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단편 소설

47. 피의 체취

자한형 2022. 2. 2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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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체취(體臭) -김원일

 

며칠간 날씨가 풀려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지더니 크리스마스 이튿날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날씨는 아주 추워졌다.

그날 밤, 나는 술에 취해 통금 시간이 가까와서야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추위와 비 때문에 떨며 방문을 열자, 한 장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편지는 고향의 형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편지 내용은 실연한 누이동생이 자살했다는 것과, 그 자살의 충격으로 어머니가 미쳐 버렸다는 간단한 전달이었다. 글자 수로 보아 전보라기엔 좀 길고, 편지라기엔 너무나 짧은 형의 글을 읽고,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놀라지 않았다는 것은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했던 때문은 아니었다. 머릿속이 말짱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나는 그렇게 취한 편이 아니어서 편지 봉투를 찢기 전에 이미 형의 핏발선 눈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를 쏴 죽이겠다고 엽총을 든 채 온 동네를 뒤졌다던 형의 모습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제길, 우리 집안도 갈 데까지 가 버렸군."

나는 담배를 꺼내 물며 실소를 쓸렸다, 편지 내용이 준 첫 느낌은 오히려 담담한 편이었다. 나의 죄에 대한 저주가 내려서인지는 모르지만, 한 가정의 파멸이 이런 과정을 거쳐 막을 내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쓴 사람의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간략한 그 편지만으로써는 나는 아무 것도 추측할 수가 없었다. 누이가 어떤 남자를 사랑했는지, 실연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그 실연을 자살로까지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 괴로움의 농도라든지, 심약한 어머니가 그 충격으로 미친 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에 대하여 형은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더욱 누이가 언제 자살했는지, 어머니가 언제 미쳤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 형은 그런 구구절절한 사연을 나한테 알릴 필요가 없기도 했다, 내 생각만 해도 이빨이 갈릴 형이, 어떤 동기에서든 사건의 개요만이라도 알려 준 그 성의를 나는 우선 고맙게 생각해야 마땅할 처지다. 어쨌든, 모든 것이 추리 소설의 첫 부분처럼 결과만 제시된 내용이었으나, 오직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정신병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은 명백한 전달이었다.

처음엔 신문 삼면의 그 흔해 빠진 사건들을 읽을 때처럼 담담한 심경이었으나, 차츰 머릿속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하여 나는 잠을 이를 수가 없었다. 집안 일을 좀 잊기 위해 술을 더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뒤미처 들었다.

나는 이미 문을 닫아버린 골목 입구 구멍가게의 문을 두드려 소주 한 병과 간단한 안주를 샀다.

바깥 날씨는 추웠고, 눈가루가 섞인 비는 사선을 그으며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오한을 느껴 오들오들 떨며, 한 달쯤 전에 만난 고향 친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미친 새끼, 그 새끼가 무슨 대단한 상이라도 타겠다고 하숙집 주소를 고향에다 나발 불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러나 욕설도 소용이 없었다. 짜증이 났으나, 편지가 날아왔으니 이미 쏟은 물 담자는 격이었다.

방안으로 들어온 나는 옷도 벗지 않은 채 혼자 소주잔을 비워 냈다. 그런 나 자신이 좀 측은했지만 눈물은커녕 도무지 울고 싶은 기분이 나지 않았다. 이런 결과를 지켜보거나 예측했더라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집안이 이 꼴이 된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무엇인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도 없으면서 술만 목 안으로 넘겨댔다. 나는 멍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 상태가 왜 길게 느껴져, 편지 한 장으로 내 알몸이 네거리에 세워진 꼴이 되어 소주 한 병을 비워 냈다. 그 때가 새벽 세 시쯤은 되었을 게다.

이불을 펴는 등 마는 등 하여 자리에 쓰러질 때, 웃목에 있는 밥상에 눈이 갔으나 식욕은 전혀 얼었다. 전등을 껐다. 그때서야 나는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고향에 내려가기로 작정했다. 이 결심은 우발적이었고, 그만큼 나의 결행을 충동적으로 재촉했다.

편지 내용에 만약 이런 말이라도 있었더라면 나는 편지를 뜯어 본 즉시 귀향(歸鄕)을 포기해 버렸을는지도 몰랐다. 과수원집 딸을 꾀어 몸을 버려 놓고선, 드디어 아버지를 죽게 만들더니, 결국 집안이 패가망신하고 말았다. 그러니 네가 사람의 탈을 썼다면 이번만은 낯짝이라도 비쳐라. 그러나 형은 고런 말을 언급하기는커녕 암시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나는 다른 날보다 좀 늦은 시간인 오전 열 시경에 집을 나섰다.

비는 그쳤으나 날씨는 우중충했다. 두꺼운 구름은 서울의 하늘에 낮게 깔렸고, 그 비좁은 공간으로 살을 에는 영하의 기온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버스 속에서 승객 중의 누군가가 오늘의 기온이 영하 십 도가 넘는다고 말했다. 나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다른 날 같으면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붙여서라도 출근을 포기해 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귀향에 필요한 돈을 마련키 위해서는 회사든 어디든 밖으로 나와 쏘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 속에서도 나는 돈을 마련하기 위한 궁리를 해 보았으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최소한 칠천 원은 있어야 왕복 차비와 더불어 궁색하게나마 고향에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 부근에서 나는 버스를 내렸다. 나는 곧 퇴계로 K빌딩의 정문 수위로 있는 고향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수위라는 직업답게 점잖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밤차 편으로 고향에 내려가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네가 고향엘 내려간다니, 이건 참 토픽 감인데."

친구는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전세 낸 자가용이라도 몰고 내려갈 때까지 참으려 했지만 어차피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이상하게도 갑자기 고향이 그리워지니깐 말야."

"짜식, 내려가 봐야 점순인 시집갔어. 벌써 새끼까지 쳤다는 걸 몰라?"

친구가 과수원집 딸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나는 기분이 좀 언짢았다 그래서 흘리듯, 형의 편지 내용을 힘없이 이야기했다. 친구는 갑자기 웃음을 끊고, 문제가 심각하게 됐웠군 하고 말할 뿐 한동안 다른 말이 없었다.

"난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으니깐 말야, 내일 아침 네가 내 직장으로 전화를 좀 걸어 줘. 내 집안 사정을 말하고 아마 사흘은 결근을 해야 될 것 같더라고 전해 줘."

친구는 내 말에 풀죽은 목소리로, 그래 그쯤도 못해 주겠냐고 승낙하면서,

"동네가 발칵 뒤집혔겠군."

하고 덧붙였다.

나는 친구에게, 칠천 원 정도 돈을 좀 빌려 줄 수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친구는 한 마디로 딱 잘라 거절하지는 않았으나, 자기 생활의 여러 가지 우울한 면을 열거하면서, 곤란하다고 말했다.

"네가 고향에다 내 주소를 알리지 않았더라면 이런 꼴을 모르고 넘겼을 것 아냐. 허긴 뭐 다 운으로 돌려야지 별수 있겠나만."

나의 투정 섞인 말에 친구는,

"정말이야, 산다는 게 다 운명이지 뭐. 그래도 너의 집은 유독 망하라, 망하라 하는구나," 하곤, 네 누이는 참 착한 애였다고 말했다, 그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은 고작 그 정도였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보름쯤 전, 나는 전기 스토우브나 한 대 팔아 볼까 하고 퇴계로 K빌딩에 들어가려다 그 고향 친구를 만난 것이다. 마침 그날 밤, 친구는 근무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향 이야기를 나누며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술김에 나는 코를 끌고 내 하숙방까지 오고 말았었다. 그 실책 때문에 나의 하숙집 주소가 그에게 알려졌고, 그는 내 근황을 고향에다 전했던 것이다. 삼 년 전에 잠적한 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내 소식이 고향으로 전해지자마자 날아들어 온 첫 기별이 어젯밤의 편지였던 셈이었다.

아무튼 회사로 발길을 옳기며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도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는데, 문득 한 가지 계획이 떠올라 나는 걸음을 재촉하여 출근을 했다.

