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단편소설2

55. 구멍

자한형 2022. 3. 1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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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멍  -한승원

 

이해 서른두 살 난 동생 주만이는 어쩌면 절벽처럼 꽉 막힌 듯하면서도 엉뚱한 데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모든 나사가 풀리거나 빠져서 헐렁헐렁하게 되어버린 기계 같기도 하고, 가슴팍과 등줄기 부근에 코가 빠져 올이 숨벅숨벅 풀리는 스웨터 같기도 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헌 기계나 올이 풀리는 스웨터처럼 부족한 듯하고, 서로 얽히어 맞물고 있어야 하는 얼거리() 같은 게 없어 헐렁헐렁하고, 잡힌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쩌다가 광주에 오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는 몹시 허둥대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가련 모내기할 날을 받아 놓고는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이고 .있지를 못한다고 했다. 마을을 돌면서 아낙네들을 붙들고는

"모레 우리 모 조간 해주씨요 잉, 품앗이하게."

하고 또래의 남정들을 잡고는

"우리 모 조깐 져 날러 주소 잉, 모레."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얼마나 나대고 다니는지 몰라도, 모내기 하는 날 보면, 모내기군들이 삼십 명 가까이 밀려들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논이라야 겨우 샛개 간척지에 있는 여섯 마지기뿐인데, 모내기군 삼십 명이라니, 이것은 모내기군들의 엉덩짝만으로도 논바닥이 꽉 차버리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고 했다. 나락 져들이는 일이라든지, 뒷간 푸는 일이라든지, 두엄 져내는 일이라든지도 모두가 그렇다고 했다. 바닥에 김발 막는 것도 마찬가치라는 것이었다. 막을 때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가 비싼 물자 들여 막지만, 그 발을 옮긴다든지, 내린다든지, 올린다든지, 매시미 새끼줄을 갈아준다든지, 띳대를 맨다든지 하는 일을 등한시하여 수확 한번 반반하게 내어 먹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도 술만 마시면

"빌어묵을 세상, 살먼 얼마나 산다고, 앨탕잴탕찰 것 뭣 있소?"

하고 드러누워 버리기 일쑤이고, 드러누웠다 하면, 이튿날 아침 해가 번해서야 일어나곤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에게 나는 어머니를 맡겨 두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나를 마음에 썩 들어 하는 여자가 아직 없어 총각으로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다 몇 년 전에 장가를 든 주만이. 앞으로 내 쪽에서 설사 장가를 든다 하여도 자기가 어머니를 계속해서 모시겠다고 자청한 이면에는 어머니의 (쏘색임)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애기도 봐 주고 해우할 때먼 해우도 벗겨 주고 할 것인께 나하고 살자, 나하고 살먼 너 손해 없을 것이다. 그러고 니가 나를 모신다고 해사 느그 성이 논 한 마지기라도 더 사줄 것 아니냐?"

그러니까 실은 그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그를 모시고 사는 셈인 것이었다. 어머니는 절벽 같고 엉뚱하고 헐렁헐렁하게 헝클어진 그를 떠나서는 한시도 맘놓고 있지를 못해 하였다. 광주엘 오셨다가도 하룻밤 주무시고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서둘러 내려가시곤 하였다.

때문에, 서른 다섯 살의 늙은 총각인 나는 언제 장가를 가게 될 지 어쩔지 알 수 없는 터이므로, 그저 그 두 사람의 원대로 하여 주는 척하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 사망 치상 준비 속래

 

이러한 전보를 받고 내가 고향집엘 간 것은, 천관산 꼭대기에 내린 이 해의 첫눈이 하얗게 쌓여 있는 쌀쌀한 초겨울의 한낮 때였다. 하늘엔 흑회색 구름장이 덮여 있었고 바람은 찼다. 며느리 미워서 아침밥 굶든 시어미 얼굴처럼 찌푸려진 이러한 날씨는 눈을 굽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구워져서 내리는 눈은 함박꽃송이처럼 굵기 마련인 것이었다.

전보 내용에 (치상 준비)라는 게 있었으므로, 나는 직장의 동료들이 거두어 준 조의금 오만 원에 급전 오만 원을 돌려 가지고, 광목 한 통과 마포 두 필을 사들고 회진 행 버스를 탔었다. 한데, 나는 회진에서 버스를 내려 가지고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중을 나온 사촌동생 영만이

"많이 놀래셨지라우."

하면서 배시시 웃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엉뚱한 데가 있는 동생 주만의 흰자위 많은 눈을 생각하며,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설마 돌아가시지 않은 어머니를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이야 하였을라고 하며

"어쩌다가 이렇게 급하게 돌아가셨다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영만은 주먹처럼 뭉툭한 콧등에 주름을 잡고 뒤통수를 쓸면서

"사실은 큰 어무니가 돌아가신 것이 아녀라우."

하는 것이었다.

"뭐어야?"

나는 기가 막혔다. 동료들이 함께 오겠다는 것을 떨쳐버리고 흔자 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내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던지, 영만은 땅으로 눈길을 떨어뜨리면서 주눅이라도 들린 아이처럼

"누님이 돌아가셨는디, 작은 성님이 그르케 전보를 첬어라우. 안 그라먼 성님이 안 오실지도 모른다고 함스로."

하고 말했다. 주만이 거짓 전보를 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해마다 이른 봄철에 있는 아버지의 제사에 번번이 내려오지를 않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만의 거짓 전보에 짜증을 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영만이 (누님)이라고 한 것은 내 유일한 여동생으로, 이해 겨우 스물 아흡 살밖에 되지 않은 주심인데, 그 아이가 죽었다는 것이었으니 말이었다.

다섯 해 전부터 친정에 와서 살고 있는 주심은 바로 한 달 전에 어머니와 함께 광주를 다녀갔었다. 물론 광주엘 온 것은 치료를 받고자 해서이긴 했었다. 그러나 그 아이가 가진 병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내 눈에는 적어도 그렇게 보였었다.

평소 어머니를 통해서 병력(病歷)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에도 XX대학 부속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종합진찰을 받게 해 본 적이 있는 나는 그 아이를 광주에서 그 계통으로 가장 권위가 있는 오중한 정신신경 외과로 데리고 갔었다. 진찰을 마친 오 박사는

"심인성 협심증에 피해망상증이 겹쳐 있군요."

하고 말을 했었다. 그리고

"너무 염려 마십시오. 장기간 요양을 해야 하긴 합니다만, 어쨌든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하더니, 오 박사는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차트 위에 놓인 보올펜을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혹시, 환자 주변에 비슷한 중상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까 ? 이모라든지, 고모라든지, 할머니라든지, 어머니라든지."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없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집안에 미친 사람이 없었다. 주만이 혹시 주심과 비슷한 증세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의심이 되긴 했지만, 주만은 아직 자기한테 그러한 증세가 있음을 옆 사람에게 호소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를 그렇다고 말해버릴 수는 없었다.

오 박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안정제와 비타민 계통의 처방을 하여 주었다. 그리고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것은 아니니까 조용한 데로 보내서 요양을 하게 하라고 말을 했었다. 그때 풀색 바지에 옥색 스웨터를 입고 있던 주심의 얼굴이 눈에 보이는 듯한데 그 아이가 죽었다니, 나는 그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랬다냐?"

나의 물음에 영만은 자기 지게에다가 광목통과 마포를 올려놓으면서

"글쎄 나도 잘 모르겄어라우."

하였다. 몇 마디의 말로 대답하기가 곤란하니 그냥 그렇게 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더 캐물으려고 하지 않았다.

 

동생이 살고 있는 고향집 안채는 육이오 때 잿몰과 새텃몰의 세포위원이라는 자들이 반동자 숙청을 하러왔다가 불을 질러버리고, 수복되면서 부랴부랴 목수들을 불러다가 새로 지어 준 것이었다.

한데, 그 집에는 큰 구멍이 하나 벙 뚫어져 있는 것 같았다. 사간 접집인 안채와 여섯 평 넓이의 마당을 허름한 사랑채가 정면으로 가리고 서 있었다. 사랑채의 한가운데에는 대문이 있었고, 대문 한쪽에는 헛간과 변소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사랑방과 외양간이 있었다, 그런데 대문은 두 짝이 모두 떨어져 버렸고, 한 자 높이인 문턱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대문 앞에서 보면 역시 문짝 두 개가 모두 떨어져버린 부엌이 빤히 보였다.

부엌은 안벽들이 시꺼멓게 그을려 있었다, 사실은 뒷문짝마저 떨어져버리고 없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얼른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뒤란 언덕의 흙이 거무칙칙한 된장 빛깔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대문을 막 들어설 때 바라보이는 그 부엌은 컴컴한 동굴만 같았다. 동굴이라도, 천 년 묵은 이무기가 용이 되어 날아가 버린 뒤 시궁창 같은 물만 밑에 깔려 있어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거나, 푸른 이끼 같은 게 끼어 있어 신비스런 혼이 담기어 있는 듯하다거나 하는 그런 동굴이 아니었다. 육이오 사변 때 사람들을 굴비 엮듯이 하여 밀어 넣고 불을 처질러 죽이기라도 했기 때문에 으스스한 귓기가 서려있는 바윗굴 같았다. 풀 한 포기 돋아 있지 않고, 퐁퐁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하나 없는 죽어버린 동굴 말이었다.

몇 해 전의 겨울, 가뜩이나 양철 슬제이트 지붕 위로 검은 구름장이 무겁게 내리 덮인 날, 대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내 가슴속에 꼭 그 부엌같이 크고 검은 구멍이 휑 뚫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거기다가, 마당 안이라든지 뒤란의 살림살이는 어수선하고 지저분했다. 돼지우리의 오줌은 마당 한가운데에 흘러 질척거렸고, 대문간 옆 마당에 쌓아 둔 두엄은 닭이 마구 헤쳐 놓았었다. 뒤란에는 지푸라기며 땔나무 잎사귀들이며가 흩어져 있었다. 마당이나 뒤란 바닥은 패이고 깎이어 쭈삣쭈삣한 돌들이 깔리어 있었다, 마루에는 젓국이 흘렀고, 창구멍들은 숭숭 뚫어져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동생 주만에게

"이 사람아, 대운이나 조깐 고쳐 달아라. 좋은 대문짝을 그냥 세워만 놓고 안 달고 있냐? 부엌 문짝도 돌쩌귀 한 개만 고치면 달 수 있겄든디, 그래 놔두고 있고, 어디 밖에서 보면 뻔해 가지고 쓰겄디야. 나간 집구석 같이?"

하고 말을 했었다. 그러자 동생 주만이는

"시원하고 안 좁디여?"

하고 병신스럽게 웃더니, 내 얼굴을 흘끗 살피고

"하두 바쁜게 달 애적 ()이 없어라우."

하며, 코를 찡긋했다. 나는 낡은 시계의 늘어져버린 태엽을 감듯이

"그라고. 마당에도 돼지 오줌이 흘러내려서 쓰겄디야? 오줌통이 넘지 않게 늘 퍼내뿔고, 뒤란도 늘 쓸어서 청결하게 조깐 해라. 지저분하면 불도 무섭고, 보기에도 어수선하고 안 그러냐? 사람 사는 집같이 조깐 해 놓고 살어 봐라. 두엄도 닭이 막 헤집어 놔서 어디 쓰겄디야."

하고 말을 해 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술 퍼죽고 건충거리고 다닐 틈은 있어도 거름 한 주먹 추그서 올릴 틈은 없는 사람이다. 그런께, 내가 한시도 집을 못 빈다."

하고 참견을 하였다. 주만의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듯하더니 볼이 부풀었다. 태엽을 감을 때는 들썩도 않다가, 바늘을 옮겨 놓자 지그르륵하고 종 칠 기색을 보이는 고물 시계처럼 주만은 주먹 같은 코를 실룩거리며, 여느 때 바싹 밭아 있곤 하는 입술을 움씰거렸다.

"아따 어무니는 먼 말을 그르쿨로 하요, 세상을 살먼 얼마나 산다고."

그의 말은 퉁명스러웠다. 어머니가 나를 향해

"저 사람 말한 것 조깐 봐라이."

하고 푸념하듯 말했다.

"살림하고 사는 사람이 말한 것 조깐 봐라이. 요런단 말이다. 요래, 나 없으면 살림 못할 것이다. 죽도 밥도 아녀야. 소도 내가 쇠죽 써 멕이고 어짜고 한께 그라제, 지 손판에 놔뒀으면 벌써 몰라져 죽었을 것이다. 소만 그런다냐?"

주만이 지지 않고 나를 향해

"성님, 저 말하시는 것 조깐 보씨요. 당신 혼자 멋이든지 다 하는 것 같지라우. 저런단 말이요, 저래. 그런께 순전히 동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겄소. 순전히 반편으로 알어라우."

하더니 어머니를 향해

"나 나가뿔랑께 어무니 혼자 멋이든지 잘 해묵고 한번 살어 보씨요."

하였다. 어머니는 주름살 깊은 얼굴을 쳐들었다, 입이 열려져 있었다. 자기가 일손 놓지 않고 (고드록 포드록)나대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겠느냐고, 생각이 저따위로 돌아가기만 하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느냐고 하는 뜻이 그 얼굴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입을 열지 않았다.

"성님, 이참에 올라가심스롬은 어무니 모시고 가시씨요. 제발 덕분에 모셔가시씨요. 나 걱정해 주란 말 안하요. 나사 얻어를 묵든지 빌어를 묵든지, 내 기집하고 내 새끼 델꼬 사는 데까장 살 것인께, 제발 덕분에 모셔가시씨요. 아따, 나 참말로 어무니하고 뜻 안 맞아서 못 살겄소. 와하이, 빌어묵을 놈으 세상, 살먼 얼마나 산다고, 그냥 밤이고 낮이고 으등으등 짜고 볶으고 해싸는 것 참말로 못 견디겄소. 어무니만 모셔가뿔먼 나도 어디로 후딱 나가뿔라요. 이놈의 집구석 그냥 답답하고 울화중만 나싸서 못살겄어라우. 성님이 대문 안 달고 산다고 그래싸요 마는, 대문 달어놓먼 나는 그냥 숨이 칵 막혀 죽을랑가도 몰라라우. 일부러 안 달고 사요. 성님은 내 속 모를 것이시요. 누가 내 속 안다우?"

주만의 눈에 물이 가득 담기고 목이 메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재를 오르는데, 앞장선 사촌동생 영만이 주심의 죽은 내력을 이야기했다.

"그런께, 차암말로 작은 성님 속은 알다가도 모르겄어라우."

영만의 이야기는 주만의 꽉 막힌 듯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고 헐렁헐렁하기도 한 성미에 대한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소나무 숲길은 좁은 데다가 가팔랐고 돌 자갈이 많이 깔려 있어 미끄러웠으므로, 이 해변 지방 사람들의 말대로 (싸묵 싸묵) 오르거나 -깐닥깐닥- 올라야 했다, 나는 고향에 살면서 뼈의 마디가 굵어졌고, 그러는 동안 이 고개를 넘을 만큼 넘어본 터였으므로, 이 고개야말로 (깐다악 깐다악) 오르거나 (싸무욱 싸무욱) 오르거나 해야 한다는 것과, 그러면서 알맞게 호

흘을 조종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내 호흡은, 영만에게 알다가도 모르겠다니 무슨 뜻의 말이냐고 말을 재촉할 수 없는 정도로 가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되묻지 않고, 그저 그의 뒤를 따라 오르기만 했다.

"어째 그런가 모르겄어라우. 큰어무디가 없으면 작은 성님은 살림 못할 것이요. 그란디, 자꾸 광주 성님한테 안 가고 자기한테서 붙어살면서 자기 못 살게 한다고, 술만 묵으면 그냥 짜고 볶으고 해싼단 말이요. 그렁께, 그날 밤에도 그런 쌈만 안 일어났어도 이런 일이 안 벌어졌을란가도 모르지라우."

사흘 전 잿몰에 경사가 있었다고 했다. 거기서 종일토록 술을 마시고 해가 질 무렵에서야 들어오는 주만에게 어머니가

"남들은 발을 다 옳기고, 건장까지도 막어 놓고 해의 준비들을 하고 등산인디, 너는 멋하고 있냐? 제발 덕분에 속 조깐 채려라. 술 한 잔 얻어 마셨으면 얼릉 와서 내일 볼 일이제, 어째 속 창아지가 그 모냥이냐아."

하고 애닳은 소리로 꾸짖은 게 탈이었다고 했다.

경사집에서 무슨 일을 당하고, 어떻게 비위가 틀려 가지고 들어오던 판인지는 모르지만, 주만은 대번에

"속 창아지 좋은 사람 따러가서 살제 어짠다고 나 따러 살면서 그래싸요?"

하고 대든 것이었다. 어머니는 안방에 드러누워 있는 딸을 위해서 한사코 시끄럼 나지 않게 하느라고

"시끄럽다. 얼릉 느그 방에 들어가서 잠이나 한숨 자그라, 뵈기도 싫다."

했다. 그런데 주만이 안방 마루 앞으로 들어오면서

"짜잔한 놈은 술 한 잔도 못 묵고 살겄구만잉. 참말로 해도 너머나 하구마."

하더니 차분히 따지고 들었다.

"아니, 그렇게도 뵈기 싫소, 그렇게도 뵈기 싫어? 뵈기 싫으먼 뵈기 좋은 사람 따러가서 사씨요. 살어요. 나도 내 맘대로 할랑께 빌어묵을 놈으 세상, 앨탕잴탕 벌어 봤자, 애매한 놈들이 다 가져가고, 다 까묵어 뿔고--- 나도 인자 물컷 고만 뜯기고 살란께 모다 긁어 갖고 나가씨요."

그는 아주 마루에 걸터앉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놈이 필시 주심이한테 한약 한 재를 지어다 먹이고 있는 것을 두고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이놈아, 복자가리 떨지 마라. 시방 벌고 있는 논 여섯 마지기는 하눌에서 떨어진 것인 줄 아냐? 그것은 누가 사줘서 벌어 묵고 있냐 너 ?"

하고 주철이 쪽으로 이야기를 돌려 말을 하였다, 방안에 있는 주심이 혹시 마음을 곡히 먹을까 하여서였다. 주만이 지지 않고 대들었다.

"성님은 그 논을 공짜로 사준 것이요? 모두 내 등골 빼묵고, 어메 아베가 벌어 놓은 논 다 풀아 묵어 감스로 대학 다녔은께 당연히 사줘사 쓸 논을 사준 것이지라푸."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주만을 두둔하여 줄 수만은 없었다.

"느그 성이 논 다 폴아 묵었다냐? 느그 아부지가 병 들어서 너 마지기 폴아묵고, 느그 성은 남은 것 서 마지기 폴아 묵은 것밖에 더 있냐? 그래도 느그 성이나 된께 니모 반듯한 논을 사준 줄이나 알고 잠자코 있어라, 이 자석아."

하며 어머니는 주만의 가슴을 건너방 쪽으로 밀었다. 한데, 이놈이 어머니에게 밀려나가면서 마치 안방에 누워 있는 주심에게 들으라고 하기라도 하는 듯이

"논이고 밭이고 다 싫은께, 야문 사람 따라가씨요. 난 안 굶어죽고 살 것인께, 주심이랑 델꼬 나가씨요."

하고 소리를 질러댄 것이었다.

어머니는 주만의 등을 손바닥으로 쿵쿵 때리면서 건넌방으로 몰아 넣었다.

"입만 덮으고 살먼 졸 것인디, 어째서 입으로 복을 다 떠냐? 니가 누구 덕에 사는디 그래싸냐?"

애닳아빠지는 소리로 달래는 듯 꾸짖고, 꾸짖는 듯 달래 눕히고 안방으로 건너왔다. 그때 주심은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펄렁거리면서 답답한 가슴을 누르느라고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이 아이가 혹시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몰라 어머니는

"술 묵으먼 개보다 못한 사람인께 오빠 말 곡허 듣지 마라이."

하고 주심은 달랬다.

그러자 주심은 길게 한숨을 쉬면서

"내가 어째서 곡히 듣는단가?"

하였다. 그 말에 어쩌면 목울음이 섞여 있었다. 딸의 속을 하루에도 열 두 번은 더 들락날락하는 어머니가, 오빠의 말에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져 있는 딸의 속을 왜 모를 것인가. 어머니는 그 폭을 푸느라고

"아직은 살림을 내가 한께 꺽정 마래이. 누가 벨스런 소리를 해도 개 짖는 소리로 들어뿔고, 내 말만 들어라. 내가 기어코 병 낫게 해 줄 것인께."

하여 주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느그 오빠는 멋이든지 다 좋은디, 술 묵으면 저래싼 것이 깝깝하다. 어저께도 바닥에서 전어 새끼 다섯 마리를 갖고 옴스로, 너같이 아픈 사람한테는 성한 회가 좋닥 하드라고 기어이 너를 먹이라고 하드라, 보먼, 너를 얼마나 생각해 싼 줄이냐. 어쩌다가 술을 묵은께 저러제, 본심은 참말로 다시없는 사람이다."

하였는데, 이날 한밤중에, 주심이 집을 나가버린 것이었다.

어머니는 변소부터 가보고, 가슴을 덜컹하게 하는 집힘이 있어 헛간으로 가 선반을 더듬어 보았다. 거기에 이해에 쓰고 남은 농약을 얹어 둔 것이었다. 어머니는 주만을 뚜드려 깨우고, 미친 소처럼 작은 집으로 뛰어내려 갔다. 두 집 식구들이 한밤중부터 산과 들과 바닷가를 쓸고 다녔다.

주심을 찾은 것은, 그 아이가 마른 풀 위에 토해 놓은 핏덩이 같은 해가 소록도와 녹동 반도의 산 위로 떠오를 무렵이었다. 주심은 감맷골 아버지의 무덤 앞에 엎드려 있었다.

"아따, 못 보겄습디다. 큰 어무니가 어떻게나 울어싸시든지. 가슴을 두 주먹으로 쾅쾅 찍어댐스롬, 누구보고 하는 소린지는 몰라도, (워메, 워메, 이 잡년, 저만 살라고오.)하고 우는디, 눈 뜨고는 못보겄어라우. 시방까지도 큰 어무니는 입에 밥 한 숟가락 안 떠넣고 있어라우. 그 당신도 어짜먼 오래 못 사실 것 같어라우."

영만이 말을 마쳤다.내 가슴에, 어머니가 자기 가슴을 찍으면서 했다는 말이 뻐근하게 부풀어나고 있었다.

"저만 살라고, 저만 살라고오."

나는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흑회색 구름 덮인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겨울의 추위는 여느 해 보다 빨리 온 셈이었다, 늦은 봄의 장마비처럼 시작된 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이 며칠 사이 그 눈은 내려쌓인 것이 녹을 만하면 다시 내리고, 또 그것이 녹을 만하면 다시 내리곤 하고 있었다. 숲 사이로 보이는 그 흑회색의 구름장들도 분명 솜덩이 같은 눈을 가득 실었을 것이었다.

길 옆 골짜기의 솔두벙 사이를 두어 번 기어가던 장끼 한 마리가 나를 흘끗 보더니 푸르릉 날았다. 어느 풀섶에선가 자주빛 까투리 한 마리가 어린 양이라도 하는 듯한 날개짓으로 후루루루 뒤따랐다. 앙가슴을 찍으며 울부짖었다는 어머니의 얼굴이, 까투리 날아간 건넌산 언덕의 숲 위에서 떠올랐다.

"저만 살라고오, 저만 살라고오."

이 말의 뜻을 나는 알 수 있을 듯했다.

 

고향집 뒷산 언덕에는 계단식 밭이 있었다.

그것은 밭이라기보다는 김 건장을 세우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김 수확 시기가 아닌 때에는 거기에다 고추나 호박이나 고구마 등을 심었다. 그 계단식 밭귀나 언덕 밑 여기저기에는 건장에 쓰는 말목이나 이엉더미들을 비가 들지 않게 쌓아놓았는데, 그것은 얼핏 초분(草墳) 같았다.

산기슭의 고추밭 언덕 밑에 있는 건장 말목 더미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비스듬히 누운 채 밤을 새우곤 한 일이 있었다. 아홉 살 나던 해의 늦은 여름이었다. 낮에는 아직 따가운 볕이 남아 있는 듯하였지만 밤에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이 무렵, 아버지는 부엌 옆에 붙어 있는 골방 속에 들어 있곤 했다. 고구마나, 쌀가마니 따위를 넣어 두곤 하는 그 방은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곡간처럼 쓰고 있었다. 쥐들의 침입를 막기 위해 죽창살 뒤에 양철을 붙였으므로, 방안은 흡사 동굴처럼 껌껌하고 비좁고 습기가 많았다. 그 방에서 낮 동안을 내내 문둥이처럼 갇혀 지낸 아버지는, 날이 어두워지기가 무섭게 나를 데리고 뒤란 언덕을 올라서 산기슭 밑에 있는 말목더미 속으로 가곤 하였다. 나는 부엌 속의 동굴 같은 방안에 잠긴 어둠도 싫었지만 아버지와 나를 말목더미 속으로 몰아넣는 으스스한 어둠도 싫었다. 아기 돌무덤 투성인 서낭골 돌 자갈밭 주변의 소나무숲에서부터 흘러내린 그 어둠은 냇물 줄기를 타고 웃동네의 골목을 쓸고 도깨비의 다리처럼 기어들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내 말목더미 속의 이엉 자락에 묻힌 내 시야를 가리던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귀만 트였을 뿐이었다. 그 귀에는 피요옹 하는 소리, 끼룩끼룩 하는 귀뚜라미 소리, 아버

지가 이엉자락을 들썩거리는 소리만 들렸었다.

이 무렵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도무지 말이 없었다. 도대체 아버지는 왜 밤만 되면 나를 끌고 계단식으로 된 고추밭 언덕으로 가곤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히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앞장서서 계단식으로 된 밭둑을 기어올라간 뒤에 윗몸을 굽히고 내 손목을 잡아 끌어당겨 올리고, 다음 언덕을 또 먼저 기어오른 뒤에 나를 끌어올리고, 다음 언덕을 또 먼저 기어오른 뒤에 나를 끌어올리곤 하던 아버지의 숨결은 가라 있었고, 그 손은 뜨겁게 달아 있었고, 그리고 바르르 떨리곤 하던 것이었다.

쑥빛 제복에 장총을 멘 인민군들이 들어와서 사장에다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한 적이 있었다. 사장 나무꼭대기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온 마을을 울려댈 때였다. 그런 뒤로 삼철이네 아버지나 순회네 큰 오라가 붉은 완장을 차고 어디서 만들어 온 것인지는 몰라도 한 발만큼씩한 칼을 들고 다녔다. 아버지가 문밖 출입을 않기 시작한 것은 이때 부터였다. 그리

고 부엌 속의 골방에 틀어박힌 것은, 삼철이네 아버지와 순회네 큰오빠와 함께 회진을 갔다 온 뒤부터였다.

인민군들이 다녀간 열흘째 되던 날인가, 나는 사장에서 (아침은 빛나라) 어쪄고 저쩌고 한 노래를 배우고 들어왔다. 한데, 댓돌에 못 보던 검정 고무신 두 켤레가 놓여 있고, 안에서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주심을 업고 부엌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어머니는 내 손을 얼른 끌어다가 앞에 앉히고 금방 씻어놓은 생고구마 한 개를 잡혀 주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안쪽에 주만이가 눌눌한 코를 훌쩍거리면서 생고구마를 깨물어 먹고 있었다. 내가 고구마를 한 입 베었을 때

"어쩌든지 우리가 하자는대로만 하잔 말이시."

하고 여느 때 땍땍거리는 말소리인 삼철이네 아버지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 아버지의 걸걸한 말소리가 흘렀다.

"그런께, 내가 뭔 죄가 있는디 자수를 해사 쓴다는 것이여?"

대한민국 세상에 이장이나 어협 총대를 몇 년 한 것이 반동이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것이제마는, 성님은 브르조지라 자수를 해사 써라우."

순이네 큰오빠가 받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어이없다는 듯

"브르조지가 뭣이랑가."

하고 물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이어졌다.

"나보고 브르조아지라는 것인 모양인디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시. 농사 겨우 열 마지기 짓고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자본부고 지주란가? 내가 언제 영세 노동자 농민들을 상대로 돈놀이하고 소작 주고 살든가 ?,,,,,, 브르조아지라고 할라먼, 그래도 논이 한 오십여 마지기 이상은 되고, 그것을 소작으로 내주고 어쩌고 하는 시람이어사제, 안 그런가? 그런디 생각해 보소. 내 논은 겨우 열 마지기밖에 없네. 그러고 내가 뭔 일로 해서 언제 어떻게 노동자 농민들을 수탈했는디 반동이란가? 내가 이장하고 총대하느라고 안 데리고 살어도 될 머슴을 데리고 살기는 했네마는, 쇠경도 남보다 많이 줬으먼 줬제 작게 주지는 안 했네, 생각해 보소. 우리 동네가 워낙 가난한 동네라 그러제, 큰 동네 같은 데 내 놓으먼 중농(中農)도 못되네. 팔모로 생각을 해도 나는 자수해사 쓸 일이 없네. 이장 총대 함스롬도 공금에 혓바닥 한번 댄 일 없네."

