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 단편 소설

굴레

by 자한형 2022. 2. 17.
728x90

굴 레  -염상섭

 

1

 

비는 뜸하였지마는 벌써 통행금지시간이 가까와오는데, 영감은 어디서 비에 막혔는지 들어오지 않는다. 비에 막혔기로 택시만 집어타면 그만일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저녁밥을 나가 자시는 일이 없고, 별로 사랑 소일을 하러 다닌다거나 친구 교제가 넓은 것도 아니니, 그저 출입이래야 아침저녁에 소풍 삼아 배우개 장에 나가서 물정도 보고 한바퀴 휘돌다가, 대개는 반찬거리나 사들고 들어오지 않으면, 취대(빚놀이)나 너더댓 채 가진 집의 세전이 밀리면 그것을 채근하러 다니는 따위의 볼일쯤밖에는 없는 영감이다. 오늘도 서퇴(署退)가 되자 의관을 하고 나서기에 철원집은,

다 저녁때 어디를 가시는 거요? 요새 또 공고(公故)를 치르러 다니는 데가 생긴 게 분 명하지!

하고 비꼬면서 내보내지를 않으려는 생각도 들었으나 장에 가서 민어나 한 마리 사다 먹을까 하며 어쩌고 어름어름하기에 그대로 내버려두었던 것인데, 정말 민어를 사 가지고 어느 년의 집에를 가서 민어국수나 민어회를 먹느라고 이렇게 늦는지, 철원마누라는 모기장 속에 혼자 누워서도 얼밋거리는 시계만 쳐다보며 귀를 대문간으로 모으고 있었다.

열한 시를 땡땡 친다.

「……! 아무래두 또 병통이 단단히 난 거야

철원집은 혀를 끌끌 차며, 고쟁이 바람으로 모기장 밖을 나와 문지방 밑으로 다가앉아서,

아범은 들어왔니?

하고 아랫채에 소리를 쳐본다.

안 들어왔어요.

며느리가 툇마루로 나서며 대꾸를 한다.

열한 시를 쳤는데 모두 붙들렸단 말이냐? 젊은 것두 못된 것 닮아서……」

하고 마누라는 아들마저 난봉이 났다고 또 혀를 차며 담배를 붙인다.

더위에 잔뜩 들어 앉았어두 성이 가셔요. 어련히 들어올라구요.

며느리는 영감을 하도 바치며 꿈쩍을 못하게 하는 시어머니가 못마땅해서 이렇게 대꾸를 하며,

그런데 아버님께선 웬일이세요?

하고 불도 끄고 컴컴한 건넌방을 바라본다.

정녕, 그년을 또 어따가 끌어다논 거지 ! 민어를 사들구 그년의 집에를 가서 민어회에 관격이 된 거라. 늙은 게 마지막 기를 쓰느라구…… 저러다 며칠 못 살구 거꾸러질려 구!

마누라는 영감의 방까지 미운 듯이 건넌방을 흘겨보고는,

그래두 너희는 짐작이 있을 게지 ? 그렇게 모를 리가 있니.

하고 또 이런 소리를 꺼내었다. 그년이란 작년 겨울에 숨어사는 것을 기어코 발견해내서 세간을 짓부수고 헤어지게 하였던 개성집 말이다. 이래저래 이 늙은 내외는 점점 더 버스러져서 올봄부터는 방을 각각 쓰게 되었지만, 각방을 쓰게 되자 어디를 가는지 영감의 낮 출입이 잦아가고, 보약은 전부터도 먹던 것이라 하더라도 온 여름내 약이 떠날 날이 없으니 이런 것도 의심스러워 늘 들컹거리는 조건이 되었다. 그것은 고사하고 요새 와서는 아들 내외더러 눈치를 챈 것이 있을 터이니 알려바치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밤낮 들어 앉았는 제가 무얼 알겠어요.

