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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 소설

63. 말하는 징소리

by 자한형 2022.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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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하 는 징 소 리 -순태

 

1

 

그 소리는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만큼이나 신비스러워 지상에 있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마음을 싱그럽고 후련하게 lt주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 모든 시민들은 일손을 멈추고, 여름날 아침 햇살과 함께 지는 남보라색 나팔꽃처럼 귀바퀴를 신선하게 세웠다. 시민들은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곤 했다. 이제 시민들은 날마다 정오만 되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었다. 그 소리는 예고도 없이 울리는 예비군 비상나팔 소리나 시가지를 질주하는 빨간 불자동차의 사이렌 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잊혀진 고향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의 뭉클한 바람이었다. 고향 사람들의 울부짖음이었다. 울부짖음과 함께 이름만 생각나는 고향 사람들의 얼굴이 찢겨진 선전 포스터처럼 희미한 모습으로 머릿속에서 펄럭였다.

비로소 잊어버렸던 고향이 떠올랐다. 일년 내내 금줄에 묶여 있는 마을 어귀의 아름드리 늙은 느티나무며, 느티나무 그늘에 덮여 한여름 삼베 땀등거리만 걸친 어른들의 침대가 되어 준 판판한 당산돌, 대낮에도 그 앞을 지나자면 으스스하게 몸이 떨리고 머리끝이 쭈뼛거리는 후미진 아카시아 숲 길의 상여집, 안산의 잡목 숲 나뭇잎들마저 삐들삐들 시들어 가는 더위에도 한 바가지만 퍼마시면 땀띠가 가라앉는 징검다리 건너 비석거리의 각시샘이며, 여름이면 보라색의 초롱빛 엉겅퀴 꽃들이 발에 밟히는 제각 아래 귀달린 큰 구렁이가 산다는 방죽이며가 하나씩 머리에 떠올랐다.

그 소리를 처음 듣는 아이들은 어디서 들려 오는 무슨 소리냐고 끈덕지게 물었다.

어른들은 그들이 아는 바 모든 기억력을 동원하여 손짓발짓해 가며 설명을 해 주었으나 그 설명은 아이들에게는 결코 만족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시민들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쪽을 보았다. 하늘은 자동차와 공장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거무죽죽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옛날 고향에서 메기굿이나 당산제를 구경할 때처럼 소리나는 쪽만을 찾아보았다.

소리는 분명 광주시의 한복판, 가장 높은 칠보증권의 11층 건물 옥상에서 울려왔다.

"저게 무슨 소랴?"

시장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 저고리를 걸치고 마악 사장실에서 나오던 칠보증권의 박 철 사장은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고혈압 증세 때문에 버릇처럼 오른손으로 투실한 목덜미를 쓱쓱 문지르며 섬진강 은어처럼 팔팔한 여비서 미스 오에게 물었다.

"사장님, 징소리가 아닙니까?"

"징소리?"

", 사장님."

"어디야?"

"옥상인 것 같습니다, 사장님."

"어떤 정신 나간 놈이 한낮에 옥상에서 징을 두들겨 패는 건가!"

오십 줄을 마지막 구기고 있는 박 철 사장은 게뚜더기 눈을 씰룩거리는 말투로 쏘아붙였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는 참 오랜만이로구나, 내가 저 소리를 들은 것이 고향에 어머니가 갈아 계셨을 때니까 벌써 한 십 이 년쯤 되었나, 하고 생각하며 마치 망막에 자욱하게 낀 망각의 안개를 서서히 걷어내고 아른아른한 고향을 간신히 떠올리기라도 하는 듯, 바람이 가라앉은 수면처럼 잔잔한 얼굴로 자동차들이 빵빵거리며 질주하는 창 밖의 거리를 공허하게 내려다보았다. 미스 오는 박 철 사장의 깊은 생각에 잠긴 그런 얼굴을 처음 보는 듯싶었다.

"가서 어떤 미친놈인가 데리고 오라고 해!"

박 철 사장은 여전히 불총 쏘아대듯 퉁명스럽게 내지르고 사장실로 되돌아 들어갔다. 그는 푹신한 소파에 78킬로그램의 육중한 몸을 깊숙이 파묻고 투실한 목을 저뻐듬히 뒤로 당겨 편안하게 반쯤 누웠다. 그는 되도록이면 편안한 자세로 징소리를 들었다. 공간이 차단된 고층빌딩의 깊숙한 사장실에서 듣는 징소리는 신비하고 감미로운 혀끝으로 얼어붙은 심장을 한 아 향수의 지느러미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것은 마치 어렸을 적 고향에서 걸립패 어른들이 메기굿을 하던 날 밤 얼쑹얼쑹 잠결에 들었던 것처럼 희미하게 온몸의 털구멍을 뚫고 뇌리와 심장에 찍혀왔다.

갑자기 징소리가 멎었다. 박 철 사장은 다시 오른손으로 목덜미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는 시장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한 만월장 하 마담의 손가락에 융단을 감은 것처럼 향긋하고 보드라운 손의 촉감을 목덜미에 느끼며 어흐흐 길게 하품을 깨물었다

"사장님 데리고 왔습니다."

그 소리에 박 철 사장은 고향 당산의 들독이라도 들어올리듯 힘겹게 눈을 떴다.

땅개비 뒷다리 같이 얄찍한 금테안경을 날렵하게 붙인 총무과장이 데리고 들어온, 머쓱하게 키가 크고 어글어글하게 생긴 젊은 남자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농우(農牛)처럼 어깻죽지를 내리고 목을 움츠려, 왕방울 눈을 디룩거리며 죄지은 얼굴이 되어 박 철 사장을 조심스럽게 핼끔핼끔 내려다보았다.

박 철 사장은 어벙하게 징을 들고 서 있는 거렁뱅이 몰골을 한 젊은이와, 징 채를 잡은 그의 오른팔에 매달리듯 바짝 달라붙어 있는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얼굴이 누렇게 뜬 계집아이를 번갈아 보며 양미간을 바짝 죄었다. 그는 언제나 마음에 얽는 화를 낼 때는 위신을 지키려고 게뚜더기 눈거죽에 힘을 주어 쏘아보는 버릇이 있었다.

박 철 사장은 징을 들고 서 있는 사내를 한동안 말없이 쏘아보았다.

벙거지를 엎어놓은 것 같이 뭉뚝한 방석 코에 언제나 겁을 잔뜩 집어먹은 듯 디룩디룩한 왕방울 눈이 마치 그가 어렸을 때 고향에서 그를 날마다 학교까지 업어다 주곤 했던 머슴 띠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의 몰골은 영락없는 거렁뱅이였다. 발등에서 한 뼘 정도나 올라붙은 확 째인 홀태바지에 소매 끝이 너덜너덜한 20년쯤 입었음직한 색깔이 옅게 바랜 검정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그나마 외투에는 가운데 단추가 하나뿐이었고, 두 곳의 단추 구멍엔 옷 핀으로 꽂아 꾀죄죄한 속옷이 삐주룸히 들여다보였다.

그들 부녀는 허수아비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자네, 뭐 하는 사람인가?"

구겨진 이맛살에 비해서는 그래도 은근한 목소리였다. 박 철 사장의 묻는 말에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모양입니다. 사장님."

명령을 받기 좋은 자세로 김밥 싸듯 두 손을 감아 잡으며 금테안경의 장 과장이 대신 말해 주었다.

"저 몰골에 ,,,,,,. "

박 철 사장은 혼잣말처럼 배앝고 나서 제 아비의 양복 저고리를 입었음인지, 소매를 여러 겹으로 걷고 자락이 무릎 아래까지 치렁하게 드리운 계집아이를 보았다.

"자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인가?"

박 철 사장이 이번에는 신경질적으로 언성을 높였다,

"대낮에 옥상에서 징을 치다니 원, 자네 모자라도 웬만큼 모자라는 사람이 아닌 거 같어."

"지는 마누라를 불렀습니다."

그가 말했다. 우렁우렁하게 울림이 좋은 목소리였다. 그의 그 같은 말에 박 철 사장은 다시 양미간을 팽팽하게 좁혀 눈꽁댕이와 눈썹들을 세웠다.

"마누라를 부르다니?"

"지 마누라는 지가 치는 징 소리를 알아듣기 땀시."

"징소리를 알아들어?"

묻고 나서 박 철 사장은 하품을 쥐어 짜내듯 어흐흐흐 웃었다.

"그래, 자네 마누라는 어디 있는데?"

"우리 부녀를 두고 나가삐렸는디, 아메 이 도시 안에 있을 꺼로구먼입쇼."

"그으래? 왜 나갔나?"

"지가 짜잔혀서."

"하긴, 자네 그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마누라 간수 계대로 못하게 생겼구만. 헌데 한번 나가버린 여자가 징소리를 듣는다고 다시 찾아오겠는가?"

박 철 사장은, 어이구 이 바보야 하는 말꼬리를 그냥 깨물어 삼켜 버렸다.

"지 마누라는 맘씨가 비둘기만치나 착허고, 또 지 징소리라는 사죽을 못 쓰게 좋아허그든요. 징소리만 들음사 꼭 올 거로구먼요."

그는 말을 하면서 누런 이랄 사이로 푸시시 소 웃음을 피워 날렸다.

"징소리를 들으면 마누라가 온다?"

박 철 사장은 느글느글한 미소를 희미하게 떠올리며 손으로 뭉실하게 짧은 턱 끝을 만지작거렸다.

"집이 어딘가?"

박 철 사장의 묻는 말에, 고는 늦봄 방울재 바람모퉁이 언덕바지에서 큰 방가지 똥 꽃잎들이 바람에 날리듯이 햇살이 뿌유스름하게 내려꽂히는 창밖쪽만을 바라보았다. 봄이면 방울재 들에는 온통 꽃밭처럼 여러 가지 꽃들이 탐스럽게 수를 놓았고, 햇살은 꽃잎들과 시샘이라도 하는 듯 더욱 눈부시게 꽂혀 내렸다.

오월에 별 모양의 횐 꽃이 피는 벌꽃이며, 콩제비꽃, 광대수염, 제비꽃, 황새냉이, 중대가리풀꽃, 방가지 똥 등 꽃 천지였다.

"사장님이 집이 어디냐고 묻고 계시잖어!"

장 과장이 꽹매기소리보다 더 때글때글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없구먼요."

"집이 없어?"

"있었는디, 없어져뿌렀어요."

이때, 마른 멸치대가리 같이 세모꼴의 얼굴에 살붙이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는 장 과장이 사장 앞으로 허리를 꺾으며, 이 사람은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거렁뱅이니 그냥 쫓아보내자고 했다.

"아닐세, 이 사람 징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닐세,"

박 철 사장은 옛날 고향에서 듣곤 했던 어슴푸레한 징소리를 다시 떠올리기 위해, 기억의 실꾸리를 풀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징채잡이라면 방울재 안통에서는 지를 따를 사람이 없습니다. 지는 징을 칠 때 무작정 두들겨 패는 것이 아니고, 말로다가 칩니다요."

"말로 징을 친다?"

박 철 사장은 눈을 떴다.

"글타니께요. 아까 옥상에서 칠 때는 마누라 돌아오소, 잘못을 용서할 것인께 돌아오소 험시로 쳤지요."

"!"

박 철 사장이 웃었다.

"옛날 우리 고향에서는 징징 울어라, 풍년 들게 울어라, 징징 울어라, 태평하게 울어라, 징징 울어라, 액년 쫓게 울어라 험시로 징을 쳤습죠."

그는 옴죽옴죽 어깨까지 들썩이고 나더니, 다시

"풍년을 빌거나 귀신을 쫓을라면 머니머니혀도 징소리가 젤이라요. 북 장고 두드림서 사흘 굿헌 거보담 징치고 하루 굿헌 거이 낫다는 말 있드끼, 징소리를 내야만 토신이 좋아허재요."

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징은 어디서 난 건가?"

"도둑질헌 것이 아닙니다."

그는 털끝만큼의 오해도 받기 싫다는 듯 냅다 고개를 흔들며 격렬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지난봄에 어겨나 징을 치고 싶던지 하늘과 가장 가까운 무등산 중봉에 올라가 신들리게 징채를 휘둘러 고향을 잃어버린 매지매지 얽히고 서린 서러움이며, 찐덥지게 정든 이웃들과 헤어진 아픔을 다독거려 잠재우다가 간첩 이 라는 오해를 받고 등산객들의 신고로 파출소까지 붙들려 갔던 일이며, 그가 어머니 배에서 나온 뒤에 625난리에 아버지 어머니를 차례로 잃고 외삼촌 집 꼴머슴으로 들어가 눈칫밥으로 뼈가 굵고, 장가들어 첫딸 낳고 살다가 여차여차하여 고향을 등지게 된, 그가 살아온 서른 네 해 동안의 길고도 짧은 이야기를 버선코 까뒤집어 보이듯 해서야 간첩 누명을 벗긴 했지만,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가지고 있는 징이 훔친 게 아니냐고 다짜고짜 윽박지르는 바람에 산똥을 쌌던 일을 죄 까발려 이야기 했다.

"이 징은 방울재에서 몇백 년 동안 물려온 굿물이구먼요."

그는 자랑스럽게 징을 머리 위로 번쩍 쳐들어 보이며 말했다.

"방울재라니?"

박 철 사장이 관심을 표하며 물었다.

"지 고향이라니께요."

"그렇다면 고향으로 돌아가게!"

박 철 사장은 사뭇 명령조로 말하고 나서 시계를 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탕울재가 없어진 지가 언제라구요?"

"없어지다니?"

