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단편소설2

50. 한양 고무 공업사

자한형 2022. 3. 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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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漢陽) 고무 공업사(工業社) 이제하

 

야시(夜市)

 

대왕 연()이 바다 위로 넘어서는 것을 보자 나는 속이 텅 비었고, 발바닥 밑에서 갑자기 땅이 쑥 꺼져 나가 버린 듯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짱구는 나보다 더 높이 숨을 쉬고 있었다. 우리는 몇 번이나 섰다가 다시 달렸고, 열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면서 몇 번이나 곤두박질을 쳤었고, 연줄은 이제 바다에 닿아 어디론지 끌려들어 가면서 색깔을 입힌 듯한 물에 젖어 들고 있었다. 물 속에서 누가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굉장히 빨리 어두워지는 부두에 서서 나는 큰 인광(燐光)처럼 마지막으로 번쩍한 바다 저쪽으로, 대왕연이 엄마 해오라기처럼 자리를 찾다가 스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물 속에서 누가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검푸르게 부풀어오르던 바다도 빨리빨리 어두워졌고, 짱구는 얼레를 내게 맡기고, 바지를 까고, 살구나무처럼 허리를 휘고, 그것을 꼿꼿이 내밀고, 밑으로 힘껏 오줌방울을 떨어뜨렸다.

"더 안 누니?"

조마조마하면서 나는 힘껏 물었다.

"짜식 아주 죽어 버렸다, 이젠 끝장이다."

바지를 끌어 올리면서 짱구는 턱으로 바다 저쪽을 가리켰다.

"유치하단 말야, 연 가지고 놀게 됐어? 내가 몇 살인 줄 아니? 이리 내."

내가 내민 얼레를 받아 vt석 위에 놓고 몇 번이나 그 주위를 살살 손으로 쓸어서 자리를 맞춘 다음, 짱구는 큰 돌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서 쿵 하고 떨어뜨렸다. 다리 하나가 찌그러지면서 얼레는 짐승처럼 튀어 달아났고, 그것을 잡으러 나는 뛰어갔다.

"잘 놔"

하고 짱구는 다시 돌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나는 얼레 주위를 손으로 살살 쓸었다.

다시 한번 말해 두지만 끊어진 연은 잡는 놈이 임자인 것이다! 제 손으로 실을 끊고서,,,,,, 꼴망태, 더런 쌍, 가뗌,,,,,,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나는 빨리 뒤로 물러섰다. 얼레는 박살이 나 버렸고, 수세미 같이 헝클린 실 더미 새로 삔 팔꿈치처럼 덜렁덜렁하는 그것을 주워 들고 나는 힘껏 흔들기 시작했다.

"가자"

하고 짱구가 말했다.

"집에 쇠고깃국 많다, 던져,"

"알았어."

하고 내가 말했다,

"소대가리를 삶았다. 한 그룻 주께."

"알았어,,,,,,"

하고 내가 다시 말했다.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나는 물 속에 가라앉고 있는 얼레를 지켜 보았다. 그것은 짜장 죽은 게처럼 다리를 벌리고 꺼멓게 물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곧 없어져 버렸고, 또 한번 말해 두지만 끊어진 연은 잡는 놈이 임자인 것이다! 제 손으로 실을 끊을 게 뭐야, 꼴망태, 가뗌 자식,,,,,, 물 위에 침을 뱉고 나는 빨리빨리 짱구를 따라 그 뒤에 바싹 대어 섰다.

"그놈은 진짜다"

하고 부친이 늘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진짜 얼간이지. 죽은 놈 죽은 년까지 다 쳐서 말이다. 그놈 눈깔을 봐, 옆 걸음을 쳐서 물에 기어들 놈이다."

짱구는 진짜 사팔뜨기기 때문에 부친의 말을 나는 어느 정도 신용하고 있었고, 언제 옆 걸음을 쳐서 물에 기어들지를 몰랐으므로 늘 조마조마하면서 나는 짱구를 따라다녔던 것이다. 여태 한번도 짱구가 물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나는 언제든지 짱구를 건져낼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헤엄에는 일등이었으니까.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넣으면서 부친은 또 이렇게 말할 때도 있었다.

"하긴 짱구놈이 제일 똑똑하기는 해, 그 꼴에 그 꼴이 돼 버리긴 했지만,,,,,,"

'그 꼴에 그 꼴'이 무슨 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어 보면 부친은 언제든지 똑바로 나를 보았고, 나는 속이 거북해졌고, 그러면 부친은 나를 안아 올려 자전거 등받이에 태우고 부두를 한 바퀴 돌아 주는 것이었다.

"빨리 커라"

하고, 갑자기 퍼붓기 시작한 졸음 저편으로부터 바닷바람을 감아 와 페달을 돌리면서 침울한 목소리로 부친은 말하는 것이었다.

"사내가 앓으면 못 써, 사내든 계집애든 앓는 놈은 파이다,,,,,,"

오랫동안 부친은 짱구네 공장 문 앞에 앉아, 들고 나는 고무신짝 수를 헤는 일을 했다. 우체통 뚜껑 같은 모자를 거꾸로 쓰고, 뾰죽한 연필을 귀 뒤에 꽂고, 공장 사람들에게 쉴새없이 절을 하면서 시뻘건 눈으로 신짝더미를 파헤치는 것이었다. 자전거가 한 대 생겼을 때 부친은 짱구네 공장을 그만두고 군화 장사를 시작했다, 짱구가 그 자전거를 보고 펄펄 뛰었던 것이다. 반짝반짝 닦은 그것을 끌고 부친과 나는 짱구네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러 갔었던 것인데, 부친은 역시 기름으로 번쩍번쩍 닦은 군화 한 켤레를 보란 듯이 신고 있었다. 짱구는 부친의 군화를 힐끔힐끔 보았고,

"우리 거다, 이리 내!"

하고 빽빽 소리를 지르고 뛰면서 자전거를 잡아당겼던 것이다. 언제나 붉은 눈물이 질척질척한 짱구 아버지가 큰 배를 내밀고 짱구의 팔을 붙들었다. 빵구는 정말 사팔뜨기가 돼버린 흰눈을 힘껏 뜨고 입에서 이상한 것을 게우면서 개구리처럼 깡총 뛰어올라 우리 부친의 뺨을 때렸다, 한번만 그랬으면 나도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세 번 그랬을 때 부친은 짱구의 허리를 잡아 멀리 던져 버렸고 짱구는 피를 흘리면서 일어나서 또 몇 번이나 개구리처럼 지붕만큼 아니 하늘만큼 높이 높이 뛰다가 꼼짝도 않게 돼버렸다. 부친은 짱구 아버지의 팔을 두 손으로 꽉 붙들고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가자!"

하고 이윽고 부친은 큰 소리로 말하면서 내 팔을 잡아당겼다. 짱구가 왜 그랬는지 정말 모르겠다.

돌아보니 짱구 아버지가 축 늘어진 짱구를 안아들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부친은 '그놈은 진짜다' 하는 말을 곧잘 하게 되었고, 짱구가 옆 걸음을 쳐서 물에 기어들기만 한다면 건질 결심을 나는 단단히 하게 되었던 것이다.

