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단편 소설

69. 미명의 하늘

자한형 2022. 2. 22.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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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명(未明)의 하늘 -문순태

 

비록 땅에 떨어져 발에 밟히는 낙엽처럼 시들어버린 사람일지라도, 누구와 싸을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갈 용기를 가졌다고 할 수가 있다. 싸울 힘마저 잃어버렸을 때가 가장 절망적이다. 원망도, (), 앙칼스러움도 앙금처럼 가슴 밑바닥에 가라 앉아버린 사람이라면 그나마 생명도 업이 무감각하게 짓밟히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체념과 한숨은 죽음과 가깝다. 원망과 한은 생명의 뿌리이며 희망이기도 하다.

김 덕주씨가 점례의 싸우는 광경을 보고 일단은 마음을 놓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김 덕주 씨가 삼십 일 년 만에 양공주 촌에서 오 점례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보다 대여섯 살쯤 나이들어 보이는, 회갑 안팎의 겨릅때처럼 깡마르고 왜소한 초로(初老)) 여인과 싸움을 하고 있었다.

덕주는 첫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쌍스러운 욕지거리를 거칠 것 업이 물을 뿜듯 펌프질해대는 점례의 목소리는 젊었을 때처럼 목이 쪘어지는 듯한 때까치 소리를 냈으며. 오른쪽 눈 밑에 먹물을 쪘어놓은 것 같은 까만 점이 쉽게 그녀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옛날 고향 어른들은 점례의 그 때까치처럼 꺽꺽 울리는 목소리 때문에 팔자가 꺽지처럼 뻣세고. 눈물을 받아먹는 검은 사마귀가 있어 늘 외롭고 슬프게 살아갈 것이라고들 했었다. 그들은 점례의 삶을 미리 앞질러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그런 점례의 얼굴은 늘 슬퍼 보였었다.

점례가 덕주를 싫다 하고 장터 마을의 장돌뱅이 소금장수한테 시집을 갔을 때, 덕주 어머니도 그런 말을 했었다. 점례는 사내를 수도 얼이 잡아먹고 과부가 될 팔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의 어머니는 점례의 휘움한 안개 눈썹과, 입 바람을 부는 것 같은 그녀의 뾰족한 취화구에 대해서도 정이 너무 헤프다거니 인덕(人德)이 없다거니 좋지 않게 말을 했다.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점례의 삶은 덕주 어머니의 예언대로 거의 들어맞았다. 그러나 덕주는, 점례가 그렇게 된 것은 그녀의 팔자가 그렇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의 탓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삼십 일 년만에 애써 점례를 찾은 것은 불행하게 된 그녀 앞에 그의 죄를 털어놓고 용서를 받고자 함이었다.

점례와 깡마른 노파가 싸움을 하고 있는 하숙옥 앞의 공터에 공주촌 사람들이 예닐곱 몰려들었다.

공주촌은 광주에서 포주읍으로 가자면 읍 조금 못미처 극락교를 건너기 전, 4차선의 고속화도로가 흑갈색의 철판처럼 곧게 뻗은 큰길에서, 비포장 황토 길로 꺾어 들면 아파트촌이 있고, 그 아파트촌에서 밋밋한 산등성지 쪽으로 2백 미터쯤 되는 거리에 재개발을 기다리는 폐촌처럽 을씨년스럽게 웅크리고 있다.

마을의 들머리에 시골 농협창고 같은 목욕탕이 있으나, 미군부대가 떠나고, 부대가 있던 그 자리에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부터 문을 닫았고, 문짝마저 떨어져나간 목욕탕 건물 옆에는 돼지우리처럼 칸막이 방들이 즐비하게 잇대어 있는 단층 바라크의 하숙옥이 여름 한낮의 더운 햇살 속에 길다랗게 뻗대어 있었다. 하숙옥 앞에는 유리에 빨간 페인트칠을 한 술집의 하늘색 포렴(布簾)이 찢어진 깃발처럼 바람에 펄럭였고, 술집 옆에는 담배 간판이 붙은 구멍가게와, 세탁소, 이발소, 미장원이 도토리 키재기 하듯 어깨를 바짝 대고 있었다.

공터는 이들 낡은 목욕탕 건물과, 하숙옥, 술집, 구멍가게, 세탁소, 이발소, 미장원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미군부대가 옆에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 공터엔 미군 지프와 트럭들이 빠져나갈 틈도 없이 빼곡하게 주차를 했으며, 창고 같은 목욕탕의 굴뚝에서는 젊은 욕망의 뜨거운 입김처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줄기차게 솟았고, 하숙옥에서는 군화발소리와 알아들을 수 없는 지껄임, 배고픈 창자를 빨래처럼 비틀어 쥐어짜는 듯한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공터에까지 낭자하게 흘러나왔다. 술집도 세탁소도 구멍가게도 이발소도 미장원도 온통 벅신거렸었다.

"개만도 못한 녀언! 양갈보질 이십 년에 누렁이, 깜둥이, 횐둥이 가지각색 골고루 새끼들을 퍼질러 나놓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지랄이여 지랄이! 점례 네년은 얼굴에 개가죽을 둘러쓴 게여, 그러니께 늙어 곯아빠져 갖고도 이 마을을 떠나지 않는 게여!"

깡마르고 키가 작은 초로 여인이 탱글탱글 유리조각이 깨지는 목소리로 욕질을 하였다.

"!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고 자빠졌네! 네 년은 영자 춘자 두 딸년 양공주 안 맹글았냐? 서방 가진 연이 뭣이 부족해서 두 딸년을 양갈보로 팔아 묵어? 그래 부부간에 코 큰 놈덜 똥구르마 끌다봉께 그 놈덜 똥까지도 좋아 뵈더냐? 그랑께 딸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양갈보질을 시켰구만!"

점례도 지지 않고 장작 패는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퍼부어 대며, 당장 춘자 어머니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동댕이를 칠 듯이 두 손을 휘저었다

구경을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싸움을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두 여자의 싸움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고 오물을 토하듯 한 더러운 욕설은 팽팽한 햇살과 함께 잘 버무려져 칙칙한 여름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하였다. 두 여자는 서로의 과거를 난도질했고, 쟁기의 날카로운 모습으로 갈아 엎어놓은 듯한 자신들의 지나온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대신, 힘이 더욱 살아난 듯 오히려 앙칼스러워졌다.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욕설이나 서로의 약점을 까발린 내용에 대해서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고들 두 여자의 과거와 현재를 자신들의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차라리 고들 두 여자가 빗물이 질퍽하게 괴어 있는 공터의 진흙 바닥에서 한바탕 붙들고 뒹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고들은 두 여자가 언제나 그랬듯이 똑같은 욕지거리를 푸짐하게 쏟아놓은 것으로 싸움을 끝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바탕 엉클어지게 되리라는 것은 기대하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구경꾼들 중에서 심장이 찐륵거리도록 흥미를 느끼는 것은 덕주 혼자뿐인 듯싶었다. 그는 담벽도 대문도 없이 앞이 툭 터진 하숙옥 옆, 목욕탕 건물의 그늘에 무릎이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서 점례와 춘자 어머니라는 여자가 뱉어내는 욕지거리들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는 곧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점례가 살아온 과거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코배기 똥이나 퍼주고 살었음시롱 뭣이 잘났다고 지랄이여!"

"그래, 양코배기 똥구르마 끄집어서 우리 식구 안 굶어죽고 살었다. 으쩔래! 그래도 네년모양으로 누렁이, 껌둥이, 횐둥이는 낳지 않었다, 으쩔래!"

"나도 그 짓 해서 시부모님 자식 새끼들 멕여 살렸다, ?"

"양갈보짓 해서 시부모 멕여 살렸응께 양갈보 효부 났구만 그려!"

"양코배기 똥 퍼주고 묵고 살었으면 그만이재, 두 딸년은 왜 양갈보를 맹글어!"

"그것들도 묵고 살라고 그랬단다, 으쩔래! 애비 에미 똥 푸는 짓 못허게 헐라고 말이여!"

", 효녀 심청이가 둘이나 나왔구먼!"

"네년의 껌둥이 흰등이 새끼덜은 뭣이 잘났다고 자랑이여, 그까짓 것덜도 자식이라고 자랑을 혀? 아이고 오메 하늘 부끄르와라!"

"왜 자식이 아녀? 이 에미헌티 을애나 잘 허는듸!"

점례는 결코 지지 않았다. 갈수록 힘이 더 솟구치는 것처럼 보였다.

정례와 춘자 어머니가 언제나 티격태격 싸움을 하게 된 발단은, 마을 사람들한테 미국에 가 있는 서로의 자식들 자랑을 하다가 시비가 붙곤 한 것이었다. 점례의 검둥이 흰둥이 두 아들이 미국으로 아버지를 찾아간 것처럼. 양공주가 된 영자 춘자도 혹인 병사를 따라 태평양을 건넌 것이다.

덕주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연기를 빨다가 심한 기침을 쏟고 말았다. 기침소리에 마을의 구경꾼들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려왔다.

담배를 구두로 문질러 끄고 조심스럽게 숨을 쉬었으나 기침은 멎지 않았다. 기침 소리에 가슴이 컹컹 울리는 것만 같았다.

덕주가 목욕탕 건물의 얼은 그늘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두 어깨를 들먹이며 고개를 세운 무릎 사이로 꿍겨박고 버르적거리듯 기침을 토해내고 있을 때. 담배 가게 앞에서 자랑스럽게 햄버거를 먹고 있던 초로여인의 남편 춘자 아버지가 공터로 천천히 걸어나와 그의 부인을 끌고 갔다.

춘자 아버지는 오른손에 햄버거를 들고 왼손으로 부인의 손목을 잡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싸움이 끝나자 기침도 멎었다.

