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언젠가 산길을 가던 중에 조그만 정자 같은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조그만 나무판자에 투박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화향백리 인향만리”였다. 처음 들어보는 글귀였지만 의미심장했다. 그래서 그 어원을 찾았다. 화향백리 주향천리 인향만리가 원글귀인 듯했다. 그리고 그 글귀나 나온 원천을 찾았다. 중국의 남북조 시대의 남사(南史)에 보면 송계아라는 고위관리가 정년퇴직을 대비하여 자신의 노후에 살 집을 보러 다닌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천백금을 주고 여승진이란 사람의 이웃집을 사서 이사했다. 백만금 밖에 안 되는 집값에 천만금을 더 주고 샀다. 이사를 하고 난 후에 여승진이 물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오? ” 그러자 송계아가 답했다. “백만매택이요 천만매린이라.” 해석하자면 백만금은 집값이요 천만금은 여승진 당신과 이웃이 되기 위한 대금이다. 여기에서 근거해서 나온 얘기가 화향백리 주향 천리 인향백리, 난향백리 묵향천리 덕향만리, 백만매택 천만매린 거필택린(이웃을 선택해서 살 집을 정해야 한다)이었다.
덕향만리와 관련하여 일화 하나를 더 소개한다. 한 국밥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할머니와 손자가 국밥을 먹으러 왔다. 국밥을 한그릇 시켰다. 할머니는 찬으로 나온 깍두기를 하나 집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그리고 손자가 국밥을 먹는 모습을 건너편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다 본다. 어느덧 식사가 끝나고 계산을 할 때가 되었다. 할머니는 치마 속을 뒤져 꼬깃꼬깃한 쌈짓돈을 꺼내려한다.. 주인장은 애처로운 듯 그 모습을 보다 그렇게 둘러댄다. “ 할머니, 할머니는 오늘 우리 국밥집의 100번째 손님으로 당첨이 되셨기에 국밥 값은 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얘기를 해서 할머니와 손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다시 손자가 국밥집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국밥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그리고는 돌맹이를 하나씩 던져서 그 원안으로 집어넣었다. 국밥집에 들어가는 손님 수를 세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집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주인장이 고민을 하다 손님을 불러 모을 아이디어를 냈다. 단골 손님 등에게 전화를 걸어 국밥을 먹으러 오라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한 것이다. 그러자 손님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손자는 50, 60, 70, 80, 90 그리고 백에 가까이까지 근접했다. 그리고 백번째가 되자 손자가 할머니를 모셔왔다. 이번에는 손자가 깍두기를 먹었고 할머니가 국밥을 먹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 나오게 되는 덕향은 아홉 번째 수필집이다. 코로나19가 지나는 동안 세계는 참으로 황량하고 참혹한 상처와 잔흔을 남겼다. 전세계적으로 번져나간 감염병은 6개월 만에 퍼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재앙처럼 다가왔다. 2년 동안 간헐적이고 일시적이긴 했지만 서울시 50플러스 재단에서 진행했던 일자리 사업에 참여를 해서 일정기간 근무를 했다. 비록 정식적이고 상시적인 일자리는 아니었지만 열심히 노력했고 주어진 과업에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일반적인 모임의 회합은 제한적이어서 예년과 같은 자유로운 활동이나 회합, 여행, 해외여행 등은 어려웠지만 온라인상의 회의 또는 교류 등은 새로운 방법의 커뮤니티였던 셈이다. 이제 향후의 세계는 보다 전 세계적인 커뮤니티 또는 정보공유가 활발해질 것이고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로 움직이는 날들이 더 가까워질 것이다. 전세계가 고금리, 고물가, 고유가 등에 인플레이션까지 겹쳐 몸살을 앓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도 중 미의 대립 속에 우리 나라의 입지나 운신의 폭이 좁혀지는 가운데 경상수지 적자 연속과 부동산 경기 위축 등의 영향으로 저성장 기조가 계속되는 상태여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보다 양극화되고 힘들어지는 양상이다.
개인적으로는 10여 년을 살았던 삶의 터전에서 떠나 하남시로의 이사를 앞두고 있다. 삶의 여러 가지가 변화되고 바뀌고 변모가 불가피할 것이다. 얼마 전부터는 반려견을 키우면서 많은 삶의 양상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출가한 아들도 지난 7월에 아들을 낳았다. 휴일마다의 일정은 손자를 돌보는 일이 새로운 일상으로 추가되었다. 다소간 힘든 부분도 있지만 가족의 일원이 늘어났고 하늘의 축복처럼 다가온 듯하다. 손자가 문득문득 방긋방긋 웃는 웃음에서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잊을 수 있는 시원한 청량제로 작용이 되고 있다. 이제 순자가 기고, 걷고 말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은 바람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은퇴 후의 삶을 이어가고 영위해 가야 할 것이다. 의미가 있고 보람된 일들이 펼쳐지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일상을 평안하게 영위해나가고 안정적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해 보이기도 하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에 익숙해져야 하고 잘 적응해나가는 것이 관건일 수 있으리라. 지난 2년 동안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유튜버로서의 활동을 계속적으로 이어가고는 있지만 제대로의 구독자를 늘리는 부분에서는 효과적이지 못해 통렬한 반성을 하고 있다. 아내는 작년 스승의 날에 영광스럽게 포장을 받았다.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가족행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간헐적이었고 소수의 가족만 모이는 형편이었고 드문 일이었다. 얼마 전에 전체 가족이 모여 조상에 제사를 모시는 뜻깊은 회합의 자리가 있었다. 농협동인회의 편집위원으로서의 활동도 자의적으로 사퇴를 했다. 1년 여동안 격월마다 활동을 했던 부분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회합인 협맥회, 신녹사, 서일회, 구자회, 농기계회, 동창회 등의 회합도 얼마 전부터 다시 재개되는 상황이었다. 모두들 건강하게 코로나19 팬데믹을 이겨낸 듯했다. 이번 덕향을 계기로 모든 이들에게 코로나19로 실의에 빠졌던 분들에게 위안이 되고 위기극복의 조그만 밑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