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그 자리 -전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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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강산의 한여름 그 푸름 속으로 구불구불 그림처럼 뻗어 나간 하얀 길 위를 걷고 있었다. 강의 흐름을 따라 굽이굽이 절경을 이룬 협곡의 그 깎아지른 듯한 절벽 틈틈이 허공을 향해 가지를 펼친 노송과 갈참나무 고목들, 더 안쪽 기슭으로는 무슨 나무라 가릴 것 없이 한데 어우러진 숲이었다. 그 울울한 녹음 밑을 돌돌 굴러 내린 골짜기 물이 강바닥 돌이끼까지 선명히 흐러내리는 해맑은 강물에 허리를 질러 합류하고 있었다. 부채꼴로 펼쳐진 흰 모래밭이 물빛을 더욱 푸르게 했다.
그 청청한 강물까지 내려가 몸을 담그지 않아도 가슴은 아름다운 강과 산 속에 숨쉬고 있다는 흥분으로 하여 차라리 그 외경스러움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얼굴에, 목에, 등줄기를 타고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오히려 땀을 흘릴수록 마음은 쇄락했다.
잘한 일 같았다. 하루 한 회밖에 운행하지 않는다는, 읍에서 하암리까지의 그 구형 버스를 아예 포기차고 팔십 리 시골길을 걷기로 용단을 내린 ,내 자신에 대해서 처음으로 갖는 신뢰의 마음이었다. 타박타박 뜨거운 신작로를 걷느라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혔지만 나는 지금 영혼의 깊은 데 잠들어 있던 나의 새로운 지각의 샘을 과는 기분이었다.
"차암 좋습네다!"
신작로가 시나브로 꺾이면서 한결 깊숙한 골짜기가 울을 펼쳐 보이는 지점에 이르러 그가 또 한번 말했다.
차암 좋습네다! 나와 동행을 시작해서 사오십 리를 함께 걸어오는 동안 그는 벌써 몇 번째 이 짤막한 탄사를 거듭했다. 그가 벙어리가 아닌 것을 밝혀낸 것도 그 짤막한 탄사였다. 그 탄사가 터져 나오면서부터 그는 뜻밖에 많은 말을 했다. 나는 그가 이 수려한 강산에 대한 흥분으로 들떠 있음을 알아챘다. 웃기는 일이었다. 가끔 쳐다볼수록 괴상한 늙은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절로 긴장이됐다.
그의 외모는 한마디로 인도의 간디가 연상되는 그런 몰골이었다. 큰 허위대에 비해 살갗이 너무 메마르고 가죽만 덮여 있다는 인상이었다.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나와 퀭한 눈이 더욱 깊게 보였다. 거기다가 그는 정말 신기할 만큼 참 한방을 흘리지 않았다. 일생 동안 흘릴 체내의 수분을 한꺼번에 다 짜낸 듯이 그의 수염 없는 얼굴은 언제 바라보아도 맨송맨송했다.
그의 나이가 그 몰골에 비해 한결 젊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뒨 것은 그의 눈빛 때문이었다. 깊숙이 들어앉아 괸 물처럼 잔잔해 뵈는 그의 눈빛은 가끔 뭔가를 열망하는 듯한 눈초리로 사물을 핥듯 뜯어보곤 했다.
