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상견례
지난 주말이었다. 아들의 상견례가 있었다. 토요일 오후 12시부터 예약을 해 두었다. 수서에 있는 필경제라는 곳이었다. 모든 가족이 채비를 해서 10시35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한 시간쯤이 소요되었다. 당초 예정은 세종문화회관 등도 고려했는데 촛불집회 등으로 인해 그곳부근이나 근처는 모두 배제하기로 했다. 어느 날 집사람이 수소문해서 알아온 곳이 필경제라는 곳이었다. 일주일 전에 사전에 답사를 위해 방문을 했는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고 안내원의 말로는 답사자체도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주차할 곳을 찾기도 어려울 지경으로 혼잡이 극에 달했다. 필경제에 도착해서 들어가려고 보니 마침 아들이 사돈네를 모시고 막 출입문을 들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마당에서 서로 인사를 하고 예약된 곳으로 들어갔다. 의자가 놓여 있었고 정갈하게 기본적인 세팅이 되어져 있었다. 일단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좌정했다. 아들이 우리 쪽 가족을 소개했고 며느리가 자기 쪽 가족들을 간단히 소개를 했다. 소개를 할 때마다 당사자들이 일어나 인사를 하고 앉았다. 8명이 총 참석인원이었다. 우리 쪽에는 작은 아들이 추가되었고 며느리네는 오빠가 추가되었다. 여러 가지로 섭섭함이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29년이나 고이 길러온 딸을 내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으로 보였고 무척이나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예약된 시간보다 이른 시간이어서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1년여를 교제한 끝에 이제야 그 결실을 보게 된 순간이었다. 나와 집사람의 명함을 건넸다. 농협구미교육원 원장의 명함과 집사람의 직책인 경기고등학교 교감 명함이었다. 회갑이라는 사돈네는 아직도 정정해 보였고 건강해 보였으며 온후한 인상이었다. 사부인은 단아한 모습이셨고 올곧아 보이는 모습이 곱게 나이든 태가 났다. 거의 대화는 사부인과 집사람이 했다. 오랫동안 준비를 했고 학수고대했던 날이었는데 무난하게 상견례가 진행되었다. 본래 당초의 계획은 우리 쪽에서 전주로 가는 계획을 잡았었는데 굳이 또 오겠다고 해서 이렇게 된 셈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전주로의 초대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셨다. 신랑과 신부가 다 알아서 결혼날짜도 잡았고 예식장도 예약을 해 놓은 터여서 그렇게 진행되는 대로 쫓아가면 될 것으로 보였다. 술로 준비한 와인은 며느리가 준비했던 것이 한 병이었고 또 다른 한 병은 내가 따로 구한 것이었다. 이태리산이었고 상당히 고급 와인에 속하는 것으로 안토노리에서 생산된 구아도 알 타소 볼게리 슈페리오레 2012년 이었다. 제대로 맛을 보려면 뚜껑을 따고 한 시간쯤 지난 후에 맛을 봐야 한다고 했다. 건배만 간단히 했다. 술을 마실 수 있는 이가 거의 없었다. 반잔쯤 드신 사돈네는 벌써 주기가 올라 얼굴에 표시가 확연했다. 집사람도 운전을 해야 했기에 대신 내가 마셨다. 아들도 운전을 해야 했기에 내가 마실 수밖에 없었다. 맨 먼저 나온 음식은 김치였다. 물김치류였는데 그것을 접시에 옮겨 담아서 먹도록 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문어였다. 아들이 인사를 갔을 때 음식을 잘 해주셔서 잘 먹고 온 얘기 등이 화제에 올랐다. 며칠 후면 발렌타인데이여서 신랑신부가 각각 가족들에게 초콜릿을 선물로 준비해서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해 늦은 가을쯤에 아들이 먼저 전주로 가서 부모님을 뵙고 결혼 승낙을 받았다. 그 후 며느리가 아들과 함께 우리 쪽으로 와서 식사를 하면서 인사를 했었다. 이제는 예물을 맞추고 웨딩 촬영을 5월에 하게 되고 사돈네간에 한복을 맞추는 수순을 밟아가야 하고 청첩장을 돌리고 예식을 치르면 되는 일정이었다. 집이나 신혼살림 등은 신랑신부가 협의해서 장만하면 될 것으로 보였다. 신혼여행에 대한 부분은 신랑이 예약하고 진행해서 가이드 역할을 하면 될 것으로 여겨졌다. 영국에서 7개월가량 어학연수를 했고 유럽전역을 순회한 터여서 특별히 문제될 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동유럽 쪽인 크로아티아 쪽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음식은 계속해서 나왔고 정갈해 보였고 담백한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식사가 끝나고서는 바깥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안에서도 간단히 종사원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찍었다. 앉은 자세였다. 결혼식 날짜도 미리 다 정해져 있었다. 9월 9일 오후 2시 30분이었다. 강남의 예식장으로 예약까지 잡아놓은 상황이었다. 아들과 며느리는 그저 싱글벙글 이었고 정말 빛나 보였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고 기쁨 가득한 순간으로 여겨지는 시간들이었다. 아들은 이제 농협손보에 입사한지 1년여가 지났고 며느리는 일산병원에 입사한지 5년 정도를 보낸 베테랑 직장인이었다. 아들은 사돈네를 기차역까지 모셔다 드렸고 우리는 집사람이 운전해서 귀가했다. 작은 아들은 곧바로 학원으로 갔다. 한시간 여의 상견례였는데 무척이나 어려운 자리로 여겨졌고 긴장이 많이 되었는데 그런대로 무난하게 회합을 한 것으로 느껴졌다. 전주로 가는 KTX에서 사부인이 집사람에게 보내온 카톡이다. “오늘 점심 맛있게 먹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하고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답장을 보낸 집사람의 문자는 이랬다. “전주로 가시는 길이신가요. 보름이 부모님을 뵙고 보니 이쁜 보름이가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것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편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일생일대의 대사라고 일컬어지는 결혼을 위한 통관의례요 절차로 되어있는 상견례였다. 당사자보다 부모들의 마음이 더 긴장되고 다독여지는 것은 당연지사리라. 예비신혼부부가 좋은 인연으로 만나 잘 살아가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