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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3

72.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

by 자한형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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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강 노동가족(勞動家族)의 생계비(生計費)  -조세희

 

영희의 이야기를 나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영희는 독일 하스트로 호수 근처에 있다는 릴리푸트 읍 이야기를했 다. 자세히 듣지 않아도 슬픈 이야기였다. 돌아간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나려고 했다.

릴리푸트 읍은 국제 난장이 마을이다. 여러 나라의 난장이들이 그곳에 모여 살고 있다. 키가 칠십 팔 센티미터로 세계에서 제일 작은 사나이인 터어키인 난장이도 최근에 그곳으로 이주했다. 릴리푸트 읍의 난장이 인구는 늘어만 간다. 릴리푸트 읍을 제외한 곳은 난장이들이 살기에 모든 것의 규모가 너무 커서 불편하고 또 위험하다.

난장이들에게 릴리푸트 읍처럼 안전한 곳은 없다. 집과 가구는 물론이고, 일상 생활 용품의 크기가 난장이들에게 맞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곳에는 난장이들의 생활을 위협하는 어떤 종류의 억압, 공포, 불공평, 폭력도 없다. 권력을 추종자에게 조금씩 나누어주고 무서운 법을 만드는 사람도 없다. 릴리푸트 읍에는 전제자가 없다, 큰 기업도 없고, 공장도 없고, 경영자도 없다. 여러 나라에서 모인 난장이들은 세계를 자기들에게 맞도록 축소시켰다. 그들은 투표를 했다. 그들은 국적 따위는 무시했다. 모두 열심히 투표에 참가하여 마리안느 사르를 읍장으로 뽑았다. 여자 읍장의 키는 일 미터이다. 독자적인 마을을 열망한 작은 힘들이 난장이 마을을 세웠다. 영희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곳 난장이들은 혁명가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제 자녀들의 출산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는다. 거인들이 사는 곳에서는 너무 불행했었다.

지금 릴리푸트 읍의 난장이들은 자기들의 특수 의료 문제, 사회 심리적인 문제, 그리고 재정 문제 등을 토의하고 있다. 해결해야 될 몇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우리는 극히 행복하다-고 마리안느 사르 읍장은 말했다.

-행복-이라고 영희는 썼다. 영희는 돌아간 아버지를 생각했다. 나는 영희의 눈에 눈물이 괴는 것을 보았다. 릴리푸트읍 같은 곳에서 아버지는 살았어야 헌다. 아무도 -난장이가 간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스트로 호수 근처에 살았다면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타살당한 아버지-라는 말을 영호가 했었다. 나는 영호의 말을 막을 수 없었다. 깊고 캄캄한 벽돌 공장 굴뚝 안을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아버지의 몸은 작았지만 아버지의 고통은 컸었다. 아버지의 키는 백 십 칠 센티미터, 몸무게는 삼십 이 킬로그램이었다, 은강 생활 초기에 나는 아버지의 꿈을 자주 꾸었다. 아버지의 키는 오십 센티미터밖에 안 되어 보였다. 작은 아버지가 아주 큰 수저를 끌어가고 있었다. 푸른 녹이 낀 놋수저를 아버지는 끌고 갔다. 머리 위에서는 해가 불볕을 내렸다. 아버지에게 그 놋수저는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불볕 속에서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지친 아버지는 키보다 끈 수저를 놓고 쉬었다. 쉬다가 그 수저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아버지는 불볕을 받아 뜨거워진 놋수저 안에 누워 잠을 잤다. 나는 수저 끝을 들어 아버지를 흔들었다. 아버지는 눈을 뜨지 않았다. 아버지와 몸은 놋수저 안에서 오므라들었다. 나는 울면서 아버지의 놋수저를 잡아 흔들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

어머니는 나의 머리숱에 손가락을 넣었다,

"가장이라는 생각을 하지 마라. 그러면 꿈을 꾸지 않을 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네 책임이 무거워졌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라."

