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태양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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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太陽)의 유산(遺産)
유주현
집이라고는 두 채밖에 없어도 어엿한 마을 이름이 있었다. 수렛골……
수렛골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연유해 왔는지는 분명치 않다. 수락산(水落山) 골짜기라 해서 수렛골이라고 불리어질는지도 모른다. 근처에 노원(蘆院)이라는 곳이 있다. 백여 호 대촌으로 널찍한 들판에 이루어진 취락이다. 이 노원을 멀리 동북쪽으로 둘러싼 것이 수락산이니까 노원서 외줄기 오솔길을 동북쪽으로 근 십 리 가량 가면 바로 산밑에 있는 수렛골이 나선다.
불과 두 집밖에 없는 수렛골은, 서낭〔城隍〕고개를 중심으로 고개 위에 한 집, 고개 아래에 한 집, 흡사 토라진 사이처럼 외면을 한 채 묻혀 있었다.
사실상 이 두 집은 사이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서낭 위에 있는 돌담 토막 삼칸이 배 생원(裵生員) 집이고, 서낭 아래에 있는 오막살이가 곰배무당네 집이었다. 통틀어 두 집밖에 없는, 이 두 집이 왜 뜨악하게 지내야 하는가?
배 생원은 곰배무당을 '화냥년'이라고 경멸하고, 곰배무당은 배 생원을 '뼈다귀'라고 빈정댄다. 툭하면 뼈다귀 있는 집안이라고 으시대는 배 생원이 곰배무당은 아니꼬왔고, 배 생원은, 늙어가는 년이 다랍게 서방을 밝힌다고 곰배무당을 마땅치 않게 여긴다.
뼈다귀가 좋아서 배 생원, 곰배팔이 무당이라 해서 곰배무당…… 곰배무당은 왼편 팔이 약간 뒤틀려 부자유스럽다.
이러한 배 생원과 곰배무당이 지금 서낭 고개에서 마주쳤다. 곰배무당은 산 쪽에서 내려오고, 배 생원은 노원 쪽에서 올라오다가 마주쳤다.
"어딜 갔다 오세요? "
먼저 말을 건 것은 곰배무당이다.
"부걔(북어) 한 마리 사가지구 오죠. "
대답하는 배 생원의 손에는 북어 두 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길섶에 있는 서낭에는 늙은 참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무성한 가지에는 퇴색한 붉은 헝겊오리가 매달려 있고 그 밑에는 마치 봉분처럼 잔 돌이 붕긋이 쌓여 있었다. 근동(近洞) 사람들은 서낭 앞을 지날 때마다 돌을 하나씩 던지며 소원이 성취되기를 비는 것이 습관이다. 간혹 돌 틈을 뚫는 뱀이라도 발견하면 서낭지기가 알은 체를 했다고 더욱 경건하게 절하며 축원들을 했다. 이 고장 사람들에게 서낭은 신역(神域)이었다.
곰배무당은 머리에 인 쌀자루를 고쳐 놓으며 서낭 참나무 그늘로 한 발 들어섰다.
배 생원은 그것을 흘긋 보며 혼잣말같이 흘렸다.
"딸애가 오늘 온대기에 새벽부터 노원 나가 기다리다가 오는 길이라우. 저녁때나 올른지…… "
"아니, 삼순이가 오나요? "
곰배무당은 다소 놀라는 표정이다.
"우리 삼순이가 온다우. 엊그제 편지가 왔죠. 돈을 많이 벌어 가지구 이젠 아주 오는 모양이라우. 우리두 한숨 놓겠지…… "
배 생원은 묵중한 표정일망정 의기가 양양했다.
"참 그 동안두 삼순이한테서 돈이 여러 번 왔대면서요? 뭘 해서 그렇게 돈을 잘 벌까? 수원 있었대죠? "
"다 저만 똑똑함 돈두 벌게 마련이지. 뼈다귀 있는 애니까…… 그런데 어딜 갔다 오슈? "
배 생원은 또다시 곰배무당 머리 위에 얹힌 쌀자루를 흘긋 보았다.
곰배무당은 대답 대신 얼굴을 붉히며 외면을 했다.
배 생원은 손아귀에 쥐고 있던 돌멩이 하나를 서낭에다가 던졌다. 먼 곳에서 미리 주워들고 온 돌이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인다.
"참 요새는 집에두 어렵겠수. 아들한테선 편지나 왔나요? "
곰배무당은 땀방울 솟은 코끝을 벌름거렸다.
"편진지 뭔지…… 걔가 군대에 나간 뒤론 혼잣입 풀칠하기가 어려워요. "
"여름이라 일두 없겠군. "
"봄에 노원 도당굿 한 번 허구 난 담엔 푸닥거리 하나 안 든걸요. "
배 생원은 또 돌멩이를 하나 길에서 집어 서낭에다 던졌다.
곰배무당도 하나 던져 주었다.
