 빠져 있는 거 너 아니? 뭐라고 사련? 사련 좋아하고 자빠졌네. 처녀 총각이 만나는 데 사련이고 자시고가 어딨어? 쉬운 말로 불륜의 관계지. 희조 니가 정말로? . 그럼 유뷰녀랑 말이지? 하긴 너란 놈은 일찍부터 여복이 있었던 놈이지. 상대는 누군대? 고향 후밴데 남편하고는 일이 잘 안 되나봐. 누구는 좋겄다. 나는 조금 빈정거리는 말투로 대꾸했다. 영태니가 블렌딩을 주문하니깐 떠올랐는데, 우리가 서로 거시키를 하자고 할 때 쓰는 암호가 뭔지 알아? 암호?

, 그렇지. 여러 가지로 놀고 있네. 그래 뭔데? 그게 바로 블렌딩이지. 하하, 블렌딩 합시다. 이렇게 말이지. 말하자면 그런 식이지. 거 되게 세련됐네. 블렌딩이 아마 영어로 치면, 물론 슬랭(속어)일텐데, 흘레 붙는다는 뜻도 지니고 있는 모양이야. 그래? 어디 보자. 술을 술수리술술, 설서리설설 섞다보면 살사리살살 살을 섞는 쪽으로 가게 된단 말이지? 흐흐흐, 거 말 되네.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엉너리치는 말을 뿌리고 있었으나 온몸에 거머리가 들러붙은 듯한 칙칙한 예감에 사로잡혀 굵은 소름 알갱이를 부르르 돋워올리는 중이었다. 오늘......, 블렌딩을 하는 날이예요...... 불길한 예감은 서늘한 기운이 되어내 이마빡을 갈라치고 있었다. 그날 밤 내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다만 블렌딩이라던 아내가 생각보다 일찍 집에 돌아와 다소곳이 날 기다리고 있는 것마저도 칙칙한 예감의 뼈대에 살만 더 보태줄 뿐이었다.

영태 너, 이 술집에 걸린 탈바가지 중에 처용탈이 있는데 알아 맞춰볼래? 글쎄 어디 한번 코빼기라도 구경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귀신조차 넌더리를 내고 물러갔다니깐 좀 우락부락한 모습이 아닐까. 처용이 우락부락하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는 당대의 가객 아냐, 가객. 신화 속의 인물인데 가객은 또 무슨 얼어죽을 가객이야? 영태 네가 그 신화의 껍데기를 한풀 벗겨내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 할 수도 있을텐데 말이야. 어디 국문학을 했다는 희조 네가 한번 벗겨보렴.

바로 저치야. 희조는 개중 반반한 탈바가지를 가리켰다. 마누라 때문에 오쟁이를 탄 작자치고는 제법 걸때가 있어 봬는 친군데. 역신을 물리쳤다는 친구가 왜 저리 역병을 앓은 듯이 얼금뱅이 상을 뒤쓰고 있지? 역설이지. 근데 너도 알다시피 입시학원이란 데는 제도권 학교와는 달라. 물론 다들 지식을 팔고 사는 시장이라는 점에선 본질적으로 같지만 학원이 그런 점을 좀더 노골화하고 있는 셈이지. 그날 그날의 강의에 대한 품평회가 이루어지고 그건 직접적으로 권희조라는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잣대야. 이거하고 여축없이 연결되지. 그는 엄지와 검지를 둥그렇게 맞대 아래위로 흔들어 보였다. 매번 강의 연단 아래가 낭떠러지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마이크를 잡지. 어디간들 다 마찬가지지 뭐 별달라? 그렇겠지. 그런데 가끔가다 학생들한테 미안해져. 그들에게 갑자기 값싼 지식의 거래가 아닌 다른 대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그런 환상일랑 애진작에 집어치워.

아니야. 가능성이 없진 않아. 남한테는 뭣 팔려서 여직껏 말은 안 해왔다만 나 저기, 겨레문학이라는 삼류 문학계간지에 희곡 부분 신인상을 받고 재작년 가을호에 데뷔를 한 적이 있거든. 비록 원고료로 책만 삼십 권 팔아오라는 어처구니없는 봉욕을 당하긴 했지만. 그랬어.....? 희곡으로 요즘 쓰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그 실마리를 어떤 수강생에게서 얻었다니깐. 그래? 그 수강생이 어떻게 했길래? 들어봐. , 이 녀석이 고전문학 부문 향가에 대해서 예상문제를 죽 훑어보려는 참인데.

처용가, 주제는 불교적 체념으로 승화된 세계, 이것이 정답입니다 하는 식으로 말이야. 난데없이 선생님 질문 하나 해도 돼요, 하지 않겠어? 뭔고, 물었더니. 처용가에 대한 설화를 보면 역사상의 사실과 틀리는 점이 많습니다. 하더라고. 고 녀석의 얘기의 요점은 이거야.