"풍덩 잠겨뿌렀어요. 그랑께, 이 징도 방울재 사람들이 다 큰 강아지 새끼들 모냥 뿔뿔이 흩어질 적에 저저끔 체감헌 거로구만요. 저는 징채잡이였웅께 징을 차지헌 거라요. 덕석기는 죽어도 고향을 떠나지 않겄다고 맨 나중꺼정 남아 있었던 덕보 영감이 차지허굽쇼."

그의 말이 끝나나 옆에 서 있던 장 과장이 그의 고향 방울재가 아마도 장성댐 수몰지인 모양이라고 설명을 해 줘서야 박 철 사장은 동정과 이해가 함께 얽혀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네 자랑헐 만한 것이 뭔가?"

하고 물었다.

"지 자랑이라믄 농사짓는 일허고, 징치는 거입죠. 이 두 가지는 하늘 아래서 열 손가락 안에 들껍니다요."

그는 자신 있게 오랜만에 목을 빳빳하게 세우며 말했다.

"그래 이름이 뭔가? "

"허 칠복입니다요. "

"우리 회사 이름하고 비슷허구만. 요새 사람이 아니야."

박 철 사장은 한동안 면도자국이 거뭇거뭇한 턱 끝을 버릇처럼 만지작거리며 묘한 웃음을 피워 날렸다.

"칠복이 자네, 오늘부터 우리 회사에서 일하게."

박 철 사장은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장 과장에게 내일부터는 점심 시간을 알리는 벨소리 대신에 칠복이로 하여금 옥상에서 징을 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말에 장 과장은 찜찜한 얼굴로, 신원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쓸 수가 있겠느냐면서 난색을 표했다.

"신원보증 서 줄 사람 있나?"

"신원 보증이라면, 그거이 뭔디요?"

"됐어, 됐어. 마을이 물에 잠겨 버렸다는 데 뭘 믿고 누가 신원보증을 서주겠나."

박 철 사장은 혼잣말처럼 말하고 사장실에서 나가 버렸다. 칠복은 마치 빈총 맞고 놀란 얼간이처럼 멀뚱한 눈으로 불만스럽게 사장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2

 

이렇게 해서 허 칠복은 봉사 문고리 잡기로 꿈에도 생각 못했던 칠보증권 회사의 수문장(守門將)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칠보증권 회사뿐만 아니라 지하실의 칠보다방을 위시해서 백화점, 당구장, 화장품 대리점, 신문사지사, 경양식 집에 심지어는 말더듬이 교정소, 어린이 미술교습소 등이 다닥다닥 들어차 있는 11층 빌딩 입구에서 턱 끝에 힘을 주고 떡 버티어선 칠복이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기보다는 백 년쯤 전에 이 땅에 살던 사람이 다시 환생이라도 한 것처럼 접근할 수 없는 근엄한 거리감에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는 방울재 농악대들이 메기굿 할 때처럼 비단 한복에 종이꽃이 너울거리는 고깔을 쓰고, 두 어깨에서 양 옆구리에 엇갈리게 랄간 비단 휘장을 둘렀으며, 오른손으로는 대사각영기를 들고 서 있었다.

불개미집 앞 장보러 가는 개미들처럼 건물을 들락거리는 많은 사람들은 마치 박물관 진열품 구경하듯 신기한 눈으로 칠복의 그런 모습을 되작거려 뜯어보곤 했지만, 그는 눈자위 한번 흐트러뜨리지 않고 턱 끝에 힘을 주어 쇠말뚝에 옷을 입혀 놓은 것처럼 그렇게 빳빳하게 서 있기만 했다.

그의 딸 금순이도 역시 비단 색동옷에 머리 위에는 빨간 종이꽃을 꽂고 아버지 옆에 바짝 붙어 서 있었는데, 금순이의 그런 모습은 영락없이 걸립패의 어깨에 서서 옴족옴족 나비춤을 추는 꽃나비였다.

금순이는 아버지 옆에 나비처럼 날개를 접고 붙어 있기가 지루할라치면 비단 색동옷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 모양, 층계를 토닥거리며 1층부터 꼭대기까지 휘젓고 돌아다니다가, 연지를 쩍은 것처럼 두 볼이 발그작작해 가지고 돌아와서는 아버지한테 건물 안에서 보았던 것들을 신기한 듯 잘도 조잘거렸다.

금순이는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때때로 동전을 쥐어주거나 과자 나부랑이를 사주곤 했기 때문에 야금야금 그것을 받는 재미로 건물밖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건물 안의 여자 직원들도 금순이를 끔찍하게 귀여워해 주었다. 점심때가 되면 서로들 끌고 가서 도시락을 나눠 먹이곤 했다.

처음 며칠은 묘한 차림을 하고 빳빳하게 서 있는 그들 부녀를 본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킬킬대고 숙덕거리는 듯싶었지만, 그가 바로 날마다 정오만 되면 어김없이 11층 옥상에서 도시의 구석구석까지 울려퍼지도록 우람하고 신비스러운 징을 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 뒤부터는 보는 눈빛에 웃음이 사라지게 되었다.

칠보증권회사에 수문장으로 취직을 한 허 칠복은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마냥 신나고 오달진 마음에 하루에도 몇 번씩 빌딩 꼭대기 위로 뽀곰히 열려 오는 한가닥 하늘을 향해 감사하는 마음을 띄워 보내곤 하였다.

그는 조금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되레 자랑스러웠을 뿐이다.

"당신이 징을 치는 사람이우?"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이나, 그 앞을 지나는 행인들이 가끔 걸음을 멈추고 칠복을 보며 이렇게 묻곤 했다. 그때마다 칠복은 종이고깔의 꽃잎들이 싸르르 소리를 내며 출렁이도록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이때 다시

"징 한번 후련하게 잘 칩디다."

하고 칭찬이라도 한 마디 해줄라치면 벙시레 소리 없는 웃음이 얼굴에 가득 괴게 마련이었다.

이럴 때면 그는 징이 더욱 소중스러웠다.

칠복은 하루에 한 차례씩 옥상에 올라가 시가지를 발부리 아래 한눈에 넣고 더욱 흥겹고 간결하게 징을 쳤다.

꼭두새벽, 눈이 벌어지기가 바쁘게 걸립패 옷으로 바꿔 입고 회사 철문을 올린 다음,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입구에 버티고 선 칠복은, 언제나 징을 칠 수 있는 점심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회사 현관 벽 기둥에 붙은 전자시계가 열 두 시를 가리키면, 그들 부녀가 신세를 지는 숙직실로 뛰어들어가 벽에 걸어둔 징을 들고 방울재에서 부락제를 올리러 할미산 산신당으로 올라갈 때처럼 조금은 흥겹고 엄숙한 마음으로 11승 꼭대기까지 천천히 층계를 밟고 올라갔다,

징을 치기 위해 11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칠복은 방울재에서 마지막 장승제를 지냈던 2년 전의 정월 열나흗날 밤을 떠올리곤 했다. 그날 밤 방울재 사람들은 할미산 너덜겅이 허물어져 내리도록 밤새도록 마시구 농악을 치다가 한 덩어리가 되어 울어 버렸다. 칠복이도 처음으로 비틀거리도록 술을 퍼마셨으며 목이 쉬게 꺼이꺼이 울었다.

근 백 년을 이어온 방울재 마지막 장승제였다. 한달 전부터 제비(祭費)를 추렴하여 제기(祭器)도 장만했고, 제수(祭需)로 쓸 윗당산 머리 각시샘 둘레에 황토를 뿌려 악귀나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았으며, 각시샘은 멍석을 덮어 아무도 사용을 못하게 하였다.

마지막 장승제라서 어느 해보다 더 정성을 쏟은 거였다.

18대를 이어 살아왔다는 방울재 마을 앞 큰느티나무 주위에는 열두 개의 장승이 부락 수호신으로 서 있었고 방울재 사람들은 마을이 생긴 이래로 해마다 정월 열나흗날 밤에 일 년 동안에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장승제를 지내 왔었다.

정월 초하룻날 방올재 이장 김 덕기를 제주로 뽑았다.

제주가 된 이장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하기 때문에 제사 전 일곱 날 동안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두문불출해야만 했다. 제물을 장만하는 사람들도 제주와 똑같이 목욕재계하고 몸을 깨끗이 하였다.

방울재의 마지막 장승제날 밤에는 유난히도 달이 밝았다. 할미산에 달이 떠오르자 방울재 안통이 대낮처럼 훤했다. 들판에 눈까지 수북이 쌓여 대지는 눈부셨고, 하늘이 오히려 고향을 떠나야 하는 방울재 사람들의 착잡한 마음처럼 답답해 보였다.

할미산에 달이 수밀도처럼 덩실하게 떠오르자, 여자를 제외한 한 집에 한 사람씩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열 두 개 장승이 늘어선 마을 어귀 큰 느티나무 앞으로 나왔다.

달빛과 산야에 가득한 눈빛으로 밤은 대낮처럼 밝았으나, 마지막 장승제를 지내기 위해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로 향하는 방울재 사람들의 마음은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마음이 어두운 탓으로 그들은 말수조차 줄었다. 지난해 장승제 때만 해도 제를 올리기 전부터 기분이 들떠 왁자하게 떠들어대곤 했었는데, 이날 밤에는 떠벌이기 좋아하는 판쇠 영감마저 고개를 쿡 박은 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느티나무 아래엔 얼추 칠팔십 명이나 모였는데도, 무거운 한숨 소리와 삐억삐억 담배 빨아대는 소리뿐, 고즈넉하게 조용하기만 했다.

금줄이 걸린 장승 앞에 촛불이 켜지고 떡시루며, 과일, 북어. 조기 등 제물이 진열되자 농악으로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을 불렀다.

이날 밤만은 농악대도 구색을 다 갖추었다. , 꽹과리, 장고, . 소고, 호적이 답중악(畓中樂) 자진모리로 울어댔고 부락기와 영기 각각 한 쌍, 꽃나비, 대포수, 말뚝이까지 곁들였다.

전립(戰笠) 꼭대기에 털 뭉치를 단 상쇠 장 말째는 까강깡깡 꽹과리를 두드리며 머리를 들어 털 뭉치를 뱅뱅 돌렸다.

농악대의 농악 소기가 점점 흥겹게 어우러지며 징잡이 허 칠복이의 겅중거리는 발걸음이 구름을 밟듯 가벼워지고 자꾸만 징소리가 하늘로 퍼져 올라갔다.

농악이 끝나자 방울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상 노인 대추나무집 장 또삼이 할아버지가 잔을 올렸고, 이어 제주가 된 이장 김 덕기가 차근차근하고도 엄숙한 목소리로 축문을 읽었다.

"정든 앙 방울재를 떠나는 이민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니 천지신명께서는 전과 다름없이 이들을 보살펴 주시옵고 ,,,.,,. "

이날 축문은 다른 때보다도 길고 애절하여 계사에 참여한 방울재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축문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팽팽 코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칠복이도 콧대가 시큰시큰해지는 바람에 손으로 콧마루를 잡고 서너 차례 코를 풀었다.

계주의 호명에 따라 호주들이 계단 앞에 나와서 8절지 창호지를 불사르며 각기 가정의 만복을 기원하는 소지가 끝나자, 여지껏 집 뒤에 숨어 있었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방울재의 모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제사 음식을 나눠 먹었다.

다른 때 같으면 귀밝이술 한 잔씩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이날 밤만은 오래오래 취하도록 술잔을 돌리고. 희번하게 동이 터올 때까지 농악을 울렸다. 방울재 사람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는 아픔을 농악 소리로 달래기라도 하는 듯 밤새워 자진모리를 울려댔다.

부끄러움이 많아 마을 앞 각시샘을 아랫당산쪽으로 휘어 돌아가곤 하던 새색시들까지도 법고 놀이를 하였고. 아이들마다 제 아버지나 어머니의 어깨 위에 올라가서 덩실덩실 꽂나비가 되어 춤을 추었다.

11층 옥상으로 올라가 칠복은 휘휘휘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바람을 밀어 내리는 하늘과, 중긋중긋 건물들이 솟은 도시를 한 눈에 담으면서 왼손에 든 징을 머리 위로 힘껏 추켜 올렸다.

징 징 징-,

칠복은 징채를 휘둘렀다. 징소리는 바람처럼 울려퍼졌다. 징채를 휘두르는 칠복의 온몸은 피돌기가 빨라지는 듯싶었다. 그는 옥상 위에서 겅중거렸다. 머리끝에서 발부리에까지 한 줄기의 소리가 그의 핏줄을 타고 온몸에 퍼지면서, 고향을 잃은 분한 마음, 아내를 잃은 슬픔이 징소리와 함께 하늘과 땅으로 울부짖음이 되어 흩어졌다.

그는 방울재에 댐을 막으려고 불도저를 들이댔던 빨간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쓴 측량기사며, 물에 잠긴 마을에 낚싯줄을 드리운 낚시꾼들, 아내를 나꿔채 간 식당 주방장의 머리통을 깨부수듯 신들린 사람처럼 징채를 휘둘렀다.

그가 징채를 휘두르는 순간에는 뿔뿔이 흩어져버린 고향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섹 되살아나 그와 함께 겅중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상쇠잡이 장 말째는 까강까강 꽹과리를 치며 고개를 까닥거렸고, 장고잡이 김 칠덕이는 덩더꿍 덩더꿍 어깨를 내두르며 노루처럼 뛰었다. 대포수 최히 팔만이의 걀쭉한 얼굴도 보였고, 소고잡이의 여러 친구들도 신이 나서 겅중거렸다.

휘모리 자진모리 가락으로 넘어 가면서 메기굿은 절정을 이루었고, 3백 평 남짓한 옥상이 손바닥처럼 좁아졌다. 금순이도 신이 나서 꽃나비처럼 두 팔을 쩍 벌리고 나붓나붓 춤을 추었다.