"삼순이가 성공해서 온다니 나두 돌이나 하나 서낭님께 드리지. "
"여기 모인 돌의 절반은 내가 던진 걸게야. 돌 하나씩 던질 적마다 우리 삼순이의 성공을 축수했죠. 오늘 온대니 서낭님 영험을 보는 셈인가 보우. 삼덕암 주지는 있습디까? "
띄엄띄엄 자연스럽게 하는 말이었으나 곰배무당에게는 모두가 가시 돋힌 말이었다. 더구나 삼덕암(三德庵) 주지가 있더냐고 슬며시 던지는 말에는 곰배무당의 눈초리가 실쭉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눙친다.
"하두 먹을 게 없어서 쌀 한 되 꿔 오는 길이라우. "
배 생원의 말은 또 확실히 빗나간다.
"굶구 살 순 없지. 그렇지만 꿔 오는 거람 갚아야 할 걸 갚기루 했소? "
곰배무당의 입은 마구 실룩거렸다.
"어이유, 그 입 좀 작작 놀려요! "
곰배무당은 발길을 옮기기 시작하며 뱉어 버리듯이 한 마디 남겼다.
"먹을 거나 대 주구려. 주지한테 안 갈께. "
배 생원도 발길을 떼 놓으며 뱉었다.
"이제 회가 동할 거야. 내가 심이 피니까. 그렇지만 서루 나이 값을 해야지. "
배 생원은 쉰 둘, 곰배무당은 마흔 여섯 살이다. 전쟁 전만 해도 이 두 영감 마누라는 가끔 은밀한 교제가 있었다. 지나치게 호젓한 이웃이라 언제 어떻게 해서였던지 정을 맺어 왔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완전에 가까울 만큼 비밀이 유지되어 있었는데 삼덕암 주지가 등장하고는 끊어지고 말았다.
"삼순이 오거든 기별허슈! 삼보는 산에 있습니다. "
곰배무당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소리쳤다. 삼보(三甫)는 배 생원의 아들이다. 스물 여섯의 총각으로 삼순(三順)이의 오라비가 된다. 산에 나무를 간 모양이었다. 필시 삼덕암 근처에서 만난 모양이다.
삼덕암은 이 수렛골에서 삼 마장 가량이나 되는 산 속에 있는 조그마한 암자다. 동란 전에는 윤 대사(尹大師)라고 부르는 늙은 중이 외롭게 지키고 있었는데 전쟁 바람에 어디로 간 곳 없이 사라지고 비어 있더니 이 년 전부터 어디서 굴러 왔는지 키가 훨씬 큰 사십대의 내시 같은 중이 주인이 되어 이따금씩 마을에 나타났다. 성도 이름도 모르는 대로 삼덕암 주지로 불리는데, 어느 틈에 곰배무당과 접촉이 있는 것을 배 생원 부자만은 잘 알고 있다. 아들 삼보는 삼덕암 근처에서 주지와 곰배무당이 수작하는 것을 보았고, 아버지 배 생원은 어느 날 새벽 주지가 곰배무당 집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 일이 있다. 곰배무당 아들이 입대한 지 한 달쯤 되어서니까 지난해 여름이다.
그 이후 배 생원은 곰배무당을 화냥년으로 규정하고 거의 말을 건네지 않은 채 근 일 년이 지난 셈이었다.
배 생원은 곰배무당과 헤어져 혼자 걸으면서 좀더 욕설을 퍼부어 줄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삼덕암 주지인들 칠궁(七窮)에 멱서리 쌀을 놓고 먹지 않을 텐데 많건 적건 쌀을 얻어 오는 것을 보면 오늘 대낮에 삼덕암에서 벌어졌을 광경이 눈에 선하게 떠올라 심정이 사나왔다.
그러나 오늘 돌아오는 삼순이를 생각하자 그런 잡념은 이내 머리에서 지워졌다. 편지에는 돈은 좀 벌었으니 조용한 고향, 아버지 앞에 돌아가서 당분간 숨어 지내 볼까 한다고 씌어 있었다. 제 말로 돈을 벌었다니까 필시 적잖은 돈을 가지고 오는 것이 분명했다. 간이 학교(簡易學校)지만 국민학교 사 학년을 마치었다. 1․4후퇴 때에 계집애니 위태롭다고 혼자 서울로 쫓은 것이 대전까지 가 있다가 수원으로 올라와 있다는 걸 알고 있을 뿐, 몇 번 보내 온 편지에는 어쩐 까닭인지 주소가 분명하게 적혀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한 번도 찾아가 보지도 못했고 저도 여태까지 아비가 있는 집에를 오지 않아 사 년 장간이나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오늘 온다는 것이다. 스물 세 살…… 어른이 다 됐겠지. 도회지에서 겪어났으니 얼굴도 환히 피었을 게고. 이 근처에 그 애의 배필이 될 만한 녀석이 있을라구?
배 생원은 문득 발을 멈추며 하늘의 해를 쳐다보았다. 벌써 오정이 훨씬 지났다고 요량했다. 삼복 허리의 햇발은 불길을 머리에 끼얹는 것같이 뜨거웠다. 반 시새의 길바닥에서도 훅훅 더운 기운이 풍겨 올라왔다. 양쪽 길섶에 무성한 아카시아 잎도 후줄근하게 늘어져 있었다. 달착지근한 냄새가 코로 스며들었다. 아카시아 잎에서 풍기는 초록과 더위의 냄새였다. 늙은 소나무에는 송진이 끓어올라 햇볕에 번쩍이고 있었다. 바람기가 너무 없어 숨이 막히는 것 같았지만, 바람기가 있으면 더운 바람일 것이니, 차라리 나을지도 몰랐다.
