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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 소설

81. 익는 산머루

by 자한형 2022.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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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 는 산 머 루-김주영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그녀와 동행해서 30리 이상이나 떨어진 읍내의 집을 다녀와야 했다. 30리 이상이나 되는 먼 길을 하루에 왕복해야 한다는 것 외에도 먼 산자락을 흔드는 포성을 들으면서 칠월의 뙤약볕을 견뎌 내야 한다는 것도 우리들에겐 고역이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읍내의 집을 다녀오지 못하고 꼭 그녀와 내가 동행이 되어 다녀와야 한다는 것에 짜증이 나고 싫었지만 그녀는 그런 까닭을 알고 있는 듯 언제나 고분고분하였다.

"순덕아."

읍내의 접으로 심부름을 보내야 할 때 그녀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언제나 깡마르게 갈라져 있었다.

"또 갔다 와야겠구나. 그리고 필구를 너무 걸리지 말고……

말하자면, 30리 길을 그녀 혼자 보낼 수는 없었으므로 어머니는 나를 동반자로 그녀에게 붙여 주곤 하였다.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까지 가려면 고개를 세 번이나 넘어야 하는 산길이 있었다. 그 산길을 왕복해야 할 때마다 그녀는 오르막길에선 나를 업었고, 내리막을 만나면 나를 앞세워 걸렸다. 내리막길을 만나서 길에다 나를 내려놓을 때마다 그녀는 내게 주의 주는 걸 잊지 않았다.

"똑바로 걷지 말고 옆탱이로 걸어라잉? 엎어지면 코깬다.”

그런 주의를 준 다음엔 꼭 내게 한 가지 약속을 주곤 하였다. 엎어지지 않고 계곡까지만 내려간다면 산머루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곡 하나를 건널 때마다 한두 번씩은 넘어지곤 하였으므로 나는 항상 그녀의 핀잔을 듣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내자식이 왜 그렇게 촐랑대노? 좀 음전해라. 그래야 장차 큰 놈이 된다."

어머니의 말버릇을 흉내내어 내게 잔소리를 퍼붓곤 했지만 잔소리가 심하면 심할수록 내게 안겨지는 산머루의 양은 많아지는 게 보통이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산머루를 많이 따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만 내게 많은 잔소리를 퍼붓곤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을 읍내로 보내는 유일한 근거가 되는 어머니의 심부름이란 대개 하잘것없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안방 시렁 위에 있는 찬합을 가지고 오라든지, 박달나무로 만든 다듬이 돌을 이고 오라든지, 홍두깨를 가져오라든지 하는, 쭈그러든 산골 피난 생활에선 거의가 필요 없는 것들이었고 그런 물건들이 꼭 필요하다면, 이 산골 이웃에서도 말 한 마디면 기어이 빌어올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느 날, 고갯마루에서 앉아 쉴 참에 먼 산을 한참 바라보고 앉았던 그녀가 내게 불쑥 말했던 것이다,

"너 엄니처럼 야속한 여자도 없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찬합이 꼭 필요해서 우리보고 가져오라는 줄 알제?"

그녀는 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종알거리던 것이다.

너 엄니 걱정은 그게 아녀, 집이 혹시 대포에나 폭격에 맞았을까봐, 그걸 보고 오라는 말씀이여. 찬합이다 홍두깨다 말하지만, 그건 말짱 헛말이고 이유는 딴 데 있는기라."

치마를 털고 일어서면서 그녀는 다시 말했다.

워째, 자기 혼자서만 사변당하나, 온 나라가 뒤죽박죽인데. 이놈자식, 집에 가서 내가 이런 말 하드락꼬 또 외어 바쳐래이? 그러문 나는 고만 죽었다."

물론 나는 그녀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그녀의 불평을 어머니에게 외어 바치지는 않았다. 그녀가 죽는 건 싫었다. 그것은 그녀가 따다 바치는 산머루의 양만큼이나 싫었다. 그녀가 죽으면 나는 산머루를 누구에게 따 달랠 수 있을까. 나는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누나가 죽는 건 싫어."

그녀는 언제나 내게 누나라고 부르라고 강요하곤 했었다.

"내가 죽는 거 싫지?"

그래."

"그러문 아가리 꼭 처닫고 있어래이."

아가리를 꼭 처닫고 있겠다고 약속을 해 준 날 같은 땐 산머루를 찾아 헤매는 그녀의 눈시울은 벌겋게 충혈되곤 했었고 그리고 가시에 찔린 그녀의 손등에서 피가 흐르곤 하였다.

어머니는 필요 이상으로 그녀에게 매질을 하곤 하였다. 심지어 다듬이 방망이 같은 것으로 엎어져 있는 그녀의 어깻죽지와 허리께를 개 패듯 하는 수가 많았다. 어머니의. 매질이 지악스럽게 계속되는 동안 그녀는 흡사 죽은 사람처럼 땅바닥에 엎디어 있었다. 어머니의 매질이 지쳐서 끝나고 들었던 방망이가 마당 한가운데 가서 댕가당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난 얼마 후까지도 그녀는 죽은 듯이 그대로 엎디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녀가 죽지 않았는가 싶어 가까이 가서 흐트러진 머리채에 묻혀 있는 그녀의 볼따구니를 가만히 찔러 보곤 하였다. 그때서야 그녀는 벌겋게 부푼 눈두덩이를 들어 나를 보곤 키들 웃어 버리곤 하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와 그녀는 행랑채에 붙어 있는 대문간 방을 같이 쓰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산골 동네에 타관 피난민들이 들이닥쳐서 그만한 방 한 칸을 얻어내는 데도 아버지는 상당한 고역을 치르었었다.

그녀가 맨 처음 호되게 어머니로부터 매를 맞은 건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어른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된 지 나흘째 되던 밤인가 보았다. 내 옆에서 자고 있던 그녀가 처음엔 코가 막힌 소리로 뭔가 킁킁대기 시작했다. 그 킁킁대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몸까지 비비틀던 그녀가 더 이상 참지를 못했던지 그냥 발악적으로 웃음소리를 토해 내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튀어 나가던 것이다.

"헛 고것 참, 저런 저런 망할 년 봤나."

서둘러 바지를 찾아 입으면서 아버지가 대강 그런 뜻으로 꿀 먹은 벙어리 소리로 씨부리자 바드득하고 어머니가 이를 갈았다.

"니 엄니가 날 보구 하는 소리가 가관이더라. 글쎄 날 보구 이년아 밤중에 잠 안 자고 무슨 지랄하느냐 이거여. 밤중에 잠 안 자고 지랄한 건 누군데."

그날 그렇게 호된 매를 맞고도 그녀의 웃음병은 잘 낫지를 않았다. 자는 척하고 누워 있던 그녀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갑자기 웃음 바가지를 쏟아 내놓곤 그 웃음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해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던 꼴을 나는 자주 보아 왔던 것이다.

"저런 저런, 저년 큰일났어.”

그때마다 아버지는 주눅이 묻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고 어머니는 이를 바드득 갈며 뜰로 쫓아나간 그녀의 뒤를 따라 뛰어 나가선 호되게 매를 치곤 하였다. 매와 웃음의 대결은 그런 식으로 좀처럼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웃지만 않는다면 어머니의 매가 들어질 리 없었지만 아마 그녀는 선천적으로 웃음이란 걸 참지 못하는 기질이었던가 보았다. 또 지악스럽게 가해지는 어머니의 매를 그녀는 거의 운명적으로 잘 견디어 내는 것 같았다. 너는 때려라 나는 맞아 준다는 식으로 허리와 등을 어머니에게 내어 주고 얼굴을 치마폭에 감추고 엎디어 있었고 그리고 정말 죽었는가 싶어 볼따구니를 쪘러 보는 내게 벌겋게 상기된 눈두덩을 들어 키들 웃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고 아버지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소 죽은 넋이 덮어씌운 년이다."

그런 예기치 않는 웃음 이외에 그녀가 어머니를 면전에서 거역하거나 말대답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만은 모든 불평을 털어놓았고 그리고 그 불평을 어머니에게 고해 바치지 않는 이상 나는 그녀로부터 진지하고도 극진한 보상을 받아 가는 셈이었다,

피난이 시작되기 1년 전 겨울, 눈이 지독히도 내리던 어느 날 새벽에 어머니는 그녀를 우리들의 부엌 아궁이 앞에서 발견했다. 외장꾼인 아버지의 새벽밥을 짓기 위해 그날 아침 어머니는 비교적 일찍 잠을 깼었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섰던 어머니가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부엌바닥에 그냥 나둥그러졌었다, 마침 새벽 담배 하나를 달아 물려던 아버지가 부엌으로 내달았고 나는 어머니의 외마디소리에 소스라쳐 단잠에서 깨어났다.

어머니를 방으로 업어다 누이고 냉수를 얼굴에 끼얹고 하는 동안에도 부엌 아궁이에다 머리를 처박고 잠들어 있는 그녀는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다. 아버지가 다시 부엌으로 내려가서 그 돼지발 같은 억센 주먹으로 정수리를 세 번이나 쳐서야 그녀는 죽은 사람 깨어나듯 꺼르륵하고 목구멍에 괸 숨을 삼키며 어름어름 눈을 뜨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년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들어와서 뱃심 좋게 잠을 자?"

거렁뱅이라는 걸 알아챈 아버지가 가장으로서의 체통과 거드름이 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추워서요.”

그녀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면서 아직도 잠기가 가시지 않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년, 추운 게 너뿐이냐?"

지극히 당연하고 논리적인 그녀의 대답에 아버지가 어째서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한 것일까. 그리고 아버진 부엌 아궁이로 반 이상은 들어가 있는 그녀를 끌어내어 문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러나 그녀를 문밖까지는 끌고 나가던 아버지는 일단 주춤하는 기색이었다.

눈은 뜰 건너의 맞은편 담장을 거의 반이나 묻히게 내려 있었다. 아마 아버지는 그때, 하늘을 나는 새를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세상이 거의 파묻힌 듯한 그런 절박한 눈밭 속에 아무리 거렁뱅이긴 하지만 인간을 내다 버리기엔 적합하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아침마다 들리던 뒤껼의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모이를 줍지 못할 새를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웬놈의 눈이 이렇게 내렸노?"

아버지는 잠시 그녀의 존재를 잊고 뜰 안에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목덜미께를 팍 감아쥐고 있던 한 손을 풀었다.

"이런 눈 속에 니가 잘 곳이 있었겠느냐. 그런 앙심도 없고서야 생명부지하겄냐, 니 이름이 뭐냐?"

"순덕이요."

성은?"

"몰라요."

아버지는 오랫동안 끌끌 혀를 차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런 어설픈 감회에 빠져 있는 사이에 정신을 가다듬은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지극히 현실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갸가 기집애요?"

"니 엄니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난 그때, 여보 갸가 기집애요? 하고 너 아부지한테 물어 볼 때 벌써 알았다니깐, 너 엄닌 그때 벌써 날 부려먹을 수 있는 기집안가 아닌가 그걸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마침 내가 기집애여서 너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게 되었으니 니 엄니로 봐선 호박이 넝쿨째 떨어진 기라."

어머니에게 매를 맞아서 시퍼렇게 멍이 든 엉덩이를 드러내 놓고 치자물로 반죽한 밀가루 떡을 부치면서 그녀는 훌찌럭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니 엄니하고 내하고는 전생에 원한이 있었던기라. 그래서 그날 밤에 그렇게 눈이 내렸고 마침 눈이 내린 그날 밤에 너집 부엌문이 열려 있었는기라. 왜 그랬는지 니는 모를끼다. 원수가 원수를 부르느라고 부엌문이 열려 있었는기라. 온 동네 부엌문이 다 잠겼는데 왜 하필이면 너네 집 부엌문이 열려 있었노 말이다. 원수가 땡겼는기라. 원수끼리 만나느라고 귀신이 덮어씌었는기라."

그런 말을 하던 날, 그녀는 목젖을 삼켜 가며 오래도록 울었다. 그런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지 나는 몰랐다. 다만, 나는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누나 안 죽지?"

"내가죽긴 왜 죽어? 니 엄니 하는 꼬라지 보면 니 엄니 보는 앞에서 쌔라도 칵 빼물고 죽고 싶지만 내가 꼭 니 같은 아들 하나 낳고 싶어서 죽지 못한다."

"언제 낳아?"

"시집을 가야해."

"언제 시집가?"

"니 엄니 꼬라지 보니깐 날 시집보내 줄 여편네는 아닌 것 같고, 내 갈 길 내가 찾어야지 워째것노?"

"누나 빨리 시집가. "

"기다려야 돼. 요 양탕구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우리들은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우리들만의 비밀들을 은밀하데 쌓아 갔다. 나는 그녀를 통해 아버지는 요령부득의 남자이며 어머니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여자 중에서 가장 악독한 여자라는 걸 배웠다. 나는 어머니가 모르고 있는 그녀의 심중에 숨어 있는 모든 비밀과 지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 따위를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저 녀석 키 크는 것 좀 보라구 하는 말 따위를 들었을 때처럼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고 가슴 뿌듯한 것이었다.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그녀와의 이런 비밀스런 대화 따위가 비밀 그것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자신에게 다짐하곤 하였다.

우리는 그러한 비밀을 만들고 있다는 것에 대단히 열중되어 있었으므로 이젠 어머니의 심부름이 거의 즐거움으로까지 느끼게 되었다.

내려쬐는 땡볕 속을 땀을 홀리며 타달타달 산길을 오르면서 우리는 우리들이 만들어 내는 그런 비밀의 부피가 점점 커져서 산협의 공기조차도 우리들이 안고 있는 비밀의 색깔로 채색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하였다. 우리들은 이제 그녀와 내가 둘이서만 산혈 같은 데서 외따로 서 있기를 바라게끔 되었다. 어머님의 심부름이 뜸하다 싶으면 그녀가 일부러 어머니를 깨우치던 것이다.

", 엄니?"

"왜 이년아?".

"찬장 속에 있는 떡살 생각 안 나요?

"그건 왜?"

"그거 엄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거 아닌가?"

"고년, 그런 건 용케 외우고 있네."

"그것 가져올까?"

"고년, 그런 건 착하구나."

그래서 우린 찬장 속에 갇혀서 먼지가 하얗게 올라앉아 있을 떡살을 가져오기 위해서 30리의 긴 산골길을 나서곤 했었다. 찬장 속에 잠겨 있는 그릇들 위에 쌓여지는 먼지의 부피만큼이나 그녀와 나의 비밀의 부피도 쌓여 가던 것이 왜 그렇게 즐거울 수가 있었던가.

그날은 아버지의 생일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머니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던 것이다.

"필구야. 오늘이 너 아부지 생일이다."

물론 어머니는 고달픈 피난생활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가정의 가장의 생일날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가장을 보필해야 하는 여편네가 구실할 게 없다는 허탈감에서 말상대도 안 되는 내게 실없는 하소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전이라도 부칠려니 밀가루가 없다. "

평소에 살기 등등하던 어머니가 그렇게 주눅들어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실없는 하소연을 마당 저편에 앉아서 빨래를 하고 있던 그녀가 귀담아 들었던 모양이었다.

"엄니 걱정 없어요."

빨래하던 두 손을 엉거주춤 들고 일어서면서 그녀가 이렇게 잘라 말했다.

"저년이 뭐락하노?"

"걱정 말라니깐요."

"누가 무슨 걱정을 해쌓는데?"

"파전보다 더 좋은 게 있어요."

"어디에?"

"읍내 우리집에."

"양식이라고 이름붙은 건 다 져다 먹었는데 뭐가 남아 있노?"

"있어요."

"뭐가?"

"."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말이 끊기고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눈자위가 기대감으로 크게 떠지는 것을 바라보았고 그리고 양 볼에 희미한 미소가 잠겨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런 얼굴은 다시 낭패감으로 쭈그러들었다. 어머니는 말했다.

"그걸 워떻게 잡어?"

"왜 못 잡아요."

"닭 잡다가 어디 붙들려가지,"

"날 붙들 사람이 어딨어요. 온 동네가 텅텅 비었는데."

"참말로 붙잡을 자신 있겠노?"

"엄니는 참, 지가 그간 닭 몇 마리 못 잡아올라꼬? 그것도 우리가 키우던 닭인대."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읍내의 집으로 길을 떠났다. 피난길을 나설 때 아버지는 닭장 문을 열어 주면서 말했다.

"이놈들아, 이젠 너들 한껏 뻐들다가 너들 한껏 살다 죽어라."

열두 마리의 닭들이 뜰로 후두득 뛰어 내려와 뒷뜰로 뛰어가는 것을 보고 우리 식구는 피난을 떠났던 것이었다. 그 닭들을 잡아 아버지의 생일날 저녁상에 올리기 위해서 우린 다시 읍내로 향했었다.

다른 날과는 달리 동네 초입에 닿을 때까지 그녀와 나는 거의 말이 얽었다. 그것은 우리들 앞에 그럴싸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나와의 동행이 된다는 흥분을 위해서 어머니에게 장담을 했었던 터였지만, 사실은 그 동안 몇 번이나 집을 다녀오는 동안 우리가 기르던 닭들이 집 주위에 놀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불안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두세 마리의 닭을 잡지 못하는 불행이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면 어머니에게 반격을 당하는 건 고사하고 실망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지겠기 때문이었다.

그런 불안이 그녀를 자못 긴장하게 만드는가 보았다. 나는 읍내의 초입에 이르렀을 때까지 그녀로부터 단 한 개의 산머루도 얻어먹지 못해서 퉁퉁 부어 있었지만, 그런 것에 전연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 속엔 닭으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였다.

우리들은 언제나처럼 발소리를 죽여 가면서 우리 집이 있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피난을 못 간 돼지들이 꿀꿀대 는소리가 골목 저 쪽 안에서 들려왔다. 그 꿀꿀대는 돼지소리를 듣자 그녀는 킬킬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웃음을 삼키면서 말했다.

"내가 남자라면 그냥 저 놈의 돼지를 잡아가겠다마는,,,,,,"

물을 죄다 퍼올린 빈 우물 속처럼 조용한 긴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서 우리는 집에 닿았다. 박제된 부엉이처럼 추녀를 허공에 띄우고 우리 집은 막연하게 앉아 .있었다.

"다 왔다."

허공에 떠 있는 추녀를 힐끗 쳐다보며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똑같이 뜰 한쪽에 버려진 닭장 문을 바라보았다. 뒤꼍으로 돌아서도 다시 앞마당을 뒤지고 이웃집 담 아래를 뒤져보았으나 아버지가 방면해 버린 닭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때처럼 낭패와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그녀는 흡사 배반당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기로 작정하는 직전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나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없구나!"

그녀는 툇마루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힐끗 중천에서 이글거리는 한낮의 해를 쳐다보았다.

"해가 지면 돌아올지도 몰라. 저들 버릇 개 줄려고."

일단 이렇게 말하더니 그녀는 치마 아래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지만 해가 지면 삼십 리 산길을 어떻게 간다?"

그녀는 순간, 심한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마당 한가운데 오똑 서 있는 내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요 양탕구야. 거기 서 있지 말고 얼른 이리 오이라."

