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산골

산 골 -김유정

산 머리 위에서 굽어보던 햇님이 서쪽으로 기울어 나무에 긴 꼬리가 달렸건만 나물 뜯을 생각은 않고, 이쁜이는 늙은 잣나무 허리에 등을 비껴대고 먼 하늘만 이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 섰다. 하늘은 맑게 개고 이쪽 저쪽으로 뭉글뭉글 피어 오른 흰 꽃송이는 곱게도 움직인다. 저것도 구름인지 학들은 쌍쌍이 짝을 짓고 그새로 날아들며 끼리끼리 어르는 소리가 이 수퐁까지 멀리 흘러내린다. 각가지 나무들은 사방에 잎이 우거졌고 땡볕에 그 잎을 펴들고 너울너울 바람과 아울러 산골의 향기를 자랑한다. 그 공중에 날으는 꾀꼬리가 예쁘고―노란 날개를 팔딱이고 이 가지 저 가지로 옮아 앉으며 흥에 겨운 행복을 노래 부른다. ―고 ―이! 고이 고―이! 요렇게 아양스리 노래도 부르고― ―담배 먹구 꼴 비어! 맞은 쪽 저 바다 밑은 필시 호랑님의 드나드는 굴이리라. 음침한 그 위에는 가시덤불 다래덩굴이 어지러이 엉클리어 지붕이 되어 있고 이것도 돌이랄지 연록색 털복숭이는 올망졸망 놓였고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뻐꾸기는 날아와 그 잔등에 다리를 머무르며― ―뻐꾹! 뻐꾹! 뻐뻐꾹! 어느덧 이쁜이는 눈시울에 구슬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물 바구니가 툭 하고 땅에 떨어지자 두 손에 펴 들은 치마폭으로 그새 얼굴을 폭 가리고는 이쁜이는 흐륵흐륵 마냥 느끼며 울고 섰다. 이제야 후회하노니 도련님 공부하러 서울로 떠나실 때 저두 간다구 왜 좀더 붙들고 늘어지지 못했던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만 미어질 노릇이다. 그러나 마님의 눈을 기어 자그만 보따리를 옆에 끼고 산 속으로 이십 리나 넘어 따라갔던 이쁜이가 아니었던가. 과연 이쁜이는 산등을 질러 갔고 으슥한 고갯마루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넘어 오시는 도련님의 손목을 꼭 붙잡고,

『난 안 데려가지유!』

하고 애원 못한 것도 아니니 공연스리 눈물부터 앞을 가렸고 도련님이 놀라며,

『너 왜 오니? 여름에 꼭 온다니까, 어여 들어가라.』

하고 역정을 내심에는 고만 두려웠으나 그래도 날 데려가라구 그 몸에 매어 달리니 도련님은 얼마를 벙벙히 그냥 섰다가,

『울지 말아 이쁜아, 그럼 내 서울 가 자리나 잡거든 널 데려가마.』

하고 등을 두드리며 달래일 제 만일 이 말에 이쁜이가 솔깃하여 꼭 곧이 듣지만 않았던들 도련님의 그 손을 안타까이 놓지는 않았던 걸－.

