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와 선유도에서
내소사와 선유도에서
우리가 내소사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제법 뉘엿뉘엿 기울어져 갈 때쯤이었다. 아직도 한여름의 뙤약볕이 강하게 내리던 때이기는 했지만 한풀 꺾인 더위였던 탓에 무더위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만한 처지였다.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작년에는 변산을 다녀왔는데 내소사는 둘러보지 않았다. 반대편에서 등산을 해 내소사로 넘어왔는데 내소사 내부는 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곳은 국립공원으로 입장료를 내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유공자만 면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까지 면제되는 것으로 적시를 해놓았다. 공짜구경이 좋긴 좋았다. 기분 좋은 상태로 올라갔다. 입구주변에는 대장금의 촬영장면이 전시되어있었다. 그곳에서 멋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절 중앙에는 보호수가 한그루 영험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수종은 느티나무라고 했고 아름드리나무로 수령이 천년을 상회할 정도였다. 모두들 신기해할 거목이었다. 대웅전에서 집사람은 시주도 하고 절도 했다. 집사람이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마음공부를 시작한 이후에는 이렇게 절에만 가면 절을 올리게 되었다. 절에서 내려오다 보니 널찍한 돌자리가 마련되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땀도 좀 식히면서 휴식을 취했다. 내소사는 백제무왕 때 건립이 된 곳으로 이곳에 오는 사람은 새롭게 소생하게 하소서 라는 원력을 가지고 내소사로 명명되었다. 임진왜란, 5.25등 전란을 겪으면서 새롭게 건립되는 부침은 있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요금을 계산하려고 했더니 그냥 가라고 해 또 한 번 기분이 좋아졌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태풍의 영향인지 흐린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군산의 명소라고 알려진 이성당이었다. 1945년부터 영업을 했다고 하니 장구한 세월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빵집이었는데 단팥빵과 소보루빵도 유명하다고 했다. 입구에 도착해서 매장을 보니 사람들로 북적이는 게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간단히 빵을 종류별로 사가지고 다시 또 맛집을 찾았다. 삼오정(三五停)이라는 고기집이었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손님은 별로 없었다. 고바우정육식당이라고 별칭이 있기도 했다. 싸고 맛있는 집으로 인기가 높았다. 안심과 등심으로 반반을 시켰다. 기본이 600그램으로 되어 있었으니 300그램씩인 셈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넓은 홀이 가득 찰 정도가 되었다. 고기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에 올라 숙소로 갔다. 하루일정이 모두 소화된 셈이었다. 술에 대한 유혹도 있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길을 가다가 노변에서 파는 무화과와 복숭아를 한 박스씩 샀다.
다음날 아침 늦잠을 잤다. 일어나니 약속시간을 맞추기가 빠듯했다. 부랴부랴 준비를 해 곧바로 택시를 타고 연안여객선 터미널로 향했다. 시간은 30분정도 밖에 여유가 없었다. 택시기사가 사정을 알고는 상당히 무리를 해서 운전을 해주었다. 도착 오 분 전에 터미널에서 전화까지 왔을 정도였다. 표는 어제 예매해놓았기에 간신히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비는 억수같이 심하게 내리는 상황이었다. 180석 정도의 조그만 배였다. 코스모스호라고 명명되어 있었다. 50분정도가 소요되었다. 행선지는 선유도였다. 서울에도 선유도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군산선유도라는 것이 정확할 것 같았다. 군산열도라고도 하는데 60여개의 섬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 유인도가 30여개이고 나머지는 무인도이다. 향후 2년 후에는 다리가 놓여 육지화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울릉도의 절반정도 면적이라고 했다. 본래 골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동카터차가 선유도를 돌아다녔는데 그것이 얼마 전에 인명사고가 나는 바람에 거의 사용이 불허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은 자전거라든가 기타 교통수단에 의해 통행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배에 내리니 관광용 미니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달리 도리가 없었다. 비가 내리는 상황이라 자전거를 탈 수도 없었고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다른 서해안의 섬처럼 차량으로 배에 승선해서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도 않았다. 한 시간 정도로 돌아다니는 미니버스 이용료는 일인당 만원 수준이었다. 운전기사는 14년을 선유도에 산 자로 관광가이드까지 겸하고 있었다. 명사십리 해수욕장도 있었고 우람한 바위산도 있었다. 김양식을 하는 마을도 있었고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서 생업을 유지하는 부락도 있었다. 생선회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양식이니 가급적이면 시내에 가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으면서 먹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안내도 있었다. 도보로만 이동할 수 있는 다리를 건너갔다가 왔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몽돌해수욕장의 가장자리를 돌아보았다. 40분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11시 15분까지 오라고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갔다 오고 나니 버스가 없었다. 한참을 기약 없이 빗속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곧 버스가 와서 그것을 타고 선착장까지 이동했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나왔던 터라 허기가 졌다. 선착장식당에서 바지락 칼국수를 시켜서 먹었다. 식사를 마치니 그래도 좀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해수욕장까지 걸어서 갔다. 한쪽은 갯벌이었고 또 다른 쪽은 해수욕장이었다. 중간지대에 두서너 곳에 텐트가 쳐져있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해수욕장에 가서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그리고 인증샷을 날렸다. 전부 우산을 쓴 채로 사진을 찍은 것이어서 폼이 나지 않았다. 귀항하는 시간은 두시였는데 한시쯤부터 배가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싶어 곧바로 승선해서 배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렇게 해서 내소사와 선유도의 관광은 끝이 났다. 대부분의 휴가를 해외에서 보내는 세상이 되었고 또한 국내에서 보내더라도 캠핑 등으로 보내다보니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농촌지역에서 보내야 한다고 캠페인은 벌이고 했지만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바닷가에서 보내는 여름한철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봄에 세월호사고로 인해 큰 아픔과 슬픔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이 영위되고 회복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