"아따, 이 세상 되어 갖고 어떤 사람은 죄 있어서 자수한다우?"

순희네 큰오빠가 말했다. 큰 동네에서 내내 머슴살이를 하다가, 인민군들이 들어온 날부터 새텃몰로 와서 붉은 완장을 두르고 다니는 순회네 큰오빠였다.

"어쩌든지, 낼 아침에 우리랑 같이 가세."

삼철이네 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땍땍거렸다.

이튿날 아버지는 여느 때 잘 입지 않던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삼철이네 아버지하고 함께 하눌재를 넘어갔다. 삼철이네 아버지는 인민위원장이었다. 경비대에 간 큰아들 이철이가 여수반란 사건에 가담했다가 죽었기 때문에, 보안서에서는 그에게 그 자리를 준 것이라고 했다.

"나하고 같이 간께 걱정 마시요."

삼철이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귀엣말을 하여 주고 갔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날 밤에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 새때쯤해서 온 순회네 큰오빠가 어머니에게

"오늘밤에 거기서 주무실 것인께 밥이나 조깐 갖다가 드리시요."

하고 갔다, 어머니는 한재산 머리에 해가 걸렸을 때, 저녁밥을 차려 우리에게 주면서 어서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내 귀에다가

"아버지한테 밥 얼른 갖다가 주고 올 것인께 주만이 하고 큰방에서 문 꽉 잠그고 자고 있거라잉."

하였다. 나는 가슴이 덜커덩했다. 상여귀신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변소에는 상여가 있었다. 아버지는 몇 해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관을 내갈 때 상여를 만들어 쓰고 그걸 태우지 않은 채 변소에 두고 있었다.

호철이네 할머니나 죽었을 때도, 길호네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먼지 허옇게 앉은 상여 궤짝을 내 주었었다. 어머니는 더러운 상여를 태워버리지 않는다고 야단이었지만

"불쌍한 송장들 내가는디 조간씩 갖다가 쓰라고 하면 좋제 어째?"

하고 빈 코를 훌쭉 마셨었다.

동네 아이들은 밤에 우리 집 변소에서 상여귀신이 난다는 말들을 했다. 장 마중을 가느라고 우리 집 모퉁이를 돌아가다가 상여 내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길호는 말했었다.

주심이를 등에 업은 어머니가 밥 바구니를 가지고 한재 고개를 넘어갈 때, 그 한재 고개 위의 비늘구름에서부터 물들기 시작한 핏빛 노을은 순식간에 우리 집 마당과 지붕을 벌겋게 색칠해 버렸다. 어쪄면, 어머니는 벌겋게 타는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노을이 걷히면서 땅거미가 기어들었다. 나는 대문을 잠그고 주만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비야, 주만아, 얼릉 잠자뿔자, 귀신 나온다. 어비야아."

홑이볼을 뒤집어쓰고 아랫목에 누워버렸다. 눈이 큰 주만은 겁이 많은 아이였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숨을 죽였다.

새벽녘에 깨어 보니, 어머니가 주심을 껴안고 자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어슬어슬한 때에 일어난 어머니는 부산나게 밥을 지었다. 주만과 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밥 바구니를 들고 나섰다. 한낮때쯤 해서 종잇장같이 핏기 없는 얼굴로 돌아온 어머니는 또 밥을 싸가지고 한재고개를 넘어갔다.

이날 밤, 내가 잠을 깬 것은 아버지의 앓는 소리를 듣고 였다. 아버지는 아랫목에 번듯이 누운 채 앓고 있었다. 그 앓는 소리는 묘하게도 중천장과 바람벽과 방바닥을 룽쿵 울리고 있었고, 동시에 내 가슴을 쪄릉쩌룽 울려놓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머리맡에서 약을 짜고 있었다. 생지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석에서는 석유 등잔불이 야울거리고 있었고, 그 밑에 그려진 검은 그림자는 방바닥에 뻥 뚫어진 구멍처럼 검고 깊어 보였다. 나는 일어나 앉으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찌푸려져 있었다, 숨이 막히는지 몰랐다. 내 가슴에 멍멍한 답답함이 등잔불 밑의 검은 그림자처럼 잡히는 것 같았다. 어깨를 젖히면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버지 옆으로 기어가서 앉았다. 아버지는 내 손목을 꼭 쥐었다. 그 눈시울이 등잔불 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숨결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흐흐흠-하고 거칠게 빨아들이는 숨결을 따라 아버지의 콧구멍은 꺼멓게 커지고 있었는데, 그 속으로 등잔불 밑의 검은 그림자가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튿날, 어머니는 빈 병에다가 솔잎을 쑤셔 막고, 필게 노끈을 매달았다. 병에 돌을 달아 가지고 변소 통 깊숙이 넣었다, 끈 끝을 발디딤 널빤지 모서리에다가 묶어 두었다. 이날 저력부터 나는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이 라든지-카츄사가 보호오하리)라든지 하는 노래를 배우러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이를 문 채 눈을 부릅뜨고 못 나가게 하던 것이었다. 나는 몹시 지리했지만, 변소에서 건져낸 병 속의 노르끼한 물을 딸아 마신 아버지 옆에서 눈을 껌벅거리고 있다가 잠들곤 했다.

아버지가 혼자서 변소 걸음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였고, 바로 그날 저녁 무렵에, 삼철이네 할아버지가 집엘 왔었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와 혀를 맞물고 살다시피 한 분이라고 했다. 삼철이네 할아버지는 횐 수염 속에 찌른 담뱃대를 후들후들 떨면서 아버지가 누워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상대는 되지 않지만 심심풀이 삼아 주만을 대리고 딱지치기를 하던 나는 그 할아버지 뒤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나를 나가라고 했다. 나는 툇마루에서 딱지를 세는 척하며 방 안으로 귀를 기울였다. 삼철이네 할아버지가 무어라고 속삭여대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 삼철이네 할아버지는

"나 가네, 내 말 깊이 알아듣소잉."

하더니, 휜 수염 속에 담배 물뿌리를 묻고 나왔다.

아기의 돌무덤 투성이인 서낭골의 돌 자갈밭 주변의 솔숲에서 기어내린 어둠이 우리 집 부엌이나 마루 밑이나 변소로 까맣게 밀려들면, 아버지가 나를 끌고 뒤란 언덕을 올라 산기슭 밑의 건장 말목더미 속으로 가서 밤을 새우곤 한 것은 바로 이날 밤부터의 일이었다.

아버지와 내가 그리로 가서 밤을 세운 첫날밤에, 기막힌 일이 하나 벌어졌었다고 훗날 어머니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주만이 잠든 것을 보고, 주심을 등에 업었다. 대나무 몇 개가 있는 뒤란의 언덕 한 계단을 올랐다. 언덕 위에는 땔나무 더미가 있고, 거기에 대붙여서 깻다발을 쌓아두었다. 어머니는 그 깻다발과 땔나무 더미 사이로 들어갔다. 안방에 뉘어 둔 주만이가 못미더운 것은 물론, 등에 업은 아기도 아기이고, 도둑이 들까 무섭기도 하여, 멀리 피신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깻다발을 내려 앞뒤를 막아 쌓고, 대나무 숲 사이로 대문과 마당이 보이도록 구멍을 하나 뚫어 놓았다. 그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깻다발 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달이 뜨려는지 동녘 하늘이 부옇게 밝아 왔다. 아래촌 사장거리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날 밤에 반동자 숙청을 하기로 했다는 삼철이네 할아버지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머리끝이 곤두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윽고, 웃골목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두어 차례 들리는가 싶더니 대문이 삐그덕거렸다. 잠시 두런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담을 뛰어넘는 소리가 들렸다. 대나무 숲 사이로 부옇게 드러난 마당에 시꺼먼 그림자 하나가 들어섰다,

등에 업은 주심이 칭얼거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였다. 어머니는 황급히 주심을 등에서 가슴 쪽으로 돌려 안고 젖을 물렸다. 젖을 물고도 아기는 발을 뻗디디며 낑낑거렸다. 벌레라도 물렸는지 몰랐다. 마당에 들어선 그림자는 방문 앞으로 갔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부엌문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기는 그래도 낑낑거리며 발을 뻗디었다. 검은 그림자가 변소를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손바닥으로 아기의 입을 막았다.

아기가 숨이 막힌 듯 허위적거렸다. 보료 자락을 가져다가 아기의 얼굴을 감쌌다. 그때 그림자는 뒤란으로 돌아와 장독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동안 부엌 뒷문 옆에 서서 두리번거리던 그림자는 마당으로 나가 가지고 담을 넘어갔다.

새벽녘에 내려온 아버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말없이 한숨을 쉬기만 했다. 어머니는 가슴이 후들거려 도저히 살 수 없다면서

"배 타고 어디로 도망가뿔거나 어짜거나 합시다."

하고 안달을 했다. 아버지는, 가면 어디로 갈 것이냐고 다시 한숨만 쉬었다. 어머니는 섬 같은 데로 가면 될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아버지는 도리질만 했다.

이날 낮 내내 아버지는 골방 속에 묻혀 기침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있다가, 아기 돌무덤들 투성이인 서낭골의 돌 자갈밭 주변 소나무 숲에서부터 밀려든 어둠이 우리 집 헛간과 부엌 속에 까맣게 들어찬 뒤에 내 손을 끌었다. 뒤란의 대나무 숲 언덕을 타고 산기슭의 고추밭 언덕 밑 건장 말목더미로 갔다.

우리 집이 불타버린 것은 이날 밤의 일이었다. 집에 불을 질러 놓으면, 근처에 숨어 있는 아버지가 나타날 것이라 하여, 잿몰과 새텃몰의 세포위원들이 그랬다던 것이었다.

어머니가 여느 때 발을 구르면서 이를 갈고 가슴 아파하는 것은 불이 붙은 직후의 일이었다. 그날 밤, 어머니는 잠든 주만과 주심을 나란히 아랫목에 눕혀 두고 홀몸으로 나왔다고 했다. 전날 밤에 주심이 칭얼거리는 바람에 혼장이 났었으므로였다.

뒤란 언덕을 올라서 땔나무더미와 깻다발 더미 사이로 들어갔다. 검은 그림자들이 지나간 뒤에 집안으로 스며들어갈 셈으로였다.

한밤중쯤 해서 달이 떴다. 소록도와 고흥 반도 앞 바다에는 은물결이 일렁거리고 있었지만, 새텃몰은 앞산 그늘에 거멓게 잠겨 있었다. 검은 그림자들 대여섯이 담을 넘어온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림자들은 계각기 흩어져서 헛간, 부엌, 안방, 마루문들을 우당탕퉁당 여닫으며 들락거렸다. 어머니는 가슴이 흠칠하면서 아렸다. 안방에 눕혀 둔 두 아이 때문이었다. 검은 그림자들이 그 아이들의 멱을 짓밟아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눈을 감모 두 손을 비볐다. -하눌님네, 하눌님네-하고 속으로 무수히 부르짖었다.

문 여닫는 소리가 그치더니, 검은 그림자들이 뒤란에서 앞마당으로, 앞마당에서 뒤란으로, 부산하게 뛰어 돌아다녔다. 순간, 어디선가 구르릉거리는 군함 소리 같은 것이 들려 오는 듯했다. 군함에는 순경들이 타고 있을 것이고, 순경들이 들어오기만 하면 살아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경황에도 코 끝에 석유 냄새가 맡아졌다. 소록도와 녹동 반도 근처의 은빛 물결 위에 씨꺼먼 물체가 떠오는 듯했다. 웬 석유 냄새일까. 군함이 온다고 여기까지 석유냄새가 날아오는 것일까. 그러나 그걸 따져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저 (하눌님네)를 속으로 불러대면서 손을 비비기만 했다. 훤떡하는 불길이 온 지붕에 붙어버린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횃불을 든 남자 하나가 처마 끝에 불을 붙이면서 뒤란으로 달려왔다.

불은 부엌의 땔나무에서도 타고 있었고, 마룻장에서도 타고 있었다, 두 아이가 자고 있는 방문의 창호지와 대오리 문살에서도 탔다. 동시에 깁을 찢어대는 듯한 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불이여어! 하고 소리치면서 언덕을 뛰어내렸다. 그러나 소리는 목에 걸려 나오질 않았다.

"웨메 웨메 내 새끼들 어째사 쓸꼬."

어머니는 죽기 살기를 무릅쓰고 뒤란에서 앞마당으로 갔다. 그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담을 넘어 들어오더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남자들에게 귀엣 말을 하여 주고 도망치듯 담을 넘어가 버렸다. 불을 지른 그림자들이 그 뒤를 따라 담을 넘어가 버렸다.

어머니는 불타는 대오리 문살을 뚫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메에! 하고 울어대던 두 아이는 뛰어들어 온 어머니를 보고 질겁을 하며 -으악! 소리를 지르고 방구석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어머니는 두 아이를 끌어안고 밖으로 나왔다. 주만이는 (어매에)하고 소리지르면서 발버둥쳤고, 주심은 숨이 딸꾹 멈추고 말 정도로 (으악으악)하는 소리만 질러댔다. 그러면서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아이들만 달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두 아이를 대문간에 내려놓고, 살림살이 하나라도 끌어내자 하며 툇마루 앞으로 갔다. 불 길이 마루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뛰어내려왔는지, 아버지가 어머니를 끌어냈다.

", , 무을!"

하고 소리치면서 뒤란으로 돌아갔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물 한 바가지라도 끼얹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를 뛰따라 뒤란으로 갔다.

내가 말목더미 속에서 (불이여어) (사람살리시요오)하는 여자의 부르짖음에 잠을 깬 것은 이때였다. 잠을 깨면서 나는 그게 바로 어머니의 목소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더듬어 보니 밀집 이엉에 비스듬히 등을 기댄 채 누워있어야 할 아버지가 없었다. 내려다보니 우리 집에 볼이 붙어 있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버리적거리는 주만과 주심과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아부지이. "

나는 울면서 언덕을 뛰어내렸다. 내가 우리 집 뒤란의 언덕 위까지 내려갔을 때, 집 주위는 대낮같이 밝았다. 뒤란의 우물에서 물을 퍼 가지고 지붕 위로 끼얹어대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였다. 그 옆에서 어머니가

"불났네에."

하고 피맺힌 소리로 을부짖어대고 있었다. 그 소리와, 주만과 주심의 울음소리가 엇갈려 들려왔다. 주안과 주심이 불 속에 있다 싶었다. 대나무 숲에서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앞마당으로 달려가 보니, 주만과 주심이 대문간에서 한데 엉긴 채 벌벌 떨면서 악을 쓰고 있었다. 주심을 등에 업었다. 주심은 내 등에 찰거머리같이 엉켜 붙었고, 주만은 내 다리를 붙잡은 채 악을 써댔다.

"어메에."

"으악. 으아아."

그것은 울음이 아니라, 칼끝이 가슴속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질러대는 단말마의 비명 같은 것이었다. 나도 지붕 위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면서 악을 쓰고 울었다.

방과 마루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검은 연기와 불덩이의 혀끝이 툇마루 쪽으로 기어 나오는가 싶더니, 지붕머리에서 우지직 소리가 들리고, 그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순간, 지붕이 푹석 내려앉았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활활 타는 불 소리가 가슴을 흔드는가 했다. 이때, 주만과 주심은 거의 동시에

"으아악."

하고 악을 쓰면서 나를 끌어안은 채 몸을 떨었다. 그것은 어쩌면, 힙센 손으로 목줄을 비틀 때 닭이 질러대는 소리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불길처럼 술렁거리면서 벌벌벌 타오르는 가슴을 안은 채 얼핏 현기중과 구역질을 느끼고 몸을 떨기만 했다. 소리쳐 울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가슴속에서는 울음이 흘러나와 주지를 않았었다.

 

어머니가 언젠가

"주만이하고 주심이는 꼭 내가 병신을 만들어뿐 것 같어야. 문 창살에 볼이 확 붙어 갖고 벌벌 타는 통에 잠이 깨갖고는 그냥 얼마나 놀랬는가 몰라야. 틀림없이 그때, 광증(狂症)이 섣들린 것만 같단 말이다."

하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주심이 죽자, 어머니가

저만 살라고오."

하고 올부짖어댄 것도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소리일 것이었다.

재 꼭대기에 올랐을 때, 내 등에는 땀이 촉촉하게 젖었다.

"조금 쉬어 가라."

내 말에, 영만도 덥고 다리가 팍팍한 모양으로 소나무에 지게를 기대놓고 마른 잔디 위에 앉았다.

숲 사이로 새텃몰의 집들이 내려다보였다. 슬레이트지붕을 얹은 집들이 몇 채 보였다. 마을에서 앞메 잔등으로 넘어가는 실뱀길이 주위의 거무칙칙한 논바닥들을 젖히고 구불구불 뻗혀 있었다. 앞메 잔등 너머로는 바다였다. 하늘의 흑회색 구름 빛을 닮아 허여멀쑥한 바다는 바래진 잉크 빛 소록도와 녹동 반도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마을의 맨 위쪽에 있는 동생의 집을 바라보았다. 검정 코울타르를 칠한 양철 지붕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집 뒤에는 계단 같은 언덕들이 산기슭으로 이어져 있었고, 눌눌한 밀대 건장들이 계단처럼 층이 진 그 언덕에 틀어서 있었다. 김이 널려 있는 건장은 없었다. 본격적인 김 수확이 시작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직, 농생네 집의 뒤란 언덕에만 건장이 막혀 있지 않았다.

김 건장에서 김을 벗기고 있는 주심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주심은 추위를 많이 탔다. 어느 해던가, 한겨울에 왔을 때, 주심은 하얀 털수건으로 목과 머리를 감싼 채 김을 벗기고 있었다.

원래, 시집을 보내지 말았어야 할 주심이었다. 자리에 누우면 자꾸 한숨을 쉬고, 엎치락뒤치락하기만 할 뿐 깊은 잠 한번을 들지 못한다던 주심이었다.

"어무니, 나 절로나 보내 주소."

이 소리를 어머니한테 한두 번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소리를 할 때마다 펄쩍 뛰면서 주심을 달랬다,

"이 아그야, 그것이 먼 소리냐? 니 병 낫어주깨 걱정 마라. 중질하는 세상이 세상이라냐?"

어머니는 주심의 가슴 후두둑거리멸서 잠 못 드는 병에 좋다는 약은 다 구해다 먹였다. 단방약은 말할 것도 없고, 내덕도 안팎의 한약방들에서 권하는 약만 해도 그 사이 백 여 재는 달여 먹였다. 그러나 주심의 병은 좋아지는 것 같지가 않았다. 비 올 바람이 불면서 구름발이 내달리거나, 기압이 낮아 안개 자욱하거나 하는 날엔 가슴을 두드리면서 답답해하기도 하고, 괜스레 방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마당으로 왔다 갔다 하였다. 심한 때는 냇가로 휭 나가서 논두렁길을 밤새 걸어다니거나. 바닷가로 나가 모래밭을 걸어다니거나 하다가, 새벽녘에 옷자락에 이슬을 묻혀 가지고 들어오고기도 했다.

내가 제대를 해 나왔을 때, 좋다는 약 다 구해다 먹여 보고, 침 잘 놓는다는데 다 쫓아다니면서 부드러운 몸뚱이 여기저기 침을 꽂을 만큼은 다 꽂아 본 어머니는, 이제 자기의 요량으로썬 주심을 다시 어디로 어떻게 데리고 가서 병구완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이때껏 쉬쉬하며 약 써오던 말을 하였다.

나는 급한 대로 주심을 광주의 전남대학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접수를 마치자, 엑스선 촬영, 피 검사, 소변 검사 등을 하게 한 다음 욋과로 불러들였다. 오목 가슴이 아프다고 하고, 잠을 자려고 하면 시꺼먼 것이 나타나서 목을 죄어대는 것 같다고 하고, 어쨌든 잠을 자려고 눈을 감기만 하면 가슴이 벌떡거리면서 밖으로 우르르 뛰어나가 돌아다니고 싶어진다고 하는 주심의 말을 들은 의사는

"심장은 어떤 사람 것보다 건강합니다. 심장병은 아니니까 일단 안심하십시오. 회충이 많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만 구제하면 되겠어요. 당분간 안정을 하면서 이 약을 복용하십시오."

하고 처방을 하여 주었다. 병원을 나와서 약방에 가 알아보았더니, 안정제와 비타민 계통의 약들이었다. 한 이십 일분을 더 지어 가지고 내려보냈다. 취직 때문에 나는 광주에 더 머물러야 했었다. 이때 이웃 마을에서 중매가 들어왔으므로 어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주심을 부지런히 들쑤셨던 모양이었다. 주심도 병원에서 가져온 안정제와 영양제를 복용하면서부터는 가슴이 차분해지는 것 같던지, 어머니가 그렇게도 애닯아하며 소원하는 시집이니 가놓고 보겠다면서 허락을 했던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잃은 딸을 되찾았다면서, 딸한테 해주어야 할 품목들을 갓 취직한 나한테 주문을 해 왔었다. 재봉틀, 라디오. 장롱, 화장대, 찬장,,, 당시 시골에서 어지간하게 잘 사는 사람 아니고는 엄두도 못 낼 것들을 모두 마추어 주거나 사서 주거나 했었다.

어머니는 적어도, 주심이 시집을 가서 남자를 알게 되고, 그리고 남자와의 성생활이 원만하기만 하면, 가슴이 후두둑 뛰는 증세 같은 게 점차 없어지리라 했던 것이었다. 대개, 처녀 시절에 실성기(정신이상 증세)가 있었던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는 전혀 그런 증세가 없어전버린 경우를 더러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심의 경우는 달랐다. 첫아기를 가지면서 입덧이 나자, 전에보다 더 심하게 가슴 울렁거리는 중세가 일어난 것이었다. 어느 날 밤, 느닷없이 주심이 친정으로 달려와 버렸다. 이젠 안정제를 한꺼번에 세 알 네 알 먹어도 잠들 수가 없게 뒨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두 달만에 유산을 한 모양인데, 그런 뒤로는 몸이 더욱 밭고, 가슴 후두둑거리는 증세는 더 심해졌던 것이었다. 그 뒤로 시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오기 다섯 해였다.

동생네의 대문은 아직도 털어진 채였고, 거멓게 그을은 부엌은 동굴 속처럼 휑하게 뚫려 있었다. 그 부엌안에서는 땅달막한 주만의 부인이 껑충하게 큰 영만의 부인과 함께 밥짓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궁이의 불에서 피어난 연비와 솥에서 솟은 김이 한데 어울러서 동굴 같은 부엌문 앞의 처마를 타고 검은 슬레이트 지붕 위로 기어나가고 있었다. 대소가 사람들 대여섯이 마당에서 널 얽을 새끼를 로고 있었다. 동생부부가 거처하는 부엌 건넌방 댓돌에는 회고 검은 고무신 여남은 켤레가 놓여 있었다. 대소가 어른들이 모여 장례 치를 의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들어서자, 마당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아따, 싸게는 왔네."

하기도 하고

"직행 뻐스 타고 왔제?"

하기도 했다. 그들은 내 당숙뻘이 되거나 형제뻘이 되거나 하는 사람들이었다.

안방으로 들어서자 아랫목 바람벽에 등과 뒤통수를 기댄 채 맥을 풀고 있던 어머니가 일어나 앉으면서 새삼스럽게 널을 두드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어따 이년아, 주심아, 느그 큰오빠 왔단다아."

하고 목을 놓더니, 자기 가슴을 두드리면서

"어따 어따 죽일 녀언, 저만 살라고오."

하고 울부짖었다. 나는 가슴이 막혀 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작은어머니가

"너무 울어 쌓지 마시요. 가는 길이나 편히 가라고."

하고 목 메인 소리로 어머니를 달랬다. 주만이 술 냄새를 풍기며 끙 하고 안간힘을 쓰고 들어와서 퉁명스럽게

"뭣하게 울어싸요? 우리 주심이는 잘 죽었어라우."

하더니 내 손을 끌었다. 건넌방에서 어른들이 얼른 와 보라고 한다는 것이다.

내 인사를 받고 난 당숙 뻘되는 어른은

"불쌍하기는 하다마는 어쩔 것이냐, 할 수 없다. 사실은 아침나절에 장사해뿔라고 했는디, 한사코 느그 어무니가 하룻밤 더 새드라도 너를 기다리자고 해싸서, 그냥 이래 놔두고 있다. 그런디 어쩔래, 하룻밤 더 놔두먼 뭣한다냐? 준비는 다 됐은께 조깐 저물드라도 얼릉 치상쳐 뿔자."

하고 말했다. 옆에 앉은 어른들이 모두 그 말이 옳다고들 했다. 팔뚝에 찬 시계를 보니 네 시가 가까워 있었다.

상여도 없는 주심의 허연 관은 뒷산을 올라서 산굽이 둘을 돌았다. (조심하소)하고 선소리를 하면 관을 멘 상둣군들이 (어라 넘자) 하고 메겼다.

"곱게 모시소, 어라넘자, 앞에는 높이고, 어라넘자, 뒤에는 낮추고, 어라넘자, 곱게 모시소, 어라넘자,,,,,,"

주심의 관이 산등을 넘어갈 때부터, 흑회색 구름장 깔린 하늘에선 꽃송이 같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하얀 눈송이는 민틋한 관 위에 꽃으로 덮이고 있었다.

장지는 감맷골의 아버지 무덤 아래쪽 기슭의 소나무 숲 속으로 잡았다.

장례는 눈발이 스적스적 내려쌓이는 속에서 조용히 치러졌다.

무덤을 다 만들고 났을 때, 온 산은 하얀 보료에 쌓인 듯 눈에 덮여 있었다. 소나무 잎사귀에는 집어먹고 싶도록 탐스런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아직도 함박 같은 눈은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를 내면서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한데, 눈 강인 산길을 영만이 들고 은 남폿불을 따라 집에 돌아와 가지고 떨떠름하고 시끄러운 일이 하나 생겨버렸다. 장례를 치르고 온 대소가 사람들이 건넌방에서 저녁밥에 술들을 걸치고 돌아간 뒤였다.

마당에는 쌓인 눈이 어둠을 어슴푸레하게 눅이고 있었고, 눅여진 그 어둠 속에서 눈은 내려쌓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방바닥을 치면서, 눈 속에 버린 딸의 불쌍한 정상을 울고 있었다. 사촌인 영만의 부부는 웃목 구석에 앉은 채 코가 빠져 있었고, 작은어머니는 어머니 옆에 앉아 연신 흐르는 물코를 풀어다가 버선 발바닥에 씻고 있었다. 주만의 부인은 영만의 부인 옆에 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 가끔 눈물을 쪘어내고 있었다. 나는 이들을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까만 그을음 범벅이 된 남폿불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 불은 바람벽을 흐릿하게 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방바닥에 앉은 식구들은 그 남폿불의 검은 그림자 속에 잠겨 있었다.

이때, 술에 떨어져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주만이 소주병과 사발 한 개를 들고 건너왔다. 상둣군들이 다 비우지 못하고 간 소주를 그새 흔자서 마시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들고 온 한 되들이 삼학 소주 병에는 아직도 술이 두 홉은 더 담겨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들어서서 남폿불 밑에 틸쌕 앉았다. 끙하고 안감힘을 쓰더니

"어무니, 고만 우시요. 우리 주심이는 잘 죽었어라우."

하고 사발에다가 소주를 그득 따랐다. 버릇이 없었다. 어머니와 형님 앞에서 어려운 줄을 모르니 말이었다. 그러나 꾸짖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놈 덕에 대학까지 다닐 수 있었고, 이놈은 내 뒤를 대느라고 국민학교 사 학년에 다니다가 중퇴를 했기 때문이었다. 못 배웠으니 버릇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술이 취해 있으면서 술병을 들고 나대는 게 보기 싫었다. 나는 안주도 없는 술을 누구에게 권하려고 그렇게 가득 따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만은 구석에 엇구수하게 앉은 영만을 향 해

"한 잔 할랑가?"

하고 물었다.

영만이 싫다고 하면서 구석으로 얼굴을 돌렸다. 주만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형님, 한 잔 드시씨요."

하고 나를 향해 사발을 내밀었다. 나는 퉁명스럽게

"여기 술 마실 사람 없다."

하고 말했다.

"놔두시요. 내가 마실라우."

주만은 고개를 푹 떨어뜨리면서 사발을 들었다.

안주도 없이 뭔 술을 그렇게 마셔쌓냐?"

나는 주만의 손에 들린 술 사발을 잡았다.

"괜찮해라우, 걱정 마시씨요."

