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자연에서 만난 사람
자연에서 만난 사람 윤재천
자연은 끊임없이 흐른다.
잠시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주변을 맴돌던 시선을 산이나 물가로 던져보면 막연히 생각했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가 확인하게 된다.
이 순간에는 삶의 아픔들, 세인(世人)의 관심이 집중된 일들이 한낱 부질없고 아득한 일로만 여겨져 홀가분해진다.
자연은 인간의 인위적 목적성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존재, 그 자체를 말한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고 훼손되지 않은 본연의 자체가 자연의 본령(本領)이다.
우리는 문명 일변도로, 오직 그것만이 인류의 복락(福樂)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믿고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는 영원한 것은 없기에 변증법(辨證法)적 궤도를 밟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영원히 자연의 품속을 떠날 수 없고, 또 떠나서 살수도 없다. 자연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의 영원한 본향이다. 인간이 순수와 진실을 동경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생명의 본향(本鄕)에 대한 끊임없는 향수, 그것이 자연과 인간의 인연이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순수하고 진실하다. 이 말은 자연은 영원히 순수하고 진실한 것이라는 말과 같다.
거친 문명의 폭풍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허위와 반역뿐이다. 인간은 이 문명의 거친 폭풍 속에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연으로의 귀환을 도모해야 한다.
문명은 많은 편리를 제공하고, 그 혜택으로 우리가 얻어낸 결실도 적지 않다. 먼 거리를 짧은 시간 내에 도달할 수 있게 한 것도 문명이 이루어 놓은 편리의 방편이고, 자연 환경의 악조건 속에서 최소한의 어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문명의 혜택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로 인식되던 것을 현실로 이루어낸 것도 문명의 결과다.
인간은 이 편리함에 매료되어 많은 것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채 살고 있다. 우주의 질서와 같이 순리적으로 운행되어야 할 일들이 저마다의 욕망으로 방향을 잃고, 극에 달한 이기심으로 방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가 알아주건 말건, 꽃이 피고 지듯, 자기가 가진 빛깔과 향기로 산야를 물들이듯 우리의 생활도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의 생활이 건조하고 각박해진 이유는 자연의 내재적 의미에 귀 기울이지 않은 잘못 때문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흐름이다.
물이 흘러가듯, 봄이 가면 여름이 그 자리에 들어서듯, 흐름을 멈추지 않는 것이 자연의 질서다. 자연은 인간의 무모함도 용서하는 관용의 자세로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귀속되어, 그 내재적 의미를 전수받아 수용해야만 한다. 모든 불신의 벽을 허물고 화해의 길을 열어, 보다 건강한 우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자연 앞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야만 한다.
새로운 계절의 문이 열리고 있다. 지난 시간 동안 우리를 채우고 있던 모든 허물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우리로 태어나야 할 때가 왔다. 언 땅을 비집고, 새 생명의 움이 대지 위로 기어 오르듯...
이 계절에는 누구를 미워하기보다는 미워해야 할 상대를 용서하고, 가슴으로 이웃하는 일에 열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익숙해진 불신의 벽을 허무는 지름길이며, 후회 없는 삶을 향하는 유일한 길이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자신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면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두터운 벽을 허물고 공동의 뜨락을 마련하면서 완성된다.
이 계절에, 들리지 않는 소리와 보이지 않은 자연의 오묘한 형상에 마음의 일부를 맡겨보자. 우리가 영원히 지니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은 잠시 곁에서 머무는 것일 뿐, 영원히 함께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그것을 좇는 일에만 정신을 빼앗길 때가 많다. 자연은 그때마다 우리에게 경고해 줄 것이다. 한낱 애착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의 주변은 온갖 것으로 오염되어 그 형상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뀌었다. 이를 치유하는 유일한 방안은 자연과의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오만과 치기의 벽을 허물고,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 자연과의 조응(照應)을 지속해야만 한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세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 첫 번째가 스승이다.
영원히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존재, 어떠한 난관에서도 바른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스승이다. 스승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존재가 자연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나 언제나 힘이 될 수 있는 강한 힘의 소유자인 자연을 통해 우리는 오늘의 난관을 해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만나야 할 사람이 친구다.
자연은 친구로서의 부족함이 없다. 같이 웃고 떠들 수는 없지만, 피곤하고 지쳤을때, 함께 있어줄 수 있는 아량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자연이다.
마지막으로 만나야 할 사람이 배우자다.
영원한 동반자로서의 존재로 자연은 부족함이 없는 실체다. 허물없이 가슴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자연이다. 자연은 평생 벗하고 살 수 있는 친근한 존재로 부족함이 없다.
스승과 친구보다, 동반자보다 더 친숙하고 친밀하며 친절한 자연의 사랑만이 우리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절대적 존재다. 그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인성(人性)의 회복으로 우리의 현대병은 치유될 수 있다.
자연은 늘 세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키고, 계절은 이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언제나 태양의 빛깔을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