며느리는 언제나 하는 똑같은 대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만둬라. 내일은 내가 나서볼 거다. 이놈의 늙은이가 자기 손으로 제물에 광중(壙中)을 파놓고 들어가 누워서 콧노래를 부르고 자빠졌다마는 자기를 하루라두 더 살리려구 그러 는 줄은 모르구……」

마누라는 아랫입술을 악물며 성미가 부르르 났다. 올해 쉰 넷이라 하여도 머리 하나 세었을까, 전등불 밑에서 보면 분이라도 바른 듯이 부옇고 피둥피둥한 얼굴이 이젠 한 사십쯤 된 성싶다. 사실 날마다 분세수도 하고, 영감이 어름어름 달래서 아들의 식구를 아랫채로 내려쫓고 건넌방으로 옮아간 뒤부터는 웬일인지 몸가축도 전보다 더하는 마누라였다, 물론 마누라가 안방에서 영감을 떼민 것은 아니었다. 육십이나 되는 늙은이가 마치 젊은 애들처럼 보약 먹겠으니 딴 방 쓴다는 말도 우스운 말이었지마는 영감은 하여튼 그런 핑계로 슬며시 안방을 빠져나간 것이었다, 마누라가 보기 싫게 늙어 가는 것도 아니요, 영감을 지성껏 아껴주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아니다. 이십여년이나 보아온 그 거벽스러운 얼굴이 이제는 싫증도 나거니와 그보다 젊었을 때에 지지 않게-아니, 젊었을 때보다도 한술 더 떠서 툭하면 입이 부어가지고 자리에 누웠다가도 일어나 앉아서 남 잠도 못 자게 옆에서 까닭 없이 찡얼대고 들볶고 하는 그 생강짜에는 웬만큼 넌덜머리가 나서 마루 하나 격해서나마 피접을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마누라의 감독이 나날이 더 심해가고 그 잔소리에는 세어가는 머리가 빠질 지경이었다.

대문이 찌걱하는 소리에 행여 영감인가 하고 마누라는 눈이 번쩍하였으나, 떨거덕거리며 문을 잠그고 아들이 들어온다.

아버지 안 들어오셨어?

아들은 뜰에서 뚱키는 아내의 말에 예사로이 대꾸를 하고, 제방으로 들어가려 한다. 방 문턱에 앉았던 모친은 아들이 걱정을 아니하는 말눈치에 또 의심이 버쩍 났다.

너두 아버지 따라 그년 집에 가서 민어국 얻어먹구 오니?

하고 모친은 비꼬아보았다. 아무래도 아들놈까지 부친에게 돈 얻어 쓰던 맛에 부친의 비밀을 알고도 어미에게까지 속이는 것만 같았다.

난 몰라요.

아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부친이 숨어다니다가 이제는 아주 터놓고 개성집에게 가서 자는 것이고나 하는 짐작만은 들어갔다. 부친이 개성집을 다시 데려다가 냉동에 새로 배포를 차려놓은 것이 벌써 올 봄 일인 것은 누이에게 들어서 아는 일이나, 어머니의 그 성미가 무서워서 남매는 입을 봉하기로 짰던 것이다.

그만둬라. 돈이 무언지, 돈만 있으면 자식두 매수를 하는가보더라마는 난 돈 없다든? 다 시는 내게 돈 달라구 손을 내밀어봐라!

모친의 입이 삐쭉하였다. 사실 철원집은 철원집대로 집과 땅을 나누어 가지고 있기도 하였지마는 이십여 년을 이 영감과 사는 동안에 구미구미 모아둔 봉창돈으로 지금 빚 놀이에 풀어논 것만 해도 상당한 것이었다.

아들은 껄껄 웃다가,

그러지 않아도 한 만원 내일 쓸 데가 있는데, 운동비로 만원만 내놓으세요. 사람을 내놓 으세요. 사람을 내세워서 알아드릴 께니요.

하고 제방으로 들어간다.

, 저번 봄에 집 파시구 어디 다시 사신 것 알겠구나?_I

모르죠.

영감이 집 시세가 떨어질 때까지 아직 사지 않겠다는 말을 그럴듯이 들어오면서도, 새집을 사거나 혹은 세놓아먹는 집 중에서 한 채가 비어 개성년이나 어떤 년을 들여앉혔으려니 하는 의심이 늘 떠나지를 않던 터이라, 내일은 그 집들을 모조리 뒤져볼 작정이나, 숨어살자면 새집을 샀으려니 싶은 것이다.

