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레 방 아 속 으 로 -문순태
버스가 출발을 하자 내 마음은 바람 부는 날의 바다처럼 요동을 치며 설레기 시작했다,
정월 초하룻날의 새벽 버스 안은 통금이 훨씬 지난 겨울밤 거리처럼 한적하고 썰렁했다.
손님이라고 해야 섣달 그믐날 밤의 막차를 놓친, 여공 차림의 아가씨들 다섯과 허름한 비닐 가죽 잠바를 입은 청년 한 사람, 가족인 듯싶은 입성이 초라한 젊은 부부와 도토리만한 두 꼬마, 나, 이렇게 모두 열 한 사람이었다.
나는 얼추 승객들의 입성과 표정만 살펴봐도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손금 들여다보듯 헤아려 짐작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가 눈이라도 휘뿌릴 것 같은 새벽 공기처럼 음울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팔짱을 끼어 시린 손을 겨드랑이 깊숙이 쑤셔 넣으며, 차창 쪽으로 바짝 다가앉아 몸을 조그맣게 웅크렸다.
차창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꽃 모양의 성애가 피어 있어 밖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아내와 아이들한테 말 한 마디 없이 휑하니 집을 나온 나는 마치 도망쳐 나오기라도 한 듯 가슴이 뛰었다.
30년 전 내 나이 아홉 살 때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고향에서 도망쳐 나오던 날 밤처럼 자꾸만 몸과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차라리 아내한테 말을 하고 집을 나을 걸 그랬구나 싶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아내한테 정월 초하룻날 수탉처럼 일찍 잠이 깨어 어디를 갔다 오겠다고 말을 한단 말인가.
지난 십 일 년 동안 합께 살아오면서 아내한테 고향 이야기라고는 단 한마디도 혀끝에 튕겨내지 않았는데 난데없이 고향엘 다녀오겠노라는 말을 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아내는 내가 말한 대로 내게는 고향이 없는 걸로 믿고 있지 않은가. 젖먹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라 왔다는 내 말을 찰떡같이 믿고 있는 아내가 아닌가.
국민학교 사 학년 짜리 큰아이가 지난 여름방학 때
"아빠 고향은 어디야? "
하고 뚜벅 물었을 때도 아내는 선뜻 대답을 못 하고 벌레 씹은 표정으로 한사코 아들 녀석의 고무줄총같이 땡땡한 시선을 피하며 고수머리의 뒤통수만 긁적거리고 있는 내 옆구리를 찔벅하며
"얜, 외갓댁이 아빠 고향이지."
하고 내 대신 대답을 해 주지 않았는가.
아내는 내 앞에서 고향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을 마치 무덤이라도 파헤치는 것만큼이나 끔찍스럽게 여기고 있는 터였다. 슬픈 내 과거 기억들의 실꾸리를 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 앞에서 그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런 아내한테 느닷없이 고향엘 다녀오겠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갑자기 고향엘 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물방아 때문이었다. 그 천 년 묵은 유령의 뼈다귀 같은 물방아가, 밤하늘에 묻혀 버린 구름 조각처럼 망각의 무덤에 깊숙이 파묻힌 30년 전의 기억을 내 머릿속에서 팔랑개비 돌리듯 한 것이다.
섣달 그믐날 밤, 우리들 부부와 열 살 짜리 큰놈, 세 살 터울 밑의 둘째 녀석, 이렇게 네 식구가 35평 맨션아파트 거실에서 푹신하고 뜨뜻한 소파 에 깊숙이 파묻혀 앉아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텔레비젼을 시청하고 있었다.
텔레비젼에서는 농악대가 한바탕 시끌시끌하게 화면을 어지럽히고 나자, 큰 해바라기 꽃 같은 물방아가 철철철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빠, 저게 뭐야?"
큰놈과 작은놈이 동시에 물었다.
나는 두 녀석한테 물방아를 설명해 주느라 진땀을 뺐다. 아무리 알기 쉽게 설명을 해도 두 녀석들은 내 이야기가 쉽게 납득이 안 가튼 모양이었다.
"나두 시골에서 자랐지만 물방아는 아직 못 봤어요."
아내의 말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토해냈다.
"아빠, 우리 물방아 구경가."
"우리 집에도 물방아가 있었음 좋겠다아."
두 녀석들의 말에 나는 갑자기 심장에 바늘이 꽂힌 듯한 섬뜩한 아픔 다시 신음 같은 한숨을 깨물었다.
나는 물방앗간 집의 아들이었다.
30년 동안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섣달 그믐날 밤 텔레비젼 화면 한 장면이 나를 과거의 무덤 속으로 끌어당겨 버린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과거의 무덤 속을 뒤척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서 십 이 층의 아파트보다 더 거대한 물방아가 철철철 소리를 내며 잠시도 쉴 새 없이 밤새도록 돌았다.
물방앗간 집의 외아들인 나는 물방아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이루었고 새벽엔 다시 그 소리에 일찍 깨어나곤 하였다. 물방아는 온종일 쉬지 않고 철철철 돌았다. 대쪽 같은 어머니의 고집을 이겨내지 못한 아버지가 어머니 주장대로 일감이 없을 때도 물줄기를 돌리지 않고 빈 물방아를 돌렸다.
"제발 일감이 없을 애는 물방애도 좀 쉬게 합시다. 큰비를 몰고 오는 것 같은 저눔에 소리 땜에."
아버지는 이따금 겁 많은 자라모가지를 하고 넌지시 어머니의 마음을 떠보곤 하는 것이었으나 그때마다 어머니는
"저 소리가 아니면 한시도 못 사는 내 맘을 알면서도 또 그 소리요? 내가 뭣 땜시 죽지 못하고 사는지 모르요? 저 물방애 돌아가는 소리가 내 숨 보리라고 생각허란 말이요. 물방애 소리가 그치면 나도 죽는 거라니께요."
하면서 갑자기 얼굴이 소나기 머금은 하늘처럼 음울하게 구름이 끼는 것이었다.
나이가 어린 나는 그때 어머니가 왜 한사코 일감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시도 쉬지 않고 빈 물방아라도 돌리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나는 어렴풋하게 어머니는 아버지의 기를 누르고 살기 위해 어머니 고집으로 물방아를 쉬지 않고 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내 주장에 꼼짝 못하고 눌려 살았던 것 같은데, 그것은 어머니 얼굴이 뱀딸기처럼 고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런 어머니의 고집대로 우리 집 물방아는 보릿고개에 시달려 곡식 한 톨 없는 봄부터, 방앗간 처마 끝에 팔뚝만한 고드름이 수정의 발을 엮어 놓은 듯한 늦겨울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돌았다.
물방아 도는 소리가 귀에 못이 박혀 짜증스럽기까지 한 나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한테 제발 빈 물방아 좀 돌리지 말자고 불쑥 찍자 부리는 말투로 내쏘곤 했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 갑자기 슬픈 얼굴로 변해 버리는 것이었다.
"노루목 사람들이 죄다 물방애 소리가 듣기 싫다고 해도 너만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겨. 너도 이 에미가 죽기를 바라는겨?"
어머니는 그러면서 추적추적 눈물바람을 하였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어 소태 껍질을 씹는 얼굴로 방앗간 앞 쥐똥나무들을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어머니는 종일 방앗간 안에서만 살았다. 나는 어머니가 징검다리를 건너 마을에 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언제나 색이 희부옇게 물억새 꽃 색깔로 바랜 특특한 몸뻬에 목화 꽃 같은 횐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는 무명 수건을 두르고 방앗간 안에서 풍구를 돌리거나 천하대장군의 성난 얼굴 같은 크고 육중한 방앗공이를 피해가며, 손으로 확 안에 든 곡식들을 휘젓곤 하는 것이 일이었다.
방애야 방애야
어서 뱅뱅 돌아라
오늘밤이 다 되어도
가신 님은 아니 오네
어머니는 방앗간에서 노루목 사람들 곡식 찧는 일을 거들어 주면서 남이 알아듣지 못하게 낮은 목소리로 늘 똑같은 노래만 흥얼거렸다.
