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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 소설

55. 난초의 죽음

by 자한형 2022.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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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蘭草)의 죽음 -문순태

 

"이 에미 생가슴에 불무덤을 맹근 그 징헌 년이 뒈졌당께! 씨언허구만, 뭣흔다고 끄덕Rm 문상을 간다고 그러냐!"

부랴부랴 서둘러 일찌거니 퇴근을 하는 길로, 회사에 난초의 부고가 날아왔었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머니는 정감 먹은 얼굴로 약간은 놀라고 의아해하는 눈치더니, 이튿날 아침 문상을 갔다 오겠다고 하자 바르르 성깔을 돋구며 내 앞을 가로막고 서는 것이었다.

"그년은 뒈져서도 나 먼첨 또 네 아부지 차지흐게 생겼네."

어머니는 내 소맷자락을 힘껏 움켜잡으며 칼칼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은 사람 너무 욕하지 마셔요."

나는 어머니한테 괜히 난초의 부고를 알려 주었구나 하고 후회하고 있었다.

"그년 땜시 내 오장육부가 홍어 속이 되도록 푸욱 썩어 문드러진 것을 너는 모를 꺼이다."

"돌아가신 아버님 탓이지 어디 그 여자 잘못인가요."

나는 기름불 심지 튀듯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느글느글 웃으며 이죽거렸다.

"그년이 네 아부지를 홀린 거여. 난초 그년은 백여수 같이 사내들을 흘린 거여, 그년헌티 정신 뺏긴 사내가 못해두 두 도라꾸(트럭)는 될 꺼구만."

그러면서 어머니는 짚신나물 갈고리처럼 내 옆구리에 달라붙어서 한사코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옆에 있던 아내도 어머니가 그렇게 기를 쓰고 말리는데 뭣 때문에 회사까지 결근을 하면서 일껏 문상을 가려고 쇠고집을 부리냐며 낚싯바늘 같은 눈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하기야 나도 선뜻 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가까운 곳도 아니고, 버스로 두어 시간남짓 남쪽으로 내려가서 다시 배를 푸른 대리석처럼 판판하게 깔린 망망대해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외딴 새우섬까지 갔다 올 일을 생각하면 저절로 심신이 진흙처럼 나른해지는 것이었다.

허나 어떤 보이지 않는 질긴 밧줄이 나를 자꾸만 끌어당기고 있었다. 자꾸만 짙게 화장을 한 늙은 난초의 얼굴이 눈에 밟히면서, 휘파람새의 울음처럼 가늘게 얼어붙은 그녀의 목소리가 귓속에 가득 괴었다.

부고를 받아 든 순간부터,5년 전에 어머니 몰래 새우섬에 찾아갔을 때에 들었던 권유가 한 대목의 애원성이 끊임없이 되살아나곤 하였다.

 

에라만슈, 에라대신이야, 고금의 절세가인 멘멘이 돌아갔는고.

살아실 제 미색이요, 앗차하면 진토로다. 초토풍등 우리 인생들 어찌 아니 가련한가.

기다홍분 위왕이가 옛사람의 탄식이라. 황청말이 가는 길에 북망산도

말할씨고, 앞산도 불망이요 뒷산도 불망이라.

 

새우섬에서 만났을 때, 쭈그렁이가 된 얼굴에 덕지덕지 페인트칠하듯 두껍게 화장을 뒤발질하고, 젊은 새색씨처럼 연두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그녀는 푸념의 긴 실꾸리를 풀듯 슬픈 목소리로 권유가를 뽑았었다.

"어머니 놓아주십쇼. 그래도 한때는 아버님이 좋아하셨던 분이 아닙니까. 피붙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니 저라도 들여다 봐야죠."

나는 상여 소리처럼 되살아나는 난초의 권유가 한 대목을 떠올리며 사정하듯 어머니에게 말했다.

"죄닦음을 헌겨. 흙구덩이 같은 여자들 생가슴에 불무덤을 맹근 년인듸 고달프게 뒈져야재."

나는 끝내 어머니의 말을 듣는 등 마는 등 내 소맷자락을 움켜쥔 손을 뜯어 뿌리치듯 하고, 서둘러 집을 나와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난초는 젊었을 때 아버지의 첩이었다. 그녀는 새우섬 상여 바위 벼랑에 붙어사는 풍란(風蘭)처럼 몸피가 얄캉얄캉하게 가늘고 꽃처럼 자그마했지만, 새우섬 안통에 가득할 만큼 짙은 향기를 풀풀 피웠었다.

내가 여섯 살 때, 소금을 한 배 가득 싣고 목포로 나간 아버지가 열흘만에 그녀를 데리고 돌아와 치렁치렁 삼단 같은 머리를 올려 주었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싣고 간 소금을 몽땅 주고 기생집에서 사왔다고들 하였다.

아버지가 난초를 데리고 온 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안이 찌렁찌렁 울리도록 한바탕 싸움을 하였고, 아버지한테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마당을 질질 끌려 다닌 어머니는 끝내 머리를 질끈 싸매고 드러눕고 말았다.

그때 나는 아버지 어머니가 싸움 한 것이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가슴 언저리가 먹먹한 기분이긴 했어도, 집안에 큰 잔치라도 벌어진 듯 괜히 마음이 달떠서 쌩쌩 휘파람을 불며 고샅을 꿰고 뛰어 다녔다. 그것은 마치 2년 전 할머니가 세상을 떴을 때, 할머니가 땅 속에 묻힌다는 슬픈 생각보다, 친척들이 모여들고 마을 사람들이 벅신거리며 안마당에 불을 피워 밤을 새우고, 울글불긋 종이꽃 귀신 돈을 붙인 상여를 만들고, 밤이 되면 상두꾼들이 상여 소리를 구성지게 어우르는 것이 모두 신나고 재미있기만 하였던 기분과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난초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졸랑졸랑 그녀의 뒤만 따라다녔다, 그리고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이쁜 여자를 새우섬에 데리고 온 것이 은근히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도 어른이 되면 아버지처럼 세상에서 제일 이쁜 난초 같은 여자를 각시로 삼아야지 하고 다짐을 몇 번이고 마음 속 깊이 접었다.