짱구네 방에서는 언제든지 어디선지 - 땅 밑에서 목물 끼얹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짱구네 집은 공장 옆에 있었지만 파도치는 소리가 그랬던 건 아니다. 파도는 그런 소리로 울지는 않는다. 파도소리는 검고 목물 끼얹는 소리는 희다. 여자--- 죽은 짱구 엄마가 땅 밑 광에서 때를 씻고 있었던 것이다,,,,,,

"퍼먹어라"

하고 옆에서 누군지 말했다.

"쇠고깃국이다, 퍼 먹어."

숟가락이 딸각거리는 소리, 혀가 나왔다 훌쩝 하고 들어가는 소리, 젓가락이 따로따로 넘어지는 소리, 코가 풀리는 소리, 목젖이 그르륵 그르륵 하는 소리, 빨아들이는 숨소리들을 가만히 듣고 있어 본즉 나는 우산을 쓰고 밥상 주위를 껑충껑충 뛰어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먹어라"

하고 건너편에서 붉은 눈물이 질척질척한 뚱뚱한 짱구 아버지가 말했다.

"먹어. "

""

하고 나는 벌떡 일어나서 절을 하고 앉았다.

"먹겠습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웃고,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고, 일제히 시무룩해 졌고, 일제히 다시 딸각거리기 시작했다. 방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일곱, 여덟, 아홉 개, ,,, 붉은 치마, 푸른 치마, 검은 바지 쥐 저고리,,,,,,를 입고 앉아 있었지만, 여자는 한 개도 없었다. 여자 -엄마- 죽은 짱구 엄마는 홀랑 벗고 땅 밑에서 때를 씻고 있었던 것이다. 부친 말에 의하면 모두들 사돈의 팔촌들이라는 것이다.

일곱, 여섯, 다섯, ,,,,,, 정신을 차리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한 개씩 없어져 버리고 언제나 짱구와 분이와 내 머리만 방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큰 밥통도 국그릇도 수많은 은수저들도 벌써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가 없었고, 밥상만이 도끼에 맞은 큰 검은 소처럼 네 다리를 뻗치고 벽에 가서 자빠져 있었다. 둥근 배 위에 둥글둥글한 단추 같은 배꼽을 내놓고 기어다니면서 분이는 하나씩 밥풀을 주워먹었다.

일어나서 나는 짱구의 맞은 편 벽에 가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밥풀을 다 주워먹은 분이가 짱구 앞으로 기어가면, 짱구는 분이 배 밑으로 조금씩 발을 디밀어 넣어서 분이를 훌떡 뒤집는다. 꼴록, 하고 재미있는 소리를 내며 뒤집혀서 분이는 언제나 빵긋 웃었고, 발딱 뒤집힌 채(뒤집히지 않으면 짱구는 다시 한번 해 준다) 눈을 감고 또 한번 빵긋 웃고 그리고는 잠들어 버린다. 언제나 그것이 끝이다. 정신을 차리고 거기까지 보고 있던 나는 갑자기 배가 불쑥해지고 머리가 굉장히 커지고 무거워져 버린다. 땅 속 여기저기에서 빨간 꽃이 피어나고, 어디선지 솜덩이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목물 끼얹는 소리가 아주 멀어져 간다. 벽 속에서 누군지 나를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깨 보면 짱구가 흰눈을 뜨고 언제까지나 그대로 앉아 있을 때도 있었고, 나는 우리 집에 있을 때도 있었고, 부친이 나를 들고 있을 때도 있었고, 달리는 자전거 위에 있을 때도 있었고, 나는 아침이 되어 있을 때도 있었다, 부친은 패가 잤다고 했지만 사실은 나는 헤엄을 쳤던 것이다. 내가 짱구를 지켜 주었던 것이다,

눈을 뜨고 본즉 짱구가 발로 내 배를 찌르고 있었으므로, 나는 짱구의 다리를 껴안았다.

"일어나."

하고 짱구는 사팔뜨기 머리통으로 기어와서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계집애가 왔다. "

우리는 열린 방문턱에 기대어 서서 대문간에 서 있는 계집애를 바라보았다. 삿갓을 쓴 전등이 계집애 머리 위에 한 개 켜져 있었고 큰 개 두 마리가 뒷발을 접고 앉아 계집애 코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계집애는 왼쪽 입에서 오른쪽 입으로 자꾸만 오징어 다리를 빼내면서 웃고 있었다.

"어떻게 열었을까, 잠갔는데, 내가 열었나?"

"개가 열었겠지, 꼬리꼬리해서 죽겠네n하고 내가 말했다.

"오징어 찌꺼기를 먹구 있다. 더럽다. 침이 묻었어."

"계집애다."

얼굴을 찌푸리고 대문간을 계속 노려보면서 짱구가 말했다.

"알겠니? 모두 야시(夜市)에 갔다, 양코배기들이 온다."

"건 알아"

하고 내가 말했다.

밤마다 색색가지 불을 켜는 양코배기들의 큰 배가 벌써부터 몇 척씩이나 바다에 들어와 있었고, 3부두 저쪽 시장에서는 보름 전부터 야시가 서고 있었고, 짱구네 식구들이 고무신짝들을 무더기무더기 쌓아 놓고 온통 거기서 판을 치고 있었고, 나도 가서 신 사는 양코배기들을 몇 번 따라다녀 봤지만 짜식들은 코만 뾰죽했지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나는 연이 좋았던 것이다. 꼴망태놈--- 분명히 제 손으로 실을 끊어 놓고서,,,,,,

"알겠니?"

고개를 숙이고 내가 말했다.

"가면 안 돼."

"계집애다." 하고 짱구가 말했다.

"오징어를 먹구 있어----"

"가면 안 돼." 하고 내가 말했다.

"오징어 찌꺼기를 먹구 있다. 꼬리꼬리해서 죽겠어. 더러워 죽겠네."

짱구는 대문을 노려보면서 더욱 얼굴을 찌푸렸고, 천천히 바지를 까고 살구나무처럼 허리를 휘고 발꿈치를 꼿꼿이 들고 서서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그만둬!"

하고 조마조마하면서 나는 소리쳤다.

"오징어 찌꺼기를 먹구 있단 말야!"

나는 짱구의 그것을 잡아 오줌발을 흔들어 버렸다. 그러지 않았으면 계집애는 금방 개한테 물려죽어 버렸을 것이다. 개들은 이를 사려 물고 금방 그륵그륵하기 시작했으니까.

킥킥 하는 웃음 소리를 내면서 계집애는 대문간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고, 두 마리의 개는 꼬리를 흔들고 끙끙 앓으면서 계집애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바지를 올려 매면서 이윽고 짱구는 소리 없이 줄줄 울기 시작했다,

"알겠니?"

하고 코를 들이마시고 내 손을 만지면서 짱구가 말했다.

"잘 지켜야 한다, 우리 아버지가 올 때까지."

짱구는 내 손을 꽉 쥐었다 놓았고, 코를 내 코에다 밀어붙였다.

"아무 데두 가지 말아, 우리 아버지가 올 때까지."

"열 테야, 열어 버릴 테야, 모두 열어 버릴 테야. 무섭다, 가지 마!"

하고 내가 소리쳤다.

그날 밤 사건은 그렇게 해서 벌어졌다. 짱구는 내 손에 열쇠를 쥐어 주고 몇 번이나 오므렸다 폈다 하게 했다.

"우리 아버지가 올 때까지."

풀죽은 소리로 받아뇌면서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미친놈이 있다"

하고 초조한 듯이 짱구가 말했다.

"광에,,,,,, 아무한테두 열어 줘서는 안 돼,,,,,, 아무 놈이 와도 열어 주지 말아."