『정말 꼭 데려가지유?』

『그럼 한 달 후에는 꼭 데려가마.』

『난 그럼 기달릴테야유!』

그리고 아침 햇발에 비끼는 도련님의 옷자락이 산등으로 꼬불꼬불 저 멀리 사라지고 아주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이쁜이는 남이 볼까하여 피어 흩어진 개나리 속에 몸을 숨기고 치마끈을 입에 물고는 눈물로 배웅하였던 것이 아니던가, 이렇게도 철석같이 다짐은 두고 가시더니 그 한 달이란 대체 얼마나 되는 겐지 몇 달이 거듭 지나고 돌도 넘었으련만 도련님은 이렇다 소식 하나 전할 줄조차 모르신다. 실토로 터놓고 말하자면 늙은 이 잣나무 아래에서 도련님과 맨 처음 눈이 맞을 제 이쁜이가 먼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니련만－이쁜이 어머니가 마님댁 씨종이고 보면 그 딸 이쁜이는 잘 따져야 씨의 씨종이니 하잘것없는 계집애이어늘 이쁜이는 제 몸이 이럼을 알고 시내에서 홀로 빨래를 할 제이면 도련님이 가끔 덤벼들어 이게 장난이겠지, 품에 꼭 껴안고 뺨을 깨물어 뜯는 그 꼴이 숭굴숭굴하고 밉지는 않았으나 그러나 이쁜이는 감히 그런 생각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 날도 마님이 구미가 젖히셨다고 애 이쁜아 나물 좀 뜯어온, 하실 때 이쁜이는 퍽이나 반가웠고 아침밥도 몇 술로 겉날리고 바구니를 동무 삼아 집을 나섰으니 나이 아직 열 여섯이라 마님에게 귀염을 받은 것이 다만 좋았고 칠칠한 나물을 뜯어 드리고자 한사코 이 험한 산 속으로 기어올랐다. 풀잎의 이슬은 아직 다 마르지 않았고 바위 틈바구니에 흩어진 잔디에는 커다란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서 떡 머구리 한 놈을 우물거리고 있는 중이매 이쁜이는 쌔근쌔근 가쁜 숨을 쉬어 가며 그걸 가만히 들여다보고 섰다가 바로 발 앞에 도라지 순이 있음을 발견하고 꼬챙이로 마악 캘랴 할 즈음 등뒤에서 뜻밖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어디로 따라왔던가 도련님은 물푸레나무 토막을 한 손에 지팡이로 짚고 붉은 얼굴이 땀 바가지가 되어 식식거리며 그리고 싱글싱글 웃고 있다. 그 모양이 하도 수상하여 이쁜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보니 도련님은 좀 면구 쩍은지 낮을 모로 돌리며 그러나 여일히 싱글싱글 웃으며 뱃심 유한 소리가.

『난 지팡이 꺾으러 왔다－.』

그렇지만은 이쁜이는 며칠 전 마님이 불러 세고 너 도련님하구 같이 다니면 매맞는다 하시던 그 꾸지람을 얼른 생각하고,

『왜 따라 왔지유‥‥‥ 마님이 아시면 남 매맞으라구?』

하고 암팡스리 쏘았으나 도련님은 귓등으로 듣는지 그래도 여전히 싱글거리며 뱃심 유한 소리로,

『난 지팡이 꺾으러 왔다－.』

그제서야 이쁜이는 성을 안 낼 수가 없고,

『마님께 나 매맞어두 난 몰라.』

혼잣말로 이렇게 되알지게 종알거리고 너야 가든 말든 하라는 듯이 고개를 돌리어 아까의 도라지를 다시 캐노라니 도련님은 무턱대고 그냥 와락 달려들어,

『너 맞는 거 나도 알지!』

이쁜이를 뒤로 꼭 붙들고 땀이 쪽 흐른 뺨을 또 잔뜩 깨물고는 놓질 않는다. 이쁜이는 어려서부터 도련님과 같이 자랐고 같이 놀았으되 제가 먼저 그런 생각을 두었다면 도련님을 벌컥 떠다밀어 바위 너머로 곤두박히게 했을 리 만무이었고 궁둥이를 털고 일어나며 도련님이 무색하여 멀거니 쳐다보고 입맛만 다시니 이쁜이는 그 꼴이 보기 가여웠고 죄를 저지른 제 몸에 대하여 죄송한 자책이 없던 바도 아니언만은 다시 손목을 잡히고 이 잣나무 밑으로 끌릴 제에는 온 힘을 다하여 그 손깍지를 벌리고 야단친 것도 사실이 아닌 건 아니나 그러나 어딘가 마음 한 편에 앙살을 피면서도 넉히 끌리어 가도록 도련님의 힘이 좀더－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이쁜이가 얼굴이 빨개지며 앙큼 스러운 생각을 먹은 것은 바로 이때이었고,

『난 몰라 마님께 여쭐 터이야 난 몰라!』

하고 적잖이 조바심을 태우면서도 도련님의 속맘을 한 번 뜯어보고자,

『누가 종두 이러는 거야?』

하고 손을 뿌리치며 된통 호령을 하고 보니 도련님은 이 깊고 외진 산 속임에도 불구하고 귀에다 입을 갖다 대고 가만히 속삭이는 그 말이－－

『너 나하고 멀리 도망가지 않으련!』

그러니 이쁜이는 이 말을 참으로 꼭 곧이 들었고 사내는 이렇게 겁을 집어먹는 수도 있는지 도련님이 땅에 떨어지는 성냥갑을 호주머니에 바삐 집어 널 줄도 모르고 덤벙거리며 산알로 꽁지를 뺄 때까지 이쁜이는 잣나무 뿌리를 베고 풀밭에 번듯이 드러누운 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인제 멀리만 달아나면 나는 저 도련님의 아씨가 되려니 하는 생각에 마님께 진상할 나물 캘 생각조차 잊고 말았다.

