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5

함구

자한형 2022. 9. 8.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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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구(緘口)-박 경 주(朴 景 珠)

할머니에게는 규영이란 아들이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이복동생이었다. 어찌나 잘생겼는지 영화배우는 저리 가라였다고 할머니는 늘 얘기했다. “규영이만 돌아와 준다면.” 할머니의 애끓는 소망이었다. 규영이 삼촌이란 분은 한국전쟁 중 지리산 자락에서 총 맞아 죽었다고 했다. 삼촌의 친구가 산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그 사실을 할머니에게 전했지만, 할머니는 그 말을 한사코 믿지 않았다. 그날도 함께 살자는 내 손을 잡았다 놓으며 규영이가 꼭 살아서 돌아올 것이기에 구례의 집을 절대 벗어날 수 없노라고 했다. 할머니는 가끔씩 광주 우리집에 왔다. 초라한 행색이었다. 늘 무명한복을 입었는데 겨울엔 그 위에 낡은 스웨터를 덧입었다. 보따리 안에는 옷가지와 쌀 조금, 채소를 넣어가지고 와 엄마에게 꺼내주곤 했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계모였다. 나는 할머니에게 마음이 쓰였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할머니가 구례집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삼촌의 귀환은 보지 못한 채.

지난날 엄마를 앞세운 아버지가 늘 엄마랑 함께 걷던 산책길에서마나님은 안 보이시네요?”라는 사람들의 안부인사에 그저 웃기만 했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가 죽었다는 말을, 차마 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게 망자에 대한 남은 자의 헛된 사랑이기도, 한낱 미련이기도 했다.

죽음은 벽, 허물 수 없는 벽이었다. 망자의 시간이 벽 앞에 멈추면 산 자는 그 아래 망자를 묻고 한동안 서성이곤 한다. 돌아오지 못할 아이들을 기다리며 팽목항의 돌이 되어버린 가족들의 안타까운 기다림, 늦은 밤 친구 만나러 나갔다가 주검이 되어 돌아온 한 의대생 부모의 울부짖음, 영문도 모른 채 십 수 년 소식이 끊어져 이젠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길 없는 실종자들의 낡은 플래카드는, 죽음이라는 벽 앞에서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남은 자의 처연한 몸부림 아니겠는가.

나의 작은고모는 키가 아주 작았다. 그 작은 키로 삯바느질을 하면서 고모부 없이 여섯 남매를 키웠다. 셋째 아들인 윤석이 오빠는 그런 고모를 도와 집안일을 많이도 거들었다. 학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오빠는 젊은 나이,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도 늘 어머니인 고모를 살뜰히 챙겼다. 생활비도 부쳐오고 물자가 귀하던 시절 미국제 물건도 보내왔다. 고모는 늘 윤석이 오빠 자랑이었다. “우리 윤석이, 우리 윤석이.” 효자인 아들을 끔찍이도 아꼈다. 고모 임종이 가까웠을 때 나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고모 댁을 찾아가게 되었다.

미국에 계신 윤석이 오빠는? 안 오세요?”

!”

고모네 식구들은 급히 내 말문을 막았다. 배웅길에 윤석이 오빠가 오래전 미국에서 타계했다고 말해주었다.

고모는 모르세요?”

이야기 안 했지.”

고모가 윤석이 오빠 찾지 않으세요?”

.”

고모네 식구들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게 이상해. 윤석이가 잘못된 이후론 단 한 번도 윤석이 소식을 물은 적이 없어. 이상하게도.”

며칠 후, 고모는 돌아가셨다. 영안실에서 다시 만난 고모네 가족들에게 나는 또 물었다.

고모는 돌아가실 때, 윤석이 오빠 찾지 않던가요?”

찾지 않으셨어.”

.”

고모는 윤석이 오빠가 타계했다는 걸 이미 알았던 것일까. 아마도 그렇다. 눈치챘던지, 전화를 엿들었던지 고모는 윤석이 오빠 소식을 접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곤 함구(緘口)해 버린 것일 게다. 차마 확인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차마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의 거짓 속에서라도 살려두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