하더니 주만은

"빌어먹을 세상, 살면 얼마나 산다우?"

하며 내 손을 떼어냈다.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쁜 얼른 술병을 들어 서 영만에게 건네었다.

"술하고 웬수졌냐 어쨌냐?"

하고 주만을 꾸짖은 다음, 영만에게

"저리 내다놔라."

하였다, 영만이 술병을 마루로 가져다 두고 왔다. 그러자 주만이 나를 노려보면서, 왜 자기 속을 모르고 그래쌓느냐고 하더니

"나는 술 없이는 못 살어라우, 참말로 못 사요."

하고 말했다.

"어째서 술 없이는 못 살어야. 계발 너 생각해서 늙은 말년까지 이 고생 하시고 살고 계시는 어무니를 생각해서라도 술 좀 참고 살어라. 술 그것을 못 끊냐?"

나는 꾸짖는다거나, 타이른다거나 하는 말투가 아닌, 통사정을 하는 듯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만이 벌겋게 핏발선 눈을 들어 나를 보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성님, 지 말씀 잘 듣고, 꼭 그대로 해주씨요. 제발, 장개들어 갖고 어무니 조간 모셔 가시씨요. 나는 어무니 땀시 못 살겄어라우. 제발 조깐 모셔 가시씨요. 나 걱정 해주란 말 안 하요. 나사 각시하고, 내 내 밑에 딸린 새끼들 델꼬 어떻게 살어가든지 살아나갈 것이요."

그러자 작은어머니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한마디 하겠다고 하고 나서,

"주만이 너는 아뭇소리 말고, 어무니가 하자고 하는 대로 하고 살어라. 너는 느그 어무니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돼야. 너 혼자서 미역 발을 미역 발답게 막고 살 것 같으냐, 해웃발을 해웃발답게 막어 묵고 살 것 같으냐, 농사를 농사답게 짓고 살 것 같으냐?"

하고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따라서

"정말로, 너 소갈머리없는 것으로 봐서는 어무니를 당장에 모셔가뿔겄다마는, 어무니를 생악해서, 어무니 뜻대로 시방 내가 놔두고 있는 속이나 알어라. 내 말 알어듣겄냐?"

하였다. 그러자 주만이 핏발선 눈으로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더니

"말을 꼭 해사 알겄소?"

하고 목멘 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더니 어머니를 향해

"어무니, 제발 성님 따러가서 사써요. 나도 논밭 팔아 갖고 어디로 훌훌 날어댕김스롬 죽든지 살든지 할라우. 뭔 말인지 알겄소?"

하었다. 방안에 앉은 사람들의 눈길이 주만의 얼굴로 몰려들었다. -그것을 말이라고 하고 있느냐?-하는 눈들이었다.

어머니가 모기 같은 소리로 나를 향해

"큰 아그야, 이 아그 말을 말로 듣지 마라이."

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주만이 검정 갯두루마기의 고름을 우두둑 뜯어 헤치고, 잿빛 내외 입은 가슴을 어머니 앞에 내보였다. 내의 단추를 주루룩 뜯었다. 허여멀쑥한 살이 드러났다.

"여그 조간 보시요."

목이 멘 소리로 말하면서 방안에 앉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슴을 보였다.

그의 핏발선 눈에 물이 가득 담기어 있었다.

"우리 주심이는 잘 죽었어라우. "

그는 끄윽끄윽 울고 있었다. 그을음 범벅이 된 남포등에서는 언제부턴가 쇠애 하고 기름 빨아을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으스스한 귀기 서려 있는 바위굴 같은 시꺼먼 부엌에서 흐물흐물 부풀어나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부엌으로 통하는 문의 창구멍을 통해 남포등 밑으로 뽑혀 나오는 소리만 같았다.

"이것 그냥 칼로 짝 쪘어 갖고 까서 보여 줄 수 있는 것 같으면, 조깐 활딱 까 갖고 보여 져뿌렸으면 시원하겠구만 그냥."

기막혀 죽겠다는 듯이 하는 그의 말에 방안의 식구들이 멍해졌다.

"어따 어메, 죽일 녀언 저만 살라고오."

어머니가 갑자기 숨이 막히기라도 한 듯 자기 앙가슴을 쿵쿵 두드리면서 허물어지듯이 웃몸을 바람벽에 기댔다. 밖에는 쌀인 눈이 어둠을 어슴푸레하게 눅이고 있었고, 그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눈은 소복(素服)한 여인의 치맛자락 스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계속 내려 쌓이고 있었다.

 

 

 

 

 

 

 

 

 

 

 

 

 

 

 

 

한승원

 

성림산 모퉁이의 기찻굴에서 열차에 깔려 죽은 사람이 매형인지 아닌지 좀 보아달라고 누님한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그 해 늦은 겨울의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다.

그날은 퇴근길에 본 노을부터가 묘했다. 그것은 광천동 뒷산 마루에 얹힌 한 무더기의 비늘구름 속에서 붉게 타고 있었다. 어쩌면 도축장의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피가 튕겨 번지듯 구름 조각들의 언저리마다 진하게 묻어 타던 것이었다. 비늘구름 떠 있지 않은 하늘은 꽃자주에 연분홍을 묽게 탄 물감을 화선지에 고루 칠해 놓은 것처럼 번져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직장인 금성 중학교의 교문에서 서편으로 뚫린 포장 안 된 길을 타고 집을 향해 걸으며, 내내 그 피 같은 노을을 얼굴과 가슴으로 받아야만 했다.

집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내가 없는 새에 묘한 일이 하나 벌어져 있었다.

내가 우리 집의 목제 대문 앞에 이르러 초인종 단추를 눌렀을 때는 땅거미가 벌써 눈앞을 막아섰다. 오래 전에 칠한 살색 페인트가 벗겨져 얼룩덜룩한 대문의 나뭇결이 보얗게 흐려 보였다. 고개를 쿡 떨어뜨린 채 한참을 기다렸을 때에야 문을 열어 준 아내가

"개 좀 봐보시요, . 오늘 아침에 당신 막 출근한 뒤부터 저러요."

하고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변소 옆 담벽에 붙어 있는 개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어째서?"

나는 우뚝 발을 멈추면서 아내의 땅거미 묻은 얼굴을 바라보고 힐책하듯 물었컸다. 아내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어둠 가득 찬 개집을 들여다보았다. 멍청한 것이 주는 밥 잘 먹고 살이나 많이 찌지를 않고 무슨 병치레를 한다고 한다는 말인가. 개는 값이 많이 나가는 세퍼트나 진도개나 토사견이나 포인터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애완용으로 키우는 스피츠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른 봄쯤 해서 살 올려가지고 노병을 시름시름 앓고 계시는 장인 어른과 함께 개소주나 내려 먹을까 해서 키우는 재래종 거멍개였다. 때문에 나는 오히려 더욱 개운치 않은 생각에 몰려야만 했다.

지난 가을에 아내가 개백정한테 시켜서 처치해 가지고 개소주를 내려오도록 하자고 했었다. 그러나 그 때는 그놈이 아직 어린 데다 야위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내가 그걸 이른 봄으로 미루자고 우겼었다. 그게 잘못이었던 듯싶었다. 개소주를 내려서 드리기만 하면 자기 친정 아버지가 노병을 씻은 듯 떨고 일어날 수 있으리라 하는 생각을 하여 오는 아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차하다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쩔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글쎄, 뭣을 잘못 먹었는지 어쨋는지,,,,,,, 저 보시요, ."

아내는 개집 앞에 쪼그리고 앉으면서 말했다. 개의 집 안에는 진한 먹물 같은 어둠에 들어앉아 있었다. 그 어둠 때문에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는 그 안을 들여다보면서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다가 손을 까부르면서

"꺼멍아"

하고 불렀다. 검정에 밤 빛 털을 알맞게 섞어 갖춘 개는 짙게 깔린 땅거미 속에 숯검정 같이 검은 모습을 굼뜨게 드러냈다. 개집 속의 먹물 같은 어둠을 온몸에 묻혀 가지고 나오는 듯싶었다. 아내 앞으로 두어 걸음 어슬렁어슬렁 다가가더니 마당 한가운데 선 내게로 오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흔들리는 꼬리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듯 뒷다리를 비틀했

. 동시에 목뼈가 부러진 거위처럼 고개를 벗등하게 모로 틀어다가 오른 쪽으로 한번 내두르면서 다시 한번 비틀했다.

매형네 가축병원으로 얼른 끌고 가보지 않고 왜 이래 두고 있느냐고 하니, 대학 일 학년에 다니는 동생 상철이 마루의 기둥에 붙은 외등 스위치를 딸깍 젖히고 나오면서

"끌고 갔다 왔어요. "

하고 말했다. 외등의 불그죽죽한 불빛이 마당으로 쏟아졌다. 검은 곤색의 트레이닝 바지에 밤빛 털스웨터를 얹어 입은 상철은 검정 고무신을 지륵지륵 끌고 내 옆에 와 선 채, 비틀거리면서 개집 속으로 들어가는 꺼멍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매형은 없고 누님만 있어서 그냥 약만 갖다가 먹였어요. 어쩌면 흥역 같다는구만요."

매형이 들어올 때까지 가축병원에 놓아두지 않고 왜 그냥 끌고 왔느냐는 내 말에 동생은

"나간 지 사흘이나 되었는데, 가부간 연락이 없닥 하등만요."

하고 말했다. 온다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집을 나가서, 술집이면 술집, 여인숙이면 여인숙, 젖소 키우는 집의 마굿간이면 마굿간,,, 닥치는 대로 떠돌며 잠을 자 버리는 매형의 그 떠돌이 병이 도졌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은 조금 먹던가?"

내 물음에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침밥과 점심밥을 모두 혀끝 한번 대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일 아침 일찌기 다른 병원으로 끌고 가봐라, 누님이 뭘 안다냐?"

동생을 향해 퉁명스럽게 내던지고 마루로 들어섰다.

누님한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바로 이때였다. 수화기를 들자, 누님의 목소리는, 매형이 집을 나간 지 벌써 사흘째라는 것, 조금 전에 방송을 들르니까 성림산 모퉁이의 기찻굴 입구에서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남자가 있다는 것, 그런데 뛰어드는 것을 멀리서 목격한 사람이 말한 그 사람의 인상착의로 미루어 보아 꼭 매형인 것만 같다는 것, 그러니 얼른 그 사고현장으로 함께 가보자는 것을 다급하게 울먹거리며 늘어놓고 있었다. 그것을 들으며, 나는 전화기가 놓인 화장대 밑에 웅크리고 있는 까만 어둠을 보았다. 누님의 목소리는 바로 그 어둠 속에서 번져 나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가뜩이나 감까지 먼 그 목소리는 지하천 길의 굴속어디에서 괴물에게 갇힌 여자가 구원을 청하는 소리만 같았다.

"아따아."

하고 나는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그리고, 매형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말했다.

"어째서 너는 그렇게 태평하냐? 어디서 온 전환가는 몰라도 그걸 받고 왕진 가방 들고 나갈 때부터 아무래도 조끔 이상했단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누님에게 잠시 전화를 끊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마룻바닥에 터썩 주저앉았다.

"아따 참말로 뭔 사람이 저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구만."

투덜거리면서 방송국 보도부케 근무하는 친구네 집과 경찰서 교통계와 효천역과 효천 파출소로 전화를 연결해 보았다. 그런 다음, 누님이 얼마나 평소에 허둥대면서 사는 여자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철도 자살을 한 남자는 백운동에 사는 한 정신착란증 환자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튿날 매형의 대학 동기이자 친구인 광주일보의 안신근 편집국장을 만나야만 했다. 철도 자살자가 매형이 아니라는 게 확인되었는데도 누님은 새벽부터 전화로 나를 불러 들볶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어째서 너는 그렇게 나한테 무관심하냐?,,,. 어디 가서 죽어 있다고 해도 의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할 사람들이다잉."

"남의 집살이 하나 한가지인 나 들볶지만 말고 제발 누님이 조끔 찾어 나서시요."

내 말에 누님은 분함과 슬픔이 얼버무려진 목소리로

"이 자식들, 아쉬울 때 돈 빌리러는 우리 집으로 제일 먼저 오드라."

하고 전화를 딸깍 끊어버렸던 것이었다.

설탕 넣지 않은 코피잔을 들어 마시면서 안 국장은

"자살?"

하고 콧등으로 흘러내린 돗수 높은 검은 테 안경을 밀어 올렸다. 멀뚱하게 빛나는 묽은 자줏빛 안경알 속에서 그의 눈은 거슴츠레하게 오므라져 있었지만, 소년처럼 볼그족족한 볼과 작은 입에는 웃음이 담겨 있었다.

뭣으로 봐서 그 사람이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싸는 거야?"

겨울철 토요일 저녁 무렵의 다방 안은 텔레비젼의 주택 복금 추첨 실환 중계로 들끓고 있었다.

"글쎄요, 누님이 어쩐 일인지 자꾸 그분이 그럴 것만 같다는 조다심이 드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그분이 열고 있는 가축병원이라는 것도 엉망이 되어가고 있어요. 오늘 저녁부터 내일 밤까지 쉬는 틈을 타서 제가 매형을 기어이 찾아내야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고 나서 나는 지금 그분이 어디에 박혀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안 국장은 코피잔을 놓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만난 지가 한 열흘쯤 돼놔서,,,,,,"

안경알로 천장의 전등알을 반짝 되쏘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안 국장은 담배 한 대를 태워 물더니,

"어쨌든, 이 도시 안을 빠져 나가지는 않았을 것 같고, 또 별일 없이 살아 있을 것 같으니까 너무 염려 마시라고 하소."

하고 말했다. 어떤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러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냥 예감이 그렀노라고 했다, 순간 나는

"바쁘지 않으면은 저하고 슬 한 잔 하십시다."

하고 말했다. 안 국장한테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안 국장이 보기에, 매형한테 어떠한 정신적인 이상 증세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느냐든지, 찾는 대로 그분을 입원을 시키거나 어디로 보내서 요양을 하도륵 해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느냐든가를 따져 묻고 싶었다. 안 국장한테는, 내가 처남이기 때문에 나한테 말해 주지 않고 있는 매형의 어떤 정신적인 절함 같은 것이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자네는 자네 매형에 대래서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애."

영하당으로 가서 쇠고기탕에 소주를 몇 컵 들이켠 안 국장은 콧등으로 흘러내린 검은 테 안정을 밀어올리면서 말했다.

"자데가 알고 있는 것은 기껏 그 사람이 목사 아들이라는 -그 목사인 아버지가 시골에서 교회를 지키고 있다가 육이오 때 순교를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은 고학을 해서 의과대학에서 산부인과 수련의 과정을 밟는다고 밟다가 어떤 생각에서인지 농대 수외과로 젼과를 해 가지고 수의사가 되었다는 것. 그 다음 서방 삼거리에서 미장원을 경영하던 자네 누님을 아내로 맞았다는 것. 그리고 결혼한 지 칠팔 년이 되었는데 아들이고 딸이고 간에 하나도 낳지를 않고 살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일 거야."

나는 젓가락으로 콩나물을 집어다가 끓는 탕 그릇 속에 넣어 뒤적거러면서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언젠가 술을 한 잔 하면서 자네 매형이 이런 얘기를 하더구만. 교회는 이 세상에서 커다랗게 뻥 뚫어진 구멍이라고 말이야. "

안 국장은 소년의 그것처럼 작은 입을 묵 다물고 까만 탕 그릇 속에서 끓고 있는 국물을 주시하다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고 끝을 당겨 빨았다.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국민학교 시절에 학교 뒷산엘 올라간 적이 있었더라구만. 식목일이었는데 나무를 개러 갔다다군. 마땅히 캘 만한 나무가 없어서 손가락 굵기쯤 되는 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를 캐 놓고 옆의 천구들이 나무를 다 캐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마을 어구의 언덕 모퉁이에 붙어 있는 자기네 집을 건너다 보았다는 거야. 한데 집은 언덕 모퉁이에 있는 대나무 숲에 가려서 보이질 않고, 그 숲 위쪽 언덕에 모로 붙은 교회당만 빤히 바라다 보이더라는구만.

교회당이라고 해 보아야 당시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간 초가 크기쯤의 건물이었겠지. 양철 지붕에 검정 타일을 칠하고 유리 창문 너댓 개가 달린 왜식 건물 말이야. 그런데 그 교회당이 새까만 입을 벌리고 있더라는 거야. 현관 앞에 동굴 같은 비막이를 세운 데다가 현관 문을 활짝 열어 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그것은 마치 언덕 모퉁이에 커다랗게 뚫어진 새까만 구멍만 같더라는 거야. 뭐라고 할까, 자네 매형의 말을 그대로 빌자면, 연옥이나 지옥의 입구처럼 으시시하고 새까맣더래."

여기까지 말하기에 무려 오 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아니.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도 몰랐다, 그는 한 마디를 말하고는 오랜 동안 무얼 생각하면서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고, 그런 다음 한 마디를 말하고는 또 그렇게 하곤 한 것이었다.

그는 꽁초가 다 된 담배 개비를 탁자 밑에 놓고 밟아버린 다음 젓가락을 들었다. 탕국에 버무려진 콩나물 줄기를 집어다가 입에 넣었다. 우적우적 씹다가 소주를 들이켰다.

"그 뒤부터 이 사람은 교회 안의 마룻바닥에 앉아 아버지의 설교를 듣고,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면서, 늘 그 구멍은 어쩌면 아버지의 가슴에도 까맣게 뚫려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더라는 거야. 한데,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 일어나던 해, 그러니까 국민학교 사 학년 되던 해의 어느 이른 봄날 저녁 무렵에, 아버지의 교회 안에서 무엇인가를 봤대. 내가 금방 (무엇인가)라고 말했는데 말이야, 그 무엇인가를 뭣이라고 말해야 할 것인지, 나는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말이야, 제대로 그걸 표현할 수가 없네마는 어쨌든 들어보소."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던 안 국장은 술이 반쯤 담긴 소줏병을 탁자 한쪽에 밀어 놓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젠 자기가 한잔 사겠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까 집에 아무도 없더라는 거야. "

자기가 단골로 다니곤 한다는 정종 대폿집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서 하다가 만 이야기를 이어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집이 교회가 있는 언덕 밑에 있었던가 봐. 자네도 어디 나갔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 집안이 텅 비어 있으면 집안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선뜻 나질 않잖던가? 묘하게도 방안에 찬바람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것 같지. 자네 매형은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지. 책보를 마루에 던져 놓고 해거름의 빗긴 햇살을 받으며 언덕을 올라갔다는 거야. 그랬더니, 교회의 유리 창문들이 닫혀 있더라는구만. 이때 교회의 유리창들이 멀뚱하게 빛나면서 마당과 마당 가장자리의 수수깡 울타리를 되받아 멀뚱하게 비쳐주고 있었고, 츠 속으로 들어서는 자네 매형의 얼굴을 비쳐주고 있던 모양이야, 그때 그 유리창은, 뭣이라고 해야 쓸까, , 묽게 탄 먹물이나 잉크 물감을 들인 것 같더라는 거야. 어쩌면 그 유리창은 국민학생인 자네 매형이 다가오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몸짓을 하고 있는 것만 같더래. 그래서 한동안 우두커니 선 채 유리창이 되비추어 주는 마당과 수수깡 울타리와 자기의 얼굴 너머로 마룻장 안을 뚫어 보았다는 거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혹시 그 안에서 기도를 하거나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해서였겠지. 그러나, 잘 보이질 않더래. 그래선 유리창 앞으로 다가가서 잡된 빛이 비쳐들지 않도록 두 손바닥으로 눈의 양옆을 가리고 교회 안을 들

여다보았다는 거야. 순간, 당시 열 살 나던 자네 매형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어슴푸레한 텅 빈 마룻바닥과 맞은편 벽에 걸린 십자가뿐이었다는 거야."

안 국장은 잠시 말을 끊고 해삼 조림을 입에 넣고 씹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정종 대폿잔 속을 멀거니 들여다보다가 나를 건너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손을 뻗쳐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싸늘한 청빈 공간) 말이야. 그것이 이때껏 마흔 살이 다 되도록 살아 온 자네 매형의 가슴속에 커다란 묘혈처럼, 아니 새까만 어둠이 잠긴 폐광의 광구처럼 깊이 패여 있는 지도 모르겠어."

나는 따끈한 정종 대폿잔을 들어 몇 모금 들이켰다. 가슴이 후끈 뜨거워졌다. 술에 뜨거워지는 만큼 나는 화끈 닳아오르는 속상함이 있었다.

"매형은 평소에 엄살이 많으신 분이잖아요? 어린 시절에 너무 귀하게 컸고, 그런만큼 감상적이고 염세적인 데가 있잖아요. 사람의 팔뚝에 주삿 바늘을 꽃을 수 없다든지, 살을 칼로 쪘거나 잘라낼 수 없다든지, 여자의 자궁 속을 들여다보기가 싫다든지 하는 어처구니 업는 엄살 때문에 그분은 의과대학에서 농대 수의과로 옮기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 그리고 결국은 그러한 엄살이 체질화되어 가지고, 손톱만큼한 충격을 받아도 괴로워하고 술을 마시고 방황하고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따지고 보면 어릿광대고 위선자예요. 매형은 그러한 자기의 연약한 엄살을 합리화시키고 미화시키고 인격화시키고 있어요. 문학적인 수식과 철학적인 이론을 대입시켜 가면서 말예요."

몽둥이나 칼로 휘둘러대는 듯한 나의 말에,

"딴은 자네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네."

하고 안 국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폿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알록달록한 메추리알 한 개를 집어들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보기로는 자네 말이 결코 옳은 것이 못 돼. 나는 자네 매형하고 이십 년을 넘게 사귀어 오는 사인데, 어느 때 어떤 경우에도 엄살이 많은 친구라고 느껴본 적이 없네. 그것은 곧 나도 자네 매형처럼 엄살이 많은 사람이라는 증거인지는 모르네. 말하자면, 아직 철이 제대로 들지 않은 상태에서 해방이라든지,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라든지, 육이오라든지, 사일구라든지 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눈알을 뒹굴리며 살아온 우리 세대가 모두 엄살쟁이라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야. 그러나, 지금부터 내가 한 말을 들으면 자네 매형이 결코 엄살쟁이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걸세."

살아 꿈틀거리는 낙지발의 빨판에 얇게 썬 마늘 조각을 붙여 가지고 된장에 버물러 입에 넣으면서 안 국장은 말을 이었다.

"문제는 아버지의 죽음이었을 거야. 인민군이 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자네 매형의 아버지는 교회 안에 들어앉아 기도만 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 어른은 한 발짝도 교회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던 모양이지. 자네 매형의 어머니가 울며불며 통사정을 해도 그 어른은 그 안에 엎드려 있기만 하더라는군. 결국 대창 든 세포위원 두 사람과 인민군 한 사람이 그 어른을 잡으러 교회로 왔던 모양이야. 와서 어쨌겠나? 대창과 총부리를 들이대면서 그 어른을 끌고 가려고 했겠지. 그러나 거기서 죽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그 어른이 호락호락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겠는가? 그러다 보니 피를 볼 수 밖에 없었겠지. 결국 대창에 찔려서 죽었다더군. 한데 여기서 더 큰 문제가 생겨버린 거야. 그 꼴을 본 어머니가 어떻게 됐겠는가? 그때부터 널뛰듯이 모둔 발로 뛰면서 하느님을 찾기 시작한 어머니는 물인지 불인지, 밤 인지 낮인지, 산인지 들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헤매다가 교회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산기슭 벼랑에서 발을 헛디디고 떨어져 죽었다는 거야. 그게 이듬해 눈이 녹기 시작한 이른 봄이었다더군."

 

새벽녘에 잠이 갠 나는 오줌을 누기가 바르게 물 주전자를 더듬어 찾았다. 형광등이 켜지고, 분홍빛 잠옷바람인 아내가

"당신 웬 술을 그렇게도 많이 마셨소? 몸을 통 못 가누고."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웃목 구석의 양은 쟁반 위에 놓인 휜 스텐 주전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컵에 따라 주겠다는 것을 마다하고 주전자를 빼앗아 들었다. 주둥이를 입에 가져다 댔다. 섬찍하게 차가운 물을 퍼석거리는 목구멍 너머로 넘기면서 안 국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분, 집엘 잘 들어갔을까. 술집에서 나온 기억부터가 없었다. 집에 들어와서 이렇게 아내 옆에서 자고 있는 것부터가 회한하고 신기스럽게 여겨졌다.

"매형 안 들어 왔다지 아직?"

내 물음에 아내는

"아이고오, 누님은 저렇게 안달인디, 사람 찾으러 나간다고 나간 사람이 열두 시가 꽉 차도록 그렇게 술만 마시고 있고 싶습디여?"

하고 짜증스럽게 쥐어지르는 소리를 했다.

이튿날 아침, 일요일이므로 더 자고 싶은 것을 누님이 걸어온 전화 때문에 쓰고 떫은 입맛을 다시며 일어난 것은 아홉 시가 조금 지난 때였다.

"갈 만한 데 조끔 찾아댕겨 보지는 않고 시방이 몇신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있냐?"

누님의 성화에 쫓겨, 수화기에다 간밤에 안 국장을 만나서 가 있을 만한 곳을 몇 군데 알아내었노라는 거짓말을 해주고 마당으로 나갔다. 하룻밤 묵힌 취기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휩쌌다, 후두두 몸을 떨면서 개집 속에 들어찬 아침나절의 차갑고 파르므레한 그늘을 바라보았다. 그 그늘 속에서 꺼멍이가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쪼그리고 앉으면서 나는 구역을 느꼈다. 상철을 소리쳐 불렀다. 도서관을 가려는 듯, 매형의 왕진 가방 같은 검은 책가방을 들고 나오던 상철이 개집 앞으로 왔다. 다른 가축병원으로 가서 주사도 맞히고 약도 먹이고 하라니까 어쨌느냐고 물었다.

"어저께 풍향 가축병원으로 데리고 갔어요. 주사를 두 대 놓고 약을 주드만이라우. 그런디 너무 늦었다고 그러던 데요. 몸이 거의 마비돼 버렸기때메 어렵겠대요."

"그럼 어쩔 것이냐?"

상철은 글쎄 어쩌고 하면서 얼버무렸다. 나는 아내를 소리쳐 불렀다. 아내가 부엌에서 떠가지고 온 더운 물 한 바가지를 목욕탕의 세숫대야에 부어 놓고 나오면서 팔짱을 끼었다, 그 아내에게 나는 추궁하듯이 개가 밥을 먹더냐고 물었다. 아내가 고개를 저으면서 밥에 혀끝 한번 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아내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왜 억지로라도 조금 먹여보지를 않느냐고, 이때껏 약을 빈 속에다가 먹였느냐고, 세상에 이 추운 날씨에 헌누더기 하나라도 가져다가 덮어주지 않고 왜 저래 두고 있느냐고, 이제부터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기어이 살려내라고, 제왕처럼 호령을 하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개고 뭣이고 당신 매형이나 얼른 찾았으면 좋겠어요."

아내의 짜증어린 말이 목욕탕 안으로 흘러들었다.

"개는 개고 매형은 매형이야. 기어이 살려내라고. 집에 있으면서 개 그것 한 마리를 똑똑히 관리하지 못하고,,,,,,"

횐 타일 붙여진 좁장한 목욕탕이 쪄릉 울리도록 소리쳤다. 얼굴에 비누질을 하는 등 마는 등 하고 물을 움켜다가 끼얹었다. 어질어질한 취기를 걷어내기라도 할 것처럼 자꾸 물을 끼얹었다.

수건으로 얼굴의 물방울을 훔치면서 목욕탕을 나왔을 때, 상철이 잠바를 벗어 던지고 빈 병에다 누룽지 국물을 붓고, 거기에 약을 넣고 있었다. 병주둥이를 손바닥으로 막아 흔들면서

"근육이 다 굳어 갖고 입도 벌려지지 안 해요. 벌써 틀렸는데, 정상이 불 쌍한께 약이나 한번 먹여 줄랍니다. 봐보십시오마는, 거의 넋이 나가 버렸어요."

하고 말했다. 수건으로 귓바퀴 부근의 물기를 닦으면서 나는 개집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니 참말로 홍역이락 하디야?"

."

"아니, 수의사들이 홍역 하나도 치료를 못 한다냐?"

