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百濟)의 미소-문순태
1
뒤로는 겸재의 실경산수(實景山水) 일지병을 펼친 듯 기암절벽(奇巖絶壁)의 월악이 둘러 있고, 앞으로는 무덤처럼 밋밋한 무등산이, 구름인지 산인지 분별할 수조차 없을 만큼 짙은 갈뫼빛 안개에 싸여 부옇게 출렁였다.
백선장군 왕 건이 후백제의 후미를 치기 위해 진도를 거쳐 무안 반도를 끼고 덕진포에 이르렀을 때, 견 훤과 맞붙어 밀치거니 닥치거니 꼬박 열흘 동안 싸웠다는 숫돌산. 이 산은 나주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육로로 나주를 협공하는 길과, 영산강 하류를 따라 침공하는 길을 막을 수 있는 요충지였다.
백제 의자왕의 통분을 설욕한다면서 스스로 후백제 왕이 된 견훤과, 고려를 세운 왕 건과의 혈전에서 칼을 갈기 위해 숫돌을 캐내어 산 꼭대기에 천지가 생겼다는, 이 숫돌산에서 나주 쪽을 바라보면, 질펀하게 들이 펼쳐 있고 민둥산 야산의 주봉을 이룬 할미봉이 우뚝 가로막는다.
이 할미봉 아래 도자기 마을이 있었다. 대대로 자기를 구워 온 도공들의 선조는 덕진포 싸움에서 왕 건의 포로가 된 견 훤의 부하들이었다고 했다. 그 조상들은 왕 건의 포로가 된 뒤에, 나주도대행태시중 구 진에 넘겨져 이웃 강진대구에서 청자를 굽기 훨씬 이전부터 자기를 구워, 송악으로 실어갔다고 했다,
백제 사람이면서 백제의 땅에 포로가 된 그들의 선조는 고려 전조를 통해 대대로 자기 굽는 것을 업으로 이어왔고, 다시 고려가 넘어지고 이씨조선이 들어섰어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후손이 된 도공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후백제를 세우려다 왕 건의 포로가 되어, 자기를 굽게 되었다는 그들의 슬픈 역사를 아무도 몰랐다.
칼을 갈기 위해 숫돌을 캐낸 자리에 명주실 두 꾸리가 들어간다는 숫돌산 천지처럼, 할미산 아래 도자기 마을 도공들의 마음도 그렇게 깊고 잔잔하게 욕심도 용맹도 다 잊은 채, 자기만을 구우며 살아왔던 것이었다.
2
못 먹어 핏기라고는 하나 없이, 얼굴이 누르퉁퉁하고 부석부석한, 여남은 살쯤 되어 보이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끝이 무지러진 부엌칼로 송기(松肌)를 뭉떵뭉떵 벗겨 망태기에 집어넣고 있었다. 아이들은, 송기를 벗기면서, 입 안이 싸아하게 느껴지는 고 쫄깃쫄깃한 송기떡을 생각했다. 망태기가 무춤하게 송기를 벗긴 그들은 배가 고픈지 넓적넓적한 누리장나무
잎을 주욱주욱 훑어 한입에 넣고, 잎 속에 든 벌레까지도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누리장나무 잎은 누리척지근한 누린내가 나는 것 같지만, 오랫동안 씹으면 끈적거리면서 달짝지근해지는 맛이 좋았다.
아이들은 소매 끝이 떨어져 너덜너덜하고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있었으며, 댕기도 땋지 않은 까치 둥우리처럼 부스스한 머리에 지푸라기며 검부러기가 주절주절하여 동냥아치들같이 보였다.
소나무 잎 사이를 뚫고 내리찌르는 뱀의 혓바닥 같은 햇살이 넓적넓적한 누리장나무 잎 위에서 사납게 널름거렸으며, 바람이 실팍한 누리장나무 가지를 흔들 매마다 뱀의 혓바닥처럼 날카로운 햇살이 되쏘여 왔는데, 찌르륵 찔려 오는 햇살에 아이들은 정신이 아찔아찔해져 현기증을 느끼곤 했다.
아침에 진잎죽 한 그릇밖에 먹지 못한 때문인지 속이 헛헛했다. 사월 초파일이 아직 보름이나 남았는데도 제법 햇살이 쿡쿡 쑤시는 것처럼 따가웠다,
봄이 되어 살에 새 나뭇잎들이 돋아난 뒤부터는 그래도 송기 떡이나 진잎 죽이나마 배부르게 먹을 수가 있어 다행이었다. 어른들은 도방에서 물레를 돌리면서도 그저 햇곡식이 나는 유월까지만 기다리자고 아이들을 얼리는 것이었지만, 이제 아이들은 유월이 되어도 그 찰깍정이 김 진사 어른이 끽해야 보리 가마나 주고 말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어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망태기가 무춤하게 송기를 벗겨 담은 같은 나이 또래의 여남은 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허기를 참느라고 연신 느릅나무 잎이며 누리장나무 잎을 한움큼씩 주욱주욱 훑어 입에 가득 넣고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비트적비트적 마을로 내려온다.
뒷 계, 방울재에서 내려다보이는 분원리는 배고픈 설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더 없이 한가로운 마을이었다. 쌍룡머리가 치솟은 호랑이 김진사네 안채, 사랑채, 곳간채가 즐비하고, 아랫당산 밑에는 도공들이 자기를 구워 만드는 도방과 가마방, 그 옆에 도공들이 사는 움막 같은 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분원리는 도자기 마을이다.
아랫 도방에서는 가마에 불을 지피는지 먹구름 같은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라, 상수리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앞산 할미봉의 허리를 한 바퀴 휘어 감는 듯싶더니 이내 사그라졌다. 송기를 벗겨 넣은 망태기를 메고 비트적거리며 방울재를 내려오는 아이들은, 온통 분원리 하늘을 까맣게 먹칠을 한 그 연기를 볼 때마다 그들이 배불리 먹을 맛있는 음식들을 장만하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때는 속이 더 헛헛하고 목이 말라 각시 샘을 향해 후드득후드득 뛰어내려가곤 했다.
아이들은, 호랑이 진사네 하인들의 눈을 피해 종각(鐘閣) 쪽으로 내려갔다. 종각 옆에는 언제나 철철 넘치는 각시 샘이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헛헛한 배를 불룩하게 채울 수가 있었다. 그들은 종각 옆길을 타고 내려와선 각시 샘 풀밭에 송기가 뺑뺑한 망태기를 벗어던지고 넙죽이 엎디어 배가 차오도록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나서 언제나처럼 종각을 바라다보곤 했다.
종각을 쏘아보는 그들의 눈꽁댕이에는 원망과 두려움이 범벅이 된 채 번쩍 빛났다.