할아버지의 눈이 그랬다. 중풍으로 십여 년을 꼼짝없이 누워지내며 오늘내일 하는 할아버지의 눈은 늘 그렇게 맑고 잔잔했다. 십여 년을 자리에 누워서도 끊임없이 움직여 당신이 살아 있음을 알려 주고 있는 그 눈은 그 의 팔십 고령답지 않게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빛은 항상 무엇을 열망하고 있는 사람의 타는 듯이 강렬한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십 년 전 고혈압으로 쓰러질 때 반신 마비와 함께 완전한 언어 장애를 일으켰다. 아버지의 돈, 그리고 향방 의학의 그 전통적 권위에도 불구하고 중증인 할아버지의 병은 십 년 간 계속 그 상태였다. 십 년 동안 당신은 한 음절의 분명한 단어도 구사해내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유일한 언어는 눈들 통해 이루어졌다. 할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고용된 아저씨는 할아버지의 대변자였다. 대변이 보고 싶다고 그러시는군요. 막내 손주님이 보고 싶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막내 손주인 내가 할아버지의 감각이 살아 있는 쪽 손을 잡는다. 손에 힘이 주어진다. 일어나 앉고 싶다고 그러시는 겁니다. 할아버지의 몸은 무겁다. 원래 풍채나 좋은 데다 장복을 하는 한약이 보약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근래 할아버지는 모든 약을 거절했다. 약그릇이 들어오면 할아버지의 눈빛은 단호하게 거절의 빛을 띠었다. 가끔 아버지가 할아버지 방에 들른다. 할아버지의 눈이 천장을 향한다. 꼭 죽은 사람처럼 표정이 없다. 보기에 정말 민망할 정도다. 마음이 좀 편찮으시니까 의원님께서 나가 주셨으면 하시는 겁니다. 겁도 없이 고용된 아저씨가 할아버지의 눈이 말하는 걸 전해 준다.
방이 탁해. 환기 좀 잘 하시오. 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말하고 일어선다. 할아버지가 누워 있는 방은 넓고 크고 호화롭다. 아버지의 배려다. 아버지를 찾아온 고향 사람들이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표밭인 아버지의 고향 사람들이 하루도 거르는 일 없이 찾아온다. 할아버지의 눈이 가장 맑고 빛나 보이는 시간이 바로 고향 사람을 바라볼 때다. 고용된 아저씨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고향에 무척 가고 싶은가 봅니다. 나는 할아버지의 눈을 내려다보았다. 나를 그윽이 쳐다보는 할아버지의 잔잔하게 가라앉은 눈그늘, 그 밑에서 서서히 불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할아버지의 눈을 닳은 그런 중늙은이와 함께 걷고 있었다. 이 힘든 여름 한낮의 도보 여행의 내밀한 즐거움이 바로 그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을 나는 마음 속에서 부인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새삼스레 내 강토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전연 그 괴상한 중늙은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차암 좋습네다!
아무리 뜯어봐야 이 풍진 세상을 도시 노동자로 찌들찌들 나이 먹었거나, 어디 읍내 시집간 딸네 집에 다녀오는 시골구석 똥구멍 째지게 가난한 농부로밖에 더 봐줄 수 없는 그런 늙은이가 가던 걸음 멈춰 서서 새삼스레 휘이휘 산천을 둘러보며 그런 짤막한 탄사를 연발했을 때 나는 그의 얼굴을 뻔히 쳐다보았던 것이다. 그 얼마나 격에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런 수작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는 차츰 그의 짤막한 탄사와 아름다움에 도취된 사람의 그 절박한 모습을 통해 경건하고도 절실한 그 무엇을 내 가슴에 나누어 갖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가 하듯 걸음을 멈춰 서서 새삼스레 휘이휘 강과 산의 구석구석을 뜯어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가 하듯 길가의 잡풀 고갱이를 뽑아 잘근잘근 씹어 그 짙은 풀 냄새를 맡았다. 산비탈까지 올라가 빨갛게 터지듯 익은 산딸기를 한 움큼씩 따 입에 넣기도 했다. 입에 녹는 그 향긋한 산딸기 맛을 즐기면서 나는 바람이 스치는 풀잎 하나 돌멩이 하나라도 예사로이 넘기려 하자 않았다. 이것은 내가 다니는 대학의 캠퍼스 조경에 찬사를 보내던 그런 사치가 아니었다. 더구나 아버지의 차로 우리 식구들이 주말이면 찾아들던 서울 근교의 귀족적 풍모를 갖춘 유원지나 멀리 속리산 같은 데의 단풍 구경 혹은 동해안 경포대를 향해 고속도로 위에서 즐기던 그런 속도의 쾌락과 같은 가진 자의 풍요한 여름 여행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성질의 탐닉이었던 것이다.