그녀는 엉거주춤 다가서는 나를 확 잡아 낚아서는 품에 꼭 껴안았다.

"해질 때까지 기다릴까?"

나는 불안했다. 해가 진다는 말 자체가 내겐 우선 두려웠다. 사방이 너무나 조용했고, 그리고 그 조용한 사방이 다시 영문 모를 어둠으로 잠겨든 다는 것이 내겐 공포였다.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모르는 저 위협적인 포성이 어둠 속에 잠긴다면 분명 무서움으로 변하리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오랜 피난 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익혀 온 내겐 정낭 귀신 이상으로 무서운 또 하나의 귀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품에서 갑자기 팔매된 돌처럼 튀어나오며 소리질렀다.

"안 돼, 난 갈꺼야 무서워."

"요 양탕구야. 지랄하질 마, 누가 밤새도록 기다리자고 그랬냐?"

나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 그녀는 저으기 놀라서 달아나려는 나를 잡아 낚아 내 머리통을 자신의 치맛자락으로 폭 싸 안았다. 그런 모습으로 우린 한참동안이나 서 있었다. 그때 그녀가 퍽 사려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불러 보자. 이리 따라와."

그녀는 나를 앞세우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엌에 있는 빈 쌀독 밑을 손으로 긁어 내기 시작했다. 칙칙하게 습기가 밴 쌀독 밑에서 그녀는 흡사 감 꽃을 줍듯 몇 알의 곡식을 주워 내기 시작했다. 피둥피둥하게 살이찐 쥐들이 두 마리나 우리들의 사타구니 사이로 빠져 달아났으므로 우리는 가슴이 빠개질 듯이 한 번 놀랐지만 쌀독을 떠날 수는 얽었다. 그녀가 낑낑거리면서 거의 상체를 독 안으로 집어넣어서 찾아 낸 곡식을 밖에 서 있는 내 작은 손바닥 위에 옮겨 주었다. 그녀가 독 안으로부터 상체를 끄집어냈을 땐 머리채가 왼통 쌀겨와 먼지로 범벅이 되어서 나는 마귀할멈이라도 만난 것처럼 또한 놀라서 손바닥에 받아 두었던 곡식을 죄다 부엌 바닥에 쏟아 버렸다. 웬지 그녀는 그때만은 나를 때리지도 꾸지람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머리채에 묻은 쌀겨와 먼지를 털고 훨씬 더 예버 보이도록 웃었으므로 나는 겨우 안심했었다.

"요 양탕구야 따라오니라."

양탕구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그녀는 내게 설명해 준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가 고아로 세상을 떠돌아다닐 적에 우연히 얻어들은 떠돌이들의 은어 따위를 내게 별명으로 붙여준 것 같기도 했다.

툇마루에다 나를 앉혀 놓고 그녀는 닭을 부르기 시작했다.

"구구구구.”

입을 오므려서 앞으로 뾰족하니 내밀고 옛날에 모이를 줄 때의 시늉으로 손바닥의 모이를 뜰에 뿌리면서 그녀는 매우 오랫동안 닭들을 불렀다. 그러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쥐들이 빠르게 사립문께서 달아나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다른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그녀가 골똘히 생각해 낸 묘안이 허사로 끝나고 말 조짐이 분명했다.

바로 그때였다, 느닷없이 담장 밖으로부터 인기척이 나는가 했더니 한 사내의 모가지가 조심스럽게 담장 위로 가만히 솟아오르는 게 내 시선에 들어왔다. 청동색으로 그을은 사내의 머리통 위에 낡은 전투모가 비딱하게 얹혀 있었다. 담장 위로 솟아올랐던 사내의 대갈통은 잽싸게 뜰 안을 휘둘러서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고는 다시 꼴깍 담장 아래로 숨어 버렸다. 그것은 아주 잠깐 사이였으므로 내가 그녀에게 그것을 가리킬 겨를조차 없었다. 무엇을 분명히 보긴 보았다고 그녀에게 말해야겠는데 어떤 식으로 설명을 해야 할까 망설이는 중에 그 사내는 벌써 성큼 우리 집의 뜰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이쿠!"

뜰 안으로 들어서는 사내를 발견하는 순간, 그녀는 작대기로 뱃구레를 찔린 듯 앞으로 폭 고꾸라지게 놀랐다.

"놀랄 거 없어, 괜찮아 괜찮아."

그녀가 너무나 자지러지게 놀라 버렸으므로 그 사내 편에서 오히려 더 놀라는 시늉을 하며 더 이상 뜰 안으로 걸어 들어오질 못하고 엉거주춤하니 서서 허공을 한 손으로 가르는 시늉을 하며 놀랄 거 없다는 말을 몇 번인가 되풀이하고 있었다. 앞이 칵 막히듯이 놀란 그녀가 그냥 엎어질듯 툇마루의 내게로 달려와선 나를 치맛자락으로 덮어씌우곤 그 위에다 자신의 얼굴을 또한 묻었다.

"아가씨, 놀랄 거 없어요. 왜 그래, 사람이 사람을 보고 놀람 쓰나?"

군복의 사내는 총을 메고 있었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길 양으로 총을 벗어 우리들을 향해 꼬나들진 않았다. 게다가 사내는 될수록 부드럽게 달래는 투의 말씨를 쓰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는 아직도 뜰 한 켠에 서 있는 채로였다.

"아가씨, 어디서 왔지?"

우리들이 공포가 조금 엷어지기를 기다려 사내는 다소 사무적인 어투로 이렇게 물었다. 나는 그때 가만있어 라고 속삭이는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여긴 왜 왔지?"

사내가 다시 목청을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우리 집이요."

한참만에야 그녀가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사내를 돌아볼 용기는 없었던가 보았다.

"우리 집이라 ? "

사내는 그녀가 한 말을 한 번 되뇌이고 나선 우리 집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다.

"누구와 같이 왔지 ? "

"우리 둘만요."

"정말이야?"

"거짓말 같으면 집을 한 번 뒤져보세요."

"왜 왔지?"

"남은 곡식이나 있으면 가져갈까 하고 그래 왔어요."

"곡식은 찾았나?"

"못 찾았어요."

"왜 못 찾았어?"

"없으니까 못 찾았지요."

"이게 너들 집이 아니지?"

"무슨 벼락맞을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를 도둑놈으로 아는가 보지요. 마른 땅에 쌔를 끌어박고 죽어도 그런 짓은 못 하는 사람들이라요."

"못 하는 사람인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뭐야?"

"참말로 사람을 그런 취급 할랑교, 참말로 별 꼬라지 다 보겠데이."

사내는 맨 처음 우리들의 공포감 같은 것을 일단 우그러뜨려 놓은 다음엔 원가를 추궁하려 들었고 그런 추궁을 받기 시작하자 그녀는 맨 처음의 공포감 같은 건 깡그리 잊어버리고 사내를 향해 버티기 시작했다.

"거짓말 마러, 이게 너들 집이면 곡식이 있고 업고를 모를 턱이 있나? 너 아까 곡식을 찾으러 왔다가 못 찾았다고 했지?"

사내는 그녀를 어느 사이에 아가씨에서 너라고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사내의 어투 매듭매듭에 강하게 내려찍히는 듯한 억압이 묻어 오기 시작했다. 그 말에 그녀는 일순 대답할 말을 잃고 허둥지둥 사내에게까진 들리지 않도록 혼잣말을 지껄였는데, 그것은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꿈 점을 여기서 하는구나는 식의 말이었다.

"뭘 중얼거리고 있어 어서 바른 대로 안 대면 끌고 갈 꺼야."

끌고 간다는 말에 그녀는 찔끔해 버렸다. 그녀는 비로소 마당 한가운데 선 사내에게로 얼굴을 비스듬하니 돌리고선 우리들이 여기에 온 까닭을 곧이 곧대로 외어바치기 시작했다. 사내는 참을성 있게 쉬임쉬임 꼴같잖게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귀담아 들었다.

"진작 그렇게 말할꺼지 왜 처음부터 거짓말했어?"

"하도 족치니깐 그랬지요."

"족치다니 내가 언제 그랬어?"

"그래도요."

"그래도요라니? 이 여자 이제 보니깐 살짝 돌았구만?"

그때. 그녀는 다시 사내에겐 들리지 않도록 혼잣말을 지껄였는데 역시 어젯밤의 뒤숭숭하던 꿈자리 이야기였다.

"얜 누구야? "

사내는 비로소 그녀의 치맛자락 속에 싸인 내게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내 동생요."

"칠월 더위에 떠죽일려구 그래, 치마 벗겨, 애새끼 숨통 맥혀."

"안 죽어요."

"이게 왜 말대답이 심해?"

사내는 그때 처음으로 어깨에 메었던 총을 내려 개머리판을 꽝하고 마당을 굴렀다.

"벗길께요."

치마를 벗기면서 그녀는 내 시선이 사내와 마주치지 않도록 두 손으로 내 이마를 벽 쪽으로 돌려 버렸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내 등뒤의 인기척으로 사내가 성큼성큼 툇마루께로 걸어와서 앉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사내는 무엇 때문에 집요하게 우리 두 사람을 붙들고 숱한 질문을 퍼붓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사내는 군복을 입고 있었고 낡은 전투모를 쓰고 있었지만, 어느 쪽의 병사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녀편에선 알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병정들을 먼 빛으로만 보아온 나에겐 종잡을 수 없는 병사였다. 사내는 이북 사투리를 쓰고 있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서울 표준말을 쓰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사내의 정체가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던가 보았다.

사내가 툇마루 한쪽 끝으로 와서 털썩 주저앉자, 그녀는 나를 더욱 끌어안았다. 다시 사내와 그녀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때 사내의 강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닭 몇 마리나 필요해?"

그녀는 힐끔 사내를 쳐다보았다. 사내의 턱엔 번들번들한 칼자국이 있었다. 그녀의 대답이 없자, 사내는 다시 꽥 소리질렀다.

"닭이 몇 마리나 필요해?"

"왜 그러요?"

"내가 구해 줄까?"

"어떻게요?"

"내 말을 잘 들어 봐."

"어떻게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할께요, 총을 쏘아서요?"

"총을 왜 쏴!"

"그럼요?"

"이봐, 아가씨. "

나는 사내가 어떤 몸짓을 하고 있었는지는 몰랐다. 몹시 주저하는 듯한 그녀의 두 손이 내 머리통과 목덜미와 그리고 어깨를 만지작거렸는데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한참만에 그녀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 양탕구야, 요기 가만 앉아 있어라. 꼼짝하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옷가지 좀 찾아 가주고 나오께."

주저주저하는 그녀의 손이 내게서 멀어져 나갔다. 그리고 사방이 너무나 조용했다. 사내도 보이지 않았고 그녀도 없었다. 다만 그녀의 검은 고무신이 툇마루 한켠에 벗겨져 있었다.

방안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오랫동안 들려왔다, 그들이 방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나는 몰랐다. 나는 매우 불안했지만 그런대로 곧장 들리고 말 총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총소리가 나면 나는 그 즉시 그녀가 없더라도 집밖으로 내뺄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매우 강압적인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벗어 이 쌍년아! 이년을 칵 그냥."

무엇을 벗으라는지 고것 역시 몰랐었지만 다시는 사내의 강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아마 사내가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벗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참만에 사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사내의 이마엔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그는 툇마루 한켠에 꼼짝달싹 못 하고 죽은 벌레처럼 앉아 있는 나를 일별하더니 입가에 흥건히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나를 향해서가 아니고 분명 방안에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기다려, 내가 닭을 가져올 테니까."

사내가 뜰을 건너 골목 밖으로 사라진 얼마 후에도 그녀는 좀처럼 툇마루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언뜻 그녀가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몹시 그녀의 용태가 궁금했지만 나는 방안으로 들어가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한 저항이 그녀로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기분은 지금까지 내가 그녀에게로부터 느끼던 감정과는 전연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내가 바라보는 자리에서 정정당당하게 행동해 왔었다. 집에서 빨래를 할 때도 어머니에게 매질을 탕할 때도 그리고 어떤 불가해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자리와 바라볼 수 있는 자유가 내게 주어졌었다. 그러나 오늘 총을 멘 그 낯모를 사내와 그녀는 최초로 내가 보지 않는 자리에서 저희들끼리 무언가 수작을 꾸미고 있었다는 것이 나를 몹시도 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그녀가 내게 최초로 던져 준 배반이었다.

"요 양탕구야, 집에 가서 또 일러 바쳐라."

"뭘 일러 바치란 말야."

"그 남자 만났다는 거."

"그럼 뭐라구 해."

"요 양탕구야, 넌 그냥 아가리 닫고 있으면 된다. 니가 아가리 발리면 난 인계 참말로 죽었다."

"죽지 마."

"내 죽는 거 싫거던 외아 바치지 마러, 난 죽었다."

사내가 두 마리의 암탉을 한 손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고 뜰로 들어설 때까지 우린 협박과 맹세를 끈덕지게 반복하고 있었다.

"이거면 됐어?"

사내가 두 마리의 닭을 허공으로 쳐들면서 이렇게 물었을 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얼굴이 낭패와 부끄러움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사내는 골목 밖에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닭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또 와."

그녀의 등을 슬쩍 건드리면서 사내가 말했으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30리의 산길을 돌아올 때 나는 그녀로부터 많은 산머루를 받아먹었다.

"엄니한테는 모이를 주고 닭을 불러서 잡었다고 말해라. 요 양탕구야."

산머루를 내게 건네 줄 적마다. 그녀는 똑같은 말을 수십 번이나 내게 되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려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그녀는 다른 때보다는 자주 쉬어가자고 내게 졸랐다. 어딘가 몹시 불편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왜 그러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숲 속으로 들어가서 치마를 걷고 자신의 엉덩이 어디께률 들여다보는 것 같았으나 오줌을 누지는 않았었다. 우리는 그녀 때문에 자주 쉬었으므로 집에 도착했을 갠 날이 거의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왜 인제 오노, 이년아?"

뜰로 들어서는 그녀를 보고 어머니가 소리질렀으나 그녀의 한쪽 손에 아직도 살아 있는 두 마리의 살찐 암탉이 거꾸로 매달려 푸드덕거리는 걸 보자 더 이상 늦게 돌아온 그녀를 다그치지는 않았다.

"요 양탕구 아가리 벌렸다간 봐라, 그전 나는 죽었다."

댓돌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그녀의 손에 들린 닭을 빼앗듯 챙겨서 부엌으로 내닫는 사이 그녀는 이것이 마지막 경고다라는 식으로 칵칵 내려찍듯 마디를 끊어 가며 내게 주의를 주었다. 뜰에다 나를 방면(放免)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듯이 그녀는 다시 위협적인 시선을 내게 던지며 어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망할 년, 니 덕에 아부지 생일잔치는 그럭저럭 부끄럽잖게 치루게 됐다."

닭 국물을 훌쪄럭거리며 입으로 퍼 올리면서 어머니는 오랫만에 실눈을 뜨고 그녀를 칭찬하고 있었다.

"순덕이 덕택이다. 순덕이가 우리 집에 보배다."

기름진 닭다리를 뜯으면서 아버지는 헤벌심 웃었다. 나는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는 찢어발기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일별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닭 국물을 한 숟갈도 뜨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강압적인 눈초리에 항거라도 하듯 소리쳤다.

"뜨거워."

그러자, 그녀는 얼른 국그룻을 당겨다가 숟가락으로 국을 퍼올려 식히기 시작했다.

"엄마 "

나는 느닷없이 소리질렀다. 국을 퍼올리던 어머니가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누나가 어떤 남자하고 잤어."

그녀가 어떤 남자와 수작했던 것을 내가 어떻게 해서 (잤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가 있었는지 내 자신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인석아. 그게 무신 소리여?"

"누나가 웬 남자하고 잤어."

"이놈이 무슨 새따먹을 소리고?"

"난 봤단 말이야."

내 말뜻을 어머니가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지악스럽게 먹던 동작을 멈추고 나를 건너다보았다.

"필구야 그게 무슨 소리냐?"

나는 될수록 그녀에게로 시선을 주저 않으려고 애쓰며 묻는 아버지 말에 대답했다.

"웬 남자하고 자니깐 그 남자가 닭을 갖다 주데."

그 순간, 어디선가 철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았던 그녀가 국그릇 앞으로 폭싹 고꾸라졌다.

"이년 바른대로 대, 이 화냥년이 무슨 짓을 했길래 필구가 이런 말을 하노.?"

"요 양탕구야. 그 에미에 그 새끼구나. 고걸 옷 참어서 그래 금방 외어 바치나? 내가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도 나는 저주와 낭패로 일그러지던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지금까지는 그 유래를 들 수 업었던 지독한 매질을 어머니로부터 당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엎드려서 그냥 맞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때리지 말아요. 나도 이젠 다 컸어요. 필구 같은 애새끼를 낳아도 낳는 단 말이여. 그렇게 지악스럽게 사람 패지 말어요."

"이년이 시방 머라카제."

"당신도 죄받을끼요. 전생에 무신 죄를 지었길래 이러지요?"

그날 밤 그녀는 집을 쫓겨났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말렸으나 어머니의 흥분은 대단했었다. 그런 화냥년을 집에 두고 한솥밥을 먹을 수 없다고 어머니가 완강하게 버티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버티었다.

"흥 내가 갈 데 없으까봐."

"그래 이년아. 갈보 같은 년이 어딜 못 가겠노? 화냥년이 화냥놈을 따라가지 어딜 가."

"제발 그만 못 둬들"

아버지가 지성껏 뜯어말렸으나, 한 덩어리가 된 두 여자는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었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겨우 어머니의 손끝에서 풀려난 그녀는 집을 쫓겨나고 말았다.

"이 난중에 사람을 어디로 쫓아내, "

아버지가 소리질렀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어머니의 태도로 보아 그녀를 용서할 것 같지가 않았다. 아버지의 생일잔치는 그렇게 끝나 버렸다. 그녀가 집을 쫓겨나간 뒤 어머니는 남아 있던 닭죽을 져다가 거름더미에다 버렸다. 어머니는 그것을 버리면서 왝왝 토하는 시늉을 하였다.

어머니의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하고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중얼중얼하는 잔소리로 변했다가 다시 잠들어 버리기까지 그녀는 종내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그녀가 간다면 도대체 어디로 갈까. 낮데 만났던 그 사내를 찾아간 걸까. 아니면 혹시 못에라도 빠져 죽은 것일까. 그런 생각에 잠기면서도 나는 좀처럼 그녀의 말대로 (아가리를 따발린) 것을 후회할 수가 없었다. 무엇이었던가 하면 내가 그녀를 배반하기 전에 그녀가 먼저 나를 배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녀와 내가 함께 지켜 오던 그 기밀의 덩어리와는 전연 색깔이 다른 비밀이었었고 그 비밀을 지키고 있기엔, 어린 내가 그런 비밀을 말없이 간직해 나가기엔 너무나 엄청나고 큰 것으로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비밀의 성을 무너뜨린 건 내 편이 아니고 그녀 편이 먼저였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었다, 우리들의 소담스런 영역을 박차고 우리들에게서 떠나 서리는 만용을 획책한 건 분명 그녀가 먼저였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나는 심한 허탈에 빠졌고 그리고 잠이 오질 않았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제 그녀가 내게 돌아온다손 치더라도 우리들이란 어휘가 주는 농밀한 연대감만은 회복될 수 없을 것이란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녀는 그날

새벽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한여름이었으므로 우리는 문을 열어 놓은 채 자고 있었다, 그때 잠결로 어렴풋하게 뭔가가 내 볼따구니를 꼬집는 것 같아 나는 눈을 떴다. 바깥의 희미한 밤빛을 배경으로 꾸부리고 서 있는 것이 그녀라는 걸 나는 얼른 알아보았다.

