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출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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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출퇴근
오늘은 내가 키움센터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날이다. 오전에 월례회의가 있었다. 보람일자리 지역복지 사업회 성과 공유회였다. 지난 7개월 여 기간의 활동내역에 관한 동영상의 상영이 있었다. 각 센터에 50플러스 재단에서의 방문 사진과 월례회의 강의 내용 등이 포함되어있었다. 그리고 각 센터의 대표 선생님들의 사례발표가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채비를 했다. 목욕탕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출근했다. 감회가 새로웠다. 매일같이 다녔던 길이었지만 이 길도 이제 마지막이라는 것에서 특별했다. 보라매 공원은 한창 단풍이 무르익었고 낙엽이 흩날리는 늦가을의 풍경이 애잔했다. 공원의 한쪽에는 텐트를 쳐놓고 여러 부스에서 행사를 하고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시연하는 곳도 있었고 맥박 등을 재고 건강을 상담하는 곳도 있었다. 코로나19 백신접종을 해주는 곳도 있었고 결핵검사를 해주기 위해 폐 X-레이를 찍어주는 곳도 있었다. 동작구의 보건소 등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안전, 건강관련 행사였다. 구청장님도 다녀갔다고도 했다. 근무시간 1010분 전쯤에 키움센터에 도착했다. 갑자기 구청장님이 센터를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오후 1시 20분쯤에 여대생 한 명과 함께 문창초등학교 앞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다섯 명이었다. 재원이가 조금 늦게 나왔다. 엊그제까지 골목에서 상수도 공사가 있어 통행에 불편이 있었는데 오늘을 해소가 되었다. 센터로 돌아와서 잠깐 과제 등을 한 후 곧바로 채비를 해서 보라매 공원 행사장으로 갔다. 부스에서 천연비누 만들기를 하는 체험에 들어갔다. 스태프요원이 비누 만드는 법에 관해 소상하고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아이들이 재료를 조물락조물락해서 완두콩 모양의 비누를 만들었다. 그리고 인증숏을 찍었다. 비누만들기 체험행사를 마치고 아이들은 보라매 공원의 어린이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에서 시소, 그네 미끄럼틀 등이 있었다. 한참 뛰어다니며 사방에서 놀았던 아이들은 인근의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을 줍기도 했다. 노란 은행잎, 빨간 단풍잎, 짙은 갈색의 플라타너스 잎 등이었다. 놀이터에서의 놀이가 끝난후 우리는 모두 문창초등학교 정문 앞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해서는 무인판매편의점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그리고 그것을 나눠먹었다. 하은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학원에 갔다. 나머지 아이들은 다시 키움센터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천연비누만들기 체험을 했다. 이번에는 당근모양의 비누 만들기였다.. 다 만든 아이들은 인증숏을 찍었다. 한창 비누를 만드는 중에 구청장님의 센터 방문이 있었다. 일선 현장을 방문 중에 있는 듯했다. 구청장님은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담소한 후 센터를 떠났다. 이후 한 시간쯤 더 근무를 한 후 퇴근시간이 가까웠다. 센터장님이 나와 아이들을 다 모았다. 그리고 슬픈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이 이제 오늘로 마지막 근무를 하고 작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그동안의 노고에 박수를 보냈고 “건강하세요” 하고 덕담을 건넸다. 아쉬움이 많은 작별의 순간이었다. 동작 2키움센터에서의 220일간의 근무를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어찌보면 짧고 다른 시각에서는 긴 기간이었다. 4월에서 시작된 근무가 11월이 되어서야 마무리된 셈이다. 봄에 시작한 근무가 늦가을에 끝난 것이다. 키움센터는 초등학교에서 학교 수업이 끝난 아동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곳이다. 오후 한 시 혹은 한 시 반부터 근무를 시작해서 7시까지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는 것이다. 과제를 하고 책 읽기를 하고 줄넘기 등 학교에서 요청하는 것들을 해결하고 다른 학습과 놀이 등을 통해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들의 성장발육을 도모하는 곳이다. 식사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간식의 제공을 한다. 한 달 이용료가 5만원이니 그저 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국가 지자체 등에서의 공공복지사업이라고 보아도 좋으리라. 센터에는 정규 근무 직원 선생님이 세 분 계시다. 그리고 도우미로 서울 50 플러스 센터를 통한 일자리 근무요원 2명, 대학생 선생님 다섯 분, 서울시 노인 일자리 선생님 한 분 등이 근무를 한다. 서울 50플러스 요원이 월화수를 근무하고 서울시 요원이 화, 목요일에 근무하는 식이다. 대학생들은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학교 수업이나 시험 등에 맞춰 근무 일자나 시간 등을 조정하여 근무하는 식이다. 정식 센터 선생님들을 제외한 도우미의 인건비는 각각의 주관기관에서 지급하는 형식이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색하고 낯선 업무였지만 이제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고 어떤 도움이 아이들의 돌봄에 필요한지를 깨우쳐 무리 없이 업무를 해낼 수 있었다. 아직 성장중인 아이들이어서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지원하고 어떤 돌봄으로 효과적이게 활동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아직 제대로의 의식이나 인식 또는 완전한 성숙한 사람으로 볼 수 없는 상태이기에 여러 가지의 감정적인 부분의 문제나 갈등 요소 또는 서로 간의 알력과 대립 등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차츰 생활을 하면서 익숙해졌고 아이들의 요구나 원하는 바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충분히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지원해 줄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면도 없지 않았다. 나름대로의 학습 프로그램 등도 센터에서 운영하고 그것에는 별도의 선생님이나 전문가들이 지원하기도 했다. 영화를 가끔 상영해 보여주기도 하고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나 미술교실, 사진교실 등의 학습시간도 할애되었다. 다문화가족의 아동도 있었지만 전혀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식문화라든가 이질적인 문화상의 차이는 극복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아무튼 아이들과의 공감이 관건이었고 서로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공감대를 이뤄나갔다고 볼 수 있으리라. 키움센터에서의 생활은 생활의 활력소로 작용이 되었고 많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보람된 일자리였음은 틀림이 없었다. 향후에도 계속적으로 이런 기회가 제공되고 많은 장년들이 혜택을 보고 일자리를 갖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