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

43. 명사십리

자한형 2021. 12. 1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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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십리 한용운

경성역의기적일성(汽笛一聲), 모든 방면으로 시끄럽고성가시던 경성을 뒤로 두고 동양에서 유명한해수욕장인 명사십리(明沙十里)를 향하여 떠나게된 것은 85일 오전 850분이었다.

차중은승객의 복잡으로 인하여 주위의 공기가 불결하고더위도 비교적 더하여 모든 사람은 벌써 우울을느낀다. 그러나 증염(蒸炎), 열뇨(), 번민(煩悶), 고뇌(苦惱) 등등의 도회를 떠나서만리 창명(滄溟)의 서늘한 맛을 한주먹으로 움킬 수 있는 천하 명구(名區)의명사십리로 해수욕을 가는 나로서는 보일보(步一步) 기차의 속력을 따라서 일선의 정감이 동해에가득히 실린 무량(無量)한 양미(凉味)를통하여 각일각(刻一刻) 접근하여지므로그다지 열뇌(熱惱)를 느끼지 아니하였다.

그러면천산만수(千山萬水)를 격()하여 있는 천애(天涯)의양미를 취하려는 미래의 공상으로 차중(車中)의현실 즉 열뇌를 정복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이른 바 일체유심(一切唯心)이다. 만일 이것이유심(唯心)의 표현이 아니라면 유물(唯物)의반현(反現)이라고 할른지도 모른다.

나는갈마 역에서 명사십리로 갔다. 명사십리는문자와 같이 가늘고 흰 모래가 소만(小灣)을연(沿)하여 약 10리를 평포(平鋪)하고, 만내(灣內)에는 참차부제(參差不齊)한대여섯의 작은 섬이 점점이 놓여 있어서 풍경이 명미(明媚)하고 조망이 극가(極佳)하며욕장은 해안으로부터 약 5,60보 거리, 수심은대개 균등하여 4척 내외에 불과하고 동해에는조석의 출입이 거의 없으므로 모든 점으로보아 해수욕장으로는 이상적이다.

해안의남쪽에는 서양인의 별장 수십 호가 있는데, 해수욕의 절기에는 조선 내에 있는 사람은물론 동경,상해,북경 등지에 있는 사람들까지와서 피서를 한다 하니 그로만 미루어 보더라도명사십리가 얼마나 명구인 것을 알 수가 있다. 허락지 않는 다소의 사정을 불고하고, 반천리(半千里)의산하를 일기(一氣)로 답파하여 만부일적(萬夫一的) 단순한 해수욕만을 위하여 온 나로서는 명사십리의수려한 풍물과 해수욕장의 이상적 천자(天姿)에만족지 아니할 수 없었다. 목적이 해수욕인지라옷을 벗고 바다로 들어갔다. 그 상쾌한 것은말로 형언할 배 아니다. 얼마든지 오래 하고싶었지마는 욕의(浴衣)를 입지 아니한지라나체로 입욕함은 욕장의 예의상 불가하므로땀만 대강 씻고 나와서 모래 위에 앉았다가돌아오니 김군은 욕의 기타를 사 가지고 돌아와서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7일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보니 일기가 흐리었다.

7시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였으나 계속적으로오는 것이 대단치 아니하였다. 아침 밥을 먹고나서 바다에 갈 욕심으로 비가 개이기를 기다렸으나좀처럼 개이지 않는다.

11시경 비가 조금 멈추기에 해수욕하는 데는 비를맞아도 관계치 않겠다는 생각으로 나섰다. 얼마 아니 가서 비가 쏟아지는데 할 수 없이쫓기어 들어왔다. 신문이 왔기에 대강 보고나니 원산의 오포(午砲) 소리가 들린다. 시계를교정하여 가지고 나서니 비가 개이기 시작한다. 맨발에 짚신을 신고 노동모를 쓰고 나섰다. 진길에 짚신이 붙어서 단단하여지매 발이 아프다. 짚신을 벗어 들고 맨발로 가는데 비가 그쳐서길이 반은 물이요 반은 흙이다. 맨발로 밟기에자연스러운 쾌감을 얻었다. 더구나 명사십리에들어서서 가늘고 보드라운 모래를 밟기에는너무도 다정스러워서 맨발이 둘뿐인 것에 부족하였다.