하고 말하면서 나는 가슴이 움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한테 홍역이 들면, 약은 약대로 쓰면서 우선 찬바람이 들지 않도록 한다던 것이었다. 한데, 이 개는 몇 날 며칠 동안 영하의 추위 속에서 떨어진 가마니 조각 하나 덮지 않은 채 앓아 온 것이었다. 주인이 얼려 죽이고 있으나 마찬가지였다. 아내를 나무랄 수만도 없었다. 쓰고 떫은 입맛을 다시면서 눈살을 찌푸리는데, 상철은 개의 뒷다리를 잡아 끌어냈다. 다리의 관절이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다. 개의 몸뚱이는 물먹어 얼어버린 가마니같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밖으로 끌려 나온 개는 시멘트 바닥에 모로 누운 채 고개를 들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껏 뒤쪽으로 뻣등하게 젖혀졌다가 앞으로 두어 번 주억거려졌을 뿐이었다. 눈에는 검은자위가 눈 뚜껑 속으로 반쯤 묻혀 있었다. 흰자위뿐이었다, 입에서는 맑고 끈끈한 침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쿠릿하고 색은 냄새 같은 것이 개의 몸에서 뭉싯뭉싯 피어나고 있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관이 놓여 있는 방에서 맡은 적이 있는 그 냄새였다. 틀렸다는 것을 직감하면서도 나는 상철이 개의 입을 벌리기 위해, 앙다문 이빨 사이에 나무 막대기를 넣어 지렛대질을 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몸을 일으켰다. 마루를 향해 돌아섰다. 개의 입이 조금 열린 듯

"얼른 병 주둥이 쑤셔 넣으시요."

하고 동생이 부르짖듯 말했다.

"여보 당신이 조금 먹여 보시요."

하고 아내가 나를 향해 말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냥 마루로 올라서 버렸다.

 

이날 나는 운치동에 들어갔다가 매형이 한 농가를 다녀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참 어이없는 일이었다.

무등 우유, 나주 우유에 생우유를 대어 주는 낙농가들이 산재한 유림동과 운정동 일대를 이 잡듯이 뒤지고, 팍팍한 다리를 끌고 운치동으로 들어간 것은, 겨울의 맨소리텀갑 뚜껑 같은 해가, 송정리와 대촌 사이를 막아선 점박이 젖소 같은 성림산 허리에 걸려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마을의 낙농가들을 더듬는 방법은 간단했다. 무조건 들어가서, 매형이 열고 있는 동물병원 이름과 매형 이름을 대고, 그분이 요 며칠 사이에 다녀간 일이 있느냐고 묻고, 없다고 하면 다른 집으로 옮겨가곤 한 것이었다. 하루 내내 그러고 다니던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매형을 찾는 일이 짜증스러웠다. 꾸정꾸정한 흙탕물에 붉은 물을 들여놓은 듯한 해거름 무렵의 산그늘이 내려서 더욱 아득하여 보이는 성림산 밑의 철길 옆 동네를 바라보았다. 낙농가들은 그 철길 옆 동네에도 수없이 있는 것이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한숨을 쉬었다. 매형의 무기력한 감상과 염세를 경멸했다. 그의 모든 행위를 어릿광대 같은 엄살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치면서 증오하기까지 했다. 못난 남자, 머저리 같은 남자, 불알을 떼어서 개나 주지--- 속으로 투덜거리자, 누님이 한없이 불쌍하고 천한 여자로 생각되어졌다. 무릉태수(무능태)같은 남자, 의기나 패기라고는 씨도 없는 남자를 끌어안고 사는 그 누님은 얼마나 속된 여자인가. 그런 남자의 어디가 좋아서 이때껏 남편으로 섬기고 살아왔을까,,,,,, 나는 끙 하고 안간힘을 썼다. 내가 서두르지 않은 탓에 누님이 생과부로 늙어가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날 안으로 그 철길 옆의 성림동까지를 더듬을 수는 없다고 이를 물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운처동이나 뒤지지로 했다.

운치동은 강변 마을이었다. 삼십여 호쯤 되는 그 마을은, 성림산 허리 위로 번진, 흙탕물에 활은 물을 탄 듯한 햇빛을 번질번질하게 바른 강물과, 둑 주변으로 앙상하게 헝클어진 포플러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면서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산허리에 걸린 깡똥 조각 같은 해를 보면서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사립 밖에 쇠똥 더미가 있기만 하면 무조건 들어가서 말을 뇌까려댔다. 숫송아지만 전문으로 키우는 농가에 들렀더니, 작달막한 키에 똥똥한 남자가 포도밭 건너편에 있는 집을 손가락질하여 주면서

거 집에 온 것 같등만이라우."

하고 말했다.

포도밭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듯한 그 집에는 한 트럭 분쯤이 될까 말까 한 쇠똥 더미가 마당가의 허름한 외양간 한 모퉁이에 쌓여 있을 뿐, 외양간 안에는 소가 없었다. 한데, 여기서 나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 말았다. 도둑 뱃사공같이 허우대가 큰 데다 얼굴이 거무튀튀한 집주인에게 하마터면 멱살을 잡힐 뻔한 것이었다. 실례한다고 말한 다음, 매형의 동물병원과 이름을 대고, 그분이 며칠 전에 여길 다녀갔다고 하기에 몇 가지 물어보러 왔다고 말하자, 집주인은 다짜고짜로

"당신 잘 왔소. 그 사람하고 어츠크롬 되시요?"

하곡 따져 물었다. 얼떨결에 매형이 된다고 말했다.

"싸게 가서, 존 말로 할 때 소간 물어내라고 하시요. 눈치를 본께 그놈의 쥐뿔 같은 가방을 찾으러 왔는 모양이요마는, 소 값 물어내기 전에는 죽어도 안 줄 것이요."

주인은 소같이 큰 눈을 뒤룩거리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서 내 앞에 내어 보였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서면서, 대관절 무슨 소 값을 물어내라는 것이냐고 물었다,

"다 알고 있소잉."

주인은 내 말을 새겨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 얼굴을 향해 침방울을 날리면서 맹렬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것이 어떻게 해서 산 소인 줄이나 아요? 내 딸이 뼉다구가 오긋오긋 하도록 공장살이 해서 모은 돈으로 산 소여라우. 그래서 내가 어쨌는지 아요? 숨이라도 붙어 있을 때, 고깃소로나 팔게 해달라고 했제라우. 그런께 기어코 살려내겄단다고 장담을 합디다. 와하이, 그런디 밤중까지 쌩쌩하든 소가 자고 난께 죽어부렀어라우. 반값커녕은 삼분에 일 값도 못 받고 넘겼어라우. ,,,,,, 가서 좋게 소간 물어내라고 그러씨요. 나도 뒤에 사람 있어라우. 소값 안 물어내고 수의사질 제대로 해묵은가 못 해묵은가 보라고 하시요."

나든 화가 치밀었으나 같이 맞서서 소리치며 따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소값 물어 추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선 사람을 찾아 놓고 보아야 할게 아니냐고, 그분이 어디를 가 있을 것 같으냐고, 사실대로 가르쳐 달라고, 통사정을 하듯이 물었다.

""

하고 주인은 오방귀를 뀌었다.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공갈을 치면은 내가 벌벌 떨고 예씨요. 하고 가방을 내줄 중 아씨요? 이래봬도 내가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요. 괜히 시퍼 보고 색 쓰지 마시요."

주먹을 부르쥐고 두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나를 노려보는 주인의 눈에 핏발이 서려 있었다. 나는 얼른 이 사람과 매형이 심한 입씨름을 한 끝에 치고 받고 싸움을 한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에 무슨 일이 있어 가지고 그분 시체가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나타났을 때는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

"아니, 뭣이 어쩌고 어째라우?"

발끈한 주인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환장하첬구만, 환장하겄어. ,,,,,,그러고 저러고 그 사람 어디가서든지 그런 행짜 하고 다니다가는 뭉둥이가 없어서 못 얻어 맞어 죽을 것이요. 그 러제마는 나는 소를 통째로 잃고도 그 사람한테 콧바람 한번 되게 안 내뿜었은께 그리 아시요."

이날 밤 매형의 동물병원으로 갔더니, 누님은 눈이 부석부석하게 부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서 많이 울었는가 싶었다. 나는 걱정 말라고 하면서 왕진 가방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매형이 지금 어느 술집에 박혀 있는 모양이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내일 중으로는 기어이 찾아낼랍니다. "

그런데, 누님은 다시 쿨쩍쿨쩍 울기 시작하더니,

"이 일이 나고 본께 요것들이 암만해도 이상하게 생각된단 말이다."

하고 스크랩북 한 권을 펼쳐서 내 앞으로 밀어 주었다, 거기에는 매형이 가끔 광주일보에 기고한 수필 같은 것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누님이 짚어 주는 것을 얼른 훑어 읽었다. 하나는 이상분만을 하는 젖소의 조산을 소재로 쓴 수필이었다,

-결국 송아지는 질식해서 죽고 말았다. 너무 오랜 동안을 뒷다리 하나만 내어놓은 채 거꾸로 들려 있었으니 그럴밖에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인공 호흡을 시켜 보았지만 허사였다. 죽은 송아지를 꺼내 놓고 상처 입은 소의 자궁 속에 약물을 넣어 주었다. 이때 나는 소의 자궁이 시꺼먼 어둠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은 생명을 낳는 구멍이 아니고 죽음을 낳는 구멍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하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인데, 여기서도 역시 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소는 자기의 어머니가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뱃속에서 막 나와서 어미 소의 젖을 빨아 보지를 못하고, 사람이 끓여준 분유를 핥아 먹으면서 자란 까닭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비극이라는 것이었다. 한데 그러한 비극은 자기에게도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일종의 사생아라는 것이었다.

-나는 외부 세계와의 단절 속에서, 신의 세계로만 치닫는 삶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인간이 인간적으로 누리는 인간적인 삶의 형태를 더러운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것은 내 삶이 아니었다. 그건, 산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꺼먼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던 언덕 속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듯하던 그 예배당에서 사는 나의 아버지에 의한 강요된 삶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사생아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국민학교 육 학년 때 천관산에 있는 용화사엘 다녀온 뒤부터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대웅전 속에 가득 찬 금빛을 보고 나는 포만감을 느꼈었다. 예배당의 마룻바닥 위에 쌓인 텅 빈 쓸쓸함을 알고 있을 뿐인 나에게 그것은 얼떨떨한 정신적인 배부름을 안겨주고 있었다, 거길 다녀온 뒤부터, 새벽의 안개 속을 뚫고 아스라히 들려오는 그 절의 쇠북 소리의 중후하면서도 폭넓음에 문득 누구에게서인가 따돌림을 받고 있는 듯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두드리는 종소리의 딱딱하고 차갑고 날카롭고 경박함에 가슴이 흠칠해지고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

여기서 그의 글은 느닷없이 향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대학 시절에 그림 그리는 친구를 따라서 향교(鄕校)엘 간 적이 있었다. 친구는 무엇이 그리 좋아서 향교의 한 모퉁이를 잡아 화폭에 담을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몰랐다. 그러나 나는 거기 들어선 순간, 꼭 어느 상가(喪家)의 상방 안을 들어선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정신적으로 포용해 주는 어머니는 예배당도 향교도 아니라고 썼다. 현재의 생각으로는 절이 고 가운데서 가장 어머니스럽다고 느껴지기는 하나, 반드시 그럴 것인지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라고 했다. 젖소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고 약을 먹이고 할 때마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어버린 젖소의 비극이 자기의 비극인 양 느껴져서, 어디론가 훌쩍 달아내빼 버리고 싶은 충동에 가슴을 조이곤 한다면서 글을 끝맺고 있었다.

 

내일 중으로는 틀림없이 매형을 찾아낼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누님을 달래고 집으로 갔다. 부자를 누르자 대문을 열어준 아내가 개를 얼른 내다가 버리거나 어디에 묻거나 해버리자고 말했다. 대문을 들어선 나는 처마밑 기둥에서 불그죽죽한 불빛을 마당 안에 풀어놓고 있는 외등을 등진 채 개집 안을 바라보았다. 콜타르처럼 눌러 다져진 새까만 어둠이 가득 차 있었다.

"죽어 버렸는가?"

"아까 해거름에 들여다본께 숨을 안 쉬는 것 같습디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이 개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가 막연했다. 통행 금지 시간이 가까웠을 때에 길거리에 내다버리라고 할까, 집 앞으로 흐르는 개천바닥에 던져버리라고 할까. 그럼 결국 청소부들이 리어카에 실어 가지고 가서 먼데다 버리거나 파묻을 게 아닌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따가 상펄이 들어오면 저 앞 공터에다가 묻어버리라고 하지."

짜증스럽게 말하면서 가방을 마루에 내던졌다. 들어가서 양복을 벗고 나왔다. 목욕탕으로 갔다. 발을 씻고 세수를 하고 들어서면서 개집을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로 눈이 간 것이었다. 가슴이 서늘해지고 집안에 송장을 놓아두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나쁜 전율이 등줄기를 훑었다.

이날 밤, 상철이 들어온 것은 열 시가 조금 지난 때였다. 상철이 눌렀음에 틀림없는 성급한 벨소리를 듣고 나는 아내를 향해

"얼른 내다가 버리든지 묻어 버리든지 하고 밥 먹으라고 하소."

하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가 무슨 소리냐고 짜증스럽게 말하면서 대문을 열어 주러 나갔다. 죽은 몸뚱이에 손대고 어떻게 무슨 비위로 밥을 먹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었다가 통금 시간이 가까워서 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데, 아내의 말대로 통금 시간 직전에 개를 내다가 묻는 과정에서 꺼림칙하고 개운치 않는 일이 벌어졌다. 상철이와 아내가 개를 처리하러 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포장된 한길에서는 이따금씩 택시가 쌔액 소리를 내면서 달리곤 했다. 마당에서는 개집 양철지붕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뭣으로 싸갖고 들고 나갈까요?"

상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개집 속에 깐 가마니때기 끄집어 내갖고. 그 속에다가 담아다가 묻어라."

나는 문 밖을 향해 퉁명스럽게 소리쳤다

"아따, 당신도 조끔 나와 보씨요."

아내의 짜증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그것 하나를 둘이서 처리하지 못하고,,,. 나는 엉덩이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듯 벌떡 일어섰다. 문을 밀고 마루로 나갔다. 처마밑 기둥에 붙은 외등이 불그죽죽한 불빛을 마당 안에 퍼뜨리고 있었다.

"아이고 냄새애."

개집 앞에 선 상철이 고개를 틀면서 말했다. 그의 발 앞에는 바야흐로 끄집어 낸 개의 몸뚱이가 모로 뉘어 있었다. 아내도 개를 내려다보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내 코에도 분명히 쿠릿한 송장 색은 냄새가 기어 들었다. 개는 겉 피부와 털만 멀쩡할 뿐 내장은 이미 썩어 문들어져 있는 것인 모양이었다. 나는 역한 침을 울구어서 화단을 향해 뱉으면서

"얼른 가마니 꺼내갖고 집어넣어라."

하고 상철을 향해 말했다. 상철이 개집의 입구를 사립 쪽으로 돌리더니, 밑바닥에 깔린 가마니를 끄집어냈다.

"아따, 개집 안에 썩은 냄새가 꽉 차 있구만요."

상철은 고개를 모로 틀고 심호흡을 했다. 가마니 시울을 벌려 잡아 아내 앞에 내밀었다. 팔아 들어온 쌀을 쌀통에 털어 붓고 깔아준 그 가마니는 한 쪽이 번들번들하게 닳아져 있을 뿐 멀쩡했다. 아내가 상철이 잡혀 주는 대로 가마니의 시울을 잡았다. 상철이 개의 뒷다리를 번쩍 들더니 그 속에 집어 넣었다. 이때 나는 보아서는 알 될 것을 보아버렸다. 죽어 굳어져 있는 듯만 싶던 개의 가슴 부분이 꿈틀 부풀어나고, 코에서 푸지직 하는 숨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개의 몸을 가마니 속에다 거꾸로 처넣고 난 상철이 멍해진 채 나를 바라보았다. 아내가 시울을 더 크게 벌리면서 개의 몸이 처박힌 가마니의 안을 들여다보았다. 상철이도 다가가서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나도 한 걸음 다가가 고개를 쭉 빼고 들여다보았다, 고개를 모로 구기박지른 채 처박힌 개의 몸뚱이가 검은 어둠에 버물려 있었다. 구기박질러진 고개 밑에서 푸지직 푸지직 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끊어졌다가 이어졌다가 하는 듯했다. 그때마다 검은 어둠에 버물려진 개의 몸도 조금씩 움직이는 듯했다. 아내와 상철이 고개를 들었다. 나도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하듯이 서로의 얼굴들을 번갈아 건너다보았다.

"놔뒀다가 내일 아침에나 묻읍시다, "

상철이 나를 향해 허락해 달라는 눈길을 보내면서 말했다. 아내도 차마 어떻게 숨이 아직 붙어 있는 것을 파묻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잡고 있던 가마니의 시울을 놓아 버렸다.

"아따, 목숨 되게 찔기요잉."

하고 말하면서 고개를 두어 번 저어 보였다. 이때 내 눈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개집 속에 가득 찬 까만 어둠으로 가 있었다. 괜히 짜증스러워졌다,

화단 옆의 담벽을 바라보았다. 담벽에 세워 놓은 삽을 찾았다. 이런 일이 있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삽은 시멘트 블록 벽돌담에 비긋이 기대어 서 있었다. 담 옆으로 걸어갔다. 받아 놓은 죽음인데, 숨이 붙어 있는 지금 묻는들 어떻고, 끊어진 다음에 묻는들 어떠랴 했다.

"그냥 묻어 버리자, "

퉁명스럽게 말하며 삽자루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상철은 내가 대문을 열고 돌아서서 재촉을 랄 때까지 가마니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다시 한번 더 재촉을 했을 때에야 가마니 시울을 번쩍 들고 나왔다.

집 앞 빈터로 갔다. 역 상공의 수은등 불빛이 어슴푸레하게 날아들었다. 빈터와 개울 둑 사이에서 발을 멈추었다. 두어 번 삽을 질러서 흙을 떠냈다. 쓰레기로 돋은 땅이라 삽 끝에 비닐종이나 떨어진 옷가지 같은 것들이 걸렸다. 삽이 박히지 않았다. 상철이 가마니를 내려놓고 나한테서 삽을 받아 들었다. 그는 뚝심이 세었다. 삽날이 휠 정도로 삽 날개를 힘껏 디뎌서 흙을 파내곤 했다, 나는 팔짱을 되게 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택시도 달려가지 않았다. 상철은 코를 식식 불면서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구덩이는 점차 사람이 들어앉아도 될 만큼 크고 깊게 되어 갔다. 거기 들어찬 까만 어둠을 보면서 나는

"고만 묻어 버려라,"

하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상철이 삽을 놓고 가마니를 들어 구덩이 속에 넣었다. 삽을 들더니

"에잇, 빌어먹을,,,,,,. "

하고 투덜거리면서 흙을 밀어 넣었다. 흙이 두둑하게 쌓였다. 상철이 그 위로 올라서서 밟아댔다. 나도 한 발을 그 위에 올려 밟아 다졌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상철은 다시

"에잇, 빌어먹을,,,,,,. "

하고 투덜거렸고, 목욕탕에서 손발을 씻고 마루로 들어오면서도 또 그렇게 투덜거렸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개를 땅 속에 묻었다는 생각 때문에 그는 자꾸 꺼림칙하여지는 모양이었다,

이날 밤 자리에 든 내 눈에는 내내 흙구덩이 속에서 푸지직 푸지직 숨을 쉬다가 점차 질식해 죽어가는 개의 모습이 인화지에 나타나는 영상처럼

거멓게 나타나곤 했다. , 질식을 했다가 봄날 땅 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개구리처럼 뛰쳐나오는 개의 모습도 보였다,

이튿날 아침 세수를 하러 가다가 나는 텅 빈 개집 안에 잠긴 검은 어둠을 보고, 매형이 어린 시절에 산에 올라가서 보았다는, 언덕에 뻥 뚫어진 구멍 같았다는 교회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뒤부터 설교를 하는 자기 아버지의 가슴속에 그런 시꺼먼 구멍이 뻥 뚫어져 있는 듯싶기만 하였다더라는 말을 생각했다. 나는 가슴속이 서늘하고 휑 뚫어져서 텅 빈 듯했다. 어깨를 들어올리고 심호흡을 했다. 텅 빈 유리병에 바람을 불어넣는 듯한 히리링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여보, 오늘 이 개집 어디다가 내다버리든지 어쩌든지 해버려요."

나는 부엌을 향해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디서 중()개 정도 되는 것 한 마리 생기기나 하면 사다가 키워 볼라는디 ,,,,,,"

아내의 말에, 또 죽어버리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쏘아주려다가 그냥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락 넣은 가방을 들고 출근하면서 다시 한번 개집 속의 검은 어둠을 보아야만 했고, 때문에 나는 학교까지 가는 동안 내내 무등산 위로 솟은 아침 해를 가슴으로 받고 가면서도 눈살을 찌푸려야만 했다.

오후 늦게 누님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마침 쉬는 시간이어서 창턱 앞에 서서 눈 쌓인 무등산정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데 사환이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수화기를 들었을 때,

"상수냐? "

하고 흘러 나온 누님의 목소리에는 또 울음이 섞이어 있었다.

"느그 매형 있는 데 찾었다. 그런디, 암만해도 입원을 시켜야 쓰겄단 말이다. 얼릉 좀 나오너라. 나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되겄다."

매형네 가축 병원 앞에서 누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매형이 있는 성림동의 23번 버스 종점에 이르렀을 때, 해는 암소의 허리처럼 잘록한 산허리에 걸려 있었고, 성림동의 듬성듬성한 농가는 모두 자줏빛 산그늘에 잠겨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누님은 산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농장을 손가락질했다. 산언덕 위의 편편한 농장은 이만여 평이 넉넉히 될 만한 넓이였다. 농장 가장자리에는 희끗희끗한 시멘트 지주들이 거미줄 같은 철조망을 걸친 채,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옛날 군인들의 전투 대형 같이 늘어서 있었다. 어깨 높이의 계수나무들이 열병식하는 군인들처럼 양쪽에 늘어서 있고, 차바퀴 자국이 깊게 나 있는 비탈길을 타고 언덕을 오르는데, 뚜엣 하는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구룽구룽 하는 기관의 소리와 함께 철길을 훑는 바퀴소리가 언덕길을 흔들었다. 서남쪽으로 병풍을 둘러친 듯한 산모퉁이에서 알려나온 화물열차가 마을 앞 철길을 줄달음질쳐 갔다.

누님과 나는 계수나무 숲 너머로 그 화물열차의 시꺼멓고 긴 행렬을 멍히 바라보다가 농장을 향해 비탈길을 올라갔다. 얼마쯤 더 오르자 길이 왼쪽으로 굽어 돌면서, 마호가니 빛 페인트를 칠한 철문이 나타났다. 사람 드나드는 작은 문이 열려 있었다. 문을 들어서니 쇠줄로 재어진 개가 우리를 향해 껑충껑충 뛰면서 짖어댔다. 세퍼트 잡종이었다. 문을 비닐종이로 덧붙여 놓은 외양간의 기둥에 쇠줄로 묶인 그 개는 쇠줄이 끊어지기만 하면 당장 우리에게 달려들어 물고 뜯을 것만 같았다. 개가 껑충 뛰면서 짖어댈 때마다 나는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움츠러드는 것이었지만, 누님을 따라 외양간을 마주보는 블록벽돌집 문 앞으로 다가갔다.

외양간 문이 열리면서 밤색 잠바에 잿빛 바지를 입고 짧은 목장화를 신은 중년 남자 한 사람이 고개를 내밀었다. 누님을 알아보고 고개를 꾸벅 하더니, 소리쳐 개를 꾸짖으면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개가 목소리를 낮추어 두어 번 더 짖어대다가 중년 남자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한 이틀 더 쉬다가 가라고 할락 하고 있는디, 기어코 오늘 모셔 갈라고 그러시요?"

금방 툭 튀어나을 것 같은 눈알을 뒹굴리면서 중년 남자는 외양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앙상한 은행나무와 목련나무들 저쪽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가리 켰다.

"저쪽으로 놀러 갔는 모양이구만요."

농장 한가운데로 내놓은 길로 누님과 나를 안내하면서 남자는

"그 동생이 와 있은께 든든하고 좋등만,,,,,,혹시 사람 얻어 갖고 살까 싶어 그러요?"

하고 누님을 향해 우스갯소리를 했다. 누님은 고개를 쿡 떨어뜨린 채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가 누님의 얼굴을 흘긋 살피고

"그 동생이 참 나로 해서는 은인이요. 금방 죽을라고 한 소 두 마리를 살려 줬은께라우. 그 두 놈한테서 시방 젖이 제일로 잘 나오요."

하고 진정 어린 소리로 낮게 말했다. 비닐하우스를 지나자, 마른 잔디 깔린 언덕이 나왔다, 그 언덕 위쪽 땅은 일구지 않고 있었다. 마른 억새나 쑥부쟁이나 띠풀들이 무성했다. 매형은 그 무성한 마른 풀숲 속에 앉아 있었다.

여느 때 작달막한 키에 호리호리한 매형이 카른 풀숲 속에 주저앉은 채 세운 무릎을 깍지낀 두 손으로 안고 있는 것은, 흡사 집을 나온 소년이 멍히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침 철길이 있는 골짜기를 스쳐온 바람이 농장 철조망을 넘어오고 있었다, 마른 풀숲을 세차게 흔들어댔다. 마른 잔디를 밟으며 우리가 다가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을 터인데도 매형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매형은 언덕 아래 어느 한 곳에다 눈길을 박고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누님과 농장 관리인 남자를 더 이상 매형 옆으로 다가가지 못하도록 한 다음 매형의 눈길이 가 있음직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언덕 아래에는 철길이 있었고, 그것은 산기슭의 시꺼먼 기찻굴로 이어져 있었다.

어쩌면 철길은 그 시꺼먼 굴속으로 계속 줄달음질쳐 들어가고 있는 듯만 싶었다. 그 굴을 보는 순간, 나는 이날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본 개집을 생각했다. 그리고 매형이 어린 시절에 산에 올라갔다가 보았다는 그 시골의 교회당을 생각했다. 지옥으로 통하는 문처럼 언덕에 뻥 뚫어져 있는 듯만 싶었다는 교회당 속의 어둠도 떠올랐다. 며칠 전 백운동에 산다는 한 미치광이 남자가 철도 자살을 했다고 하는 기찻굴이 바로 저것이거니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나는 얼핏 머리끝이 곤두서고 등줄기에 가느다란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면서

"뭘 그렇게 내려다보고 계신가요, 매형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매형은 이때껏 함께 나란히 앉아 있는 사람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라도 하듯이 시꺼먼 기찻굴을 가리켰다.

"저기 좀 봐라. 저 속으로 말이야, 조금 전에 가죽 잠바 입은 남자 하나하고 짧은치마를 입고 부츠를 신은 여자 하나가 기차가 막 지나간 뒤에 들어갔는데 말이야---. 한 십 분쯤 되어 가는데 아직 나을 줄을 모르고 있단 말이야."

매형은 웃음기 하나 없이 말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누님의 말마따나 매형이 정말로 정신이 좀 돌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마디 더 물어서 확인을 해 본 뒤. 그게 사실일 것 같으면 정신과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기찻굴을 향해 진지하게 굳어져 있는 매형의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이 추운 데서 그걸 내려다보고 앉아 계십니까? 얼뜬 가십시다, 집으로."

하고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려고 했다. 한데, 매형이 오히려 내 손을 당겨 옆에 앉히면서 턱을 쭉 내밀어 기찻굴의 양쪽 산을 가리켰다.

"저 두 산을 봐라. 저게 말이야, 꼭 벌거벗은 여자가 벌떡 드러누운 채 말이야, 두 무릎을 곧추세우고 있는 것만 같은 형국이란 말이야. 여자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나는 많이 보아 왔지. 산부인과 의사 공부를 한다고 할 때 말이야.------그런데 말이지, 저 한가운데 뻥 뚫어진 것은 무엇인가 하면 말이야, 바로 죽음을 낳는 곳이야.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을 낳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실은 그게 바로 그것이야."

매형은 잠시 말을 끊고, 고개를 한번 갸웃했다.

"금방 들어간 남자하고 여자하고는 말이야, 내가 보기로만 해서도 오늘까지 해서 두 차례나 저기를 드나들고 있는데 말이야. 저기에 들어가서 무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하고 많은 여관들이 시내엔 꽉 차 있잖아? 그런데 왜 하필 저런 데는 들어가는 것인지,,,,,, 이 추운 겨울 바람 속에서 말이야."

시꺼먼 어둠 가득 찬 기찻굴에서 솟아 나오기라도 한 듯한 차갑고 음산한 바람이 골짜기에서 불어 올라왔다. 매형의 주변에 무성한 마른풀들이 우수수 흔들렸다. 누님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흑 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매형이 벌떡 일어서면서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픽 하고 웃더니 내 귀에다 대고

"바로 저거야. ------이제부터 우린 또 신혼 부부같이 살게 될 거야."

하는 것이었다, 누님에게로 다가간 매형이 누님의 능을 토닥거리며 나지막한 소리로 무슨 말인가를 하는 동안, 내 귀에는 내내 마른풀에 바람 스치는 소리만 가득 차 있었다.

