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단편소설2

67. 물을 수 없었던 물음들

자한형 2022. 3. 1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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옭아묶는 재미로 산다는 친구의 전업에 관하여

 

사진 찍기를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내 또래의 사람들은 거의가 다 그런 사진을 한두 장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벌써 이십 년이 넘는 옛날 중학교 때 '우정'이라는 낱말을 한참 즐겨 사용하던 무렵 '일생에 한 명의 참다운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다'는 스승의 말을 되새기며 그 우정의 주인공과 함께 일생 동안 변치 말자는 뜻으로 찍은, 지금 꺼내 보면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퇴색한 사진 말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이 친구가 바로 나의 그런 친구였던 셈인데 빈농의 아들로서 가난하고 불쌍하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위대한 사회 사업가가 되겠다던 그가 얼마 전까지 어떤 교도소의 교도 노릇을 하고 있었다. 환경은 나나 비슷했으면서도 나와는 달리 중학교 졸업만으로 학업을 중단했던 그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여기저기 보잘 것 없는 직장을 옮겨 다니고 있을 무렵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하여 지방의 어떤 교도소에 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피차간에 그저 어쩌다가 소식만을 듣고 있었을 뿐 십 년을 넘게 만나기는커녕 편지 한 장 주고받지를 못하고 있었다. 비단 그 퇴색한 사진을 볼 때만이 아니더라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때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가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어 어떤 필연성이 느껴지지 않자 자연히 그렇게 희미한 사이로 지내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직장을 서울로 옮겨오면서 비롯됐다. 교도 노릇도 오래 하게 되어 유능해지게 되니까 그럴 수가 있는지, 어느 날 난데없는 전화가 걸려와 받으니 그가 며칠 전 서울로 전근 발령을 받아 이사왔다는 이야기였다,

"이 새끼, 음성도 그대로구나. 언제 만날래? 오늘 당장 만날까?"

옛날부터 성격이 나와는 대조적인 편이었지만 전화 음성만 들어도 그는 옛날보다 더 괄괄해진 것 같았다. 아무리 '죽마고우'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이라고 할지라도 첫마디부터 '이 새끼'도 아니고 '이 쌔끼'라고 하는 데야 순간적으로나마 좀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새끼, 좀 늙긴 늙었구나. 그 동안 개통식 했다는 소식 들었는데 새끼는 몇 마리나 깠냐?"

만나서도 그는 마찬가지였는데 술집을 찾게 되자 한층 더 심해졌다. '이 쌔끼'는 그래도 그가 쓰는 낱말 중 점잖은 편에 속하는 낱말이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즈매 빽허네' '우거지상을 하고 된장국에 뛰어들 놈' '까고 댓진 바르네' '나온 구멍에 혀 박고 죽을 짓--- 등등 그야말로 아무리 웃음으로 넘기려 해도 듣고 있기가 민망할 비어들을 일상 용어처럼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렸다. 술을 마시는 데에도 소주를 맹물 마시듯 들이켜면서 돼지고기를 비계만 따로 달라고 해서 먹을 정도로 게걸스러움을 보였다. 뭐라 할까, 한마디로 단순히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만은 할 수 없는, 일상인과는 다른 면들을 보였는데 솔직이 말해서 사실 나는 그를 한번 만난 후 다시는 만나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실 지경이 되었다. 죽마고우라든가 우정이라든가 하는 감미로운 낱말들에 대한 세월의 비웃음을 나 역시 주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나 이제나 어떠한 일에 좀처럼 냉혹한 결단성을 보이지 못하는 나는 전혀 달가운 게 아니면서도 다음 번에 또 전화가 왔을 때 뿌리치지 못했다. 뿌리치기는커녕 핑계로 내세울 만한 일이 충분히 있는데도 그 일들을 다음으로 미루고 퇴근하기가 바쁘게 그를 만났다. 그런데 이날 나는 함께 술을 마시다가 전 번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이상한 걸 의식하게 되었다. 이날도 전번이나 마찬가지로 이 홉들이 소주 세 병을 비웠는데 세 번 다 그는, 마개를 따서 주인 여자가 우리 앞에 술병을 내밀기가 무섭게 집어들더니 거의 한 잔씩이나 가깝게 술을 바닥에 흩뿌렸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세 차례 모두 그랬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술 윗부분에 불순물이 올라와 있을 것이라는 오해 끝에 우리들이 흔히 하는 그 행위로 가볍게 지나쳐 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보니 그런 행위로 지나쳐 버리기에는 술의 양이 너무나 많은 데다가 또 그 태도가 진지해서 나는 무심중에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사라도 드리나? 그게 무슨 짓인가?"

그런데 무심중에 던진 나의 이 말에 대한 그의 반응은 너무나 뜻밖의 것이었다. 나를 한동안 쏘아보다가(이때의 눈빛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져 왔다) 시비하듯이 말했다.

"? 고사 좀 드리면 안 되나? 내가 죽인 놈들한테 목 좀 축이라고 주는 거네. ? 안 되겠나?"