계집애는 이젠 큰 소리로 킥킥대며 웃고 있었고, 개들은 뛰어 올라 계집애의 가슴을 짚고 뒷발로 서서 축축히 젖은 오징어다리를 받아 먹는 것이었다. 계집애가 밀어 넣어 주는 그것을 물어채서 땅에다 대고 설설 기면서 무슨 말을 할듯할 듯 이를 드러내고 씹다가 괴로운 듯이 목을 내두르는 개들을 우리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짱구는 나를 밀어붙이고 대문간으로 뛰어갔고, 계집애와 짱구가 눈 깜짝할 새에 없어진 뒤에야 맨발로 뛰어내려 나는 대문간으로 달려갔다. 빗장을 지르고 돌아서서 거기다 등을 누르고 헐떡이며 고개를 숙이고 있노라니, 내 발치에서 냄새를 맡으며 맴돌고 있던 개들이 집 뒤 광으로 끙끙대며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날 밤 사건은 그렇게 해서 벌어졌다. 대문간에 서서 짱구네 집을 똑바로 바라본즉, 방들이 모두 첩첩이 포개져 있어서 전부 몇 개나 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분아!"

하고 뛰어가면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대문이 한 걸음 전등 밑으로 걸어 들어와 서 있었고 내가 멈추고 다시 돌아서서 째려보자 대군은 시털건 얼굴로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하고 나는 천천히 주먹을 흔들었다.

"거기 있어."

대문은 뒷걸음질을 쳐서 물러가다가 그 자리에 서 버렸고, 나는 어쩐지 대문이 검은 얼굴을 숙이고 자꾸 우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흔들자 분이는 빵긋빵긋 웃기 시작했다.

"아침이다, 세수하러 가"

하고 내가 다시 말했다.

"아침이다. 어둡다."

"오빠, 아침이야?"

분이가 말했다.

"오빠, ,"

하고 분이가 다시 말했다.

"물 먹고 싶쪄,,,,"

"그래"

내가 말했다.

"땅 밑에 내려가자, 물이 나온다."

"세수한다. 세수한다"

하고 분이는 내 손을 잡고 지하실 광으로 들어갔고, 문 앞에서 뒤로 나를 잡아당겼고,

"쉬 할래"

하고 빵긋 웃었고, 나는 분이의 엉덩이를 돌면서 춤을 추었다.

빨리 눠."

초조해서 내가 말했다.

"개가 온다. 안 나오니?"

"나온다"

하고 분이는 일어섰다. 분이는 아무 것도 누지 않았다.

광문 밖에 서서 우리는 멀리 광 바닥에 호두껍질처럼 속이 파여 누워 있는 가마솥을 내려다보았다. 땅을 그렇게 크게 깊게 어둡게 파지 않았으면 가마솥은 거기 없었을 것이다. 땅이 꺼졌기 때문에 가마솥도 생겼라. 왜냐하면 가마솥이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왜냐하면 엄마는 땅 밑에 있었고, 엄마는 언제나 때를 씻어야 했으니까. 가마솥은 힘껏 내 얼굴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싫어!"

하고 큰소리로 내가 말했다.

"엄마, 어두워서 싫어!"

"엄마 얼굴 나온다, 엄마 얼굴 비친다"

하고 분이가 손뼉을 쳤다.

"빨리 해, 오빠. 빨리 가."

"그래"

하고' 내가 말했다.

계단이 너무 많았으므로, 분이를 업고 나는 빨리빨리 광으로 내려 갔다. 계단은 내 발바닥을 밀어 올리며 자꾸자꾸 위로, 공중으로 문밖으로 빠져 달아났고, 분이는 깍깎대고 웃었고, 분이가 그러지 않았으면 나는 광 천정으로 등등 떠서 날아다녔을 것이다. 광이 너무 어스름해서 분이가 너무 가벼웠던 것이니까.

"아이구, 안 어지러워."

삿갓을 쓴 전등 밑으로 내려오자 분이를 내려놓고 나는 어지러운 척하고 맴맴을 돌다가 일부러 크게 쓰러져 버렸다. 분이는 손혁을 치며 웃었고 가만히 누워서 분이를 올려다보고 있어본즉, 계단이 쏜살같이 다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계단은 마치 무너진 재목더미들처럼 광 문 밖으로부터 꾸역꾸역 밀려 내려오는 것이었다.

언제나 번쩍이는 물, 따뜻한 불처럼 꺼지지 않는 물, 기다란 번데기 같은 굴뚝을 타고 들어와 큰 가마솥 속에 쫄쫄 흘러 넘쳐서 광 바닥을 적시고 있는 물,,,,,, 분이는 홀랑 벗고 가마솥 속으로 들어갔고, 나는 손바닥을 확 펴고 분이 몸에다 손을 쪼였다.

"오빠도 들어 와."

분이는 물장구를 쳤고, 나는 가마솥 밑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거울이 있다."

하고 내가 말했다-, 그날 밤 사건은 그렇게 해서 벌어졌다.

옷을 벗고 가마솥 속으로 들어가자 나는 분이의 얼굴에 거울을 비췄다.

"엄마"

하고 나를 보면서 분이가 말했다.

"아빠를 죽이지 마."

"안 죽인다"

하고 내가 말했다.

"안 죽일쩨."

가마솥 속에서 나는 광 여기저기에다 거울을 비췄다. 분이는 계속 물장구를 쳤고, 높이 숨을 쉬었고, 나는 여기저기에다 계속 거울을 비췄다.

"죽이지 마, 엄마."

분이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아빠가 죽는다."

분이는 자꾸 울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여기저기에다 빨리빨리 거울을 비친다.

"안 죽일께."

분이는 나한테 바싹 달라붙었고, 분이의 뒤통수를 껴안고 나는 빨리빨리 거울을 비췄다,

"저것 봐"

하고 내가 말했다.

"바퀴다."

쇠바퀴에다 대고 나는 거울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광 제일 저 쪽 구석에 붙어 있었고, 검게 번들거리는 얼굴을 어스름한 곳으로 숙이고 캄캄한 광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계속 거울을 꼼짝도 하지 않았더라면 바퀴는 소리를 지르며 곧 윙윙대고 돌아갔을 것이다. 거울 속에서 빛이 나왔고, 빛 속에서 바퀴가 나왔건 것이니까,

"뿡뿡이다. 자동차다, 뿡뿡---"

하고 분이가 손뼉을 쳤고, 나는 거울을 높이 던져 버렸다. 날카로운 빛줄기가 천정을 때리고 없어지는 것이 보였다. --- 거울은 어디론지 사라졌다가 가마솥 밑에서 산산이 찢어져 버렸다.

"깼어, 오빠?"

하고 분이가 말했고,

", 찢어 버렸어,,,,,, 물이 안 나온다"

하고 내가 말했다. 언제나 번쩍이는 물------엄마처럼 따뜻하고 꺼지지 않는 물,,,,, 물이 안 나온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분이를 꼭 껴안고 나는 물이 안 나오는 기다란 번데기 같은 굴뚝 속을 들여다보았다. 구멍은 캄캄한 땅 밑으로 들어가 버리고, 구멍 속에는 검은 색밖에는 없었다.

"죽었다"

하고 구멍에다 입을 넣고 나는 힘껏 불었다.

"모두 죽어 버렸어."

구멍이 내 입을 때리고 밀어내서 나는 호되게 재채기를 했다.