그러나 조금 지나매 이쁜이는 어쩐지 저도 겁이 나는 듯싶었고 발딱 일어나 사면을 휘돌아보았으나 거기에는 험상스러운 바위와 우거진 숲이 있을 뿐 본 사람은 하나도 없으련만, 아마 산이 험한 탓일지도 모르리라 가슴은 여전히 달랑거리고 두려우면서 그러나 이 몸뚱이를 제 품에 꼭 품고 같이 뒹굴고 싶은 안타까운 그런 행복이 느껴지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니 도련님은 이렇게 정을 들이고 가시고는 이제 와서는 생판 모르는 체하시는 거나 아닐는가 － 마 을 두 손등으로 눈물을 씻고 고개는 어레 들었으나 나물 뜯을 생각은 않고, 이쁜이는 늙은 잣나무 밑에 앉아서 먼 하늘을 치켜 대고 도련님 생각에 이렇게도 넋을 잃는다. 이제 와 생각하면 야속도 스럽나니 마님께 매를 맞도록 한 것도 결국 도련님이었고 별 욕을 다 당하게 한 것도 결국 도련님이 아니었던가－. 매일과 같이 산엘 올라 다닌지 단 나흘이 못되어 마님은 눈치를 채셨는지 혹은 짐작만 하였는지 저녁 때 기진하여 내려오는 이쁜이를 불러 앉히시고,

『너 요년 바른 대로 말해야지 죽인다.』

하고 회초리로 때리시되 볼기짝이 톡톡 불거지도륵 하시었고 그래도 안차게 아니라고 고집을 쓰니 이번에는 어머니가 달려들어 머리채를 휘감고 주먹으로 등어리를 서너 번 쾅쾅 때리더니 그만도 좋으련만 뜰 아랫방에 갖다가 두고는 사날씩이나 바깥 구경을 못하게 하고 구메밥으로 구박을 막 함에는 이쁜이는 짜장 서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징역살이 맨 마지막 밤이 깊었을 제 이쁜이는 너무 원통하여 혼자 앉아서 울다가 자리에 누운 어머니의 허리를 꼭 끼고 그 품속으로 기어 들며,

『어머니, 나 데련님하고 살테야.』

하고 그예 저의 속종을 토설하니 어머니는 들었는지 먹었는지 그냥 잠잠히 누웠더니 한참 후 후유 하고 한숨을 내뿜을 때에는 이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고 그러나 또 한참 있더니 입을 열어 하는 이야기가 지금은 이렇게 늙었으나 자기도 색시 때에는 이쁜이만치나 예뻤고 얼마나 맵시가 출중났던지 노나리와 은근히 배가 맞았으나 몇 달이 못 가서 노마님이 이걸 아시고 하루는 불러 세고 때리시다가 마침내 샘에 못 이기어 인두로 하초를 지지려고 들이 덤비신 일이 있다고 일러주고 다시 몇번 몇번 당부하여 말하되 석숭네가 벌써부터 말을 건네는 중이니 도련님에게 맘일랑 두지 말고 몸 잘 갖고 있으라 하고 딱 떼는 것이 아닌가. 하기야 이쁜이가 무남독녀의 귀여운 외딸이 아니었던들 사흘 후에도 바깥엘 나올 수 없었으려니와 비로소 대문을 나와 보니 그간 세상이 좀 넓어진 것 같고 마치 우리를 벗어난 짐승과 같이 몸의 가뜬함을 느꼈고 흉측스러운 산으로 뺑뺑 둘러싼 이 산골에서 벗어나 넓은 버덩으로 나간다면 기쁘기가 이보다 더 하리라 생각도 하여 보고 어머니의 명대로 고추밭을 매러 개울 길로 내려가려니까 왼편 수퐁 속에서 도련님이 불쑥 튀어나오며 또 붙들고 벌에 안 갈 테냐고 대구 보채인다.