"죽인 놈들이라니?"

"하 이 쌔끼 봐라. 사람을 웃겨. 의가 대학이나 나오고 글줄이나 쓴다고 나한테 정말 이럴래?"

"무슨 소리야?"

"하하하 쌔끼, 시치미떼긴,,,,,,그럼 넌 아직 내가 무슨 짓을 해서 먹고사는가를 몰랐단 말이냐? 대학까지 나온 놈이 교도소의 교도가 무얼 하는가도 몰랐단 말이야?"

"뭘하긴 릿해, 교도소 안에서 죄수들 교도하는 거겠지."

"교도라는 게 뭔데?"

"그럼 사형 집행까지도 교도가 한단 말이냐? "

"이런 쑥맥,,,,,,그래, 이 쌔끼야. 물론 우리 맘대로야 안 되지. 우리야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지. 손발을 묶고 교승을 목에 걸어 놓고도 소장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으면 스위치를 누를 수 없지. 그렇지만 결국 우리가 죽이는 거야."

"그래 너도 많이 죽였단 말이냐?"

"많이야 아니지. 사형수라는 게 사실 많을 것 같아도 그리 많은 건 아니니까. 그러나 꽤 죽였지."

친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전혀 심각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죽일 때 좀 이상하지 않든?"

"처음엔 이상했지. 그러나 이제 달통을 해서 오히려 그 순간에 희열을 느끼지."

"희열?"

"그거야 경험하지 않고는 그 재미를 터득할 수가 없지, 교회사의 교회가 끝나고 형장으로 나오면 보조원 녀석들 두 명을 데리고 내가 손발을 묶은 후 교승을 목에 거는데 손발을 묶는 그 순간부터 이상한 짜릿함이 오기 시작하지. 꼭 삼삼한 기집년허고 한 탕 뛸 때 기분이

라고나 할까?"

"흐흣. "

이날 이후에도 우리는 이따금 만났다. 자주는 아니고 한 달이라든가 두 달, 또는 반년 만에도 만났는데 어느 날인가는 한사코 끌어 그의 집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예상과는 달리 그는 넓지 않은 단간 세방에서 아내와 딸 둘, 아들 하나 그렇게 다섯이 살고 있었다.

소주에 무 김치 한 가지를 내놓으면서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부인 앞에서 그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처음 잔을 따르기 전 바닥(그때엔 상바닥)에 술을 조금 흩뿌리는 걸 잊지 않았는데 나는 그때 비로소 외국의 어떤 시인(발레리일 것이다)이 쓴 '잃은 술'이라는 시를 떠올렸다. 바다에 포도주를 조금 흩뿌린 것과 예수의 피의 헌주를 연관시킨,,,,,,

그런데 최근의 일이다. 웬일인지 이번따라 일 년이 넘게 소식이 없던 이 친구가 불쑥 전화를 걸어와 나갔더니 술을 마시면서 바닥에 술을 흩뿌리는 그 짓을 하지 않았다.

"어쩐 일인가? 오늘은 고사를 안 드리게 ?"

"? , 너 아직 모르는구나. 내가 거기 떨려난 거?"

"떨려나다니? 교도소 말이야?"

"관직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관직?"

"거의 그런 일이 없는데 실패한 일이 있잖아? 한번 실패가 되어 다시 했는데 두 번째까지도 숨이 끊어지질 않지 않아? 분명히 죽은 것 같은데 의무관이 검시를 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거야. 미치겠더군. 그래서 집행을 다음으로 미루었는데 뭐 그런 등속의 너절한 일이 있었지. 결정적으로 또 잘못한 것도 있었고,

"그래 요즈음엔 뭘 하는데?"

"돼지 장사. 퇴직금 받은 걸로 낡은 오토바이 한 대 사 가지고 여기저기서 한 마리씩 사다가 넘기는데 그럭저럭 견딜 만해."

"왜 하필?"

"묶는 재미있잖아 ? 그전에도 얘기했지만 옭아 묶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거든. 바둥거리는 거 네 발을 묶을 때의 기분, 그런 것도 아마 중독이 되는 모양이지?"

웃음이 나와져야 할 텐데 웃음은커녕 나는 그 어떤 말을 더 꺼낼 수도 없었다. 표정으로 보아 그는 결코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혼 상담소의 모델이었던 여자의 결혼에 관하여

 

어떤 월간 종합잡지에 약간 이색적인 단편을 하나 써 줬더니 반응이 괜찮았던 모양이다. 다음 달에 바로 이어서 르포를 써 보지 않겠느냐는 청탁이 왔다. 무엇에 관한 르포냐고 했더니 결혼 상담소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왜 하필 결혼 상담소냐, 결혼 상담소에 무슨 문제점이 있단 말이냐, 결혼 상담소에 관한 것이라면 몇몇 작가들이 소설 속에서 배경으로 삼은 적도 있고 주간지 같은 데서도 더러 다룬 적이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렇긴 그렇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고, 또 처음엔 목숨 값 보상 문제에 관한 걸 부탁드리려 했으나 그건 원거리 여행(사고가 잦은 강원도 지구)을 해야 되는데 선생은 직장에 나가므로 곤란할 것 같아 손쉽게 할 수 있는 이걸로 결정했으니 한번 해보라고 말했다.