나는 눈에 잡히는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실상 내 눈에 잡힌 그것들은 내가 바란 이상의 나를 압도할 그런 의미를 영락없이 던져 주곤 했다. 산 속을 걸으면서 나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을 것괴다. 그들이 보고 간 저 산과 계곡과 물---
그들은 잠깐의 찬사를 남기고 그 사라졌쪘지만 그러나 그 산과 계곡과 물은 아직 의연한 옛 모습 그대로임이 분명할 것이다. 죽은 사람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내 옆에 걷고 있는 늙은이가 있지 않은가. 이 몰골 형편없는 늙은이가 나보다 더 세상을 많이 산만큼 나보다 먼저 저 수려한 강산에 탄사를 보낸다는 사실 앞에 나는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이 트인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그것은 부끄럼의 감정이었다. 낮과 밤의 얼굴이 달랐던 나의 부끄러운 젊음. 묵묵히,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그들을 향해 투석을 하던 순간의 그 눈앞이 아찔한 살기와 증오-나는 항상 스크럼의 앞줄에 끼어 정의의 투사임을 자부했다, 나는 항상 앞장을 섰다. 그래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나는 가장 음전한 얼굴을 한 아버지의 공범자가 됐다. 그의 부와 그 넉넉함을 등에 업고 아버지가 행하는 갖가지 비행을 감싸주고 합리화하는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의 부와 힘이 매일매일 치솟는 그 상승 곡선에 매혹되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아버지는 위대했다. 우리는 3선 국회의원 자리를 지키는 위대한 십만 선량의 자식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5월 선거의 뒤끝이 안 좋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몹시 화가 난 얼굴을 했다. 가장 압도적인 숫자로 당선되었으면서도 아버지는 이번 선거를 치르고 난 뒤 계속 신경질이었다. 아버지의 표밭에서 올라온 참모들의 얼굴이 밝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들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언성을 높인 만큼 아버지는 고액의 수표를 끊었다. 수표를 받아든 그들은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는 것마저 잊은 채 황황히 물러갔다.
여름에 접어들면서부터 집안 구석구석에는 침침한 안개 같은 게 서려 있었다. 외가집의 높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엄마는 초조한 얼굴로 전화통 앞에 있었다. 미국에 있는 형들한테서는 노린내 나는 엽서가 날아오거나 혀 꼬부라진 소리로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집안에서 변함없이 눈빛이 맑은 건 오직 할아버지뿐이었다. 할아버지께서 고향에 무척 가고 싶은가 봅니다. 고용된 아저씨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이계 할아버지의 눈이 말하는 걸 읽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고향 사람들 출입이 뜸해진 이즈음 할아버지는 항상 멍청한 눈빛 그 그늘 밑에서 무엇인가 불태워 올리고 있었다.
"하암리나 갔다 오겠어요, 아버지."
이틀에 겨우 한번 그 얼굴을 볼까 할 정도로 바쁜 아버지한테 내가 말했다.
"거긴 왜?"
그렇게 퉁명스럽게 받던 아버지가 곧 어조를 바꿔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문중 사람들한테두 내 대신 인사나 하구......그런데 그 상암리 촌놈의 새끼들이 말썽인 모양인데, 아예 상종도 말아야 한다."
나는 항상 아버지의 마음을 잘 헤아려 그의 가려운 데를 잘 긁어 주곤 했다. 아버지의 적진에 들어가 적의 동태를 살피고 오겠다는 내 의사를 충분히 읽어낸 아버지가 상당히 많은 돈을 내놓았다. 어떤 계집애든 하나 끌고 며칠은 즐길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할아버지의 눈을 보는 순간 내 애초의 계획을 포기했다.
"할아버지, 저 하암리에 갔다 올 거예요."
귀까지 어두운 할아버지를 향해 나는 악을 쓰다시피 말했다. 할아버지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학생이 고향에 가신다니까, 좋으신 모양입니다. 일으켜 앉히세요. 일어나고 싶다고 그러시네요."
