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누란의 사랑
누란(樓蘭)의 사랑 윤후명
그 방에서의 동거(同居) 생활은 지지부진한 가운데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는 누란(樓蘭)에 대한 어떤 생각에 줄곧 사로잡혀 있었다. 누란은 서역 지방의, 폐허가 된 옛 오아시스 도시국가의 이름이었다.
눅눅하게 습기가 차고, 채광이 되지 않은 그 방에서의 동거 생활은, 그러나 뜻이 같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동서(同棲) 생활이라고 하는 편이 좀더 적합한 표현일 듯싶다. 우리는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기보다 함께 서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어두운 방에 아예 틀어박히다시피 하고 지냈다. 우리들은 나날이 창백한 얼굴이 되어 우리들만의 음험한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흔히 상상할 수 있듯이, 육체의 유희에 탐닉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 무렵 우리는 그 결코 넓지 않은 방에서도 마치 서로 스쳐 지나가듯이 살고 있었다. 육체의 유희는 한 시절 지나간 폭염처럼 지나간 것이었다. 그것은 이제 사전에 잠자고 있는, 성에 관한 낱말처럼 머릿속의 갈피에 잠자고 있었다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지 하면서도 그 여름은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방을 떠나지를 못했다. 생활에 대한 강박 관념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 방에서 단 하루라도 뛰쳐나가기를 제안했다.
팔월 하순에 접어들자 갑자기 하늘이 높아진 날이 며칠 계속되었다. 벌써 가을이 오려는가. 그러나 날씨는 아직 무더웠다.
"사라호 때는 부산에 있었는데."
나는 바닷가로 떠나면서 뚱딴지 같은 말을 했다.
"사라호?"
"음, 태풍. 굉장했지."
나는 내가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겪은 사람임을 알아주어야 한다는 듯 과장스럽게 말했다. 실제로 사라호 태풍은 굉장했다. 추석이 아니면 그 무렵이었다. 그것이 사라라는 미국 여자 이름을 가진 태풍인지는 물론 훨씬 나중에야 알았지만, 기왓장이 날아가고 전신주가 넘어지는 걸 방안에 틀어박혀 겁먹은 눈초리로 살피던 나는, 바람이 웬만큼 멎었다 싶기가 바쁘게 바깥으로 달려나갔었다. 이제까지 보아온 낯익은 동네인데도 전혀 새로운 풍경이었다. 큰길로 나가자 땅들이 군데군데 깊이 패이고 뿌리째 뽑힌 플라타너스 나무가 벌렁 나자
빠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집들의 창유리가 유난히 번들거려서 또한 빈 집들 같았다. 비바람은 멈췄는데 개울은 흙탕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불 구경, 물 구경, 싸움 구경만큼 신나는 구경은 없다지만, 나는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나는 물 구경을 한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 양쪽에서 상기된 얼굴로 물 구경을 하고 있었다. 아니, 구경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물과 승강이까지 벌이고 있었다. 끝에 갈고리를 단 긴 막대로 떠내려오는 것들을 건져 올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집의 문짝이며 기둥, 심지어는 지붕까지 둥둥 떠내려왔다. 돼지를 건져 올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무 토막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을 구해냈다는 말도 들렸다. 홍수로 떠내려오는 사람은 먼저 뱀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물에 떠내려오는 뱀들이 온통 엉겨붙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날 나는 실제로 그런 광경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난데없이 뱀에 온몸을 칭칭 휘감긴 사람이 몸서리치며 물에 떠내려오는 꿈을 꾸고 한밤에 홀로 그야말로 몸서리를 치곤 해야 했다. 뱀들은 사람 몸의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파고 들었다. 그 사람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어느새 그 사람이 되고는 했다. 끔찍한 일이었다.
팔월 하순의 바닷가로 가면서 왜 태풍을 떠올렸는가. 하늘은 쾌청이었고 햇볕은 쨍쨍 내리쬤다. 그러나 나는 그 여행에서 비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드높은 날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은근히가 아니었다. 매우 강렬했다.
이미 본격적인 피서철은 지나 있었다. 각급 학교들의 방학은 끝났거나 막바지에 들어가 있었고, 회사들도 여름 휴가 기간이 넘어 있었다. '개장이래 최대의 인파'라느니 지니 하면서 몇 십만 인파를 읊어대던 신문들도 카메라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본사 헬기에서 찍은 해운대'에는 몇 십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점처럼 널려 있었다.
저마다 애욕에 시달리는 남녀들이 점, 점, 점, 점, 점, 점으로만 나타나 있었다.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러나 이제 신문은, 바닷가 모래밭을 뒤지며 피서객들이 흘리고 간 동전을 줍는 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보도를 마지막으로 피서를 끝내고 있었다. 그 바닷가 모래밭에서는 사람들이 저팔계처럼 쇠스랑을 들고 나와 모래를 긁고 있었다. 그러면 잃어버린 동전들이 긁혀 나온다고 했다. 그 수량이 수월치 않아서 '신종 기업'이라고도 불린다고 했다. 동전뿐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쇠붙이 종류, 이를테면 반지나 시계 따위도 심심찮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보도를 보면서 나는 문득 오래 전에 한 여자와 바닷가에 갔던 때가 떠올랐다. 사춘기를 벗어난 무렵이었다. 순수한 사랑이란 것이 가령 육체 관계를 채 맺지 못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때 우리 관계야말로 순수한 사랑이었다. 플라토닉 러브란 어떤 것인가, 성(性)이란 완전히 배제되는가 하는 물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멀지 않아 플라토닉러브라는 것도 결국 성에 대한 목마른 갈구의 한 설익은 표현 양태라고 나름대로 깨닫게 되었고, 또 플라톤의 선생인 저 소크라테스라는 철인이 악처(惡妻)에 시달리면서 동성애에 빠져들었다는 서글픈 현실을 배우게도 되었는데,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목마른, 참담한 성애에의 갈구를 모른 척 숨기는 기술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어떻게 감히 짐승 같은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랑하는 사이로 우리는 바닷가를 거닐었다. 그때도 마악 피서철이 지나 있었다. 그 해에 둘이서는 처음으로 간 바닷가였다, 그렇다고 해서 각자가 여름 바닷가에 다녀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바닷가로 가곤 했었고, 또 그런 이야기들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라는 그녀가 비키니 해수욕 복을 입고 바닷가를 뛰노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함께 해수욕을 가자고는, 웬일인지 아무도 제안하지 않았었다. 그녀가 그런 제안을 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런 제안이 그녀에게 옷을 벗어 보이라는 말로 들릴까봐 금기로 여기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어떤 경우에건 옷을 벗는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모독이었다. 바닷가를 거닐던 우리는 낮은 모래톱 위에 나란히 앉아 먼 수평선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만남을, 사랑을, 행복을 생각하며 가슴 가득한 열락에 들떠서 깊은 해연(海淵)을 응시하는 눈길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말이 머리에 맴돌자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찌하여 유독 그녀와 만나게 된 것일까. 숙명이니 섭리니 하는 낱말들은 정말 그럴 듯했다. 나는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해서 오히려 막막한 외로움에 휩싸인 느낌이 기도 했다. 푸른 바다는 심연에서부터 설레는 사랑의 표상이었다.
드디어 사랑을 배우든가.
그때였다. 몇 명의 청소년이 모래밭을 뒤지며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막대기로 모래밭을 쿡쿡 쑤시거나 허리를 굽혀 무엇인가 집어들어 살피거나 하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불량기가 있는 패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개의할 바가 없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꼬투리를 잡힐 무엇이 하나도 검었다. 우리는 단지 모래톱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뿐이 아닌가. 나는 그들에게 잠깐 눈길을 주었다가 다시 바다로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이 가까이 왔을 때, 나는 그들이 모래밭에서 무엇인가 줍기 위해 살피고 다닌다는 것을 언뜻 알았다.
바로 피서객들이 남기고 간 유실물을 줍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만이 유일한 목적은 아닌 듯 잠시도 쉬지 않고 서로 히히덕거렸다. 나는 그들을 의식하고 얼마쯤 어색하게 몸을 꼿꼿이 하고 있었으나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앞으로 지나갔다. 그들 그 중의 하나가 모래밭을 뒤지는 시늉을 하며 우리가 듣게끔 중얼거렸다. '어디 공알 빠진 것 없나.' 어떻게든 받아들일 방법이 없는 말이었다. 나는 얼굴을 굳힌 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재빨리 그녀의 기색을 살폈으나 그녀는 그 말은 아예 듣지도 않은 듯 태연자약했다. 정말 못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공알이라는 게 음핵인지 뭔지 하는 그것임을 그녀가 모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나야말로 공연히 못된 생각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대중잡지에 끼워져 있는, 찢으면서 읽도록 되어 있는 색종이 페이지들에서 읽어서 다 알고 있었다. 이른바 '여성 성기의 구조' 따위야 기초 상식이었다. 나는 그 추악한 성의 세계에 대해 상상할 것은 다 해 본, 악의 화신이었다. 그러니까 새하얀 얼굴에 까만 눈동자로 바다를 바라보며 진정한 사랑만을 생각하고 있는 그녀의 성스럽고 순결한 모습 옆에서 공알이든 음핵이든 하여튼 그런 등속의 속된 상상을 했던 나는 더럽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들끓던 인파가 사라지고 스산한 느낌마저 감도는 바닷가 풍경을 곁들여서 '염량(炎凉) 세태(世態)'라고 쓴 신문도 있었다. 불꽃같이 타오르던 여름과 서늘한 가을을 대비하며 아울러 여차하면 싹 돌아서는 우리들 사람의 마음을 찔러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태풍에 대해서는 아무 느낌도 없는 모양이었다. 서울에서 내처 살아온 사람들은 태풍에 대한 감각이 무딜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태풍이란 고작 일기 예보에 등장했다가 그냥 사라지거나 집 몇 채와 논밭 몇 정보가 유실됐으며 인명 퍼해 몇 명 등으로 먼 소식처럼
들려 올뿐인 것이다. 그런데다가 난데없이 20몇 년 전의 사라호 태풍이라니, 그녀가 관심을 보일 리가 만무했다. 더군다나 우린 아직은 여름이 꽤나 남아 있는 바닷가로 가는 것이었다. 해수욕을 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태풍이 무슨 말이냐는 듯 말했다. 아무렴. 나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해녀들은 겨울에도 해수욕을 한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같이 물개처럼 매끈하게 잠수복을 입은 차림이 아닌, 허술한 헝겊 수영복을 입고도 겨울 바다에 들어가는 해녀들을 오래 전에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또 나 개인의 경험으로 말하면 사일구가 일어나던 그 해 바로 사일구 날에 부산 광안리에서 첫 해수욕을 했던 것이다.