석단을 쌓아올려 돌층계를 만들고 그 위에 종각을 세워 기와를 올리고, 아름드리 큰북이 매달려 있었다. 분원리 사람들은 북이 매달린 그곳을 종각이라고들 불렀다.
그들은 아직 한번도 그 북소리를 듣지 못했다. 분원리 사람들은 그 큰북을 신문고(申聞鼓) 라고도 했다.
"야야, 참말로 저 북을 치면 대궐꺼정 북소리가 들린다냐?"
눈끔적이 넓적이가 손가락으로 눈꼽재기를 떼내며, 혼잣말처럼 물었다.
"저 북을 치면 말여, 임금님이 북소릴 듣고 여기꺼정 날아온단다. 이 바보야,"
칠복이였다. 칠복이는 눈끔적이 넓바우의 뒤통수를 쥐어박는 시늉을 해보이기까지 하며 깔깔대고 웃었다.
"임금님이 북소리를 듣고 우리 분원리꺼정 날아오믄 진사어른 혼짝 난다더라야."
"왜 혼이 난다냐?"
"그것꺼정은 몰라 이 바보야!"
"죄가 있응께 그렇재!"
"쉿! 함부로 주등아릴 놀렸다간 이거야 임마!"
칠복이 녀석이 누르퉁퉁한 얼굴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리며 손으로 싹독 목을 베는 시늉을 해보였다.
"북소리가 그렇게 멀리꺼정 들릴까아?"
"북은 말여, 죄 있는 사람을 벌주기 위해 치는 북인디, 임금님은 아무리 먼 곳에서도 저 북소리만은 들을 수 있단다. 임금님 귀는 참 신통허지!"
"북을 친 사람은 죽고 만다믄서?"
"나도 알아 바보야, 그렁께 암도 북을 못 치재!"
기실 분원리 사람들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 동구 밖 종각의 큰북을 호랑이 김진사만큼이나 무서워들 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마을 사람들은 아예-종각 옆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도 꺼려하는 것이었다.
배가 불룩하게 샘물을 다신 바우는 아까부터 마구리에 가죽을 팽팽하게 씌운 아름드리 북이며, 종각 눈썹 차양에 매달아놓은 북 방망이를 번갈아 쏘아보며, 달려가서 한번 둥둥둥 걸립패의 북잡이처럼 신나게 후려치고 싶어졌다. 하다못해 북을 향해 멀리서나마 돌 팔매질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 때문에 온몸이 근질거렸다. 바우가 그런 엄청난 생각을 한 것은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었다. 나무를 하러 갈 때나, 송기를 벗기러 갈 때, 또는 뱃속이 헛헛거려 샘물이라도 실컷 마시려고 각시 샘에 을 때마다 늘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바우가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우의 그 무서운 생각은 차돌처럼 굳어져 반들거렸으며, 배가 불룩거리도록 샘물을 마시고 나서도, 그 무서운 생각을 속으로 삼키느라고 끙끙거리는 것이었다.
이제 갓 열세 살이 된 바우는, 철이 들면서부터 부쩍 그 무서운 생각이 차돌멩이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번들거리면서 자꾸만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참아내느라고 끙끙대곤 하는 것이었다. 정말 참을 수 없을 때, 그는 각시 샘 가에서 실팍한 돌멩이를 집어서는 종각의 반대쪽 팽나무를 향해 힘껏 팔매질을 하는 것이었는데, 둥둥둥 하는 북소리 대신에 우지끈 뚝딱 하고 팽나무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나서야 마을로 돌아오곤 했다.
"북을 아무도 못 치면 임금님은 영영 북소리를 못 들을 것인디......."
바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팽나무를 향해 돌팔매질을 했 다. 바우가 이렇게 팽나무를 향해 돌팔매질을 할 때면, 다른 분원리 아이들도 아무 생각도 없이 바우를 따라 돌을 던지는 것이었는데, 실팍한 돌이 팽나무에 맞아 딱 소리를 낼 때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와아 와아 소릴 지르곤 했다. 바우는 그런 아이들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지기도 했으며 괜히 우쭐대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어느덧 해가 머리 위에서 고무줄처럼 정정하게 햇살을 늘이고 있었다. 종각 옆, 김 진사의 송덕비 그늘이 한 뼘 정도나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김 진사네 하인들이 열흘이 멀다하고 쌀뜨물을 솜에 발라 닦아낸 번들번들한 화강암(花崗巖) 송덕비(頌德碑)에서 날카로운 햇살이 되쏘여, 바우의 어질어질한 머리 속을 찔러올 때마다, 뜨는 샘물을 너무 많이 마셔 듬뿌룩해진 뱃속이 울렁울렁하는 것이었다. 햇살이 쪼르르 미끄러지는, 번들번들 빛나는 김 진사의 송덕비와 함께, 종각의 큰북은 한결 더 무섭게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아이들은 김 진사네 하인들이 자라목처럼 길게 목을 빼고 왕방울 눈을 부릅떠 휘두르며 윗당산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송기 망태기를 걸머지고 메뚜기처럼 뛰어 달아났다.
그날 낮에, 바우는 송기떡을 배불리 잘 먹었다. 마침 어머니가 진사네 쌀 방아 찧는 것을 도와주고 한 바가지 얻어온 쌀 기울까지 넣어서 찐 송기떡은 곡기를 한 탓인지, 제법 쫄깃쫄깃한 맛이 입 안에 오래까지 남아 있었다.
바우 아버지도 도방에서 나와 허출한 김에 송기떡을 무쩍무쩍 베어 먹으며,
"고것 참 인절미 맛이로구나. 새척지근하게 송기 냄새가 나면서도 입맛이 쩝쩝한 게 먹을 만허다. 거 오늘은 당신이 쌀지울을 얻어온 덕택으로 아주 잘 먹었구랴."
하고, 앙바틈한 웃몸을 자꾸만 굽적거렸다.
"그려도, 진사댁이 고마와라우. 그 댁 아니믄 이렇게 맛있는 송기떡 꼴이나 보겠시오?"
"암, 그걸 말이라고 허나?"
분원리 어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걸핏하면 진사네 칭송이었다. 아이들이 진사네 하인들의 눈을 퍼해 송기를 벗겨다가 떡을 해먹는 것이었지만, 그게 모두 진사네의 덕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그런 생각들이었다.
삼십여 명의 도공들이 죽으나 사나 도방에서 자기를 구워내면, 김 진사가 하인들을 시켜 사옹원(司饔院)에 납품을 하거나, 큰 고을의 저자에 내다 팔아서 두둑이 돈을 벌어들이는 것도 모르고, 그저 송기떡 진잎죽이나마 진사댁 은혜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우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그도 어른들처럼 무턱대고 진사댁을 고맙게만 생각해 왔었는데, 차차 나이가 들고 나이와 함께 철이 차면서부터는 그런 어른들이 더없이 못나고 바보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바우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부터 종각의 북을 노려보는 눈씨가 차차 날카로워져 갔다.