고용된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안았다. 할아버지는 감각이 있는 쪽 손으로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 그러나 근래 그 손아귀의 힘이 아주 미미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이제 얼마 더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내게 기대앉은 채 채광이 잘 된 유리창을 통해 매연이 자욱한 밖의 하늘을 내다보았다.
"할아버지, 제가 하암리에 갔다 와서 거기 얘기 많이 해 드릴께요."
내 눈에 초점을 맞추는 할아버지의 눈에 순간 번쩍 빛나는 게 보였다. 나는 할아버지를 조심스럽게 자리에 뉘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받은 돈을 고용된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아버지가 특별히 드리는 거예요. 할아버지 더 잘 보살펴 드리라구요."
내가 읍에 도착했을 때 버스 정류장까지 사람을 내보내 나를 불러간 사람이 있었다, 읍에서 유력한 기관의 장으로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아버지의 비밀 참모였다, 아버지는 내가 하암리에 간다는 것을 미리 연락했을 것이다. 그런 점이 아버지의 힘이었다.
"상암리에서 조금 말썽이 생긴 모양인데, 거기 가더라도 일체 상관을 마는 게 좋을께요."
아버지의 비밀 참모가 내게 저녁을 사주며 말했다.
"하암리 가는 차는 내일 오후 두 시에 있으니까, 오전 중엔 내 차로 흥국사 계곡이나 가 놀다 오시지,"
나는 여관을 몰래 빠져 나와 허름한 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뒤 곧장 하암리를 향한 도보 여행에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몰골이 괴상한 중늙은이를 만나게 되었다.
"아저씬 어디까지 가시는 거예요?"
읍의 남단을 끼고 흐르던 강물 줄기가 우촌면 쪽을 향해 흐름을 바꾼 지점의 신작로 위에서 다시 그를 보았을 때 나는 더 견디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읍을 벗어나는 다리를 건너 약수터 근처에서였다. 그는 인적이 없는 풀밭에 앉아 우촌면 쪽으로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비닐봉지에 든 빵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를 그냥 읍내의 걸인 정도로 생각하고 그 옆을 무심히 지나쳤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쯤 갔을까, 나는 등뒤에 인기척을 느꼈다. 약수터 길가 풀밭에서 빵을 먹던 그 늙은이였다. 섬뜩한 기분이 들어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산모퉁이를 돌아가 뒤를 보았을 때 그는 이미 조이지 않았다. 나는 땀을 닦으며 다시 정상적인 걸음을 했다. 산모퉁이를 두 개쯤 돌아선 지점 길가 도랑물에서 세수를 하고 일어서 보니 다시 그 늙은이가 나를 지나쳐 가고 있었다. 그의 걸음은 느렸다. 나는 부지런히 그를 지나쳐 걸었고 그 늙은이는 또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를 완전히 제쳐놓았거니 생각하고 얼마쯤 걷다가 보면 그는 어느새 내 뒤에 와 있곤 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걸음은 보는 것처럼 그렇게 느린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빠른 걸음은 더욱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그 보조로 라르고 느림 없이 일정한 속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저씬 어디까지 가시는 거예요?"
나는 그와의 기분 나쁜 숨바꼭질을 단념하면서 그에게 말을 걸었던 젓이다, 세 번섹 거듭 묻기까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귀머거리나 벙어리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전연 나를 관심에 두고 있지 않는 듯했다. 한결같이 일정한 걸음을 하면서도 그는 계속 산과 계곡의 숲을 신기한 듯 휘둘러보았다, 나는 어느새 그의 그 느릿한 걸음에 말려들어 옆에 나란히 걷고 있었다.
"차암 좋구먼!"
그가 입을 텐 것이다. 물론 산과 그 계곡의 절경에 눈을 보낸 채였다. 나는 바싹 약이 올랐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예요?"