건물 안의 구경꾼들이 옥상으로 올라오자, 그들 부녀는 더욱 신바람이 났다.

칠보증권 건물 안의 모든 사람들은 점심시간을 알리는 징소리를 듣고 저마다들 잠시나마 잃어버렸던 고향 하늘을 떠올리며 숙연해지기까지 하였다.

"고향에 안 가본 지가 너무 오래됐어."

"나는 한 십 년쯤 됐구만."

"다음 추석 땐 제백사허고 고향에 댕겨와야겠어."

"우리 집 애새끼들이 아빠 고향이 어디냐고 졸라대는데도 여지껏 구경을 안 시켜줬구만,"

"이러다간 고향은 꿈에도 안 나타나겠어."

"저놈의 징소리가 괜히 심란하게 만드는구만."

그들은 고개를 저뻐듬히 뒤로 꺾어 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닫힌 창문에 펼쳐진 손바닥만한 하늘을 목마르게 쳐다보면서 한마디씩 뱉어 냈다. 그들은 손바닥만한 회색 하늘에서 고향 사람들의 희미한 얼굴을 떠올리려고 해보았지만 은딱지를 구겨 던진 것 같은 한 가닥 구름에 가려 아무 것도 살아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가슴이 답답했고, 그 답답한 가슴을 징소리가 녹여주는 듯싶었다. 징소리는 철판이 되어 버리다시피 한 그들의 가슴을 거세게 후려치면서 잃어버렸던 고향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다,

 

3

 

"저놈에 징소리에 바늘이 달렸나? 내 마음을 쿡쿡 쑤시네."

칠보증권 건물 안의 모든 사람들, 징소리를 들은 80만 남도시민들은 저마다 한결같이 고향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뭉클한 향수에 젖곤 했다.

그러나 칠보증권의 총무과장 장 필수만은 징소리가 날 때마다 벌레 씹는 얼굴로 귀를 틀어막곤 했다.

"과장님, 왜 그러십니까?"

총무과에서 나이가 가장 만은 배 계장이 심상치 앉은 얼굴로 물었다.

"씨팔, 저놈에 징소리 때문에 미치겠어."

"과장님두 원,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립니까?"

"저게 사람 잡을 소리라고!"

총무과장은 털커덕 회전의자에 앉더니만 의자를 창 쪽으로 돌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징소리를 싫어하는 이유를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업었다. 고는 요즈막 어렸을 때 그가 겪었던 악몽 같은 기억이 대낮에 하늘의 구름을 보는 것만큼이나 선명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에 징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을 쥐어뜯고 있는 거였다.

장 필수는 어렸을 때부터 징소리를 싫어했다. 그 소리를 들을 매마다 큰 뱀이 그의 몸을 칭칭 휘감아 오는 것 같은 징그러운 공포를 느꼈다.

그의 고향은 섬진강 상류, 샘물보다 더 해맑은 섬진강 물이 모래밭을 핥고 흐르는 지리산 밑 노루목이라는 마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지리산 안통에서 이름난 징채잡이였다. 젊어서부터 구례, 곡성, 하동, 화개, 둔천, 벌교 등지를 남사당패처럼 걸신거리며 돌아다니기만 좋아해서 가난을 면치 못하였고 마흔이 다 되어서야 늦장가를 들어서는 한마을 박 포수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였다.

박 포수는 이름난 지리산 포수로 산돼지며 곰을 수도 없이 잡아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 그는 농사일은 장쇠(장 필수 아버지를 그렇게들 불렀다)한테 맡기고, 지리산 피아골에 눈이 녹아 내리기 시작해서 집을 나가서는, 다시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에야 뭉텅이 돈을 벌어 돌아오곤 했다.

박 포수가 집에 있는 것은 눈 때문에 길이 막혀버린 동안뿐이었다. 그는 산짐승의 생피를 많이 먹어 언제나 불그레한 얼굴로 마을 앞 돈단에 뒷짐을 지고 댕돌같이 서서는 온 세상이 자기 것인 양 넉넉한 얼굴로 한겨울을 보내곤 했었다.

박 포수가 집에 있는 정월 한달 동안은 초하루부터 그믐날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밤마다 집집이 차례로 돌며 메기굿을 했다. 그 한달 동안은 장쇠 세상이나 진배 업었다. 그는 저녁상을 물리기가 바르게 사랑방에 군불을 지피고 나서는 귀신에 흘린 사람처럼 징을 들고 겅중거리며 돈단으로 나갔다. 젊어서 남사당패처럼 돌아다니기만 해싸서, 힘든 일을 할 때는 시원찮기만 하던 그가, 일단 징채만 쥐었다 하면 겅중거리는 모습이 학춤이요, 나붓거리는 어깨춤이 남원 기생 못지 않게 흥겹고 구성져 노루목 사람들의 혼을 뺐다. 징을 잘 쳐 장쇠라 부르는 그는 징뿐만 아니고 왱과리, 장고, , 소고며 못 다루는 굿물이 없었지만, 징을 치기를 좋아해서 언제고 메기굿올 할 때는 징채를 다른 사람한테 잠시도 넘겨주기를 싫어했다.

장쇠의 징소리는 한번만 들어도 백팔번뇌를 잊어버린다는 화엄사 범종(梵鐘) 소리보다 더 맑고 힘차게 지리산 안통을 꿰흔들었다.

어린 장 필수는 정월 한 달을 아버지의 징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눈을 감고 반쯤 잠들어 있으면서 그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 장쇠는 첫닭이 홰를 쳐서야 휘주근하게 데쳐놓은 고사리처럼 길게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오곤 했으며, 그때까지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어린 장 필수는 아버지가 통샘거리 두껍다리를 건너 고샅으로 휘어들어 오는 발자욱 소리까지도 죄 귀담아 듣고 있었다,

장 필수가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원망보다는 아버지의 바보스러움에 는질는질 울화가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박 포수 때문이었다. 박 포수는 메기굿이 한창 어우러지는 한밤중이면 거의 밤마다 필수와 그의 어머니가 잠자고 있는 방에 달빛처럼 슬그머니 기어 들어와서는 메기굿이 끝나서 야 바람같이 돌아가곤 했다.

박 포수는 그러니까 필수 아버지가 후려치는 징소리가 노루목을 징징 울리기 시작하면 그들 모자가 잠자는 방에 들어와서는 메기굿 패거리들이 와글와글 농악을 울리며 한창 어우러지면 그도 또한 방안에서 필수 어머니를 깔고 한바탕 요동을 치다가 징소리가 뚝 그쳐서야 서둘러 돌아갔다.

장 필수는 기실 자는 쳐다면서도 박 포수가 나지막하게 큼큼 헛기침을 하고 슬그머니 네 발로 문턱을 더듬거리며 방으로 기어 들어올 때부터 도란거리는 말소리, 이상한 산짐승의 울음소리, 찍찍 신을 끌고 사립을 빠져나가는 소리까지도 모두 귀담아 들었다.

"어서 그만 가보씨요, ."

하고 필수 어머니가 앓는 소리로 채근질을 할라치면

"아직 징소리가 들리는디 걱정 없어. 참 고마운 징소리여."

하면서 으흐흐흐 멧돼지처럼 뱃속에서 틀어올라온 콧숨을 헐떡거리곤 했다

필수는 이 순간처럼 아버지가 바보스럽게 생각되어진 적은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당장 징채를 집어던지고 집으로 돌아와 주기를 빌었다. 그러나 징소리는 방안에 가득한 어둠처럼 그렇게 쉽게 끝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 장쇠는 달빛을 담뿍 받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돌아와서 투덕투덕 필수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고 나서는 짚불 스러지듯 코를 골았다. 필수는 그런 아버지가 마치 벼이삭에 뜨물이 들기 시작할 무렵 논에 세워진 허수아비 같다는 생각을 수없이 되풀이하곤 했다.

화를 낼 줄도, 소리내어 울 줄도 모르고 후줄그레하게 걸레 같은 헌옷을 입고 비를 맞으며 바람에 흔들거리기만 하는 허수아비.

아버지가 징을 치며 겅중거릴 때는 더욱 그렇게 보였다. 아버지가 징을 칠 때는 다리와 허리 팔 어깨 머리를 마음대로 흔들어댔다. 사람 같지가 않았다. 혼이 빠져 있는 얼굴이었다. 허수아비의 얼굴처럼 아무 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차음엔 그래도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하여 밤마다 메기굿 구경을 갔었는데, 박 포수가 슬그머니 그들 방으로 들어온 사실을 알고 부터는 어둠 속에 갇히듯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는 이내 방에 드러눕고 말았다. 사람 같지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싫었다. 그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슬픈 생각이 뭉클뭉클 솟구쳤다.

"아부지, 오늘밤엔 굿치러 가지 말어."

필수는 어둠이 무서웠다, 그래서 징을 들고 나가는 아버지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속타는 마음으로 칭얼대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바보 같은 그의 아버지는

"이 노무 자석아, 이 장쇠가 아니면 누가 징을 칠 꺼여."

하면서, 징채로 가볍게 아들의 머리를 툭툭 치며 벌죽벌죽 웃었다,

"징소리 듣기 싫어 잉."

"내 원참. 장쇠 징소리 듣기 싫다는 놈 첨 봤구나. 지리산 안통에서 이 장쇠만큼 징을 잘 치는 사람이 있는 줄 알어 ? 너도 이담에 커서 애비모양 징채잡이나 돼야 해 이놈아, 애비는 징채만 잡았다 허문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단다."

할 뿐이었다.

아버지 장쇠는 매일 밤 맨 먼저 징을 들고 돈단에 나가서, 놋쇠덩어리의 그 무거운 징이 마치 살아있는 것이기라도 한 듯 뭐라고 말을 하면서 징채를 휘둘러 농악꾼들을 불러모았다.

아버지 장쇠의 징소리와 함께, 낮 동안 깊이 잠든 노루목이 비로소 깨어난 듯싶었다. 메기굿이 계속되는 정월 한 달 동안 노루목은 낮에 잠들고 밤이면 깨어나곤 했다.

필수는 그 한달 동안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온통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친구들과 잿등에 올라가 연날리기를 할 때도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필수는 아버지의 징소리가 사람의 혼을 빼어버린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그는 징소리에는 귀신이 붙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 때문에 징소리만 들으면 그의 머리와 귀에서 명주실보다 더 가늘어 눈으로 볼 수 없는 혼이 슬슬 빠져나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곤 했다.

"정월이 가까와 오니께 징이 미리 징징 우는구나."

섣달이 저물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벽에 걸린 징을 쳐다보며 늘 그렇게 말했다.

"징이 혼자 울어요?"

하고 필수가 물을라치면

", 울고 말고. "

하면서, 잠시 징채를 휘두를 때처럼 얼굴이 놋쇠 색깔로 굳어지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필수는 징에도 해마다 금줄을 치고 제사를 지내는 마을 앞 늙은 느티나무처럼 귀신이 붙어 있는 게로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날 밤, 필수는 징소리가 사람의 혼을 뿌리째 빼내는 힘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정월 대보름이 지난 이틀 후라서 달빛은 밤늦게까지 안마당이며, 헛간지붕, 앙상한 접시감나무 가지들 위에 섬진강 은어의 비늘처럼 쌓여 번쩍거렸다.

어김없이 박 포수가 와 있는 그날 밤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목젖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도록 숨을 죽이며 마른침만 꼴닥거리던 필수는, 목자(目子)를 모로 사려 한 덩어리가 되어 들썩거리는 박 포수와 어머니의 모습을 촉촉히 물기 담은 눈으로 찔러보며, 제발 아버지가 발리 돌아오기를 징소리에 빌었다.

그가 간절히 빌자 징소리가 갑자기 뚝 멎었다, 꽹과리며 북, 장고 소리가 요란한데 징소리만 들리지 않았다.

"징소리가 죽었나벼요."

필수 어머니가 소여물 먹는 소리로, 고르지 못한 숨소리를 한껏 가라앉히며 속삭이듯 말하자

"귀가 묵었어 ? 내 귀에는 장쇠 징소리가 귀청을 뜯는구만."

하고 박 포수는 한결 더 느긋해지는 듯싶었다.

"그라네요, 내 귀도 시끌덤벙허네요."

필수 어머니도 박 포수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필수는 귀청을 열고 머리털처럼 미세하게 갈라진 신경의 편린들을 한곳에 모아보았지만 아버지의 징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지리산 골짜기를 훑고 섬진강으로 갈퀴질하듯 드밀고 내려오는 휘휘한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필수는 느리게 내쉬는 숨소리에 맞춰 하나부터 백까지 세는 동안에 아버지가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그의 예감은 화살이 과녁에 정통으로 꽂히듯 적중했다. 아버지의 발자욱 소리는 쿵쿵쿵 북소리처럼 땅을 울리며 가까이 달려오고 있었다. 여든 아홉을 셌을 때 두껍다리를 건너왔고, 사립 안으로 들어서는 소리를 분명하게 들을 수가 있었다.

방문이 벌컥 열렸다.

박 포수와 어머니는 뱀처럼 또아리진 몸을 미처 풀 겨를도 없었다. 대낮같이 환하게 비친 달빛 때문에 몸을 숨길 만한 어둠도 없었다.

"뉘기여?"

방에 들어서자 박 포수의 그림자를 발견한 아버지가 징채를 후려치듯한 목소리로 튕겼다. 그러고는 아버지는 왼손에 징을 든 채 꾸부정하게 허리를 꺾어, 비실비실 몸을 일으키는 박 포수를 희끄무레한 달빛 사이로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 같더니

"아니, 네 놈이?"