삼국유사의 제 이권 처용랑 망해사조의 첫머리를 한번 보라고. 이렇게 시작하지, 제 사십구 대 헌강대왕대는 서울에서 동해변까지 집들이 맞닿았으며 담장이 서로 이어졌고 초가는 한 채도 없었다.

길가에 음악이 끊이지 않고 풍우가 사철 순조로웠다. 여기서 서울이란 당시의 경주를 말함인데 아무튼 더할 나위 없는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는 걸로 묘사돼 있는데 이건 완전히 생구라가 아니냐. 이렇게 나오는 거야. 생구라? 아무렴. 당시는 신라시대의 말기로서 골품제도의 모순과 왕권의 몰락, 대권쟁탈전으로 말미암은 지배층의 분열과 상쟁 그리고 육두품과 도당유학생과 지방호족들의 발호, 또 지식인들은 두 손을 놓고 노장사상과 같은 허무주의에 빠진 상황이었거든. 게다가 농민은 수탈을 당하다 못해 농토를 잃고 유민화하거나 도적떼로 변하고 있던 아주 극도로 혼란한 사회였단 말이야. 그 똘똘한 녀석이 어찌나 깐깐하던지 아주 역사적 문헌기록까지 들이대면서 조목조목 따지는데 오랜만에 호적수를 만나 듯 짜릿해지는 거 있지. 듣고 보니 기특하게 여길 만하네. 그 녀석이 글쎄 이래요.

헌강왕의 바로 전대인 경문왕대만 하더라도 역병이 두 번, 흉년이 네 번, 모반 두 번, 천재지변 다섯 번, 불길한 징조가 네 번 나타난 걸로 삼국사기엔 기록돼 있는데요. 그리고 처용설화가 꾸며지던 헌강왕 오년 팔백칠십구 년만 해도 일길찬 신홍(信弘)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해 주살됐으나 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문헌에 버젓이 나와 있거들랑요.

그러면서 자기가 보기엔 처용이 말하자면 지금의 대중가수와 비슷한 존재가 아니냐는 거야. 비근한 예로 조용필이나 서태지 같은. 서태지? 우하하 기발한 생각이네. 예나 제나 대중에게 가무의 위력이란 대단하잖아. 더군다나 신라 당대에는 달리 즐길 만한 매체가 없는 형편이니 더욱 그러했을테고.

희조는 열을 올려가며 자기 얘기에 스스로 도취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처용의 생애를 다룬 희곡을 쓰는데 제목을 '처용 단장'으로 붙였다고 일러주었다. 내친 김에 그 처용 단장이라는 희곡 작품의 말미에 들어갈 향가 하나를 자기가 손수 지었다며 디미는 것이었다. 뭐야? 향가를 네가 지어내? 그 말에 나는 약간 흥미가 당겼다. 어디 한번 보자. 별 희한한 얘기를 다 듣네. 극중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한 장치지 뭐. 그가 보여준 향가는 격식만큼은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望海居士

 

腹飢烏隱達阿羅之叱食乙置 빛골하온 딪링링읫 바블두

奪叱去乙 아힝거다

物北所音叱國有叱下 믓싶 나라히 잇시리

智理是多亦都波加尼 智理이 하히 都波더니

阿邪郞也伊底亦所只毛冬平 아으 잎 이뎨힝뎡 모딪온뎌

月良尸明期隱深隱夜矣 딪 빛근 기픈 밤잎

哀反社鵑 셜븐 졉동새

去隱圭追良哭乃行伊叱等邪 간 님흘 좆초아 우니다닛 다라

 

언뜻 보기에 팔구체 향가 같은데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이야? 나는 맨 끄트머리 부분만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갈 듯하고 나머지는 도무지 맹문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망해거사의 처는 또 어떤 인물인고. 공무도하가를 지은 백수광부의 처는 알아먹겠는데 말이야. 희조는 알기 쉽게 뜻풀이를 해줬다.

배고픈 중생의 밥마저 / 빼앗거늘 / 무슨 나라가 이런고 / 지혜로운 자들이 많이 떠나 도성이 깨지더니 / 아아 낭이시여 아직껏 모르는가 / 달 밝은 깊은 밤에 / 서러운 접동새 / 떠난 님을 좇아 울며 다니는구료