판매 실적에 따른 수당이나 받아먹는 외판사원인 나에게 회사에서 쉽사리 가불을 해주지도 않겠지만, 그러나 그 이유 때문에 형의 편지 내용을 회사측에 감추고 있은 것은 아니다. 나는 아주 말이 귀찮아진 상태였다. 멘스 때 쥐를 밟은 처녀처럼, 전신에 소름이 돋는 오한과 함께 초조하고 불쾌한 기분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마 몸살깨나 앓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따라 나는 내 직업에 아주 염증을 느끼고 말았다.

세일즈란 직업은 아침 기분 여하에 따라 그 날의 소득이 좌우되는 법이었다. 기본 봉급이라곤 하루 일백 원의 교통비가 고작이고, 판매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 외판사원이 아침 기분을 잡치면 그 날은 허탕이 상례인 것이다. 모든 세일즈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아무리 저항력이 센 고객이라도 지금의 내 기분으로서는 이십 분 이내에 함락시킬 수 있고, 또 그런 만한 용기와 견인력도 준비되어 있다. '라는 마음으로 직장 방문을 시작하는 경우에 비해, 그 날 아침의 내 기분은 정반대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전기 스토우브의 월부 판매에 나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약 고향 갈 여비와 교환 조건으로 회사측이 판매를 강요했더라도 거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출근은 늦었으나, 다른 날처럼 직장 방문을 위해 거리로 나오자마자 나는 곧 돈을 손에 쥘 계획에 착수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금년에 내로 개발된 두 평용 전기 스토우브를 육 개월 월부로 판매하고 있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메이커의 이 제품 성능이 얼마나 우수하고 또 수명이 긴지는 자세히 몰랐다. 내가 나가는 회사도 이 전기 스토우브의 판매를 위탁받음과 동시에 문을 열었으니, 얼마나 버티어 나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봄이 와서 전기 스토우브를 팔 수 없게 되면 전기 솥을, 여름이면 호움 쿨러를 팔음으로써 사철 계속 유지가 보장된다지만, 그 말을 믿고 있는 세일즈맨은 한 명도 없었다. 우선 나부터 그 말을 믿고 있지 않는 것이다.

우리 회사의 세일즈맨은 대부분 상품 광고지와 구입 카아드만을 들고 직장이나 가정을 방문했다. 세일즈맨들은 입사할 때 회사에 보증금을 내지도 않았고, 신원 보증인의 인감증명서도 제출하지 않았으므로, 회사측에서는 우리들에게 현품을 직접 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간한 설득력이 없으면 계약 성립이 어려웠다. 그러나 각종 보험의 권유가 통장 하나만 들고 다니면서 계약금을 받아 내야 하는 데 비하면, 물건을 인계하고 계약금을 받은 후, 한 달 동안 사용해 본 결과 성능이 좋지 않으면 반품하여도 좋다는 언약을 줌으로써 그런 대로 해볼 만한 세일즈이기도 했다.

나는 고향 친구한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수위란 직업이 그래야 되겠지만, 그는 열심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오후 두 시쯤 우리 회사의 배달원이 전기 스토우브 두 대를 가지고 가면 좀 맡아 둬 달라고 부탁했다.

"맡아 두다니? 그럼 네가 와서 가져간단 말이지?"

친구는 의아해 하며 물었다.

"그게 아니구. 너희 회사에서 전기 스토우브 두 대를 샀으니 두고 가라고만 말해 줘. 계약금은 내 편에 주어 보냈다 하고."

친구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납득이 잘 가질 않는 모양이었다. 너한테 일원 한 장의 피해도 입히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른 뒤 나는, 다섯 시 경제 K빌딩으로 갈 테니 그때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고 말했다.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만 하여간 그렇게 해주마,"

친구의 목소리는 시무룩했다.

"그럼 됐어. 임마, 객지에선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지, 그렇잖아."

나는 우격다짐으로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지각한 녀석이 가동을 시작하자마자 신바람 나게 판매 실적을 올린다는 것이 회사측으로부터 의심을 살까봐, 나는 삼류 극장으로 직행했다.

극장 안에서 좀 우둔해 보이나 몸매가 싱싱한 젊은 여자와 자리를 나란히 하고 앉았지만, 한 마디 말도 걸지 않았다. 그런 경우가 종전의 예로는 거의 없던 일이다. 다른 사람은 열심히 일할 한낮에 극장 안에서나 빈둥거리는 여자 따위를 손에 넣기란, 전기 스토우브 한 대를 팔피 위해 지껄여야 하는 말을 반쯤 절약하고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 나의 민감한 욕구가 그때만은 감각을 잃고 있었다.

그 여자는 열심허 껌을 씹어댔다. 입 속에서의 그 찐득한 마찰 소리가 무척 귀에 거슬렸으나, 나는 말을 하기가 귀찮아 그냥 참아냈다. 화면에서 남녀가 열렬히 애무하는 장면이 나오자 그녀는 가느다란 한숨을 쉬었는데 그 한숨은 마치 자기의 갈증나는 정욕에 불을 질러 달라는 듯 느껴졌다. 그때, 나는 순간적이나마 그 한숨을 짓이기고, 그녀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높은 빌딩의 옥상에 오르거나 육교를 지날 때면 뛰어내리고 싶어지는 충동처럼, 그 살인 심리는 이미 체질화되어, 나는 종종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끼곤 했었다. 그래서 그 여자의 한숨 때문에 결국 자리를 옮겨 앉고 말았다. 스티임이 들어오지 않는 삼류 극장, 체온으로 데워 놓은 자리를 떠나 썰렁한 다른 의자에 앉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홧김에 담배를 붙여 물었다.

"나가서 피워 주세요."

하는 안내원의 말에 나는 담뱃불을 껐는데, 꽁초가 너무 길어 잠바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다. 저 놈의 국산 영화도 그렇지만, 하여간 김이 쑥 빠지는구나 하고 나는 투덜거리며 의자에 깊이 몸을 묻었다. 어젯밤 수면 부족이었던 탓인지 추위 속에서도 나는 잠이 들고 말았다.

극장에서 나오자, 시간은 오후 한 시였다. 나는 K빌딩 이 가까운 국수집에서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업무부장이 받았다. 오늘 운이 좋은 탓인지 전기 스토우브 두 대의 계약이 끝났으니 K빌딩으로 곧 제품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업무부장은 기분 좋은 너털웃음을 수화기에 쏟아 넣으며,

"그게 바로 기후 탓이라는 거야. 소낙비 오는 날 비닐 우산이 동이 난다구. 이렇게 추운 날 전기 스토우브가 그립잖은 놈 어딨겠니."

하고 말했다.

오후 세 시 반경, 고향 친구로부터 다시 받아낸 전기 스토우브 두 대는 그로부터 한 시간 후 동대문 시장에서 현금 일만 천 원과 바뀌어졌다. 돈을 쥐자 나는 곧장 역으로 뺑소니치고 싶었으나, 인내력의 한계점까지 참아 정확한 결말을 보자는 의도 아래 다시 회사로 들어갔다. 나는 구입 카아드와 함께 계약금 이천 오백 원을 관리부에다 넘겼다. 구입 카아드의 구입자는 물론 친구 이름이었고, 그의 직장과 근무처 역시 K빌딩으로 적혀진 것이다

수금 계장은 계약금을 너무 적게 받아 내어 한 달 안에 반품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대신, 나의 의도에 비해 그의 말이 오히려 순진하여 쿡쿡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착착 수입을 올리니깐 기분이 좋은 모양인데?"

하며 수금계장이 웃었다.

나는 그의 미소에 대한 답례로 머리를 끄덕거려 주었다. 수금원이 첫 달 수금을 위해 K빌딩을 방문하기까지의 한 달 동안, 친구와 나와의 은밀한 비밀은 유지되는 셈이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친구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그 불실 카아드 두 건은 수습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을 지금부터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일 개월이란 시간이 내 손아귀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호주머니에는 팔천오백 원이라는 돈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오후부터 날씨가 좀 풀리긴 했으나 동료들은 퇴근도 않고 난로 주위에 모여 서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날씨가 시시껄렁하니 당구나 한 게임 치자고 말했다. 나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회사에서 나왔다.

