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낯설음 저너머

삼복 김치 담그기

자한형 2023. 2. 9. 16:43
728x90

삼복 김치 담그기

엊그제였다. 그날은 중복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열사병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30도를 웃도는 더위에 열대야까지 겹쳐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있었다. 올림픽의 메달 소식은 무더위를 한순간에 시원하게 날려주기도 했다. 그 더위에 텃밭에서 잡초제거 작업을 열심히 했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어 낫으로 그것을 제거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양쪽 옆 두 고랑을 하고 나니 땀으로 샤워를 한 꼴이 되었다. 얼른 샤워하고 몸을 추슬렀음에도 삼복더위의 후유증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별수 없이 에어컨을 틀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밭으로 나가 무성하게 열려 있는 고추를 땄다. 종이가방에 절반 정도는 되는 듯했다. 빨갛게 익은 고추도 있었고 아직 푸른 상태의 고추도 있었다. 과연 이렇게 재배한 고추가 효용을 제대로 발휘하고 제 역할을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번에는 그래도 작황이 좋아 수확물이 제법 듬직한 듯했다. 2년 전에도 꼭 같이 고추를 재배했었는데 홍고추를 베란다에 말리고 빻고 하는 등 수고로움을 다했지만 결국 제대로의 고추를 활용하지 못하고 모두 폐기해 버린 전력 탓이었다. 처음에는 가뭄이 들어 물을 주느라 힘이 들었고 장마가 질 때에는 물이 너무 많아 생육에 지장을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처음으로 비료를 주는 데 바로 심었던 자리에 주는 통에 대부분 말라버리는 현상을 겪기도 했다. 비료의 질소 등 제반 성분이 뿌리에 닿지 않도록 뿌려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주목을 설치하고 노끈으로 고cnt대가 쓰러지지 않도록 고정을 하는 것도 왜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일단 수확한 고추를 집으로 가져왔다. 집사람은 고추를 깨끗이 씻었고 나름의 기준에 의해 3가지로 고추를 분류해 놓았다. 첫 번째는 홍고추였고 또 하나는 홍고추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는 고추로 분류해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푸른 모습의 풋고추였다. 다음날이 되자 홍고추만을 시장에 가서 갈아오라고 했다. 김치통에 든 고추에 젓갈을 혼합한 것을 고추 빻는 곳으로 갔다. 마늘도 세 봉지 정도를 사서 갔다. 조그만 상점으로 달걀 등을 파는 집이었다. 한쪽 귀퉁이에 고추, 마늘 등을 가는 기계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주인 여자가 손수 조작하고 있었다. 기계는 부속품을 분리해 놓여있었다. 그녀가 차근차근 하나하나의 부속을 결합하자 조작이 완료된 모양이었다. 고추를 넣고 조그만 몽둥이 같은 것으로 고추가 잘 내려가도록 모아주고 혼합시켜주었다. 기계는 심한 소음을 내며 가동이 되기 시작했다. 먼저 마늘을 갈았다. 그런 다음으로 고추를 가는 것이었다. 보드라운 상태가 되도록 하기 위해 고추를 다시 한번 가는 공정을 계속했다. 이렇게 해서 고추를 양념장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일차적인 작업이 끝이 났다. 다음은 장보기였다. 절임배추 한상자를 사서 오고 부추와 잔파를 서너 단씩 사서 왔다. 물 고추에 고춧가루를 넣고 다진 마늘과 잔파를 넣고 양념을 해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이로써 김치를 만들 수 있는 만반의 준비는 갖추어진 셈이었다. 조그만 대야에 절임배추를 놓고 양념이 베도록 치대었다. 그 과정이 거쳐서야 김치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어렵고 힘든 것으로 여겨졌고 항상 다 완성된 김치만을 보았지 직접 이렇게 만들어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항상 처가든 시가든 김치를 가져와 먹었고 꼭 부족할 때면 대형 유통점에서 유명김치를 사 와서 먹는 것이 버릇이 되어 버렸다. 마지막 한 포기는 직접 먹을 수 있게 하려고 죽 찢어서 부추와 함께 버무렸다. 집사람의 얘기로는 1년에 두세 번 만 김치를 담그면 1년을 김치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양념장에 굴이며 기타 여러 가지가 더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여름철 해산물은 차칫 하면 해로울 수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부랴부랴 돼지고기를 삶는 과정에 들어갔다. 수육을 넣고 마늘, 양파, 된장을 넣고 푹 고았다. 1시간여의 공들임이 있었던 후에 돼지고기 수육이 완성되었다. 통상10대 장수식품에 들어간다던 것이다. 음식을 튀기거나 굽거나 하는 것 보다는 그래도 몸에 푹 삶은 것이 유용하다는 것을 어느 대장암 경험자에게서 들었던 적이 있다. 저녁 찬은 수육에 새 김치였다. 그리고 국은 오이냉국으로 휴일의 즐거운 저녁이 되었다. 예전 경구에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한다.” 고 하며 먹기에 집착하는 것에 경종을 울렸다. 사람이 살면서 먹는 것보다 더 생의 심연 천착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일지라도 기본적인 먹거리의 해결은 긴요한 것이고 필수적이다. 우리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다라고 했다. 모든 것의 기본적인 것은 의식주의 해결이다. 물론 우리의 지금 경제사정은 의식의 해결에 애로를 겪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대로 의식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먹고 입는 부분에 큰 문제를 갖고 있지 않을 만큼 기초적인 생활은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아직도 사회적 갈등요소는 산적해 있어 해결의 난맥상을 보이는 부분도 있으나 기본적인 의식의 문제는 다 해소되었다고 여겨도 무방하리라.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다원적이 되고 다양성이 하나의 키워드로 각광받게 되고 갈등의 골은 더 깊어가기 마련인 것이다. 이해 집단간의 자기주장과 이합집산 또는 합종연행은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해결책을 한방에 찾기에는 더욱 난맥상을 띄게 될 것이다. 언제는 문제는 있게 마련이고 해결책은 꼭 찾을 수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역사는 발전지향적으로 진화하게되어 있고 퇴보하는 일은 좀체로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고 기본을 지키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사회는 더욱 풍요롭고 수준 높은 교양사회가 되지 않을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