님타령으로 봐도 되나? 글쎄...... 지은이로 돼 있는 망해거사의 처는 처용설화에 나오는 망해사 건립 부분과 연결이 되고 지리다도파, 즉 지혜로울 지, 다스릴 리니깐 지혜로써 다스리는 사람들이란 뜻인데 누구겠어? 당시 육두품들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 계층이지. 육두품이란 게 대관절 뭐야? 신라 골품제도 때문에 원천적으로 정치적 신분상승의 길이 막힌 사람들 아냐. 때문에 개인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에서 출중한 능력의 소수자들인 이들은 처음엔 학문적인 식견에 의해 정치적인 참여의 길을 걷지만 좌절을 겪고 그래서 당연한 귀결이지만 당대 사회의 가장 비판적인 집단으로 떠오른 것 아니겠어? 다도파란, 많을 다, 도성 도, 물결 파인데 결국 많이 도망들을 가니깐 껍데기만 남은 왕성이 깨지리라 하는 말인데 당시 항간에서 불렸던 정치풍자의 도참요(圖讖謠)라고 봐도 무방하지. 그럼 처용이 육두품 출신이란 말이야? 웬걸, 내가 보기엔 진골 출신이었던 것 같아. 설화에도 처용이 동해용의 일곱 아들 중 막내로 나와 있거든. 용이란 존재는 당시 매우 숭앙되던 대상인 데다 신라 제 삼십 대 왕인 문무왕이 죽어 경북 월성군 앞 바다의 수중릉인 대왕암에 묻히면서 동해 대룡이 됐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동해용의 아들인 처용은 왕족의 피가 섞인 진골 출신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어쩌면 황당하기 그지없이 꾸며낸 얘기일 수도 있었다. 나는 문득 그의 이야기가 나를 겨냥하고 있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 뒤로 몇 번 만날 때마다 자신의 거의 탈고해간다는 처용 단장의 줄거리를 귀띔해주었다.

처용은 진골 출신 왕족의 후예로 본래 이름은 자윤(慈允)이었다. 일찍이 풍운의 뜻을 품고 화랑에 입문한다. 그는 화랑에 입문하면서 흔들리는 계림(鷄林)의 국풍을 바로잡는 동량으로 자라날 것을 굳게 맹세한다. 그러나 화랑입문 전에 우연히 당진 근처를 유람하다 만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라는 동갑내기 소년의 말이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 언제나 개운찮은 기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소년 최치원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기 위해 당진에서 나당무역선이 뜨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처용과 객사에서 만나 첫눈에 서로 보통이 넘는 인물됨됨이를 알아보고는 밤새 세상사를 토론하며 하룻밤을 지샌 것이다.

그렇게 써서 잘도 팔리겠다. 암만 처용과 최치원이 동시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런 필연성도 없이 둘의 만남을 가정하는 게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너무 비약된 상상력 아니냐구? 그러자 희조는 정직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 현실은 우리의 상상보다 더 어처구니가 없고 기괴할 수도 있는 법이야 하며 얼버무렸다. 아닌말로 너와 내가 이런 몰골로 만나게 될 줄이야 누가 처음부터 상상이나 했겠니? 우리 몰골이 지금 어디가 어때서? 아냐, 그게 아니고......, 넌 몰라. 희조는 갑자기 연거푸 술잔을 비워댔다. 녀석, 참 싱겁긴...... 나는 술잔을 연달아 채워주며 끌탕을 했다. 아무튼 희조의 역사적 상상력에 따르면 최치원과 처용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였다.

--진골인 자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떻지 모르겠지만 난 골품제도 때문에 출세의 길이 막혔기 때문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그곳 빈공과 과거에 급제하고 문명의 떨친 뒤 돌아오겠어. 아버님은 내게 십 년 안에 급제하지 못하면 아들로 여기지 않을테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셨거든.

--계림이 변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 나는 곧 화랑에 입문하게 돼. 고운은 당에서 열심히 학문수양을 하고 난 이곳에서 절차탁마하여 실력을 기른 다음 훗날 계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찾아보자고. 우린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을 게야. 목숨보다 소중한 다짐을 두세.

그러나 처용이 발을 들여놓은 화랑은 이미 예전의 화랑이 아니었다. 기강은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졌고 삼국통일기의 그 늠름하던 기품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말짱 도루묵이었다. 도덕수련과 정서함양에 힘쓰고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신체단련에 여념이 없어야 할 화랑들이 주색잡기와 자리다툼 그리고 민폐 끼치는 걸 예삿일로 삼았다. 활랑 중에서도 특히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우두머리 화랑인 화판(花判)들의 행패는 한결 심했다. 심지어는 화랑들 사이에 입에 담기 어려운 남색(男色)관계를 맺는 일이 허다하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도는 판이었다. 처용은 크게 실망한 나머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그저 명산대천을 떠돌며 심신을 단련하고 허한 가슴을 달래기 위해 시가(詩歌)에 열중했다. 그러나 목구멍에서 각혈이 나오도록 단련을 해도 완성된 목소리를 얻기란 좀체 쉽지 않았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보니 서라벌에서 주지육림에 빠진 귀족들이 벌이는 호화판 향연과는 달리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도 갖은 부역에 시달리는 등 그 참상이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처용의 가슴속에는 백성들에 대한 연민으로 묵직한 응어리가 굵직한 똬리를 틀어갔다. 밑으로부터 변화의 기운이 뻗치지 않으면 절망이야.