"나와!"

내가 잠을 깬 걸 알자, 그녀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나는 그러나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겁이 나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요 양탕구야 빨리 나와."

그녀는 다시 작은 소리로 다그쳤다. 나는 못내 내키지 않는 듯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밖으로 나온 내 한 손을 이끌고 도둑고양이처럼 뜰을 가로질러 골목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녀의 치마폭이 방 이슬에 후줄근하게 젖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골목 밖으로 나를 끌고 나간 그녀는 제법 커다란 보자기 하나를 내게 안겨 주었다. 난 고것이 무엇인가를 금방 알아 차렸다. 그녀는 집을 쫓겨난 그 길로 산머루를 따러 갔던 모양이었다. 밤 이슬을 맞으며 새벽까지 그녀는 산머루를 따 모은 것이었다. 보자기를 받아 쥐자 그녀는 나를 덜렁 들어서 등뒤에 업었다.

"요 양탕구야. 내가 없으면 누가 니한테 산머루 한 웅큼이라도 따다 바치겠노. 그 에미에 그 자식이지. 글쎄 요 자발 없는 사내야, 하룻밤만 참았드래도 아저씨 닭다리 하나는 온전하게 묵었을께 아이가, 너네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하냐, 피난 중에 먹들 못 해서 뼈골이 상접한 걸 니도 눈까리가 있으면 보면 알제. 내가 그 놈이 좋아서 그 짓을 했는 줄 아나? 우리가 잡을 수 없는 닭을 잡아 준다니까 내가 고 놈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던 기라."

그녀는 어쩌면 울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한 손을 코 언저리로 가져가서 콧물을 팽 풀어서 담장에다 닦았다. 그녀는 무거워지는 나를 다시 한 번 추스려 업었다.

"니가 아모리 자발 없어도 하룻밤 정도는 참아줄 줄 알었다. 닭고기가 소화되서 똥된 다음에사 내가 몰매를 맞고 쫓겨가도 무슨 원한이 있겠노. 그것도 아저씨 생일날 아이가. 아저씨한테 면목이 없구나."

그녀는 다시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골목 어귀에서 나를 내려놓았다.

"너네 엄니보고 또 날 만났다는 소리하지마러 요 양탕구야. 원수끼리 워찌 한솥밥을 묵고 살겠노. 이게 다 신령님 뜻이다. 원수끼리 붙었다가 오늘밤으로 혜어지라는 뜻인기라. 그날이 바로 오늘인기라. 니가 신령님 대신으로 그런 말을 외어 바치게 했는기라. 니 죄도 아이고 내 죄도 아잉기라 신령님의 뜻인기라. 너 엄니 같은 사람과 헤어지는 거사 괜찮지만 원수도 아닌 니하고 헤어진다는기 가슴 아파서 내가 니를 다시 찾아왔는기라. 요 양탕구야. 그럼 인자는 어서 들어가, 어서, 밤이슬 맞으면 감기 걸린다. 어서 들어가."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아마 그녀는 우리들이 오늘 낮에 만났던 그 사내를, 그 뜻 모를 사내를 찾아가는지도 몰랐다. 나는 불현듯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가 골목길을 저만치 벗어나서 새벽의 미명 속으로 희끄무레하게 멀어져 가는 모습을 산머루 보자기를 안은 채 바라보았다. 멀리 윗동네 어디쯤에서 첫새벽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주영

 

콧등에 가벼운 통증을 느끼면서 나는 겨우 눈을 떴다. 어섯눈을 뜨고 있는 옆에 그녀의 희미한 옆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자동차의 동요에 전신을 실어 부은 채 잠 속으로 빠져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귤을 까 먹던 손을 털고 차창을 조금 열었다, 상쾌한 바람이 얼굴에 끼얹혀졌다. 껍질을 알뜰히 깐 귤 하나를 그녀는 내 입에다 구기듯 밀어 넣었다. 달고 새큼한 과육이 잇몸으로 배어 나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전신에 실어 누었던 가벼운 피곤을 떨쳐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버스는 벌써 2시간 이상이나 포장 도로와 비포장 도로를 번갈아 밟으며 달려온 셈이었다. 하품을 하려다 말고 나는 입안에 남아 있는 과육을 씹어 삼켰다. 잠에 빠져 있는 내 콧등을 튕겨 놓고도 그녀는 웃거나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스커트 위에 펴진 신문지 위엔 그녀가 2시간 동안이나 손톱으로 알뜰하게 벗긴 귤의 속껍질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쌓여 있었다. 그녀는 신문지의 양끝을 키질해서 속껍질들이 바깥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우린 서로가 어울려 있으면서도 그러나 시간을 보내는 방식들은 서로가 엄청나게 달랐다. 내가 시간을 흘려보내는 데 익숙해져 있다면 그녀는 도마 위의 무우 토막을 자르듯 시간을 자르는 데 익숙한 편이었다. 시간을 설거지 해 치우는 그녀의 모습은 단련되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구경하는 것에 숙달되어 있었다.

"기차를 타지."

맨 처음 나는 막연하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녀는 금방 내 말을 되받아 했었다.

"기차는 다섯 시간, 버스는 세 시간 반이에요. 한 시간 반을 왜 길바닥에 뿌리죠?"

우리는 버스를 타기로 했었다. 한 시간 반을 길바닥에 뿌리고 싶지 않은 그녀의 절약심은 한 시간이라도 빨리 우리 어머니를 만나 보아야겠다는 그녀의 충정에서가 아니라 한 시간 반의 허송이 무조건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버스를 타기 전에 매점에서 귤을 한 봉지를 샀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귤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여자란 도저히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동물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운데 손가락 세 개를 꽉 펴 올리면서 그녀는 다그치듯 내게 말했었다.

"3개월 째예요, 아셨죠?"

"알았어."

"자길 사랑했던 기억은 긴가민가한데 임신한 거는 왜 이렇게 덜컥 겁이 나죠?"

그랬다. 우린 정말 덜컥 겁이 났었다. 덜컥 겁이 나면서 머리에 문득 떠오른 사람이 어머니였다. 문득이란 말이 그러하듯이 나는 2년여 동안 그 이를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묘희에게 너무 열중해 있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단 그이 편에서 책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일체 간섭이 없었다. 물몬 서로간의 안부 정도는 편지로, 흑은 풍편이란 막연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주고받은 터였지만 그때마다 매우 상투적인 사연이었거나 단편적이고 의례적인 소식들뿐이었다. 그런 상투적인 편지나 풍편의 소식을 들을 적마다 나는 뒷문 밖으로 내쫓기는 개처럼 뜨끔한 모욕감을 느끼곤 했었다. 객지에 나둥그러진 한 어미의 자식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간단없는 관심이나 일상적한 염려로부터 무자비하게 내동이쳐진 듯한 소외감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이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내가 살고 있는 독신자 아파트로 대필의 편지를 보내오곤 하였다. 그것은 내가 석 달만에 한 번 꼴로 송금해 .드리고 있는 생활비조의 돈에 대한 답신일 때가 거의 전부였다. 그런 편지는 거두절미하고 내가 송금한 돈의 액수만 정확하게 적혀 있기가 보통이었다. 나는 답신을 보내실 필요가 없다는 편지를 내게 되었었고 그이는 내 제안에 말없이 승복했었다.

"이제 한 시간이죠?"

그녀가 이번엔 손가락 하나를 꼬놔 보이면서 말했다. 나는 세 개가 아닌 것에 적이 안심하면서 대답했다.

"그래 이제 한 시간이다."

물론 그녀는 어머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 아니 그런 것들을 주절주절 늘어놓기도 전에 우리는 서로가 좋아지게 되어 버렸고, 좋아지게 되어 버렸으니까 어머니가 어떻고 시골집이 어떻고 하는 따위는 군더더기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우린 이해하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을 가지고 만난 사이가 아니었고 만나고 나서부터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그것이 결코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사란 어차피 그렇기 마련이었고 또한 다소 앞뒤가 뒤틀린 감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겸양이나 도덕적인 것으로 그런 것들을 곧잘 해결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린 시골 가야겠죠?"

손가락 세 개를 내게 떨쳐 보이던 그 이튿날 오후 그녀는 가까스로 심각한 표정이 되어 그렇게 말했었다. 물론이었다. 확실한 건 내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란 것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대답했다.

"물론이지."

"전 준비됐어요. 언제라도 좋아요. 아이 밴 여자란 언제든지 준비하고 있어야 하니깐요."

그러면서도 묘희는 묘하게도 결혼식이란 말을 입 밖으로 흘려 내지 않는 희한한 재간을 갖고 있었다. 하긴 그 회한한 재간이 오히려 나를 철저하게 옭아매는 재간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내일도 좋아? 마침 토요일이니까."

"그래요. 월요일이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팬찮아요?"

"월요일은 왜?"

"일 주일의 시작이니깐요."

그녀는 그처럼 가벼운 기분으로 어머니를 만나려 하고 있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우리들의 결혼에 굳이 반기를 들고 나올 까닭이 없었고 묘희란 여자가 또한 어머니의 눈에 들지 않을 만큼 못난 여자가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다. 오히려 당신의 며느리 감으로선 과분한 여자임에 틀림없겠고 보면 당신께서 반기를 드실 수 있다면 그 과분한 느낌 때문일 게 분명했다. 그러나 시골 여자들이란 그 과분한 것에 대처하는 데는 얼마나 의뭉스러우며 또한 단련되어 있는가. 과분하다는 것과 맞닥뜨렸을 때 어머니는 맨 처음 손을 어떤 식으로 내저어야 하며 나중엔 어떤 식으로 시선을 내리깔며 승복해야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버스가 멎었다.

"저기죠?"

그녀가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가리키는 곳에 낯익은 산 구름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황망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버들내가 마을 앞을 가로질러 흐르지 않고 있었다면 나는 마을을 그냥 지나쳐 버렸을지도 몰랐다. 마을의 이름도 내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버들네였다.

6년만에 찾아간 마을은 굉장히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변모되어 있었다. 마을은 6년이란 세월의 길이보단 훨씬 더 멀리 내게서 멀어져 갔다는 느낌이 그 조그만 정류소에 내려서 내가 느낀 전부였다. 버들네는 벌써 (옛날에,,,,,,)라는 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할 곳은 아니었다. 그 지긋지긋한 (옛날에)를 깡그리 까바수고 마을은 일어나 앉아 있었다.

집에서 뒤꼍으로 나가면 탱자 울타리가 길게 뻗어 있었다. 탱자 울타리를 마냥 따라 올라가면 허리를 굽혀서 표주박으로 물을 퍼 올리던 우물이 있었다, 우물 옆에는 거무튀튀한 등걸을 굽히고 선 감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감 꽃을 줍기 위해 새벽이면 감꽃 같은 눈꼽을 양 눈에 단 악다구니들이 우물가로 모여들어 감 꽃을 줍곤 했었다. 그 탱자 울타리로부터 시작된 좁은 마을 안 길은 멀리 산자락 아래에까지 뻗어 있었고 그 안 길에선 항상 개가 짖었다. 그 읔자 울타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죠?"

묘희가 물었다. 그녀는 조금은 을씨년스런 모양이었다

"따라와."

나는 이미 그때 우리 집을 발견하고 있었다. 추녀 끝에서 금방 노래기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초가집으로 늘어설 적에 나는 힐긋 그녀를 훔쳐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서 나는 아무 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당신께서는 마침 채전 밭을 매고 계시다가 예고도 없이 들어서는 우리들을 맞았고 그리고 툇마루에서 묘희의 절을 받았다.

"참 많이도 변했구나. "

묘희의 인사를 받고 난 다음, 당신께서는 밑도 끝도 없이 그 한 마디를 불쑥 내뱉었다, 무엇이 변했다는 뜻인가. 나는 그때 어머니의 그 말 속에 숨어 있을 법한 감정의 앙금 같은 걸 건져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허사였다. 흐뭇하다든가, 섭섭하다든가, 그런 느낌에다 이가 맞게 소속시킬 만한 건덕지가 그 목소리엔 정말 없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만 건조했을 따름이었다. 묘희는 어머니의 시선에 얼굴을 빼앗긴 그 순간부터 어머니처럼 굳어져 버렸다. 묘희가 거들겠다는데도 한사코 뿌리치며 어머니는 흔잣손으로 저녁밥을 지었다. 어머니는 딱 한 번 그녀로부터 절을 받았을 적에 그녀를 보았을 뿐 저녁 내내 나만을 상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마을을 뜰 때가 왔구나."

저녁상을 물린 뒤 어머니는 다시 불쑥 그런 말을 내뱉었다.

"뜨다니요, 어디로 말씀입니까?"

묘희는 줄곧 내 등뒤로만 붙어 다녔다. 어머니는 무턱대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니 말이 맞다. 참말로 뜬다는 말이 우섭기도 하다."

"그런데요?"

"글쎄 말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염치없이 이 마실에 더 이상은 눌러앉아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하기야 이날 이때까지 이 동네에 들어와 살 수 있었던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지만서도 ,,,,,, 암 그렇고 말고. "

어머니는 볼품없이 늙어 있었다. 묘희가 내 곁에 있었으므로 어머니는 더욱 그랬다. 그런 어머니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나는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 귀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나는 그 순간 어머니에게 분노를 느꼈다. 어머니는 기어이 그 말을 묘희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도대체 그 귀신의 꼬리를 아직도 입에 물고 있어야 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옅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용서할 수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20년이 가까워 오지 않는가.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고 그런 것들을 굳이 따지고 들려는 사람도, 그리고 발설하려는 사람도 이젠 없었다. 그것은 절대로 놀라운 것이 아니었고 지탄받을 것도 아니었으므로 사람들은 관심 밖의 일로 제쳐 두고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귀신을 지금까지 입과 머리 속에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어머니의 그 궁색한 모습은 처절하다 못해 차라리 분노를 느끼게 잔다는 뜻이었다. 그런 면에서 어머니는 죄인이랄 수 있었다. 내가 버들네를 자주 찾아오지 않고 있는 까닭을 어머니는 알고 있을 터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 저항의 모습엔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6년만이 아니라 12년만에 버들네를 찾아왔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나를 붙들어 앉히고 내가 누구라는 걸, 그리고 누구의 아들이란 걸 확인시키고 또 확인시키려 할 것이었다, 그것은 흡사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가진 당신께서 해야 할 마지막 남은 인생의 채무인 것처럼.

어머니는 드디어 오늘 나와의 한판 승부를 노리고 있는 셈이었다. 묘희 때문에 내가 물러날 수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벌써 계산에 넣고 있었다. 당신께서는 이른바 그 절호의 기회와 마지막 기회라는 두 개의 카드를 손아귀에 함께 쥐고 있는 폭이었다. 어머니는 묘희에게 그걸 폭로하고 싶은 거였고 그 폭로가 가져올 2차적인 효과조차도 벌써 계산에 넣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머니가 노리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젠 그것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이 변했다는 걸 왜 모르고 계시죠? 아니 어머님이 그걸 모르고 있을 리가 없죠."

어머니는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니가 잘못 본 게다. 세상이 변했지 우리가 변했느냐."

"우리가 누구입니까 ? 변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유독 어머니만은 변하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거죠? 발버둥을 칠 게 따로 있지."

"발버둥친다고 되는 게냐 이게?"

"참 딱하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는 3개월이면 20년이 됩니다. 그런데 왜 내가 그 아버지의 굴레를 애써 덮어쓰고 살아가야 한단 말입니까?"

"넌 그 애비 자식이 아니냐?"

나는 그곳에서 그만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그럼 계가 띠 버들네로 되돌아와서 대물림의 칼을 받아서 육고간을 내고 푸주질이라도 해야 쓰겠단 말입니까? 아버지처럼 돝고기나 끊어 팔며 살아요? 어머니 지금 읍내에서 푸줏간을 누가 하고 있는지 알고나 계세요? 일 년 전까지 면장질하던 최 누군가 하는 그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버들네로 돌아와서 육고간을 내겠다면 아마 그 사람이 온갖 이권과 권력을 동원해서라도 허가를 내지 못하게 훼방을 놓을 거란 말입니다. 그걸 아셔야지요. 그런 걸 두고 이른바 세상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관할 게 아니다."

"그럼 어머니의 뜻은 뭐란 말입니까? 뒤에 있는 이 여자에게 우리의 근본을 까뒤집어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셨군요."

"이 마을을 떠야겠다는 게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가 그 망령에 매달려 있는 이상은 이 마을을 떠나 어딜 가신다 하여도 어머니가 살 곳은 없습니다."

"어쨌든 떠나야 하겠다. "

"도대체 이 마을에서 어느 호로자식이 어머니를 보고 백정의 내자였다 해서 육고간으로 머리라도 집어넣던가요?"

어머니는 이번엔 고개를 양옆으로 훼훼 저었다. 그이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다."

"그럼요?"

"버들네 사람들이 오히러 나를 보면 길을 내어 줄 정도다. 네가 서울로 가서 크게 출세를 했다고 말이다. 상무가 되었다고."

"그럼 됐지 않았습니까?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에 심통이 나서 어머닌 자식이 먹으려는 밥에다가 바늘을 꽂는 겝니까?"

"그게 싫어. "

"싫다니요? 그게 왜 싫어요? 그 사람들이 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그것까지 혜아려 줘야 할 운명까지도 어머니가 걸머지고 생각하고 계신다면 그거야말로 큰일입니다."

"그 사람이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게 난 싫어."

"그게 세상이 변했다는 뜻입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 정당한 대우를 받고 계시는 겝니다. 어머니가 그것에 부담 가지실 건 없으세요."

"그러니까 세상이 워낙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게다. 백정의 자손이 업을 바꾸면 대가 끊기거나 병신이 태어나는 법이다. 난 그걸 보아 왔지. 너의 삼촌도 그랬었고 사촌도 그랬었다. 곰배팔이가 태어나고 벙어리가 태어났지 않았느냐. 그게 다 칼을 받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받은 업보란다. 백정은 백정의 주작대로 살아야 하고 면장을 하던 사람은 면장의 주작대로 살아야 하는 법이다. 면장이 푸줏간을 하고 백정의 소생이 상무질을 한다면 그것이 뒤죽박죽이지 워째 그것이 세상사란 게냐. 옛날에는 우리 육고간에 와서 여보게들 돝고기 한 칼 주게 하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내게 길을 비켜 주다니 이게 잘못된 세상이지, 어떻게 넌 세상이 달라졌다는 게냐. 사람이란 백정이든 양반이든 엄연히 뼈대가 있고 조상이 있지 않느냐. 그걸 속이고 살아가는 건 사는 게 아니다. 그게 바로 뿌리가 뽑혀 허공을 도는 게지."