하며 오른손으로 박 포수의 멱살을 댕댕하게 잡아 올렸으며, 뒤이어 으으흥흥 황소 울음을 울다가, 두 손으로 징을 움켜잡아 마구 휘둘러댔고, 퍽퍽 박 포수의 머리가 징에 맞아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박 포수는 필수 아버지가 휘두르는 징에 맞고 짧은 비명을 지르며 나무둥치처럼 퍽 쓰러졌는데. 필수 아버지는 방바닥에 넘어진 박 포수의 몸을 징으로, 겨울 동안 얼어붙은 땅에 괭이질하듯 쿡쿡 찍고 두 발로 직신직신 밟았다.

놀란 어머니는 옷을 추스려 입을 겨를도 없이 홑 치맛바람으로 방에서 튀어나가 버렸다. 필수도 한달음에 동구 밖 돈단까치 뛰어나갔다.

메기굿을 끝내고 마악 집으로 돌아가던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뛰어 왔을 땐, 방안은 온통 피가 흥건하게 괴어 있었고, 피투성이라 되어 네 활개를 쭉 뻗고 엎어져 있는 박 포수는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밤새도록 추위와 공포에 떤 필수는 몸뚱이가 콩알만큼 작아져 버린 듯싶었다. 필수는 그날 밤 집에 돌아가키 않고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서 떨며 아침을 맞았다

필수 아버지 장쇠는 그날로 스스로 이십 리나 되는 지서에 나가 자수를 했으며, 십 년 징역을 살고 나와서는 시난고난 앓다가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후로 필수는 아버지의 징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는 징소리가 싫어졌다. 어쩌다가 징소리를 들을라치면, 그의 혼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 같은 아릿아릿한 현기증에 떨었다.

아버지의 혼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맞아 죽은 박 포수의 우는소리 같기도 했다. 필수는 나이가 들수록 징소리에 대한 공포도 더욱 커졌다.

그런 일이 있던 해 봄이 오기도 전에 어머니는 필수를 데리고 서둘러 노루목을 떠나 지금 살고 있는 광주시로 나왔다. 그들 모자는 징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처럼, 한번 돌아서버린 고향에 두 번 다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가 아버지의 혼의 울부짖음 같은 징소리를 듣지 않게 된 것과 같이 그의 뇌리에서 고향이 잊혀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제 하고많은 세월 속에 그 악몽이 묻혀버렸는가 싶었는데 난데없이 바보 같은 징채잡이 허 칠복이가 나타나 날마다 징을 치는 바람에 필수는 마치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과거를 되살려 낸 징소리는 끊임없이 삶의 고통을 확인시켜 주었고 그 고통은 하루하루 생활을 무기력하고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과거란 아름다운 것이거나 고통스러운 것이거나 간에 과거의 무덤 속에 파묻혀 있어야지, 크게 되살아난다면 결코 즐거운 것이 못 되었다.

요즈막 필수는 되살아난 과거의 기억 자문에 해소병으로 몇 년째 앓아 누워 있는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역겹도록 보기 싫어졌고, 박 포수의 핏줄일 것으로 믿어 온, 대학에 다니는 하나뿐인 여동생 필순이마저도 얼굴을 마주 대하기를 꺼려해 오고 있는 터였다.

필순이의 휘움한 꾀꼬리 눈썹이며, 끝이 뭉뚱한 주머니 코가 영락없이 박포수를 닮은 것 같았다.

 

4

 

장 필수 과장은 총무과 직원들이 점심을 먹을 생각조차 잃어버린 듯 몽롱한 시선으로 창 밖을 바라보며 징소리에 취해 있는 모습들을 보고 벌떡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는 진군하는 용사처럼 어깨에 힘을 주고 사장실로 직행했다.

사장은 팔걸이 의자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 곁에서 인기척이 나자 마악 깨어난 듯한 희미한 시선을 들어 총무과장을 가볍게 쳐다보았다.

"사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장은 팔을 거두고 고쳐 앉으며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저 징소리 말입니다."

"그래. 장 과장도 고향을 생각하고 있었나?"

"지장이 많습니다."

"무슨 소린가?"

"징소리 때문에 직원들 사기가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박 철 사장은 갑자기 사장실 안이 컹컹 울리도록 광주리만하게 입을 벌리고 한바탕 큰소리로 웃었다.

"장 과장 고향이 어딘가?"

"지리산 밑입니다."

"좋은 곳이로구만. 자주 가는가? "

"안 간 지가 한 이십 년도 더 넘었습니다."

"너무했구만. 그러니까 그런 엉뚱한 소릴 하지."

"무슨 말씀이신지."

"고향을 잊는 건 부모를 잊는 거나 마찬가질세."

사장의 말에 그는 명치끝이 바늘에 절린 것 같은 따끔한 아픔을 느꼈다.

그는 사장실에서 나오려다 말고 징 징 징 그의 심장을 쥐어뜯는 듯한 소리에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진 채 한동안 말뚝처럼 서 있었다,

"하긴 나도 마찬가질세, 나도 그 동안 고향을 잃어버리고 있었네. 그런데 오랜만에 저 징소리를 듣고 나니 다시 고향이 생각나고 옛날 사람들 얼굴이 하나하나 살아나는구만. 고마운 소리지. 저건 마법의 소리일지도 몰라.

고향을 잊고도 이만큼 성공했는데 저 소리를 들으니 내가 그 동안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일세."

사장은 잠에 취한 사람처럼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장 필수 과장은 현실감이 없이 꿈꾸듯 말하는 사장의 그 같은 소리에 그렇구나, 사장도 혼을 빼앗기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장님, 실은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장 필수 과장은 엉뚱한 말을-뱉어 냈다.

"전화?"

", 저눔의 징소리 때문이죠. 시민들한테서 경찰서에 전화 고발이 빗발친다고 합니다."

"불쌍한 시민들. "

"소리 공해라는 겁니다요."

"공해라니!"

사강은 상반신을 벌떡 일으키며, 퍼허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마치 타이어 튜브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처럼 토해 냈다.

"공해라니, 말이 되나?"

"단속을 하겠답니다,"

"불쌍한 것들! 천둥을 치는 하느님을 입건하라지 원!"

과장은 풀이 죽어 시선 둘 곳조차 찾지 못하고 당황했다. 그는 비로소 사장한테 그런 엉뚱한 거짓말을 한 게 지나쳤음을 알아차렸다.

"경찰서에서 오면 내게 알려주게."

박 철 사장은 징소리가 멎자 천천히 사장실에서 나갔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장 과장은 걸핏하면 칠복이한테 괜한 트집을 잡아 지악스럽도록 달달 들볶아 댔다.

그는 칠복이의 행동 하나 하나에까지 신경을 곤두세워 딱따구리처럼 쪼아 댔다. 간섭이 심했다.

걸립패 옷을 입고 온종일 건물 입구에 서 있는 칠복에게 턱을 너무 치켜올리지 말라거니, 인상이 절간 입구의 험상궂은 사천왕상 같다거니, 이러쿵저러쿵 강아지 얼음 먹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과부 시어머니가 며느리 닥달하는 듯하였다.

그는 또 청소부가 따로 셋씩이나 있는데도, 건물 입구에 담배꽁초만 하나 떨어져 있어도 칠복이를 다그치며 큰소리였다. 칠복이는 그저 장 과장이 시키는 대로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다할 뿐이었다.

칠복은 단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는 늘 월급장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로구나, 하지만 장 과장이라는 사람은 우리 외삼촌에 비하면 훨씬 양반인걸 하고 생각했다. 칠복이가 어려서부터 꼴머슴으로 들어가 순덕이한테 장가를 들기까지 이십 년이 넘도록 머슴살이를 해 온 그의 외삼촌은 인정이라고는 담배씨 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칠복이의 외삼촌 김 막동은 무릎까지 올라오도록 눈이 쌓인 한겨울에도 나무를 시켰고, 칠복이가 나무를 해오지 않을라치면 옷을 홀랑 벗겨 황룡강에 처넣는 사람이었다. 잔뼈가 굵어 장가들 때까지 새경은 고사하고 철따라 옷도 제대로 해주지 않은 그의 외삼촌은 신접살이를 나을 때 개다리 오두막 한 칸을 겨우 장만해 주었을 뿐이었다.

장 과장의 극성은 날로 심해졌다.

칠복이 부녀는 칠보증권 숙직실에서 잠을 자고 아침 저녁으로 숙직실 블록 담 모퉁이에서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번갯불에 콩 궈 먹듯 라면을 끓여먹곤 했는데, 장 과장이 어떻게 그걸 냄새맡고는 어찌나 불호령인지, 숙직실에서는 물도 데워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칠복은 장 과장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하는 수 없이 회사에서 두어 전봇대쯤 떨어진, ㄷ자로 건어 들어가 푸줏간 골목 입구에 있는 막걸리 집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러나 장 과장의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심사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왜 그가 그렇게 지악스럽게 행패를 부리는 건지 그의 꾸정꾸정한 속마음을 알 턱이 없는 칠복은, 아내를 찾을 때까지 칠보증권회사에서 탈없이 버텨나가자면 아무래도 장 과장 눈밖에 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그의 앞에서는 코가 땅에 닿게 허리를 휘어 과장님 과장님하고 온갖 너름새를 다 떨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칠복을 보는 장 과장의 눈에는 뱀의 혓바닥 같은 섬칫한 징그러움이 도사려 있었다,

그는 언제나 고양이 쥐 보듯 시선에 낚시바늘을 달고 잡아먹을 것처럼 쪘어보았다.

칠보증권의 수문장이 된 지 닷새쯤 지나서, 칠복은 참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낮 열두 시가 되어 숙직실에 걸어둔 징을 들고 층계를 급히 올라가는데. 맨 꼭대기 옥상으로 올라가는 철문의 큼직한 쇠통이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여지껏 그런 일이 없었다. 당황한 칠복은 총무과로 뛰어 내려와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을 끌러달라고 비대발괄 빌었으나, 장 과장은 아무도 열쇠를 갖고 있지 않다면서, 지금까지 내내 열려 있던 문을 누가 잠가버렀느냐고 되레 칠복이한테만 꽝꽝 큰소리를 벼락치듯 했다,

칠복은 그의 가슴 한구석이 차갑게 얼어붙는 절망감을 맛보았다. 내일부턴 그의 머리 위에 해가 떠오르지 않을 것 같은 참담감에 창자끝에서부터 한숨이 틀어올랐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열쇠를 찾지 못해 1층에서부터 11층까지의 일백 아흔 여덟 개의 층계를 허파가 곧 터질 것 같이 헐떡거리면서 다람쥐처럼 되풀이해서 오르락내리락할 뿐이었다.

결국 그날은 징을 치지 못했다.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옥상으로 올라가는 철문이 그대로 닫혀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허수아비처럼 휘주근하게 온몸의 핏줄이 모두 얼어붙은 모습으로 징을 들고 숙직실에 돌아오자, 옥상 철문 열쇠가 숙직실 꽃무늬 비닐장판 바닥에 귀신의 신짝처럼 팽개쳐져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열쇠를 집어들고 부르르 털었다.

천지신명이여, 방울재 장승님이시여. 성황당 신이시여, 방울재 당산님이시여.

칠복은 부르르 몸을 털며 마음속 깊숙이 울부짖었다,

칠북은 다음날부터 다시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징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루를 거르게 된 것이 죽었다가 다시 께어난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생각되었다. 열쇠 장난을 한 사람이 장 과장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머리에 찍혀왔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칠복은 더욱 장 과장을 보기가 섬칫해졌다. 그를 찍어보는 장 과장의 시선은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는 호비칼처럼 사나와졌다.

그러나 장 과장의 그 같은 지악스러움에도 징소리는 어김없이 도시에 울려 퍼졌다. 징소리는 매일 낮 12시 반만 되면 도시의 한복판에 있는 가장 높은 빌딩 칠보증권 11층 옥상 한 곳에서 한가지 울림으로 퍼졌지만 80만 시민들은 저마다 각기 여러 가지 소리로 들었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고향 사람들의 목소리로, 억눌린 사람들에게 는 자유의 울부짖음으로, 슬픈 사람들에게는 울음 대신 환희의 소리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용기의 외침으로 들렸다.

다음날 칠복이가 한바탕 신명나게 징을 치고 뿔긋하게 얼굴이 달아올라 층계를 내려오는데 그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방울재 이장 김 덕기였다. 칠복은 그가 김 덕기라는 것을 쉽게 알아보지 못하고 떠름한 눈으로 마주보았다. 옛날 방울새에서 살 때는 신수가 좋아 시골 사람답지 않게 마지막 넉 잠을 자고 섶에 오를 누에처럼 허여멀쑥했었는데 지난 2년 사이에 온통 주근깨 투성이에다 광대뼈가 툭 불거지고 까무잡잡하게 타버렸다. 검고 살갗이 엷어진 그의 얼굴이 삶의 고달픔을 말해 주었다. 게다가 그는 오른손에 붕대를 여러 겹으로 칭칭 감고 있어, 얼추 보면 아치 다방이나 술집들을 떠돌음하며 검나부랑이를 파는 거렁뱅이나 진배없었다. 그의 몰골은 지난 2년 사이에 한 20년쯤 폭삭 늙어버린 듯싶었다.

"자네 덕기 아닌가?"

칠복은 죽은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속 가장 깊숙한 밑바닥부터 뜨거운 불길이 확 치솟아 오르는 반가움에 징채를 쥔 오른손으로 그의 가냘픈 어깨를 꼭 찍어 쥐었다.

"칠복이 자네가 틀림없구먼. 징소리를 듣고 자네라는 걸 그냥 알았어. 징소리가 방울재 사람들 이름을 부르더라니께 그려."

김 덕기는 슬프고도 반가운 미소를 씁쓸하게 떠올리며 말했다.

"처음부터 자네 징소린 줄 알았어. 방울재 사람이라면 자네 징소리를 다 알어듣재 잉."