바우는 종각 안의 큰북 꿈도 자주 꾸곤 했었다. 꿈속에서 바우는, 두두두등, 하고 온통 할미봉을 뒤흔드는 것처럼 우람스럽고 연속적인 그 북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는데, 그 꿈속에서도 임금님이 북소리를 듣고 분원리까지 왔었다. 임금님은 하얗게 은빛으로 번쩍이는 큰 백마를 타고 분원리까지 날아와서는, 김 진사를 꿇어앉히고 불호령을 내렸고, 청개구리처럼 땅바닥에 찰싹 엎딘 김 진사는 그저 살려달라고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빌었다. 그런 꿈을 꾼 날 바우는 기분이 좋아서 괜히 웃당산 아랫당산을 쏘다니며 킬킬 팔팔 웃기도 하고 빽빽 소릴 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신나는 꿈은 어쩌다가, 일년에 두세 번 꾸기 마련이었다.
저녁나절에 바우는 아버지를 따라 도방엘 갔다. 널찍한 도방에서는 스무남은 명의 도공들이 수비(水飛)질을 하거나 물레를 돌려 자기의 모형을 써 올리는 등 경건할이만큼 일들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가난에 쪼들리고 김 진사네에 당할 일 못 당할 일 다 당하고, 못 먹어서 얼굴이 누르퉁퉁 부어 있는 것이었지만, 쨍쨍거리지도 않고 그저 아무런 생각도 업이 마치 신들린 사람들처럼 자기를 만드는 데만 정신을 붓고 있었다,
반항도 활만도 욕심도 업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흰 마음이 그대로 백자(白磁)를 빚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런 욕심도 생각도 얼이, 흰 바탕에 흰 마음 담뿍 부어서 구워 만든 백자는 그대로 도공들의 꿈인지도 몰랐다. 처음, 도공이 되었을 때는 누구나 한 번씩은 말 많은 쟁퉁이가 되기 마련이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말수도 줄어들고 욕심도 앙금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아, 도꼭지가 되면 마치 속이 텅 빈 바보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바우는, 도방에서 백토(白土)를 물에 넣고 휘저어 세분(世紛) 조분으로 나누는 수비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도토를 수비통에 넣고 구정물을 일으켜 체로 받친 다음 불순물과 모래를 걸러내고, 다시 물을 뺀 후 짓이겨 반죽을 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바우가 반죽을 해놓으면 아버지가 물레를 발로 툭툭 차서 돌리며 두 손으로 자기 모양을 써올리는 것이었는데, 바우는 이따금 아버지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에 눈도 끔쩍거리지 않고 성형대 위에 혼을 붙여 엄지손가락으로 먼저 중심을 잡고 네 손가락을 모두 구멍에 넣어 모형을 써올리는, 그 경건하면서도 신이 들린 듯한 모습을 정신을 잃고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었다. 물레를 돌리며 두 손으로 백토를 써올릴 때의 아버지의 얼굴은 어쩌면 부처님처럼 깨끗해 보였다.
아버지는 흙을 다 써올리고 나서 자기 주둥아리의 변을 짓고, 다시 시욱을 마무리해서 명주실로 밑 흙을 잘라낼 때까지 기침 한번 하지 않았다.
그날 바우는, 아버지가 시욱을 끝내고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 건조시킬 때까지 아버지를 돕기 위해 주욱 도방에 있었다.
도방을 나와 게딱지 같은 흙담집으로 돌아오면서 바우 아버지는
" "내일은 초벌구이를 해야 할 것인디, 자기는 초벌구이를 잘해야 헌다. 너도 후담에 네 애비같이 도꼭지가 되면 그걸 알게 될 끼라.
하며, 까칠까칠한 손으로 부수한 바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날 밤, 바우 아버지는 저녁에 진잎죽을 두 사발이나 마시고 도방으로 갔다. 바우 아버지뿐만 아니라 분원리 도공들은 모두 도방으로 잠을 자러 가야만 했다. 내일부터 초벌구이를 하기 때문에 재벌구이가 끝날 때까지는 처가 있는 도공들은 모두 도방에 가서 잠을 자야 했다. 초벌구이 하루 전날 밤부터 재벌구이가 끝날 때까지, 도공들이 마누라 곁을 떠나 도방에서 자야 한다는 것은 김 진사자의 명령으로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만일 자기가 금이 가거나, 아니면 시커멓게 끄을리거나, 개떡이 무너지고 유약이 흘러버리는 등 못쓰게 될 때는 도공들이 부정을 탄 때문이라고, 집에서 잠을 잔 도공들에게 그 잘못을 모두 똘똘 말아 덮어씌우기 마련이었다. 또, 김 진사는 한밤중 도공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도공들이 집에서 자나 안 자나 일일이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도공들이 도방으로 잠을 자러 가는 날 밤에는 도공들의 마누라들은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밤 마을 가는 것도 그만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다.
그날 밤 바우 어머니도 새물 냄새가 풀풀 나는 하얀 무명옷을 새뜻하게 갈아입고 일찍 이부자리를 폈다.
바우는 언제나 아버지가 도방에서 잠을 잘 때마다, 어머니가 새 옷을 갈아입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삼사 년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단둘이서만 자는 게 그렇게도 즐겁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바우가 기침만 좀 해도, 잠을 자지 않고 뭘 하는 거냐고, 소리를 팩팩 지르곤 했다.
아버지가 도방에서 남을 자는 밤에는 바우는 걸핏하면 발리 잠을 자지 않는다고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바우는 그래서 아버지가 없는 밤이 싫었다.
오늘밤도 어머니는 아직 초저녁인데도 일찍 이부자리를 펴주며 빨리 잠을 자라고 재촉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아버지가 없는 밤의 어머니는 팩팩거리며 신경질을 잘 부렸다.
바우는 쉽게 잠을 이를 수다 없었다.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을까봐 눈을 딱 감고 자는 척하다가, 저녁에 진잎죽을 너무 많이 둘러마신 때문인지 배가 뽀글거리고 똥끝이 타 견딜 수가 없어서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뒷간엘 갔다.
아직 초저녁인데도 분원리의 밤은 시퍼렇게 조용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이맘때면 아랫당산에서 아이들이 떠들며 노는 소리가 왁자했을 텐데, 어쩐지 으스스하게 조용하기만 했다.