난초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이쁜 여자는 어머니 단 한 사람이라고만 믿고 있었다. 난초에 비해 어머니는 내가 언제나 두 손으로 움켜쥐고 바르르 떨며 얼굴을 문지르곤 하는 포실한 젖무덤 하나만 더 이쁜 듯싶었다.

"네 눈이 꼭 산머루처럼 검고 탱글탱글허구나."

난초가 쫄랑거리며 따라다니는 내게 처음으로 말을 했을 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지개를 보고 그 신비한 빛의 아름다움에 환성을 질렀을 때처럼 목구멍 속이 화끈거렸다

"난초 아줌마 입술은 꼭 갯패랭이꽃 같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부끄러운 생각에 잽싸게 몸을 돌려 헛청의 더그매 위로 올라가 버렸다.

아버지는 마을 앞 늙은 좀팽나무가 서 있는 비석거리에 주막을 내어 난초와 함께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주막을 난초네 집이라고들 불렀다.

비석거리 난초네 집에서는 밤이나 낮이나 북장고 소리와 노랫가락이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가 장고를 덩그렁덩그렁 치고 난초가 목청을 뽑았는데, 마을 사람들은 난초의 소리가 새우섬 안통에서는 첫째라고 하면서, 그녀의 소리를 듣기 위해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주막을 찾아오곤 하였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난초의 소리를 칭찬할 때마다 두 어깨가 으쓱거려 수탉처럼 뻐기고 싶어졌다.

그런 나와는 달리, 어머니는 이상하게도 난초의 노래 소리와 아버지의 북장고 소리를 이갈리게 싫어하였다. 어머니는 난초네 집에서 북장고 소리와 노랫가락이 흘러나올 때마다, 가슴이 틀어오른다면서 마치 내가 거위배를 앓을 때 방바닥에 배를 깔고 뒹굴듯, 기력이 좍 빠진 얼굴로 몸부림치며 괴로워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 번도 난초네 집에 쫓아가서 악담을 퍼붓거나 찍자를 부리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거위배를 앓을 때처럼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억척을 부리듯 머슴들과 함께 일만 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바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차라리 처음 아버지가 난초를 데리고 왔을 때처럼 눈에 핏기 세우고 게거품 품어 대며 미친듯 아버지와 싸움이라도 했으면 싶었는데, 어머니는 이상하게도 아버지 앞에서 큰소리는커녕 입 한 번 비쭉거리지도 못하고 죽은 듯 살았다.

어머니는 말이 줄어든 대신 눈물이 많아진 듯싶었다. 낮에는 마치 난초의 노랫가락과 겨루기라도 하는 듯 억척스럽게 일을 하다가도, 밤만 되면 참새 새끼 같은 나를 으스러지도록 껴안고 누워서 추적추적 눈물바람을 하였다.

내가 알기로 난초를 데려온 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어머니와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었다.

나는 어머니 몰래 난초네 집에 자주 놀러가곤 하였다. 내가 갈 때마다 난초는 돈을 쥐어 주기도 하고 깨엿이나 눈깔사탕을 사두었다가 내어주곤 하였는데, 그럴 때는 그녀가 어머니만큼 좋아지는 듯싶었다. 때로는 뻐기고 싶은 생각에 마을 아이들을 떼거리로 몰고 가서는 맛있는 것들을 얻어먹고 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밤에 어머니가 한숨 섞어 가며 눈물을 짜는 것을 본 나는 어머니 몰래 난초네 집에 갔다온 것을 목울대가 화끈거리도록 후회를 하였고, 다시는 비석거리 쪽에는 얼씬거리지 않겠노라고 마음속으로 끙끙 힘주어 가며 공그리는 것이었지만 그때뿐이었다.

밤에 어머니 품속에서 뼈아프게 다짐을 했던 것과는 달리, 바다 위로 붉은 광대버섯 같은 해가 떠오르면 빨리 난초네 집에 가고 싶어 발가락이 근질거리고 심장이 자라의 꼬리처럼 파닥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가 난초네 집에 자주 가는 것을 눈치 챈 어머니는 낭창낭창한 회초리로 장딴지가 찢어지도록 때렸다. 그러나 나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어머니 몰래 난초네 집에 가서 그녀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난초는 비석거리 주막에서 그렇게 5년 동안을 살았다. 아버지는 소금밭 일을 제쳐두고 밤낮 난초네 집에서 뚱땅거리며 살았기 때문에 살림이 휘청휘청 기울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리 3년 동안 가뭄에 소금 풍년이 들어, 소금 값이 모래 값이 되어 버렸다.

살림이 기우뚱하자 뒤 늦게야 아차 하고 마음을 사린 아버지는 다시 옛날처럼 소금을 싣고 자주 목포에 나가곤 하였다. 그러나 장사가 신통치 않은 듯 아버지는 걸핏하면 성질을 돋구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셔댔다.

그 무렵 난초는 차츰 아버지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중선 고깃배가 두 척이나 되고 목포에서 큰 여관을 하고 있는, 새우섬 안에서는 계일 부자라는 황 면장이 아버지가 소금을 싣고 목포에 나가는 날을 틈타서 난초네 집에 들락거렸다.

마을에서는 이미 활 면장과 난초가 배가 맞았다는 소문이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었다. 내가 어머니 몰래 난초네 집에 가도 그녀는 옛날처럼 눈깔사탕 한 알도 주지 않고 눈꽁댕이를 빳빳하게 세워 나를 흘겨보기까지 하였다.