어머니와는 달리, 나는 방앗간을 싫어했다. 그 때문에 방앗간에 붙어 있지 않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로 방앗간에 책보를 던지고 마을로 건너가서 마을 친구들과 질퍽하게 놀다가 돌아오곤 하였다.
나는 날마다 노루목에서 제일 부자인 필식이네 집에 가서 놀았다. 나보다 두 살이나 아래인 필식이와 친구가 되려고 상수리, 산딸기, 오디, 팽, 까치밥, 고욤이며, 깊은 산의 산머루,다래, 으름까지도 따다가 주곤 하였다.
필식이네 집은 마을 첫들머리 당산 옆에 있었는데, 노루목에서는 단 한 채뿐인 양철 지붕의 일본식 집이었다. 집 앞의 널따란 정원에는 시골집답지 않게 사월에 얼고 노란 꽃이 덩이덩이 피는 회양목이며, 석류나무, 황매화, 죽도화, 자목련, 철쭉, 모과나무, 매화, 명자나무,측백나무, 월계화, 은행나무, 사철나무, 꽝꽝나무 등 온갖 꽃나무들이 곱게 다듬어져 봄부터 가을까지 시새워 가며 꽃들을 피워 올렸으며, 집 모퉁이 탱자나무 울타리가 보기 좋은 텃밭에는 감초며 양귀비, 구기자, 당귀, 산용담, 흰제충국, 잇꽃 등 약초들이 심어져 있어 집 가까이 가기만 해도 약초의 향기가 창자 속까지 스며드는 듯싶었다.
필식이네 집은 정원도 아름답고 텃밭도 넓거니와 집이 크고 방이 많아서 같은 또래 아이들 여럿이 맘대로 떠들며 뛰고 놀아도 아무도 나무람하지 않아서 좋았다.
필식이네 집은 폭포처럼 펑펑 물이 쏟아지는 부엌 앞의 작두샘도 신기했거니와, 유성기, 재봉틀 등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필식이녜 집은 원래 일본 사람 소유였는데, 일본이 창해 쫓겨가다시피 하면서 농장 관리인이었던 필식이 할아버지한테 농장과 집, 살림까지도 넘겨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필식이 집에 자주 놀러 가는 것은 작두샘에서 물을 뿜어 올리거나, 유성기 소리를 듣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필식이는 내가 산열매를 듬뿍 따 가지고 갈 때마다 안방으로 살짝 데리고 들어가서 필식이 아버지가 옆구리에 차고 다니던 총알 없는 권총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곤 하였는데, 나는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라도 쉽게 즉일 수 있는 닭다리 같은 권총이 하도 신기해서 보기만 해도 쪄릿쪄릿 오금이 저리고 명치끝이 떨려옴을 느꼈다.
필식이 아버지는 지서 주임이었다. 사나흘에 한 번씩 지서에서 이십 리를 떨어진 집에 말을 타고 왔다 가곤 하였다.
필식이 아버지가 알밤 껍질처럼 털이 윤이 나고 보드라운 큰 호마를 타고 마을에 올 때마다, 나는 괜히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런 그의 아들과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을과는 발걸음을 끊고 달팽이처럼 방앗간 안에서만 붙어사는 어머니는 내가 필식이네 집에 가서 노는 것을 죽어라 말리는 것이었다.
한번은 마을에서 밤 늦게야 돌아왔는데, 엉겁결에 필식이 집에서 놀다가 저녁까지 얻어먹고 왔다고 씀벅 입을 열었다가, 회초리로 종아리에서 피가 나도록 맞은 적이 있었다.
왜 필식이 집에서 놀다 오면 안 되는 것이냐고 어머니한테 대들며 따지듯 물었으나 어머니는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청개구리처럼 필식이와 더 가까이 지내고 싶었다. 나는 필식이가 나를 버리면 어쩌나 하고 늘 조마조마했다. 그의 환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조금만 색다른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모두 가져다주곤 했다. 그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책보를 던지고 혼자 들이며 산을 쏘다니며, 풀꽃이며, 이상하게 챙긴 돌, 곤충이나 새, 산열매 등을 따다가 필식이한테 주었다.
나는 한 번도 빈손으로 필식이 집에 놀러 가 본 적이 없었다. 산열매가 업는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붕어새끼 한 마리라도 잡아갔고, 방앗간 맞은 편의 깎아세운 듯한 벼랑에 올라가 번갯불과 천둥이 치는 밤에만 자란다는 바위옷이라도 뜯어다 줘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잘해도 필식이는 언제나 시큰둥하게 나를 대했다.
내 꿈은 어른이 되면 필식이의 하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필식이 집에서 그와 놀 매도 나는 상전처럼 그를 떠받들었다.
나는 날마다 필식이네 집에서 놀다가 어둠이 방앗간을 삼켜 버린 뒤에야 징검다리를 건너 방죽의 둑길를 타고 돌아오면서 행복감에 젖어 쌩쌩 휘파람을 날렸다.
어둠을 밟고 방죽의 둑길을 뛰어갈 때면 바람을 타고 들러오는 물방아 도는 소리가 마치 큰비가 와서 봇물이 넘치는 소리처럼 듣기에 좋았다. 이상하게도 물방아 소리는 멀리서, 그것도 밤에 들으면 짜증스러울 만큼 그렇게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방앗일감이 없어 빈 물방아가 어머니의 푸념노래처럼 씰씰씰씰 돌아가는 낮이 긴 봄에는 아버지는 방앗간에 붙어 있지 않았다.
방앗간에 일이 없을 때면 아버지는 늘 마을의 통메장이 집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아버지는 물통이나 똥장군 같은 것을 테를 매어 고쳐 주며 가난하게 살고 있는 얼금뱅이인 데다가 절뚝발이 장쇠와 가장 친하게 지냈다. 아가 아버지한테는 장쇠가 유일한 친구였는지도 몰랐다.
나는 아버지가 노루옥 안에서 계일 가난하고 못난 장쇠와 친구라는 것이 창피하기까지 했다. 왜 아버지는 하필이면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었는지 불만이었다.
아버지의 그런 어리숙한 것이 싫었기 때문에 나만은 잘나고 똑똑한 부잣집 도련님과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차돌 굴리듯 공그려, 기를 쓰고 필식이와 친해지려고 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녁밥 때가 되도록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면 대쪽같은 어머니의 성화에 쫓겨 멍에를 진 어스럭 송아지처럼 가기 싫은 발걸음으로 어기적어기적 장쇠 집까지 아버지를 모시러 가곤 하였다.
아버지는 장쇠네 바가지 우물 옆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서 장쇠를 도와 끝이 뭉툭하고 손잡이가 큰 칼로 대오리를 다듬어 주거나, 장쇠의 육자배기에 맞혀 덩더쿵 북장단을 맞혀 주고 있기 마련이었다,
장쇠는 그 주제꼴에 목소리 하나는 고와서 노루옥 안에서는 제일 소리를 잘한다고들 하였으며, 그 목소리 하나로 몸이 성하고 얼굴도 반반한 마누라를 얻었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내가 심부름으로 마지못해 장쇠 집에 갈 때마다 장쇠는 허리를 구부려 얼금뱅이 얼굴을 내 눈 높이로 바짝 들이대고 쿠리한 입김을 확확 풍기며, 자기 아들 구만이와 친하게 지내라고 버릇처럼 당부를 하는 것이었으나 나는 한 번도 선선하게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가난한 병신의 아들인 구만이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는 필식이 앞에서는 구만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필식이네 식구들이 그 큰 집에 할아버지 할머니만을 남겨 두고 섬으로 피난을 간다고 노루목을 떠난 그 해 첫여름, 방앗간 앞에 덩이져 핀 입술 모양의 용머리 꽃은 예년에 비해 피를 토하듯 한결 더 붉어 보였다.