 

 

 

 

 

 

구 멍

한승원

 

이해 서른두 살 난 동생 주만이는 어쩌면 절벽처럼 꽉 막힌 듯하면서도 엉뚱한 데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모든 나사가 풀리거나 빠져서 헐렁헐렁하게 되어버린 기계 같기도 하고, 가슴팍과 등줄기 부근에 코가 빠져 올이 숨벅숨벅 풀리는 스웨터 같기도 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헌 기계나 올이 풀리는 스웨터처럼 부족한 듯하고, 서로 얽히어 맞물고 있어야 하는 얼거리() 같은 게 없어 헐렁헐렁하고, 잡힌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쩌다가 광주에 오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는 몹시 허둥대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가련 모내기할 날을 받아 놓고는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이고 .있지를 못한다고 했다. 마을을 돌면서 아낙네들을 붙들고는

"모레 우리 모 조간 해주씨요 잉, 품앗이하게."

하고 또래의 남정들을 잡고는

"우리 모 조깐 져 날러 주소 잉, 모레."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얼마나 나대고 다니는지 몰라도, 모내기 하는 날 보면, 모내기군들이 삼십 명 가까이 밀려들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논이라야 겨우 샛개 간척지에 있는 여섯 마지기뿐인데, 모내기군 삼십 명이라니, 이것은 모내기군들의 엉덩짝만으로도 논바닥이 꽉 차버리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고 했다. 나락 져들이는 일이라든지, 뒷간 푸는 일이라든지, 두엄 져내는 일이라든지도 모두가 그렇다고 했다. 바닥에 김발 막는 것도 마찬가치라는 것이었다. 막을 때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가 비싼 물자 들여 막지만, 그 발을 옮긴다든지, 내린다든지, 올린다든지, 매시미 새끼줄을 갈아준다든지, 띳대를 맨다든지 하는 일을 등한시하여 수확 한번 반반하게 내어 먹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도 술만 마시면

"빌어묵을 세상, 살먼 얼마나 산다고, 앨탕잴탕찰 것 뭣 있소?"

하고 드러누워 버리기 일쑤이고, 드러누웠다 하면, 이튿날 아침 해가 번해서야 일어나곤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에게 나는 어머니를 맡겨 두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나를 마음에 썩 들어 하는 여자가 아직 없어 총각으로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다 몇 년 전에 장가를 든 주만이. 앞으로 내 쪽에서 설사 장가를 든다 하여도 자기가 어머니를 계속해서 모시겠다고 자청한 이면에는 어머니의 (쏘색임)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애기도 봐 주고 해우할 때먼 해우도 벗겨 주고 할 것인께 나하고 살자, 나하고 살먼 너 손해 없을 것이다. 그러고 니가 나를 모신다고 해사 느그 성이 논 한 마지기라도 더 사줄 것 아니냐?"

그러니까 실은 그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그를 모시고 사는 셈인 것이었다. 어머니는 절벽 같고 엉뚱하고 헐렁헐렁하게 헝클어진 그를 떠나서는 한시도 맘놓고 있지를 못해 하였다. 광주엘 오셨다가도 하룻밤 주무시고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서둘러 내려가시곤 하였다.

때문에, 서른 다섯 살의 늙은 총각인 나는 언제 장가를 가게 될 지 어쩔지 알 수 없는 터이므로, 그저 그 두 사람의 원대로 하여 주는 척하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 사망 치상 준비 속래

 

이러한 전보를 받고 내가 고향집엘 간 것은, 천관산 꼭대기에 내린 이 해의 첫눈이 하얗게 쌓여 있는 쌀쌀한 초겨울의 한낮 때였다. 하늘엔 흑회색 구름장이 덮여 있었고 바람은 찼다. 며느리 미워서 아침밥 굶든 시어미 얼굴처럼 찌푸려진 이러한 날씨는 눈을 굽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구워져서 내리는 눈은 함박꽃송이처럼 굵기 마련인 것이었다.

전보 내용에 (치상 준비)라는 게 있었으므로, 나는 직장의 동료들이 거두어 준 조의금 오만 원에 급전 오만 원을 돌려 가지고, 광목 한 통과 마포 두 필을 사들고 회진 행 버스를 탔었다. 한데, 나는 회진에서 버스를 내려 가지고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중을 나온 사촌동생 영만이

"많이 놀래셨지라우."

하면서 배시시 웃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엉뚱한 데가 있는 동생 주만의 흰자위 많은 눈을 생각하며,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설마 돌아가시지 않은 어머니를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이야 하였을라고 하며

"어쩌다가 이렇게 급하게 돌아가셨다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영만은 주먹처럼 뭉툭한 콧등에 주름을 잡고 뒤통수를 쓸면서

"사실은 큰 어무니가 돌아가신 것이 아녀라우."

하는 것이었다.

"뭐어야?"

나는 기가 막혔다. 동료들이 함께 오겠다는 것을 떨쳐버리고 흔자 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내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던지, 영만은 땅으로 눈길을 떨어뜨리면서 주눅이라도 들린 아이처럼

"누님이 돌아가셨는디, 작은 성님이 그르케 전보를 첬어라우. 안 그라먼 성님이 안 오실지도 모른다고 함스로."

하고 말했다. 주만이 거짓 전보를 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해마다 이른 봄철에 있는 아버지의 제사에 번번이 내려오지를 않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만의 거짓 전보에 짜증을 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영만이 (누님)이라고 한 것은 내 유일한 여동생으로, 이해 겨우 스물 아흡 살밖에 되지 않은 주심인데, 그 아이가 죽었다는 것이었으니 말이었다.

다섯 해 전부터 친정에 와서 살고 있는 주심은 바로 한 달 전에 어머니와 함께 광주를 다녀갔었다. 물론 광주엘 온 것은 치료를 받고자 해서이긴 했었다. 그러나 그 아이가 가진 병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내 눈에는 적어도 그렇게 보였었다.

평소 어머니를 통해서 병력(病歷)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에도 XX대학 부속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종합진찰을 받게 해 본 적이 있는 나는 그 아이를 광주에서 그 계통으로 가장 권위가 있는 오중한 정신신경 외과로 데리고 갔었다. 진찰을 마친 오 박사는

"심인성 협심증에 피해망상증이 겹쳐 있군요."

하고 말을 했었다. 그리고

"너무 염려 마십시오. 장기간 요양을 해야 하긴 합니다만, 어쨌든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하더니, 오 박사는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차트 위에 놓인 보올펜을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혹시, 환자 주변에 비슷한 중상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까 ? 이모라든지, 고모라든지, 할머니라든지, 어머니라든지."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없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집안에 미친 사람이 없었다. 주만이 혹시 주심과 비슷한 증세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의심이 되긴 했지만, 주만은 아직 자기한테 그러한 증세가 있음을 옆 사람에게 호소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를 그렇다고 말해버릴 수는 없었다.

오 박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안정제와 비타민 계통의 처방을 하여 주었다. 그리고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것은 아니니까 조용한 데로 보내서 요양을 하게 하라고 말을 했었다. 그때 풀색 바지에 옥색 스웨터를 입고 있던 주심의 얼굴이 눈에 보이는 듯한데 그 아이가 죽었다니, 나는 그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랬다냐?"

나의 물음에 영만은 자기 지게에다가 광목통과 마포를 올려놓으면서

"글쎄 나도 잘 모르겄어라우."

하였다. 몇 마디의 말로 대답하기가 곤란하니 그냥 그렇게 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더 캐물으려고 하지 않았다.

 

동생이 살고 있는 고향집 안채는 육이오 때 잿몰과 새텃몰의 세포위원이라는 자들이 반동자 숙청을 하러왔다가 불을 질러버리고, 수복되면서 부랴부랴 목수들을 불러다가 새로 지어 준 것이었다.

한데, 그 집에는 큰 구멍이 하나 벙 뚫어져 있는 것 같았다. 사간 접집인 안채와 여섯 평 넓이의 마당을 허름한 사랑채가 정면으로 가리고 서 있었다. 사랑채의 한가운데에는 대문이 있었고, 대문 한쪽에는 헛간과 변소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사랑방과 외양간이 있었다, 그런데 대문은 두 짝이 모두 떨어져 버렸고, 한 자 높이인 문턱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대문 앞에서 보면 역시 문짝 두 개가 모두 떨어져버린 부엌이 빤히 보였다.

부엌은 안벽들이 시꺼멓게 그을려 있었다, 사실은 뒷문짝마저 떨어져버리고 없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얼른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뒤란 언덕의 흙이 거무칙칙한 된장 빛깔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대문을 막 들어설 때 바라보이는 그 부엌은 컴컴한 동굴만 같았다. 동굴이라도, 천 년 묵은 이무기가 용이 되어 날아가 버린 뒤 시궁창 같은 물만 밑에 깔려 있어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거나, 푸른 이끼 같은 게 끼어 있어 신비스런 혼이 담기어 있는 듯하다거나 하는 그런 동굴이 아니었다. 육이오 사변 때 사람들을 굴비 엮듯이 하여 밀어 넣고 불을 처질러 죽이기라도 했기 때문에 으스스한 귓기가 서려있는 바윗굴 같았다. 풀 한 포기 돋아 있지 않고, 퐁퐁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하나 없는 죽어버린 동굴 말이었다.

몇 해 전의 겨울, 가뜩이나 양철 슬제이트 지붕 위로 검은 구름장이 무겁게 내리 덮인 날, 대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내 가슴속에 꼭 그 부엌같이 크고 검은 구멍이 휑 뚫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거기다가, 마당 안이라든지 뒤란의 살림살이는 어수선하고 지저분했다. 돼지우리의 오줌은 마당 한가운데에 흘러 질척거렸고, 대문간 옆 마당에 쌓아 둔 두엄은 닭이 마구 헤쳐 놓았었다. 뒤란에는 지푸라기며 땔나무 잎사귀들이며가 흩어져 있었다. 마당이나 뒤란 바닥은 패이고 깎이어 쭈삣쭈삣한 돌들이 깔리어 있었다, 마루에는 젓국이 흘렀고, 창구멍들은 숭숭 뚫어져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동생 주만에게

"이 사람아, 대운이나 조깐 고쳐 달아라. 좋은 대문짝을 그냥 세워만 놓고 안 달고 있냐? 부엌 문짝도 돌쩌귀 한 개만 고치면 달 수 있겄든디, 그래 놔두고 있고, 어디 밖에서 보면 뻔해 가지고 쓰겄디야. 나간 집구석 같이?"

하고 말을 했었다. 그러자 동생 주만이는

"시원하고 안 좁디여?"

하고 병신스럽게 웃더니, 내 얼굴을 흘끗 살피고

"하두 바쁜게 달 애적 ()이 없어라우."

하며, 코를 찡긋했다. 나는 낡은 시계의 늘어져버린 태엽을 감듯이

"그라고. 마당에도 돼지 오줌이 흘러내려서 쓰겄디야? 오줌통이 넘지 않게 늘 퍼내뿔고, 뒤란도 늘 쓸어서 청결하게 조깐 해라. 지저분하면 불도 무섭고, 보기에도 어수선하고 안 그러냐? 사람 사는 집같이 조깐 해 놓고 살어 봐라. 두엄도 닭이 막 헤집어 놔서 어디 쓰겄디야."

하고 말을 해 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술 퍼죽고 건충거리고 다닐 틈은 있어도 거름 한 주먹 추그서 올릴 틈은 없는 사람이다. 그런께, 내가 한시도 집을 못 빈다."

하고 참견을 하였다. 주만의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듯하더니 볼이 부풀었다. 태엽을 감을 때는 들썩도 않다가, 바늘을 옮겨 놓자 지그르륵하고 종 칠 기색을 보이는 고물 시계처럼 주만은 주먹 같은 코를 실룩거리며, 여느 때 바싹 밭아 있곤 하는 입술을 움씰거렸다.

"아따 어무니는 먼 말을 그르쿨로 하요, 세상을 살먼 얼마나 산다고."

그의 말은 퉁명스러웠다. 어머니가 나를 향해

"저 사람 말한 것 조깐 봐라이."

하고 푸념하듯 말했다.

"살림하고 사는 사람이 말한 것 조깐 봐라이. 요런단 말이다. 요래, 나 없으면 살림 못할 것이다. 죽도 밥도 아녀야. 소도 내가 쇠죽 써 멕이고 어짜고 한께 그라제, 지 손판에 놔뒀으면 벌써 몰라져 죽었을 것이다. 소만 그런다냐?"

주만이 지지 않고 나를 향해

"성님, 저 말하시는 것 조깐 보씨요. 당신 혼자 멋이든지 다 하는 것 같지라우. 저런단 말이요, 저래. 그런께 순전히 동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겄소. 순전히 반편으로 알어라우."

하더니 어머니를 향해

"나 나가뿔랑께 어무니 혼자 멋이든지 잘 해묵고 한번 살어 보씨요."

하였다. 어머니는 주름살 깊은 얼굴을 쳐들었다, 입이 열려져 있었다. 자기가 일손 놓지 않고 (고드록 포드록)나대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겠느냐고, 생각이 저따위로 돌아가기만 하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느냐고 하는 뜻이 그 얼굴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입을 열지 않았다.

"성님, 이참에 올라가심스롬은 어무니 모시고 가시씨요. 제발 덕분에 모셔가시씨요. 나 걱정해 주란 말 안하요. 나사 얻어를 묵든지 빌어를 묵든지, 내 기집하고 내 새끼 델꼬 사는 데까장 살 것인께, 제발 덕분에 모셔가시씨요. 아따, 나 참말로 어무니하고 뜻 안 맞아서 못 살겄소. 와하이, 빌어묵을 놈으 세상, 살먼 얼마나 산다고, 그냥 밤이고 낮이고 으등으등 짜고 볶으고 해싸는 것 참말로 못 견디겄소. 어무니만 모셔가뿔먼 나도 어디로 후딱 나가뿔라요. 이놈의 집구석 그냥 답답하고 울화중만 나싸서 못살겄어라우. 성님이 대문 안 달고 산다고 그래싸요 마는, 대문 달어놓먼 나는 그냥 숨이 칵 막혀 죽을랑가도 몰라라우. 일부러 안 달고 사요. 성님은 내 속 모를 것이시요. 누가 내 속 안다우?"

주만의 눈에 물이 가득 담기고 목이 메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재를 오르는데, 앞장선 사촌동생 영만이 주심의 죽은 내력을 이야기했다.

"그런께, 차암말로 작은 성님 속은 알다가도 모르겄어라우."

영만의 이야기는 주만의 꽉 막힌 듯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고 헐렁헐렁하기도 한 성미에 대한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소나무 숲길은 좁은 데다가 가팔랐고 돌 자갈이 많이 깔려 있어 미끄러웠으므로, 이 해변 지방 사람들의 말대로 (싸묵 싸묵) 오르거나 -깐닥깐닥- 올라야 했다, 나는 고향에 살면서 뼈의 마디가 굵어졌고, 그러는 동안 이 고개를 넘을 만큼 넘어본 터였으므로, 이 고개야말로 (깐다악 깐다악) 오르거나 (싸무욱 싸무욱) 오르거나 해야 한다는 것과, 그러면서 알맞게 호

흘을 조종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내 호흡은, 영만에게 알다가도 모르겠다니 무슨 뜻의 말이냐고 말을 재촉할 수 없는 정도로 가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되묻지 않고, 그저 그의 뒤를 따라 오르기만 했다.

"어째 그런가 모르겄어라우. 큰어무디가 없으면 작은 성님은 살림 못할 것이요. 그란디, 자꾸 광주 성님한테 안 가고 자기한테서 붙어살면서 자기 못 살게 한다고, 술만 묵으면 그냥 짜고 볶으고 해싼단 말이요. 그렁께, 그날 밤에도 그런 쌈만 안 일어났어도 이런 일이 안 벌어졌을란가도 모르지라우."

사흘 전 잿몰에 경사가 있었다고 했다. 거기서 종일토록 술을 마시고 해가 질 무렵에서야 들어오는 주만에게 어머니가

"남들은 발을 다 옳기고, 건장까지도 막어 놓고 해의 준비들을 하고 등산인디, 너는 멋하고 있냐? 제발 덕분에 속 조깐 채려라. 술 한 잔 얻어 마셨으면 얼릉 와서 내일 볼 일이제, 어째 속 창아지가 그 모냥이냐아."

하고 애닳은 소리로 꾸짖은 게 탈이었다고 했다.

경사집에서 무슨 일을 당하고, 어떻게 비위가 틀려 가지고 들어오던 판인지는 모르지만, 주만은 대번에

"속 창아지 좋은 사람 따러가서 살제 어짠다고 나 따러 살면서 그래싸요?"

하고 대든 것이었다. 어머니는 안방에 드러누워 있는 딸을 위해서 한사코 시끄럼 나지 않게 하느라고

"시끄럽다. 얼릉 느그 방에 들어가서 잠이나 한숨 자그라, 뵈기도 싫다."

했다. 그런데 주만이 안방 마루 앞으로 들어오면서

"짜잔한 놈은 술 한 잔도 못 묵고 살겄구만잉. 참말로 해도 너머나 하구마."

하더니 차분히 따지고 들었다.

"아니, 그렇게도 뵈기 싫소, 그렇게도 뵈기 싫어? 뵈기 싫으먼 뵈기 좋은 사람 따러가서 사씨요. 살어요. 나도 내 맘대로 할랑께 빌어묵을 놈으 세상, 앨탕잴탕 벌어 봤자, 애매한 놈들이 다 가져가고, 다 까묵어 뿔고--- 나도 인자 물컷 고만 뜯기고 살란께 모다 긁어 갖고 나가씨요."

그는 아주 마루에 걸터앉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놈이 필시 주심이한테 한약 한 재를 지어다 먹이고 있는 것을 두고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이놈아, 복자가리 떨지 마라. 시방 벌고 있는 논 여섯 마지기는 하눌에서 떨어진 것인 줄 아냐? 그것은 누가 사줘서 벌어 묵고 있냐 너 ?"

하고 주철이 쪽으로 이야기를 돌려 말을 하였다, 방안에 있는 주심이 혹시 마음을 곡히 먹을까 하여서였다. 주만이 지지 않고 대들었다.

"성님은 그 논을 공짜로 사준 것이요? 모두 내 등골 빼묵고, 어메 아베가 벌어 놓은 논 다 풀아 묵어 감스로 대학 다녔은께 당연히 사줘사 쓸 논을 사준 것이지라푸."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주만을 두둔하여 줄 수만은 없었다.

"느그 성이 논 다 폴아 묵었다냐? 느그 아부지가 병 들어서 너 마지기 폴아묵고, 느그 성은 남은 것 서 마지기 폴아 묵은 것밖에 더 있냐? 그래도 느그 성이나 된께 니모 반듯한 논을 사준 줄이나 알고 잠자코 있어라, 이 자석아."

하며 어머니는 주만의 가슴을 건너방 쪽으로 밀었다. 한데, 이놈이 어머니에게 밀려나가면서 마치 안방에 누워 있는 주심에게 들으라고 하기라도 하는 듯이

"논이고 밭이고 다 싫은께, 야문 사람 따라가씨요. 난 안 굶어죽고 살 것인께, 주심이랑 델꼬 나가씨요."

하고 소리를 질러댄 것이었다.

어머니는 주만의 등을 손바닥으로 쿵쿵 때리면서 건넌방으로 몰아 넣었다.

"입만 덮으고 살먼 졸 것인디, 어째서 입으로 복을 다 떠냐? 니가 누구 덕에 사는디 그래싸냐?"

애닳아빠지는 소리로 달래는 듯 꾸짖고, 꾸짖는 듯 달래 눕히고 안방으로 건너왔다. 그때 주심은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펄렁거리면서 답답한 가슴을 누르느라고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이 아이가 혹시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몰라 어머니는

"술 묵으먼 개보다 못한 사람인께 오빠 말 곡허 듣지 마라이."

하고 주심은 달랬다.

그러자 주심은 길게 한숨을 쉬면서

"내가 어째서 곡히 듣는단가?"

하였다. 그 말에 어쩌면 목울음이 섞여 있었다. 딸의 속을 하루에도 열 두 번은 더 들락날락하는 어머니가, 오빠의 말에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져 있는 딸의 속을 왜 모를 것인가. 어머니는 그 폭을 푸느라고

"아직은 살림을 내가 한께 꺽정 마래이. 누가 벨스런 소리를 해도 개 짖는 소리로 들어뿔고, 내 말만 들어라. 내가 기어코 병 낫게 해 줄 것인께."

하여 주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느그 오빠는 멋이든지 다 좋은디, 술 묵으면 저래싼 것이 깝깝하다. 어저께도 바닥에서 전어 새끼 다섯 마리를 갖고 옴스로, 너같이 아픈 사람한테는 성한 회가 좋닥 하드라고 기어이 너를 먹이라고 하드라, 보먼, 너를 얼마나 생각해 싼 줄이냐. 어쩌다가 술을 묵은께 저러제, 본심은 참말로 다시없는 사람이다."

하였는데, 이날 한밤중에, 주심이 집을 나가버린 것이었다.

어머니는 변소부터 가보고, 가슴을 덜컹하게 하는 집힘이 있어 헛간으로 가 선반을 더듬어 보았다. 거기에 이해에 쓰고 남은 농약을 얹어 둔 것이었다. 어머니는 주만을 뚜드려 깨우고, 미친 소처럼 작은 집으로 뛰어내려 갔다. 두 집 식구들이 한밤중부터 산과 들과 바닷가를 쓸고 다녔다.

주심을 찾은 것은, 그 아이가 마른 풀 위에 토해 놓은 핏덩이 같은 해가 소록도와 녹동 반도의 산 위로 떠오를 무렵이었다. 주심은 감맷골 아버지의 무덤 앞에 엎드려 있었다.

"아따, 못 보겄습디다. 큰 어무니가 어떻게나 울어싸시든지. 가슴을 두 주먹으로 쾅쾅 찍어댐스롬, 누구보고 하는 소린지는 몰라도, (워메, 워메, 이 잡년, 저만 살라고오.)하고 우는디, 눈 뜨고는 못보겄어라우. 시방까지도 큰 어무니는 입에 밥 한 숟가락 안 떠넣고 있어라우. 그 당신도 어짜먼 오래 못 사실 것 같어라우."

영만이 말을 마쳤다.내 가슴에, 어머니가 자기 가슴을 찍으면서 했다는 말이 뻐근하게 부풀어나고 있었다.

"저만 살라고, 저만 살라고오."

나는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흑회색 구름 덮인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겨울의 추위는 여느 해 보다 빨리 온 셈이었다, 늦은 봄의 장마비처럼 시작된 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이 며칠 사이 그 눈은 내려쌓인 것이 녹을 만하면 다시 내리고, 또 그것이 녹을 만하면 다시 내리곤 하고 있었다. 숲 사이로 보이는 그 흑회색의 구름장들도 분명 솜덩이 같은 눈을 가득 실었을 것이었다.

길 옆 골짜기의 솔두벙 사이를 두어 번 기어가던 장끼 한 마리가 나를 흘끗 보더니 푸르릉 날았다. 어느 풀섶에선가 자주빛 까투리 한 마리가 어린 양이라도 하는 듯한 날개짓으로 후루루루 뒤따랐다. 앙가슴을 찍으며 울부짖었다는 어머니의 얼굴이, 까투리 날아간 건넌산 언덕의 숲 위에서 떠올랐다.

"저만 살라고오, 저만 살라고오."

이 말의 뜻을 나는 알 수 있을 듯했다.

 

고향집 뒷산 언덕에는 계단식 밭이 있었다.

그것은 밭이라기보다는 김 건장을 세우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김 수확 시기가 아닌 때에는 거기에다 고추나 호박이나 고구마 등을 심었다. 그 계단식 밭귀나 언덕 밑 여기저기에는 건장에 쓰는 말목이나 이엉더미들을 비가 들지 않게 쌓아놓았는데, 그것은 얼핏 초분(草墳) 같았다.

산기슭의 고추밭 언덕 밑에 있는 건장 말목 더미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비스듬히 누운 채 밤을 새우곤 한 일이 있었다. 아홉 살 나던 해의 늦은 여름이었다. 낮에는 아직 따가운 볕이 남아 있는 듯하였지만 밤에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이 무렵, 아버지는 부엌 옆에 붙어 있는 골방 속에 들어 있곤 했다. 고구마나, 쌀가마니 따위를 넣어 두곤 하는 그 방은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곡간처럼 쓰고 있었다. 쥐들의 침입를 막기 위해 죽창살 뒤에 양철을 붙였으므로, 방안은 흡사 동굴처럼 껌껌하고 비좁고 습기가 많았다. 그 방에서 낮 동안을 내내 문둥이처럼 갇혀 지낸 아버지는, 날이 어두워지기가 무섭게 나를 데리고 뒤란 언덕을 올라서 산기슭 밑에 있는 말목더미 속으로 가곤 하였다. 나는 부엌 속의 동굴 같은 방안에 잠긴 어둠도 싫었지만 아버지와 나를 말목더미 속으로 몰아넣는 으스스한 어둠도 싫었다. 아기 돌무덤 투성인 서낭골 돌 자갈밭 주변의 소나무숲에서부터 흘러내린 그 어둠은 냇물 줄기를 타고 웃동네의 골목을 쓸고 도깨비의 다리처럼 기어들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내 말목더미 속의 이엉 자락에 묻힌 내 시야를 가리던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귀만 트였을 뿐이었다. 그 귀에는 피요옹 하는 소리, 끼룩끼룩 하는 귀뚜라미 소리, 아버

지가 이엉자락을 들썩거리는 소리만 들렸었다.

이 무렵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도무지 말이 없었다. 도대체 아버지는 왜 밤만 되면 나를 끌고 계단식으로 된 고추밭 언덕으로 가곤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히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앞장서서 계단식으로 된 밭둑을 기어올라간 뒤에 윗몸을 굽히고 내 손목을 잡아 끌어당겨 올리고, 다음 언덕을 또 먼저 기어오른 뒤에 나를 끌어올리고, 다음 언덕을 또 먼저 기어오른 뒤에 나를 끌어올리곤 하던 아버지의 숨결은 가라 있었고, 그 손은 뜨겁게 달아 있었고, 그리고 바르르 떨리곤 하던 것이었다.

쑥빛 제복에 장총을 멘 인민군들이 들어와서 사장에다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한 적이 있었다. 사장 나무꼭대기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온 마을을 울려댈 때였다. 그런 뒤로 삼철이네 아버지나 순회네 큰 오라가 붉은 완장을 차고 어디서 만들어 온 것인지는 몰라도 한 발만큼씩한 칼을 들고 다녔다. 아버지가 문밖 출입을 않기 시작한 것은 이때 부터였다. 그리

고 부엌 속의 골방에 틀어박힌 것은, 삼철이네 아버지와 순회네 큰오빠와 함께 회진을 갔다 온 뒤부터였다.

인민군들이 다녀간 열흘째 되던 날인가, 나는 사장에서 (아침은 빛나라) 어쪄고 저쩌고 한 노래를 배우고 들어왔다. 한데, 댓돌에 못 보던 검정 고무신 두 켤레가 놓여 있고, 안에서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주심을 업고 부엌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어머니는 내 손을 얼른 끌어다가 앞에 앉히고 금방 씻어놓은 생고구마 한 개를 잡혀 주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안쪽에 주만이가 눌눌한 코를 훌쩍거리면서 생고구마를 깨물어 먹고 있었다. 내가 고구마를 한 입 베었을 때

"어쩌든지 우리가 하자는대로만 하잔 말이시."

하고 여느 때 땍땍거리는 말소리인 삼철이네 아버지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 아버지의 걸걸한 말소리가 흘렀다.

"그런께, 내가 뭔 죄가 있는디 자수를 해사 쓴다는 것이여?"

대한민국 세상에 이장이나 어협 총대를 몇 년 한 것이 반동이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것이제마는, 성님은 브르조지라 자수를 해사 써라우."

순이네 큰오빠가 받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어이없다는 듯

"브르조지가 뭣이랑가."

하고 물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이어졌다.

"나보고 브르조아지라는 것인 모양인디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시. 농사 겨우 열 마지기 짓고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자본부고 지주란가? 내가 언제 영세 노동자 농민들을 상대로 돈놀이하고 소작 주고 살든가 ?,,,,,, 브르조아지라고 할라먼, 그래도 논이 한 오십여 마지기 이상은 되고, 그것을 소작으로 내주고 어쩌고 하는 시람이어사제, 안 그런가? 그런디 생각해 보소. 내 논은 겨우 열 마지기밖에 없네. 그러고 내가 뭔 일로 해서 언제 어떻게 노동자 농민들을 수탈했는디 반동이란가? 내가 이장하고 총대하느라고 안 데리고 살어도 될 머슴을 데리고 살기는 했네마는, 쇠경도 남보다 많이 줬으먼 줬제 작게 주지는 안 했네, 생각해 보소. 우리 동네가 워낙 가난한 동네라 그러제, 큰 동네 같은 데 내 놓으먼 중농(中農)도 못되네. 팔모로 생각을 해도 나는 자수해사 쓸 일이 없네. 이장 총대 함스롬도 공금에 혓바닥 한번 댄 일 없네."