아버지가 소금배를 타고 목포네 나간 날 해 넘을 무렵에 나는 난초네 집에 갔다가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갑자기 얼마 전부터 난초가 나를 쌀쌀맞게 대하기에, 그녀의 환심을 돌이키려고, 바닷가를 헤매며 갯패랭이꽃, 보리사초, 문주란, 갯메꽃, 갯까치수염꽃 들을 한 묶음 꺾어 가지고 숨가쁘게 난초네 집으로 달려갔다. 난초네 집에서는 북장고 소리도 그녀의 노랫가락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목포에 나가고 없으니 난초 혼자 낮잠을 자겠거니 하고 슬그머니 부엌으로 들어가 샛문을 벌컥 열자, 황 면장과 그녀가 알몸이 되어 마치 바닷물에서 헤엄을 치듯 엉켜 허위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엉겹결에 꽃묶음을 샛문 문턱에 쏟아 버린 채 뱀에 쫓기듯 집으로 뛰어오고 말았다.

그 다음날 난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활 면장을 따라 목포로 가버렸다고들 하였다.

난초를 잃은 아버지는 마치 서리맞은 메뚜기처럼 시름 대더니 끝내 난초를 찾아오겠다며 새우섬을 떠났다. 그때 나도 마음속으로 아버지가 난초를 찾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난초를 찾아 나선 아버지는 새우섬에 돌아오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목포 안통을 휘청거리다가, 소금밭까지 팔아 가 버렸다. 소금밭이 팔린 날 밤에 어머니는 실성한 사람처럼 모두뜀을 뛰며 울부짖더니, 비석거리 난초네 빈 집에 불을 질렀다. 뱀의 혓바닥 같은 진홍의 불빛이 비석거리에 몰린 어둠을 갈기갈기 찢을 때, 나는 문득 아버지와 난초가 빈 집에서 잠자고 있다가 나오지 못하고 불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자맥질해 댔다.

비석거리의 난초네 빈 집이 잿더미로 남게 되자, 어머니는 아버지와 난초가 정말 불에 타 죽어 버린 듯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바닷가 바위에 엉켜 있는 검은 갈색의 붉은말 꼬시래기가 어머니의 얼굴에 옮겨 붙은 듯, 언제나 찝찔한 고통 속에 껴들어진 어머니였는데. 난초네 빈 집이 불에 탄 다음날 아침부터는 죽어 가는 사람이 오랜만에 병 자리를 차고 일어난 듯 거풋해 보였다.

나는 불에 탄 집터에서 은회색의 연기가 햇빛 사이를 비집고 몽글몽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앉아서, 난초를 찾아 나선 아버지가 다시는 새우섬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지 반 년 남짓 지나서야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하여 돌아왔다. 술독이 올라 눈구석에는 지게미가 거무죽죽하게 끼고, 겨릅처럼 삐쭉 마른데다가, 칼날 같은 옛날의 성질까지 죽어, 마치 설에서 마지막 잠을 잔 누에처럼 기력이 탈진해 있었다. 옛날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숨쉬는 유령처럼 몸도 마음도 흐물거렸다, 새우섬에 다시 돌아와서도 밖에 나가 누구와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방구석에만 붙박혀 살았다.

"아이고 저 웬수, 난초 그년 보듬고 삼학도 앞 바다에 풍덩 빠져 뒈지지 않고 멋흔다고 끄덕끄덕 돌아왔을꼬!"

아버지가 난초와 함께 뚱땅거리고 살 때는 아버지 앞에서 눈의 흰자위 한번 희끗거리지도 못하던 어머니가, 이제는 마음놓고 아버지한테 욕을 퍼부어 댔다. 그래도 아버지는 누에처럼 잠자코 있었다. 나는 바보가 되어 방구석에만 붙박혀 있는 아버지의 퀭한 눈시울 안에서 난초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 아버지의 마지막 반란은 죽어도 고향에서 떠나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고집을 묵살하고, 어느 날 새벽 가족들을 이끌고 새우섬을 떠난 것이었다.

아버지는 난초를 찾아 나섰다가 살림까지 작살내고 폐인이 되다시피 하여 돌아온 것이 부끄러웠는지, 새우섬에서 살지 못하고 뭍으로 기어 나와 해남에 자리를 잡았다. 내 생각엔 아버지가 아직 난초를 찾는 것을 단념하지 않았구나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뭍으로 나온 뒤에도 아버지는 한 번도 집밖엘 나가지 않았다.

해남으로 옮겨 온 그해 겨울, 두륜산이 옥양목 이불을 덮어놓은 듯 푹신하게 눈이 덮이던 날 해거름에 아버지는 놀처럼 빨간 피를 토하고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숨을 거두면서 난초의 이름을 불렀다. 아버지의 마지막 꺼져 가는 시선 속에,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럽지도 않은지, 어머니는 문턱을 넘어 나가는 남편의 관을 부둥켜안고 욕을 퍼부어 대며 서럽게 울었다.

장례를 치른 뒤에 어머니한테 죽은 아버지가 밉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정이 뭣이고,,,,,, 정이 웬수재."

하며, 다시 두 눈이 크렁하게 젖던 것이었다.

그 후 30여 년 동안 나와 어머니는 난초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생활이 과거를 덮어 버렸다. 잊혀진 과거를 떠올리기란 무덤을 파헤치거나, 꿈속에서 저 세상 사람이 된 지 이미 오랜 아버지를 만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과거를 상기시키기란 마치 모개가 가늘고 긴 병에서 올리브유를 말아 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어머니의 손가락 마디마다 공이가 박히도록 삯바느질을 한 댓가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갖게 되어 해남에서 광주로 이사를 할 때, 아버지의 유품들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살아 생전 즐겨 들여다보던 판소리 사설집 책갈피 속에서 누렇게 색이 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한 것이, 난초를 내 머릿속에 다시 떠올린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와 난초가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눈에 띄지 않게 그 사진을 지갑 속에 감추고 있으면서, 언젠가 한 번 꼭 그녀를 만나 봐야겠다고 벼르기 시작했다.