하늘에는 별이 촘촘히 박혀 낮에 김 진사의 송덕비에서 되쏘여 온 그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햇살처럼 어둠을 쿡쿡 쑤시는 것 같았다. 바우는 지붕도 없이 거적으로 건등건등 둘러 만든 뒷간에 쭈그려 앉아서 회색빛 하늘을 쳐다보다 말고, 반짝거리는 별빛 때문에 몇 번인가 눈을 껌벅거리고 나서는 고의춤을 긁어 올리며 거적을 밀고 나오다가 누구인가 옆집 동춘이네 집으로 가는 것을 얼핏 보았다. 바우는 고의춤을 올려 허리끈을 맨 다음, 오른손 주먹으로 눈두덩을 쓰윽 문지르고 나서 희끔한 뒷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았는데, 밤이었지만 달빛에 마치 고기비늘처럼 번쩍이는 비단 마고자에 탕건들 쓰고 뒷짐을 진 손에 긴 장죽이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틀림없는 김 진사였다. 키가 작아 깡똥하게 생긴 김 진사는 엉금엉금 동춘이네 집 마당으로 들어서더니, 에헴, 큼큼, 하고 헛기침을 한두 번 내뱉은 다음 무턱대고 방문을 열고 쑥 들어가 버렸다. 바우는 순간, 김 진사가 도공들이 집에 있나 없나 조사나왔다 싶어 쪼르르 방으로 기어 들어와
"어무니 어무니, 진사 어른이 왔시요. 동춘이 집으로 갔시요."
하고 어머니를 흔들어댔다. 어머니는 이윽고 아무 말도 없이 일어나 앉더니 새 옷을 벗어 차곡차곡 개어 장롱에 넣고 다시 헌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바우를 와락 끌어다가 그 넓고 뜨거운 품에 넣고는 투덕투덕 엉덩일 토닥거리며
"어쿠 인전 우리 바우가 총각이 다 되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각시 샘에는 어느새 망태기를 멘 너댓 명의 아이들이 나와 있었다. 바우는 각시 샘에 엎디어 벌컥벌컥, 창자 속이 싸아해 을 때까지 샘물을 들이마시고 나서, 언제나처럼 종각 쪽을 쏘아봤다. 종각 옆, 종각의 높이만큼 한 향나무가 한결 더 푸르러 보였다, 향나무는 가벼운 바람에도 너울너을 춤을 추듯 흔들거렸는데, 오랫동안 너울거리는 향나무 가지들을 바라본 바우는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 것 같아서 눈을 떼어버렸다. 바우는, 언제고 종각만 바라보면 어쩔 일인지 속이 한층 더 헛헛해지고 머리가 횡뎅그렁하게 터엉 비어오는 것만 같았다.
도방 쪽에서는 초벌구이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라 안개처럼 자욱하게 분원리를 둘러싼 것이었는데, 그것은 마치 산수화의 운염처럼 그렇게 짙고 한가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날 바우네들은 진사댁 하인들의 눈을 피해 아장골까지 갔다. 아장골 너덜겅은 분원리 아이들의 공동묘지와 같았다, 그곳은 작년에 죽은 바우의 여동생 꽃분이를 장사지낸 곳이기도 했다. 도담도담 잘 자라던 꽃분이가 죽었을 때, 바우 아버지는 시루처럼 밑에 구멍이 뚫린 커다란 백자 항아리 속에 꽃분이를 넣어 너덜겅에 묻었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꽃분이는 어쩌면 배가 고파 죽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해는 올보다 더 무서운 흉년이 들었었다. 배가 고픈 네 살 난 꽃분이는 곧잘 흙을 파먹곤 했으며 그때문인지 배가 퉁퉁 부어오르고 시난고난 앓다가는 숨을 거두고 말았었다.
바우는 너덜겅이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솔수펑에서 송기를 벗기면서도 꽃분이가 백자 항아리 속에 들어 있을 아장골을 자꾸 내려다보았다. 그 귀여운 꽃분이는 죽기 바로 전날까지도 도리깨침을 흘리며 밀가루 부침개가 그렇게 먹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해 추석날 밀가루 부침개를 만들어 먹으면서 죽은 꽃분이 생각으로 온 식구들은 마치 목에 부젓가락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목들이 뜨거워 눈물이 핑 돌았었다.
바우 어머니는 끝내 밀가루 부침개를 먹지 못하고 부엌으로 들어가서는 얼마 동안을 훌쩍거렸으며, 어머니의 훌쩍거리는 소리에 바우도 밀가루 부침개를 한 입 넣은 채 엉엉 울어버렸었다.
바우는, 마디가 헌칠한 소나무 가지에서 고깃비늘 같은 껍질을 뜯어내고 벌그스름하게 물이 오른 송기를 뭉텅뭉텅 벗기면서 자꾸만 꽃분이 생각으로 목이 칵 메어왔다. 그때, 꽃분이를 커다란 백자 항아리에 넣어 아장골 너덜겅에 묻고 온 바우 아버지는 다음날도 도방엘 나가지 않고 방에 틀어 박혀 변신 장죽만 뻐끔뻐끔 빨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그래도 갸는 애비가 맹근 백자 항아리에 들어 있으니, 애비 품에 있는 거나 매한가질 거여!"
하고 흔잣말처럼 중얼거리곤 했었다.
바우는 꽃분이가 죽은 뒤부터 부쩍 분원리가 더 싫어졌다, 그래 언젠가는 아버지에게, 어디 깊숙한 산 속에 들어가서 화전(火田)이나 일구며 살자고 했었다. 그때 바우 아버지는
"도공의 자식놈이 도공이 될 생각은 안허고 화전민이 되어? 너는 애비 뒤를 이어 이름난 도꼭지가 되어야 혀 "
하고는 발끈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우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도공이 되기보다는, 커서 더 나이가 들면 깊숙한 산 속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궈 콩이며, 옥수수며, 밀이며 밭곡식을 갈아 배불리 먹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바우의 화전민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은, 마치 언제고 신나게 북을 쳐봐야겠다고 하는 생각과 함께 단단하게 굳어져 갔다. 진사댁 하인들에게 꿈쩍 못하고 붙잡혀 살고 싶지가 않았다.
바우네들은 소나기라도 한바탕 퍼부을 듯 할미봉 쪽으로 먹구름이 꾸역꾸역 쏠리는 것을 보고 일찍 산에서 내려왔다. 송기를 벗겨 산을 내려오면서도, 그들은 김 진사네 하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종각 위 둥구나무 쪽으로 슬금슬금 기어 내려왔다. 그들이 마악 둥구나무 밑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진사댁 하인 땅쇠가 실팍한 작대기를 휘두르며 불쑥 나타났다. 혼겁에 질린 아이들은 망태기조차 팽개치고 후드득 뛰어 달아났다. 바우는 송기 망태기를 끝까지 벗어던지지 않고 혼비백산해서 뛰어 달아나다가 힐끗 뒤를 돌아다보았더니 유별나게 바우만을 바짝 쫓아오던 땅쇠는 작대기를 휘두르며 꽥꽥 소리를 내질렀다. 자칫하다가는 땅쇠가 휘두르는 작대기에 대갈빼기가 박살이 날 것만 같았으나 바우는 끝까지 송기 망태기를 멘 채, 죽어라고 뛰다가, 곧 붙잡히게 될 것 같아 헐근거리며 냅다 종각 석단 위로 뛰어올라가고 말았다, 워낙 다급했기 때문이었다. 바우를 쫓아오던 땅쇠는 바우가 종각 석단 위로 뛰어오르자, 왕방울 눈을 부라리며 작대기를 휘젓고만 있다가는 소리를 빽 지르면서 돌진해 올라오는 것이었다. 바우는 엉겁결에 망태기에서 송기를 벗기는 낫을 빼들고 땅쇠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땅쇠는 종각 석단 위를 올라오다 말고 약간 섬뜩해하는 얼굴로 선 채
"너 이 자식 작살을 내기 전에 못 내려와? 니깐 놈이 게서 얼마나 버틸 거 같아서 그래 임마! 너 죽을라고 환장했구나 ! "
하고 소리를 쳤다. 바우는 그래도 망태기를 멘 채 떡 버티고 서서는 낫을 치켜올리고 땅쇠를 쏘아보고 있었다.