필식이가 소달구지를 타고 노루목을 떠난 그 해 여름 나는 난생 처음 총소리를 들었다,
모자에 붉은 별을 붙인 북쪽 사람들이 마을로 들이닥치면서 총을 마구 쏘았는데, 그 소리가 안산(案山) 너덜겅이 허물어지는 것처럼 짜글짜글 마을에 울렸다.
나는 총소리가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다. 붉은 별을 붙인 사람들이 필식이네 집 대문께 큰 간판을 걸고, 마을 사람들을 오라 가라 하며 진을 치고 있을 때도, 총소리를 듣기 위해 그들 가까이서 모이를 찾는 병아리처럼 배 돌았다.
나는 필식이가 있을 때와 같이 날마다 그의 집에 가서 붉은 별을 붙인 사람들한테 집을 빼앗기고 골방으로 밀려난 필식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자잘한 심부름을 해 주었다. 그때 나는 필식이가 다시 돌아오면, 그가 없는 동안에도 충직한 하인처럼 날마다 그의 집에 와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도와주었다는 것을 자랑삼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인 장쇠 아들 구만이가 귀찮도록 찰거머리처럼 나를 따랐다. 구만이는 그전에 내가 필식이한테 했던 것처럼 내게 잘했다. 나는 문득문득 내가 필식이로 되고 구만이가 나로 변한 것 같은 감미로운 착각을 일으키곤 하였다. 구만이는 나의 충직한 하인이 된 것이다.
그는 내가 필식이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를 만나러 을 때는 빈손이 아닌, 무엇인가 한 가지씩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져왔다.
구만이가 내게 가져오는 것이란 개똥참외며, 꽈리, 오미자열매 ,황다갈색의 나팔 버섯 외에도, 금빛 나는 녹색의 날개를 가진 물잠자리며, 저녁 무렵에만 슬프게 우는 쓰름 매미, 나리꽃에만 앉는다는 호랑나비, 깊은 산에 가야 잡을 수 있는 비단 사슴 벌레 등 아주 진귀한 것들이었다.
구만이한테서 진귀한 선물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었는데, 노루목에 끔찍한 일이 생긴 뒤부터는 구만이의 선물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어져 버렸다. 나뿐만 아니라 구만이 쪽에서도 내게 무엇을 가져오는 일을 아예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 무렵 노루목에서는 실로 끔쩍한 일들이 계속해서 터졌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노루목의 어른들은 방문과 사립문을 꼭꼭 걸고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붙박혀 살았다. 모자에 붉은 별을 붙인 낮선 사람들과, 무서움을 모르는 내 또래의 아이들만이 마을 앞 돈단과 고샅들을 빗질하듯 훑고 다녔을 뿐이었다.
나와 구만이는 붉은 별을 붙인 사람들이 비석거리 필식이네 큰 농장을 관리하던 그의 외삼촌을 죽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필식이 외삼촌을 전깃줄로 두 손을 꽁꽁 묶어 필식이네 사랑채 두엄자리 옆에 꿇어앉히고, 두 다리의 오금에 큰 장작개비를 처넣고 여럿이서 번갈아 가며 작두질하듯 발로 허벅지의 대퇴골을 끙끙 힘을 써가며 짓밟았다. 그때마다 필식이 외삼촌은 안산 너덜겅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비명을 질렀다.
그날 오후 총을 멘 낯선 사람들은 필식이 외삼촌을 물방앗간 위쪽 미나리 밭 수구렁으로 끌고 가서 대창으로 찔러 죽였다. 메주 볼에 방석 코가 두리뭉슬한 젊은 사람은 붉은 별을 붙인 그의 모자 차양을 깊숙이 잡아당겨 눈썹을 가린 다음, 두 손으로 대창을 단단히 쥐고는 꿇어앉은 필식이 외삼촌의 배를 푹 찔렀다.
메주 볼 사내가 오른발로 앞가슴을 툭 차며 대창을 뽑자 필식이 외삼촌은 나뭇둥치처럼 옆으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맨드라미꽃보다 더 붉은 황혼이 마을 앞 팽나무 가지 끝에 비단처럼 곱게 매달리기 시작할 무렵, 필식이 외삼촌의 시체를 치우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 미나리 밭으로 가 보았을 때, 꽃뱀 한 마리가 시체의 머리맡에 있다가 다급하게 또아리를 풀며 물달개비 풀섶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날부터 물방아가 돌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시켜 방앗간 물줄기를 돌려버린 것이다.
물방아 도는 소리가 뚝 그치자 숨막힐 듯한 더위와 보이지 않는 공포가 목을 조르듯 노루목을 바짝 덮쳐 누르는 것만 같았다.
"엄마, 왜 물방아를 안 돌려?"
내가 묻자 어머니는
"난리통에는 바람 소리 새 소리까지도 무섭게 들리는 법이란다."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필식이 외삼촌을 죽인 그들은 며칠 후에 필식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끌고 나와서 손을 뒤로 묶고 맷돌을 목에 매달아 마을 앞 방죽에 처넣어 버렸다. 깊은 방죽 흙탕물 속에 처박힌 필식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물위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필식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방죽 속으로 맷돌과 함께 가라앉아 버린 것을 본 나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해가 저물도록 방죽의 둑을 서성거리며 질금질금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참으로 나를 슬프게 한 것은 하룻밤이 지난 뒤에도 마을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물 속에 잠긴 늙은 내외를 건져 올려 장사지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음이었다.
아버지한테 따지듯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필식이 할아부지가 왜정 때 왜놈들 밑에 있으면서 못할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땜시,,,,,,. "
하면서 말끝을 흐려 버리고 말았다.
나는 아버지한테 계속 필식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못할 짓을 했느냐고 도깨비바늘처럼 달라붙으며 자꾸 캐물었다.
"옛날 왜놈들이 지금 필식이네 농장 땅을 차지할 때, 필식이 할아부지가 왜놈의 앞잡이가 되어 갖고, 문서 없는 땅을 왜놈이 차지하도록 도와 줬단다. 그래서 억울하게 땅을 뺏긴 사람이 여럿이구만."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왜놈들이 물러갔으니 그 땅을 빼앗긴 주인한테 되돌려 줘야 당연할 터인데도 여지껏 필식이네가 독차지하고 있는 것은 잘못한 일이라면서 마치 필식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목에 맷돌을 매고 방죽 속에 잠겨 죽은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한테 필식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물 속에서 끄집어내서 장사를 지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사를 안 지내 주고 내버려 됐다가 필식이가 돌아오면 걔 얼굴을 어떻게 봐요?"
그러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계발 장사를 지내 줄 것을 칭얼대며 졸랐다,
필식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방죽에 잠겨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 아버지와 장쇠는 긴 장대 끝에 쇠스랑을 묶어 물에 잠긴 두 노인을 건져 올려, 방앗간 맞은편 개솔새풀이 많은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필식이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 옆의 개솔새가 엷은 보라색 꽃을 피우기 시작할 무렵, 모자에 붉은 별을 붙인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
비행기들이 갈가마귀떼처럼 노루목 하늘을 날으고, 한바탕 지글바글 총소리가 노루목 안통을 줴흔들고 나더니 필식이 아버지가 많은 경찰들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필식이 아버지는 마치 집에 남겨 두었던 두 늙은 부모가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얼굴에 슬픈 표정이 없었다.
필식이와 그의 어머니도 곧 돌아왔다. 필식이도 그의 아버지처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을 표나게 슬퍼하지를 않았다.
나는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마치 나 때문에 죽음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안한 생각과, 다시 친구를 만났다는 기쁨에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그러나 필식이는 울지 않았다.
나와 필식이는 다시 옛날처럼 어울렸고 구만이는 자동으로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필식이가 돌아온 다음날 나는 어머니에게 여름 내내 돌리지 않았던 물방아를 다시 돌리자고 말했으나 어머니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물레방아라도 돌려서 필식이가 다시 돌아온 것을 환영해 주고 싶었고 노루목 하늘을 날으는 새들과 안산의 나무와 풀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거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직은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가 않다. 총소리가 날 때는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어!"