내가 30여 년만에, 실로 우연한 일로 잊혀진 과거를 다시 떠올려, 기필코 그녀 앞에 나타나고 싶어한 것은, 어쩌면 아버지가 없다는 허무함, 삯바느질로 젊음을 난도질당한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무섭게 홀맺혀 있는 복수심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제발 난초가 죽지 않고, 죽어 있는 것보다 더 비참하게 살아있기를 기대하면서, 사진 한 장만을 지갑 속에 넣고 어머니 몰래 새우섬으로 갔었다.

실로 30여 년만에 큰 맘 먹고 복수심을 맷돌질하며 찾아가 보는 고향이었지만, 조금도 마음이 설레거나 달뜨지 않았다. 마치 판매 실적을 확인하러 출장을 갈 때처럼 담담한 기분이었다.

고향 새우섬이 가까울수록 난초에 대한 나의 복수심은 호기심으로 변했고, 그 호기심이 귀향의 설렘까지도 삼켜 버린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새우섬의 고즈넉한 선창에서 내려, 헌털뱅이 택시로 갯바람이 느글느글 창자를 뒤집는 자갈길을 30분쯤 달려, 섬의 남쪽 끝 월강리에 도착한 것은 아직 한낮이었다.

한여름의 햇살이 산과 바다를 빗질하듯 꽂혀 내리는 월강리는 꿈속에 얼핏 와 본 마을처럼 생소하게 느껴졌다,

막상 고향에 도착하긴 했어도 찾아갈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 땅가시나무들이 씨름하듯 뒤엉킨 신작로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비석거리 난초네 집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마을 앞 늙은 좀팽나무만이 예나 다름없이 싱싱한 그늘을 넉넉하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나는 마을로 들어설 용기마저 잃고 있었다. 호기심은 다시 두려움으로 변했다. 옛날에 우리가 살던 집이라도 한번 둘러보고 싶어, 고샅을 꿰고 들어가다가 유령을 만난 듯 화들짝 돌아서 버리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긴 했으나 서로 알아보지를 못했다. 내가 행방을 결정하지 못하고 쫓기는 똥개처럼 고샅에서 지싯거리자, 마을 사람들은 수상쩍은 눈으로 흘금흘금 나를 훔쳐보곤 하였다.

나는 마을 앞 돈들막의 그늘 밑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처럼 여들없이 서성거리다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아버지 나이 또래의 노인과 마주치자 꾸벅 인사를 하고,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뜨악해하는 그에게 엉겹결에 황 면장의 안부를 묻고 말았다,

갯바람으로 얼굴이 녹슨 동상처럼 거무칙칙하게 보이는 노인은 잠시 나를 위아래 짯짯이 훑어 보는 것 같더니,

"황 면장 죽은 지가 은젠디 그 사람을 찾는겨?"

하고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나는 내친김에 난초의 소식을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수상쩍은 표정으로 나를 몇 번 들었다 놓았다 되작거려보며

"젊은인 뉘시우?"

하고, 여전히 의심이 또아리진 눈으로 물었다. 나는 노인이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억지 웃음을 얼굴 가득히 뒤발질했다.

"젊은이가 뉘긴데 죽은 황 면장과 난초를 찾는겨?"

노인이 재우쳐 묻는 순간 나는 하마터면 아버지의 이름을 댈 뻔하다가, 아차 하고 마음을 움츠리며

"실은 그 할머니가 제 사촌 이모님이 되십니다만."

하며 어물어물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 여자라면 선창거리 장터 나이롱 극장에서 광대놀이 허고 있을껴!"

노인은 심히 불쾌한 감정을 의도적으로 나타내며. 해바라기 꽃이 종긋거리는 탱자 울타리를 보듬고 돌아가 벼렸다,

나는 노인의 말에 쫓겨 나오듯 월강리를 나와 터덜터덜 신작로를 따라 걷다가, 술배달 딸딸이(경운기)를 타고 다시 선창으로 되돌아왔다.

고향 사람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하고 월강리를 떠나온 나는 웬지 슬픔이 명치끝에 덩어리지며 드밀고 올라와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가 세상을 떴을 때보다 더 슬펐다. 이 모든 것이 난초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그녀에 대한 복수심이 다시 대장간 시우쇠처럼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난초의 비참한 말년을 빨리 보고 싶었다. 월강리에서 만난 노인의 말로는 장터의 가설 극장에서 광대 노릇을 한다고 했으니, 그만하면 그녀 앞에서 야멸스럽게 휘파람을 불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새우섬에 돌아와 난초를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난초 고년은 근본이 없는 여자여. 근본이 없는 년이 워디 한 곳에 진득 허니 붙어 살긋냐, 근본 없이, 이 남자 저 남자헌테 정을 엿가락 모양 떼었다 붙였다허는 년이라서. 여기저기 지 맘대로 떠돌아댕김시로 살긋이여."

난초를 찾아 새우섬에 오기 며칠 전 지나가는 말로 씀벅 그녀의 말을 꺼냈을 때 어머니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런 어머니의 말을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새우섬에 오면서도 나는 난초가 새우섬에 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나는 우선 그녀가 여지껏 죽지 않고 새우섬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이 홀맺힌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으며, 더우기 장터에서 광대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에는 마음속으론 고소한 미소를 깨물어 삼키기까지 하였다.