싸움이 끝나고 점례가 두 팔을 휘저으며 공터에서 마을 안 길로 사라지자. 하숙옥의 여주인이 유일한 투숙객인 덕주에게 다가와서, 두 여자의 욕설에서 들을 수 없었던, 그녀들이 살아온 과거를 양파 껍질 벗기듯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숙옥의 여주인한테서 점례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죄책감에 오그라든 덕주의 심장은 꺼져가는 생명처럼 가까스로 팔딱거렸다, 그는 차마 고개를 쳐들고 태양을 마주 보기조차 부끄러웠다.

그는 다시 기침을 쏟으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하숙옥의 음습하고 무더운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담배 연기로 칙칙하고 회누르스름하게 색깔이 바랜, 무덤 속 같은 직사각형 방의 벽지 틈새에, 알아들을 수 없는 미군들의 지껄임과 배고픔에 헐떡거리는 점례의 숨소리가 때 자국처럼 배어 있는 듯싶었다.

덕주는 그 동안 점례의 목숨이 시나브로 꺼져 가는 듯한 비명을 수없이 들으면서 살아왔다, 그녀의 비명은 보이지 않는 원한의 날카로운 화살로 그의 심장에 무수히 꽂혀왔으며, 그 때문에 그의 지난 삶의 절반은 활터의 과녁처럼 고통의 구멍들이 수없이 숭숭 뚫리게 되었다.

그가 살아온 58년의 생애에서, 육이오까지의 스물 다섯 해는 죄를 짓는 기간이었고, 나머지 서른 세 해 중에서 절반은 괴로운 양심의 가책으로, 그리고 지난 십수 년간은 점례를 찾아 헤매느라고 방황하다 지쳐버렸다.

그러나 그가 점례를 찾아 나선 것은 그 자신을 위한 처사였다. 이미 그는 점례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도 없었고, 속죄의 댓가로 그녀에게 베풀어 줄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그녀에게 용서를 비는 것뿐이었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차마 눈감고 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점례를 찾아 나선 것은 수치스러운 이기심이 아니겠는가.

점례의 원한 맺힌 화살은 덕주가 살인죄로 15년 동안 형무소의 감방에 갇혀 있을 때도 그 두꺼운 벽을 뚫고 비명처럼 고의 심장에 꽂혀왔다. 그리고 15년만에, 차표(車票)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되었을 때도, 그녀의 화살은 하늘에서 흑은 인파가 북적는 대낮의 큰 거리에서, 근로자 합숙소의 천장과 벽에서 쉴새없이 그의 심장과 눈과 목 줄기를 향해, 푸른 칼날이 허공을 베는 소리를 내며 무섭게 날아왔다.

피붙이라고는 아무도 없고, 이미 그의 얼굴조차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만 살고 있는 고향 달밭에 가봤지만 점례의 행방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육이오가 끝나고 줄포에 미군이 머물게 된 뒤 달밭을 떠나 양공주가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그후 십수 년 동안 버려진 비닐봉지처럼 병들고 지친 몸으로 막일 공사판을 떠돌음 하다가, 우연히 점례의 먼 친척 되는 사람을 만나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을 알게 된 것이었다.

덕주는 하루 전에 공주촌인 이곳 하숙옥에 들어왔으며, 점례가 살고 있음을 확인하고도 차마 그녀 앞에 얼굴을 나타내지 못하고 몸과 마음을 웅크리고만 있던 중이었다.

덕주는 25년 전에 살인을 하였다. 아내를 죽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죽인 아내한테는 그렇게 심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점례한테 저질렀던 잘못에 비한다면 아내의 죽음은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하였다. 어쩌면 아내를 죽인 죄과까지도 점례에 대한 잘못으로 가중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는 그를 배신했다, 지서(支署)에서 당직 순찰을 하던 날 밤, 몸이 풀어놓은 실타래처럼 나른하고 찌뿌드드해서, 기운을 돋우느라 소주 몇 잔 마시고 일찍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그의 상사인 지서장과 함께 벌거숭이가 되어 뒤엉켜 있었다. 그는 메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겼는데 아내만 죽고 지서주임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부엌문을 박차고 튀어나가 살아났다

그는 아내를 죽인 것도 점례한테 저지른 죄업이라고 생각했다.

남쪽으로 밀려 내려갔던 경찰이 돌아와, 지리산 공비(共匪)토벌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면당 인민위원을 지낸 점례의 남편은 집에 숨어 있었다.

지서의 순경이었던 덕주는 점례의 남편이 그의 집 벽장에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점례네 뒷집에 사는 절뚝발이 통메장이가 덕주에게 밀고를 해왔을 때, 그는 문득 일 년 전 겨울 그녀를 기다리며 밤새도록 각씨 바위 모퉁이 상여집에서 떨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온몸이 달빛에 흥건하게 젖는 순간처럼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다. 그날 밤에는 온통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눈이 내렸었다. 장터 마을 장돌뱅이 소금 장수한테 시집을 가기로 결정을 한 점례를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만나보고 싶었지만, 끝내 그녀는 나와주지 않았다. 밤새도록 떨며 오지 않는 점례를 기다리다가 지쳐 수북히 눈에 묻혀 집으로 돌아오면서, 덕주는 싸늘한 복수를 생각했다, 그날 밤 이후 그의 심장은 겨울의 산처럼 비정하게 얼어 붙어버렸는지도 몰랐다.

서울이 탈환되고, 그가 부산에서 고향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집에 남아 있었던 어머니와 동생이 경찰가족이라는 이유로 생명을 빼앗긴 뒤였는지라, 덕주는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작전이 연일 계속되었기 때문에, 수면부족으로 두 눈은 언제나 진달래 꽃잎처럼 벌겋게 핏발이 섰고, 신경줄은 바스락 하는 소리만 들려도 방아쇠를 긁어당길 것처럼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덕주를 피했다. 그가 낮에 총을 메고 술에 취해 달밭에 나타나면 마을 사람들은 고샅에도 나오지 않고 집 안에만 들어박혀 있었다.

그 무렵 통메장이한테서 밀고를 받은 덕주는, 새벽에 혼자 총을 메고 달밭에서 2킬로쯤 떨어진 장터마을 점례네 집을 기습하여 점례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점례 혼자 자고 있었다. 그러나 덕주는 점례의 남편이 벽장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왔으므로 실망하지 않았다. 총부리로 이불을 걷고 점례의 얼굴에 플래시를 비췄다. 점례는 두 팔로 가슴을 붙안은 채 학질을 앓는 것처럼 떨었다. 눈물을 받아먹고 큰다는 눈 밑 검정사마귀까지도 파르르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손전등 불빛 속에서 몸을 웅크릴 수 있는 데까지 조그맣게 웅크리고 떨고 있는 점례는 사람이라기보다 한 마리의 횐 토끼처럼 보였다. 떨고 있는 그의 옆에는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가 비둘기 날개 같은 얼굴로 자고 있었다. 덕주는 벽장문을 열어 젖히고 총구와 플래시불빛을 동시에 들이댔다. 점례의 남편은 두 발을 쭉 펴고 잠들어 있다가, 덕주가 손전등의 불빛으로 얼굴을 비추며 총부리로 옆구리와 머리를 쿡쿡 찌르자, 소금물 먹은 미꾸라지처럼 사지를 휘저으며 일어나 앉았다. 덕주는 총부리를 점례 남편의 양미간 살가죽에 갖다대고 낮게 다그치는 목소리로 벽장에서 내려오라고 하였다.

점례의 남편이 벽장에서 생각보다는 침착하게 내려오자, 덕주는 준비해 간 철사 줄로 그의 두 손목을 묶고 뻰찌로 죄었다. 두 다리도 묶었다. 철사 줄이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갈 만큼 뻰찌로 바짝 죄자 그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짧게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과 발을 묶은 다음 점례가 벗어놓은 버선짝을 입 속에 처넣었다, 덕주가 그녀의 남편을 철사 줄로 묶고 있는 동안 점례는 떨고만 있었다. 덕주는 손발이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그녀의 남편을 발로 걷어찼다. 그는 굼벵이처럼 방 옆으로 넘어졌다. 덕주는 이불로 그를 덮어씌웠다. 그리고 손전등 불빛으로 물총 쏘듯 점례의 얼굴에 퍼붓고 나서 덕주 자신의 얼굴에 비췄다. 점례한테 자신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점례는 비명과도 같은 경악의 소리를 토해냈다. 덕주는 그 소리에 뼛속으로부터 피어오르는 것 같은 쾌감을 맛보았다. 그는 잔인하고 흉칙스럽고 만족한 미소를 쥐어짰다. 그리고 총과 손전등을 방바닥에 놓으며 점례를 덮쳤다. 그녀는 남편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를 알아본 순간부터 그녀는 떨지 않았다. 덕주는 그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남편을 살려주겠노라고 약간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처음엔 몸을 새우처럼 도사리며 심하게 버둥거렸으나, 남편을 살려주겠다고 되풀이한 말에 체념한 듯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는 점례의 배 위에서 그녀의 남편이 온몸을 흔들어 이불을 들썩이며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점례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왼손으로 바지를 올리고 오른손으로 총을 들며 밖으로 나왔다.

그 뒤 덕주는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참가했으며,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나 산천이 그의 마음처럼 황량하고 냉혹하게 얼어 붙어버린 한겨울, 눈에 핏발이 가시지 않은 채 고향에 돌아왔을 때, 점례의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덕주가 토벌대가 되어 떠난 다음날, 자기 집 감나무에 목을 매달아 스스로 죽었다고 하였다.