그때 중학생이었던 나는 몇 명의 친구들과 물에 들어갔다가 입술이 파래지고 소름이 도돌도돌 돋은 몸으로 그래도 몇 번인가 다시 들어가 파도를 탔었다. 아직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라곤 없는 이른 계절이었는데, 그렇다면 그 해 사일구 날은 상당히 화창한 날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사일구는 내가 가장 이른 해수욕을 한 날로도 길이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날이 사일구인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중에 안 일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생전 처음으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본 날이기도 했다. 그것은 내가 물에 들어가 자맥질을 하는 동안 앞의 조그만 바위섬에서 밀려온 시체였다. 나는 바닷물의 냉기에 오들오들 떨면서 불알이 바짝 오그라 붙은 채, 친구들과 함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었다. 누군가가 와서 위에 덮여 있는 거적을 들쳤다. 끔찍했다. 시체는 머리가 잘려 없어지고 몸뚱이뿐이었다. 그런데다가 물에 퉁퉁 불어서, 성별도 나이도 쉽게 짐작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때의 광경을 떠올리면 시체의 허벅지 위로 물에 분 지렁이처럼 불거져 있던 시퍼런 핏줄이 유난히 뚜렷하게 기억된다. 그러나 내가 그 날을 무슨 개인적인 기념일처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역시 그 날이 사일구라는 역사적인 기념일이라는 데 있다고 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봄날에 어처구니없이 이른 해수욕을 했다, 죽은 사람을 보았다, 하는 정도로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사일구의 성취로 인해 그 날은 잊어버릴 수 없는 날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 날짜와 바다와 죽은 사람을 동시에 확실히 기억하게 되었다. 그때 어린 나는 저 목 잘린 시체가 떠 있던 그 바닷물에서 내가 자맥질을 했구나 하면서 뱃속은 메슥메슥했고 머릿속은 괴기스러운 공포의 분위기가 감돌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 뒤로 나는 사일구라면 우선 그 날의 바다와 죽은 사람이 떠올랐다. 시체의 부패 상태로 미루어 죽은 사람은 사일구와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된다. 그러나 문제는, 내게는 사일구와 그 죽은 사람이 마치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래서 그 날의 일은 누군가 사일구에 목이 잘려 죽었다고 내 머리에 자리잡고 만 것이었다. 사일구와 그 목 잘린 사람과는 관계가 없다고 하는 것은 내 이성이었다. 하지만 사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에 이성이 별 영향력이 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내 감성은 그 날의 일을 한사코 하나의 맥락으로 받아들였다. 사일구에 바다에서는 누군가가 목이 잘려 죽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목잘린 시체와 함께 헤엄을 쳤다.
그 목 잘린 사람의 머리는 어디로 갔을까. 어두운 바다 밑에서 눈알을 굴리면서 몸뚱이가 없어서 난 움직이지 못해 하고 탄식하고 있을까. 괴기스러운 것을 극도로 무서워해서, 공연히 드라큘라 같은 영화를 보고는 몇날 며칠을 제대로 밤잠도 못 자곤 했던 나건만, 그 사람의 머리에 대해서 또 그런 괴기스러운 망상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실제로 그 머리가 바닷속에 들어갔다면 눈알이고 뭐고 해삼이나 문어가 붙어 말끔히 빨아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빈 해골 바가지 속에는 새끼 문어가 들어가 웅크리고 단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것이다.
동해안의 물은 팔월 중순만 되면 벌써 차가워진다고 했다. 하순이었으므로 몸을 바닷물에 담글 기회는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해수욕을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 그녀의 말에 아무렴 하고 대답한 것은 건성으로 한 것이었다. 그런 태도에는 단지 부정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었던 같다. 그 밖에는 우리는 그 어두운 방에서처럼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도중에 대관령 휴게소에선가 종이컵에 따라 파는 커피를 한 잔씩 사서 마셨는데, 커피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얼결에 한여름에 더운 커피를 사 든 내가 퍽 의아스럽게 느껴졌었다. 그리고는 아흔 아홉 굴이라는 대관령 고개를 넘어갔다. 어찌 보면 우리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로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남녀 같기도 했다. 차라리 그런 긴장마저도 없었다.
바다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젊은 몸뚱이들이 뛰놀 때의 바다는 덩달아 벌떡거리는 듯이 보이곤 했었다. 이름난 해수욕장이긴 해도 신문에서 보았던 대로 확실히 한물 간 동네였다. 모래밭에는 듬성듬성 사람들이 무리 지어 있기는 했으나 이미 해가 설핏한 탓일까, 물
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한눈에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솔숲 사이로 바다를 내다보며 숙박업소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길을 걸어 올라갔다.
"어디루 들어갈까? 배고파? 먼저 숙솔 정할까?"
나는 쇤지 무연해져서 물었다.
"글쎄, 좋을 대루."
새로운 사물에 대해서 유난히 신기한 눈길을 보내는 그녀는 역시 솔숲 사이로 바다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눈길이었다. 거기에는 무엇인가 놓쳐서는 안 된다 하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어서 오세요, 식사됩니다. 수조 속에 홍어인지 가오린지가 플레어 스커트를 벌린 듯 너울거렸다.
나는 올바른 삶의 방법을 배운다는 철학을 대학에서 얼마동안 배우고서도 홍어와 가오리를 구분할 만한 지혜를 못 배웠다. 우리가 삶의 목표인 사랑을 완성시키는 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점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면 홍어와 가오리의 차이점을 구별할 필요도 있는 것이겠다.
"숙솔 먼저 정하자구. 그래야 편하겠지."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와 나의 동서 생활에 대해 나는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동서 생활이 결혼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입장이었다. 그것은 본래 그녀가 얻어 살던 세방이었다. 그 방으로 기어들면서 나는
"하숙비는 내지. 서로 여러 가지 도움도 될 테고."
라고 넉살 좋게 말했었다. 여러 가지도움이란 도대체 무슨 도움을 말했던 것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이기주의를 버릴 수 없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동서 생활을 하게 된 데는 두엇보다도 내 이기주의가 가장 큰 몫으로 작용을 했다고 나는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어느 시기에 가서 우리는 헤어져 저대로의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게 내 대전제였다. 그래서 한방에서 살면서 내가 가장 용의주도하게 견지해 온 것은 결코 그녀와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동화되거나 유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녀를 싫어했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헤어져 저대로의 길을 가도록 노력하되 그것이 안 되면 또한 평생토록 그렇게 동서 생활을 계속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도대체 무슨 어처구니없는 짓이란 말인가.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갈피를 잡는다는 것, 확연히 정리되어 드러난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녀와의 만남을 생각할 때 나는 그녀와 함께 처음으로 어머니를 찾아갔던 날이 떠오른다. 그때 어머니는 그녀를 흘깃 한번 쳐다보았을 뿐 쓰다 달다 말이 없었다. 음침한 날씨 탓인지 방안은 현실(玄室)처럼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날씨 탓만은 아님을 나는 알고있었다. 집을 사고 팔고 하는 동안 수월찮게 이사를 다녔지만 어머니가 들어앉은 방은 언제나 그랬다. 어머니는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도 좀체로 불을 켜지 않은 채 어둠을 응시하며 앉아 있곤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주검 자체라는 느낌은 조금도 아니었고, 어머니나 그 밖의
동물 - 어머니는 고양이를 그림자처럼 곁에 두고 있었다. - 이 일종의 순장물이라는 느낌이었다, 나는 종종 그와 같은 분위기에 진저리를 쳤다. 어머니가 지키고 있는 어둠이 살아 있는 짐승처럼 꿈틀거렸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어머니는 주문이라도 외어 어둠 속에 떠돌아다니는 기운에 혼을 불어넣는 것만 같았다. 내 옆에 다소곳이 앉은 그녀는 어머니의 기세에 눌려 거북하게 몸을 움츠리고만 있었다. 나는, 그녀가 며느리가 된다 한들 어머니 쪽에서 새삼스럽게 알량한 시어머니 노릇을 하려고 들지도 않을 터에 무슨 말을 할까 보냐고, 몇 마디만 오가면 자리에서 일어날 궁리만 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어머니의 저 꿈틀거리는 어둠으로부터 영원히 헤어난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만지작거리고 있던 선물 꾸러미를 앞으로 내밀었다.
"건 뭐냐?"
어머니는 그제서야 내게 눈길을 주었다. 나는 마련해 온 선물이 어머니의 심사를 사납게 하더라도 얼마든지 감수할 용의가 있었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와의 더욱 확고한 이별을 위해 그 선물을 장만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간 담에 끌러 보세요."
나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되었다. 엉뚱한 짓을 함으로써 보상받으려는 내 심리는 얼마나 병들어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 어머니를 만나러 가자는 제안을 하기 바로 전까지 고아(孤兒)로 자처하고 있었던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어느 편이냐 하면 나는 고아로 자처하는 편이 그렇지 않은 편보다 한결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나는 내가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에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어머니에 대한 내 생각은 어느 것 하나 뚜렷하지 못했다. 뒤죽박죽이었다.
어머니는 때로는 전족(纏足)을 해서 뒤뚱거리는 모습으로 떠오르기도 했고 혹은 단단한 갑주(甲冑) 속에 몸을 감춘 딱정벌레의 모습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를 꺼렸다. 어머니 편에서도 마찬가지 감정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나를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언제나 냉랭하기만 했다. 그것이 내 마음을 멍들게 했지만, 그보다 더 이전에 나는 일찌기 홀로 된 어머니의 청상(靑孀)의 연민과 한(恨)의 두 젖줄을 빨면서 자라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여자와 동거 생활을 하기로 작정한 뒤부터 야릇한 보복 심리에 빠졌음에 틀림없었다. 내가 선물을 싸들고 어머니를 찾아가게 되리라고는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평소에 어머니에게 가져왔던 저 헤어날 길 없는 곤흑감을 돌이켜볼 때 아리송하기 짝이 없었다.
고아라고 하던 내가 어머니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잡아 끌다시피 했을 때 그녀는 겁을 집어먹었는지 앞질러 수다를 떨었다.
"엄만 몇 살디셔? 젊으셔?"
나는 그런 쓰잘데 없는 질문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건 뭐야요? 옷감?"
그녀는 내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선물 꾸러미의 내용이 여간 궁금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미리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튼 우린 인사만 하구 나오믄 되는 거야. "
나는 퉁명스럽게 말하고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내 행동의 저의가 어디 있는지 밝힌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물론 명료한 의식이 개입돼 있지 않다고는 하지만 지겹도록 짓눌려 온 감정이 품고 있는 교활한 앙갚음 같은 것이 혀를 날름거리며 숨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나를 낳음으로써 우리가 만났던 것이라면, 나는 그에 버금가는 것으로써만 헤어짐을 공고히 할 우 있으리라는 논리가 가능했다.
나는 누가 선물 꾸러미를 채어 가기라도 할세라 옆구리에 꾹 눌러 낀 채 미로인 양 요리조리 꼬부라지는 좁은 골목길을 더듬어 올라갔다. 이번에 옮긴 뒤로 부동산 경기가 갑자기 침체되는 바람에 꽤 오래 눌러 살고 있는 집이었다. 미로는 점점 오르막이 되면서 겨우 사람 하나가 가까스로 지날 만큼 좁아지고 있었다. 그 기다랗고 좁은 골목길은 마치 뱀이 거꾸로 기어 내려오는 느낌을 주었다. 마지막에는 뱀의 꼬리처럼 가늘어져서 사라지리라. 그 골목길을 오르내릴 때면 늘 그런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이리저리 나돌다가 약간의 돈이 궁색해 기어들 때면 더욱 그랬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싸늘한 눈초리로 너도 이젠 혼자 힘으로 벌어먹을 나이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때 나는 오랜 부랑(浮浪) 생활에서 길들여진 음험한 습벽 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한때 나는 내 몸에 겨우 세 군데 밖에 칼자국이 없다는 사실에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그런 열등감만이 안식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외판 사원이 되어 각양각색의 상품들을 팔아 오면서 혼자 힘으로 벌어먹을 나이가 되었음을 훌륭히 보여 준 저 여러 해 동안에도 나는 내 몸에 단지 세 군데밖에 칼자국이 없음을 부끄러워하던 당시의 용렬한 내 모습이 그리웠던 것은 이상한 일이다.
골목길의 어귀에서부터 뱀의 아가리로 기어드는 듯한 섬뜩한 느낌을 가졌던 까닭은 골목길이 꾸불꾸불하면서 좁아지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도 내게 끼쳐오던 섬뜩한 기운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뱀을 직접 만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뱀의 냉혈이 얼 마나 차갑게 몸뚱어리 속을 순환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골목길을 접어들면서 느끼는 섬뜩함은 뱀의 그것이었다. 마치 회음부가 켕길 때의 불쾌감처럼 나는 잔뜩 움츠리고
"이놈의 뱀, 이놈의 뱀!"
