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한형 2023. 4. 26.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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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

 

 

다른 이들은 아주 자신의 할 바를 찾아서 그런대로 잘 파헤쳐나가는 듯한데 나는 무엇을 했을까. 커다랗게 솟아오르는 달은 그의 실체만으로도 산을 집어삼킬 듯 붉게 타오르는 변함없는 영속을 계속하고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을 땐 인간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강렬함이 있었다. 지금은 봄이 눈앞에 왔고 아주 활기차게 바쁘게 흘려보내는 시간 가운데 자신을 잃어버릴만큼 분주하게 자신에 집착하는 노력을 보일 때다. 그렇게 오랫동안 잠겨 있는 물이 봇물에서 물이 터져 나오듯 힘차게 굉장한 굉음을 내뿜으며 작렬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얼마만큼 많이 그렇게 물이 많이 모였으며 응어리져 왔는가. 숱한 세월속에서 한 인간이 점하는 위치란 세상 모든 이에게 비견할만한 중요성을 지닐 수도 있으나 그것은 범상한 인간의 일이 아니라고 팽개쳐 둘 수만 있으리라. 쉽게 둥글게 아무 거리낌없이 졸렬하게 한 평생 생을 영위하려는 이를 친구로서도 어찌할 수 없을만큼 그이에게가 아닌 본인에게로의 한탄과 우둔과 잘못이 되돌아 가슴에 맺힌다. 어떤 뚜렷한 실체나 확신없이 어영부영 되는대로 포부이상 환상 몽상 그런 뭉뚱그려짐 속에 자신을 내 맞기는 이가 뭘 그렇게 내세울만 한 것이 있겠는가.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고 신의 산제물로 화해 버렸던 황소만큼이나 특출하고 소신공양하여 자신을 불사를 수 있는 용기도 믿음도 없으면서 무엇을 그렇게 큰소리치고 내세우려 하는가. 항상 나르시즘에 빠져 자기 만족과 자아도취에 그 희열 속을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행에 만연된 소인에 다를 바가 없는 주제에 말이다. 꿈이 있고 이상이 있고 포부가 있음에 오늘의 그 추하고 취생몽사하는 삶에도 가치나 의미를 안겨준단 말이냐 어림없으리라. 먼훗날을 기약하고 그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그에 대한 접근시스템이나 방법을 갖고 끝없는 정진 가운데 자아를 구체화시켜가고 객관화하여 보편화 하는 것에 힘써야 하리라. 수많은 날은 수많은 고통과 노력 수고를 제외시켜버린다면 쓰레기 통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 외에는 쓸모가 없으리라. 어떤이는 그렇게 열렬히 주장한다. 과정이라고 그속에 모든 의미와 진실이 담겨있으리라. 그것은 일반적으로 성취되고 올바른 목표에의 달성에서 진가가 빛이 있으리라. 많은 이는 과정 가운데서 그런 것을 찾지 못하고 이탈하고 방황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리라. 과정 가운데 관조하고 절망하고 천길 낭뜨러지로 떨어진 이는 어떻게 그 속에서 찾을 수 있으리오. 이건 패배자의 낙오자의 변명이요. 궤변 넋두리에 불과하기도 하다. 그것보다 더 큰 것에 진실이 있고 가치를 지니고 있으리라.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되고 결론지워질 수 없는 많은 복합적 종합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사이리라. 패배자라고 여져긴 않으리. 아즈 괴로운 부적응 상태에서 많은 욕구좌절이 발생했다. 그 속에서 패배를 믿으면서도 불길 속에 뛰어드는 하루살이처럼 처참하고 비참하게 모험을 하고 도박을 하는 가운데 불가사이한 연극은 진행되고 막을 거두리라. 몇몇의 그것을 기억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가 받은 은혜로움에 감사함에 의해 어쩌면 자아를 위해 봉사해야하고 이바지 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주의 철리요 철칙이고 로고스요 아르케요 근원 그것이 바로 신 그자체일지도 모른다. 궁극에 있어서의 본질이란 대체로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우린 항상 그것에 내표된 의미에서의 집착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갈등생기게 이끌어 가서 스스로의 올가미 순환에 메여지게 되는지도 알 수 없다. 굴레란 숙명이요 운명이요 하나의 카테고리 속에 넣어진 범위내의 물체 그것이리라. 그것을 떠나 가장 자유분망하고 완전한 자유 완벽한 쾌락 최대의 희열 극치 그것을 넘은 무념무상이 공 혹은 천당 극락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무정부 무질서 무공의 상태나 경지에서의 도 그것은 수천년동안 우리가 알고자 했고 떠득하고자 했던 바다. 인간의 얽메임 즉 굴레를 떠난 무한성의 인간은 해탈 열반이 있고 구원이 있고 인연이 있으리라. 그것은 완전한 로고스의 진수 그것 자체일 것이다. 결코 불변하는 것 속에서 우린 우리의 유한성 불가능의 각 그 속을 캐고나와 미망을 헤치고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리라. 본래 인간이 가진 운명이라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숙명으로 지워진 굴레라는 틀을 벗어나는 것은 인간의 본령을 벗어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상 인간이 지닌 속성의 틀을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이 가진 굴레를 벗어난다는 것은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고 인간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속성속에서 운명이 지워진 무게대로 그것을 짊어지고 생을 구가하고 개척해 나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을까 여겨지기도 한다.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이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대도의 길을 걷고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그런 상황에 이르지 못한다면 결국 보통의 인간이 겪는 그런 굴레 속에서의 삶에 충실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여겨지기도 한다. 운명의 베틀이 짜는 대로 인생이 굴러갈 수밖에 없다면 인간의 선택의 영역은 결국 그렇게 큰 범주를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자가의 숙명을 만들어가고 추구해 갈 수 있을 것인가는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평범한 인간이 그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해방감을 맛보고 제대로의 궁극의 길을 갈 수 있게 되기까지는 보통의 노력과 각고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정해진 굴레속에서 순종하며 감내하며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한계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