해수욕장에다다르니 마침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목욕을하는데 남녀노유(男女老幼)가 한데 섞여서활발하게 수영도 하고 유희도 한다. 혼자 온것은 나 하나뿐이다. 나는 그들 목욕하는 데서조금 떨어져서 바다에 들어가 실컷 뛰고 놀았다. 여간 상쾌하지 않았다. 조금 쉬기 위하여 나와서모래 위에 앉았다. 이 때에 모든 것은 신청(新晴)의상징 뿐이다.

 

쪽같이푸른 바다는 / 잔잔하면서 움직인다.

돌아오는돛대들은 / 개인 빛을 배불리 받아서

젖은돛폭을 쪼이면서 / 가벼웁게 돌아온다.

걷히는구름을 따라서 / 여기저기 나타나는

조그만씩한바다 하늘은 / 어찌도 그리 푸르냐.

멀고가깝고 작고 큰 섬들은 / 어디로 날아가려느냐.

발적여디디고 오똑 서서 / 쫓다 잡을 수가 없고나.

 

얼마동안 앉았다가 다시 바다로 들어가서 할 줄모르는 헤엄도 쳐 보고 머리를 물 속에 거꾸로잠가도 보고 마음 나는 대로 활발하게 놀았다. 다시 나와서 몸을 사안(沙岸)에 의지하고 발을물에 잠그었다.

모래를파서 샘을 만드니 / 샘 위에는 뫼가 된다.

어여쁜물결은 / 소리도 없이 가만히 와서

한손으로 샘을 메우고 / 또 한 손으로 뫼를짓는다.

모래를모아 뫼를 만드니 / 뫼 아래에 샘이 된다

짖궂은물결은 / 햇죽햇죽 웃으면서

한발로 뫼를 차고 / 한 발로 샘을 짓는다.

 

다시목욕을 하고 나서 맨발로 모래를 갈면서 배회하는데석양이 가까워서 저녁놀은 물들기 시작한다. 산 그림자는 어촌의 작은 집들에 따뜻이 쪼이는데바닷물은 푸르러서 돌아오는 돛대를 물들인다. 흰 고기는 누워서 뛰고 갈매기는 옆으로 난다. 목욕하는 사람들의 마소리는 높아지고 저녁연기를 지음친 나무빛은 옅어진다. 나도 석양을따라서 돌아왔다.

9일은우편국에 소관이 있어서 원산에 갔다. 볼일을보고 송도원으로 갔다. 천연의 풍물로 말하면명사십리의 비교가 아니나 해수욕장으로서의시설은 비교적 상당하다. 해수욕을 잠깐 하고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고 송림(松林) 사이에서조금 배회하다가 다시 원산을 경유하여 여사(旅舍)에돌아와 조금 쉬고 명사십리에 가 또 해수욕을하였다. 행보(行步)를 한 까닭인지 조금 피로한듯하여 곧 돌아왔다.

10일엔신문이 오기를 기다려서 보고 나니 11시 반이되었다. 곧 해수욕장으로 나가서 목욕을 하고사장에 누웠으니 풍일(風日)이 아름답고 바다는작은 물결이 움직인다. 발을 모래에다 묻었다가파내고 파내었다가 다시 묻으며 손가락으로아무 구상이나 목적이 없이 함부로 모래를긋다가 손 바닥으로 지워 버리고 다시 긋는다. 그리하다가 홀연히 명상(暝想)에 들어갔다. 멀리 날아오는 해조(海鳥)의 소리가 나를 깨웠다.

 

어여쁜바다새야.

 

*증염 : 더위

*열뇨 : 많은 사람이 모여 떠들썩함

*창명 : 큰 바다

*명구 : 이름 난 지역

*양미 : 서늘한 맛

*각일각 : 시시각각으로

*열뇌 : 몹시 심한 고뇌

*천애 :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천애지각의준말)

*평포 : 평평하게 펴 놓음

*참차부제 : 길고 짧거나 들쭉날쭉하여 가지런하지않음

*명미 : 곱고 수려함

*극가 : 매우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