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한형 2022. 11. 1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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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대한민국 최고의 핫플레이스는 강남이라는 것을 모두 인정할 것이다. 예전 서울의 구심점은 서울 시청이었다.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 본사도 그곳에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서울의 랜드마크가 강남역으로 변경되었다. 삼성의 본사도 이전했다. 그러던 중에 잠실에 대한민국 최고의 건물이 들어섰다. 롯데타워다. 이제는 서울의 랜드마크로 롯데타워가 부상했다. 어떻게 강남이 서울의 중심이 되고 최고의 가치를 가진 선망의 대상이 되었는가. 강남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얼마 전 더 데이즈에서 다큐로 강남의 탄생을 선 보였다. 장강명 작가(전 사회부 기자), 역사학자 박태규 교수, 김경일 심리학 교수, 김학렬부동산 연구소 소장, 네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본 강남의 탄생을 이야기했다. tvn어쩌다 어른을 연출한 PD가 기획한 프로였다. 장강명 작가는 알쓸신잡 등의 TV프로에서 활약을 펼쳤고 박태규 교수님은 국방 TV에서 자주 뵌 적이 있었다. 김경일 교수는 심리학자로 자주 TV 에서 강의를 한 유명인사였다.

맨 먼저의 얘기는 경부고속도로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하면서 아우토반을 달렸다. 그리고 귀국해서 고속도로를 그렸고 그것이 현실화된 것이 경부고속도로다. 197077일 개통되었다. 그 당시에는 차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고속도로를 건설해서 뭐하냐는 소리도 나왔던 시절이었다. 대한민국에 자가용을 가진 이가 드물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했다. 그 당시에는 일본의 고속도로가 1963년에 개통이 되었으니 경제적으로 뒤처진 우리가 너무 빨리 건설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고속도로가 개통되자 강남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강남의 말죽거리(지금의.말죽거리(양재역 근처)등도 알짜배기 땅으로 변모했다. 경부 고속도로와 더불어 강남의 탄생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한남대교였다. 강남에 들어서는 초입이었다. 잠수교까지 있으니 강남은 신세계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고속도로와 한남대교 건설 후 강북의 땅값이 10배 올랐다면 강남은 25, 30배가 뛰었다. 강남불패의 시작이다. 서울의 한 시장이 아파트를 짓는 것이 주택난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발상을 했다. 리고 아파트 지구라는 택지가 대대적으로 조성되었다. 서울시내에 10여 군데의 아파트 지구가 지정되었는데 강남이 6군데를 차지했다. 강북은 난개발이 진행되었기에 그렇게 아파트 지구로 선정될 곳이 희소했다. 19731015일 소양강 댐이 완공되었다. 기념식이 거행되던 자리에서 현대건설 정 회장은 부하직원에게 전화해서 급하게 압구정동의 미나리 밭을 사모으라고 지시를 내렸다. 어떻게 압구정동 미나리 밭이 금싸라기 땅이 될 것임을 귀신같이 알아챘을까. 먼 미래를 내다본 대단한 예지력이자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그곳은 후일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되었다. 본래는 현대그룹의 사원용으로 아파트를 지었다고 했는데 분양이 되고 보니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등 대한민국에 방귀 꽤나 뀐다는 사람들은 다 포함이 되어 분양을 받았다. 그렇게 특혜분양을 했다고 해서 부시장 등 관련자가 기소되고 재판을 받았으나 분양권 특혜가 뇌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최종적으로 나왔다. 대한민국을 일러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한다. 좁은 땅에 인구가 밀집되다보니 아파트로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1970년대부터 짓기 시작한 아파트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서울의 한강변을 달려보면 보이는 것은 모조리 아파트고 교회의 십자가뿐이라는 한숨 섞인 소리도 나온다. 동부이촌동 서민 아파트, 여의도 아파트, 반포 주공아파트 등이 분양되면서 아파트가 대표적인 한국 서울의 주거문화로 자리 잡게 되고 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되기에 이르렀다. 일반 민영아파트가 천만 원의 분양가일 때 주공은 76십만 원에 다소 저렴하게 분양이 되었다. 집에 마당이 없는 대신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가 처음에는 그렇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난방 등이 중앙집중식으로 되고 각종 공용시설 등이 편리하게 갖춰지면서 새로운 주거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강남의 아파트는 화폐화 되고 부의 상징처럼 확실한 투자수단으로 부상하게 된다. 강남으로의 이주를 촉진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강북에 제한을 가하고 규제를 강화한다. 강북에는 유흥업소, 대학 등의 설립을 일체 불허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서 명문 고등학교도 서울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한다. 경기고, 서울고, 휘문고 등이다. 예전의 맹모삼천지교의 현대판이 아닐 수 없다. 이후 이와 더불어 고교 평준화 정책이 추진되지만 강남 8학군이 결국 입신출세를 위해서 최고 교육을 좇는 열혈 강남 엄마들의 강남 이주를 부추긴다. 이른바 대전, 서전의 탄생이다. 경제력이 없으니 강남의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고혈을 짜내 전세로 이주하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대치동 전세, 서초동 전세로 사는 강남 엄마인 셈이다.자신은 부자가 되지 못했지만 아들만은 강남 8 학군을 거쳐 명문대로 진학시키고 부자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대한민국 강남 엄마들의 로망이었던 셈이다. 이는 정아은 소설가의 잠실동 사람들이란 소설에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해부되고 있다. “비록 나는 주류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주류에 살게 하리라. 주류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선 주류가 되게 하리라.” 얼마 전에.”방영되었던 스카이캐슬의 엄마들을 떠올리게 하는 셈이다. SKY대학을 보내야 하는 부모의 소망이 절실했던 엄마들의 치열했던 치맛바람을 대변하고 풍자한 드라마였었다.