"전 한 번도 가장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내가 말했다.

"아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너도 모르는 일이다. 네 마음속 어디엔가에 그런 생각이 들어 있는 거야."

어머니의 말대로 나의 마음속 어느 구석에 그런 생각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말했었다.

"얘야, 너는 장남이다."

아버지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집안의 기둥이다."

"영수야."

어머니는 말했다.

"나도 아직 일을 팔 수 있고, 영호와 영희도 자랄 만큼 자랐다.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면 우리는 너를 믿고 따라갈 거야."

은강은 릴리푸트 읍과는 전혀 다른 도시였다. 영희는 그것을 가슴 아파했다. 모든 생명체가 고통을 받는 땅이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은강에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고, 얼마 동안 정지했던 생명 활동을 우리는 은강에서 다시 시작했다. 나른 생명처럼 추상적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그것은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우리에게 준 것이었다. 중학교 때의 생물책 용어를 빌어 쓴다면 아버지는 자기와 똑같은 것을 복제하여 종족을 늘려 놓고 돌아갔다. 어머니에 의하면 아버지는 생명의 다른 모임터로 돌아갔다. 아버지의 몸은 화장터에서 반 줌의 재로 분해되었다. 그 반 줌의 재를 받아들고도 어머니는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누구나 죽으면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우리는 반 줌의 재를 흐르는 물위에 뿌려 넣었다. 영호와 나는 눈물을 주먹으로 씻어 내리며 울었다.

"숙제 다 했너?"

아버지가 물었었다.

"아뇨,"

나는 자를 대고 끝이 뾰족한 삼각형을 그렸다.

"숙제를 해."

"이게 숙제 야요."

아버지는 내가 그린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먹이 피라밋 야요."

내가 말했다.

"그 효용이 뭐냐?"

"생태계를 설명하는 그림이야요."

"설명을 해 봐라."

"이 맨 밑이 녹색 식물로 일 단계야요. 이 식물들을 먹는 동물이 이 단계이고, 식물을 먹는 동물을 잡아먹는 작은 육식 동물이 삼 단계, 또 이것을 잡아먹는 큰 육식 동물이 맨 위의 사 단계야요."

"영호야."

아버지는 말했다.

"너도 형처럼 설명할 수 있겠니?"

"못 해요."

영호가 말했었다

"형처럼은 못 해요, 그래도 전 알아요. 우리는 이 맨 밑야요. 우리에겐 잡아먹을 게 없어요. 그런데. 우리 위에는 우리를 잡으려는 무엇이 세 층이나 있어요."

"아버지도 쉬셔야지?"

어머니가 말했다.

"그 동안 힘든 일을 너무 많이 하셨어. 이제는 편히 쉬실 수 있을 게다."

"쉬셔야 할 분은 어머니예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반 줌의 재를 쌌던 흰 종이를 물위에 띄웠다.

우리는 물가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없어졌다. 바람이 불었다 햇볕이 따뜻했다. 몇 마리의 새가 어머니 옆에서 날았다. 나는 사태로 내려앉은 언덕을 보았다. 영호와 나는 거의 동시에 울음을 그쳤다. 아버지의 죽음이 우리 생명 활동의 양식에 변화를 주었다. 은강으로 온 우리는 호흡까지 조심스럽게 했다. 처음에 우리는 바싹 마른 콩알처럼 아주 약한 호흡을 했다.

영호가 먼저 은강 전기 제일 공장에 들어갔다. 영희는 은강 방직 공장에 들어갔다. 두 동생이 일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한 나는 은강 자동차에 들어갔다. 삼 남매가 똑같이 은강 그룹 계열 회사의 공장에 훈련공으로 들어갔다. 돌아간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일을 우리는 시작했다. 우리는 큰 공장 안에서 기계를 돌려 일하는 수많은 공원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그것도, 아직 기술을 익히지 못한 훈련공이었다. 우리는 그 집단 속에서도 최하 계급에 속했다. 어쨌든, 우리는 큰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고, 집도 공장이 멀지 않은 곳에다 얻을 수 있었다. 신분에 맞게 우리는 빈민굴에서 살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 노동이었다.