덕주는 그때 점례 남편의 죽음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 하루하루의 삶이 죽음의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죽음을 너무 많이 보아 왔고 자신도 토벌 작전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의 수를 헤아리기에도 지쳐 있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한다거나, 그 수를 헤아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무의미하게 생각되어졌다. 그는 이미 거의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뽕은 그의 주먹이나 발처럼 느껴졌고, 주먹질을 하거나 발길질을 하는 기분으로 방아쇠를 잡아당기곤 하였다. 때로는 그의 온몸이 총으로 변해버린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되자, 총과 그 자신을 구별하기조차 어려웠다. 그 무렵 그가 믿을 수 있고 자랑하는 것이란 오직 그의 무기뿐이었다. 그의 무기는 어떤 경우에도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점례는 남편이 죽은 여덟 달 후에 사내 아이를 낳고, 한 달쯤 있다가, 시부모와 두 어린 아이들을 남겨둔 채 집을 나가버렸다.

덕주는 점례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도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느끼지 못했다. 설사 그녀가 남편의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도 조금도 마음 언짢아할 그가 아니었다.

달밭과 장터마을 사람들은, 점례 남편이 목을 매 죽은 것도, 점례가 젖먹이 아이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간 것도 모두 덕주 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덕주를 비난하는 말 한마디 뱉어내지 못했다. 그는 대낮부터 술을 마셔 목에 힘을 주어 불콰해진 얼굴을 바짝 쳐들고 마을 사람들 앞을 활개치고 다녔다.

그가 두 볼에 도화꽃이 핀 해반들한 여자와 결혼을 하여 지서가 있는 마을로 옮긴 것은 점례가 집을 나가고 2년쯤 지나서였다. 그때까지도 점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는 돌아오지 않은 대신 그녀의 시부모한테 매달 꼬박꼬박 네 식구가 살아갈 만큼의 돈을 부쳐오고 있었다. 얼핏 바람결에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물집 작부가 되었다고도 하였고. 갈보짓을 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덕주는 점례가 갈보가 되었거나 거렁뱅이가 되었거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가 얻은 도화색 핀 여자가 점례보다 훨씬 더 잘나고 나긋나긋했기 때문이다.

다시 기침이 쏟아졌다. 목구멍을 쥐어짜는 것 같기도 하고 쇠갈퀴로 목구멍에서부터 창자까지 피가 차도록 긁어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침소리가 그의 귀에는 마치 깊은 골짜기를 쨍글쨍글 울리는 총소리처럼 들렸다.

총구에서 불을 뿜듯 계속 기침이 쏟아졌다. 그는 기침소리가 밖으로 크게 깨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배를 방바닥에 깔고 엎디어 두 손으로 어깨를 힘껏 그러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보건소에서 무료로 준 약이 호주머니에 있었으나 억지 않았다.

얼마 후 기침이 멎자, 방 안은 마치 한바탕 교전(交戰)이 끝난 골짜기의 고즈넉한 정적처럼 조용했다. 그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서 벽에 걸려 있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한바탕 기침을 토하고 난 뒤라 얼굴이 구절초 꽃잎처럼 노래졌다. 두 눈 속까지도 노랗게 물든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에 이미 핏발은 가셔버린 지 오래였다. 어쩌면 눈에 핏발이 사라진 뒤부터 그가 낙엽처럼 무기력해져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가 점례한테 저질렀던 일을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두 눈의 핏발이 점차 사라져갔다.

덕주는 구두를 꿰고 하숙옥 앞 공터로 나갔다. 사흘 밤의 숙박비를 선불했기 때문에 하숙옥의 뚱뚱한 여주인은 그의 외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목욕탕 건물의 그늘 밑에, 조금 전 점례와 싸움을 하던 할망구를 끌고 간 춘자 아버지가 블럭벽에 어슷하게 기대서서 아이들처럼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게, 미국에 있는 딸이 보내주었음직한, 독특한 해작바지에 색깔이 알록달록한 반팔 셔츠를 받쳐입었으며,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에 횐 고무신을 꿰고 있었다.

하숙옥의 뚱보 여주인의 말로는, 춘자 아버지는 아이들처럼 햄버거를 들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 보는 앞에서 먹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옛날 똥장군을 끌고 미군들의 똥을 푸고 살 때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조 장군, 조 장군 하며 불렀었는데 요츰에는 조햄벅, 조햄벅한다는 것이었다.

덕주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는 그가 마치 유랑극단에 나오는 바보 주인공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 속으로 피식피식 웃었다. 어쩌면 그는 일부러 햄버거를 들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랑스럽게 먹는 것으로 하여, 미군들의 똥을 퍼주고 살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잊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숙옥의 뚱보 여주인 이야기로는 요즈막 그들 부부는 흑인 병사를 따라 미국에 간 두 딸들 덕으로 집도 이층 양옥으로 새로 짓고, 먹는 것 입는 것 걱정 없이, 조햄벅이라고 부르는 것을 즐거워하며 산다고 하였다.

덕주는 조햄벅의 앞을 지나, 여름 한낮의 햇살이 빈틈없이 가득 괴어 있는 공터를 가로질러, 때묻은 하늘색 포렴(布簾)이 펄럭이는 술집으로 향했다, 점심 대신 소주나 한잔 마시고 싶어서였다.

술집 안은 밖에서 보기와는 너무 딴판이었다, 생각보다 널찍한 홀에는 좌판 대신에, 비록 때가 묻고 비닐커버가 너덜너덜 떨어지긴 했어도 낡은 나무의자와, 빨간 페인트를 칠한 탁자들이 여러 개 적당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네 벽마다에는 외국의 여자배우들 사진과 누드 사진들이 촘촘히 파리똥이 박힌 채 여러 개 붙어 있었고, 반원의 카운터 위에선 낡은 선풍기가 덜컹거리며 돌아갔다. 밖에서 보기엔 시골의 주점같이 생각되었으나 안은 도시의 바아처럼 꾸며져 있었다.

출입구의 밀창문을 열어놓았는데도 술집 안은 어두컴컴했다. 술을 마시는 손님들은 하나도 없었고, 마을에 사는 초로 여인네들 넷과, 옆집 세탁소 남자, 이발소 주인 등 예닐곱 명이 선풍기를 둘러싸고 앉아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술집이라기보다는 복덕방 같은 분위기였다.

덕주는 그들과 떨어진 구석자리에 앉았다. 주인인 듯싶은 점례 나이 또래의 오십대 여자가 다가와 선 채 말없이 덕주를 내려다보았다. 여자에게서 화장냄새가 역겹도록 풍겼다. 그녀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새도우를 검게 칠하고 립스틱까지 발랐다. 덕주가 소주 있느냐고 했더니 말없이 돌아섰고 잠시 후에 두 홉들이 소주 한 병과, 작은 유리 술잔, 된장에 오이를 썰어 박은 접시를 놓고 갔다.

덕주가 두 잔 째 술을 기우고 있을 때, 뜻밖에 점례가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들어서자 선풍기률 둘러싸고 앉아서 큰 소리로 잡담들을 늘어놓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자리를 비워주며 반갑게 맞았다. 점례는 점심을 막 먹고 오는 것인지 술집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놓여 있는 성냥 통에서 성냥개비 하나를 집어 허리를 동강내더니 쩝쩝 입맛을 다셔대며 이빨을 쑤셔댔다. 덕주는 점례가 그를 알아볼까 두려워 애써 고개를 숙였다.

"아이, 옥자야, 나 쐬주 한벵 주라!"

점례는 의자를 끌어다 선풍기와 가까운 탁자 옆에 비집고 앉으며, 술집 여주인에게 소리쳤다.

"쪼니워카 시절이 그리워서 몸쌀이 나겄당께! 우리헌테는 그때가 황금 시절이었든개벼!"

점례는 그러면서 옆에 앉은 세탁소 남자의 와이셔츠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나꿔채듯 하여 뽑아 필터를 잘근거리며 입에 물고 불을 댕기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점례 저 잡것, 또 바다 건너간 쌕스폰쟁이 쪼지 생각이 나는 모양이구나

두 홉들이 소주 한 병과 안주 접시를 들고 나오며, 술집 주인이 비아냥거렸다.

"쬬지 생각도 간절허고, 토미 놈도, 쩍도, 무하마뜨도, 로퍼뜨도, 리짜드도---그 엠병헐 놈들이 다 환장허게도 그립당께. 고래도 말이여, 젤루 그리운 건 역시 첫사랑이당께! 내 팔자를 개 창시처럼 횟가닥 뒤집어 놓은 그 남자."

점례는 타는 담배를 탁자 위에 놓고, 소주를 거푸 두 잔 째 숨돌릴 여유도 없이 목구멍으로 털어 넣더니, 술병과 잔을 옆에 앉은 세탁소 남자 앞으로 옮겼다.

"한 잔씩 빨어! 어야, 옥자야, 쏘주 한벵 더 있어야 쓰겄다. 쪼니워까는 못 마셔도 쐬주라도 빨자. 이 집도 쪼니워까 시절이 좋았제,,,,,,."

"대낮부터 무순 술을-,,,,, 아까 춘자어메흐고 쌈해서 목구멍에서 불나는 모양이구만!"

좌중의 여자들 가운데서 누구인가 말했다.

"옥자야, 언능 술 더 갖고 와! 이 마을에서는 그래도 이 오점례 신세가 상팔자 아니여? 그까짓 똥방군 조햄벅이네 보담이야 낫제 ! 미국에 간 깜둥이 흰둥이 두 아들이 출세해 갖고 매달 에미 용돈으로 백 딸라씩 보내 주겄다, 본남편한테서 난 큰아들 서울에서 택시 운전수 허겄다, 둘째 놈 싸우디 가서 돈 벌겄다, 내가 그냥 복방석에 자뿌라져 뿌렀당께 ! 그런드;도 우리 아들덜을 조햄벅이네 딸헌티 비교해? 택도 없어! 클씨 저번 때는 우리 깜둥이헌테서 편지가 왔는듸, 요븐 가을에 즈그 내외가 한국에 나와서 나를 데리꼬 가겄다고 했당께 ! 자식 덕분에 비행기 타고 팔자에 없는 미국 귀경허게 생겼어! 또 우리 흰둥이 새끼는 어쩌고,,..., 그놈은 비까번쩍헌 차가 두 대나 되고 대궐 같은 집에서 산다니께! 우리 네놈 새끼들만 생각허면 옴찔옴찔 오져죽겄어.