"서울로 올라갔다고 허든디."

"열흘 전에 내려왔구만. 헌디 자네 징소리 듣고 찾아온 방울재 사람들 없든가?"

"아아니! 아직은,,,,,,. "

"이상허구만. 징소리를 들었다면 달음박질쳐 올 껀디, 뿔뿔이 헤어져번진 뒤로 통 소식을 알 수가 없으니------징소리가 나는 거 보니께 아직 방울재가 없어지지 안 했구만 그려."

"암턴 잘 왔네."

칠복은 우선 덕기를 데리고 숙직실로 들어갔다. 그는 칠복에게 칠보증권회사에 취직을 하게 된 경위를 자랑삼아 이야기했고, 그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난 덕기는 또 덕기대로, 고향 방울재에서 나와서 2년 동안 보상금으로 받은 돈 곶감꼬치 빼먹듯 다 빼먹고,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서울에서 내려온 이야기를 버릇처럼 코를 훌쩍거리며 시시콜콜이 털어놓았다.

"칠복이 자네는 이제 이 도시제 뿌리를 박었구만그려."

"뿌리를 박었달 순 없어도 요새 같으면 숨통이 바늘귀만큼 터진 것 같구만. 우선 징을 칠 수 있으니 살 것 같으이."

칠복은 차마 마누라를 잃어버린 이야기만은 입밖에 내놓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서울에서는 왜 내려왔어? 깊은 산중 고사리 야지에 심으면 뿌리를 못 뻗고 말라 죽드끼, 고향을 잃은 우리들이 어디 간들 편할까만, 끝꺼정 참어보재."

"서울은 우리같이 눈 둘 달린 사람은 못 살겄드만."

"에끼 이 사람아, 서울 사람들은 눈이 여남은 개쯤 되든가?"

"열 개도 더 될 꺼여. 뒤꼭지에도 손가락에도 발뒤꿈치에도 눈 안 달린 데가 없어. 눈마다 뻘겋게 불을 쓰고 다니드만. 심장도 말이시, 우리같이 손톱으로만 튕겨도 피가 팍 솟구치는 그런 심장이 아니고, 송곳으로 찔러도 피 한방을 안 나오는 양철 심장이라야 살겄데야."

"에끼!"

"내 말 안 믿는구만."

그러면서 덕기는 갑자기 혀끝에 열을 올려 코를 훌쩍거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 손 다친 이야기 헐께 들어보소. 있는 돈 다 깨 묵고 달포 전에 신촌 목욕탕에 화부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아까 했재잉, 목욕탕에서 허는 일은 그다지 힘들지는 않데만, 새벽 일찌기 문 열기가 젤 죽겠드구만. 목욕탕이란게 새벽 손님이 많기 점에 일찌감치 문을 열어야거든. 아 그런데마시, 문을 열다가 큰 유리가 와장창 깨지면서 손목 핏줄이 상했단마시. 피 한번 물꼬 터지드끼 겁나게 나데. 다급한 김에 손수건으로 상처를 싸맸는데도 어찌나 피가 쏟아지든지. 병원을 찾아 뛰었지. 그러다 빈 택시를 만났어. 무조건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가자고 했지. 한참 가다 운전수가 먼저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내리라고 하드만. 그런데 거긴 병원이 아니고 파출소였어. 그눔에 운전수가 말이시 새벽에 웬놈이 손에 피투성이가 되어 뛰다가 다급하게 택시를 잡아타는 게 수상쩍었다는 게야, 내가 강도로 보였든갑서. 파출소 순경한테 방울재에서 나온 이야기부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죄 씨부렁거려서야 놓아주더구만. 마침 파출소 앞에 병원이 보이데. 괌을 빠락빠락 질러 병원 문을 열자, 간호원이 캥한 얼굴로 상처를 보더니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담서 고무줄로 팔뚝을 확 묶드구만. 그제서야 신통하게도 피가 뚝 멎데. 퍼가 멎자 간호원이 이 병원은 산부인과 람서 외과병원으로 가라고 하지 않겠는가, 외과병원은 파출소 뒤쪽을 한참 가야 있다고 험서 말이시. 그래서 고맙다고 허리까지 꺾고 병원을 나오려는데, 이봐, 이봐요 하고 간호원이 나를 부르더니 팔뚝을 묶은 고무줄을 풀고 가라는 거여. 그래서 인제 고무줄을 풀어도 피가 안 납니껴 하고 물었더니, 고무줄을 풀면 다시 릭가 난다는 거여. 그래서 내 말이, 외과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돌아올 때 고무줄을 갖다드리지요, 하고 사정을 했네만, 얼굴은 곱상한 그 간호원년 소가지는 꼭 비루먹은 똥개 같데. 안 된다는 거여. 고무줄을 끌러놓고 가라고 빠락빠락 지랄 아니겠어? 하는 수 없이 고무줄을 끌러 던져 주고 나왔다네. 서울은 그런 디여. 그런 일이 있은 뒤 정이 구만 리나 뚝 떨어져서 죽어도 고향에서 죽겠다고 작심하고 식솔들 몰고 내려와 뿌렸구만."

덕기의 이야기를 들은 칠복은 목울대에 불잉걸이라도 맺힌 듯 후끈거렸다. 그제서야 칠복이도 방울재에서 나오던 해에 그의 마누라가 식당 주방장과 눈이 맞아 자취를 감취버린 일이며, 지난봄에 내려갔다가 쫓겨 나온 이야기. 징을 치고 싶어 환장해서 무등산에 올라가 신나게 치다가 파출소에 끌려갔던 이야기를 부끄럼없이 모두 말했다.

"방울재가 온통 낚시터가 되야뿌렀드구만, 낚시꾼들 덕분에 여남은 집이나 되돌아와서 매운탕이랑 술을 팔데.. 그런디 낚시꾼들이 우리 마을에 낚싯줄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니 횃가닥 마음이 뒤집히더구만. 그래서 냅다 낚시터에서 징을 쳐뿌렀어. 그랬드니 마을 친구들이 자기네들이 낚시꾼들 상대로 목구멍 타작이나마 허는 거이 배가 아프냐면서 덕석몰이를 해서 쫓아내드구만. 말하자면 완전히 미친놈 취급당헌 거재. 그런디 마시, 물에 잠긴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응께 홱가닥 쓸개가 뒤집히데. 물 속을 들여다보니께 헤어진 방울재 사람들 얼굴이 죄다 보이드라니께 그려."

말을 마치고 나서 칠복은 슬픈 얼굴로 한숨을 토해 냈다.

"실은 나 말이시, 방울재로 다시 들어갈 작정이네."

덕기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깊숙이 떨구었다.

"뭐허고 살라고? 자네도 낚시꾼들 상대로 매운탕이나 끓여줄라고?"

"흙을 파먹는 한이 있어도 고향 땅에서 죽고 싶네."

"허긴 우리같이 돈도 기술도 없는 등신들은 차라리 방울재가 아니라도 시골에서 사는 기 더 편하재. 요새 시골에 일손이 모자라서 난리라는디."

"그렇다면 칠복이 자네도 같이 가세."

"나는 안 되야, 마누라를 찾어야재."

"이 사람아, 싫다고 나간 사람을 어뜨케 찾어."

"이 징만 있음사 문제 없네. 내 징소리를 들으면 꼭 나를 찾아올 꺼여."

"싫다고 다른 사내허고 배맞아 나간 마누라가 뭐이 좋다고."

"고향을 잃어뿐 우리 아닌가. 그까짓 몸 버린 거 아무 것도 아니네. 마음만 돌아서면 용서해야재. 그래서 징을 칠 때도 마누라, 용서할 테니 돌아오소 하고 말하는구만. 아마 마누라도 내 말소리를 들을 꺼여."

칠복의 그 같은 말에 덕기는 참 알 수 없다는 듯이 슬픈 표정으로 한동안 그를 마주보았다,

덕기는 징소리처럼 긴 여운을 남기고 돌아갔다. 방울재로 내라가기 전에 다시 한번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덕기를 만난 다음부터 칠복은 갑자기 방을재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매운탕집을 하고 있는 봉구와 덕칠이 팔만이도 만나보고 싶었다. 낚시꾼들을 훼방놓지 않고 말짱한 정신으로 물에 잠긴 방울재를 한번 더 휘휘 둘러보고 싶었다.

덕기가 찾아온 다음날 밤, 칠복이는 봉구를 만났다. 징소리를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대뜸 방울재로 내려가자고 했다. 고향을 떠나 뿔뿔이 바람꽃처럼 흩어졌던 방울재 사람들이 모두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칠복은 징 하나만을 챙겨들고 부랴부랴 서둘러 봉구를 따라나섰다. 봉구말대로 방울재에는 고향을 떠나 풍지박산이 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와 있었다. 앉은뱅이 장 팔도며 곰배팔이 김 칠순이까지 돌아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방울재를 떠날 때 열 두 개의 장승을 뽑아 옮겨놓은 할미 봉 중턱 산신당에 모여서 해가 기울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만 난 큰 기쁨에 한 덩어리가 되어 살아온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밤 이 오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다시 헤어져야 하는 슬픔도 잊어버린 듯 싶었다.

칠복이 마누라 순덕이도 돌아와 있었다, 그들 세 식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위처럼 오랜 동안 부둥켜안고만 있었다. 눈물마저 말라붙어 울음이 솟구치지 않았다. 모든 슬픔은 가슴의 마장 깊숙한 바닥에 가라앉아 버렸다. 그냥 목구멍에 불이 붙은 듯 후끈후끈 달아오르고 입안이 바싹바싹 탔을 뿐이다.

"내 징소리 못 들었어?"

"징소리가 어찌나 내 가슴을 쳤는지 멍이 다 들었어요."

그들은 그렇게 묻고 대답했다.

할미산의 산 그림자가 거뭇거뭇 물위를 덮기 시작하자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호수 위에 어둠이 내려앉자 그들이 돌아가야 할 집들이 물 속에 잠겨 버린 사실에 비로소 감당할 수 없는 큰 슬픔을 느꼈다.

"땜을 부셔버립시다."

누구인가 큰소리로 울부짖듯 말했다. 어느덧 방울재 사람들의 얼굴에도 어둠이 내려앉아 가까이서 들여다보기 전에는 쉽사리 누구인가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럽시다. 점을 부셔버리고 방울재를 다시 찾읍시다."

목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안 됩니다. 점을 없애면 안 됩니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댐을 부숴버리자거니, 그래서는 안 된다거니 입씨름질을 했다. 그러는 사이에 할미산도 호수도 하늘까지도 방울재가 물에 잠기듯 온통 두텁고 끈끈한 어둠에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칠복은 고향의 어둠은 조금도 두렵지가 않았다.

", 호수에서 물이나 빼버립시다."

다시 누구인가 큰소리로 말했고, 웅성웅성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할미산보다 더 단단하고 무섭게 버티어 선 콘크리트 댐 쪽으로 웅성웅성 내려갔다. 칠복이네 세 식구들도 마을 사람들을 따라 내려갔다. 그들은 고속도로보다 더 넓은 댐 위에 내려왔다. 젊은 사람들 여러 명이 관리사무실로 뛰어들어가는 것 같더니 육중한 수문이 덜컹거리며 올라가고, 거센 물길이 콸콸콸 빠져나갔다. 수문에서 물이 빠지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천둥처럼 무섭게 들렸다. 마을 사람들이 와아와아 함성을 올렸다, 칠복은 수문으로 콸콸 물 빠지는 소리와 방울재 사람들의 함성에 놀라 잠이 깨었다. 조금도 꿈 같지가 않았다. 꿈속에서 잠시라도 만났던 순덕이를 다시 놓쳐버린 아쉬움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자네 왜 그렇게 기운이 꽉 빠져 보이나?"

꿈을 꾼 다음날 낮에 징을 치고 내려오다가 층계에서 사장을 만났다.

"자네가 징을 친 뒤부터 우리 회사 거래고가 나날이 올라가고 있네."

사장의 말에도 칠복은 간밤의 꿈 때문에 혼몽해진 머리로 꾸벅꾸벅 고개만을 조아렸을 뿐이다.

"마누라한테서는 여지껏 소식이 없나? "

다시 사장이 물었다.

"곧 돌아올 껍니다요."

"남의 여자가 되었다면 어쩌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칠복이 자네는 아무래도 요새 사람이 아니야."

"아직은 징소리를 못 들은 것이 분명합니다요. 들었다면 단박 쫓아왔을 것인디."

칠복의 말에 박 철 사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냉소를 머금은 채 몸을 돌려세웠다.

그런데, 그의 아내 순덕이는 광주시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하루에 한 번씩 그녀의 잘못을 물어뜯기라도 하듯 심장을 때리는 징소리를 들었다.

한때 눈이 뒤집혀 그녀가 나다녔던 금학 식당의 젊은 주방장과 배가 맞아 목포까지 가서 술집을 냈으나, 그에게서 버림을 당하고 한겨울 정처 없이 떠돌다가 남편 칠복이와 딸 금순이가 있을 것 같은 광주시로 다시 올라왔다. 건축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순덕이는 광주시로 올라오기 전에 잠깐 방울재에 들렀었다. 혹시 그곳에 남편이 와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용서만 해준다면 비록 육신은 걸레처럼 찢겼어도 혼만이라도 그의 옆에 붙어 있고 싶었다. 무덤 속이라도 같이 있고 싶었다.

그녀는 남편 칠복이가 미쳐서 돌아왔다가 쫓겨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칠복이가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더라고 했다. 그러나 순덕이는 마을 사람들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칠복이는 징을 칠 수 있는 한 절대로 제 정신이 분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 정신이 아니면 징을 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칠복이를 쫓아낸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칠복이를 쫓아낸 날 밤부텀 징소리 땜시 잠을 못 잔다니께요."

