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씨앗
씨앗 유동림
우리 집에는 거실과 주방 사이에 창틀모양을 한 소통의 공간이 있어 그 틀턱에 자잘한 꽃이 핀 화분 몇 개를 올려놓고 보거나 작은 골동품을 놓아두고 완상(玩賞)하기도 했다. 작년 가을부터는 그 자리에 내 손으로 심어 거둔 곡식들을 작은 플라스틱 병에 넣어 색 맞춰 진열해 놓았다. 골동품이나 꽃보다 내게는 더 의미가 있고 보기 좋았다. 손님들도 곡식을 장식품으로 삼는 집은 처음 봤다며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투명한 플라스틱 병 속에는 종류에 따라 크기와 색이 각각 다른 모양의 곡식이 들어 있다. 이 곡식들은 씨앗용이다. 병 속에 넣어 뚜껑을 잘 막아 두면 벌레가 생기지 않고 간수하기 편하며 찾기도 쉽다.
잠 안 오는 밤이나 너무 일찍 깨어난 새벽에 이 씨앗들을 오래 보고 있으면 귀가 틔어 씨앗들이 나누는 얘기가 들리는 듯하다. “이제 봄이 되었으니 엄마 품에 돌려보내 주세요. 가을부터 긴긴 겨울을 병속에 갇혀 있어 답답해요.” 이렇게 애원하는 것 같다. 이 씨앗을 품고 싶은 땅은 맘껏 부풀어 파종의 시기를 알려준다.
그리스 신화에서 농토의 버금신이며 곡식의 왕인 ‘데메테르’는 어머니고 씨앗의 신인 ‘페르세포네’는 외동딸이다. 어느 날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외동딸이 납치된다. 데메테러는 페르세포네를 찾아 낮비와 밤이슬을 맞으며 온 땅을 헤맨다. 달이 저승의 왕비가 된 것을 나중에 알고 비탄에 빠져 울부짖고 한숨으로 지새며 제우스신에게 탄원을 했지만 저승은 신들의 영역 밖이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다만 통신의 신 ‘헤르메스’만이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 수 있어 그를 통해 하데스와 협상을 한다. 그 결과 일 년의 반은 춥고 메마른 저승에 있고 나머지 반은 데메테르 곁에서 지내게 된다.
지금 어머니 대지는 씨앗을 품고 싶고 씨앗은 엄마 품에 묻히고 싶다. 우리 집 병 속의 씨앗은 저승에 갇혀 있는 셈이다. 모든 생물은 종족번식의 본능을 갖고 있지만 저 병 속의 씨앗은 천년을 두어도 싹을 틔우지 못한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가엾은 씨앗들을 내가 거두어 들였으니 내가 뿌려서 모녀의 만남을 주선해야 하지 않을까.
병 속의 씨앗 중에서 마음이 급해 조르는 것이 있다. “나는 푸른색이 고운 완두콩이예요. 루비에 비취색을 버무려 놓으면 나의 색을 흉내 닐 수 있을 거예요. 봄이 기지개를 펴기 전에 심어야 해요. 따라서 거두는 것도 일등이죠. 내 역할이 끝나고 자리를 비켜주면 다른 곡식을 심어 도 한번 수확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미덕이 아닌가요.” 완두콩의 이런 일깨움이 들리는 듯해서 당장 땅을 파고 심어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이 든다. 곁에 있던 노란 메주콩에 귀 기울이자 “작년에는 너무 늦게 심어 반타작 했잖아요. 농부는 모름지기 심을 때와 거둘 때를 알아야 한다고요. 쭉정이가 반이었던 것이 제대로 여물었다면 간장 된장 청국장에 여름날 구수한 콩국도 해먹을 수 있을 텐데, 앞으로 때를 놓치지 마세요.” 옳은 지적에 나는 뜨끔했다. 국산콩으로 쑨 메주를 재래식으로 담근 된장이 항암 효과가 크다고 한다.