읍에 가 학교를 다니다가 요즘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온 뒤로는 공부는 할 생각 않고 날이면 날 저물도록 저만 이렇게 붙잡으러 다니는 도련님이 딱도 하거니와 한 편 마님도 무섭고 또는 모처럼 용서를 받은 길로 그러고 보면 이번에는 호되히 불이 내릴 것을 알고 이쁜이는 오늘은 안되니 낼모레쯤 가자고 좋게 달래다가 그래도 듣지 않고 굳이 가자고 성화를 하는 데는 할 수 없이 몸을 뿌리치고 뺑손을 놀 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구질구질히 내리던 비로 말미암아 한동안 손을 못 댄－고추밭은 풀들이 제법 성큼히 엉키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 지 갈피를 모르겠는데 이쁜이는 되는대로 한 편 구석에 치마를 도사리고 앉아서 이것도 명색은 김매는 거겠지 호미로 흙등만 따짝거리며 진짜 정신은 어젯밤 종은 상전과 못 사는 법이라던 어머니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 그것만 일념으로 아로새기며 이리 씹고 저리로 씹어 본다. 그러나 이쁜이는 아무렇게도 나는 도련님과 살아 보겠다, 혼자 맹세하고 제가 아씨가 되면 어머니는 일테면 마님이 되련만은 왜 그리 극성인가 싶어서 좀 야속하였고 해가 한나절이 되어 목덜미를 확확 달릴 때까지 이리저리 곰곰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어 보매 밭은 여태 한 고랑도 다 끝이 못 났으니 이 놈의 밭이! 하고 탓 안할 탓을 하며 저로도 하품이 나올 만치 어지간히 기가 막혔다. 이번에는 좀 빨랑빨랑 하리라 생각하고 이쁜이는 호미를 잽싸게 놀리며 폭폭 찍고 덤볐으나 그래도 웬일인지 일은 손에 붙지를 않고 그 뿐 아니라 등 뒤 개울의 덤불에서는 온갖 잡새가 귀둥대둥 멋대로 속삭이고 먼발치에서 풀을 뜯고 있던 황소가 메~ 하고 늘어지게도 소리를 내뽑으니 이쁜이는 이걸 듣고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지 않을 수 없고 밭가에 선 수양버들 그늘에 쓰러져 한잠 들고 싶은 생각이 곧바루 나지만은 어머니가 무서워 차마 그걸 못하고 만다.

인제는 계집애는 밭일을 안 하도록 법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이쁜이는 울화증이 나서 호미를 메어 꽂고 얼굴의 땀을 씼으며 앉았노라니까 들로 보리를 거두러 가는 길인지 석숭이가 빈 지게를 지고 꺼불꺼불 밭머리에 와 서더니 아주 썩 시퉁그러지게 입을 삐쭉거리며 이쁜이를 건너 대고 하는 소리가－ 『너 데련님하구 그랬대지!』 새파랗게 갈은 비수로 가슴을 쪽 내긋는대도 아마 이토록은 재겹지 않으리라만은 이쁜이는 어서 들었느냐고 따져 볼 겨를도 없이 얼굴이 고만 홍당무가 되었고 그 놈의 소위로 생각하면 대뜸 들이 덤벼 그 귀때기라도 물고 늘어질 생각이 곧 간절은 하나 한 죄는 있고 어째볼 용기가 없으매 다만 고개를 폭 수그릴 뿐이다. 그러니까 석숭이는 제가 꽨 듯싶어서 이쁜이를 짜장 넘보고 제법 밭 가운데까지 들어와 떡 버티고 서서는 또 한번 시큰둥하게 그리고 엇먹은 소리로－

『너 데련님하구 그랬대지!』

전일 같으면 제가 이쁜이에게 지게 막대기로 볼기 맞을 생각도 않고 감히 이따위 버르장머리는 하기커녕 제 아버지 장사하는 원두막에서 몰래 참외를 따 가지고 와서,