취재비를 받아들고 사무실로 돌아와 나는 곰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정말 르포다운 르포를 쓸 수 있을 것인가, 현장으로 뛰어들되 신분이나 용건을 위장하고 직접 부딪쳐 보는 방향으로 해볼 것인가 어쩔 것인가,,,,,

그러나 결국 나는 위장을 하지는 못했다. 취재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고 결혼 신청자로 위장할 경우 신청 요금이라든가 신분에 대한 거짓 기재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분을 밝히고 취재하는 걸로 하고 우선 서울 시내에 상담소가 몇 군데나 있 나 알아보기 위해 전화 번호부를 뒤적였다. 하지만 전화 번호부에 나온 곳은 불과 열 군데도 되지 않았다. 굉장히 많을 줄 알았는데 왜 이것뿐인가 이상히 생각하고, 전화 번호부에 나온 곳이라도 먼저 찾아다닐 작정으로 전화를 걸어 약도들을 알아 놓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바로 퇴근 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취재비로 직장 동료들한테 술을 사가면서 어떤 전 동료들과 함께 가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위장을 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는지 소장들은 대개 진실을 숨기려 하는 것 같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전에 신문에서 거짓 기사를 썼다가 사과 성명을 낸 걸 알고 있느냐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좋은 점이 있으면 좋게 이야기하고 나쁜 점이 있으면 나쁘게 이야기할 테니 사실대로만 솔직이 말해달라고 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가령 많이 알려진 모델 문제만 해도 그랬다. 일정한 모델을 두고 돌아가면서 소개를 해주고 신청금을 잘라먹는다는 소문에 대해서보 그들은 이렇게 변명했다. 시골의 한 여자 신청자가 아무 날 아무 시에 올라갈 테니 그날 안으로 몇 사람 좋은 사람을 소개해 봐라, 만나 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골라 보겠다라고 연락해 왔을 경우, 그 여자는 그 이튿날엔 다시 내려가야 할 몸이므로 자연히 하루 동안에 많은 상대를 소개받게 된다, 그러다가 공교롭게도 그 현장을 목도 당하게 되면 그런 오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 신청자가 신청을 해 놓고, 아직 마땅한 상대가 나타나지 않아 소개를 못해 주고 있는데도 빨리 소개를 안 해 준다고 성화를 부릴 경우, 그 남자와는 맞지 않는 상대인 줄 뻔히 알면서도 여자 신청자 중에서 아무나 소개를 해주게 된다, 대개는 남자한테 딱지를 놓게 생긴, 그 남자보다는 여러 면에서 뛰어난 여자를 소개해 주는데, 그렇게 딱지를 맞게 되면 남자는 그런 소문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이런 변명을 하면서 모델이라니 그런 당치도 않은 소리는 아예 꺼내지도 말라고 일축해 버렸는데 사실 그런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군데를 알아본 결과 모델이 실제로 있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요즈음에야 정부의 정식 허가를 받아 운영을 하고 있으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없겠지만 그전 무허가 시절엔 그런 일이 허다했던 모양이었다. 모두가 다 잡아뗐으나 그 중에서 제일 지식 수준이 높아 보이는 꼭 한 사람만이 수긍을 했고, 자기 역시 옛날엔 그런 일이 있었다고 고백해 왔는데, 이분을 붙들고 늘어지자 이런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내가 모델로 썼던 여자 중에서 제일 잊혀지지 않는 여자는 미스 서라고 당시 대학에 다니던 고학생이었죠.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곱고 목소리가지도 다정다감해서 남자 쳐놓고 어느 한 사람 반하지 않을 사람이 없게 생긴 여자였는데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을 하는 바람에 갑자기 학교를 중단해야 할 처지라는 거였어요. 신문에 '특우대 여대생 아르바이트'라고 광고를 냈더니 찾아온 여자 중의 하나였는데 인상이 너무 곱게 자란 집안의 여자 같아 물었더니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내가 아르바이트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처음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어떻게 그런 짓을 감히 달 수 있겠느냐고 얼굴 색이 변해 달아나듯이 나가더니 그래도 술집 같은 데 나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되었던지 며칠 후 다시 찾아왔죠. 그래서 그날부터 내가 짠 각본에 따라 움직였는데 아마 숫자로 따져 그 여자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본 맞선 횟수가 삼백 번은 될까, 내가 보수를 많이 주기도 주었지만 나는 그 여자 때문에 간 밑천 벌긴 번 셈이었죠. 그런데 말이오,,,,,,"

소장은 이야기를 일단 그렇게 중단하더니 담배를 태워 물었다.

취재를 오신 분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얼마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놈인가를 깨닫지 않을 수 없는 계기가 왔소."