하고 호도 껍데기처럼 늙어 버린 노인과도 같이 희미하게 말할 뿐이었다.
필식이네 텃밭 울타리의 탱자가 노랗게 익어 멸어질 때까지도 물방아는 돌지 않았다.
나와 필식이는 날마다 안산 너덜겅 잡목숲으로 으름이며 다래를 따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물방앗간에 낮선 사람이 왔다. 찾아온 게 아니고 아버지가 등에 업고 왔다. 아버지 또래의 덩치가 큰 남자였는데 오른쪽 다리 오금탱이를 총에 맞았는지, 피묻은 걸레 뭉치 같은 더러운 헌거치가 무릎에 여러 겹 뚤뚤 말려 있었다.
수세미 속처럼 앙상한 얼굴에 몇 달 동안이나 수염을 깎지 않았는지 얼굴과 턱이 온통 시꺼맸고, 입성은 마치 볏논에 참새를 쫓는 허수아비처럼 볼품이 없었다.
아버지의 등에 업혀 하나뿐인 방앗간의 골방에 들어온 그는 괴로운 듯 앙상한 얼굴을 험하게 찡등그렸다, 그는 상한 오른쪽 발을 오그리지 못해 길게 뻗대고 횃대에 걸린 헌 옷가지들이 너절너절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괴로운 얼굴로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 낮선 사람의 눈길이 무서워 한사코 시선을 피했다.
아버지가 석유 등잔에 불을 댕겨 두꺼워지는 어둠을 쫓아 버릴 때까지 낮선 사람은 잠시도 내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때묻은 이불이며 베개를 쌓아 놓은 방구석에 고양이처럼 조그맣게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훌쩍거렸다.
"이 어른한테 인사드려라. "
나는 아버지의 말에 힐끔 낮선 남자를 훔쳐보았다. 섬찟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인사를 하기가 싫어 지싯지싯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방문 쪽으로 물러앉았다.
"인사드리라니깐!"
아버지가 다시 다그쳐서야 나는 되도록이면 그의 눈길을 피하느라 얼굴을 돌린 채 물방아 방앗공이처럼 단 한 번 고개를 꾸벅했을 뿐이었다.
"많이 컸구나. 이리 좀 뽀짝 와 줄래?"
그가 주먹나발을 만들어 말을 하는 것처럼 우렁우렁 울림이 좋은 목소리로 입을 열며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나는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가 죽은 사람보다 더 무서웠다. 아마 다리의 상처 때문인지도 몰랐다. 내 생각에 그는 꿈틀거리며 죽어 가고 있는 듯싶었다. 돌멩이에 맞아 길바닥에 뻗대고 죽은 뱀의 썩는 냄새처럼 그의 상처에서도 고약한 냄새가 훅훅 덮쳐 왔다. 나는 고가 서서히 썩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썩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가 더욱 무서워진 것이다.
"어르신 말대로 뽀짝 가그라."
다시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상처의 아픔을 참고 억지로 웃어 보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상처 썩는 냄새 때문에 왼손으로 코를 쥐어 싼 채 조심조심 곁눈질을 마며 그의 가까이로 다가앉았다.
“그새...... 이렇게 크다니...... 몰라보겠다아."
그가 꼬챙이로 곶감 꿰듯 띄엄띄엄 말을 연결하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나는 색은 살이 내게 닿기라도 하는 것 같아 목을 두 어깻쭉지 속으로 깊숙이 넣으며 몸을 웅크렸다가 뽀르르 어머니 옆구리에 달라붙었다.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훌쩍거리고만 있었다,
나는 낯선 손님이 도대체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버지와는 친구 사이처럼 서로 말을 놓았고, 어머니는 그에게 존칭어를 샜으나 그는 어머니에게 반말을 했다.
그가 어머니의 오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게 외삼촌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
나는 그날 밤 도대체 썩어 가는 낯선 손님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만을 구슬 굴리듯 하다가 새우처럼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자다가 목이 말라 눈을 떠보니 방안에는 그때껏 석유 등잔불이 밝혀져 있었고, 세 어른들은 잠을 자지 않고 앉아서 들독이라도 들어올리는 것 같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잠이 든 체 눈을 감고 누워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름바위라면 노루목에서 오십 리도 안 되는데 어찌 한 번도 안 왔남?"
"기름 바위에 온 지가 한 달 남짓밖에 안 됐어. 그러고 노루목 사람들 얼굴 대하기도 싫었고,,,,,,. "
아버지가 묻고 고가 대답했다
"지난 팔 년 동안 어디 가 있었기에 여태 기별이 없었어?"
"신의주에 가 있었구만."
"신의주차니?"
"압록강 옆."
"어쒸, 멀찌기도 가 있었구만 그려."
"여기저기 떠돌아 댕겼어."
"참봉 영감 죽은 거 모르재?"
"알어, 영감태기 할망구 한꺼븐에 목에 맷돌을 달어서 방죽에 처넣었담서?"
"노루목 사람들 아무도 안 만났다믄서 그 이야기를 누구한티 들었어 ?
아버지가 묻는 말에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다리를 이렇게 많이 다쳤으니 으쩔거여. 새벽에 읍에 나가서 의원을 뫼셔 와야겠어."
"의원을 데려 오다니 큰일날 소리. 아무한테도 알려서는 안 돼. 한 이틀만 여기 머물렀다가 갈 거니께 다른 생각 허지도 말고.
"가다니 ? 이 몸을 하고 어디를 가겠다는 겐가?"
갑자기 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졌다.
"지리산으로 들어갈 거네,"
"지리산?
"이틀 후에 동지들이 나를 데리러 이리로 똘 거네."
말을 하고 나서 그는 상처의 통증 때문인지 길게 신음을 깨물었다.
나는 사내의 신음 소리가 마치 필식이 외삼촌이 안산에서 대창에 찔려 죽을 때, 이발로 기둥뿌리를 물어뜯는 것 같이 쩌릿쩌릿 머릿속을 쑤셔 오는 비명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슬며시 눈을 뜨고 그를 보려 했다. 그때 내 눈에 허수아비 옷보다 더 꾀죄죄한 그의 허리춤에 삐주룩이 나와 있는 닭다리 같은 권총이 뚜렷하게 들어왔다. 나는 하마되면 벌떡 일어날 뻔했다. 권총을 찬 그가 갑자기 필식이 아버지처럼 위대하게 생각되었다.
"자네가 노루목을 떠난 뒤로 순식이 어머니는 하루도 쉬지 않고 물방애를 돌렸다네. 난리가 나기 전까지는 물방애 돌아가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어."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멀리 가 있어도 내 머릿속에서 물방애가 쉬지 않고 돌았는개비구만. 철철철 내 머릿속에서 물방애가 쉬지 않고 도는데 내가 어찌 고향을 잊을 수가 있었겠나."
"나는 순식이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네. 물방애를 쉬지 않고 돌리려고 하는 순식이 어머니 깊은 속을 알고 있기 땜시,,,,,, 그렇게 정성을 쏟아서 일념으로 물방애를 돌렸으니께 멀리 가 있는 자네 귀에까지 들렸겄재, "
"순식이 어멈이 너무했구만. 자네한테 미안허이."
낮선 손님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나서 신음을 깨물어 삼키느라고 끙끙거렸다.
나는 한쪽 눈만 지그시 뜨고 누운 채 줄곧 낯선 손님의 옆구리에 채여 있는 권총만을 보았다.
"순식이 어머니한테나 자네한테나 죄를 짓고 있는 건 날세."
