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단편소설2

86. 폐촌

자한형 2022. 3. 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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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촌 (廢村) -한승원

 

1

 

폐촌이 된 지 오래인 이 하룻머릿골은 무뚝뚝하고 상스럽기 이를 데 없는 뱃사람들 이십여 세대가 모여 살던 작은 바닷가 마을로, 해방과 육이오를 전후해서 이런저런 사건이 많이 일어나기로 대호면 일대에서 이름난 곳이었다.

큰몰에서 하룻머릿골로 가려면 높은 언덕 하나를 넘어야 했는데, 그 언덕을 앞메 잔등이라고 불렀다. 한창 김 채취에 바쁜 겨울철 같은 때 무거운 김 구럭을 짊어지고 넘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숨을 펄떡거리게 피고, 그러다가는 쿨룩쿨룩하고 기침을 한두 차례씩 하게 마련인 잔등이라 하여 (기침고개)라고도 불렀다.

그 잔등은 새끼를 한 배도 낳지 않은 암소의 늘씬한 허리처럼 잘록해 보였는데, 그것은 그 잔등을 가운데 두고 동과 남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 둘이 있기 때문이었다. 남에 있는 것은, 검푸른 해송 숲이 우거져 민틋하고 처녀 유방같이 고운 흐름새로 솟아 있으며, 고 모양이 어딘지 모르게 암팡진 데가 있는데다, 그 봉의 계곡은 어쩌면 여인네의 가장 깊숙한 곳처럼 우묵하고 음침한 하룻머릿골로 이어지는데, 그 옆에는 사철 내내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물을 펑펑 내쏟는 찬 샘이 있으므로 각시봉이라 하였다. 동에 있는 것은, 봉 위에 (사마귀바위)라고 불리는 큰 바위가 한 개 놓여 있는 데다가 계곡이 가파르고 험준하며, 바다 목에 깎아지른 듯한 벼락이 있어, 바다 멀리서 보면 거북의 머리가 불끈 일어서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건너다 보이는 각시봉보다 더 우뚝하고 우람하고 늠름하다 하여 서방봉이라 하였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각시봉을, 첫아기 낳은 여인네의 젖무덤에 바야흐로 젖이 붇기 시작하는 모양 같다고 하기도 하였고,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린 여자가 치마폭을 펑퍼짐하게 펼치고 앉아 오줌을 누고 있는 형용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서방봉을, 귀두 끝에 검은 사마귀 붙어 있는 남근이 불끈 일어서 있는 형용이라고 하기도 하였고, 먹다 둔 쑥떡같이 생긴 거인이 각시봉을 향해 팔을 벌리고 금방 덤벼들려고 하는 형용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2

 

이 해에도 봄은 어김없이 와서, 각시봉의 기슭으로는 진달래가 맹렬한 불길처럼 벌갰다가 졌고, 서방봉의 발 아래로 펼쳐진 보리밭에는 구물구물 푸른 물결이 윤기를 내며 일고 있었다. 이런 어느 날 저녁 무렵, 그 각시봉과 서방봉 사이의 앞메 잔등을,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하룻머릿골 쪽으로 부산하게 넘어가는 거구의 중년 남자 한 사람이 있었다. 하룻머릿골에 살다가 몇 해 전에 노모와 함께 큰몰로 들어와 사는 밴강쉬였다.

밴강쉬, 그는 애초에 정신 나간 (삼시랑)의 잘못된 작용으로, 태어나기를 도무지 사람 같지 않게 태어나, 거짓말을 조금만 붙인다면, 분명히 싸움 잘하는 황토같이 몸집이 크면서도 단단하게 앙당그러진 기형 동물이었다. 육 척이 훨씬 넘는 키에 살빛이 거무튀튀했고 눈두덩은 엄지손가락 두 개를 포개놓은 듯 튀어나왔으며, 바로 거기에,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먹장 김 빛깔의 검은 눈썹이 마치 돼지털처럼 붙어 있는데다, 꼭 그 눈썹 같은 털들이 귀밑에서 턱을 거쳐 모가지의 울대에까지 돋아 있었다. 아니 그 털들은 비단 그 울대에까지만 돋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른 가을철 같은 때, 그가 김발을 막으면서 물에 들어가느라고 객사 기둥 같은 다리 위에다가 팬티 하나만을 걸치고 있는 것을 볼라치면, 울대 근처에까지 돋은 그 털들은 앙가슴과 젖가슴은 물론, 배꼽 밑을 지나 허벅다리와 발끝에까지 거멓게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는 언제 어디서 보나, 한 마디로 말해서 우악스런 괴물이었다.

그가 험상궂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메기처럼 쭉 찢어진 입을 크게 벌린 채, 쭈뼛거리는 이를 허옇게 드러내고, 퉁방울 같은 눈을 부라리면서 악을 쓰기라도 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 앞에서 기절초풍을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한번도 우악스럽게 성을 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우악스럽게 생긴 그를, 그렇게 우악스럽지 못하도록 하는 곳이 그의 몸 어딘가에 꼭 한 군데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돼지털 같이 뻣뻣한 눈썹 밑에 있는 퉁방울 같은 눈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 눈은 마치 소눈깔처럼 쓴 흰자위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어쩌면 독기를 쏙 뽑아 내버린 듯 둔하고 순한 맛이 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3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징병 신체 검사를 할 때마다 꼭꼭 병종 불합격을 맞곤 하던 것이었다. 도끼로 찍어도 넘어지지 않으리만큼 단단한 몸뚱이를 가진 그의 어디가 허약하다는 것인지 당시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궁금해 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그의 몸 어디에 허약한 곳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에게 입힐 군복과 신길 군화가 없기 때문이라던 것이었다.

또 재미있는 것은, 그가 하필 밴강쉬라는 묘한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열세 살 나던 해의 이른 가을에 저지른 철부지한 짓으로 연유한 것이었는데, 르가 어린 시절에 저질렀다는 그 (철부지한 짓)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큰몰 안의 사람 쳐놓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바다 속의 강장동물의 하나인 말미잘이라는 것과 관계가 있는 행위로서,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이른 가을의 어느 날, 노룻목 연안으로 넘어가는 사태밭 언덕 밑에서 바다 한가운데로 벋어나간 노룻목 다리가 훤히 드러나도록 썰물이 진 한낮 때쯤의 일이었다. 이 날은 갯마을에 있는 국민학교에서 운동회가 있었는데, 그 운동회는 주변 학구 사람들에게 있어서 보기 드문 축제 같은 행사인지라,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운동회를 보러 갔으므로, 하룻머리 골은 텅 비었다. 더구나 바닷가에는 조개를 잡는 아낙네는 말할 것도 없고, 고기잡이를 한다든가, 모래밭엘 나와 그물 일이나 뱃일 따위를 한다든가 하는 남정들 또한 씨도 없었다. 한데, 하룻머릿 골에서 그가 유일하게 운동회엘 나가지 않고 노룻목으로 나와 어정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는 갯마을에 있는 국민학교를 다니긴 다녔었다. 그러나 열살 나던 해에 이미 어른들의 보통 키보다 훨씬 커버렸기 때문에 그는 또래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어 버렸고, 그래서 스스로 학교를 다니지 않아 버린 것이었다. 또래의 아이들은 그를 자기들의 제기차기나 딱지치기놀이 따위에 끼여주지를 않았으며 그도 기껏 배꼽 정도에 찰까말까 하는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그렇게 커버린 것이 창피스럽게 생각되었고, 자연 혼자 바닷가나 산을 어정어정 헤매어 다니곤 하여온 것이었다.

이 무렵, 그의 코밑에는 거물거물한 솜털이 돋기 시작했고, 콩알만한 여드름들이 불거졌으며, 목소리가 깨진 항아리 울리는 것처럼 털털해졌다. 한 번인가. 잠결에 꼿꼿이 선 생식기를 만지다가, 간지러운 듯하면서도 시큰한 느낌이 온몸에 절절이 감돌았었는데, 그런 뒤부터 그에게는 자꾸 생식기를 주물럭거리고 쓰다듬는 버릇이 생겨 있었다. 그런데다가, 지난 여름의 어느 날 밤에 모기를 피해 너럭바위에서 거적을 깔고 누워 자다가 들은 어른들의 이야기 때문에, 그는 자꾸만 비바우 영감네 작은딸 미륵례한테 장가 가겠다는 생각을 하여오곤 하는 터였다. 마을 어른들은 그때

"묘한 일이란께, 저놈 커뿐 것 조깐 보소."

"글씨 말시. 저놈, 앞으로 두고 보소마는, 이 동네에서는 비바우 영감네 작은딸한테는 맞을랑가 몰라도, 글안하면 몽달귀신으로 늙어 죽을 것이네."

"저놈이 인제 열두어 살 묵었는디도 저러는디, 앞으로 스무남은 살 묵도록 커보소, 어쩌겄는가?"

"비바우 영감네 작은딸도 저 커뿐 것 보소."

"미륵례라는 가시내 말이제?"

"맞네, 맞어. 그 미륵같이 생긴 작은딸 말이시. 시방 시집보내도 펑펑 애기만 잘 낳고 살 것이라."

"아암, 그러고 말고!"

"차암말로, 우리 하룻머리골에 장사 났어!"

"장사가 나먼, 꼭 그 짝 될 여자가 따라 생긴닥 하등만잉."

하고 주고받던 것이었다. 그날 밤 그가 들은 이러한 말들은 그후 별 까닭이 없이 그를 들팽거리게 하곤 하였다.

갯마을에 있는 학교의 운동회 때문에 이 학구의 사람들 모두가 축제 기분에 들떠 있는 이날 낮에도, 그는 괜스레, 득량만 앞 바다의 해류처럼 설레는 가슴을 어떻게 주체하지를 못하고 노룻목의 모래밭으로 나온 것이었다,

모래밭을 걸어다니던 그는 노룻목 다리의 시꺼먼 바위 위를 걸어서 그 끝까지 갔다. 버린 우뭇가사리들이나 파래류들이 이른 가을의 따가운 햇살 아래서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어린 군부 고등들은 바위틈의 습기 많은 곳에 붙어 있었고, 게들은 바위틈의 물 속에서 먹이를 찾아 엉금엉금 기어다녔으며. 게으른 척하면서도 엉큼하여 바지락 따위를 까먹어대는 게 보통인 별 모양의 불가사리는 바위틈에 괴어 있는 물 속에 잠든 듯 엎드려 있었고, 말미잘은 희부연 꽃 수술을 해초처럼 늘어뜨린 채 먹이를 유인하고 있었다.

그는 번번한 바위에 엉덩이를 붙인 채, 요즘 머리를 길게 땋아 늘인 미륵례의 얼굴을 떠올렸다. 미륵례도 밴강쉬처럼 학교엘 다니다가 삼 학년 때 그만 두고 집안에 들어박혀 있었다. 며칠 전, 찬샘골에서 물동이를 이고 오는 미륵례를 만난 적이 있었다.

"물 길어 갖고 오냐?"

그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나오지 않는 말을 억지로 건넸었다. 미륵례는 못들은 척하고 눈을 깊이 내리깐 채 그냥 지나가던 것이었다.

먼 바다에 아지랭이가 일고, 건너다 보이는 꽃섬이 군함처럼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신기루 현상이 일고 있었다. 깊이 내리깔고 있던 미륵례의 눈과 거물거물한 살빛이 눈에 어리었다. 물동이를 이고 웃골목으로 들어서던 미륵례의 뒷모습은 펑퍼짐하게 부풀어 있어, 벌써 부인 태가 나던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커버리는 미륵례를 금방 어디로 시집을 보내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는 조급해졌다. 가슴이 생 소금 한 줌을 털어 넣은 듯 쓰리고 아파왔다. 이를 물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때 그의 눈에, 물이 조금 괸 바위틈에서 큼지막한 말미잘이 입을 열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게 탈이었다. 어느새, 그의 바지 속에는 생식기가 멋없이 불끈 일어서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큼지막한 말미잘은 헤벌린 입가에 희부스름한 꽃 수술을 해초자락처럼 부드럽고 곱고 예쁘게 펼쳐놓고 있었는데, 얼핏 그는 야들야들하게 무르익은 여자의 음부가 어쩌면 저런 모양을 하고 있으려니 하고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는 얼굴이 후끈 달았다. 옆에 사람이 있었다면. 이 또 무슨 창피스러운 일이었겠는가. 며칠 전, 그는 집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서 크게 당황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바다에 나가자고 깨우기에 벌떡 일어났는데 그 때 바지 속에서는 그의 주책없는 생식기가 불끈 곤두서 가지고 바지의 앞폭을 걷어 들치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 그는 갑자기 바보가 된 듯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 했었다. 그 바지 속의 생식기가 잠들기를 기다려 일어설 참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밑자리가 가볍지 못하고 꾸물거린다고 꾸짖어댔다. 그러나 그는 못들은 척하고 주저앉아 있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바위 위에 앉은 그는, 말미잘 하나를 보고 들썽거리고 있는 자기의 생식기가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보는 경우에 또 이같이 들고 일어설지 모른다는 걱정이 생겼다. 오늘 집에 들어가는 대로, 이놈을 아예 허벅다리에 붙여서 끈으로 단단히 묶어버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안심하고 어디를 나다닐 수 있겠다 싶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바위틈의 얕은 물 속에서 야들야들 무르익은 음부처럼 입을 헤벌린 말미잘을 들여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그게 꼭 여자의 그것 같거니 하는 생각이 깊어졌다. 그러자 그의 생식기는 대장간의 풀무질로 달구어진 쇠몽둥이처럼 벌겋게 달아 있어, 어디든지 집어넣기만 하면 달구어진 쇠몽둥이를 물 속에 넣을 때처럼 () 소리를 내며 지글지글 끓어댈 것만 같이 열을 내고 있었다. 그는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자 바지를 끌어내리고 생식기를 치켜들기가 바쁘게 그 말미잘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말미잘이 입 오므릴 사이를 주지 않고 제꺽 그 속에다 찔러 넣었다. 말미잘이 당황하여 물을 쏘면서 입을 오므렸으므로, 생식기의 끝은 그 말미잘의 입에 물리는 듯 했다가 빠지고 말았다. 그는 달아오른 열기를 어떻게 분출시키지를 못한 채, 한 손으로는 생식기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바지 괴춤을 움켜잡기가 무섭게 노룻목 다리 위를 마구 줄달음쳤다. 노룻목 연안의 모래밭을 미친 듯 달렸다. 목구멍에어 헉헉 소리가 나도록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헌데 이날 밤 그의 생식기에 이상이 생겼다, 생식기 끝이 벌겋게 열이 나고 부어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드디어는 홍두깨의 끝처럼 퉁퉁하게 부어 올랐는데, 그것은 말미잘이 내쏜 독 때문이던 것이었다. 이 사실은 쑥부장이 잎사귀를 따다 쪘어 짜낸 물 속에 그의 생식기를 담그도록 하여준 그의 아버지 입을 통해 알려졌었는데, 그런 뒤부터 그에게는 누가 붙여준 것인지 (밴강쉬)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었다. 아니, 실은 그가 여느 사람들과 달리 큰 생식기를 가졌다 하여, 그게 크기로 이미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있는 (변강쇠)라는 이름을 누군가 가져다 붙인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한 그도 이젠 나이 사십 줄에 들어섰다. 밴강쉬는 기침고개의 잔등을 넘어서면서부터, 우악스럽게 큰 거구에 걸친 잿빛 핫바지의 괴춤을 툭 까고 단추를 풀어놓은 조끼자락과 고름을 푼 휜 저고리 설을 펄럭거리며 부산하게 하룻머릿골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는 것은, 6.25의 난리가 몰아간 뒤부터 스무 해가 넘도록, 머리가 둘셋 달렸다 하는 사람도 들어가 살 엄두를 내지 못하던 하룻머릿골이라는 바닷가 폐촌에, 거짓말 손톱만큼도 안 보태고 꼭 호말만한 중년 여자 한 사람이 바로 이날 저녁 무렵에, 송아지만한 검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중년 여자가 바로 미륵례인 것이었다. 미륵례가 하룻머릿 골에 나타났다는 사실, 이것은 그를 충분히 열광하게 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4

 

어이없고도 지랄 같은 놈의 세상이었다, 이 무렵 큰몰 사람들 사이에는 그를 큰몰 안에서 쫓아내자는 말들이 나돌고 있었는데, 그는 그걸 어머니의 입을 통해서 잘 들어 알고 있었다. 한데, 그 쫓아내야 한다는 이유가 참으로 별난 것이었다. 홀아비로 몇 년을 살아오는 그는 거의 미치광이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그런 그는 언제 누구네 집에 뛰어들어 그 집의 여자를 겁탈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이러한 말들은 상당히 심각하고 절실하게 나돌고 있는 것이어서, 마을의 회의가 있을 때에 누구든지 그 말을 거기에 패놓기만 한다면 불같이 논의되고, 그게 (당장 쫓아내자)고 결의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밴강쉬는 자기를 쫓아내자는 말을 도시락 싸 가지고 다니면서 퍼뜨리곤 하는 사람들을 만나 따질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다만, 어쩌다가 마땅한 짝 하나를 만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자신의 더러운 팔자를 한탄하였을 뿐이었다. 고러던 차에 홀연히 나타난 미륵례였으니, 그로서는 오직 고맙고 가슴이 꽉 막힐 만큼 부풀어오르기만 한 것이었다.

물론 미륵례가 이 하룻머릿골에 들어서기 며칠 전부터, 가파른 기침고개 너머에 있는 큰몰 사람들 사이에는 말이 많았었다. 미륵례가 하룻머릿 골로 들어오더라도 분명히 혈혈단신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는 둥, 마흔 살이 다 되기는 했지만 갓 서른 살 정도로밖엔 보이지 않을 만큼 피둥피둥하고 살결이 고울 것이라는 등, 호말 같이 덩치가 큰 나름으로는 그래도 밉상이 아닐 것이라는 등, 코째기 내기를 하면 해도 미륵례가 송아지만한 수캐 한 마리만을 데리고 올 것이 분명하다는 둥, 그리고 그 개는 미륵례가 예전부터 데리고 다니곤 하던 것인데 지금은 많이 늙었을 것이라는 등---- 이런 말들을 가지고 사람들은 자기들 멋대로 입방아들을 찢기도 하고, 그렇게 쪘어댄 말들에다가 찹쌀떡에 고물 치고 엿 바르듯 자기의 생각들을 치고 바르기도 하여, 꼴딱꼴딱 침 넘어가는 말들을 만들어가곤 하였는데, 그것은 그 큰몰 안을, 해방 이듬해 콜레라가 만연될 무렵 역신을 몰아낸다고 빨간 고추를 태우고 바가지로 마루청을 문질러, 고양이 소리도 여우새끼 소리도 아닌 묘한 소리를 내던 것처럼 떠들썩하게 하고 있었다.

"말미잘 안 있는가? 그 비바우 영감네 딸이 꼭 그것 같은 모양이데. 그렁께 금메, 아무리 무쇠 같은 놈도 하루 저녁이면 녹아나고 마는 모냥이드랑께."

"그래도 그 년을 데리고 한 십여 년 이상을 산 그 서방 놈은 참말로 무던한 강철이었든 모양이뎌."

"나는 미륵례가 왜 하필 그렇게 큰 개를 데리고 혼자 들어 올라고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팔모로 생각해도 요상하단 말시."

이렇게 남정네들은 입술에 맹물같이 흐르는 침을 바르고 음탕한 눈빛들을 한 채 게걸거리곤 하였는데, 그것은 그 미륵례가 자기의 남편을 잡아먹었다는 사실, 말하자면 미륵례의 (드센 팔자)를 전적으로 수긍을 해버린 나머지 하는 소리들이었다. 미륵례 쪽에서 지나치게 성행위를 요구했기 때문에, 거기 응하다 못한 남편이 급기야 폐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것이며,

그 뒤로 미륵례는 개서방을 데리고 살고 있는 것이라는 말인 것이었다.

거기 비하여, 그 미륵례 또래의 중년 아낙네들은 남정네들과는 전혀 다른 풍설을 흘려놓고들 있었는데, 그것은 그 미륵례가 남편 잃은 뒤에 갑자기 신이 들려, 밤이면 남편이 살았을 적에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던 개를 끌고 산과 들을 헤매어다니곤 하였기 때문에, 그 시가 마을인 꼭두모실 사람들이 자기들 마을에 횡액이 닥칠지도 모른다 하여 쫓아냈다더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 꼭두모실 옆에 친정이 있는 아낙네의 입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에 상당히 신임도가 있는 것일 거라 하며, 이 큰몰 할머니들은 입을 모아, 그 미륵례를 위해 큰굿을 하여준 뒤에, 미륵례로 하여금 절세의 영한 점장이가 되게 했으면 좋을 것이라는 말들을 하였다. 그런 지 이틀 후부터, 이 마을에서 성근지기로 소문난 유자나뭇집 할머니는 쌀자루 한 개를 가지고 마을을 돌면서, 큰 굿할 자금 마련을 서둘렀었는데, 그건 이 마을 사람들의 정신개조 운동을 한 몸에 진 듯한 이장의 말투로 그냥 좌절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세상에 점이라는 것처럼 어수룩한 것이 없다는 것을 낱낱이 실례를 들어 이야기해 가는 이장의 여러 말들을 알아들을 수가 도저히 없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말들의 결론에 의해서 (큰굿 하는 행위)를 하지 말도록 강요를 당하고,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려 주면서 물러섰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신들린 미륵례를 그대로 둘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냥 밴강쉬의 어머니에게로 쫓아갔다. 나이 마흔둘이 넘도록 노총각도 홀아비도 아닌 묘한 신세로 살고 있는 아들 밴강쉬를 위해, 큰굿 한번만 해주면 곧 절세의 영한 점장이가 될 것이 뻔한 그 미륵례를 며느리로 들여세우라고 귀띰을 해줄 생각으로였다.

"어야 말시, 자네 내 말만 듣소."

밴강쉬가 홀아비 신세를 면해야만, 마을에 퍼져 있는 (밴강쉬 쫓아내자)는 말이 자연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살이었다. 그러나 밴강쉬의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그 미륵례에 대한 허물 같은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어째서인지,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느냐고 하늘 닿게 뛰었다.

여기에 미륵례의 아버지였던 비바우 영감과 같은 또래의 영감으로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두루춘풍 영감이

"저 여자는 애초에 시집을 잘못 갔만 말이시. 꼭두모실 말고, 꼭 한군데 시집 가사 쓸 디가 있었는디,,,,,,"

하고 매우 알쏭달쏭한 말을 하며, 봄 되면 이 마을의 돌담 옆에 피는 개나리꽃 빛깔의 눈곱을 눈꼬리에 단 채 쓰게 입맛을 다시는 것이었지만, 그 말뜻을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모양으로, 그 말만은 타내고 곱씹어 더 말을 불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고작 그러그러했을 뿐으로, 막상 하룻머릿골의 폐촌에 그 미륵례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미륵례에 대해서 더 입질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미륵례를 찾아가 말을 걸어보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 해서 혹 그 미륵례에게 들려 있는 신을 건드려서 옳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인지 어째서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은 숫계 미륵례를 두려워들 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 가운데서도 하룻머릿골에 살다가 큰몰로 들어와 사는 사람들일수록 더 두려워하는 눈치들이었는데, 그것은 그 미륵례가, 오래 전에 그 하룻머릿골을 폐촌 되지 않을 수 없도록 한 끔찍한 사건 같은 것과 연관이 되어지는 여자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사람들은 모두 그 미륵례를 무슨 살기 어린 독충이라도 되는 듯 숫제 외면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미륵례가 하룻머릿골에 들어오게 된다는 말이 나돌 적부터, 눈이 빠지게 미륵례 들어올 날을 기다려 온 것이었다. 지나새나 큰몰로 넘어서는 하눌재에 눈을 대고 있었고, 혹시 자기 모른 새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룻머릿골로 넘어가 폐촌을 둘러보고 오기도 했었다.

