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한형 2023. 4. 2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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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나는 H교수와 함께 교육과정 운영상의 필요성 때문에 속리산을 답사하러 갔다. 1120분경에 출발했다. 교육원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80키로미터 남짓되었다. 한시간 15분이 소요된다고 계기판은 알려주고 있었다. 교육생들과 현장교육을 다녀오기에는 다소 부담이 되는 거리였다. 날씨는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중추절을 지난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기에 관광지이지만 다소 한가하리라 기대하고 출발한 것이었다.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상태였기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길을 나선 것이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곳곳이 대추 과수원이었다. 수확기가 임박해 오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대추나무에는 열매가 알차게 주렁주렁 열렸다. 노지재배를 하는 곳도 대부분었지만 일부는 비가림 시설을 해 놓은 곳도 있었다. 속리산 입구에 도착해서 일단 식당을 찾아서 들어갔다. 미리 수소문을 해둔 상태였기에 쉽게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K라는 음식점이었다. 대부분 고만고만했고 메뉴의 종류도 대동소이했다. 능이버섯전골을 시켰다. 식당 내부는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져 있었고 일반 손님은 전무했다. 밑반찬이 십여개 나왔다. 아주 정갈한 모습이었다. 식당의 규모로 봐서는 교육생들을 충분히 수용할만한 시설이었다. 전골은 이미 주방에서 한번 끓여서 나왔기에 그냥 먹어도 되었으나 다시한번 끓여서 먹었다. 순전한 능이버섯전골이엇다. 고소하고 담백한 국물맛이 일품이었다. 이미 식사시간을 지난 시간이었기에 시장기가 동한 상태였기에 금새 밥한공기를 비웠다. 개운한 느낌을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식당들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명함도 받고 메뉴도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필요한 부분이나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는 질의도 했다. 일차 식당방문을 마친 우리는 본격적인 속리산 탐방에 나섰다. 입구 인근에는 조각공원이 있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한켠에는 아름들이 소나무들이 즐비했다. 일단 매표소까지 10여분쯤 걸어서 올라갔다. 차는 식당앞에 주차해 두었다. 곧 매표소가 나왔다. 일반인은 입장료가 4천원이었다. 단체는 300원이 할인되었다. 단체의 기준은 30명이었다. 매표를 해서 표를 주고 입구를 통과했다. 수목이 우거진 길은 절로 깊은 숲속에 들어온 느낌을 주었다. 매표소에서 복천암까지 4.2키로미터였다. 길에 이름이 있었다. 세조길이라고 했다. 지난 826일에 엄청난 예산을 들여 깨끗하게 정비가 된 길이었다. 피부병을 앓았던 세조는 요양을 위해 법주사 복천암을 찾았다. 그곳에는 왕의 스승 사미스님이 수도하고 있었다. 중간에 목욕소가 있었고 편재호수도 있었다. 상당히 큰 호수였고 물도 깨끗하고 맑았다. 세심정으로 이어지는 길은 평평했다. 그러나 세심정에서 복천암까지는 제법 경사가 있었고 가팔랐다. 두가지 종류의 길이 있었다. 보행로가 있었고 차가 다니는 길이 있었다. 보행로에는 요즘 새롭게 유행하는 산속에 까는 가마니 카페트모양의 길이 죽 이어지고 있었다. 일부는 나무로 이어져 있기도 했다. 일단 차도로 올라갔고 내려오는 길은 보행로로 내려오기로 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법주사 등 볼거리도 모조리 내려오면서 살펴보기로했다. H교수는 특이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진도에서 태어나서 고등교육까지 그곳에서 받았다. 그리고 대학은 대구에 있는 학교로 갔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같은 학과에 다녔던 여학생이 한명 있었다. 몇 번 만나기는 했지만 낯설었던 친구였다. 한창 군생활을 하던 중에 여학생이 면회를 왔다. 주소나 연락처도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H교수의 고향인 진도까지 가서 그곳에서 군대의 주소를 확인한 후 면회를 온 것이었다. 지극정성이었다. 대단한 열의였고 집념을 보여주었다. 대학시절 둘은 캠퍼스 커플이었다. 두사람은 이곳 속리산을 등반했다. 입구에서부터 걷기시작해서 최고봉인 문장대까지 올랐던 것이다. 무척이나 힘들었고 어려운 산행이었던 것만 기억에 남았다. 학교를 졸업후 두사람은 각각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후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신부댁 부모님의 반대가 있기도 했지만 신부의 집요하고 끈질긴 설득에 무릎을 꿇었다. 부부가 된 두사람은 가정을 꾸렸고 알콩달콩 재미있게 생활해 나갔다. 딸 둘과 아들하나를 두었다. 이제는 큰딸은 대학 졸업반이 되었다. 둘째딸도 3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모두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큰딸은 원룸을 얻어서 생활하고 있고 작은딸은 기숙사에 있었다. 큰딸의 용돈은 6십만원이고 작은딸은 5십만원이다. 1년에 천만원씩 적자가 나고 있는 상황이란다. 엄마가 일년에 한번정도 서울에 상경해서 집들을 둘러보고 온다. 두자녀와 그렇게 약정을 한단다. 취직을 하면 급여의 30%를 내놓기로 했다. 결혼 후에는 20%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공무원 시험을 1년간 준비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방향을 전환해서 공기업쪽의 취업으로 매진하고 있다. 간간히 사진을 찍었다. 일단은 좀 무리였지만 복천암까지 갔다. 조그만 암자였다. 한켠에는 스님들이 가꿔놓은 작물들이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고추도 붉게 물들고 있었고 가지도 탐스럽게 달려있었다. 화단에는 코스모스가 가을에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지역분인 듯한 이가 사진을 찍으려면 가옥뒤쪽으로 올라가서 찍으면 한눈에 다 복천암을 볼 수 있다고 조언해 주었다. 정말 그곳으로 올라가니 전망이 훤했다. 친구인 듯한 분이 커피를 가져와 같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능이버섯과 송이버섯의 시세를 알아보고 있었다. 송이는 키로그램당 30만원이라고 했다. 능이는 12만원이라 했다. 이제는 복천암에서 내려올 일만 남았다. 일단 시간을 체크하고 법주사로 내려왔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련회를 왔다고 했는데 엄청난 인파들이 법주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곳에는 엄청나게 큰 입석불상이 야외에 서 있었다. 그리고 팔상전이 있었고 그앞에는 쌍사자석등이 있었다. 국보5호라 했다. 넓은 절 위쪽으로는 템플스테이를 위한 별도의 공간도 새롭게 단장이 되어져 있었다. 그곳을 빠져나와 입구까지 걸었다. 이제는 제법 발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입구쪽의 조각공원을 둘러볼 차례였다. 일부는 관리가 되지 않았는지 거미줄이 쳐져있기도 했다. 하루의 속리산 답사가 마무리되었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때 지어진 절이라고 했다. 보은의 명찰로 이름이 높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마지막은 차를 타고 내려오다 만났다. 그것은 정이품송이었다. 아주 멋진 자태를 뽐냈었는데 이제는 그 멋진 모습의 반쪽만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부인송도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더 내려가야 하고 8키로미터 쯤 가야 한다고 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맑은 가을 날에 정말 좋은 답사였고 산책이었다. 다소 힘든 여정이었지만 충분히 묵은 때를 다 날려버리는 좋은 휠링을 할 수 있는 멋진 기회였다. 모두가 속리산을 다녀가면서 새로운 활력을 찾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기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