내가 볼멘소리로 다그쳤다. 그가 뜻밖에 나를 돌아보았다. 거듭거듭 몇 번인가 내 얼굴을 뜯어보았다, 몰골과는 달리 비교적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갈색을 떤 그의 눈이 잔잔하게 날앉아 차라리 초연하다는 느낌까지 몰아 왔다. 그는 검은 비닐 가방을 다른 손에 바꿔 쥐면서 다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젊온인 어디까지 가우?"
할아버지의 고향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그 질박한 억양이었다. 할아버지를 찾아오는 하암리의 문중 사람들은 할아버지 방에 들러 그 질박한 억양으로 할아버지께 문안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한테 나가 비굴한 웃음을 웃어가며 할아버지한테서와는 다른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가 내려야 할 결정도 아버지가 내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영국의 실권 업는 여왕처럼 권위의 한 상징적인 존재였을 뿐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권위를 후광처럼 뒤에 지고 막강해져 있었다.
"난 하암리까지 가는데요."
마음과는 달리 나는 고분고분 대답해 주었다. 그가 내 얼굴을 다시 한번 유심히 쳐다봤다.
"역시 맞구먼유, 젊은인 하암리 김씨 문중 자손이 분명하시구먼 그래."
나는 무의식중에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다. 그것은 우쭐한 기분일 때의 내 버릇이었다. 내가 두 살 때 떠난 하암리를 형들과 함께 아버지 차로 갈때마다 나는 형들처럼,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이 많은 사람이 아는 척한다고 해서 고개를 숙여선 안돼! 아버지가 우리들한테 말했다. 아닌게아니라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아버지 옆에 몰려와, 할아버지 내려오셨습니까, 당숙 오셨습니까 - 그렇게 깍듯이 예우를 차렸다. 어, 별일들 없었나? 새파랗게 젊은 아버지가 그들 예우에 걸맞는 거동을 보일 때 우리 형제들은 공연히 어깨가 올라갔던 것이다. 어린 시절 하암라를 방문했을 때 우리 형제들의 우쭐거림은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차츰 알게 뒨 바로는 아버지의 그 의연한 거동은 우촌면 일대를 호령하던 할아버지 것이었다. 우촌면 면장을 오래 지낸 할아버지의 그 위세는 할아버지의 아버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하암리에 처음 터잡아 산 먼 조상 할아버지의 것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가 그 조상 할아버지의 얘기를 했다.
아주 높은 벼슬을 하던 분이었다. 나라에 반역이 생겼다. 그 대역 죄인이 무리를 이끌고 강원도 땅까지 쫓겨와 하암리와 상암리 일대에 주저앉아 다시 일어날 것을 꿈꾸고 있었다. 정감록에서 말하는 그런 명당 자리라 인심이 따를 기세라는 거였다. 그 대역 죄인을 잡아들이라는 중차대한 분부를 받고 그 벼슬 높은 분이 직접 나서서 하암리까지 왔다. 대역 죄인을 상암리에서 잡아 기세등등하게 돌아가는 길에 비로소 하암리에서 읍에 이르는 그 좌우 절경에 눈이 갔다. 빼어난 지세에 심취한 그가 외쳤다. 침산대수의 길처가 바로 예로고! 이렇게 찬탄을 연발하더니 결국 만년에 벼슬을 내놓고 모든 식솔을 이끌고 하암리에 들어와 자손을 퍼뜨리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아저씨두 하암리까지 가시는구먼요?"
나는 그가 김씨 문중 사람은 아니더라도 상암리 사람이거나 아니면 요즘 부쩍 많이 는 하암리의 타성바지 중의 한 사람일 거라고 못박아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내 물음에 동문서답을 했다.
"예서 하암리까진 아직두 먼 오십 린데, 그래 줄창 걸어가실 참인가?"
"걸어가잖구요! "
"신작로가 이렇게 훤히 뚫리고, 지금은 뻐슨가 뭔가 하는 차두 있다구 합디다만,,,,,,"
그러고 보니 버스가 읍에서 떠날 시간쯤 돼 있었다.
"아저씬 여기가 초행이에요?"
"아니지요. 초행이 아닙네다. 허지만 세상이 많이 변해 놓으니까 길두 이렇게 변하고,,,,,, 초행이나 다름업구먼유."