들고 갈 손가방 하나도 없이 나는 곧장 서울역으로 갔다. 고향을 도망쳐 나온 지 삼 년, 형과 친척을 비롯하여 동네 사람들의 증오를 각오하고 이제 나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평생 고향을 등지지 않을 바에야 언젠가 한번쯤은 가야 하는 곳. 귀향의 타이밍이 잘 맞진 않으나 내 처지로선 그것까지 바랄 주는 없었다. 좋든 나쁘든 귀향의 동기가 될 만한 사건만 있다면 처음 한번쯤은 얼굴에 철판을 깐 셈치고 후딱 다녀오면 길을 트는 셈도 되기 때문이다.

나의 고향은 기차가 추풍령 고개를 넘으면 곧 들어서게 되는 경상 북도 금릉군. 경부선 완행 열차가 삼십 초 정도 정거하는 T읍에서 다시 육 킬로미터를 걸어 들어가야 하는 벽촌이다. 그 육 킬로미터의, 달구지가 다닐 수 있는 길은 삼 년 전 어느 겨울 이른 새벽, 온몸이 땀 투성이가 된 채 내가 탈출한 유서 깊은 길이기도 했다.

삼 년 전,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수술을 하지 않으면 가망이 없게 되자, 형은 우리 집 생활비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논 열 마지기를 팔고 말았다. 그 때, 나는 군에서 제대한 후 투전판 뒷전이나 기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한편으로는 과수원집 딸이 내 아이를 배고 있을 때여서 그 소문이 두려웠던 나머지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그래서 장롱 속에 넣어 둔 논판 돈을 훔쳐 서울로 뺑소니 쳤던 것이다. 고향친구의 이야기로는 내가 고향에서 잠적해 버린 그 날 아침, 형은 구장네 사냥총을 빌어 나를 쏘아 죽인다고 동네를 뒤졌고 T읍까지 쫓아온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닷새 후, 아버지는 끝내 입원을 못 한 채 내 이름을 부르다가 죽고 말았다고 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 이미 어둠은 역 광장 위를 눌러 덮어 오고 있었다. 눈가루가 흩날렸다. 눈가루는 방금 켜진 역 광장의 수은등 주위로 하루살이처럼 엉켜들고 있었다. 나는 잠바 깃을 세우고 대합실 안으로 들어갔다.

T읍에 정거하는 완행 열차는 오후 다섯 시 삼십오분 차가 막차였다. 그 차는 이미 출발한 지 이십 오 분 뒤였다. 막차가 떠나 버리고 없자, 나는 암담한 기분에 싸였다. 갑자기, 귀향을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어차피 벌여 놓은 일이라 차는 타고 봐야 할 것 같았다. 하룻밤을 서울서 보낸 후 새벽 여섯 시 십 분발 완행 열차를 이용할까, 아니면 준급행 야간 열차라도 이용하여 김천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T읍으로 들어갈까, 이 두 가지 선택을 두고 나는 심각해진 채 대합실 안을 오락가락했다. 밤 준급행 열차를 타려면 아직도 시간이 충분했으므로 우선 저녁밥이라도 먹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눈을 맞으며 역 광장을 빠져 나와 식당으로 들어가려 하자, 식사보다는 오히려 술이나 한 잔 마시는 것이 위장의 부담이 가벼울 것 같아 걸음을 대폿집으로 돌렸다.

나는 소주 한 병과 낙지 볶음 안주를 주문했다. 한 잔의 술이 위장 벽을 녹이며 스며들자, 술꾼의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나는 곧 술집 분위기에 익숙해져 좀 몽롱한 상태에 빠져들었고, 안정을 되찾아 갔다. 두 번째 잔을 비워 냈을 때, 나는 새벽 완행 열차를 타고 귀향하기로 서둘러 단안을 내려 버렸다. 그 단안은 쉽게 내려졌으나 매우 타당성이 있었으므로 다시 되풀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준급행은 T읍에 정거하지 않는다. 고러므로 밤 열차 준급행을 탄다면 이른 새벽에 김천엘 도착할 것이고, 새벽부터 T읍으로 가는 버스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 주변의 그 더러운 여인숙이나 문을 일찍 여는 해장국집에라도 들어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T읍에는 정오도 되기 전에 도착할 것이다. 그로부터 두어 시간 이내에 고향으로 들어간다면 한낮

쯤 되었을 때이다. 그 한낮, 마을 어귀로 들어선다면 내가 왔다는 소문은 전염병처럼 번져 곧 동네에 알려지게 된다. 이어 집으로 들어설 때쯤이면 호기심 많은 동네 사람들의 일부가 우리 집으로 몰려들 것이다. 삼 년 전 과수원집 딸을 무책임하게 버려 놓고, 아버지의 입원비마저 훔쳐내어 서울로 도망간 불효자식의 꼬락서니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온다면 몰매야 맞지 않겠지만 참으로 난처한 일이었다. 삼 년 전 사건을 되씹으며 나를 질시할 그 만은 눈총을 이겨낸다는 것은 나 자신도 견디기 어려운 곤욕이며, 상대편 역시 유쾌한 구경거리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누이의 시체나 무덤을 찾아서, 아니면 미친 어머니를 붙잡고 거짓이라도 눈물을 보여 준다는 것은 너무나 치사하고 괴로운 연극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골역마다 정거하는 완행 열차가 지루하긴 하지만 새벽 차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새벽 차를 탄다면 바로 T읍에 도착할 수 있을뿐더러 어정어정하다 보면 고향에는 어둠살이 깔릴 때 몰래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다시 반 병을 청했을 때, 나는 취해 있는 듯싶었다. 왜냐하면 그 술집의 작부를 곁에 앉혀 두고 횡설수설 지껄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싸구려 대폿집에는, 손님들의 시중을 들다가 간혹 도마의자에 엉덩이를 비비고 앉아 손님이 권하는 잔이나 짤금짤금 얻어 마시는 작부를 두 명 두고 있었다. 그중 한 여자를 내가 전세내다시피 하여, 막혀 있던 봇물을 터뜨리듯 나의 하향 이야기를 지껄였던 것이다.

그 여자는 내 나이 또래의 스물 여덟쯤 되어 보였다. 나는 형의 편지를 받은 후. 그런 이유가 전혀 없으면서 그 내용을 두 번째로 그녀에게 털어 놓았다. 그 여자는 내 말을 전혀 믿어 주지 않았다.

"손님도 참 웃기셔. 어떻게 그토록 끔찍한 일을 천연덕스럽게 지껄이는 지 몰라. 꼭 남의 이야기하듯 하시네."

그 여자는 이렇게 말하며,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그래서 나는 형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감동을 받은 듯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고, 그 관심은 곧 동정

심으로 바뀌어 나를 위로하기에 급급했다.

"정말 참 안됐구료. 그러나 누이도 너무하지. 그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실연했다고 자살까지 해. 처녀 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보다 험한 세상에, 눈 딱 감고 다른 곳에 슬쩍 시집가면 될걸, 왜 제 목숨 제가 끊어."

"글쎄 말이야, 교통 사고로 죽었다면 위자료나 울겨 받지."

"이제 농담 좀 고만해요. 모질게도 질긴 게 생명인데, 죽는 것도 공짜가 어딨수. 황천 가는 것까지 빽을 써야 되는 세상인 줄 모르시나봐."

하며 그 여자는 추파를 던졌다. 그리곤 어깨를 내 가슴 쪽으로 바싹 밀착시키더니 자기의 불행했던 과거를 넋두리처럼 늘어놓기 시작했다. 소설로 치면 몇 권 될 만한 분량이고 유행가로 치면 일 절로 끝날 그녀의 추억담을 듣기란 짜증이 났으나, 취기가 그런 대로 그녀의 이야기를 잘 소화해 냈다.