"아따, 이 세상 되어 갖고 어떤 사람은 죄 있어서 자수한다우?"

순희네 큰오빠가 말했다. 큰 동네에서 내내 머슴살이를 하다가, 인민군들이 들어온 날부터 새텃몰로 와서 붉은 완장을 두르고 다니는 순회네 큰오빠였다.

"어쩌든지, 낼 아침에 우리랑 같이 가세."

삼철이네 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땍땍거렸다.

이튿날 아버지는 여느 때 잘 입지 않던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삼철이네 아버지하고 함께 하눌재를 넘어갔다. 삼철이네 아버지는 인민위원장이었다. 경비대에 간 큰아들 이철이가 여수반란 사건에 가담했다가 죽었기 때문에, 보안서에서는 그에게 그 자리를 준 것이라고 했다.

"나하고 같이 간께 걱정 마시요."

삼철이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귀엣말을 하여 주고 갔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날 밤에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 새때쯤해서 온 순회네 큰오빠가 어머니에게

"오늘밤에 거기서 주무실 것인께 밥이나 조깐 갖다가 드리시요."

하고 갔다, 어머니는 한재산 머리에 해가 걸렸을 때, 저녁밥을 차려 우리에게 주면서 어서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내 귀에다가

"아버지한테 밥 얼른 갖다가 주고 올 것인께 주만이 하고 큰방에서 문 꽉 잠그고 자고 있거라잉."

하였다. 나는 가슴이 덜커덩했다. 상여귀신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변소에는 상여가 있었다. 아버지는 몇 해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관을 내갈 때 상여를 만들어 쓰고 그걸 태우지 않은 채 변소에 두고 있었다.

호철이네 할머니나 죽었을 때도, 길호네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먼지 허옇게 앉은 상여 궤짝을 내 주었었다. 어머니는 더러운 상여를 태워버리지 않는다고 야단이었지만

"불쌍한 송장들 내가는디 조간씩 갖다가 쓰라고 하면 좋제 어째?"

하고 빈 코를 훌쭉 마셨었다.

동네 아이들은 밤에 우리 집 변소에서 상여귀신이 난다는 말들을 했다. 장 마중을 가느라고 우리 집 모퉁이를 돌아가다가 상여 내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길호는 말했었다.

주심이를 등에 업은 어머니가 밥 바구니를 가지고 한재 고개를 넘어갈 때, 그 한재 고개 위의 비늘구름에서부터 물들기 시작한 핏빛 노을은 순식간에 우리 집 마당과 지붕을 벌겋게 색칠해 버렸다. 어쪄면, 어머니는 벌겋게 타는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노을이 걷히면서 땅거미가 기어들었다. 나는 대문을 잠그고 주만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비야, 주만아, 얼릉 잠자뿔자, 귀신 나온다. 어비야아."

홑이볼을 뒤집어쓰고 아랫목에 누워버렸다. 눈이 큰 주만은 겁이 많은 아이였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숨을 죽였다.

새벽녘에 깨어 보니, 어머니가 주심을 껴안고 자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어슬어슬한 때에 일어난 어머니는 부산나게 밥을 지었다. 주만과 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밥 바구니를 들고 나섰다. 한낮때쯤 해서 종잇장같이 핏기 없는 얼굴로 돌아온 어머니는 또 밥을 싸가지고 한재고개를 넘어갔다.

이날 밤, 내가 잠을 깬 것은 아버지의 앓는 소리를 듣고 였다. 아버지는 아랫목에 번듯이 누운 채 앓고 있었다. 그 앓는 소리는 묘하게도 중천장과 바람벽과 방바닥을 룽쿵 울리고 있었고, 동시에 내 가슴을 쪄릉쩌룽 울려놓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머리맡에서 약을 짜고 있었다. 생지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석에서는 석유 등잔불이 야울거리고 있었고, 그 밑에 그려진 검은 그림자는 방바닥에 뻥 뚫어진 구멍처럼 검고 깊어 보였다. 나는 일어나 앉으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찌푸려져 있었다, 숨이 막히는지 몰랐다. 내 가슴에 멍멍한 답답함이 등잔불 밑의 검은 그림자처럼 잡히는 것 같았다. 어깨를 젖히면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버지 옆으로 기어가서 앉았다. 아버지는 내 손목을 꼭 쥐었다. 그 눈시울이 등잔불 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숨결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흐흐흠-하고 거칠게 빨아들이는 숨결을 따라 아버지의 콧구멍은 꺼멓게 커지고 있었는데, 그 속으로 등잔불 밑의 검은 그림자가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튿날, 어머니는 빈 병에다가 솔잎을 쑤셔 막고, 필게 노끈을 매달았다. 병에 돌을 달아 가지고 변소 통 깊숙이 넣었다, 끈 끝을 발디딤 널빤지 모서리에다가 묶어 두었다. 이날 저력부터 나는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이 라든지-카츄사가 보호오하리)라든지 하는 노래를 배우러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이를 문 채 눈을 부릅뜨고 못 나가게 하던 것이었다. 나는 몹시 지리했지만, 변소에서 건져낸 병 속의 노르끼한 물을 딸아 마신 아버지 옆에서 눈을 껌벅거리고 있다가 잠들곤 했다.

아버지가 혼자서 변소 걸음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였고, 바로 그날 저녁 무렵에, 삼철이네 할아버지가 집엘 왔었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와 혀를 맞물고 살다시피 한 분이라고 했다. 삼철이네 할아버지는 횐 수염 속에 찌른 담뱃대를 후들후들 떨면서 아버지가 누워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상대는 되지 않지만 심심풀이 삼아 주만을 대리고 딱지치기를 하던 나는 그 할아버지 뒤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나를 나가라고 했다. 나는 툇마루에서 딱지를 세는 척하며 방 안으로 귀를 기울였다. 삼철이네 할아버지가 무어라고 속삭여대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 삼철이네 할아버지는

"나 가네, 내 말 깊이 알아듣소잉."

하더니, 휜 수염 속에 담배 물뿌리를 묻고 나왔다.

아기의 돌무덤 투성이인 서낭골의 돌 자갈밭 주변의 솔숲에서 기어내린 어둠이 우리 집 부엌이나 마루 밑이나 변소로 까맣게 밀려들면, 아버지가 나를 끌고 뒤란 언덕을 올라 산기슭 밑의 건장 말목더미 속으로 가서 밤을 새우곤 한 것은 바로 이날 밤부터의 일이었다.

아버지와 내가 그리로 가서 밤을 세운 첫날밤에, 기막힌 일이 하나 벌어졌었다고 훗날 어머니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주만이 잠든 것을 보고, 주심을 등에 업었다. 대나무 몇 개가 있는 뒤란의 언덕 한 계단을 올랐다. 언덕 위에는 땔나무 더미가 있고, 거기에 대붙여서 깻다발을 쌓아두었다. 어머니는 그 깻다발과 땔나무 더미 사이로 들어갔다. 안방에 뉘어 둔 주만이가 못미더운 것은 물론, 등에 업은 아기도 아기이고, 도둑이 들까 무섭기도 하여, 멀리 피신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깻다발을 내려 앞뒤를 막아 쌓고, 대나무 숲 사이로 대문과 마당이 보이도록 구멍을 하나 뚫어 놓았다. 그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깻다발 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달이 뜨려는지 동녘 하늘이 부옇게 밝아 왔다. 아래촌 사장거리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날 밤에 반동자 숙청을 하기로 했다는 삼철이네 할아버지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머리끝이 곤두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윽고, 웃골목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두어 차례 들리는가 싶더니 대문이 삐그덕거렸다. 잠시 두런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담을 뛰어넘는 소리가 들렸다. 대나무 숲 사이로 부옇게 드러난 마당에 시꺼먼 그림자 하나가 들어섰다,

등에 업은 주심이 칭얼거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였다. 어머니는 황급히 주심을 등에서 가슴 쪽으로 돌려 안고 젖을 물렸다. 젖을 물고도 아기는 발을 뻗디디며 낑낑거렸다. 벌레라도 물렸는지 몰랐다. 마당에 들어선 그림자는 방문 앞으로 갔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부엌문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기는 그래도 낑낑거리며 발을 뻗디었다. 검은 그림자가 변소를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손바닥으로 아기의 입을 막았다.

아기가 숨이 막힌 듯 허위적거렸다. 보료 자락을 가져다가 아기의 얼굴을 감쌌다. 그때 그림자는 뒤란으로 돌아와 장독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동안 부엌 뒷문 옆에 서서 두리번거리던 그림자는 마당으로 나가 가지고 담을 넘어갔다.

새벽녘에 내려온 아버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말없이 한숨을 쉬기만 했다. 어머니는 가슴이 후들거려 도저히 살 수 없다면서

"배 타고 어디로 도망가뿔거나 어짜거나 합시다."

하고 안달을 했다. 아버지는, 가면 어디로 갈 것이냐고 다시 한숨만 쉬었다. 어머니는 섬 같은 데로 가면 될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아버지는 도리질만 했다.

이날 낮 내내 아버지는 골방 속에 묻혀 기침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있다가, 아기 돌무덤들 투성이인 서낭골의 돌 자갈밭 주변 소나무 숲에서부터 밀려든 어둠이 우리 집 헛간과 부엌 속에 까맣게 들어찬 뒤에 내 손을 끌었다. 뒤란의 대나무 숲 언덕을 타고 산기슭의 고추밭 언덕 밑 건장 말목더미로 갔다.

우리 집이 불타버린 것은 이날 밤의 일이었다. 집에 불을 질러 놓으면, 근처에 숨어 있는 아버지가 나타날 것이라 하여, 잿몰과 새텃몰의 세포위원들이 그랬다던 것이었다.

어머니가 여느 때 발을 구르면서 이를 갈고 가슴 아파하는 것은 불이 붙은 직후의 일이었다. 그날 밤, 어머니는 잠든 주만과 주심을 나란히 아랫목에 눕혀 두고 홀몸으로 나왔다고 했다. 전날 밤에 주심이 칭얼거리는 바람에 혼장이 났었으므로였다.

뒤란 언덕을 올라서 땔나무더미와 깻다발 더미 사이로 들어갔다. 검은 그림자들이 지나간 뒤에 집안으로 스며들어갈 셈으로였다.

한밤중쯤 해서 달이 떴다. 소록도와 고흥 반도 앞 바다에는 은물결이 일렁거리고 있었지만, 새텃몰은 앞산 그늘에 거멓게 잠겨 있었다. 검은 그림자들 대여섯이 담을 넘어온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림자들은 계각기 흩어져서 헛간, 부엌, 안방, 마루문들을 우당탕퉁당 여닫으며 들락거렸다. 어머니는 가슴이 흠칠하면서 아렸다. 안방에 눕혀 둔 두 아이 때문이었다. 검은 그림자들이 그 아이들의 멱을 짓밟아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눈을 감모 두 손을 비볐다. -하눌님네, 하눌님네-하고 속으로 무수히 부르짖었다.

문 여닫는 소리가 그치더니, 검은 그림자들이 뒤란에서 앞마당으로, 앞마당에서 뒤란으로, 부산하게 뛰어 돌아다녔다. 순간, 어디선가 구르릉거리는 군함 소리 같은 것이 들려 오는 듯했다. 군함에는 순경들이 타고 있을 것이고, 순경들이 들어오기만 하면 살아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경황에도 코 끝에 석유 냄새가 맡아졌다. 소록도와 녹동 반도 근처의 은빛 물결 위에 씨꺼먼 물체가 떠오는 듯했다. 웬 석유 냄새일까. 군함이 온다고 여기까지 석유냄새가 날아오는 것일까. 그러나 그걸 따져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저 (하눌님네)를 속으로 불러대면서 손을 비비기만 했다. 훤떡하는 불길이 온 지붕에 붙어버린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횃불을 든 남자 하나가 처마 끝에 불을 붙이면서 뒤란으로 달려왔다.

불은 부엌의 땔나무에서도 타고 있었고, 마룻장에서도 타고 있었다, 두 아이가 자고 있는 방문의 창호지와 대오리 문살에서도 탔다. 동시에 깁을 찢어대는 듯한 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불이여어! 하고 소리치면서 언덕을 뛰어내렸다. 그러나 소리는 목에 걸려 나오질 않았다.

"웨메 웨메 내 새끼들 어째사 쓸꼬."

어머니는 죽기 살기를 무릅쓰고 뒤란에서 앞마당으로 갔다. 그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담을 넘어 들어오더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남자들에게 귀엣 말을 하여 주고 도망치듯 담을 넘어가 버렸다. 불을 지른 그림자들이 그 뒤를 따라 담을 넘어가 버렸다.

어머니는 불타는 대오리 문살을 뚫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메에! 하고 울어대던 두 아이는 뛰어들어 온 어머니를 보고 질겁을 하며 -으악! 소리를 지르고 방구석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어머니는 두 아이를 끌어안고 밖으로 나왔다. 주만이는 (어매에)하고 소리지르면서 발버둥쳤고, 주심은 숨이 딸꾹 멈추고 말 정도로 (으악으악)하는 소리만 질러댔다. 그러면서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아이들만 달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두 아이를 대문간에 내려놓고, 살림살이 하나라도 끌어내자 하며 툇마루 앞으로 갔다. 불 길이 마루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뛰어내려왔는지, 아버지가 어머니를 끌어냈다.

", , 무을!"

하고 소리치면서 뒤란으로 돌아갔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물 한 바가지라도 끼얹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를 뛰따라 뒤란으로 갔다.

내가 말목더미 속에서 (불이여어) (사람살리시요오)하는 여자의 부르짖음에 잠을 깬 것은 이때였다. 잠을 깨면서 나는 그게 바로 어머니의 목소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더듬어 보니 밀집 이엉에 비스듬히 등을 기댄 채 누워있어야 할 아버지가 없었다. 내려다보니 우리 집에 볼이 붙어 있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버리적거리는 주만과 주심과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아부지이. "

나는 울면서 언덕을 뛰어내렸다. 내가 우리 집 뒤란의 언덕 위까지 내려갔을 때, 집 주위는 대낮같이 밝았다. 뒤란의 우물에서 물을 퍼 가지고 지붕 위로 끼얹어대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였다. 그 옆에서 어머니가

"불났네에."

하고 피맺힌 소리로 을부짖어대고 있었다. 그 소리와, 주만과 주심의 울음소리가 엇갈려 들려왔다. 주안과 주심이 불 속에 있다 싶었다. 대나무 숲에서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앞마당으로 달려가 보니, 주만과 주심이 대문간에서 한데 엉긴 채 벌벌 떨면서 악을 쓰고 있었다. 주심을 등에 업었다. 주심은 내 등에 찰거머리같이 엉켜 붙었고, 주만은 내 다리를 붙잡은 채 악을 써댔다.

"어메에."

"으악. 으아아."

그것은 울음이 아니라, 칼끝이 가슴속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질러대는 단말마의 비명 같은 것이었다. 나도 지붕 위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면서 악을 쓰고 울었다.

방과 마루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검은 연기와 불덩이의 혀끝이 툇마루 쪽으로 기어 나오는가 싶더니, 지붕머리에서 우지직 소리가 들리고, 그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순간, 지붕이 푹석 내려앉았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활활 타는 불 소리가 가슴을 흔드는가 했다. 이때, 주만과 주심은 거의 동시에

"으아악."

하고 악을 쓰면서 나를 끌어안은 채 몸을 떨었다. 그것은 어쩌면, 힙센 손으로 목줄을 비틀 때 닭이 질러대는 소리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불길처럼 술렁거리면서 벌벌벌 타오르는 가슴을 안은 채 얼핏 현기중과 구역질을 느끼고 몸을 떨기만 했다. 소리쳐 울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가슴속에서는 울음이 흘러나와 주지를 않았었다.

 

어머니가 언젠가

"주만이하고 주심이는 꼭 내가 병신을 만들어뿐 것 같어야. 문 창살에 볼이 확 붙어 갖고 벌벌 타는 통에 잠이 깨갖고는 그냥 얼마나 놀랬는가 몰라야. 틀림없이 그때, 광증(狂症)이 섣들린 것만 같단 말이다."

하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주심이 죽자, 어머니가

저만 살라고오."

하고 올부짖어댄 것도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소리일 것이었다.

재 꼭대기에 올랐을 때, 내 등에는 땀이 촉촉하게 젖었다.

"조금 쉬어 가라."

내 말에, 영만도 덥고 다리가 팍팍한 모양으로 소나무에 지게를 기대놓고 마른 잔디 위에 앉았다.

숲 사이로 새텃몰의 집들이 내려다보였다. 슬레이트지붕을 얹은 집들이 몇 채 보였다. 마을에서 앞메 잔등으로 넘어가는 실뱀길이 주위의 거무칙칙한 논바닥들을 젖히고 구불구불 뻗혀 있었다. 앞메 잔등 너머로는 바다였다. 하늘의 흑회색 구름 빛을 닮아 허여멀쑥한 바다는 바래진 잉크 빛 소록도와 녹동 반도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마을의 맨 위쪽에 있는 동생의 집을 바라보았다. 검정 코울타르를 칠한 양철 지붕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집 뒤에는 계단 같은 언덕들이 산기슭으로 이어져 있었고, 눌눌한 밀대 건장들이 계단처럼 층이 진 그 언덕에 틀어서 있었다. 김이 널려 있는 건장은 없었다. 본격적인 김 수확이 시작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직, 농생네 집의 뒤란 언덕에만 건장이 막혀 있지 않았다.

김 건장에서 김을 벗기고 있는 주심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주심은 추위를 많이 탔다. 어느 해던가, 한겨울에 왔을 때, 주심은 하얀 털수건으로 목과 머리를 감싼 채 김을 벗기고 있었다.

원래, 시집을 보내지 말았어야 할 주심이었다. 자리에 누우면 자꾸 한숨을 쉬고, 엎치락뒤치락하기만 할 뿐 깊은 잠 한번을 들지 못한다던 주심이었다.

"어무니, 나 절로나 보내 주소."

이 소리를 어머니한테 한두 번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소리를 할 때마다 펄쩍 뛰면서 주심을 달랬다,

"이 아그야, 그것이 먼 소리냐? 니 병 낫어주깨 걱정 마라. 중질하는 세상이 세상이라냐?"

어머니는 주심의 가슴 후두둑거리멸서 잠 못 드는 병에 좋다는 약은 다 구해다 먹였다. 단방약은 말할 것도 없고, 내덕도 안팎의 한약방들에서 권하는 약만 해도 그 사이 백 여 재는 달여 먹였다. 그러나 주심의 병은 좋아지는 것 같지가 않았다. 비 올 바람이 불면서 구름발이 내달리거나, 기압이 낮아 안개 자욱하거나 하는 날엔 가슴을 두드리면서 답답해하기도 하고, 괜스레 방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마당으로 왔다 갔다 하였다. 심한 때는 냇가로 휭 나가서 논두렁길을 밤새 걸어다니거나. 바닷가로 나가 모래밭을 걸어다니거나 하다가, 새벽녘에 옷자락에 이슬을 묻혀 가지고 들어오고기도 했다.

내가 제대를 해 나왔을 때, 좋다는 약 다 구해다 먹여 보고, 침 잘 놓는다는데 다 쫓아다니면서 부드러운 몸뚱이 여기저기 침을 꽂을 만큼은 다 꽂아 본 어머니는, 이제 자기의 요량으로썬 주심을 다시 어디로 어떻게 데리고 가서 병구완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이때껏 쉬쉬하며 약 써오던 말을 하였다.

나는 급한 대로 주심을 광주의 전남대학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접수를 마치자, 엑스선 촬영, 피 검사, 소변 검사 등을 하게 한 다음 욋과로 불러들였다. 오목 가슴이 아프다고 하고, 잠을 자려고 하면 시꺼먼 것이 나타나서 목을 죄어대는 것 같다고 하고, 어쨌든 잠을 자려고 눈을 감기만 하면 가슴이 벌떡거리면서 밖으로 우르르 뛰어나가 돌아다니고 싶어진다고 하는 주심의 말을 들은 의사는

"심장은 어떤 사람 것보다 건강합니다. 심장병은 아니니까 일단 안심하십시오. 회충이 많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만 구제하면 되겠어요. 당분간 안정을 하면서 이 약을 복용하십시오."

하고 처방을 하여 주었다. 병원을 나와서 약방에 가 알아보았더니, 안정제와 비타민 계통의 약들이었다. 한 이십 일분을 더 지어 가지고 내려보냈다. 취직 때문에 나는 광주에 더 머물러야 했었다. 이때 이웃 마을에서 중매가 들어왔으므로 어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주심을 부지런히 들쑤셨던 모양이었다. 주심도 병원에서 가져온 안정제와 영양제를 복용하면서부터는 가슴이 차분해지는 것 같던지, 어머니가 그렇게도 애닯아하며 소원하는 시집이니 가놓고 보겠다면서 허락을 했던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잃은 딸을 되찾았다면서, 딸한테 해주어야 할 품목들을 갓 취직한 나한테 주문을 해 왔었다. 재봉틀, 라디오. 장롱, 화장대, 찬장,,, 당시 시골에서 어지간하게 잘 사는 사람 아니고는 엄두도 못 낼 것들을 모두 마추어 주거나 사서 주거나 했었다.

어머니는 적어도, 주심이 시집을 가서 남자를 알게 되고, 그리고 남자와의 성생활이 원만하기만 하면, 가슴이 후두둑 뛰는 증세 같은 게 점차 없어지리라 했던 것이었다. 대개, 처녀 시절에 실성기(정신이상 증세)가 있었던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는 전혀 그런 증세가 없어전버린 경우를 더러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심의 경우는 달랐다. 첫아기를 가지면서 입덧이 나자, 전에보다 더 심하게 가슴 울렁거리는 중세가 일어난 것이었다. 어느 날 밤, 느닷없이 주심이 친정으로 달려와 버렸다. 이젠 안정제를 한꺼번에 세 알 네 알 먹어도 잠들 수가 없게 뒨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두 달만에 유산을 한 모양인데, 그런 뒤로는 몸이 더욱 밭고, 가슴 후두둑거리는 증세는 더 심해졌던 것이었다. 그 뒤로 시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오기 다섯 해였다.

동생네의 대문은 아직도 털어진 채였고, 거멓게 그을은 부엌은 동굴 속처럼 휑하게 뚫려 있었다. 그 부엌안에서는 땅달막한 주만의 부인이 껑충하게 큰 영만의 부인과 함께 밥짓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궁이의 불에서 피어난 연비와 솥에서 솟은 김이 한데 어울러서 동굴 같은 부엌문 앞의 처마를 타고 검은 슬레이트 지붕 위로 기어나가고 있었다. 대소가 사람들 대여섯이 마당에서 널 얽을 새끼를 로고 있었다. 동생부부가 거처하는 부엌 건넌방 댓돌에는 회고 검은 고무신 여남은 켤레가 놓여 있었다. 대소가 어른들이 모여 장례 치를 의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들어서자, 마당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아따, 싸게는 왔네."

하기도 하고

"직행 뻐스 타고 왔제?"

하기도 했다. 그들은 내 당숙뻘이 되거나 형제뻘이 되거나 하는 사람들이었다.

안방으로 들어서자 아랫목 바람벽에 등과 뒤통수를 기댄 채 맥을 풀고 있던 어머니가 일어나 앉으면서 새삼스럽게 널을 두드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어따 이년아, 주심아, 느그 큰오빠 왔단다아."

하고 목을 놓더니, 자기 가슴을 두드리면서

"어따 어따 죽일 녀언, 저만 살라고오."

하고 울부짖었다. 나는 가슴이 막혀 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작은어머니가

"너무 울어 쌓지 마시요. 가는 길이나 편히 가라고."

하고 목 메인 소리로 어머니를 달랬다. 주만이 술 냄새를 풍기며 끙 하고 안간힘을 쓰고 들어와서 퉁명스럽게

"뭣하게 울어싸요? 우리 주심이는 잘 죽었어라우."

하더니 내 손을 끌었다. 건넌방에서 어른들이 얼른 와 보라고 한다는 것이다.

내 인사를 받고 난 당숙 뻘되는 어른은

"불쌍하기는 하다마는 어쩔 것이냐, 할 수 없다. 사실은 아침나절에 장사해뿔라고 했는디, 한사코 느그 어무니가 하룻밤 더 새드라도 너를 기다리자고 해싸서, 그냥 이래 놔두고 있다. 그런디 어쩔래, 하룻밤 더 놔두먼 뭣한다냐? 준비는 다 됐은께 조깐 저물드라도 얼릉 치상쳐 뿔자."

하고 말했다. 옆에 앉은 어른들이 모두 그 말이 옳다고들 했다. 팔뚝에 찬 시계를 보니 네 시가 가까워 있었다.

상여도 없는 주심의 허연 관은 뒷산을 올라서 산굽이 둘을 돌았다. (조심하소)하고 선소리를 하면 관을 멘 상둣군들이 (어라 넘자) 하고 메겼다.

"곱게 모시소, 어라넘자, 앞에는 높이고, 어라넘자, 뒤에는 낮추고, 어라넘자, 곱게 모시소, 어라넘자,,,,,,"

주심의 관이 산등을 넘어갈 때부터, 흑회색 구름장 깔린 하늘에선 꽃송이 같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하얀 눈송이는 민틋한 관 위에 꽃으로 덮이고 있었다.

장지는 감맷골의 아버지 무덤 아래쪽 기슭의 소나무 숲 속으로 잡았다.

장례는 눈발이 스적스적 내려쌓이는 속에서 조용히 치러졌다.

무덤을 다 만들고 났을 때, 온 산은 하얀 보료에 쌓인 듯 눈에 덮여 있었다. 소나무 잎사귀에는 집어먹고 싶도록 탐스런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아직도 함박 같은 눈은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를 내면서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한데, 눈 강인 산길을 영만이 들고 은 남폿불을 따라 집에 돌아와 가지고 떨떠름하고 시끄러운 일이 하나 생겨버렸다. 장례를 치르고 온 대소가 사람들이 건넌방에서 저녁밥에 술들을 걸치고 돌아간 뒤였다.

마당에는 쌓인 눈이 어둠을 어슴푸레하게 눅이고 있었고, 눅여진 그 어둠 속에서 눈은 내려쌓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방바닥을 치면서, 눈 속에 버린 딸의 불쌍한 정상을 울고 있었다. 사촌인 영만의 부부는 웃목 구석에 앉은 채 코가 빠져 있었고, 작은어머니는 어머니 옆에 앉아 연신 흐르는 물코를 풀어다가 버선 발바닥에 씻고 있었다. 주만의 부인은 영만의 부인 옆에 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 가끔 눈물을 쪘어내고 있었다. 나는 이들을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까만 그을음 범벅이 된 남폿불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 불은 바람벽을 흐릿하게 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방바닥에 앉은 식구들은 그 남폿불의 검은 그림자 속에 잠겨 있었다.

이때, 술에 떨어져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주만이 소주병과 사발 한 개를 들고 건너왔다. 상둣군들이 다 비우지 못하고 간 소주를 그새 흔자서 마시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들고 온 한 되들이 삼학 소주 병에는 아직도 술이 두 홉은 더 담겨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들어서서 남폿불 밑에 틸쌕 앉았다. 끙하고 안감힘을 쓰더니

"어무니, 고만 우시요. 우리 주심이는 잘 죽었어라우."

하고 사발에다가 소주를 그득 따랐다. 버릇이 없었다. 어머니와 형님 앞에서 어려운 줄을 모르니 말이었다. 그러나 꾸짖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놈 덕에 대학까지 다닐 수 있었고, 이놈은 내 뒤를 대느라고 국민학교 사 학년에 다니다가 중퇴를 했기 때문이었다. 못 배웠으니 버릇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술이 취해 있으면서 술병을 들고 나대는 게 보기 싫었다. 나는 안주도 없는 술을 누구에게 권하려고 그렇게 가득 따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만은 구석에 엇구수하게 앉은 영만을 향 해

"한 잔 할랑가?"

하고 물었다.

영만이 싫다고 하면서 구석으로 얼굴을 돌렸다. 주만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형님, 한 잔 드시씨요."

하고 나를 향해 사발을 내밀었다. 나는 퉁명스럽게

"여기 술 마실 사람 없다."

하고 말했다.

"놔두시요. 내가 마실라우."

주만은 고개를 푹 떨어뜨리면서 사발을 들었다.

안주도 없이 뭔 술을 그렇게 마셔쌓냐?"

나는 주만의 손에 들린 술 사발을 잡았다.

"괜찮해라우, 걱정 마시씨요."