이날은 하필 그가 이장인 성칠이와 함께 장터로 비료를 가지러 갔다가 저녁 무렵에야 돌아온 것이었는데, 그 사이 미륵례가 이미 하룻머릿골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밴강쉬는 미륵례가 자기를 어떻게 맞이하여 줄 것인가 하는 것을 미처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마치 암내낸 암소를 향해 달려가는 황소처럼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가슴은 마냥 부풀고 들떠 있을 뿐이었다.

이제 하룻머릿골에 들어서기만 하면, 이때껏 흘아비로 살아온 자기의 팔자는 바꾸어질 것이며, 자기를 쫓아내자고 숙덕거리던 마을 사람들의 입들도 자연히 덮어지게 마련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따지고 보면, 미륵례를 각시로 맞이하기만 한다면야, 구태여 큰몰로 들어가서 살 필요부터가 없는 것이었다. 하룻머릿골에 새로 집을 한 채 짓고 살아도 두려울 게 없는 것이었다.

검푸른 해송이 우거져 민틋하고 처녀의 유방같이 고운 흐름새로 솟아 있는 각시봉을 흘끗 바라보고 그는 내리막길을 달렸다. 낚시질을 하고 들어오던 마을 사람 서넛이 재를 치오르다가, 성난 황소가 질주하듯 쿵쿵 땅을 울리며 뛰어내려오는 그를 향해 눈을 휘둥굴리고, 그가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주고 서 있었다. 얼른 보니 마을에 회의가 있을 때마다 그를 쫓아내자고 사람들을 선동하곤 한다던 영득이와 달보가 섞이어 있었다. 그는 아랑곳없이 지나쳤다. 이 개 같은 놈들, 요놈들은 나하고 무슨 철천지 원수를 지었더란 말인가. 그들은 밴강쉬처럼 하룻머릿골에서 살다가 큰몰로 들어가 사는 놈들이었다. 한데, 큰몰 본토박이들보다 더 그를 추방하자고 숙덕거리곤 한다던 것이었다. 나를 쫓아냄으로 해서 저희들한테 무슨 대단한 이익이 돌아가는데 그토록 야단이란 말일까. 밴강쉬는 영득이와 달보들의 심중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젠 알려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미륵례를 아내로 맞아들여 버리기만 하면 모든 것은 자동적으로 해결될 터이니 말이었다.

 

5

 

봄철의 긴 해도 이젠 암소의 허리처럼 늘씬한 기침고개 잔등에 설핏 걸렸다. 자주빛 그림자가 하룻머릿골의 모래밭으로 기어내렸다가, 점차 그 너럭바위 앞바다를 거무죽죽한 남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펄럭거리는 조끼자락 너머로 두 팔을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고개 아래의 비탈길을 총철환 달리듯 내려간 그는 삽시간에, 폐촌을 등에 진 채 발부리를 바닷물에 적시고 있는 너럭바위에 이르렀다.

폐촌이 된 하룻머릿골은 허물어진 돌담들이 널려 있는데다 무너지다 만 바람벽들이 부서진 나무 상자들처럼 우뚝우뚝 서 있고, 그 사이로 거멓게 그을은 방뼈(구들장)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그 너럭바위에서 집 두 채 뜯어낸 자리를 건너서 유일하게 허물어지지 않은 헛간 한 채가 있었다. 그 헛간은 이엉을 덮지 않았기 때문에 지터분한 북어껍질 같은 지붕의 흙을 드러낸 채 반쯤 찌그러져 있었다.

그는 헛간 주변을 더듬어 살폈다. 늙수그레한 수캐 한 마리를 데리고 이부자리와 옷가지와 간단한 살림도구들이 들어있음직한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 들어왔다는 미륵례의 모습을 찾았다. 어쩌면 그 헛간 안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와그르르 허물어질 것 같은 헛간으로 달려들어가서, 자기와 함께 살자고 말하며 미륵례의 허리를 부여 안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참았다. 그러기 전에, 미륵례가 어떻게 누구하고 살려고 여길 들어왔겠는가 하는 것을 살피기로 했다. 혹시 동네에 퍼진 소문과는 달리, 내일쯤 미륵례의 새 남편 될 사람이 들어오게 될지도 모른다 싶기 때문이었다.

그는 급히 달려오느라고 가빠진 숨을 그제서야 크게 들이쉬며 너럭바위 밑으로 내려갔다. 거기에 몸을 숨기고 헛간 주변을 살피자 했다. 해도 기울고 하였으니 곧 저녁밥을 지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륵례가 물을 길으러 주촌 옆 골짜기로 가지 않을 수가 없을 터이니 말이었다.

그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기 위해서 호주머니에서 새마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성냥을 그어 댕겼다. 씁쓸하면서도 구수한 담배 연기가 울렁거리는 가슴속을 주름잡듯이 싸고 돌자, 이젠 자기도 세상을 세상답게 사는 것같이 살아갈 수 있게 되어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고, 그간 살아온 자기의 험하고 창피스럽고 추잡스러운 날들이, 먼 바다로부터 밀려와 너럭바위의 밑동을 싸고 돌면서 일렁거리는 물결들처럼 가슴에 굵다란 파문을 그리고 있었다.

나이 마흔둘이었다. 똑똑한 계집은 고사하고, 정말 더러운 소망으로 언청이나 얽음뱅이나 애꾸눈이도 가리지 않겠다 한 터이고, 나무등치 같은 데에 치마를 둘렀더라도 여자 비슷한 것이기만 하다면 데리고 살겠다 하여 온 바이지만, 그에게는 이때껏 마땅히 짝될 여자가 걸려들지를 않았던 것이었다.

하기야 소눈깔 같이 두리두리하고 흰자위 많은 그 눈으로 보아 흡사 겁 많은 동물인 그는, 마흔 살이 넘도록 살아오는 그 사이, 결혼이라는 것을 안한 게 아니라, 한다고 하긴 모두 세 차례나 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닷새를 넘기지 못하고, 얻어들인 계집을 놓치곤 했던 것이었다.

첫번째 여자는 이웃에 있는 산태밋골의 소두벙이라는 열아홉 살의 처녀였다. 그 여자에게는 그가 스물두 살 되던 해 겨울에, 사모관대를 하고 정식으로 장가를 갔었다. 그러나 그 소두벙이는 시집을 온 지 닷새째 되던 날 친정으로 도망을 쳐버렸는데, 그 경우야말로 원체 궁합이 맞지를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밴강쉬는 소두벙이네 집에서 지낸 첫날밤부터, 신부를 데리고 우귀를 한 지 나흘째 되던 날 밤까지, 줄곧 소두벙이와의 깊숙한 교접을 온몸에 땀을 멱감듯이 하며 시도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교접이 막 무르익으려고 하면, 여자 쪽에서 아! 소리를 지르고 이를 갈며 온몸을 떨어대다가 몸부림을 쳐버리는 바람에 결국 성사를 하지 못하곤 했었다. 밴강쉬는 닷새째 되던 날 밤을 맞으면서야말로, 기어이 성사를 하고 말겠다 하며 단단히 벼르고, 초저녁부터 자기들의 신방엘 들어가 죽치고 앉아 소두벙이가 부엌에서 설겆이를 마치고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한데 이날 밤에야말로 소두벙이는 웬 설겆이를 그렇게도 길게 하던 것인지 환장할 것 같았다. 그 사이 그는 써래기 담배를 무려 다섯 대나 말아 피우다가 끄곤 했다. 그런데 소두벙이가 그렇게 길게 설겆이를 하였다고는 하더라도, 그냥 밴강쉬가 죽 치고 앉아 있는 신방으로 들어와 주기나 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

소두벙이는 그 설겆이를 마친 뒤로 부엌 건너에 있는 시어머니 방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리 한밤중이 가까와지도록, 별로 바쁘게 해야 할 것도 아닌, 봄철에 입을 겹중의 적삼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신방에 죽치고 앉은 밴강쉬는, 소두벙이 쪽에서 어쩌면 자기와의 잠자리 일을 무서워하고 있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아니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다 처녀의 탈을 벗을 무렵이면 저렇듯 남자를 무서워하는 것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가슴을 졸이고만 있었다.

한밤중이 겨워지면서,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어쩌면 홀로 사는 자기를 조심하느라고 이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싶어, 어서 건너가 자라고 부드럽게 타이르며 억지 하품을 했다. 그러나 소두벙이는 못들은 척하고 바느질만 계속하던 것이었다. 이윽고 시어머니는 일부러 짜증스러운 말투로, 잘 때는 자고 일할 때는 이를 갈고 일을 해야 하는 법이라고, 쥐어지르기라도 하듯 말하며 이부자리를 내려 폈다. 소두벙이는 잠시 고개를 떨어뜨린 채 바느질감만 들여다보고 있더니 마지못해 그 바느질감을 안은 채 일어섰다.

그걸 보며 시어머니는 이부자리 펴던 손을 멈추고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아들 부부의 신혼 생활에 미심쩍은 데가 있는 것 같아서였다. 재빨리 자리에 든 채 아들의 신방으로 귀를 기울였다.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신방으로 건너간 소두벙이는 방문을 열고 들어서기는 했지만, 안고 있는 바느질감을 어디에 놓아야겠다는 생각도 하지를 못한 듯, 문 앞에 우뚝 서서 고개를 룩 떨어뜨리고만 있었다. 느슨한 분홍 치맛자락을 물빛 행주치마의 긴 끈으로 잘룩하게 죄어매 걸치고, 풀색 저고리를 얹어 입은 소두벙이의 얼굴은 이날 밤에야말로 더욱 예뻐 보였다.

고개를 쿡 숙인 때문에 가물거리는 등잔불의 어슴푸레한 음영이 짙게 발려 있어, 쪽진 머리에서 볼과 턱으로 흐른 곡선은 베어먹고 싶어지도록 탐스럽기까지 하였다. 밴강쉬는 자기를 무서워하고 있는 소두벙이의 창백하게 질려 있는 듯한 모습이 안타까워, 죽치고 앉았던 거구를 일으키고 풀색 저고리의 분홍 끝동 부분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여자들이 원래 처음엔 이렇게 남자들을 무서워하는 것이지만, 길이 들면 오히려 여자 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남녀 사이를 뜨겁게 묶어 놓는 쾌사인 그 정사를 요구하게 된다더라는 말을 소곤거려주면서, 소두벙이네 친가에서 맞은 첫날밤에 했던 것처럼 저고리의 옷고름부터 풀어 헤치고, 행주치마끈과 치맛말을 차례로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을의 사랑방에 모인 나이 많은 머슴들에게서 들어 익힌 묘기를 써 여자의 몸을 달아오르게 하였다. 소두벙이가 겁먹은 강아지처럼 몸을 웅크린 채, 어쩔 수 없이 그의 거구를 받아들일 자세를 취하였을 때, 그는 서서히 접근해 갔다. 그러나 소두벙이는 늘였던 고무줄이 탄력 있게 오므라지듯 깜짝 몸을 움츠리고 몸을 떨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남들도 시집을 가면 다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이를 갈면서 몸부림을 쳤다. 다음 순간, 소두벙이의 얼굴은 죽는 상이 되어버렸다. 밴강쉬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몸을 뒤로 물리고, 처음 시작하던 때의 묘기를 쓰기도 하고, 구리무를 써서 윤활성을 충분히 가미시킨 다음, 잠자리를 잡으려는 아이가 발소리를 죽이고 집게 만든 손을 살며시 내밀듯이 조심스럽게 달아오른 자기의 몸의 일부를 소두벙이의 알몸 속으로 접근시켜 갔다. 여자가 또 몸을 화닥닥 움츠리면서 그의 가슴을 걷어 밀었다. 순간 그는 자기도 어쩌지 못할 분출 직전의 아득한 위기 의식에 사로잡히며, 거북이 등이 되었던 몸을 폈다. 여자가 악!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틀었다.

그는 쓴 실패를 맛보며 몸을 일으키고, 하릴없이 분출구를 찾아 꿈틀거리는 자기의 생식기를 치켜든 채, 이 여자가 틀림없이 병신이거나 어쩌거나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디런 볼 다 보겄구만잉 하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등잔불을 밝혔다. 그랬더니 알몸이 되어 웅크린 채 모로 비틀어 앉은 소두벙이의 밑에 깔린 요가 온통 벌겋게 젖어 있었다.

소두벙이는 흡사 새파람에 산파래 떨듯 하며 옷을 대강 주워 걸치더니 변소에라도 가는 듯 밖으로 나갔는데, 그 나가는 걸음걸이가 어기적거렸다. 밴강쉬는 소두벙이가 어쩌면 병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여자를 얻어들인 자기의 신세가 따분했다. 입술을 빨다가 써래기 담배 한대를 말아 피우면서, 좀처럼 사그라질 줄 모르는 생식기를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한데 한참을 으슥하게 기다렸는데도 변소에 간 소두벙이는 돌아올 줄 몰랐다. 조금만 기다리면 들어오겠지 하며, 담배 한 대를 더 말아 피웠다.

밴강쉬의 그런 생각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소두벙이는 그날 밤으로 산태미 마을의 친정으로 가버렸던 것이었다. 그후 소두벙이는 시가로 가라는 친정 부모가 마을 사람들의 들쑤심을 들은 척 만 척하고 한달 여를 머물러 있다가, 급기야는 쥐도 새도 모르게 홀연 집을 나갔다는데, 한달 후엔가 어느 절로 들어가 머리를 깎았다는 소문이 들려 왔었다. 그게 사실이었던지, 그 이후로는 더 다른 소식이 없어졌다.

그런 뒤부터 두 해 동안, 봄 여름이면 주낙질을 하고, 가을 겨울 들어선 김발을 막아 김 건져내는 일을 하며 그렁저렁 지내던 밴강쉬는 다시 새 장가를 가게 되었다. 그것이 나이 스물다섯 되던 해의 이른 봄 무렵의 일이었다. 이번의 신부감은 하룻머릿골에서 바래진 쪽빛으로 아득하게 건너다 보이는 금당도 태생이었다. 키는 보통이 조금 넘을 듯할 뿐이기는 하나 팔 긴 실군이 안아도 실히 한아름이 될 만하게 몸뚱이 하가는 뚱뚱하므로 어쩌면 밴강쉬와 좋은 짝이 될 것이라는 중매장이의 말을 따라, 부모 형제 없이 남의 집에서 애기업개나 부엌데기로 자라온 터여서 무명베 속것 하나 미련 못할 계제인 그 여자를 싸오듯이 맞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오히려 전의 소두벙이보다 더 참을성이 없었다. 몸 뚱뚱한 나름으로 해서는 참말로 어이없게, 사흘째 되던 날 도망을 가고 말았다. 물론 밴강쉬와 잠자리 일을 감내하지 못한 때문이었음에 틀림없었다.

세번째 여자는,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서 얻어들였다. 그 여자는 의지기지 없이 날품을 팔며 해변 마을을 돌아다니는 과부였는데,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의 이목도 이목인 것이어서, 혹시 이웃집의 쥐새끼 한 마리라도 알세라 쉬쉬하며, 야음을 타고 은밀하게 맞아들였다. 이 여자는 앞의 금당도 여자처럼 몸이 그렇게 크고 뚱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두어 번 출산을 한 경험이 있는데다, 들리는 말에 따른다면 이 마을 저 마을에서 황소같이 억센 머슴들을 더러 안고 돌았다고 하기도 하고, 메기입처럼 길쭉하게 찢어진 입에, 입술이 두툼하므로 어쩌면 밴강쉬와 궁합이 맞을 듯도 하다는, 말 넣는 유자나뭇집 할머니의 말만 듣고, 밑져 보아야 본전일 터이니 무조건 받아들여놓고 보자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더 험악했다. 이 여자는 밴강쉬와 잠자리에 든 지 불과 담배 한대 참수도 못 되어서 도망치듯 밖으로 빠져 나와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이튿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이 마을에선 천금을 주어도 날품팔이할 생각이 없다면서, 상처 난 아랫몸을 어기적거리고 재 너머 덕산 마을로 가버렸는데, 고 여자는 하눌재 고개에서

"워메, 워메, 나 참말로 징한 놈 다 봤네잉"

하며 혀를 내두르고 눈을 허옇게 뒹굴리더라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그에게는 누구의 입으로부터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징한 놈이라는 별명이 나붙게 되었고 그것이 하두 크기 때문에 허벅다리에다 훗다이(붕대)로 칭칭 감아가지고 다닌다더라 하는 소문이 마을 안을 나돌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밴강쉬는 아예 여자 얻어들일 생각을 가지지 않기로 작정을 해 버렸고. 그날 그날을 재미없게 팍팍하고, 항상 짜증이 난 얼굴을 한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보냈다. 그런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년이 가고, 그렇게 몇 해가 갔다.

한데 언제부턴가 밴강쉬에게는, 밤이면 미친 듯이 집을 뛰쳐나가 기침고개를 넘어 큰몰의 골목골목을 휘돌기도 하고, 기침고개 양편의 각시봉과 서방봉을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고, 바닷가 모래밭을 줄달음질쳐 다니기도 하는 버릇이 생겨 있었다.

그러자 곧, 그가 그렇게 밤이면 미친 듯이 들썽대는 것은 그의 큰 생식기가 성나 있는 때문인데, 그게 성이 나면 그는 그걸 움켜잡은 채 벌겋게 충혈된 눈을 뒤룩거리며 이를 갈고 악을 쓰며 줄달음질을 헉 다녀야만 간신히 배겨날 수 있게 된다더라는 소문이, 첫새벽에 산골짜기를 싸고 도는 해조음처럼 마을 안에 파다해졌다.

또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갯마을의 한 부인이 날이 저물어진 뒤 노룻목에서 갯것을 해 가지고 오다가, 밴강쉬가 붙잡으려고 쫓아오는 바람에 혼겁을 하여 갯바구니를 내던지고 땀을 멱감듯이 하고 도망쳐 갔다더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만일 그 부인이 붙잡히기라도 했더라면 어떤 봉변을 당했겠느냐는 말이 거기 함께 붙어 다녔다. 그런가 하면, 누구네 집에서는 한밤중에 홀엄씨 며느리가 자는 방문을 열려고 한참을 덜컹거리다가 간 사람이 있었다는데, 그게 밴강쉬가 아니고 누구였겠느냐는 말도 나돌았다. 그런 말이 나돌 때마다 밴강쉬의 늙은 어머니는 마을을 휘돌면 서 입가에 허연 거품을 물고 자기 아들의 결백함을 역설하고 다니던 것이었다.

"어디 증거를 대보랑께, 중거를 대봐. 우리 새끼가 언제 누구네 방문을 덜그덕거렸당가 응?"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누구 한 사람 그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어머니가 그럴수록 마을 사람들은, 밴강쉬가 그 소문에 대한 앙심을 품고, (도둑질하고 듣기나, 않고 듣기나 도둑놈 소리 듣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이 집 저 집 가림 없이 마구 쳐들어 다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였다. 그러면서부터 그를 쫓아내 버리자는 이야기들까지를 서슴없이 내두르곤 한 것이었다. 그리고 젊은 아내가 있는 남정들은 밤에 문단속을 단단히 하곤 한고, 젊거나 늙거나 간에 홀어미인 여자들은 목수를 불러다가 돌쩌귀 단속을 하던 것이었다. 황소처럼 덩치가 큰데다 징한 놈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내밀며 쳐들어오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밴강쉬는 마냥 억울하고 기막힌 나날을 보내야만 했었다. 어느 누구에게 자기의 억울한 속을 하소연할 수가 있지를 않던 것이었다.

일렁거리는 바다 물결을 내려다보며 드는 이를 물고 주먹을 부르쥐었다. 미륵례를 아내로 맞이하기만 하면 자기에게도 할말이 있을 것이었다. 자기를 시궁창에 처넣기 위해 험한 입질을 하고 다닌 연놈들을 하나하나 밝히어내서 본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조금 전에 지나친 영득이와 달보들의 심보를 고쳐주어야 한다 했다. 하룻머릿골에서 살면서 땅 한뙈기 없이 기껏 장어낚시 오징어 잡이나 하고, 겨울이면 김 몇 장씩이나 뜯고 할 적만 해도 영득이와 달보들은 이러지 않았었다. 힘이 센 그를 자기들 편에 끌어들여 품앗이 발 옮기기도 하고, 말목 빼기도 하려고 하던 놈들이었다.

하룻머리 골짜기에 혼례식이 있거나 장례가 있거나 할 때면. 으레 몰려들어 난장판을 벌이고 술을 뜯어먹으러 드는 큰몰 청년들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를 앞장세우곤 하던 놈들이었다. 갯마을 옆에 간척 사업장이 생기고, 거기 돌실이를 다닐 때는 또 어찌 했었는가. 물론 그때도 영득이와 달보들은 둘이서 배 한 척을 타고 다니면서 돌실이를 하긴 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밴강쉬네 배의 꼬리를 물고 따라다녔었다, 그때 밴강쉬는 현재 이장을 하는 성칠이하고 어울려 배를 탔었는데, 그는 자기네 배에 돌을 다 실은 다음에는 반드시 영득이와 달보들의 배에 돌 싣는 것을 도와주곤 했었다. 하기야 그의 입장에서 볼 때 돌 몇 덩이 들어 얹어주는 것쯤이 그렇게 수고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돌 몇 덩이를 들어올리려면 젖먹던 힘까지 다해도 들어 얹을 동 말 동 하던 것이었다, 어쨌든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밴강쉬에게 술을 대접하기도 하고, 돼지고기 추렴을 할 때는 많이 먹어버린다고 꺼리는 주위 사람들을 달래서 그를 끼게 하기도 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그들이 큰몰로 이사를 간 뒤, 갯마을 북편에 둑이 막히고, 그게 모두 논으로 변하면서부터 달라졌다. 해마다 쌀이나 보리를 합쳐 여남은 가마니 이상씩을 걱 들여와야 한 해를 겨우 넘기곤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헐떡거리던 그들이, 이젠 져들여오곤 했던 쌀이나 보리 여남은 가마니의 몇 배 되는 쌀을, 요 몇 해 전에 뚫은 농로로 경운기에 실어내는 여유가 생기자, 기껏 간척지 논 두 필(여섯 마지기)을 짓고 있을 뿐인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들은 각기 30여 마지기의 간척지 논을 벌고 있었는데, 일년이면 쌀을 오륙십 가마니씩 실어내곤 하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농사깨나 짓는다고 떵떵거리며, 하룻머릿골 사람들을 뱃놈들이니 상놈들이니 하고 하시하던 큰몰 사람들도, 이젠 감히 그들의 비위를 거슬리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놈들은 마을 안에서 제법 유지 행세를 함은 물론 공사청 같은 데서는

"요새 젊은 놈들 버릇이 없어서 못 쓰겄어."