『애 이쁜아, 너 이거 먹어라.』

하다가,

『난 네가 주는 건 안 먹을 테야.』

하고 몇 번 내뱉음에도 꿇지 않고 굳이 먹으라고 떠맡기므로 이쁜이가 마지 못하는 체하고 받아 들고는－물론 치마폭에 흙은 싹싹 문대고 나서 깨물고 앉았노라면 아무쪼록 이쁜이 맘에 잘 들도록 호미를 대신 손에 잡기가 무섭게 는실는실 김을 매주었고 그리고 가끔 이쁜이를 웃겨 주기 위하여 그것도 재주라도 밭고랑에서 잘 봐야 곰 같은 몸뚱이로 이리 딩굴고 저리 딩굴고 하였다. 석숭 아버지는 이 놈이 또 어디로 내뺐구나 하고 찾아 다니다가 여길 와보니 매라는 제 밭은 안 매고 남 계집애 밭에 들어와서 대체 원 이게 무슨 노릇인지 이 꼴이고 보매, 기도 막힐 뿐더러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노여운 낮을 지어 가며

『너 이 놈아, 네 밭은 안 매고 남의 밭에 들어와 그게 뭐냐?』

하고 꾸중을 하였지만은 석숭이가 깜짝 놀라서 돌아보다 그만 멀쑤룩하여 궁둥이의 흙을 털고 일어서며,

『이쁜이 밭 좀 매주러 왔지 윌 그래?』

하고 되려 퉁명스러이 뻗댐에는 더 책하지 않고

『어 망할 자식두 다 많어이!』

하고 돌아서 저리로 가며 보이지 않게 피익 웃고 마는 것인데, 그러면 이쁜이는 저의 처지가 꽤 야릇하게 됨을 알고 저기까지 분명히 들리도록

『너보고 누가 밭 매 달랬어? 가 어여 가, 가.』

하고 다 먹은 참외는 생각도 않고 등을 떠다밀며 구박을 막 하던 이런 터이련만, 제가 이제와 누구 비위를 긁다니 하늘이 무너지면 무너졌지 이것은 도시 말이 안된다. 이쁜이는 남다른 부끄럼으로 온 전신이 확확 다는 듯싶었으나 조금 뒤에는 무안을 당한 거기에 대갚음이 없어서는 아니 되리라 생각하고 앙칼스러운 역심이 가슴을 콕 찌를 때에는 어깨뿐만 아니라 등어리 전체가 샐룩거리다가 새침히 발딱 일어나 사방을 훑어보더니, 대낮이라 다들 일들 나가고 안 마을에 사람이 없음을 알고 석숭이의 소맷자락을 넌지시 끌며 그 옆 숙성히 자란 수수밭 속으로 들어간다.

밭 한복판은 아늑하고 아무 데도 보이지 않으므로 함부로 떠들어도 괜찮으려니 믿고 이쁜이는 거기다 석숭이를 세워 놓자 밭고랑에 널려진 여러 돌 중에서 맞아 죽지 않고 단단히 아플 만한 모루돌멩이 하나를 집어들고 그 옆정갱이를 모질게 우려치며,

『이 자식 뭘 어쩌구 어째?』

하고 딱딱 으르니까 석숭이는 처음에 뭐나 좀 생길까 하고 좋아서 따라왔던 걸 별안간 난데없는 모진 돌만 날아듬에는,

『아야.』

하고 소리치며 똑 선불 맞은 노루 모양으로 한 번 뻐들껑 뛰며 눈은 그야말로 황방울만해 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석숭이는 미움보다 앞서느니 기쁨이요 전일에는 그 옆을 지나도 본둥 만둥 하고 그리고 대단히 여겨 주지 않던 그 이쁜이가 일부러 이리 끌고 와 돌로 때리되--정말 아프도록 힘을 들일만치 이쁜이에게 있어서는 지금의 저의 존재가 그만치 끔찍함을 그 돌에서 비로소 깨닫고 짓궂이 씽글씽글 웃으며 한 번 더 뒤둥그러진 뒤에 흘게 늦은 목소리로,

『뭘 데련님허구 그랬대는데.』

하고 놀려주었다. 이쁜이는,

『뭐? 이 자식.』

하고 상기된 눈을 똑바로 떴으나 이번에는 돌멩이 집을 생각은 않고 아까부터 겨우 참아 왔던 울음이,

『으응!』

하고 탁 터지자 잡은 참 덤벼들어 석숭이 옷 가슴에 매어 달리며 쥐어뜯으니 석숭이는 이쁜이를 울려 논 것은 저의 큰 죄임을 얼른 알고 눈이 휘둥그래서,