"너 임마, 게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올라가? 뼉다귀라도 추릴라믄 빨랑 내려와 임마!"
땅쇠는 마치 찌러기처럼 씩씩거리며 왕방울 눈을 부릅뜨고는 욕지거릴 퍼부어댔다. 그러나 땅쇠의 소리는 바우에게 들리지 않았다. 바우는 마구리가 땡땡한 큰북과, 눈썹 차양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북채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 땅쇠가 석단 위로 뛰어오르며 긴 작대기로 바우의 아랫배를 푹 찌르는 바람에 바우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적거리더니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바우는 정신을 잃었다. 육중한 바윗덩어리가 온몸을 쿵쿵 으깨는 것 같은 헤실바실해진 의식으로 가느다랗게 비명을 질렀다. 아랫배를 작대기에 찔리고 쓰러져서도 얼마를 더 얻어맞았는지, 바우는 한식경 후에야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했으나 아랫배가 땡땡하게 켕겨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바우 아버지는 그날 밤 바우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끙끙 앓고 있는 데도 도방으로 가면서
"저깐눔이 거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올라가? 맞아 뒈져도 싸지!"
하고 툭 내지르는 것이었다.
바우 아버지는 바우가 차차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식에 대한 걱정이 커갔다. 걸핏하면 화전민이 되겠다느니, 정말로 종각의 북을 치면 죽게 되냐느니, 하고 섬쩍지근한 말들만 하기 때문이었다. 바우 아버지는 또, 오늘 바우가 저지른 일 때문에 아무래도 진사 어른에게 호되게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어두운 마음으로 도방엘 들어갔다.
새벽부터 초저녁까지 초벌구이 불을 지폈다. 처음에는 어린 불로 천천히 가마를 달게 해야만 했다. 갑자기 어미 불을 지피면 자기가 금이 가버리기 십상이다. 재벌구이 불은 꼬박 하루를 어미 불로 때야 했다. 등요(登窯)를 따라 첫째 가마에서 둘째 가마로 차차 불을 때 올라가는 것이었다. 도수리 구멍에 나무토막을 집어넣어 가며 꼬박 하루 동안 재벌구이 때기가 끝나면, 불구멍을 막고, 하루 동안 식히고, 다시 불구멍을 열어보고 또 식히고, 가마 문을 트고 나서 식히고, 이렇게 한 다음 불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바우 아버지는 가마의 불창을 막아가며 불구멍에 나무토막을 집어넣으면서도
"맞아 뒈져도 싸지! 거기가 어디라고 지깐눔이 함부로 올라가! "
하고 중얼거렸다.
다른 도공들이
"바우가 땅쇠한테 죽게 맞았다며? 그래 산에서 생키(송기) 좀 벗겼다고 고렇게 죽을 만큼 두들겨 패다니 원! "
하고 땅쇠를 원망하는 것이었지만, 바우 아버지는 이런 도공들을 향해
"맞아 뒈져도 싸지!"
할 뿐이었다.
"아니 이 사람아, 생키를 좀 벗겼다고 그렇게 죽도록 팬 것이 잘한 일여? 이 흉년 보릿고개에 생키도 못 벗겨 묵음 우리는 굶어 죽으란 말여?"
몇몇의 도공들이 바우 아버지를 향해 이렇게 내지르는 것이었는데, 도공들이 김 진사네 하인들의 행패에 대해 불만을 토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깐눔이 감히 게가 어디라고 종각엘 올라가?"
"맞아 죽게 뒬 것 같응께 피해서 올라간 것이 아니겠어?"
도공들은 바우를 죽도록 팬 땅쇠보다도 한사코 자기 아들 쪽을 나무라는 바우 아버지의 태도가 불만스러운 듯싶었다.
그날 밤도 바우 아버지는 도방으로 잠을 자러 갔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바우 어머니는 자리에 들기 전에, 아픔을 참느라고 끙끙거리는 바우의 이마를 짚어보며
"에그 쯧쯧------그저 우리같이 천하고 불쌍한 인생들은 일찌감치 죽어야재, 살아서 무슨 복을 누린다고,,,,,,에그 쯧쯧,,,,,,이러고 살아서 뭣허겄냐!"
하고 혀를 차며 바우 얼굴에 볼을 비벼댔다. 그래도 바우 어머니는 바우 아버지와는 다른 데가 있어, 때로는 슬픔과 고통을 토해내곤 하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이러고 더 살아서 뭣허겄냐, 우리같이 짜잔한 인생은 죽어야재."
하고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바우 어머니는 턱 밑에 손바닥을 펴 훅 바람을 내불어 관솔불을 끄고 나서 자리에 들었다
도공들이 가차에 불을 넣기 위해 모두 도방으로 가버리고, 도방의 아내들이 목욕재계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그런 날 밤의 분원리의 밤은, 고즈넉하게 텅 빈 백자 항아리에 어둠이 가득 차 오르듯 음울했다. 바람 소리만이 씽씽, 마치 아장골 너덜겅에서 꽃분이의 울음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위, 아랫당산의 팽나무 잎들을 어지럽게 때리는 것이었는데, 온 마을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음울한 밤이면, 분원리 도공들은 도방에서 불구멍에 나무토막을 획획 집어던지면서도, 울적한 마음 때문인지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 진다 슬퍼 마라, 당명황의 양귀비라도, 죽어지면 허사로다.- 하는 상여소리를 흥얼거리는 것이었다. 바우도 더러 도방에서 어른 도공들이 가락만 흥얼거리는 상여소리를 들었는데, 그때마다 어쩐지 마음이 울적해졌었다.