배 생원은 집 앞에 이르자 막 솔가지 짐을 내려놓는 아들 삼보를 보고 소리쳤다.
"땔나무는 아침저녁에 하지, 땡볕에 더위 먹을라구 그러니? "
아들한테 이런 친절을 베푸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삼순이가 온다는 바람에 마음이 흡족해서 자연 이런 말이 나갔을 것이었다.
삼보는 잠자코 나뭇짐에서 낫을 빼 들고는 마당 그늘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가다가는 다시 돌아서 나뭇짐으로 다가왔다. 한쪽 지겟발에는 올가미 씌운 살모사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의 지겟발에는 녹슨 깡통이 매어 달려 있었다. 헝겊쪼가리로 아가리를 봉했는데 그 속에서는 바각바각 소리가 나고 있었다.
삼보는 살모사와 깡통을 끌러 손에 들고 마당 그늘로 갔다. 그는 살모사만은 땅바닥에 질질 끌고 갔다. 살모사뿐 아니라 뱀이란 놈은 흙내를 맡으면 생기를 내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생기 있는 놈을 먹는 게 좋다.
마당 그늘에는 조그마한 오지항아리가 솥처럼 돌멩이 위에 걸려 있었다. 늘 그렇게 놓아 두는 것인 듯싶었다. 돌멩이는 불에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삼보는, 올가미 씌운 살모사는 땅바닥에 버려 둔 채 오지항아리와 깡통을 들고 울 뒤 개천으로 갔다.
잠시 후에 돌아온 그는 항아리를 돌 위에 올려 놓는 한편 들고 온 깡통은 마당가에 뒹굴려 버렸다. 이번에는 항아리 속에서 바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삼보는 살모사를 끌러 항아리 속에다 집어넣고, 아가리를 넓적한 돌로 짓눌러 버렸다. 그리고는 땀에 젖은 베등거리를 벗어 문지방에 걸치더니 다시 울 뒤 개천으로 어슬렁어슬렁 돌아가 버렸다. 목욕을 하러 가는 것이다.
포플라 그늘이 돌담에 허리를 꺾고 있었다.
배 생원은 그제사 들고 온 북어 두 마리를 흙마루 위에다 내던지며 역시 잔등이 메어져 아무렇게나 쪼가리를 댄 왕베 등거리를 훌렁 벗었다. 겨드랑에서 시커먼 것이 늘름 나왔다. 베잠방이는 배꼽 아래에 걸려 있었다. 배가 안으로 휘어 있었다.
배 생원은 부엌으로 들어가 물을 한 바가지 퍼서는 벌떡벌떡 마시고 나왔다. 갑자기 시장기가 혹심해졌다. 생각하니 집안에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것이다. 호밀가루가 항아리에 좀 남았을 것이지만 그것은 아침저녁에 수제비 국을 끓여서 먹는 주식 재료다. 낮 요기를 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돌담에 매달려 있는 애호박은 둬 개 남아 있는 줄 알지만 그것은 삼순이가 돌아오면 별식으로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배를 주리는 것도 고작 오늘일 텐데 참으려 해도 자꾸 허리가 굽어 왔다.
배 생원은 오지항아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삼순이는 저런 것을 먹지 못하리라고 단정하면서 오지항아리 속에서 바각거리는 산가재와 꿈틀거리는 살모사를 눈앞에 역력히 보고 있었다.
배 생원은 부싯돌을 쳐서 살모사 항아리 밑에다 불을 살랐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삭정이를 지피기 시작했다. 항아리 속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기 냄새를 맡은 살모사와 산 가재가 밖으로 튀어 나오려고 항아리 속에서 후당탕거리는 것이다. 사실 올 여름만 하더라도 스무 마리가 훨씬 넘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 부자는 각기 열 마리 이상의 살모사를 올 여름에 고아 먹은 폭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살모사가 몸에 좋다고 해서 먹은 것은 아니고 이 수렛골에서 돈 안 들이고 먹을 수 있는 육류(肉類)는 살모사와 산 가재가 고작일 뿐더러 시장기를 메우느라고 끼니 삼아 먹은 것이었다. 삼덕암 밑 개천에만 가면 가재는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물섶에 돌멩이만 쳐들면 노르스름한 가재란 놈이 성큼성큼 기어 달아난다. 손으로 덮치면 놓치는 법이 별로 없으니 잠깐 사이에 한두 사발쯤은 잡아낼 수가 있다. 이놈을 살모사와 함께 고아서 베 보자기에 약 짜듯 짜면 뽀얀 물이 기름지게 엉킨다. 마시면 고소하고 든든하다. 아버지와 아들은 여름내 공편하게 나눠 마셨다.
배 생원은 삭정이를 똑똑 건어서 항아리 밑에 지피면서 이제 삼순이만 돌아오면 이런 짓까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삼순이만 오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된다는 확연한 믿음에서 저절로 흐뭇해 있는데 별안간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지나가는 중, 시주 쌀이나 얻을까 하고 들렀습니다. "
배 생원이 앉은 채로 고개만을 돌렸을 때, 거기에는 삼덕암 주지가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고 서 있었다.
