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단념
단념 김기림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별 게 아니었다. 끝없이 단념해 가는 것. 그것뿐인 것 같다.
* 살아가는 것은 끝없는 단념
산 너머 저 산 너머는 행복이 있다. 언제고 그 산을 넘어 넓은 들로 나가 본다는 것이 산골 젊은이들의 꿈이었다. 그러나 이윽고는 산 너머 생각도 잊어 버리고 '아르네'(감성적이며 먼 곳을 동경하는 순진한 젊은이를 상징하는 소설 속의 인물. 노르웨이의 작가 비에르손이 쓴 소설 「아르네」의 주인공)는 결혼을 한다. 머지 않아서 아르네는 사오 남매의 복(福) 가진 아버지가 될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수많은 아르네들은 그만 나폴레옹을 단념하고 셰익스피어를 단념하고 토머스 아퀴나스를 단념하고 렘브란트를 단념하고 자못 풍정낭식(風定浪息. 들떠서 어수선하던 것이 가라앉음을 이르는 말)한 생애를 이웃 농부들의 질소(質素. 꾸밈이 없고 수수함.)한 관장(觀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르는 장례) 속에 마치는 것이다.(대유법)
그러나 모든 것을 아주 단념해 버리는 것은 용기를 요하는 일이다. 가계를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지위를 버리고 드디어 온갖 욕망의 불덩이인 육체를 몹쓸 고행으로써 벌하는 수행승의 생애는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무(無)에 접하는 것이다.
* 용기를 요하는 단념
그런데 이와는 아주 반대로 끝없이 새로운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고 돌진하고 대립하고 깨뜨리고 불타다가 생명의 마지막 불꽃마저 꺼진 뒤에야 끊어지는 생활 태도가 있다. 돈 후안이 그랬고 베토벤이 그랬고 '장 크리스토프'의 주인공이 그랬고 랭보가 그랬고 로렌츠가 그랬고 고갱이 그랬다.
* 단념과 반대되는 욕망하는 삶
이 두 길은 한 가지로 영웅의 길이다. 다만 그 하나는 영구한 적멸(寂滅)로 가고 하나는 그 부단한 건설로 향한다. 이 두 나무의 과실로 한편에 인도의 오늘이 있고 다른 한편에 서양 문명이 있다.(앞서 제시한 대조적인 두 가지 삶의 태도를 모두 높이 평가함.)
이러한 두 가지 극단 사이에 있는 가장 참한 조행(操行. 태도와 행실을 아울러 이르는 말) 갑(甲)에 속하는 태도가 있다. 그저 얼마간 욕망하다가 얼마간 단념하고……. 아주 단념도 못 하고 아주 쫓아가지도 않고 그러는 사이에 분에 맞는 정도의 지위와 명예와 부동산과 자녀를 거느리고 영양도 갑을 보전하고 때로는 표창(表彰)도 되고 해서 한 편(篇) 아담한 통속소설 주인공의 표본이 된다. 말하자면 속인(俗人) 처세의 극치다.
이십 대에는 성히 욕망하고 추구하다가도 삼십 대만 잡아 서면 사람들은 더욱 성하게 단념해야 하나 보다.학문을단념하고연애를단념하고새로운것을단념하고발명을단념하고드디어는착한사람이고자하던일까지단념해야한다.삼십이넘어가지고도시인이라는것은망나니라는말과같다고한누구의말은어쩌면그렇게도찬란한명구냐.
* 속인의 처세
약간은 단념하고 약간은 욕망하고 하는 것이 제일 안전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단념은 또한 처량한 단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서도 학문에 있어서도 나는 나 자신과 친한 벗에게는 이 고상한 섭생법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반어적인 표현으로 극단을 절충하는 모습을 비판함.)
'일체(一切)냐, 그렇지 않으면 무(無)냐.'
예술도 학문도 늘 이 두 단애(斷崖.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의 절정을 가는 것 같다. 평온을 바라는 시민은 마땅히 기어 내려가서 저 골짜기 밑바닥의 탄탄대로를 감이 좋을 것이다.(비유적인 표현으로 여운을 주어 독자들의 성찰을 유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