아들 식구가 제방으로 들어간 뒤, 마누라는 자기 열쇠꾸러미를 꺼내들고 영감 방으로 건너갔다. 지금 들어 있는 이 집문서는 자기가 맡아 있지마는 다른 것은 영감이 손금고에 넣어둔 것을 잘 아는 터이라 그것을 맞은쇠질을 해서 꺼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양복장 아랫서랍은 맞은쇠질로 단박에 열고 그 속에 둔 손금고를 꺼냈으나 이것만은 맞는 쇠가 없다. 머리맡의 책상서랍에 두고다니는 영감의 열쇠꾸러미를 꺼내자면 책상서랍 두개를 얼러서 거멀을 하고, 조그만 백통 맹꽁이자물쇠를 세워놓았으니, 이 맹꽁이자물쇠가 또한 문제다. 영감이 오늘 나가서 잔 이 중대한 <>를 생각하면 책상을 도끼로 쪼개고 열쇠를 꺼내기로 영감이 꼼짝 못하고 큰소리 한마디 못할 것이지마는 그래도 물건이 아까와서 재봉틀의 나사못 빼는 것을 가져다가 거멀의 나사를 빼기 시작하였다. 나사 두개를 빼고 우선 오른편 서랍을 열고 보니 만원 뭉치가 여남은 꼭꼭 늘어 놓인 앞에 열쇠꾸러미가 들어 있다. 그까짓 돈은 눈도 아니 떠보고 열쇠꾸러미를 집어내면서, 마누라는 무심코 귀를 대문 있는 편으로 기울였다. 설령 영감이 들어와서 들킨대야 무서울 것은 조금도 없지만 텅 빈 대청에서 깊어가는 밤중에 혼자 이런 일을 꾸물꾸물하고 있는 것이 무슨 도둑질이나 하는 것 같아서, 본능적으로 잠깐 흉칙스럽고 무서운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손금고를 열어 이 봉투 저 봉투를 꺼내 보는 중에 집문서가 나왔다. 까막눈의 마님이라도 집문서는 늘 보아서 알았다. 그것은 고사하고 문서가 다섯 장인데, 마누라는 우선 시앗의 머리채나 붙든 듯이 속으로 허 하고 반색을 하는 것이었다. 다섯 채에서 한 채를 팔았으면 넉 장이 있어야 할 터인데 다섯 장이란 말이다. 새집 한 채를 또 사놓고도 속인 것은 뻔한 노릇이다.

, 얘 어멈아, 좀 올러온.

아랫방에다가 소리를 쳤다. 날짜는 알아볼 수 있어도 겉짐작으로 새집 문서를 골라잡기는 하였으나 동리 이름을 알 수가 없으니 며느리를 불러내는 것이었다. 벗고 누웠던 며느리가 꾸물거리고 나오는 것을 기다리기가 갑갑하였다.

이것 좀 봐다우. 어디냐?

냉동이군요.

며느리는 집문서를 받아들고 속으로는 웃으며 대답을 하였다.

삼월에 산 거지?

.

그것 봐! 삼월에 사 놓고 그 집 값 치르느라구 한 채를 판 것일 텐데, 어저께까지두 집 은 안 샀대지 않으시던. 그 혓바닥부터 빼놓을라!

마누라는 종이쪽지를 다시 받아서,

냉동 XX번지 !I

하고 번지수를 똑똑히 들여다보고는 다시 봉투에 넣으며, 며느리더러는 책상서랍의 나사못을 다시 박으라고 일을 시킨다.

그런데 그거 뭐예요?

며느리는 나사를 박으며, 영문을 도무지 모르는 듯이 묻는다.

어림없는 너 같은 소리두 한다. 어떤 년인지 이번에는 내가 데려다가 실컷 부려두 먹구. 말려죽이련다!

마누라의 목소리는 덜덜 떨리었다.

 

2

 

자정이 넘어 자리에 누워서, 네시를 치고 동이 틀 때까지 그 너덧 시간이 왜 그리 지루한지, 하룻밤 새에 철원집은 그 부풀부풀한 얼굴이 다 까칠해지고, 잠을 못 잔 눈은 핏발이 서고 퀭하였다. 세수를 부리나케 하고 옷을 갈아입고 다섯 시가 되기만 기다리고 앉았다가, 땡 소리가 나자 자는 며느리를 깨워놓고 철원집은 팽이같이 나섰다.

