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별
별 김동인
무슨 글자를 보느라고 옥편을 뒤지다가 별 성(星) 자를 보았다. 성 자를 보고 생각하는 동안 문득 별에 대한 정다움이 마음속에 일어났다. 별을 못 본 지 얼마나 오래인지 별의 빛깔조차 기억에 희미하다. 보려면 오늘 저녁이라도 뜰에 나가서 하늘을 우러러보면 있을 것이건만.
밤길을 다니는 일이 적은 나요, 그 위에 밤길을 다닌다 해도 위를 우러러보는 일이 적은 데다가 고층 거루(건물)가 즐비하고 전등불이 휘황한 도회지에 사는 탓으로 참 별을 우러러본 기억이 요연(窈然)하다. 물론 그 사이에도 무의식적으로 별을 본 일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별을 본다.'는 의식을 가지지 않고 보았겠는지라 별을 의식한 기억은 까맣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여름날 뜰에 모여서 목청을 돋우며 세어 나가던 그 시절의 별이나 변함은 없을 것이며, 그 뒤 중학 시대에 음울한 소년이 탄식으로 우러러 보던 그 시절의 별이나 지금의 별이나 역시 변함이 없을 것이며, 또는 그 뒤 장성하여 시적(詩的) 흥취에 넘친 청년이 마상이(노를 젓는 작은 배)를 대동강에 띄워 놓고 거기 누워서 물결 소리를 들으면서 탄미하던 그 별과 지금의 별이 변함이 없으련만. 그리고 그 시절에는 날이 흐려서 하루 이틀만 별이 안 보이더라도 마음이 조조(躁躁)하여 마치 사랑을 따르는 처녀와 같이 안타까워했거늘 지금 이렇듯 별의 빛깔조차 잊어 버리도록 오래 별을 보지 않고도 그다지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 나가는 이 심경은 어찌 된 셈일까.
세상만사에 대하여 이젠 흥분과 감동을 잊었나. 혹은 별을 보고 싶은 감정이 생기지 못하도록 현대인의 감정이란 빽빽하고 기계적인 것인가.지금도 별을 우러러 보면 옛날의 그 시절과 같이 괴롭고도 즐거운 감동에 잠길 수가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전등만큼 밝지 못한 것이라고 경멸해 버릴 만큼 마음이 변했을까.
지금 생각으로는 오늘 저녁에는 꼭 다시 별을 우러러보려 한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도 그냥 이 마음이 그대로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다. 날이 춥다는 핑계가 있고 바쁜 원고가 많다는 핑계가 있고 그 위에 오늘이 음력 팔일이니 그믐 별이 아니고야 무슨 흥취가 있겠느냐는 핑계도 있고 하니 어찌 될는지 의문이다.
보면 새고 안 보면 문득 솟아오르던 별. 저 별은 장가를 가지 않는가 하고 긴 밤을 지키고 있던 별. 내 별 네 별 하여 동생과 그 광휘를 경쟁하던 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언제 다시 잠 못 자는 한밤을 별을 우러러보며 새우고 싶다. 그러나 현 시대의 생활과 감정이 너무 복잡다단함을 어찌 하랴. 별을 쌀알로 보고 싶을 터이며 달을 금덩이로 보고 싶을 테니까 이런 감정으로는 본다 한들 아무 감흥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