"고향 사람을 안면박대했으니 벌을 받을 꺼요."

"그 징소리가 우리 방울재 혼인디, 혼을 쫓아버렸으니 벌을 받을 거로구만요. 이제라도 칠복이가 어디 있는지만 알면 당장에 데려오고 싶다오. 까짓 낚시꾼들 아니면 굶어 죽기밖에 더 하겠소? 굶어죽는 것은 무섭지가 않지만 방울재 혼을 잃어버린다는 기 더,"

마을이 물에 잠기자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낚시꾼들을 상대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슬픈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방울재에 가서 그 이야기를 들은 순덕인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을 찾아서 방울재에 남아 있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전해주어야겠다고 공그리던 차에 어느 날 갑자기 징소리를 듣게 되었다.

칠보증권에서 2백 미터쯤 떨어진 중앙우체국 옆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벽돌 나르는 일을 하고 있는 순덕이는 날마다 징소리와 함께 남편의 목소리도 들었다. 그녀는 남편 칠복이가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인부들에게 징을 치는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요, 남편은 고향에서 이름난 징채잡이였다우 하고 어깨에 힘을 주고 큰소리로 말하고 싶었다.

순덕이는 울컥 징소리가 들려오는 칠보증권으로 한달음에 뛰어가서 남편과 딸을 만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뿐이었다, 얼굴에 가죽을 둘러쓰지 않은 바에야 차마 남편 앞에 마주설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만 징소리를 듣고 남편이 무사히 잘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고 그것만으로 마음을 달랜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남편의 징소리였다, 이제 들어보니 방울재에서보다 할 말이 더 많아져서 그런지 징소리의 꼬리가 유난히 한스럽고 길게 울렸다.

순덕이는 방울재에서도 남편 칠복이의 징소리를 좋아했다. 어쩌면 그녀는 그 징소리 때문에 그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도시 물을 먹어서 남자를 보는 눈이 남다르게 사치스러워진 그녀는 처음 그와 혼담이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세상에 아무려면 남자가 없어 생긴 것이라고는 어느 한구석이라도 당차고 야무진 데가 없이 허수아비처럼 허벙하고, 마음 씀씀이며 사람 대하는 게 식은 죽 모양 밍밍하며, 촌스럽고 맛대가리라고는 수숫대만큼도 없는 저런 사람과 짝을 맞출 수가 있겠느냐 싶어 가당찮게 코웃음을 쳐버렸었는데, 우연히 조합장 집 마당밟기굿 구경을 하는 날 밤 그의 구성진 징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싸 달라지게 된 것이었다. 우람하고도 마음속의 온갖 괴로움을 칼칼이 씻어 바람에 띄워 버리듯한 시원스런 소리도 소리려니와 마을 앞 큰 좀팽나무 가지들이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우줄거리듯, 징을 잡은 왼손 쪽으로 어슷하게 몸을 기울이고 울긋불긋 꿩 모가지 같이 요란한 비단 수술을 단 징채를 휘두르며 겅중거리는 그의 모습은 결코 속이 빈 허수아비가 아닌 멋지고 믿음직스럽고 당찬 남자였다.

그 뒤부터 그의 징소리가 좋아져 혼인을 허락하였다.

요즈막 그녀는 징소리를 들을 때마다 처녀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언젠가는 용기를 내서 칠보증권으로 남편을 찾아갈 두렵고도 행복한 생각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공사판에서 온종일 벽돌을 나르고. 혼자 부스럼딱지처럼 볼상사납게 붙어사는 산동네의 월세방에 휘적휘적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면, 으스스한 적막감으로 피로에 지친 몸이 좁쌀만큼도 보잘것없이 작아지는 듯싶었다. 온 세상이 숨을 죽인 적막한 한밤중에도 고막이 터질 것 같이 징 징 징 귀청을 쥐어뜯듯 울어대는 징소리 때문에 뜬눈으로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곤 했다. 그 때문에 그녀의 몸은 수수깡처럼 온몸의 물기가 확 빠져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고달픔은 얼마든지 참을 수가 있었다. 견딜 수 없는 것은 마음의 아픔이었다. 그럴수록 남편을 저버렸던 자신이 더욱 미워지면서 쇠꼬챙이로 심장을 쿡쿡 쑤시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녀는 피할 수 없는 죄간을 받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나마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징소리 때문이었다. 그녀의 목숨은 징소리처럼 한스럽고 질기다고 생각했다.

목포에서 강가한테 쭈그렁 통조림 깡통 채이듯 버림을 당하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몇 번이고 기차 바퓌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지 않았던가. 남도시로 나와 징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아마 그녀의 목숨은 이미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계 남편의 징소리를 들은 뒤부터 그녀는 마음 아픈 것은 응당 받아야 할 죄값으로 생각하고 공사장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차돌처럼 굳히는 것이었다. 징소리는 그녀에게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수수깡처럼 말라비틀어진 그녀의 몸에 피를 넣어 주고, 솜방망이처럼 되어버린 머리에 한 가닥 영혼의 불을 지펴주었다. 그녀는 이제 남편에게서 용서를 받지 못한다 해도 평생을 징소리를 따라다니며 살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징소리는 남편의 숨소리보다 더 가깝고 다정하게 들리는 듯싶었다. 그러나 깊고도 높은 계면조 가락의 징소리는 때때로 그녀의 가슴에 슬픈 울부짖음으로 화살처럼 아프게 꽂혀 왔다.

그런데 그녀의 생명의 소리와도 같은 살아 있는 징소리가 연 사흘째나 들리지 않았다. 징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녀의 육신은 다시 물기 빠진 수수깡처럼 쭈그렁이처럼 오그라들고, 영혼은 낙엽처럼 시들기 시작했다.

 

5

 

"사장님, 저 좀 살려줄쇼."

칠복은 박 철 사장을 향해 인형처럼 몇 번이고 허리를 꺾었다.

"자넨 이제 쓸모가 없는 사람이야."

사장의 목소리는 냉엄했다.

"사장님, 제발,,,,,, 이렇게 빕니다."

"이제 그 옷과 고깔도 벗어버리게!"

"사장님, 계발 계 징을 찾아주십쇼."

"허 이 사람, 내가 어떻게 자네 징을 찾는단 말인가."

박 철 사장은 푹신한 소파에 파묻힌 채 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눈을 감아버린 사장의 모습이 갑자기 방울재의 높고 단단한 댐처럼 냉혹하게 보였다.

칠복은 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흘 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이 가까와 숙직실로 징을 가지러 갔던 그는 그만 온몸의 뼈마디가 우무처럼 흐물흐물 녹아 내리는 것만 같았었다. 그는 방바닥에 무참하게 허물어져버리고 말았다. 언제나 벽에 걸려 있던 징이 보이지 않았다. 온 방안을 발칵 뒤집어 보았으나 없었다. 건물을 샅샅이 뒤지고 수채 구멍, 쓰레기 하치장, 지하실 창고, 보일러실이며.사무실마다 돌아다니며 책상 밑까지 다 쑤석거려 보았지만 징은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흘째나 징을 치지 못했다.

징소리가 그치자 칠보증권 사원들은 칠복이를 소 닭 보듯 보아 넘겼다. 그는 심장도 피도 없는 진짜 허수아비가 되어버린 듯싶었다.

시민들도 그들이 고향을 잃어버린 것과 같이 그렇게 쉽게 칠복이의 징소리를 잊어버렸다, 칠보증권의 거래고가 뚝 떨어졌다고 했다. 그 때문에 박철 사장은 뒷덜미나 더욱 무지근하게 당겨, 걸핏하면 신경질을 부렸다.

칠복은 사흘 동안 계속 징을 찾아 건물 안을 헤집고 다녔고, 하루에 한 차례씩 미친 사람처럼 사장실로 쳐들어와서는 징을 찾아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하였다,

"징이 없는 자네는 동물원 원숭이만도 못하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단 말야. 허지만 불쌍해서 특별히 봐주는 거니 청소부로 일을 하게, 그 대신 그 걸립패 옷과 고깔은 벗어버리고."

처음에 박 철 사장은 그까짓 잃어버린 징은 상관하지 말고 시장에서 다시 새 징을 사줄 테니 그걸로 계속 징을 치라고 했으나 칠복이가 펄쩍 뛰었다. 그는 방울재에서 가지고 나온 징이 아니면 칠 수 없다고 했다, 장에서 파는 징으로는 아무 말도,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다고 캤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여태껏 친 징소리는 그기 쇠소리가 아니고 사람 소립니다요. 몇백 년 방울재서 살아왔던 방울재 사람들 소립니다요. 장에서 파는 징은 쇠소리만 냅니다요. "

하고 박 사장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이 사람 제 정신이 아니로구만. 실성을 했어. 저 눈이 사람 눈 같지가 않어. "

박 사장은 약간 겁먹은 눈으로, 그러나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저는 꼭 징을 찾아야 합니다요. 징이 없으면 마누라도 못 찾고, 고향에도 못 갑니다요. "

칠복은 슬픔이 복받치는지 게게거리며 허리만 계속 꺾었다.

"그건 자네 일이여. 그 동안 그놈에 징소리 때문에 괜시리 마음만 착잡해 졌구만. 하기야 그까짓 고향 있으면 뭐하나. 고향을 잊고도 돈 잘 벌고 잘 살아왔는데. "

사장은 희미하게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벌써 징소리를 잊었어, 모두 다 잊었다구. 못 잊는 건 자네 한 사람뿐야. "

"아닙니다요. 제 마누라도, 방울재 사람들도 못 잊고 있읍니다요."

"빌어먹을 ! 그눔에 방울재 사람 방울재 사람, 듣기 싫네."

사장은 신경질적으로 빠락 고함을 질렀다.

"징을 찾기 전에는 쫓아내도 나가지 않겠습니다요."

", 이 사람. 자네는 마치 내가 징을 훔쳐간 사람 같이 말하는구만."

……"

"나는 그 소리를 좋아했지만 징은 욕심내지 않았어. 그까짓 놋쇠덩어리를 내가 왜 욕심내겠나."

사장은 다시 퉁명스럽게 튕겨대고 벌떡 일어나 사장실에서 나가버렸다.

걸립패 옷과 고깔을 벗고 맨 처음 칠보증권에 나타났을 때와 같이 짧은 홀태바지에 헐렁한 외투로 바꿔 입은 칠복은 숙직실 구석에 두 팔로 무릎을 잡고 앉아 있기만 챘다. 징도 없이 부끄러워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징이 없어 숙직실 밖엘 나가지 못하는 주제에, 항차 고향 방울재엔 어떻게 다시 갈 것이며 잃어버린 아내는 또 어찌 찾아나설 수가 있겠는가.

징이 없으면 그는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한여름 햇빛만이 가득하고, 을씨년스럽게도 휑뎅그렁한 골목처럼 텅 비어버렸다. 심장의 고동이며 파닥거리는 숨소리마저 멎어버린 듯싶었다.

칠복은 처음부터 얽힌 명주실꾸러미를 풀 듯 천천히 가닥을 추려 생각들을 추스려 보았다. 불현듯 그의 뇌리에 치르륵 소리를 내며 마른 번갯불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징을 훔친 사람은 틀림없이 장 필수 과장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왜 지금껏 그걸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자신의 미련스러움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징이 없어진 전날 밤, 칠복은 보아서는 안 뒬 것을 보고 말았었다.

그날 밤 셔터를 내리고 있는데 덕기가 다시 찾아왔었다, 그는 새벽에 식솔들을 몰고 방울재로 내려가야겠다면서 두 홉들이 소주 한 병을 허리춤에 차고 왔다. 둘이는 안주도 없이 맹 소주를 홀짝거렸다. 술을 다 비우고 서로 한바탕 신세타령을 늘어놓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칠복은 덕기를 배웅하고 숙직실로 들어오다 말고 5층 사장실에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불빛을 발견하고 섬칫 놀라 멈춰 섰다. 건물 안의 사원들이 모두 돌아간 뒤 셔터를 내려버렸는데 사장실에 누가 들어 있을까 의문이 꿈틀거렸다. 더구나 두어 시간 전 덕기와 함께 들어올 때는 그 불빛을 보지 못했지 않은가.

칠복은 동굴 속보다 더 음험하고 어두운 건물의 층계를 불도 켜지 않고 유령처럼 천천히 올라갔다. 아마 퇴근할 때 비서실 미스 오가 불을 11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비서실 문은 잠겨져 있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도어를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불빛은 분명히 사장실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사장실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비서실 창문을 통해 희끄무레하게 비쳐 보였다.

비서실이 열려 있고 사장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본 칠복이는 순간 심상치 않은 공기를 느꼈고 미스 오 자리의 뒤에 세워진 옷걸이를 집어들었다. 오른손으로 징채 잡듯 철제 옷걸이를 머리 위로 치켜든 칠복은 숨을 죽이며 사장실 도어 손잡이를 비틀었다. 가볍게 문이 열렸다. 녹색 긴 소파 위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런 수가------긴 소파 위에 엉덩이를 까고 옹색스럽게 엎드려 있는 것은 장 과장이었고, 밤색 스커트 자락을 가슴팍 위까지 걷어올린 채 고양이 발톱에 할큄질 당한 생쥐처럼 깔려 있는 것은 청소부 최씨 아주머니가 아닌가. 칠복이가 이 광경을 한동안 정 신을 놓고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사이 장 과장의 눈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제서야 장 과장은 무우 캐먹다 들킨 사람처럼 후다닥 놀라며 다급하게 바지를 긁어올렸다.

칠복은 단숨에 어두운 층계를 뛰어내려와 꺼렸다. 층계를 뛰어내려오면서 여러 차례 발을 헛딛고 거꾸로 내리 박히는 바람에 얼굴과 머리를 여러 곳 다쳤다.