한번은 날이 이슥할 무렵 금강산 경계를 지나 남하할 때였다. 어느 마을 어귀를 지나려는데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서 두 양주의 구슬픈 곡성이 나지막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처용은 그 집의 다 헝크러져 가는 울 바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주인장, 주인장 계시오?"

처용이 주인을 청하는 소리를 넣자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지나가는 길손인데 하룻밤 유하도록 허하시면 고맙겠습니다."

"길손도 보시다시피 방바닥은 파이고 벽은 바람이 제 집처럼 마음대로 들락거리며 천장으로는 흘러가는 구름이 방안을 들여다보는 처지니 손을 들이기가 매우 어려울까 합니다. 집안에 남세스런 춘사(椿事)도 겹치고 하였은즉....."

처용이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면서도 벅벅이 우겨 자리를 잡은 뒤 알아본 사정은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절량이 된 지 이미 오래 전인 두 양주는 부황기가 골수에 미치게 되자 할 수 없이 열살 난 딸을 백리 상거인 파진찬 김흥댁에 노비로 팔기로 하고 마지막 밤을 서로 부둥켜안고 울며 보내는 중이었다.

"그게 뭡니까?"

처용은 젊은 남정네가 들어왔는데도 등허리를 까들추고 맨살을 내놓은 채 죽은 듯 엎어져 있는 계집아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어미 되는 이가 나무꼬챙이를 젓가락 쥐듯 들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용은 주인장에게서 아이의 등허리에 핀 부스럼에서 구더기를 파내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듣고 땀구멍이란 땀구멍은 모조리 열리는 듯한 기분에 와락 휩싸였다. 아아, 이 현실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계림의 창맹들이 이런 처참한 생활을 하는데 일신상의 벼슬은 뭐고, 영예와 부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란 다 무에 소용이 있더란 말이냐. 처용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어느덧 서산에는 시리도록 푸르고 둥근 달이 덩두렷이 떠올라 가난한 산하를 고즈넉이 비추고 있었다.

어쭈, 희조 너 그 동안 완전히 노가리만 늘었구나. 만날 때마다 신물이 나도록 들으니 이젠 처용이라면 귀에 못이 박이겠다. 아냐, 아직 단대목은 나오지 않았어. 야야, 이제 그만 때려치우고 딴 얘기하자. 글쎄, 지멸이 있게 앉아서 더 들어봐. 우리 시대에 바로 처용 같은 이들이 많이 나오고 있잖아. 너도 그 중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안 드니? 어떤 의미에서? , 얼굴 붉히지 말고. 내 말의 방점은 처용이 팔불출이어서 마누라로 말미암아 오쟁이를 탔다는 데 찍혀 있지 않단 말이야. 당시에는 지식인이 오늘날처럼 중간계층이 아니라 바로 지배계급 쪽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니? 문자 이꼴 권력이었으니깐. 그럴 때 당대의 모순에 온몸으로 고민했던 처용이라는 한 지식인의 고뇌와 결단 그리고 좌절과 변절의 역정을 살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 나는 처용 단장이라는 희곡에서 그걸 더듬고 싶었어. 흐흠, 지식인 처용이라...... 좋아, 계속해봐. 나는 턱주가리를 어루만지며 귀를 종긋거렸다.