나는, 내가 바라던 대로 난초가 아직 죽지 않고 비참하게 살아 남아 있다는 것을, 죽은 아버지의 혼이라도 불러서 보여 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혼을 부를 수 없다면 어머니라도 새우섬에 모시고 와서 비참하게 시들어 가는 난초의 모습을 코여 주고 싶었다.

난초는 선창거리 장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두껍게 화장을 뒤발질하고, 시집가는 새색시처럼 녹의홍상(綠衣紅裳)을 차려 입은 그녀는 만병통치약이 라고 속여서 파는 약장수 패거리들과 어울려 슬프게 얼어붙은 목소리로 권유가를 부르고 있었다.

몸은 비록 된서리 맞은 난초잎처럼 삐들삐들 말라 비틀어쪘어도 목소리는 예나 다름없이 새뜻하게 차려 입은 연두저고리 빛깔처럼 해맑고 고왔다.

너무 짙게 화장을 했기 때문에 얼굴을 알아보기는 어려웠으나, 휘영청 밝은 달밤에 가야금 산조를 뜯는 듯한 노랫소리만 듣고도 그녀가 바로 난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휘주근하게 쪼그라진 구경군들 사이에 끼여서 난초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노래를 끝낸 그녀는 땀에 어룽어룽 화장이 녹아 내린 얼굴로 구경꾼들 틈새를 비집고 다니면서 약을 팔았다. 그녀의 노랫소리보다 약을 사달라고 매달리듯 애원하는 목소리가 더 슬프게 들렸다. 아무도 사주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혹시 내 얼굴을 알아볼지 어떨지 시험을 하고 싶어, 큰 소리로 약을 달라고 소리쳤다. 난초는 돈을 받고 약병을 건네주면서 열 번도 더 고맙다는 말을 하며 방앗공이처럼 자꾸만 허리를 굽적거렸다. 나는 그런 난초를 향해 쾌심(快心)의 미소를 날려보냈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파장 무렵이 되자 장터는 종점에 가까워진 시내 버스 안처럼 헐렁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파장이 될 때까지 구경꾼들 틈에 끼여 난초의 슬픈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상여소리처럼 들렸다. 희미한 죽음의 그림자를 부르고 있는 것처럼 흐느적거렸다. 해가 서쪽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목소리도 깔깔하게 쇠잔해 갔다.

장터에 거뭇거뭇 부채살 같은 갈파래 모양의 어둠이 내리 덮이기 시작해서야 만병통치약을 파는 나이롱 극장의 차일이 걷어지고 약장수들도 서둘러 짐을 꾸렸다.

난초는 조그만 옷 보퉁이를 들고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나이롱 극장 맞은켠에 있는 양철집 주막으로 허물어져 가는 몸짓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녀의 뒤를 밟아 따라갔다. 난초는 주막의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혹시 그 주막이 난초의 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삐걱거리는 좌판에 앉아 생각지 한 접시에 두 홉들이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노란 플라스틱 접시에 쩍쩍 달라붙은, 난도질하여 토막낸 낙지를 된장과 마늘에 버무려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난초가 들어간 방의 미닫이 쪽에 신경을 팽팽하게 말아 올렸다.

난초는 내가 두 홉들이 소주 한 병에서 거의 반쯤 마셨을 때에야 방에서 나왔는데, 화장은 깨끗이 지워져 있었고 옷까지 갈아입어 첫눈에 그녀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화장을 말끔히 지워버린 그녀의 얼굴은 오래 자란 소나무 껍질처럼 찌그러져 있었고, 녹의홍상 대신 짙은 갈색의 특특한 몸뻬에, 거무죽죽하게 때가 묻은 횐 런닝셔츠 바람으로 술청에 나온 난초의 모습은 마치 시장 바닥의 늙은 갈치 장수 노파처럼 구저분해 모였다.

노래를 부를 때 입었던 녹의홍상을 벗어 싼 것이 분명한 옅은 물빛 보자기의 조그마한 보퉁이를 옆구리에 꼭 끼고 술청으로 나온 난초는 피곤에 눌려 더욱 작아진 몸을 부리듯. 내가 앉은 맞은켠 좌판에 힘없이 앉자마자. 젊고 툽상스러운 주모한테 소주 한 병을 청했다.

난초는 안주도 없이, 목구멍에 훅훅 치닫는 불길을 끄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푸 소줏잔을 기울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노래를 부르고 약을 팔 때와는 달리, 삶을 포기해 버린 사람처럼 무기력하고 불행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난초를 찾으러 목포로 나갔다가 살림만 작살내고 반 년 만에 바보가 되어 돌아왔을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 때 아버지의 모습이 숨쉬는 송장이었다면 지금의 난초는 술 마시는 허수아비를 닳은 듯싶었다.

거푸거푸 목구멍에 소줏잔을 털어 넣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 나는 갑자기 우울해지고 말았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바랐던 대로 그녀가 비참하게 살아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마음속으로 쾌심의 휘파람을 불려고 해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되려 기분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두 홉들이 소주 한 병을 순식간에 다 마셔 버린 난초는 옆에 앉은 한패거리의 장군 사내들 옆으로 걸어가더니, 담배 한 가치를 구걸하다시피 하여 불을 붙여 물고 다시 좌판에 앉아서 푸유푸유 한숨처럼 연기를 허공에 날렸다.

잠시 후 나는 용기를 내어 반쯤 남은 술병을 들고 난초가 앉아 있는 좌판으로 옮겨 앉으며

"노래를 참 잘 하시던데요,,,,,,. "

하고 말을 붙였다. 나는 그녀의 빈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비굴하게 웃었다.

"노래가 아니라우!"

그녀는 찐득거리는 여름밤의 어둠과 뿌유스름한 불빛이 뒤엉킨 허공에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혼잣말처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래가 아니라뇨?"

"젊은이는 우는소리흐고 노래 소리흐고 구별도 못 허요?"