배 생원은 주춤하고 뒤로 물러앉으며,
"살모사를 고구 있으니 좀 잡숫구 가시려우? "
농담답지 않게 툭 던졌다.
"허허, 살생은 불가의 금법…… 중보구 살모사를 먹으라니 더 할 욕이 없으시오? "
유들거리는 중의 손에는 몽탁한 광목자루 하나가 들려 있다.
"부처님 안 보시는 데서야 구미에 댕기는 대루 잡숫는 게 상책 아니오? "
일어서는 배 생원은 스스로 뼛속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허리춤에 거꾸로 꽂혀 있던 담뱃대를 뽑아 입에 물었다.
"부처님이야 항상 마음속에 모시고 다니는 게 중입니다. 속일 수가 있나요. "
배 생원은 말이 막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곰배무당을 생각했다. 또 만나러 왔단 말인가? 한 시간도 안 돼서……
"배 생원 댁에 경사가 났다지요? 오늘 따님이 돌아온다구요? "
이 말에 배생원은 얼굴에 호기 있는 웃음을 흘렸다.
"누구한테 들으셨소? "
"아까 삼보가 올라와서 한 되 꿔 달라는 것을 못 주고 보니 맘에 걸리기에 지금 가지구 왔습니다. 간호부로 있다가 돌아온다구요? "
"간호부? "
배 생원은 놀랐다. 삼순이가 간호부 노릇을 했다는 말을 아무 관련도 없는 이 중의 입을 통해서 비로소 자기가 들을 줄은 몰랐다.
"누가 그럽디까? 간호부라구. "
배 생원은 삼덕암 주지를 흘겨보았다.
"삼보가 그러던데요. 아니, 따님이 뭘 하구 있었는지두 모르슈? "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말이 부자 사이에 오고간 것 같기도 했다. 삼순이는 어려서부터 간호부 되기가 소원이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기어코 그 애가 간호부가 되어 성공했으니 역시 뼈다귀 있는 집안의 자식이라 결심이 대단하다고 콧마루가 시큰해 왔다.
"오래간만에 돌아오는 따님…… 밥이나 한 끼 끓여 주시구려. "
삼덕암 주지가 내미는 쌀 보자기를 배 생원은 거의 본능적으로 손에 받아 들며 역시 본능적으로 히쭉이 웃었다. 아닌게아니라 한 됫박 쌀이 필요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삼순이가 돌아온다는 데에 흥분만 했었지 집에라도 오래간만에 발을 들여놓은 딸에게 조촐한 밥 한 그릇 차려다 줄 마련도 없이 있었다는 것은 아비로서 불찰이었다. 오라비 녀석의 생각이 한 수 앞섰던 것만은 사실이라 저희들 동기간의 마음씨가 기특하게 여겨졌다.
"그럼 배 생원, 나는 가 볼랍니다. "
삼덕암 주지가 이런 말을 하고 돌아설 때도 배 생원은 그의 호의가 고마워 부스스 일어나며 허리를 반 나마 굽혔다.
그러나 배 생원의 눈초리는 이내 변해 버리고 말았다.
"저놈이 곰배무당 집으로 가렷다! "
배 생원은 사뭇 불쾌한 시선으로 키가 멀쑥한 삼덕암 주지의 뒷모습을 쫓았다. 더욱 더 불쾌해졌다. 곰배무당에게 퍼 준 쌀과 지금 자기 손에 쥐어 준 쌀과 어떠한 구별이 있는가 미심스러웠다. 죽일 놈!
배 생원은 불현듯 쌀보자기를 든 채, 울 뒤로 돌아가며 소리쳐 삼보를 불렀다.
삼보는 목욕을 하다 말고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너 삼덕암 주지한테 쌀 꿔 달랬냐? "
심상치 않은 아버지 물음에 아들은 어리벙벙했다.
"없다구 안 꿔 주대요. "
"이 자식아, 너더러 시키지 않는 짓 허래드냐! "
배 생원은 손에 들었던 쌀 보자기를 아들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이거, 저놈 도루 갖다 줘라! 저나 잘 처먹구 살라구. "
배 생원은 서낭 고개에 올라서는 삼덕암 주지를 눈으로 가리키며 삼보에게 호통을 쳤다.
"빨리 갖다 주지 못해! 곰배무당 집으로 쫓아가 봐! "
그러나 삼보는 선뜻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이왕 가지구까지 온 걸 그렇게 헐 수야 있에요. "
삼보는 쌀 보자기를 대뜰 위에 박아 놓으며 살모사 항아리 앞으로 가서는 쭈글뜨리고 앉는다. 사위어 가는 불씨에 삭정이를 꺾어 들뜨리며 입으로 후욱 불었다. 회색 빛 연기와 뽀얀 재가 공간에 날아 올랐다.
울 뒤 포플라에서 말매미가 찌르륵 하고 울기 시작했다.
"참, 삼순이가 간호부 노릇을 했대매? "
배 생원은 생각난 듯이 화제를 돌렸다.