나는 2005년에서 2011년까지 약 6년간 강남의 서초 4동에 살았다. 속된 말로 서전이었다. 개뿔의 능력도 경제적 여유도 없으면서 무모하리만치 위험한 도전이었고 모험이었다. 작은아들의 공부를 시켜보겠다는 일념이었다. 작은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서울의 가장 열악한 동네에서 가장 월등하고 우월한 곳으로의 이주였다. 참으로 발칙하고 무모한 발상이었고 시도였다. 한 반 학생 34명 중 영어 만점자가 18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내로라하는 명문 강남의 엘리트 집안의 자제들이었다. 법관, 언론인, 교수 등 대한민국의 상위 1% 금수저 그 자체였다. 중학교 졸업생 중2 8명이 특목고에 입학할 정도이니 그 우수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최고 수준이었다. 그 당시 그런 이야기가 항간에 떠돌고 있기도 했다. 10억의 자산이 없으면서 강남에 사는 것은 도둑놈이라는 것이다. 강남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강남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자랐고 최소 1년 이상 해외에 살아본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영어 등의 과목에서는 선생님을 능가할 정도였다. 인근에 소재해 있던 교대 부속 유치원의 입학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불사할 정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하는 형국이었다. 그냥 배정된 학교를 가고 유치원을 다니고 그것을 아이들 마음대로 자라고 생활하도록 방치하다시피 했던 그런 통상적인 교육과는 차원이 다른 동네가 바로 강남이었다. 함부로 일반 서민이 감히 범접하기에는 너무도 높은 벽이었고 지역이었고 경계였다. 이제는 오래되고 흘러간 아련해진 옛 추억이 되었다.

강남이 탄생된 70년대를 지나고 80년대 말 민주화를 거치면서 90년대에 이르러서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부작용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19941021일 성수대교 붕괴사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학교를 가던 여학생들이 죽음을 맞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듬해 62629일 강남 제일의 백화점으로 명성을 자자하던 삼풍백화점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내리는 참사로 사망 502, 실종 6, 부상 937명의 희생자를 낸다. 유사 이래로 6.25 전쟁이후 가장 큰 인적 재해로 기록되었다. 우리가 너무 급속하게 경제발전을 하면서 과부하가 걸렸고 빨리빨리 문화로 재촉했던 과정들이 화근의 불씨로 작용된 것이다. 시골 사람들은 서울을 바라보고 살고 서울 사람들은 강남이나 선진 외국의 멋진 도시들을 동경하며 산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고 다른 후진국 등을 선도하고 이끌어 나가야 할 나라로 변모되어야 할 때다. 과연 향후 강남불패의 신화는 이어질 것인가. 강남의 집값은 떨어지지 않을 것인가. 강남은 계속 현재처럼 존속되고 유지발전되며 지속적인 성장과 명성을 이어갈 것인가. 주류에 살지 못해서 겪는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우리나라의 부모님들은 강남을 더 욕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층간양극화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결국 강남불패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강남은 언제까지나 현재와 유사하게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이 선망하고 갈망하는 꿈 꾸는 곳으로 발전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전망일른지도 모를 일이다. 강남사람들도 별종의 대한민국 사람이지는 않다. 강남이여 영원하라. 하지만 결국 강남도 언젠가는 그 명을 다할 것이고 새로운 대체안이 나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