그날 밤, 바우가 끙끙거리며 앓다가 얼쑹얼쑹 잠이 들려는데, 밖에서 름큼 하는 헛기침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어머니가 슬그머니 방문을 열어주자, 망건을 쓰고 비단 마고자를 입은 김진사가 방안으로 엉거주춤 기어 들어왔다. 처음에 바우는 김 진사 어른이 아버지가 도방에 갔나 안 갔나 조사 나온 것으로 알았다. 김 진사는 방에 기어 들어오자마자 어머니의 잠자리 속으로 파고들어서는 대뜸 어머니의 저고리 고름을 풀어헤치며 씨근벌떡거리는 것이었다. 얼쑹얼쑹 잠이 들려던 바우는 배창자가 땡기고 아랫도리가 쩌릿쩌릿 아파 오는 통증도 잊고 눈을 딱 감은 채 김 진사의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어머니의 끙끙거리는 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바우의 두 눈자위에는 아픔 때문인지 서러움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으며, 자꾸만 귀를 헤집고 들려오는 김 진사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마치 둥둥둥 하고 종각의 북소리처럼, 온통 분원리를 떠밀어갈 듯 요란해지는 것이었다,
김 진사는 얼마 후에 방에서 나갔으며 어머니는 다시 차근차근히 새 옷을 벗어 장롱에 넣은 다음 바우의 이마를 짚어보며
"불쌍한 것 ! 우리가 뭘 바라고 살라고 이 지랄인지."
하고 몇 번인가 혀를 차며 그대로 자리에 누웠다.
바우는 두 뺨이 질퍽하도록 소리 없이 울었다. 배가 땡기고 아랫도리가 쩌릿거리는 통증도 잊은 채 자꾸만 소리 없이 울었다. 설움인지 아픔인지 모를, 무엇인가 가슴을 뚫고 목구멍으로 틀고 올라올 때마다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 바우는 복받치는 그것을 참으려고 이를 응등물었다.
다음날 아침, 바우는 신열이 나면서 정신이 이몽가몽 까무라칠 듯 혼미해져 더럭더럭 헛소리까지 했다. 바우가 헛소리까지 하자, 그의 어머니는 그 까슬까슬한 손으로 연신 바우의 이마를 짚으며
"악아, 쌀밥을 했다. 정신 차리고 쌀밥 좀 묵어라 와!"
하고 울먹이는 것이었다. 얼마 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바우의 코에도 고슬고슬하고 짠득거리는 하얀 쌀밥의 냄새가 찔러 왔으나, 그는 눈을 딱 감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악아, 바우야, 언능 정신 차리고 쌀밥 좀 묵으랑께 ! 진사댁에서 쌀 가져와서 쌀밥 했다. 자 어서 일어나라 와!"
밥상 앞에는 바우 아버지도 앉아 있었는데, 그는 바우 쪽을 보지도 않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그 습량한 쌀밥 냄새를 맡느라고 연신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것 같았다. 바우는 쌀밥을 앞에 놓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아버지가 더 없이 애잔해 보였다. 아버지의 그 모습은, 도방에서 자기를 지어 올릴 때의 그 신이 들린 듯한, 조용하고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한, 그런 얼굴과는 아주 달랐다.
바우는 아버지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돌아누웠다. 고개를 돌리면서 얼핏 어머니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 순간 갑자기 어젯밤 김 진사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생각켰다. 그와 동시에 바우의 이마를 짚고 있는 어머니의 손이 그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어무니!"
바우는 눈을 감은 채 어머니를 불렀다.
"오냐 악아, 엄니 여깄다."
"이마에 손 좀 치우기요 ! "
바우는 이렇게 말하면서 눈을 감은 눈두덩에 힘을 꼭 주었다
"오냐 왜 속이 답답허냐? 자, 쌀밥 좀 묵으라 잉!"
"아부지 어무니나 잡수시요. 나는 안 묵을라요!"
"글지 말고, 한술이라도 떠라!"
"아따, 안 묵은당께!"
바우는 신경질적으로 툭 쏘았다. 그의 두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맺혀 흘렀다. 바우는 지금, 찰깍정이 김 진사네가 왜 자기네 집에 쌀을 보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옆집 동춘이가 송기를 벗기러 가지 않던 어제 아침에도 바우는 코를 후벼 파는 듯한 고슬고슬한 쌀밥 냄새를 맡았었다,
"자, 바우야 한술만 떠라."
다시 어머니가 손을 이마 위로 가져다 짚으며 밥을 먹으라고 재촉을 하자, 바우는 툭툭 성깔을 부리며
"어무니 참, 그 손좀 치우랑께!"
바우 어머니는, 자기의 손이 닿기만 하면 풀썩풀썩 놀라곤 하는 바우가 이상하게 생각되어졌다. 이 애가 간밤 김 진사가 다녀간 일을 소상히 알고 있나 싶었다. 바우 어머니는 다시 바우의 이마에 손을 짚으려다 말고
"땅쇠 그놈! 시상에 우리 바우를 요렇게나 맨들어놓고 이 쥐길놈!"
하며 분을 참지 못해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는데, 어머니의 그 이 가는 소리가 바우의 뇌리 가장 깊숙한 곳에까지 찌르륵하고 울려와 소스라쳐 눈을 떴다.
"시상에 우리 바우를 요렇게 맨들어 놓다니 ! 이 쥐길놈 ! "
어머니는 한숨까지 섞어가며 땅쇠에게 욕설을 퍼붓다 말고, 아버지를 향해
"그래 당신은 땅쇠놈을 가만히 둘라요? 그놈을 그냥!"
하고 두 주먹을 쥔 채 부르르 떨었다.
"아니 그놈의 쥐둥아릴! 살아온 것만도 감지덕지허지 ! 글씨 거기가 어디라고 저깐눔이 올라가? 맞아 죽어도 싸지 싸, 지금꺼정 을라갔다가 살아서 내려온 사람 하나도 없당께!"
바우 아버지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찰밥 그릇을 앞에 놓고 연신 콧구멍을 벌름거리다가 말고 발끈 볼멘소리를 내질렀다. 지금까지 바우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것을 아직 한 번도 못 보았기 때문에 앓아 누워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 놀랐다. 아버지는 그저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연죽만 버끔버끔 빨 뿐이었다.
"아니, 자석 하나 있는 거, 안 죽어서 속 아프요? 아이고 원. 저런 애비를 둔 바우가 불쌍허다. 네 말마따나 바우 너는 후담에 커서 네 애비처럼 도공이 되지 말고 화전이나 일구며 살아라 ! 아이고 속이야!"
"이 여편네가?"
아버지는 다시 상앗대질까지 하며 큰소리를 팩팩 지르더니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으며, 그런 아버지를 향해, 어머니는 또
"아이고 속이야 ! 저런 지지리도 못난 사람!"