하고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뇌까리며 집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집을 뛰쳐나왔을 때마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그곳을 찾아간 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기 싫었다. 사실
"이놈의 뱀!" 하고 저주에 가득 찬 말을 내뱉아야만 했던 감정은 왜 오랜 동안 나를 길들여 왔던 것이었다. 나는 집요하게 그 감정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시달려 왔을 뿐이지 결코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그에 관해서라면 나는 영원히 순치되지 않는 야생 동물이었다. 매일같이 그 집을 드나들 때도 나는 한번의 예외 없이 나를 엄습하는 섬뜩함에 깜짝 놀라며 휘말려들곤 했다. 그러니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만도 다섯 번의 가출을 기도했다 해서 이상할 건 없으리라. 어머니는 내가 추위와 굶주림에 견디지 못하여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집으로 기어들었을 때마다, 네까짓 게 가면 어딜 가 하는 눈초리로 노골적인 경멸을 표시했다.
"개밥에 도토리 같은 녀석!"
그 말의 뜻보다는 목소리가 한층 싸늘했다. 집 매매 관계로 드나들던 김씨가 있을 때면 어머니는 더욱 표독스러웠다. 내 가출 사실보다도 내가 가출함으로써 내 존재가 특별히 드러나게 된다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김씨가 나를 거북하게 여기고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는 늘 나를 향해 부드러움을 그려 넣은 가면을 쓴 듯 부드러운 얼굴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어둠 속에서도 나를 향해 그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기조차 했다. 내가 학업에 싫증을 느끼고 차츰 밤거리에서 맴돌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학교에서 비행 학생으로 적발되어 보호자를 호출했던 날 그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 대신 삼촌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학교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날 저녁도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그는 앞에 나를 앉혀 놓고 몇 번 헛기침만 계속하던 끝에 불쑥 말했다.
"글쎄, 인생이란 이끼 낀 연못에 개구리 퐁당 뛰어드는 소리 같은 걸 테니까. 일본 사람이 쓴 하이쿠를 보면,,,,,,"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인생이란 그처럼 허무맹랑한 것이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제 좋을 대로라는 뜻인지 아치면 그 반대의 뜻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일본 사람은 무슨 일본 사람이며 하이꾸는 도대체 또 뭐란 말인가 하고 막연한 반발심만 솟구쳐 올랐다. 나중에 나는 김씨가 한 말이 일본의 이름난 하이쿠 시인인 마쓰오 바쇼의 구절에서 따 온 것임을 알고 묘한 감회에 빠졌었다. 옛 연못에 개구리 퐁당 뛰어드는 소리.
다른 나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그는 어머니와 말할 때면 내가 알아들을 수 없게 중국어로 말하는 때가 많았다. 그럴 때의 나는 참으로 서글프기 짝이 없는 유복자(遺腹子)였다.
언젠가 술 먹은 힘을 빌어 항변한 적이 있었다.
"왜, 왜들 딴 나라 말을 쓰는 거죠?"
그러자 어머니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취했으면 그만 들어가 자."
어머니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었다. 모처럼 만의 내 항변은 그 소리에 그만 기가 꺾이고 말았다. 김씨는 거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으나 어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운 얼굴이었다. 나는 김씨와 어머니의 서로 판이한 두 모습에 질려 쫓기다시피 내 방으로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뒤에 내 비행은 날로 지능적이 되었는데, 내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어머니와 김씨의 모습을 떠올리고 더 한층 악을 쓰곤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집을 뛰쳐나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집을 나오면서 나는 시(詩))와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길이라는 환상에 오랜동안 사로잡혔다. 시와 아버지? 나는 픽 웃으면서도 그 환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일제 때 중국 땅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듣고 있었으나 사실 나는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나중에 정말 시를 쓰게 되었을 때 (북만 견골(肩骨) 노래)라는 것의 끝머리에 '그 잊힌 벌판 깊은 땅 속에 / 잊히지 않으려고 묻어놓은 / 어버이 어깨뼈 한쪽 아직 지저귀리라'고 쓴 것은 그런 사연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렇게 집을 나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다시 집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만났던 것이다.
그녀는 새처럼 작은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 나는 참새는 작아도 새끼만 잘 간다는 속담이 떠올랐고, 궁리 끝에 다시 집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자립하게 되었음을 자랑하고 싶었다.
그 날 오래간만에 찾아간 집은 예전보다 더한 적의(敵意)를 품고 있는 듯하였다. 나는 숨을 죽이고 대문에 달라붙어 지그시 밀어 보았다. 대문은 안으로 빗장이 질러져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잠시 망설였다. 대문이 잠겨 있으리라는 예상은 미리부터 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확인을 하고 나자 사지에 맥이 풀렸다. 낡은 대문의 기둥에는 전기와 수도의 수용가 번호표라든가 이삿짐 센터의 전화 번호표 등이 아무렇게나 붙어 있었고 골목 아래쪽을 향해 백묵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기도 했다. 나는 마치 거기에서 중대한 의미를 찾으려는 것처럼 차례 차례로 한참씩 들여다보았다.
돌아설 수는 없다
이윽고 나는 다시 대문 앞으로 다가 가서 조심스럽게 오른쪽 틈서리로 손을 밀어 넣었다. 여지껏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손끝에 끈이 닿았다. 빗장을 끌어당기게 되어 있는 끈이었다. 봉합 수술로 아문 자리에서 실을 뽑아내듯이 긴장하여 잡아 당겼다. 달가닥. 빗장은 작게 소리내며 벗겨졌다. 예전에도 끈을 잡아당길 때 혹시 빗장이 의외로 큰소리를 내면서 덜컹 벗겨지지 않을까 가슴을 죄었던 기억이 추위에 시린 손가락처럼 생생하게 아려 왔다. 어머니와 어떤 방식으로 마주칠 것인가. 나는 벌판에 선 것처럼 막막했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무엇 때문에 나타났단 말이냐!' 하는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 올 것만 같았다. 방안에서 누군가가 내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나는 방안에서 직접 내다보이지 않을 만한 곳으로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겼다. 모든 일에 소심해서, 밤에 무슨 일을 할라치면 종잇장 하나 넘기는 데도 신경이 곤두서곤 했던 나는 살금살금 행동함으로써만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지나치게 눈치를 살피게끔 되어, 사로잡힌 동물이 겁먹은 눈초리도 꼬리를 샅에 끼우고 뒤로 물러서듯이 행동하는 것도 내 버릇이었다. 그러한 내가 밤거리로 뛰쳐나갔다고 해서 별로 놀랄 것은 없다. 평소에 얌전하던 남자가 예비군복이라도 걸치면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변신하여 우악스런 행동을 거침없이 하듯 밤의 어둠은 나로 하여금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변신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의 절반이 항상 어둠이라는 사실은 용기 있는 사람에게나 겁장이에게나 은총이라 할 것이다. 밤에 종잇장 하나 넘기는 소리도 낼 수 없었던 까닭을 단순한 소심증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나는 내 어머니가 옛 시대의 망령을 마술사처럼 항아리에 집어넣어 영원한 잠을 재워 두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해 왔었고, 따라서 내가 일으키는 어떤 소리가 그 망령의 잠을 깨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자기보다 나이든 사람이 어떻게 추억을 간수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법이다. 나는 어머니가 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두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찌 보면 어머니가 내 아버지를 만나 나를 가지게 된 엄연한 사실조차 아예 없었던 게 아닐까 여겨질 정도로 추억은 아무 데서도 단서를 보이지 않았다, 그 추억이 때로는 공룡 같은 거대한 몸집으로, 때로는 딱정벌레 같은 딱딱하고 작은 몸집으로 자유자재로 변하면서 어떻게든 모습을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쓰면 어머니는 그때마다 능소능대한 어떤 올가미를 써서 꼼짝못하게 묶어 두는 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으로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지만 어머니는 구미호처럼 천연덕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과거를 깡그리 뇌리에서 지워 버렸다고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간혹 어머니가 무심결에 흘리는 말이 그것을 입증해 주었다. 어머니는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과거를 기억하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 월병(月餠)은 더 달아야 해."
언젠가 내가 중국집에서 사 가지고 간 달떡 한쪽을 먹어 본 어머니는 분명히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구미호처럼 감쪽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고 여겨질 순간마다 나는 이를테면 치마 뒤를 쳐들어 그 아홉 개 꼬리를 확인해 보고 싶다거가 심하면 밤에 어머니가 김씨와 동침할 때 어떤 모양이 되는지 알고 싶다는 충동을 받았던 것이다.
그 언젠가도 나는 우선 몸을 숨기고 동정을 살피려는 도둑처럼 집 옆으로 돌아갔었다. 바로 그때 무엇인가 내 앞을 획 지나쳤고, 고양이 소리가 야옹 들렸다. 순간 나는 어머니와 맞닥뜨렸다. 어머니는 방금 굽혔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참이었다.
"다리가,,,,,, 많이 불편하세요 ? "
나는 인사 대신에 어머니의 의족(義足) 쪽으로 눈길을 던지며 불쑥 물었다. 그런 동안 당황했던 어머니가 다시 평상을 되찾아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 왔구나. 고양이가 놀랐어."
어머니는 내 물음에는 대꾸하지 않고 아무 감정도 섞이지 않은 억양으로 말했다. 그 말투는 저 의식적인 냉랭함을 애써 깃들게 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웬일인지 나약해져 버린 것 같았다. 나는 불과 얼마 동안에 어머니가 늙어 버린 것은 아닐까 살펴보려는 듯이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달라진 데라곤 당연히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런데 왜 눈초리에 맴돌던 표독한 기운은 사라졌단 말인가.
나는 얼핏, 어머니가 방도 아친 마당 모서리에서 자신의 의족을 들여다보며 - 그것은 정확한 추측일 것이다 - 회한에 젖어 삶을 저주하고 있었던 모습을 내가 보아 버렸다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짐짓 무력해 보이려고 가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손으로 건드리면 가만히 엎드려 죽은 체하는 무당벌레처럼.
"방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다리를 전다는 표시를 되도록 덜 내려고 애쓰며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아, 아니에요."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시늉을 했다.
"아니라니?"
어머니는 의아스럽다는 듯 나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아니에요,"
나는 다시 한번 완강하게 말했다. 어머니의 입가에 시든 꽃잎같이 엷은 미소가 스쳤다고 생각되었다
"아무도 없어!"
"그게 아니에요."
"그럼?"
"급한 일이 생겨서-, 돈이 필요해요."
나는 어머니가 어떻게 나오든지 내친 걸음이다 싶었다.
"돈?"
어머니는 그랬었구나 하고 쓸쓸한 기색을 나타냈으나 이내 무엇인가 체념하는 듯이 보일락말라 머리를 수그렸다. 그랬을 뿐, 내가 예상했던 '모자란 녀석, 또 무슨 일을 저질렀구나' 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툭하면 '매밥에 도토리'를 강조하던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쉽게 믿기지 않았다. 그만큼 어머니는 달라 보였다.
나는 외국어 학원에 등록하는 데 돈이 좀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둘러댔다. 어머니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거짓말이건 어쨌건 문제가 아니라는 투였다. 아니, 어쩌면 거짓말을 하는 거지 하고 배를 가른 닭의 뱃속을 들여다보듯이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의혹스럽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열심히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어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알았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가진 건 없구,,,,,, 이걸---"
어머니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손가락에 끼었던 금반지를 돌려 빼내고 있었다. 그때 내가 기쁨을 느꼈는지 슬픔을 느꼈는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두 돈 짜리다."