당시 신라인들은 향가에 열광적으로 미쳐 있었다. 말하자면 향가는 요즘의 대중가요인 셈이었다. 경주 지방을 일컫는 사뇌야(詞腦野)에서 불리는 잘 정제된 십구체 향가는 특별히 사뇌가라고 이름했고 귀족 사이에서 유행했다. 지방에서는 사구체나 팔구체로 된 향가가 나타나 백성들 사이에서 크게 풍미했다. 그 와중에서 많은 가객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중에서도 계림 전체를 통틀어 제일 인기 있는 가객은 처용이었다.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의 전국적 대중가객의 출현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고혹적인 미성과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어루만지고 서리서리 맺힌 곳을 찾아 그 응어리의 뿌리를 움켜쥐고 풀어주는 노래로 대번에 전국적 명성을 획득했다. 그가 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거게까지 했다는 소문과 함께 진골 출신 가객이라는 점이 세간의 흥미를 배가시켰다. 물론 처용은 그의 가문에서 지체없이 출문(黜門) 조처를 당했다. 그러나 백성들의 변덕은 끓는 팥죽처럼 들이가 없었다. 대중가객으로 온 백성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그도 언제부턴지 인기가 시름시름 잦아들기 시작했다. 대중은 좀더 자극적인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풍의 향가나 현실을 잊고자 내세 지향적인 피안의 향가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회성 짙은 처용의 향가 세계는 그닥 큰 주목을 받지 못할 처지에 빠졌다. 그게 바로 대중가객의 일반적인 운명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처용이라는 이름은 잊혀져가고 있었다. 백성들 속으로 뛰어들어 그들의 한 맺힌 가슴을 어루만져주며 살자고 다짐했던 처용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처용의 방황은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주색을 함부로 가까이 하는 날이 많아짐은 물론 자신의 결단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하는 회의마저 슬그머니 마음 한구석에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비틀대는 처용에게 회복불능의 일격을 가하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나당무역선이 뜨기를 기다리던 당진의 한 객사에서 만나 의기투합하였던 육두품 출신 소년 최치원이 학문에 용맹정진한 끝에 드디어 당나라 과거인 빈공과에서 장원급제를 해 이름을 금방에 걸어 계림의 위의를 선양했을 뿐 아니라 탄탄대로의 벼슬길을 시원스레 열어 젖혔다는 것이다. 처용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백성의 아린 가슴을 노래로써 쓰다듬어주겠다던 나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번민을 거듭했다. 비록 거친 입성과 음식일망정 마다 않고 짚북더기 속에서 새우잠을 잔대도 이 땅과 그 불쌍한 백성을 위해 목구멍에서 피를 쏟도록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걸로 만족해왔다. 계림은 아래로부터 변할 것이었다. 한번도 사내곡댁(思內曲宅)이라고 일컫는, 사뇌가가 곡을로 불리는 귀족들의 집에서 산해진미를 갖추고 두둑한 행하(行下)를 내걸고 그를 불러도 들르지 않는 절개를 지켜왔었다. 백성들을 위한 대중가객이라는 이름 하나만을 부여안게 된 것만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한때 열광했던 백성들이 이제는 날 잊어가고 계림의 국풍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고 하냥 다짐을 두었던 고운은 지금 드넓은 중국대륙에서 갈수록 문명을 떨치고 있으니 처용의 가슴은 갈가리 찢기는 아픔에 미어지는 듯했다. 자신의 어느 한구석에 한방울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기득권 의식을 털어내기 위해 자청했던 거세 때의 고통이 헛되지나 않을까 생각하매 눈앞이 캄캄했다.

이때 나름대로 영민했던 헌강왕은 진작부터 처용의 효용가치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왕권을 노리는 세력들의 불온한 기운은 표면상으로는 잠잠해진 것도 같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었다. 민심은 점점 이반 되고 있었다. 헌강왕으로서는 처용의 뛰어난 가무가 통치술의 하나로 필요했다. 올 여름만 하여도 믿었던 신하인 신홍의 모반을 가까스로 진압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체제 위기를 해소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불만에 찬 백성들을 순치시키기 위해서는 처용과 같은 절세의 대중가객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의 가무를 통해 은근히 왕권의 절대적 신성함을 유포하고 각박한 현실로부터 사람들의 인식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놀 필요가 있었다. 그 일에 처용은 하늘이 내린 적임자였다. 헌강왕은 재빨리 손을 썼다. 처용이 은거하고 있다는 영취산으로 밀사를 파견했다. 그 동안 절개를 지킨답시고 목꼬대가 뻗뻗했던 처용도 권력의 일부를 손에 쥐어주겠다는 데는 거미줄의 나비처럼 빨려들었다. 후후 그러면 그렇지. 왕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허공을 향해 너털웃음을 뿌렸다.

처용이 왜 맘을 돌려먹었을까? 결국은 권력의 양짓녘이 그리워져 변절을 한 게지. 변절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 영태 너처럼 현실적인 자기 영역을 찾은 거라고 봐야지. 물질적인 고달픔을 피하는 개인적 이유말고도 왕실의 권능을 등에 업고 대규모 연희를 가질 수 있었을 게야. 야인 시절에는 그게 어디 언감생심 꿈이라고 꿔봤을 일이겠어? 정교하게 장치된 무대에 올라 수많은 동원된 대중 앞에서 훨씬 효과적으로 가무를 보여줄 수 있었겠지. 이미 한 사람의 예인(藝人)이 돼버린 처용에게는 그게 아마 참을 수 없는 유혹이 되었을 테지. 상상할 수 있잖아? 그런 배려 뒤에는 헌강왕의 계산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며? 대중조작을 통해 대항 세력을 진무하고 백성들의 현실 감각을 무디게 만들려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처용이 제 하기 나름 아니겠어? 어차피 현실적 타협을 한 만큼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안그래? 글쎄 듣고 보니..... 헌강왕 밑에 들어간 처용은 문헌에서 보더라도 급간이라는, 비록 높은 벼슬은 아니지만, 관직도 제수 받고 산호궁이라는 대저택은 물론 아름다운 미인을 아내로 맞이했다는 거아냐. 희조 네 말에 따르면 처용이 기득권을 포기하기 위해 거세까지 했다고 미리 복선을 깔아놨으니 비극적 결말이 예정돼 있는 거로구나? 역시 서당 집 개가 대장간 집 개보단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응? 처용 단장은 결말을 향해서 점점 나아가고 있었다.