점례는 어깨를 들먹이기까지 하면서 좌중의 마을 친구들에게 술을 따라 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점례의 그 같은 자랑을 텔레비전의 화장품 선전만큼이나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점례는 좋겄어!"

"점례가 부러워서 죽겄당에!"

"오 점례 혼자 우리들 한을 다 풀었어!

"점례는 우리 마을의 스타랑께!"

좌중의 친구들이 술잔을 비울 때마다 한마디씩 뱉어냈고, 그때마다 점례는 자랑스러운 듯 어깨춤을 추듯 목을 휘저으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래도 조햄벅이 할망구는 내가 양갈보질 해서 갈등이 흰둥이 낳았다고 숭보지 않든가?"

"그럼시롱 두 딸년들은 왜 그 짓을 시켜! 괜히 점례가 샘이 나서 그런 거니께 마음 쓰지 말어. 시방 이 마을에서 점례를 숭보고 손가락질헐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려? 점례나 조함바꾸네나 다 안 굶어죽을라고 헌 짓이었으니께------공주촌 사람덜치고 양키들 X안 빨고시리 춘향이처럼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이 누가 있간듸? 쪼니워까며, 양담배며, 깡통 덕에 살아온 우리덜이 아닌감? 조함바꾸네는 양키들 똥 덕분에 살었고 말여. 점백이는 몸을 팔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양키들헌테 쓸개를 판 거여. 몸을 판 거나 정신을 판 거나 매한가지계 머. 모두 다 쌤쌤이여. 굶어죽지 않을라고 한 짓이였응께,,,,,, 공주질해 갖고 떼돈 번 사람 있간듸?"

술집 주인 옥자의 말에

"그 짓 안 했으면 우리 시부모 두 새끼들 굶어죽었을 것이여."

하고 점례가 갑자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조햄벅이네 부인이 손목을 팔랑개비처럼 돌려 목덜미 안에 손바람을 만들어 넣으며 쪼작걸음으로 옥자네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좌중을 한번 두렷두렷 둘러보더니, 의자를 끌어다 점례 옆에 비집고 앉았다.

"옥자네야, 나 션한 맥주 한 벵 주소. 한여름에 목타서 워치께 쐬주를 마신당가 원!"

춘자 어머니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점례의 옆얼굴을 빳빳한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아니구만. 사람이 모두 멫인가, 나까정 야들이구만. 그려 쐬주벵 치워 뿔고 히야시된 것으로 야들병 질. 우리 영감 함바꾸만 처묵는듸, 나도 기분 좀 내야 쓰겄어!"

춘자 어머니가 짧은 목을 길게 캐고 손까지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그러자 점례는 소주병을 쥐어짜듯 하여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도 깡그리 빈 잔에 따뤄 마시더니 벌떡 일어섰다.

"옥자야, 엠병헐, 여기 쪼니워까 한 빡스 내와라. 이 집구석에 없으면 비행기 타고 미국에라도 가서 가져와!"

하고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울부짖듯 소리쳤다.

덕주가 또 필시 두 여자가 싸옴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술값을 계산하고 슬며시 밖으로 나와버렸다.

하숙옥의 답답하고 무더운 방으로 돌아온 그는 점례에 비해 너무나 무기력하고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고. 그녀를 만나려고 했던 마음이 희미하계 움츠려들고 말았다. 점례는 참나무처럼 굳세고, 싸움터에서 이기고 돌아온 병사처럼 떳떳하게 살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생각되어졌다. 그녀를 만나면

오히려 그녀 쪽에서 자기를 그렇게 만들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기까지 하여, 서둘러 그녀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고 싶었다.

점례한테 용서를 비느니 차라리 서둘러 달밭에 돌아가. 고향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마음 속에 겹겹이 흘맺힌 회한(悔恨)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점례가 거리낌없이 사는 것을 본 그는, 지난 30여 년 동안스스로 묶여 있었던 가책의 무서운 쇠사슬로부터 풀려나는 것 같은 마음 후련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는 30년 전 그의 총부리 앞에서, 비바람에 떨어져 짓밟힌 감 꽃처럼 무수히 숨져간 사람들의 환영들도 뿌리쳐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덕주는 오랜만에 마음이 가벼워져 서둘러 고향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향에 달려가고 싶은 발싸심 때문에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꼭두새벽 미명 이 되기도 전에 하숙옥에서 나왔다. 새벽 바람을 헤치며 걷는데도 이상하게 단 한번도 기침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생이의 잎을 씹은 것처럼 목구멍 속이 개운했다.

덕주는 십리길이 빠듯한 포주역까지 나가 첫차를 탈 욕심으로 새벽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때 풀잎 같은 마음으로 점례를 사랑한, 지난 그의 인생의 가장 아름다왔던 순간을 천천히 음미하듯, 기분 좋은 한여름의 새벽 공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이면서, 고향 뒷산의 양지쪽에 평화롭게 누워 잠이 든 자신의 모습을 머리 속에 부지런히 그려 넣었다.

비포장 황토 길을 지나, 발바닥이 쩍쩍 달라붙는 4차선 포장도로에 이르렀을 때 소채를 가득 싣고 힘겹게 손수레를 끌고 가는 여자와 만났다. 머리에 큰 타월을 쓴 것을 보고 여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덕주는 손수레 앞을 그냥 지나치려다가 끙끙거리며 너무 힘들어하며 끌고 가는 것을 보고 가볍게 한 손으로 밀어주었다. 그러자 여자가 어둠 속으로 뒤를 돌아다보며 숨가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목소리로 보아 젊은 여자 같지가 않았다.

"새벽부터 어디까지 가시우?"

덕주가 손수레를 밀고 있는 한쪽 팔에 힘을 쏟으며 울었다.

"역에 가서 도회지 장사꾼들헌테 팔 꺼라우."

여전히 헐떡거리는 목소리였다.

"이렇게 한 구루마 끌고 가면 얼마나 버시오?"

"넘의 밭에서 새벽마닥 한 구루마씩만 떼어다 파니께, 게우 내 혼자 목구멍 풀칠이나 허지라우."

"혼자라니, 식구는 없소?"

"자식이 넷이나 있었는듸, 에미 몸뚱이가 걸레가 되도록 애써 키워논께, 계 앞길 가릴 만허자 모부덜 에미 품을 떠나가쁠덩만. 뒈졌는지 살었는지 기별조차도 없당께요!"

"불효막심 헌 아들덜이로군요. "

"말짱 이 에미 잘못이지라우. 내 잘못이니께 그 놈덜 원망 안 허요."

여자는 푸념처럼 숨가쁜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잠시 손수레를 멈추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깊숙이 머리를 싸맨 타월을 벗겨 얼굴과 목덜미의 땀을 닦았다.

아스팔트 위에 미명의 마지막 두꺼운 어둠이 괴로운 삶의 껍질처럼 천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덕주는 수레를 끌고 있는 불쌍한 여자와, 아들 자랑으로 두 어깨를 춤추듯 들먹이던 점례를 비교하면서 몇 번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순간이었다.

"댐배 한대 피우고 천천히 갈라니께 먼첨 가지씨요."

여자가 담을 닦아낸 타월을 툭툭 털며 덕주를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 그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동쪽 신작로 끝에서부터 트여오는 아침의 하늘빛에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점례가 분명했다.

"내 걱정 마시고 먼첨 가시라니께요."

그제서야 점례의 때까치처럼 꺽꺽 울리는 목소리가 화살처럼 그의 심장에 섬뜩하게 꽂혀 온 것이었다. 갑자기, 점례가 30년 전 어둠 속에서 그가 들이댄 총구를 두려워하며 떨었던 것처럼, 그 자신이 그녀 앞에서 무참하게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덕주는 날이 밝아오는 것이 두려웠다. 고향에 돌아가는 일이 천당에 가는 것보다 더 어렵게 생각되어지면서, 다시 기침이 쏟아지려고 하였다.

자동차가 다급하게 클랙슨을 울리며 미명을 가르고 달려오자, 그는 헤드라이트를 피해 몸을 돌렸다.

"걱정 마시고 먼첨 가시라니께요."

점례가 담배를 피워물고 새벽 바람 속에 연기를 내뿜으며 덕주의 옆으로 왔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손수레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곳에서 도망치듯 손수레를 끌었다.

"나 혼자서도 문제없이 끌고 갈 수 있으니께 냅두시라니께요."

덕주는 점례가 한사코 만류하는 것을 못 돌은 척하오 더 빠른 속도로 손수레를 끌었다. 채소를 가득 실은 손수레는 점례가 살아온 삶처럼 무거웠다. 아니, 덕주 자신이 지난 30여 년 동안 짓눌러온 가책의 무게만큼이나 짐스러웠다,

새벽부터 둘이서 무거운 손수레를 끌며 밀며 지나온 아스팔트 길의 등뒤엔 희번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으나, 수레가 도착해야 할 포주역의 서쪽 하늘은 아직 두꺼운 어둠 속에 덮여 있었다.

"혼자서도 문제없는듸."

점례는 잰걸음으로 손수레를 따라오며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였다.

 

 

 

 

 

 

 

 

 

 

 

문순태

 

1

 

뒤로는 겸재의 실경산수(實景山水) 일지병을 펼친 듯 기암절벽(奇巖絶壁)의 월악이 둘러 있고, 앞으로는 무덤처럼 밋밋한 무등산이, 구름인지 산인지 분별할 수조차 없을 만큼 짙은 갈뫼빛 안개에 싸여 부옇게 출렁였다.