“나도 한 마디 할께요.” 서리태 콩이다. 서리태 하면 이미 이름에 콩이 붙었는데 콩자를 또 붙인 격이다. ‘역전앞’이나 ‘채전밭’처럼 어쨌든 서리태 콩의 말을 들어보자. “내 겉모습은 검어도 속살은 푸르지요. 검정색 곡식치고 약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지요. 또 밥에 섞어 먹는 콩 중엔 그 맛이 서리태를 따를 콩이 없고, 또 있어요. 콩자반의 간판격이 바로 검정콩이죠. 콩을 넣어 밥을 짓는 것도 한국뿐이고 그래서 영양의 균형을 이루는 데 일조를 한다니 한국사람은 지혜로운 민족인가 봐요.” 맞다 맞아.
내 눈길은 어느새 빨간색 팥으로 건너갔다. 빨간 밭이 입을 연다. “빨간색 곡식 병이 가운데 버티고 있으니 양쪽에 거느린 다른 색들이 살아나지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찰밥에는 내가 들어가야 제맛이 나고 액막이음식에도 내가 빠지면 안 되죠. 아이들 백일이나 돌에 무병장수 하라고 하는 수수단자에 팥고물이 빠질 수 없고 이사 갈 때 개업할 때 탈 없으라고 하는 고사떡에 팥고물 시루떡은 어떻고요. 한겨울에 찹쌀 새알심을 넣어 끓인 동지 팥죽은 별미 중의 별미죠.” 작년 우리 집 팥 농사는 성과가 좋지 못해서 겨우 종자만 건졌는데 올해는 좀 더 잘해서 동지팥죽을 쑤어서 이웃과 나누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던 참깨도 “저 좀 보세요!” 하고 나선다. “‘참’자가 들어가는 것 치고 나쁜 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요. 오죽하면 사랑도 참사랑을 찾겠어요. 특히 한국산 참깨는 고소한 맛이 으뜸이죠. 한국 참깨로 짠 기름은 참기름이란 말도 부족해 진짜 참기름이라고 하잖아요.” 참깨의 자랑이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들깨도 끼겠단다. “네게서 나오는 알맹이 뿐 아니라 잎도 아주 유용하죠. 쌈을 싸서 먹거나 음식 찌개나 국에 넣으면 독특한 향이 음식 맛을 풍미롭게 하고 깻잎 장아찌도 밑반찬으로 손색이 없다고요. 들기름은 불포화 지방이어서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데다 값도 싸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값이 싸면 그 효능이나 가치까지 격하시키니 참 이상해요.” 그 말에 나는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나를 빼놓지는 않겠지요.” 녹두였다. 심어 키우고 거두는데 가장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인 것이 녹두였다. 전에 친척 어른이 입맛이 없어 못 잡수신다는 소식을 듣고, 구미 돋우는 데는 녹두죽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시장에 갔지만 알맹이가 자잘한 국산 녹두는 눈 씻고 봐도 없었다. 껍질을 벗겨 가루 낸 빈대떡용과 껍질째 굵게 타놓은 녹두 등 정체 모를 것들뿐이었다. 수입해 온 것은 맛도 떨어질 뿐 아니라 유전자 조작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녹두장사가 경쟁력이 떨어져 농사를 기피한 까닭에 국산 녹두는 시장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 손으로 녹두농사를 지어보려고 맘먹고 어렵게 종자를 구해 심은 것이 한 됫박쯤 나왔다. 이렇게 녹두에 관해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녹두가 하는 이야기는 아쉽지만 접어야겠다.
서울에 살면서 텃밭에서 푸성귀를 가꾸어 먹고 몇 가지 밭곡식을 조금씩이나마 손수 심어 거둔다는 것은 보통 행운이 아닐 것이다. 그나저나 저 씨앗들은 내 손길만 목을 빼고 기다린다. 바야흐르 때는 봄.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가 만날 때인 것이다. 때맞추어 완두콩을 선두로 한 병씩 비우게 될 것이다.
대지가 온갖 씨앗을 품어 싹을 틔우면 모녀의 푸르른 여름 축제가 온 들판을 덮겠지. 힘차게 뻗어나는 여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