기억이 선명치는 못하지만 아마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 손을 잡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 구질구질한 창녀촌의 무허가 하숙방까지 같이 가게 되었던 모양이다.

이튿날 새벽. 여자가 내 어깨를 흔들어 시간을 일러주었을 때는 여섯 시 오 분 전이었다. 전날 밤, 나는 술에 잔뜩 취해 있었지만, 새벽 여섯 시 십분 발 부산행 완행을 타야 한다고 그 여자에게 일러두기를 잊지 않았었다.

그래서 다섯 시 삼십 분까지는 나를 꼭 깨워 주겠다는 다짐까지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 역시 전날 밤에 술을 너무 마신 탓인지 그 날 새벽, 너무 급박한 시간에야 나를 깨우고 말았다.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차 타기가 글렀겠다고, 여자는 자기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눕더니 금세 다시 잠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졸리는 눈을 비비며 나는 겨우 일어났다. 전등을 켜자 팡 안은 눈부시게 밝아졌다. 아무리 발버둥쳐야 빠져 나올 수 없는 생활의 굴레가 그녀의 얼굴에서 콜드크리임처럼 번들거렸다. 저런 여자와 동침을 하다니.

젯밤에 마신 소주 탓으로 안정을 얻지 못한 위장 단의 내용물이 그 여자의 얼굴을 보자 구토가 되어 치받쳐 올랐다. 헛구역질을 몇 번 한 후, 나는 머리맡의 냉수로 목을 축였다. 마시고 나서 보니 물 속에 머리카락이 빠져 있었다. 제기랄, 또 이 꼴이 되고 말았군. 바쁘게 옷을 주워 입으며 잠시 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그 여자에게 번갈아 가며 욕설을 뱉았다. 그러나 그녀는 잠꼬대만 중얼거릴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여자는 밤 사이, 세 차례에 걸쳐 나와 살을 섞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 노동 후의 노곤한 포만감과, 뒤따라 새삼스레 취해 오는 술 멀미 탓으로 여자는 아무래도 낮쯤 되어야 몸을 일으킬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의 욕설은 필요가 없었다. 또한 욕설을 한다고 해서 그녀의 굵은 손목에 채인 싸구려 시계가 갑자기 게으름을 피워 천천히 돌릴 리도 없었다. 내가 플랫포옴에 도착되기 전에 기차는 떠나 버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차를 놓치지 않고 타려면, 욕설보다는 이 소굴에서 재빨리 탈출하는 길만이 현명한 처사였다.

여섯시 십 분 기차를 놓친다 해도 뒤를 이어 출발하는 경부선 열차는 얼마든지 있었다. 또한 고속버스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 차를 놓친다면, 내 변덕스런 심경이 또 어떤 이유를 끌어다 붙여 귀향을 포기해 버릴는지도 알 수 없든 일이었다.

나는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하여 여인숙에서 뛰어나왔다. 밤 사이 제법 많은 눈이 내려 있었다. 날씨는 어젯밤보다 훨씬 추웠고, 짙은 암청색 하늘에는 아직도 새벽 별이 스러지지 않고 있었다. 찬바람을 맞자 정신이 맑아졌다. 그 썩어 가는 살덩어리로부터 도피하여 미명 속으로 탈출한다는 것이 무척 기분이 좋았다.

넓은 포도로 나오자, 빈 택시들이 이따금 지나칠 뿐 통행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갑작스런 냉기 탓으로 귀가 알알하게 얼어 왔다. 나는 서을역 지하도로 빨려들듯 뛰어들었다. 잠은 휘달아났으나, 너무 서두른 탓인지 그만 계단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신창 밑에 붙은 눈을 털기 위해 발바닥으로 시멘트 바닥을 팍팍 구르며 나는, 미친년 하필이면 그때 잠을 깨울 게 뭐람 하고. 그 여자에게 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쩔룩쩔룩 절며 통행인이 한 명도 없는 휑뎅그렁한 지하도를 빠져 나갔다. 그때에서야, 잠바 안주머니를 만져 보았다. 돈은 그대로 있었다. 사전에 계약은 없었지만, 그녀가 통례상 나의 지참금에서 몸값을 떼어 내어 능청스럽게 이미 착복하지 않았나 싶어, 손에 만져지는 돈마저도 세어 보고 싶었으나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 일은 차를 탄 뒤로 미를 수밖에 없었다. 지하도를 빠져 나오자 쏜살같이 역 광장을 가로질러 대합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폐쇄되었거나 아니면 서울 시민을 전부 실어다 나른 후의 역처럼 대합실 안은 조용했다, 여관비조차 없는 승객이나 지게꾼, 잡상인, 껌팔이들이 이미 온기가 사라진 난로 주위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나는 상경 초기의 내 행각이 떠올랐다, 장롱 속에서 훔친 아버지 입원비를 가지고 상경한 이후, 두 달이 못 되어 그 돈을 날려 버리자 나 역시 올 데 갈 데 없는 몸을 며칠간 서울역 대합실에다 맡긴 적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행히도 표를 살 수 있었다. 개찰원은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나는 잠에서 깬 후부터 줄곧 서둘러 온 참이어서, 만약 기차가 떠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차를 못 탄 책임은, 서두르지 않은 내 탓보다도 나를 깨워 주지 않은 그 여자에게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기차의 승강구에 매달리자,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 출발 벨이 울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의 술 탓인지 구역질이 치받쳤다. 너무나 마셔 온 술 때문에 이제 간장이 썩고 있는 모양이라고 신문 광고 지식으로 자탄을 하며, 나는 승강구에다 가래침을 뱉았다.

기차는 서서히 출발했다.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미련을 남기는 한편, 어떤 속박으로부터 벗어난다는 홀가분함도 느끼기 마련키다. 그러나 나는 계속 비위가 뒤집히고 속이 메스꺼워 서울을 떠나 귀향한다는 데 대한 그 어떤 의미도 음미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과 위장은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고, 지독히도 불쾌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차를 허겁지겁 타야 할 정도로 귀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고속버스가 생긴 이후, 경부, 호남선의 기차 시세가 형편없이 되고 말았지만, 이 추운 겨울 새벽에 출발하는 부산행 완행은 간마다 동태가 되어 가는 몇몇 승객을 실었을 뿐 거의 비어 있었다. 그래서 실로 꿰맨 콩깍지가 굴러가는 느낌이었다.

스티임이 들어오지 않아 잘 냉동된 객차 안의 빈 의자들을 보자, 나는 차마 그 위에 엉덩이를 붙이기 싫었다. 그래서 내가 뛰어오른 칠 호 객차에서부터 앞쪽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어차피 앉을 것, 그래도 좀 포근해 보이는 자리가 없을까 하고 이쪽저쪽을 살폈다.

네 간을 지나 삼 호 객차까지 왔을 때, 나는 소리를 죽여 울고 있는 젊은 여자를 보았다. 거의 빈 차와 마찬가지인 새벽 객차 안에서 젊은 여자가 홀로 어깨를 움츠리고 우는 모습은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우선 기이하게 보여졌다. 나는 그 여자 앞에서 멈추어 섰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고 등줄기를 떨며 흐느끼고 있는 여자를 나는 한동안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로운 호기심 앞에 나의 불쾌감도 차츰 가라앉아 갔다.

여자가 고급 빠이로 오우버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울음의 내용이 생활고에서 빚어진 것은 아닐 듯했다. 여자는 키가 크고 몸이 가늘어 보였다.

그러나 동그란 어깨의 선이 내밀(內密)한 탄력을 암시하는 듯 느껴져 나는 순간적으로 음탕한 생각에 잠겨 들었다.

"여보세요, 무엇을 잊으신 게 있나요?"

나는 열차 숭무원처럼 친절하게 질문했다.

여자는 얼굴을 들더니 나의 물음조차 귀찮다는 듯 머리를 내저었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울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거의 예뻐 보이는 법이지만, 그녀는 울고 있지 않더라도 미운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왜 그렇게 우시냐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이젠 다 울었어요. 괜찮아요."