 

미명(未明)의 하늘

문순태

 

비록 땅에 떨어져 발에 밟히는 낙엽처럼 시들어버린 사람일지라도, 누구와 싸을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갈 용기를 가졌다고 할 수가 있다. 싸울 힘마저 잃어버렸을 때가 가장 절망적이다. 원망도, (), 앙칼스러움도 앙금처럼 가슴 밑바닥에 가라 앉아버린 사람이라면 그나마 생명도 업이 무감각하게 짓밟히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체념과 한숨은 죽음과 가깝다. 원망과 한은 생명의 뿌리이며 희망이기도 하다.

김 덕주씨가 점례의 싸우는 광경을 보고 일단은 마음을 놓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김 덕주 씨가 삼십 일 년 만에 양공주 촌에서 오 점례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보다 대여섯 살쯤 나이들어 보이는, 회갑 안팎의 겨릅때처럼 깡마르고 왜소한 초로(初老)) 여인과 싸움을 하고 있었다.

덕주는 첫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쌍스러운 욕지거리를 거칠 것 업이 물을 뿜듯 펌프질해대는 점례의 목소리는 젊었을 때처럼 목이 쪘어지는 듯한 때까치 소리를 냈으며. 오른쪽 눈 밑에 먹물을 쪘어놓은 것 같은 까만 점이 쉽게 그녀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옛날 고향 어른들은 점례의 그 때까치처럼 꺽꺽 울리는 목소리 때문에 팔자가 꺽지처럼 뻣세고. 눈물을 받아먹는 검은 사마귀가 있어 늘 외롭고 슬프게 살아갈 것이라고들 했었다. 그들은 점례의 삶을 미리 앞질러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그런 점례의 얼굴은 늘 슬퍼 보였었다.

점례가 덕주를 싫다 하고 장터 마을의 장돌뱅이 소금장수한테 시집을 갔을 때, 덕주 어머니도 그런 말을 했었다. 점례는 사내를 수도 얼이 잡아먹고 과부가 될 팔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의 어머니는 점례의 휘움한 안개 눈썹과, 입 바람을 부는 것 같은 그녀의 뾰족한 취화구에 대해서도 정이 너무 헤프다거니 인덕(人德)이 없다거니 좋지 않게 말을 했다.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점례의 삶은 덕주 어머니의 예언대로 거의 들어맞았다. 그러나 덕주는, 점례가 그렇게 된 것은 그녀의 팔자가 그렇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의 탓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삼십 일 년만에 애써 점례를 찾은 것은 불행하게 된 그녀 앞에 그의 죄를 털어놓고 용서를 받고자 함이었다.

점례와 깡마른 노파가 싸움을 하고 있는 하숙옥 앞의 공터에 공주촌 사람들이 예닐곱 몰려들었다.

공주촌은 광주에서 포주읍으로 가자면 읍 조금 못미처 극락교를 건너기 전, 4차선의 고속화도로가 흑갈색의 철판처럼 곧게 뻗은 큰길에서, 비포장 황토 길로 꺾어 들면 아파트촌이 있고, 그 아파트촌에서 밋밋한 산등성지 쪽으로 2백 미터쯤 되는 거리에 재개발을 기다리는 폐촌처럽 을씨년스럽게 웅크리고 있다.

마을의 들머리에 시골 농협창고 같은 목욕탕이 있으나, 미군부대가 떠나고, 부대가 있던 그 자리에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부터 문을 닫았고, 문짝마저 떨어져나간 목욕탕 건물 옆에는 돼지우리처럼 칸막이 방들이 즐비하게 잇대어 있는 단층 바라크의 하숙옥이 여름 한낮의 더운 햇살 속에 길다랗게 뻗대어 있었다. 하숙옥 앞에는 유리에 빨간 페인트칠을 한 술집의 하늘색 포렴(布簾)이 찢어진 깃발처럼 바람에 펄럭였고, 술집 옆에는 담배 간판이 붙은 구멍가게와, 세탁소, 이발소, 미장원이 도토리 키재기 하듯 어깨를 바짝 대고 있었다.

공터는 이들 낡은 목욕탕 건물과, 하숙옥, 술집, 구멍가게, 세탁소, 이발소, 미장원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미군부대가 옆에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 공터엔 미군 지프와 트럭들이 빠져나갈 틈도 없이 빼곡하게 주차를 했으며, 창고 같은 목욕탕의 굴뚝에서는 젊은 욕망의 뜨거운 입김처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줄기차게 솟았고, 하숙옥에서는 군화발소리와 알아들을 수 없는 지껄임, 배고픈 창자를 빨래처럼 비틀어 쥐어짜는 듯한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공터에까지 낭자하게 흘러나왔다. 술집도 세탁소도 구멍가게도 이발소도 미장원도 온통 벅신거렸었다.

"개만도 못한 녀언! 양갈보질 이십 년에 누렁이, 깜둥이, 횐둥이 가지각색 골고루 새끼들을 퍼질러 나놓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지랄이여 지랄이! 점례 네년은 얼굴에 개가죽을 둘러쓴 게여, 그러니께 늙어 곯아빠져 갖고도 이 마을을 떠나지 않는 게여!"

깡마르고 키가 작은 초로 여인이 탱글탱글 유리조각이 깨지는 목소리로 욕질을 하였다.

"!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고 자빠졌네! 네 년은 영자 춘자 두 딸년 양공주 안 맹글았냐? 서방 가진 연이 뭣이 부족해서 두 딸년을 양갈보로 팔아 묵어? 그래 부부간에 코 큰 놈덜 똥구르마 끌다봉께 그 놈덜 똥까지도 좋아 뵈더냐? 그랑께 딸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양갈보질을 시켰구만!"

점례도 지지 않고 장작 패는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퍼부어 대며, 당장 춘자 어머니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동댕이를 칠 듯이 두 손을 휘저었다

구경을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싸움을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두 여자의 싸움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고 오물을 토하듯 한 더러운 욕설은 팽팽한 햇살과 함께 잘 버무려져 칙칙한 여름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하였다. 두 여자는 서로의 과거를 난도질했고, 쟁기의 날카로운 모습으로 갈아 엎어놓은 듯한 자신들의 지나온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대신, 힘이 더욱 살아난 듯 오히려 앙칼스러워졌다.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욕설이나 서로의 약점을 까발린 내용에 대해서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고들 두 여자의 과거와 현재를 자신들의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차라리 고들 두 여자가 빗물이 질퍽하게 괴어 있는 공터의 진흙 바닥에서 한바탕 붙들고 뒹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고들은 두 여자가 언제나 그랬듯이 똑같은 욕지거리를 푸짐하게 쏟아놓은 것으로 싸움을 끝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바탕 엉클어지게 되리라는 것은 기대하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구경꾼들 중에서 심장이 찐륵거리도록 흥미를 느끼는 것은 덕주 혼자뿐인 듯싶었다. 그는 담벽도 대문도 없이 앞이 툭 터진 하숙옥 옆, 목욕탕 건물의 그늘에 무릎이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서 점례와 춘자 어머니라는 여자가 뱉어내는 욕지거리들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는 곧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점례가 살아온 과거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코배기 똥이나 퍼주고 살었음시롱 뭣이 잘났다고 지랄이여!"

"그래, 양코배기 똥구르마 끄집어서 우리 식구 안 굶어죽고 살었다. 으쩔래! 그래도 네년모양으로 누렁이, 껌둥이, 횐둥이는 낳지 않었다, 으쩔래!"

"나도 그 짓 해서 시부모님 자식 새끼들 멕여 살렸다, ?"

"양갈보짓 해서 시부모 멕여 살렸응께 양갈보 효부 났구만 그려!"

"양코배기 똥 퍼주고 묵고 살었으면 그만이재, 두 딸년은 왜 양갈보를 맹글어!"

"그것들도 묵고 살라고 그랬단다, 으쩔래! 애비 에미 똥 푸는 짓 못허게 헐라고 말이여!"

", 효녀 심청이가 둘이나 나왔구먼!"

"네년의 껌둥이 흰등이 새끼덜은 뭣이 잘났다고 자랑이여, 그까짓 것덜도 자식이라고 자랑을 혀? 아이고 오메 하늘 부끄르와라!"

"왜 자식이 아녀? 이 에미헌티 을애나 잘 허는듸!"

점례는 결코 지지 않았다. 갈수록 힘이 더 솟구치는 것처럼 보였다.

정례와 춘자 어머니가 언제나 티격태격 싸움을 하게 된 발단은, 마을 사람들한테 미국에 가 있는 서로의 자식들 자랑을 하다가 시비가 붙곤 한 것이었다. 점례의 검둥이 흰둥이 두 아들이 미국으로 아버지를 찾아간 것처럼. 양공주가 된 영자 춘자도 혹인 병사를 따라 태평양을 건넌 것이다.

덕주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연기를 빨다가 심한 기침을 쏟고 말았다. 기침소리에 마을의 구경꾼들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려왔다.

담배를 구두로 문질러 끄고 조심스럽게 숨을 쉬었으나 기침은 멎지 않았다. 기침 소리에 가슴이 컹컹 울리는 것만 같았다.

덕주가 목욕탕 건물의 얼은 그늘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두 어깨를 들먹이며 고개를 세운 무릎 사이로 꿍겨박고 버르적거리듯 기침을 토해내고 있을 때. 담배 가게 앞에서 자랑스럽게 햄버거를 먹고 있던 초로여인의 남편 춘자 아버지가 공터로 천천히 걸어나와 그의 부인을 끌고 갔다.

춘자 아버지는 오른손에 햄버거를 들고 왼손으로 부인의 손목을 잡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싸움이 끝나자 기침도 멎었다.