여기 연건동에서 냉동까지면 서대문까지 전차를 한 구역은 타야 한다. 게다가 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하던 동리여서 찾기에 거진 두 시간은 걸렸다. 이른 아침이라 이런 골짜기에는 대문 열어논 데도 드물지마는 행인도 급급히 공장에 나가는 사람 아니면 해장국집이나 가는 사람들뿐이다. 그래도 큰길 가게에서 대중치고 일러주는 대로 뺑뺑 돌아서 어쩐 둥 비슷한 번지를 찾아놓고 더듬으려니까, 문패도 번지도 없는 집 한 채가 나타났다. 아래윗집 번지로 보아 분명 그 집이요, 금방 영감의 기침소리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덮어놓고 문을 흔들었다가 개성집 같으면야 모르거니와, 코빼기도 못 보던 젊은 년이 나와서 시침을 뚝 떼고, 그런 이는 모른다고 잡아떼면 남의 집에 들어가서 안방을 뒤져보자나 ? 조급한 생각을 하면 당장에 뛰어들어가서 자리에 나자빠졌는 영감의 목을 그대로 눌러서 썩썩 비는 꼴을 보고 싶으나, 아무리 부푼 성미의 철원집도 마지막판에 섣불리 서둘렀다가는 물위에까지 끌어낸 고기를 낚시째 떠내려보내는 수도 있으니 싶어 신중을 기하여야 하겠다고, 옆집 문전에 몸을 비켜서서 영감이 나올 때만 기다리기로 하였다. 영감이 나오지 않더라도 옆집에서 누구든 얼굴을 내밀면, 저 집 동정을 물어볼 수도 있으려니 싶어 어쨌든 섰는 것이다. 그러자 마침 뒤에서 대문이 삐걱 열리는 소리가 나며, 젊은 아낙네가 수수비를 들고 나온다.

아씨, 저집 성씨가 뭔가요?J

철원집은 반색을 하며 말을 붙였다.

두 가구가 사는데…… 안집은 김씨라든가요?

아낙네는 꾸부리고 비질을 하기 시작한다

, 그 김씨가 노인네죠?

그런가봐요?

옆집 아낙네는 그제서야 무슨 짐작이 드는 일이 있는지 비든 손을 쉬고 철원집의 무엇에 몰려온 것 같은 당황한 나이 먹은 얼굴을 갸웃이 쳐다보는 것이었다.

주인댁은 노상 젊죠?

. 애어머니는 이제야 첫애로 요전에 돌잡이를 했는데요.

철원집은 <첫애>라는 말에 입이 뒤둥그러졌지마는, 요전에 돌을 잡혔다는 말에는 목구멍이 콱 막혀서 꼭 닫힌 문전만 흘겨보다가 비질하는 아낙네는 내던져두고 단걸음에 문전까지 뛰어들어갔다. 문을 흔들어서 떼미니 찌걱하고 힘없이 열린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이놈의 영감 벌써 집으로 간 게로구나 !>

하는 생각이 든다. 막 밝자 뛰어나선 것은 현장에서 영감을 붙들고 그 자리에서 요정을 짓자는 것이었는데 집 찾느라고 거레를 하는 동안에 놓쳐버린 것이 분하다. 하여간 중문을 들어서 안마당으로 곧 들어서려니까,

, 어디를 갔다가 왜 이제야 오는 거요?

하고 마루에 노란 구두를 신은 채 걸터앉았던 영감이 반가운 손님이나 기다리고 앉았었다는 듯이 껄껄 웃는다.

딴은 육십이나 된 노인이 흰 양복에 파나마를 머리에 얹고, 캥캥한 편이나 정력적인 동안(童顔)에 혈색이 아직도 좋고, 젊어서는 난봉깨나 피웠을 성싶지마는 세상에 어려운 것을 모르고 한평생을 지냈으니만큼 늙어도 버젓이 주짜를 빼고 남에게 굽히려 들지 않는 고집이 있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 무턱대고 호인인 듯한 어설프고 삐진 데가 없어 느슨한 데가 있기도 하였다.

이 망종아 !

마누라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뜰 한가운데 딱 서서 외마디소리로 <이 망종아!>를 불러놓았으나, 끓어오르는 분기에 말이 탁 막히고 말았다

, 어제는 철원 최참봉을 만나서 새집 들었으니 집 구경을 가자구 끌기에 잠깐 앉았다 온다는 것이 술상이 나오구 비가 쏟아지구 하는 바람에 좀 과음을 했거든……」

하며 영감은 축대로 올라오려는 마누라를 가로막듯이 같이 가자고 마주 내려선다.

, 다 알았어 ! 그래 안방의 최참봉 영감을 좀 만나러 왔어.

글쎄, 내 말 들어봐요. 그래 거기서 쓰러졌다가 탁 밝자 집에를 들어갔더니 마누라는 여 기는 왜 찾아 나섰는지 왔다기에 뒤쫓아온 것인데 내가 먼저 왔구먼. 어서 갑시다. 이 집 은 내 친구한테 빌려준 거야.