"안 죽었쪄!"

분이는 악을 썼다.

"안 죽었쪄! 안 죽었쪄!"

"죽었다."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높이 숨을 쉬었고, 분이는 어쩐지 자꾸 울려는 것만 같았다.

"안 죽었쪄! 안 죽었쪄!"

"그래, 안 죽었다."

하고 내가 말했다.

"다리를 꼭 잡아."

나는 분이의 다리를 꼭 잡았고, 큰 가마솥 속에서----엄마처럼 언제나 따뜻한 물 속에서,,,,,, 분이를 꼭 껴안고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만가만 숨을 쉬고 있노라니 내 숨소리는 높이, 더 높이 물 속으로- 땅 밑으로- 하늘 속으로- 높이, 더 높이 내려가는 것이었다. 어지러워서 나는 눈을 꼭 감았다.

"누가 지나가구 있다."

하고 내가 말했다.

"누가 횐옷을 입고 걸어 가구 있어."

"엄마다."

분이가 말했다.

분이와 나는 눈을 뜨고 전등을 쳐다보았고, 분이와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구 있다"

하고 내가 말했다-----

"엄마야"

하고 분이가 말했다.

"아빠를 낳으려구 방에 가는 거야."

"그래"

하고 내가 말했다.

"엄마가 애기를 낳는 거야."

 

"아냐, 엄마가 아빠를 낳는다"

하고 분이가 말했다.

"아빠가 엄마를 낳고---"

"그래"

하고 내가 말했다.

"아빠가 애기를 낳는 거야."

"그치?"

하고 분이가 말했다.

"애기가 분이를 낳고 엄마가 아빠를 낳지, 그치?"

"그래"

하고 내가 말했다.

"짱구가 엄마를 낳고, 아빠가 애기를 낳고, 분이가 아빠를 낳고, 짱구가 바퀴를 낳는 거야."

"낳는다, 낳는다."

분이는 물장구를 쳤다. 분이를 밀어내고 나는 번데기 같은 굴뚝 속을 들여다보았다.

"방을 찾구 있다. 방을 찾구 있는데,,,,,,"

하고 내가 말했다. 그날 밤의 사건은 그렇게 해서 벌어 졌다.

"방에 들어갔다. 누웠다. 방에 누워 있는데---"

"엄마야"

하고 분이가 말했다.

"엄마 아야한다. 엄마 아야다---"

물장구를 치며 분이는 울기 시작했고, 내가 눈을 감고 굴뚝 속을 들여다보고 있자, 누운 엄마의 배가 점점 위로, 점점 빨리 점점 크고 검게 둥근 무덤처럼 부풀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저게 누구지?"

하고 내가 말했다.

"방에 들어갔다, 옷을 입구 있다."

나는 점점 높이 숨을 쉬었고,

"엄마 아야다, 엄마 아야, 아야."

하고 분이는 점점 더 많이 울었고,

"울지 말아! 엄마 죽는다, 울지 말아!"

하고 나는 소리를 치며 울었고, 분이와 나는 힘껏 힘껏 울었다. 나는 가마솥을 힘껏 휘저었고, 힘껏 물을 엎질렀고, 솥에서 힘껏 뛰어내렸고, 힘껏 달려갔고, 힘껏 바퀴에 부딪쳤고, 이 구석 저 구석에 힘껏힘껏 부딪쳤다. 내가 오래오래 더 많이 더 힘껏 여기저기 부딪치지 않았더라면 아마 바퀴는 틀림없이 윙윙대고 돌아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가 아빠를 낳았고, 아빠가 엄마를 낳았고, 분이가 아빠를 낳았고, 짱구가 바퀴를 낳았던 것이니까. 분이가 머리를 만져서 나는 눈을 뜨고 잠이 깼다.

"오빠, 죽었쪄?"

하고 분이가 말했다.

몹시 추웠으므로 나는 광 바닥 물 속에서 빨리 일어났다.

"그래, 가 버렸다."

하고 내가 말했다.

"달아나 버렸어,,,,,,"

가마솥은 거북이처럼 엎어져서 광 바닥을 깔아 뭉개고 물을 쫄쫄 흘리고 있었다.

"옷을 입자"

하고 내가 말했다.

"안 입으면 엄마가 안 간다."

"옷 입는다, 옷 입는다."

하고 분이는 춤을 추었고, 빵긋빵긋 웃었고,

"안 간다, 안 간다, 안 간다."

하면서 분이는 자꾸 손뼉을 쳤다.

나는 빨리빨리 옷을 입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 정말 모르겠다. 하나씩 빨리 옷을 입을 때마다 횐옷 입은 여자가 하나씩 달아났다, 나는 더 빨리 옷을 입었고, 횐옷 입은 여자가 모두 세 개 달아났다, 분이는 옷이 두 개뿐이었기 때문에 거꾸로 옷을 입었고, 맨드라미꽃처럼 막 춤을 추었다. 내가 잡아당기자 맨드라미 밑구멍에서 분이 머리가 나왔다.

"입었지?"

하고 내가 말했다.

"나왔지? 달아나 버렸지?"

"아니"

하고 분이는 빵긋 웃었다.

"안 나왔어."

"그래"

하고 내가 말했다.

"안 나왔다. 빨리 나가자."

분이를 업고 나는 계단 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내가 왜 그랬는지 정말 모르겠다. 횐 옷 입은 여자가 한 개, 다리가 땅에 박혀 발바닥이 붙어서 아직도 대문간에서 안 가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래, 오빠? 아야해?"

하고 등 뒤에서 분이가 물었고

"잡아 당겨! 잡아당겨!"

하고 나는 속으로 안간힘을 쌨다.

"아냐, 빼내!"

하고 나는 속으로 힘껏 외쳤다. 굉장히 검은 땀을 흘리면서 나는 이를 물어 뜯었다. 꼴망태, 더런 짱! 제 손으로 실을 끊어 놓고서 ,,,,,,

"올라가, 오빠, 올라가! 올라가!"

분이는 끙끙거리며 자꾸 등뒤에서 울었고, 나는 다시 굉장히 검은 땀을 굉장히 많이 흘렸다. 횐 옷 입은 여자가 아직도 안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계단을 한 개 올라가자 여자는 대문간 앞에서 좀더 깊이 땅 속으로 들어갔다. 누가 내 눈알을 힘껏 잡아당기고 있었으므로, 나는 다시 힘껏 이를 물어뜯었다

"아야 하지 말어, 오빠. 올라가, 올라가."

"그래."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굉장히 검은 땀을 좀 많이 흘렸다. 계단이 턱 밑으로 뛰어왔으므로, 나는 그것을 힘껏 밀어냈다. 내가 계단을 한 개 더 올라가자 흰 옷 입은 여자는 좀더 땅 속으로 들어갔다. 거의 치마 있는 데까지 들어가 박혀 버렸을 것이다. 꼴망태, 가뗌 자식,,,,,, 제 손으로 실을 끊을 게 뭐냐, 엄마,--, 하고 악을 쓰면서 속으로 나는 울었다. 가지 말어,,,,,, 가선 안 돼,,,,,,

"올라가, 올라가, 올라가! ,,,,,,"

분이는 내 등에 코를 비비고 발버둥을 치며 울었고, 나는 검은 땀을 조금 더 흘렸다. 나는 또다시 이를 물어뜯었고, 나는 무지개를 보았다.