싸움이 끝나고 점례가 두 팔을 휘저으며 공터에서 마을 안 길로 사라지자. 하숙옥의 여주인이 유일한 투숙객인 덕주에게 다가와서, 두 여자의 욕설에서 들을 수 없었던, 그녀들이 살아온 과거를 양파 껍질 벗기듯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숙옥의 여주인한테서 점례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죄책감에 오그라든 덕주의 심장은 꺼져가는 생명처럼 가까스로 팔딱거렸다, 그는 차마 고개를 쳐들고 태양을 마주 보기조차 부끄러웠다.

그는 다시 기침을 쏟으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하숙옥의 음습하고 무더운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담배 연기로 칙칙하고 회누르스름하게 색깔이 바랜, 무덤 속 같은 직사각형 방의 벽지 틈새에, 알아들을 수 없는 미군들의 지껄임과 배고픔에 헐떡거리는 점례의 숨소리가 때 자국처럼 배어 있는 듯싶었다.

덕주는 그 동안 점례의 목숨이 시나브로 꺼져 가는 듯한 비명을 수없이 들으면서 살아왔다, 그녀의 비명은 보이지 않는 원한의 날카로운 화살로 그의 심장에 무수히 꽂혀왔으며, 그 때문에 그의 지난 삶의 절반은 활터의 과녁처럼 고통의 구멍들이 수없이 숭숭 뚫리게 되었다.

그가 살아온 58년의 생애에서, 육이오까지의 스물 다섯 해는 죄를 짓는 기간이었고, 나머지 서른 세 해 중에서 절반은 괴로운 양심의 가책으로, 그리고 지난 십수 년간은 점례를 찾아 헤매느라고 방황하다 지쳐버렸다.

그러나 그가 점례를 찾아 나선 것은 그 자신을 위한 처사였다. 이미 그는 점례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도 없었고, 속죄의 댓가로 그녀에게 베풀어 줄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그녀에게 용서를 비는 것뿐이었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차마 눈감고 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점례를 찾아 나선 것은 수치스러운 이기심이 아니겠는가.

점례의 원한 맺힌 화살은 덕주가 살인죄로 15년 동안 형무소의 감방에 갇혀 있을 때도 그 두꺼운 벽을 뚫고 비명처럼 고의 심장에 꽂혀왔다. 그리고 15년만에, 차표(車票)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되었을 때도, 그녀의 화살은 하늘에서 흑은 인파가 북적는 대낮의 큰 거리에서, 근로자 합숙소의 천장과 벽에서 쉴새없이 그의 심장과 눈과 목 줄기를 향해, 푸른 칼날이 허공을 베는 소리를 내며 무섭게 날아왔다.

피붙이라고는 아무도 없고, 이미 그의 얼굴조차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만 살고 있는 고향 달밭에 가봤지만 점례의 행방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육이오가 끝나고 줄포에 미군이 머물게 된 뒤 달밭을 떠나 양공주가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그후 십수 년 동안 버려진 비닐봉지처럼 병들고 지친 몸으로 막일 공사판을 떠돌음 하다가, 우연히 점례의 먼 친척 되는 사람을 만나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을 알게 된 것이었다.

덕주는 하루 전에 공주촌인 이곳 하숙옥에 들어왔으며, 점례가 살고 있음을 확인하고도 차마 그녀 앞에 얼굴을 나타내지 못하고 몸과 마음을 웅크리고만 있던 중이었다.

덕주는 25년 전에 살인을 하였다. 아내를 죽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죽인 아내한테는 그렇게 심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점례한테 저질렀던 잘못에 비한다면 아내의 죽음은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하였다. 어쩌면 아내를 죽인 죄과까지도 점례에 대한 잘못으로 가중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는 그를 배신했다, 지서(支署)에서 당직 순찰을 하던 날 밤, 몸이 풀어놓은 실타래처럼 나른하고 찌뿌드드해서, 기운을 돋우느라 소주 몇 잔 마시고 일찍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그의 상사인 지서장과 함께 벌거숭이가 되어 뒤엉켜 있었다. 그는 메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겼는데 아내만 죽고 지서주임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부엌문을 박차고 튀어나가 살아났다

그는 아내를 죽인 것도 점례한테 저지른 죄업이라고 생각했다.

남쪽으로 밀려 내려갔던 경찰이 돌아와, 지리산 공비(共匪)토벌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면당 인민위원을 지낸 점례의 남편은 집에 숨어 있었다.

지서의 순경이었던 덕주는 점례의 남편이 그의 집 벽장에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점례네 뒷집에 사는 절뚝발이 통메장이가 덕주에게 밀고를 해왔을 때, 그는 문득 일 년 전 겨울 그녀를 기다리며 밤새도록 각씨 바위 모퉁이 상여집에서 떨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온몸이 달빛에 흥건하게 젖는 순간처럼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다. 그날 밤에는 온통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눈이 내렸었다. 장터 마을 장돌뱅이 소금 장수한테 시집을 가기로 결정을 한 점례를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만나보고 싶었지만, 끝내 그녀는 나와주지 않았다. 밤새도록 떨며 오지 않는 점례를 기다리다가 지쳐 수북히 눈에 묻혀 집으로 돌아오면서, 덕주는 싸늘한 복수를 생각했다, 그날 밤 이후 그의 심장은 겨울의 산처럼 비정하게 얼어 붙어버렸는지도 몰랐다.

서울이 탈환되고, 그가 부산에서 고향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집에 남아 있었던 어머니와 동생이 경찰가족이라는 이유로 생명을 빼앗긴 뒤였는지라, 덕주는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작전이 연일 계속되었기 때문에, 수면부족으로 두 눈은 언제나 진달래 꽃잎처럼 벌겋게 핏발이 섰고, 신경줄은 바스락 하는 소리만 들려도 방아쇠를 긁어당길 것처럼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덕주를 피했다. 그가 낮에 총을 메고 술에 취해 달밭에 나타나면 마을 사람들은 고샅에도 나오지 않고 집 안에만 들어박혀 있었다.

그 무렵 통메장이한테서 밀고를 받은 덕주는, 새벽에 혼자 총을 메고 달밭에서 2킬로쯤 떨어진 장터마을 점례네 집을 기습하여 점례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점례 혼자 자고 있었다. 그러나 덕주는 점례의 남편이 벽장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왔으므로 실망하지 않았다. 총부리로 이불을 걷고 점례의 얼굴에 플래시를 비췄다. 점례는 두 팔로 가슴을 붙안은 채 학질을 앓는 것처럼 떨었다. 눈물을 받아먹고 큰다는 눈 밑 검정사마귀까지도 파르르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손전등 불빛 속에서 몸을 웅크릴 수 있는 데까지 조그맣게 웅크리고 떨고 있는 점례는 사람이라기보다 한 마리의 횐 토끼처럼 보였다. 떨고 있는 그의 옆에는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가 비둘기 날개 같은 얼굴로 자고 있었다. 덕주는 벽장문을 열어 젖히고 총구와 플래시불빛을 동시에 들이댔다. 점례의 남편은 두 발을 쭉 펴고 잠들어 있다가, 덕주가 손전등의 불빛으로 얼굴을 비추며 총부리로 옆구리와 머리를 쿡쿡 찌르자, 소금물 먹은 미꾸라지처럼 사지를 휘저으며 일어나 앉았다. 덕주는 총부리를 점례 남편의 양미간 살가죽에 갖다대고 낮게 다그치는 목소리로 벽장에서 내려오라고 하였다.

점례의 남편이 벽장에서 생각보다는 침착하게 내려오자, 덕주는 준비해 간 철사 줄로 그의 두 손목을 묶고 뻰찌로 죄었다. 두 다리도 묶었다. 철사 줄이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갈 만큼 뻰찌로 바짝 죄자 그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짧게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과 발을 묶은 다음 점례가 벗어놓은 버선짝을 입 속에 처넣었다, 덕주가 그녀의 남편을 철사 줄로 묶고 있는 동안 점례는 떨고만 있었다. 덕주는 손발이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그녀의 남편을 발로 걷어찼다. 그는 굼벵이처럼 방 옆으로 넘어졌다. 덕주는 이불로 그를 덮어씌웠다. 그리고 손전등 불빛으로 물총 쏘듯 점례의 얼굴에 퍼붓고 나서 덕주 자신의 얼굴에 비췄다. 점례한테 자신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점례는 비명과도 같은 경악의 소리를 토해냈다. 덕주는 그 소리에 뼛속으로부터 피어오르는 것 같은 쾌감을 맛보았다. 그는 잔인하고 흉칙스럽고 만족한 미소를 쥐어짰다. 그리고 총과 손전등을 방바닥에 놓으며 점례를 덮쳤다. 그녀는 남편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를 알아본 순간부터 그녀는 떨지 않았다. 덕주는 그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남편을 살려주겠노라고 약간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처음엔 몸을 새우처럼 도사리며 심하게 버둥거렸으나, 남편을 살려주겠다고 되풀이한 말에 체념한 듯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는 점례의 배 위에서 그녀의 남편이 온몸을 흔들어 이불을 들썩이며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점례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왼손으로 바지를 올리고 오른손으로 총을 들며 밖으로 나왔다.

그 뒤 덕주는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참가했으며,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나 산천이 그의 마음처럼 황량하고 냉혹하게 얼어 붙어버린 한겨울, 눈에 핏발이 가시지 않은 채 고향에 돌아왔을 때, 점례의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덕주가 토벌대가 되어 떠난 다음날, 자기 집 감나무에 목을 매달아 스스로 죽었다고 하였다.