그녀의 나무라는 듯한 말에 나는 더 이상 반문하지 않고, 그녀의 얼굴에서 옛날 젊었을 때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시선을 오랫동안 한 곳에 모았다. 언젠가 어렸을 때 내가 갯패랭이 꽃잎 같다고 했던 그녀의 입술은 꼬들꼬들 말라비틀어진 홍합처럼 거무칙칙하게 거칠어져 있었다. 그녀는 반쯤 타들어간 담배를 조심스럽게 좌판 모서리에 비벼 꺼, 귀에 꽂고는 내가 채워놓은 술잔을 홀짝 비워 버렸다. 두 잔째 잔을 채워 주자 그녀는 다시 한 번 비굴하고 공허한 미소를 버릇처럼 흘깃 날리더니, 삶에 지쳐 흐려지긴 했어도 정신만은 맑아 보이는 눈에 힘을 주어 유심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암만봐도 새우섬 사람이 아닌 것 같은디,,,,,,. "

"옳게 보셨습니다. 저는 옛날 사람을 만나러 왔습니다."

"옛날 사람을?"

"그래요. 아주 옛날 사람이죠. 얼굴이 바닷가 모래땅에서만 피는 갯메꽃같이 곱고 휘파람새같이 노래를 잘 했지요."

"옛날 새우섬에 소리 잘 헌 사람이 있었간듸?"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뉘긴듸?"

". 난초라는 여자였어요."

내 말에, 난초는 들었던 술잔을 탁자 위에 놓고는 물어뜯을 듯이 나를 쏘아보았다. 빳빳하게 곤두선 그녀의 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그녀는 털리는 손으로 귀에 꽂아 둔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는 다시 물총 쏘듯 나를 노려보았다.

"누구라고 했소?"

난초가 칵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난초라는 여자라니까요. 나는 그 여자를 만나러 왔어요."

난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 얼굴에 의심 많은 시선을 못박은 채 담배 연기만 푸우푸우 날렸다.

"한때 월강리에서 살았지요. 지금 살아 있으면 아마 할머니 또래가 됐을 겁니다."

나는 되도록이면 마음이 약해지지 않으려고 난초의 시선을 피해, 난초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 간 아버지와, 평생을 생가슴에 불무덤 품고 살아 온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냉엄하게 갈했다.

"젊은이는 뉘시우?"

난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으나 나는 잠시 대답을 않고 멀뚱히 술청의 벽에 붙은 달력의 여름 사진만 쳐다보았다.

"내 이름은 필식입니다."

잠시 후 나는 난초를 정면으로 보며 내 이름을 말했으나 그녀는 눈을 감아 버렸다.

"성씨가 어뜨케 되시는지,,,,,, 그라고 아버님 성함은?"

난초는 눈을 감은 채 물었다.

나는 난초한테 아버지의 이름을 대는 것을 한동안 미적거렸다. 되도록이면 그녀 스스로가 아버지를 기억해 내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필식이라,,,,,, 필식이,,,,."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빨리 대주지 않자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빨래를 쥐어짜듯 머릿속의 낡은 기억들을 바짝 옥여 죄는 듯싶었다.

"제 아버님은 장 석기 씹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요."

나는 어렸을 때 마을 앞 연못에서 물방개를 잡아 다리를 뽑고 모가지를 비틀었을 때처럼 야릇한 쾌감을 느끼며 자랑스럽게 아버지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난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 말없이 잠자코 앉아 있기만 하였다. 담배가 필터까지 타들어 가도록 연기를 빨지도 않았다. 그녀는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일부러 미리 눈을 감고 있었던 것처럼, 나를 보지 않았다.

그녀가 눈을 뜬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바다 밑처럼 깊은 침묵이 왜 오래 흐른 뒤였다, 그녀는 눈을 뜬 뒤에도 내 얼굴을 바로 보지 않았다. 잠시 후, 술 한 병을 더 청해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채워 숨 돌이킬 여유도 없이 거푸 석 잔을 목구멍에 털어 넣고 나서야, 힘겹게 나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네 어렸을 적 얼굴이 생각나는구먼."

난초는 내게 반말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침착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뭣땜시 나를 찾어 왔는가? "

난초의 물음에 나는 대답을 못했다.

"여지껏 새우섬에 살아 계실 것으로는 생각지 않았어요."

"죽지 않고 천덕궁이가 된 이 늙은이를 보니께 맴이 편헌가?"

"주욱 새우섬에서 살았나요?"

둘이는 거의 동시에 묻고 있었다.

"저의 어머니보다는 훨씬 고우십니다."

"사진기 가져왔거든 이 늙은 것 몰골 한 장 찍어서 자네 모친 보여드리고 싶제?"

난초는 거무칙칙한 런닝셔츠를 젖무덤까지 걷어 올리며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리다 보니께 한 세월 다 가뿌렀구만. 남은 것이라고는 개떡 같이 젊었을 시절의 꿈뿐이여."

난초는 말을 하면서 오른손으로 자꾸만 귀 뒤를 만지작거렸다. 담배를 찾고 있는 것 같아서 내 호주머니에서 한 가치 뽑아 떨리는 손에 끼우고 불을 붙여 주었다.

"혼자 기다림서 살았어."

그녀는 담배 연기를 한숨처럼 내뿜었다.

"기다리다뇨?"

"나헌티서 떠나간 사내들."

"차 버린 남자는 기다리지 않았겠지요? 우리 아버지 같은,,,,,,."

"첫정은 명주실만치나 찔겨서, 무덤꺼정 갖고 간다고 안 허든감."

"아버님을 마다하고 황 면장과 야행을 친 것은 누구였는데요?"

나는 따지듯 물었다.

