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한형 2023. 4. 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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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지난달 말 일요일이었다. 나는 집사람과 함께 아침 일찍 채비를 해서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경주였다. 거의 세 시간 반을 달려야 할 것을 작정하고 길을 떠난 것이다. 집에서 나와 88도로를 탔다가 외곽으로 빠졌다. 중부고속도로로 가는 것이 수월하리라 여겼다. 아직 무더위의 여파가 남아 있던 상태라 날씨가 좋다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때였다. 호법 분기점까지 가서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여주 쪽까지 가야 했고 그곳에서 중부내륙으로 꺾어져야 했다. 김천까지 가고 그곳에서 다시 경부로 가는 수순이었다. 선산 휴게소쯤에서 휴식을 취했다. 동생네와 부모님은 1030분경에 출발을 한다고 했다. 본래 연례행사로 치렀던 부친의 생신을 이번에는 경주 리조트에서 하기로 한 것이었다. 당초에는 통영 쪽에서 하려 했는데 예약이 끝난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휴가기간도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라 충분히 방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속단한 것이 잘못이었다. 미리 예약을 서둘렀다면 충분히 방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져 아쉬움이 남았다. 오래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진 한 장 떠오른다. 할아버지와 모친 그리고 고모님이 함께 용두산 공원의 부산타워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화창한 봄날이었고 백발의 수염을 휘날리는 할아버지는 손에 비둘기의 모이를 주고 있었고 비둘기는 얌전히 그 손위에서 열심히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참으로 편안한 모습이었고 행복해하던 표정이었다. 사진도 귀했고 그렇게 놀이를 가는 것이 호사로 여겨졌던 옛날의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났다. 아무래도 일만 하셨던 조부가 오랜만에 부산 나들이를 해서 며느리와 딸을 데리고 공원에 갔던 한 때였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한평생 식구들과 가족들을 챙기느라 일만 하셨던 조부였다. 일손을 놓고 그렇게 편안하게 관광을 즐기는 것이 특별했고 호사를 누렸던 날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희소한 날이었지 싶다. 할아버지의 엄지손톱이 거의 3밀리미터 수준이었다. 얼마나 일을 하셨는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유일한 낙은 담배를 태우시는 것이었는데 곰방대에 봉초를 담아 휴식시간에 흡연을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갈치구이를 무척 좋아하셨고 사이다도 좋아하셨다. 부산에 오면 호강하는 시기였다. 이제는 아들들이 그렇게 부모님을 모시고 관광을 하러 가는 것이었다. 하루를 휴가내서 가는 것이다. 여동생도 동생네와 같이 온다고 했다. 만남의 장소로 식당을 지정해서 카톡으로 보내 놓았다. 거리가 가까우니 훨씬 늦게 출발했음에도 더 빨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은 조그만 한옥으로 된 한정식 집이었다. 인터넷 검색상으로는 떡갈비가 주 메뉴였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불고기로 주 메뉴가 바뀌어져 있었다. 식사와 더불어 오랜만에 만남의 정을 나눴다. 차를 한잔 마시면서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집사람이 주상절리가 주변에 있고 가볼만 하다는 정보를 냈다. 곧바로 검색을 해서 목적지로 삼았다. 30분 정도면 가볼 수 있는 곳이었다. 바닷가 쪽이었고 문무 왕릉도 근처에 있었다. 일요일 오후였음에도 관광객들이 몰려있었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했는지 사극의 주인공 사진도 걸려있었다. 바위를 잘게 잘라놓은 것처럼 되어져 있어 독특한 모양새였다. 그곳에서 차와 팥빙수 등으로 더위를 식힌 후 다시 보문단지로 나와 리조트로 갔다. 숙소에서 키를 받아서 들어갔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 리조트에 딸려있는 바비큐 식당이 보였는데 일요일 영업을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결국은 그곳에서 확인을 하고 하지 않으면 근처 식당으로 가기로 하고 숙소에서 나왔다. 식당에 물어보니 영업을 6시부터 한다고 했다. 특별석에는 좀 다르게 되어져 있었다. 시간이 좀 있어 인근을 돌아보는 사이 동생네가 생일 케이크를 사왔다. 바비큐로 시키고 술도 한잔 했다. 사진도 기념으로 찍었다. 8시경까지 오붓한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숙소와 와서 케이크를 잘랐다. 이제 거의 팔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계시는 듯했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마지막을 보내게 될 묏자리에 대한 부분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고 있었다. 