"누가 그래요? "
반문하는 아들의 얼굴을 배 생원은 멀거니 바라다보았다.
"아 늬가 삼덕암 주지한테 그랬대매? "
"어려서부터 간호부가 소원이었으니까 간호부가 됐을 게라구 그랬죠. "
"어쩐지 나두 첨 듣는 소리드라니. 그건 그렇구 삼순이란 년이 돈은 좀 가지구 오겠지? "
"모르죠. 저 혼자 먹구 사는 것두 백사지 땅에서 어려운 일인데, 모문 얼마나 모았을라구요."
배 생원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먼 산만 바라본다.
"그런데, 없대던 쌀을 뭐가 답답해서 제 손으루 들구 온대드냐? "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배 생원은 아들에게 물었다.
"흥…… 저렸던 게죠. 나뭇짐을 지고 지내오다 보니까 곰배무당이 쌀자루를 가지고 나오기에 나두 들어가서 좀 꿔 달래 본 거죠. "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삼보와는 달리, 배 생원은 단박 노기가 얼굴에 피어올랐다.
배 생원은 별안간 대뜰로 달려가 쌀 보자기를 집어서는 마당 밖으로 팽개치며 삼보에게 또 야단을 쳤다.
"이놈아, 그런 더러운 쌀루 밥을 지면 목구멍으로 넘어 간대디! "
삼보는 배 생원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반발했다.
"쌀에 뭐가 묻었나요? 안 꿔 줘 못 먹죠! "
"잔소리 말구우, 곰배무당이나 오거든 줘 버려! 삼순이 년만 와 보지. 우리헌테 와서 쌀 꿔 달라구 애원들을 할 테니…… "
배 생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연방 서낭길만 바라보았다. 당장 삼순이가 그 고개에 올라서는 것 같아 자꾸 시선이 그리로만 갔다.
그러나 삼순이의 모습은 좀처럼 서낭 고개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온종일 불을 뿜던 태양이 삼각산 저쪽으로 자취를 감추고 저녁 놀이 서녘 하늘을 빨간 이랑으로 물들였는데도 수렛골 서낭 고개에는 삼순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땅거미가 질 무렵, 배 생원 부자는 흙마루에 마주 앉아 살모사와 가재를 곤 뽀얀 물을 말없이 마시고들 있었다. 삼순이가 오늘 끝내 오직 않는다면 그들은 그것으로 저녁밥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마음에 찾아드는 어둠이란 실망이었다. 어둠처럼 짙어 가는 실망으로 그를 부자는 대화조차 잊고 있었다. 묵묵히 후룩후룩 마시는 기름진 국물이 창자에 전해질 때마다 그들 부자는 똑같이 바깥마당에 팽개쳐 버린 쌀 보자기가 몹시 아쉬워졌지만 집어 들이려 하지는 않았다. 아들은 막연하게, 아버지는 의식적으로, 그 쌀이 떳떳한 것이 아니라고 마음에 다짐했다. 그러나, 누구든지 집어 들여온다면 모르는 체할 심산이었다.
날이 아주 어두워지자 대뜰 아래에다 모깃불을 놓았다. 채 마르지 않은 풀을 한 줌 집어다 놓고 불을 지른 다음 줄풀로 엮은 부채로 활활 부쳐 연기를 냈다. 이따금 시뻘건 불덩어리가 쌓아 놓은 풀 속에서 크게 숨을 쉬는 것이 어두운 공간을 깜짝깜짝 놀래켰으나 배 생원 부자는 입을 봉한 채 서낭 고개 쪽만 바라보고 일었다. 아무리 어두워도 삼순이가 서낭 고개에 올라서면 이 부자는 육감으로 능히 알 것 같았다. 풀을 뚤뚤 뭉쳐서 방석 삼아 깔고 앉은 그들은 모깃불을 중심으로 묵묵히 눈만 끔적거리고 있었다. 바람기라고는 없는데 밤공기는 피부를 상쾌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한결 서늘해진 것이었다. 공간의 투명이 잃어질수록 뒷산은 묵중하게 한 발 한 발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 검었다. 야음(夜陰)은 거기서 연기처럼 온 공간으로 퍼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하늘에는 별의 수효가 늘어갔다. 그리고 그 빛은 생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지극히 가까운 곳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푸른 빛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바깥마당에 버티어 놓은 풀짐에서 개똥벌레가 심호흡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개똥벌레의 명멸하는 푸른 빛을 우연히도 똑같이 바라보고 있는 그들 배생원 부자의 눈자위는 움푹 파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마중을 나가야 하지 않겠니? "
배 생원이 오래간만에 입을 열었다.
"아버지 시장하시겠어요. 안 오면 국이라두 끓이죠! "
국이란 저녁 식사를 말함이다. 호밀 수제비 국이나마 끓이기를 망설인 것은 삼순이가 돌아와서의 형편을 보려는 것이었다.
삼보는 일어나서 등거리를 걸치고는 헛간에서 물푸레 막대기를 하나 찾아 들었다. 밤길을 걷는데 물푸레 막대기를 들면 마음이 든든한 것이다.