분이가 맨드라미꽃같이 빙빙 돌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맨드라미 백일홍 맨드라미 백일홍 맨드라미 백일홍,,,, 하고 자꾸자꾸 속으로 불렀다. 내가 계단을 빨리 올라가자 흰옷 입은 여자는 자꾸자꾸 땅 밑으로 빨리 내려갔다. 거의 머리까지 땅 밑에 들어가 버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계단을 다 올라가서 본즉, 여자들은 모두 흙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니까. 계단 꼭대기에 엎드려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가마솥이 거머리처럼 광 바닥에 붙어 있는 것이 보였고, 쇠바퀴가 있나 하고 자세히 보았으나 그러나 바퀴는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광 속은 너무나 어두웠던 것이다. 광문 밖으로 나오던 나는 큰 개 두 마리가 뒷다리를 접고 여전히 대문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삿갓을 쓴 전등 밑에서 두 마리의 개는 뜨물을 뒤집어쓴 듯이 희었고, 힘껏 나는 개를 바라보았고,나는 다시 검은 탐을 조금 흘렸다. 첩첩이 포개져 있는 짱구네 방들이 모두 몇 개나 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마찬가지다"

하고 나는 속으로 힘껏 말했던 것이다.

"방에 들어가 보자."

하고,

그날 밤 사건은 그렇게 해서 벌어졌다. 열려 있는 방으로 들어서자 분이를 내려놓고 나는 방 한복판을 오랫동안 노려보았다.

"열쇠다"

하고, 천천히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내가 말했다.

"엄마가 낳았어,,,,,,"

"열쇠야?"

하고 분이가 빵긋 웃었다.

"엄마가 낳았어?"

"그래"

하고 내가 말했다.

"엄마가 낳고 달아나 버렸어,"

나는 열쇠를 찢고 그것을 갈가리 물어뜯어 버리려고 생각했던지도 모른다. 그 쬐그만 열쇠는 마치 방바닥을 후벼파고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려는 듯이, 추워서 달달 떨며 마치 점점 더 가늘게 쫄아들려는 듯이, 마치 모든 것이 다 타고 홀로 남아 버린 숯덩이처럼, 꼼짝도

않고 방 한복판에 떨어져 있었다. 그날 밤의 사건은 그것으로 모두 끝나 버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엄마가 아빠를 낳았고, 아빠가 분이를 낳았고, 짱구가 바퀴를 낳았고, 바퀴가 열쇠를 낳았던 것이니까.

"열어 버릴 테야,,,,,,"

쪼그리고 앉아 조심히 손을 내밀어 그것을 움켜쥐고 나는 속으로 이를 물어뜯었다.

"열어 버릴 테야! ,,,,,, 모두 열어 버리구 말 테야,,,,,,"

분이 손을 잡고 방에서 내가 나와 본즉, 대문간에서 개들이 미친 듯이 머리를 내두르고 맴돌며 낑낑거리고 있었으므로 떨리는 손으로 나는 오요 오요를 했다.

"가자."

하고 이빨을 부딪치면서 내가 말했다.

"모두 열어 버리구 말테야,,,,,,"

개들은 분이와 나보다 빨리, 더 빨리 집 뒤 광으로 뛰어갔다.

 

[]

 

3부두 저쪽에서 밤마다 서고 있는 야시(夜市)는 보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짱구가 그날 밤 내게 주고 간 그 무서운 열쇠, 물을 끼얹은 듯한 공장에서 번데기 같은 파이프를 타고 땅 밑으로 기어 나온 그 무서운 열쇠,,,,, 오징어꼬리를 먹는 계집애가 낳은 열쇠, 가마솥 속에서 물장구를 쳤던 열쇠, 방바닥에 슬쩍 놓아두고 분이를 데리고 광속으로 도망쳤던 열쇠, ,,,,,,거울이 낳은 열쇠, 몇 오락의 털이 낳은 열쇠, 검은 땀이 쥐어짠 열쇠, 계단에서 무지개를 본 열쇠, 그리고,,,,,, 아무도 없는 열쇠, 엄마와 바퀴와 횐옷 입은 여자가 낳은 열쇠, 삿갓을 쓰고 매달린 열쇠, 그리고,,,,,, 안경을 쓴 개 두 마리가 뛰어간 열쇠,,,,,,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가?

"하긴 짱구 놈이 제일 똑똑하긴 해"

하고 부친이 늘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꼴에 그 꼴이 돼버리긴 했지만,,,,,,"

'그 꼴에 그 꼴'이 무슨 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집 뒤에서 언제나 들리는 듯한 소리를 따라, 아니 노랗고 곱슬 곱슬한 바람을 따라 어떤 때 뒤꼍으로 살금살금 돌아가 보면, 키다리는 두 눈을 번쩍이며 큰 쇠사슬을 다리에 매달고 뾰족한 머리로 쪼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뚝배기를 할고 있었고, 그 곁에는 언제나 공장감독인 곰보가 큰 몽둥이를 들고 쇠사슬을 쥔 채 서성거리고 있었다. 곰보가 어느 고을 양반이었던지를 나는 모른다. 곰보에게 들켜 나는 몇 번이나 냅다 도망쳤고, 몇 번이나 붙잡혔고, 몇 번이나 사방에서 별이 번객거리도록 맞았다. 피를 깨끗이 닦고 세수를 한 다음 부친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친놈이 있다,,,,"

고 짱구가 말했고,

"그놈은 진짜다"

하고 부친이 늘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뒤곁에 아무도 없을 때는 아무리 샅샅이 찾아봐도 아무 것도 없었다. 뚝배기도, 몽둥이도, 쇠사슬도, 키다리도, 키다리가 번쩍번쩍하던 푸른 두 눈도,,,,,,

그것은 1957년 늦은 여름 어느 날 밤에 생겼던 일이다. 안경을 쓴 듯한 두 마리의 개는 설설 기면서 광문 앞 바닥에 주둥이를 들이밀고 자꾸만 끙끙거렸고, 내 손바닥에서는 녹이고 있는 사탕처럼 열쇤 토막이 자꾸만 미끈거렸다.

"땀이 난다"

하고 내가 말했다.

"열까?"

하고 나는 다시 말했다.

"열어, 열어, 오빠. 열어, 열어!"

분이는 빵긋빵긋 웃으면서 자꾸 손뼉을 쳤다

짤각 하는 소리가 났을 때, 광문에 몸을 밀어붙이고 나는 힘껏 자물통에 매달렸다.

왜냐하면 짱구가 바퀴를 낳았고, 바퀴가 열쇠를 낳았고, 열쇠가 미친놈을 낳았던 것이니까,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광문을 잡아당겼다.

"열어라, 짜식들아! 가뗌, 자식들아!"

소리를 지르고 외치면서 나는 광문을 앞뒤로 잡아 흔들었고, 피를 부딪치면서 광문을 찼고, 빠져 떨어진 고리와 함께 (드디어 활짝 열리는 문을 타고 - 그네처럼 어지럽게 빙 돌다가 철컥 하는 소리와 항께) 땅바닥에 나는 내동댕이쳐졌다. 빨리 일어나서 분이 옆으로 뛰어가 본즉, 검은색뿐이었고, 광 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리 나와!"

하고 내가 소리를 질렀다.

"여기야, 어디 있니?"

"이리 나와! 이리 나와"

하고 분이가 말했다.

"여기야. 어디 있니? 오빠야, 어디 있니?"