『아니다, 아니다. 내 부러 그랬다 아니다.』

하고 입에 불이 나게 그러나 손으로 등을 어루만지며 「아니다」를 여러 십 번을 부른 때에야 간신히 울음을 진정해 놓았고 이쁜이가 아직 느끼는 음성으로 몇 번 당부를 하니,

『인제 남 듣는 데 그러면 내 너 죽을 터야!』

『그래 인전 안 그러마.』

참으로 이런 나쁜 소리는 다시 입에 담지 않으리라 맹세하였다. 이쁜이도 그제야 마음을 놓고 흔적이 없도록 눈물을 닦으면서,

『다시 그래 봐라 내 죽인다.』

또 한번 다져 놓고 고추밭으로 도로 나오려할 제 석숭이가 와락 달려들어 그 허리를 잔뜩 껴안고,

『너 그럼 우리 집에서 나한테로 시집오라니깐 왜 싫다구 그랬니?』

하며 성가시게 굴었다. 이쁜이는 만일 이 행실을 도련님이 아신다면 담박에 정을 떼시려고 하리란 염려만 없었더라면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을 그토록 오지게 혼을 냈을리 없었겠고 생각하면 두고두고 입때껏 후회가 나리만치 그렇게 사내의 뺨을 우려친 것도 결국 도련님을 위하는 이쁜이의 깨끗한 정이 아니었던가－. 물 가득히 품에 찬 서러움을 눈물로 가시고 나물 바구니를 손에 잡았으니, 이쁜이는 다시 일어나 산중턱으로 거치른 수풀 속을 기어 내리며 도라지를 하나 둘 캐기 시작한다.

참인지 아닌지 자세히는 모르나 멀리 날아온 풍설을 들어보면 도련님은 서울 가 예쁜 아씨와 다시 정분이 났다 하고 그 뿐만도 오히려 좋으련만은 댁의 마님은 마님대로 늙은 총각 오래 두면 병 난다하여 상냥한 아가씨만 찾는 길이니 대체 이게 웬 셈인지 이쁜이는 골머리가 아팠고 도라지를 캔다고 꼬챙이를 땅에 꾸욱 꽂으니 그대로 짚고 선 채 해만 점점 부질없이 저물어간다. 맥을 잃고 다시 내려오다 이쁜이는 앞에 우뚝 솟은 바위를 품에 얼싸 안고 그 아래를 굽어보니 험악한 석벽 틈에 맑은 물은 응성 깊이 충충 고이었고 설핏한 하늘의 붉은 노을 한쪽을 똑 떼들고 푸른 잎새로 전을 둘렀거늘 그 모양이 보기에 퍽도 아름답다. 그걸 거울 삼고 이쁜이는 저 밑에 까맣게 비치는 저의 외양을 또 한번 고쳐 뜯어보니 한때는 도련님이 조르다 몸살도 나셨으려니와 의복은 비록 추레할망정 저의 눈에는 밉지 않게 생겼고 남 가진 이목구비에 반반도 하련만은 뭐가 부족한지 달리 눈이 맞은 도련님의 심정을 알 수 없고 어느덧 원망스러운 눈물이 눈에서 떨어지니 잔잔한 물면에 물 둘레를 치기도 전에 무슨 밥이나 된다고 커단 꺽찌는 휘엉휘엉 올라와 꼴딱 받아먹고 들어간다.

이쁜이는 얼빠진 등신 같이 맑은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니 불시로 제 몸을 풍덩 던지어 깨끗이 빠져도 죽고 싶고 아니 이왕 죽을진댄 정든 님 품에 안겨 같이 풍 빠지어 세상사를 다 잊고 알뜰히 죽고 싶고 그렇다면 도련님이 이 등에 넓죽 엎디어 뺨에 뺨을 비비대고 그리고 이 물을 같이 굽어보며, 『애, 울지 마라 내가 가면 설마 아주 가겠니?』 하고 세우 달랠 제 꼭 붙들고 풍덩실 하고 왜 빠지지 못했던가, 시방은 한가도 컸건만은, 그 이쁜이는 그리도 삶에 주렸던지,