아버지의 목소리는 정말로 죄를 지은 사람처럼 맥이 빠져 있었다.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가 그 동안 쉬지 않고 물방아를 돌린 것이 왜 낯선 손님 때문이었는지, 아버지가 그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도 없었거니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의 관심은 오직 낯선 손님이 누구이길래 아버지가 그를 부처님 대하듯 하고, 어머니는 또 처음부터 고개를 꾸겨박고 훌쩍거리기만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기에 권총을 차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의문의 매듭을 풀기 위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머릿속이 부스럭거리도록 여러 차례 굴려 보았지만, 도무지 실마리의 가닥이 추려지지가 않았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늦게까지 잠을 안 자고 눈을 뜨고 있었던 나는 할미산 쪽에서 질러오는 아침 햇살이 엉덩이에 불을 놓아서야 푸스스 일어나 앉았다.
어른들은 그때까지도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우리 집에 누가 왔다는 말 입밖에 내서는 큰일난다잉. 시키는 대로 안 했다가는 우리 식구 다 죽는겨."
아침을 먹고 방앗간을 나오려는데 아버지가 내게 다짐을 받았다, 나는 우리 식구가 다 죽는다는 아버지의 말에 문득 필식이 외삼촌의 죽은 얼굴과, 시체 옆에 길다랗게 뻗질러 있던 꽃뱀 생각이 치르륵 마른 번갯불처럼 뇌리를 핥았다.
전쟁이 끝났다는데도 반 이상이 결석을 하고 있는 학교에서,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필식이한테 방앗간에 와 있는 권총을 차고 총 맞은 낯선 손님 이야기를 할 수 없음이 마음 아팠다, 필식이한테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게 그렇게 죄스러울 수가 없어 그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
나는 학교에 가면서부터 집에 돌아올 때까지 거무죽죽한 마음으로 입을 꼭 다물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을 때까지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닻선 손님과 고개를 맞대고 어두컴컴한 방앗간 골방에 앉아 있었다.
"아가, 할미산에 가서 구절초 꽃을 좀 뜯어 오그라."
어른들이 나무토막처럼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답답한 모습을 무너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골방에 책보를 던지고 돌아서려는데, 어머니가 따라나오며 말했다.
"구절초 꽃은 뭣하게?"
나는 머릿속에 분홍 빛깔의 구절초 꽃을 떠올리며 물었다. 나는 구절초 꽃을 알고 있었다. 노루목 안에서 나만큼 꽃 이름을 많이 알고 있는 아이도 없었다. 나는 나무들, 풀, 꽃, 새, 벌레, 고기들 이름을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친구들에게
"힝, 그래도 새 이름이나 나무, 풀, 꽃 이름은 나만큼 모를 걸!"
하고 마음속으로 말하곤 했다,
내가 나무나 풀, 새, 벌레,고 기 이름들을 많이 알고 있는 것은 다른 아이들보다 산과 들, 냇가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총 맞은 상처에 구절초 꽃잎을 찧어 붙이면 낫는단다."
어머니는 슬픈 얼굴로 말하면서 조그만 망태기를 내 어깨에 메 주었다.
나는 책보만한 망태기를 메고 징검다리를 건너 명주잠자리의 날개처럼 밝고 보드라운 가을 햇살이 가득 괴어 있는 할미산 골짜기로 접어들면서, 분홍색 구절초 꽃의 상큼한 향기와, 피고름이 범벅된 낯선 손님의 썩어 가는 상처를 열심히 비교하여 떠올렸다.
아름다운 구절초 꽃이 썩어 가는 상처를 낫게 한다는 게 신기하게만 생각되었다.
나는 참억새 풀섶 속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구절초 꽃을 뜯어 망태기에 담으면서, 꽃은 이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말끔히 낫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구절초 꽃처럼 붉은 햇살이 서쪽 하늘에 퍼지기 시작할 때까지 꽃잎을 뜯어 산에서 내려오다가 당산나무 앞에서 자바 필식이를 만났다.
섭섭하게도 필식이는 망태기 속의 구절초 꽃을 몽땅 달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자기 집 토끼에게 먹이겠다는 것이었다.
"토끼한테 먹이면 토끼털이 구절초 꽃처럼 발갛게 될지 누가 아니?"
필식이의 말에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이건 안돼, 우리 집에 와 있는 총 맞은 사람 상처에 붙일 거야. 우리 집에 권총 찬 사람이 총에 맞아 누워 있거든! "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발등을 쪘고 싶도록 후회하였다.
나는 결국 망태기 속의 구절초 꽃잎을 한 움큼 집어주면서 내가 그에게 한 말은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다짐받고 휘적휘적 방앗간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내가 할미산에서 뜯어 온 구절초 꽃잎을 불그레한 꽃 물이 질퍽하도록 손바닥으로 으깨어, 낯선 손님의 더러운 상처를 풀고 한 움큼 붙여 주었다. 어머니는 썩고 있는 상처가 더럽지 않은지 횐 머릿수건이 피 뭉치가 되도록 상처의 피고름을 닦아내고, 꽃잎 으깬 것을 붙인 다음, 헌 버들고리에서 새물 냄새가 풀풀 나는 어머니의 흰 속치마를 북 찢어 여러 겹으로 감아 주는 것이었다.
구절초 꽃잎을 찧어 붙인 그날 밤 낯선 손님은 밤새도록 끙끙 앓았다. 열이 오르는지 어머니는 그의 머리맡에 앉아서 이마에 찬 물수건을 쉴 새 없이 갈아 넣어 주었다.
"아무래도 내 오른쪽 다리를 잘라야 할란개비,,,,,, 이러다가는,,,,,, 온몸이 다 썩어 갈 건디,,,,,,."
그는 앓으면서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나는 그 말에 필식이네 머슴들이 돼지를 잡으면서 큰 칼로 자귀질하듯 다리를 찍어 자르던 모습을 떠올리며 으스스 턱 끝을 떨었다.
"내장까지,,,,,, 썩어 들어가기 전에,,,,,, 도끼로 내 다리를,,,,,, 잘라 주소."
그는 이렇게 말했다가는 이내
"아닐세,,,,,, 다리를 자르는 것보담,,,,,, 차라리 온몸이 썩어 이 대로 죽는 것이,,,,,, 더 낫재."
하며 전날보다 더 심하게 눈자위가 들어간 눈으로 나와 어머니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되작거려 보았다.
다음날도 나는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할미산으로 구절초 꽃을 뜯으러 갔다. 그때 나는 이상하게도 낯선 손님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에서 강렬하게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았다. 그를 살리기 위해서 열심히 많은 꽃잎을 뜯어, 햇빛을 좇는 산 그림자를 따라 내려왔다. 그날은 필식이를 만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필식이를 만나지 않은 것이 그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었다.
징검다리를 건너 방죽의 둑길을 지나 방앗간으로 돌아오던 나는 섬쩍 놀라 발걸음을 멈추어 섰다.
방앗간에서 뭉클뭉클 검은 연기가 머리를 풀고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방앗간이 타고 있었다. 탕 하고 총소리가 붉게 물든 하늘을 찢었다.
나는 꽃 망태기를 벗어 던지고 방앗간을 향해 뛰었다.
구절초 잎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총을 겨누고 방앗간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얼핏 보니 필식이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필식이 아버지가 뭐라고 큰 소리로 지휘를 했다.
순간, 내 가슴속에서도 방앗간을 태우는 연기보다 더 뜨거운 불기둥이 뭉클 솟아올랐다.
불길을 뚫고 아버지가 낯선 사내를 업은 채 컹컹 생 기침을 토해 내며 방앗간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탕탕탕 총소리가 안산 너덜겅을 흔들더니, 나뭇둥치처럼 앞으로 퍽 고꾸라졌다.
"살려 줘요, 필식이 아버지!"
나는 울부짖으며 권총을 꼬나든 필식이 아버지의 팔에 매달렸다. 그러나 총소리가 계속 내 귀청을 뚫었다, 어머니가 손을 휘젓고 뛰어나오다가 그대로 아버지 옆에 퍽 고꾸라졌다.
불기둥이 꿈틀 솟구치더니 우지직 방앗간 지붕이 내려앉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낯선 손님을 한꺼번에 삼켜 버렸다.