"어머니의 속내가 정녕 그러시다면 어머님이야말로 이 세상에선 살아가실 땅이 없습니다. 어머니를 용납해 줄 사람이 없지요. 그리고 설령 지금에 와서 어머니가 옛날의 모습대로 되돌아가신다 할이라도 누가 어머니를 보고 여보게들 돝고기 한 칼 주게 하겠습니까."

"참 이상도 하지, 사람들이 그렇게 변할 수가 있는 겐지 원,,,,,"

나는 어머니의 표정 이 창피스러움과 곤혹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은 그런 어머니와 대좌(對坐)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나는 묘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우린 시멘트로 포장이 된 마을 안 길을 따라 옛날엔 표주박으로 떠낼 수 있었던 우물께로 갔다. 그러나 그런 우물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우물이 있던 자리에 게시판이 서 있었다. 우린 잠시 갈피를 못 잡고 그 어름에서 서성거렸다.

이런 경우 난 익숙해 있지 않았다. 어디로든 꼭 가긴 가야 하겠는데 별로 갈 곳이 없었다. 그래 참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지 하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감나무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 감나무는 마을의 악다구니들에겐 이른바 반복의 역사, 세월이 가고 있다는 것을 정기적으로 우리들에게 일깨워 주었었고 그리고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 감나무는 꽃을 피웠고 그리고 어김없이 결실을 맺었으며 그리고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잎을 떨구었다. 나는 문득 시간이 정지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무작정 옛날에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라 오르는 길이 있을 법했던 길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숨소리가 귀에 잡힐 듯 명료하게 들려왔다,

 

아버지에겐 망건을 쓰거나 탕건을 쓰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초례를 치르긴 하였으나 곧장 상투를 트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었다. 나를 낳은 연후에야 겨우 그는 상투를 틀 수 있었지만 그러나 항상 봉두난발이었었고 고름 없는 저고리에 검은 동정을 달았었고 검정 바지를 입었었다. 나는 아버지가 주의(周衣)를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백정의 후손으로서 그리고 무자리 천출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냈다. 사람들 앞에서 마시거나 피우지도 않았고 길에서 사람을 만났을 땐 입례(立禮)하고 그가 멀리 지나갈 동안 기다렸다. 내가 아이들과 싸움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도록 가두어 길렀고 쇠가죽을 깔고 앉아서 혼자 술을 마셨다. 우리는 언제나 가난했고 그리고 겨울은 항상 추웠다. 아버지는 방에다 군불을 지피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었다, 어느 땐 어머니가 말했다,

"우린 괜찮습니다만 이러다간 내지른 소생 한속으로 죽이겠소. "

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백정의 새끼가 반은 소인데 그렇게 쉽게 죽는 법이 아녀."

"그럼 꼭 죽어야 쓰겠소? "

"어허 이런 놈의 여편네가? 그놈이 한속으로 죽는 걸 보았어 ?"

"군불 좀 지핀다구 그게 무슨 죄가 된다는 게요? "

"백정놈이 여염집 흉내를 내면 못 써. 무자리 천출들이 무슨 놈의 춥고 더운 걸 안다구 춥다구 군불을 지펴 ? 그러다가 지레 죽는다는 걸 몰라서 그 지랄인가? 썩 걷어치워."

아버지는 충혈된 두 눈을 부라렸는데 그 눈은 흡사 천궁(天宮 :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소의 두 눈을 연상시켰었다.

아버지는 일 년에 두 번, 그러니까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을 짧으면 4,5일 또는 7, 8일 동간이나 바람처럼 어디를 다녀오곤 하였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몸에다 많은 돈을 지녔었다. 그 돈은 일테면 겨울에서 봄까지 또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도살로 벌어들인 돈이었다. 아버지가 일 년에 두 번씩이나 몸에 지니고 나가는 그 엄청난 액수의 돈 때문에 우린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철저하게 그 돈의 행방에 새해서 불평은 물론, 일언반구의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 돈을 전대에다 넣어 집을 나설 때 아버지의 두 눈은 소의 그것처럼 충혈되어 있었고 어디에다 그 전대를 풀고 돌아오는 날은 항상 허옇게 지친 모습이었다, 나중에사 안 일이었지만 아버지가 가는 곳은 진주라는 곳이었고 그곳엔 속박된 백정들의 인권을 되찾자는 운동인 형평사(衡平社)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돈을 쓰기 위한 일 년의 두 번의 출타 이외엔 아버진 일체의 바깥 출입이 없었다. 진주에서 돌아오는 날은 반드시 술을 마셨다, 그리고 아주 굴신을 못하도록 흠씬 취해 버리던 것이었다. 지치고 지친 모습으로 아버진 대취해서 쓰러져 잤다.

내가 7살 되던 해에 면서기가 우리 육고간으로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버지가 고름 없는 저고리를 여미며 그들 앞에 꿇어앉았다.

"길상이를 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그 젊은 면서기가 그렇게 말하자, 아버지는 눈자위를 까뒤집을 만치 놀랐다.

"학교라니요?"

"학교를 몰라요? 글을 배우는 곳."

"제 소생 이 감히 학교를......"

"왜 그 아이가 어때서요?"

"제 소생이 아닙니까. 백정의 권속이야 반은 소가 아십니까."

"그래서요 ? "

"백정의 자손이 업을 바꾸면 대가 끊기게 되지요."

"글을 배운다는 게 업을 바꾼다는 뜻입니까? "

"백정에겐 글이 필요가 없습지요. 글을 배우게 되면 칼을 대물림하지 못하니 그것이 바로 업을 바꾸는 게 됩지요."

"당신네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그리고 좋든 싫든 길상이란 아이는 학교를 보내야 합니다. 이건 국가에서 명령하는 것이니까요."

"누가 백정에게 명령을 한다는 것입니까요?"

"당신 참 뺏뻣하구려. 그러다가 서서 오줌 싸겠소. 국가가 명령하는 일엔 백성이 따라야 한다는 것도 모른 척해야겠다는 것입니까?"

"그깐 백정의 소생 하나쯤 쑥 패 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요?

"그건 위법이요."

"법이라니요? 백정에게 무슨 법이 필요하십니까? 쇤네는 법 없이 평생을 살아 왔습지요. 그런데도 아무런 불편이 없었습니다요. 그런 것 지체 높으신 분들이 가지시는 것이지요."

"당신 보아하니 천출입네 하면서 뻣뻣하긴 지체 높은 양반 열을 짐쪄 먹겠소."

"제가 ------감히 어떻게 ------혹이나 동네 어른들이 들으셨다면 큰일입니다요. 백정의 권속이야 반은 소입지요. 소새끼가 지체 있는 집안의 도령님들과 섞여서 글을 배운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 아니옵니까. 그래서 공연히 저의 권속들이 관재라도 입게 된다면 저희는 끝장입니다요."

그 면서기라는 사람이 땅땅 벼르고 돌아간 뒤 아버지는 하루 종일 말이 없었다. 그날 해가 바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아버지는 어디 가서 몹시 깡마르고 늙은 황소 한 마리를 몰고 왔다.

"타거라."

소를 마당 귀퉁이에 세워 두고 지겟문을 열면서 아버지가 내게 명령한 말이었다. 나는 오들오들 떨었다.

"싫여."

"길상아?"

아버지는 두 눈을 부릅떠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힐끗 아버지의 등뒤를 훔쳐보았다. 천궁에 갈 때처럼 손에 도끼라도 들려져 있는가 해서였다. 다행히 아버지의 등뒤에는 도끼 자루가 보이지 않았다. 우정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침묵 사이에서 나는 거의 속수무책으로 떨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졌다.

"타거라."

"싫여 ,,,,,,"

"이놈 자식, 웬 고집이 그리 드세냐. 타지 않으면 쫓아 낼 테다."

"싫여 ,,,,,,"

"별종이 태어난 게다."

나는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타거라. "

이번엔 어머니가 독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더 이상 지체할 틈이 없는 듯 나를 덜렁 안아서 소 잔등에다 태웠다. 길마 위에 나를 앉히고 난 다음 밀삐끈으로 길마에다 나를 꽁꽁 묶었다. 그리고 아버진 소를 몰기 시작했다. 나는 울었고 그리고 딸꾹질을 해댔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나를 태운 소는 쉬엄쉬엄 밤을 새워 어디론가 걸어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그리고 일정한 목적지도 없는 것 같았다. 지쳐서 잠에 떨어진 내 귀에 아련히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이슬에 흠뻑 젖은 아버지와 내가 우리 집 마당에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우리들 부자의 그 밑도 끝도 없는 하룻밤의 여행에서 돌아온 날 아버지는 앓기 시작했다. 물론 어머니는 앓아 누운 아버지를 위해 약을 쓰거나 심지어 강약조차도 쓰지 않았다.

"임자……

아버지가 꺼져 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

"절대로 약을 쓰면 안돼."

어머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버지가 숨질 때까지 그이는 내내 냉수 사발만 들이켰다. 물론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을 위해 상여를 쓰지 못했다. 망혼을 달래는 시침굿도 없었고 여막을 짓지도 않았다. 천궁에서 소가 죽어 가듯 아버지는 돌아가신 것이었다.

"네놈이 니 애비를 잡아먹은 것이니라."

아버지를 묻고 돌아오던 날 어머니는 내게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말하던 것이었다.

"어째서 백정의 소생으로 너 같은 요물이 태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소 잡는 칼을 부엌 시렁에 얹어 두면 파()가 든다더니 네놈이 태어날 적에 아비가 잘 간수를 잘못한 게 틀림이 없지."

며칠 후엔가 어머니는 혼잣소리를 하였다. 세상이 변해 가는 것을 그들은 순전히 내 탓으로만 돌리려 하였고 내가 그들의 생활을 좀먹어 가는 장본인으로만 생각하였다.

 

"숨차요. "

언덕길을 반도 오르지 못해서 묘희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몹시 창백해져 있었다. 언덕길에 달빛이 차가왔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묘희가 임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였다. 늙은 여자들이란 그런 눈치 하나만은 빠르지 않은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의 아이에게 저주를 퍼부은 것이었다.

- 백정의 소생이 업을 바꾸면 대를 끊기거나 병신을 낳는다.

그만치 철저한 저주가 도대체 어디 있을까. 하물며 자기의 며느리가 될 사람을 보고 한 말임에야. 왜 아직도 내가 당신을 어머니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당혹을 느꼈을 때 왜 어머니를 맨 처음으로 뇌리에 떠올리게 되었는지 후회스럽고 가슴 아팠다.

나는 그녀의 겨드랑이에다 팔을 넣었다. 묵직한 중량감이 내 팔에 얹혀왔다.

"인간이 70평생 동안 가질 수 있는 많은 시간 중에서 정말 자기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아마 열 손가락에 들 만큼 사소한 시간이겠죠."

그녀는 애써 말을 피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자신도 없었다. 우리는 겨우 언덕을 넘었다.

언덕을 넘고 보면 질펀한 개활지가 나왔다. 개활지에는 억새와 갈대가 엉키어 자라고 있었다. 달빛이 갈대밭 뀌로 내려앉아 바람을 타고 너울거리고 있었다. 우린 개활지를 오른편으로 끼고 돌자갈 길을 한참이나 걸어갔다. 그녀가 앞서서 걸었고 내가 뒤따르는 편이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버들네를 떠나는

이후로는 묘희와는 혜어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존경할 만한 분이에요."

앞서서 걷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난데없는 한 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분이야말로 여자죠. 길상 씨의 출세를 속으로는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겠어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의 괄시를 함께 가지고 태어나서 아들만은 그런 괄시를 받지 않도록 해야지 하는 소원이 없었겠어요? 속으로 울고 속으로 질었을 테죠. 그러나 어머님은 아버님 편을 택한 거예요. 어머님은 이제 우리들에게서 마지막 남은 어머니죠."

"아버진 처음부터 나를 별종으로 생각했더랬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머님은 아버님을 택한 거죠. 온 마을이 전부 현대식 주택으로 개조를 했는데도 어머님은 옛날 육고간이 있던 그 집을 그대로 수리조차 않으신 채 살고 계시는 걸 보면,,,,,,"

묘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혹시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바람이 차지 않아?"

"괜찮아요. "

우린 자꾸만 걸어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이 길이 천궁으로 가는 길이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길이 천궁으로 가는 길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 둘은 벌써 도살장 앞에까지 와 있다는 것을 알. 벌써 추녀의 한끝은 무너져 땅에 끌리고 있는 그 집은 마을에서 건초 창고 따위로 쓰고 있는 듯 건초들이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건초가 썩는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저기로 들어가서 잠깐 추위를 식히죠."

묘희만은 그곳이 옛날 20년 전의 아버지가 도살장으로 쓰던 곳이란 것을 모르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내가 굳이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고 나선다면 아마 눈치빠른 그녀는 그 집의 내력을 캐물으려 할 것이었다, 우린 도살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건초가 썩어 가는 듯한 냄새 이외엔 아무 냄새도 없었다. 우린 건초 더미를 기대고 나란히 앉았다. 손을 부비던 그녀가 부비던 손으로 내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당신을 사랑해요. "

그녀가 흐느끼듯 말했다. 역시 나든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헤어짐에 또 다른 잡다한 찌꺼기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심정에서였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또한 묘희에게서 패배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묘희가 건초 더미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코트를 벗어 건초 더미 위에다 깔았다. 그리고 -블라우스-의 앞 단추를 끄르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난 이 집이 무엇하던 집인지 알고 있어요."

"무슨 소리야? "

나는 온몸의 피가 한 바퀴 역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길상 씨 아버님이 생업을 영위하던 곳이죠?"

……

"제 직감이었어요."

"왜 그래?"

"이곳으로 오고 싶었어요. 아니 제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곳이에요."

"일어서."

나는 나직하나마나 단호하게 말했다.

"우린 여기 있어야 해요."

"? 미쳤어?"

"어머닐 위해서죠."

"미쳤군, 놘전히 돌았어."

"이리 오세요."

묘희는 내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그녀는 이미 웃도리를 다 벗고 브레이저 차림이었다. 그녀는 내 차가온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젖무덤에다 갖다 얹었다. 나는 그녀의 눈자위가 허공에 뜬 걸 보았다.

 

그녀의 집은 장충동에 있었다. 일 년 전에 나는 그녀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시골의 목장에 내려가시고 없었다. 꽃꽂이 전문인 그녀의 어머니가 초대의 수발을 맡아보았다. 모녀는 완전히 흥분되어 있었다. 묘희는 나를 자기 집에까지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성취감에 들떠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꽃꽂이 학원의 생활에 대해서 자랑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상대를 만났다는 것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에게서도 있었다.

"월급이 얼마나 되죠?"

"팔십만 원쯤 되죠."

"총각 생활로선 그만 하시면 너무 많군요. 그쵸?"

50이 넘은 그녀의 어머니는 어린애들을 흉내내는 말투를 쓰고 있었다.

"아마 그럴 테죠."

"전부 저축?"

"그런 편이죠. 시골에 계시는 어머님에게 조금 보내는 거 외엔."

"홀어머니시라죠?"

"그런 셈이죠."

"얘 묘희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홀어머니 모시기 힘들다는데?"

"무슨 상관야. 모시지 뭐."

"? 넌 나보다 트였구나."

"그럼, 난 엄마 닳진 않을래, "

"그게 무슨 소리니?"

"할머니 구박하고 있잖어."

", 길상 씨 앞에서 무슨 못된 소리니?"

"길상씨 하지 마."

"그럼 뭐라고 부르란 게니?"

"홍 선생, 홍 서방 다 있잖아."

"홍서방이라니 아직 약혼한 사이도 아닌데?"

"그렇지만 우린 벌써 끝간 데까지 간 걸."

"어마, 어마, 이게 무슨 소리니?"

그녀의 어머니는 식탁에다 이마를 곤두박고 한참이나 앉았다가 겨우 고개를 쳐들었다. 그때 잽싸게 묘희가 나를 잡아끌었다. 마루를 건너 화장실 옆에 있는 도어를 열고 들어가자는 시늉을 했다. 그 방에 며느리에게 구박을 받고 산다는 묘희의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나는 큰절을 했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때 나는 방 한켠에 너무나 윤이 나는 놋요강 하나를 보았다. 그 놋요강은 너무나 잘 닦이고 간수되고 있어서 그 방안에 있는 모든 가구 집기들이 퇴락해 보였다. 묘희 할머니는 나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는 동안 줄곧 그 놋요강을 손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저기에다 소변을 보시진 않아요."

묘희가 내게 귓속말을 했었다.

"어머니가 저걸 몰래 감춰 버린 적이 있죠. 그때 할머니는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했지 뭐예요."

 

우린 건초 더미 위에서 일어났다. 정사 후의 그 후줄근한 기분 때문으로 우린 잠시 말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이제 가야죠. "

그녀는 늙은이들처럼 과거의 냄새가 푸근히 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일어나서 천천히 건초 더미 위에 벗어 놓은 옷들을 주워 입었다. 멀리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일은 가야죠."

"나두 역시 가야 해."

우리는 천궁에서 나왔다. 그녀의 코트 자락엔 건초들의 지푸라기가 묻어 있었다. 우리는 올 때와는 달리 내가 앞장을 서고 그녀가 뒤따랐다.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개활지에서 바람을 타고 달빛이 밀려왔다.

우린 벌써 헤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내 옆으로 다가와서 팔짱을 끼었다.

"삼 개월째라는 거 알죠?"

"그래 알고 있지."

"우린 쑥이었죠?"

"어떡하려는 게지?"

"무서워요."

"누가?"

"내가 무섭단 얘기죠."

"?"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우리 할머니 방에 들어가 보셨죠? 그리고 할머니가 애지중지하시던 그 빛나는 놋요강도 보셨죠?"

"알구 있어, 할머니가 왜 그 놋요강을 애지중지하고 있는가를 난 알아차렸지. 그건 할머니가 대물림으로 받으신 거겠지. 묘희가 결혼을 하게 되면 아마 묘희에게 그걸 대물림했을 테지."

"그래요. 우리 증조 할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아세요?"

"선혜청의 당상관이었다구 묘희 어머니가 얘길 하시더군."

"아녜요. 그이는 유기장(鍮器匠)이었었죠. 아마 그래서 그 도살장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가 보죠."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땐, 벌써 어머니는 싸늘하게 식은 시신으로 남아 있었다. 당신께서는 한 손에 소 코뚜레를 힘껏 잡고 계시었고, 내가 서울에서 송금했었던 돈을 단 한푼도 축내지 않고 장롱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싸늘하게 식은 시신 위로 2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망령이, 돌확에 떠오르는 6월의 구름처럼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망령이 묘희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고 있는 걸 나는 등뒤로 느끼고 있었다.