하고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 달보와 영득이는 둘이 어울려 경운기 한 대를 부리면서, 마을 안에 4부 빛 돈을 깔아 놀리는데, 농사철 같은 때 아예 자기들 모내기나 논매기에 품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겐 빛 돈을 주지도 않았고, 경운기도 이용 못하게 하는 따위로 세도를 펴나가고 있었다.

언젠가 논에 김을 좀 매어 달라는 걸 마다고 한 일이 있었는데, 어쩌면 놈들은 그 유감으로 이편을 숫제 쫓아내자는 쪽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인지 어쩌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더러운 놈들 ,,,,,그는 이를 물었다.

빌어먹을, 간척지 농사 여남은 필쯤, 사들여 벌기로 한다면야 어려울 것이 무어랴 했다. 둑이 막히던 때에, 나가 일을 한 덕에 밴강쉬도 여남은 필이나 차지가 돌아오긴 했었다. 그러나, 그는 각시도 없이 어머니하고 단둘이 살면서 그 농사 다 지어보아야 무엇 할 것이냐면서, 모 포기 한번 꽃아 보지도 않은 채, 논 한 필에 겨우 삼사만원 하던 때 거저 주듯이 팔아 넘기고. 그 돈으로 집을 고치기도 하고 방을 내기도 했었다. 육십이 넘은 늙은 어머니가 살면 얼마나 살 것이냐고, 살아 계실 때나 편히 지내시게 하자 하는 생각으로였던 것이었다,

이제, 미륵례를 아내로 맞이하고 살림을 해나가게 되면 논이 두어 필은 더 있어야 할 텐데, 그때 헐적한 값으로 섣불리 팔아 넘긴 게 후회되기도 했지만, 또 그걸 사들여 벌기로 한다면야 이삼 년 안에 사들일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서는 것이었다. 자빠졌다 자빠졌다 해싸도, 농사짓기로 눈을 돌려서 그렇지 장어낚시나 문어 오징어 잡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것을 힘껏 하고, 지금 짓는 두 필 농사를 알뜰하게 지으면서 심쫄 때 거둘 때 이리저리 뛰면서 날품을 들어 번다면, 두 해쯤하여 논 한 필 같은 것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문제는 우선 미륵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일 뿐이었다,

그는 옷고름을 풀어 혜쳤기 때문에 시꺼멓게 털이 돋은 가슴을 쩍 펴고 시퍼런 득량만 바다를 통째 들여 마실 듯이 심호흡을 했다

 

6

 

산그늘이 금당도와 소록도 너머까지 짙은 자주 빛으로 덮이고 있었다. 너럭바위 뒤에 쭈그려 앉아 헛간 주변을 살피던 뜨는 조급해졌다. 헛간 속에 처박혀서 무슨 짓을 하느라고 밖에 나오지를 않고 있을까? 빌어먹을, 당장 뛰어 올라가야겠다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 고 호말만한 중년 여자 미륵례가 헛간 모퉁이에서 나왔다. 너럭바위 너머로 길이 있고, 그 길에서 집 두 채 뜯어낸 자리 건너에 헛간은 있었으므로, 그는 미륵례의 얼굴과 차림새를 살필 수 있었다. 주글주글하게 풀기 없고 색이 바래진 검정 치마에, 물빛 봄 스웨터를 입은 미륵례의 파마넨트를 한 머리는 금방 낮잠이라도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게을러빠진 아낙네가 머리 한번 손질하지 않은 채 나온 것처럼 부스스했고, 얼굴은 누렇게 떠 핏기가 얼었다. 그러나 그는 그 미륵례를 보는 순간, 온몸의 피가 머리 끝으로 빨려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아랫도리에 힘이 빠졌다.

미록례가 헛간 옆에 멈칫 서면서, 너럭바위 위에 서 있는 그를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도둑질하려다 들킨 사람처럼 바위 밑으로 내려가 숨듯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바위 틈을 통해 헛간 옆의 미륵례를 바라보았다. 미륵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너럭바위 쪽을 내려다보고 있더니, 허물어진 돌담에서 베개 만큼한 돌을 한 개 집어들었다. 이 때, 헛간 모퉁이에서 개가 나타났다. 얼핏 보아 송아지만하고 털빛이 검은 그 개는, 새끼들을 놀리고 있는 암사자 옆으로 의젓하게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수사자처럼 미륵례 옆으로 갔다. 치맛자락 끝과 미륵례의 엉덩이 부분으로 뾰족한 주둥이를 가져가며 냄새를 맡더니, 조금 전 어슬렁거리던 느린 태도와는 달리 재빠르게 허물어진 돌담위로 뛰어 올라가서 미륵례를 향해 획 돌아앉았다. 미륵례가 개의 머리를 옆으로 밀어붙이자 개가 팔짝 뛰어내려와서 다시 어슬렁거리며 미륵례의 치맛자락을 스치고 등 뒤로 가 서서 너럭바위 쪽을 바라보았다. 마치 바위틈으로 자기들이 하는 짓들을 엿보는 밴강쉬의 눈길을 의식하고 있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런 개를 쏘아보았다. 개는 상당히 늙은 수캐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윤기 없어진 검은 털이 등과 이마를 덮었고, 배와 턱 밑으로만 엷은 달걀 빛 털이 돋아 있었는데, 어쩌면 세퍼드라는 개의 이세 잡종이나 되는지 어쩌는지는 모르지만, 손바닥만한 귀가 뾰족하고 눈이 칼끝처럼 길게 쭉 찢어진 채 멀겋고, 불알이 주먹만했으며, 내놓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빨래 방망이만할 것 같은 큰 자지를 구겨 넣은 페니스 케이스가 어슬렁어슬렁 걷는데도 아랫배에서 털렁거리고 있었다.

미륵례는 잠시 마땅한 돌을 고르는 듯 두리번거리다가 다른 한 손으로 역시 베개 만큼한 것을 집어들었다. 그것을 헛간 뒤쪽으로 가지고 갔다.

잠시 후에 쑥 빛 플라스틱 바께스를 들고 나왔다. 옆 골짜기로 물을 길러 가는 모양인데, 또 개가 뒤를 따랐다. 허물어진 돌담을 건너뛰기도 하고, 바람벽들이 부서진 성냥갑처럼 웅기중기 서 있는 사이를 돌기도 하면서 미륵례는 골짜기로 내려갔는데, 그런 미륵례의 걸음걸이는 어쩌면 자꾸 투덕투덕 아무렇게나 내딛는 것도 같았고, 집히지 않는 허공을 내딛듯 허청거리는 것도 같았는데, 그럴 때마다 호마처럼 큰 웃몸은 금방 허물어질 듯 흐물거리는 것 같았다, 개는 그런 미륵례를 어슬렁어슬렁 뒤따르는가 하면, 민활하게 껑충거리며 치맛자락을 뒤집어쓰듯 스치면서 앞질러 딸리기도 하고, 또 미륵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서 있다가 미륵례의 엉덩이 부분에 주둥이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서 바싹 붙어가기도 하고, 그러다간 갑자기 치맛자락을 획 걷어 젖히면서 앞으로 내달렸다가 우뚝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귀를 쫑긋거리기도 했다. 개는 미륵례를 따라다닌다기보다 호위하고 있었다.

미륵례와 개의 모습이, 한여름에 마셔보아도 이가 시린 찬샘이 있는 골짜기로 묻히었을 때, 그는 새마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성냥을 그어 불을 댕겼다. 담배 연기를 푸우 내뿜으며 바닷물로 눈길을 떨어뜨렸다.

세차지 않은 샛마파람에 인 물결들이 수없이 밀려들어 너럭바위 밑뿌리를 철부럭철부럭 두들기고 있었다. 개가 미륵례에게 하는 짓들이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미륵례가 하필 송아지만한 그 개 한 마리만을 데리고 살러 들어왔다는 사실부터가 그랬다. 거기에 동네에 퍼진 소문들을 곁들어보니, 그 미륵례가 구역질날 만큼 추잡스럽게 생각되었다. 동시에 주먹같이 뭉쳐진 분한 생각이, 먼 바다에서 꿈틀거리며 밀려와 너럭바위의 밑뿌리를 때리는 것처럼 앙가슴을 두들겨 댔다.

"저런 개잡년을 어째사 쓸꼬?"

그의 소 눈깔처럼 큰 눈에 물이 괴고 있었다. 풀색 군복을 입고 밤에 나타나서 마구 총질을 하던 형이 원망스러웠다.

형이 미륵례네 집 식구들을 모두 죽이지만 않았어도 이 하룻머릿골은 이렇듯 폐촌이 되어 버리지 않았을 것이고, 미륵례는 자기를 버리고 꼭두모실로 시집을 가지는 않았을 것이며, 또 자기가 이런 홀아비 신세로 늙어가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갯내 나는 샛마파람결 속에서 담배 연기를 깊숙이 들여 마시는 그의 가슴을, 바다의 물결처럼 일렁거리게 하였다.

 

7

 

미륵례네 아버지 비바우 영감은 이 하룻머릿골에서 유일하게 우다시배(저인망 어선)를 한 척 부리고 있었고, 밴강쉬의 아버지는 그 배 선원으로 십여 년을 종사해 왔던 것이었다. 물론 비바우 영감은 숫제 날강도질로 늙어온 악종이었다 했다. 젊은 시절에 채취선보다 조금 더 큰 중선을 타고 소금장사를 한답시고 섬들을 휘돌면서, 해변에 나와 갯것을 하는 여자 가운데 반반한 게 있으면 배에 실어 실컷 농락을 한 뒤 여수나 부산 같은 데에 내다 팔기도 하고, 육지에서 쌀을 팔아 가는 섬사람의 배를 덮쳐 빼앗기도 하여서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우다시배를 마련한 것이라 했다.

일제 말기에는 징용징병을 피하기 위해 모래밭에 끌어올려 엎어놓은 채취선 밑에서 은신해 있는 큰몰과 하룻머릿골의 젊은이들을 순사들에게 손가락질해줌으로 해서 주재소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그 신임을 업은 채 하룻머릿골 사람들을 종 부리듯 하였으며, 그걸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산에서 생소나무 가지 하나만 꺾어와도 간단한 손가락질 한번으로 구류를 살도록 하는 따위로 세도를 부리던 위인이었다, 그래도 하룻머릿골과 큰몰의 사람들은 배를 짓거나, 김발 막을 말목과 발대를 사들이거나, 오징어 잡이 그물을 장만하거나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경우엔 어김없이 그 비바우 영감에게 가서 손을 벌렸고, 그러면 비바우 영감은 육 푼이나 칠 푼의 비싼 이자 돈을 주저 없이 내주었다. 그리고 그 돈을 받아야 할 날짜가 하루만 비끌리는 경우엔 집이면 집, 배면 배, 김발이면 김발을 되는 대로 머슴들을 시켜 점거하거나, 몰수하여 오게 하였다. 그렇다고 항의를 한다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하여도, 투덜거림 한마디만 입 밖에 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오십 줄에 앉아서까지도 항우 같이 힘이 끓던 그였는지라, 대번 멱살을 잡아 모래밭에 거꾸로 내리꽂아 놓곤 하였던 것이었다,

십 년을 내리 우다시배를 타오던 밴강쉬의 아버지도 두 차례나 모래밭에 내리꽂힘을 당했었다, 그물을 찢어 가지고 들어왔다가 한번 당했고, 또 한 번은 고기를 욕심껏 잡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당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당했다고 해서 우다시배를 타지 않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는 날이면 왜 타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티를 뜯으며 덤벼들어 내리꽂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울며 겨자먹기로 그 배를 타왔던 것이었다.

한데 해방이 온 게 탈이었다. 팔월 십육 일 밤, 이때껏 돌돌 뭉쳐진 비바우 영감에 대한 이 마을 사람들의 울분이 터지고 만 것이었다. 갯마을에 있는 학교의 일본 사람 교장이 살던 관사에 불을 지른 젊은 패들이 하룻머릿골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당시 쉰다섯 살 난 비바우 영감을 모래밭으로 끌어내다 짓밟아 파묻어 버리고, 이어 수선을 하기 위해 모래밭으로 끌어올려 둔 우다시배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버렸다,

그 젊은 패들 속에서 가장 정신없이 날뛴 것이 다른 사람 아닌 밴강쉬의 형이던 것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기골이 장대한 형이 불 붙은 우다시배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잇샤 ! 잇샤 !)하고 선창하자, 청년들이 그 뒤를 따르며 (잇샤 ! 잇샤 !)를 후창했다. 그때, 아버지가 뛰어들어 젊은 형의 멱살을 잡고 따귀를 후려쳤다. 그러나, 곧 젊은 패들이 그 아버지를 붙들어 너럭바위 쪽으로 끌고 가버렸다. 아버지는 끌리면서

"이놈아. 그건 내 배다, 내 배!"

하고 울부짖다가 모래밭에 털썩 주저앉은 채 두 손으로 모래를 치고 뒹굴었다,

하룻머릿골의 밤을 대낮같이 밝히면서, 마치 하늘을 태우고 바닷물을 지글지글 끓게 하는 듯 맹렬히 치솟는 시뻘건 불길을 보면서. 그 해 열세 살 나던 밴강쉬는 너럭바위 옆에 웅크린 채 벌벌 떨고만 있었다. 바싹 마른 데다, 밑바닥 부분에 솔 기름을 두껍게 먹여 둔 배에 붙은 불은 한밤중쯤 해서 이글거리는 숯불로 변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이 하룻머릿골을 폐촌으로 만든 불씨였던 것이었다.

이 경황 속에서 비바우 영감의 아내는 실성하였고, 이튿날 아침부터 그 여자는 모래밭에 비루가 일었는데 그것은 멀지 않아 큰 난리가 날 징조라고 하면서, 석유병을 가지고 나와 솔잎에 석유를 묻혀서 쩍쩍 뿌리고 다니는가 하면, 자기 작은딸 미륵례가 아직 열세 살일 뿐인데 시집갈 때가 되었는지, 벌써부터 한 달에 한 번씩 피빨래를 해야 한다고 하며 시시덕거리기도 하고. 밴강쉬네 집에 나타나서는 밴강쉬를 사위 삼아야겠다고 하기도 하고, 히히하하 대목을 치며 실없이 웃어대는가 하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모래밭을 어정거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푹석거리는 잿더미를 쓸어안은 채 엉엉 울어대는가 하면, 두 손에다가 뭉실뭉실하게 닳은 갯바닥 돌을 들고 이를 갈면서 하룻머릿골의 골목길을 이리 퉁퉁퉁 저리 퉁퉁퉁 뛰어다니기도 했다. 하도 보기에 안 되었어서, 마을 사람들이 서둘러 그 여자를 끌어다가 방안에다 가두고, 회령 포구에서 정신병에 영한 침장이 영감을 불러다가 치료를 하게 해주었다. 쑥 불을 뜨면서 침놓기를 며칠이고 계속하자, 고 여자의 그 같은 발광기는 점차 가시어 갔다. 그러나 이따금 샛바람이 불면서, 수만 마리의 상어 떼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바다가 들쌩거리고, 그 바다를 메울 듯한 시꺼먼 구름장들이 동에서 밀려들었다가, 기침고개의 늘씬한 허리를 어차어차 줄달음질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여자는 마당가의 흙담에 버티고 선 채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느그들이 배락을 안 맞고 견디는가 두고 보자아!"

하는 따위로 악을 써대곤 하였다. 가다가는 날이 정 맑은 날에도 그렇게 악을 써대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러면 이튿날쯤엔 어김없이 날이 흐리고 비가 오곤 했다. 얼마 동안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 마을 사람들은 구름 한 점 없이 청청 높은 하늘에서 정판 햇살이 내리쬐고 있더라도, 미륵례네 어머니가 자기 집 마당가에서 악을 쓰면 서둘러 지붕을 고치기도 하고 건장의 김을 거두어들이기도 하곤 했다.

또 간간이 그 비바우 영감의 아내는 누구누구는 내 손으로 기어이 죽이고 말겠다면서 악을 써대다가, 우다시배가 불타던 날밤 이 마을을 도망쳐 나간 두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 새끼들아, 느그들은 왜 애비 웬수를 안 갚으냐아!"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러면 이 마을은 금방 숙연해지곤 하던 것이었다. 그럴 때면 으레 아직 열세 살밖엔 안되었다고는 하나, 벌써 톱상스런 아낙네만큼이나 몸이 불어 있는 미륵례가 나와서, 울어대는 어머니를 떠밀고 집안으로 들어가곤 하였다.

그 이듬해 늦은 봄의 어느 날부터, 우다시배가 불타던 날 함에 도망쳐 나간 비바우 영감의 두 아들이 모두 순경이 되었다는 소문이 이 하룻머릿골을 떨게 했다. 그러자 학교 관사에 불을 놓고, 비바우 영감의 살인 사건에 관련되었음직한 큰몰과 하룻머릿골의 젊은이들이 하나씩 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대부분 당시 창설기에 있던 경비대에 자원을 해 갔다. 물론 밴강쉬의 형도 그 틈에 끼어 나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순경이 되었다는 비바우 영감의 두 아들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일지는 몰라도 복수를 할 것이 틀림없다면서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직접 간접으로 비바우 영감을 죽이는 데 가담하고, 우다시배에 불을 지른 아들들을 경비대에 보내고 난 사람들은 밤잠을 자지 못하고 입술을 빨면서 철없는 자기 아들들의 소행을 꾸짖어보기도 하고, 또 그런 소행을 막아내지 못한 것을 후회스러워 하기도 했다.

아니나다를까 이 해 여름 들면서 회령의 주재소 자리에 들어앉은 파출소 순경 한 사람이, 비바우 영감네 두 아들의 부탁을 받았음인지 어쨌음인지, 대뜸 비바우 영감 살해 사건에 가담한 젊은이들의 이름을 대면서 체포를 하러 왔다. 그러나 거기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고 없었으므로 그 순경은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는 별다른 조사를 하러 나오지를 않았으므로, 경비대에 보냄으로 해서 자기의 아들들을 피신시켰다고 생각하는 문제의 젊은이들의 어머니나 아버지들은 일단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만나기만 하면, 아들이 들어가 있는 부대 이름을 절대로 가르쳐 주지 말자고, 집을 나간 뒤로는 종무소식이라고 딱 잡아떼자고 단단히 약속을 하곤 하였다.

이 해 가을이 되면서 비바우 영감의 큰아들이 검은 제복에 방망이를 찬 모습으로 이 하룻머릿골에 나타났다. 마을은 다시 한번 발칵 뒤집혀졌다. 문제의 젊은 아들들을 경비대에 보낸 아버지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산으로 바다로 몸을 피했다. 아들 대신에 아버지를 잡아다 가두어 놓고, 아들의 행방을 문초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을 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비바우 영감의 큰아들은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라고 얼마쯤의 돈을 미륵례의 언니인 야실이의 손에 잡혀주고, 아무런 말도 없이 마을을 떠나가 버렸다. 그 후 미륵례의 어머니가 간혹 날궂이를 하느라고. 마당가에 나와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악을 써대는 것 외엔 별로 시끄러운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은 채 또 얼마 동안의 세월이 갔다.

 

8

 

그 이듬해 가을의 어느 날 저녁, 이 하룻머릿골에 느닷없는 총성이 울려 대면서 어디서부터 몰려왔는지 젊은이들 한 떼가 푸른 군복 입은 사람 하나를 옹위한 채, 기침고개를 넘어서 (잇샤! 잇샤!)하며 너럭바위 옆 모래 밭으로 달려나왔다. 경비대에 들어간 밴강쉬의 형이 돌아온 것이었다.

사실 그는 여수 지방에 머무르던, 당시 14연대가 일으킨 -반란사건-에 가담했다가 진압군에 쫓겨 도망을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들의 -반란-이야말로, (노동자 농민들에게 부자 놈들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여 무상으로 분배해 주기 위해 일어선 것)이라고 말을 한 것이었고, 고 바람에 그는 일단 큰몰과 하룻머릿골의 젊은 패들에게서 영웅처럼 떠받들려졌던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영웅심에 들떠 무서운 것이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가지고 있는 총이겠다. . 이 해변 구석에서 한번 위세를 부린다고 하여 거칠 것 있을 건더기가 눈꼽만큼도 없었으므로 마구 총질을 하면서-인민공화국 만세-를 소리 높이 외쳐댄 것이었다.

젊은 패들은 그가 외치는 대로 따라 만세를 불렀고, 그래서 이 하룻머릿골은 온통 해일이라도 일어난 듯 부글부글 들끓었다. 이러한 판국에 있는 그에게 자기를 살인혐의자로 끌어가려고 회령 파출소 직원들을 뒷전에서 충동질했었음에 틀림없을 비바우 영감의 두 아들에 대하여 사무친 원한이 끓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결국

"언제 어떻게 죽어질지도 모르는 놈의 세상 될 대로 되거라"

하며, 비바우 영감네 집으로 달려가기가 무섭게 실성한 채 악을 써대는 그 영감의 아내에게 총알을 먹였다. 이어 미륵례의 언니인 야실이의 가슴에도 총알을 쑤셔넣었다. 다음 미륵례한테 쏘아댈 참이었다. 그때. 열네 살이라고는 하나 이미 숙성한 아낙네 이상으로 몸이 크게 자란 미륵례는 피를 콸콸 쏟아내면서 쓰러진 어머니와 언니의 몸을 싸안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미륵례에게 총부리를 댄 형의 태도는 당당했었다. 형에게는 자기 나름의 어떤 떳떳한 명분이 서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말하자면 친일 반동분자의 씨는 깡그리 없애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기는 살인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인민 해방을 위한 혁명 대열에 앞장을 서고 있다)는 것 --- 어쨌든, 형은 무서운 것이 없는 듯했다. 어쩌면 미친 듯했다, 바로 이때에 아버지가 뛰어들어 형의 허리를 안고 늘어진 것이었다.

"차라리 나를 쥑에라 이놈아, 하늘도 안 무섭냐?"

이어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어 형을 타일렀는데, 형은 그들을 뿌리치고 모래밭을 달려 갯마을 쪽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어둠 속을 향해 아버지는 피맺힌 울부짖음을 쏘아 날렸다.

"내 손으로 쥑일 수는 없응께, 멀리 안 보인 데로 가서 뒤져부러라. 이 개 같은 새끼야."

이 울부짖음은 검은 어둠이 자욱한 바닷가 모래밭을 휘몰아 너럭바위 앞 바다로 아득히 사위어가고 있었고, 허겁지겁 달려온 그의 어머니는

"워메, 워메, 이 일을 어째싸 쓸꼬오!"

하며 비바우 영감네 집 마당에 털썩 주저앉은 채 땅을 치며 몸을 떨었다.

이튿날, 아버지는 회령의 파출소로 불리어갔다.

한밤중쯤 해서 돌아온 아버지는

"새끼를 것()을 낳제, 어디 속을 낳는가 머?"