하고 그녀는 마지못해 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불쑥 나타난 방문객에 적잖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딸꾹질을 하며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그녀가 환자가 아니면 머리가 좀 돈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스물 한두 살쯤 되어 보이는 그 여자의 깡마른 얼굴은 회다 못해 거의 푸른빛을 띄고 있었으며, 눈동자엔 환자들한테서 일반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불안이 자욱 가라앉아 있었다. 그 이미지가 묘하게 나의 가슴에 강하게 묻어 와, 나는 더 이상 서성거릴 필요가 없어 그녀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깜짝 놀란 듯 어깨를 으스스 털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 혼자 있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대인공포증 환자처럼 자기를 혼자 있게 해달라는 부탁조차 감히 할 수 업는 듯했다. 아마 대학물깨나 먹은 게 분명해, 하고 나는 생각하며, 내가 마지막 보았을 때 그녀의 나이 또래였던 누이를 생각했다.

삼 년 동안 한번도 본 적이 없어, 죽은 누이의 옴이 그 동안 더 말랐는지 제법 통통했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내가 마지막 본 그 해 겨울, 누이는 한창 피어날 나이인데도 유달리 깡마른 체구였다. 시골애들답잖게 희멀겋고 훤칠한 키에, 사내들처럼 불거진 목뼈가 가여워 보이던 누이의 모습이 나의 가슴에 시든 단풍잎처럼 떨어져 왔다. 그것은 이미 메말라 버린 나의 정서에 갈증나는 펌프질을 계속하여 나의 기분은 우울해지고 말았다.

"뭐 제가 도와드릴 일이 없을까요?"

나는 실없이 말을 걸었다.

그 여자는 그제서야 엷게 웃으며, 두 번째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곤 다시 창 밖을 멍하니 내다보았다. 한참 후 그녀는 성에가 낀 유리창에 입김을 부어 히죽히죽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손길이 많이 간 부분의 유리창이 투명해지자 그 구멍을 통하여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여자에 대한 나의 수월찮은 경험에 비추어볼 때, 그녀의 신경은 옆에 앉은 나

에게 매달려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그녀의 경계심을 허물고 싶은 충동에 몸을 떨었다. 내가 그녀 속에 깊이 숨어 들어가 고단한 육체를 잠재우고 싶은 그런 달콤한 휴식이, 그녀의 곁에 앉음으로써 느껴졌다는 것은 거의 병적이다시피한 여자에의 탐닉이 다시 머리를 치켜든 탓이리라.

"이 시간에 이런 차를 운행한다는 것은 철도청에서도 피해가 막심하겠습니다. 도대체 승객이 이렇게나 없을 수가 있습니까. 그건 그렇고, 아가씨께선 용케 앉을 마음이 생긴 모양입니다만, 어디 이렇게 빈 차에 홀로 앉아 있다간 그대로 동태가 될 것 같아서,,,..."

나의 말이 그녀에게는 전혀 관심 밖인 모양이었다. 나는 말을 끊었다. 내 말은 오히려 그녀의 경계심을 더 견고히 해주는 결과밖에 되지 못한 듯했다. 그녀의 옆모습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나는 맥이 풀렸다. 그렇다, 이 여자는 무언가 이 완행 열차를 타지 않으면 안될 아주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하자, 나의 대화가 얼마나 싱거웠나를 깨닫고 웃고 말았다. 나는 담배를 꺼내어 한 가치를 입에 물었다.

기차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서울을 빠져나가자, 눈에 묻힌 들판으로 들어섰다, 이제 날은 완전히 밝아 창 밖의 시야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밤 사이 내린 눈으로 들판과 먼 산들은 흰색으로 깨끗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노쇠한 검은 기차가 헉헉거리며 횐 눈을 가르고 질주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처녀를 범하는 늙은 사내로 생각되어 하복부가 근질근질해 왔다, 그러자 자살한 누이가 떠올랐다. 누이는 어떤 남자를 사랑했을까. 죽을 때 혹시 임신 중이었는지도 몰라. 자살은 어떤 방법을 택했을까. 극약 아니면 갈매못에 투신, 그것도 아니면 동구 앞 정자나무에 목매어 죽었을까.

창 밖의 눈에 덮인 들을 바라보며 나의 생각은 어머니 쪽으로 옮아갔다. 저눈 속에서 어머니는 쉰 목소리로 누이를 부르며 맨발로 헤매고 있을는지 모른다. 반백의 머리칼을 풀어 헤뜨리고, 누이를 부르며, 도망친 나를 찾으며, 울다가, 웃다가, 때때로 옷을 훌훌 벗으며 방황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그런 어머니에게 나의 귀향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뻑뻑 담배만 빨았다. 위장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목 안이 칼칼하여 담배맛이 나질 않았다.

나의 귀향은 나 자신에게나 집안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헛걸음이다,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한편, 나의 귀향이 별다른 의미를 남겨 주지 말기를 바랐다. 덤덤한 마음으로 내려갔다가 덤덤한 마음으로 상경한다는 것, 나의 마음은 물론 어느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는다는 것, 나는 그것을 바랐다. 그것은 나 자신의 탓이 아니다. 소극적인 안정과 평온을 삶의 뿌리로 삼는 오늘날 모든 소시민의 보편적인 생활관에 나 역시 감염 당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할 동안에 나는 우습게도 몇 번이나 곁에 앉은 여자를 곁눈질했다. 사고와 행동의 그런 불일치는 확실히 이율배반적이었다. 덤덤히 내려갔다가 덤덤히 상경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과 반비례로, 무슨 사건인가 저지르고 싶은 또 다른 조바심 때문에 안달을 하고 있는 나 자 신을 발견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실례가 되겠습니다만, 흑시 계 누이를 아십니까?"

나의 이 당돌한 질문은 미처 나 자신도 예기치 못한 말이었다. 그러나 말을 던져 놓고 생각하니 그런 종류의 질문을 미리 준비해 놓고 있는 듯포 여겨쪘다.

그 여자는 머리를 돌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떤 분이신데요?"

그녀의 이 진지한 질문을 받자 나 자신도 숙연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자신의 이론을 급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제부터는 세일즈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라는 인간을 고급 상품화시켜 그녀로 하여금 매입 욕구를 가지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누이란 가공 인물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세일즈의 기본인 (3 S전법),즉 스마일(Smile) ,소프트 터치(Soft touch), 스무우드 무우드(Smooth mood)의 대인 접촉법에 입각하여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다,

나의 여동생은 이화여대 국문학과 삼 학년인데 폐가 나빠 고향에서 정양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 누이를 만나러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지난 번 편지로 보아 어쩌면 죽었을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국문과에 다니는 친군 없는데요."

하는 그녀의 말을 자르며, 올봄 이화여대 국문학과의 미이팅 때 애인이 없는 누이의 파아트너가 되어 교외로 나갔었는데, 그때 본 누이의 한 반 친구가 아니냐고, 나는 다잡아 물었다. 그녀는 실소를 깨물며, 사람을 잘못 보셨다고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바쁜 도회 생활이란 게 더러 이런 착각을 꼭 무슨 소설처럼 만들어 내는 모양입니다."

나는 우선 이 정도로 말을 마친 뒤 의자에서 일어나 변소로 갔다. 밤새 참았던 소변을 줄기차게 배설하니 몸이 가뿐했다. 나의 섹스는 밤 동안의 시달림으로 곯아 버린 풋고추처럼 위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소변을 보고 문득 생각켜서 잠파 안주머니의 돈을 꺼내어 확인해 보았다. 육천 칠백 원, 쓴 돈과 차비 등을 따져보니, 어젯밤 여자가 동전 한 푼 손을 대지 않은 게 분명했다, 어젯밤 여자의 몸값을 일천 원쯤 계산한다면, 그 돈은 버린 셈 치고 이제 새로이 건드리기 시작하는 여자를 위하여 사용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소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오니, 그 여자는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린 채 이마에는 땀까지 맺혀 있었다. 못 견디게 괴로운 표정이었다.