왕이 처용에게 내려준 교선(喬善)이라는 여인은 그야말로 경주 제일의 절세미인이었다. 처음에 처용은 극구 사양하려 했으나 왕의 뜻이 너무 완강해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자신의 거세된 남성 때문에 처용은 부인과 잠자리를 한번도 같이 해본 적이 없었다. 오직 밖으로 나돌면서 피 토하듯 펼치는 연희에만 몰두했다. 처용의 헌신적 노력 덕에 왕권은 점점 안정돼 가는 것처럼 비쳐졌다. 백성들은 대중가객 처용의 재등장에 두 손을 들어 환호작약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백성들의 당장의 입맛에 맞는 향가를 써서 불러 제꼈다. 도탄에 빠진 백성의 가슴에 응어리진 고통의 뿌리를 어루만지겠다는 처음의 맹세는 어디 갔는가 하는 자책이 일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백성을 일단 무대 앞으로 불러모으는 일부터 해야 한다. 처용은 이렇게 자신을 합리화해 나갔다. 처용이 대규모 연희의 열기에 휩싸여 깜뿍 정신을 잃을 정도로 대중인기의 최면에 탐닉하는 나날이 흘러갔다. , 이게 바로 권력의 맛이로구나. 처용은 자신이 일찍이 혀끝을 대보지 못했던 권력의 감미로운 단물을 경계하려 의식하면서도 제 정신을 가누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연희를 서둘러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처용은 무심코 오늘도 적적한 하루를 보냈을 부인에게 위안의 말이나 던질까 싶어 규방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아, 이게 무슨 일인가. 아내는 웬 외간남자와 벌거숭이가 된 채 남편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비단금침 위에서 운우지정(雲雨之情)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느라 열락의 신음 소리만 거칠게 토해내는 중이었다. 당신이 암만 거세된 남자라 하더라도 이 순간 어찌했을 것인가. 연놈을 단매에 쳐죽이기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방안으로 뛰어드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러나 처용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널리 알려진 대로 가슴이 남달리 넓은 사내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기 아내의 벌거숭이 몸뚱이 위에 엎어져 뜨거운 숨결을 내뿜고 있는 사내는 다름 아닌 권력의 화신 헌강왕이었다. 처용에게 권력의 단맛을 봬준 왕이었단 말이다. 처용은 등짝이 땀으로 번질번질해져서 여자의 몸에서 내려오는 사내와 눈길이 딱 마주쳤다.

처용 단장의 절정은 이 대목이야. 희조는 입술을 침으로 축이며 말했다. 이때의 처용의 마음을 적절하게 읽은 육십 년대의 시인이 있었지. 그게 누군데? 두말할 것도 없이 시인 김수영이지. 그래? 그가 시론을 논하면서 응축해놓은 비수 같은 말을 처용의 입을 통해 되풀이 한다면 이렇게 될걸. 아아, 향가여 침을 뱉어라, 풍자가 아니며 해탈이다. 이 비극적 상황, 자신의 변절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권력의 늪에 깊숙이 휘둘린 걸 안 처용은 분노의 주먹 대신 체념의 춤을 출 수밖에 없었을 테지. 이 노래처럼 인간의 희로애락을 극적으로 표현한 시가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시사(詩史) 어느 갈피에서건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거야. 희조의 목소리가 사뭇 떨리고 있었다.

 

서라벌 밝은 달 아래

밤새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사람 것이 분명한데

둘은 도대체 누구 것인가

원래 내 사람이던 이를

빼앗아가니 낸들 어쩔 것인가

 