그 음성은 멀리서 홈통을 타고 들려 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마치 주술(呪術)을 받는 사람처럼 몽롱한 정신이었다. 두 돈 짜리의 순금이 다른 방법으로 치환된다면, 어머니를 속여서 얼마만큼의 경비를 마련했다는 데서 오는 희열과 아무런 경멸도 보이지 않고 어머니가 순순히 반지를 빼 주었다는 데서 오는 당황이 뒤섞인 합금(合金)이 되리라. 그때처럼 내가 착잡한 마음이 된 적은 없었다. 어머니가 그토록 순순히 내 뜻에 따른다는 사실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그 반지의 주술이 어떤 내용의 것인지 도저히 간파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수선한 기분으로 집을 나왔다. 거리에는 이미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그 날 밤 그녀를 만난 나는 엉뚱하게도 같이 살자고 제안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악을 쓰며 조소를 퍼부었다면 사태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마치 아래로 줄을 당기면 오히려 위로 번쩍 손을 치켜드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듯하였다.
내가 어머니에게 새 의족을 선물하려고 계획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머니의 의족은 나에게는 항상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의족을 떼어놓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물론 한여름에 무심코 드러내놓은 다리에서, 그 의족이 정강이께 까지라는 것을 보았기는 했지만, 어머니는 그에 관한 한 지나친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밤에는 도대체 어떻게 하고 잠이 드는가 의문이었다. 나는 김씨를 대하면 그 질문을 던지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김씨가 어머니에게 보이고 있는 감정이 단순한 동정인지 어떤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는 가정을 가졌으면서도 꾸준히 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수족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한쪽 발은 고무 다리로, 또 한쪽 발은 김씨의 것으로 세상에 설 수 있는 듯이 보였다.
이러한 상관 관계에 의해서, 일본군의 난동으로 상처를 입어 더 이상 썩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자르게 뤘다는 한쪽 다리와 이야기 끝마다 일본 예를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김씨가 풍기는 분위기는 이율배반적인 침울함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깊어 가면 갈수록 내가 정신대의 망령에 흘리게 되었음도 그런 까닭에서였다. 나는 급기야는 어머니가 정신대에 자원했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많은 꽃다운 여자들이 목숨마저 잃었다는 것이었으므로 다리 하나를 잃었다는 사실에 특별히 비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가끔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악의(惡意)에 빠진 소년처럼 비참한 상상을 즐겼다.
어머니는 가까운 친척들의 내왕을 허락하지 않았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 불편한 다리 탓은 있었지만 - 집 안에 꼼짝 않고 틀어박혀서 하루종일 닭처럼 도사리고만 있었다. 어두컴컴한 현실(玄室)에서 오로지 김씨만이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연도였다. 어머니는 김씨의 제보에 의해서만 집을 샀다 팔았다 했는데, 김씨가 어머니와 함께 밤을 지내지 않는다면 그저 충실한 하수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고양이가 병들어 죽거나 늙어서 집을 나가면 고양이 새끼를 구해오는 일도 김씨의 소임이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김씨에게 특별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어느 날 김씨와의 다툼에 울음을 보이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어머니의 속셈은 끝내 종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따라 일찌감치 자리에 누워 있던 나는 어머니와 김씨가 다투는 소리에 귀가 종긋했다. 처음에는 이웃집에서 들려 오는 소리 같았다. 도란도란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 째 커다랗게 집안을 울렸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서로가 그 일이 잘못되었다고 우겼다. 나는 조마조마해서 숨을 죽이고 불까지 꺼 버렸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나뿐만이 아니라 김씨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찬 바람이 획획 일도록 쌀쌀맞다는 것을 알았다. 한참 뒤 김씨가 방문을 우당탕 열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자.
"다시는 오나 봐라."
그는 씨근덕거리면서 내질렀다. 그가 어지간히 화가 나 있는 듯싶었지만 나는 부드럽게 웃음 짓던 얼굴밖에 상상할 수가 없었다.
"맘대로 하란 말이에요."
어머니는 매도하듯 대꾸했다. 김씨는 마루에서 내려서 신발장을 열고 구두를 꺼내 신는 모양이었다. 어머니와 김씨 사이에 놓여 있는 팽팽한 긴장이 내게까지 전달돼 왔다.
이윽고 김씨는 대문께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그때였다. 어머니가 뛰어나와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대문이 소리를 내며 닫힌 뒤였다. 그 날 밤 나는 안방에서 새어나온 흐느낌 소리를 들었다. 그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되자 나는 알 수 없는 허전함마저 맛보았다. 그러나 그가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추측은 빗나갔다. 그는 하루도 못 넘기고 다시 찾아왔던 것이다,
그녀와 내가 방안에 들어섰을 때도 어머니는 고양이와 함께 있었다. 나는 그녀를 어머니에게 소개시키고 나서 선물 꾸러미를 내밀었다.
"건 뭐냐?"
가고 나면 끌러 보라는 내 말에 아랑곳도 하지 않고 어머니는 선물 꾸러미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포상을 뜯어냈다.
"아니, 이건?"
선물 꾸러미를 펼친 어머니는 너무나 뜻밖인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뱀의 비늘 같은 경련이 한 차례 지나갔다
"어머니 다니던 가게에 가서 똑같은 걸루 주문했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투로 시치미를 뗐다.
"엉뚱한 녀석."
어머니는 그녀가 있든 말든 그렇게 신음하듯 말했다. 그러더니 마침 지나가는 고양이를 한 손으로 붙잡아 목덜미를 가볍게 주물렀다. 나는 어머니의 기분이 상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을 배짱이었다. 어머니로부터 떠나가는 일을 확인하는 요식 행위니까 어머니 쪽에서 어떻게 받아들여도 운명에 지나지 않는다 하고 생각했다. 고양이를 만지작거리는 어머니의 손길이 차음 탐욕스럽게 악력(握力)을 가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괴로운 듯 목을 빼내려고 애를 썼다.
"어차피 이런 때가 오길 나는 기다리고 있었어."
어머니의 손에서 고양이가 빠져나갔다.
"너무 오래 달구 있어서 지겨웠던 참인데 잘됐지 뭐냐."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하면서 돌아앉아 뜻밖에도 부착하고 있던 의족을 끄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허벅다리 그 위로 붙잡아 매어져 있었다. 나는 정말 그런 광경을 보기 위해서 음모를 꾸민 것은 아니었다.
하필이면 이 자리에서 그럴 건 무엇인가. 나는 그녀 쪽으로 눈길을 던지며 못마땅하더라도 잠시만 견며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시 되돌아 앉은 어머니의 손에는 의족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방금 톱질돼 내놓은 것 같았다, 어머니는 창백한 안색이었으나, 기꺼이 순장된 과부와 같이 이미 세상의 영욕을 초월한 듯이 보였다.
"오랜 동안 난 이걸 내 몸에 지녀왔다. 새 걸 가져왔으니 이제 이건 너한테 주마.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였으니까."
"뭘 말이에요? "
나는 얼떨떨해서 말했다.
"사실이지 난 니가 집을 나갔을 때는 미워할 게 없어져서 늘 맘이 비어 있었다. 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난 줄곧 누군가 미워해야만 직성이 풀렸으니까. 그런데 막상 너밖에는 미워할 사람도 없었던 거야. 믿을 게 없어진 셈이지."
어머니는 넋두리처럼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둔중한 망치가 머리에 와 닿는 듯했다.
"그이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나는 멀고 먼 곳까지 단숨에 갔었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던 소식이었는데 그게 그랬으니--- 장가구라는 곳이었지,,,,,, 그땐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장가구, 장자커우,,,,,,"
어머니의 목소리는 높낮이가 고르지 못했다. 어머니는 자제력을 발휘하려는 듯 숨을 몰아쉬었다.
"대륙 깊숙이 자리잡은 차하르의 성도였지. 유명한 만리장성의 관문이기도 해. 거기서 영하를 거쳐 양주를 지나면 천산의 남로(南路)로 접어든다. 감숙회랑을 통해 멀고 먼 서역 지방에 이르지."
어머니는 단숨에 주문 외듯 줄줄이 엮어 나갔다. 실제로 그 얼굴은 신이 지핀 듯 보였는데, 멀고 멀다는 말 때문일까, 어머니의 얼굴 자체도 아득히 먼 데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나는 나대로 아, 서역 하면서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었다.
"거기엘,,,,,,가셨더란 말이지요?"
나는 여러 지명이 한꺼번에 나오는 통에 정신이 산란했지만 서역이란 말만은 똑똑히 기억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입에서도 몇 번 나왔던 말이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눈에서는 인광 같이 푸른빛이 요기를 띠고 번쩍였다.
"아니, 난 장가구까지만 갔었지, 거기서 서역까지는 부산에서 서울 거리의 일곱 배가 넘어."
"멀고 먼 곳이군요."
"그럼."
"그래서요?"
"장가구의 연락처까지 갔을 때 네 아버지 소식을 들었어. 돌아가셨다고,,,,,, 취라는 여자가 말해 주었어."
어머니는 갑자기 숨이 차는 모양으로 헉헉거렸다. 내 머리에는 아무 것도 제대로 들어와 박히지 않았다
"무슨 말씀인지 통 모르겠군요."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르겠는 건 나두 마찬가지야. 모든 걸 자세히 알기만 했어두 내가 네 아버질 그렇게 원망하지두 않았을 게구 또 너도,,,,,, 네 아버진 날 그렇게 기다리다가 장가구를 떠났다니가. 그전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는 게야."
"그런데 왜 먼 길을 떠났나요?"
"건 아무도 몰라. 취란 여자 말에 의하면 곧 죽어도 길들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구 그랬다는 게야."
"취가 누군데요?"
"네 아버지의 아내 행세를 한 여자야. 돈을 받고, 그렇게 해서 부부로 가장했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친 것도 그 여자였어. 아버지는 정말 위독하셨다는 게야. 그런데두 막무가내로 길을 떠났대. 서역 땅으로."
"서역에는 뭣 때문인가요?"
"거기서부턴 나두 알 길이 없지."
어머니는 후우 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역마살이 끼어서가 아니었겠느냐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아픈 몸을 이끌고 길을 떠나야 했다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걸 열어 보도록 해,,,,,, 취로부터 받은 유일한 유품인데,,,, 장가구를 떠나 몹쓸 놈들의 총질에 다리 하날 잃어버리면서두 어떻게 그걸 간수해 왔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말하면서 의족을 내게로 내밀었다.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가운데 뼈가 있음직한 데 뚜껑이 있다."
"뚜껑이요?"
나는 의족을 받아들고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과연 의족의 한가운데로 병마개 모양의 뚜껑이 있었다. 그것은 뼈의 절단면처럼 생겨 있었다. 나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그 위에 갖다 대고 가볍게 누르며 왼쪽으로 돌려보았다. 쉽게 돌아갔다. 그 속에서 나온 것은 뜻밖에도 작은 두루마리였다. 나는 어떤 비적을 행하는 무격(巫覡)의 제자라도 된 양 온몸이 덜덜 떨렸다.
"이게 뭐지요?"
"펼쳐 봐."
어머니도 격앙된 목소리였다. 그녀는 아까부터 아무 소리도 입밖에 내지 못하고 한 귀퉁이에 작게 웅크리고 이 모든 의식(儀式)을 겁먹은 눈초리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두루마리를 펼치자 글자가 나타났다.
"네 아버지의 필적이야. 첫머리를 봐."
"이것이,,,,,,"
"응, 난 그걸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몰라, 오랜 동안,,,,,, 가장 안전한 데 숨겨 가지구--- 그냥 그때 그때의 감회를 적은 거지만 그걸 읽을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았어. 그 뒤를 보렴."
"네."
어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고 두루마리의 글자들을 외어 내려갔다. 어머니가 외고 있는 부분은 이를테면 머리말이었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을 외어 내려갔다. 처음 대하는 나로서도 비장한 감회를 읽을 수 있는 듯하였다, 중간 부분에서 아까 어머니가 말한 지명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부문을 기억해서 말했던 것이리라.