붉게 물들었던 하늘은 이내 어두워졌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 나도 죽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겁에 질려 후들후들 다리를 떨며 어둠 속을 뛰었다. 논둑길에 픽픽 쓰러지며 신작로까지 뛰어 한없이 걸었다.
면사무소 앞을 지나서 자갈이 깔린 신작로를 따라 밤새도록 걸었다.
큰 도시의 불빛이 하늘에 박힌 수많은 별처럼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신작로가 미류나무에 등을 기대고 질퍽하게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눈을 감았다.
"필식이 자식, 기어코 너를 죽이고 말 테다."
기진맥진한 나는 마음속으로 울부짖으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낯선 손님은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에 몸을 떨면서 닭의 똥 같은 눈물을 주루루 흘렸다.
나도 죽고 싶었지만, 죽기 전에 필식이를 죽여야 한다는 뼈저린 각오로 이를 응등 물고 흐늑거리는 도시의 불빛을 찾아 내려갔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아침의 햇살이 고기비늘 같은 혓바닥으로 차창 유리의 성에를 할아 녹일 무렵, 헌털뱅이 버스는 꽁무니에 매연을 뿜고 참나무가 듬성듬성 비스듬히 서 있는 운산(雲山) 고개 산허리의 황톳길을 해소병 앓는 노인처럼 헐떡이며 올라가고 있었다.
버스가 면사무소 앞에 멎자 여공 차림의 승객들이 한꺼번에 우루루 내려 버려 버스 안은 통금이 풀리기 시작한 뒷골목처럼 썰렁하게 비었다.
나는 희끗희끗 눈 쌓인 산과 들을 먼 시선으로 열심히 더듬어 보며 줄담배를 피웠다.
버스가 노루목에 가까와지자 다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회오리바람이 거칠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30년 전 달빛을 밟으며 참새만한 가슴에 복수의 칼을 묻고 떠나 왔던 고향 길을 부끄러움에 전신을 떨며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꿈속에서처럼 낯설었다. 큰 바위가 웅크리고 있는 산모퉁이며, 부옇게 햇살에 부서지는 골짜기, 간판 없는 주막. 논두렁 마을들,,,,,, 모두가 낯선 모습으로 심장에 찍혀 왔다.
나는 문득 고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30년 전의 회색 빛 과거의 시간 속으로 서서히 이끌려 들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에 쩌릿쩌릿 현기증을 느꼈다.
시퍼런 복수의 칼 대신에 부끄러움에 떠는 한 마리의 속죄양이 되어 과거의 무덤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듯싶었다, 30년 전 이 길을 밟고 노루목을 떠나 올 때는 기어코 다시 돌아와 필식이를 죽이고야 말겠다고 이빨을 웅등 물었다,
도시의 창자 썩는 냄새가 훅훅 코를 덮치는 다리 아래서 잠을 잘 때나, 성냥 공장에서 토막난 성냥개비들을 가려내기 위해 팔이 빠지도록 체질을 하면서도 마음의 숫돌에 복수의 칼날을 갈아 세우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았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우연히 시내 버스 안에서 만난 신부님의 주선으로 야간 학교에 다닐 때,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귀절을 읽으면서도 복수의 불길은 무섭게 타올랐다.
야간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나는 노루목 필식이한테 내 결심을 알리는 편지를 쓰지 않았던가.
---필식이 네가 내 친구가 아닌 것과 같이 노루목은 이미 내 고향이 아니다. 네 아버지가 방앗간을 불태우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 것처럼 나도 네 집을 불지르고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고 말겠다. 이제 나는 너를 내 하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를 갈고 살겠다. 언젠가 복수하러 찾아가겠다.
나는 발신인의 주소를 밝히지 않은 채 필식이한테 편지를 써 보냈다.
그때 나는 복수하기 위해 살고, 복수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그런 생각이 알게 모르게 녹이 슬기 시작한 것은 국민학교 교사가 되어 30년 전의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부터였다. 나는 비로소 아이들을 이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이들은 결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필식이한테 방앗간의 낯선 손님 이야기를 한 것처럼, 필식이도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그의 아버지에게 말했을 것이라는 것을 헤아릴 수가 있었다. 필식이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기 위해 그의 아버지한테 그런 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었다.
자격 시험을 치르고 다시 고등학교에서 우리 나라 역사를 가르치면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죽은 것이 필식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이미 복수의 칼은 내 마음속에서 부러져 버렸다, 필식이 얼굴과 이름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고향 노루목을 잊고 살아왔다. 30년 전의 일은 과거의 무덤 속에 깊숙이 묻어 버렸다
버스가 햇살에 질척질척 녹아 내리는 가파른 황톳길을 내려가자 살진 암소의 엉덩판만한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앙당그러진 잡목들이 촘촘한 산자락 끝 양지쪽에 30년 전 내가 다녔던 운산 국민학교가 한가롭게 햇빛을 받고 엎뎌 있었다.
버스가 학교 앞 월곡리에서 멎자 나는 서둘러 미리 내렸다. 월곡에서 노루목까지는 2킬로미터 남짓 되었다. 월곡리에서 노루목까지는 30년 전 걸어서 학교를 다니던 길이라 바윗등걸, 길가의 나무들까지도 낯이 익어 보였다.
월곡리 아들바위 모퉁이를 보듬고 돌자 노루목 마을이 하늘을 향해 떠올랐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서 앙상한 팽나무 가지 사이로 떠오른 노루목을 바라다보았다.
월곡리에서 노루목까지 2킬로 남짓밖에 안 되는 거리였는데도 한 시간이 더 걸렸다. 나는 수없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꿈속의 기억들을 떠올리듯 조심스럽게 눈으로 노루목을 감치며 걸었다.
고향은 과거의 무덤이 아니고, 내 몸에서 뿌려진 핏자국, 잊혀진 부모의 슬픈 모습이었다.
나는 노루목이 가까울수록 감당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신작로를 따라 걷지 못나고 좁장한 논둑 길을 어슬렁거리면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버스에서 미리 내려서 걷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필식이를 만나기가 두려웠다. 옛날에 그에게 꼭 복수를 하겠노라는 편지를 보낸 것이 칼로 내장을 저미는 것처럼 후회스러웠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기도 부끄러웠다. 마치 벌거숭이가 되어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후끈후끈 심장이 달아올랐다.
나는 되도록이면 마을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게 몸을 조그맣게 웅숭그리며 논둑길을 타고 물방앗간 쪽으로 걸었다.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물방아 돌아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할미산 소나무 가지들을 흔들며 드밀고 내려오는 바람 소리만이 들판에 가득했다.
하기야 나는 이미 물방아 돌아가는 소리와 바람 소리를 구별할 수조차 없었다.
물방앗간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울타리처럼 둘러서 있었던 쥐똥나무는 한 그루도 살아 있지 않았고, 여기저기 돌무더기만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물받이 낭떠러지 아래도 메워져 버렸다.
나는 한동안 방앗간 언저리를 서성거렸다. 돌무더기 속에 아버지 어머니의 유골이 묻혀 있을 것만 같았다.
태양은 아직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바람은 쉬지 않고 노루목 들판을 갈퀴질했다.
한 시간쯤 물방앗간 돌무더기 위에 앉아서 눈 덮인 안산만을 바라보았다.
마을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방앗간의 돌무더기를 모두 들어내서라도 아버지 어머니의 유골을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되살아났다. 돌무더기를 들어내고 있는 사이 마을 사람들이라도 보게 되면 그 부끄러움을 어떻게 감당해야 좋을지 몰라 선뜻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다섯 개비 째 줄담배를 피우고 나서 벌떡 일어나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필식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겨 죽은 방죽의 둑길을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는 동안 다행하게도 마을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않았다.
징검다리를 건너 마을 앞 당산에 선 나는 당황한 얼굴로 눈알을 굴렸다.
