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수필 작법, 글쓰기 , 기타 ] 비평 수필이론 등

수필문학에서의 시적 이미지 접목의 문제

자한형 2023. 10. 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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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문학에서의 시적 이미지 접목의 문제 / 한상렬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이다. 그러나 수필가는 언어의 연금술사이면서 동시에 의미에 연금술사다. 이는 수필이 산문적 논리성과 시적언어의 통합을 의미한다. 그만큼 수필문학은 언어의 미적 요소를 중시하는 장르라 하겠다. 수필은 거짓 없는 체험의 고백일수록 독자들은 이를 값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해서 수필이 체험에만 근거하여 수기처럼 쓰기만 한다면 건조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수필작품 속에 예술적인 내재 가치나 윤리적 당위성이 부족하거나 삶에 대한 재인식이 결여하다면 그만큼 감동이 따르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좋은 수필일수록 산문적 특질과 시적 이미지가 조화를 이룰 때 더욱 수필다워질 것이다. 마치 "수필은 눈 내리는 길을 가고 있는 여인이다. 발을 떼어 놓을 때마다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음미하며 그 숱한 밀어 속에서 아침 까치 소리의 의미까지도 진실로 터득하며 걷은 여인이다." 1)와 같이 수필은 논리적 문장만으로는 언어의 미적 감각을 살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수필에 시적 이미지를 조화시키는 일은 수필을 수필답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H. Read"시는 창조적 표현이고 산문은 구성적 표현이다.2) 라고 하면서 산문을 축적된 언어의 분산 활동으로 보았다. 즉 그는 산문은 기성의 언어에 의한 건축물로 산문의 경우 창조적인 작용은 평면적, 측면적이라고 하였다. 이런 기능은 시의 기능이면서, 시의 창조적 기능에 있어서는 부차적이라는 말이겠다. 결국 산문이란 의미가 중심이며, 논리적이고 이지적인 문장이라는 의미요, 객관적이며 실제적 과학정신에 입각한 문장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수필은 산문으로 씌어진 대표적 양식으로 수필 속에 운문이 삽입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산문은 수필의 용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소설이나 희곡이 의도적, 조직적인 데 반하여 수필은 사유의 제재를 그대로 표현하는 결과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조탁되지 않은 생경한 산문이라는 데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시가 압축되고 조탁된 운문으로 이루어진다면, 수필은 생활에 젖어 있는 산문으로 구성되고, 소설은 작가의 창조과정을 거쳐 나온 창조적 산문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통상 시와 수필을 대비시키거나 등식으로 놓는 문제는 장르의 성격상 무용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이 두 장르는 문학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맥을 같이 한다고 볼 때, 윤재천의 말과 같이 그 표현상의 차이와 관념화된 인식이 존재하고 있을 뿐, 그 시도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볼 수 있다.”3)고 하여, 수필은 시적이미지와 소설의 서사적 기법을 동시에 차용한다고 보고 있다. 결국 수필은 시와 소설의 중간 거리쯤에 있다고나 할까. 시가 지니고 있는 리듬과 압축, 상징과 비유를 그리고 소설이 지닌 줄거리, 구성, 설명 묘사, 사실성을 수필은 공유한다. 따라서 수필은 시의 장점과 소설의 장점을 최대한 수용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한 체험에서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담는다.” 4)고 하겠다.

이런 이유로 인해 수필에서 시를 인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문장 속에 간단한 구절 인용이거나 아예 전문을 옮겨 놓는 일이 더러 있다. 또 시인이 쓴 수필의 경우, 산문이 가진 논리성보다는 지나친 시적 정서나 분위기로 수필문학이 지닌 언어미감을 해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수필에 시적이미지를 도입하는 일은 언어의 미감이나 정서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연스런 현상이겠지만, 이는 부득이한 경우에 한한다. 때문에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지 못하거나 억지 대입 형식으로 수필에 시적이미지를 도입할 경우 오히려 작품을 해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수필과 시는 어느 장르보다 융합 조화를 이루는 장르임에는 틀림이 없다. 알베레스의 말과 같이 좋은 수필은 시적 이미지와 지성적 이미지를 겸해야 한다는 말은 문학성이 높은 수필일수록 시적 서정성이 강한 수필임을 알게 한다. 그렇다고 지나친 시적 정서나 시적이미지를 내세우면 수필로서는 오히려 생경하거나 격을 떨어뜨릴 염려가 없지 않다.

문제는 수필만큼 산문 정신에 투철한 문학 장르도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물론 소설이나 희곡도 산문으로 씌어지긴 하지만, 이들에서 사용되는 지문이나 대화가 정리되고 다듬어진 산문인 반면에, 수필은 때론 조잡한 채 표출되는 산문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또한 근대문학이 산문정신의 소산임을 생각하면 생활 그대로 창작적 의도 없이 그대로 이식된 수필이 산문으로 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5)

시의 특질은 정서와 이미지 속에 용해시키는 장르로, 정서적 감동을 통한 사상의 형상화와 운율적이고 내포적인 언어를 통한 예술미에 그 특질이 있다. 6) 그렇기에 시적인 수필을 보면 산문이기는 하지만 리듬이 있고 압축적이며 서정적이다. 윤오영의 수필 <달밤>이 보여주는 언어의 절제와 함축, 상징, 압축이 그러하며, 피천득의 수필 <오월>에서 볼 수 있는 압축적이고 시적인 운율이 그러하다. 특히 서두에서 보여주는 탁월한 은유의 구사는 수필이기보다는 시의 한 구절을 연상하게 한다. 나도향의 <그믐달>은 직유를 사용하여 시적수필의 맛을 더하기도 한다. 정목일의 수필 <달빛 고요>, <대금 산조>, <심금>도 이와 같은 계열에 든다. 이렇게 수필에서 시를 혼용하는 기교는 시적 수필의 추구와 함께 서정의 탐구라는 측면에서 한국 수필의 전통성을 확보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한국수필의 전통 맥락은 서정수필이 계승하고 있다.”7)는 말이겠다. 그러나 자칫 수필을 서정수필이 대표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가벼운 수필 쓰기로 인식한다면, 수필의 땅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더구나 새로운 패러다임에 익숙해져야 할 현대수필에서는 더욱 수필에서의 시적 이미지의 도입은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되었든 수필의 소재를 시에서 얻든 소설에서 얻든 그것은 상관할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그 정감이나 개연성이 자연스럽고 같은 산문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신선해야 할 것이요, 8) 문학이 개념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소재로 하여 사고를 발전시킨다는 관점에서 이에 충실한 문학의 일부분이 시()라고 하겠다. 9) 따라서 수필에서의 시적 이미지의 도입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작업이면서도 매우 조심스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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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종균, 교음사, <<수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조각보 짓듯이>,1984. 166

2)구인환 구창환, <<문학의 원리>>, 범문사. 1973, 239-240

3)윤재천, 수필학, 9, <<수필과 시>>, 2002, 92

4)정목일, <시적 수필의 전개와 방향>, 수필학9, 2002, 144

5)앞의 <<문학의 원리>>, 범문사. 1973, 239

6)유창근, 수필학2, <현대시의 문학적 형상화>, 1995, 27

7)앞의 정목일의 수필학, 149

8)강석호, 수필학11, <수필과 시의 접목>, 2003, 9

9)앞의 수필학9, 95

한상렬 / 수필가, 문학평론가. 현대수필창작아카데미 대표. 제물포수필문학회회장, 국제펜클럽인천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