",,,,,장부(丈夫) 태어나 어찌 하늘에 부끄러운 짓을 하리요. 삼위(三位) 태백(太白)은 우뚝하여 만고에 변함이 없으니 폐허를 향하여 가는 이 몸 풍찬노숙(風餐露宿)에도 뜻을 세우리라."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는 밝혀 있지 않았다. 나는 숙연해지는 마음을 붙잡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소녀같이 해맑은 얼굴이었다. 나는 가슴이 꽉 막혀 왔다. 바로 그 순간을 위해 내가 그렇게 어머니를 적대시하였고 어머니 또한 그래 왔다고 느껴졌다. 모든 것을 깨달은 느낌이었다. 나는 얼마나 어머니를 그리워해 왔으며 또한 어머니는 얼마나 나를 받아들이기를 원해 왔던 것일까.
"아버지는 광복군의 밀정(密偵)이셨다."
"밀정,,,,,,서 역 땅,,,,,,. "
나는 말을 더듬었다.
어느 틈에 어머니는 내가 선물한 의족을 다리에 부착시키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앉아서 방금 어떠한 일이 일어났던가 되새겨 보려고 가늠하고 있었지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어머니가 웃음을 띠고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언제부터 우리 앨 알았지, 응?"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갑자기 무엇이 부끄러운지 그녀답지 않게 몸을 배배 꼬며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가. 우리는 마침내 바다로 온 것이었다. 우리는 숙박업소와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벗어나 얼마쯤 더 걸어 올라갔다. 어떤 곳을 찾는다는 서로의 의사 교환도 없이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한 건물을 보또 있었던 것이다. 둘 다 눈이 어지간히 나빴지만, 그 이층 건물이 여관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길 저쪽으로 바다에 바싹 다가붙은 집이었다. 이미 솔숲은 끝나 있었고 바닷가로 휘어 돌아가는 길은 갑자기 전형적인 시골길처럼 변하고 있었다. 바다가 한결 가까워졌다. 바닷가로 올라온 큰 고래가 잔 이빨을 드러내듯이 파도가 희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 여관은 이상하게 동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시설을 잘 갖추고, 다른 여관하고는 급이 다르다는 투로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건물은 겉부터 낡을 대로 낡아 있었고 간판조차 칠이 희뜩희뜩 벗겨져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집으로 향해 갔다. 밤이면 바다 소리로 베개를 삼을 만큼 바다가 가깝다라는 것이 내가 그 집으로 향해 가는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낡고 시설이 형편없어 보였지만, 만약 저 집에서 손님을 받지 않는다면 낭패다 하는 생각까지 있었다.
그녀가 아무런 저항감도 보이지 않는 것은 나와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었다. 그때 나는 여관 한 모퉁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파밭이 있는 것을 보았다. 몇 대궁 솟아 있는 파에는 플라타너스 열매 같은 파 꽃이 피어 있었다. 실상 그것을 파밭이라고 하는 것은 과장이다. 누군가가 몇 뿌리 심었다가 먹으려고 놔두었던 것이 마침내는 꽃까지 피었다고 보아야 했다. 파 꽃은 봄에 피는데--- 하면서 백록 색의 꽃을 살펴보았다. 파는 씨를 받을 목적이 아니면 꽃이 피기 전에 캐 먹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꽃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파꽃을 보는 것과 함에 나는 그녀와의 동서 생활에 대해 다시금 생각이 미쳤다. 그녀는 파라면 아예 머리를 내저었다. 어쩌다 둘이서 설렁탕 집에 들러 한 그릇씩 시켜 먹을 때도 파가 미리 넣어져 있을라치면 젓가락으로 일일이 건져내야만 했다. 설렁탕을 좋다한다면서 파를 안 넣어 먹다니, 그것은 냉면을 좋아한다면서 식초와 겨자를 안 넣어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파는 모두 내 뚝배기로 옮겨졌다. 그런 반면 나는 달랐다. 파를 듬뿍듬뿍 넣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녀가 파를 싫어하게 된 것은, 먹으면 잠이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만 꼼짝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양파 한 알을 썰고도 눈시울이 무거워지는 그녀였다.
"북(北) 호텔 같군요."
이층으로 을라가는 나무 층계는 삐걱거렸다. 나는 그녀가 언젠가 읽은 문고판의 소설책 (북 호텔)을 연상하는 게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낡고 스산한 호텔을 연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층을 목조로 증축한 듯한 여관은 모든 시설이 엉망이었다. 우리는 방안에 들어가서도 앉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방바닥은 모래가 서걱거리며 밟혔다. 왜 이렇게 손을 안 보느냐는 물음에 종업원 아이는 재개발 사업으로 곧 헐리게 된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서 이미 버려지다시피 한 집이었다.
"오히려 잘됐지 뭐예요. 다신 못 와 볼 집이니까."
그녀는 오히려 흡족한 표정이었다.
"자, 어서 싸 가자구. 뭘 먹어야지."
나는 여행 가방을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막상 방을 구해 들었으나, 뭘 먹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그 방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는 여관에서 나와 온 길을 되돌아갔다. 벌써 하늘에는 저녁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철늦은 바닷가로 오게 되었을까. 을씨년스러운 여관 방을 보는 순간 나는 생각했었다. 언젠가 우리는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동화되지 못하고 지나치게 오랜 동안 의미 없는 동서 생활을 계속해 왔다. 그 생활은 마치 늪에 빠진 생활 같았다. 우리는 더 이상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먼저 말을 못 꺼내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 방에 들어섰던 순간 나는 이제는 마지막이다 하고 암울하게 깨달았다. 우리는 서울로 돌아가는 그때부터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과거를 잊고, 이 세상에서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얼굴을 돌리고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하지만 헤어지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계획은 없었다. 다만 헤어짐을 우리들의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만은 뚜렷하게 떠올랐다.
"이거 소라 아녜요? "
그녀는 수조 앞에 놓여 있는 플라스틱 함지를 들여다보며 생기 있게 말했다.
"그렇지. 소라도 한 마리씩 달라구 그럴까. "
나는 소라를 물에서 건져냈다. 소라의 속살이 안으로 깊이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함지 속의 다른 소라들을 톡톡 건드리고는 그 움츠러드는 모양에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 여자에게도 이와 같은 면모가 있었던가, 나는 왜 오랜 동안 같이 살아온 여자가 아닌 다른 생소한 여자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소라가 새가 된다는 엉뚱한 어떤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소라고등이 천 년이 지나면 파랑새가 된다고 한 것은 정 약전이라는 조선 시대 사람이라고 했다. 과학적으로 본다면 어처구니없는 관찰이었다. 소라가 새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문득 생각했다. 천 년이란 세월이 꼭 천 년을 곧이곧대로 이르지 않고 무궁한 어떤 세월을 이르는 것이라면 소라가 새가 되지 못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진화론에서은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다고 하며, 또 더 길게 잡아 말하면 육지의 동물은 모두 물고기 같은 것에서부터 진화했다고도 했다. 이른바 시조새의 화석이란 것에는 새의 날개에 짐승 앞발과 같은 발톱이 날카롭게 돋아 있었다. 그러니까 네 발 짐승의 앞 다리가 날개가 된 것이었다. 쥐가 새가 된다고 하면 쉽게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박쥐는 새가 아닌데도 새처럼 날아다닌다. 진화론의 입장에서는 몇 억 년이 지나서 소라가 새가 되어 날아다닌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
"소라가 오래 되면 새가 된대."
음식이 날라져 왔을 때 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새가요?"
"응."
"날개 달린 새 말이에요?"
"날개 안 달린 새도 있나?"
나는 비로소 웃음을 띠워 주었다.
"그짓말."
그녀도 따라서 웃음을 머금었다,
"아냐. 거짓말이 아냐. 굼벵이가 매미가 된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굼벵이, 못 봤어요."
보고도 못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동식물에 대해서는 거의 백지 상태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 방안으로 들어온 납작한 갑충을 보고 거북이 새끼라고 했던 그녀였다.
"굼벵일 못 봤다면, 그럼 올챙이가 개구리가 된다는 걸 상상해 봐."
"거야 이상할 게 뭐 있어요. 당연한 걸."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소라가 오래 묵으면 새가 된다는 것은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는 것과는 달랐다. 그리고 설령 아득한 미래에 어떤 망칙한 생물학적 변이로 말미암아 소라가 새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몇 억 년은커녕 몇 십 년 뒤면 우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면서
"아무튼 새가 된대. 파랑새가."
말하고는 우물우물 먹는 데만 열중했다. 실상 나는, 애초부터 그녀가 소라를 보고
"내 귀는 소라 껄데기. 바닷소리를 그리워합니다."
하는 투로 이야기를 전개시키지 않는 것만이 고마을 뿐이었다. 그런 간지러운 시 구절로 우리의 헤어짐이 장식되어서는 안 되었다.
소라 고둥이 천 년을 묵으면 파랑새가 된다.
내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굳이 꺼냈던 것은 그녀의 상상력을 혼란시키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었다고 보아진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었다. 아득한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함지 난의 소라가 빨강새나 노랑새가 되어 퍼덕거리며 날아간다 한들 그것이 우리의 삶에 무엇이란 말인가. 다만 나로서 감당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일을 연출하느냐 하는 문제뿐이었다.
"소라는 똥이 맛있어."
나는 뱅뱅 틀려 나온 고깔 모양의 까만 부분을 집어 들었다.
"쓰지 않아요?"
"그럼. 고소해."
그러나 그녀의 젓가락은 생선회 쪽으로 갔다. 그 뒤로 우리는 이렇다할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나마 대화를 중단하자 식당 안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했다.
음식점을 나섰을 때는 날이 어느 결에 어두워져 있었다. 우리는 긴 둑 같은 그 길을 어슬렁거리며 산보하듯 걸어 여관으로 돌아왔다. 어둑어둑한 가운데 여관은 더욱 낡아 보였고,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계절에 홀로 가을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곧 쫓겨날 세방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처럼 엉거주춤한 채 열쇠를 받아 들고 이층의 삐걱거리는 층계를 밟고 올라갔다. 여관을 통틀어 손님이라곤 우리뿐인 듯싶었다
"몇 천 리 밖으로 온 것 같아요."
그녀가 방에 들어가 커튼을 젖히며 말했다. 그것은 나도 같은 감정이었다. 우리는 불과 댓 시간 버스를 달려왔을 뿐이며,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몇 천 리 밖이란 아예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몇 천 리 밖으로 왔다고 느끼고 있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창 밖에서 바다는 청대빛으로 어둠에 물들어 가고 있었고, 그 가장자리에서 파도가 희미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자, 이제부터는 진짜 이별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방에 붙어 있는 화장실로 서성거리듯 가서 욕조에 물을 틀었다. 수도꼭지에서 녹물이 조르르 흘러 나왔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망연히 서 있었다, 맑은 물이 나온다고 해도 욕조에 들어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때 나는 담배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내가 허겁지겁 돌아서서 담배를 사오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잘못 들은 모양이었다.
"담밸 사와야겠어. 몇 개비밖에 없어."
나는 용서를 빌 듯 말했다.
"아래층에 갖다 놓은 거 없을까요?"
담배 가게까지는 너무 멀다 하고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있을 턱이 없지, 물도 제대루 안 나오는데. 제기랄."
나는 투덜거리면서 황망히 방문을 열고 나왔다. 하기는, 담배가 떨어지면 내가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는 줄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밤 열두 시가 가까워서 곧 잠이 들 것이 분명해도 담뱃갑이 홀쪽하면 담배 가게가지 뛰어 갔다가 와야만 했다. 담배 가게는 소라를 먹던, 음식점이 즐비한 곳에 있었다. 바깥으로 나오자 늦여름 저녁 바람이 상쾌했다. 나는 바삐 걸었다. 담배를 사는 것이 목적이었고, 담배 가게까지는 꽤 멀었지만, 나는 온몸이 무슨 억압에서 벗어난 듯 홀가분했다. 그녀가 있는 그 여관으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이었다. 그 홀가분함에 나는 스스로 놀랐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여지껏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내가 이토록 그녀와 헤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가 생각하니 우스꽝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뛰다시피 여관에서 멀어져 갔다.