칠복은 숙직실로 뛰어들어와 자라처럼 모가지를 어깻죽지 사이로 깊숙이 넣어 웅크렸다. 가슴이 쿵덕쿵덕 미친 듯이 뛰었다. 이제는 영락없이 쫓겨났구나 싶었다. 다음날 아침에 어떻게 장 과장 얼굴을 마주 대할까 생각을 하니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반 시간쯤 뒤에 조심스러운 발소리와 함께 셔터 샛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장 과장과 청소부 최씨 아주머니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칠복은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장 과장을 마주 보기가 죽기보다 무서웠다. 그는 죄인처럼 몸을 웅크리고 밤새도록 떨었다.

그런 경황중에서도 자꾸만 청소부 최씨 아주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를 다시 보기도 두려웠다. 청소부 히씨 아주머니의 남편은 칠보증권 박철 사장의 자가용 운전사였다고 했다. 다섯 달 전에 네 살 난 아이를 치어 현장에서 숨지게 한 사고로 구속되어 형무소에서 징역을 살고 있다고 했다. 남편이 형무소에 들어가자,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과 국민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뒷바라지하며 네 식구 목줄 지탱하기 위해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 청소부로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이는 서른 다섯밖에 안 되었다는데도 마흔 가깝게 푸수수하게 겉늙어 보이고, 얄캉한 몸피에 얼굴이 누렇게 떠 있는 청소부 최씨 아주머니는 언제나 고개를 깊숙이 떨어뜨리고 복도와 화장실에서 그림자처럼 말없이 흐느적거리곤 했었다.

청소부 최씨 아주머니 얼굴 위에, 갑자기 잃어버린 아내 순덕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분이 우울했다. 최씨 아주머니가 아내 순덕이의 얼굴로 바뀌고, 다시 순덕이의 얼굴이 최씨 아주머니로 변했다. 칠복은 두 손으로 눈을 가려버렸다.

"옳거니, 장 과장이다."

칠복은 소스라치듯 소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곰곰 생각을 캐보니 실마리가 풀려왔다. 장 과장이 그날 밤 사장실에서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는 한사코 칠복이를 피하는 눈치였으며, 사흘 동안이나 징을 치지 않았는데도 말 한마디 없었다.

청소부 최씨 아주머니도 다음날부터 회사에 나오지 않았었다. 칠복이는 워낙 징 찾을 생각에만 골몰해서 매달려 있느라 미처 최씨 아주머니 생각을 못했는데, 최씨 아주머니가 회사를 나오지 못하게 된 연유를 캐보면 순전히 칠복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조차 얼었다.

그는 최씨 아주머니를 위해 징을 찾게만 되면 칠보증권에서 나가야겠다고 까지 작정하였다. 자기만 없어진다면 최씨 아주머니가 다시 회사에 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최씨 아주머니를 생각해서라도 하루 빨리 잃어버린 징을 찾아야겠다는 발싸심에 마음이 달았다.

칠복은 다시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당장 장 과장 집에까지라도 쫓아가서 내 징 어디다 감췄느냐고 죽기 살기 단판으로 매조짐을 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으나 벌써 통행금지시간이 넘지 않았는가,

칠복은 빨리 어둠이 걷히기만을 기다렸다.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듯 아침을 기다렸다. 그러나 밤은 너무 질기고 길었다. 회색 하늘에 햇살이 퍼지자 칠복의 머릿속은 전구에 불이 켜진 것처럼 밝아졌다.

장 과장이 출근을 하자, 칠복은 그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그가 옛날과 같이 휘주근한 몰골로 총무과에 들어서자, 직원들은 벌레 씹는 얼굴로 이맛살을 찌푸리며 찍어보았다. 칠복이한테 징을 잘 친다면서 찬사를 늘어놓던 직원들까지도 마치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칠복은 그런 그들의 표정에는 개의치 않고 눈꽁댕이를 팽팽하게 말아 올려 사무실 안을 쓸어보고 나서 장 과장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이미 칠보증권 수문장 자미에 연연하지 않고 징만 찾아내면 당장 뛰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는 터라, 멸치대가리 같은 장 과장 따위는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과장님, 할 말이 있구만요."

칠복은 장 과장 책상 앞에서 뻗대 서서 결코 어려워하지 않는 말투로 말했다. 장 과장은 도끼날처럼 날캄한 턱 끝을 쳐들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안경콧대를 밀어 올렸다, 그는 분명 칠복의 전에 없었던 당돌한 태도에 불안을 느끼는 눈빛이었다. 그의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눈빛이 그걸 말해 주었다. 그것은 칠복이가 그날 밤 사장실에서 있었던 최씨 아주머니와의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간파할 수가 있었다. 그런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칠복이를 보기만 하면 금방 눈앞의 생쥐를 찢어발길 젓 같은 무서운 고양이의 얼굴로 앵앵거리던 그가 갑자기 꼬리를 사려버리는 것을 보고 칠복은 속으로 가볍게 웃었다. 그는 지금 추잡스러운 승리자의 비밀이 탄로될까 두려워 속으로만 떨고 있는 넥타이 매고 안경을 낀 무기력한 남자로 보였다.

"과장님, 할 말이 있단께요?"

칠복의 목소리는 땅 속에서 울려나오는 것처럼 울림이 강했다.

"나한테?"

장 과장은 칠복이의 시선보다 사무실 안의 부하직원들한테 더 신경을 쓰며 되물었다.

"그렇다니께요."

칠복의 태도는 더욱 올차고 다부졌다. 허수아비처럼 허섭스럽게만 보이던 그의 어느 구석에 그런 당돌함띠 숨겨져 있었는가 싶어, 사무실 안의 여러 시선들이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쏠렸다.

"나가세!"

장 과장은 다급하게 말하고 일어서서 사무실을 나갔다. 칠복이도 그를 따라나갔다.

"옥상으로 올라갈까?"

사무실을 나온 장 과장이 다시 말했다.

"그러지요."

칠복이의 찍는 말투에 장 과장은 배알이 뒤틀리는 눈으로 돌아보더니 바쁜 걸음으로 층계를 올라갔다, 그는 칠복이와 나란히 서서 올라가기가 싫은 모양으로 되도록이면 두 사람의 거리를 넓히려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고, 칠복은 장 과장이 뒤돌아볼 때마다 되도록이면 인상을 험하게 구기며 무겁게 찔러보았다.

칠복은 벌써 장 과장을 쉽게 위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반지르르하게 차려 입은 사람한테는 고양이 쥐다루듯 하는 넥타이 맨 녀석들, 약점을 잡히기만 하면 그렇게 비루해질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흘 전까지만 해도 칠복이가 하루에 한 번씩 징을 쳤던 옥상에는 햇빛이 가득 괴어 있었다. 제법 바람이 거칠었다.

"그래, 할 말이 뭔가?"

장 과장이 버릇처럼 손가락으로 안경 콧대를 밀어 올리며 가는 목소리를 빳빳하게 세우며 물었다. 칠복은 장 과장의 그런 목소리에 속으로 다시 한 번 웃었다.

"징을 내놔요. "

칠복은 여전허 찍는 눈에 찍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렇다니께요, 내 징을 내놓으란 말여요"

", 이 사람!"

장 과장은 까치 뱃바닥을 내보이려고 했다. 그는 묘한 웃음을 피워 날리며 칠복이를 흘겨보았다. 그의 안경테에 비친 햇살이 반짝 되쐬어왔다. 칠복은 되쐬어오는 햇살과, 그를 멸시하는 것 같은 묘한 웃음이 싫었다.

"과장님이 감췄다는 거 알고 있구만요. "

"뭐라고? 내가 징을?"

"그 징은 보통 징이 아닙니다요. 우리 방울재의 혼이 들어 있는 징입니다요. 수백 명, 아니 죽은 사람까지 합치면 수천 명의 혼이 들어 있습니다요. 징이 있어야 마누라도 찾고 고향 사람들도 다시 만날 수가 있습니다요"

칠복은 갑자기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태도를 부드럽게 고쳤다. 연신 허리까지 굽적거렸다. 장 과장이 징을 내놓기만 한다면 큰절이라도 하고 싶다.

"어떤 개자식이 그러던가? "

"과장님, 이러시지 마시라니께요. "

"어떤 개자식이 내가 징을 감췄다고 그러더란 말여?"

갑자기 장 과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가 압니다요."

"머이여?"

"꿈에 방울재 사람들이 말해 주데요."

"아니 머이여?"

"방울재 혼들이 말해 주데요."

"이런 미친,,,,,,. "

"그래요, 지는 징이 없으면 미칩니다요. 징이 없으면 혼이 빠진다니께요."

칠복의 이 같은 말에 장 과장은 문득 어렸을 때 아버지의 징이 박 포수와 어머니의 혼을 빼버린 날 밤의 일이 번갯불처럼 그의 뇌리에 찍혀왔다. 그때 그는 징은 사람의 혼을 빼는 귀신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었다.

박 포수가 징에 맞아 죽고 아버지가 지서로 자수를 하러 가던 날, 그는 방 웃목에 팽개쳐져 있는 박 포수의 퍼가 묻은 징이 보기조차 무서웠다. 웃목에 팽개쳐진 징이 귀신 소리를 내며 혼자 울 것만 같았다. 징을 놔두고는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징을 들고 집에서 나가 어둠 속으로 마구 뛰었다. 그가 징을 들고 어둠 속을 뛸 때 바람이 거칠게 불어닥쳐 그의 온몸에선 징 징 징 징소리가 울리는 듯싶었다. 그는 징을 마을 앞 승천하지 못한 큰 이무기가 산다는 용소에 던져버리고 돌아왔다.

다음날 지서에서 순경들이 징을 가지러 왔을 때, 그는 시치미를 떼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명주실꾸리 두 개가 다 들어간다는 깊은 용소에 던져버린 징은 밤마다 울었다. 비가 오는 날이나, 바람이 거칠게 부는 음산한 날씨, 눈이 무너져내리는 날 밤에는 더 무섭고 슬프게 울었기 때문에 그는 솜으로 귀를 틀어막아야 잠을 이루곤 했다.

그 징소리는 그들 모자가 노루목에서 나와버린 뒤부터 들리지 않았다.

"나 말야, 자네 징에는 관심이 없네!"

장 과장은 무서운 꿈에서 깨어나려고 하는 괴로운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네미럴, 나를 놀리고 있네!"

칠복은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며 뱉어냈다. 장 과장이 칠복이의 웅얼거리는 욕지거리를 들었는지 눈심지에 힘이 빠졌다. 칠복은 장 과장의 몸에서 모든 힘을 깡그리 뽑아버리기라도 할 듯 말아삼킬 것 각은 눈으로 맷짜게 찔러보았다.

"오해하지 말어."

"네미럴, 콱 그냥!"

칠복이는 단숨에 장 과장을 11층 빌딩 아래 길바닥프로 메어칠 듯 달려들어 넥타이 맨 멱살을 거머쥐고 댕댕하게 치켜올렸다. 넥타이를 맨 목이 바짝 죄어 숨쉬기가 곤란해진 장 과장은 여우 울음처럼 캑캑거렸다.

"징을 내놓지 않으면 길바닥에다 내어꼰져버릴 거여잉! 뒈지기 싫으면 존 말로 할 때 내 말들어!"

칠복은 고향을 떠나은 후로 이내 참아왔던 마디마디 얽힌 서러움과,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울분이 한꺼번에 불덩이처럼 치밀어 올라 얼굴이 벌개졌다.

"이 손-,,,,, 손 좀 놔."

숨이 막히는지 장 과장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칠복은 구름이라도 휘어잡을 듯 거센 바람에 버드나무 가지 춤추는 것 같은 장 과장의 손끝을 보았다.

"그 징이 어떤 징이라고 안 내놔?"

칠복이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징을 안 내놓으면 사장실에서 최씨 아주머니 붙어먹은 거 확 불어 버릴 거여!"

"제발,,"

장 과장은 겁에 질린 얼굴로 와이셔츠 단추 구멍만한 눈알을 휘굴리며 입술을 들썩거렸지만 말을 계속하지는 않았다.

"나를 쫓아낼려고 징을 감췄친지? 나만 쫓아내면 입이 막어질 줄 알고?"

"아니-"

"첨부터 징소리를 싫어헌 건 알어. 징소리 싫어허는 놈 치고 촌사람 생각해 주는 놈 없어!"

"이손,,,,,,. "

장 과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디다 감췄어?"

장 과장은 손과 머리를 함께 휘젓기만 했다.

"이런 쳐죽일!"

칠복은 멱살을 거머쥔 팔에 힘을 쏟으며 장 과장을 옥상 난간 쪽으로 힘껏 밀어붙였다. 장 과장은 난간 쪽으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너 같은 놈은 뒈져야 혀. 방울재 사람들 혼을 감추고 불쌍한 최씨 아주머니를 붙어먹은 버러지만도 못한 너는 뒈져뿌려야 혀!"

칠복은 갑자기 장 과장의 얼굴이 무덤을 파헤치고 송장을 뜯어먹는다는 약싹 빠르고 흉칙스러운 여우처럼 보였다.

"너 같은 놈들은 뒈져야 혀!"

칠복은 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여우의 목을 조르듯 멱살을 거머쥔 팔을 버쩍 치켜올렸다.

이때 회사 직원들이 우루루 옥상으로 뛰어올라왔다. 칠복이는 몽둥이 같은 것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나무등치처럼 허물어지고 말았다. 수많은 구둣발이 그의 옆구리며 어깨와 머리에 찍혀 왔다.

