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위장에서 퍼 올린 성찰
위장에서 퍼 올린 성찰 정충화
'승무'라는 시로 잘 알려진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술의 등급을 열여덟 단계로 나눴다고 한다. 술을 전혀 못 마시는 부주(不酒) 단계부터 술로 인해 저세상으로 간 사람을 듯하는 폐주(廢酒)에 이르기까지 열여덟 등급이 내포한 의미를 살피다 보면 그 적절한 구분에 고개가 절로 주억거려진다.
애주가들이 많다 보니 술의 등급에 관해 여러 설이 떠도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여섯 등급을 수용하는 편이다. 주졸(酒卒), 주사(酒士), 주걸(酒傑), 주호(酒豪),주선(酒仙), 주신(酒神)이 그것이다. 여기서도 마지막 단계인 주신(酒神)은 더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눈으로나 즐기는 폐주(廢酒)의 상태를 의미한다.
조지훈 시인의 구분이건, 나의 구분이건 간에 당연히 술을 마실 수 있어야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몸이 처한 현실로 보건대 요즘 나는 어느 쪽으로 건 술을 마실 수 없는 단계에 가까워진 듯하다. 중병에 걸린 건 아니지만 하루가 멀다고 무절제하게 마셔온 탓에 몸이 술을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당분간은 마실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게 지금 내가 처한 위태로운 현실이다.
술이 아무리 좋기로서니 몸이 망가질 정도까지 이르렀다는 건 자기관리가 엉망이었다는 말과 다름없다. 냉철하게 살려 노력해온 내가, 더구나 살 날이 적잖은 내가 어쩌다 벌써 술도 마실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나 싶어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자책과 자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다시 건강을 회복하면 술을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인 채로 유유자적하는 낙주(樂酒)의 단계를 지향해 볼까 한다. 몸이 좀 괜찮다 싶으면 입이 참지 못하고 날름 받아먹을 테지만.
정충화 산문집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