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을 다녀오며
조문을 다녀오며
요즘은 부고도 보통의 전화나 기타방법이 아니라 SNS나 카카오톡 등으로 통용되는 시대가 되었다. 목요일에 밴드통신문에 친구 부모님의 부고가 통보되었다. 장례식장은 부산이고 장지는 공원묘지이며 발인은 토요일이니 금요일밖에 시간이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조문을 가느냐 아니면 그냥 송금만 할 것인 가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가야하는 것으로 작심을 했다. 여러 친구들에게 알아보니 직접 조문을 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했다. K군이 광명에서 2시 15분 출발하는 KTX를 탄다는 것이었다. 일단은 휴가를 내야했다. 반휴를 내는 것으로 해서 보고를 하고 통지를 했다. 열차표를 예매를 한 것은 오후 2시30분발이었다. 최대한 빨리 역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알만한 선배들로부터의 조의금 부탁도 많았다. 처음에는 K와 부산역에서 만나서 같이 문상을 가려 했는데 역에 제법 일찍 도착이 되는 바람에 기다리려면 족히 1시간은 더 소요가 될 듯했다. 결국 각자 조문을 하는 것으로 했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오후4시 10분가량이 되었다. 열차를 타고 가는 시간 내내 조의금을 부탁하는 연락이나 문자 등으로 소비했다. 금요일 오후임에도 열차 내 좌석은 여러 군데가 비어 있었다. 좌석이 열차진행방향과 역방향이어서 요금도 할인이 되는 것 같았다. 외국인인 듯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본래 들고 다니는 가방과 책을 좀 넣은 종이가방을 또 하나들고 탔다. 차는 집사람에게 인계를 하고 왔다. 내일 아들을 인천공항에 데려다주어야 했기 때문에 외부에 차량을 두는 것도 안심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통신의 발달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부분도 있었다. 영국에 있는 선배와도 연락이 닿았고 브라질 있는 친구에게서도 조의를 표하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 세계가 한 몸인 듯했다. 역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갔다. 표를 끊고 지하철을 타고 남포역까지 갔다. 그리고 부산영도다리 방향으로 나가서 영도 정요양병원을 가자고 했다. 다리를 건너고 5분 만에 도착이 되었다. 요양병원이라 해서 협소할 듯했는데 규모가 꽤 컸다. 일단 편의점에 들러 현금을 더 찾았다. 결국 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종이가방에 문제가 생겼다. 줄이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장례식장은 특실로 잡혀져 있었고 널찍해서 시원해 보였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렇게 많은 문상객이 있지는 않았다. 조문을 하고 준비된 자리로 안내되었다. 형제들이 많아 무척이나 상주 등이 많았다. 조화도 엄청났다. 부지기수라는 말이 실감될 정도였다. 얼마나 많았는지 리본만 부쳐놓은 것도 다 못 부칠 정도로 빽빽이 걸려 있는 듯 여겨졌다. 얼마 전에 위독하다고 해서 부산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부고를 듣게 된 것이다. 고인은 89세로 거의 지병 없이 건강하게 사시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호상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요양원에 2달 정도 있었고 요양병원에도 한 달 정도 지내셨다고 한다. 조금 앉아 있으니 곧 친구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J군이 왔다. 해운업에 종사를 하다 이제는 개인적으로 사무실을 차려 업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 K군이 왔다. 중간쯤의 자리에 있다가 자리를 구석지로 옮겼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근황에 대해 얘기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7시쯤에는 저녁식사를 하고 환담을 했다. 몇몇 친구들은 전날 문상을 하고 갔다고 했다. 9시 가량까지 앉아 있었던 듯했다.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일부 친구들은 바로 상경한다고 부산역으로 가기도 했다. 문상을 마치고 5명이 같이 나왔다. 영도에 유명한 꼼장어집으로 갔다. 30년의 연륜을 자랑한다고 했다. 처음에 나온 음식은 양념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나왔다. 다음은 양념된 것이 나왔다. 자갈치 바닷가와는 또 다른 정취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김 상무 차량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논란도 있었지만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되고 실질적인 것이 문제지 형식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얘기가 있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산책하시면서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다고 했다. 규섭이네 아이들은 이제 대학 졸업반이라고 했다. 이제는 다들 나이도 어느 정도 들어 장년의 연륜이 느껴질 정도였다. 회합을 마치고 다들 김 상무차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부모님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상경을 해야 했다. 마침 큰아들이 영국으로 연수를 내일 떠나는 날이라 오늘밖에 아들과 같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오래 전에도 상가를 가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는 밤을 꼬박 새고 아침비행기로 상경하기도 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가는 KTX는 9시 50분발로 끊었다. 문제는 휴대폰의 배터리였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어느 정도 충전을 하기는 했는데 소모가 다 되었다. 한 시간 가량을 그냥 보냈는데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승무원에게 문의를 해서 충전기의 위치를 확인했다. 옆 좌석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충전기가 있는 통로로 갔다. 비용을 지불하고 충전을 했다. 30분정도 소요가 되었다. 요즘은 휴대폰이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으면 한시라도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는 시대가 된 듯하다. 친구들의 부고가 부쩍 늘어나고 있고 경조사도 끊임없이 발생되고 있다. 나이가 들었다는 징표일 것이다. 고인이 되신 분은 큰 질병 없이 돌아가셨다고 하니 복도 많이 받았고 행복하게 살다 간 것으로 보였다. 친구가 일곱 번째 자녀라고 하니 참으로 다복했을 것 같았다. 마침 둘째 손자가 미국에서 돌아와 있어 장례일을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했다. 큰 손자내외는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어 상가에 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회포도 풀고 정겨운 대화도 많이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이제는 친구들도 자식들을 시집장가 보낼 때가 된 모양이었다. 경조사가 있을 때나 한 번씩 친구들을 만나는 기회로 작용이 될 것 같다. 모든 친구들이 다 평안하고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고 대비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