덕주는 그때 점례 남편의 죽음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 하루하루의 삶이 죽음의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죽음을 너무 많이 보아 왔고 자신도 토벌 작전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의 수를 헤아리기에도 지쳐 있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한다거나, 그 수를 헤아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무의미하게 생각되어졌다. 그는 이미 거의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뽕은 그의 주먹이나 발처럼 느껴졌고, 주먹질을 하거나 발길질을 하는 기분으로 방아쇠를 잡아당기곤 하였다. 때로는 그의 온몸이 총으로 변해버린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되자, 총과 그 자신을 구별하기조차 어려웠다. 그 무렵 그가 믿을 수 있고 자랑하는 것이란 오직 그의 무기뿐이었다. 그의 무기는 어떤 경우에도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점례는 남편이 죽은 여덟 달 후에 사내 아이를 낳고, 한 달쯤 있다가, 시부모와 두 어린 아이들을 남겨둔 채 집을 나가버렸다.

덕주는 점례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도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느끼지 못했다. 설사 그녀가 남편의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도 조금도 마음 언짢아할 그가 아니었다.

달밭과 장터마을 사람들은, 점례 남편이 목을 매 죽은 것도, 점례가 젖먹이 아이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간 것도 모두 덕주 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덕주를 비난하는 말 한마디 뱉어내지 못했다. 그는 대낮부터 술을 마셔 목에 힘을 주어 불콰해진 얼굴을 바짝 쳐들고 마을 사람들 앞을 활개치고 다녔다.

그가 두 볼에 도화꽃이 핀 해반들한 여자와 결혼을 하여 지서가 있는 마을로 옮긴 것은 점례가 집을 나가고 2년쯤 지나서였다. 그때까지도 점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는 돌아오지 않은 대신 그녀의 시부모한테 매달 꼬박꼬박 네 식구가 살아갈 만큼의 돈을 부쳐오고 있었다. 얼핏 바람결에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물집 작부가 되었다고도 하였고. 갈보짓을 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덕주는 점례가 갈보가 되었거나 거렁뱅이가 되었거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가 얻은 도화색 핀 여자가 점례보다 훨씬 더 잘나고 나긋나긋했기 때문이다.

다시 기침이 쏟아졌다. 목구멍을 쥐어짜는 것 같기도 하고 쇠갈퀴로 목구멍에서부터 창자까지 피가 차도록 긁어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침소리가 그의 귀에는 마치 깊은 골짜기를 쨍글쨍글 울리는 총소리처럼 들렸다.

총구에서 불을 뿜듯 계속 기침이 쏟아졌다. 그는 기침소리가 밖으로 크게 깨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배를 방바닥에 깔고 엎디어 두 손으로 어깨를 힘껏 그러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보건소에서 무료로 준 약이 호주머니에 있었으나 억지 않았다.

얼마 후 기침이 멎자, 방 안은 마치 한바탕 교전(交戰)이 끝난 골짜기의 고즈넉한 정적처럼 조용했다. 그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서 벽에 걸려 있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한바탕 기침을 토하고 난 뒤라 얼굴이 구절초 꽃잎처럼 노래졌다. 두 눈 속까지도 노랗게 물든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에 이미 핏발은 가셔버린 지 오래였다. 어쩌면 눈에 핏발이 사라진 뒤부터 그가 낙엽처럼 무기력해져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가 점례한테 저질렀던 일을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두 눈의 핏발이 점차 사라져갔다.

덕주는 구두를 꿰고 하숙옥 앞 공터로 나갔다. 사흘 밤의 숙박비를 선불했기 때문에 하숙옥의 뚱뚱한 여주인은 그의 외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목욕탕 건물의 그늘 밑에, 조금 전 점례와 싸움을 하던 할망구를 끌고 간 춘자 아버지가 블럭벽에 어슷하게 기대서서 아이들처럼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게, 미국에 있는 딸이 보내주었음직한, 독특한 해작바지에 색깔이 알록달록한 반팔 셔츠를 받쳐입었으며,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에 횐 고무신을 꿰고 있었다.

하숙옥의 뚱보 여주인의 말로는, 춘자 아버지는 아이들처럼 햄버거를 들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 보는 앞에서 먹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옛날 똥장군을 끌고 미군들의 똥을 푸고 살 때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조 장군, 조 장군 하며 불렀었는데 요츰에는 조햄벅, 조햄벅한다는 것이었다.

덕주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는 그가 마치 유랑극단에 나오는 바보 주인공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 속으로 피식피식 웃었다. 어쩌면 그는 일부러 햄버거를 들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랑스럽게 먹는 것으로 하여, 미군들의 똥을 퍼주고 살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잊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숙옥의 뚱보 여주인 이야기로는 요즈막 그들 부부는 흑인 병사를 따라 미국에 간 두 딸들 덕으로 집도 이층 양옥으로 새로 짓고, 먹는 것 입는 것 걱정 없이, 조햄벅이라고 부르는 것을 즐거워하며 산다고 하였다.

덕주는 조햄벅의 앞을 지나, 여름 한낮의 햇살이 빈틈없이 가득 괴어 있는 공터를 가로질러, 때묻은 하늘색 포렴(布簾)이 펄럭이는 술집으로 향했다, 점심 대신 소주나 한잔 마시고 싶어서였다.

술집 안은 밖에서 보기와는 너무 딴판이었다, 생각보다 널찍한 홀에는 좌판 대신에, 비록 때가 묻고 비닐커버가 너덜너덜 떨어지긴 했어도 낡은 나무의자와, 빨간 페인트를 칠한 탁자들이 여러 개 적당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네 벽마다에는 외국의 여자배우들 사진과 누드 사진들이 촘촘히 파리똥이 박힌 채 여러 개 붙어 있었고, 반원의 카운터 위에선 낡은 선풍기가 덜컹거리며 돌아갔다. 밖에서 보기엔 시골의 주점같이 생각되었으나 안은 도시의 바아처럼 꾸며져 있었다.

출입구의 밀창문을 열어놓았는데도 술집 안은 어두컴컴했다. 술을 마시는 손님들은 하나도 없었고, 마을에 사는 초로 여인네들 넷과, 옆집 세탁소 남자, 이발소 주인 등 예닐곱 명이 선풍기를 둘러싸고 앉아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술집이라기보다는 복덕방 같은 분위기였다.

덕주는 그들과 떨어진 구석자리에 앉았다. 주인인 듯싶은 점례 나이 또래의 오십대 여자가 다가와 선 채 말없이 덕주를 내려다보았다. 여자에게서 화장냄새가 역겹도록 풍겼다. 그녀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새도우를 검게 칠하고 립스틱까지 발랐다. 덕주가 소주 있느냐고 했더니 말없이 돌아섰고 잠시 후에 두 홉들이 소주 한 병과, 작은 유리 술잔, 된장에 오이를 썰어 박은 접시를 놓고 갔다.

덕주가 두 잔 째 술을 기우고 있을 때, 뜻밖에 점례가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들어서자 선풍기률 둘러싸고 앉아서 큰 소리로 잡담들을 늘어놓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자리를 비워주며 반갑게 맞았다. 점례는 점심을 막 먹고 오는 것인지 술집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놓여 있는 성냥 통에서 성냥개비 하나를 집어 허리를 동강내더니 쩝쩝 입맛을 다셔대며 이빨을 쑤셔댔다. 덕주는 점례가 그를 알아볼까 두려워 애써 고개를 숙였다.

"아이, 옥자야, 나 쐬주 한벵 주라!"

점례는 의자를 끌어다 선풍기와 가까운 탁자 옆에 비집고 앉으며, 술집 여주인에게 소리쳤다.

"쪼니워카 시절이 그리워서 몸쌀이 나겄당께! 우리헌테는 그때가 황금 시절이었든개벼!"

점례는 그러면서 옆에 앉은 세탁소 남자의 와이셔츠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나꿔채듯 하여 뽑아 필터를 잘근거리며 입에 물고 불을 댕기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점례 저 잡것, 또 바다 건너간 쌕스폰쟁이 쪼지 생각이 나는 모양이구나

두 홉들이 소주 한 병과 안주 접시를 들고 나오며, 술집 주인이 비아냥거렸다.

"쬬지 생각도 간절허고, 토미 놈도, 쩍도, 무하마뜨도, 로퍼뜨도, 리짜드도---그 엠병헐 놈들이 다 환장허게도 그립당께. 고래도 말이여, 젤루 그리운 건 역시 첫사랑이당께! 내 팔자를 개 창시처럼 횟가닥 뒤집어 놓은 그 남자."

점례는 타는 담배를 탁자 위에 놓고, 소주를 거푸 두 잔 째 숨돌릴 여유도 없이 목구멍으로 털어 넣더니, 술병과 잔을 옆에 앉은 세탁소 남자 앞으로 옮겼다.

"한 잔씩 빨어! 어야, 옥자야, 쏘주 한벵 더 있어야 쓰겄다. 쪼니워까는 못 마셔도 쐬주라도 빨자. 이 집도 쪼니워까 시절이 좋았제,,,,,,."

"대낮부터 무순 술을-,,,,, 아까 춘자어메흐고 쌈해서 목구멍에서 불나는 모양이구만!"

좌중의 여자들 가운데서 누구인가 말했다.

"옥자야, 언능 술 더 갖고 와! 이 마을에서는 그래도 이 오점례 신세가 상팔자 아니여? 그까짓 똥방군 조햄벅이네 보담이야 낫제 ! 미국에 간 깜둥이 흰둥이 두 아들이 출세해 갖고 매달 에미 용돈으로 백 딸라씩 보내 주겄다, 본남편한테서 난 큰아들 서울에서 택시 운전수 허겄다, 둘째 놈 싸우디 가서 돈 벌겄다, 내가 그냥 복방석에 자뿌라져 뿌렀당께 ! 그런드;도 우리 아들덜을 조햄벅이네 딸헌티 비교해? 택도 없어! 클씨 저번 때는 우리 깜둥이헌테서 편지가 왔는듸, 요븐 가을에 즈그 내외가 한국에 나와서 나를 데리꼬 가겄다고 했당께 ! 자식 덕분에 비행기 타고 팔자에 없는 미국 귀경허게 생겼어! 또 우리 흰둥이 새끼는 어쩌고,,..., 그놈은 비까번쩍헌 차가 두 대나 되고 대궐 같은 집에서 산다니께! 우리 네놈 새끼들만 생각허면 옴찔옴찔 오져죽겄어.