손을 잡고 더듬으면서 우리는 광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광속에서 내가 제일 처음 본 것은 바퀴였다. 공장에서 못 쓰게 된 그것들은 컴컴한 광 구석에 코가 막힌 듯이 잔뜩 쌓여 톱밥 투성이 바닥 여기저기에 연근(蓮根)을 오려 놓은 것처럼 흩어져 자빠져 있었다. 그리고 고약하고 많은 냄새가 사방에서, 머리 위에서 푹푹 났다. 문 밖에서 번져 들어온 희미한 불빛이, 두 마리 개가 꼬리를 치고 낑낑거리며 미친 듯이 그 주위를 돌고 있는-뒤통수에 깍지를 끼고 톱밥더미 위에 누워서 뚫어질 듯이 이쪽을 보고 있는 키다리의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키다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고 분이는 턱을 받치고 그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엉 누니?"

하고 분이가 말했고,

"아니"

하고 내가 말했다.

"누워 있어,,,,,, 우릴 보고 있는 거야,,,,,,"

분이는 톱밥 위에 죄꼼 오줌을 누었다. 개들이 뛰어와서 끙끙대며 냄새를 맡았고, 톱밥을 한줌 쥐고 나는 오줌 위에 살살 뿌렸다.

"양코냐?"

하고 내가 말했다.

"너 양코배기냐? 눈이 파랗다."

"작은오빠, 큰오빠, 눈이 파랗고, 빨갛고, 하얗고, 하양이다. 하양이다,"

분이가 일어나서 자꾸 손뼉을 쳤고, 나는 턱을 받치고 그 애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양코냐?"

하고 내가 다시 말했다.

"너 양코배기지? 머리가 노랗다."

오줌에 젖은 톱밥을 문대려고 앉은 채 나는 한쪽 발을 조금 내밀었다. 그때 두 마리 개의 턱 밑으로 가늘고 횐 팔 하나가 뻗어 나와 내 발을 잡았던 것이다. 그것은 어느 늦은 여름날 밤에 생겼던 일이다.

광속에 갇혀 있던 그 키다리는 이상한 바지저고리를 입고 있었고, 아주 기운이 없는 듯했다. 그리고 눈이 너무 파랗고 다리가 너무 희고 가늘고, 팔이 너무 긴 듯했다. 시골 애들이 입는 짬은 무명 바지 저고리 밖으로 그 모든 것이 샅샅이 드러났던 것이다. 그 애는 오랫동안 내 발을 가만가만 만졌다. 눈이가 빵긋 웃으며 그것을 보고 있었고,

"다쳤구나."

하고 한참 후에 아주 작디작은 소리로 무슨 바람결처럼 그 애가 처음으로 하는 말을 나는 들었다. 어른들이 쉬쉬하는 소문대로 그 애가 만약 양코배기었고 양갈보의 아들이었다면, 발을 만질 때 그 애를 나는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뭉개지 마, 집 지어 주께,,,,,,"

하고 그 애가 달했고, 조금 비뚤어진 내 발이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짱구의 말대로 그 애가 만약 미친놈이었다면, 분이와 나는 소리를 지르며 곧 뛰어 달아나 버렸을 것이다. 그 키다리가 무엇이었던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그 애의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까. 그 애의 엄마가 누구였던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횐 옷을 입고 모두 땅 속으로 들어가 버렸던 것이니까. 그 애는 내 복사뼈를 오랫동안 아주 가만가만 만지고 있었다. 그 애는 오줌이 톱밥 속에 녹아 드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는 손으로 톱밥을 이겨서 집을 만들었다. 눈이 흠뻑 내린 듯이 그 리고 그 횐 눈이 살살살 녹기 시작한 듯이 갑자기 훤히 밝아진 광 속

에서 그 애는 정말 눈 깜박할 새에 아주 굉장히 빨리 아주 굉장히 예쁘고 작은 집을 만들어 버렸다. 광 바닥에다 집을 세우고 그 애는 톱밥을 조심조심 뿌려서 그것을 덮었다.

"말린다."

하고 바람같이 짝은, 쉰 듯한 소리로 키다리가 말했고, 우리들은 쪼그리고 앉아 톱밥 아궁이 위에 손들을 내밀고 불을 쪼였다.

"너 양코 아니지?"

하고 내가 말했다.

"미친놈 아니지?"

그 애는 푸른 눈을 뜨고 희고 뾰죽한 얼굴을 가만가만 흔들었고 분이를 좀 부끄러워하고 있는 듯했다. 그 애 얼굴이 좀 점점 빨개졌던 것이니까. 키다리는 팔을 짚고 엎드려서 톱밥을 살살 불었다. 뽀얀 떡고물을 뒤집어쓴 아주 근사하고 작은 집이 점점 드러났다.

"그러지 마."

하고 키다리가 만지자 두 마리의 개는 납작 엎드려서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부서진다. 가져갈 수 없다."

하고 턱을 받치면서 키다리가 말했다.

"집 많다. 이리 와 봐."

그 애는 기다랗게 일어서서 분이와 나를 바퀴더미 뒤로 데려갔고, 개들은 납작 엎드려서 바닥을 살살 쓸면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 뒤를 따라왔다. 바퀴더미 뒤 광 구석에는 벽을 따라 뽀얗게 눈이 내린 수십 채의 집들이 서 있었다. 그 애는 말하자면 오랫동안 언제나 크리

스마스에, 언제나 눈이 내린 동네 한복판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귀뚜라미 집이다."

하고 그 애는 구멍이 하나씩만 뚫린 집들이 있는 동네를 가리켰다,

"-"

하고 그 애는 긴 다리를 접고 가만히 꿇어앉았다. 나는 그때 조금도 숨을 쉬지 않았다. 집들이 너무나 많았고, 개들이 내 등에 코를 대고 너무나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니까. 키다리는 섬처럼 부풀어오른 듯이 바닥에 괴어 있는 톱밥더미를, 부채질하듯이 손바닥으로 조금씩조금씩 두들겼다. 분이가 빵긋빵긋 웃었고, 한 마리 두 마리 귀뚜라미들이 울기 시작했고, 귀가 엥엥해지도록 모든 귀뚜라미들이 일제히 냅다 울기 시작했고, 개들은 들릴 듯 말 듯 끙끙대며 바닥에다 대고 냄새를 맡았고, 그 애가 건드리면 개들은 다리를 뻗치고 모두 옆으로 드러누워 버리는 것이었다.

"집게벌레 집이다, 여기는."

하고 키다리는 구멍이 두 개 뚫린 동네를 가리켰다.

"여긴 하늘소 집이고."

그 애는 낮은 소리로 몇 번이고 휘파람을 불었고, 집게벌레 세 마리가 일제히 뾰죽한 가위를 내밀고 집에서 조금씩 나을 때까지 길게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봤지?"

하고 키다리가 말했다.

"아차, 도둑놈 집이 터졌군."

우리들은, 무너진 집에서 나와서 광 벽을 따라 일제히 다리 달린 팥알처럼 콩알처럼 좁쌀 알처럼 가물가물 기어 달아나는 거미를 잡았다. 분이도 잡고 나도 잡았고, 키다리는 굉장히 빨리빨리 거미들을 잡기 시작했다.

"그물을 친다."

하고 그 애는 손을 내밀어 거미들을 한줌 내보였다. 횐 손바닥 위에서 거미들은 구정물 방울처럼 막 도망쳤고, 개들은 힘껏 턱을 내밀고 컹컹 짖었고, 키다리가 손을 쑥 내밀자 두 마리의 개는 귀를 낮추고 앓으면서 문 밖으로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무서워한다."