하고 눈에 물을 가득 담았고, 어머니는 자꾸 시국을 원망하며 눈물을 뿌렸다. 다음 날부터 아버지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방안에 누워만 있었다. 이런 아버지를 위해 유자나뭇집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희한한 약을 가르쳐 주었다. 어머니는 그 할머니가 시킨 대로 병목에 긴 노끈을 달고, 주둥이에 솔 잎사귀 한 줌을 쑤셔박더니 돌을 달고 변소 깊숙한 곳에 빠뜨려 놓았다. 사흘 후에 건져냈을 때, 그 병 속에 누르께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거기에 소주를 타서 아버지에게 드리곤 했었다.

그 겨울 초물 갯것이 시작되면서 바다는 더욱 맑고 푸르러 갔고, 노파람에 뇐 물결을 일으키는 파도는 너럭바위를 더 세차게 때려댔다.

그 사이 소식 없던 형이 그 해 겨울 유치 어디선가 토벌군에 의해 죽었다 했고, 마을 사람들은

"정상으로 보면 불쌍하네마는, 잘 죽었네. "

이렇게들 말을 했었다.

다음해 봄, 아버지가 유치 산골을 몇 날 며칠 헤매어 형의 시체를 찾아왔을 때, 어머니는 또 자꾸 시국을 원망하며 통곡을 했으나, 아버지는 쉬쉬하며 기침고개를 넘는 골짜기에 있는 산밭 가에다가 형을 묻었다. 무덤에 뗏장을 입히고 난 아버지는 속이야 어떻게 아프고 쓰린지 알 수 없었지만, 삽 등으로 뗏장을 탕탕 두드리며

"에잇 잘 죽었다 이놈. 이 개 같은 놈."

하여 이를 갈았다.

밴강쉬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터였다. 비바우 영감이야 죽어 마땅할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고의 아내나 큰딸 야실이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마구 총질을 했더란 말인가. 더구나 이제부터 올데갈데없는 미륵례는 어디에 있는 누구한테 가서 살아야 할 것인가. 그 무렵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메,어메, 우리 어메.)하고 소리쳐 우는 미록례의 목쉰 울음소리를 들으면 가

슴이 온통 답답해지기만 하던 밴강쉬는 형이 정말로 잘 죽었다 싶던 것이었다.

형이 죽은 뒤부터는 아버지가 파출소로 불리어다니지 않게 되었고, 파출소 직원들도 이 하룻머릿골에 자주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마을 사람들은 다시 안심하고 바다에 나가 김발도 거두어들이고, 오징어 잡이나 죽거미 잡이 준비도 서둘러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돌아온 셈이었다.

그러나 밴강쉬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미륵례가 순경을 하는 오빠들을 따라 왼데로 나가버린 것이었다.

미륵례의 얼굴을 하루에 한두 차례씩 보는 재미로, 그 미륵례와 살림을 차리고 주낙질도 하고 낙지도 잡고 김도 뜯으면서 살아가는 모양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 재미로 그날 그날을 보내곤 하던 밴강쉬였다. 김발 막을 때, 보통 사람들이 기껏 한두 개씩 끌어내리는 말목을 여남은 개씩 끌어내리는 따위로 힘 자랑을 해 보이는 것도, 공출할 때 미륵례네 나락 가마니 세 개 네 개씩을 공 굴리듯이 거뜬히 져내 주는 것도, 모두 미록례에게 보이기 위해서이던 것이었다. 미륵례가 나가버린 처음 며칠 동안, 그는 흡사 실성한 사람처럼 모래밭을 무엇이 그리 바른지 두 활개를 내저으며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별 할 일도 없이 기침고개를 땀 뻘뻘 흘리며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했다. 기침고개 위에 올라가서는, 큰몰에서 회령으로 넘어가는 하눌재를 멀거니 바라보며 서 있기도 했다. 암이면 그 고개의 양 옆에 솟은 각시봉과 서방봉을 줄달음질쳐 오르내리기도 했다.

날이 감에 따라 그는 흡사 불알을 까버린 황소처럼 맥이 없어져 버렸다. 중병을 앓는 사람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몸을 웅크린 채 얼굴을 찌푸리고 있곤 했는데, 고런 그의 큰 흰자위는 누르퉁퉁하게 변질되어져 있었다.

그해 봄 들어 날이 풀리면서부터는 너럭바위 위에 우두커니 서서 먼 바다를 멍청히 내다보고 있는가 하면, 어슬렁어슬렁 모래밭이나 산언덕을 헤매어 다니기도 하고, 그러다가는 모래밭 구석이나 풀섶 가운데 주저앉은 채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기도 했다.

"저러다가 저놈이 죽것구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아버지가 붙잡아다가 바닷일을 시키는 경우엔, 그저 시키는 대로만 흐느적거리면서 하는 척할 뿐이었다. 배를 끌어오라면 끌어오고, 다 배에 실으라고 하면 실으라는 대로만 싣고, 노를 저으라면 노만 한없이 젓고, 말목을 바닷물 깊숙이 박으라면 박으라는 대로만 박고 있곤 있곤 하였다.

그가 일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끓어오른 심통을 억누르지 못하고 꽥 소리를 지르곤 했다. 무엇을 손대든지, 걷든지, 노를 젓든지 하는 그의 태도는 (세월아, 좀 먹어라)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 그뿐인가, 그는 또 시키는 일 외엔 손끝 까딱을 하지 않았다.

", 이 사람아. 배를 잡어 왔으면 발대랑 말목이랑 얼릉얼릉 실어사 쓸 것 아니냐?"

하고 소리를 지르면, 그제서야 어슬렁어슬렁 말목을 끄집어다 배에 실었다. 그러나 말목을 실어놓고는 우두커니 서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했다.

"인제 얼릉 가자, 뭣 보고 있냐?"

성화 같은 재촉이 있어야 배를 물로 밀어내고 노를 걸어 저었다. 또 그렇게 한없이 노를 저어갈 뿐이었다. 그대로 둔다면 그 바다의 끝닿는 데까지 계속 저어가기라도 할 것이었다. 여기서

"고만 젓고, 말 하나 박어라."

하고 소리를 쳐야만 그는 노를 걷어 얹고 말목을 들어 박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랬을 뿐으로 그는 그 말목 끝을 잡은 채 멀거니 바다 멀리 뜬 군함 같은 섬 끝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아버지는 신경질을 내어 소리를 꽥꽥 질렀다.

"그러고 서 있지만 말고, 얼롱 발 피어라, 이 멍충아!"

그는 이 말을 듣고서야 발대를 폈다. 그걸 펴고 난 그는 또 뱃전에 부딪는 잔물결만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인제, 얼릉 말바리 해라!"

이렇게 재촉을 받고서야 그는 어슬렁거리며 말목을 들어 박기 시작했다.

집안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밥상을 받아놓고는 멀거니 바람벽만 바라보고 있곤 하기 일쑤였다.

"싸게 묵어라."

왝 소리를 질러서야 그는 숟가락을 들곤 하였다. 두 그릇 세 그릇씩 먹어대던 밥의 양도 많이 줄어. 한끼에 기껏 한 그릇 정도밖에 먹지를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까지도 밴강쉬가 어쩌면 점점 바보스러워져 가고 있다는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마을의 조무라기들까지도 이 거구의 사나이를 전혀 생각이라는 게 없는 이색적인 동물 취급을 한 나머지, 지나가면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돌을 던지기도 하고 침을 뱉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 없이 자기 갈 길만을 가곤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 해가 갔다. 열여섯이 되는 봄 무렵부터 그의 행동에는 이상스러운 점이 한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다들 잠든 밤중에 아무 소리 없이 집을 나가서는. 기침고개 마루를 더듬어 노룻목의 갯가를 어정거리다가 새벽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상한 것은 그가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사람을 만나면,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먼 바다 위에 뜬 섬이나 꿈틀거리는 물굽이나 하늘에 뜬 별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가, 그 사람이 자기 옆을 스쳐 지나간 뒤에야 걸음을 옮기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 나오는 구멍을 훑아 메워 버리기라도 한 듯, 그는 언제 어떤 경우에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누가 불러도, --하고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만 돌리곤 했다. 또 그는 사람들이 말목을 빼다가 배에 실어 둔 채 들어가고 없으면, 그게 누구네 것이들지 상관하지 않고, 그걸 밤 사이 몇 아름에 들어다가 모래 언덕에 퍼놓곤 하기 일쑤였다.

이런 일이 있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그가 어쩌면 미친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고렇게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형의 악귀가 들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자기 딴에는 풍수지리에 능하다고 수염을 쓰다듬곤 하는 한 영감은, 암소의 허리같이 늘씬한 기침 고개 양쪽으로 솟은 두 산봉우리 때문에, 이 마을에 장사(壯士) 한 쌍이 생겨나기는 했지만, 하룻머릿골 사람들이 먹고 사는 찬 샘물이 너무 차고 세기 때문에, 그 샘물에 정기가 녹아 두 장사가 결합을 하지 못한 채 서로 헤어진 것이며, 또 점차 바보가 되어 가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영감의 말이 어쩌면 을을 것이라고 했다. 한데, 이 해 여름 들면서 그에게 회한한 일이 하나 닥쳐왔다.

 

9

 

미륵례가, 왼데서 순경질을 한다던 오빠들과 함께 이 하룻머릿골에 홀연히 나타난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검은 제복에 방망이를 차고 왔어야 할 두 오빠가 똑같이 이 마을 사람들이 보통 입는 휜 한복 바지저고리를 입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오라들은 만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제 김도 뜯고 고기도 잡으면서 살기 위해 순경질을 그만 두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은 금방 굳어졌다. 몇 해 전에 자기 아들들이 죽인 비바우 영감과, 밴강쉬의 형이 죽인 그 영감의 아내와 야실이에 대한 보복을 그들 두 형제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하고 나설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바우 영감의 두 아들이 미륵례를 데리고 들어오자, 가장 크게 겁을 낸 것은 밴강쉬 아버지였다. 그는 이날 밤 내내 엎치락뒤치락 잠을 못 이루다가 자기 아내에게

"나 암만해도 무섭네. "

하고 말했다. 비바우 영감의 두 아들이 -웬수 갚자고 들어선- 순경질을 왜 그만두고,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나 여동생 야실이가 이 마을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몰살을 당한 고향으로 돌아왔겠느냐는 것이었다. 그게 아무래도 미심쩍다는 것이었다.

요즘 형사들은 별스런 옷차림을 다 하고 다닌다는데, 형사가 된 비바우 영감의 두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하나씩 잡아가게 하려고 저런 수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필경 자기 아버지, 어머니, 야실이 살인 사건을 뒤집어놓고 말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맨 먼저 자기의 큰아들 문제가 뒤집히게 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또 어찌 되는가. 살아 있는 놈들은 입이 달렸으니까 모든 죄를 죽은 자기 큰아들한테만 돌돌 몰아다 붙일 것이 뻔하지 않은가. 결국, 아버지인 자기가 또 파출소로 끌려가게 될 것만 같다는 것이었다.

"저놈들이 다시 나갈 때까지만 어디로 쪼깐 돌아댕기다 올라네"

하는 밴강쉬네 아버지의 말에 밴강쉬의 어머니는

"알아서 하시요마는, 어디로 가드라도 기별이나 하씨요."

하였다.

밴강쉬의 아버지는 닭이 울 무렵에 마을을 살뱀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남편을 보낸 밴강쉬 어머니 또한 집안에 혼자 붙어 있을 수가 없어, 홀로 사는 손윗 동서네 집으로 가서 날을 밝혔다.

그러나, 밴강쉬는 이날부터 전혀 새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날 밤 역시 기침고개 주변과 노룻목 모래밭을 헤매어 다니다가 들어온 그는 아침 일찍 마당을 쓸어놓고, 바지게를 짊어지고 바닷가로 나갔다, 땔나무로 쓸 발대나 갯짚을 쓸어모아 바지게에 짊겨 놓은 뒤, 개펄밭으로 달려가서 미끼로 쓸 갯지렁이를 잡았다. 발대와 갯짚을 짊어지고, 갯지렁이를 들고 들어온 그는 주낙줄을 사리는가 하면, 낚시에 갯지렁이를 끼우기도 하고 찢어진 돛폭을 꿰매기도 했다. 고기잡이 나갈 채비를 해놓고, 느지막하게 동서네 집에서 돌아오는 어머니에게 밥 준비를 해달라고 재촉했다. 어머니는 비바우 영감네 두 아들 때문에 가뜩이나 가슴이 켕기는 판에, 전혀 새 짓을 하고 있는 밴강쉬가 못마땅했다. 이놈이 이젠 정말로 실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싶던 것이었다.

"고기고 멋이고 다 귀찮어 죽겄다."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말을 타내지 않았다, 부엌으로 따라 들어가 물동이를 들고 나왔다. 골짜기 샘으로 팽당그르 달려가, 물을 가득 길어다 주고, 솥을 씻어 놓고 불을 지펴주면서 밥 재촉을 했다.

"나 오늘 나가서 고기 많이 잡어 갖고 옴세, 엄니, 밥만 많이 싸주소."

그런 그의 머리에는, 고기를 한 구럭 잡아 가지고 와서 미륵례한테 한 바가지 퍼주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이날 큰 마음 먹고, 마을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장군섬 근처까지 배를 저어가서 주낙을 폈다. 이 날에야말로 숭어, , 장어, 병치 따위가 묵직하게 주낙 줄에 걸려들었다.

해 저물녘이 되어 돛을 달고 돌아오는 그는 그 뱃길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마파람을 받아 잘 닫는 배였지만, 그것이 마치 오뉴월 구렁이처럼 느리게 움직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돛을 단 채 힘껏 노를 저었다. 사실 말해서, 그는 전날, 미록례가 오빠네들과 함께 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당장 찾아가 만나보고 싶었었다. 그러나, 그런 명분이 서지를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 주낙 질을 나선 것이었다. 이젠 고기 한 바가지를 담아 들고 간다면, 그걸 주러 왔다는 명분이 서기 때문에 자신 있게 찾아가 만날 수가 있게 될 것이었다. 고기를 건네주면서

"느그 오빠네들 해 드려라. 아주 성하디 성하다."

하면 미륵례는 어쩌면 얼굴을 붉힐 것이다 싶으니, 가슴이 뛰었다.

그는 노 끝이 휘청휘청 활등처럼 휘어지도록 힘주어 노를 저었다. 그런데 그가 너럭바위 앞에 뱃머리를 대었을 때, 마을에는 묘한 일이 하나 벌어져 있었다.

해는 기침고개 허리의 솔숲에 걸려 있었고, 하룻머릿골과 너럭바위는 모두 그 기침고개 양옆으로 솟은 암수의 두 봉우리가 흘리는 자주 빛 그늘에 묻혀 있었다. 가까운 바다로 주낙질을 나갔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들어온 모양으로, 주낙 연모 실린 채취선들이 선착장의 잔잔한 바닷물 위에 잠든 듯 정박되어 있었다. 그럴 뿐, 바닷가나 마을 안에는 사람들의 그림자 하나가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선착장으로 배를 저어 들어가면서 밴강쉬는 고개를 갸웃하였다. 웬일일까. 미륵례네 오빠들이 순경질을 그만두고 돌아왔다는 것이 거짓이었단 말인가. 순경의 검은 제복을 벗고 한복 차림을 하였을 뿐, 품 속에 권총 같은 것을 감추어 찌르고 들어온 그들은, 자기들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야실이의 원수를 갚기 위해, 마을의 젊은 사람들을 어디로 죄다 끌고 가서 죽여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려 방안에 죽은 듯이 들어박혀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눈앞이 아찔했다. 너럭바위 앞 선착장에 배를 정박시켜 놓고, 고기 구럭을 옆구리에 긴 채 모래밭으로 내려섰다. 그때 너럭바위 저쪽 우묵한 곳에서 마치 연설이라도 하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며, 그는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기는 일어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살금살금 너럭바위 옆으로 갔다. 쪼그려 앉은 채 그 바위 너머의 소리에 귀를 모았다. 너럭바위 밑 뿌리에서 잔물결이 찰락거리고 있었다.

그 소리 때문에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는 그 연설을 하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미륵례네 큰오빠 들독이의 목소리라는 것을 금방 알아냈다. 그리고 들독이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대강 짐작할 수 가 있었다. 들독이의 걸걸한 목소리는 어쩌면 울음이 섞인 듯했다.

"저도 우리 아부지나 어무니나 여동생의 웬수를 갚을 수는 있었어라우. 그라제마는, 참었읍더다. 흑시 제 동생 껌철구가 엉뚱한 짓거리를 할까만 이, 이틀 사흘 걸어 꼭꼭 전화를 했어라우. 고향 사람들한테 복수를 할 생각은 꿈에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이요. 어르신들, 생각해 보시오. 우리 서로 그래서 쓰겄소? 저는 우리 아부지나 어무니나 야실이를 죽인 것은 동네 청년들이 아니라고 생각하요. 우리가 잘못 만난 시국 탓이지라우. 그 시국이 죽인 것이지라우. 그렁께 우리 일단 이 자리서 과거지사를 솩 쓸어다가 잊어뿔시다, 그라고, 그번 일이 씨도 없었든 것으로 치고, 다시 옛날맹 서로 오손도손 정답게 삽씨다. 어르신들, 어짜요? 제 말이?"

이 말에 사람들이

"존 말이시."

하기도 하고

"그라고 저라고 자네들 볼 낮이 없네."

하기도 하더니, 잠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너럭바위 이쪽으로 넘어왔다. 그러자 미륵례 오빠인 들독이의 목소리가

"어르신들 조깐만 더 제 말씀을 들어주씨요. 말 한자리만 더 할라요."

하자, 다시 너럭바위 너머가 잠잠해졌다.

"저희 세 남매는 모다 이런 생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은께, 새로 허물없이 삽씨다. 계 말씀은 이것이 끝이오."

하고 말을 끝맺자, 두루춘풍이라는 별명을 가진 오십대의 남자가

"우리 오늘 동네 잔치나 하세."

하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자고 하며, 다시 웅성거렸다.

밴강쉬는 귀가 웅웅거릴 만큼 가슴이 뛰었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벌떨 일어서서 너럭바위를 넘어갔다. 가장 그윽한 응달이 지곤 하는 너럭바위 북편의 편편한 곳에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있다가 바야흐로 일어서고들 있었다.

"들독이 성님!"

하고 그는 비바우 영감의 큰아들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고기 구럭 속에서 팔뚝 같은 갯장어 한 마리와 손바닥 만큼씩한 돌돔 두 마리와 병어 두 마리를 바가지에 담아 내밀면서

"이놈 갖다가 오늘 저녁에 해 잡수씨오."

하고 말했는데, 그런 그의 큰 눈에 물이 가득 담기어 있었다. 들독이가 밴강쉬의 손을 덥석 잡고, 그가 내민 바가지를 들어 보였다. 옆에 앉아 있던 미륵례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아따, 오늘 본께 밴강쉬가 사람 다 됐다야!"

하고 희한하다는 듯 소리쳤다. 다가와 그의 등을 도닥거려 주며 칭찬들을 하기도 했다

 

10

 

그로부터 사흘 뒤, 국군이나 순경들이 모두 부산으로 도망을 갔고 인민군이라는 군대가 이 섬엘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미륵례네 두 오빠도 실은 순경을 그만두고 돌아온 게 아니라, 인민군들한테 쫓기어 몸을 숨기기 위해 들어왔을 것이라는 말들이, 비오려고 구름 끼고 기압이 낮은 때의 저녁밥 짓는 연기가 하룻머릿골의 골목길을 팍 채우고 감도는 것처럼 파다해지고 있었다. 특허 젊은 패들은 모여 앉아, 순경 퇴물인 미륵례네 두 오빠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하룻머릿골은 앞으로 시끄러운 큰일이 벌어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쑥덕거렸는데, 그 쑥덕거림은 삽시간에 온 마을 안에 퍼졌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혹시 자기들이 다칠까보아 미륵례네 집으로 눈길 하나 보내지를 않았고, 그 집 앞을 지날 때에는 마치 독()머금은 두꺼비나 독사 앞을 지나는 사람처럼 외면을 한 채 화닥닥 뛰어 지나쳐 가곤 했다. 혹시 골짜기의 찬샘 길에서 미륵례를 만나거나, 지게를 짊어지고 바닷일을 나가는 들독이나 껌철구를 만나도 사람들은 말을 건네지 않았다, 미륵례네 식구들 쪽에서 먼저 인사말을 건네올 경우엔, ()()()도 아닌 얼버무림을 남긴 채 지나쳐 가기만 했다.

이날 저녁 어둑어둑해질 무렵,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그간 자취를 감추었던 밴강쉬의 아버지가 돌아왔다. 한데 그 아버지에게 이상스러운 일이 일어나 있었다. 어깨에 붉은 완장을 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또 그는 혼자 돌아온 게 아니었다. 자기처럼 붉은 완장을 두른 삼십대의 청년 두 사람을 데리고 돌아온 것이었다. 그런 그는 놀랍게 변해 있었다. 여느 때 고개를 푹 떨어뜨리곤 하던 것과 달리, 목덜미에 힘을 준 채 턱을 목 속으로 깊이 끌어들이고, 가슴을 내밀면서 웃몸을 자대바대하게 젖히고 굵은 목소리로 말을 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가 그런 자세에 그런 목소리로 마을의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맨 먼저 명령을 내린 것은, 다음날 이 섬으로 들어오게 될 인민군이라는 군대에 대한 환영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어 젊은이들에게 발대를 말아 만든 횃불들을 켜 들게 하고, 마을 사람들은 너럭바위 위에 모았다. 마을 사람들 앞에서 그는 전혀 생소한 (동무)(투쟁)이나 (인민해방) 따위의 말을 어디서 배워 왔는지, 그걸 섞어가면서 일장연설을 한바탕 늘어놓았다.

"우리는 인제 해방이 되았어라우. 누구는 가난하고, 누구는 부자고,,,, ,

하는 세상은 벌써 가뿌렀소. 우리는 모다 똑같이 재산을 나눠 갖고 살게 되었단 말씀이오. 멀지 안해서 우리가 우리 투쟁을 방해하는 반동 놈들을 쏵 쓸어서 숙청해뿔먼, 우리 세상이 될 것인께 여러 동무들은 내 말만 잘 따르씨오."

그의 연설이 끝난 뒤로, 콧등과 광대뼈 부근으로 얽죽얽죽 곰자국이 나있는 억보가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더니

"순경질을 하다가 그만 두고 돌아온 사람이 있을 경우에, 그 사람은 반동자 속에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

하고 물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미륵례네 두 오빠인 들독이와 껌철구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밴강쉬 아버지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의 등뒤에 서 있는 붉은 완장의 두 청년에게 얼굴을 돌렸다. 그러자 그 두 청년 가운데서 얼굴이 깡마르고 눈이 우묵한 청년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귀엣말을 했다. 연신 고개만 끄덕거리던 밴강쉬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더니

"암만 반동자라고 하드라도, 그 반동자가 우리 민족임에는 틀림없는 것 아니겄소? 그런께, 그 사람이 우리 편이 된다치로먼 반동자로 숙청 안 할 것 아니겄소? 그런께 자기가 친일 악질 반동자라고 생각하먼, 우물쭈물하고 있지 말고 댕궁 먼저 자수를 해사 쓸 테지라우 안 그라겄소? 그라고, 자기 비판만 하먼 우리 편이 되는 것이닝께."