공연한 제스처가 아니라 정말 참회하는 듯한 눈빛으로 소장은 말을 이었다.

"어느 날인가 그 여자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와 하소연을 하는 거요. 소장님 덕택에 그 동안 우리가 먹고 살아오긴 했지만 애한테 큰 병이 생겼으니 이를 어쩌면 좋겠느냐는 거였지요. 병이라니 도대체 무슨 병이냐고 했더니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것이 아니겠소? 사람 중에서도 남자, 남자 중에서도 움직이는 남자,,,,,,"

"움직이는 남자라뇨?"

"내가 말 표현을 잘못한 것 같은데 움직인다기보다는 풀어놓았다고 할까요? 왜 동물원의 호랑이라든가 사자를 보면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 않소? 하지만 그들을 가둬놓지 않고 풀어 놓았다고 해보시오. 집에서 기르는 무서운 개도 마찬가지요. 우리가 어떤 집을 갔을 때 아무리 무서운 개라도 묶여져 있는 걸 보면 무섭지 않은데 풀려져 있으면 다르지 않소?"

무슨 말인지 잘 납득이 안 가 그대로 시선을 주고 있자 소장은 계속 말했다.

"그런 증상이 갑자기 왔는데 하여튼 어떤 남자든 자기 옆에 가까이 오기만 하면 벌벌 떨면서 무섭다고 소리를 지른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요 몇 날 며칠 계속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데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몰라도 아주 그렇게 되어 버린다면 어쩌겠느냐고 하소연을 하는 게 아니겠소? 그래서 결국 내가 그 집을 찾아가기까지 했는데 나를 보고도 그러는 거요. 가까이 가려 하자 두 팔로 얼굴을 가려대며 막 소리를 지르는 것이오. 그래 만나 이야기도 못하고 돌아와 병원에 알아봤죠. 정신과에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일종의 노이로제라고 하면서 그 원인이 삼백 번의 맞선에 있다고 하더군요.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행동해야 했던 그 삼백 차례의 맞선 행위와 나아가서는 그 남자들의 갖가지 접근 행위가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거지요."

"그래서요?"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 뒤에 있었소. 병원에서 권고하는 대로 입원을 했으면 괜찮아졌을지 모르는데 그 어머니가 입원은 결사 반대하는 바람에 그냥 뒀더니 그 증상이 끝내 없어지지 않은 채 갈수록 나이만 먹어간 거요. 서른이 훨씬 넘었지만 그런 여자를 어떻게 결혼시킬 수 있겠소? 생김새가 고와 남자 쪽에서야 탐들을 내지만 그 여자가 남자를 그렇게 무서워하니 방법이 없었던 거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여자한테도 대상자가 나타나게 되었지요. "

"어떤 남자였습니까?"

"생각해 보시오. 그런 여자에게 맞을 남자가 어떤 남자였었겠는가를---"

추리를 해보려고 해도 내 머리로는 추리가 잘 되어지지 않았다. 기가 막히게 여자같이 생긴 남자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러나 소장은 잠시 후 무겁게 말했다.

"갇힌 남자였지요. 옥중 결혼을 시켰다는 이야기요. 희한하게도 철창 속에 갇혀 있는 남자를 보고는 그 여자가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재미있어했던 것이오. 치유의 방법이 될 수도 있으니 그 길을 택해 보라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내가 힘써 대학을 졸업한 사상범으로 오 년형을 받은 남자와 극적인 결혼을 이루게 된 것이오."

너무나 꾸민 듯한 이야기 같아서 나로선 잘 믿어지지 않았으나 소장이 나한테 아무 이해 상관없는 그런 거짓말을 할 리도 없을 것 같아 나는 여러 가지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바야흐로 풀린 자보다는 갇힌 자의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외박 다음날 새벽에 본 동사자의 낙서에 관하여

 

창피한 이야기지만 요즘 들어 본의 아니게도 내 외박이 잦아졌다. 어디다 마누라 아닌 여자를 숨겨 놓고 마누라 눈치를 보아가며 슬금슬금 적당히 재미를 보는 그런 외박이야 아니지만 어쨌든 마누라한테 면목없게 된 일이 많았었다. 그놈의 술 때문인데 집과 직장 사이가

너무나 먼 관계로 술이 좀 지나쳤다 하면 문제가 생겼다. 술을 마신 후 택시를 타면 상관없을지 모르나 집이 경기도인 데다가 길이 험해서 택시는 아예 들어가려고조차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혹 운이 좋아 그런 택시를 잡았다 해도 그 엄청난 택시비(시 중심가에서 타게 되면 이천 오백 원 이상 주어야 된다)를 감당할 길이 없기 때문에 전동차 아니면 버스를 타는데 늘 그놈의 것이 말썽인 것이다.