하고 내가 말했다.

"이젠 나가자,,,,,,"

분이와 내가 그날 밤 뒷짐을 지고 마당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광문 뒤에 희게 길게 붙어 서 있던 그 애가 왜 좀처럼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는지를 나는 안다. 그 애한테는 마당이 너무나 어두웠던 것이다.

분이를 이끌고 삿갓을 쓴 전주(電柱)가 한 개 서 있는 광문 밖으로 나오자 나는 앞이 캄캄했다. 갑자기 우리 발바닥 밑에서 자라 그 애 쪽으로 드러누운 분이와 내 그림자를 키다리는 몹시 두려워하.고 있는 듯했다.

"이리 와, 무섭니?"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림자야, 이건 분이 그림자고,,,,,, 이리 와 봐. 무섭니?"

나는 한쪽 다리를 없애고 깨금질을 해서 내 그림자를 흔들고 빙빙 돌게 했다. 개들은 미친 듯이 꼬리를 치며 광 앞에서 맴돌았고, 분이는 빨간 치마를 잡고 깡총깡총 뛰면서 맨드라미꽃처럼 춤을 추었다.

"이리 와!"

너무 어지러워 쓰러지면서 나는 소리쳤다.

"이리 와! 안 무섭다."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분이는 뛰고 춤추면서 손뼉을 쳤 고 그러자 푸른 눈 두 개가 내 위로 날아갔다. 누운 채 나는 개 두 마 리가 짖으며 쏜살같이 그 애를 따라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키다리가 맨 처음 뭘 먹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이와 내가 여기 저기 찾다가 부엌으로 들어가 본즉, 그 애는 다리를 늘어뜨리고 부뚜 막에 걸터앉아서 병 하나를 두 손으로 꼭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 다

"포도다."

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들고 키다리는 내게 병을 내밀었다.

"포도주야."

나는 병을 받아서 조금 마셨고, 분이도 조금 마셨고, 나는 다시 많이 많이 마셨다. 개 두 마리와 함께 우리들은 오랫동안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무릎에 손들을 꼭 붙인 채, 마치 누가 빨리 땀을 많이 흘리나 하고 누가 시합을 붙여 놓은 듯이. 개들은 자기들도 포도를 먹었다는 듯이 빈 아궁이 앞에 머리를 늘어뜨리고 눈을 감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나는 점점 몸이 뜨거워져서 높이 높이 숨을 쉬게 되었고, 빈 병이 하나 땍대구르 굴러갔고, 감은 눈 속에서 - 꿈속에서 나는 부친이 홀로 젓고 오는 자전거바퀴 한 개를 희미하게 보았다. 눈을 뜨고 본즉 굉장히 커진 키다리가 두 개 세 개 앞뒤로 왔다갔다 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빨리 일어났다. 남비 뚜껑 세 개를 나는 한꺼번에 열어 젖혔다. 우리는 찬장 두 개를 한꺼번에 열었고, 솥뚜겅 다섯 개를 열었고, 아궁이 세 개를 쿡쿡 쑤셨고, 사과조각 열 개와 고기 국물 열 때를 모두 마셔 버렸다. 부엌은 스무 개만큼 컸지만 먹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들어 봐."

하고 나는 남비뚜껑으로 살짝 북을 쳤다. 분이도 북을 쳤고 키다리는 웃었고, 다섯 개의 부엌에서 나와 우리는 일곱 마리의 개를 타고 열 개의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너무 뜨거웠으므로 우리는 홀랑홀랑 옷을 벗었고, 뛰고 춤을 추었고, 나는 막 뛰어 달렸고, 개들도 막 달아났고, 키다리는 굉장히 하얘T, 키다리는 껑충 뛰어올라 하늘을 붙잡았다.

"제비다."

하고 그 애는 잡은 새를 내게 보였다.

"제비야?"

하고 내가 말했다.-.

그 애가 내민 제비를 나는 힘껏 들여다보았다. 그 새는 삽처럼 뾰죽한 부리를 내젓고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바다빛과 흰빛의 길고 날카로운 날개를 물결이면서 그 애 손바닥 위에서 쉴새없이 퍼덕거리고 있었다.

"집을 짓는다, 좋은 새다."

하고 키다리가 말했다.

"놓아 줄까?"

"분이가 만져 보게 해."

하고 내가 말했다.

"네가 잡았니?"

"분이야, 이리 와."

하고 작은 바람 같은, 쉰 듯한 소리로 그 애가 말했다.

"만져 봐, 제비야."

"제비야?"

하고 분이가 말했다,-,

새는 짹짹 소리를 지르고 퍼덕거리면서 날개소리를 챘고, 분이는 빵긋 웃고 조금 만져 보고 빨리 뒤로 손을 감췄고,

"놔 주자"

하고 키다리가 말했고,

"그래."

하고 내가 말했다.

"네가 잡았니?"

키다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빛 속으로 조심히 팔을 내밀고 그 애가 손바닥을 펴자 새는 눈 깜짝할 새에 없어져 버렸고, 어디선가 짹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고,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고 그날 밤에 그 제비는 별 속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제비다 제비다."

하고 분이는 손뼉을 치며 쓰러졌고,

"정말 네가 잡았니? 또 잡을 수 있니?"

하고 내가 말했다.

그 애는 묘한 얼굴로 나를 보고 세 개 네 개 고개를 저었다.

"빨리 잡으면 된다."

하고 그 애가 말했다,

"오는 게 보일 때....."

나는 삿갓을 쓴 전등 밑으로 뛰어갔고, 춤을 추었고, 홀딱 벗고 전봇대 위로 막 골라갔고, 뛰어내려 키다리한테 다시 달려갔다. 우리는 뒷짐을 지고 턱을 내밀고 세 줄로 서서 천천히 마당을 여러 바퀴 돌았고, 개들은 냄새를 맡으며 우리 뒤를 따라왔고, 키다리는 다시 껑충 뛰어 새를 붙잡았다. 사실은 온 세상이 푸르게 기쁘게 빨리, 더 빨리, 힘껏, 더 힘껏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그날 밤 비로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왜냐하면 키다리는 춤을 추었고 하늘로 뛰어가서 몇 마리나 제비를 붙잡아 왔고, 우리는 몇 마리나 몇 마리나 새를 별 속으로 날려보냈던 것이니까. 우리는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제가끔 제 그림자를 따라 춤추는 사람의 그림을 그렸다. 세 개, 네 개, 일곱 개, 열 개---, 앉은 그림자, 선 그림자, 누운 그림자, 춤추는 그림자를 그날 밤 우리들은 수 없이 수 없이 마당에다 붙잡아 맸다.

"갈매기두 잡을 수 있어?"

하고 내가 말했다.

"큰 갈매기두 말야."

"지붕에 새가 많다."

키다리는 제 그림자 위에 머리를 그리다가 고개를 들고 유심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애는 지붕을 쳐다보고 오래 오래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새가 나는 것 봤어?"

하고 그 애는 어른처럼 머리를 천천히 저었다.

"거짓말이다, 새는 날지 않아, 걸어다닌다, 새는, 이렇게."

