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탑 할머니의 뗏마배 인생
박복탑 할머니의 뗏마배 인생
얼마 전 한 다큐 프로를 보았다. 이역만리 바다의 외로운 섬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한 할머니 박복탑 할머니의 한평생이 그려지고 있었다. 서해 바다에 이역만리 떨어진 외딴섬에 살고 있는 한 할머니의 삶을 조명하고 있었다. 목포에서 98Km 남서쪽으로 떨어진 섬 대둔도 그곳에 박복탑 할머니가 산다. 대흑산도와 인근에 있는 거리에 있다. 그 머나먼 곳에 87세의 연세에 홀로 산다. 13살에 어머니를 잃었고 17살에는 아버지를 잃어 천하에 고아가 되었다. 어린 남동생들을 키우며 살았고 도목리에서 한 고개 너머 도롱이 마을로 시집을 갔다. 아들을 낳고 딸을 낳았는데 4년 만에 남편이 죽었다. 다시 도목리로 돌아와 어린 자식들을 키우며 살았다. 친정어머니가 복이 탑처럼 쌓이라는 의미로 복탑이라고 이름을 이어 주셨다. 그녀는 젊은 시절 방앗간을 운영했다. 인근에 있는 동네 사람들이 다 곡식을 찧으러 내 방앗간으로 몰려왔었다. 그녀의 삶은 기구했고 엄청났지만 그 오랜 세월을 꿋꿋하게 버텨왔고 한평생을 줄기차게 살아왔다. 오늘도 바다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엉덩이를 붙일 틈도 없이 밖으로 나갑니다. 할머니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꽃 속에 파묻힌다. “ 내가 이 꽃들보다 이뻐 ” 꽃보다 할머니다. 대둔도의 바다 터널에서 잠시 쉬어본다. 대둔도의 명소라 한다. 바다 터널에서 관광 온 이들이 사진도 찍고 기념촬영을 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란다. 할머니는 한 번도 섬을 떠나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보리도 못 팔아먹고 굶고 이런 이부자리도 없으니까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회상하면 지금이 호시절이고 행복하다. 안개 자욱한 새벽 또다시 바다로 나섰습니다.
그녀가 한 곡조의 노래를 부른다.
이웃사나 이어도 사나 이내 배야 어서 가자 어린 자식이 엄마 오기 기다린다. 어서나 가자 이어도 사나.
그 오랜 세월 동안 할머니의 가슴엔 체기가 쌓이고 쌓여 한 많은 석회처럼 굳어졌고 응어리가 생겼다. 그런 인생의 체기를 달래주는 유일한 위로는 탄산음료가 전부라는데 그래도 항상 허허 웃을 수 있는 건 섬마을 모든 주민들이 친구이다 조카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가두리 양식을 한다. 우럭도 키우고 전복도 키운다. 때로는 마을 뒷산에 쑥을 캐러 가기고 한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하고도 고단함을 모르고 지칠 줄 모르는 부지런함이 그녀의 몸에 배어 있다. 제대로 세상을 살고 일하고 그리고 이제는 좀 쉴 만도 하지만 결코 그녀는 일에서 손을 놓는 법이 없다. 모처럼 양식장 한 귀퉁이에서 낮잠을 곤히 자고 있다. 차 한 잔 할 시간이 흐른 후 갑자기 큰 배가 나타났다. 마을 주민인 장성한 조카(형식적인)들이 배 가득 전복의 먹이인 다시마를 싣고 왔다. 그리고 양식장 가두리마다 다시마를 뿌려주고 간다.