전동차를 타려면 수원행을 타야 되고 버스를 타려면 안양행을 타야 된다. 그러나 내가 내려야 할 곳은 시흥인데(여기서 내려 시외버스를 바꿔 타야 된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고 탔다 하면 졸고 가기가 일쑤여서 그냥 끝까지 가거나 아니면 지나쳐서 내리는 수가 많은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밤에 잘 때도 새벽 두 시면 두 시, 세 시면 세 시에 일어나야겠다고 마음을 다져먹으면 그것이 뜻대로 되어질 정도로 나의 잠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있었으나 요 몇 년 사이는 늙어져서인지 약해져서인지 그게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거기다가 시흥에서 바꿔 타야 되는 시외버스의 막차 시간이 열한 시 사십 오 분에서 열한 시 십오 분으로 앞당겨진 데에도 이유는 있다. 시흥에 열한 시 십오 분안에 도착되려면 시내에서 늦어도 열 시 십 오 분에는 차를 타야 되니 술 먹는 사람이 어찌 그게 뜻대로 될 수 있겠는가. 술을 마시기 전부터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면 십중팔구 그 조심성에서 해방되어지게 마련이다.

그날 밤도 그랬다. 눈조차 내려 근무를 하면서도 퇴근 후 집에 갈 걱정부터 했는데 눈이 내린 것이 유죄였던지 망년회인지 망상회인지를 하자고 친구들 몇몇이 불러내었다. 그러나 술을 마시긴 꽤 마셨으면서도 용케 열 시쯤에 빠져 나와 열 시 십오 분쯤에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리고 혹 어떨지 몰라 노량진쯤에서 차장한테, 내가 졸게 되면 시흥에서 깨워달라고 특별 부탁까지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놈의 것인지 또 졸다가 눈을 떠 보니 안양까지 와 있었다. 차장한테 어찌 된 거냐고 화냈으나 자기도 깜박 졸았었다고 하며 미안하다고 웃었다. 시계를 보니 열한 시 십분, 시흥에서 십오 분 막차를 타기는 이미 늦은 시각이었으나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띨 나머지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에 합승을 했고 이십 분이 조금 지나 시흥에 되돌아올 수 있었다. 막차가 바로 떠나지 않고 조금 지체를 했다면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루의 희망을 안고 뛰어왔는데 그러나 시외버스 정류장 앞은 너무나 쓸쓸했다. 승객으로 보이는 사람이란 그림자조차 없었고 그 앞 과일가게 주인이, 늦으셨군요, 오늘은 눈이 왔다고 다른 때보다 더 일찍 끊겼어요 라고 말했다.

처음엔 걸어 들어갈까(빨리 걸으면 한 시간쯤 걸린다) 생각도 했으나 너무 피곤했고 너무 추웠다. 아무 곳이나 따뜻한 곳이 그리웠고 마셨던 술이 깨어오기 시작하여 갈증도 났다. 그래서 집에 가는 건 포기를 하고 우선 갈증이나 채우자는 생각에서 내가 가끔 들른 적이 있는 단골 대포집으로 들어섰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차가 미처 안 와 피곤해지게 되면 혼자 들러 소주나 막걸리를 마셔 왔던 싸구려 집이다.

곧 문을 닫으려는지 손님은 하나도 없었고 주인여자가 바닥을 쓸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깜짝 반가워했다.

"웬일이세요, 이렇게 늦게?"

오십대의 이 부인은 남편은 없고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하나와 함께 방문이 없는 온돌방이 홀에 붙어 있는 이 서너 평 남짓한 술집에서 아주 잠까지도 자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과거에 작부 노릇을 했다는 풍문이 있었다. 그런 탓인지 이따금 술에 얼근해져 있는 때가 많았는데 이날 밤도 그랬다.

"소주나 한 병 주쇼. 먹고 어디 들어가 푹 자야 되겠습니다."

"쯧쯧, 차를 놓치셨군요? 그놈의 버스는 늘 제멋대로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비가 좀 왔다고 안 들어가고, 고장이 났다고 안 들어가고, 영업 정지를 당했다고 안 들어가고,,,,,,오늘은 눈이 좀 왔다고 안 들어갔다죠?"

"안 들어간 게 아니라 내가 늦었습니다."

"아녜요. 막차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다나 봐요. 눈길이 얼어붙어 차가 말을 들어먹지를 않는다나요."

달걀 부침을 안주로 소주를 먹으면서 나는 주인여자한테도 한 잔 따라 주었다. 방문 없는 온돌방 저쪽 구석에서 아들은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자 문득 내 어렸을 때 일이 떠올랐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요."

내가 술을 비운 후 눈으로 아들을 가리키자 주인여자는 말했다.

공부 잘하면 뭣해요? 요즈음 공부 잘한다고 해서 출세한 사람 봤어요? 지가 하도 열심히 하니까 가르치지 난 별로 가르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하긴,,,,,,"

나는 말하다가 바로 내가 앉은 옆 벽에서 이상한 걸 발견하고 말을 중단했다. '살고 싶다 미치도록 살고 싶다'라는 낙서였는데 쓴 지가 얼마 안 되는 듯 글씨가 전혀 퇴색되지 않고 윤기가 흘렀다. 내가 말을 중단한 채 그 글씨에 눈을 주자, 뭐예요? 라면서 주인여자가 눈을 벽 가까이에 가져갔다.