하다가는 훌쩍훌쩍 울었다. 어머니가 눈물바람을 하자 바우도 자꾸만 목구멍이 칵 메어오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바우는 다음날도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헛소리를 하며 앓아 누워 있었다. 가까스로 혼몽해진 정신을 수습하여 조용히 눈을 감고 있다가도 어머니만 가까이 와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머니를 향해 손을 허위적거리며 저리 가라고 했다. 바우 어머니는 그때마다, 속이 답답하냐고 물었으나 바우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방 웃목에는 어제 아침에 소도록하게 담아놓은 쌀밥이 그대로 있었다. 바우 아버지도 어제 아침 큰소릴 내지르고 나가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도방에 큰일이 생겨서였다. 모를 일이었다. 바우 아버지가, 가다가 다 식은 다음에 가마 문을 트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희부옇게 눈에 들어와야 할 백자 항아리들이 온통 새까맣게 타버린 것이었다. 놀란 바우 아버지가 가마 안에서 소릴 치자 도공들이 씨근발딱거리며 뛰어들어와, 새까맣게 타버린 백자 항아리를 보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비슬비슬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날 밤에 김 진사는 땅쇠를 앞세우고 도방에 들이닥쳐서는, 죽일 놈 살릴 놈하고 야단이었다.
"어떤 놈이 부정한 짓을 한 게로구나! 이 쥐새끼 같은 놈들, 그 새를 못 참아 부정한 짓을 해?"
김 진사는 도끼눈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성깔을 돋구었다.
겁에 질린 도공들 몇몇이 가마 안으로 들어가 새까맣게 탄 자기를 들고 나왔으나, 김 진사는 땅쇠의 손에서 작대기를 빼앗아 휘두르며 모조리 부스러뜨리고 나서, 닥치는 대로 도공들을 후려패는 바람에, 허리며 볼기며 맞은 도공들은 에쿠, 에쿠, 하면서 그 자리에 나가둥그러졌다. 나중에 땅쇠가 또 한바탕 작대기로 도리깨질을 하는 바람에 못 먹어 부수수한 얼굴에 비쩍 마른 도공들은 아픔을 참지 못해 땅바닥에서 뒹굴었는데, 도공들이 비명을 지르며 뒹굴 때마다 자기의 깨어진 파편들이 온몸에 부딪쳐 덕그럭데그럭 소리를 내어, 도공들의 마음과 육신을 더욱 아프게 했다.
김 진사는 다음 파수 다시 탈없이 구워낼 때까지 한 사람도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불호령을 내리고 돌아갔다. 도공들은 꼼짝 업이 한 파수 더 구워낼 때까지 마누라 곁에 갈 수 없게 되었으며, 그날 밤부터 새까맣게 타서 못쓰게 된 가마 속을 치우고, 밤을 새워 도토를 수비질한 다음 물레를 돌리며 흙을 써올려야 했다.
도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줄도 모르는 바우 어머니는 남편이 이틀째 집에 돌아오지 앓자, 남편에게 너무 했다 싶어 은근히 마음이 울적해졌다.
바우 어머니는 아첨 일찍 노루재 너머 고을 성안까지 바우 약을 지으러 간다고 집을 나갔다. 바우 어머니는 약을 지으러 간다고 집을 나가면서도 바우 먹으라고 하얄 쌀밥을 해서 바우 머리맡에 놓아두었다.
바우는 어머니가 약을 지으러 나간 뒤, 얼마동안 또 헛소리를 하며 끙끙 앓다가는 잠이 들었다. 밖이 소란해서야 눈을 떴는데, 늘 송기를 벗기러 다녔던 마을 아이들 너댓 명이 병문안을 왔다. 그들은 바우가 앓아 누워 있는 방에 들어와서 앓고 있는 바우와, 바우 머리맡의 하얀 쌀밥을 번갈아 훔쳐보며 도리깨침을 흘리는 것이었다.
"야, 바우야 느그집 쌀밥 했구나아!"
한 놈이 이렇게 말하자, 바우는 부끄러운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듯싶어
"느그들 묵어라!"
하고는 얼굴을 들려 누워버렸다.
"묵어도 괜찮남?"
여럿의 입에서 한꺼번에 반문을 해오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그렇게 바우를 향해 반문을 하면서도 저마다 침을 꼴깍 하고 삼켰다.
"그래 느그들 묵어라!"
바우의 말에, 아이들은 바우의 머리맡으로 우르르 달려들었다. 서로 어깨를 밀치는 바람에 넘어지는 놈까지 있었다. 그들은 손으로 순식간에 쌀밥을 입에 퍼 넣고 입맛을 쩍쩍 다시며
"바우야 참 잘 묵었다."
하고 똑같이 입을 모았다.
"우리도 지난 달에는 쌀밥을 묵었는디."
"우리도,,,,,,. "
기실은 분원리 아이들은 아버지들이 도방에 가서 가마니에 불을 땔 때는 가끔 느닷없이 쌀밥을 먹곤 했지만, 모두들 쉬쉬하고 입밖에 내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바우 집에서 어둠이 좌악 깔릴 때까지 저희들끼리 재잘거리며 놀았다. 바우는 동네 아이들과 같이 있으니까 훨씬 마음도 가볍고 기분이 좋았다.
밖이 어둑어둑해지자 바우는 방안에 누워 있으니 답답해 미치겠다면서 아이들에게 각시 샘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했다. 바우 집에서 쌀밥까지 얻어먹은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여럿이 바우의 허리와 어깨를 붙들고 웃당산 옆 각시 샘까지 데려다 주었다. 각시 샘까지 아이들 부축을 받으면서 가는 동안 바우는 온통 창자가 뒤틀리고 아랫도리가 쩌릿쩌릿하여 몇 번이고 풀썩 주저앉고 싶었으나 꾹 참아냈다. 각시 샘에 이른 바우는 땀에 후줄그레 젖어 있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 때마다 온몸에 살갗이 선뜩거렸다. 그는 아이들의 부축을 받아 후들후들 떨리는 두 팔을 짚고 엎디어 벌컥벌컥 샘물을 들이마셨다. 배가 불룩하게 샘물을 마시자 조금은 기운이 살아난 듯싶었다. 각시샘의 찬 샘물이 창자 속을 싸아하게 훑어내리자 혼몽한 정 신이 마치 안개가 걷히는 할미봉 꼴짜기의 아침처럼 그렇게 조금씩 희번하게 트여오는 것만 같았다,
어느덧 어둠이 분원리를 완연히 삼켜버려 대낮엔 그렇게 눈부시게 번쩍거리던 김 진사 송덕비도, 종각의 뎅그러한 큰북도 모두 희끄무레한 나무그늘처럼 하나같이 볼품없게 보였다.
바우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크게 떠서 어둠 속을 여기저기 쿡쿡 쑤시듯 쏘아보았다. 아이들도 뱃속이 헛헛했던지 샘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나서, 꾀죄죄하게 때가 묻고 너덜너덜해진 소맷자락으로 입언저리를 쓱 문질렀다.