여자를 사이에 둔 질투심에는 세간의 필부와 군왕이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정작 처용은 체념을하고 모른 척하려 했으나 헌강왕은 불안했다. 그의 연희에는 보통 기천 명 많으면 일만을 헤아리는 숫자가 모인다고 했다. 만약 왕궁 근처에서 그런 연희가 열린다고 가정을 해보자. 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처용이 언제 앙심을 먹고 자신의 대중적 인기를 이용해 민란을 선동할지도 모를 일이었고 또 어느 지방호족이나 육두품 출신의 반중앙정부적 불만세력과 짝자꿍이 돼 붙어날지 모를 판국이었다. 그 동안 정국안정에 진력한 결과 왕이 보기에도 왕권은 많이 안정된 듯이 보였다. 그러면 어차피 처용의 효용가치도 수명이 다한 셈이며 효용가치가 사라진 대상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하루빨리 처지하는 게 후환을 없애는 지름길이라는 걸 그간의 궁중암투 생활은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그래야지만 남몰래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처용의 처 교선도 버젓이 궁 안으로 불러 놀아날 수 있지 않겠는가. 후원을 가로지르는 자객의 쩔렁거리는 패검 소리를 듣자 신변의 안전에 위험을 느낀 처용은 몸만 빠져 나와 밤 도망질을 놓았다. 왕궁에서 도처에 비밀군사를 풀어놔 처용의 도망 길은 각다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리저리 떠돌아 다닌 끝에 닿은 곳이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梁山) 근처의 영취산(靈鷲山)이었다. 그가 처음 헌강왕이 보낸 밀사와 만나 담판을 짓고 끝내 변신을 결심한 곳이었다. 그는 왠지 그곳에 가서 자신의 영욕으로 뒤엉킨 일생을 뒤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바다가 훤히 바라다 보이는 동쪽 기슭에 망해거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꾸리는 주막집이 있었다. 드문드문 찾는 길손에게 국밥이나 말아주고 탁배기나 얹어주는 허름한 주막집이었다. 그 집 주인 내외는 찾는 이가 없으면 바위에 올라 아스라한 바다만 바라보다 구성진 노랫가락을 뽑아 올리기에 사람들은 남자 주인장을 망해거사라고 불렀다. 사흘 밤 사흘 낮을 잠 못 이룬 채 그 집 주막 앞에 다다른 처용은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앞마당에 쓰러졌다. 망해거사가 얼른 대궁밥을 내다 대접했다. 꿀맛이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그 어느 산해진미보다 더 달았다. 어느새 한 그릇을 다 비워냈다. 그때 문을 열고 처용을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던 망해거사의 처가 쌀바가지에 국밥을 또 다시 이드거니 말아 가지고 나오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를 듣고 난 처용은 목구멍에서 선짓빛 피를 토하며 수챗구멍을 얼굴을 꼬나박았다. 자신의 존재를 대번에 날려버리고도 남을 회한이 폭풍처럼 밀려온 것이다.

 

굶주린 백성의 밥마저

빼앗거늘

무슨 나라가 이런고

지혜로운 자들이 많이 떠나 도성이 깨지더니

아아, 낭이시여 아직껏 모르는가

달 밝은 깊은 밤에

서러운 접동새

떠난 님을 좇아 울며 다니는구료

 

이상하게도 아내의 블렌딩 작업이 얼마 전부터 뚝 끊기고 말았다. 그와 더불어 그토록 엉망이던 아내와의 주파수도 예전과는 달리 잘 맞아 돌아가는 편이었다. 양주를 한잔씩 걸치고 하룻밤에 다섯 번의 격정에 휩싸이고 나서도 우리는 장딴지 근육이 팽팽한 채 그대로였다. 그것은 어쩌면 섹스가 아닐지도 몰랐다. 뭐가 달라진 것인가. 갑자기 고분고분해진 아내가 사실은 두렵게 느껴진 것이다.

블렌딩을 하며 돌아다니던 아내였을망정 어쨌든 풋풋함만큼은 꾸준히 내 곁에 두고 지켜봐온 게 사실이었다. 그런 풋풋함마저 사라진 지금의 아내는 잘 빚어진 밀랍인형의 파삭파삭한 껍데기처럼 점점 얇아져만 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이 고요해진 생활을 계속 그대로 수용할 참인가. 내가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는데도 말인가. 나는 지금도 자동응답전화기의 비밀번호를 눌러 예전에 녹음된 아내의 목소리를 되풀이해서 듣곤 한다.

영태씨 저예요...... 미안해요. 다름이 아니라 또 그 스케줄이 잡혀서요. 블렌딩 말예요. 내가 없더라도...... 꼭 거르지 말고...... 잊지 마세요. 아셨죠?

주체못할 눈물이 쑤욱 빠져 나오려 했다. 아암, 어떻게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아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죽을 이름이여, 블렌딩이여. 또 헛웃음이 키들키들 터져나왔다. . 아내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새겨보는 이름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설움에 겹도록 불러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래 우리는, 우리는 이젠 더 이상은 안돼. 나는 내 목소리를 의심했다. 하지만 분명 내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였다.

