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 새해맞이 2
무술년 새해맞이 2
그 붉은 위로 훌훌 움직여 도는데, 처음 났던 붉은 기운이 백지(白紙) 반 장 너비만큼 반듯이 비치며, 밤 같던 기운이 해 되어 차차 커 가며, 큰 쟁반만 하여 불긋불긋 번듯번듯 뛰놀며, 적색(赤色)이 온 바다에 끼치며, 먼저 붉은 기운이 차차 없어지며,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주 하며, 항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로 뛰놀며, 황홀(恍惚)히 번득여 두 눈이 어질하며, 붉은 기운이 명랑하여 첫 홍색을 헤치고, 천중(天中)에 쟁반 같은 것이 수레바퀴 같아서 물속으로서 치밀어 받치듯이 올라붙으며, 항, 독 같은 기운이 없어지고, 처음 붉어 겉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 혀처럼 드리워 물속에 풍덩 빠지는 듯싶더라. 일색(日色)이 조요(照耀)하며 물결에 붉은 기운이 차차 없어지며, 일광(日光)이 청랑(晴朗)하니, 만고천하(萬古天下)에 그런 장관은 견줄 데 없을 듯하더라. -동명일기 해돋이 장면 중-
위의 글은 동해 일출하면 생각나는 동명일기의 일부분을 옮겨놓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를 지은이는 의령 남씨라고 한다. 남편의 부임지로 이동하는 길에 보게 되는 여러 장면들을 글로 옮겨 놓은 것인데 대단한 필력을 자랑하는 듯하다. 역동적으로 일출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압권이다. 폐일언하고 새해맞이로 돌아가 환선굴의 관광을 마친 후 향한 곳은 새천년횟집이라는 곳이었다. 일단 숙소로 가서 정비를 하고 조금 휴식을 취한 후 차를 몰고 그곳으로 갔다. 거의 지척인 거리라 금방 도착이 되었다. 바닷가가 나왔지만 야밤이라 풍광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거의 실루엣 수준의 파도만 볼 수 있을 뿐이었고 어슴푸레하게 보였고 소리도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우리처럼 새해맞이를 하러온 탓인지 손님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곳곳이 다 횟집이었고 네온사인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었고 휘황찬란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모둠회 소자를 시켰다. 집사람과의 실랑이 끝에 술은 소주 한 병 반으로 합의가 되었다. 반병은 숙소에 가서 먹을 집사람의 몫이었다. 먼저 밑반찬부터 나왔다. 싱싱한 해물과 멍게 그리고 오징어회도 맛을 볼 수 있을 만큼 나왔다. 건배를 하며 가는 해를 아쉬워했고 오는 해를 반겼다. 금방 시간이 흘렀다. 31년 3개월 총 개월 수로 375개월의 직장생활이 오늘로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회한도 많았고 아쉬움도 남았지만 훌훌 털어낼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매운탕에 식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닷가 해변을 좀 걸은 후 귀로에 올랐다. 숙소에 와서 집사람이 술을 좀 마셨다. 나는 곧바로 곯아떨어졌는데 집사람은 망상에 휩싸여 새벽녘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본래의 속설에 섣달그믐날 밤은 하얗게 새야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눈썹이 하얗게 변색이 된다고 했다.
아무튼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6시쯤부터 채비를 해서 호텔을 나왔다. 체크아웃을 하고 차를 타고 보니 빠뜨리고 나온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찾으러 갈만큼 중요한 것들은 아니어서 그냥 버린 셈 쳤다. 삼척항의 바닷가는 해맞이객들로 인해 혼잡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나와서 차량을 안내하고 있었고 차량들은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리도 이리저리 헤매다가 겨우 한자리를 차지해서 차를 주차해 두고 백사장으로 나섰다.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시간이 남았지만 모두들 마음이 급했는지 삼삼오오 백사장으로 모여들고 있는 중이었다. 한켠에서는 계속적으로 소망 등이 바다를 향해 떠오르고 있었다. 두 가지 색상이었다. 하나는 붉은 등이었고 또 하나는 녹색등이었다. 종이모양으로 종모양을 거꾸로 해 놓은 형상이고 밑에 불을 붙일 수 있도록 되어져 있었다. 철사로 되어졌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 그것이 연기를 발산하고 그 연기의 힘에 의해 소망들이 하늘높이 날도록 되어져 있었다. 하나둘 나르기 시작한 소망 등이 나중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천으로 날았다. 도저히 바닷가의 찬바람을 견딜 수 없어 한편에서는 화톳불을 피우고 있기도 했다. 소망 등의 가격은 3천원이었다. 어떤 이들은 소망 등을 제대로 띄우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이것이 방향을 잘 잡아 물위로 떠올라야 하는데 어떤 것은 옆으로 나둥그러져 그냥 바다 속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담요를 가지고 나오기도 했다. 모두들 간절한 마음으로 한해를 비추는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추위를 피해 유리문으로 된 건물에 잠시 바람을 피했다가 일출예정시간 7시40분의 5분전쯤에야 그곳을 빠져나오기도 했다. 계속적으로 여명에서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해가 뜨는 순간에는 동영상으로 그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금방 일출장면은 끝나고 말았다. 조금씩 수평선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해는 순식간에 그 자태를 드러냈다. 모두들 간절한 바람으로 기도를 올렸고 새해 소망을 빌었다. 해맞이행사를 다녀봤지만 이렇듯 제대로 해맞이행사를 해본적도 별로 없었던 듯했다. 우리는 매서운 바람을 피해 곧장 차로 가서 귀로에 올랐다. 집사람은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곯아떨어졌다. 무술년 새해맞이가 마무리되었다. 올 한 해의 새해는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로 시작이 된 셈이다. 일단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얼마만큼 휴지기를 가진 뒤 새롭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하리라. 3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기분과 각오를 가지고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새롭게 한가정의 가장으로 출발하는 큰아들도 올해는 무척이나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아들도 3월에 1차 시험이 있을 것이고 7월에 2차시험도 있게 된다. 집사람도 올해가 장학관으로서 제대로 직장생활을 하는 한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가족이 올 한해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가길 간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