분원리 아이들에게는 이 각시 샘만큼 고마운 것이 없었다. 그들은 배가 고플 때는 각시 샘으로 달려와서 배가 불룩하도록 샘물을 퍼마시곤 했으며, 언제나 속이 헛헛했을 때에 생기는 현기증을 이겨내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분원리 각시 샘은 이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혼몽해진 정신을 되찾게 해주는 생명의 샘이었다. 샘물을 마셔 헛배가 불룩해진 그 힘으로 송기도 벗기고 노래도 부르고 때로는 어울려 씨름을 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분원리 아이들은 언제나 각시 샘을 깨끗하게 가꾸고, 샘 주변에는 향나무, 동백나무, 개나리들을 심어 사철 상큼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바우는 다시 아이들의 부축을 받으며 종각 쪽으로 샀다. 아이들이 한사코 집에 돌아가자는 것을 우겨 종각까지 온 것이다. 한동안 바우는 돌계단에 기대서서는 다시 까무라칠 것만 같이 혼몽해지는 정신을 가누기 위해, 이를 물고 눈을 부릅떴다. 바우는 비트적거리며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돌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이것을 본 아이들이 저마다
"바우야 미쳤냐?"
"또 땅쇠가 오면 누짤라고 그러냐!"
"빨랑 내려와 바우야아!"
그러나 바우는 기다시피 하여 종각 위에 올라가 있었다. 마구리가 땡땡 한 큰북처럼 배창자가 뒤틀리며 켕겨오고 아랫도리가 쩌릿거리며 스르르 눈이 감기는 것이었지만 바우는 이를 물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어둠 속으로 종각 아래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바우야 내려와!"
아이들이 발을 옹동 구르며 내려오라고 했다
"워매 워매,,,,,,. "
아이들은 휘둥그렇게 동공을 굴리며 자꾸만 뒷걸음질을 치는 것이었다.
바우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큰북에 상반신을 기댔는데, 큰북이 출렁하고 흔들거렸다. 바우는 흔들거리는 북을 보듬고 함께 흔들거리다가 눈썹 차양 끝에 매달아 놓은 북 방망이를 손에 쥐었다.
"바우야 바우야!"
"땅쇠가 온다아!"
종각 아래 어둠 속에서 아이들이 바우를 불렀으나 바우는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육중한 바윗덩어리 같은 것이 우지끈 머리에 부딪치면서, 두 눈에 마른 번갯불이 번쩍하는 순간, 헉하고 숨이 막혀 왔기 때문이었다.
바우는 풀썩 바닥에 거꾸러져 하반신을 파들파들떨면서도 북채를 쥔 오른손을 조금씩 깐닥거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깜박거리는 의식을 가누려고 상반신을 뒤척이면서 북채를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으나, 머리와 어깨를 도려내는 듯한 섬뜩한 아픔은 옆구리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다리로 바른 속도로 옮겨지다가 이내 온몸이 무지근해지고 아픔도 슬픔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바우는 바닥에 거꾸러진 채 북소리를 들었다.
둥둥둥
북소리는 앞산 할미봉 너덜겅의 바윗장들을 긁어내리는 듯 그렇게 우람차게 부딪쳤다가는 다시 되울려 와, 잠든 분원리를 뒤흔드는 듯싶었다. 이윽고 그 북소리는 바우의 귓속 가득히 윙윙거리면서 고막이 터질 듯 울려왔다.
그리고 바우는 은빛 날개가 달린 백마를 타고 온 임금님과 함께 할미봉 위로 날아갔다. 바우는 임금님이 타고 날아온 은빛 날개가 마치 김 진사의 송덕비에서 쪼르르 미끌려 되쏘여 온 번뜩이는 햇살처럼 온통 눈이 부시는 백마와 함께 할미봉 구름 속으로 솟아오르면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임금님과 함께 백마를 타고 할미봉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분원리는 부옇게 출렁이는 회색빛 안개 속에 파묻힌 백자 항아리처럼 보였으며. 안개 속의 분원리는 투명한 백자 유약이 고루고루 잘 배합되어 있는 것처럼, 더욱 하얗게 보였다. 바우를 태운 백마는 할미봉 위로 솟아오르더니, 이내 커다랗게 입을 벌린 우유빛 백자 항아리 속으로 날아 들어가는 듯싶었다. 바우는 두 손을 허위적거렸으나, 날개가 달린 임금님의 백마는 마치 백자 운학(雲鶴)처럼 커다란 항아리 속으로 날아 들어가는 것이었다. 둥둥둥,,,,,, 바우는 마지막으로 북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바우가 비틀거리며 북을 치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난 땅쇠가 작대기로 바우의 머리를 내리친 것이었다. 그것을 본 아이들은 한달음에 도방으로 달려갔으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도공들은 물레질을 하다 말코 저마다 관솔불을 밝혀 들고 우우 종각으로 쫓아 달려갔다. 종각에 달려 온 도공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바우를 발견했다.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도공들은 우우 몰려들어 바우의 시체를 부둥켜 안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 제안한 것도 아닌데. 똑같이 바우의 시체를 메고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바우의 시체를 멘 도공들의 뒤에는 도공들의 아이들과 마누라, 늙은 부모들이 말없이 따랐다. 그들은 김 진사 집 가까이로 가고 있었다. 서른 명의 도공들이 바우를 메고 진사네 죽담을 끼고 돌았다.
이여라 상사뒤야
먼 산에 자진 안개 몰고
낙락장송은 너울너울한데
슬음 없이 눈물 난다
이여라 상사뒤야
바우 아버지는 도방 관솔불 아래 혼자 남아 발로 툭둑 차 물레를 돌려 도토를 써올리며 상여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는, 성형대 위에 한 무더기의 도토를 붙이고는, 바우의 여동생 꽃분이를 넣어 너덜겅에 묻었던 밑이 뚫린 항아리보다 훨씬 더 큰 백자 항아리를 써올리고 있었다
(슬음 엾이 눈물난다, 이여라 상사뒤야)
반쯤 열린 도방의 문 사이로 달빛과 함께 비걱거리며 기어 들어온 상여 소리가 커다란 백자 항아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갑자기 상여소리가 뚝 그쳤다. 그러고는 와아, 와아 분원리를 할미봉 위까지 떠밀어 버릴 것만 같은 함성이 계속되었다. 도토를 써올리고 있던 바우 아버지는 그 함성을 듣고 손을 멎은 채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어기적어기적 밖으로 나갔다.
와아, 와아 하는 함성은 활짝 문이 열린 도방과, 바우 아버지의 공허한 뇌리 속에 가득히 밀려오면서 갑자기 분원리 하늘이 벌겋게 타올랐다. 김 진사네 집이 타는 그 불빛은 분원리를 무겁게 둘러싼 어둠을 떠밀어내고 있었다.
불빛은 바우 아버지의 심장 속까지 밝고 뜨겁게 찔러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