나는 처음에 희조가 처용 단장을 떠벌릴 때부터 어떤 직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질 못했다. 희조가 사련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여인이 혹시 아내가 아닐까. 물론 나는 이 직관이 사살이 아니길 바라며 골백번도 더 부정해왔다. 하지만 그 한 통의 전화는 나를 깊고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처음엔 한 옥타브 고조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그것은 흡사 컴퓨터 같은 기계로 합성을 해낸 목소리처럼 오싹하게 들렸다. 소름이 화라락 목덜미에 달라붙는 것이었다. , 누구를 찾으세요. 한동안 잠잠하던 저쪽 너머에서 당황한 낌새가 느껴지더니, 거기 혹시 동률이네 집 아닙니까 하고 되묻는 거였다. 그쯤에서 나는 전화를 끊었어야 옳았다. 왜 내 입에서는 예, 맞습니다만 하는 데퉁맞은 말이 불쑥 튀어나왔을까. 그러자 수화기를 든 사내는 갑자기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돌아가 그, 그럴리가 이,있습니....., 하며 수화기를 놓친 모양이었다. 바로 그 목소리의 장본인을 난 잘 알 수 있었다. 사실 그 후부터 나와 희조는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난 그저 게임의 룰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 짐짓 모르쇠를 잡아떼며 언구럭을 부리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희조는 저 남도 끝 여수 어딘가에 있는 수산전문대에 전임자리가 나서 내려가게 됐다며 떠나기 바로 전날 한번 만나자고 했다. 그러더니 날 보자마자 두 손을 부여잡고 눈물부터 펑펑 쏟는 거였다. , 임마 권 교수, 울긴 왜 울어? 너무 잘 풀려서 그런 거냐? 그는 무조건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고개를 떨궜다. 대충 눈자위를 추스르고 난 희조는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떼는 순간 나는 저돌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힘줘 말했다. 말하지마, 다 알어 임마, 알고 있었다고. 그러니 암말 말고 처용 단장 마무리나 잘해. 희조는 눈말 휘둥그래 뜨며 날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가짜 돈 다발이 그들먹한 어느 이름 모를 사내의 가방을 떠메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오늘따라, 난 나를 천년 세월 저편의 처용으로 만들어놓고 남도 땅끝으로 꽁꽁 숨어버린 친구의 얼굴이 불현듯 보고 싶어 건몸이 달아올랐다. 희조, 네가 먼저 이 세상에서 물러설 이유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가 밉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뭔지 알수 없는 느꺼운 감정이 명치 끝으로 막 밀려드는 거였다. 그러자 이제 산다는 것의 서러움을 조금은 알듯한 나이를 먹어 버렸다는 생각이 뜬금 없이 들었다. 그래, 나는 서른 살 나이의 처용이다, 쓰발.

하지만 오늘밤을 넘겨서까지 질질 끌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한가지 분명한 소식을 전해줘야겠다고 맘먹었다. 삐조새의 목에 감긴 줄을 비로소 풀어주겠노라고. 우리는 더 이상 안돼, 정말 이지...... 암만 애써도.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는 정성들인 저녁밥상을 차려놓고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흰 앞치마 속으로 두 손을 파묻은 아내는 청실홍실주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헤설피 웃을테지. 아내가 이번에 새로 개발해낸 뒷맛이 부드러운 매실주의 이름은 청실홍실이었다. 부부 금실의 상징이었다. 아내는 그 술 이름을 제안한 덕으로 거금 오십만 원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금실 좋은 부부들만이 마셔야 할 그 청실홍실주가 우리의 밥상에 오른다는 것은 왠지 어색한 일이긴 했으나 그것은 아내의 신호이기도 했다. 그 병마개를 비틀어 따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나의 소관이었다. 나는 병마개를 비틀면서 매번 아내가 삐조새라고 부른 민물가마우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가 청실홍실병을 거머쥐고 슬그머니 식탁 아래로 내려놓으면 아내는 어두운 표정을 지을 것이다. 나는 대문이 보이는 길목으로 접어들자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풍자냐, 해탈이냐. 나는 그 숨막히는 길목에 오늘도 우두커니 서 있는 셈이었다.

그래, 나는 서른 살의 처용이다. 하루에 한번쯤은 해탈을 할 나이다. 그런데 해탈은 어떻게 하는 거지. 나는 짐짓 힘차게 대문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며 소리내어 아내의 이름을 길목이 떠나갈 듯 크게 불러 제꼈다.

---, 나오라! 태 왔다!

 

 

 

김소진

 

1963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겨레신문> 교열부 기자로 있다. 1991<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분단의 비극을 곤궁한 가족사를 통하여 단단한 문체로 형상화한 <쥐잡기>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젊은 세대의 작가로서는 유다르게 전통적인 창작방법과 엄정한 리얼리즘 정신, 그리고 장인적인 문체를 고집하고 있는 그에게 문단의 커다란 기대가 주어지고 있는 바, 그는 19933<열린 사회와 그 적들>(솔출판사)이라는 이름의 첫 창작집을 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