하고 말했다. 억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눈만 끔벅거리고들 있었다. 그러자 깡마르고 눈이 우묵한 청년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인민위원장 동무께서 상세한 말씀은 다 드렸습니다만. 지가 멘 가지 주의 말씀을 덧붙혀서 말씀 드릴랍니다. 금방, 반동자락 하드라도 자수만 하먼 우리 동무가 되는 것이라고 하기는 했습니다마는, 자수하기 전에는 우리 동무가 아직 안된 것인께, 혹시, 여러 동무들 옆에 친일 악질 반동자가 있으먼, 당초부터 말을 걸지를 말어사 씁니대이. 알으시겄조 ? 그 반동자 하고 말을 한 사람도 반동자가 진다는 것을 알어사 쓸 것이오. 알으시겄소?"

연설이 끝났다. 횃불잡이 청년들이 길을 밝혀주는 것을 따라 마을 사람 들은 흩어져 돌아가면서 미륵례네 집을 흘긋거렸다, 이 하룻머릿골에서 반동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미록례네 집 사람들밖에 없을 것이라고들 생각하는 것이었다. 대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륵례와 그 두 오빠만 이 모임에서 보이지를 않은 것이었다.

너럭바위 위에 찐득거리는 어둠이 갯내를 몰고 와서, 발대를 태우던 매운 냄새를 쫓았다. 밴강쉬는 마을 사람들이 다 돌아가 버린 뒤로도 너럭바위 위에 우두커니 앉아, 바다의 잔물결이 별떨기들을 일구어대면서 찰랑거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수를 해사 쓸 테지라우. 그라고 자기비판만 하먼 우리 편이 되는 것인께."

하던 아버지의 말을 되새겨보았다. 자수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숙청이란 그들을 이 마을에서 쫓아낸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들독이와 껌철구 형제가 이 마을에서 쫓겨난다면 미륵례도 따라 쫓겨나야 할 것이다. 그는 가듬이 왁 막히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미록례가 없는 이 마을에서 그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미록례네 오

빠들에게 찾아가 자수를 하도록 권유하리라 하며 미륵례네 집으로 갔다.

대문을 들어서자, 기다랗게 땋은 머리채를 어깨 앞 젖가슴 위로 늘어뜨린 미록례가 호말 같은 거구를 구부정하게 굽힌 채, 창지로 붙인 초롱을 들고 부엌에서 나왔다. 밴강쉬는 얼굴이 화끈 달고 가슴이 후두둑 뛰었다. 동시에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의식하면서

", 오빠 계시냐?"

하고 더듬거렸다. 열여섯 살이라고는 하나, 그는 여느 어른 못지 않게 목소리가 굵었다. 큰 독을 울려 나오는 것처럼 굵은 그의 목소리가 허름한 집안을 엉 울렸다. 호롱불의 어슴푸레한 불빛을 받아 눈이 우묵하고 코가 덩실해 보이며, 돌로 된 장승(천하대장군)처럼 키가 커 보이는 미륵례가 잠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서 있더니, 호롱불빛에서도 검은 때가 엉긴 채 번들번들 윤기가 도는 마루 위로 올라섰다. 마루청이 내려앉을 듯이 삐그덕하고 소리를 냈다. 그 마루청은 미륵례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 버리자 덜컹하고 올라붙는 소리를 냈다, 얼마쯤 후에 미륵례가 방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 채 그를 향해, '들어온나' 하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가 댓돌에서 황소 같은 거구를 마루 위로 올려놓자, 마루청은 조금 전 미륵례가 올라서던 때보다 더 요란스럽게 삐그덕거렸다. 그는 마루청이 무너져 앉을까 싶어 재빨리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꿈치에서 마루청이 덜컹하고 올라붙는 소리를 내는 것을 들으며 방문을 닫았다. 순간, 그는 그 방 안에 짙게 잠긴 어둠과 거기에 절진한 담배 연기 때문에 가슴이 꽉 막히는 듯 답답하여지는 것을 느꼈다.

그 담배 연기는 흡사 오소리를 잡는 짚불 연기 같은 것이었다. 더구나 웃목 구석에서 미륵례가 들고 있는 호롱불이 그 웃목 구석만을 두리두리하게 비추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에, 방안의 어둠은 부옇고 칙칙하기까지 했다. 아랫목 구석에는 발갛게 타고 있는 불똥 두 개가, 어둠 속에서 불을 켠 고양이의 눈처럼 멀뚱했는데, 그것은 들독이와 껌철구가 아랫목에서 이마를 마주대다시피하고 앉아 빨아대는 담배 불똥이었다.

그 짚불 연기 같은 담배 연기 속을 뚫어보며

", 들독이 성님!"

하고 잠긴 소리를 내자, 아랫목에 앉은 들독이 앞에 이마를 깊이 떨어뜨리고 있던 껌철구가 몸을 돌리더니, 사랑방 목침덩이같이 두껍고 단단한 밴강쉬의 손을 으스러뜨릴 듯이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이리 앉어라."

껌칠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랫목의 들독이는 손끝에 잡고 있던 담배 끝을 입으로 차져다 대고 힘주어 빨기만 했다. 손 끝의 담배 불똥은 핏빛으로 타면서, 들독이의 덩실한 콧등과 두툼한 입술과 손끝과 눈알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 웃목 구석에 서 있던 미륵례가 호롱불을 웃목에 놓고, 들독이 옆으로 가서 무릎을 꿇은 채 앉더니 밴강쉬를 건너다보았다,

밴강쉬는 껌철구가 이끄는 대로 그의 옆에 주저앉으뗘 별렀던 말을 꺼냈다.

"자수 하시씨요, 성님들!"

밴강쉬의 말은 제법 어른스러웠다.

"자수만 하면 우리 편이 되는 것이라고, 아까 울아부지가 그랍디다."

"자수?"

고개를 번쩍 들면서 들독이가 담배 연기를 내뿜고 맥풀린 소리로 되물었다. 껌철구는 바싹 밭은 목구멍으로 침을 넘기기만 했다. 밴강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 자수만 하면 반동자로 숙청을 안한닥 합디다."

껌철구가 아직도 잡고 있는 밴강쉬의 손을 흔들어 주면서 등을 두어 번 두드려 주고

"아심찬하다."

하고 종잇장처럼 바싹 밭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그의 가슴은 뻐근하게 미어질 것같이 부풀어나고 있었다. 목이 메었다.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대로 아버지에게, 들독이와 검철구야말로 (우리 편)이 쇨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 당장이라도 자수를 할 듯이 말을 하더라고 말하여 줄 참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숙청해서는 안된다는 말도 할 참이었다.

"울아부지한테 시방 가서 직시 말할란께, 성님들 참말로 얼릉 자수하시씨오잉."

하고 일어서서 나오는데 들독이가 밖으로 따라나와, 그의 손을 잡더니 귀엣말로

"너는 우리하고 남 되어서는 안된대이, 내 말 알어듣겄냐?"

하였다.

그는 골짜기 찬샘 쪽에 있는 그의 집으로 오면서 들독이가 한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그 말의 뜻을 얼른 알아챌 수가 없었다

" ---남 되어서는 안된다."

이 말을 무수히 속으로 뇌까렸다. 그것은 어쩌면, 처남남매지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집 사립을 들어서는 그의 발뒤꿈치는 가벼웠다. 그는 곧 아버지에게 들독이와 껌철구 이야기를 하고 그들을 숙청해서는 안 된다고 떠듬떠듬 말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멸시하는 투로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너는 밥이나 많이 퍼 묵고, 시키는 일이나 부지런히 해라."

하였을 뿐이었다,

이튿날 어김없이 인민군이라는 군대의 일개 분대가 큰몰을 거쳐 하룻머릿골로 들어왔다. 기침고개를 넘어오는 길에 밴강쉬네 형의 무덤 앞에서 붉은 완장 두른 청년의 선창으로 (강 동무 만세)를 그 골짜기가 찢어져 나갈 만큼 목청껏 부른 의. 하룻머릿골로 들어온 그들은 밴강쉬의 아버지를 앞장세워 마을 사람들을 너럭바위 위에 모았다. 그리고 분대장이라도 되는 듯한 나이 듬직한 군인 한 사람이 나서서

"동무, 인민 해방 전선, 혁명 대열, 부산으로 줄행랑을 친 이숭만 팟쇼 도당, 반동자 숙청, 모리배의 재산 몰수 무상분배,"

따위의 말들을 늘어놓은 뒤에, 이 마을 모든 (동무들은 - 영웅적인 아들을 인민 해방 전선에 바친) 인민위원장인 밴강쉬 아버지를 중심으로 (인민해방 전선)에 참여할 것을 당부하였다. 군인의 말이 끝나자 누가 내놓은 박수인지 그것을 따라 사람들이 와르르 박수를 쳤다,

이날의 모임에는 들독이와 껌철구가 누구에게 끌려 나왔는지 나와 있었다. 그들은 시종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만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창백한 얼굴에 눈길 하나 보내지 않았다.

이날 밤 아버지는 큰몰의 젊은이들과 함께 세포를 조직하고, 부녀자들을 모아, 먼 일가로 밴강쉬의 누님 뻘 되는 한순이를 중심으로 여성동맹위원회를 구성하게 하였으며, 큰몰 사는 먼 사돈 뻘 되는 막동이를 중심으로 소년단을 조직하게 하였다. 밴강쉬는 그 소년단에 들어갔고, 소년단 부단장을 자기도 모른 사이에 맡게 되었다.

다음 날, 한순이와 큰몰의 말동이는 면 당위원회에 갔다가 그 다음 날 저녁 무렵에야 돌아왔다. 돌아오는 대로 -그들은 자기 여성동맹위원회와 소년단을 소집해서 밤새도록 (아침은 빛나라)(장백산 줄기줄기 어쩌고 저쩌고) 하는 노래를 가르쳤다. 이날 밤부터 하룻머릿골을 그 노래로 가득차 버렸고, 그것은 또 기침고개를 넘어 큰몰 안을 술렁거리게 했다.

처음 얼마동안, 그 소년단에는 소녀들도 끼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큰몰에서 농사깨나 짓는다는 집 어른들은 자기 딸들을 밤에 나다니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소년단 두목격인 막동이는 그런 집을 찾아다니면서, 소년단에 나다니지 않으면 반동자가 된다는 위협적인 말을 하곤 했었다, 그러자 며칠 사이에 클몰과 하룻머릿골의 소년단은 오십 명에 가까운 수가 되었고, 그 수는 밤만 되면 막동이의 지시에 따라 하루는 큰몰의 사장으로, 다음 하루는 하룻머릿골의 너럭바위 위로 어김없이 모이곤 했다. 그러면 그 소년 소녀들은 멋없이 껑충거리며 뛰어다니기도 하고, 어울려 새로 배운 노래를 하기도 하고, 그 노래를 부르면서 기침고개를 넘어가 큰몰의 골목들을 누벼 나니기도 했다.

그런 몇 날이 갔다. 그 바닷가 밤은 점차 서늘한 가을 기운이 돌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부터 소년단원들은 기침고개 위에 모여서 노래를 배웠다. 어깨동무를 한 채, 혹은 손뼉을 치면서 악을 쓰듯 그 노래를 불렀다.

한데 (가시내, 머시매)들의 모임 속에서 말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아무개는 기침고개를 넘어가다가 막동이하고 뒤처져서 어쩌어쩌 했다네) 하는 투의 말들이 입에서 입으로 건너다녔다. 물론 아무개로 지목을 받은 계집애는 평소에 밉직한 집의 딸이었다. 그 애매하게 당하는 계집애는 울며불며 사실이 아니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었지만, 그걸 놀려대는 소년 소녀들은 그렇게 놀려대는 것을 재미로 여기고, 악다구니를 쓰고 덤빌수록 더욱 즐거워하며 놀려대고 손뼉들을 치곤 했다, 그렇게 서로 어울려 시시덕거리는 것이 다시없이 크게 가슴 졸이는 즐거움이었으므로, 그 재미와 즐거움에 들떠 더욱 목청껏 노래들을 하곤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밴강쉬는 즐거운 줄을 몰랐다. 미륵례가 소년단에 나오지를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늦게까지 노래를 배운 깔 밤, 기침고개를 향해 가는 막동이를 불러서, (미륵례 동무)를 소년단에 끼워 넣자는 말을 했다. 그러나 막동이는 동그란 고리눈을 금방 튀어나을 듯하게 벌려 뜨고 고개를 저으며 낮게

"혹시 어디 가서 그런 쓸디 없는 소리 마래이. 그 새끼는 악질 반동 집 딸 아니냐? 그런 소리하면 너도 반동된다."

하였다.

"자수하면 우리 편 된닥 하등마는 그래?"

밴강쉬의 이 말에 막동이는

"미륵례네 즈그 오라들은 너무 큰 악질 반동이라 자수해도 쓸디없닥 하드라."

하고는 기침고개를 향해 가는 큰몰 계집애들 뒤를 쫓아가 버렸다.

밴강쉬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골짜기 찬샘 옆에 있는 자기 집으로 가는 길에, 미륵례네 대문 앞에서 발을 멈추고 집 안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큰몰노 넘어가는 소년단원들의 (장 백산 줄기 줄기 ,,,,,, ) 노래가 왁왁거리는 해조음에 어울려 골목으로 아련히 깔려들 뿐으로 집안은 괴괴해 있었다. 고개를 떨어뜨린 채 발을 옮겼다.

사립을 들어서던 그는 섬찍한 느낌이 들었다. 변소와 헛간이 붙어 있는 사랑방 목에서 남자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하긴, 세상이 바뀌면서부터 저렇게 동네청년들이 모여 앉아 두런거리지 않는 날 밤이 없긴 했었다. 그러나 이날 밤의 두런거리는 소리는 여느 날 밤의 두런거림과 달랐다. 그것은 낮게 소곤거리는 듯했는데, 그 소곤거림은 낮고 음침하였던 것이었다. 그는 발을 멈추고 사랑방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담 밑에서 시꺼먼 사람이 불쑥 나서며 맞은 소리로 누구냐고 했다. 이 마을에서 자기 다음으로 힘이 센 억보였는데, 그의 손에는 쭈삣한 대창이 들려 있었다. 그는 세포위원이었다.

밴강쉬가 흠칠하며 (나요) 하고 한 걸음 물러서자, 밴강쉬임을 확인한 억보가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안방을 향해 걸어가던 밴강쉬는 순간적으로 뒷간엘 가야 한다는 생각을 깼다. 허리띠를 풀면서 헛간으로 갔다. 거기서 지푸라기 한 줌을 말아 쥐고 사랑방 모퉁이를 돌았다. 뒷간은 사랑방과 바람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말은 다 들을 수가 있었다, 뒷간에 앉은 그는 사랑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모았다. 순간 그는 방망이로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듯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놈들이 혹시 권총 같은 것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단 말시. 그런께 억보를 시켜서 보안서에 자수하러 가자고 함스로 끌어내도록 하세. 그래갖고 노룻목으로 끌고 가잔 말시."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들 그게 좋겠다고 했다. 숙청이란, 사람을 죽여 없애는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그러면, 미륵례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자

놔두세."

하고 속닥거렸는데, 그것은 어쩌면 옥이 쉰 듯한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떨리는 손으로 옷을 끌어올리면서. 밴강쉬는 들독이와 껌철구에게 얼른 어디로든지 도망을 가라고 귀띔을 해 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데, 억보가 지키고 있는 사립을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지가 막연했다. 그는 일단 주춤주춤 마당으로 나왔다. 잠시 옷을 여미는 척하면서 담 밑에 옴을 숨기고 있는 억보를 보았다. 억보가 그의 행동을 살피고 있었다. 그가 사립을 나간다면 억보 쪽에서 분명 못 나가게 가로막거나 뒤를 따르거나 할 것이었다.

그는 조급해졌다. 사랑방에 있는 사람들은 의논이 끝나는 대로 미륵례네 집으로 몰려갈 것이 번했다. 어떻게 억보의 눈을 피해 사립을 빠져나가서 미륵례네 오라들한테 귀띔을 해줄까 뾰족한 묘책이 생겨나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우물쭈물하고 있을 수만도 없어 댓돌 위로 올라섰다, 순간 꾀 하나가 생각났다.

일단 방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을 열고 뒤란으로 나가서 담을 넘자는 것이었다. 담을 넘으면 찬샘이 있는 골짜기 쪽으로 열린 텃밭이 있었다. 왜 그 방법을 진작 생각하지 못했었느냐고 혀를 물면서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나 방으로 들어가니 금방 뒷문으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는 방해자가 있었다. 홑이불을 덮은 채 자고 있던 어머니가 깨어 일어나 앉으며, 어디를 그렇게 싸다니느냐고 잠꼬대 같은 소리로 꾸짖고, 웃목 쪽을 가리켜 주면서 거기 누워 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사랑방의 남자들은 모의가 끝난 모양으로 문을 열고 낮은 소리로 두런거리며 나오고들 있었다. 신을 집으면서 사립을 나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가슴이 펄럭거리고 좀이 쑤셨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면서 눈앞이 아찔해졌다. 웃옷을 벗어 던지려다가, 목이 밭으니 물을 좀 마셔야겠다고 하면서 뒷문을 열고 나갔다. 어머니가 몸을 일으키고, 자기가 떠다 줄 테니 그냥 들어오라고 했다. 못 들은 척하고 맨발로 부엌으로 갔다. 바가지로 물동이의 물을 퍼마시는 체하다가 뒤란으로 돌아갔다. 돌담 앞으로 가서, 허물어지지 않을 돌을 골라 손으로 짚어 힘을 주어보았다. 그러나 그 돌담은 여느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돌담이 아니었다. 기껏 목침덩이 만큼한데가, 그것도 뭉실뭉실하고 미끄럽게 닳아진 갯바닥 돌들을 꾀지게 쌓아올린 돌담인 것이었다, 황소처럼 큰 덩치인 그가, 그게 허물어져 내리지 않도록 짚고 뛰어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여기저기 허물어지지 않을 만한 곳을 짚어보는데, 그의 집 사립을 빠져나간 사람들이 찬샘을 돌아 미륵례네 집이 있는 웃골목으로 들어서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제 소리나지 않게 이 담을 뛰어넘기를 그만두고, 살뱀처럼 마당으로 나왔다. 사립을 빠져나가는 대로 샘 아래쪽으로 뛰어내려서, 아랫골목으로 들어섰다. 조금 전에 웃골목으로 들어선 사람들보다 한 걸음이라고 앞질러 미륵례네 집으로 뛰어들어가 들독이와 껌철구를 도망치도록 귀띔을 해주-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아랫골목의 개들이 컹컹 짖어댔다. 삽시간에 하룻머릿골 안은 온통 개 짖는 소리로 들끓고 있었다. 아랫골목을 달리던 그는 너럭바위 쪽에서 올라오는 골목과 웃골목이 만나는 세걸음길에 이르렀다. 거기서 재빨리 웃골목으로 들어섰다. 거기서 두 집 캄벽을 지나면 미륵례네 집 대문이었다. 그는 그 대문간을 향해 줄달음질쳤다. 그러나 찬샘 쪽에서 아랫골목길을 돌아 웃골목에 있는 미륵례네 집까지 오는 거리는, 고냥 웃골목을 질러서 거기까지 오는 거리보다 두 배는 더 멀었다. 고의 집 사랑방에서 빠져나간 사람들이 그보다 몇 발 먼저 당도해 있었다.

미륵례네 집 대문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가쁜 숨을 쉬며 대문 앞으로 뛰어들었을 때, 대문간의 어둠 속에서 시커먼 사람 둘이 불쑥 나서면서, 뾰쪽한 죽창을 그의 목과 가슴에 들이대고, 누구냐고, 낮은 듯하나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화닥닥 뒷걸음질을 치면서 자세히 보니, 큰몰 막동이네 형인 마당쇠와 큰몰의 노랑이 영감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덕봉이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눈을 멀겋게 빛내며 죽창을 겨누고 그에게 다가섰다. 그는 대문 맞은꾄의 흙담에 몰려선 채 식은땀을 흘리면서

", 성님, , 나요, , 아부지한테 가요."

하고 밭은 목에 침을 삼키면서 활급히 말하느라고 떠듬거렸다. 고는 심각해지거나 다급하면 더욱 떠듬거리곤 하는 것이었다.

마당방쇠가 입에 손가락을 대면서 ()하더니. 뒤로 돌아서 얼른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목이 메었다. 한 걸음 더 물러서면서

", , 성님. 우리 아부지 조깐 마, 만나게 해주씨요."

하고 울먹거렸다, 그런데 덕봉이가 죽창 뒤끝으로 그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너럭바위 쪽으로 우악스럽게 밀어붙였다. 그는 주르르 밀려나갔다. 이 근처에 씨름판이 벌어지기만 하면, 송아지를 끌어오곤 하는 날쌘 꾀와 우악스런 힘을 내세우고 인지, 덕봉이는 만일 빨리 집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죽창 맛을 보여주겠다는 듯, 죽창 끝을 그의 눈앞에 들이대어 보이면서 그를 계속 너럭바위 쪽으로 밀어붙였다. 아랫골목과 만나는 세걸음길까지 밀려갔을 때, 덕봉이가 빨리 집에 들어가 잠이다 자라고, 눈을 부라리며 위협을 하고 그를 쫓았다. 그는 아랫 골목을. 추적추적 걸어갔다,

개들은 하룻머릿골을 쩌룽쩌릉 흔들고 있었고, 그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남빛에 먹딸기 빛이 섞인 듯한 하늘의 별들이 우수수 떨어질 것처럼 흔들거리며 낮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두 귀를 틀어막으면서 아랫골목을 걸어서 찬샘 있는 골짜기로 갔다, 어둠에 잠겨 일렁거리는 바다 위로 개 짖는 소리들이 아득하게 퍼져가고 있었다. 자기네 집 사립을 비치적거리며 들어서던 그는, 문득 자기네 사랑방에서 모의하던 사람들의 (노룻목으로 끌고 가잔 말시) 하던 말을 생각하고 발을 돌렸다. 아랫골목을 달려 모래밭으로 나갔다. 노룻목 연안에서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는 곳이란, 일본 놈들이 이 근처에서 사금(砂金)을 채취하면서 여남은 발이나 파들어 가다 둔 바위굴 속뿐일 것이다 싶었다.