삼보가 밖으로 나가자, 배 생원은 담뱃대를 입에 물고 뻐끔뻐끔 바람을 주어 보았다. 쌈지를 찾아 바닥을 긁었다. 담배도 없다. 봉지 담배 한 봉지 산 것이 열흘도 넘었으니 아무리 풀잎을 섞어서 피웠더라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간신히 고깔에 절반쯤 채워서 모깃불에다 깊숙이 파묻고는 쭉쭉 빨았다.
"빌어먹을 년, 대명 천지 밝은 날에 못 오구…… "
배 생원은 기다리는 마음이 짜증이 되어 혼자 뇌까렸다. 마침 그러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들려 왔다.
배 생원은 신경을 바짝 세우며 입에서 담뱃대를 쑥 뽑았다.
"게 누구 왔냐? "
반응이 있었다.
"혼자 계슈? 삼순인 그저 안 왔대매요? "
배 생원은 다시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곰배무당이 모깃불 앞으로 다가왔다.
"궁금해서 올라왔죠. 저녁이나 끓이셨수? "
배 생원은 곰배무당 물음에 대답을 주었다.
"어서 오슈! "
딸이 온다면서 집안에 왜 불도 못 켜 놓느냐고 곰배무당은 어수선하게 떠들어대다가,
"삼보는 인제야 마중을 가더군요. "
서낭 고개에서 만났다는 이야기였다.
배 생원은 의식적으로 대꾸를 하지 않았다. 말을 주고받을 심정도 아니었지만 그러는 것이 자기의 위신을 세워 줄 듯싶어서였다.
"당신 딸이 성공을 해서 돌아온다니 나꺼정 괜히 좋구려. "
여자한테서 당신이라는 말을 들어 보기란 오래간만이라고 배 생원은 눈을 끔벅거렸다. 그래도 입은 다문 채였다.
곰배무당은 마당가에서 풀을 한 옴큼 집어다가 배 생원 옆에다 깔고는 나란히 앉았다.
"영감쟁이두…… 사람이 말을 하면 댓거리나 해보슈! "
곰배무당은 배 생원에게 몸을 거의 기대다시피 하면서,
"화 나셨수? "
착착 감기는 말씨로 얼굴 앞에 얼굴을 들여 밀었다.
'갑자기 웬놈의 아양은 이렇게 떠누? '
배 생원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무슨 냄새를 맡은 것 같아 코를 벌름거렸다. 살 냄새 같기도 하고 분 냄새 같기도 했다. 주림은 후각(嗅覺)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음식 냄새, 사람 냄새, 주렸을 때는 유난히 두드러진다.
배 생원은 입안에 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중놈이 당신 집으로 가더군! "
배 생원은 이 말 끝에, 무릎을 꼬집는 여자의 손을 덮쳐 누르며 입을 딱 벌렸다.
"노원에 볼일이 있다고 가던데…… "
"중놈이 밤중에 노원에는 무슨 볼일이 있겠어. "
"중놈, 중놈 하지만, 당신 집에 쌀을 가지고 왔대매요? "
"저 바깥마당에 내버렸으니 임자나 줏어다 자시우! "
"도도허시군! 냉수 마시고 이나 쑤시구려! "
"삼순이란 년 오거든, 내 쌀말이나 꿔 주지. "
"아닌게아니라 신세 좀 집세다! "
솔직하게 신세 좀 지자는 데는 배 생원으로서 할말이 없었다.
배 생원은 불두덩을 지그시 눌렀다. 살모사를 많이 먹은 죄라고 생각했다. 요식으로 먹어 온 살모사가 엉뚱한 장난을 일쑤 잘한다고 어둠 속에서 빙그레 웃었다. 말은 필요 없었다.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뒹굴어 버렸다. 흙 냄새, 풀 냄새도 코로 들어오는 줄 몰랐다. 배 생원은…… 하늘의 별이 멀어졌다 가까와졌다 할 뿐이었다. 곰배무당은……
잠시 후 곰배무당은 줄풀 부채로 모깃불을 느릿느릿 부치기 시작했다.
배 생원은 담뱃대를 입에다 물고는 허전한 허리를 쭉 펴면서 어둠에 싸인 서낭 고개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애들이 왜 이렇게 늦나? "
"진작 마중을 내보낼 게지. "
곰배무당의 말투는 어머니로서의 자애와 흡사했다. 영감마누라가 아들딸을 기다리는 정경이었다.
배 생원은 지금 아닌게아니라 곰배무당을 마누라로 맞아들이면 어떨까 궁리를 하고 있었다. 삼순이만 돌아오면 남부럽잖게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마누라를 얻는다고 망발일 것이야 있으랴 하는 자신이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니 삼덕암 주지를 곯려 주기 위해서도 곰배무당은 뺏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삼보였다. 삼보는 곰배무당과 삼덕암 주지와의 사이를 눈치채고 있는 모양이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리라 싶었다. 따라서 아비로서의 체면이 여지없이 깎일 것이 두려웠다. 미상불 뼈다귀 있는 집안에서 무당을 마누라로 맞아들이기란 마음에 거리끼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누구 사람이 있단 말인가, 이 마을에.