마누라의 팔을 정답게 끼며 끌고 나가려니까 철원집은 뿌리치며,

, 알았어 ! 난 그 <친구>를 만날 일이 있어 왔다니까……」

하고 그 뚱뚱한 몸집이 축대로, 마루로 신발을 신은 채 비호같이 뛰어올라가더니, 안방 문을 화닥닥 열어젖혔다. 아직 걷지 않은 모기장 속에는 큼직한 요 하나에 베개가 둘이 나란히 놓였고, 옆에는 어린애 요와 홑이불들이 널려 있으나 방안은 텅 비었다.

네깐 년이 숨었으면 어딜 숨구, 달아났으면 어디루 달아났겠니!

철원집은 그 자리와 베개에 한번 더 눈이 뒤집힐 것 같으면서 여전히 신을 신은 채 뛰어들어가서, 모기장을 휘어밀고 다락문을 열어보았다. 역시 사람은 눈에 안 띄고, 너저분한 앞턱에는 눈에 익은 영감의 손가방이 놓여 있다. 마누라는 가택수사에 물적 증거를 잡은 듯이 한층 기가 나서 묵직한 가방을 들고 한 귀퉁이가 떨어진 모기장을 짓밟으며 서창을 밀치고 내다보았으나, 역시 계집의 그림자는 간데 없었다.

아주 마음놓고 돈을 반 가방씩 실어다놓구 쓰는구나!

하고 가방을 보면 영감도 더 앙탈은 못하려니 하는 생각으로 들고 나오던 가방을 마루 끝에다가 탕 내어 던지며 주르르 건넌방으로 내닫다가 뜰 아래를 힐끔 보니, 거기 섰을 영감조차 없어졌다. 아랫방에서는 나이 지긋한 여편네가 나와서 화로에 불을 피우는 모양이다.

? 이눔의 영감마자 들구 뛰었구나 ! 어디루 갑디까?

마누라가 단걸음에 뛰어내려오며 묻자,

지금 두 분이 나가시던데요.

하는 아랫방네의 대답도 채 들을 새 없이 문 밖으로 달음질을 쳐 나왔다.

너희들이 갔으면 얼마나 갔으랴 하고 헐레벌떡 큰길까지 나왔으나, 위로 갔는지 아래로 갔는지 이제는 해가 퍼져서 사람이 우글거리니 좀처럼 찾을 가망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하여간 감영 앞 전차정류장까지 내려가 보리라 하고 달음질을 치자니까 아랫골목에서 하얀 양복에 파나마를 쓴 영감의 그림자가 쓱 나타나며 마침 지나는 택시에 손을 들다가, 마누라가 대엿 간통 위에서 허덕허덕 내려오는 것과 눈이 마주치자 머쓱해서 들었던 손을 떨어뜨리며 허허허 웃어버린다.

마누라는 이때처럼 영감이 대끝까지 밉고도 반가운 때는 없었다.

아이를 업고 뒤를 따라나오던 개성집은 자리옷을 입은 채니 주제도 꾀죄죄하였지마는, 골목 모퉁이에서 철원집과 얼굴이 딱 마주치니 고양이 만난 쥐였다. 작년 겨울에 지독한 서리를 맞아본 경험이 있는지라, 얼굴이 해쓱해지며 입술이 까맣게 탔다.

이년아, 그래두 혼이 덜 난 페로구나? 젊으나 젊은 년이 세상에 서방이 없어 저런 늙은 이한테 또 기어들어?

거리가 아니면 곧 머리채를 휘두를 형세다. 영감도 단념하고 택시를 보낸 뒤에 마누라를 달래며 골목으로 다시 끌고 들어섰다.

 

3

 

너 밤에는 젊은 서방이 자구 나가면, 낮에는 늙은 서방이 다녀가구 팔자 좋더라, 동네에 서 들어 내 다 안다.

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철원집은 개성집의 머리쪽지부터 휘어잡고 맴을 돌렸다.

늙은 서방 등골을 뽑아서 얼른 죽게 해야 집 한 채라두 어서 생기겠다는 거지 ? 요눔의 새낀 뉘눔의 새끼냐? 그 잘났다, 영감 쏙 빼썼구먼.

아랫방네가 하도 딱해서 업힌 아이를 풀으라고 하여 아랫방으로 받아 들여가는 것을 철원집은 앗아서 동댕이라도 치려는 듯이 펄펄 뛰는 것이었다.