분명히 탱자 울타리는 그대로 남아 있는데 필식이네 집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양철집이 들어앉아 있어야 할 자리가 밭이 되어 어질더분하게 지푸라기들만이 널려 있지 않은가.
나는 탱자 울타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당산으로 나와서 필식이네 집터와 울긋불긋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꿔 네댓 채의 마을 지붕들이며, 옛날보다 더 작아 보이는 듯싶은 당산나무를 쓸어 보았다.
마을은 옛날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이라면, 필식이네 양철집이 없어져 버린 것과 울긋불긋 슬레이트로 바뀐 지붕 위에 텔레비젼 안테나가 서 있는 것과 넓혀진 고샅뿐이었다, 고샅이 넓혀진 것과는 달리 모든 것이 작아진 듯싶었다. 당산나무도, 마을 앞을 흐르는 냇물도, 필식이네 탱자 울타리도, 돈단 아래 안 고샅으로 건너가는 두껍다리도 옛날보다는 훨씬 볼품없이 작아져 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어디로 누구를 만나러 가야 할지 망설였다. 물방앗간에서 마을로 건너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꼭 필식이를 만나서 내 잘못을 용서받고 싶은 생각에 잠시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잊을 수가 있었는데 필식이 집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자 행방을 가늠하지 못하는 바람처럼 당산나무 옆을 서성거리고만 있었다.
잠시 후 마을 아낙들이 안 고샅에서 손바닥만한 두껍다리를 건너 당산 쪽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마지못해 거의 충동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마을 아낙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도 그들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였던 장쇠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대밭 밑 장쇠네 집까지 가는 동안 나이가 지긋한 두 사람을 만났으나 역시 서로 알아보지 못했다.
장쇠네 집은 옛날 그대로였다, 외짝 사립문이 비딱하게 반쯤 열려 있고, 토담 위도는 감나무가 비주룩이 고개를 들고 있었으며, 물매가 싼 초가 지붕이 옛날 그대로였다. 잠시 사립짝 문 앞에 서 있었더니 여남은 살 안팎의 사내아이가 콩고물이 묻은 쑥떡을 손에 들고 총알처럼 밖으로 튀어나오다가 나를 보자 섬칫 몸을 사렸다,
"얘야, 네 성이 장씨냐?"
내가 묻는 말에 소년은 검은 자위가 많은 두 눈알을 빠르게 굴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네 아버지가 장 구만 씨냐?"
"울 아부지 없어라우."
내가 묻고 소년이 대답했다
"멀리 가셨냐?"
"작년에 죽었어라우."
순간 나는 할 말을 잃고 영양 실조로 생긴 소년의 왼쪽 뺨 마른버짐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깨물어 삼켰다.
"할아버지는 계시냐?"
구만이 아들놈은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쪼르르 안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할아버지를 외쳐 불러 댔다.
나는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감나무 옆 바가지 샘에 앉아서 걸레를 빨고 있던, 구만이 아내인 듯싶은, 중년부인답지 않게 몸피가 가늘고 짜들어진 여자를 보았다. 구만이 아들놈이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물 묻은 손을 짙은 밤색 통치마 허벅지 통에 쓱쓱 문질러 닦으며 일어서서 누구를 찾으러 왔느냐고 눈으로 물었다.
"영감님 계십니까?"
내가 구만이 부인을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묻고 있을 때, 건넌방 문이 삐그덕 열리면서 구만이 아버지 장쇠가 밭은 기침을 토하며 고개를 내밀었다.
장쇠는 절뚝거리며 방에서 나와 고무신을 꿰고, 손바닥으로 눈썹 차양을 만들어 섬뜩거리는 겨울 햇살을 받치며 나를 건너다보았다.
"저, 순식입니다요. "
나는 토마루 쪽으로 가까이 걸어가서 장쇠 앞에 허리를 굽혔다.
"누구라고?"
아직 일흔이 넘지 않았을 터인데도 장쇠는 마른 죽순 껍질처럼 폭삭 늙어 버렸다. 얼금뱅이 얼굴은 추하게 쪄들어지고, 허리는 곱추처럼 굽어,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은 무대 위의 슬픈 광대 같았다.
"물방앗간집 아들 순식입니다."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제서야 장쇠 노인은 떨어진 구두창 같은 손으로 눈곱자기가 붙은 눈언저리를 쓱 문지르고 나더니 한껏 허리를 펴고 찬찬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네가 물방앗간집 아들 순식이란 말이냐?"
장쇠 노인은 믿어지지 않는지 뜨악한 얼굴로 되물었다.
"이제야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냉큼 들어가자. 내가 죽기 전에 와 줘서 고맙다. 키가 훤칠한 게 네 애비를 쪽 뺐구만."
장쇠 노인은 내 손을 잡아끌고 옛날 방앗간 골방보다 더 나을 것 없이 어둡고 꾀죄죄한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언제고 한번은 네가 을 줄을 알았다만,,,,,,"
장쇠 노인은 물기 젖은 목소리로 말하며 아랫목의 구저분한 이불을 한쪽으로 밀쳐 나를 앉게 하고 밖에 대고 손자를 불렀다
"방앳간은 둘러보았느냐 ? "
장쇠 노인이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더군요."
"자최도 없어져부럿재. 그래도 물방애 도는 소리는 여전히 들린단다."
"물방아 도는 소리가요?"
내가 묻고 있을 때 마른버짐이 핀 구만이 아들놈이 들어왔다.
"아가, 이 어른헌티 인사드려라."
장쇠 노인은 내가 되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손으로 손자의 허리춤을 잡아 끌어당기며 걀걀걀 가래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구만이 아들놈은 선 채로 허리만 꺾었다가 폈다.
"이놈이 구만이 자식놈이다. 구만이가 너를 보면 친형제보다 더 반가와 흘껏인듸,,,,,,. "
"구만이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
"술병으로 갔어. 다 제 팔자소관이니 으쩔 수 없는 게지. 참, 냉큼 일어서거라, 갈 데가 있어."
장쇠 노인은 한바탕 밭은 기칠을 다시 토해 내고 나서 두 무릎을 짚고 일어 섰다.
"부모님들 묘소에 성묘를 해야재. "
“성묘라뇨?"
"네 부모님들 말여!"
장쇠 노인은 꾸짖는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나는 장쇠 노인의 뒤를 따라 나섰다.
우리들은 대밭 모퉁이의 가파른 황토 언덕을 추어을라 똘배나무며 쥐똥나무들이 듬성듬성한 할미산 비탈로 접어뜰었다.
팔을 휘젓고 절뚝거리며 나보다 앞서 가던 장쇠 노인은 할미산 골짜기를 가로질러 물방앗간 터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아기 다박솔 밭으로 내려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기다렸다. 장쇠 노인은 봉송한 무덤 앞에 서 있었다.
"자, 인사 올려라."
장쇠 노인이 물방앗간 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솔가지를 꺾어 무덤의 뜰방 위에 놓고 두 번 절을 한 뒤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방앳간이 내려다 뵈는 곳에 파묻길 잘했재. 아매 네 부모님들은 죽어서라도 물방아 소리를 들을끼야."
장쇠 노인은 앙당그러진 떡갈나무를 깔고 앉으며 말했다.
"전 부모님 유골이 방앗간 돌무더기 속에 그대로 묻혀 있을 걸로 생각했습니다."
"징해도 징해도 사람보다 더 징한 것이 없다. 넌 사람이 숯검정 모양 쌔까맣게 불에 탄 것을 못 봤을 게다. 총에 맞아 죽고 다시 불에 탔으니 두 번 죽은 게지. 불에 탄 세 사람이 누가누군지 구별조차 할 수 없었어."
말을 하고 나서 장쇠 노인은 한바탕 기침을 쏟았다.
우리들은 말없이 무덤 옆에 앉아서 산을 허물어 내리는 듯한 칼바람 소리를 들으며 발부리 아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물방앗간 터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분들 무덤은 어디 있나요? "
나는 담담하게 물었다.