배 생원이 이런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드디어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 왔다. 직각적으로 삼순이가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배 생원은 점잖게 큰기침을 한 번 하면서 마당 밖 길섶으로 나섰다.
"아버지세요? "
분명 삼순이의 음성을 듣자 배 생원은 눈물이 글썽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배 생원은 실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삼순이는 어린애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이라도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얼룩진 보자기로 얼굴을 푹 가린 채 품속에 안고 있는 꼴이 어둠 속일망정 첫눈에 갓난애라고 단정할 수 있었다.
배 생원은 딸의 뒤를 아들과 더불어 따르며 잠시 동안은 자기의 정신을 가다듬기에 애를 썼다. 비록 잠시였으나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과년한 계집애, 출가시킬 일이 걱정이었는데 제 힘으로 한 놈 얻어서 자식까지 낳아 가지고 돌아오니 한시름 잊게 되었나보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경사였다. 잠자코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왔다.
곰배무당은 흙마루 기둥에 걸린 등잔에다 불을 켜놓고는 뜰 아래로 내려서다가 막 들어서는 삼순이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가며, 삼순이가 벌써 아기 엄마가 되어 오느냐고 수선을 떨며, 어디 얼마나 귀여운 아기냐고, 대관절 아들이냐, 딸이냐 하면서 아이 얼굴을 가린 보자기를 벗기려고 했다. 그 바람에 궁금했던 배 생원과 삼보까지 삼순이 앞으로 다가서며, 기웃이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삼순이는 지극히 당황하며 곰배무당의 손을 뿌리치고는 몸을 돌이켜 버렸다. 곰배무당은 다소 무안해하면서 대처〔都會地〕에 가서 지낸 색시가 뭘 그리 부끄러워하느냐고 수다를 떨고는 다시 삼순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삼순이는 역시 품에 안은 어린애를 보이려 하지 않고 몸을 사리는 것이었다.
"아, 아버지와 오래비두 궁금하실 텐데 어디 얼굴이라도 뵈드려야 하잖느냐? "
비교적 점잖은 어투로 말하는 곰배무당을 그 등뒤에서도 삼보는 못마땅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지가 뭐라구 앞에 나서서 챙견이야! '
삼보는 이렇게 뇌까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아무도 없는 집안…… 아버지 혼자 계실 때 곰배무당이 와 있었다는 것이 유쾌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말투가 꼭 무슨 계모나 되는 것처럼 어쭙잖게 구는 것이 심통이 났고 보기 싫었다.
'화냥년! 중놈과 붙어먹는 화냥년이…… '
삼보의 생각이 이에 미치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아버지는 더러운 줄도 모르구. '
삼보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삼순이만 하더라도 곰배무당의 그 어쭙잖은 꼬락서니가 아니꼬와서 아이를 보이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당장 심술이 터질 것만 같은데, 곰배무당은 뚱딴지같이 또 씨부렁거린다.
"아, 삼보는 마중을 나가면 조카를 받아 안구 올 일이지, 그대루 뒤에 어슬렁어슬렁 따라온단 알야! "
옳은 말이긴 했으나 울화가 뻐쳤다. 그러잖아도 노원 앞 어둠 속에서 만나던 순간엔, 어리둥절도 했지만 얼마 오다가 받아 안고 오자니까 굳이 자기가 안고 가겠다고 해서 내버려 둔 것을 남의 속은 모르고 어쩌니 저쩌니 하고 있으니 돼먹지 않는 수작이었다.
"아주머닌 왜 남의 일에 콩 나라, 팥 나라 허슈! 챙견두 팔자구려! "
짜증 섞인 삼보 호통에 곰배무당은 꿈질하며 한 발 물러섰다.
"아따 그 사람은 누이가 오더니 세도가 당당하군! 가래지 말래두 갈 테야! 그래두 이웃 사촌이라구 찾아 주는 건 고맙다지 않구…… "
배 생원은 한 마디 했다.
"이 자식! 어른보구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
아버지한테 욕을 먹고 보니 삼보는 더욱 심통이 났다.
"어른이 어른 구실을 해야죠! "
삼보 입에서 더 무슨 말이 나올는지 몰라 배 생원도 곰배무당도 입을 닥뜨리고 말았다.
곰배무당이 이렇게 창피만 당하고 어깨를 벌름거리는데, 별안간 아이가 킹킹거리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삼순이는 비로소 안고 온 아이를 끌러내리는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손자의 얼굴이 궁금해서 딸의 곁으로 가서는 막 품에서 내리는 아이를 들여다본 배 생원은 너무나 큰 놀라움에 자기 눈을 의심하며 뒤로 물러섰다. 배생원은 정신이 아찔해 왔다. 백일도 됐을까말까 한 갓난장이의 얼굴이 그렇게 검을 수는 없었다. 밤이라서 검게 보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확실히 삼순이가 안고 온 아이는 깜둥이 새끼가 분명하다.
배 생원은 정말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열 길 낭떠러지로 꺼불꺼불 떨어져 내려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오직 하나 의지하며 응시하고 있던 촛불이 깜빡 꺼져 버린 순간의 절망이었다.
