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역사1
바둑의 역사 (1) 바둑의 재미/이재형
신선놀음 바둑
모두들 잘 알고 있는 옛날이야기로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晋)에 왕질(王質)이라는 나무꾼이 살았다. 석보산(石室山)이라는 깊은 산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동자 둘이서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바둑을 구경하는 왕질에게 동자 하나가 대추를 주길래 , 그것을 먹고 나니 배고픔이 사라졌다. 한참 지나 동자가 집에 갈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왕질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집에 가려고 도끼를 주워 들었다. 그러나 도낏자루(柯)는 이미 썩어 문드르져(欄) 있었다. 두 동자는 아마 신선이었을 것이다. 왕질이 산에서 내려오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바둑 구경을 하는 사이 이미 수십 년, 아니면 몇백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던 것이다.
바둑의 중독성, 몰입성을 잘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신선놀음이 바로 바둑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바둑을 난가(欄柯), 즉 “도낏자루 썩는 놀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옆길로 빠지자. 그러면 난가지국(欄柯之局)에서 두 신선은 어떤 내용의 바둑을 두었을까? 난가지국의 기보(棋譜)는 중국의 고서(古書)에 기록되어 있다. 또 그 기보는 버전을 달리하여 중국, 우리나라 등에 많이 퍼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여 년 전 바둑잡지인 『월간바둑』誌에서 난가지국을 발견하였다고 하여 그 기보를 소개한 바 있다. 우리나라 어느 고서에서 난가지국이라고 소개된 것을 월간바둑에서 발굴한 것인데, 약 100 여수에 걸친 수순이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그 옛날 누군가 심심풀이로 만든 위작(僞作)이겠지. 바둑 내용을 보니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5-6급 정도의 실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기보를 보고 처음에는 신선들의 바둑실력이 이 정도밖에 안되냐고 실망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다. 신선이라고 해서 반드시 바둑을 잘 두라는 법이 없다. 그리고 나무꾼이 세상사를 잊어버릴 정도로 바둑에 몰입하였다면 필시 나무꾼이 이해할 수 있는 수들을 두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선들은 아마 나무꾼보다 조금 센 실력이라고 추리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신선들이 현재의 프로기사 수준의 바둑을 두었다면, 나무꾼은 그 바둑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고, 바둑에 정신이 팔려 세상일을 모두 잊는 불상사도 없었을 것이다.
신선의 바둑과 나무꾼 왕질
각설하고,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다는 것과 유사한 이야기는 버전을 달리하여 중국 고서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이야기는 비단 중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서양에는 립 반 윙클(Rip Van Winkle) 이야기가 있다. 립 반 윙클이라는 사냥꾼이 산에 사냥을 하러 갔다가 우연히 놀이를 즐기는 남녀를 만났다. 이들과 함께 술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친구들은 노인이 되어있고, 잔소리쟁이 마누라는 늙은 할멈이 되어 있었다. 립 반 윙클이 즐긴 오락은 지금의 볼링과 유사한 게임이었다고 한다. 또 일본에는 우라시마 타로(浦島太郎) 이야기가 있다. 우라시마 타로라는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갔다가 파도를 만나 용궁에 가서 재미있게 놀았다. 집에 돌아오니 벌써 몇십 년이 흘러버렸다. 우리시마가 즐긴 것은 음주가무(飮酒歌舞)였다.
립 반 윙클과 우라시마 타로 이야기
세상일을 모두 잊게 만드는 바둑이라는 신선놀음은 도대체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그리고 이 신선놀음(欄柯)은 어떻게 지금까지 계승되어 왔을까? 모든 문화가 그렇듯이 하나의 문화는 사회환경에 적응해 나가면서 꾸준히 변형, 지속, 발전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동기(incentive)가 강할수록 그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바둑이라는 기예(技藝)는 중국, 우리나라, 일본에서 발전되어 왔다. 티베트에도 이미 까마득한 옛날에 바둑이 전파되었고, 또 바둑인구도 꽤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대세는 한․중․일 3국이다. 기예를 발전시키는 유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경제적 동기(incentive)이다. 즉, 한 기예를 연마하면 풍족한 수입을 얻어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회환경이 형성되면 그 기예를 연마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고, 또 그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경제적 동기뿐만 아니라 권력, 명예욕 등도 큰 동기가 될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경제적 동기와 일치다면 그 기예를 발전시키는 더욱 강한 유인이 될 것이다.
바둑은 중국, 한국, 일본에서 각각 달리 발전해왔다. 국가별로 다를 뿐만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시대별로도 달랐다. 가장 큰 이유는 사회․경제적 환경, 정치적 환경의 차이와 이로 인한 적응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몇 번에 나누어 바둑 4000년의 역사를 심심풀이 삼아, 재미 위주로 이야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