"아니, 왜 이러십니까? 어디가 편찮으신 모양이군요?"

그녀의 귀에는 내 말조차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엉겁결에 그녀의 한 팔을 잡고 부축하려 했으나, 그녀는 내 팔을 뿌리치고 변소 쪽을 향했다. 나는 몇 발 그녀의 뒤를 따라 가다가 다시 내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환자인 것만은 틀림없어. 그런데 혼자 어디로 여행하고 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으나 쉽게 잡히는 게 없었다. 직접 물어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여자의 구토 탓인지 나의 속도 메스꺼웠다. 그때 마침 갱생회 판매원이 지나가므로 피로 회복제 한 병을 사서 마셨다. 그녀는 한동안 변소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기차가 수원역에 가까워지자 승객이 제법 늘어 차 안이 붐볐으나, 그래도 빈 자리는 많았다. 그 빈 자리로 변소에서 나온 그녀가 옮겨 앉을까봐 염려되었으나, 나는 곧 안심했다. 그녀의 핸드백이 창 곁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휘청휘청 우리 자리로 돌아왔다. 머리칼이 헝클어진 것으로 보아 승강구에서 바람을 쇤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 자기 자리에 앉혀 주었다. 손에 잠깐 느껴진 그녀의 양감이 나의 관능에 잔잔한 물결을 일구었다.

"병중이신 듯한데 이런 추운 차를 타셔서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오들오들 떨며, 겨우 미안하다고만 속삭였다. 그녀의 하얀 얼굴과 가느다란 목소리가 나의 애틋한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나는 추우신 모양인데 내 잠바라도 두르라고 말하며 잠바를 벗었다. 그러나 그녀는 머리를 흔들며 사양했다.

",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넓게 말하면 이게 다 동포애고, 좁게 말하면 우린 이웃사촌이 아닙니까."

나는 능청을 떨며, 그녀의 어깨에다 거의 떠맡기다시피 하여 잠바를 걸쳐 주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나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녀가 호의를 받아들였다기보다도 이를테면, 여자를 밤새 쉬지 않고 애무만 하여 결국 여자가 시달리다 못해 지쳐 늘어졌을 때, 별 저항을 받지 않고 정복하는 경우와 흡사했다.

나는 나의 접근이 너무 서두르는 듯한 인상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상품 판매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고비는, 상대방이 상품의 매입 욕구를 보일 때이다. '상품의 가치는 인정하나 오직 돈이 없다, 라는 이유 때문에 손님이 상품을 사시지 않으시겠다면 저 역시 무리하게 강요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이런 식의 침착과 냉정을 갖추지 않는다면, 그 상품은 덤핑과 같은 가격으로 급경사의 폭락을 보게 마련인 것이다.

나는 시이트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웃도리까지 빌려주니 오히려 내가 추운걸, 하며 속으로 투덜거렸으나, 밑천 없는 장사가 어딨겠냐고 자위했다. 그 여자는 여전히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입김으로 어룽진 창을 통해 눈 덮인 쓸쓸한 겨울 풍경을 내다보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침묵이 오래 계속되자, 나는 다시 고향 생각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술 탓으로 폐인이 되고 말았다는 형은, 삼 년만에 대하는 아우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만약 멱살을 쥐고 면상을 후려친다면 코피가 터지더라도 몇 차례쯤은 태연히 맞아 주어야 한다. 그것은 형이 나한테 보일 수 있는 당연한 인사로 치부해 버리고, 나는 순교자적 자세로 묵비권을 지켜야 한다. 어느 누구가 나의 삼 년 동안 생활을 물어봐도 나는 아무 말도 말아야 한다. 그 동안의 내 생활이 비밀 속에 보장됨으로써 나의 추함도 함께 어둠 속에서 은폐를 보장받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어느 누구도 그 동안의 내 생활을 알 권리는 없었다.

나를 이해하는 자는 오직 나뿐인 것이다. 삼 년 동안 서울서 배운 것은 악덕과 배신과 자기 방어밖에 없었으나, 나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금가고 상한 잔뼈를 이를 갈아 가면서 치료해 왔었다. 그 고통과 굴욕과 고독에는 한 명의 동반자도 없었던 것이다.

기차가 평택을 지날 때, 그 여자는 다시 구토의 증세를 보였으나, 이번에는 용케 가라앉히는 모양이었다.

부질없는 상념에 지쳐 버리자, 나는 금세 심심해졌다. 그래서 그녀를 다시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아무런 짐도 없는 듯했다. 오직 핸드백 하나만 댕그라니 들고 차에 오른 게 분명했다. 군청색 빠이로 오바의 깃을 세운 채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는 저 여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 여자는 지금 어디로, 무슨 목적으로 이 차를 탔을까란 궁금증이 나를 더 이상 침묵 속에 버려 두지 않았다.

", 실례지만 목적지가 어디십니까?"

그녀는 나의 물음에 깜짝 놀라며, 부산까지 간다고 대답을 마치자마자 손수건으로 다시 입을 가렸는데, 취조관 앞에 선 죄인처럼 눈동자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 늦게 깨달아 미안하다는 투로, 어깨에 걸쳤던 잠바를 내게 돌려주며 울듯한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더 이상의 호의는 오히려 경계를 부채질할는지 모른다는 계산 아래 나는 잠바를 받아 입으며,

"부산요? 저도 서너 번 가 보았지요."

하고 서두를 꺼내었다. 그리곤 입심 좋게 지껄이기 시작했다. 영도다리, 자갈치시장, 해운대, 바다, 파도 등을 부지런히 열거하며,

"부산은 정말 항구 같은 항구지요. 대형 선박이 고동을 울리고, 선창의 바닷물이 기름으로 뒤덮인 부산엘 가면 저는 무슨 병처럼 밀항선을 타고 싶단 말입니다. 억세고 강인한 생명력이 아주 저를 미치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아프리카, 거 있잖습니까, 비아프라라도 좋으니 떠나고 싶어진단 딸입니다. "

하고 말했다. 그녀는 구역질을 하면서도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때, 갱생회 판매원이 지나갔으므로 나는 삶은 달걀 네 알을 샀다. 두 알을 권했으나 그녀는 구역질이 심해 먹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내가 혼자 서 달걀을 먹고 있을 동안 우유 장수가 지나가므로 또 우유 두 병을 샀다. 나는 우유 한 병을 다시 권했다.

"아닙니다. 성의는 고맙지만, 전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어요. 오늘 아침까지 이틀 동안 물 이외는 먹은 게 없어요."

그 여자의 말에 나는, 정말 그건 보통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이을 말이 없어, 그저 먹는 데만 열중했다. 잠깐 사이에 달걀 네 알과 우유 두 병을 먹어치웠다. 사실 나는 어제 저녁밥을 먹지 않았으므로 배가 고파 있었던 것이다.

"식욕이 참 좋으시네요."

하며 그녀는 실눈으로 웃어 보였다.

나의 입에서는, 물론 성욕도 좋으시죠 하는 말이 맴돌았으나 목 안으로 삼키고, 따라 웃어 주었다. 그녀가 웃을 때 뺨에 앉은 깨알 같은 기미가 눈에 지었다. 나는 후딱 그녀가 임신중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환자가 아니라 지금 입덧 중에 있는지도 몰랐다. 배반당한 남자의 씨를 가진 여자가 겨울 바다를 찾아 내려간다는 데 상상이 미치자, 그녀를 잡아먹고

싶다는 데에 나의 입덧도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시인적 모험이 강할 거라는 점에서 일말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기차가 천안을 지나자, 해는 어느덧 중천으로 솟아올라, 밝고 신선한 풍경이 창밖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객차 안도 차츰 승객들이 들어차 좌석은 다 메꾸어지고, 서 있는 승객까지 있게 되었다. 이제 나도 목적지를 거의 반쯤 내려온 셈이었다. 기차가 조치원 역에 도착할 때까지 그 여자와 나는 간혹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소재의 빈곤으로 몇 마디로써 끝나곤 했다. 그 동안 그녀는 계속 이마의 땀을 찍어 내는 것으로 보아 오한이 있는 모양이었다.

