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손님맞이
새해 손님맞이
지난달 초 무렵이었다. 명절이 지난 후의 주말이었다. 날씨는 겨울 날씨답게 무척이나 차가운 날씨가 한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코로나 19의 확산세도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세로 인해 심상치 않은 확산세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침 일찍 새해 손님맞이를 위해 집근처에 있는 노량진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집에서 8키로미터쯤 떨어져 있어 20분쯤 차로 도착할 수 있었다. 예전의 수산시장 자리에는 특이하게도 축구장과 야구장이 들어섰다. 단골 횟집 S횟집에서 회를 주문했다. 예전에는 1층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2층으로 옮겨져 있었다. 1층에서 문의를 해서 2층으로 옮겨갔음을 알게 되었다. 수조에 있는 여러 횟감 중에서 도미를 선택했다. 농어, 광어 등도 있었으나 그래도 좋고 비싼 회였다. 도미회를 떠왔다. 인근 횟집에서 멍게와 전복, 낙지도 샀다. 시장에 다녀온 후 다시 동네 슈퍼에 가서 장을 봐왔다. 매운탕에 필요한 재료는 장바구니에 넣어왔고 나머지는 배달을 시켰다. 오후에는 각종 매운탕 재료를 넣고 매운탕을 끓였다. 무를 냄비 밑에 바닥에 깔고 도미 매운탕 재료를 넣고 위에 콩나물과 쑥갓을 넣은 후 끓였다. 마지막의 간과 마무리는 결국 집사람이 했다. 처남댁 삼 남매 조카들의 도착시간은 오후 6시 30분이었다. 어제 시골에서 올라와 동대문 시장, 대학로 등을 둘러보았고 하루를 근처의 호텔에서 호캉스를 한 후 저녁시간에 맞춰 집으로 오는 상황이었다. 아내가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후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밥도 미리 지었다. 콩나물과 숙주나물도 삶았고 곰피 미역도 데쳤다. 딸기와 단감 등 과일도 디저트로 준비했다. 회에는 대방어와 연어도 약간 서비스로 추가해 주었다. 술을 빠뜨렸는데 집사람이 퇴근길에 사 왔다.. 새해 손님맞이로 만반의 준비가 된 셈이었다. 오후 6시 40분에 조카들이 도착했다. 먼저 세배를 했다. 덕담을 했고 대학 입학 축하금과 세뱃돈도 주었다. 본격적인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출출했던지 조카들의 폭풍흡입이 시작되었다. 소맥으로 시작이 된 셈이었다. 중간에 술이 부족해 아내가 술을 사러 나갔다 왔다. 아내가 사온 술에는 과일맥주도 있었다. 11시 30분까지 계속된 술자리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인증셧을 남겼고 처남과는 영상통화까지 이어졌다.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고 대학 생활의 고충과 애로 등도 얘기했다. 안성캠퍼스에 대한 조언도 들려주었고 향후 1년쯤의 대학생활 후에 가게 될 군에 관한 충고도 있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카톡으로 며느리가 초음파 사진을 보냈다. 손주의 정체가 확인되었다. 이게 뭘까요? 라는 질의가 코믹을 가미한 유머였다. 손자가 태어날 것으로 여겨졌다. 모친께 전화를 했더니 모친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여 머쓱해졌다. 큰 조카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둘째 조카는 순천에서 군산으로 편입을 해서 학교를 다니게 된다. 하필 대학에 입학하던 때가 코로나 팬데믹의 시기여서 아직 제대로 대학에서의 캠퍼스 생활 등 여러 가지를 경험하지 못하고 2년을 보낸 안타까움이 있었다. 미팅도 MT도 없었고 OT 등도 맛보지 못했다. 실습이나 대면 수업이 중요하고 실질적인 경험과 임상을 체험해야 하는 부분도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수업이 되는 형국이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대학도 코로나 팬데믹에서 예외일 수 없어 대면 수업조차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막내조카는 신입생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집사람이 준비했던 LA갈비를 구워서 맛보기도 했다. 한창 20대 초반의 식욕은 왕성했고 활기찼다. 젊은 청춘들의 삶에 대한 의욕은 거칠 것이 없었다. 질곡의 고 3 생활을 끝내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성인에 접어드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기도 했고 큰 조카는 이제부터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할 상황에 있었다. 마무리는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자매 둘은 작은 방을 차지하게 되었고 막내조카는 거실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이제 처남네도 아이들이 다 장성했으니 한결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어제 올라온 삼 남매는 서울에서 하루를 보냈고 호캉스를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도 서울에서의 일정을 보내고 광주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오전 11시쯤에 일어나서 식사를 했고 나갈 채비를 했다. 그리고 12시 경에 집에서 나섰다. 새해 손님맞이로 오랜만에 북적이는 집안이 되었다. 주말이었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폐막일이었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끝나고 4년 후의 이탈리아 밀라노 동계올림픽을 기약하게 되었다. 미국 등 서방국에서의 외교적 보이콧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행사를 치르는 것조차 간단치 않았던 올림픽이었다. 판정 시비도 있었고 도핑 검사 파문도 있었다. 다행히 우크라이나 ––러시아 간 전쟁은 발발되지 않은 채 올림픽이 마무리되었다. 새해 손님맞이가 별 탈없이 마무리되었다.. 향후 두 번 더 손님맞이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이 된다. 의미 있는 새해 손님맞이가 될 것으로 보였다. 청춘이 구만리 같은 창창한 세상을 살아갈 젊은 청춘들을 만나게 되는 부분이었다. 과연 이들에게는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언제나 밝고 맑은 날만이 있지는 않으리라. 풍파를 만나기도 할 것이고 폭우를 만날 수도 있고 흐린 날도 있으리라. 그러나 각자각자가 가진 역량과 노력을 통해 거친 파도를 헤치고 목표점을 향한 긴 항해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조카들의 앞날에 큰 영광과 기쁨이 함께하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