여름철에 들어가 보면 천장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포옹포옹 하고, 으스스 한기가 돌곤 하는 그곳을 염두에 두고, 자기 집 사랑방에 모였던 사람들은 그런 모의를 했을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좋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곳으로 미륵례네 오빠들을 끌고 가기만 한다면, 간단히 자기가 구해내서 도망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는 노룻목 연안의 모래밭을 달려서 바위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주위에 널려 있는 목침덩이 같은 돌덩이들을 긁어모았다. 사람들이 바위굴 입구로 들독이와 껌철구를 끌고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에 마구 돌덩이를 굴려 내리겠다는 생각으로였다, 그러다가 그는 바위굴 쪽에서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그에게 응전을 하더라도, 그 돌을 막아줄 만한 바위를 물색하고 그 바위 옆으로 돌덩이들을 옮겨 쌓았다. 넉넉히 돌무덤 하나를 쌓을 수 있을 만큼 돌덩이들을 옮겨 모아두고, 그는 그 바위 옆에 몸을 밀착시킨 채, 하룻머릿골에서 노룻목으로 휘 어돈 모래밭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아스라하게 보이는 희부연 모래밭과 하룻머릿골로 넘어가는 사태밭 언덕이 그의 눈앞에서 자꾸 어른거렸다.

그 어른거림은 흰옷 입은 사람들이 들독이와 껌철구를 끌고 오는 모습으로 착각되기도 했다. 그리고, 모래톱을 핥는 잔물결 소리들이 왁왁 밀려들어, 그가 붙어 서 있는 바위 밑의 굴을 울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들독이와 껌철구가 이끌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악을 써대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는 숨을 죽이고 귀를 쫑그리면서 모래밭에서 어른거리는 것을 응시했다. 그런 채로 얼마를 기다렸을까, 어쩌면 들독이와 껌철구가 자수를 하러 가지 않겠다고 버티므로 사람들이 그냥 그들을 마당으로 끌어낸 채 죽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미친 듯이 모래밭을 뛰어 하룻머릿골로 갔다. 마을을 들어서는 대로 미록례네 집 대문 앞으로 살금살금 가보았다. 대문은 아까 보았던 것처럼 활짝 열려 있었는데, 집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발소리를 죽이며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방문 앞으로 가면서 귀를 기울였다. 그때 방안에서 미륵례가 '누구요' 하며 문을 열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으면서도, 우선 집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 느그 오빠네들 어, 어디 갔다냐?"

하고 후들후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미륵례는 대답을 않은 채 댓돌 아래 선 그를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오빠네들이 어디로 끌려가서, 대창에 찔려 죽어가는 줄도 모른 채 멍히 방안퉁수처럼 앉아 있는 미륵례의 바보스러움이, 주먹으로 한대 쥐어박아 주고 싶을 정도로 밉고 답답했다.

". 어떤 쪽으로 가디야?"

그는 다급하게 젖혀 물었다. 그래도 미륵례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가슴이 꽉 막혔다. 이런 밥통 같은 년 좀 봐라, 하며 그는

", 아야, 미륵례야, 너 어째 그, 그러고만 있냐? 느그 오, 오빠네들, , 벌써 죽어뿌렀겄다."

하고 떠듬거리면서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튿날, 들독이와 껌철구의 시체는 기침고개 마루의 돌자갈 밭에 널려 있었다.

 

11

 

밴강쉬는 담배 꽁초를 던졌다. 그 담배 꽁초는 일렁거리는 바닷물 위로 떨어져 피직하고 꺼졌고, 그것은 금방 시신(屍身)처럼 눌눌하게 변질된 채 물결을 따라 일렁거렸다. 그는 얼굴을 우거지처럼 일그러뜨리면서 고개를 저어 피투성이가 된 채 돌자갈 밭에 널려 있던 들독이와 껌철구의 주검들을 머리 속에서 지우며, 볼과 턱을 쓸었다. 구레나룻이 많이 길어 미끄럽게 쓸리고 있었다. 자기도 이제 늙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지난 일들이야 어찌 되었건, 그는 미륵례를 설득해서 아내로 맞아들여야 한다면서 몸을 일으켰다.

땅거미가 하룻머릿골 뒤에 솟은 각시봉의 해송 숲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수복이 되면서 죽었다. 잘 죽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억보도 죽고, 막동이네 형 마당쇠도, 덕봉이도 죽었다, 그 외에도, 미륵례 오빠네 들과 큰몰의 고랑이 영감 가족들을 몰살시킨 데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씨도 없이 다 죽었다.

거멓게 뒤집혀진 방뼈(구들장), 부서진 상자처럼 찌그러져 있는 바람벽들 사이를 지나면서. 이 마을이 텅텅 비어가던 수복 후를 생각했다. 후퇴를 했던 순경들이 밀려들어오면서, 스물다섯 집의 남정들은 죽거나 군대엘 가버렸다. 하룻머릿골에서은 한 집씩 두 집씩 큰몰이나 잿몰로 이사를 가기도 하고. 멀리 육지로 떠나가기도 하였다. 몇 해 되지 않아서, 하룻머릿골엔 겨우 다섯 집밖엔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그 다섯 집 사람들은, 이 너럭바위 앞 갯바닥에서 김이 풍성하게 생산되고, 바지락, , 우뭇가사리, 해삼, 문어 낙지 따위가 줄줄이 잡히고 멸치 어장이 성했으므로, 사철 내내 큰몰이나 잿몰 사람들이 너럭바위 주변에 들끓어대는 바람에 호젓한 줄 모르고 버티어 살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섬의 양 옆에 둑이 막히고 연륙(連陸)이 되어, 3만평 정도의 간척지가 낙지 잡고 석화 따던. 자리에 생겨지면서부터는, 그렇게도 먹장같이 치렁치렁 자라던 김이 물결 끊김과 동시에 해마다 갯병 때문에 썩기만 하였으며, 멸치 어장 또한 기껏해야 잡어(雜魚) 몇 마리씩만 잡힐 뿐인데다가, 몇 해를 내리 여수 쪽에 세워진 공장들에서 쏟아놓는 폐유 때문에 고막이나 바지락이나 석화 따위들이 죽어 자빠지거나 석유 냄새가 나서 못 먹게 된 뒤부터는 사람들이 오징어 잡이나 문어 잡이를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바람에 하룻머릿골은 아주 귀신 날 것같이 썰렁해졌다. 낮에도 귀신 두런거리는 소리가 뜯어낸 집의 구들장 밑이나 허물어진 돌담 사이에서 들린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그때까지 버티어 오던 다섯 집의 사람들마저 큰몰 아니면 갯마을로 떠나가 버렸다. 이렇게 해서 하룻머릿골은 이렇게 폐촌이 되고 만 것이었다.

이러한 폐촌으로, 늙수그레하기는 하지만 송아지만큼한 개 한 마리만을 데리고 들어온 미륵례를 큰몰 사람들이 신들렸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밴강쉬는 미륵례가 이 폐촌 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다름 아닌, 자기와 함께 살기 위함일지도 모른다는 자기 위주의 생각을 해 버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남자건 여자건 자랄 만큼 자라면 서로 짝을 지어 살게 마련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하고나 되는대로 얽히어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는 몇 번 실패한 결혼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무엇무엇 해도 궁합(宮合)이 맞아야만 그 결혼생활이 원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록례의 남편이 사십을 다 넘기지 못한 채 죽어가야 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궁합이 맞지 않았음일 것이라 하였다. 미륵례의 남편감으로서는 오직 자기가 있을 뿐일 것이라는 생각을 이 끝에 물기라도 한듯 그는 이를 앙 다물었다.

마흔 살이 넘은 이제 와서 미륵례와 결합된다는 것이 다소 늦어진 감이 없잖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때껏 그들 주변을 휩쓸어간 시국(時局)의 장난 때문에 그랬을 뿐인 것이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어보았다. 아직 그에게는 이삼십 대의 젊은이 못지 않은 힘이 있었다. 미륵례가 허락을 해주기만 한다면 그 여자를 아내로 맞고 어느 누구 부럽지 않게 살아나갈 자신이 있었다. 우선 자기를 마을에서 쫓아내자고 숙덕거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었다. 자기가 얼마나 부지런히 일하고, 얼마나 알뜰하게 살림을 하며,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고 아끼는가 하는 것, 그리고 영득이나 달보들이 자랑하는 여남은 필보다 얼마나 많은 논을 사들여 버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줄달음질치곤 하던 골목길을 가름해 보면서, 허물어진 돌담과 무너진 바람벽 사이를 건너뛰기도 하고 비켜 돌기도 하면서, 미륵례가 들어 있는 헛간을 향해 갔다,

한데, 그가 헛간 옆으로 막 다가갔을 때,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송아지만한 개가 그의 앞으로 불쑥 나서면서 허연 이빨을 드러낸 채 그를 노려보고 으르렁거린 것이었다. 그는 기겁을 하고 뒷걸음질을 치면서 얼김에 허물어진 돌담에서 주먹만한 돌멩이 한 개를 집어들었다. 순간 개가 날듯니 뛰더니 그의 어깻죽지에 두 발을 척 걸치고 허연 이빨로 그의 목부분의 동정 모서리를 물어 당기고 있었다. 미처 주먹을 휘두르거나 발길질을 하거나 할 틈을 주지 않은 채 개는 민첩한 동작으로 그를 제압하고 만 것이었다. ()하고 소리치며, 그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돌부리에 걸려 모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개가 그의 옆구리 위에 두 발을 얹고, 머리칼 하나라도 반항하거나 위해를 가할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마구 목줄을 물어뜯을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그때, 미륵례가 헛간 모퉁이에서

"꺼멍아!"

하고 헝겊을 찢는 듯한 소리를 내지르며 나왔다. 그래도 개는 허옇게 날이 선 이빨을 내놓은 채, 모로 쓰러져 목을 움츠린 그의 얼굴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아서!"

미륵례가 다시 소리쳤을 때에야, 개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만일 다시 덤벼들기라도 할 경우를 대비하는 경계의 자세를 저한 채 그를 노렸다. 미륵례는 개를 다시 꾸짖은 뒤

"얼릉 가씨오. 뭣할라고 올라왔소? 이 개가 호랭이 잡은 개라요. 얼룽 가씨오. 다시는 올라오지 마씨오."

하고는 개의 머리를 쓸었다. 개가 땅에 엉덩이를 붙이고 쭈그려 앉더니 고개를 젖혀 미륵례의 손을 핥았다.

그제서야 그는 손을 털고 일어나서, 엉덩이와 팔꿈치에 묻은 흙을 떨었다. 가슴이 덜렁거리고, 온몸에 맥이 쭉 빠져 있었다.

", 아따, , 뭔 개가 그런다우?"

하고 떠듬거리며 미륵례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미륵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개의 머리만 쓰다듬으며

"얼룽 내려가란 말이오."

하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개가 쪼그려 앉은 채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개의 멀겋게 살이 어린 눈을 내려다보면서

", 나 미륵례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와, 왔소. 그 개 조깐 머, 뭣으로 무, 묶어 놓씨오."

하고 떠듬거렸다. 그는 아직도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어렵사리 가누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미륵례는 그에게 눈길 반번 보내질 않고, 개의 머리만 쓰다듬는 채

"이야기고 뭣이고 다 쓸디없은께 얼릉 가기나 하씨오. 그러고 있다가는 이 개한테 참말로 뭔 일을 당할지 모를꺼시오 잉."

할 뿐이었다. 그는 원망스럽게 미륵례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마흔이 넘었다고는 하지만, 주름살 하나 잡혀 있지 않은 해맑은 얼굴이 마치 서른 대여섯 살 정도의 여아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져 있었다.

, 그거 참말로 하, 하는 소리요?"

그는 울상을 지은 채 애원하듯이 물었다.

"여러 소리 할 것 없은께, 얼릉 내려가란 말이요.

미륵례의 목소리는 역시 쌀쌀했다.

하는 수 없었다. 너럭바위를 향해 돌아섰다. 미륵례의 어머니와 언니인 야실이에게 마구 총질을 하던 죽은 형이 원망스럽고, 그 여자의 오빠들을 죽인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덩어리가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 우리 지, 지내간 일은 다 잊어뿔고 나, 나하고 삽시다. , 우리는 천생연분으로 태어난 사람들 아, 아니요? ' 하는 말이 목구멍 너머로 기어 넘어오는 것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 그는 속절없이 발을 옮겼다.

그러나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몇 걸음을 추적추적 옮기던 그는 우뚝 멈추어 섰다. 조금 전에 개한테 당한 것이 못내 분했고, 그 개가 그같이 사납게 구는 것으로 보아, 개가 어쩌면 미륵례의 남편 구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개잡년을 어째사 쓸꼬) 하고 생각하니, 사지가 다시 부르르 떨렸다. 그는 돌아서서 개의 머리를 쓸고 있는 미륵례를

향해

"그 개 싸, 싸나와서 못쓰겠소. , 낼 그놈 잡어 묵어 뿝씨다."

하고 말했다.

미륵례가 악이라도 쓰듯

"잔소리 말고 얼른 가란 말이오!"

하고 소리쳤다. 개가 귀를 종긋 세우고 그를 향해 돌진할 자세를 취했다.

내일 아침에는 튼튼한 몽둥이를 하나 들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일단 너럭바위 위로 내려와 섰다. 어둠이 짙게 깔려 들고, 찰락거리는 잔물결 소리가 하룻머릿골 뒷산 골짜기를 왁왁 울리고 있었다. 먹딸기 빛깔의 하늘에 별들이 하나씩 둘씩 나타나고 있었다

 

12

 

이날 밤을 내내 그는 모래밭을 헤매어다니기도 하고, 각시봉과 서방봉을 휘달려 오르기도 하며 새웠다. 미륵례 앞에서 그 송아지만한 개한테 어이없이 당한 전날의 수모가 못내 분하기만 했다. 이놈의 개를 어떻게 잡아죽일까. 각시봉을 휘질러 서방봉을 오르면서 이를 갈았다. 한달음에 꼭대기에 있는 사마귀바위 위까지 올라갔다. 그때, 그의 몸 속에는, 기침고개 앞을 흐르는 득량만의 해류처럼 꿈틀거리는 게 있었다. 그는 아름들이 바윗돌들을 마구 굴러 내렀다. 와장창 와장창 산 허물어지는 듯한 소리가, 어둠 속에서 별무늬를 그리며 일렁거리고 있는 바다와 산골짜기를 울려댔다. 보리밭에 은신했던 꿩들이 화드득 날아 각시봉 쪽으로 가고 있었다. 어둠 속을 날으는 꿩을 보면서 그는 손뼉을 딱 쳤다. 바로 이것이다 했다. 날이 새기가 바르게 회령 포구로 가서 꿩약(사이나)과 쇠고기 한 근을 사오리라 했다. 그걸 적당히 묻혀 구운 것으로 개를 간단히 없애리라 했다.

새벽녘이 되어, 옷자락에 찬 기운을 싸 안은 채 큰몰로 들어온 그는 골목길에서 껑껑 짖어대는 개소리를 들으며, 자기가 얼마나 비굴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하고 혀끝을 물어뜯었다. 호랑이도 때려잡을 덩치를 가진 주제에, 송아지만한 개 한 마리 그걸 못 때려죽여서 귈 잡는 약으로 개를 죽일 죄를 쓰자고 하다니, 얼마나 병신 같은 생각을 한 것인가 말이었다.

미륵례를 꼼짝 못하게 사로잡기 위해서는 미륵례의 눈앞에서 개의 머릿골을 몽둥이로 콱 쪼개버려야 한다 했다. 그의 오막집으로 가, 잠 한숨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하고, 이튿날 아침 일찍 그는 난데없이 오징어 그물 만들 준비를 서둘러 차려 가지고 집을 나섰다. 그러는데, 어머니가

"악아, 너 그년하고 기어코 살어 볼라고 이러냐, 시방?"

하고 주름살 투성이인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그는 잠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가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가 간밤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그에게 귀띔해 주었다.

간밤 갑자기 마을에는 전혀 새로운 모의 하나가 쉬쉬하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룻머릿골에서 살다가 큰몰로 들어와 사는 영득이와 달보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 미륵례와 밴강쉬를 다 함께 이 마을에서 쫓아내자는 것이라 했다. 이때껏 뒷구멍에서만 논의되곤 하던 (밴강쉬 쫓아내자)가 미륵례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 짐승 같은 것들이 마을 안에서 죽치노 살아보소, 망하네 망해. 하룻머릿골이 어째서 망했간디? 바로 그 두 것들 땀시 망했네."

이게 영득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달보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것은 땅에 떨어지기가 바쁘게 곧 살이 붙고 뼈가 생기고 심줄이 생기고 날개가 돋혀서 온 만을 안을 휘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붙은 여펜네라 시가집에서도 쫓게났제잉) 하는가 하면, (그 여펜네가 사는 동네에서는 머리 큰 사람이 다 죽는닥 하데) 하기도 하고 (개서방하고 사는 잡년을 그냥 들어오게 내버려두다니 큰몰도 인제는 다 망했구마, 다 망했어) 하기도 했다. 이러한 말들이 상당히 시끄럽게 나도는 것으로 미루어, 마을의 회의가 열리기만 하면 당장 (두 년놈을 쫓아내자) 하고 결의되어 버릴지도 알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밴강쉬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땅을 내려다 보다가

"걱정 마씨오, 어마니."

하고 무뚝뚝하게 내뱉고 사립을 나섰다.

큰몰에서 쫓아내면 하룻머릿골의 미륵례네 헛간에서 살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어썼든 저력에는 들어오는 대로 영득이와 달보를 한 번 만나 따져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룻머릿골로 나갔다. 그랬다가 그는 미륵례에게 아주 희한한 일을 하나 발견했다.

하룻머릿골에 들어선 그가, 그물과 새끼 뭉치 담긴 바지게를 짊어진 채 너럭바위 위에 서서 미륵례네 헛간을 건너다보는데, 미륵례는 찬샘 있는 골짜기를 건너 노룻목 쪽으로 가고 있었다. 송아지만한 개는 미륵례를 어김없이 뒤따르고 있었고, 미륵례의 손에는 바구니 하나가 들려 있었다. 마침 썰물이 지고 있는 판이라, 어쩌면 문어를 잡으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싶었다. -- 하면서, 그는 바지게를 너럭바위 위에다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담배 한대를 뽑아 물었다.

미륵례와 개의 모습이 사태밭 언덕 너머로 사라진 것을 보고, 그는 폐촌으로 들어섰다. 미륵례가 들어 사는 찌그러진 헛간으로 갔다.

헛간문에는 가마니때기가 쳐져 있었다. 그걸 젖히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안에는, 한 해 전까지만 해도 멸치 어장을 하던 사람이 쓰던 멸치 널이 가마니들이 쌓여 있었는데, 그것들이 헛간 안의 땅바닥에 고루 펴져 있었다. 고 위에는 꾀죄죄하게 검른 때가 엉긴데다 주글주글한 이부자리가 반듯하게 깔려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양식이 담긴 듯한 자루두 개가 있었다. 문 쪽 구석에 목침덩이만한 돌 두 개가 놓여 있고. 그 위에 거무죽죽하게 그을은 양은솥이 걸려 있었다. 간이 아궁이었다.

바람벽에 박힌 납작한 뱃못에, 나들이용인 듯한 검정 치마 한 벌과 잿빛 바탕에 은빛 반짝이 무늬가 있는 저고리 한 벌이 걸러 있었다. 그런 것들을 대강 둘러보고 질펀히 깔려 있는 꾀죄죄한 이부자리 옆으로 갔다. 이부자리를 걷어 젖히고 거기에 -그려 앉았다. 요때기의 검붉은 호청 위를 살폈다. 쿠릿한 여자의 옴 냄새와, 가마니때기에 엉겨 있던 상한 멸치의 비린내가 콧속을 쑤셨다. 구역질이 나을 것만 같아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 붉은 요때기가 수없이 흘린 오물로 더럽혀져 있고, 군데군데 개의 검은 털과 흰 털들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이를 갈았다. 이런 개잡년을 어떻게 겪어 죽일까 하고 중얼거리며, 그는 퉤하고 침을 헛간 바람벽에 뱉고 밖으로 나왔다. 새삼스럽게 전날 개한테 당한 일이 분하게 생각되었다. 이런 찢어 죽일 년한데 어떻게 맛을 보여줄까 하고 머리를 짜던 그는, 역시 그 개를 때려잡아 먹어 버리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을 했다.

모래밭을 달려, 노룻목으로 넘어가는 사태밭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 언덕에서 내리 이어지는 바위가 거멓게 몸을 드러낸 채 줄곧 갯벌 밭으로 뻗히어 바닷물 속에 발부리를 적시고 있었다. 노룻목 다리였다. 그 바다 끝이 드러날 정도로 썰물이 많이 지면, 예전 하룻머릿골 아낙네들은 그 끝으로 나가서 해삼이나 문어 등을 잡기도 하고, 여름철이면 청각이나 우뭇가사리나 딱지조개를, 겨울철이면 파래, 돌김 따위를 긁어 따기도 하였었다.

한데 바구니를 옆에 낀 미륵례가 송아지만한 개를 데리고 그 노룻목 다리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문어를 잡으러 가고 있는지 몰랐다.

마침 기회가 좋다고 했다. 당장 미륵례를 뒤쫓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송아지만한 그 개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육로를 통해 미륵례에게 접근한다면, 그 개가 필시 덤벼들 것이 번했다. 아무래도 개와 정면충돌을 한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노룻목으로 넘어가는 사태밭 언덕을 내려오면서, 그는 입술을 빨았다. 너럭바위 옆에 있는 선착장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는 깨소금같이 고소한 수가 하나 생각났다. 배를 타고 문어를 잡고 있는 미륵례에게 접근하여 가자고 한 것이었다. 썰물이 진 뒤라. 자기네 배는 갯벌 위에 얹혀져 있긴 했지만, 그 배를 물로 밀어내서 타고 가자 했다. 갯벌 위에 얹힌 배는 쉽게 밀어낼 수가 있는 첩이었다.

문어 잡히는 이 늦은 봄철에는 해삼이 심심치 않게 잡힐 것이라, 우선 그는 너럭바위에 벗어놓은 바지게에서 낫과 바가지를 가지고 갯벌에 얹혀 있는 배에게로 갔다. 아무리 영특하고 사나운 개라 할지라도 물로 뛰어내려서까지 덤벼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렸다. 갯벌로 들어섰다. 여자들은 보통 문어 잡이를 허릿물에서 하게 마련이었다. 아랫도리 옷을 모두 벗어붙이고 문어를 잡는 미륵례 옆으로 가서 해삼을 잡아야겠다고 했다. 배를 물로 밀어냈다. 처음, 배의 밑뿌리를 떼기가 조금 힘이 들뿐, 일단 미끌리기 시작하자, 배는 저절로 물을 향해 내려갔다. 배에 타고 삿대를 짚었다. 한길 깊이의 물에 이르러 노를 걸어 저었다

13

 

노룻목다리 끝에 닿았을 때, 그는 또 한번 희한한 꼴을 목격했다. 미륵례는 주글주글한 밤빛 나는 치맛자락을 걷어올리고 있었는데, 훤히 드러난 피둥피둥하고 허연 허벅다리가 늦은 봄의 뱀 혓바닥 같은 햇살에 휘감기어 번들거렸다. 허리 위쪽으로 치맛자락을 걷어올리면서 치맛말을 풀어 동이자 빨간 팬티 하나만을 걸친 동그란 엉덩이가 드러났는데 그것은 숫제 펀펀하게 느껴질 정도로 컸다. 그것을 본 그의 가슴은 후두둑 뛰고 얼굴이 화끈 뜨거워졌다. 그는 얼떨결에 뱃이물로 가서 닻을 던졌다. 닻이 떨어진 수면에서 철펑하고 물이 튀겨 올랐다. 그러자 청각이나 우뭇가사리들이 누르께하게 돋아 있는 바위 끝에 두 발을 걸친 미륵례의 가랑이 사이의 하얀 속살 근처에다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던 개가 그를 향해 회고 뾰족한 이를 드러낸 채 왕왕 짖어 댔다.