영호는 쇠로 만든 손수레에 주물을 넣어 날랐다. 영희는 훈련 센터에서 교육을 받으며 작업장으로 이어진 중앙 복도를 청소했다. 나는 승용차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부품들을 날라다 주었다. 한 대의 승용차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품으로 만들어졌다. 선참 공원들은 열심히 일했다. 조립 라인의 조립공들은 나를 또 하나의 보조 기계로 보았다. 공장장에게는 공권 전체가 기계였다.

그 공장에서, 묘하지만 기술의 진보나 변혁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면 나는 좀더 빨리 그만두었을 것이다. 처음 며칠 동안 나는 놀라운 기술에 매혹되었다. 주조 공장, 단조 공장, 열처리 공장, 판금 공장, 용접 공장, 공짜 기계 공장, 손 다듬질 공장, 도장 공장 등을 차례로 견학하고 나는 나의 조립 공장에 섰다. 실린더 블록을 만드는 주조 공장의 열기와 빛깔이 나를 흥분시켰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일하고 싶은 곳은 공작기계 공장이었다. 나는 선반 일을 배우고 싶었다. 작업을 하는 자동 선반이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내가 본 선반은 그때 타이어 공기 벨브 나사를 깎고 있었다. 공구대가 주축의 회전을 리이드 스크루우에 전했고, 바이트는 공작면에 나선을 그으며 작고 예쁜 나사를 깎아냈다, 내가 그 앞에 서 있을 때. 주축대에서 흐른 기계 기름이 오일 팬에 흘러내렸다. 나에게는 그것이 땀으로 보였다, 선반공은 바이트의 이동 속도를 조절하며 신입 훈련공의 어깨를 툭 쳤다. 나는 공작 기계 공장을 나오며 나의 선반을 갖겠다고 결심했다.

영호도 나와 비슷했다. 영호는 연마 일을 하고 싶어했다. 회전기 가공반에 있는 연마기 이야기를 나에게 하고는 했다. 연마도 고도의 정밀 작업이다. 정밀도 일천 분의 오 밀리미터 이내의 작업을 계속해 내는 기계공들 앞에서 영호는 기가 죽었다. 아버지는 너무 힘이 없었다. 두 아들을 공업 학교에도 보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시대가 아버지를 고문했다. 난장이 아버지는 경제적 고문을 이겨내지 못했다. 공업 학교를 나왔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기능공으로 일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았다.

한 달이 채 못 되어 권총 모양의 손 드릴을 받았다. 자동 선반기를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뻐했다. 어머니는 내가 조립 공장의 기계공으로 그 훌륭한 승용차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승용차 시이트 뒤에 달려 있는 트렁크에 구멍을 뚫었다. 드릴로 구멍을 뚫은 다음 십자나사못을 틀어넣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나는 권총 모양의 두 가지 공구를 사용했다. 하나로는 구멍을 뚫고 다른 하나로는 나사못과 고무 바킹을 넣었다. 선참 통원들은 나를 -쌍권총의 사나이-라고 불렀다,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기계에 의한 속박을 받았다. 난장이의 아들에게 이것은 아주 놀라운 체험이었다. 콘베어를 이용한 연속 작업이 나를 몰아붙였다. 기계가 작업 속도를 결정했다. 나는 트렁크 안에 상체를 밀어 넣고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해야했다. 트렁크의 철판에 드릴을 대면, 나의 작은 공구는 팡팡 소리를 내며 튀었다. 구멍을 하나 뚫을 때마다 나의 상체가 파르르 떨었다. 나는 나사못과 고무 바킹을 한입 가득 물고 일했다. 구멍을 뚫기가 무섭게 입에 문 부품을 꺼내 박았다.