하더니 주만은

"빌어먹을 세상, 살면 얼마나 산다우?"

하며 내 손을 떼어냈다.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쁜 얼른 술병을 들어 서 영만에게 건네었다.

"술하고 웬수졌냐 어쨌냐?"

하고 주만을 꾸짖은 다음, 영만에게

"저리 내다놔라."

하였다, 영만이 술병을 마루로 가져다 두고 왔다. 그러자 주만이 나를 노려보면서, 왜 자기 속을 모르고 그래쌓느냐고 하더니

"나는 술 없이는 못 살어라우, 참말로 못 사요."

하고 말했다.

"어째서 술 없이는 못 살어야. 계발 너 생각해서 늙은 말년까지 이 고생 하시고 살고 계시는 어무니를 생각해서라도 술 좀 참고 살어라. 술 그것을 못 끊냐?"

나는 꾸짖는다거나, 타이른다거나 하는 말투가 아닌, 통사정을 하는 듯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만이 벌겋게 핏발선 눈을 들어 나를 보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성님, 지 말씀 잘 듣고, 꼭 그대로 해주씨요. 제발, 장개들어 갖고 어무니 조간 모셔 가시씨요. 나는 어무니 땀시 못 살겄어라우. 제발 조깐 모셔 가시씨요. 나 걱정 해주란 말 안 하요. 나사 각시하고, 내 내 밑에 딸린 새끼들 델꼬 어떻게 살어가든지 살아나갈 것이요."

그러자 작은어머니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한마디 하겠다고 하고 나서,

"주만이 너는 아뭇소리 말고, 어무니가 하자고 하는 대로 하고 살어라. 너는 느그 어무니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돼야. 너 혼자서 미역 발을 미역 발답게 막고 살 것 같으냐, 해웃발을 해웃발답게 막어 묵고 살 것 같으냐, 농사를 농사답게 짓고 살 것 같으냐?"

하고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따라서

"정말로, 너 소갈머리없는 것으로 봐서는 어무니를 당장에 모셔가뿔겄다마는, 어무니를 생악해서, 어무니 뜻대로 시방 내가 놔두고 있는 속이나 알어라. 내 말 알어듣겄냐?"

하였다. 그러자 주만이 핏발선 눈으로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더니

"말을 꼭 해사 알겄소?"

하고 목멘 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더니 어머니를 향해

"어무니, 제발 성님 따러가서 사써요. 나도 논밭 팔아 갖고 어디로 훌훌 날어댕김스롬 죽든지 살든지 할라우. 뭔 말인지 알겄소?"

하었다. 방안에 앉은 사람들의 눈길이 주만의 얼굴로 몰려들었다. -그것을 말이라고 하고 있느냐?-하는 눈들이었다.

어머니가 모기 같은 소리로 나를 향해

"큰 아그야, 이 아그 말을 말로 듣지 마라이."

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주만이 검정 갯두루마기의 고름을 우두둑 뜯어 헤치고, 잿빛 내외 입은 가슴을 어머니 앞에 내보였다. 내의 단추를 주루룩 뜯었다. 허여멀쑥한 살이 드러났다.

"여그 조간 보시요."

목이 멘 소리로 말하면서 방안에 앉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슴을 보였다.

그의 핏발선 눈에 물이 가득 담기어 있었다.

"우리 주심이는 잘 죽었어라우. "

그는 끄윽끄윽 울고 있었다. 그을음 범벅이 된 남포등에서는 언제부턴가 쇠애 하고 기름 빨아을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으스스한 귀기 서려 있는 바위굴 같은 시꺼먼 부엌에서 흐물흐물 부풀어나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부엌으로 통하는 문의 창구멍을 통해 남포등 밑으로 뽑혀 나오는 소리만 같았다.

"이것 그냥 칼로 짝 쪘어 갖고 까서 보여 줄 수 있는 것 같으면, 조깐 활딱 까 갖고 보여 져뿌렸으면 시원하겠구만 그냥."

기막혀 죽겠다는 듯이 하는 그의 말에 방안의 식구들이 멍해졌다.

"어따 어메, 죽일 녀언 저만 살라고오."

어머니가 갑자기 숨이 막히기라도 한 듯 자기 앙가슴을 쿵쿵 두드리면서 허물어지듯이 웃몸을 바람벽에 기댔다. 밖에는 쌀인 눈이 어둠을 어슴푸레하게 눅이고 있었고, 그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눈은 소복(素服)한 여인의 치맛자락 스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계속 내려 쌓이고 있었다.

 

 

 

 

 

 

 

 

 

 

 

 

 

 

 

 

한승원

 

성림산 모퉁이의 기찻굴에서 열차에 깔려 죽은 사람이 매형인지 아닌지 좀 보아달라고 누님한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그 해 늦은 겨울의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다.

그날은 퇴근길에 본 노을부터가 묘했다. 그것은 광천동 뒷산 마루에 얹힌 한 무더기의 비늘구름 속에서 붉게 타고 있었다. 어쩌면 도축장의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피가 튕겨 번지듯 구름 조각들의 언저리마다 진하게 묻어 타던 것이었다. 비늘구름 떠 있지 않은 하늘은 꽃자주에 연분홍을 묽게 탄 물감을 화선지에 고루 칠해 놓은 것처럼 번져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직장인 금성 중학교의 교문에서 서편으로 뚫린 포장 안 된 길을 타고 집을 향해 걸으며, 내내 그 피 같은 노을을 얼굴과 가슴으로 받아야만 했다.

집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내가 없는 새에 묘한 일이 하나 벌어져 있었다.

내가 우리 집의 목제 대문 앞에 이르러 초인종 단추를 눌렀을 때는 땅거미가 벌써 눈앞을 막아섰다. 오래 전에 칠한 살색 페인트가 벗겨져 얼룩덜룩한 대문의 나뭇결이 보얗게 흐려 보였다. 고개를 쿡 떨어뜨린 채 한참을 기다렸을 때에야 문을 열어 준 아내가

"개 좀 봐보시요, . 오늘 아침에 당신 막 출근한 뒤부터 저러요."

하고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변소 옆 담벽에 붙어 있는 개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어째서?"

나는 우뚝 발을 멈추면서 아내의 땅거미 묻은 얼굴을 바라보고 힐책하듯 물었컸다. 아내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어둠 가득 찬 개집을 들여다보았다. 멍청한 것이 주는 밥 잘 먹고 살이나 많이 찌지를 않고 무슨 병치레를 한다고 한다는 말인가. 개는 값이 많이 나가는 세퍼트나 진도개나 토사견이나 포인터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애완용으로 키우는 스피츠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른 봄쯤 해서 살 올려가지고 노병을 시름시름 앓고 계시는 장인 어른과 함께 개소주나 내려 먹을까 해서 키우는 재래종 거멍개였다. 때문에 나는 오히려 더욱 개운치 않은 생각에 몰려야만 했다.

지난 가을에 아내가 개백정한테 시켜서 처치해 가지고 개소주를 내려오도록 하자고 했었다. 그러나 그 때는 그놈이 아직 어린 데다 야위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내가 그걸 이른 봄으로 미루자고 우겼었다. 그게 잘못이었던 듯싶었다. 개소주를 내려서 드리기만 하면 자기 친정 아버지가 노병을 씻은 듯 떨고 일어날 수 있으리라 하는 생각을 하여 오는 아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차하다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쩔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글쎄, 뭣을 잘못 먹었는지 어쨋는지,,,,,,, 저 보시요, ."

아내는 개집 앞에 쪼그리고 앉으면서 말했다. 개의 집 안에는 진한 먹물 같은 어둠에 들어앉아 있었다. 그 어둠 때문에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는 그 안을 들여다보면서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다가 손을 까부르면서

"꺼멍아"

하고 불렀다. 검정에 밤 빛 털을 알맞게 섞어 갖춘 개는 짙게 깔린 땅거미 속에 숯검정 같이 검은 모습을 굼뜨게 드러냈다. 개집 속의 먹물 같은 어둠을 온몸에 묻혀 가지고 나오는 듯싶었다. 아내 앞으로 두어 걸음 어슬렁어슬렁 다가가더니 마당 한가운데 선 내게로 오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흔들리는 꼬리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듯 뒷다리를 비틀했

. 동시에 목뼈가 부러진 거위처럼 고개를 벗등하게 모로 틀어다가 오른 쪽으로 한번 내두르면서 다시 한번 비틀했다.

매형네 가축병원으로 얼른 끌고 가보지 않고 왜 이래 두고 있느냐고 하니, 대학 일 학년에 다니는 동생 상철이 마루의 기둥에 붙은 외등 스위치를 딸깍 젖히고 나오면서

"끌고 갔다 왔어요. "

하고 말했다. 외등의 불그죽죽한 불빛이 마당으로 쏟아졌다. 검은 곤색의 트레이닝 바지에 밤빛 털스웨터를 얹어 입은 상철은 검정 고무신을 지륵지륵 끌고 내 옆에 와 선 채, 비틀거리면서 개집 속으로 들어가는 꺼멍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매형은 없고 누님만 있어서 그냥 약만 갖다가 먹였어요. 어쩌면 흥역 같다는구만요."

매형이 들어올 때까지 가축병원에 놓아두지 않고 왜 그냥 끌고 왔느냐는 내 말에 동생은

"나간 지 사흘이나 되었는데, 가부간 연락이 없닥 하등만요."

하고 말했다. 온다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집을 나가서, 술집이면 술집, 여인숙이면 여인숙, 젖소 키우는 집의 마굿간이면 마굿간,,, 닥치는 대로 떠돌며 잠을 자 버리는 매형의 그 떠돌이 병이 도졌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은 조금 먹던가?"

내 물음에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침밥과 점심밥을 모두 혀끝 한번 대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일 아침 일찌기 다른 병원으로 끌고 가봐라, 누님이 뭘 안다냐?"

동생을 향해 퉁명스럽게 내던지고 마루로 들어섰다.

누님한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바로 이때였다. 수화기를 들자, 누님의 목소리는, 매형이 집을 나간 지 벌써 사흘째라는 것, 조금 전에 방송을 들르니까 성림산 모퉁이의 기찻굴 입구에서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남자가 있다는 것, 그런데 뛰어드는 것을 멀리서 목격한 사람이 말한 그 사람의 인상착의로 미루어 보아 꼭 매형인 것만 같다는 것, 그러니 얼른 그 사고현장으로 함께 가보자는 것을 다급하게 울먹거리며 늘어놓고 있었다. 그것을 들으며, 나는 전화기가 놓인 화장대 밑에 웅크리고 있는 까만 어둠을 보았다. 누님의 목소리는 바로 그 어둠 속에서 번져 나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가뜩이나 감까지 먼 그 목소리는 지하천 길의 굴속어디에서 괴물에게 갇힌 여자가 구원을 청하는 소리만 같았다.

"아따아."

하고 나는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그리고, 매형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말했다.

"어째서 너는 그렇게 태평하냐? 어디서 온 전환가는 몰라도 그걸 받고 왕진 가방 들고 나갈 때부터 아무래도 조끔 이상했단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누님에게 잠시 전화를 끊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마룻바닥에 터썩 주저앉았다.

"아따 참말로 뭔 사람이 저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구만."

투덜거리면서 방송국 보도부케 근무하는 친구네 집과 경찰서 교통계와 효천역과 효천 파출소로 전화를 연결해 보았다. 그런 다음, 누님이 얼마나 평소에 허둥대면서 사는 여자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철도 자살을 한 남자는 백운동에 사는 한 정신착란증 환자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튿날 매형의 대학 동기이자 친구인 광주일보의 안신근 편집국장을 만나야만 했다. 철도 자살자가 매형이 아니라는 게 확인되었는데도 누님은 새벽부터 전화로 나를 불러 들볶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어째서 너는 그렇게 나한테 무관심하냐?,,,. 어디 가서 죽어 있다고 해도 의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할 사람들이다잉."

"남의 집살이 하나 한가지인 나 들볶지만 말고 제발 누님이 조끔 찾어 나서시요."

내 말에 누님은 분함과 슬픔이 얼버무려진 목소리로

"이 자식들, 아쉬울 때 돈 빌리러는 우리 집으로 제일 먼저 오드라."

하고 전화를 딸깍 끊어버렸던 것이었다.

설탕 넣지 않은 코피잔을 들어 마시면서 안 국장은

"자살?"

하고 콧등으로 흘러내린 돗수 높은 검은 테 안경을 밀어 올렸다. 멀뚱하게 빛나는 묽은 자줏빛 안경알 속에서 그의 눈은 거슴츠레하게 오므라져 있었지만, 소년처럼 볼그족족한 볼과 작은 입에는 웃음이 담겨 있었다.

뭣으로 봐서 그 사람이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싸는 거야?"

겨울철 토요일 저녁 무렵의 다방 안은 텔레비젼의 주택 복금 추첨 실환 중계로 들끓고 있었다.

"글쎄요, 누님이 어쩐 일인지 자꾸 그분이 그럴 것만 같다는 조다심이 드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그분이 열고 있는 가축병원이라는 것도 엉망이 되어가고 있어요. 오늘 저녁부터 내일 밤까지 쉬는 틈을 타서 제가 매형을 기어이 찾아내야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고 나서 나는 지금 그분이 어디에 박혀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안 국장은 코피잔을 놓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만난 지가 한 열흘쯤 돼놔서,,,,,,"

안경알로 천장의 전등알을 반짝 되쏘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안 국장은 담배 한 대를 태워 물더니,

"어쨌든, 이 도시 안을 빠져 나가지는 않았을 것 같고, 또 별일 없이 살아 있을 것 같으니까 너무 염려 마시라고 하소."

하고 말했다. 어떤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러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냥 예감이 그렀노라고 했다, 순간 나는

"바쁘지 않으면은 저하고 슬 한 잔 하십시다."

하고 말했다. 안 국장한테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안 국장이 보기에, 매형한테 어떠한 정신적인 이상 증세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느냐든지, 찾는 대로 그분을 입원을 시키거나 어디로 보내서 요양을 하도륵 해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느냐든가를 따져 묻고 싶었다. 안 국장한테는, 내가 처남이기 때문에 나한테 말해 주지 않고 있는 매형의 어떤 정신적인 절함 같은 것이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자네는 자네 매형에 대래서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애."

영하당으로 가서 쇠고기탕에 소주를 몇 컵 들이켠 안 국장은 콧등으로 흘러내린 검은 테 안정을 밀어올리면서 말했다.

"자데가 알고 있는 것은 기껏 그 사람이 목사 아들이라는 -그 목사인 아버지가 시골에서 교회를 지키고 있다가 육이오 때 순교를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은 고학을 해서 의과대학에서 산부인과 수련의 과정을 밟는다고 밟다가 어떤 생각에서인지 농대 수외과로 젼과를 해 가지고 수의사가 되었다는 것. 그 다음 서방 삼거리에서 미장원을 경영하던 자네 누님을 아내로 맞았다는 것. 그리고 결혼한 지 칠팔 년이 되었는데 아들이고 딸이고 간에 하나도 낳지를 않고 살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일 거야."

나는 젓가락으로 콩나물을 집어다가 끓는 탕 그릇 속에 넣어 뒤적거러면서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언젠가 술을 한 잔 하면서 자네 매형이 이런 얘기를 하더구만. 교회는 이 세상에서 커다랗게 뻥 뚫어진 구멍이라고 말이야. "

안 국장은 소년의 그것처럼 작은 입을 묵 다물고 까만 탕 그릇 속에서 끓고 있는 국물을 주시하다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고 끝을 당겨 빨았다.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국민학교 시절에 학교 뒷산엘 올라간 적이 있었더라구만. 식목일이었는데 나무를 개러 갔다다군. 마땅히 캘 만한 나무가 없어서 손가락 굵기쯤 되는 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를 캐 놓고 옆의 천구들이 나무를 다 캐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마을 어구의 언덕 모퉁이에 붙어 있는 자기네 집을 건너다 보았다는 거야. 한데 집은 언덕 모퉁이에 있는 대나무 숲에 가려서 보이질 않고, 그 숲 위쪽 언덕에 모로 붙은 교회당만 빤히 바라다 보이더라는구만.

교회당이라고 해 보아야 당시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간 초가 크기쯤의 건물이었겠지. 양철 지붕에 검정 타일을 칠하고 유리 창문 너댓 개가 달린 왜식 건물 말이야. 그런데 그 교회당이 새까만 입을 벌리고 있더라는 거야. 현관 앞에 동굴 같은 비막이를 세운 데다가 현관 문을 활짝 열어 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그것은 마치 언덕 모퉁이에 커다랗게 뚫어진 새까만 구멍만 같더라는 거야. 뭐라고 할까, 자네 매형의 말을 그대로 빌자면, 연옥이나 지옥의 입구처럼 으시시하고 새까맣더래."

여기까지 말하기에 무려 오 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아니.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도 몰랐다, 그는 한 마디를 말하고는 오랜 동안 무얼 생각하면서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고, 그런 다음 한 마디를 말하고는 또 그렇게 하곤 한 것이었다.

그는 꽁초가 다 된 담배 개비를 탁자 밑에 놓고 밟아버린 다음 젓가락을 들었다. 탕국에 버무려진 콩나물 줄기를 집어다가 입에 넣었다. 우적우적 씹다가 소주를 들이켰다.

"그 뒤부터 이 사람은 교회 안의 마룻바닥에 앉아 아버지의 설교를 듣고,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면서, 늘 그 구멍은 어쩌면 아버지의 가슴에도 까맣게 뚫려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더라는 거야. 한데,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 일어나던 해, 그러니까 국민학교 사 학년 되던 해의 어느 이른 봄날 저녁 무렵에, 아버지의 교회 안에서 무엇인가를 봤대. 내가 금방 (무엇인가)라고 말했는데 말이야, 그 무엇인가를 뭣이라고 말해야 할 것인지, 나는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말이야, 제대로 그걸 표현할 수가 없네마는 어쨌든 들어보소."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던 안 국장은 술이 반쯤 담긴 소줏병을 탁자 한쪽에 밀어 놓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젠 자기가 한잔 사겠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까 집에 아무도 없더라는 거야. "

자기가 단골로 다니곤 한다는 정종 대폿집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서 하다가 만 이야기를 이어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집이 교회가 있는 언덕 밑에 있었던가 봐. 자네도 어디 나갔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 집안이 텅 비어 있으면 집안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선뜻 나질 않잖던가? 묘하게도 방안에 찬바람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것 같지. 자네 매형은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지. 책보를 마루에 던져 놓고 해거름의 빗긴 햇살을 받으며 언덕을 올라갔다는 거야. 그랬더니, 교회의 유리 창문들이 닫혀 있더라는구만. 이때 교회의 유리창들이 멀뚱하게 빛나면서 마당과 마당 가장자리의 수수깡 울타리를 되받아 멀뚱하게 비쳐주고 있었고, 츠 속으로 들어서는 자네 매형의 얼굴을 비쳐주고 있던 모양이야, 그때 그 유리창은, 뭣이라고 해야 쓸까, , 묽게 탄 먹물이나 잉크 물감을 들인 것 같더라는 거야. 어쩌면 그 유리창은 국민학생인 자네 매형이 다가오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몸짓을 하고 있는 것만 같더래. 그래서 한동안 우두커니 선 채 유리창이 되비추어 주는 마당과 수수깡 울타리와 자기의 얼굴 너머로 마룻장 안을 뚫어 보았다는 거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혹시 그 안에서 기도를 하거나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해서였겠지. 그러나, 잘 보이질 않더래. 그래선 유리창 앞으로 다가가서 잡된 빛이 비쳐들지 않도록 두 손바닥으로 눈의 양옆을 가리고 교회 안을 들

여다보았다는 거야. 순간, 당시 열 살 나던 자네 매형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어슴푸레한 텅 빈 마룻바닥과 맞은편 벽에 걸린 십자가뿐이었다는 거야."

안 국장은 잠시 말을 끊고 해삼 조림을 입에 넣고 씹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정종 대폿잔 속을 멀거니 들여다보다가 나를 건너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손을 뻗쳐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싸늘한 청빈 공간) 말이야. 그것이 이때껏 마흔 살이 다 되도록 살아 온 자네 매형의 가슴속에 커다란 묘혈처럼, 아니 새까만 어둠이 잠긴 폐광의 광구처럼 깊이 패여 있는 지도 모르겠어."

나는 따끈한 정종 대폿잔을 들어 몇 모금 들이켰다. 가슴이 후끈 뜨거워졌다. 술에 뜨거워지는 만큼 나는 화끈 닳아오르는 속상함이 있었다.

"매형은 평소에 엄살이 많으신 분이잖아요? 어린 시절에 너무 귀하게 컸고, 그런만큼 감상적이고 염세적인 데가 있잖아요. 사람의 팔뚝에 주삿 바늘을 꽃을 수 없다든지, 살을 칼로 쪘거나 잘라낼 수 없다든지, 여자의 자궁 속을 들여다보기가 싫다든지 하는 어처구니 업는 엄살 때문에 그분은 의과대학에서 농대 수의과로 옮기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 그리고 결국은 그러한 엄살이 체질화되어 가지고, 손톱만큼한 충격을 받아도 괴로워하고 술을 마시고 방황하고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따지고 보면 어릿광대고 위선자예요. 매형은 그러한 자기의 연약한 엄살을 합리화시키고 미화시키고 인격화시키고 있어요. 문학적인 수식과 철학적인 이론을 대입시켜 가면서 말예요."

몽둥이나 칼로 휘둘러대는 듯한 나의 말에,

"딴은 자네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네."

하고 안 국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폿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알록달록한 메추리알 한 개를 집어들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보기로는 자네 말이 결코 옳은 것이 못 돼. 나는 자네 매형하고 이십 년을 넘게 사귀어 오는 사인데, 어느 때 어떤 경우에도 엄살이 많은 친구라고 느껴본 적이 없네. 그것은 곧 나도 자네 매형처럼 엄살이 많은 사람이라는 증거인지는 모르네. 말하자면, 아직 철이 제대로 들지 않은 상태에서 해방이라든지,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라든지, 육이오라든지, 사일구라든지 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눈알을 뒹굴리며 살아온 우리 세대가 모두 엄살쟁이라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야. 그러나, 지금부터 내가 한 말을 들으면 자네 매형이 결코 엄살쟁이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걸세."

살아 꿈틀거리는 낙지발의 빨판에 얇게 썬 마늘 조각을 붙여 가지고 된장에 버물러 입에 넣으면서 안 국장은 말을 이었다.

"문제는 아버지의 죽음이었을 거야. 인민군이 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자네 매형의 아버지는 교회 안에 들어앉아 기도만 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 어른은 한 발짝도 교회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던 모양이지. 자네 매형의 어머니가 울며불며 통사정을 해도 그 어른은 그 안에 엎드려 있기만 하더라는군. 결국 대창 든 세포위원 두 사람과 인민군 한 사람이 그 어른을 잡으러 교회로 왔던 모양이야. 와서 어쨌겠나? 대창과 총부리를 들이대면서 그 어른을 끌고 가려고 했겠지. 그러나 거기서 죽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그 어른이 호락호락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겠는가? 그러다 보니 피를 볼 수 밖에 없었겠지. 결국 대창에 찔려서 죽었다더군. 한데 여기서 더 큰 문제가 생겨버린 거야. 그 꼴을 본 어머니가 어떻게 됐겠는가? 그때부터 널뛰듯이 모둔 발로 뛰면서 하느님을 찾기 시작한 어머니는 물인지 불인지, 밤 인지 낮인지, 산인지 들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헤매다가 교회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산기슭 벼랑에서 발을 헛디디고 떨어져 죽었다는 거야. 그게 이듬해 눈이 녹기 시작한 이른 봄이었다더군."

 

새벽녘에 잠이 갠 나는 오줌을 누기가 바르게 물 주전자를 더듬어 찾았다. 형광등이 켜지고, 분홍빛 잠옷바람인 아내가

"당신 웬 술을 그렇게도 많이 마셨소? 몸을 통 못 가누고."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웃목 구석의 양은 쟁반 위에 놓인 휜 스텐 주전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컵에 따라 주겠다는 것을 마다하고 주전자를 빼앗아 들었다. 주둥이를 입에 가져다 댔다. 섬찍하게 차가운 물을 퍼석거리는 목구멍 너머로 넘기면서 안 국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분, 집엘 잘 들어갔을까. 술집에서 나온 기억부터가 없었다. 집에 들어와서 이렇게 아내 옆에서 자고 있는 것부터가 회한하고 신기스럽게 여겨졌다.

"매형 안 들어 왔다지 아직?"

내 물음에 아내는

"아이고오, 누님은 저렇게 안달인디, 사람 찾으러 나간다고 나간 사람이 열두 시가 꽉 차도록 그렇게 술만 마시고 있고 싶습디여?"

하고 짜증스럽게 쥐어지르는 소리를 했다.

이튿날 아침, 일요일이므로 더 자고 싶은 것을 누님이 걸어온 전화 때문에 쓰고 떫은 입맛을 다시며 일어난 것은 아홉 시가 조금 지난 때였다.

"갈 만한 데 조끔 찾아댕겨 보지는 않고 시방이 몇신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있냐?"

누님의 성화에 쫓겨, 수화기에다 간밤에 안 국장을 만나서 가 있을 만한 곳을 몇 군데 알아내었노라는 거짓말을 해주고 마당으로 나갔다. 하룻밤 묵힌 취기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휩쌌다, 후두두 몸을 떨면서 개집 속에 들어찬 아침나절의 차갑고 파르므레한 그늘을 바라보았다. 그 그늘 속에서 꺼멍이가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쪼그리고 앉으면서 나는 구역을 느꼈다. 상철을 소리쳐 불렀다. 도서관을 가려는 듯, 매형의 왕진 가방 같은 검은 책가방을 들고 나오던 상철이 개집 앞으로 왔다. 다른 가축병원으로 가서 주사도 맞히고 약도 먹이고 하라니까 어쨌느냐고 물었다.

"어저께 풍향 가축병원으로 데리고 갔어요. 주사를 두 대 놓고 약을 주드만이라우. 그런디 너무 늦었다고 그러던 데요. 몸이 거의 마비돼 버렸기때메 어렵겠대요."

"그럼 어쩔 것이냐?"

상철은 글쎄 어쩌고 하면서 얼버무렸다. 나는 아내를 소리쳐 불렀다. 아내가 부엌에서 떠가지고 온 더운 물 한 바가지를 목욕탕의 세숫대야에 부어 놓고 나오면서 팔짱을 끼었다, 그 아내에게 나는 추궁하듯이 개가 밥을 먹더냐고 물었다. 아내가 고개를 저으면서 밥에 혀끝 한번 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아내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왜 억지로라도 조금 먹여보지를 않느냐고, 이때껏 약을 빈 속에다가 먹였느냐고, 세상에 이 추운 날씨에 헌누더기 하나라도 가져다가 덮어주지 않고 왜 저래 두고 있느냐고, 이제부터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기어이 살려내라고, 제왕처럼 호령을 하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개고 뭣이고 당신 매형이나 얼른 찾았으면 좋겠어요."

아내의 짜증어린 말이 목욕탕 안으로 흘러들었다.

"개는 개고 매형은 매형이야. 기어이 살려내라고. 집에 있으면서 개 그것 한 마리를 똑똑히 관리하지 못하고,,,,,,"

횐 타일 붙여진 좁장한 목욕탕이 쪄릉 울리도록 소리쳤다. 얼굴에 비누질을 하는 등 마는 등 하고 물을 움켜다가 끼얹었다. 어질어질한 취기를 걷어내기라도 할 것처럼 자꾸 물을 끼얹었다.

수건으로 얼굴의 물방울을 훔치면서 목욕탕을 나왔을 때, 상철이 잠바를 벗어 던지고 빈 병에다 누룽지 국물을 붓고, 거기에 약을 넣고 있었다. 병주둥이를 손바닥으로 막아 흔들면서

"근육이 다 굳어 갖고 입도 벌려지지 안 해요. 벌써 틀렸는데, 정상이 불 쌍한께 약이나 한번 먹여 줄랍니다. 봐보십시오마는, 거의 넋이 나가 버렸어요."

하고 말했다. 수건으로 귓바퀴 부근의 물기를 닦으면서 나는 개집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니 참말로 홍역이락 하디야?"

."

"아니, 수의사들이 홍역 하나도 치료를 못 한다냐?"