미륵례가 놀라 걷어 올렸던 치마를 풀어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고물로 가서 앉았다. 그러나, 미륵례는 배 위에 있는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문어 잡이 준비만을 서두르고 있었다. 치맛자락을 젖가슴 근처에다 올려서 말을 잘끈 동여맨 뒤, 바구니에서 빨간 팬티 떨어진 것을 꺼냈다. 그것은 한쪽 성문다리와 무릎 둘레에다 칭칭 둘러 감았다. 이때,

동안 그를 향해 왕왕 짖어대던 개가 하는 짓들이 정말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개는 배 위에 있는 그를 향해 왕왕 짖는가 하면, 낑낑거리면서 미륵례가 하늘로 두른 엉덩이와 가랑이 사이에 주둥이를 가져다 대면서 냄새를 맡기도 하고, 주위를 빙글빙글 두어 바퀴 도는가 하면, 달걀 빛 털이 돋은 아랫배에 철렁하게 늘어진 페니스 케이스 속에서, 여름철 두엄 더미에 돋아나는 붉은 말뚝버섯의 끝처럼 뾰족하고 빨간 것을 내놓은 채 미륵례의 가랑이 사이에 주둥이를 들이밀기도 하는 것이었다. 고러나 미륵례는 개가 하는 짓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문다리와 무릎 둘레에 빨간 베조각 감기를 마치고, 바구니를 한 팔에 끼더니, 일어서서 배 위에 앉은 그를 흘긋 보고 물 속으로 들어섰다. 그 여자의 긴 다리들이 싯푸른 물 속에 잠겼다.

점차 팬티에 감싸인 엉덩이 부분까지 물이 올라왔다. 이윽고 배꼽 근처까지 잠겼다. 이때 개는 거의 미친 듯이 들썽거렸다. 그 여자와 함께 물로 뛰어들려는 것처럼 바위 끝으로 다가섰다가, 뒤로 물러서면서 낑낑거리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쪽 저쪽으로 갈팡질팡하였다. 미륵례는 개를 아랑곳하지 않고, 바위 끝의 벌어진 틈에 몸을 바싹 들이대더니, 붉은 조각 감싸 맨 다리를 바위 틈으로 들이밀었다. 개근 그 여자를 내려다보면서 계속 낑낑거렸다. 그러다가 빙글빙글 돌았다, 한참을 돌더니 우뚝 멈추어 서서 꼬리를 흔들며 서둘러댔다.

미륵례는 바위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듯 꼼짝을 않고 있었다. 그것은 음험한 문어라는 놈을 흘리는 자세였다. 문어 그놈은 참 괴상한 놈인 것이었다. 그놈은 눈이 비상하게 좋아서, 색깔을 분간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특허 핏빛으로 빨간 것을 좋아해서, 그게 어른거리면 은신하고 있던 바위 틈에서 슬며시 기어나와, 수없이 많은 빨판이 있는 여덟 개의 발로 그 빨간 것을 덥석 덮치는 것이었다. 빨간 색을 좋아하는 그놈은 음험하게 탐욕이 많은 놈인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해변 지방의 여자들은 예로부터 그놈이 빨간 색깔을 탐하는 것을 이용하여 그놈을 잡곤 하였다. 요즘 들어서는 별로 그런 방법으로 문어 잡이하는 아낙들이 드물지만, 예전 미륵례가 처녀일 적만 하여도, 이 하룻머릿골 아낙들은 이런 방법으로 많은 문어를 잡곤 했었다.

미륵례가 바위에 붙어 움직이지 않자. 개는 앞발로 바위 끝을 두어 번 긁어대더니, 다시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그리고, 거의 울음 우는 듯한 소리로 (어후어후)하고 괴상스럽게 짖어대더니, 이어 낑낑거리면서 미륵례가 붙어선 바위 끝에서 빙글빙글 맴을 돌았다. 미륵례가 물에 빠져 죽기라도 한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 개가 얄미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도 미륵례처럼 개의 하는 짓을 그저 모르는 척해 버리기로 하였다. 뱃전에 걸터앉으며 호주머니를 더듬었다. 미륵례가 문어 한 마리를 잡는 것을 보고, 그 옆으로 삿대률 짚어 배를 접근시키리라 했다. 새마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바람을 등지고 성냥을 그어 볼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듬쑥듬쑥 빨아 대었다. 입안에

감도는 니코진의 맛을 혀끝에 굴리며 낫을 들었다. 삿대 끝을 깎았다. 해삼 잡이 대창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해삼 잡이 대창 끝은, 찔린 해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화살 끝같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깎아야 했다. 그런데, 벌거벗은 미륵례를 본 뒤부터 가랑이 사이에서 내내 들썽거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낫을 잡은 그의 손은 자꾸 떨리고 있었다.

대창을 만든 뒤에. 그는 아래 옷을 활활 벗었다. 팬티를 입고 들어설까 하다가, 그것마저도 벗어버렸다. 자기의 벌거벗은 모습을 미륵례에게 보여주려는 심산이었다. 벌거벗은 가랑이에 큰 생식기를 덜렁거리면서 이물로 가 닻을 걷어올리고 삿대를 짚어 배를 미륵례 옆으로 옮겨 가다가, 물로 첨벙 내려섰다.

늦은 봄 무렵이라곤 하지만, 물은 써늘하게 차가웠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후두두 떨려왔다.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이를 물었다. 그렇게 성가시게 들썽거리던 그의 생식기가 어느 사이엔지 움츠러져 있었다. 그만큼 물은 차가웠다. 그러나, 미록례는 눈꼬리 하나 움직거리지 않고 있었다. 조금도 춥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자는 확실히 독한 동물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던 밴강쉬는 -!- 하고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6.25가 지나간 뒤 어느 해 이른 봄이던가 벌채를 하는 각시봉 기슭에 땔나무를 주우러 갔다가, 때마침 벌채를 하는 어른들이 샛거리를 먹으며, 썰물이 져 훤히 드러난 노룻목다리를 내려다보고 하던 말들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노룻목 갯벌에는 바지락이나 고등을 잡는 아낙네들이 수없이 있었는데, 특히 시꺼멓게 드러난 노룻목다리 끝에는 젊은 아낙 셋이 아래 옷을 벗고 들어가 문어 잡이를 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각시봉 기슭에서는 모두 그리 멀지 않게 한눈에 내려다보였었다.

"저그 저 보소. 시방 저 문어잽이하는 여편네들이 누군지 알겄는가?"

"덕봉이 딱시하고, 삼수 각시하고, 또 하나는 억보 각시 아닌가?"

"모도 흘엄씨들 뿐이로구만잉."

"저 세 년들이 어째서 하필 문어잽이를 한 줄 안가?"

"오소! 쓸디 없는 소리 하지도 말소."

"하아. 이 사람--- 홀엄씨가 사철 가운데서 이 봄철 지내기가 그중 어려운 법 이시. 참나무 몽둥이도 잘라 묵는다는 철 아닌가? ......수절하는 여자들이 어쩐지 안가? 밤에 자다파 남자 생각이 나먼, 동지 섣달에도 찬물을 막 뒤집어 쓴다네."

벤강쉬는 자신이 생겼다. 미륵례가 왜 하필 이 차가운 물 속에서 문어 잡이를 하고 있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미륵례는 지금 열을 식히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는 가슴이 훅 뜨거워졌다. 닻을 들어다가 바위 틈에 박아놓고 대창을 든 채 미륵례 옆으로 갔다.

그때, 미륵례가 한 손으로 바위를 잡은 채 휘청 넘어지기라도 하듯 큰 웃몸을 기웃하면서 오른 다리를 뻔쩍 들더니 빨간 팬티 조각 감은 다리에 붙은 문어를 잡아 떼어 바구니에 담았다. 그는 감탄하듯

", 아따 큰놈 자, 잡었소잉."

하고 미륵례의 차갑게 굳어진 얼굴을 바라보면서 발끝으로 돌 틈을 더듬거렸다. 미륵례는 못 들은 척하고 다시 바위 틈에다가 빨간 팬티 조각 감은 다리를 가져다 댔다. 그는 발끝으로 돌 틈을 더듬거리면서 미륵례 옆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러자, 바위 끝에서 낑낑거리기만 하던 개가 그를 향해 허옇고 뾰족한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렸다.

상관할 것 없었다. 제 아무리 영악한 놈이라 하더라도 울로 뛰어내릴 수는 없을 것이기 말이었다. 설사 뛰어내린다 하여도 무서울 게 업는 것이었다. 내린다면. 간단히 물 속에 가라앉혀 죽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부러 미륵례의 허벅다리에다가 그의 무릎을 바싹 붙이면서

", 미륵례, 지난 일 다 잊어뿔고 나하고 사십시다."

하고 말했다. 고하게도 이때에 미끈하고 물컹한 것이 발끝에 감지되었다. 해삼이었다. 그는 대창 끝을 물 속으로 넣어, 발가락 밑에 밟혀 있는 해삼에다가 찔렀다. 대창 끝을 들여다보니, 검정소의 혓바닥만큼한 해삼이 등을 찔린 채 활 등 같이 구부러져 있었다. 그것을 창 끝에서 뽑아 들고

", 여기다가 조간 담읍시다이, 우선 "

하고 미륵례의 바구니에 던져 넣은 뒤, 그는 또 미륵례의 얼굴을 살피면서 일부러 한쪽 나리를, 그 여자가 바위 틈에 빨간 팬티 조각 감은 다리를 넣느라고 앙바틈하게 벌린 가랑이 사이로 들이밀었다. 발끝으로 돌 틈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바위의 홈 패인 곳을 붙잡은 미륵례의 손목을 잡았다.

"미륵례, , 참말로 나하고 삽시다, "

그러자, 눈살을 찌푸리고 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던 미륵례가, 그의 손을 힘껏 뿌리쳐 버리며

"쓸디없는 생각 말고 해삼이나 잡으씨오. "

하고 무뚝뚝하게 쏘아붙였다. 그러더니 그의 다른 한 손에 들린 대창을 보고 후두둑 몸을 떨었다. 그 여자의 얼굴이 얼핏 굳어졌다.

", 어째서 쓸디없는 새, 생각이여 ?"

그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미륵례는 물 속을 향해 고개를 쿡 떨어뜨렸다. 그런 여자의 얼굴은 부아가 끓어오른 사람처럼 부어 올랐다. 입술이 되새 부리처럼 튀어나왔다. 그는 히죽 웃으면서 허벅다리를 그 여자의 가랑이 속으로 밀착시키고. 바위 끝에서 으르렁거리는 개의 낯바닥처럼 찌푸려진 그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이 여자가 저 개 때문에 자기 하고 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 여기고

"미륵례, 오늘 저놈에 개새끼부터 자, 잡어 묵읍시다. 몸보신이나 하게."

하고 내질러 보았다. 미륵례가 그를 향해 허옇게 눈을 굴리면서

"저 개가 먼 갠지나 아요?"

하고 코웃음을 쳤다.

". 먼 개는 먼 개라우? 지가 암만 여, 영특하다고 한닥해도, 우리 사람이 잡어 묵는 개새낄 테제. , 안 그러요?"

미륵례가 그에게로 몸을 돌리면서

"이 사람이 어짠다고 어저께부터 꾼질꾼질 거머리같이 붙을라고 성가시게 이래싼다냐? 참말로 나 알 수가 없구만잉."

하고 짜증스럽게 말하고, 으등카리 같이 찌푸린 얼굴을 물 밑을 향해 떨어뜨렸다. 그런 미륵례의 눈동자와 볼에 가는 주름살이 잡히고 있었다.

", 어쩐다고?"

그가 대들듯이 말하며 그 여자의 가슴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는 이미 추위를 잊고 있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물결에 스치며 허벅다리 살결에 부딪고 있던 그의 늘어진 생식기가 건듯 일어서고 있었다.

". 어짠다고 그래 ? 아니, , 홀애비가 흘엄씨한티 꾼질꾼질 붙어갖고 같이 살자고 하는 것도 머시기 때, 때려죽일 일이란가? 다 뻔한 속이지?"

그의 이 말에 미륵례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그 대창 뭣할라고 만들었소? 나 죽일라고 만들었소? "

하고 독살스럽 게 쏘아붙였다,

"어허, , 이거 뭔 소리란가?"

"우에, 내 말이 틀렸소? 당신 아부지는 우리 오빠네들을 꼭 그렇게 생긴 대창으로 찔러 죽였은께, 인자는 당신이 그놈 갖고 나 찔러 죽일 차례제잉?"

벤강쉬는 기가 막혔다. 가슴속이 온통 뻑뻑해져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아버지가 설사 자기 오빠네들을 죽이는 데에 가담했다고는 하더라도, 나는 그 오빠네들을 구해내 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그리고, 미륵례는 그러한 내 속을 알아줄 만하기도 한데, 이것이 무슨 억담이란 말인가.

"미륵례는 어째서 내 속을 그렇게 몰라주요? "

그는 탄식하듯 말했다. 그러자 미륵례가, 바위 틈을 향해 돌아서면서

"하늘이 두 쪼각이 나드라도 당신하고는 철천지 웬수여라우. 알기를 그리 알고, 쓸디 없는 생각은 애초에 말고 얼른 가시오. 누가 볼까 무섭소. 나도 문에 잡어사 쓰겄은께 얼른 가씨오."

하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입을 다시 되새 부리로 만들었다. 그는 혀끝을 깨물면서 형과 아버지를 원망하고

"지나간 일은 다 이, 잊어뿝시다, 모두 시국이 한 일 아, 아니요? 그러고 내 말대로 하, 합시다. 혼자 삼스로 문어 잡으먼 뭣하꺼시오? , 그것도 서방이 있어사 재미도 나고 어짜고, , 할 것 아니요?"

"뭣이 어짜고 어째라우? 나도 돈 벌어서 우리 새끼들한테 보내줄라고 그러요."

", 새끼들이라니라우 ? "

미륵례는 귀찮다는 듯 찌르레기 새처럼 사납게 지껄여댔다,

"우에라우? 아들은 군대 가고, 딸은 방직공장에 댕긴다우. 우에, 그 새끼들까지 잡아다가 죽여뿌러사 속 씨원하겄은께 물어보요?"

이 말에 그는 가슴이 꽉 막혀 왔다. 혀를 물었다. 미륵례네 식구들을 죽인 형과 아버지가 새삼스럽게 원망스러웠다.

". 미륵례는 시방도 나를 웬수로 생각하고 있소?"

"그러먼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을까만이 ? "

미륵례가 꽥 소리를 지르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 여자의 볼에 얼핏 경련이 일더니, 그게 눈 가장자리로 퍼져갔다. 그는 계속해서 빌붙듯이 말했다.

.그런께 내가 말을 안 하요? , 지내간 일은 다 잊어 뿔고 나하고 살자고 말이여. 나하고 살먼, 어짜먼 미륵례 아부지랑 어무니랑 오빠네들이랑은 저승에서도 조, 좋아락 할 것이로고만 그래?"

"뭐이 어쩌고 어째라우?"

미륵례의 눈에는 물이 괴고 있었다. 그걸 보이지 않으려는 듯 그 여자는 물 속의 문어라도 살피는 것처럼 눈길을 떨어뜨렸다. 그는 어떻게 해서, 이 노룻목의 다리같이 거멓고 단단하게 굳어져 있는 미륵례의 마음을 풀어 녹여, 자기에게 돌아서게 할까 하고 궁리를 했다. 그는 다시 빌붙었다.

", 들독이 성님도 나한테 분명히 말했어라우. (너는 우리하고 남 돼서는 안 된데이) 했어라우. , 채가 거짓말을 하먼 죽어서 지옥에도 못 갈 것이오."

이 말에 미륵례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미륵례가 어쩌면 자기의 말에 수그러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는 달래듯이 말했다.

". 우리도 인제 많이 안 늙었다고? 나도 느, 늙은 우리 어메 죽으면 나 혼자 똑 떨어진단 말이여라우."

그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말에 사슴이 저리어오는 것을 느꼈다. 코끝이 시큰해지고 있었다.

"미륵례도 마, 마찬가지 아니요? , 시방도 늙디 늙은 저그 저 개가 살먼 얼마나 살 것이오? , 안 그러요?"

미륵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개는 이제 그를 향해 껑껑 짖어댔다. 그는 개를 아랑곳하지 않고 미륵례 옆으로 더 바싹 다가섰다. 미륵례의 피둥피둥하고 허여멀쑥한 허떡다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 쓸었다. 그때 그의 가랑이 사이에서 곤두선 주먹 같은 힘이 그의 눈앞을 순간적으로 아찔하게 했다. 동시에, 강제로라도 부부가 되는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주름잡았다. 그는 미륵례를 덥썩 끌어안으면서, 한 손으로 그 여자의 엉덩이에 거추장스럽게 걸쳐져 있는 빨간 팬티의 고무줄 넣은 부분을 잡아 나꾸어 챘다. 그게 쭉 찢어졌다. 고 여자가 돌아서면서 고의 가슴을 걷어 밀었다. 그러나 그는 미륵례를 더욱 세차게 끌어안았다.

"워메, 이 징한 놈 조깐 보소!"

그 여자가 그를 힘껏 밀어붙이고 휘청 넘어졌다. 그 여자의 웃몸이 물 속으로 묻혔다. 그 여자는 짠물을 꿀꺽 삼키며 허위적거렸다. 그러다가 일어 선 그 여자가 바구니에서 기어 나가려는 문어와 해삼을 떼어 담으며

"디질라고 환장을 했구마이, 참말로 환장을 했어, 이 웬수 놈이!"

하고 그를 향해 악다구니를 썼다. 바위 끝의 개가 물로 뛰어 내릴 듯한 기 세로 그를 향해 왕왕 짖어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나 스웨터 자락, 고리고 젖가슴께로 올려 동인 치맛자락에서 물이 줄줄 흐르고 있는 미륵례 앞으로 다가가기가 무섭게, 그는 그 여자의 손에 들린 바구니를 빼앗아서 바위 끝의 개를 향해 돌팔매질하듯 던졌다. 개가 그건 피해 물러서면서 한충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짖어댔다. 그는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된 미륵례를 덤썩 끌어안고 물 속으로 가라앉아 들어갔다. 미륵례가 갯물을 꿀꺽꿀꺽 삼켜댔다. 그는 만일 그 여자가 자기와 함에 살겠다고 하지 않으면, 이 물 속에 처박아 죽이겠다고 외쳤다.

", 말해라, 이년아, 개잡년아, 나하고 살래, 여기서 무, 물귀신이 될래?"

그는 물 속에서 허위적거리는 미륵례를 물 밖으로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삼킨 갯물을 토해내려고 건구역질을 하는 미륵례를 끌어안으면서, 이번에는 달래듯이 말했다.

"어쩔래 ? 나하고 살 것이냐, 여기서 내 손판에 주, 죽고 말 것이냐?"

미륵례는 건구역질을 하고 침을 뱉다가

"이 썩어라진 놈이 미치고 환장을 했구마잉."

하고 악을 샜다. 그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 오냐. 미치고 환장했다. , 나하고 못살 겄그덩 내 손판에 어디 주, 죽어봐라. "

하고 이를 갈았다. 그러나, 그는 말은 그러면서도, 미륵례를 배에 올려 실은 다음에, 아주 일이 비끌려지지 않도록 단단히 말뚝을 박아놓고 말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륵례의 손목을 틀어쥔 채 배의 닻줄을 잡아당겼다. 그 여자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버둥거리면서

"이 쌕은 놈이 인제 한나 남은 나까지 아주 죽일라고 하구마잉, 이 웬수 놈이!"

하고 악다구니를 쌨다.

그때, 그가 끌어당긴 배가 가까이 다가왔으므로, 그는 미륵례를 안아서 배 위로 올려 실으려고 했다. 그러나, 미륵례가 그를 뿌리치고 물로 넘어져 허위적거렸다. 개가 악을 쓰듯 짖어대면서 으르렁거리다가 바위 끝에서 빙글빙글 맴을 돌았다. 그가 허위적거리는 미륵례에게로 쫓아갔으나, 미륵례는 재빨리 몸을 가누고 바위 위로 기어올라가면서 이를 갈았다,

"오냐, 이놈 어디 두고 보자. 이따가 너럭바위에서 한 번 보자, 우리 꺼멍이를 시켜 갖고, 니놈을 칵칵 씹어주라고 할 것인께."

이 말에 그가 지지 않고 물에 우뚝 선 채 소리쳤다.

"뭣이 어, 어쩌고 어째 ? 어디 한번 해보자. 이 대창으로 그놈의 개 아,

아구창을 왁 쒸세 죽여뿌끄시다. , 벼락을 딱 안을 놈의 개."

하면서, 그는 물에 뜬 대창을 들고, 그를 내려다보며 바위 끝에서 으르렁거리는 개를 향해 뾰족한 끝은 겨누었다가 힘껏 찔렀다. 개가 껑충 휘면서 그 끝을 피하더니. 금방 물에 선 그를 향해 뛰어내리기라도 할 듯이 콧등을 젖히고 허여멀쑥한 이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렸다. 미륵례가 젖가슴께에 둘러맨 치맛자락을 풀어내려 벌거벗겨진 횐 아랫도리를 감추고, 시쑬로 기어 나오고 있는 문어대가리를 떼어 바구니 한가운데에다 담으면서, 물 위의 그를 향해 펄펄 날뛰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대창을 든 채 배 위로 뛰어올라갔다. 고물로 간 그는

"그러고 저러고, , 오늘 저녁에나 내일은 내가 그 개새끼를 콱 때려 잡어 갖고, 기어코 보, 보신탕을 해묵어 뿔 것인께 그리 알고 있기나 하, 하씨오."

하고 조롱하듯이 말을 던졌다. 미륵례가 이를 뽀득 갈고. 살기 어린 눈으로 그의 햇살에 번들거리는 다리에 돋은 돼지털들을 노려보더니, 북받치는 분함을 어떻게 주체하지를 옷하고, 개에게 말했다.

"꺼멍아, 저것 봐라, 저놈이 내 웬수닌께, 저놈을 콱 물어 뜯어뿌러라, 이따가,"

바구니를 팔에 끼면서 몸을 돌렸다. 그를 보고 으그렁대며 쪼그려 앉아 있던 개가 그 여자를 따랐다.

", 예 말이오, 미륵례, 내가 잡어준 해삼이나 주고 가사 쓸껏 아니오."

하고 그는 항의라도 하듯 말했다. 그 여자가 바구니에서 해삼을 집어 배로 던졌다. 그것이 배 안에 깔린 널빤지 위로 툭 떨어졌다,

그는 배의 널빤지 위로 떨어진 해삼을 집어들고 고물로 가서 걸터앉은 채 한입 뚝 베었다. 우적우적 씹다가 그 나머지를 모두 한입에 넣어 씹어댔다. 그러면서 자기의 가락이 사이에 붙은 해삼덩이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러던 그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 미륵례야, 이 개잡년아!"