기차가 매포역에 정거했을 매, 그녀는 갑자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탄성을 질렀다.

", 저 비둘기 좀 봐."

그녀의 이 자연 발생적인 탄성은 너무나 음률적이어서 나는 단박 그녀를 껴안구 싶은 충동을 느꼈다.

"비둘기를 좋아하십니까?"

나는 물었다.

"전엔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저 빛나는 눈 속에서 푸득푸득 날고 있는 게 무척 사랑스럽군요."

그녀는 최초로 생기 있고 기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아주 친분이 두터운 사이처럼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비둘기란 사랑스럽지요. 누이가 비둘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일요일, 교회에 갈 때면 교회에서 기르는 비둘기를 위해 꼭 먹이를 가져가곤 했지요."

그 여자는 내 말을 들으며 왼쪽 장지손가락은 잘근잘근 씹었다. 무엇인 가 욕구 볼만이 있는 게로군, 하고 생각하며 나는 시선을 창밖에다 주 다. 눈에 덮인 농협 창고의 지붕이 겨을 햇살 아래 투명하게 반짝이고 있었고, 그 지붕 위로 몇 마리의 비둘기가 한가로이 날고 있었다.

"교회엘 나가세요?"

그녀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무신론잡니다."

나는 오래간만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담 때때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세요? 쉬운 예로, 홀로 산 속을 걷다 호랑이라든지 천둥과 번개라도 만난다면?"

"전 신이 있다고 생각진 않습니다만, 좀 무섭겠죠."

"그럴 땐 무언가 절대자를 찾게 되지 않을까요? "

"그렇진 않죠. 저는 자신을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진 않지만, 자신만의 힘으로 도저히 꺼쩔 수 없을 때, 신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용기 있게 체념해 버리겠습니다."

"정말 용기 있게 체념할 수 있어요? 인생 자체까지도 말입니다, 그렇잖겠죠. 어디까지나 관념이겠죠?"

"아니죠. 관념이라니요. 저는 생각이나 말보다 늘 행동이 앞서 곧 후회가 따르곤 하니깐요."

"그럼 자살을 시도해 본 경험이 있으세요?"

", 물론이지요. 그런데 왜 그걸 묻죠?"

……"

나의 말에 그녀는 갑자기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으나 입술이 떨리곤 있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말머리를 바꾸었다.

"부산까지 가시면서 어떻게 이런 완행을 타셨습니까? 저야 고향이 완행이 아니면 정거하지 않는 곳입니다만."

"제 경우는---- , 그래요, 바다가 보고 싶어서요."

나는 이따금 이렇게 사치스런 유랑의 바람기를 지닌 아가씨들을 보아 왔는데, 대체적으로 이런 여자들의 가정은 부유한 편이고 감정의 낭비가 심하다는 것쯤 잘 알고 있었다.

"바다가 보고 싶다면 가까운 인천이 있잖습니까 ? "

"서해 바단 흐리잖아요? 아니, 그것보다 좀 멀리 떠나고 싶었어요. 오늘 새벽에 무서운 꿈을 꾸었거든요. 꿈 속에서 쫓기다 못해 결국 어떤 남자에게 잡혀 죽는 꿈을 꾸었어요. 그러나 땀에 흠뻑 젖은 채 깨어 보니 새벽 네 시였어요. 잠이 오질 않아 불을 켜고 그저 멍하니 앉아 있는데 갑자기 해운대 바다가 보고 싶은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서울역 안내소에다 전화를 걸었지요. 그러자 안내원이 제일 빨리 출발하는 차라면서 이 차 시간을 알려 주더군요. 처음엔 아홉 시 특급을 타려 했는데, 그때까지 참을 수가 없었어요."

"실례지만, 해운대와 관계되는 추억이라도 있는 모양이군요?"

퀴즈의 스무 고개처럼, 나의 말이 그녀의 아픈 곳을 건드린 듯했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눈을 감더니, 윗이빨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우리의 화제는 다시 끊어졌다. 그녀는 자신을 힐책하고 있는 괴로운 추억에 잠겨 있었다. 잠시 생기를 띄었던 얼굴이 하얗게 바래지고 이마에 찐득한 땀이 배이기 시작했다. 나는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어젯밤의 수면

부족 탓인지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추억을 나 나름대로 엮어 나갔다. 지난 여름 어느 사내와 해운대에서 젊음을 불태웠다. 모래사장에 수 없는 밀어를 뿌리며 미래를 약속했다. 그러나 그 사내는 가을과 더불어 미련 없이 떠나가 버렸다. 그때 이미 그녀의 몸에는 새로운 생명이 태동하고 있었다. 신파와 같은 이 이야기 줄거리에 식상해지자 나는 곧 잠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깊이 잠든 것은 아니었다. 잠 속에서도 나의 귀에는 갱생원들의 물건 파는 소리와 승객들의 잡담이 들려왔다, 그리고 나 자신을 꾸짖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 녀석아, 이제 네 고향이 가까와 가는데 저 여자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상대방을 그로기 직전의 단계까지 무사히 끌고 가고선, 네가 T읍에 하차해 버린다면 여태까지 쌓아 온 성과가 수포가 아니냐, 부산까지 따라 내려가서 함락을 시켜 버리든지, 그렇잖음 다른 방법을 강구하든지, 그것도 안 되면 사망하는 기분으로 T읍에서 하차해 버려라.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 내 어깨를 눌러 왔다. 나는 눈을 떴다. 그녀는 나에게 몸을 기대다시피 하며 일어섰다. 손수건으로 입술을 가린 것으로 보아 다시 변소로 가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 그녀를 부축했다. 얼굴 색으로 보아 그녀는 거의 실인 직전에 있었다. 그녀의 축 늘어진 몸이 나에게 기대옴과 동시에 나의 하복부가 경직을 하듯 힘을 모았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부축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안다시피 하여 변소로 향했다. 승객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으나, 나는 우리가 당연한 관계로 결속되어 있다는 듯 의젓한 태도를 취하며 복도를 빠져나갔다. 그녀는 나의 가슴께에다 얼굴을 묻고 있었는데,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런데 변소 문 앞까지 왔을 때였다. 그녀는 그만 나의 가슴에다 구토를 하고 말았다. 누런 타액이 섞인 액체가 나의 손에도 묻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미안. 미안합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한 손으로 변소 문을 열고, 그녀를 들다시피 하여 안고 들어갔다.

그녀는 변기에다 얼굴을 숙이고 구토를 시작했다. 그러나 위장 속에 내용물이 없는 탓인지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오는 것은 소량의 위액뿐이었다.

얇은 어깨를 떨며 구토하는 그녀의 등을 쓸어 주며, 나는 잠시 죽은 누이를 생각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감촉 되는 몇 겹 아래 그녀의 브래지어 끈이 누이의 환영을 쫓아 버렸다. 내가 그녀의 겨드랑이 밑으로 깊이 손을 넣고 일으키려 했을 때,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났다.

그녀는 정신이 좀 든 모양이었다. 변소 벽에 기대어 서더니 가쁜 호흡을 뱉았다. 그녀는 나의 가슴에 묻은 자기의 구토물을 보고 거듭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는 표정으로,

"이런 것쯤은 염려 마십시오, 그러나 아가씬 아무래도 부산까지 가시기가 무리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아니어요. 전 가야 합니다. 꼭 해운대까지 가고 싶어요."

그녀가 갑자기 외쳤다.

나는 그녀의 이 말을 놓칠세라,

"이건 실례겠지만, 흑시 임신중이 아니십니까? "

하고 물었다.

나의 이 당돌한 질문에 그녀는 몸을 벽 쪽으로 돌리더니 어깨를 떨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마십시오, 이렇게 약해지시면 안 됩니다."