"아까 그 손님이 쓴 모양이군요."

주인여자는 엷게 웃으면서 뭐 그런 것에 그렇게 관심을 두냐는 듯한 표정으로 가볍게 말했다.

"그 손님이라뇨?"

선생님이 오시기 바로 전에 왔다 간 선생님이나 비슷하게 생긴 마지막 손님. 처음 보는 손님인데 좀 이상하더군요. 잔뜩 취했는데도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안주도 없이 김치에 소주만 한 병 비우고는 비틀비틀 돌아갔어요. 그 손님이 다녀가기 전엔 저런 게 없었으니 그 손님이 쓴 거지 누가 깼겠어요?"

내가 그 낙서를 보고 놀란 건 오래 전에 보았으면서도 기억이 생생한 스잔 헤이워드인가 누군가 하는 배우가 출연한 '나는 살고 싶다' 라는 영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 죄를 짓지 않았으면서도 시대의 제물이 되어 가스실에서 처형을 당하는 그 여자, 절규하는 그 여자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몇 살이나 된 사람이었읍니까? "

선생님이나 비슷해요. 생긴 것도 그렇고--- 이 동네에서 많이 보게 되는 공장 다니는 사람 같지 않고, 많이 배우고 많이 아는 사람 같았어요. 왜요, 알 만한 사람이에요?"

"아뇨, 그냥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나는 소주를 다 비운 후 일어섰다. 그러자 주인여자가 말했다.

"여관에 가시게요?"

"어쩔 수 없지 않아요?"

"여관 잠자리라는 것도 편치 못하실 텐데 상관없으시다면 여기서 그냥 앉아 계시다 가세요. 마침 내일이 일요일이기도 하니 근무에 지장은 없으실 테니까,,,,,,"

시계를 보니 열 두 시를 지나 한 시에 육박해 가고 있었다. 새벽 버스가 다니려면 네 시간 남짓만 기다리면 되었다. 주인여자 말마따나 여관 잠자리라는 것도, 오입이나 하기 위해 잘생긴 여자와 함께 새운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땐 전혀 편치 못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나는 멈칫거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겠습니까?"

"상관없다마다요. 저 애하고 나밖에 없는데 무슨 거리낄 게 있겠어요? 다 늙은 나하고 내외하실 리도 없을 거고......"

"그럴까요, 그럼. "

나는 좀 멋적긴 했지만 공연한 여관비를 들일 게 아니라 그 돈을 차라리 이 집 아들 학용품 비에 보태 쓰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붙잡는 대로 그냥 주저앉았다. 그리고 주인여자가 권하는 대로 홀에 붙은 방문 없는 온돌방 한쪽에 누워 그 밤을 지새웠다. 술에 곯아떨어진 가운데서의 네 시간이란 잠간이었다. 갈증을 느끼고 눈을 떠 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조금 못 되어 있으나 차들이 다니는지 찻소리가 들렸다,

"원 부지런도 하시지. 벌써 가시게요?"

"가 봐야지요. 집에선 눈이 빠지게 기다릴 텐데......"

냉수 한 사발을 들이켜고 주인여자가 뿌리치는데도 천 원 짜리 한 장을 애의 책상 위에 겨우 던져 놓고 밖으로 나와 나는 우선 변소부터 찾았다. 소변이 몹시 급했는데 집안에 변소가 없고 이 집은 골목으로 굽어진 곳에 있는 공중변소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공중변소 앞에서였다. 무엇을 가운데에 놓고 대여섯 사람이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회부대 종이로 덮여져 있었는데 웅성거리는 소리들을 스치듯 들으니 사람이 얼어죽었다고 했다. 급했던 소변이 쑥 들어갈 지경으로 오싹해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회부대 종이를 들쳐 볼 수도 없어 소변을 본 후 그냥 와 버렸다

그러고는 며칠 후였다. 다시 그 단골 대포집을 들를 기회가 생겨 가 봤더니 지난번 벽에서 봤던 그 낙서가 없어져 있었다.

"지우셨군요?"

"?"

"먼젓번 낙서 말이오."

"아아, ,,,,,,"

이날은 몇몇 손님이 있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판이어서 그런지 처음엔 내 말들을 그렇게 귓 등으로 흘리는 듯하더니 두 군데의 손님이 나가 좀 한산해지자 주인여자가 내 앞에 앉으며 말했다.

"참 모르시죠?"

?"

"그 낙서를 했던 분이 죽은 거? 약을 먹고 토하려고 변소 앞에 갔다가 쓰러져 얼어죽었대요. 바로 그날 새벽,,,,,,"

", 그렇다면 바로 그 사람이,,,,,,"

"보셨나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여자는 말했다.

"경찰에서 이곳에도 조사를 나왔었어요. 내가 불려가기까지 하고---"

"무엇 하는 사람이었답니까 ? "

"모르겠어요."