갯바위에서 할머니가 미역을 채취하고 있다. 뗏마배를 해안가까지 가까이 대어놓고 밀물이 될 때까지 미역 채취에 나섰다. 옆에서는 조카 박 원단 씨가 미역을 따고 있다. 바닷물이 들어와 뗏마배가 바닥에 닿지 않을 때가 되어야 배를 끌고 갈 수 있다. 미역을 채취하고 톳을 키우고 전복을 양식하면서 그 험한 세상을 쉼 없이 살아왔다. 바다에는 언제나 부지런하면 굶어 죽지는 않을 만하다고 한다. 결코 어떤 역경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험난한 세상에서 올곧게 세상을 살아왔고 이제는 걱정 없이 세상을 마감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한다. 돈 걱정 자식 걱정하지 않고도 충분히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담당 PD가 물었다. 혼자 사시고 지내시면 외롭지 않으시냐고 쓸쓸하고 무섭지 않냐고도 했지만 할머니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외로우면 자버리면 된단다. 일어나서 전등의 스위치 줄을 당기기 귀찮아서 줄을 매달아 놓으셨다. 할머니의 자가용 뗏마배는 순수하게 나무로 만든 배다. 100년도 더 된 배라고 하고 고장이 나면 직접 할머니가 고치기도 한다. 말 그대로 할머니에게 있어 차와 마찬가지다. 자식들은 다 육지로 결혼시켜 내보내고 난 후 홀로 생활한다. 마을 사람들과 모여 식사를 대신해 간식으로 요기를 한다. 오늘의 메뉴는 거북손과 고동이다. 한 가득한 그것들을 까먹으며 요기를 한다. 그러던 중에 할머니가 노래를 한 자락 한다.
사는 것이 세상이냐 죽는 것이 옳으냐
그러자 옆 마을 주민 할머니가 한 소리한다. 자연에서 흘러왔다. 자연으로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지 돈이 인생이냐 걱정이 없어야 인생이 편안하지. 할머니가 우뭇가사리, 파래, 말린 미역 등을 살펴보고 있다. 이것을 목포에 가서 팔아요. 내가 직접 장바닥에 앉아서 파는 것이 아니라 큰 상회에 넘겨요 그것들을 만들고 팔고 돈을 만드는 것으로 인해 자식들을 보러 가는 것도 쉽지 않다.
할머니는 PD가 ‘이름과 달리 고생을 참 많이 하신 것 같다’고 하는데도 ‘내가 했던 고생들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겠느냐’며 고개를 내젓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할머니는 ‘지금이 복’이라고 대수롭잖은 듯 말하며 주름 깊게 파인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더 바라면 안 된다’는 지극히 소박한 생각이 할머니가 느끼는 것이 행복의 토대인 것 같았다. 가혹한 운명 앞에 주눅 들지 않았고 여든을 넘긴 지금까지 날마다 100년도 더 된 뗏마배를 저어 바다로 나간다. 햇볕과 세월의 흔적인 깊고 짙은 주름이 만들어내는 박복 탑 할머니의 웃음에서는 아직도 소녀적 감성과 수줍음이 함초로이 피어나고 있었다. 할머니가 가진 것은 어쩌면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고 그 험난했던 역경 속에서 굴종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낸 삶을 살았기에 오늘의 안정과 편안함이 축복처럼 그렇게 묻어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할머니는 분수에 넘치게 욕심부리지 않았고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했고 옛말처럼 안분지족 하면서 남의 탓하지 않고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고 평안하게 사는 세상살이의 철칙을 가졌던 것이 행복한 삶의 지름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으리라. 할머니의 말씀으로 인생은 참으로 즐거운 삶이었다고 회고한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이여 속상할 때도 있고 웃을 때도 있으며 울을 때는 있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지 않겠는가. 이제는 더 이상 바라면 안 되고 만족하면서 살아야지 ” 참으로 세상을 달관한 모습이고 억척스럽게 세상을 살아온 이만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리. 요즘 중년의 로망이 자연인이라고 한다. 자연과 더불어 속박받지 않고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속을 벗어야 홀로 독야청청 살고는 쉽지만 언감생심이다. 우리의 옛 선조의 청빈했던 선비들은 세속의 물욕을 탐하지 않고 모두가 원하는 권세와 명예를 구하지 않고 첩첩산중에 초가삼간 지어놓고 자연을 벗 삼아 단표누항에 유유자적하며 안빈낙도하고 안분 자족하면서 자연을 벗 삼아 세상살이에 달관하면서 멋진 삶을 구가했다. 참다운 세상살이의 한 표본이었고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삶이었지 않을까. 박복 탑 할머니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고 얼마나 편안하고 안락하며 좋은 환경과 여건하에서 복되게 살아왔음을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