어렸을 적 일이었다. 바닷가에서 자란 나는 우연히 이웃집 계집애와 함께 모래밭에서 놀고 있었다. 그 날의 앞뒤 사정은 전혀 기억할 수 없지만, 그때 나는 어쩐 일로 그 애와 옷을 홀딱 벗고 물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모래 장난으로 한나절을 보냈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누구나 어린 시절에 모래 장난, 흙장난에 몰두하는 시기를 갖는다고 하는데, 아마 그런 시기였던 듯싶다. 물에 젖은 모래를 쌓아 올렸다가 허물어뜨렸다가 하면서 우리는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때였다. 갑자기 그 애가 말했다. 해가 진다. 정말 둥그렇게 붉어진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큰일났다. 빨리 집에 가야지. 우리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어찌된 일일까. 옷을 숨겨 놓은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물에 들어갈 때 모래로 파묻은 것이 잘못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도드라지게 표시를 해놓지 않았던가. 겁이 더럭 났다. 그럴 만한 곳을 다 파헤쳤지만 옷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벌거벗고 울상이 되어 모래밭을 헤맸다. 헤매면 헤맬수록 옷을 파묻은 곳은 점점 더 묘연해졌다. 어둠이 짙어졌을 때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훌쩍훌쩍 울먹거렸다. 그래도 우리는 모래밭을 헤매기만 했다. 만약 어른들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그렇게 밤을 꼬박 새웠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때를 회상하며 모래밭으로 걸어 내려갔다. 바다는 어둠 속에 가라앉아 둔중하게 기우뚱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달도 뜨지 않으려는가, 희게 부서지던 파도도 어두운 고기의 지느러미처럼 언뜻언뜻 솟아 보일 뿐이었다, 전등불들이 멀리서 유아등(誘蛾燈)처럼 빛났다.
나는 어둠 속을 어정거렸다. 돌아보니 낡은 여관의 이층 방에서는 창백한 형광등 불빛이 외롭게 띠쳐 나오고 있었다. 그 불빛은 먼 다른 세상에서 비쳐 나오고 있었다. 그와 함께 어떤 충동으로 나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옛날 일을 회상했던 때문만도 아니었다. 완전히 옷을
벗은 나는 알몸으로 주위를 걸어다녔다. 어둠 속에서는 옷을 입는 것보다 벗는 게 더 안 보인다지. 나는 투명 인간이라도 된 양 자유스럽게 걸어다녔다.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한 사람의 진정한 자유인이 된 느낌이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지금 막 물고기에서 진화된 무슨 짐승처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갑자기 파도소리가 높아지며 하늘 가득히 새들이 날았다. 소라 고등이 변한 새들이었다. 새들은 별처럼 까마득히 눈을 반짝이며 날았다. 천 년을 묵어 탈바꿈을 잔 소라들. 태풍으로 뒤집힌 바다 밑에서 곤두박질치며 하늘로 솟아 새가 된 소라들. 몇억 년을 묵은 소라들.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대신 날개를 단 자유.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어떤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식에서 그녀는 나를 자기 친구라고 소개까지 했다. 나는 내가 결혼식에 간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얼마 지파지 않아서, 그 얼마를 구태여 따진다면 두 달 열흘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내가 그렇게 꿈꾸어 왔듯이 또한 헤어짐을 꿈꾸어 왔다는 말이 된다. 내가 그 날 밤 경찰관에게 끌려, 아래만 겨우 어떻게 가리고, 여관으로 돌아갔을 때 그녀는 벽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 뒤 나는 김 춘수 선생의 (누란)이라는 시를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시는 '과벽탄' ‘명사산' 같은 어려운 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 '명사산'에서 나는 멈추었다. 그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명사산 저쪽에는 십 년에 한 번 비가 오고, 비가 오면 돌밭 여기저기 양파의 하얀 꽃이 핀다. 언제 시들지도 모르는 양파의 하얀 꽃과 같은 나라 누란.
누란. 아버지가 꼭 그곳으로 갔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서역 땅 그곳으로 가는 한 사내를 머릿속에 그렸다. 아울러, 양파 꽃과 파 꽃이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 없어도, 파를 그렇게 만지기 힘들어하던 그녀를 생각했고 또 파 꽃이 피어 있던 그 여관을 생각했다.
누란은 폐허가 된 오아시스 나라였다. 그 여관도 지금쯤 흔적 없이 뜯겼을 것이다. 그 사랑은 끝났다. 그리고 누란에서 옛 여자 미이라가 발견된 것은 다시 얼마가 지나서였다. 그 미이라를 덮고 있는 붉은 비단 조각에는 '천세불변'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언제까지나 변치 말자는 그 글자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미이라는 미이라에 다름이 아닌 것이었다.
미이라와 그리고 언제 시들지도 모르는 양파의 하얀 꽃이 피는 나라.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만남인가. 세상 모든 만남이 그런 것인가. 아니, 폐허와 같은 사랑도 어떤 섭리의 밀명(密命)을 띠고 있는 것인가.
귤(橘) 윤후명
그의 전화를 받고 나자 나는 오직 그냥이라는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그냥이라고 말했다. 만나고 싶었어요, 그냥. 삼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그냥이라고 하는 말투를 들으니 저항감이라기보다 연민이 앞섰다. 그는 수화기 속에서 가물거리는 소리
로 덧붙여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얼마나 찾았던지요.
그 목소리는, 드디어 나를 찾아냈다는 반가움에 떨면서 무언가 긴장된 목소리였다, 나는 감정을 될 수 있는 대로 숨기기 위해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건성으로 응답했다.
정말 그렇군.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지 ?
그는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준비라도 한 듯이 당장은 곤란하다고 대답했다.
내일 마침 일요일이니가 내일 만나. 토요일인데도 급히 해야 할 일이 있구먼.
그러면서 나는 곧 퇴근하면 무슨 일을 할까 곰곰 생각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늘 할 일이 없었다. 거리를 헤매다가 어디서든지 술 한 잔을 들이켜는 것도 진력이 나 버렸다. 영화 구경을 한다는 건 애초에 글러먹은 일이었다. 젖통 큰 여자가 벌거벗고 나온다고 했다.
주인 여자를 건달이 막무가내로 덮친다고 했다. 여름날, 모두들 떠난 빈 집에는 두 남녀만이 남았다. ---빌어먹을. 나는 물끄러미 극장 간판을 보면서도 표를 살 흥미가 없었다. 할 일이 없으면 없을수록 더욱 무엇인가에 매달려야 하리라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혔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었다,
나는 아무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바쁜 일을 핑계로 그를 따돌렸다. 삼 년만이었다. 그는 스스로의 표현보다도 훨씬 간절하게 나를 만나고 싶어해 왔는지도 몰랐다. 물론 따져 보면 그가 굳이 나를 찾아서 만나야 할 까닭은 없었다. 그가 군대에 가기 전 우리는 아주 잠깐 동안 만났었다. 그 만남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것은 비정상적인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만남을 다시 갖는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가 몇 년 만에 수소문 끝에 전화를 해서 만났으면 했을 때, 나는 그가 나를 꼭 만나야 하리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만남을 회피하려고 했거나 아니면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이라도 얻고자 쌨으리라. 하지만 겨우 하루를 미루었을 뿐이었다. 나는 버스 종점에서 내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수화기 속에서 알 듯 모를 듯 울고 있었다.
네. 그럼 내일 만나요
전화를 끊고 나자 이미 한 시가 지났는지 옆자리 사람들은 퇴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어디로 간다? 이렇게 할 짓거리도 없으면서 만나자는 사람에게 바쁘다는 핑계를 댔으니 한심스럽기도 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소파에 가 앉아 건성으로 신문을 들척거리며, 매우 지겨운 토요일 오후가 계속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을 더듬었다. 그러자 한 여자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삼 년, 아니, 삼 년 반 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뇌리에 그려보면서 연신 신문만 들척거렸다. 아프간 사태. 정부군(政府軍)과 저항군, 소련군, 살롱 터널에 갇혀 고전(苦戰), 큼직큼직한 활자들 아래, 살롱 터널이란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하기 위해 무슨 산맥의 허리를 자르고 뚫은 험로(險路)라는 등, 그 터널에 오히려 그들이 갇혔으니 '아이러니'라는 둥, 아프간 사람들은 굴복을 모르는 저항 민족이라는 등, 소련이 월남전에서의 미국 같은 신세가 되었다는 등 하는 기사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조금도 관심이 없는 기사였다. 그 비슷비슷한 기사가 꽤 오래 전부터 신문 지면을 장식해 왔었다. 나는 신문을 덮었다. 더 이상 사무실에 앉아 있을 구실도 없었다. 수위가 한 바퀴 돌러 올 것이었다.
내가 그와 만났던 몇 년 전에도 나는 할 일이라곤 도무지 없었다. 아버지가 빚만 남기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나는 그것을 시작으로 갈팡질팡했다. 갈팡질팡함으로써 점점 더 엉망진창으로 악화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나는 왜 남들처럼 비극이나 불운 따위를 의젓하게 이겨내지 못하고 쉽게 좌절하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쏘다니기만 했다.
아버지의 죽음의 결과 그 자체가 그토록 암울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 사귀었었으며 아이까지 가졌던 여자와의 헤어짐이 겹쳐 있었다.
물론 그것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암울해지지 않으면 안 될 막중한 사명이라도 띠고 있는 듯이 암울한 몰골이었다.
개새끼. 나는 내가 개띠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나는 정말 개처럼 쏘다녔다. 어디라고 할 만한 특정한 곳은 없었다. 그 무렵에 만난 게 그였다.
그 날 내가 어떻게 코 집까지 갔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그날따라 꽤 여러 술집을 전전했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바로 전 술집으로 들어간 것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방안까지 성큼성큼 들어가 점잖게 가부좌를 하고 앉은 나는 순간적으로 그놈의 덜 떨어진 장난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장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술병을 들고 들어온 여자가 자리도 채 잡기 전에 다짜고짜 여기서 만나는구먼 하고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던진 게 발단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여자가 흘낏 의혹의 눈길을 던졌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이제야 너를 만났구나 하는 미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내 웃음을 보고 여자는 얼마쯤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았으나 그래도 의혹은 풀 길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자가 누구일까. 웃음을 머금고 있는 걸 보면 해꼬지를 하러 온 녀석은 아닌 듯해. 고개를 갸우뚱할 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이 엿보였다. 그러나 그 이상은 도무지 생각을 진전시킬 수 없어 난감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랜 동안 만나고 싶었지.
나는 여전히 시치미를 떼고 한 수 더 떴다. 여자가 다시 힐끗 눈길을 던졌다. 하지만 그 눈길은 내게 머물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다. 자기를 오랜 동안 만나고 싶어서 찾아온 사내. 그 사내를 알아볼 재간이 없는 것이었다.
스무 살이 갓 넘었을 어린 여자였다. 그 여자는 내가 술집 앞을 지나가려는데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두워 오는 해거름 녘에 무슨 노래인가를 낮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언제 어디선가 만났던 적이 있는 여자였으면 하고 느꼈다. 그래서 걸음을 되돌려 무작정 방에까지 들어가 앉았던 벗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토록 악착스럽게 의뭉을 떨 속셈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장난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언제 어디서고 그 여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수작이었다. 그 여자의 얼굴에는 심한 당혹감과 회한의 빛이 역력했다. 그 얼굴을 지그시 눌러보며, 나는, 네가 한때 거짓 사랑으로 돈과 순정을 울궈먹고 내뺐으나 원망하지 않고 진실로 사랑해서 이날 이때가지 찾아 헤맸다, 하는 투의 몸짓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가 그렇게 심각해진 사실에 나대로 내심 놀라고 있었다. 그 여자가, 웃기지 말아요, 하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낄낄거리며 그만두었을 것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건 수작이기는 했다. 그런데 여자의 흐린 낯빛이 그만 내게 장난을 그만둘 명분을 주지 않았다.