그만 고정하세요. 애어미두 불쌍해요. 무슨 욕심이 있는 거 아니구, 이 애기 하나 때문 에 영감님을 또 모시는 거지…… 애 어머니두 마음씨가 무던해요.

아랫방네가 개성집의 역성을 드는 것이었다. 그 말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부엌문 밑에 얼굴이 파래서 섰던 개성집은 눈물을 주르륵 흘렸으나, 철원집은 한통속이 되어서 방에다가 감추어두었다가 달아나게 하고 역성을 들고 하는 것이 밉고 분하여서, 개성집과 어떻게 되는 일가붙이나 되느냐, 한통이 되어서 어수룩한 영감을 빨아먹기로만 위주냐고 이번에는 아랫방네와 맞붙어서 또 한바탕 악다구니가 벌어졌다.

영감은 이것을 뜯어말리기에도 진땀을 뺐으나, 언제처럼 세간을 또 들부술까봐 무서워서, 마누라가 하자는 대로 둘이 같이 나가서 이삿짐꾼을 불러다가 당장에 짐을 내어 실렸다. 그렇게 못 떨어지겠거던 함께 들어가서 살자는 것이다.

<……어림없는 소리 !>

영감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으나, 마누라 성미를 뻔히 아느니만큼 하루라도 함께 사는 수도 없지마는 그렇다고 들어가자는 것을 못한다고 할 용기도 없고, 또 그랬다가는 개성집이 더 얻어맞고 볶일 것이 애처로워서 허허허 하고 안 나오는 웃음만 웃고 앉았다.

육십이 되도록 계집의 궁둥이나 줄줄 쫓아다니구, 집세전이나 쩔쩔거리구 다니며 받아 다가 저년의 아가리로 퍼붓고 앉았다가 죽으려는 거지 ? 이 딱한 늙은이야, 며칠을 살겠 다구 기를 쓰는 거야? 정신을 좀 차려요.

짐을 다 실어놓고 직성이 좀 풀리니까, 철원집은 담배를 피워 물고 마루 끝에 앉아서 영감을 타이르는 것이었다.

임자는 내 뒤나 밟아 다니면서 시앗 샘하느라구 이가 다 빠져 오물할미가 되었습더니까 ? 저 기승이 앞으루 몇 해나 남았을꾸……」

영감의 말에도 한숨이 섞였다.

내 이탓은 왜 해. 내 이하구 살았던감?

마누라는 근년에 낙치가 심하여 전부를 다시 해 박고, 더 젊어진 듯이 혼자 좋아하고 잇속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피차에 다 늙으니 기승 고만 떨구 좋두룩 지내잔 말야.

누가 할 소린지!

마누라의 말소리도 한풀 꺾여서 구슬프게 들렸다. <육십>이니 <늙게>니 하는 말이 새삼스럽게 쓸쓸히 들려서 피차에 적막을 똑같이 느끼는 것이었다. 늙은 두 양주의 눈은 무심코 부엌문 앞에 섰는 개성집에게로 갔다. 수심에 싸여 맥을 놓고 섰는 꼴이 가엾다는 생각도 똑같이 들었으나, 그 토실토실한 두 볼을 아름답게 보면 부러운 마음도 일반이었다.

연건동 집으로 짐을 날라다놓고, 건넌방은 개성집에게 내주라는 마누라의 분부대로 영감이 다시 안방으로 이사를 갔다. 영감은 마누라의 쪽 고른 잇녹과 유들유들한 얼굴을 자나깨나 다시 마주보고 앉았어야 하는 것은 고사하고, 잠시 한 때 몸도 마음대로 놀릴 수 없이 마누라의 감시가 어찌나 심한지,

<……이거 감옥살이보다 더 호되구나 !>

하고 영감은 울화가 뻗치는 것을 꾹 참고 마누라의 비위 맞추기에 전력을 다하였다. 개성집은 개성집대로 입은 봉하고 몸은 부지런히 놀리니 마누라의 잔소리도 차차 줄어들고 젊은것들의 동정도 샀다. 그러자 냉동 집을 딸에게 주자는 의논이 마누라 입에서 나왔다.

아무래두 좋지.

어차피 지금 들어 있는 딸의 집도 자기가 사준 것이니, 간살이 크고 얌전히 손질을 하여놓은 애첩의 집을 바꾸어주기는 아까운 생각도 드나 마누라의 뜻을 거슬린다는 것은 차제에 금물이었다.

