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

9. 고완

자한형 2021. 12. 1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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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완 이태준

어느 때나 윗자리가 울르는 법은 아니다. 더러는 스스로 아랫자리에 물러섬도 겸양 이상의 자기(自己) 화장(化粧)이 된다.

 

우리 집엔 웃어른이 아니 계시다. 나는 때로 거만스러워진다. 오직 하나 나보다 나이 더 높은 것은 아버님이 쓰시던 연적 이 있었을 뿐이다.

 

저것이 아버님께서 쓰시던 것이거니 하고 고요한 자리에서 쳐다보면 말로만 들은, 글씨를 좋아하셨다는 아버님의 체취가 참먹 향기와 함께 자리에 그득 차는 듯하다. 옷깃을 여미고 입정(入定)을 맛보는 것은 아버님이 손수 주시는 교훈이나 다름없다.

 

얼마 동안이었는지 모르나 아버님과 한때 시대의 풍상을 같이 겪은 물건이다. 그 몸이 어느 땅 흙에 묻힐지도 기약이 없는 망명자의 생활, 생각하면 바다도 얼어 파도 소리조차 적막하던 블라디보스톡의 겨울밤, 흉중엔 무한한(無限恨) 인 채 임종하시고 만 아버님의 머리맡에는 몇 자루의 붓과 함께 저 연적이 놓였던 것은 어렸을 때 본 것이지만 결코 흐릿한 기억이 아니다. 네 아버지 쓰던 것으론 이것 하나라고 외할머님이 허리춤에 넣고 다니시면서 내가 크기를 기다리시던 것이 이 연적이다. 분원 사기(分院沙器)인 듯, 살이 맑고 붉은 점이 찍힌 천도형 의 우아한 연적이다.

 

고인과 고락을 같이한 것이 어찌 내 선친의 한 개 문방구뿐이리오. 나는 차츰 모든 옛사람들 물건을 경애하게 되었다. 휘트먼의 노래에 ', 아름다운 여인이여, 늙은 여인이여!' 한 구절이 가끔 떠오르거니와 찻종 하나, 술병 하나라도 그 모서리마다 트고 금간 데마다 배고 번진 옛사람들의 생활의 때는 늙은 여인의 주름살보다는 오히려 황혼과 같은 아름다운 색조가 떠오르는 것이다.

 

조선 시대 자기도 차츰 고려자기만 못하지 않게 세계 애도계(愛陶界) 에 새로운 인식을 주고 있거니와 특히 이조의 그릇들은 중국이나 일본 내지(內地) 것들처럼 상품으로 발달되지 않은 것이어서 도공들의 손은 숙련되었으나 마음들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였다. 손은 익고 마음은 무심하고 거기서 빚어진 그릇들은 인공이기보다 자연에 가까운 것들이다. 첫눈에 화려하지 않은 대신 얼마를 두고 보면 물려지지 않고, 물려지지 않으니 정이 들고, 정이 드니 말은 없되 소란한 눈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옛날을 생각하게 하고, 그래 영원의 긴 시간 선에 부딪혀 보게 하고, 그러나 저만이 초연해 이쪽을 누르는 일이 없이 얼마를 바라보든지 오직 무욕과 천진한 심경이 남을 뿐이다.

 

이적선(이태백)은 경정산에 올라,

 

 

 

[衆鳥高飛盡(중조고비진) 뭇새는 날기를 그치고

 

孤雲獨去閒(고운독거한) 조각구름만 홀로 한가히 오간다

 

 

 

相看兩不厭(상간양불염) 서로 바라봐도 싫증나지 않으니

 

只有敬亭山(지유경정산) 다만 경정산이 있도다]

 

이라 읊었다. [새처럼 재재거리던 아이들은 다 자고 아내마저 고운(孤雲-조각구름)처럼 자기 숙소로 돌아간 후,] 그야말로 상간양불염(相看兩不厭) 하여 저와 나와 한가지로 밤 깊은 줄 모르는 것이 이 고완품(古翫品)들이다.

 

시대가 오랬다 해서만 귀하고, 기교와 정력이 들었다 해서만 완상할 것은 못 된다.

 

옛 물건다운 것은 그 옛사람들과 함께 생활한 자취를 지녔음에 그 덕윤(德潤) 이 있는 것이다. 외국의 공예품들은 너무 지교해서 손톱자리나 가는 금 하나만 나더라도 보기 싫어진다. 비단옷을 입고 수족이 험한 사람처럼 생활의 자취가 남을수록 보기 싫어진다. 그러나 우리 조선 시대의 공예품들은 워낙이 순박하게 타고나서 손때 난 음식물에 절을수록 아름다워진다. 도자기만 그렇지 않다. 목공품 모든 것이 그렇다. 목침, 나막신, 반상, 모두 생활 속에 들어와 사용자의 손때가 묻을수록 자꾸 아름다워지고, 서적도 요즘 양본들은 새것을 사면 그 날부터 만지면 더러워 보기 싫어지는 운명뿐이나, 조선 책들은 어느 정도로 손때에 절어야만 표지도 윤택해지고 책장도 부드럽게 넘어간다.

 

수일 전에 우연히 대혜 보각선사(大慧普覺禪師)서장(書狀)을 얻었다. 400여 년 전인 가정년간(嘉靖年間)의 판으로 마침 내가 가장 숭앙하는 조선의 대예술가 추사 김정희선생이 보던 책이다. 그의 인영(印影) 이 남고 그의 필적으로 전권에 토가 달리고 군데군데 부연이 씌어 있다. 서장은 워낙 난해해서 한 줄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지마는 한참 들여다보아야 책제가 떠오르는 태고연한 표지라든지 장을 번지며 선인들이 정독한 자취를 보는 것이나 또 일획 일자를 써서 사란(絲欄) 을 쳐 가며 새기기를 몇 달 혹은 몇 해를 해서 이 한권 책이 되었을 것인가, 생각하면 인쇄의 덕을 함부로 박아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종 참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고완 취미를 당자나 은자의 소일거리로만 보는 것은 속단이다. 금력으로 수집욕을 채우는 것은 오락에 불과한 것이요, 또 제 힘에 불급하는 것을 탐내는 것도 허영이다. 직업적이어선 취미도 아니려니와 상심낙사(喪心樂事) 란 무위와 허욕과 더불어서는 경지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