"세 분을 여기 함께 묻었다."
장쇠 노인은 슬픈 눈으로 무덤을 쓸어 보며 말했다.
"세 분을 함께요?"
나는 온몸에 수많은 바늘이 꽂히는 듯한 섬칫한 기분으로 장쇠 노인과 무덤을 번갈아 보았다.
"셋은 아매 무덤 속에서도 정답게 지낼끄다. 나도 저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있고 싶구만."
나는 장쇠 노인의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앗간에 찾아왔다가 죽은 그 분이 누구인지 아셔요? 저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총 맞은 그 분 때문인 것 같은데요."
나는 30년 전에 풀지 못했던 의문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 이야기는 집에 내려가서 해 주마."
우리들은 두어 시간쯤 무덤 옆에 앉다 있다가 햇살이 없어지고 바람이 날카롭게 드세어져서야 마을로 내려왔다. 장쇠 노인은 할미산에서 내려오면서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필식이네 집안 이야기를 해 주었다.
"네가 야행을 친 이듬 해든가, 최 참봉 아들이 병원에 가서 쓸개를 메어 냈단다. 쓸개를 떼어내도 낫지 않아 황소가 디뎌도 꿈쩍 않을 그 크나큰 살림이 거덜나고 말았어. 그 존 살림 다 작살내고 죽었재. 살림 거덜나고 아들 죽어 넘어지자 남은 가족들은 끈 떨어진 망석중이가 되고 말았어. 그래서 악으로 모은 살림은 악으로 망흐고, 동절구도 밑 빠질 날이 있다고 허는 말이 빈말이 아닌갑더라. 필식이 모자가 빌어먹다시피 허고 살다가 결국에는 노루목을 떠났다. 한번 떠난 뒤로는 너 모양으로 소식이 뚝 끊겼어. 제 할애비 할미 묏등에 벌초를 안 허는 호로 불쌍 놈이 되고 말았어."
나는 장쇠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버릇처럼 자꾸 하늘만 쳐다보았다. 햇살이 기울기 시작하는 하늘에는 백자 파편 같은 구름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필식이가 몇 살쯤 돼서 노루목을 떠났나요?"
나는 제발 내가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보낸 편지를 받아보지 않고 떠났기를 빌면서 물었다
"글쎄다. 아매 구만이가 장가들기 삼사 년 전쯤 될까,,,,,, 집에 불이 나자 곧 떠났응께."
그렇다면 내가 보낸 편지를 받아본 뒤가 아니겠는가, 나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어려운 환경에서 내 편지를 받은 필식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니, 하늘들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온 장쇠 노인은 어둡기 전에 떠나겠다는 나를 한사코 놓아주지 않고 붙잡았다. 그는 내게 꼭 해 줄 말이 있다면서 고의적으로 미적미적 시간을 끌었다. 그가 내게 해 주겠다는 중요한 이야기란 다름 아닌 30년 전 방앗간에 찾아온 낯선 손님에 대한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하룻밤을 장쇠 노인 집에서 묵기로 하고, 쿠리한 노인 냄새가 나는 건넌방에 들어가 코트를 벗어 횃대에 걸고 앉았다,
장쇠 노인은 30년 동안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물으며, 지금은 뭘 하느냐, 자녀는 몇이나 되느냐, 집은 장만했느냐, 처가는 어디냐고 이것저것 알고 싶어하였다. 장쇠 노인은 밤이 깊어 자리에 들어서야 30년 전 물방앗간의 낯선 손님 이야기를 밭은 기침 섞어가며 땀직땀직 실꾸리를 풀듯 가닥을 추려 나갔다.
담양 추월산 밑이 고향인 장쇠는 해방이 되기 사오 년 전쯤 그의 나이 스물 한 살 때 통맬꾼으로 여기저기 절뚝거리며 흘러 다니다가 어느 여름 노루목에까지 오게 되었다. 그는 노루목 물방앗간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물방앗간에는 결혼한지 일 년 남짓 된 신혼부부와 방앗간 일을 거들어 주는 신랑 또래의 일꾼이 함께 살고 있었다.
장쇠는 방앗간 풍구 옆에서 거적을 쳐 철철철 물소리를 들으며 함께 잤다. 장쇠는 점박이 일꾼이 마음에 들었다. 점박이 일꾼은 원래 무당의 아들이었는데, 아홉 살 때 무당 어머니가 죽고 올데 갈데 없이 되자 방앗간에 와서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목줄을 지탱해 왔다고 부끄럼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버선코 까뒤집어 보이듯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키가 크고 고수머리를 한 사람 좋은 방앗간 신랑은 점박이 일꾼을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장쇠는 방앗간 주인과 점박이 일꾼의 권유로 노루목에 눌러 앉게 되었다. 그는 노루목에서 장가도 들었다. 세 아람은 친구가 되어 격 없이 어울렸다.
그 무렵, 자전거를 타고 주재소에 다니던 최 참봉 아들이 이미 첫아기를 낳은 방앗간집 새색시를 은근히 넘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이 비록 칼 찬 주재소 순사라고는 하나 남편 있는 새색시를 빼앗아 올 수도 없는 일이어서,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엉픔한 뱃심으로 자기와 방앗간 고수머리 마누라가 배를 맞췄다는 소리를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녔다. 만일 소문을 믿고 고수머리가 새색시를 쫓아내기라도 한다면 얼씨구나 하고 첩으로 맞아들일 속셈이었다.
소문은 고수머리의 귀에까지도 들어가게 되었다.
도둑의 때는 벗어도 화냥의 때는 못 벗는다는 푼수로, 방앗간 고수머리의 새색시는 영락없이 주재소에 니니는 참봉 아들과 그렇고 그런 사이로 어거지 낙인이 찍혀지고 말았다. 고수머리의 새색시는 칼로 가슴을 도려내고 싶은 억울함에 방앗간 옆 팽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으려고도 해 보았지만, 점박이 일꾼한테 들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새색시가 목을 매려던 날 밤, 방앗간 고수머리는 가슴에 퍼런 식칼을 품고 참봉네 담을 넘어 참봉 아들의 방 안을 덮쳤다. 그는 잠에 떨어진 참봉 아들의 입에 수건을 뭉쳐 넣고 손발을 꽁꽁 묶은 다음, 눈 번연히 뜨고 보는 앞에서 참봉 며느리의 옷을 벗기고 겁탈을 하였다.
고수머리는 그날 밤으로 노루목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괜히 헛소문을 퍼뜨렸다가 마누라를 잃은 참봉 아들은 허옇게 눈자위를 까뒤집고 긴 칼을 휘두르며 고수머리를 찾아 목을 베겠다고 울부짖었으나, 한번 자취를 감춰 버린 고수머리는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참봉 아들은 아내를 내쫓고 새장가를 갔다. 새장가를 든 여자한테서 낳은 아들이 필식이다.
노루목을 떠난 고수머리는 일 년이 지나고 오 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총에 맞고 방앳간에 찾아온 낯선 손님이 바로 네 친아부지란다."
장쇠 노인은 긴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목이 타는지 머리맡에 놓인 물 한 그릇을 단숨에 벌컥벌컥 좌악 들이켰다. 그때 나는 일어나 있었다. 장쇠 노인이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에 머리가 띵한 기분으로 일어나 앉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문득 할미산의 잔솔밭을 꿰흔들고 내려오는 쌩한 칼바람 소리에 섞여 내 귀를 들쑤시는 물방아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나는 벌컥 방문을 걷어차고 어둠이 무덤처럼 답답하게 가득 괴어 있는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물방아 돌아가는 소리를 찾아 어둠 속으로 깊숙이 파묻혔다, 천둥 소리보다 더 큰 물방아 도는 소리가 도끼로 장작 패듯 내 머리를 여러 조각으로 빠갰다.
그러나 나는 나도 모으게 자꾸만 물방아 속으로 빨려 들어가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듬고 씰씰씰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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