칠복은 이를 웅등 물고 반듯하게 누운 채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것만 같은 아픔도 잊고, 파랗게 개인 하늘을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을 감으면 죽는다. 눈을 감으면 다시는 방울재를 못 본다. 눈을 떠야지. 눈을 뜨고 살아야지.

칠복은 힘겹도록 하나의 생각만을 굴리면서 햇살이 곱게 쏟아지는 하늘을 보았다. 갑자기 하늘에서 징 징 징 징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몸이 징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가는 듯싶었다. 하늘에서 울려오는 징소리는 수백 명, 아니 수만 명의 방울재 사람들이 한꺼번에 울부짖는 소리처럼 더욱 슬프고 안타깝게 칠복이의 답답한 가슴을 쥐어뜯었다.

칠복이는 아주 어렸을 때에도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 같은 징소리를 들었었다. 그의 아버지가 치는 징소리였다. 방울재 징채잡이 칠복이 아버지 허쇠는 날마다 밤이 깊어지면 할미붕 산신당에 올라가서 신명나게 징을 쳤다. 방울재 사람들은 한밤중 허쇠가 치는 징소리를 들어야 잠을 이를 수가 있다고들 했다. 고래서 허쇠는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이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마다 할미봉 산신당에 올라가 징을 쳤다. 칠복이도 하늘에 서 울려오는 것 같은 아버지의 징소리를 듣고서야 잠이 들곤 했다.

,-,--

,,,,,,,-,--

하늘에서 을러오는 아버지의 징소리는 이른봄 복숭아 밭에 넉넉하게 쏟아지던 햇살보다 더 부드럽고 달콤했다. 그래서 그 징소리만 들으면 스르르 눈이 감기곤 했다.

그런데 무섭던 어느 여름날, 마을 앞에서 군인들을 담뿍 실은 차들이 끝일 새 업이 뿌연 먼지를 안개처럼 일으키며 읍내 쪽으로 내닫더니 총소리가 마을을 뒤흔들고 빨간 별을 붙인 모자를 쓴 인민군들이 밀어닥신 날부 터, 하늘에서 울려오는 징소리가 뚝 끊겨 버리고 말았었다. 부드러운 징소리 대신 총소리가 밤을 흔들어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잠을 이를 수도 없었다.

징을 칠 수 업게 된 칠복이 아버지 허쇠는 징을 무릎에 올려 놓고 방구석에 앉아서는 손바닥이 닳도록 징을 문지르기만 했다. 그런 칠복이 아버지가 이상하게도 몸이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징소리 대신 무서운 총소리가 끊일 새 없어, 잠을 이루지 못한 방울재 사람들의 얼굴도 병자처럼 푸수수하게 껍질이 떠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 빨리 총소리가 멎고 다시 징소리가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칠복이 아버지 허쇠의 바램은 피가 마를 만큼 더욱 간절했다.

그러나 방울재 사람들은 그 해 여름이 다 가도록 징소리를 들을 수가 얽었다. 공포와 무더위에 짓눌려 살았다.

추석이 지나고, 할미산보다 두 배나 더 높은 백암산 쪽에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드밀고 내려오기 시작하는 초가을이었다. 총소리가 멎었다. 방울재에 있던 인민군들이 모두 돌아가 버렸다는 소문도 있었고, 가까운 백암산으로 들어갔다는 말도 있었다. 방울재 사람들은 우선 총소리를 듣지 않게 되어 기뻤다. 머지않아 하늘에서 울려오는 징소리도 다시 듣게 되리라는 기대에 오랫동안 얼굴을 덮어버린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기 시작했다.

읍내 지서에 경찰들이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하늘에는 비행기들이 갈가마귀 떼처럼 구름을 찢으며 날았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던 날 밤에 방울재 사람들은 오랜만에 징소리를 들었다. 허쇠가 할미봉에 올라가 징을 친 것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징소리는 어렵사리 한 번씩 들을 수 있었던 부면장 집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간드러진 노랫소리보다 더 아름다웠다. 비가 오는 밤이라, 하늘에서 울려오는 징소리는 훨씬 더 가깝게 들려왔다.

징을 치고 돌아온 칠복이 아버지는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술에 취한 것처럼 비척거리며 집에 돌아와서는

 

에라만슈 에라만슈

고금에 절세가인

멧멧치 도라간고

살아실제 미색이요

앗차하면 진토로다

 

하는 노랫가락을 흥얼거리고 나서 칠복이 보는 앞에서 마누라의 허리를 팍 껴안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징소리 때문에 여러 사람이 죽게 되리라는 것을 어찌 알았으리. 끝내는 칠복이 아버지마저도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 몸서리쳐지는 기억은 아직도 칠복이의 뇌리 가장 깊숙한 곳에 너무도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남쪽 다른 고장에 피난가 있다가, 돌아온 지 며칠 안 된 부면장집 다섯 식구가 모자에 빨간 별을 붙인 사람들한테 몰살당하고 말았다. 부면장은 낮에는 밖에 나돌아다니다가도 밤에는 밤 사람들이 무서워 행랑채 앞뜰 접시감나무 밑 두엄더미 속에 숨어 있었는데 그날 밤엔 할미봉 산신당에서 치는 허쇠의 징소리를 듣고 마음이 느긋하게 풀려 안방에 들어가서 아내를 끼고 자다가 변을 당하고 말았다,

방울재 사람들이 허쇠의 징소리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백암산으로 들어간 줄만 알았던 모자에 빨간 별을 붙인 밤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부면장 집을 목표로 쳐들어와서는 부면장 내외와 참봉을 지낸 늙은 아버지, 읍내 중학교에 다니는 큰아들과 칠복이보다 두 살 위인 막내아들 등 다섯 식구를 기둥에 꽁꽁 묶고 집에 볼을 놓았다. 기둥에 묶인 부면장네 식구들은 꽹과리 소리 같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불에 타 죽었다. 방울재 사람들은 무서워서 아무도 이들이 불타죽는 모습을 나와 보지 못했다.

부면장네 식구들 중에서 갓 중학교에 들어간 외동딸만이 유일하게 죽음을 모면했다. 가족들이 불에 타죽던 날 밤, 열두 살 된 부면장네 외동딸 점례는 아랫마을 고모네 집에 가고 없었다. 식구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찌기 방울재로 달려온 점례는 눈물 한 방을 흘리지 못하고 넋을 잃고 말았다. 할미봉에 해가 벌겋게 솟아오르자 지서에서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날 해가 설핏하게 기울 무렵에 빨간 별을 붙인 몰골이 텁수룩한 사내들 다섯 사람을 잡아왔다. 경찰들은 빨간 별을 붙인 사내들을 마을 돈단 앞 뽕나무에 묶고 헝겊으로 눈을 가렸다. 그러고는 널을 잃고 있는 점례를 불러냈다.

"이놈들이 네 가족들을 죽인 원수들이다. 네가 복수를 해야 한다."

지서에서 나온,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눈망울에 -기가 서린 젊은 사람이 점례의 손에 죽창을 쥐어주었다. 죽창을 쥔 점례의 손이 바르르 털렸다.

"죽여라, 원수를 갚어야재!"

지서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서 누구인가 다그치듯 말했다.

점례는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창으로 뽕나무에 묶인 사내의 복부를 힘껏 찔렀다. 피가 튕겼다. 노을이 타는 하늘에서 바람이 음산하게 불었다, 죽창에 찔린 사내의 비명이 음산한 바람 소리를 삼켜버렸다. 점례는 오른발로 사내의 배를 찼다,

다섯 사내가 노을에 묻힌 채 피를 흘리고 죽자, 점례는 피 묻은 죽창을 들고 마을 사람들을 쓸어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섬칫한 얼굴로 점례의 시선을 퍼해서 한 발짝씩 물러섰다. 점례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으며 사내들을 찔러 죽인 창으로 계속해서 마을 사람들을 찌를 것만 같은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

방울재 사람들은 다시 공포에 떨었다. 징소리 대신 총소리가 콩튀듯하여 할미산 너덜겅을 울리던 지난 여름보다 더 무서웠다.

그날 지서에서 나온 사람들이 칠복이 아버지 허쇠를 끌고 갔다. 죽은 세 사내들 중 방울재 아랫마을에 사는 몸집이 큰 바우라는 젊은이 입에서 징소리를 듣고 부면장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었다는 말이 나와 허쇠를 조사한다는 것이었다. 지서 샤람들 말로는 허쇠가 징소리로 백암산 밤 사람들한테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지서에 붙들려간 칠복이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열흘도 더 넘은 어느 날, 방울재의 누구인가가 슬픈 소식을 말해 주었다. 읍에서 방울재로 넘어오는 구름재 모퉁이 후미진 골짜기에 칠복이 아버지가 죽어 있더라고 했다. 칠복은 외삼촌의 뒤를 따라 구름재까지 가보았다. 아카시아 나무 밑둥에 알몸인 채로 누구인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칠복이가 가까이 뛰어가 보려고 하자 외삼촌이 손을 잡아채며 못 가게 했다. 이상한 냄새가 훅 덮쳐왔다. 뱀 썩는 냄새 같았다.

외삼촌은 칠복의 손을 붙잡은 채 멀찌감치 바위등걸에 서서 아카시아 밑둥 쪽을 내려다보고만 있었고 어머니가 비척거리며 가까이 다가갔다. 칠복이 어머니가 퍽 쓰러지며 곡성을 터뜨렸다. 그제서야 외삼촌은 칠복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가기 싫은 발걸음으로 가까이 갔다. 칠복은 그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썩고 문드러져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후끈거리는 지열과 함께 고약한 냄새가 코를 후벼팠다. 더구나 시체에서는 구정물통에 뜬, 팅팅 불은 밥티 같은 구더기까지 득실거렸다.

외삼촌은 서너 발짝 물러서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칠복이는 외삼촌의 손을 뿌리치고 어머니 가까이 가보았다. 어머니는 목놓아 울면서 손으로 시체에 득실거리는 구더기들을 쓸어냈다.

칠복이 아버지가 그렇게 죽은 뒤 일 년도 못되어 어머니까지 시난고난 앓다가 아버지를 따라가 버리고 말았다.

칠복이한테 남은 유산이라고는 징 하나뿐이었다. 그 징도 원래는 방울재에 대대로 내려온 마을 굿물이었는데, 방울재에 재앙을 불러들였다 하여 폐기해 버리고 새 징을 구입했다. 그러나 칠복은 오래된 옛날 징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외삼촌 집에 꼴머슴으로 들어가서도 그 징 하나만을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는 때때로 울컥 징을 치고 싶은 생각이 불길처럼 치솟곤 했으며, 그와 같은 충동은 나이가 더할수록 더욱 뜨겁게 대장간 시우쇠처럼 달구어졌다. 그는 가끔 아무도 보지 않는 산에서 옛날 아버지가 징을 치던 멋진 모습들을 흉내내기도 했다. 아버지가 죽은 뒤로 봉구 아버지가 징채잡이 노릇을 했으나 칠복이 듣기에도 그렇게 좋은 징소리가 아니었다. 방울재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들었다.

나이가 든 칠복이는 아무도 몰래 아버지가 치던 징을 꼴 망태 속에 숨겨 가지고 백암산 골짜기 깊숙이 들어가, 옛날 아버지의 흉내를 내며 열심히 징을 쳤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신들린 듯 징을 치다가 까무라치기도 했다. 백암산에 들어가서 징을 치는 날은 어두워서야 집에 돌아왔고, 으레 외삼촌한테 회초리를 맞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는 후련하게 징을 친 기쁨으로 외삼촌의 회초리 아픔 따위는 얼마든지 참아낼 수가 있었다. 그 무렵 그의 소원은 부자가 되는 것이라든지, 다른 머슴아이들처럼 이쁜 색시를 맞는 것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아버지와 같은 이름난 징채잡이가 되는 것이었다.

칠복이 나이 스무 살 되던 해 정월, 메기굿을 할 때 그는 오랜 동안 숨겨두었던 아버지의 징을 들고 나와 징을 치겠다고 자청하였고, 그의 징소리를 들은 방울재 어른들은 고까를 내두르며 놀랐다. 그들은 저마다 13년 전에 죽은 칠복이 아버지 허쇠가 다시 세상에 나왔다고들 캤다. 겅중거리는 다리며, 옴죽거리는 어깨, 징채를 휘두르는 모습이 죽은 허쇠와 꼭 닮았으며 우람하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징소리 또한 허쇠가 치는 소리 그대로라고 했다.

그때부터 칠복은 방울재의 징채잡이가 되었으며, 옛날 아버지 징이 방울재 안통에 다시 울려 퍼지게 되었다.

13년만에 하늘에서 들려오는 징소리는 칠복이가 어렸을 때 밤마다 방울재 할미산 산신당에서 내려와 잠을 재우곤 했던 아버지의 징소리 같았다

칠복은 눈썹들을 빳빳하게 곧추세워 오래도록 징소리가 울려오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물빛으로 파랗게 구름이 걷힌 하늘에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이 바람과 함께 떠돌았다.

 

순덕이가 칠보증권으로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그녀는 얼굴이 누렇게 뜬 청소부 최씨 아주머니한테 징 치는 사람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순덕이는 청소부 아주머니한테 자기가 바로 그의 아내라는 것을 밝혔다,

"으짜끄나, 좀 일찍 오실 걸. 그 사람 안 죽을 만치 얻어맞고 쫓겨났는디."

청소부 아주머니는 안됐다는 얼굴로 끌끌 혀를 차며 층계를 올라가 버렸다.

순덕이는 칠보증권 입구 반들반들한 시멘트 바닥 위에 힘없이 주저앉아 눈을 들었다. 빌딩 꼭대기에 오랜만에 활짝 개어 물빛 천 조각처럼 걸린 손바닥만한 하늘이 갑자기 바늘구멍만큼 작아져버린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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