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2

160. 이 청정의 가을에

자한형 2022. 1. 1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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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정의 가을에 김초혜 시인

눈물처럼 슬픈 가을이 온다. 바람으로 먼저 오는 가을, 그리하여 우리의 살갗을 스치며 영혼을 춥

게하고 마침내 우리를 허무라는 지향 없는 방황 속으로 끌어 들인다.

그리고 가을은 하늘에서 온다. 그리하여 우리의 눈을 맑게하고, 영혼을 슬프게 울리고, 고독이라는

끝 모를 시간 앞에 우리를 무릎 꿇게 한다.

.......

가을밤 창문을 열어놓고 잠언록이라도 펼칠 일이다. 그리고 한 구절씩 되새김하여 읽어 볼 일이다.

그리하면 거기에 일상의 소란 속에서 망각했거나 잊혀진 우리네 삶의 맑은 강물이 흐르고 있음을 발

견하게 되리라.

가을을 깊이 앓는 일은 순결한 일이며 고결한 일이다, 그 밀도만큼 자신의 삶이 정화되고 맑아진다는

것을 채득하는 길이다.

........

 

아름다운 우리 수필 중에서

가을이 왔다.

새벽이 어둡다. 밤이 길어진 것이다.

슬그머니 이불자락을 끌어당겨 몸을 감싸고 열려진 칭문이 닫고 싶어진다.

불을 켜면 이불 속의 아늑함이 사라질 것 같아 망서려진다. 어둠이 주는 편안함에 녹아버리고 싶은 새벽이다.

그러나 어둠과는 상관없이 내 몸의 리듬은 이미 잠을 떠났다. 재채기를 시작한다.

몸으로 찾아 온 가을의 징표다.

책을 읽어야 한다.

년초에 세운 계획대로 한다면 몇 권의 책을 더 읽어야 한다. 계획이 아니더라도 읽었어야 했다.

새벽이면 머리맡의 책을 읽던 오랜 습관을 언제부턴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물 받은 책이 3권이나 있었지만 몇 줄 읽지 못하고 책장을 덮곤 하였다. 글자만 겉돌고 마음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 못지않게 불안한 것이다. 이런 증상이 몇 개월 째 이어졌다.

그 증상의 원인은 김현의<강산무진>을 읽고 난 후유증이 컸던 때문이다.

한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그 글 속의 주인공들이 내 곁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닌 아픔이 내 가슴에 그대로 이입되어 떠날 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리 만큼 냉정하고 매마른 문체로 써 내려간 글임에도 내 마음의 울림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달 동안 다른 책을 읽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이제 서서히 그 굴레에서 벗아나려 한다.

어제밤에 책을 읽었다.

수필은 마음을 편안하게 정화시켜 준다.

'아름다운 우리 수필'을 읽으며 내 마음에 빈자리가 많음을 본다.

한 편의 수필로 하여금 다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새벽잠에서 깬다 해도 걱정을 덜할 것이다.

머리맡에 두었던 책을 읽기 시작해야 겠다. 잠시나마 그 작가들을 내 안에서 몰아냈던 것을 미안해 한다.

나는 또 다른 주인공들의 삶을 유영하며 그들과 어울려 보려 한다. 마음의 빈자리도 채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