 

 

익 는 산 머 루

김주영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그녀와 동행해서 30리 이상이나 떨어진 읍내의 집을 다녀와야 했다. 30리 이상이나 되는 먼 길을 하루에 왕복해야 한다는 것 외에도 먼 산자락을 흔드는 포성을 들으면서 칠월의 뙤약볕을 견뎌 내야 한다는 것도 우리들에겐 고역이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읍내의 집을 다녀오지 못하고 꼭 그녀와 내가 동행이 되어 다녀와야 한다는 것에 짜증이 나고 싫었지만 그녀는 그런 까닭을 알고 있는 듯 언제나 고분고분하였다.

"순덕아."

읍내의 접으로 심부름을 보내야 할 때 그녀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언제나 깡마르게 갈라져 있었다.

"또 갔다 와야겠구나. 그리고 필구를 너무 걸리지 말고……

말하자면, 30리 길을 그녀 혼자 보낼 수는 없었으므로 어머니는 나를 동반자로 그녀에게 붙여 주곤 하였다.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까지 가려면 고개를 세 번이나 넘어야 하는 산길이 있었다. 그 산길을 왕복해야 할 때마다 그녀는 오르막길에선 나를 업었고, 내리막을 만나면 나를 앞세워 걸렸다. 내리막길을 만나서 길에다 나를 내려놓을 때마다 그녀는 내게 주의 주는 걸 잊지 않았다.

"똑바로 걷지 말고 옆탱이로 걸어라잉? 엎어지면 코깬다.”

그런 주의를 준 다음엔 꼭 내게 한 가지 약속을 주곤 하였다. 엎어지지 않고 계곡까지만 내려간다면 산머루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곡 하나를 건널 때마다 한두 번씩은 넘어지곤 하였으므로 나는 항상 그녀의 핀잔을 듣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내자식이 왜 그렇게 촐랑대노? 좀 음전해라. 그래야 장차 큰 놈이 된다."

어머니의 말버릇을 흉내내어 내게 잔소리를 퍼붓곤 했지만 잔소리가 심하면 심할수록 내게 안겨지는 산머루의 양은 많아지는 게 보통이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산머루를 많이 따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만 내게 많은 잔소리를 퍼붓곤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을 읍내로 보내는 유일한 근거가 되는 어머니의 심부름이란 대개 하잘것없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안방 시렁 위에 있는 찬합을 가지고 오라든지, 박달나무로 만든 다듬이 돌을 이고 오라든지, 홍두깨를 가져오라든지 하는, 쭈그러든 산골 피난 생활에선 거의가 필요 없는 것들이었고 그런 물건들이 꼭 필요하다면, 이 산골 이웃에서도 말 한 마디면 기어이 빌어올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느 날, 고갯마루에서 앉아 쉴 참에 먼 산을 한참 바라보고 앉았던 그녀가 내게 불쑥 말했던 것이다,

"너 엄니처럼 야속한 여자도 없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찬합이 꼭 필요해서 우리보고 가져오라는 줄 알제?"

그녀는 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종알거리던 것이다.

너 엄니 걱정은 그게 아녀, 집이 혹시 대포에나 폭격에 맞았을까봐, 그걸 보고 오라는 말씀이여. 찬합이다 홍두깨다 말하지만, 그건 말짱 헛말이고 이유는 딴 데 있는기라."

치마를 털고 일어서면서 그녀는 다시 말했다.

워째, 자기 혼자서만 사변당하나, 온 나라가 뒤죽박죽인데. 이놈자식, 집에 가서 내가 이런 말 하드락꼬 또 외어 바쳐래이? 그러문 나는 고만 죽었다."

물론 나는 그녀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그녀의 불평을 어머니에게 외어 바치지는 않았다. 그녀가 죽는 건 싫었다. 그것은 그녀가 따다 바치는 산머루의 양만큼이나 싫었다. 그녀가 죽으면 나는 산머루를 누구에게 따 달랠 수 있을까. 나는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누나가 죽는 건 싫어."

그녀는 언제나 내게 누나라고 부르라고 강요하곤 했었다.

"내가 죽는 거 싫지?"

그래."

"그러문 아가리 꼭 처닫고 있어래이."

아가리를 꼭 처닫고 있겠다고 약속을 해 준 날 같은 땐 산머루를 찾아 헤매는 그녀의 눈시울은 벌겋게 충혈되곤 했었고 그리고 가시에 찔린 그녀의 손등에서 피가 흐르곤 하였다.

어머니는 필요 이상으로 그녀에게 매질을 하곤 하였다. 심지어 다듬이 방망이 같은 것으로 엎어져 있는 그녀의 어깻죽지와 허리께를 개 패듯 하는 수가 많았다. 어머니의. 매질이 지악스럽게 계속되는 동안 그녀는 흡사 죽은 사람처럼 땅바닥에 엎디어 있었다. 어머니의 매질이 지쳐서 끝나고 들었던 방망이가 마당 한가운데 가서 댕가당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난 얼마 후까지도 그녀는 죽은 듯이 그대로 엎디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녀가 죽지 않았는가 싶어 가까이 가서 흐트러진 머리채에 묻혀 있는 그녀의 볼따구니를 가만히 찔러 보곤 하였다. 그때서야 그녀는 벌겋게 부푼 눈두덩이를 들어 나를 보곤 키들 웃어 버리곤 하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와 그녀는 행랑채에 붙어 있는 대문간 방을 같이 쓰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산골 동네에 타관 피난민들이 들이닥쳐서 그만한 방 한 칸을 얻어내는 데도 아버지는 상당한 고역을 치르었었다.

그녀가 맨 처음 호되게 어머니로부터 매를 맞은 건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어른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된 지 나흘째 되던 밤인가 보았다. 내 옆에서 자고 있던 그녀가 처음엔 코가 막힌 소리로 뭔가 킁킁대기 시작했다. 그 킁킁대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몸까지 비비틀던 그녀가 더 이상 참지를 못했던지 그냥 발악적으로 웃음소리를 토해 내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튀어 나가던 것이다.

"헛 고것 참, 저런 저런 망할 년 봤나."

서둘러 바지를 찾아 입으면서 아버지가 대강 그런 뜻으로 꿀 먹은 벙어리 소리로 씨부리자 바드득하고 어머니가 이를 갈았다.

"니 엄니가 날 보구 하는 소리가 가관이더라. 글쎄 날 보구 이년아 밤중에 잠 안 자고 무슨 지랄하느냐 이거여. 밤중에 잠 안 자고 지랄한 건 누군데."

그날 그렇게 호된 매를 맞고도 그녀의 웃음병은 잘 낫지를 않았다. 자는 척하고 누워 있던 그녀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갑자기 웃음 바가지를 쏟아 내놓곤 그 웃음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해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던 꼴을 나는 자주 보아 왔던 것이다.

"저런 저런, 저년 큰일났어.”

그때마다 아버지는 주눅이 묻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고 어머니는 이를 바드득 갈며 뜰로 쫓아나간 그녀의 뒤를 따라 뛰어 나가선 호되게 매를 치곤 하였다. 매와 웃음의 대결은 그런 식으로 좀처럼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웃지만 않는다면 어머니의 매가 들어질 리 없었지만 아마 그녀는 선천적으로 웃음이란 걸 참지 못하는 기질이었던가 보았다. 또 지악스럽게 가해지는 어머니의 매를 그녀는 거의 운명적으로 잘 견디어 내는 것 같았다. 너는 때려라 나는 맞아 준다는 식으로 허리와 등을 어머니에게 내어 주고 얼굴을 치마폭에 감추고 엎디어 있었고 그리고 정말 죽었는가 싶어 볼따구니를 쪘러 보는 내게 벌겋게 상기된 눈두덩을 들어 키들 웃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고 아버지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소 죽은 넋이 덮어씌운 년이다."

그런 예기치 않는 웃음 이외에 그녀가 어머니를 면전에서 거역하거나 말대답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만은 모든 불평을 털어놓았고 그리고 그 불평을 어머니에게 고해 바치지 않는 이상 나는 그녀로부터 진지하고도 극진한 보상을 받아 가는 셈이었다,

피난이 시작되기 1년 전 겨울, 눈이 지독히도 내리던 어느 날 새벽에 어머니는 그녀를 우리들의 부엌 아궁이 앞에서 발견했다. 외장꾼인 아버지의 새벽밥을 짓기 위해 그날 아침 어머니는 비교적 일찍 잠을 깼었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섰던 어머니가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부엌바닥에 그냥 나둥그러졌었다, 마침 새벽 담배 하나를 달아 물려던 아버지가 부엌으로 내달았고 나는 어머니의 외마디소리에 소스라쳐 단잠에서 깨어났다.

어머니를 방으로 업어다 누이고 냉수를 얼굴에 끼얹고 하는 동안에도 부엌 아궁이에다 머리를 처박고 잠들어 있는 그녀는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다. 아버지가 다시 부엌으로 내려가서 그 돼지발 같은 억센 주먹으로 정수리를 세 번이나 쳐서야 그녀는 죽은 사람 깨어나듯 꺼르륵하고 목구멍에 괸 숨을 삼키며 어름어름 눈을 뜨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년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들어와서 뱃심 좋게 잠을 자?"

거렁뱅이라는 걸 알아챈 아버지가 가장으로서의 체통과 거드름이 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추워서요.”

그녀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면서 아직도 잠기가 가시지 않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년, 추운 게 너뿐이냐?"

지극히 당연하고 논리적인 그녀의 대답에 아버지가 어째서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한 것일까. 그리고 아버진 부엌 아궁이로 반 이상은 들어가 있는 그녀를 끌어내어 문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러나 그녀를 문밖까지는 끌고 나가던 아버지는 일단 주춤하는 기색이었다.

눈은 뜰 건너의 맞은편 담장을 거의 반이나 묻히게 내려 있었다. 아마 아버지는 그때, 하늘을 나는 새를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세상이 거의 파묻힌 듯한 그런 절박한 눈밭 속에 아무리 거렁뱅이긴 하지만 인간을 내다 버리기엔 적합하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아침마다 들리던 뒤껼의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모이를 줍지 못할 새를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웬놈의 눈이 이렇게 내렸노?"

아버지는 잠시 그녀의 존재를 잊고 뜰 안에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목덜미께를 팍 감아쥐고 있던 한 손을 풀었다.

"이런 눈 속에 니가 잘 곳이 있었겠느냐. 그런 앙심도 없고서야 생명부지하겄냐, 니 이름이 뭐냐?"

"순덕이요."

성은?"

"몰라요."

아버지는 오랫동안 끌끌 혀를 차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런 어설픈 감회에 빠져 있는 사이에 정신을 가다듬은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지극히 현실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갸가 기집애요?"

"니 엄니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난 그때, 여보 갸가 기집애요? 하고 너 아부지한테 물어 볼 때 벌써 알았다니깐, 너 엄닌 그때 벌써 날 부려먹을 수 있는 기집안가 아닌가 그걸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마침 내가 기집애여서 너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게 되었으니 니 엄니로 봐선 호박이 넝쿨째 떨어진 기라."

어머니에게 매를 맞아서 시퍼렇게 멍이 든 엉덩이를 드러내 놓고 치자물로 반죽한 밀가루 떡을 부치면서 그녀는 훌찌럭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니 엄니하고 내하고는 전생에 원한이 있었던기라. 그래서 그날 밤에 그렇게 눈이 내렸고 마침 눈이 내린 그날 밤에 너집 부엌문이 열려 있었는기라. 왜 그랬는지 니는 모를끼다. 원수가 원수를 부르느라고 부엌문이 열려 있었는기라. 온 동네 부엌문이 다 잠겼는데 왜 하필이면 너네 집 부엌문이 열려 있었노 말이다. 원수가 땡겼는기라. 원수끼리 만나느라고 귀신이 덮어씌었는기라."

그런 말을 하던 날, 그녀는 목젖을 삼켜 가며 오래도록 울었다. 그런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지 나는 몰랐다. 다만, 나는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누나 안 죽지?"

"내가죽긴 왜 죽어? 니 엄니 하는 꼬라지 보면 니 엄니 보는 앞에서 쌔라도 칵 빼물고 죽고 싶지만 내가 꼭 니 같은 아들 하나 낳고 싶어서 죽지 못한다."

"언제 낳아?"

"시집을 가야해."

"언제 시집가?"

"니 엄니 꼬라지 보니깐 날 시집보내 줄 여편네는 아닌 것 같고, 내 갈 길 내가 찾어야지 워째것노?"

"누나 빨리 시집가. "

"기다려야 돼. 요 양탕구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우리들은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우리들만의 비밀들을 은밀하데 쌓아 갔다. 나는 그녀를 통해 아버지는 요령부득의 남자이며 어머니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여자 중에서 가장 악독한 여자라는 걸 배웠다. 나는 어머니가 모르고 있는 그녀의 심중에 숨어 있는 모든 비밀과 지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 따위를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저 녀석 키 크는 것 좀 보라구 하는 말 따위를 들었을 때처럼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고 가슴 뿌듯한 것이었다.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그녀와의 이런 비밀스런 대화 따위가 비밀 그것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자신에게 다짐하곤 하였다.

우리는 그러한 비밀을 만들고 있다는 것에 대단히 열중되어 있었으므로 이젠 어머니의 심부름이 거의 즐거움으로까지 느끼게 되었다.

내려쬐는 땡볕 속을 땀을 홀리며 타달타달 산길을 오르면서 우리는 우리들이 만들어 내는 그런 비밀의 부피가 점점 커져서 산협의 공기조차도 우리들이 안고 있는 비밀의 색깔로 채색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하였다. 우리들은 이제 그녀와 내가 둘이서만 산혈 같은 데서 외따로 서 있기를 바라게끔 되었다. 어머님의 심부름이 뜸하다 싶으면 그녀가 일부러 어머니를 깨우치던 것이다.

", 엄니?"

"왜 이년아?".

"찬장 속에 있는 떡살 생각 안 나요?

"그건 왜?"

"그거 엄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거 아닌가?"

"고년, 그런 건 용케 외우고 있네."

"그것 가져올까?"

"고년, 그런 건 착하구나."

그래서 우린 찬장 속에 갇혀서 먼지가 하얗게 올라앉아 있을 떡살을 가져오기 위해서 30리의 긴 산골길을 나서곤 했었다. 찬장 속에 잠겨 있는 그릇들 위에 쌓여지는 먼지의 부피만큼이나 그녀와 나의 비밀의 부피도 쌓여 가던 것이 왜 그렇게 즐거울 수가 있었던가.

그날은 아버지의 생일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머니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던 것이다.

"필구야. 오늘이 너 아부지 생일이다."

물론 어머니는 고달픈 피난생활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가정의 가장의 생일날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가장을 보필해야 하는 여편네가 구실할 게 없다는 허탈감에서 말상대도 안 되는 내게 실없는 하소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전이라도 부칠려니 밀가루가 없다. "

평소에 살기 등등하던 어머니가 그렇게 주눅들어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실없는 하소연을 마당 저편에 앉아서 빨래를 하고 있던 그녀가 귀담아 들었던 모양이었다.

"엄니 걱정 없어요."

빨래하던 두 손을 엉거주춤 들고 일어서면서 그녀가 이렇게 잘라 말했다.

"저년이 뭐락하노?"

"걱정 말라니깐요."

"누가 무슨 걱정을 해쌓는데?"

"파전보다 더 좋은 게 있어요."

"어디에?"

"읍내 우리집에."

"양식이라고 이름붙은 건 다 져다 먹었는데 뭐가 남아 있노?"

"있어요."

"뭐가?"

"."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말이 끊기고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눈자위가 기대감으로 크게 떠지는 것을 바라보았고 그리고 양 볼에 희미한 미소가 잠겨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런 얼굴은 다시 낭패감으로 쭈그러들었다. 어머니는 말했다.

"그걸 워떻게 잡어?"

"왜 못 잡아요."

"닭 잡다가 어디 붙들려가지,"

"날 붙들 사람이 어딨어요. 온 동네가 텅텅 비었는데."

"참말로 붙잡을 자신 있겠노?"

"엄니는 참, 지가 그간 닭 몇 마리 못 잡아올라꼬? 그것도 우리가 키우던 닭인대."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읍내의 집으로 길을 떠났다. 피난길을 나설 때 아버지는 닭장 문을 열어 주면서 말했다.

"이놈들아, 이젠 너들 한껏 뻐들다가 너들 한껏 살다 죽어라."

열두 마리의 닭들이 뜰로 후두득 뛰어 내려와 뒷뜰로 뛰어가는 것을 보고 우리 식구는 피난을 떠났던 것이었다. 그 닭들을 잡아 아버지의 생일날 저녁상에 올리기 위해서 우린 다시 읍내로 향했었다.

다른 날과는 달리 동네 초입에 닿을 때까지 그녀와 나는 거의 말이 얽었다. 그것은 우리들 앞에 그럴싸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나와의 동행이 된다는 흥분을 위해서 어머니에게 장담을 했었던 터였지만, 사실은 그 동안 몇 번이나 집을 다녀오는 동안 우리가 기르던 닭들이 집 주위에 놀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불안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두세 마리의 닭을 잡지 못하는 불행이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면 어머니에게 반격을 당하는 건 고사하고 실망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지겠기 때문이었다.

그런 불안이 그녀를 자못 긴장하게 만드는가 보았다. 나는 읍내의 초입에 이르렀을 때까지 그녀로부터 단 한 개의 산머루도 얻어먹지 못해서 퉁퉁 부어 있었지만, 그런 것에 전연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 속엔 닭으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였다.

우리들은 언제나처럼 발소리를 죽여 가면서 우리 집이 있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피난을 못 간 돼지들이 꿀꿀대 는소리가 골목 저 쪽 안에서 들려왔다. 그 꿀꿀대는 돼지소리를 듣자 그녀는 킬킬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웃음을 삼키면서 말했다.

"내가 남자라면 그냥 저 놈의 돼지를 잡아가겠다마는,,,,,,"

물을 죄다 퍼올린 빈 우물 속처럼 조용한 긴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서 우리는 집에 닿았다. 박제된 부엉이처럼 추녀를 허공에 띄우고 우리 집은 막연하게 앉아 .있었다.

"다 왔다."

허공에 떠 있는 추녀를 힐끗 쳐다보며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똑같이 뜰 한쪽에 버려진 닭장 문을 바라보았다. 뒤꼍으로 돌아서도 다시 앞마당을 뒤지고 이웃집 담 아래를 뒤져보았으나 아버지가 방면해 버린 닭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때처럼 낭패와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그녀는 흡사 배반당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기로 작정하는 직전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나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없구나!"

그녀는 툇마루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힐끗 중천에서 이글거리는 한낮의 해를 쳐다보았다.

"해가 지면 돌아올지도 몰라. 저들 버릇 개 줄려고."

일단 이렇게 말하더니 그녀는 치마 아래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지만 해가 지면 삼십 리 산길을 어떻게 간다?"

그녀는 순간, 심한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마당 한가운데 오똑 서 있는 내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요 양탕구야. 거기 서 있지 말고 얼른 이리 오이라."