"그랬기 땜시 첫정이 을매나 찔기고 아프다는 것을 알았어. 자네 아버님을 마다흐고 황면장을 따라 목포로 간지 일 년만에 황면장흐고 헤어져서 월강리로 돌아와 보니 자네 식구들이 이사를 가뿌렀더구만. 해남에서 산다기에 미친년이 또 해남꺼정 끄덕끄덕 찾아 갔었는디, 자네 아버님이 세상을 떠난 뒤였단 마시. 나는 자네 아버님 어머님, 자네헌테꺼정도 큰 죄를 졌네. 내가 죽지 않고 이르케 천덕스럽게 사는 것도 다 죄닦음을 허는 것일 꺼여."

난초는 크렁하게 시울이 젖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난초는 혼자 두 홉들이 소주 두 병과, 내가 따라준 석 잔을 다 마시고도 조금도 취한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주모한테 술 한 병을 더 청했으나, 주모는 밀린 외상값 이야기를 꺼내며 술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주모는 내가 술값을 치르겠다는 말을 해서야 소주 한 병과 콩나물 한 접시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안주로 생낙지 한 접시를 시키자, 난초는 안주는 필요 없다고 손을 휘저으며, 안주를 사려거든 차라리 술이나 한 병 더 시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취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술이 아니면 나는 못 사네. 젊었을 적엔 인심 좋게 만나는 사내들마다 있는 대로 그 많은 정 다 퍼주고, 늙어지니께 속이 허심해서 술로 채우고 사는구만. 젊어서 정이 헤픈 년 늙어지면 술이 친구 된다고 안 허드나."

난초는 내게 술 한 잔도 권하지 않고 혼자서 세 병째 쥐어 짜듯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털어 마시고는,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낮에 장터에서 불렀던 권유가를 흥얼거렸다.

그러면서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도 않고 흥얼거리는 소리로 울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 소리가 권유가를 흥얼거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 것인지 알지를 못했다.

계속 우는 목소리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술이 취해 몸을 계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그녀를 부축하고 주막에서 나왔을 때는 별도 없는 하늘이 물방개 등껍질처럼 단단하고 어두웠다.

나는 슬픔과 술이 벅범이 되어 한꺼번에 취해 버린 그녀를 어두운 장바닥에 팽개치고 혼자만 여인숙으로 찾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술 취한 난초를 부축하고 장터에서 선창의 방파제를 따라 한참 바닷바람을 쐬며 내려가 밋밋한 산등성이 아래에 있는 조그마한 갯마을 어귀, 그녀가 혼자 빌어 사는 초가 허청 옆의 문간방까지 갔다.

난초를 집에 데려다 준 나는 다니 선창으로 돌아오려고 하였지만 그녀가 놓아주지 않았다.

"이 시들어빠진 난초를 만나러 새우섬꺼정 왔으면. 어치코롬 사는가 보고 가야 안 흐긋는가."

그러면서 난초는 뿌득뿌득 나를 콧구멍만한 그녀의 방안으로 있는 힘을 다해 밀어 넣었다

살림이라고는 헌 버들고리와 회치회치 낡아빠진 이불뙈기, 오래 된 경대 외에 방구석에 세워 놓은 가야금뿐이었는데, 떠밀리다시피 하여 방에 들어선 나는 우두커니 서서 기러기발을 세워 팽팽하게 줄을 메워 놓은 가야금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옛날, 내가 어렸을 때 월강리 비석거리의 난초 집에서 들었던 그녀가 뜯는 가야금 소리가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울려오는 것 같았다.

내가 우두커니 서 있는 사이, 난초는 휘적휘적 큰방 쪽으로 가서 술취한 목소리로 한참 동안이나 뭐라고 떠들어댔다. 그녀는 앞집 옆집으로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비척비척 활개를 휘젓고 다니며 큰 소리로 떠들어댔는데, 잠시 후에는 큰방과 이웃집 사람들이 몰려와 방안에 말뚝처럼 서 있는 나를 기웃기웃 들여다보기도 하고, 끌끌 혀를 차며 언짢은 말들을 침뱉듯 튕겨 대는 것이었다,

"세상에, 저런 장대 같은 자식을 두고도-----. "

이웃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말을 배앝으며 나를 흘겨보았다.

난초가 큰방과 이웃 사람들한테 나를 그녀의 아들이 라고 자랑하고, 잊어버린 줄 알았던 아들이 자기를 모시러 왔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 것이 라는 것을 안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입을 헤벌린 채 파리똥이 새까만 천장만 쳐다볼 뿐이었다.

"미안흐네. 이 불쌍한 늙은이를 위해서 좋은 일 한번 헌다 생각흐고 눈 딱 감아뿔소 잉."

이웃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 난초는 내 손을 잡아 흔들며 크렁한 목소리로 애원을 했다.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쓰렁하게 웃고 말았다

"피붙이가 없는 늙은이라서, 통 사랑 취급을 안 헌단 마시. 살아서는 다 참을 수 있재만 내가 죽으면 치상도 안 치러 줄까 고것이 걱정이구만. 아들 노릇 혀달라고 성가시게 안 흘텐께 걱정 말소 잉,"

나는 이미 난초를 찾아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마음 약한 나는 그녀를 장터에서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녀가 그리 된 것이 마치 내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었다.

"기왕지사 이 늙은 것을 찾아왔다니께, 자네헌티 부탁이 하나 있기는 허네만, 들어주지 않겄재?"

난초는 내 손을 놓지 않은 채 반신반의하는 말투로 말했다.

"죽어서꺼정 천덕궁이가 안 될랴고 치상비는 통장에 쬐금 넣어 두었네 내가 죽거든 얼굴이라도 한번 내밀어 줄랑가? 치상비 걱정은 말고 남 부끄럽지 않게 그저 곡이나 좀 시늉으로 해 줄랑가? 수의도 입힐 것 없네. 아까 장터에서 소리헐 때 모양으로 얼굴에 화장을 곱게 허고. 연두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혀서 묻어 주면 되네. 내 치상 때 자네가 와 주기만 헌다면, 죽어서 자네 아버님을 찾아가서, 자네 어머님 오실 때꺼정만 잘 모셔 주겠네. 어찌여, 내 부탁 한번 안 들어줄랑가 잉?"