여자는 이리저리 기억을 더듬는 모양이었다. 이미 난처해진 것은 나였다. 술 한 잔 걸치고 가면 되는 것을 괜한 장난을 벌였구나. 여자의 지나치게 심각한 반응 때문에 이젠 장난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술집에서 빚을 지고 도망친 작부를 다시 붙잡아 오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여자는 나를 그런 사람으로 여길지도 몰랐다. 한심했다. 나는 내가 적어도 그런 사람만은 아니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더욱 애써 은근한 웃음을 지어 보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술이나 한 잔 먹으면서 얘기하자구.
여자는 아직껏 병마개조차 따지 않고 있었다. 내 말을 듣고 나서야 술병을 들어올린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병 주둥이를 입으로 가져가 어금니로 마개를 따냈다.
어디,,,,,, 대전에서 만났던가요 ?
여자가 넌지시 물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이 여자는 과거에 대전에 있었다. 그리고 나 같은 남자와 어떤 사건이 있었다. 무슨 사건일까. 그러나 나는 대전이라면 단 하루 동안 스쳐 지난 적이 있을 뿐이었다,
아니.
나는 우리가 그곳에서 만난 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내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던 여자의 눈길이 아래로 떨어졌다. 대전에서 만난 나 같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그리 대수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풋사랑의 잠자리에 함께 든 정도일 것이다. 그보다 더한 관계라면 기억하기에 그렇게 자신 없어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여자가 대전에서 차 같은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는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무슨 큰 비밀을 안 느낌이었다.
나는 야릇한 갈증으로 술잔을 거푸 들었다. 나로서는 여자의 지난 일을 캘 필요도 없었고 권리도 없었다. 여자는 결코 나를 만난 적이 없었으므로 사실 그대로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기만 했어도 그만이었다. 나는 그런 경우를 예상하고 있었소, 세상에는 참 닮은 여자도 다 있다고 얼버무리려고 했었다. 그러나 여자는 언제 어디선가 나를 만난 적이 있다고 느끼고, 또 믿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면,,,,,, 마산?
이제 여자는 집요하게 자신의 과거와 싸우고 있었다. 내가 여자의 과거를 캐는 게 아니라 여자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캐고 있는 것이었다. 여자는 마산에서도 나 같은 남자를 만났다. 여자가 대전에 먼저 있었는지 마산에 먼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두 도시는 한때 여자의 생활 터전이었다. 두 도시에서 모두 나 같은 남자를 만났다. 그러나 나는 마산 땅을 밟은 일조차 없었다. 내가 말없이 술잔만 들어올리자 여자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마산에서 만난 그 사내가 바로 이 사내였던가 하고 탐색하는 눈빛이었다. 마산에서 만난 나 같은 남자와 이 여자의 관계가 궁금했다. 역시 하룻밤 함께 잠자리에 든 정도라고 해 두자.
그러자 이번에는 왠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어떤 애틋하면서도 소녀적인 순간이 있었을 듯싶었다. 그렇지 않고 닳아빠진 하룻밤의 상거래만으로 나 같은 남자와의 일을 집요하게 기억해내려고 애쓰지는 않을 것이었다. 거기에는 적어도 얼마쯤의 진실이 개재되어 있다. 그러나 아니다. 여자는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나를 만난 적이 없다고 단언하지 못하고 있다.
마산도 아닌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자의 얼굴이 언뜻 다시 흐려졌다. 어느새 나도 엉터리 웃음을 띠고 있을 마음이 싹 가셔 있었다. 괜한 장난을 시작했다는 후회가 일었다. 장난치고는 못돼먹은, 비열한 장난이었다.
거짓말은 아니죠 ?
비로소 여자가 의문을 나타냈다. 나는 그 물음에 곧이곧대로 대답하고 싶었다. 그래, 순 거짓말이었어. 그러나 그렇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여자의 물음은 내 말이 거짓말은 아닐 것이라고 받아들인 사실을 다시 다짐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구 싶었지. 정말 보고 싶었지.
나는 침중하게 말했다. 앞으로 무슨 말을 계속해야 할지 답답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내가 사랑하던 여자도 어디론가 떠났어. 나는 아마도 그렇게 말했어야만 할 것이었다. 그런 말이라도 누구에겐가 해야 살 것만 같아서 쏘다니고 있었던 것이리라. 여자가 술 한 병 더 가져오라느냐고 묻고는 대답도 듣기 전에 쏜살같이 나갔다 들어왔다.
그럼,,,,,, 혹시 속초?
여자는 속초에서 나 같은 남자를 만났다. 스무 살을 갓 넘은 여자가 벌써 세 도시를 두루 돌면서 나 같은 남자를 만났다. 속초. 여자와 내가 속초에서 만났을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속초, 그곳이라면 내게도 추억은 있었다. 바닷가.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오십 년대 초에 나는 그곳에 있었다.
일곱 살 때였다.
나는 하루종일 바다를 바라보며 귤(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귤은 항구 저쪽에서 파도를 타고 모래톱으로 밀려 왔다. 물론 지독하게 운이 좋아야 하루에 몇 개였다. 귤은 당시 지금같이 가장 흔한 과일이 아니라 가장 귀한 과일이었다. 그래서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시간만 나면 바닷가에 나가 귤을 기다렸다. 그 글은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외국군 함정으로부터 떠내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부엌에서 양미리를 구워 먹거나, 매달아 놓은 문어의 빨판에 깡통을 붙이거나 하는 놀이에도 싫증이 나면, 언덕 뒤쪽 마을로 가서 아무 쓰레기통에서나 콘돔을 뒤져서 풍선을 불었다. 그곳에는 아예 늘 붙어 살면서, 빠꼼히 뚫린 판자 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도 많았다. 판자 틈으로 들여다보면 어떤 광경이 보이는지는 나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언덕 위 방공호 속에서는 아이들이 판자 틈으로 본 그대로를 이리저리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기도 했다. 나는 거의 하루종일 글을 기다렸다. 나는 도무지 귤
을 손에 쥘 수가 없었다. 한번은 잠시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꺼풀이 덮이는 것조차 악착같이 밀어 올리며 마침내 한 알을 먼저 발견했었다.
그러나 헛일이었다. 어느새 다른 녀석이 허벅지까지 첨벙거리며 들어가 가로챘었다. 나는 내 글이라고 징징 울면서 대들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바다에서 떠오는 황금빛의 훌릉칸 과일은 아예 내 차지가 아니었다.
귤이 주렁주렁 달린 커다란 나무가 내 나무라는 꿈을 꾼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꿈에서 나는 좀더 큰 아이들이 하던 짓거리대로 대담하게 한 계집애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아는 계집애인 듯도 하고 모르는 계집애인 듯도 했다. 계집애가 생끗 내게 웃음을 지었다. 그 때 내가 말했다. 너 내 꺼 한 번 빨을래? 큰애들이 노상하던 말이었다. 그러자 계집애가 말했다. 귤 있어? 그렇다. 귤? 귤이라면 나는 주렁주렁 열매를 매단 나무째로 가지고 있었다. 귤? 나는 귤나무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 순간 그만 꿈에서 깨고 말았다. 캄캄한 방안이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술집 여자는 절대로 그때의 그 계집애일 수는 없었다. 꿈속에 나타난 계집애가 실제로 속초에 살았던 계집애로서, 또한 실제로 서로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손치더라도 그 계집애가 이 여자일 수는 없었다. 나는 이미 서른 살이 넘었고, 여자가 내 짐작대
로 갓스물을 넘긴 나이라면 그때 여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니, 나이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그때의 그 계집애였다고 한들 도대체가 무슨 심령술이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역시 고개를 저으며 속초 그곳도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럼 어디죠?
여자는 세 도시를 내게 댔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 한 구석에서 내 앞에 있다. 나는 비로소 여자의 행적을 다 캐고 만 것이다. 그 도시들에서 모두 여자가 나 같은 남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나를 혼동시켰다. 모든 남자를 나 같은 남자로 보는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오랜 동안 만나고 싶었다는 느닷없는 말 때문에 분명히 만난 적이 있는 남자임에 틀림없다는 최면에 빠진 것일까. 나는 잠자코 술잔을 기울였다. 여자는 왜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쳐놓은 엉뚱한 그물에 들어와 퍼덕거린 셈이었다.
난 아가씰 만난 적이 없소.
그때 나는 말했다. 어리석은 고백이었다. 굳이 술 탓으로 돌리려면 그럴 수도 있는 고백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고백이었다, 그 따위 고백을 하려면 대전이니 마산이니 속초니 하고 나오기 전에 했어야 했다.
뭐라구요?
여자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아차 싶었으나 나는 어느덧 서글퍼지고 또 나약해져서 그 얼굴을 멍청히 쳐다보았다. 비록 내가 이 여아를 만난 적은 없다고 하더라도 오랜 동안 만나고 싶었다느니 보고 싶었다느니 하는 말은 결코 거짓된 감정에서 우러나온 말은 아니었다.
이것을 제대로 설명하자면, 문간에 서 있던 여자를 보았을 때, 그 여자를 통해 언젠가 잃어버린 여자를 보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을 받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 설명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여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 쌔끼가 누굴 놀려. 쌔꺄, 할 지랄이 그렇게 언니? 재수가 없으려니까 나 별 좆 같은 꼴 다 보겠네. 헤, 기가 맥혀서. 꺼져. 빨랑 꺼지란 말야, 이 병신 쌔꺄.
여자가 바락바락 악을 깼다. 나는 어떻게 해 볼 엄두도 못 내고 엉거주춤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나는 술값도 내는 등 마는 등, 여자의 악쓰는 소리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꽤 되었었다. 막연한 그리움이 딱딱한 응어리
를 지어 가슴 속을 콱 짓눌렀다.
어디로 갈 것인가.
그 날 여러 술집을 전전했다. 나는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셨다. 그런 다음에 생판 안 하던 짓으로 귤 한 봉지를 산 모양이었다. 모양이었다는 것은 아침에 깨어나자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웬 여자가 한 말이었다. 길에서 나를 만났다는 그 여자는 내가 취해서 비틀거리며 하나를 먹으라고 한사코 권하더라고 했다. 나는 낯모르는 여자와 낮선 방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러나 간밤의 일이 어렴풋이 그리고 토막토막 되살아났다. 여자는 파출부로 일하며 혼자 살아간다고 했었다. 방안에는 글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나는 작부와의 어처구니없는 희롱, 글을 기다리던 어린 날들이 섬광처럼 떠떠라 씁쓰레하게 입맛을 다셨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여자의 말을 유추해 보면 나는 귤 한 봉지를 들고 비틀거리며 밤거리를 헤맸다는 이야기였다. 믿을 수 없었다. 어린 날의 글은 기억의 먼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귤이 흔해졌다고 해서 내가 귤을 사는 법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귤을 즐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 귤 봉지를 들고 헤매다가 낯선 여자의 방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자 여자는 그런 내가 우습다는 얼굴이었다. 귤을 들고 한사코 따라오니까 결국 방가지 따라오게 된 것이 아니냐고 여자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간밤의 일을 돌이켜 보고 있을 때, 나는 바깥에서 문을 흔드는 소리를 들었다. 옆에 누워 있던 여자가 부시시 일어나며 누구냐고 물음을 던졌으나 여자는 미리 알고 있는 듯했다. 여자는 혼자 산다고 했었다. 나는 허둥대며 일어나려고 했다.
괜찮아요. 천천히 일어나두. 현일 거야.
마흔 몇 살이라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는 비로소 여자의 얼굴을 뜯어 살폈다. 눈가에 잡힌 잔주름이 나이를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귀엽게 생긴 얼굴에 아직도 앳된 티를 못 벗고 있었다.
현이지?
문을 따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났다.