하고 말하며, 나는 등뒤로 그녀의 어깨를 다정하게 껴안았다, 고래서 나의 위로를 곁들인 애무가 조금 적극성을 띄려 하자, 그녀는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다면서 변소 출입문 문고리를 잡았다.

승강구에서 찬 바람을 쐬자, 그녀는 한결 생기를 되찾았다. 그녀는 닫힌 승강구의 문을 벽 삼아 기대어 서서 바깥 풍경을 멍하니 내다보았다. 눈에 덮인 낮은 구릉이 있고 그 기슭으로 초가집들이 올망졸망 엎드려 있고. 키 큰 포플라들이 줄지어 퍼 있는 정경을 보며, 그녀는 무언가 입속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고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그것은 분명 추억의 남자에 관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잘못 넣은 안약처럼 눈물이 그녀의 창백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의 젖은 눈 속에는 지을 수 없는 해운대의 추억이 잔 물결을 일으키고 있음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찬 바람을 너무 쐬면 해롭습니다."

하고 말하며 나는 다시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는 자리로 돌아와 앉자마자 의자에 깊이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나는 잠바를 벗어 그녀의 상체를 덮어 주었다.

기차가 대전역에 정거했을 때에야 그녀는 눈을 떴다.

"여기가 어느 역이지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대전역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녀는 갑갑한지 잠바를 나에게 돌려주곤 자기 오우버의 단추까지 두 개를 풀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기차는 대전을 지나고부터 계곡을 타고 산악 지대로 오르기 시작했다.

차창으로 보이는 산은 온통 눈에 덮여 있었다. 잎잎마다 눈을 많고 늘어선 소나무와, 겉 몸을 드러낸 더욱 튼튼해 보이는 바위가, 눈의 세계 속에서 균형 잡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 폭의 담백한 동양화 같은 겨울 설경을 보며, 나는 차츰 초조해졌다. 이제 나의 고향은 점점 가까워 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차가 이 긴 산협만 빠져 나가면 나는 곧 하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곳은 누이의 시체와, 미친 어머니와, 이를 갈며 나를 맞을 형이 있는 곳이었다. 그 얼굴들은 나의 기분을 깊은 늪 속에다 밀어 넣었다.

나는 소주 한 병을 샀다. 안주도 없이 연거푸 두 잔을 마셨다. 내가 다시 한 잔을 비워 냈을 때 기차는 추풍령 고개를 허겁지겁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눈을 떴다.

"산이 왜 이렇게 많죠? 또 굴을 지나는군요."

"아직도 몇 개의 굴을 지나야 이 고개를 넘습니다."

이제 더 이상 기회 가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녀로부터 흥미를 잃기 시작한 내가 시투렁히 내뱉았다.

기차가 굴 속으로만 들어가면 미칠 것만 같다고, 그녀는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더니 오우버를 벗기 시작했다.

"갑자기 더우신 모양이군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아니, 무거워서------옷을 다 벗어버리고 싶어요. 갑갑하고, 무덥고. 꼭 지옥만 같아요. 이렇게 어지러울 수가,,,,,," 하고 숨가쁘게 말하며 이마를 짚었다.

그녀는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나는 감전이나 당한 듯 뒤따라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를 서둘러 부축했다. 그녀는 나의 부축이 이제 당연하다는 듯 전혀 저항을 보이지 않았다.

이 기회가 마지막일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어쩔 수 없이 고향 땅에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고 중얼거리며 나는 잽싸게 변소로 향했다, 그녀는 안심해도 좋을 보호자라도 만난듯, 아니면 체면을 차리기가 이미 늦은 혼수 상태인지, 나에게 자신을 의탁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는 다급한 딸꾹질을 계속했다. 그녀는 어느 사이, 행주가 다 된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변소 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문을 닫기가 바쁘게 한 손으로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고, 힘주어 그녀를 껴안았다. 그러나 그녀의 저항은 예상 밖으로 완강하여 곧 입술을 나의 손으로부터 해방시키더니,

"나는 자살하러, 자살하러 가는 길이란 말예요,,,,,,"

하고 죽어 가는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녀의 말소리는 이미 나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 위로 내 입술을 포개며 허리에서부터 시작되는 스웨터 안으로 거칠게 손을 밀어 넣었다.

"이럴 순, 정말 이럴 순 없어요,,,,,,"

그녀는 헐떡거리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나의 입 안으로 그녀의 비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그 소리를 내 입술로 밀봉했다.

기차는 헐떡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요란한 진동을 울리며 허기차게 산허리를 감아 오르고 있었다. 기차는 단속적으로 기적을 봅았다.

갑자기 변소 안이 캄캄해졌다. 굴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레일과 바퀴의 마찰 소리와, 덜컹거리는 진동이 한층 높아졌다. 어둠과 진동의 그 파열음은 변소 안을 외계와 완전히 차단시켜 버렸다.

그녀는 한사코 몸을 뻗대었다. 나는 그녀의 스커어트를 허리로 말아 올렸다, 기차의 변소 안에서 내가 그녀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나 자신도 잘 몰랐다. 나의 손에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가 닿았다.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때. 그녀가 나의 가슴을 밀며,

"이렇게 이렇게 죽긴 싫단 말야!"

하고 외쳤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의 손은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감싸쥐고 있었다. 그녀는 신음을 쏟더니, 이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죽는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녀의 복에서 나는 손을 떼어 스웨터의 양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리곤 그녀의 머리를 변기 속에다 내동댕이쳤다. 그녀는 변기에 허리를 걸친 채 늘어져 버렸다. 나는 황급히 변소 밖을 나섰다. 마침 변소 앞에는 아무도 얼었다. 변소 문을 닫았다. 승강구에 서자 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굴 안이 차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기차가 굴 밖을 벗어남과 동시에 나는 선로 아래의 비탈을 향해 힘껏 몸을 날렸다. 나의 머릿속에는 현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까마득히 치솟는 기분과 세찬 바람이 땀 투성이인 나의 몸을 시원하게 핥았다. 그 느낌은 순간적이었다. 이어, 공중에 뜬 나의 몸이 차가 달리는 속도의 반작용에 의해 다시 차체로 강하게 빨려 들어갔다.

 

 

 

 

 

 

 

 

 

 

 

 

 

 

 

 

 

 

 

김원일

 

작가 김원일은 1942년 경남 진영 출신으로 서라벌 예대 문학 창작과를 거쳐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6년 매일신보 신춘 문예에 <1961년 알제리아>가 당선되고 1967<현대 문학><어둠의 축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피의 체취>(1972), <어둠의 혼>(1973), <농무 일기>(1976), <도요새에 관한 명상>(1979), <환멸을 찾아서>(1983), <마당 깊은 집>(1988), <마음의 감옥>(1990)등의 중단편과 <노을>(1978), <바람과 강>(1985), <겨울 골짜기>(1987)등의 장편을 지속적으로 상재한 바 있다.

 

그의 초기작 중, <농무 일기>는 소외된 삶의 패배와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대립적 관점에 있는 두 소년의 눈을 통하여 집요하게 추적한 작품으로, <어둠의 혼>은 광복 후 사상의 분열이 가져다 준 민족의 비극을 그린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편 <노을>6.25의 상처와 조국의 분단 문제를 오늘의 시점에서 집중적으로 추적하여 6.25 콤플렉스에 젖어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삶의 뿌리를 확인시켜 준 문제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초기작 속에 깃들여 있던 분단 상황에 대한 문제 의식은 이후 더욱 심화되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도요새에 관한 명상>에서와 같이 서정적인 배경과 더불어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고, <마당 깊은 집>에서와 같이 전란에 시달리는 몇 가족의 담담한 이야기의 형태로표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 의식이 가장 본격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이 그의 장편 <겨울 골짜기><불의 제전>일 것이다.

 

현대 문학상을 비롯한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1990년 중편 <마음의 감옥>으로 제14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마음의 감옥>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역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소시민적 지식인인 형을 관찰로 하여, 빈민 운동가인 동생의 죽음을 감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분단 상황과 현실의 모순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