날마다 점심 시간을 알리는 버저 순리가 나를 구해 주고는 했다. 오전 작업이 조금만 더 계속되었다면 나는 쓰러졌을 것이다. -쌍권총의 사나이-는 점심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혓바늘이 빨갛게 돋고, 입에서는 고무 냄새와 쇠 냄새가 났다. 물로 양치질을 해도 냄새가 났다. 큰 공원 식당에 가 차례를 기다려 밥을 타지만 수저를 드는 나의 손은 언제 나 떨리기만 했다. 시래기와 꽁치를 넣어 끓인 국을 반쯤 먹었다. 밥도 반밖에 못 먹었다. 날마다 보리가 더 많아 푸석한 밥을 나는 대했다. 반찬은 허연 김치 몇 조각뿐이었다. 좋은 식사가 나왔다고 해도 나는 먹지 못했을 것이다. 공구실 조역이 내가 식사를 끝내기를 기다렸다. 정량의 밥이 그에게는 늘 모자랐다. 남은 밥을 밀어 주면 그는 웃었다. 남은 식사 시간은 공장 옥상에 올라가 보냈다. 옥상에 올라가면 바다가 보였다. 더러운 바다였다, 은랑내항은 언제나 썩은 바다로 괴어 있었다. 항만 관리청 소속의 작은 청소선 하나가 항내의 부유물을 제거했다. 그때 산화철 생산 공장에서 내뿜는 유독 개스가 내가 앉아 있는 옥상을 지나갔다. 나는 그 개스 속에 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 몸의 신경을 진정시켰다.

옥상에서는 영희가 일하는 방직 공장도 보였다. 영희는 이제 푸른 작업복을 입고 흰 작업모를 썼다. 영희는 생산부 직포과에서 일했다. 모자에는 훈련공 마크가 그대로 달려 있었지만 하는 일은 원공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영희는 일 분에 백 이십 걸음을 뛰듯 걸었다. 영희가 뛰듯 걷는 동안 직기들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기계도 고장이 나면 죽어 버렸다. 아니면 일을 제 마음대로 했다. 영희는 죽은 틀은 살리고, 이상 작업을 하는 틀에서는 관사를 풀어 이어 정상으로 돌렸다 영희에게 주어지는 점심 시간은 십 오 분밖에 안 되었다. 직포과의 직공들은 차례를 정해 한 사람씩 달려가 식사를 하고 왔다. 그 동안 조장이 틀을 보아주었다. 영회도 차레가 되면 조장에게 틀을 맡기고 중앙 복도를 지나 식당으로 달려갔다. 내가 한 점심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점심을 영희도 했다. 영희는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먹었다. 허겁지겁 먹고 다시 현장으로 달려들어가 직기 사이를 뛰듯 걸었다. 영희는 한 시간에 칠천 이백 걸음을 걸었다.

작업장의 실내 온도는 섭씨 삼십 구도였다. 직기가 뿜어내는 열기가 영희의 몸 온도를 항상 웃돌았다. 무더운 여름의 은강 최고 기온은 섭씨 삼십 오 도이다. 직기의 소음도 무섭기 짝이 없다. 소음의 측정 단위는 데시벨이다. 정상적인 상태는 O데시벨, 50데시벨이면 대화를 할 수 없다. 영희의 작업장 소음은 90데시벨이 넘었다. 직기의 집단 가동으로 생기는 소음이 땀에 절어 있는 작은 영희를 몰아붙였다. 영희는 잠을 자다 일어나 울었다. 어머니가 모르게 영희는 울었다. 그러나 영희는 아직도 어려 저를 속박하고 있는 굴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아이가 어느 날 저희 노동조합 사무실로 가 -노동수첩-을 받았다. 일이 끝나면 노동자 교회에 갔다. 교회는 북쪽 공업 지역 안에 있었다. 목사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지독한 근시였다. 목사는 오목렌즈를 통해 아이들을 보았다. 영희는 공원들 틈에 끼어 앉아 노래를 불렀다.