『정말 올 여름엔 꼭 오오?』

하고 아까부터 몇 번 묻던 걸 또 한번 다져 보았거늘 도련님은 시원스러이 선뜻,

『그럼, 오구말구. 널 두고 안 오겠니!』

하고 대답하고 손에 꺾어 들었던 동백꽃을 물 위로 홱 내던지며,

『너 참 이 물이 무슨 물인지 알면 용치!』

눈을 끔벅끔벅하더니 이야기하여 가로되 옛날에 이 산 속에 한 장사가 있었고 나라에서는 그를 잡고자 사방 팔면에 군사를 놓았다. 그렇지만은 장사에게는 비호 같이 날랜 날개가 있어 공중을 훌훌 날으니 그를 잡을 길 없고 머리만 앓던 중, 어느날 그가 이 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로되 왜 그러냐 하면 하느님이 잡수시는 깨끗한 이 물을 몸으로 흐렸으니 누구라도 천벌을 아니 입을 리 없고 몸에 물이 닿자 돋혔던 날개다 흐지부지 녹아 버린 까닭이라고 도련님은 손짓으로 장사의 처참스러운 최후를 시늉하며 가장 두려운 듯이 눈을 커닿게 끔적끔적하더니 뒤를 이어 하는 말이 －

『아 무서! 애 울지 마라 저 물에 눈물이 떨어지면 너 큰일난다.』

그러나 이쁜이는 그까짓 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그리 신통치 못하였고 며칠 후 서울로 떠나면 아주 놓칠 듯만 싶어서 도련님의 얼굴을 이윽히 쳐다보고 그럼 다짐을 두고 가라 하다가 도련님이 조금도 서슴없이 입고 있던 자기의 저고리 고름 한 짝을 뚝 메어 이쁜이 허리춤에 꾹 꽂아 주며,

『너 이래두 못 믿겠니?』

하니 황송도 하거니와 설마 이걸 두고야 잊으시진 않겠지 하고 속이 든든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대장부의 노릇이매 이렇게 하고 변심은 없을 게나 그래두 잘 따져 보니 이 고름이 말하는 것도 아니어든 차라리 따라 나서느니만 같지 못하다고 문득 마음을 고쳐먹고 고개로 쫓아간 건 좋았지만, 왜 그랬던고, 좀더 매달리어 진대를 안 붙고 고기 주저앉고 말았으니 이제 와서는 한가만 새롭고 몸에 고이 간직하였던 옷고름을 이 손에 꺼내 들고 눈물을 흘려보되 별수 없나니 보람없이 격찌만 늘어간다. 허나 이거나마 아주 없었더라면 그야 살맛조차 송두리 잃었으리라. 요즘 매일과 같이 이 험한 깊은 산 속에 올라와 옛 기억을 홀로 더듬어보며, 이쁜이는 해가 저물도록 이렇게 울고 섰곤 하는 것이다. 길 모든 새들은 어제와 같이 노래를 부르고 날도 맑으련만 오늘은 웬일인지 이쁜이는 아직도 올라오질 않는다.

석숭이는 아버지가 읍의 장에 가서 세 마리 닭을 팔아 그걸로 소금을 사오라 하여 아침 일찍이 나온 것도 잊고 이 산에 올라와 다리를 묶은 닭들은 한 편에 내던지고 늙은 잣나무 그늘에 누워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으나 이쁜이가 좀체 나오지 않으매 웬일일까 고게 또 노하지나 않았나 하고 일쩌웁시 이렇게 애를 태운다. 올 가을이 얼른 되어 새 곡식을 거두면 이쁜이에게로 장가를 들게 되었으니 기쁨인들 이 위 더할데 있으랴만은 이번도 또 이쁜이가 밥도 안 먹고 죽는다고 야단을 친다면 헛일이 아닐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거늘 고렇게 쌀쌀하고 매일매일 하던 이쁜이의 태도가 요즘에 들어 와서는 갑자기 다소곳하고 눈 한 번 흘길 줄도 모르니 이건 참으로 춤을 추어도 다 못 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슬비가 내리던 날, 마님댁 울 뒤에서 이쁜이는 옥수수를 따고 섰고 제가 그 옆을 지날 제 은근히 손짓을 하므로 가까이 다가서니 귀에다 나직히 속삭이는 소리가 -