그녀는 엉거주춤 다가서는 나를 확 잡아 낚아서는 품에 꼭 껴안았다.

"해질 때까지 기다릴까?"

나는 불안했다. 해가 진다는 말 자체가 내겐 우선 두려웠다. 사방이 너무나 조용했고, 그리고 그 조용한 사방이 다시 영문 모를 어둠으로 잠겨든 다는 것이 내겐 공포였다.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모르는 저 위협적인 포성이 어둠 속에 잠긴다면 분명 무서움으로 변하리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오랜 피난 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익혀 온 내겐 정낭 귀신 이상으로 무서운 또 하나의 귀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품에서 갑자기 팔매된 돌처럼 튀어나오며 소리질렀다.

"안 돼, 난 갈꺼야 무서워."

"요 양탕구야. 지랄하질 마, 누가 밤새도록 기다리자고 그랬냐?"

나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 그녀는 저으기 놀라서 달아나려는 나를 잡아 낚아 내 머리통을 자신의 치맛자락으로 폭 싸 안았다. 그런 모습으로 우린 한참동안이나 서 있었다. 그때 그녀가 퍽 사려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불러 보자. 이리 따라와."

그녀는 나를 앞세우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엌에 있는 빈 쌀독 밑을 손으로 긁어 내기 시작했다. 칙칙하게 습기가 밴 쌀독 밑에서 그녀는 흡사 감 꽃을 줍듯 몇 알의 곡식을 주워 내기 시작했다. 피둥피둥하게 살이찐 쥐들이 두 마리나 우리들의 사타구니 사이로 빠져 달아났으므로 우리는 가슴이 빠개질 듯이 한 번 놀랐지만 쌀독을 떠날 수는 얽었다. 그녀가 낑낑거리면서 거의 상체를 독 안으로 집어넣어서 찾아 낸 곡식을 밖에 서 있는 내 작은 손바닥 위에 옮겨 주었다. 그녀가 독 안으로부터 상체를 끄집어냈을 땐 머리채가 왼통 쌀겨와 먼지로 범벅이 되어서 나는 마귀할멈이라도 만난 것처럼 또한 놀라서 손바닥에 받아 두었던 곡식을 죄다 부엌 바닥에 쏟아 버렸다. 웬지 그녀는 그때만은 나를 때리지도 꾸지람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머리채에 묻은 쌀겨와 먼지를 털고 훨씬 더 예버 보이도록 웃었으므로 나는 겨우 안심했었다.

"요 양탕구야 따라오니라."

양탕구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그녀는 내게 설명해 준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가 고아로 세상을 떠돌아다닐 적에 우연히 얻어들은 떠돌이들의 은어 따위를 내게 별명으로 붙여준 것 같기도 했다.

툇마루에다 나를 앉혀 놓고 그녀는 닭을 부르기 시작했다.

"구구구구.”

입을 오므려서 앞으로 뾰족하니 내밀고 옛날에 모이를 줄 때의 시늉으로 손바닥의 모이를 뜰에 뿌리면서 그녀는 매우 오랫동안 닭들을 불렀다. 그러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쥐들이 빠르게 사립문께서 달아나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다른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그녀가 골똘히 생각해 낸 묘안이 허사로 끝나고 말 조짐이 분명했다.

바로 그때였다, 느닷없이 담장 밖으로부터 인기척이 나는가 했더니 한 사내의 모가지가 조심스럽게 담장 위로 가만히 솟아오르는 게 내 시선에 들어왔다. 청동색으로 그을은 사내의 머리통 위에 낡은 전투모가 비딱하게 얹혀 있었다. 담장 위로 솟아올랐던 사내의 대갈통은 잽싸게 뜰 안을 휘둘러서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고는 다시 꼴깍 담장 아래로 숨어 버렸다. 그것은 아주 잠깐 사이였으므로 내가 그녀에게 그것을 가리킬 겨를조차 없었다. 무엇을 분명히 보긴 보았다고 그녀에게 말해야겠는데 어떤 식으로 설명을 해야 할까 망설이는 중에 그 사내는 벌써 성큼 우리 집의 뜰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이쿠!"

뜰 안으로 들어서는 사내를 발견하는 순간, 그녀는 작대기로 뱃구레를 찔린 듯 앞으로 폭 고꾸라지게 놀랐다.

"놀랄 거 없어, 괜찮아 괜찮아."

그녀가 너무나 자지러지게 놀라 버렸으므로 그 사내 편에서 오히려 더 놀라는 시늉을 하며 더 이상 뜰 안으로 걸어 들어오질 못하고 엉거주춤하니 서서 허공을 한 손으로 가르는 시늉을 하며 놀랄 거 없다는 말을 몇 번인가 되풀이하고 있었다. 앞이 칵 막히듯이 놀란 그녀가 그냥 엎어질듯 툇마루의 내게로 달려와선 나를 치맛자락으로 덮어씌우곤 그 위에다 자신의 얼굴을 또한 묻었다.

"아가씨, 놀랄 거 없어요. 왜 그래, 사람이 사람을 보고 놀람 쓰나?"

군복의 사내는 총을 메고 있었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길 양으로 총을 벗어 우리들을 향해 꼬나들진 않았다. 게다가 사내는 될수록 부드럽게 달래는 투의 말씨를 쓰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는 아직도 뜰 한 켠에 서 있는 채로였다.

"아가씨, 어디서 왔지?"

우리들이 공포가 조금 엷어지기를 기다려 사내는 다소 사무적인 어투로 이렇게 물었다. 나는 그때 가만있어 라고 속삭이는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여긴 왜 왔지?"

사내가 다시 목청을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우리 집이요."

한참만에야 그녀가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사내를 돌아볼 용기는 없었던가 보았다.

"우리 집이라 ? "

사내는 그녀가 한 말을 한 번 되뇌이고 나선 우리 집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다.

"누구와 같이 왔지 ? "

"우리 둘만요."

"정말이야?"

"거짓말 같으면 집을 한 번 뒤져보세요."

"왜 왔지?"

"남은 곡식이나 있으면 가져갈까 하고 그래 왔어요."

"곡식은 찾았나?"

"못 찾았어요."

"왜 못 찾았어?"

"없으니까 못 찾았지요."

"이게 너들 집이 아니지?"

"무슨 벼락맞을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를 도둑놈으로 아는가 보지요. 마른 땅에 쌔를 끌어박고 죽어도 그런 짓은 못 하는 사람들이라요."

"못 하는 사람인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뭐야?"

"참말로 사람을 그런 취급 할랑교, 참말로 별 꼬라지 다 보겠데이."

사내는 맨 처음 우리들의 공포감 같은 것을 일단 우그러뜨려 놓은 다음엔 원가를 추궁하려 들었고 그런 추궁을 받기 시작하자 그녀는 맨 처음의 공포감 같은 건 깡그리 잊어버리고 사내를 향해 버티기 시작했다.

"거짓말 마러, 이게 너들 집이면 곡식이 있고 업고를 모를 턱이 있나? 너 아까 곡식을 찾으러 왔다가 못 찾았다고 했지?"

사내는 그녀를 어느 사이에 아가씨에서 너라고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사내의 어투 매듭매듭에 강하게 내려찍히는 듯한 억압이 묻어 오기 시작했다. 그 말에 그녀는 일순 대답할 말을 잃고 허둥지둥 사내에게까진 들리지 않도록 혼잣말을 지껄였는데, 그것은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꿈 점을 여기서 하는구나는 식의 말이었다.

"뭘 중얼거리고 있어 어서 바른 대로 안 대면 끌고 갈 꺼야."

끌고 간다는 말에 그녀는 찔끔해 버렸다. 그녀는 비로소 마당 한가운데 선 사내에게로 얼굴을 비스듬하니 돌리고선 우리들이 여기에 온 까닭을 곧이 곧대로 외어바치기 시작했다. 사내는 참을성 있게 쉬임쉬임 꼴같잖게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귀담아 들었다.

"진작 그렇게 말할꺼지 왜 처음부터 거짓말했어?"

"하도 족치니깐 그랬지요."

"족치다니 내가 언제 그랬어?"

"그래도요."

"그래도요라니? 이 여자 이제 보니깐 살짝 돌았구만?"

그때. 그녀는 다시 사내에겐 들리지 않도록 혼잣말을 지껄였는데 역시 어젯밤의 뒤숭숭하던 꿈자리 이야기였다.

"얜 누구야? "

사내는 비로소 그녀의 치맛자락 속에 싸인 내게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내 동생요."

"칠월 더위에 떠죽일려구 그래, 치마 벗겨, 애새끼 숨통 맥혀."

"안 죽어요."

"이게 왜 말대답이 심해?"

사내는 그때 처음으로 어깨에 메었던 총을 내려 개머리판을 꽝하고 마당을 굴렀다.

"벗길께요."

치마를 벗기면서 그녀는 내 시선이 사내와 마주치지 않도록 두 손으로 내 이마를 벽 쪽으로 돌려 버렸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내 등뒤의 인기척으로 사내가 성큼성큼 툇마루께로 걸어와서 앉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사내는 무엇 때문에 집요하게 우리 두 사람을 붙들고 숱한 질문을 퍼붓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사내는 군복을 입고 있었고 낡은 전투모를 쓰고 있었지만, 어느 쪽의 병사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녀편에선 알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병정들을 먼 빛으로만 보아온 나에겐 종잡을 수 없는 병사였다. 사내는 이북 사투리를 쓰고 있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서울 표준말을 쓰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사내의 정체가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던가 보았다.

사내가 툇마루 한쪽 끝으로 와서 털썩 주저앉자, 그녀는 나를 더욱 끌어안았다. 다시 사내와 그녀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때 사내의 강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닭 몇 마리나 필요해?"

그녀는 힐끔 사내를 쳐다보았다. 사내의 턱엔 번들번들한 칼자국이 있었다. 그녀의 대답이 없자, 사내는 다시 꽥 소리질렀다.

"닭이 몇 마리나 필요해?"

"왜 그러요?"

"내가 구해 줄까?"

"어떻게요?"

"내 말을 잘 들어 봐."

"어떻게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할께요, 총을 쏘아서요?"

"총을 왜 쏴!"

"그럼요?"

"이봐, 아가씨. "

나는 사내가 어떤 몸짓을 하고 있었는지는 몰랐다. 몹시 주저하는 듯한 그녀의 두 손이 내 머리통과 목덜미와 그리고 어깨를 만지작거렸는데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한참만에 그녀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 양탕구야, 요기 가만 앉아 있어라. 꼼짝하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옷가지 좀 찾아 가주고 나오께."

주저주저하는 그녀의 손이 내게서 멀어져 나갔다. 그리고 사방이 너무나 조용했다. 사내도 보이지 않았고 그녀도 없었다. 다만 그녀의 검은 고무신이 툇마루 한켠에 벗겨져 있었다.

방안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오랫동안 들려왔다, 그들이 방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나는 몰랐다. 나는 매우 불안했지만 그런대로 곧장 들리고 말 총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총소리가 나면 나는 그 즉시 그녀가 없더라도 집밖으로 내뺄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매우 강압적인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벗어 이 쌍년아! 이년을 칵 그냥."

무엇을 벗으라는지 고것 역시 몰랐었지만 다시는 사내의 강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아마 사내가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벗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참만에 사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사내의 이마엔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그는 툇마루 한켠에 꼼짝달싹 못 하고 죽은 벌레처럼 앉아 있는 나를 일별하더니 입가에 흥건히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나를 향해서가 아니고 분명 방안에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기다려, 내가 닭을 가져올 테니까."

사내가 뜰을 건너 골목 밖으로 사라진 얼마 후에도 그녀는 좀처럼 툇마루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언뜻 그녀가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몹시 그녀의 용태가 궁금했지만 나는 방안으로 들어가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한 저항이 그녀로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기분은 지금까지 내가 그녀에게로부터 느끼던 감정과는 전연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내가 바라보는 자리에서 정정당당하게 행동해 왔었다. 집에서 빨래를 할 때도 어머니에게 매질을 탕할 때도 그리고 어떤 불가해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자리와 바라볼 수 있는 자유가 내게 주어졌었다. 그러나 오늘 총을 멘 그 낯모를 사내와 그녀는 최초로 내가 보지 않는 자리에서 저희들끼리 무언가 수작을 꾸미고 있었다는 것이 나를 몹시도 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그녀가 내게 최초로 던져 준 배반이었다.

"요 양탕구야, 집에 가서 또 일러 바쳐라."

"뭘 일러 바치란 말야."

"그 남자 만났다는 거."

"그럼 뭐라구 해."

"요 양탕구야, 넌 그냥 아가리 닫고 있으면 된다. 니가 아가리 발리면 난 인계 참말로 죽었다."

"죽지 마."

"내 죽는 거 싫거던 외아 바치지 마러, 난 죽었다."

사내가 두 마리의 암탉을 한 손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고 뜰로 들어설 때까지 우린 협박과 맹세를 끈덕지게 반복하고 있었다.

"이거면 됐어?"

사내가 두 마리의 닭을 허공으로 쳐들면서 이렇게 물었을 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얼굴이 낭패와 부끄러움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사내는 골목 밖에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닭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또 와."

그녀의 등을 슬쩍 건드리면서 사내가 말했으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30리의 산길을 돌아올 때 나는 그녀로부터 많은 산머루를 받아먹었다.

"엄니한테는 모이를 주고 닭을 불러서 잡었다고 말해라. 요 양탕구야."

산머루를 내게 건네 줄 적마다. 그녀는 똑같은 말을 수십 번이나 내게 되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려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그녀는 다른 때보다는 자주 쉬어가자고 내게 졸랐다. 어딘가 몹시 불편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왜 그러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숲 속으로 들어가서 치마를 걷고 자신의 엉덩이 어디께률 들여다보는 것 같았으나 오줌을 누지는 않았었다. 우리는 그녀 때문에 자주 쉬었으므로 집에 도착했을 갠 날이 거의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왜 인제 오노, 이년아?"

뜰로 들어서는 그녀를 보고 어머니가 소리질렀으나 그녀의 한쪽 손에 아직도 살아 있는 두 마리의 살찐 암탉이 거꾸로 매달려 푸드덕거리는 걸 보자 더 이상 늦게 돌아온 그녀를 다그치지는 않았다.

"요 양탕구 아가리 벌렸다간 봐라, 그전 나는 죽었다."

댓돌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그녀의 손에 들린 닭을 빼앗듯 챙겨서 부엌으로 내닫는 사이 그녀는 이것이 마지막 경고다라는 식으로 칵칵 내려찍듯 마디를 끊어 가며 내게 주의를 주었다. 뜰에다 나를 방면(放免)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듯이 그녀는 다시 위협적인 시선을 내게 던지며 어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망할 년, 니 덕에 아부지 생일잔치는 그럭저럭 부끄럽잖게 치루게 됐다."

닭 국물을 훌쪄럭거리며 입으로 퍼 올리면서 어머니는 오랫만에 실눈을 뜨고 그녀를 칭찬하고 있었다.

"순덕이 덕택이다. 순덕이가 우리 집에 보배다."

기름진 닭다리를 뜯으면서 아버지는 헤벌심 웃었다. 나는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는 찢어발기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일별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닭 국물을 한 숟갈도 뜨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강압적인 눈초리에 항거라도 하듯 소리쳤다.

"뜨거워."

그러자, 그녀는 얼른 국그룻을 당겨다가 숟가락으로 국을 퍼올려 식히기 시작했다.

"엄마 "

나는 느닷없이 소리질렀다. 국을 퍼올리던 어머니가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누나가 어떤 남자하고 잤어."

그녀가 어떤 남자와 수작했던 것을 내가 어떻게 해서 (잤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가 있었는지 내 자신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인석아. 그게 무신 소리여?"

"누나가 웬 남자하고 잤어."

"이놈이 무슨 새따먹을 소리고?"

"난 봤단 말이야."

내 말뜻을 어머니가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지악스럽게 먹던 동작을 멈추고 나를 건너다보았다.

"필구야 그게 무슨 소리냐?"

나는 될수록 그녀에게로 시선을 주저 않으려고 애쓰며 묻는 아버지 말에 대답했다.

"웬 남자하고 자니깐 그 남자가 닭을 갖다 주데."

그 순간, 어디선가 철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았던 그녀가 국그릇 앞으로 폭싹 고꾸라졌다.

"이년 바른대로 대, 이 화냥년이 무슨 짓을 했길래 필구가 이런 말을 하노.?"

"요 양탕구야. 그 에미에 그 새끼구나. 고걸 옷 참어서 그래 금방 외어 바치나? 내가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도 나는 저주와 낭패로 일그러지던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지금까지는 그 유래를 들 수 업었던 지독한 매질을 어머니로부터 당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엎드려서 그냥 맞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때리지 말아요. 나도 이젠 다 컸어요. 필구 같은 애새끼를 낳아도 낳는 단 말이여. 그렇게 지악스럽게 사람 패지 말어요."

"이년이 시방 머라카제."

"당신도 죄받을끼요. 전생에 무신 죄를 지었길래 이러지요?"

그날 밤 그녀는 집을 쫓겨났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말렸으나 어머니의 흥분은 대단했었다. 그런 화냥년을 집에 두고 한솥밥을 먹을 수 없다고 어머니가 완강하게 버티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버티었다.

"흥 내가 갈 데 없으까봐."

"그래 이년아. 갈보 같은 년이 어딜 못 가겠노? 화냥년이 화냥놈을 따라가지 어딜 가."

"제발 그만 못 둬들"

아버지가 지성껏 뜯어말렸으나, 한 덩어리가 된 두 여자는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었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겨우 어머니의 손끝에서 풀려난 그녀는 집을 쫓겨나고 말았다.

"이 난중에 사람을 어디로 쫓아내, "

아버지가 소리질렀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어머니의 태도로 보아 그녀를 용서할 것 같지가 않았다. 아버지의 생일잔치는 그렇게 끝나 버렸다. 그녀가 집을 쫓겨나간 뒤 어머니는 남아 있던 닭죽을 져다가 거름더미에다 버렸다. 어머니는 그것을 버리면서 왝왝 토하는 시늉을 하였다.

어머니의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하고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중얼중얼하는 잔소리로 변했다가 다시 잠들어 버리기까지 그녀는 종내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그녀가 간다면 도대체 어디로 갈까. 낮데 만났던 그 사내를 찾아간 걸까. 아니면 혹시 못에라도 빠져 죽은 것일까. 그런 생각에 잠기면서도 나는 좀처럼 그녀의 말대로 (아가리를 따발린) 것을 후회할 수가 없었다. 무엇이었던가 하면 내가 그녀를 배반하기 전에 그녀가 먼저 나를 배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녀와 내가 함께 지켜 오던 그 기밀의 덩어리와는 전연 색깔이 다른 비밀이었었고 그 비밀을 지키고 있기엔, 어린 내가 그런 비밀을 말없이 간직해 나가기엔 너무나 엄청나고 큰 것으로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비밀의 성을 무너뜨린 건 내 편이 아니고 그녀 편이 먼저였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었다, 우리들의 소담스런 영역을 박차고 우리들에게서 떠나 서리는 만용을 획책한 건 분명 그녀가 먼저였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나는 심한 허탈에 빠졌고 그리고 잠이 오질 않았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제 그녀가 내게 돌아온다손 치더라도 우리들이란 어휘가 주는 농밀한 연대감만은 회복될 수 없을 것이란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녀는 그날

새벽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한여름이었으므로 우리는 문을 열어 놓은 채 자고 있었다, 그때 잠결로 어렴풋하게 뭔가가 내 볼따구니를 꼬집는 것 같아 나는 눈을 떴다. 바깥의 희미한 밤빛을 배경으로 꾸부리고 서 있는 것이 그녀라는 걸 나는 얼른 알아보았다.