-아침에 솟는 해는 우리의 동맥 / 여명에 종 울려서 지축을 돌린다 / 쉬지 않고 생산하는 영원한 건설자 / , 우리들은 노동자. /

영희는 집에서도 아주 낮게 이 노래를 불렀다. 영호와 나는 영희의 변신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두 아들이 위험한 일에 말려들지나 않을까 항상 걱정했다.

서울 행복동에 살 때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두 아들이 공장에서 쫓겨나며 받은 고통을 잊지 못했다. 아버지는 시멘트 다리 위에 앓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얘들이 오늘 다른 아이들이 못한 일을 했어."

술을 마시며 아버지는 말했었다.

"사장에게 당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공원들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했대."

"걱정할 거 없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애들은 어느 공장에 가든 돈을 벌 수 있어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아버지가 말했다.

벌써 공장끼리 연락이 돼 있어. 얘들을 받아 줄 공장이 없다구. 얘들이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 당신이 알아야 돼."

"그만두세요!"

참을 수 없다는 듯 어머니는 말했다.

"얘들이 못된 일을 했나요? 왜 반역죄라도 지은 것처럼 야단야요, 죄를 지은 건 그들야요."

어머니의 말이 옳았다. 아버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통을 받은 것은 우리였다. 어머니는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영호와 나는 어머니의 말을 잘 듣기로 했다. 어머니는 영희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영희가 저희 노동 조합 지부장이 실종되었다고 다른 조합원과 몰려다녀도 걱정하지 않았다. 영희의 의식이 눈에 피게 달라지고. 사용자들을 비판하는 격렬한 문귀의 프린트 물을 싸들고 다녀도 어머니는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잘 듣기

로 한 영호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두 번째 월급출 탄 날 나는 노동조합 사무실로 지부장을 만나러 갔다.

"이게 제 월급 봉투입니다."

내가 말했다.

"왜 그래?"

지부장이 물었다. 마흔 살쯤 되어 보였다.

"전 지난 두 달 동안 매일 아홉 시간 삼십 분씩 일해 왔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 반의 시간 외 근무 수당이 빠졌습니다."

"자네 만 빠졌나?"

"아닙니다."

"그럼 됐어 "

지부장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가 보게."

"지부장님."

나는 말했다.

"지부 운영 규정을 봐 주십시오. 92항에 의해 사용자의 부당 행위에 대한 보호 요청을 할 권리를 저는 갖습니다."

"무엇이 사용자의 부당 행위인가?"

"연장 근무 수당을 안 주는 것은 근로기준법 46곁 위반입니다. 지부 -29조에도 여덟 시간 외의 연장 근로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통상 임금의 100분의 50을 가산하여 지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마운 일야."

지부장이 말했다.

"아무도 나에게 와서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 할말은 그것뿐인가?"

"저는 지금 원공으로서 알하고 있습니다. 손 드릴 일을 하지만 원공입니다."

"그런데?"

"조역이 받는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할 얘기가 또 있나?"

"회사는 근로기준법 27조와 단체협약 21조를 어겼습니다."

"부당 해고를 했단 말이지?"

"조립 라인에서만 일곱 명이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당했습니다."

"그럴 수가 있나!"

지부장은 손가락으로 책상 끝을 톡톡 두들겼다.

"부당 해고는 있을 수가 없어 "

그런데, 있었습니다. 조합에서 가만있으면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납니다."

"회사에서 해명 통지가 올 거야."

"그리고."

나는 또 말했다.

"이건 제가 신문 기사를 오려 두었던 것입니다."

"나도 그 기사를 봤어."

지부장이 상체를 바로 하며 말했다.

"회장님이 사회 복지를 위해 해마다 20억 원을 내놓으시겠다는 기사지?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해마다 거액을 희사하시겠다는 거야. 이미 복지 재단의 이사진이 곁정했을 걸. 그건 훌륭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노사협의 때 회사측에 상기시켜 주실 게 있습니다."