"왜 죽었는지도? ,,,,,,"

주인여자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다른 손님들이 들어서자 일어섰다.

사람이 자살하는 거야 너무 흔한 일이다. 그러나 '살고 싶은, 미치도록 살고 싶은' 사람이 자살을 해야 했다는 건 흔한 일이 될 수 없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죽음을 강요했단 말인가.

 

기울어진 지축을 바로잡은 스승의 최후에 관하여

 

지축이 23" 27'기울어져 있다는 걸 우리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바 있다. 즉 지구의 북극과 남극을 꿰뚫어 연결한 직선인 지구 자전의 회전축이 지구의 공전 궤도면에 대하여 그렇게 기울어져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로 해서 각 지방의 기후에 차이가 생겨 추운 곳과 따뜻한 곳과 더운 곳이 있게 된다.

그런데 죽기 바로 직전까지 이 세상의 모든 어지러움 또한 이 지축의 기울어짐 때문이라고 철저하게 말한 미친 스승이 있었다. 국민학교 때 특히 동화-동요 동시를 많이 가르쳐 주었던 분으로 오래 전에 교직을 그만두고 서울로 이사와 문방구네 헌 책방 같은 걸 한다고 차리고 있어 더러 만난 적이 있었던 분이다. 그런데 그런 조그마한 장사마저 실패를 하고 몇 년 전부터 어떤 유사종교에 미쳤다던 소문이더니 갑자기 머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구한테나 아무 곳에서나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실성실성 이상야릇한 소리를 하고 다녔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울어진 지축 이야기였다, 기울어진 지축이 바로잡혀야 살기 좋은 세상이 오며 언젠가는 반드시 그날이 올 텐데, 그게 언제일지를 몰라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 그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추억을 갖게 하는 한때의 스승이었다는 것뿐 나와는 그다지 깊은 상관이 있는 분이 아니니까 그저 어지러운 세상의 한 부수적인 인물로 웃어 버리면 될지 모르나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 스승의 사위 되는 고등학교 친구는 가끔 찾아와서 '사람이 뇌일혈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 때문인 줄 아나? 성경에서 말하는 불의 심판 때문이라네'라는 등의 웃기는 소리를 한 마디씩 하고 갔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다 스승의 입에서 나온 소리들이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그저 쓴웃음이라도 웃어 넘길 정도였지 일이 그렇게 심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이 친구가 찾아와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글 쓰는 치들은 천재라는 말을 들었는데 천재 머리 좀 빌리세."

"아닌 밤중에 뭐라더니 무슨 소린가?"

"자네 스승어른께서 위암 진단을 받아 병원에서마저 있지 못하고 집에 누워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지가 한 달이 넘는데 말이야. 무슨 좋은 수가 없겠나?"

"위암?"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했다.

"위암을 고쳐달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놈의 지축 말일세. 기울어진 그놈의 지축을 어떻게 바로잡아 줄 길이 없겠느냐구?"

"핫하, 자네도 장인 닮아 머리가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말도 말게. 처가에 처남이라도 하나 있으면 눈 딱 감고 못 본 척해 버리겠는데 늙은 장모 하나뿐이니 장모한테만 미를 수도 없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이니 원하는 대로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자고 장모는 말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그놈의 지축을 어떻게 하느냐

말일세,"

"지금도 계속 그 타령인가?"

"말도 말라니까. 내가 가기만 하면 눈물까지 글썽거려 가며, 지축이 바로잡히는 걸 보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어, 지축이 바로잡히는 걸--- 하고 소리를 질러대니 환장이 아니라 정말 이러다간 나마저,,,,,,"

"눈에 보이는 거 아니니까 바로잡혔다고 거짓말을 하면 될 것 아닌가?"

"했지, 그런 말이야. 수십 번 수백 번 이미 바로잡혔다고 이야기 했지만 그 말을 믿어?"

"그렇다면 믿게 해주면 될 것 아닌가?"

"믿게? 어떻게?"

"지구의(地球儀)가 있지 않아? 문방구에서 지구의를 하나 사다가 바로잡힌 걸로 만들어 주라구."

"? 지구의 ?"

친구는 반문과 함께 순간적으로 얼굴에 경이의 빛을 띠더니 서서히 표정을 무너뜨리며 소리쳤다.

"아하 그렇구나! 역시 자넨 천잰데 ! 좋았어. 지구의를 제작하는 곳에다가 바로잡힌 걸로 하나 특별 주문을 해서 기울어져 있는 것과 그걸 대조해 보이면 되겠군. 금년에 지축이 바로잡혀 이제 지구의가 이렇게 나오는 걸 보라구,,,,,, 하하."