하고 미친듯이, 울컥 목이 멘 소리로 외쳐댔다. 아랫배 밑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몸부림쳤다. 그의 목구멍에서는 덩치 큰 야수의 울음 같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14

 

바지를 주워 꿰고 노를 걸어 저으면서 밴강쉬는 하룻머릿골 뒤쪽의 각시붕 언덕에 마을 사람들이 허옇게 우글거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저란 육실헐 것들 잔 보소이."

하고 그는 투덜거렸다. 이때껏 자기가 미륵례에게 붙이는 수작을 마을 사람들이 거기 앉아서들 다 구경하고 있었음에 틀림없펐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은, 그가 이날 아침, 여느 때의 그 같지 않게 오징어 그물 만들 준비를 해서 지게에 짊어지고 나을 때부터 살금살금 하룻머릿골로 나왔던 모양이었다. 그가 미륵례를 쫓아다니는 것을 본 것은 달보와 영득이 둘뿐일 텐데, 역시 그 놈들이 소문을 내었기 때문에 저렇게 몰려들었으리라 싶으니, 달보와 영득이들이 얄밉기 이를 데 없었다. 미륵례가 쌀쌀히 굴면서 돌아간 것도 울화가 끓어오르는 판에, 그것을 하나도 빼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았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저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가면 또 무슨 말들을 퍼뜨릴 것인가. '밴강쉬는 문어 잡느라고 물 속에 들어가 있는 미륵례를 보듬고 어떻게 할라다가 못하고 말았다네 ' 하는 따

위의 말들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만들어 띄워댈 것이 뻔했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고 이를 물었다. 이제 래든 칼이었다. 이대로 물러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날로 아주 결판을 내고 말겠다고 했다.

만일, 미륵례를 아내로 맞이하지도 못한 채 하룻머릿골을 넘나들면, 마을 사람들은 그를 더욱 실없는 미치광이로 생각할 게 뻔하고, 이제야말로 쫓아내야 한다고 입들을 모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늙은 어머니의 처지가 또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 미륵례, 이년을 오늘 중으로 기어이 거꾸러뜨려야 한다 했다.

그러나, 이년이 데리고 있는 개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전날 그 개한테 어이없이 당하고 말았던 일이 눈앞을 가렸다. 보통 배가 아니었다. 호랑이 잡은 개라더니 정말 무서운 개였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어떻게 더 큰 봉변을 당할지 모르므로 조심해야 한다 했다. 어쩌면 미륵례가 그같이 뻣뻣이 나서는 것도 그 놈을 믿고 하는 짓임이 틀림없었다. 어쨌든, 그놈부 터 때려잡아야 미륵례가 그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것이므로 어차피 그놈을 쳐들어가긴 쳐들어가야 한다고 노 젓는 팔뚝에 힘을 주었다.

하룻머릿골 앞바다로 왔을 때는, 밀물이 많이 전 있었다. 너럭바위 옆의 선착장에 쉽게 배를 정박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점심 때가 훨씬 겨운 때였다. 배에서 내리면서, 그는 혹시 미륵례가 개를 데리고 너럭바위 너머에 서 자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며, 대창과 낫을 단단히 쥐었다. 그러나, 너럭바위 주변이나 폐촌 구석 어디에도 미륵례와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개와 미륵례는 노룻목에서 아직 하룻머릿골로 넘어오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개잡것들이 노룻목에서 무엇을 하고 자빠져 있느라고 아직 넘어오지를 않고 있는 것일까. 그는 금방 분심이 끓었으나, 이를 물고 기침 고개를 넘었다. 큰몰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가 점심을 먹기가 바르게 도끼자루로 쓰려던 참나무 몽둥이 한 개를 쓰기 좋게 깎았다. 그걸 들고 기침고개를 넘어 하룻머릿골로 왔다. 개가 덤벼들기만 하면 간단히 휘둘러 머리통을 부숴 놓겠다 했다.

저녁 무렵이 되면서부터 서풍이 불고 있었고, 굵다란 파도가 밀려들어 모래톱에서 철썩거렸다. 희끗희끗한 누엣결이 일어난 바다를 내다보던 그는, 그것처럼 일어나고 있는 가슴속의 힘을 느끼고-) 하고 안간힘을 썼다. 여느 때, 바다의 파도가 굵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힘이 솟곤 하는 그였다. 참나무 몽둥이를 쥔 손아귀에 힘을 주고, 너럭바위 위로 올라서면서, 폐촌 안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미륵례네 헛간을 바라보았다. 그 주위는 조용했다. 개나 미륵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갔을까.

미륵례가 찬샘골엘 갔으므로 개가 거기에 따라가 있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는 노룻목 쪽으로 걸어가다가 찬샘골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도 개와 미륵례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밥 끓일 땔나무를 주우러 산엘 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하룻머릿골 뒷산 숲을 둘러보았다. 그 숲에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노룻목엘 갔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만조가 되어 있기 때문에 무슨 갯것을 하러 갔을 리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우두커니 선 채 모래톱을 철썩철썩 때리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머리 속에, 치마를 걷어올리고 물 속에 몸을 담그던 미륵례의 마얀 다리가 터올랐다. 숫제 펑퍼짐하게 느껴지던 엉덩이의 빨간 팬티가 눈앞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동시에, 자기가 핀티를 죽 쪘어내렸던 일과, 미륵례가 검은 바위 위로 올라서면서 벌거벗겨진 몸을, 젖어 물이 줄줄 흐르는 치마폭으로 내려 덮던 모습이 떠올랐다. 미륵례가 말은 '웬수야, 웬수야' 하고 이를 갈아붙이면서도, 사실츤 자기를 그렇게 미워하지만은 않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미륵례와 개가 어쩌면 지금 헛간 속에 들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나절, 물 속에서이긴 했으나, 자기 쪽에서 미륵례를 알몸으로 만들었고, 그 알몸을 끌어안은 채 비비대었기 때문에, 미륵례는 몸이 불같이 달아, 노룻목에서 돌아오는 대로 헛간의 이불 속에 죽치고 누운 것인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는 참나무 몽둥이를 든 손아귀에 다시 한번 힘을 모두어 주면서 폐촌으로 들어섰다. 전날처럼 개한테 당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발소리를 죽였다. 개가 헛간 모퉁이에 웅크리고 있다가 쏜살같이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사정없이 참나무 몽둥이를 휘두르겠다 했다. 헛간 모서리에 멈추어 서서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그 주변 어디에도 미륵례와 개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귀는 자동적으로 헛간 안쪽으로 기울여졌다.

그는 (이런 개잡년을 어째사 쓸꼬) 하며 이를 물었다. 헛간 안에서 개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왔는데, 그 낑낑거림이 예사 소리가 아니라는 게 직감되었다. 그는 헛간 출입문에 문턱 대신 척 늘어뜨린 가마니 자락 사이로 눈을 가져다 댔다. 헛간 안은 햇빛이 차단되어 어두컴컴했다. 어둠에 익어 있지 않은 그의 눈은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낑낑거리던 개가 엄포를 놓듯 굵은 소리로 으르렁하였다. 이때, 그의 눈은 점차 헛간 안의 어둠에 익어졌고, 그 헛간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한눈에 훑어 읽을 수 있었다.

", 요런 죽일 것들!"

그는 눈에 불이 번쩍 튀겼다. 가마니자락을 젖히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미륵례가 뉘었던 웃몸을 일으키면서

"디질라고 환장했구마잉!"

하고 악을 쌨다. 그는 미륵례를 아랑곳하지 않고 개의 정수리를 노려 몽둥이를 내리쳤다. 개가 재빨리 몸을 움츠렸으나 주둥이를 한번 얻어맞은 듯 캥하며 펄쩍 뛰었다.

"목아지를 콱 물어죽여라. "

미륵례의 앙칼진 소리에 개가 그를 노렸다, 미륵례가 허리에 치마를 두르더니 그에게 대들었다.

"왜 곡래 응? 나 하나 살어 있는 것이 그렇게도 눈꼴시러 못보겄는가, 못보겄어?"

하더니, 개를 향해

"꺼멍아, 내 웬수다. 멱아지를 콱 물어 죽여뿌러라."

하고 악을 쓰듯 소리쳤다. 개가 미륵례의 말에 용기를 얻은 듯 더욱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그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그는 눈을 부릅뜬 채 참나무 몽둥이를 어깨 뒤로 얼러멨다. 개가 그의 눈을 쏘아보면서 이리저리 피하는 척하고 몸을 잽싸게 놀리더니, 멀겋게 날이 선 이빨돌을 모두 내놓은 채 그의 목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순간

"나 몰라, 도망가란 말이여어 ! "

하고 미륵례가 부르짖으며 밴강쉬 옆으로 달려들었다.

그것은 그가 옆으로 슬쩍 비켜서면서 몽둥이를 내려친 뒤였다. 개는 간단히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그의 일격에 앞다리와 주둥이를 얻어맞은 것이었다. 개는 발을 절름거리면서 미륵례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미륵례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던 모양이었다. 밴강쉬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이번에야말로 개에게 목줄을 물어뜯기고 나자빠질 줄만 알았던 모양이었

. 그러나,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개한테 그가 물려죽기라도 한다면,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어 개를 때려죽일 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었는지도 올랐다. 그러나, 미륵례는 개가 그의 손에 맞아 죽는다고 생각하니 분해 견딜 수가 없는 듯 금방 두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었다.

"이 웬수 놈아, 나 죽여라, 나 죽여!"

그의 가슴을 걷어 밀면서 악다구니를 샜다. 그가 뒷걸음질을 치는데, 미륵례의 치마폭 밑에 몸을 숨기고 있던 개가 왕하고 그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끌어당겼다. 그는 뒤로 넘어질 것같이 휘청했다. 그가 넘어지기만 하면, 개는 간단히 한 이빨에 그의 목줄을 물고 늘어질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의 눈에 다시 불이 튀겼다.

", 이런 개잡것들!"

하고 소리치며 몸을 재빨리 가눈 그는 개의 등을 향해 몽둥이를 내려첬다. 순간, 개가 캑하고 앞다리를 꾸부린 채 주저앉았다.

미륵례가 그의 얼굴을 마구 할퀴어댔다, 눈두덩과 콧등과 볼과 입술이 얼얼해 왔다. 그는 미륵례의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를 훔쳐 잡아 뙈기라도 치듯 휘둘러서 이불 위로 밀어 붙였다. 이어, 경련이 일어난 듯 두 발을 꾸부렸으면서도, 아직 그를 향해 허연 이를 드러내고 있는 개의 정수리를 향해 뭉둥이를 내려쳤다. 이번의 내려침에는 퍽 소리가 났을 뿐이었다.

눈이 허옇게 뒤집힌 채 사지를 옆으로 뻗은 개의 몸에는 마지막 단말마의 경련이 지나가고 있었다. 미륵례가 달려가서 개를 얼싸안고

"워메, 워메, 내 개 어째사 쓸꼬! "

하면서 주저앉은 채 엉덩 방아질을 하고 울부짖었다.

그는 몽둥이를 한편 구석으로 던졌다. 한동안, 오줌이라도 금방 터져나오는 것을 참아내는 여자아이처럼 엉덩 방아질을 하기도 하고, 불에 덴 벌레처럼 몸부림을 하기도 하던 미륵례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그에게 덤벼들었다. 두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꽝꽝 두들겨댔다. 그는 그 여자에게 마음대로 두들겨 대라는 듯 옷고름을 우두둑 뜯어, 시꺼먼 털이 부스스한 가슴팍을 내밀어 주면서 히죽 웃었다.

"나도 죽여라, 이 악마 같은 놈아, 니 성놈은 울아부지 울어메, 우리 성() 잡어묵고, 니 애비놈은 울 오빠네들 다 잡아묵었응께, 인제 너는 나 잡아묵어라, 이 날도둑놈아?"

하고 울부짖던 그 여자가 그의 가슴을 얼핏 끌어안은 듯하더니, 앙하고 가슴팍 한 곳을 물어뜯었다. 그는 (아얏 !)하고 소리치면서 미친 듯 날뛰는 미륵례를 걷어 밀었다. 미륵례는 나무둥치처럼 펼쳐진 이불 위로 나둥그러졌고, 그 위에서 뒹굴면서 엉엉 울어댔다. 머리칼이 부스스 헝클어진 채, 치마로 아랫도리만을 간신히 가렸을 뿐인 그 여자가 뒹구는 것은, 흡사 불을 맞고 버둥거리는 암소 모양이었다. 한참을 뒹굴던 그 여자는 네 발 짐승처럼 엉금엉금 기어가서 죽은 개를 끌어안은 채

"나는 몰라, 내 개 내 개, 나는 몰라, 인자 나는 죽어, 참말로 나는 못 산단 말이여어, 나는 인제 참말로 죽는단 말이여어, 이 날도둑놈아, 이 웬수야! "

하고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그 여자의 입가에는, 살랑거리는 마파람을 맞으려고 구멍에서 기어 나온 꽃게가 내놓은 것 같은 허연 거품이 들솟고 있었다.

그는 따끔거리고 쓰리는 젖가슴 부근을 쓸었다. 개를 때려잡기 위해 용을 쓰느라고 가빠진 숨결을 투후 하고 내뿜었다, 머리칼이 헝클어진 채 개를 끌어안고 엉덩방아를 쪘고 있는 미륵례의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미륵례의 울음의 격조가 점차 낮아지는 것을 보고, 그는 미륵례를 이불 위로 끌어당겼다. 미륵례는 이젠 체념을 한 듯 이불에 얼굴을 묻은 채 꿈틀거리기만 했다. 그는 죽은 개의 뒷다리를 끌어다가 헛간 밖으로 던져놓은 뒤 미륵례 옆으로 갔다. 미륵례가 벌떡 일어나 그의 따귀를 냅다 후리쳤다.

"나도 죽여라, 나도 죽여!"

그는 그런 미륵례를 얼싸안았다. 미륵례가 한 손으로 그의 멱살을 잡아 죄면서, 다른 한 손으로 가슴팍을 꽝꽝 두드렸다. 그의 바람벽 같은 가슴이 둥둥 울렸다. 그것이 그의 씨근거리던 숨결을 더욱 질풍같이 거칠어지게 만들었고, 발동선의 기관처럼 뛰게 했다. 그는 짐승처럼 웃고, 미륵례를 안은 채 모로 넘어졌다. 이어 미륵례의 아랫몸을 타고 엎드린 채

", 뭣이 그렇게도 서럽소? 암만 그래도, 개서방보다는 사람서방이 더 낫을 것이오."

하고 말했다. 그의 몸에 돌출 되어 있는 모든 부분은 살인자의 핏발선 살의(殺意)처럼 충혈되어 있었고, 활의 시위처럼 탱탱하게 캥겨져 있었다. 그의 배 밑에 깔린 미륵례는

"니 애비, 느그 성은 우리 식구들 다 죽였은께. 인제 너는 나 잡아묵어라, 이 웬수야."

하고 울부짖으며 그의 시꺼먼 가슴팍을 걷어 밀어댔는데 그런 그 여자는 홑치마바람일 뿐이었다.

산 그늘이 헛간 위로 내려와 있었고, 그 무렵부터 유별나게도 하늬바람은 극성을 부렸는데, 너럭바위 앞 바다는 발칵 뒤집힌 채, 이날 죽은 개의 화신이라도 되는 양 하룻머릿골을 내내 뒤집어 엎어버릴 것처럼 으으렁거리고 있었다.

 

15

 

이날 밤, 큰몰 공회당에서는 마을 어른들의 회의가 있었다. 그것은 영득이와 달보들이 서둘러 뛰어다니며 소집한 회의로, 느닷없이 개 한 마리만을 데리고 들어온 미륵례와, 그간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마을 사람들을 불안스럽게 만든 장본인 밴강쉬를 쫓아내자는 것이 주의제(고힐릴) 였다. 한데, 여기에 적극적으로 찬성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하룻머릿골에서 살다가 큰몰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그렇게 찬성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것들이 볼 만했다.

첫째, 미륵례는 짐승과 어울려 사는 여자이므로, 그런 짐승 같은 여자를 마을에 들여놓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 그 여자에게는 횡액이 붙어 다니기 때문에 그 시가 마을에서도 쫓겨온 여자라는 것이었다.

둘째. 밴강쉬 또한 어디서 어떤 경우에 어떤 아낙이나 남의 집 처녀를 겁탈할 지 모르는 짐승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이날 낮에 노룻목다리 끝에서 미륵례를 겁탈하려 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째, 밴강쉬라는 괴물 같은 사람이 혼자 살고 있을 때에도 마을 안이 온통 시끌시끌 했었는데, 거기에 횡액이 붙어 다니는 괴물 같은 여자가 함께 살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더 크게 벌어질지 모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네째, 하룻머릿골이 폐촌으로 되고 만 원인은, 따지고 보면 밴강쉬와 미륵례의 집안 때문이었고, 보 그 집안이 그렇게 된 것은. 곧 그 두 거인들이 안고 있는 횡액 때문임에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일 큰몰로 들어오면, 이 큰몰 또한 하룻머릿골처럼 될 게 뻔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하룻머릿골에 살다가 들어온 영감들이나, 큰몰 어른들이 절대적으로 입을 모아 찬성의 뜻을 표했기 때문에, 여기에 반대를 하고 나선 이장(里長)인 성칠이나, 바깥바람 쐬어 개화된 몇몇 젊은이들의 의견은 간단히 묵살되어 버렸다.

"그러고 저러고, 우리 큰몰이나 하룻머릿골 안에서만은 못 살게 하세."

일단 그들을 추방시키자는 의견이 모아진 뒤, 마을 사람들은 그 구체적인 추방 방안을 마련했는데, 그것은 젊은이들로 단을 짜, 일차적으로 닷새 동안의 여유를 준다는 경고를 내려두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단을 앞장서서 이끄는 것은 힘깨나 쓰는데다 간혹 씨름판에 나가 송아지를 한두 번 끌어온 경력이 있고, 마을의 유지로서 제법 말자리나 할 줄 아는 영득이와 달보로 정해졌다.

영득이와 달보들이 청년들 여남은 명을 이끌고 하룻머릿골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미록례네 헛간에 라타난 것은 이날 밤이 왜 깊었을 때였다. 그들은 손에 손에 몽둥이들을 들고 있었다. 달보가 문 대신 늘어뜨려 놓은 가마니때기 앞으로 나서면서

"밴강쉬!"

하고 불렀다. 그러나, 헛간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드르릉드르릉 코고는 소리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달보가 다시 소리쳐 불렀을 때에야

", 누구여?"

하는 밴강쉬의 잠에 취해 있는 목소리가 우렁우렁 울려나왔다. 그때, 영득이가 플래쉬 불을 가마니때기 사이로 넣어 헛간 안을 비췄다. 부윰한 빛살이 헛간 안의 어둠을 이리저리 더듬었다. 순간, 그들은 바닷물 속에 산다 는 황구렁이가 곁고 틀고 있는 것같이 휘감겨 있는 네 개의 다리를 보았다.

영득이가 홈칠하고 플래쉬 불빛을 거두러들이면서

", 우리 말이시, 동네서 나왔는디 말이시, 나쁘게는 생각하지 말소. 앞으로 닷새 동안 여우를 줄 텐에, 그 동안에 다른 데로 나가소. 동네서 회의를 해서 결정된 일인께 그리 알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안에서

", 뭣이 어째여?"

하는 우렁우렁한 밴강쉬의 목소리와 함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때 영득이와 달보 등 뒤에 있던 청년들 가운데 누군가가 화닥닥 도망을 쳐버렸다.

이어 달보 영득이만을 남기고 모두 도망쳐 버렸다.

"아니, 이 바보 같은 사람들 조깐 보소이?"

영득이와 달보들이 기막혀 하는 사이에 밴강쉬가 가마니때기를 들치고 나왔는데, 그때는 영득이와 달보마저도 도망치는 무리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 네 이놈! 달보야, , 영득아, 느그가 참말로 까둘래?"

가마니때기 문 앞에 선 밴강쉬가 이렇게 소리쳤을 때는 영득이 달보들이 너럭바위 위에 올라가 있었다.

"우리는 동네 사람들의 공사청(회의석상)에서 결정된 것을 알려주었을 뿐이시. 닷새 동안 여유를 줬는디도 안 나가고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모도 쫓아올 것인께 그리 알소. 미리 알아사 다른 데로 나가기나 하소."

누군가가 보리필 말하는 것이, 으르렁거리는 파도소리 속에 섞여 들려왔다. 밴강쉬는 하늘을 향해 허허하고 웃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골대가리를 활딱 까서 뒤집어 보먼 보아도 또, 똥밖에 아, 안 들었을 새끼들아! 느그가 어, 언제부터 그렇게 되되해졌냐? 언제부터 큰몰에서 유지 행세를 했디야? , 느그나, 나나. 이 하룻머릿골 뱃놈에 새끼들이긴 마찬가지 아, 아니냐?"

이렇게 소리쳐대는 그의 목소리는 울음이 섞이어 있었다.

그때, 그를 쫓아내자는 데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던 이장 성칠이와 몇 명 젊은이들이 그의 헛간 옆으로 오고 있었지만 그는 ', 느그나 나나 이 하룻머릿골 배, 뱃놈에 새끼들이긴 마찬가지 아, 아니냐? ' 하는 소리를 자꾸 되풀이해서 부르짖어대고 있었다.

 

16

 

이튿날 아침, 밤새 들썽거리던 바람은 죽은 듯이 잤고, 득량만 건너 소록도와 금당도 사이에서, 불덩이 같기도 하고, 전날 미륵례가 횐 엉덩이 살을 감춘 빨간 팬티 빛깔 같기도 하며, 또 어쪄 보면, 미륵례 아버지나 어머니나 야실이나 두 오빠네들이 죽으면서 쏟은 핏덩이 빛깔 같기도 한 그 해(태양)가 아주 천연덕스럽게 솟아 득량만의 싯푸른 물결을 온통 핏빛으로 물들여 놓았는데, 하룻머릿골 폐촌 옆의 찬샘골에서는 젖빛 짚불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밴강쉬가 꼿꼿하게 박은 목나무 끝에 개를 매달아 꼬시르는 짚불연기였는데, 그가 그러고 있는 언덕 옆의 찬샘 가에서는 미륵례가, 여느 아낙들이 한참 신이 나가지고 빨래를 하거나 물일을 하면서 내곤 하는 (시시 시이 시시 시이) 하는 소리를 하며 부산스럽게 솥을 씻고 있었다.

 

 

 

 

 

 

 

 

지은이 : 한승원(韓勝源: 1939- )

 

전남 장흥 출생.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66<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가 입선되고, 1968<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등단. 그는 황폐화된 어촌의 서정적 배경을 중심으로 삶에 대한 토속성과 한의 세계를 다루었고, 고향의 역사적 현실과 숙명을 깊이 있게 파헤친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갯비나리], [해변의 길손], [산 자들의 축제], [겨울 폐사], [아버지와 아들], [포구의 달], [그 바다 끓어 넘치며], [불의 딸],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