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한형 2021. 12. 29. 20:49
728x90

천금 같은 생일 선물

 

 

한파가 기승을 한참 부리고 있는 요즘 날씨이고 제주, 서해 등지에는 최고 40Cm의 폭설이 내리는 등 기상이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제도 눈이 내렸다. 3주 전의 일이다. 오후 네 시쯤에 집에서 채비를 해서 출발했다. 아내의 예순 번째 생일이었다. 아들 내외와의 저녁 약속이 있었다. 남양주시 강변북로 끝자락에 있는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CC 한정식에서 오후 530분에 만나기로 했다. 일요일이어서 그나마 교통정체는 주말보다는 덜한 편이었다. 원효대교를 지나 강변북로로 접어들었다. 강변북로로 접어드는 곳부터가 정체구간이었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에도 중간중간에 정체구간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약속시간보다 10분 전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두고 한강에서 지는 해를 보며 기념촬영을 했다. 저녁놀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내가 정한 장소였기에 아내는 몇 번 와본 곳이었는데 나는 처음이었다. 본관과 별관이 있었고 야외에도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날씨가 차가운 관계로 야외 손님은 별로 없어 보였다. 위드코로나 시기였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어느 정도 완화된 시기여서 손님이 굉장히 많았다. 아들이 예약을 한 곳은 본관이었고 바로 좌석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좌석을 확인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던 길에 아들 내외와 마주했다. 아들이 생일케이크를 들고 왔다. 거의 두어 달 만의 만남이었다. 코트를 벗어두고 좌석에 앉았다. 본격적인 회합에 들어갔다. 식당내의 사방에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초만원 상태였다. 식사를 주문하고 얘기를 나눴다. 골프를 올해 시작한 아들은 최근에 머리를 올린 모양이었다. 포천CC에서였고 100여 타를 기록했던 모양이었다. 한 홀에서는 기적적으로 파를 기록하기도 했던 듯했다. 요즘 직장일이 바빠 야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먼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먼저 나온 것은 물김치, 샐러드, 호박죽이었다. 샐러드에는 자몽이 들어있었다. 다음으로 궁중잡채도 간이 세지 않고 적절했다. 소고기 찹쌀 튀김이 나왔다. 바삭한 소고기 튀김에 겨자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맛이 좋았다. 토마토 해파리냉채가 나왔다. 물김치는 계속 리필이 가능했다. 잣소스 해산물 무침도 나왔다. 시래기 버섯들깨탕도 고소하고 맛이 있었다. 뚝배기로 나왔고 접시에 덜어서 먹을 수 있었다. 곧이어 밥이 나왔는데 그전에 나온 들깨탕을 아내는 남긴 상태였다. 전과 한방돼지고기수육도 야들야들하면서 맛이 고소했다. 다음의 요리가 코다리 조림이었는데 코스로는 마지막 음식이었다. 본래 코다리 전문점에 가면 코다리를 종업원이 가시 등을 발라주는데 그런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국이었다. 술이나 음료는 주문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은 반찬 5가지 고등어구이, 된장찌개로 이루어진 한상차림이었다. 멸치 고추무침, 시금치 무침, 김치, 가지무침, 도라지무침 등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후식으로 과일이 나왔다. 단호박 식혜가 나왔고 오렌지, 파인애플, 방울토마토, 포도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녁 한 끼를 거의 포식 수준으로 맛본 셈이었다.

식사가 마무리될 때쯤에 며느리가 선물 상자를 내놓았다.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종이상자였다. 예사롭지 않았다. 뚜껑을 열자 그 속에는 두 줄의 선이 선명한 임신테스트기와 손주의 태중 사진이 들어 있었다. 오랫동안 기대했고 가장 바랐던 천금 같은 생일 선물이 소담스럽게 종이상자 속에 담겨있었다. 아들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동영상을 촬영했다. 옆에 앉았던 나는 거의 기절초풍할 정도의 경이로움과 놀람이 가득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리고 축하를 했다. 임신 8주라 했다. 내가 감개무량해하고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생생하게 동영상에 담겼다. 얼굴색이 붉어질 정도도 감읍해했다. 이미 아들 내외는 지난 9월로 결혼 4주년을 넘긴 상태였기에 무척이나 늦은 셈이었다. 우리 집안의 오랜 염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 여름에 우리 내외가 상원사의 적멸보궁을 찾아서 부처님께 기원을 했었다. 그리고 중추절에는 석모도의 보문사 관세음보살좌상에도 기원을 드렸다. 아들내외도 같이 가서 축원을 했다. 꼭 하나의 소원은 들어준다고 했고 전국에서 이름을 떨치는 4대 기도처로 명성이 자자하던 곳이었다. 식당에서 나오니 이미 해는 졌고 어둠이 깃들었다. 며느리가 아기의 태중 동영상과 심장소리를 들려주었다. 강변북로를 따라서 귀가하던 길은 그야말로 구름 위를 나는 듯 신나는 질주였고 가슴 가득 충일한 기쁨을 형용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천금 같은 아내의 생일 선물을 받은 다음날이었다. 아들에게 며느리의 계좌번호를 카톡으로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임신 축하금을 보내면서 당부를 했다.

축하해 며늘아 고맙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이 많았을 텐데 소원성취를 하게 되어 고맙다. 여러모로 신경 쓰시고 애쓰신 사돈 내외분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해주기 바란다. 항상 몸조리 잘하고 건강한 아기를 낳기를 진심으로 기원 하마.. 다시 한번 축하하고 건강에 유의하기 바란다.”

이제 드디어 내년 7월이면 우리 내외는 실질적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것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기대하고 설레었던 순간이 실현되는 때이다. 이제 천금 같은 아내의 생일선물을 받은 지 20여 일이 지났다. 할아버지의 재력이 손주의 성장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는 얘기가 한참 항간에 회자되던 적이 있었다. 쓴웃음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제 할아버지는 화백인데 말이다. 엊그제 며느리가 병원에 다녀오면서 담은 초음파 동영상을 보내왔다. 손주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고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초음파의 태중 아기 모습에서 사지가 보였고 꿈틀거리는 모습이 태동이 느껴질 정도의 모습이었다. 다음 주 쯤에는 태아의 기형아 여부를 검사하게 된다고도 했다. 엊그제는 입덧으로 힘들어하는 며느리를 집으로 초대해서 꽃게, 문어 등을 요리해 함께 먹었다. 제대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기간이다 보니 안타까움이 일었다. 엄마 되기가 쉽지 않음을 토로하기도 했고 엄마의 고통과 아픔을 하나씩 하나씩 체험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제는 엄마로서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아이를 위해 인생의 일부분을 헌신하는 것이 필요해 보이기도 하다. 조부모가 아무리 손주바보로 아끼고 위한다고 해도 부모만큼은 아닐 것이다. 양육에 일조를 해야 할 것이고 얼마만큼 책임을 분담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닐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삶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이 되고 새로운 희망의 단초로서 손주가 언제까지나 보석처럼 빛나 주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