하고 말하면서 나는 가슴이 움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한테 홍역이 들면, 약은 약대로 쓰면서 우선 찬바람이 들지 않도록 한다던 것이었다. 한데, 이 개는 몇 날 며칠 동안 영하의 추위 속에서 떨어진 가마니 조각 하나 덮지 않은 채 앓아 온 것이었다. 주인이 얼려 죽이고 있으나 마찬가지였다. 아내를 나무랄 수만도 없었다. 쓰고 떫은 입맛을 다시면서 눈살을 찌푸리는데, 상철은 개의 뒷다리를 잡아 끌어냈다. 다리의 관절이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다. 개의 몸뚱이는 물먹어 얼어버린 가마니같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밖으로 끌려 나온 개는 시멘트 바닥에 모로 누운 채 고개를 들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껏 뒤쪽으로 뻣등하게 젖혀졌다가 앞으로 두어 번 주억거려졌을 뿐이었다. 눈에는 검은자위가 눈 뚜껑 속으로 반쯤 묻혀 있었다. 흰자위뿐이었다, 입에서는 맑고 끈끈한 침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쿠릿하고 색은 냄새 같은 것이 개의 몸에서 뭉싯뭉싯 피어나고 있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관이 놓여 있는 방에서 맡은 적이 있는 그 냄새였다. 틀렸다는 것을 직감하면서도 나는 상철이 개의 입을 벌리기 위해, 앙다문 이빨 사이에 나무 막대기를 넣어 지렛대질을 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몸을 일으켰다. 마루를 향해 돌아섰다. 개의 입이 조금 열린 듯

"얼른 병 주둥이 쑤셔 넣으시요."

하고 동생이 부르짖듯 말했다.

"여보 당신이 조금 먹여 보시요."

하고 아내가 나를 향해 말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냥 마루로 올라서 버렸다.

 

이날 나는 운치동에 들어갔다가 매형이 한 농가를 다녀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참 어이없는 일이었다.

무등 우유, 나주 우유에 생우유를 대어 주는 낙농가들이 산재한 유림동과 운정동 일대를 이 잡듯이 뒤지고, 팍팍한 다리를 끌고 운치동으로 들어간 것은, 겨울의 맨소리텀갑 뚜껑 같은 해가, 송정리와 대촌 사이를 막아선 점박이 젖소 같은 성림산 허리에 걸려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마을의 낙농가들을 더듬는 방법은 간단했다. 무조건 들어가서, 매형이 열고 있는 동물병원 이름과 매형 이름을 대고, 그분이 요 며칠 사이에 다녀간 일이 있느냐고 묻고, 없다고 하면 다른 집으로 옮겨가곤 한 것이었다. 하루 내내 그러고 다니던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매형을 찾는 일이 짜증스러웠다. 꾸정꾸정한 흙탕물에 붉은 물을 들여놓은 듯한 해거름 무렵의 산그늘이 내려서 더욱 아득하여 보이는 성림산 밑의 철길 옆 동네를 바라보았다. 낙농가들은 그 철길 옆 동네에도 수없이 있는 것이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한숨을 쉬었다. 매형의 무기력한 감상과 염세를 경멸했다. 그의 모든 행위를 어릿광대 같은 엄살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치면서 증오하기까지 했다. 못난 남자, 머저리 같은 남자, 불알을 떼어서 개나 주지--- 속으로 투덜거리자, 누님이 한없이 불쌍하고 천한 여자로 생각되어졌다. 무릉태수(무능태)같은 남자, 의기나 패기라고는 씨도 없는 남자를 끌어안고 사는 그 누님은 얼마나 속된 여자인가. 그런 남자의 어디가 좋아서 이때껏 남편으로 섬기고 살아왔을까,,,,,, 나는 끙 하고 안간힘을 썼다. 내가 서두르지 않은 탓에 누님이 생과부로 늙어가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날 안으로 그 철길 옆의 성림동까지를 더듬을 수는 없다고 이를 물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운처동이나 뒤지지로 했다.

운치동은 강변 마을이었다. 삼십여 호쯤 되는 그 마을은, 성림산 허리 위로 번진, 흙탕물에 활은 물을 탄 듯한 햇빛을 번질번질하게 바른 강물과, 둑 주변으로 앙상하게 헝클어진 포플러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면서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산허리에 걸린 깡똥 조각 같은 해를 보면서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사립 밖에 쇠똥 더미가 있기만 하면 무조건 들어가서 말을 뇌까려댔다. 숫송아지만 전문으로 키우는 농가에 들렀더니, 작달막한 키에 똥똥한 남자가 포도밭 건너편에 있는 집을 손가락질하여 주면서

거 집에 온 것 같등만이라우."

하고 말했다.

포도밭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듯한 그 집에는 한 트럭 분쯤이 될까 말까 한 쇠똥 더미가 마당가의 허름한 외양간 한 모퉁이에 쌓여 있을 뿐, 외양간 안에는 소가 없었다. 한데, 여기서 나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 말았다. 도둑 뱃사공같이 허우대가 큰 데다 얼굴이 거무튀튀한 집주인에게 하마터면 멱살을 잡힐 뻔한 것이었다. 실례한다고 말한 다음, 매형의 동물병원과 이름을 대고, 그분이 며칠 전에 여길 다녀갔다고 하기에 몇 가지 물어보러 왔다고 말하자, 집주인은 다짜고짜로

"당신 잘 왔소. 그 사람하고 어츠크롬 되시요?"

하곡 따져 물었다. 얼떨결에 매형이 된다고 말했다.

"싸게 가서, 존 말로 할 때 소간 물어내라고 하시요. 눈치를 본께 그놈의 쥐뿔 같은 가방을 찾으러 왔는 모양이요마는, 소 값 물어내기 전에는 죽어도 안 줄 것이요."

주인은 소같이 큰 눈을 뒤룩거리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서 내 앞에 내어 보였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서면서, 대관절 무슨 소 값을 물어내라는 것이냐고 물었다,

"다 알고 있소잉."

주인은 내 말을 새겨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 얼굴을 향해 침방울을 날리면서 맹렬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것이 어떻게 해서 산 소인 줄이나 아요? 내 딸이 뼉다구가 오긋오긋 하도록 공장살이 해서 모은 돈으로 산 소여라우. 그래서 내가 어쨌는지 아요? 숨이라도 붙어 있을 때, 고깃소로나 팔게 해달라고 했제라우. 그런께 기어코 살려내겄단다고 장담을 합디다. 와하이, 그런디 밤중까지 쌩쌩하든 소가 자고 난께 죽어부렀어라우. 반값커녕은 삼분에 일 값도 못 받고 넘겼어라우. ,,,,,, 가서 좋게 소간 물어내라고 그러씨요. 나도 뒤에 사람 있어라우. 소값 안 물어내고 수의사질 제대로 해묵은가 못 해묵은가 보라고 하시요."

나든 화가 치밀었으나 같이 맞서서 소리치며 따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소값 물어 추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선 사람을 찾아 놓고 보아야 할게 아니냐고, 그분이 어디를 가 있을 것 같으냐고, 사실대로 가르쳐 달라고, 통사정을 하듯이 물었다.

""

하고 주인은 오방귀를 뀌었다.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공갈을 치면은 내가 벌벌 떨고 예씨요. 하고 가방을 내줄 중 아씨요? 이래봬도 내가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요. 괜히 시퍼 보고 색 쓰지 마시요."

주먹을 부르쥐고 두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나를 노려보는 주인의 눈에 핏발이 서려 있었다. 나는 얼른 이 사람과 매형이 심한 입씨름을 한 끝에 치고 받고 싸움을 한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에 무슨 일이 있어 가지고 그분 시체가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나타났을 때는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

"아니, 뭣이 어쩌고 어째라우?"

발끈한 주인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환장하첬구만, 환장하겄어. ,,,,,,그러고 저러고 그 사람 어디가서든지 그런 행짜 하고 다니다가는 뭉둥이가 없어서 못 얻어 맞어 죽을 것이요. 그 러제마는 나는 소를 통째로 잃고도 그 사람한테 콧바람 한번 되게 안 내뿜었은께 그리 아시요."

이날 밤 매형의 동물병원으로 갔더니, 누님은 눈이 부석부석하게 부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서 많이 울었는가 싶었다. 나는 걱정 말라고 하면서 왕진 가방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매형이 지금 어느 술집에 박혀 있는 모양이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내일 중으로는 기어이 찾아낼랍니다. "

그런데, 누님은 다시 쿨쩍쿨쩍 울기 시작하더니,

"이 일이 나고 본께 요것들이 암만해도 이상하게 생각된단 말이다."

하고 스크랩북 한 권을 펼쳐서 내 앞으로 밀어 주었다, 거기에는 매형이 가끔 광주일보에 기고한 수필 같은 것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누님이 짚어 주는 것을 얼른 훑어 읽었다. 하나는 이상분만을 하는 젖소의 조산을 소재로 쓴 수필이었다,

-결국 송아지는 질식해서 죽고 말았다. 너무 오랜 동안을 뒷다리 하나만 내어놓은 채 거꾸로 들려 있었으니 그럴밖에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인공 호흡을 시켜 보았지만 허사였다. 죽은 송아지를 꺼내 놓고 상처 입은 소의 자궁 속에 약물을 넣어 주었다. 이때 나는 소의 자궁이 시꺼먼 어둠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은 생명을 낳는 구멍이 아니고 죽음을 낳는 구멍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하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인데, 여기서도 역시 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소는 자기의 어머니가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뱃속에서 막 나와서 어미 소의 젖을 빨아 보지를 못하고, 사람이 끓여준 분유를 핥아 먹으면서 자란 까닭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비극이라는 것이었다. 한데 그러한 비극은 자기에게도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일종의 사생아라는 것이었다.

-나는 외부 세계와의 단절 속에서, 신의 세계로만 치닫는 삶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인간이 인간적으로 누리는 인간적인 삶의 형태를 더러운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것은 내 삶이 아니었다. 그건, 산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꺼먼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던 언덕 속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듯하던 그 예배당에서 사는 나의 아버지에 의한 강요된 삶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사생아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국민학교 육 학년 때 천관산에 있는 용화사엘 다녀온 뒤부터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대웅전 속에 가득 찬 금빛을 보고 나는 포만감을 느꼈었다. 예배당의 마룻바닥 위에 쌓인 텅 빈 쓸쓸함을 알고 있을 뿐인 나에게 그것은 얼떨떨한 정신적인 배부름을 안겨주고 있었다, 거길 다녀온 뒤부터, 새벽의 안개 속을 뚫고 아스라히 들려오는 그 절의 쇠북 소리의 중후하면서도 폭넓음에 문득 누구에게서인가 따돌림을 받고 있는 듯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두드리는 종소리의 딱딱하고 차갑고 날카롭고 경박함에 가슴이 흠칠해지고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

여기서 그의 글은 느닷없이 향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대학 시절에 그림 그리는 친구를 따라서 향교(鄕校)엘 간 적이 있었다. 친구는 무엇이 그리 좋아서 향교의 한 모퉁이를 잡아 화폭에 담을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몰랐다. 그러나 나는 거기 들어선 순간, 꼭 어느 상가(喪家)의 상방 안을 들어선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정신적으로 포용해 주는 어머니는 예배당도 향교도 아니라고 썼다. 현재의 생각으로는 절이 고 가운데서 가장 어머니스럽다고 느껴지기는 하나, 반드시 그럴 것인지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라고 했다. 젖소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고 약을 먹이고 할 때마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어버린 젖소의 비극이 자기의 비극인 양 느껴져서, 어디론가 훌쩍 달아내빼 버리고 싶은 충동에 가슴을 조이곤 한다면서 글을 끝맺고 있었다.

 

내일 중으로는 틀림없이 매형을 찾아낼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누님을 달래고 집으로 갔다. 부자를 누르자 대문을 열어준 아내가 개를 얼른 내다가 버리거나 어디에 묻거나 해버리자고 말했다. 대문을 들어선 나는 처마밑 기둥에서 불그죽죽한 불빛을 마당 안에 풀어놓고 있는 외등을 등진 채 개집 안을 바라보았다. 콜타르처럼 눌러 다져진 새까만 어둠이 가득 차 있었다.

"죽어 버렸는가?"

"아까 해거름에 들여다본께 숨을 안 쉬는 것 같습디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이 개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가 막연했다. 통행 금지 시간이 가까웠을 때에 길거리에 내다버리라고 할까, 집 앞으로 흐르는 개천바닥에 던져버리라고 할까. 그럼 결국 청소부들이 리어카에 실어 가지고 가서 먼데다 버리거나 파묻을 게 아닌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따가 상펄이 들어오면 저 앞 공터에다가 묻어버리라고 하지."

짜증스럽게 말하면서 가방을 마루에 내던졌다. 들어가서 양복을 벗고 나왔다. 목욕탕으로 갔다. 발을 씻고 세수를 하고 들어서면서 개집을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로 눈이 간 것이었다. 가슴이 서늘해지고 집안에 송장을 놓아두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나쁜 전율이 등줄기를 훑었다.

이날 밤, 상철이 들어온 것은 열 시가 조금 지난 때였다. 상철이 눌렀음에 틀림없는 성급한 벨소리를 듣고 나는 아내를 향해

"얼른 내다가 버리든지 묻어 버리든지 하고 밥 먹으라고 하소."

하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가 무슨 소리냐고 짜증스럽게 말하면서 대문을 열어 주러 나갔다. 죽은 몸뚱이에 손대고 어떻게 무슨 비위로 밥을 먹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었다가 통금 시간이 가까워서 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데, 아내의 말대로 통금 시간 직전에 개를 내다가 묻는 과정에서 꺼림칙하고 개운치 않는 일이 벌어졌다. 상철이와 아내가 개를 처리하러 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포장된 한길에서는 이따금씩 택시가 쌔액 소리를 내면서 달리곤 했다. 마당에서는 개집 양철지붕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뭣으로 싸갖고 들고 나갈까요?"

상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개집 속에 깐 가마니때기 끄집어 내갖고. 그 속에다가 담아다가 묻어라."

나는 문 밖을 향해 퉁명스럽게 소리쳤다

"아따, 당신도 조끔 나와 보씨요."

아내의 짜증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그것 하나를 둘이서 처리하지 못하고,,,. 나는 엉덩이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듯 벌떡 일어섰다. 문을 밀고 마루로 나갔다. 처마밑 기둥에 붙은 외등이 불그죽죽한 불빛을 마당 안에 퍼뜨리고 있었다.

"아이고 냄새애."

개집 앞에 선 상철이 고개를 틀면서 말했다. 그의 발 앞에는 바야흐로 끄집어 낸 개의 몸뚱이가 모로 뉘어 있었다. 아내도 개를 내려다보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내 코에도 분명히 쿠릿한 송장 색은 냄새가 기어 들었다. 개는 겉 피부와 털만 멀쩡할 뿐 내장은 이미 썩어 문들어져 있는 것인 모양이었다. 나는 역한 침을 울구어서 화단을 향해 뱉으면서

"얼른 가마니 꺼내갖고 집어넣어라."

하고 상철을 향해 말했다. 상철이 개집의 입구를 사립 쪽으로 돌리더니, 밑바닥에 깔린 가마니를 끄집어냈다.

"아따, 개집 안에 썩은 냄새가 꽉 차 있구만요."

상철은 고개를 모로 틀고 심호흡을 했다. 가마니 시울을 벌려 잡아 아내 앞에 내밀었다. 팔아 들어온 쌀을 쌀통에 털어 붓고 깔아준 그 가마니는 한 쪽이 번들번들하게 닳아져 있을 뿐 멀쩡했다. 아내가 상철이 잡혀 주는 대로 가마니의 시울을 잡았다. 상철이 개의 뒷다리를 번쩍 들더니 그 속에 집어 넣었다. 이때 나는 보아서는 알 될 것을 보아버렸다. 죽어 굳어져 있는 듯만 싶던 개의 가슴 부분이 꿈틀 부풀어나고, 코에서 푸지직 하는 숨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개의 몸을 가마니 속에다 거꾸로 처넣고 난 상철이 멍해진 채 나를 바라보았다. 아내가 시울을 더 크게 벌리면서 개의 몸이 처박힌 가마니의 안을 들여다보았다. 상철이도 다가가서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나도 한 걸음 다가가 고개를 쭉 빼고 들여다보았다, 고개를 모로 구기박지른 채 처박힌 개의 몸뚱이가 검은 어둠에 버물려 있었다. 구기박질러진 고개 밑에서 푸지직 푸지직 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끊어졌다가 이어졌다가 하는 듯했다. 그때마다 검은 어둠에 버물려진 개의 몸도 조금씩 움직이는 듯했다. 아내와 상철이 고개를 들었다. 나도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하듯이 서로의 얼굴들을 번갈아 건너다보았다.

"놔뒀다가 내일 아침에나 묻읍시다, "

상철이 나를 향해 허락해 달라는 눈길을 보내면서 말했다. 아내도 차마 어떻게 숨이 아직 붙어 있는 것을 파묻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잡고 있던 가마니의 시울을 놓아 버렸다.

"아따, 목숨 되게 찔기요잉."

하고 말하면서 고개를 두어 번 저어 보였다. 이때 내 눈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개집 속에 가득 찬 까만 어둠으로 가 있었다. 괜히 짜증스러워졌다,

화단 옆의 담벽을 바라보았다. 담벽에 세워 놓은 삽을 찾았다. 이런 일이 있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삽은 시멘트 블록 벽돌담에 비긋이 기대어 서 있었다. 담 옆으로 걸어갔다. 받아 놓은 죽음인데, 숨이 붙어 있는 지금 묻는들 어떻고, 끊어진 다음에 묻는들 어떠랴 했다.

"그냥 묻어 버리자, "

퉁명스럽게 말하며 삽자루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상철은 내가 대문을 열고 돌아서서 재촉을 랄 때까지 가마니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다시 한번 더 재촉을 했을 때에야 가마니 시울을 번쩍 들고 나왔다.

집 앞 빈터로 갔다. 역 상공의 수은등 불빛이 어슴푸레하게 날아들었다. 빈터와 개울 둑 사이에서 발을 멈추었다. 두어 번 삽을 질러서 흙을 떠냈다. 쓰레기로 돋은 땅이라 삽 끝에 비닐종이나 떨어진 옷가지 같은 것들이 걸렸다. 삽이 박히지 않았다. 상철이 가마니를 내려놓고 나한테서 삽을 받아 들었다. 그는 뚝심이 세었다. 삽날이 휠 정도로 삽 날개를 힘껏 디뎌서 흙을 파내곤 했다, 나는 팔짱을 되게 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택시도 달려가지 않았다. 상철은 코를 식식 불면서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구덩이는 점차 사람이 들어앉아도 될 만큼 크고 깊게 되어 갔다. 거기 들어찬 까만 어둠을 보면서 나는

"고만 묻어 버려라,"

하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상철이 삽을 놓고 가마니를 들어 구덩이 속에 넣었다. 삽을 들더니

"에잇, 빌어먹을,,,,,,. "

하고 투덜거리면서 흙을 밀어 넣었다. 흙이 두둑하게 쌓였다. 상철이 그 위로 올라서서 밟아댔다. 나도 한 발을 그 위에 올려 밟아 다졌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상철은 다시

"에잇, 빌어먹을,,,,,,. "

하고 투덜거렸고, 목욕탕에서 손발을 씻고 마루로 들어오면서도 또 그렇게 투덜거렸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개를 땅 속에 묻었다는 생각 때문에 그는 자꾸 꺼림칙하여지는 모양이었다,

이날 밤 자리에 든 내 눈에는 내내 흙구덩이 속에서 푸지직 푸지직 숨을 쉬다가 점차 질식해 죽어가는 개의 모습이 인화지에 나타나는 영상처럼

거멓게 나타나곤 했다. , 질식을 했다가 봄날 땅 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개구리처럼 뛰쳐나오는 개의 모습도 보였다,

이튿날 아침 세수를 하러 가다가 나는 텅 빈 개집 안에 잠긴 검은 어둠을 보고, 매형이 어린 시절에 산에 올라가서 보았다는, 언덕에 뻥 뚫어진 구멍 같았다는 교회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뒤부터 설교를 하는 자기 아버지의 가슴속에 그런 시꺼먼 구멍이 뻥 뚫어져 있는 듯싶기만 하였다더라는 말을 생각했다. 나는 가슴속이 서늘하고 휑 뚫어져서 텅 빈 듯했다. 어깨를 들어올리고 심호흡을 했다. 텅 빈 유리병에 바람을 불어넣는 듯한 히리링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여보, 오늘 이 개집 어디다가 내다버리든지 어쩌든지 해버려요."

나는 부엌을 향해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디서 중()개 정도 되는 것 한 마리 생기기나 하면 사다가 키워 볼라는디 ,,,,,,"

아내의 말에, 또 죽어버리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쏘아주려다가 그냥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락 넣은 가방을 들고 출근하면서 다시 한번 개집 속의 검은 어둠을 보아야만 했고, 때문에 나는 학교까지 가는 동안 내내 무등산 위로 솟은 아침 해를 가슴으로 받고 가면서도 눈살을 찌푸려야만 했다.

오후 늦게 누님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마침 쉬는 시간이어서 창턱 앞에 서서 눈 쌓인 무등산정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데 사환이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수화기를 들었을 때,

"상수냐? "

하고 흘러 나온 누님의 목소리에는 또 울음이 섞이어 있었다.

"느그 매형 있는 데 찾었다. 그런디, 암만해도 입원을 시켜야 쓰겄단 말이다. 얼릉 좀 나오너라. 나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되겄다."

매형네 가축 병원 앞에서 누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매형이 있는 성림동의 23번 버스 종점에 이르렀을 때, 해는 암소의 허리처럼 잘록한 산허리에 걸려 있었고, 성림동의 듬성듬성한 농가는 모두 자줏빛 산그늘에 잠겨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누님은 산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농장을 손가락질했다. 산언덕 위의 편편한 농장은 이만여 평이 넉넉히 될 만한 넓이였다. 농장 가장자리에는 희끗희끗한 시멘트 지주들이 거미줄 같은 철조망을 걸친 채,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옛날 군인들의 전투 대형 같이 늘어서 있었다. 어깨 높이의 계수나무들이 열병식하는 군인들처럼 양쪽에 늘어서 있고, 차바퀴 자국이 깊게 나 있는 비탈길을 타고 언덕을 오르는데, 뚜엣 하는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구룽구룽 하는 기관의 소리와 함께 철길을 훑는 바퀴소리가 언덕길을 흔들었다. 서남쪽으로 병풍을 둘러친 듯한 산모퉁이에서 알려나온 화물열차가 마을 앞 철길을 줄달음질쳐 갔다.

누님과 나는 계수나무 숲 너머로 그 화물열차의 시꺼멓고 긴 행렬을 멍히 바라보다가 농장을 향해 비탈길을 올라갔다. 얼마쯤 더 오르자 길이 왼쪽으로 굽어 돌면서, 마호가니 빛 페인트를 칠한 철문이 나타났다. 사람 드나드는 작은 문이 열려 있었다. 문을 들어서니 쇠줄로 재어진 개가 우리를 향해 껑충껑충 뛰면서 짖어댔다. 세퍼트 잡종이었다. 문을 비닐종이로 덧붙여 놓은 외양간의 기둥에 쇠줄로 묶인 그 개는 쇠줄이 끊어지기만 하면 당장 우리에게 달려들어 물고 뜯을 것만 같았다. 개가 껑충 뛰면서 짖어댈 때마다 나는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움츠러드는 것이었지만, 누님을 따라 외양간을 마주보는 블록벽돌집 문 앞으로 다가갔다.

외양간 문이 열리면서 밤색 잠바에 잿빛 바지를 입고 짧은 목장화를 신은 중년 남자 한 사람이 고개를 내밀었다. 누님을 알아보고 고개를 꾸벅 하더니, 소리쳐 개를 꾸짖으면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개가 목소리를 낮추어 두어 번 더 짖어대다가 중년 남자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한 이틀 더 쉬다가 가라고 할락 하고 있는디, 기어코 오늘 모셔 갈라고 그러시요?"

금방 툭 튀어나을 것 같은 눈알을 뒹굴리면서 중년 남자는 외양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앙상한 은행나무와 목련나무들 저쪽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가리 켰다.

"저쪽으로 놀러 갔는 모양이구만요."

농장 한가운데로 내놓은 길로 누님과 나를 안내하면서 남자는

"그 동생이 와 있은께 든든하고 좋등만,,,,,,혹시 사람 얻어 갖고 살까 싶어 그러요?"

하고 누님을 향해 우스갯소리를 했다. 누님은 고개를 쿡 떨어뜨린 채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가 누님의 얼굴을 흘긋 살피고

"그 동생이 참 나로 해서는 은인이요. 금방 죽을라고 한 소 두 마리를 살려 줬은께라우. 그 두 놈한테서 시방 젖이 제일로 잘 나오요."

하고 진정 어린 소리로 낮게 말했다. 비닐하우스를 지나자, 마른 잔디 깔린 언덕이 나왔다, 그 언덕 위쪽 땅은 일구지 않고 있었다. 마른 억새나 쑥부쟁이나 띠풀들이 무성했다. 매형은 그 무성한 마른 풀숲 속에 앉아 있었다.

여느 때 작달막한 키에 호리호리한 매형이 카른 풀숲 속에 주저앉은 채 세운 무릎을 깍지낀 두 손으로 안고 있는 것은, 흡사 집을 나온 소년이 멍히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침 철길이 있는 골짜기를 스쳐온 바람이 농장 철조망을 넘어오고 있었다, 마른 풀숲을 세차게 흔들어댔다. 마른 잔디를 밟으며 우리가 다가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을 터인데도 매형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매형은 언덕 아래 어느 한 곳에다 눈길을 박고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누님과 농장 관리인 남자를 더 이상 매형 옆으로 다가가지 못하도록 한 다음 매형의 눈길이 가 있음직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언덕 아래에는 철길이 있었고, 그것은 산기슭의 시꺼먼 기찻굴로 이어져 있었다.

어쩌면 철길은 그 시꺼먼 굴속으로 계속 줄달음질쳐 들어가고 있는 듯만 싶었다. 그 굴을 보는 순간, 나는 이날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본 개집을 생각했다. 그리고 매형이 어린 시절에 산에 올라갔다가 보았다는 그 시골의 교회당을 생각했다. 지옥으로 통하는 문처럼 언덕에 뻥 뚫어져 있는 듯만 싶었다는 교회당 속의 어둠도 떠올랐다. 며칠 전 백운동에 산다는 한 미치광이 남자가 철도 자살을 했다고 하는 기찻굴이 바로 저것이거니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나는 얼핏 머리끝이 곤두서고 등줄기에 가느다란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면서

"뭘 그렇게 내려다보고 계신가요, 매형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매형은 이때껏 함께 나란히 앉아 있는 사람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라도 하듯이 시꺼먼 기찻굴을 가리켰다.

"저기 좀 봐라. 저 속으로 말이야, 조금 전에 가죽 잠바 입은 남자 하나하고 짧은치마를 입고 부츠를 신은 여자 하나가 기차가 막 지나간 뒤에 들어갔는데 말이야---. 한 십 분쯤 되어 가는데 아직 나을 줄을 모르고 있단 말이야."

매형은 웃음기 하나 없이 말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누님의 말마따나 매형이 정말로 정신이 좀 돌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마디 더 물어서 확인을 해 본 뒤. 그게 사실일 것 같으면 정신과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기찻굴을 향해 진지하게 굳어져 있는 매형의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이 추운 데서 그걸 내려다보고 앉아 계십니까? 얼뜬 가십시다, 집으로."

하고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려고 했다. 한데, 매형이 오히려 내 손을 당겨 옆에 앉히면서 턱을 쭉 내밀어 기찻굴의 양쪽 산을 가리켰다.

"저 두 산을 봐라. 저게 말이야, 꼭 벌거벗은 여자가 벌떡 드러누운 채 말이야, 두 무릎을 곧추세우고 있는 것만 같은 형국이란 말이야. 여자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나는 많이 보아 왔지. 산부인과 의사 공부를 한다고 할 때 말이야.------그런데 말이지, 저 한가운데 뻥 뚫어진 것은 무엇인가 하면 말이야, 바로 죽음을 낳는 곳이야.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을 낳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실은 그게 바로 그것이야."

매형은 잠시 말을 끊고, 고개를 한번 갸웃했다.

"금방 들어간 남자하고 여자하고는 말이야, 내가 보기로만 해서도 오늘까지 해서 두 차례나 저기를 드나들고 있는데 말이야. 저기에 들어가서 무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하고 많은 여관들이 시내엔 꽉 차 있잖아? 그런데 왜 하필 저런 데는 들어가는 것인지,,,,,, 이 추운 겨울 바람 속에서 말이야."

시꺼먼 어둠 가득 찬 기찻굴에서 솟아 나오기라도 한 듯한 차갑고 음산한 바람이 골짜기에서 불어 올라왔다. 매형의 주변에 무성한 마른풀들이 우수수 흔들렸다. 누님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흑 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매형이 벌떡 일어서면서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픽 하고 웃더니 내 귀에다 대고

"바로 저거야. ------이제부터 우린 또 신혼 부부같이 살게 될 거야."

하는 것이었다, 누님에게로 다가간 매형이 누님의 능을 토닥거리며 나지막한 소리로 무슨 말인가를 하는 동안, 내 귀에는 내내 마른풀에 바람 스치는 소리만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