개성집이 이리로 옮아온 지 한 열흘 지나서 딸은 동대문 밖 경마장 앞에서 대문 밖으로 이사를 갔다. 이날 마누라는 영감이 점심 후에 시장에 나가서 한바퀴 돌고 집에 들어오겠다고 나간 틈을 타서 며느리에게 개성집 단속을 단단히 일러놓고 딸의 집 드는 것을 보러 시급히 냉동으로 갔다. 영감은 영감대로 시장을 돌면서 굴비니, 암치니, 고기니, 늘 하는 버릇으로 반찬거리를 한 묶음 사들고 들어왔다. 들어와 보니 마누라가 없다. 금시로 집안이 환하고 기죽을 펼 것 같고, 건넌방을 마음놓고 들여다보는 것만 해도 사람이 살 것 같다.

어떻게 해요? 난 개성으로 갈 테예요.

개성집은 자는 아이 앞에 앉아서 푸새를 만지다가, 애원하듯이 쳐다보며 생긋 웃어 보인다, 이 집에 온 뒤로 처음 말을 붙여보는 것이요, 몇 해 만에 보는 듯 싶은 귀여운 웃음이 었다.

, 가만있어. 갈 데가 있으니 옷을 넌지시 갈아 입구 있어.

영감은 이 한마디만 남겨놓고 풍우같이 나가더니 조금 있다가 들어와서 다짜고짜 아랫방에 대고,

. 아랫방 아가, 건넌방 애 에미는 세시 차루 개성으로 내려보내련다. 너 시어머니가 있으면 또 이러니저러니 말썽스러우니까 없는 틈에 버릴 작정이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당부도 있어서 무슨 야단을 만날는지 겁도 나지마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더구나 자기 첩을 보낸다는 것을 가로막고 나설 만한 일은 못되었다. 이불 보퉁이와 옷 보퉁이를 거들어 급히 뭉뚱그려다가 밖에 기다리고 있는 택시에 실려 세 식구를 훌쩍 떠나보냈다. 그 동안에라도 마누라가 달려들까 봐서 겁을 벌벌 내던 영감은 차가 움직이기를 시작하니 웃음이 저절로 떠올랐다. 벌써 열흘을 두고 궁리궁리 하여 놓은 계획이 이렇게 손쉽게 단행된 것만 다행하였다.

 

비가 축축히 오는 날이었다. 벌써 옥양목 적삼은 입을 때니 늦장마 끝의 가을이었다. 철원집은 우산을 받고 경마장 앞 예전에 딸이 살던 집을 찾아와서 안으로 걸려 있는 앞대문을 삐걱삐걱 흔들어보고는 문틈으로 마당을 들여다보았다. 쓸쓸하니 물에 젖은 검부러기가 뒤널린 마당에는 빗방울만 처량히 듣고, 인기척 하나 있을 리 없었다. 철원마누라도 쓸쓸히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뒤로 돌아서 부엌 뒤에 난 판장문이 그대로 잠겨 있나 돌아보러 왔다. 역시 떠나던 날 말이 잠가두었다는 맹꽁이자물쇠가 그대로 댕그렁하니 매달려 있었다. 이 집이 -그년의 자식은 왜 그리 주줄이 많이 달렸는지 올망졸망한 사오 남매가 온종일 드나들며 떠들썩하고 살던 딸의 집이었거니 하는 생각을 하면 철원마누라는 마음이 더 쓸쓸하고 우산 위에 듣는 빗소리조차 조용한 골자기에 유난히 구슬피 들렸다.

철원마누라는 또 공연히 헛애만 썼고나 하는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돌쳐섰다.

영감이 개성 집을 보낸다고 나간 뒤에 벌써 사흘이 되어도 집에는 얼씬을 아니 하니, 애꿎은 며느리 탓만 하고 혼자 집 속에서 법석을 해보았어야 숨어버린 영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생각다 못하여 어제오늘 이렇게 나서서. 이번이야말로 다섯 채의 집을 모조리 뒤지고 다니는 판이었다. 개성으로 보낸다는 말이 발간 거짓말인 것이야 처음부터 안 일이지마는, 그래도 설마 늙은이가 계집을 꿰어차고 도망질이야 할까 싶었던 것이다. 또 도망을 쳤기로 무어 지질한 본가라고 개성까지 쫓아갔을 리는 없고 시내에서 여관 같은 데 하루 이틀 숨어 있었기로 요새 같은 비싼 여관비를 물고 있을 그런 영감도 아니었고 보니, 또 어느 집으로나 한 채 치우고 들었을 것이라고 찾아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네 채는 다 소리 없이 들어 있었다. 그러면 빈집이니 당장 발각은 나더라도 딸이 살던 이 집에나 와 있을까 하고 마지막으로 비를 맞아가며 나와본 것이었다.

