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한형 2024. 3. 15.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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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선택

무릇 인생에는 세 가지 선택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배우자의 선택이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의 한 구절에 이런 가사가 있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기성세대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당연히 연애는 선택일 수 있으나 결혼은 필수였던 생각과 고정관념을 갖고 세상을 살아왔던 세대들이다. 당연히 자녀도 필수이고 자녀양육도 삶의 한 과정이고 업보라고 여겼다. 자신들의 삶보다 더 자식의 교육이 우선시되었고 언제나 자신의 입보다 자식의 입이 먼저였다. 자식입에 밥들어가는 것과 자신의 논에 물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만큼 기쁘고 보람된 것이 없다고 여겼던 세대였었다.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은 여자들의 칠거지악 중 하나로 꼽혔고 그것은 곧 이혼사유 내지 아내를 내칠 수 있는 근기로 작용하는 부분이었다. 어디 무자식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냐는 것이다. 요즘 회자되는 얘기로 꼰대들의 넋두리이고 하소연일 수도 있다. 예전 사람의 도리 중에는 여자에게 요구되는 삼종지도라는 것도 있었다. 퀘퀘묵은 고리짝 같은 소리라고 귀를 막을 소리 중 하나이다. 여자는 태어나서는 부모의 명을 받아야 하고 결혼해서는 남편의 뜻을 받들어야 하고 남편이 죽고 난 뒤에는 자식이나 아들을 받들어야 한다는 식이다. 요즘 MZ세대의 관점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리라. 결혼도 선택의 한 내용이고 비혼이 대세를 점하고 있고 결혼을 하더라도 자식을 낳지 않는 딩크족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조직의 논리로 또는 전체주의 논리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선택을 몰아가는 것은 어불성설인 시대가 되었다. 어떠한 논리로도 젊은 세대들의 선택과 자유를 침해해서는 되지 않고 그렇게 종용해서 들을 젊은이들도 없는 시대이다. 어느정도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많았던 시절에 결혼을 준비하려고 하던 때 선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사람에 의한 객관적 평가 또는 가치가 그 상황에서 그대로 표출되고 드러남을 절실하게 느꼈었다. 보다 나은 학벌, 재산, 결혼조건, 인맥 등 결혼을 하기 위한 제반 사항이 객관화되고 평가되는 것에서 삶을 준비하고 결혼을 실현하기까지 필요한 것에 관해 요즘 얘기로 하자면 결혼에 필요한 조건 내지 스펙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실감하게 된 셈이었다. 인물, 성격, 장래성 기타 삶에 대한 태도 등에 관한 인생관, 철학 등 모든 것이 망라된 인간에 대한 수준 평가가 이뤄지는 시기인 부분이었다. 장인어른에 의해 첫만남을 갖고 결혼을 허락받는 자리는 취업 시의 면접관과는 또 다른 긴장감이 흐르는 엄중한 순간이었던 듯하다. 어떤이는 장인어른의 제대로 된 믿음을 주기 위해 외국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는 경험담을 들어보기도 했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장인어른 등 처가 식구들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기도 했었던 예도 부지기수였다. 젊은 시절 한 때는 그런 문제와 관련해서 한참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재벌집에 팔려가는 판 검사, 또는 의사들의 정략결혼에 관해서 성토하던 이와의 격론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신분상승을 위해서는 당연히 권력가 또는 재벌가들과의 혼맥은 향후의 더 나은 삶을 보장받는 첩경이 아니겠느냐고 의견을 제시했고 그것에 반해 군의관이 주장한 바는 결혼이라는 것을 그렇게 그 어떤 출세의 방편으로 삼아서는 바람직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겠느냐고 비분강개했었던 추억이 남았다. 동창중에 그렇게 출세가도를 위해 정략결혼을 했던 이에 관해 성토한 것이었다. 나의 경우 배우자 선택은 신중하고 주도면밀하게 숙고한 끝에 선택을 했다. 내가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있는 것이라 그것이 수용되고 가납되었을 때 성사되는 부분이 배우자의 선택이다. 인생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선택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팔자까지도 바뀔 수 있는 부분이다. 부모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 예전의 상황이었다면 오늘날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축소되었고 비중도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잘 적용되는 형편이다. 과연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을만한 식견이나 인생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한 부분이 자칫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혼 초창기 찾아뵌 어느 상사님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군 자네는 처수성가한 이구먼. 자수성가를 해야 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처의 복으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란 예측이었다. 결혼 초창기 30대까지의 삶은 엄청난 어려움과 시행착오 속에서의 육아였고 직장생활 결혼 생활이었던 듯하다. 아들 둘을 키우고 양육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고 빠듯한 살림살이에 내 집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노력했고 진력했다. 40대에 접어들었을 때 쯤에 IMF 경제위기가 있었다. 빌라에서 아파트로 이주를 95년에 했었고 어느정도 생활의 안정을 찾아갔다. 2001년도 큰애가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2005년도에는 서초동으로 이주해서 아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조성해 주고자 그렇게 무리한 이사를 했다. 큰애가 2007년에 대학에 입학했고 2011년에는 내집마련이 되었다. 20대에 접어들었고 M급으로 승진했다. 아내도 2008년부터 전문직 장학사로 새로운 업무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작은아들도 대학에 입학했다. 2014년도에는 안성교육원에서 원당 농촌사랑지도자연수원으로 전보되었다. 서울에서 출퇴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2017년말에 명예퇴직을 했다. 그리고 올해가 되고 보니 퇴직 후 77년 차가 되었고 연금생활자로 접어들었다. 아내도 1년을 남기고 있는 상태이다. 퇴직 후 6년을 보냈다. 2019년에 계약직으로 1년을 중앙교육원에서 근무했다. 21년과 22년에는 서울시 50 플러스에 응모해서 어린이 캐어 일자리에서 또는 서울시 가락몰에서 연구용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배우자의 선택과 관련해 얘기를 하고자 했는데 일상적은 여러 내용이 언급되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배우자 선택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반면에 배우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욕스러운 모양이다.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잘못이 커고 나의 과오가 결국은 배우자의 질타의 대상이 된 셈이다. 배우자의 선택은 어쩌면 평생을 따라다니고 업모처럼 그렇게 옥죄어 오는 것이리라. 인생 준비기에는 부모님과의 생활이 중심이지만 결혼 후 즉 배우자의 선택 후에는 독자적인 삶의 주체자로 자기의 생을 영위해 가야 하고 그것이 생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에서의 인륜지대사가 결혼이라고 했던 얘기가 빈말이 아님을 깨우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