그 애는 손가락 두 개로 땅을 누르고 새가 걸어다니는 시늉을 해 보였다. 키다리 말에 의하면 새는 날개를 펴고 있을 뿐으로, 두 발로 빨리빨리 하늘로 걸어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갈매기두 말야 ? "

"그래"

하고 키다리는 일어나서 빨리 집 모퉁이로 뛰어갔다

"잡아 주께,,,,,,"

그 애가 어떻게 지붕에 그렇게 빨리 올라갔는지를 나는 모른다. 키다리는 껑충껑충 뛰면서 지붕을 건너갔고, 지붕 꼭대기 한복판에 길게 검게 똑바로 서서 오랫동안 하늘을 쳐다보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애가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웬일인지

나는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잡았니?"

하고 전등 뒤로 뛰어가 숨으면서, 나는 또리쳤다.

"갈매기두 있어?"

"많다"

하고 키다리가 말했다.

"걸어다니구 있어,"

어둠 속에 서서 키다리를 올려다보며 나는 정말로 조금도 숨을 쉬지 않았다. 갈매기가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갈매기가 오고 있다, 갈매기가, 걸어오고 있다,,,,,, 갈매기가-갈매기,

그 지붕 위의 키다리가 하늘 속으로 팔을 뻗쳐 날쌔게 집어내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초로 별 속으로 날려보낸 무슨 새였던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것은 짜장 날개가 알록달록한 갖가지 이상한 새들인 듯 싶었고, 굉장히 큰 날개가 점점 더 빨리 점점 더 알록달록 커지는 굉장한 새인 듯싶었다. 그 애는 오랫동안 너무나 어두운 광 속에만 있었으므로 뚝배기를 핥고 들어가면서도 새들이 걸어다니는 것밖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뛰어가 대문간에 뒷다리를 접고 앉아 안경을 쓴 듯한 얼굴로 지붕을 보고 있는 두 마리의 개와 삿갓을 쓴 전등과 지붕 꼭대기의 키다리가 홀딱 벗고 서 있다는 생각이, 돌연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어지럽게 감은 눈 속에서, 색색가지 불을 켜고 옹옹거리며 날아가는 수많은 새들이 곤두박히며 찢어지는 소리를 그때 나는 분명히 들었다.

"!"

하고 나는 대문간을 향하여 힘껏 총을 쏘았다,

", , , ! 죽었다!"

"전쟁이야?"

하고 지붕 위의 키다리가 소리쳤다.

"전쟁이 났니? 비행기야?"

"그래."

하고 숨을 죽이고 내가 말했다.

"잡았니? 갈매기 잡았어?"

"아니"

하고 키다리가 말했다.

"아직 안 왔어."

"빨리 잡아!"

하고 내가 소리쳤다. "전쟁이다."

"! "

하고 분이가 내게 총을 쏘았다, 쓰러졌다가 일어나서 나는 비행기가 되어 윙윙 날아갔다. 나는 달려가서 대문을 활짝 열었고, 컹컹 짖으며 밖으로 뛰어나가는 개들을 향하여

", , , !"

하고 기관총을 쏘았다. 키다리는 지붕 꼭대기에서 껑충껑충 뛰어 돌아다니며 새를 잡았고, 나는 낙하산을 타고 방 속에 들어가 이 방 저 방에 모조리 불을 켰다. 광속에 무엇이 있는지 내가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첩첩이 포개진 방 속 어디에 전등 스위치가 있는지도 나는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닥치는 대로 쾅쾅 총을 쏘았다.

내 그림자를 향해서도, 삿갓을 쓴 전등을 향해서도, 자전거를 타고 오는 부친을 향해서도, 광 밑에서 때를 씻는 엄마를 향해서도, 가마솥과 거울자 계단을 향해서도, 맨드라미꽃을 향해서도,

하늘에 제비꽃이 만발했던 그날 밤의 그 모든 사건들이 사실은 취한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던 그 모든 착잡한 환영(幻影)에 불과했던 지도 모른다. 열 살 때 나는 벌써 술에 잔뜩 취해서 춤을 추며 닥치는 대로 총을 쏘았고, 그리하여 그날 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죽어 버렸다, 키다리가 어떻게 지붕에서 다시 내려왔으며 어떻게 광속에 다시 들어갔는지를 나는 모른다. 내가 자물통에 다시 매달렸을 때,

사슬을 철걱대며 곰보가 왔고, 그 놈에게 힘껏 따귀를 맞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기름으로 닦은 군화를 일제히 번쩍번쩍 하면서 나를 찢으려고 꿈 저편으로부터, 옛날부터, 오늘부터, 내일부터 어른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문제는 짱구네가 땅을 팔아 공장을 산 데에 있고, 부친이 짐을 지고 시골에서 그들을 따라온 데에 있고, 내가 머슴의 아들이라는 데에 있고, 짱구 엄마가 버터플라이처럼 양코배기와 연애를 한 데에 있고, 새로운 짱구 엄마가 분이를 낳아 놓고 뺑소니쳐 버린 데에 있다. 주인집 트기 하나 제대로 기르지 못해 우리 엄마조차 일찍 뺑소니를 쳐 버린 데에 있고, 곰보가 그 애를 광에 가두고 너무나 오랫동안 뚝배기로 길러 버린 데에 있다,

"어리석은 작자들,,,, ,"

때로 나는 생각한다. "여자들의 그 횐 살 속에서 돋아나는 칠흑 같은 모발(毛髮)에서 거미처럼 탱크가 기어 나온다. 여자가 있는 한 너희들의 그 조준도, 가늠자도, 방아쇠도 철저히 제로다. 아무 짝에도 소용없어. 그걸 알면 왜 좀더 힘껏, 왜 좀 더 빨리 잡은 새를 눌러 죽이지 못하는 거냐?"

아버지의 면도를 훔쳐 그 뒤 나는 다리에 돋는 털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밀었다. 내 어릴 때의 유일한 동무였던 짱구는 그날 밤에 사라졌다. 3부두 저쪽 방파제 뒤 바위에서 홀딱 벗은 계집애 엉덩이를 만지고 있다가 뱃사공들에게 들켜, 물 속으로 도망쳐 버렸던 것이다. 계집애는 이리저리 펄펄 뛰고 하늘에 침을 뱉으면서 '온 세상이 거짓말'이라고 떠들어댔다는 것이다. 양키들과 거래를 하던 분이네 공장도 그 뒤 쫄닥 망해 버렸다. 분이도 분이 아버지도 그 집 사람들도 모두 어디로 가 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날아가는 밤 제비를 부르던 그 신비하던 키다리도 그날 밤 죽어 버렸다.

"그놈은 독종(毒種)이다"

하고 부친이 가끔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곰보가 광 문을 열었을 때 키다리는 어디서 잡았는지 박쥐 한 마리를 손에 쥐고 산 채로 갈갈이 뜯으면서 눈에 불을 켜고 온 얼굴에 피갑칠을 한 채 개처럼 짖어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긴 좀 많이 커서 보니 키다리는 아직도 여드름이 더덕더덕한 얼굴로,

옴부라마이프---”

하고 헨델을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어느 고아원의 어린 음악 선생에 불과하긴 했지만.

 

 

 

 

 

 

지은이 / 이창동(李滄東: 1954- )

 

경북 대구 출생. 경북대 사대 국어교육과 졸업. 1983<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전리(戰利)}가 당선되어 등단. <오월 문학> 동인.

주요 작품으로는 {꿈꾸는 짐승}, {빈집}, {수퍼 스타를 위하여}, {친기(親忌)},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