갔에요 ? 갔에요?

다락문을 방긋이 열어놓고, 간이 콩알만해져서 어린것에게 젖을 물리고 앉았던 개성집이 소리를 죽여 묻는다, 앞문이 삐걱삐걱하는 소리에 다락으로 기어오르고 영감도 따라 올라가 숨으려다가, 앞뒤로 망을 보며 뒷문 곁으로 난 안방 들창 밑에 매달려 숨을 죽이고, 유리구멍으로 마누라의 차차 멀어져 가는 쓸쓸한 풀 없는 뒷모양을 바라보며 섰는 것이었다. 마누라의 진흙이 튄 발꿈치가 허리께로, 허리께가 검정우산 밑으로 가리우며 멀어가더니, 마지막 우산 꼭지가 보이고는 그나마 사라지고 말자 호젓한 골짜기에는 인기척 하나 없이 가랑비만 살살살 내려앉는다.

영감은 마누라의 뒷모양이 눈에 안 띄게 된 것이 조바심을 하던 마음은 후련하게 놓이면서도 어쩐지 커다란 적막이 가슴속에 꽉 내려앉는 듯 뒤도 아니 돌아다보고 어느 때까지 길 건넛집, 비에 젖은 지붕만 멀거니 바라보고 섰다.

먹을 것이 없었더라면 그래서나 저럴 것이요, 젊었을 때 같으면 젊어서나 그렇다 할 것이지 얼마 남은 평생에 쓰고도 남을 만큼 너끈히 미리 나누어주었겠다, 제나 내나 늙어 가는 판인데…… 이런 생각을 하면 밉살맞다가도, 욕심에 끌려서 그러는 것이 아니니만큼 개성집보다도 정말로 자기를 생각하고 위하여주는 사람은 철원마누라거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비를 맞아가며 쩔쩔거리고 찾으러 다니는 것이 가엾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가 아주 반편으로 드러누웠던들 어땠을꾸…… 제가 젊어서 다른 데 눈을 뜰 수 있었어두 나를 놓칠세라구 기가 나서 쫓아다녔을까?>

영감의 머리에는 자기가 철원 집의 셋째 남편이었다는 고랫적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삼십도 못된 개성 집이나 꼼질거리는 재롱거리를 옆에 두고도 가다가다 적막하고 쓸쓸한 자기 심경을 생각하면 철원마누라에게 동정이 아니 가는 것도 아니었다.

, 그러나 비는 오지만 무얼 좀 먹으러 나가야지. 이젠 됐어. 또 올 리두 없고.

영감은 들창 앞에서 떨어져 나오며 다락에서 나오는 젊은 첩에게서 아들을 받아 손자 새끼 같은 것을 서투른 입내로 쩟쩟 어른다. 세 식구는 점심 겸 늦은 아침을 먹으러 비를 맞아가며, 안으로 빗장을 지른 앞 대문을 열고 나와서 또 쇠를 채웠다. 여관에서 물, 밥 사먹고 있을 수도 없어 집을 팔려고 미리 딸에게 일러둔 대로 열쇠는 복덕방 가게에서 맡겨두었기에 그것을 찾아다가 열고 우선 여기에 숨어 있기로 짐을 옮겨오고 뒷문에는 다시 자물쇠를 제대로 잠가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 속에서 벌써 이틀이나, 세 번째 꾸미는 이 늙은이의 가련한 <사랑의 보금자리>를 빈집에 들어가자는 거렁뱅이처럼 드새고 있었던 것이다. 영감은 비를 맞으면서도 위에 입었던 레인코트를 훌렁 벗어서 어미 등에 웅크리고 업힌 어린것에게 어미 알라 들씌워 주고는 또 자기의 가슴께를 만져보았다.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둔 집문서 다섯 장이 그대로 있나, 비에 젖지는 않는가 하고 애가 씌는 것이었다.

 

 

 

 

 

'현대 단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민 백서  (0) 2022.02.17
금수회의록  (0) 2022.02.17
갯마을  (0) 2022.02.17
어떤 파리  (0) 2022.02.17
약속  (0) 2022.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