배 생원은 안절부절을 못하며 마당을 서성거리다가 자기 평생에 아직 가져보지 못한 가장 격분된 언성으로 고함을 쳤다.
"이년, 내 앞에서 당장 물러가라! 썩 없어지란 말이야! "
그 이상 말이 나가지 않아 또다시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가쁜 숨을 씨근벌떡거렸다.
삼보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곰배무당은 흥미 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기나보다 하고 눈치들만 보았다.
삼순이는 돌아선 채 일체 말이 없었다.
"이년 당장 나가지 못해! 여기가 어디라구 우물쭈물하는 게냐! 썩 못 나갈 테냐! "
배 생원은 마당 구석을 두리번거리다가 지게 작대기를 손에 집어 들고 삼순이에게로 덤벼들었다.
삼보가 중간으로 나서며 배생원을 가로막았다. 가로막는 순간 삼순이의 어깨 너머로 어린애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삼보도 비실비실 한쪽으로 가서 흙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버렸다.
"아아니, 별안간 왜들 그러슈? 이 집두 푸닥거리 좀 해야겠군 그래! "
곰배무당이 삼순이에게 달려갔다. 곰배무당도 이내 얼굴을 돌리고 끔찍한 것이라도 본 것처럼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섰다.
잠시 동안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절망과 허탈만이 수렛골의 이 사람들을 무서운 압력으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네들은 절망하기도 오래간만이었다. 일 년 열 두 달을 지내야 기대라곤 가질 일이 없으니 절망할 일도 없었던 것이다.
배 생원은 거의 사고력을 잃은 채 두 손으로 허리를 짚고 서 있었다.
삼보는 눈물이 글썽해 있었다. 삼순이가 돌아온다고 해서 자기네 살림에 무슨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애당초 생각하지 않았다. 저 꼴이 되어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될 누이동생이 측은했다. 오라비인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굶주림이나 노동은 팔자에 타고난 것이라 새삼스럽게 실망할 것도 없지만 삼순이의 신세가 가슴 아파, 눈을 감은 채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곰배무당은 고소한 생각도 들었다. 밤낮 뼈다귀만 찾던 배 생원의 꼬락서니가 고소했다. 다만 삼덕암 주지하고 짠 계략이 허무하게 허물어져서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삼덕암 주지는 비구승이라 떳떳하게 여자를 들여앉히지도 못할 형편이니 남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서도 배 생원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더구나 배 생원의 살림도 이제는 셈이 피게 됐으니 적당히 해보라는 그의 당부였다.
"이년아 얼른 나가지 못해! 어디 가 뒈지던지, 다시 너 갈 데루 가든지, 내 눈앞에서는 없어지란 말야! "
여유라고는 없는 호통이 다시 떨어졌다.
삼순이는 대꾸 한 마디 해 보지 못하고 결국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 년만에 만난 아버지에게 말 한 마디 건네어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어린애를 소중히 품에 감싸 안으며 발길을 돌렸다.
삼순이는 고개를 푹 숙여 오라비에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는 서서히 그의 앞을 지나 어둠이 안개처럼 서려 있는 바깥으로 나섰다.
배 생원은 딴전을 보며 돌아서 있었고, 곰배무당은 삼순이의 거동을 세세히 곁눈질하며 아울러 삼보를 조심조심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눈가 하나 나서서 부엉이처럼 밤중에 왔다가 밤중에 돌아가는 삼순이를 선뜻 불러 세우지 못했다.
어스름 달밤이 되어 있었다. 수락산 갓바위에 조각달이 절반쯤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삼순이는 정처없이 집을 등지며 서낭 고개 쪽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갔다.
"편지나 바루 허려무나! 대처루 가서…… "
삼보가 울먹한 목소리로 엉거주춤 일어서며 삼순이 등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사람의 말소리가 아니라 짐숭의 울음소리같이 오장에서 나오는 음향이었다.
"날이나 밝거든 보내잖구 쯧쯧…… "
뇌까리며 혀를 끌끌 차는 곰배무당은 갑자기 허리가 허전해서 눈을 감았다. 가벼운 현기증인 듯싶었다. 두 사내를 만난 오늘의 피로가 이제 눈을 뜨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나이 탓인가 했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둠 저편으로 뿌옇게 바라보이는 서낭 고개에는 삼덕암 주지가 마침 앞을 지나가는 삼순이를 묵묵히 지켜보고 서 있었다.
수렛골은 다시 전날과 다름없는 정적과 야음이 야금야금 깊어 갈 뿐이었다.
딱딱 따딱 딱.
배 생원이 별안간 기둥에다 빈 담배 고깔을 두드려댈 때, 흑! 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두 번인가 들렸다.
그리고 담뱃대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희끄무레한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유주현(柳周鉉: 1912-1982)
경기도 여주 출생. 호는 묵사(墨史). 일본 와세다 대학 전문부 문과 수학. 1948년 <백민>에 단편 <번요의 거리>를 발표하여 등단. <백민> 편집 동인. 6 25 전쟁 때 공군 문인단에 참가. <신태양사> 주간,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역임. 그는 인간과 역사와 현실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자매 계보>, <태양의 유산>, <파천무>, <신의 눈초리>, <조선 총독부>, <회천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