점례는 어깨를 들먹이기까지 하면서 좌중의 마을 친구들에게 술을 따라 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점례의 그 같은 자랑을 텔레비전의 화장품 선전만큼이나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점례는 좋겄어!"

"점례가 부러워서 죽겄당에!"

"오 점례 혼자 우리들 한을 다 풀었어!

"점례는 우리 마을의 스타랑께!"

좌중의 친구들이 술잔을 비울 때마다 한마디씩 뱉어냈고, 그때마다 점례는 자랑스러운 듯 어깨춤을 추듯 목을 휘저으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래도 조햄벅이 할망구는 내가 양갈보질 해서 갈등이 흰둥이 낳았다고 숭보지 않든가?"

"그럼시롱 두 딸년들은 왜 그 짓을 시켜! 괜히 점례가 샘이 나서 그런 거니께 마음 쓰지 말어. 시방 이 마을에서 점례를 숭보고 손가락질헐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려? 점례나 조함바꾸네나 다 안 굶어죽을라고 헌 짓이었으니께------공주촌 사람덜치고 양키들 X안 빨고시리 춘향이처럼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이 누가 있간듸? 쪼니워까며, 양담배며, 깡통 덕에 살아온 우리덜이 아닌감? 조함바꾸네는 양키들 똥 덕분에 살었고 말여. 점백이는 몸을 팔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양키들헌테 쓸개를 판 거여. 몸을 판 거나 정신을 판 거나 매한가지계 머. 모두 다 쌤쌤이여. 굶어죽지 않을라고 한 짓이였응께,,,,,, 공주질해 갖고 떼돈 번 사람 있간듸?"

술집 주인 옥자의 말에

"그 짓 안 했으면 우리 시부모 두 새끼들 굶어죽었을 것이여."

하고 점례가 갑자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조햄벅이네 부인이 손목을 팔랑개비처럼 돌려 목덜미 안에 손바람을 만들어 넣으며 쪼작걸음으로 옥자네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좌중을 한번 두렷두렷 둘러보더니, 의자를 끌어다 점례 옆에 비집고 앉았다.

"옥자네야, 나 션한 맥주 한 벵 주소. 한여름에 목타서 워치께 쐬주를 마신당가 원!"

춘자 어머니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점례의 옆얼굴을 빳빳한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아니구만. 사람이 모두 멫인가, 나까정 야들이구만. 그려 쐬주벵 치워 뿔고 히야시된 것으로 야들병 질. 우리 영감 함바꾸만 처묵는듸, 나도 기분 좀 내야 쓰겄어!"

춘자 어머니가 짧은 목을 길게 캐고 손까지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그러자 점례는 소주병을 쥐어짜듯 하여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도 깡그리 빈 잔에 따뤄 마시더니 벌떡 일어섰다.

"옥자야, 엠병헐, 여기 쪼니워까 한 빡스 내와라. 이 집구석에 없으면 비행기 타고 미국에라도 가서 가져와!"

하고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울부짖듯 소리쳤다.

덕주가 또 필시 두 여자가 싸옴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술값을 계산하고 슬며시 밖으로 나와버렸다.

하숙옥의 답답하고 무더운 방으로 돌아온 그는 점례에 비해 너무나 무기력하고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고. 그녀를 만나려고 했던 마음이 희미하계 움츠려들고 말았다. 점례는 참나무처럼 굳세고, 싸움터에서 이기고 돌아온 병사처럼 떳떳하게 살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생각되어졌다. 그녀를 만나면

오히려 그녀 쪽에서 자기를 그렇게 만들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기까지 하여, 서둘러 그녀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고 싶었다.

점례한테 용서를 비느니 차라리 서둘러 달밭에 돌아가. 고향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마음 속에 겹겹이 흘맺힌 회한(悔恨)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점례가 거리낌없이 사는 것을 본 그는, 지난 30여 년 동안스스로 묶여 있었던 가책의 무서운 쇠사슬로부터 풀려나는 것 같은 마음 후련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는 30년 전 그의 총부리 앞에서, 비바람에 떨어져 짓밟힌 감 꽃처럼 무수히 숨져간 사람들의 환영들도 뿌리쳐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덕주는 오랜만에 마음이 가벼워져 서둘러 고향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향에 달려가고 싶은 발싸심 때문에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꼭두새벽 미명 이 되기도 전에 하숙옥에서 나왔다. 새벽 바람을 헤치며 걷는데도 이상하게 단 한번도 기침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생이의 잎을 씹은 것처럼 목구멍 속이 개운했다.

덕주는 십리길이 빠듯한 포주역까지 나가 첫차를 탈 욕심으로 새벽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때 풀잎 같은 마음으로 점례를 사랑한, 지난 그의 인생의 가장 아름다왔던 순간을 천천히 음미하듯, 기분 좋은 한여름의 새벽 공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이면서, 고향 뒷산의 양지쪽에 평화롭게 누워 잠이 든 자신의 모습을 머리 속에 부지런히 그려 넣었다.

비포장 황토 길을 지나, 발바닥이 쩍쩍 달라붙는 4차선 포장도로에 이르렀을 때 소채를 가득 싣고 힘겹게 손수레를 끌고 가는 여자와 만났다. 머리에 큰 타월을 쓴 것을 보고 여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덕주는 손수레 앞을 그냥 지나치려다가 끙끙거리며 너무 힘들어하며 끌고 가는 것을 보고 가볍게 한 손으로 밀어주었다. 그러자 여자가 어둠 속으로 뒤를 돌아다보며 숨가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목소리로 보아 젊은 여자 같지가 않았다.

"새벽부터 어디까지 가시우?"

덕주가 손수레를 밀고 있는 한쪽 팔에 힘을 쏟으며 울었다.

"역에 가서 도회지 장사꾼들헌테 팔 꺼라우."

여전히 헐떡거리는 목소리였다.

"이렇게 한 구루마 끌고 가면 얼마나 버시오?"

"넘의 밭에서 새벽마닥 한 구루마씩만 떼어다 파니께, 게우 내 혼자 목구멍 풀칠이나 허지라우."

"혼자라니, 식구는 없소?"

"자식이 넷이나 있었는듸, 에미 몸뚱이가 걸레가 되도록 애써 키워논께, 계 앞길 가릴 만허자 모부덜 에미 품을 떠나가쁠덩만. 뒈졌는지 살었는지 기별조차도 없당께요!"

"불효막심 헌 아들덜이로군요. "

"말짱 이 에미 잘못이지라우. 내 잘못이니께 그 놈덜 원망 안 허요."

여자는 푸념처럼 숨가쁜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잠시 손수레를 멈추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깊숙이 머리를 싸맨 타월을 벗겨 얼굴과 목덜미의 땀을 닦았다.

아스팔트 위에 미명의 마지막 두꺼운 어둠이 괴로운 삶의 껍질처럼 천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덕주는 수레를 끌고 있는 불쌍한 여자와, 아들 자랑으로 두 어깨를 춤추듯 들먹이던 점례를 비교하면서 몇 번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순간이었다.

"댐배 한대 피우고 천천히 갈라니께 먼첨 가지씨요."

여자가 담을 닦아낸 타월을 툭툭 털며 덕주를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 그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동쪽 신작로 끝에서부터 트여오는 아침의 하늘빛에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점례가 분명했다.

"내 걱정 마시고 먼첨 가시라니께요."

그제서야 점례의 때까치처럼 꺽꺽 울리는 목소리가 화살처럼 그의 심장에 섬뜩하게 꽂혀 온 것이었다. 갑자기, 점례가 30년 전 어둠 속에서 그가 들이댄 총구를 두려워하며 떨었던 것처럼, 그 자신이 그녀 앞에서 무참하게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덕주는 날이 밝아오는 것이 두려웠다. 고향에 돌아가는 일이 천당에 가는 것보다 더 어렵게 생각되어지면서, 다시 기침이 쏟아지려고 하였다.

자동차가 다급하게 클랙슨을 울리며 미명을 가르고 달려오자, 그는 헤드라이트를 피해 몸을 돌렸다.

"걱정 마시고 먼첨 가시라니께요."

점례가 담배를 피워물고 새벽 바람 속에 연기를 내뿜으며 덕주의 옆으로 왔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손수레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곳에서 도망치듯 손수레를 끌었다.

"나 혼자서도 문제없이 끌고 갈 수 있으니께 냅두시라니께요."

덕주는 점례가 한사코 만류하는 것을 못 돌은 척하오 더 빠른 속도로 손수레를 끌었다. 채소를 가득 실은 손수레는 점례가 살아온 삶처럼 무거웠다. 아니, 덕주 자신이 지난 30여 년 동안 짓눌러온 가책의 무게만큼이나 짐스러웠다,

새벽부터 둘이서 무거운 손수레를 끌며 밀며 지나온 아스팔트 길의 등뒤엔 희번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으나, 수레가 도착해야 할 포주역의 서쪽 하늘은 아직 두꺼운 어둠 속에 덮여 있었다.

"혼자서도 문제없는듸."

점례는 잰걸음으로 손수레를 따라오며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였다.

 

 

 

 

 

 

 

 

 

 

 

문순태

 

1

 

뒤로는 겸재의 실경산수(實景山水) 일지병을 펼친 듯 기암절벽(奇巖絶壁)의 월악이 둘러 있고, 앞으로는 무덤처럼 밋밋한 무등산이, 구름인지 산인지 분별할 수조차 없을 만큼 짙은 갈뫼빛 안개에 싸여 부옇게 출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