"그게 뭐지?"

"그 돈은 조합원들의 것입니다."

"어째서?"

"아무도 일한 만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금은 너무 쌉니다 제가 받아야 할 정당한 액수에서 깎여진 돈도 그 20억 원에 포함됩니다."

"좋은 걸 지적해 줬네."

"정작 받을 권리가 있는 노동자들에게 주지 않은 돈을 이제 어떤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는 건지 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자네 말이 맞아. 기만 행위를 하고 있어."

"조합에서 그 돌을 지켜 조합원들에게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그래 야지."

지부장은 말했다.

"또 할 얘기는 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흘이나 더 은강 자동차에서 -쌍권총의 사나이-로 일했다. 그 사흘 동안의 일이 고되어 나는 잠자리에서까지 코피를 흘렸다. 나의 작은 공구들이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 절삭 칩이 막히고, 날은 부러졌다. 공구실로 달려가 다른 드릴로 바꾸어 와도 결과는 같았다.

내가 남은 밥을 밀어 줄 때마다 웃던 공구실 조역은 이제 웃지 않았다. 작업 반장은 나를 무섭게 다그쳤다, 기계에 의한 연속 작업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나는 파르르 떠는 몸을 곧추세운 채 바라보고는 했다. 손도 못 댄 작업물이 앞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가까스로 해낸 것도 검사과정에서 불량 작업으로 체크를 당했다. 잘 되어 가던 일이 갑자기 막혀 버렸다. 사흘 만에야 나는 이 사회의 음모를 알아차렸다. 힘을 합치려는 가난한 사람들의 노력을 부유한 사람들은 깨뜨리려고 했다. 지부장은 회사 사람이었다. 그는 노동자를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해고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기 직전에 은강 자동차에서 나왔다. 블랙 리스트에도 나의 이름은 오르지 않았다. 나는 은강 방직으로 옮겼다. 은강 방직 공장에서 나는 잡역부로 일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 지 않았다. 영호도 아무 말 안 했다. 영희는 노동자 교회에서 만난 저희 상집 대의원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그 시간에 나는 어머니의 가계부를 보았다

 

콩나물 50

왜간장 120

고등어 자반 150

통일 밀쌀 3800

영희 티셔츠 900

앞집 아이 교통 사고 문병 230

새우젓 50

방세 15000

영호 직장동료 퇴직 송별비 500

길 잃은 할머니 140

방범비 50

정부미 6100

영수 용돈 450

두통약 100

배추 220

감자와 닭 내장 110

치통약 120

꽁치 180

소금 100

연탄 2320

밀가루 3820

영희 공장 친구들 와서 380

라디오수리 500

불우 이웃돕기 150

두부 80

 

어머니의 가계부는 이런 내역들로 곽 찼다. 나는 은강에서의 생존비를 생각했다. 생활비가 아니라 살아 남기 위한 생존비였다. 우리 삼 남매는 죽어라 공장 일을 했다. 우리는 우리의 생산 공헌도에 못 미치는 돈을 받았다. 네 명의 가족을 둔 그해 도시 근로자의 최저 이론 생계비는 팔만 삼천 사백 팔십 원이었다. 어머니가 확인한 삼 남매의 수입 총액은 팔만 이백 삼십 일 원이었다. 그러나 보험료, 국민저축상조회비, 노동조합비, 후생비, 식비 등을 제하고 어머니 손에 들어온 돈은 육만이천 삼백 오십 원밖에 안 되었다. 이 돈을 벌어오기 위해 우리는 죽어라 일했고 어머니는 늘 불안해했다.

오른쪽 어금니 1500

왼쪽 어금니 1500

나는 가계부를 덮었다. 어머니가 두 개의 어금니만 뽑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달에 삼천 원의 돈을 문화비로 지출할 뻔했다. 가계부대로라면. 결국 나는 영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릴리푸트 읍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 하나의 릴리푸트 읍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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