『너 편지 하나 써 줄련?』

『그래 그래, 써주마, 내 잘 쓴다.』

석숭이는 너무 반가워서 허둥거리며 묻지 않는 소리까지 한다. 또 그 말에 내 너 하라는데로 다 할 게니 도련님에게 편지를 쓰되 이쁜이는 여태 기다립니다 하고 그리고 이런 소리는 아예 입 밖에 내지 말라 하므로 그런 편지면 일 년 내내 두고 썼으면 좋겠다 속으로 생각하고 채 틀 못 박힌 연필 글씨로 다섯줄을 그리기에 꼬박 이틀 밤을 새우고 나서 약속대로 산으로 이쁜이를 만나러 올라올 때에는 어쩐지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것이 바루 아내를 만나러 오는 남편의 그 기쁨이 또렷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쁜이가 얼른 올라와야 뭐가 제일 좋으냐 물어 보고 이 닭을 팔아 선물을 사다 주련만 오진 않고 석숭이는 암만 생각해야 영문을 모르겠으니 아마 요전번

『이 편지 써 왔으니깐 너 나구 꼭 살아야 한다.』

하고 크게 으린 것이 좀 잘못이라 하더라도 이쁜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그래.』

하고 눈에 눈물을 보이며,

『그 편지 읽어봐.』

하고 부드럽게 말한 걸 보면 그리 노한 것은 아니니 석숭이는 기뻐서 그 앞에 떡 버티고 제가 썼으나 제가 못 읽는 그 편지를 떠듬떠듬, 도련님전 상사리 가신지가 오래 됐는데 왜 안 오구 일년 반이 됐는디 왜 안 오구 하니깐 이쁜이는 밤마두 눈물로 새오며 이쁜이는 그럼 죽을 테니까 날을 듯이 얼찐 와서－ 이렇게 땀을 내며 읽었으나 이쁜이는 다 읽은 뒤 그걸 받아서 피봉에 도로 넣고 그리고 나물 바구니 속에 감추고는 그대로 덤덤히 산을 내려온다. 산기슭으로 내리니 앞에 큰 내가 놓여 있고 골고루 내려 박힌 험상궂은 웅퉁바위 틈으로 물은 우람스리 부딪치며 콸콸 흘러내리매 정신이 다 아찔하여 이쁜이는 조심스리 바위를 골라 디디며 이쪽으로 건너 왔으니 아무리 생각하여도 같이 멀리 도망하자던 도련님이 저 서울로 혼자만 삐쭉 달아난 것은 그 속이 알 수 없고 사나이 맘이 설사 변한다 하더라도 잣나무 밑에서 그다지 머금고 조르시던 그 도련님이 이제와 싹도 없이 변하시다니 이야 신의 조화가 아니면 안될 것이다. 이쁜이는 산처럼 잎이 퍼드러진 호양나무 밑에 와 발을 멈추고 한 손으로 바구니의 편지를 꺼내어 행주치마 속에 감추어 들고 석숭이가 쓴 편지도 잘 찾아 갈는지 미신도 하거니와 또한 도련님 앞으로 잘 간다 하면 이걸 보고 도련님이 끔뻑 하여 뛰어올 겐지 아닌지 그것조차 장담 못할 일이언만은 아니, 오신다고 이 옷고름을 두고 가시던 도련님이어늘 설마 이 편지에도 안 오실 리 없으리라고 혼자 서서 우기며 해가 기우는 먼 고개터를 바라보며 체부 오기를 기다린다.

체부가 잘 봐야 사흘에 한 번 밖에는 더 들리지 않는 줄을 저라고 모를 리 없고 그리고 어제 다녀갔으니 모레나 오는 줄은 번연히 알면서도 그래도 이쁜이는 산길에 속는 사람 같이 저 산비탈로 꼬불꼬불 돌아나간 기나긴 산길에서 금시 체부가 보일 듯 보일 듯 싶었던지 해가 아주 넘어가고 날이 어둡도록 지리하게도 이렇게 속 달게 체부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어제와 같이 날도 맑고 산의 새들은 노래 부르건만 이쁜이는 아직도 나올 줄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