동생은 장남인 형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니 조만간에 결말을 지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경인지역쯤의 공원묘지를 물색해서 준비를 해 놓아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한참 얘기를 나눈 후 동생네와 여동생은 다시 부산으로 가기위해 채비를 해서 출발했다. 부모님께 드릴 짐은 미리 동생네 차에 다 실어다 놓은 상태였다. 리조트의 밤은 고즈넉했다.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릴 것도 같았는데 의외로 조용했다. 토요일이었으면 더 복잡하고 시끄러웠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리조트에 딸린 식당에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간단한 뷔페식이었다. 한식 위주가 아니라 양식위주로 식단이 짜여 있었다. 외국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듯했고 대부분의 손님들은 중국인으로 여겨졌다. 식사를 마치고 올라와 짐을 챙겨서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불국사로 향했다. 어렸을 적에 초등학교시절에 수학여행을 온 곳이 경주였고 불국사였다. 몇 년 전에도 부모님을 모시고 관광을 한 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다. 김대성이 세운 절로 유명했고 경주의 대표적인 사찰로 이름이 높았다. 성인가요에도 불국사의 밤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초등학교 시절 동창의 고향이 이곳이어서 같이 놀러오기도 했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해두고 입장권을 끊어서 들어갔다. 집사람은 유공자라서 공짜였고 부모님은 경로여서 공짜였다. 혼자 입장료를 냈다. 평일이라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사찰의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석가탑은 보수 공사 중이라 차양이 쳐져있었다. 다보탑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대웅전을 보았고 뒤쪽의 사당에는 석가탑에서 나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전시되어져 있기도 했다. 형체도 잘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다. 불국사를 빠져 나와 다시 향한 곳은 석굴암이었다. 토함산의 정상부근에 있었다. 차를 주차해 두고 걸어서 그곳까지 갔다. 돌 틈으로 다람쥐들이 나와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침 청소를 한 탓인지 길은 깨끗했다. 본존불을 직접 볼 수 있었지만 촬영은 금지되어있었다. 동해가 멀리 펼쳐져 있었다. 한여름임에도 더위를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선선한 기운만이 가득했다. 무릎이 좋지 않아 걷는데 불편함이 컸을 텐데 모친은 기꺼이 그 어려운 발걸음을 씩씩하게 내디뎠다. 다시 그곳을 나와서는 기린사라 해서 지척거리에 있는 사찰을 한군데 더 가보기로 했다. 삼천불이 모셔져 있다고 했다. 인적이 드물 만큼 그렇게 잘 알려진 사찰은 아닌 듯했다. 사찰의 마당에는 화분에 심어져 있는 연꽃이 만개되어져 있었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백일홍도 만개한 상태로 그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었다. 공양할 때가 되어 식사를 할 수도 있었는데 사양하고 감포항으로 내달렸다. 본래 어제 저녁때 감포항을 가자는 얘기도 있었는데 가는 길이 급하다고 해서 다르게 먹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큰 항구는 아닌 듯 했다. 조그만 포구였고 조그만 고깃배들이 해안가에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를 주차해 두고 횟집에 들어갔다. 농어회를 시켜서 먹었다. 제대로 바다를 보면서 맛깔스러운 활어회를 즐겼다. 집사람과 부친이 반주를 한잔씩 했다. 식사가 끝나고 차를 한잔 마셨다. 그리고는 신경주역으로 방향을 잡았다. 본래 예정했던 시간에는 당도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멀리 온 상황이었다. 결국은 차표의 시간을 변경해 놓고 느긋해질 수 있었다. 가는 길이 초행이어서 여러 가지로 이리 저리 헤매는 일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신경주역에 도착해서 매표를 하고 개찰구로 부모님을 배웅했다. 한 해 한 해 늙어가는 부모님을 뵐 때마다 안타까움이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뵐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평안하게 잘 계시고 지내시기를 기원했다. 이제는 노후를 편안하고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이 가장 큰 복락이라 여겨진다. 자식들에 대한 걱정 염려는 다 내려놓고 안온함을 느끼시길 기원해본다. 불국사에서의 하룻밤 또한 오랫동안 멋진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간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