"나와!"

내가 잠을 깬 걸 알자, 그녀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나는 그러나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겁이 나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요 양탕구야 빨리 나와."

그녀는 다시 작은 소리로 다그쳤다. 나는 못내 내키지 않는 듯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밖으로 나온 내 한 손을 이끌고 도둑고양이처럼 뜰을 가로질러 골목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녀의 치마폭이 방 이슬에 후줄근하게 젖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골목 밖으로 나를 끌고 나간 그녀는 제법 커다란 보자기 하나를 내게 안겨 주었다. 난 고것이 무엇인가를 금방 알아 차렸다. 그녀는 집을 쫓겨난 그 길로 산머루를 따러 갔던 모양이었다. 밤 이슬을 맞으며 새벽까지 그녀는 산머루를 따 모은 것이었다. 보자기를 받아 쥐자 그녀는 나를 덜렁 들어서 등뒤에 업었다.

"요 양탕구야. 내가 없으면 누가 니한테 산머루 한 웅큼이라도 따다 바치겠노. 그 에미에 그 자식이지. 글쎄 요 자발 없는 사내야, 하룻밤만 참았드래도 아저씨 닭다리 하나는 온전하게 묵었을께 아이가, 너네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하냐, 피난 중에 먹들 못 해서 뼈골이 상접한 걸 니도 눈까리가 있으면 보면 알제. 내가 그 놈이 좋아서 그 짓을 했는 줄 아나? 우리가 잡을 수 없는 닭을 잡아 준다니까 내가 고 놈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던 기라."

그녀는 어쩌면 울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한 손을 코 언저리로 가져가서 콧물을 팽 풀어서 담장에다 닦았다. 그녀는 무거워지는 나를 다시 한 번 추스려 업었다.

"니가 아모리 자발 없어도 하룻밤 정도는 참아줄 줄 알었다. 닭고기가 소화되서 똥된 다음에사 내가 몰매를 맞고 쫓겨가도 무슨 원한이 있겠노. 그것도 아저씨 생일날 아이가. 아저씨한테 면목이 없구나."

그녀는 다시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골목 어귀에서 나를 내려놓았다.

"너네 엄니보고 또 날 만났다는 소리하지마러 요 양탕구야. 원수끼리 워찌 한솥밥을 묵고 살겠노. 이게 다 신령님 뜻이다. 원수끼리 붙었다가 오늘밤으로 혜어지라는 뜻인기라. 그날이 바로 오늘인기라. 니가 신령님 대신으로 그런 말을 외어 바치게 했는기라. 니 죄도 아이고 내 죄도 아잉기라 신령님의 뜻인기라. 너 엄니 같은 사람과 헤어지는 거사 괜찮지만 원수도 아닌 니하고 헤어진다는기 가슴 아파서 내가 니를 다시 찾아왔는기라. 요 양탕구야. 그럼 인자는 어서 들어가, 어서, 밤이슬 맞으면 감기 걸린다. 어서 들어가."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아마 그녀는 우리들이 오늘 낮에 만났던 그 사내를, 그 뜻 모를 사내를 찾아가는지도 몰랐다. 나는 불현듯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가 골목길을 저만치 벗어나서 새벽의 미명 속으로 희끄무레하게 멀어져 가는 모습을 산머루 보자기를 안은 채 바라보았다. 멀리 윗동네 어디쯤에서 첫새벽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주영

 

콧등에 가벼운 통증을 느끼면서 나는 겨우 눈을 떴다. 어섯눈을 뜨고 있는 옆에 그녀의 희미한 옆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자동차의 동요에 전신을 실어 부은 채 잠 속으로 빠져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귤을 까 먹던 손을 털고 차창을 조금 열었다, 상쾌한 바람이 얼굴에 끼얹혀졌다. 껍질을 알뜰히 깐 귤 하나를 그녀는 내 입에다 구기듯 밀어 넣었다. 달고 새큼한 과육이 잇몸으로 배어 나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전신에 실어 누었던 가벼운 피곤을 떨쳐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버스는 벌써 2시간 이상이나 포장 도로와 비포장 도로를 번갈아 밟으며 달려온 셈이었다. 하품을 하려다 말고 나는 입안에 남아 있는 과육을 씹어 삼켰다. 잠에 빠져 있는 내 콧등을 튕겨 놓고도 그녀는 웃거나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스커트 위에 펴진 신문지 위엔 그녀가 2시간 동안이나 손톱으로 알뜰하게 벗긴 귤의 속껍질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쌓여 있었다. 그녀는 신문지의 양끝을 키질해서 속껍질들이 바깥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우린 서로가 어울려 있으면서도 그러나 시간을 보내는 방식들은 서로가 엄청나게 달랐다. 내가 시간을 흘려보내는 데 익숙해져 있다면 그녀는 도마 위의 무우 토막을 자르듯 시간을 자르는 데 익숙한 편이었다. 시간을 설거지 해 치우는 그녀의 모습은 단련되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구경하는 것에 숙달되어 있었다.

"기차를 타지."

맨 처음 나는 막연하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녀는 금방 내 말을 되받아 했었다.

"기차는 다섯 시간, 버스는 세 시간 반이에요. 한 시간 반을 왜 길바닥에 뿌리죠?"

우리는 버스를 타기로 했었다. 한 시간 반을 길바닥에 뿌리고 싶지 않은 그녀의 절약심은 한 시간이라도 빨리 우리 어머니를 만나 보아야겠다는 그녀의 충정에서가 아니라 한 시간 반의 허송이 무조건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버스를 타기 전에 매점에서 귤을 한 봉지를 샀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귤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여자란 도저히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동물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운데 손가락 세 개를 꽉 펴 올리면서 그녀는 다그치듯 내게 말했었다.

"3개월 째예요, 아셨죠?"

"알았어."

"자길 사랑했던 기억은 긴가민가한데 임신한 거는 왜 이렇게 덜컥 겁이 나죠?"

그랬다. 우린 정말 덜컥 겁이 났었다. 덜컥 겁이 나면서 머리에 문득 떠오른 사람이 어머니였다. 문득이란 말이 그러하듯이 나는 2년여 동안 그 이를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묘희에게 너무 열중해 있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단 그이 편에서 책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일체 간섭이 없었다. 물몬 서로간의 안부 정도는 편지로, 흑은 풍편이란 막연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주고받은 터였지만 그때마다 매우 상투적인 사연이었거나 단편적이고 의례적인 소식들뿐이었다. 그런 상투적인 편지나 풍편의 소식을 들을 적마다 나는 뒷문 밖으로 내쫓기는 개처럼 뜨끔한 모욕감을 느끼곤 했었다. 객지에 나둥그러진 한 어미의 자식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간단없는 관심이나 일상적한 염려로부터 무자비하게 내동이쳐진 듯한 소외감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이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내가 살고 있는 독신자 아파트로 대필의 편지를 보내오곤 하였다. 그것은 내가 석 달만에 한 번 꼴로 송금해 .드리고 있는 생활비조의 돈에 대한 답신일 때가 거의 전부였다. 그런 편지는 거두절미하고 내가 송금한 돈의 액수만 정확하게 적혀 있기가 보통이었다. 나는 답신을 보내실 필요가 없다는 편지를 내게 되었었고 그이는 내 제안에 말없이 승복했었다.

"이제 한 시간이죠?"

그녀가 이번엔 손가락 하나를 꼬놔 보이면서 말했다. 나는 세 개가 아닌 것에 적이 안심하면서 대답했다.

"그래 이제 한 시간이다."

물론 그녀는 어머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 아니 그런 것들을 주절주절 늘어놓기도 전에 우리는 서로가 좋아지게 되어 버렸고, 좋아지게 되어 버렸으니까 어머니가 어떻고 시골집이 어떻고 하는 따위는 군더더기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우린 이해하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을 가지고 만난 사이가 아니었고 만나고 나서부터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그것이 결코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사란 어차피 그렇기 마련이었고 또한 다소 앞뒤가 뒤틀린 감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겸양이나 도덕적인 것으로 그런 것들을 곧잘 해결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린 시골 가야겠죠?"

손가락 세 개를 내게 떨쳐 보이던 그 이튿날 오후 그녀는 가까스로 심각한 표정이 되어 그렇게 말했었다. 물론이었다. 확실한 건 내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란 것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대답했다.

"물론이지."

"전 준비됐어요. 언제라도 좋아요. 아이 밴 여자란 언제든지 준비하고 있어야 하니깐요."

그러면서도 묘희는 묘하게도 결혼식이란 말을 입 밖으로 흘려 내지 않는 희한한 재간을 갖고 있었다. 하긴 그 회한한 재간이 오히려 나를 철저하게 옭아매는 재간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내일도 좋아? 마침 토요일이니까."

"그래요. 월요일이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팬찮아요?"

"월요일은 왜?"

"일 주일의 시작이니깐요."

그녀는 그처럼 가벼운 기분으로 어머니를 만나려 하고 있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우리들의 결혼에 굳이 반기를 들고 나올 까닭이 없었고 묘희란 여자가 또한 어머니의 눈에 들지 않을 만큼 못난 여자가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다. 오히려 당신의 며느리 감으로선 과분한 여자임에 틀림없겠고 보면 당신께서 반기를 드실 수 있다면 그 과분한 느낌 때문일 게 분명했다. 그러나 시골 여자들이란 그 과분한 것에 대처하는 데는 얼마나 의뭉스러우며 또한 단련되어 있는가. 과분하다는 것과 맞닥뜨렸을 때 어머니는 맨 처음 손을 어떤 식으로 내저어야 하며 나중엔 어떤 식으로 시선을 내리깔며 승복해야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버스가 멎었다.

"저기죠?"

그녀가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가리키는 곳에 낯익은 산 구름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황망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버들내가 마을 앞을 가로질러 흐르지 않고 있었다면 나는 마을을 그냥 지나쳐 버렸을지도 몰랐다. 마을의 이름도 내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버들네였다.

6년만에 찾아간 마을은 굉장히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변모되어 있었다. 마을은 6년이란 세월의 길이보단 훨씬 더 멀리 내게서 멀어져 갔다는 느낌이 그 조그만 정류소에 내려서 내가 느낀 전부였다. 버들네는 벌써 (옛날에,,,,,,)라는 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할 곳은 아니었다. 그 지긋지긋한 (옛날에)를 깡그리 까바수고 마을은 일어나 앉아 있었다.

집에서 뒤꼍으로 나가면 탱자 울타리가 길게 뻗어 있었다. 탱자 울타리를 마냥 따라 올라가면 허리를 굽혀서 표주박으로 물을 퍼 올리던 우물이 있었다, 우물 옆에는 거무튀튀한 등걸을 굽히고 선 감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감 꽃을 줍기 위해 새벽이면 감꽃 같은 눈꼽을 양 눈에 단 악다구니들이 우물가로 모여들어 감 꽃을 줍곤 했었다. 그 탱자 울타리로부터 시작된 좁은 마을 안 길은 멀리 산자락 아래에까지 뻗어 있었고 그 안 길에선 항상 개가 짖었다. 그 읔자 울타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죠?"

묘희가 물었다. 그녀는 조금은 을씨년스런 모양이었다

"따라와."

나는 이미 그때 우리 집을 발견하고 있었다. 추녀 끝에서 금방 노래기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초가집으로 늘어설 적에 나는 힐긋 그녀를 훔쳐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서 나는 아무 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당신께서는 마침 채전 밭을 매고 계시다가 예고도 없이 들어서는 우리들을 맞았고 그리고 툇마루에서 묘희의 절을 받았다.

"참 많이도 변했구나. "

묘희의 인사를 받고 난 다음, 당신께서는 밑도 끝도 없이 그 한 마디를 불쑥 내뱉었다, 무엇이 변했다는 뜻인가. 나는 그때 어머니의 그 말 속에 숨어 있을 법한 감정의 앙금 같은 걸 건져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허사였다. 흐뭇하다든가, 섭섭하다든가, 그런 느낌에다 이가 맞게 소속시킬 만한 건덕지가 그 목소리엔 정말 없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만 건조했을 따름이었다. 묘희는 어머니의 시선에 얼굴을 빼앗긴 그 순간부터 어머니처럼 굳어져 버렸다. 묘희가 거들겠다는데도 한사코 뿌리치며 어머니는 흔잣손으로 저녁밥을 지었다. 어머니는 딱 한 번 그녀로부터 절을 받았을 적에 그녀를 보았을 뿐 저녁 내내 나만을 상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마을을 뜰 때가 왔구나."

저녁상을 물린 뒤 어머니는 다시 불쑥 그런 말을 내뱉었다.

"뜨다니요, 어디로 말씀입니까?"

묘희는 줄곧 내 등뒤로만 붙어 다녔다. 어머니는 무턱대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니 말이 맞다. 참말로 뜬다는 말이 우섭기도 하다."

"그런데요?"

"글쎄 말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염치없이 이 마실에 더 이상은 눌러앉아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하기야 이날 이때까지 이 동네에 들어와 살 수 있었던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지만서도 ,,,,,, 암 그렇고 말고. "

어머니는 볼품없이 늙어 있었다. 묘희가 내 곁에 있었으므로 어머니는 더욱 그랬다. 그런 어머니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나는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 귀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나는 그 순간 어머니에게 분노를 느꼈다. 어머니는 기어이 그 말을 묘희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도대체 그 귀신의 꼬리를 아직도 입에 물고 있어야 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옅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용서할 수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20년이 가까워 오지 않는가.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고 그런 것들을 굳이 따지고 들려는 사람도, 그리고 발설하려는 사람도 이젠 없었다. 그것은 절대로 놀라운 것이 아니었고 지탄받을 것도 아니었으므로 사람들은 관심 밖의 일로 제쳐 두고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귀신을 지금까지 입과 머리 속에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어머니의 그 궁색한 모습은 처절하다 못해 차라리 분노를 느끼게 잔다는 뜻이었다. 그런 면에서 어머니는 죄인이랄 수 있었다. 내가 버들네를 자주 찾아오지 않고 있는 까닭을 어머니는 알고 있을 터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 저항의 모습엔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6년만이 아니라 12년만에 버들네를 찾아왔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나를 붙들어 앉히고 내가 누구라는 걸, 그리고 누구의 아들이란 걸 확인시키고 또 확인시키려 할 것이었다, 그것은 흡사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가진 당신께서 해야 할 마지막 남은 인생의 채무인 것처럼.

어머니는 드디어 오늘 나와의 한판 승부를 노리고 있는 셈이었다. 묘희 때문에 내가 물러날 수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벌써 계산에 넣고 있었다. 당신께서는 이른바 그 절호의 기회와 마지막 기회라는 두 개의 카드를 손아귀에 함께 쥐고 있는 폭이었다. 어머니는 묘희에게 그걸 폭로하고 싶은 거였고 그 폭로가 가져올 2차적인 효과조차도 벌써 계산에 넣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머니가 노리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젠 그것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이 변했다는 걸 왜 모르고 계시죠? 아니 어머님이 그걸 모르고 있을 리가 없죠."

어머니는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니가 잘못 본 게다. 세상이 변했지 우리가 변했느냐."

"우리가 누구입니까 ? 변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유독 어머니만은 변하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거죠? 발버둥을 칠 게 따로 있지."

"발버둥친다고 되는 게냐 이게?"

"참 딱하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는 3개월이면 20년이 됩니다. 그런데 왜 내가 그 아버지의 굴레를 애써 덮어쓰고 살아가야 한단 말입니까?"

"넌 그 애비 자식이 아니냐?"

나는 그곳에서 그만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그럼 계가 띠 버들네로 되돌아와서 대물림의 칼을 받아서 육고간을 내고 푸주질이라도 해야 쓰겠단 말입니까? 아버지처럼 돝고기나 끊어 팔며 살아요? 어머니 지금 읍내에서 푸줏간을 누가 하고 있는지 알고나 계세요? 일 년 전까지 면장질하던 최 누군가 하는 그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버들네로 돌아와서 육고간을 내겠다면 아마 그 사람이 온갖 이권과 권력을 동원해서라도 허가를 내지 못하게 훼방을 놓을 거란 말입니다. 그걸 아셔야지요. 그런 걸 두고 이른바 세상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관할 게 아니다."

"그럼 어머니의 뜻은 뭐란 말입니까? 뒤에 있는 이 여자에게 우리의 근본을 까뒤집어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셨군요."

"이 마을을 떠야겠다는 게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가 그 망령에 매달려 있는 이상은 이 마을을 떠나 어딜 가신다 하여도 어머니가 살 곳은 없습니다."

"어쨌든 떠나야 하겠다. "

"도대체 이 마을에서 어느 호로자식이 어머니를 보고 백정의 내자였다 해서 육고간으로 머리라도 집어넣던가요?"

어머니는 이번엔 고개를 양옆으로 훼훼 저었다. 그이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다."

"그럼요?"

"버들네 사람들이 오히러 나를 보면 길을 내어 줄 정도다. 네가 서울로 가서 크게 출세를 했다고 말이다. 상무가 되었다고."

"그럼 됐지 않았습니까?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에 심통이 나서 어머닌 자식이 먹으려는 밥에다가 바늘을 꽂는 겝니까?"

"그게 싫어. "

"싫다니요? 그게 왜 싫어요? 그 사람들이 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그것까지 혜아려 줘야 할 운명까지도 어머니가 걸머지고 생각하고 계신다면 그거야말로 큰일입니다."

"그 사람이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게 난 싫어."

"그게 세상이 변했다는 뜻입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 정당한 대우를 받고 계시는 겝니다. 어머니가 그것에 부담 가지실 건 없으세요."

"그러니까 세상이 워낙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게다. 백정의 자손이 업을 바꾸면 대가 끊기거나 병신이 태어나는 법이다. 난 그걸 보아 왔지. 너의 삼촌도 그랬었고 사촌도 그랬었다. 곰배팔이가 태어나고 벙어리가 태어났지 않았느냐. 그게 다 칼을 받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받은 업보란다. 백정은 백정의 주작대로 살아야 하고 면장을 하던 사람은 면장의 주작대로 살아야 하는 법이다. 면장이 푸줏간을 하고 백정의 소생이 상무질을 한다면 그것이 뒤죽박죽이지 워째 그것이 세상사란 게냐. 옛날에는 우리 육고간에 와서 여보게들 돝고기 한 칼 주게 하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내게 길을 비켜 주다니 이게 잘못된 세상이지, 어떻게 넌 세상이 달라졌다는 게냐. 사람이란 백정이든 양반이든 엄연히 뼈대가 있고 조상이 있지 않느냐. 그걸 속이고 살아가는 건 사는 게 아니다. 그게 바로 뿌리가 뽑혀 허공을 도는 게지."