친구는 정말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위대한 발명이라도 해낸 듯 환성을 지르며 돌아갔다. 그러더니 바로 이튿날 낮에 전화를 걸어 왔다. 자기가 지금 처가에 와 있는데 날더러 그곳으로 좀 찾아와 달라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지축이 바로잡힌 지구의를 보여 줬는데도 장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잘 믿으려들지를 않으니 와서 증명을 해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지만 이왕에 공범자가 된 몸, 그게 무슨 넋빠진 소리냐고 소리칠 수 없어, 알겠다고, 이따가 퇴근 후에 찾아가-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서 또다시 전화가 오기를, 장인어른의 운명 시간이 곧 다가오는 것 같으니 올 바에야 퇴근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좀 뛰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근무 중에 자리를 비우는 일이 얼마나 눈치먹는 일인가를 모르는 내가 아니지만 사람이 금방 죽어간다는 데야 어떻게 하랴. 택시까지 타고 쫓아가니 친구의 말처럼 아닌게아니라 스승의 운명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듯 숨을 힘들게 내쉬고 있는 상태에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해도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흐린 의식 속에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계속 눈동자는 여기저기로 굴리고 있었다.

"아버님, 이 친구 잘 아시죠? 세상의 모든 사람 중 제일 훌륭한 사람이라고 아버님께서 늘 말씀하시던 글을 쓰는 사람, 소설가인 제 친구예요."

"으응? , 소설가? 오오 최군이구먼 ? 어떻게,,,,, 이곳엘..,,,,,,,"

몸을 일으키려고 움직이는 걸 우리가 그냥 누워 계시라고 하자 그대로 누운 채 나를 보고 허옇게 웃었다. 눈동자가 그전보다 확실히 이상해져 있었는데 단순히 병석에 오래 누워 있어서만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친구의 장모는 물론 처와 애들조차 있는 자리에서 무슨 거짓말(지축의 바로잡힘에 대한)을 하기도 난처해 그대로 있자 친구가 다 이야기했다, 머리맡에 놓아둔 축구 공만한 지구의 두 개를 끌어다 스승의 눈앞에 바짝 갖다 놓고 설명했다.

"제 말씀을 믿으려 하시지 않으시는데 다시 자세히 보세요. 이것 하나는 기울어져 있지만, 이쪽 것은 똑바로 잡혀 있지 않아요? 이 똑바로 잡힌 게 최근에 나온 거예요. 기울어진 지축이 아버님께서 소망하시는 대로 똑바로 잡혀 이제 지구본이 앞으로는 계속 이렇게 나온대요. 제 말이 미덥지 않으시거든 이 친구한테 물어 보세요. 아버님께서 제일 훌륭히 생각하는 글쓰는 친구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나는 갈수록 난처했다. 내 말 한마디로 그렇게 믿소 편히 눈을 감으실 수만 있다면 그런 거짓말이야 얼마든지 해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바로잡힌 지구의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한테 들려 됐던 때와는 다른 기분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눈을 감으려는 분한테 구태여, 아무리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해서였다.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어지러운 현실이면 어지러운 현실대로 받아들여 가며 죽어가게 하는 것이 오히려 그분에 대한 도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던 것이다. 이런 내 심중을 짚기라도 한 듯 스승은 내게 그 진부를 묻는 등의 내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짓은 하지 않고 친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하다가 말했다.

"네 말이 정말이라면 좋겠구나,,, 어지러운 세상이 끝나고,,,,,, 살기 좋은 세상이 정말 온다면,,,,, 오죽이나 좋겠느냐,,,,,, 나야 험한 세월 살았지만,,,,, 너희들이야 그렇게 살아선 안 되겠지,,,,,,"

"핫 참, 아버님두,,, , 이 친구한테 물어보시라니까요. 지축이 바로잡혔대두요. 이제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니 아무 염려 마시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그래도 스승은 나한테 묻지는 않고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그러더니 무엇에 놀라기라도 한 사람처럼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나 좀 나가 봐야겠다."

"나가시다뇨? 어디를요?"

"지붕에 좀 올라가 봐야겠다."

"?"

"지붕에 올라가 지축이 바로잡혔는지를 보고 와야겠다. "

"핫하 참,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 아시겠어요? , 글쎄 이걸 보시다시피 바로잡혔단 말씀예요."

그래도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힘있게 불끈 뿌리치고 일어서더니 그러나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쓰러지듯 도로 누웠다. 그러더니 갑자기 더 숨길이 가빠지면서 말했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보다,,,,,, 언젠가는 바로잡히긴 바로잡히겠지만--- 어찌 그것이 그리,,,,,, 쉽게 바로잡히겠느냐. 내 생전젠 아마 틀린 것 같다......"

그런 후 몇 차례 거친 숨을 내쉬다가 '안돼! 안돼! 안돼!'라고 부르짖더니 숨을 거두었다.

바로잡혀진 지구의와 함께 스승을 장례 지내고 난 며칠 후 친구는 내게 말했다.

"분명히 바른 정신이 아니었는데 왜 바로잡힌 그 지축에 대해선 끝까지 믿지 않았을까?"

글쎄."

"안돼! 안돼! 안돼! 라고 한 건 무엇에 대한 부르짖음이었을까?"

"글쎄. 모두 내가 묻고 싶었던 물음들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