그 같은 난초의 간절한 애원에 나는 여전키 쓰렁하게 웃고만 있었다.

그 날 밤 난초의 방에서 얼쑹얼쑹 하룻밤을 새운 나는 이웃 사람들을 대하기가 창피할 것 같아, 손바닥만한 봉창이 희번하게 밝아 오는 무렵 서둘러 신발을 레고 나와 버렸다. 그녀는 한사코 아침을 먹고 가라면서 방파제까지 따라나오며 질금질금 눈물바람을 하였다.

"암만 생각해 봐도 내가 어젯밤에 술김에 실수를 헌 것 같구만. 용서해 주소. 없었던 것으로 생각해 주소 잉."

그녀는 부끄러운 듯 내 시선을 피하며 낮게 얼어붙은 목소리로 말했다.

헤어지면서 나는 난초의 손에 내 명함을 쥐어 주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제 회사로 연락을 해 주세요."

내 명함을 받아든 난초의 얼굴은 순식간에 파릇하게 되살아났다.

 

그로부터 5년만에 명함에 적힌 회사로 난초의 부음이 날아온 것이었다.

회사에서 '모친 사망'이라는 전보를 받은 나는 마치 빈 총 맞은 사람처럼 한동안 어리둥절해 있었으나, 발신지가 하도(새우섬)라는 것을 확인하고서야5년 전 난초를 만났을 때처럼 쓰렁하게 웃었다.

버스로 목포까지 간 나는 오후 늦게 해가 설핏하게 기울 무렵에야 새우섬으로 가는 여객선에 올랐다.

초여름 바닷가 모래땅에 빨갛게 피는 갯메꽃을 휘뿌린 듯 바다가 온통 놀로 붉게 물들었다, 마지막 하루의 장엄한 생명을 핏빛으로 토하며 끝을 내는 놀은 마치 얼굴에 짙은 화장을 뒤발질하고, 연두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늙은 난초의 모습처럼 애처롭게 보였다. 바다를 태우는 듯한 놀 속에서 난초의 모습이 보였다. 권유가 한 대목이 파도에 섞여 들려 왔다,

놀이 처절하게 숨을 거두자 바다 위는 하늘보다 더 어두웠으며, 밤의 바닷바람만이 거칠게 살아났다.

밤이 깊어서 새우섬에 도착한 나는 어둠 속을 더듬으며 방파제를 따라 갯마을로 내려갔다.

5년 전 난초한테 끌려가다시피 하여 어줍쟎은 기분으로 하룻밤 머물렀던 마을 버귀 상가로 들어서자, 이웃 사람들인 듯싶은 나이가 지긋한 남자 둘이 문간방의 토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상가치고는 너무 조촐했다.

"이제야 오시는구만."

토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선 두 남자 중에서 한 사람이 나를 알아보았다. 5년 전 내가 왔을 때 아들이 찾아왔다는 난초의 호들갑에 얼핏 내 얼굴을 보았으리라.

"전보를 쳐 놓구 기다리다 소식이 없기에 저녁에야 입관을 했수다."

다른 한 남자가 불컹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아마 그들 두 사람뿐 아니라, 이 마을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나의 불효에 대해 무참히 도리깨질 해댔을 것이 분명하리라고 헤아렸다. 그렇다고 나는 그들에게 사실은 난초의 아들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수의는 입혀 드렸습니까?"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시선을 멸군 채 물었다.

"무신 준비가 있어야 수의를 입히지요. 저금 통장을 찾아서 관 하나 사고 나니께 술 한 말 값도 못됩니다. 그냥 입은 동이로 입관을 시켜 뿌렀재."

키 큰 남자가 나를 흘겨보며 짜증스럽게 튕겨댔다.

"안 됩니다. 입관을 다시 헙시다, "

그러면서 나은 난초가 관속에 누워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웃목에 세워 놓은 거문고가 난초처럼 보였다. 나는 헌 버들고리를 열어 옅은 물빛 보자기에 싸 놓은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를 꺼냈다. 그리고 웃목의 낡은 플라스틱 바가지 안에 들어 있는 값싼 화장품들을 방바닥에 쏟았다,

"뭣들 하는 거요. 입관을 다시 해야 한다니까. 얼굴에 화장도 하고 녹의 홍상을 입혀 드려야 해요."

내가 큰소리로 다그치는 바람에 두 남자는 그냥 돌아서 버릴 듯하다가 지싯지싯 방안으로 들어왔다.

"입관을 다시 하다니,,,,,, 그건 안 돼요."

키 큰 사내가 방에 들어와 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장도리 가져오시오."

나는 키 큰 사내를 향해 명령하듯 말했다. 그러자 그는 불과하게 술기가 오른 눈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비척비척 방을 나가 장도리를 들고 들어왔다.

나는 사내의 손에서 장도리를 빼앗다시피 하여 관에 박힌 못을 뽑고 있었다.

관에서 못을 뽑으면서, 나는 문득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죽은 아버지의 가슴에, 그리고 그녀가 불무덤을 만들었다는 어머니의 가슴에, 적이 헤퍼서 만나는 사내들마다 있는 대로 정을 모두 퍼주어 갈라진 논바닥처럼 되어 버렸다는 황량한 난초의 가슴에 쇠못보다 더 아프게 박힌 한()의 뿌리를 뽑아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못을 뽑고 있는 난초의 관속에서 가늘게 얼어붙은 애원성의 권유가 한 대목이 흘러나오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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