"어머니의 속내가 정녕 그러시다면 어머님이야말로 이 세상에선 살아가실 땅이 없습니다. 어머니를 용납해 줄 사람이 없지요. 그리고 설령 지금에 와서 어머니가 옛날의 모습대로 되돌아가신다 할이라도 누가 어머니를 보고 여보게들 돝고기 한 칼 주게 하겠습니까."

"참 이상도 하지, 사람들이 그렇게 변할 수가 있는 겐지 원,,,,,"

나는 어머니의 표정 이 창피스러움과 곤혹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은 그런 어머니와 대좌(對坐)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나는 묘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우린 시멘트로 포장이 된 마을 안 길을 따라 옛날엔 표주박으로 떠낼 수 있었던 우물께로 갔다. 그러나 그런 우물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우물이 있던 자리에 게시판이 서 있었다. 우린 잠시 갈피를 못 잡고 그 어름에서 서성거렸다.

이런 경우 난 익숙해 있지 않았다. 어디로든 꼭 가긴 가야 하겠는데 별로 갈 곳이 없었다. 그래 참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지 하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감나무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 감나무는 마을의 악다구니들에겐 이른바 반복의 역사, 세월이 가고 있다는 것을 정기적으로 우리들에게 일깨워 주었었고 그리고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 감나무는 꽃을 피웠고 그리고 어김없이 결실을 맺었으며 그리고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잎을 떨구었다. 나는 문득 시간이 정지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무작정 옛날에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라 오르는 길이 있을 법했던 길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숨소리가 귀에 잡힐 듯 명료하게 들려왔다,

 

아버지에겐 망건을 쓰거나 탕건을 쓰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초례를 치르긴 하였으나 곧장 상투를 트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었다. 나를 낳은 연후에야 겨우 그는 상투를 틀 수 있었지만 그러나 항상 봉두난발이었었고 고름 없는 저고리에 검은 동정을 달았었고 검정 바지를 입었었다. 나는 아버지가 주의(周衣)를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백정의 후손으로서 그리고 무자리 천출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냈다. 사람들 앞에서 마시거나 피우지도 않았고 길에서 사람을 만났을 땐 입례(立禮)하고 그가 멀리 지나갈 동안 기다렸다. 내가 아이들과 싸움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도록 가두어 길렀고 쇠가죽을 깔고 앉아서 혼자 술을 마셨다. 우리는 언제나 가난했고 그리고 겨울은 항상 추웠다. 아버지는 방에다 군불을 지피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었다, 어느 땐 어머니가 말했다,

"우린 괜찮습니다만 이러다간 내지른 소생 한속으로 죽이겠소. "

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백정의 새끼가 반은 소인데 그렇게 쉽게 죽는 법이 아녀."

"그럼 꼭 죽어야 쓰겠소? "

"어허 이런 놈의 여편네가? 그놈이 한속으로 죽는 걸 보았어 ?"

"군불 좀 지핀다구 그게 무슨 죄가 된다는 게요? "

"백정놈이 여염집 흉내를 내면 못 써. 무자리 천출들이 무슨 놈의 춥고 더운 걸 안다구 춥다구 군불을 지펴 ? 그러다가 지레 죽는다는 걸 몰라서 그 지랄인가? 썩 걷어치워."

아버지는 충혈된 두 눈을 부라렸는데 그 눈은 흡사 천궁(天宮 :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소의 두 눈을 연상시켰었다.

아버지는 일 년에 두 번, 그러니까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을 짧으면 4,5일 또는 7, 8일 동간이나 바람처럼 어디를 다녀오곤 하였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몸에다 많은 돈을 지녔었다. 그 돈은 일테면 겨울에서 봄까지 또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도살로 벌어들인 돈이었다. 아버지가 일 년에 두 번씩이나 몸에 지니고 나가는 그 엄청난 액수의 돈 때문에 우린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철저하게 그 돈의 행방에 새해서 불평은 물론, 일언반구의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 돈을 전대에다 넣어 집을 나설 때 아버지의 두 눈은 소의 그것처럼 충혈되어 있었고 어디에다 그 전대를 풀고 돌아오는 날은 항상 허옇게 지친 모습이었다, 나중에사 안 일이었지만 아버지가 가는 곳은 진주라는 곳이었고 그곳엔 속박된 백정들의 인권을 되찾자는 운동인 형평사(衡平社)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돈을 쓰기 위한 일 년의 두 번의 출타 이외엔 아버진 일체의 바깥 출입이 없었다. 진주에서 돌아오는 날은 반드시 술을 마셨다, 그리고 아주 굴신을 못하도록 흠씬 취해 버리던 것이었다. 지치고 지친 모습으로 아버진 대취해서 쓰러져 잤다.

내가 7살 되던 해에 면서기가 우리 육고간으로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버지가 고름 없는 저고리를 여미며 그들 앞에 꿇어앉았다.

"길상이를 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그 젊은 면서기가 그렇게 말하자, 아버지는 눈자위를 까뒤집을 만치 놀랐다.

"학교라니요?"

"학교를 몰라요? 글을 배우는 곳."

"제 소생 이 감히 학교를......"

"왜 그 아이가 어때서요?"

"제 소생이 아닙니까. 백정의 권속이야 반은 소가 아십니까."

"그래서요 ? "

"백정의 자손이 업을 바꾸면 대가 끊기게 되지요."

"글을 배운다는 게 업을 바꾼다는 뜻입니까? "

"백정에겐 글이 필요가 없습지요. 글을 배우게 되면 칼을 대물림하지 못하니 그것이 바로 업을 바꾸는 게 됩지요."

"당신네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그리고 좋든 싫든 길상이란 아이는 학교를 보내야 합니다. 이건 국가에서 명령하는 것이니까요."

"누가 백정에게 명령을 한다는 것입니까요?"

"당신 참 뺏뻣하구려. 그러다가 서서 오줌 싸겠소. 국가가 명령하는 일엔 백성이 따라야 한다는 것도 모른 척해야겠다는 것입니까?"

"그깐 백정의 소생 하나쯤 쑥 패 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요?

"그건 위법이요."

"법이라니요? 백정에게 무슨 법이 필요하십니까? 쇤네는 법 없이 평생을 살아 왔습지요. 그런데도 아무런 불편이 없었습니다요. 그런 것 지체 높으신 분들이 가지시는 것이지요."

"당신 보아하니 천출입네 하면서 뻣뻣하긴 지체 높은 양반 열을 짐쪄 먹겠소."

"제가 ------감히 어떻게 ------혹이나 동네 어른들이 들으셨다면 큰일입니다요. 백정의 권속이야 반은 소입지요. 소새끼가 지체 있는 집안의 도령님들과 섞여서 글을 배운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 아니옵니까. 그래서 공연히 저의 권속들이 관재라도 입게 된다면 저희는 끝장입니다요."

그 면서기라는 사람이 땅땅 벼르고 돌아간 뒤 아버지는 하루 종일 말이 없었다. 그날 해가 바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아버지는 어디 가서 몹시 깡마르고 늙은 황소 한 마리를 몰고 왔다.

"타거라."

소를 마당 귀퉁이에 세워 두고 지겟문을 열면서 아버지가 내게 명령한 말이었다. 나는 오들오들 떨었다.

"싫여."

"길상아?"

아버지는 두 눈을 부릅떠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힐끗 아버지의 등뒤를 훔쳐보았다. 천궁에 갈 때처럼 손에 도끼라도 들려져 있는가 해서였다. 다행히 아버지의 등뒤에는 도끼 자루가 보이지 않았다. 우정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침묵 사이에서 나는 거의 속수무책으로 떨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졌다.

"타거라."

"싫여 ,,,,,,"

"이놈 자식, 웬 고집이 그리 드세냐. 타지 않으면 쫓아 낼 테다."

"싫여 ,,,,,,"

"별종이 태어난 게다."

나는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타거라. "

이번엔 어머니가 독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더 이상 지체할 틈이 없는 듯 나를 덜렁 안아서 소 잔등에다 태웠다. 길마 위에 나를 앉히고 난 다음 밀삐끈으로 길마에다 나를 꽁꽁 묶었다. 그리고 아버진 소를 몰기 시작했다. 나는 울었고 그리고 딸꾹질을 해댔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나를 태운 소는 쉬엄쉬엄 밤을 새워 어디론가 걸어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그리고 일정한 목적지도 없는 것 같았다. 지쳐서 잠에 떨어진 내 귀에 아련히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이슬에 흠뻑 젖은 아버지와 내가 우리 집 마당에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우리들 부자의 그 밑도 끝도 없는 하룻밤의 여행에서 돌아온 날 아버지는 앓기 시작했다. 물론 어머니는 앓아 누운 아버지를 위해 약을 쓰거나 심지어 강약조차도 쓰지 않았다.

"임자……

아버지가 꺼져 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

"절대로 약을 쓰면 안돼."

어머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버지가 숨질 때까지 그이는 내내 냉수 사발만 들이켰다. 물론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을 위해 상여를 쓰지 못했다. 망혼을 달래는 시침굿도 없었고 여막을 짓지도 않았다. 천궁에서 소가 죽어 가듯 아버지는 돌아가신 것이었다.

"네놈이 니 애비를 잡아먹은 것이니라."

아버지를 묻고 돌아오던 날 어머니는 내게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말하던 것이었다.

"어째서 백정의 소생으로 너 같은 요물이 태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소 잡는 칼을 부엌 시렁에 얹어 두면 파()가 든다더니 네놈이 태어날 적에 아비가 잘 간수를 잘못한 게 틀림이 없지."

며칠 후엔가 어머니는 혼잣소리를 하였다. 세상이 변해 가는 것을 그들은 순전히 내 탓으로만 돌리려 하였고 내가 그들의 생활을 좀먹어 가는 장본인으로만 생각하였다.

 

"숨차요. "

언덕길을 반도 오르지 못해서 묘희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몹시 창백해져 있었다. 언덕길에 달빛이 차가왔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묘희가 임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였다. 늙은 여자들이란 그런 눈치 하나만은 빠르지 않은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의 아이에게 저주를 퍼부은 것이었다.

- 백정의 소생이 업을 바꾸면 대를 끊기거나 병신을 낳는다.

그만치 철저한 저주가 도대체 어디 있을까. 하물며 자기의 며느리가 될 사람을 보고 한 말임에야. 왜 아직도 내가 당신을 어머니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당혹을 느꼈을 때 왜 어머니를 맨 처음으로 뇌리에 떠올리게 되었는지 후회스럽고 가슴 아팠다.

나는 그녀의 겨드랑이에다 팔을 넣었다. 묵직한 중량감이 내 팔에 얹혀왔다.

"인간이 70평생 동안 가질 수 있는 많은 시간 중에서 정말 자기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아마 열 손가락에 들 만큼 사소한 시간이겠죠."

그녀는 애써 말을 피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자신도 없었다. 우리는 겨우 언덕을 넘었다.

언덕을 넘고 보면 질펀한 개활지가 나왔다. 개활지에는 억새와 갈대가 엉키어 자라고 있었다. 달빛이 갈대밭 뀌로 내려앉아 바람을 타고 너울거리고 있었다. 우린 개활지를 오른편으로 끼고 돌자갈 길을 한참이나 걸어갔다. 그녀가 앞서서 걸었고 내가 뒤따르는 편이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버들네를 떠나는

이후로는 묘희와는 혜어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존경할 만한 분이에요."

앞서서 걷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난데없는 한 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분이야말로 여자죠. 길상 씨의 출세를 속으로는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겠어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의 괄시를 함께 가지고 태어나서 아들만은 그런 괄시를 받지 않도록 해야지 하는 소원이 없었겠어요? 속으로 울고 속으로 질었을 테죠. 그러나 어머님은 아버님 편을 택한 거예요. 어머님은 이제 우리들에게서 마지막 남은 어머니죠."

"아버진 처음부터 나를 별종으로 생각했더랬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머님은 아버님을 택한 거죠. 온 마을이 전부 현대식 주택으로 개조를 했는데도 어머님은 옛날 육고간이 있던 그 집을 그대로 수리조차 않으신 채 살고 계시는 걸 보면,,,,,,"

묘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혹시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바람이 차지 않아?"

"괜찮아요. "

우린 자꾸만 걸어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이 길이 천궁으로 가는 길이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길이 천궁으로 가는 길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 둘은 벌써 도살장 앞에까지 와 있다는 것을 알. 벌써 추녀의 한끝은 무너져 땅에 끌리고 있는 그 집은 마을에서 건초 창고 따위로 쓰고 있는 듯 건초들이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건초가 썩는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저기로 들어가서 잠깐 추위를 식히죠."

묘희만은 그곳이 옛날 20년 전의 아버지가 도살장으로 쓰던 곳이란 것을 모르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내가 굳이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고 나선다면 아마 눈치빠른 그녀는 그 집의 내력을 캐물으려 할 것이었다, 우린 도살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건초가 썩어 가는 듯한 냄새 이외엔 아무 냄새도 없었다. 우린 건초 더미를 기대고 나란히 앉았다. 손을 부비던 그녀가 부비던 손으로 내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당신을 사랑해요. "

그녀가 흐느끼듯 말했다. 역시 나든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헤어짐에 또 다른 잡다한 찌꺼기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심정에서였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또한 묘희에게서 패배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묘희가 건초 더미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코트를 벗어 건초 더미 위에다 깔았다. 그리고 -블라우스-의 앞 단추를 끄르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난 이 집이 무엇하던 집인지 알고 있어요."

"무슨 소리야? "

나는 온몸의 피가 한 바퀴 역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길상 씨 아버님이 생업을 영위하던 곳이죠?"

……

"제 직감이었어요."

"왜 그래?"

"이곳으로 오고 싶었어요. 아니 제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곳이에요."

"일어서."

나는 나직하나마나 단호하게 말했다.

"우린 여기 있어야 해요."

"? 미쳤어?"

"어머닐 위해서죠."

"미쳤군, 놘전히 돌았어."

"이리 오세요."

묘희는 내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그녀는 이미 웃도리를 다 벗고 브레이저 차림이었다. 그녀는 내 차가온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젖무덤에다 갖다 얹었다. 나는 그녀의 눈자위가 허공에 뜬 걸 보았다.

 

그녀의 집은 장충동에 있었다. 일 년 전에 나는 그녀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시골의 목장에 내려가시고 없었다. 꽃꽂이 전문인 그녀의 어머니가 초대의 수발을 맡아보았다. 모녀는 완전히 흥분되어 있었다. 묘희는 나를 자기 집에까지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성취감에 들떠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꽃꽂이 학원의 생활에 대해서 자랑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상대를 만났다는 것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에게서도 있었다.

"월급이 얼마나 되죠?"

"팔십만 원쯤 되죠."

"총각 생활로선 그만 하시면 너무 많군요. 그쵸?"

50이 넘은 그녀의 어머니는 어린애들을 흉내내는 말투를 쓰고 있었다.

"아마 그럴 테죠."

"전부 저축?"

"그런 편이죠. 시골에 계시는 어머님에게 조금 보내는 거 외엔."

"홀어머니시라죠?"

"그런 셈이죠."

"얘 묘희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홀어머니 모시기 힘들다는데?"

"무슨 상관야. 모시지 뭐."

"? 넌 나보다 트였구나."

"그럼, 난 엄마 닳진 않을래, "

"그게 무슨 소리니?"

"할머니 구박하고 있잖어."

", 길상 씨 앞에서 무슨 못된 소리니?"

"길상씨 하지 마."

"그럼 뭐라고 부르란 게니?"

"홍 선생, 홍 서방 다 있잖아."

"홍서방이라니 아직 약혼한 사이도 아닌데?"

"그렇지만 우린 벌써 끝간 데까지 간 걸."

"어마, 어마, 이게 무슨 소리니?"

그녀의 어머니는 식탁에다 이마를 곤두박고 한참이나 앉았다가 겨우 고개를 쳐들었다. 그때 잽싸게 묘희가 나를 잡아끌었다. 마루를 건너 화장실 옆에 있는 도어를 열고 들어가자는 시늉을 했다. 그 방에 며느리에게 구박을 받고 산다는 묘희의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나는 큰절을 했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때 나는 방 한켠에 너무나 윤이 나는 놋요강 하나를 보았다. 그 놋요강은 너무나 잘 닦이고 간수되고 있어서 그 방안에 있는 모든 가구 집기들이 퇴락해 보였다. 묘희 할머니는 나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는 동안 줄곧 그 놋요강을 손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저기에다 소변을 보시진 않아요."

묘희가 내게 귓속말을 했었다.

"어머니가 저걸 몰래 감춰 버린 적이 있죠. 그때 할머니는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했지 뭐예요."

 

우린 건초 더미 위에서 일어났다. 정사 후의 그 후줄근한 기분 때문으로 우린 잠시 말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이제 가야죠. "

그녀는 늙은이들처럼 과거의 냄새가 푸근히 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일어나서 천천히 건초 더미 위에 벗어 놓은 옷들을 주워 입었다. 멀리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일은 가야죠."

"나두 역시 가야 해."

우리는 천궁에서 나왔다. 그녀의 코트 자락엔 건초들의 지푸라기가 묻어 있었다. 우리는 올 때와는 달리 내가 앞장을 서고 그녀가 뒤따랐다.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개활지에서 바람을 타고 달빛이 밀려왔다.

우린 벌써 헤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내 옆으로 다가와서 팔짱을 끼었다.

"삼 개월째라는 거 알죠?"

"그래 알고 있지."

"우린 쑥이었죠?"

"어떡하려는 게지?"

"무서워요."

"누가?"

"내가 무섭단 얘기죠."

"?"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우리 할머니 방에 들어가 보셨죠? 그리고 할머니가 애지중지하시던 그 빛나는 놋요강도 보셨죠?"

"알구 있어, 할머니가 왜 그 놋요강을 애지중지하고 있는가를 난 알아차렸지. 그건 할머니가 대물림으로 받으신 거겠지. 묘희가 결혼을 하게 되면 아마 묘희에게 그걸 대물림했을 테지."

"그래요. 우리 증조 할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아세요?"

"선혜청의 당상관이었다구 묘희 어머니가 얘길 하시더군."

"아녜요. 그이는 유기장(鍮器匠)이었었죠. 아마 그래서 그 도살장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가 보죠."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땐, 벌써 어머니는 싸늘하게 식은 시신으로 남아 있었다. 당신께서는 한 손에 소 코뚜레를 힘껏 잡고 계시었고, 내가 서울에서 송금했었던 돈을 단 한푼도 축내지 않고 장롱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싸늘하게 식은 시신 위로 2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망령이, 돌확에 떠오르는 6월의 구름처럼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망령이 묘희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고 있는 걸 나는 등뒤로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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