밥이나 먹고 다니니?
그래도 남자는 아무 대우도 없었다. 이른 새벽에 누가 나타날 줄은미처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나는 낭패감에 사로잡혀서 한쪽 벽에 등을 기댄 채 무르춤하게 앉아 있었다.
그와 나는 만났다. 여자의 아들인 그는 그때 스무 살 먹은 청년이었다, 그는 방안에 들어와서도 나라는 사람이 거기 있다는 사실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관심조차도 없는 듯했다. 그가 간밤의 일을 상상하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방은 그의 어머니보다 열 살이나 아래인 젊은이였다. 그런데도 그는 지나치게 태연했다. 요즘은 어디 있느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친구 집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내게, 아, 그 러세요, 하고 관심을 나타냈다. 무관심을 가장한 만큼 철저히 적의를 감추고 있는가 해서 나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색한 공간을 처리하려고 내가 담배를 피워 물었을 때, 그는 내게 재떨이를 밀어 놓기도 했다.
엄마, 나 돈이 좀 필요해요.
그가 갑자기 초췌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오로지 돈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간밤에 거의 돈 한 푼도 없이 그 집으로 기어들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어쩌면 어머니가 내게서 약간의 돈을 벌었으리라 짐작했을지도 몰랐다.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그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리움이나 외로움 따위의 케케묵고 신물나는 낱말들을 혀꼬부라진 소리로 주워섬겼었다.
요전에 가져간 건 벌써 다 썼니?
그러면서도 여자는 눈가에 잔주름으로 정겨운 눈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바지 하나 사구 쓰다 보니 그래
에구, 우리 새끼.
모자 사이의 대화에 나는 끼여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 어머니와 하룻밤을 잤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나를 붙잡아 그 자리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있거나 말거나, 그 어머니가 간밤에 나와 관계를 가졌거나 말거나, 그리고 그 아들이 어디로 어떻게 싸돌아 다니거나 말거나, 도대체 모든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다만 돈만이 문제였다. 내가 만약 돈으로 여자를 샀더라면 나는 그가 들어오는 순간 뺑소니를 쳤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차츰 평온을 되찾은 나는 마침내는 여자가 차려온 아침밥까지 한 상에서 먹게끔 되었다.
그 집에서 나올 때 그와 나는 함께였다. 걷는 동안 그는 비로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군에 입대할 날짜를 받아 놓고 있다는 것, 친구와 어울려 드럼이나 색소폰 같은 악기를 만지고 있다는 것 등, 마치 오래 사귄 사람에게 하듯이 스스럼없이 말했다, 나는 그가 내게
적의를 보이기는커녕 한 발짝 더 나아가 자신의 신변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에 야룻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연민이었다. 그리고 그 어머니와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친숙함을 느꼈다.
그와 나는 어떤 관계이길래 나란히 어깨를 겯고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불가사의했다. 그는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앞만 바라보고 걸었다. 한쪽 주머니 속의 손가락은 어머니에게 받은 몇 천 원의 지폐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었다. 연습할 곳이 마땅치 않아 서 차고나 빈 집을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밤업소 지망생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쿵작쿵작, 쉿쉿 소리를 내다가 아무 데나 쓰러져 자는 그의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드럼 쪽인가 색소폰 쪽인가를 물었다. 색소폰이었다. 그리고 군에 입대를 하면 군악대에 들어가고 싶으나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군악대 입대가 까다롭다기보다 그의 색소폰 실력이 모자란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갈림길에 거의 이르러서였다. 그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저씨는 이해해 주실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요.
그가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그에게 어떤 친숙함을 느꼈다고는 해도 그 친숙함에 지나치게 의지하여 마음을 놓고 있지는 않았었다. 그가 마침내는 무엇인가 요구해 오리라는 부담감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뭘 말이지?
나는 긴장을 감추며 물었다.
그냥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지금 불고 있는 색소폰은 홈친 거예요.
그는 그냥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박또박 말했으나 목소리는 서투른 주자(走者)가 색소폰을 불 때 새어 나오는 바람소리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색소폰은 훔친 거예요. 나는 그가 하고 있는 말의 참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색소폰을 훔쳤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그가 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색소폰을 ?
본랜 클라리넷을 불었었지만 오래 전부터 그걸 불고 싶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니까 악기도 없고 해서 견디다 못해 훔쳤어요. 전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밴드부 같은 데서 특별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거기서 그는 클라리넷을 불었다. 그리고 군악대에 들어갈 가망이 없는 줄 알면서도 색소폰을 불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임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
나는 여전히 그가 하고 있는 말의 저의를 모르겠어서 어정쩡한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 나는 필요하다면 도둑질까지도 불사하는 놈이니까 알아서 하라는 위하는 결코 아니었다.
그냥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나쁜 일인 줄 알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헤어져야 할 곳이었다. 그는 내게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무엇에 흘리기라도 한 것처럼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 회사 전화 번호를 일러주었다.
그냥, 만나서 얘길 나누고 싶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총총 사라져갔다. 나에게는 그 말이 주술과 같았는지 그 뒤 나는 왜 여러 번 그를 만났다. 그냥,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한 그의 말은 액면 그대로였다. 그는 내게 아무 것도 구체적으로 바라는 것이라곤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끈질기게 나를
만나고 싶어했다. 그 아침에 그를 만났던 이래 나는 그 어머니와는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어머니가 모르는, 그의 동료가 된 셈이었다. 그가 내게 구체적으로 바라는 것이 없는 데다가 나이 차이도 십 년 남짓이나 되어서 우리들의 만남의 세계는 퍽 단조로울 수밖
에 없었다. 그는 항상 그냥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냥. 만나고 싶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가 하는 모든 말에는 그냥이라는 앞말이 붙었다.
그냥그냥그냥. 그는 웬 계집애와 우연히 만나 그냥 잤다고도 했다. 처음 얼마 동안 그가 그냥 만나고 싶다고 말했을 때는 그 말은 내게도 그냥 그 말이 가진 그대로의 뜻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차츰 그 말은 모종의 의미를 가지고 다가왔다. 내가 그의 그냥 만나는 상대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 자체가 필요 없는 짓이었다. 아무 구체적인 요구 조건 없이 그냥 만난다는 것이 우리 사이에서 가능하단 말인가. 설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는 별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내게 아무 부담도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의 태도는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주었다. 그 굳어진 태도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여전히 생활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아니, 문득 한번쯤 그의 어머니를 만나고 싶으면서도 그쪽으로 발길조차 하지 않은 것은 그에게서 오는 그 부담 탓이었다. 그러니까 발길조차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 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겠다.
나는 하룻밤 외로움의 광란에 못 이겨 헤매다 여자를 만난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과 두고두고 만나야 한다는 것은 괴로운 형벌이었다. 어느 편이냐 하면 나는 그 하룻밤 자체를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불쑥불쑥 그냥 만나고 싶어요 하면서 전화를 걸어 왔다. 나는 피하지 못하고 그를 만났다. 그것은 나를 꼼짝못하게 하는 올가미였다. 하지만 나로서도 약간의 계산은 있었다. 그의 입대 일이 가까이 다가왔으므로 나는 그날만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입대하고 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리라. 괴롭고 곤혹스러운 올가미에서 벗어나리라.
그가 나를 만나서 이것저것 살아가는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위안을 받고 있다는 사실마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감쪽같이 숨기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가 나를 만나는 근거는 나와 그 어머니와의 관계에 있음을 어찌 부인하랴.
그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한 여자와 잔 것이지 그의 어머니와 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현은 그것을 나와 그 어머니의 관계로 또렷이 새겨 놓고 있었다.
그가 입대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에 이르렀을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그는 예정대로 떠나갔소 나는 그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가 떠나기 전날, 나는 술자리까지 마련해서 그의 장도를 빌어 주었다. 그는 휴가 때면 꼭 들르겠다고 맹세했다.
그 말에 나는, 어김없이 들러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따는 교활하게 웃으면서 속으로는 영원한 결별을 자축했다. 그렇게 그는 떠나갔다, 드디어 올가미를 벗어난 것이었다. 그와 함께 그의 어머니도 뇌리에서 떠나갔다. 나는 한번도 여자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가 제대를 하고 왔다니 그로부터 삼 년이 흘러 있었다. 그가 입대를 하고 난 얼마 뒤 나도 별 볼일 없는 그 놈의 회사를 떠나 버렸다.
그로써 그가 휴가를 나오더라도 나를 찾는 일에 온통 매달리지 않는다면 나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런 삼 년 동안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천성이라고까지 믿겨졌다. 아무 것도 나를 옭아매는 것은 없었다. 나는 남들이 자기 발전이니 승진이니 하며 바쁘게 뛰는 모습을 다른 세상의 일처럼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아버지의 죽음이 다시 닥친다거나 애까지 가졌던 여자가 떠나 버린다거나 하는 일이라도 있게 된다면 예전처럼 그것을 빙자하여 희떠운 짓이라도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었다. 삼십대의 나이에 내 삶은 벌써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뿐이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 그는 나를 수소문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나를 찾아내서 전화를 했다.
우리 사이에 그렇게 긴요하고 애틋한 사연은 없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그와 다시 만날까봐 은근히 진절머리를 냈었다.
그는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삼 년만이라도 예전 모습과 별로 변한 구석은 없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살아 있으니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
나는 짐짓 웃음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도무지 우리가 왜 만나야 하 는지 불쾌감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그는 또다시 그냥이라고 말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는 그냥이라는 등속의 어린애 수작을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나는 단호하게 마음먹고 있었다.
너에게 진 빛은 없어, 하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솟는 걸 나는 간신히 참았다.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은 나는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말을 건성으로 했다. 그가 입술을 깨물면서 조금 웃었다.
실은 전화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 같아서 전활 했어요.
나는 그와 삼 년 단에 만났는데도 벌써부터 진력이 난 표정을 짓지않을 수 없었다. 그와의 만남은 애초부터 잘못된 일이었다. 그날 저녁에 들어갔던 술집의 어린 여자를 상기했다. 거기서부터 일이 꼬이느라고 수작을 벌인 것이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거든요.
그 말은, 그가 무슨 말을 해도 끄떡하지 않으리라는 내 속셈을 미리 알아차리고 마치 나를 비웃는 듯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다니?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굳이 나를 찾아와야 할 까닭은 없었다. 그러나 따지기도 전에 그의 어머니의 죽음은 뜻밖의 일로 와 닿았다. 아직도 젊다면 젊은 나이였다. 나는 언뜻 불길한 여러 가지 사인(死因)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사인은 연탄 가스 중독에 지나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자 갑자기 불을 넣은 게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해야 한다고는 생각되었으나 뚜렷한 애도의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술이나 한 잔 사고 보낼 심사로 일어서자고 제안했다. 그가 온 것이 단순히 그의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그의 어머니와의 만남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가 선뜻 일어나지를 않았다.
아저씰 찾아온 건 말이에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단 얘길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글 때문이에요. 언젠가 어머니가 귤 얘기를 했거든요. 아저씨가 젤 좋아하는 게 귤이라고요. 올해 들어 처음 귤이 나온 걸 봤거든요. 그래서 그냥, ,,,,,
나는 일어나려다 말고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았다. 그날의 일이 예민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먼 옛날의 일도. 그는 예전처럼 그냥이라고 얼버무리고 있지만 그의 행동은 결코 그냥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귤을 보고 내 생각이 나서 찾아왔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잘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귤은 나의 비밀 가운데서도 가장 은밀한 부분이었다. 내가 바닷가에서 귤을 기다린 이야기를 그의 어머니에게 자세히 들려주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 비밀을 알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 옛날 바닷가에서 기다리던 귤은 거의 삼십 년이 지나서 내 손에 쥐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해 준 사람이 그의 어머니였다. 나는 눈을 감고 먼 바닷가를 회상했다. 귤 하나가 보일 듯 말듯 떠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