나는 그의 짧은 한숨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들은 그의 제의에 의해 신작로를 버리고 샛길로 들어섰다. 소나무 올울한 고개 초입이었다. 우리들 맞은편에서 시골 사람 둘이 중중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땀 좀 들여갑시다. 그가 그 시골 사람들을 우정 피하기라도 하는 듯 개울 후미진 곳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고개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먼길을 떠난 사람들의 차림은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흘낏거리며 그냥 지나쳐 갔다. 어, 물 차다! 그가 개울 그 아래서 물 묻은 손으로 얼굴을 닦아내며 올을라오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 속 형편없는 몰골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숲의 그 무성한 빛깔을 배경으로 하여 오히려 신비하게 비쳐졌다.
"나는 마가요, 마 필굽네다."
느닷없이 그가 자기 소개를 했다.
"전, 김 세범이에요."
나도 얼떨결에 이름을 대며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가 먼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고개 초입의 샛길을 오르면서 우스꽝스럽게 수인사를 했다,
"춘부장님 함자가,,,,,,?"
"빛 광자에 법모,,,,,,."
"광모? 광. 모. 그럼 조부님 돌림자는 실을 재자가 맞겠구먼유?"
"그래요. 실을 재자에 임금 왕변에다 쓰는 옥돌 민자, 재민---"
그는 걸음까지 멈춰 서서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우리 아버질 잘 아세요?"
"광모 어른이야 어릴 때부터 서울 가 공부를 하신 데다 결혼두 게서 하시구 고작 일 년에 두어 번 고향에 내려오신 걸유."
그는 길섶에서 뒷다리 한 짝이 없는 방아깨비를 잡아들고, 그 길고 민숭한 방아깨비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다시 말했다.
"재민 으른께서야 참 난 분이셨지요. 그 난리 전까지 면장두 지내시고, 또 하암리 김씨 문중의 중심 어른이셨으니까요. 그런 양반이 아드님을 따라 서울로 갈 리가 있겠어요? 아드님이 가끔 서울서 내려오시면 돌아앉아 말두 안 하셨지요."
할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온 게 꼭 십 년 전이었다.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아버지가 모셔 온 것이다. 문중의 어떤 일로 읍내 군수를 만나러 갔다가 고혈압으로 쓰러진 양반을 읍에서 직접 서울로 모선 왔던 것이다.
"지금 생존해 계신다면 아마 팔십은 넘으셨을 테고,,,,,,"
할아버지의 생사를 묻는 눈치였다.
"아직도 서울 우리 집에 살고 계셔요."
살고 있다는 표현을 해 놓고 나는 좀 허망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할아버지는 이미 십 년 전부터 할아버지가 가졌던 모든 것을 잃은 상태였다. 할아버지는 생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마 필구 노인은 손에 저고 들여다보던 뒷다리 한 짝 없는 그 늙은 방아깨비를 밀에서 좀 벗어난 숲의 나뭇잎에 놓아주며, 할아버지의 생존 소식에 자못 감회가 깊은 얼굴을 했다. 그가 뭐라고 입을 움직였다. 그러나 내 귀에까지 그 뜻은 전달되지 않았다. 그가 더 큰 소리로 말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길가 숲과 산기슭 녹음 속에서 우는 참매미와 쓰르라미 소리로 귀청이 따가울 정도였다. 산새의 지저귐까지 뒤섞여 정말 대단한 산의 교향곡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어우러진 소리들은 분명 산이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매미와 산새의 그 대단한 울음은 산의 침묵을 위장하는 속임수였던 것이다. 너무나 적요한 산의 침묵이었다. 햇빛, 그리고 푸름을 뒤집어 쓴 채 산은 의연한 침묵 속에 놓여 있었다. 무한대로 펼쳐져 파도 철썩이는 밤의 해변에 섰을 때 내 자신의 존재가 모래 한 알의 의미로밖에 남지 않던 그 허허로운 느낌 이상의 것을 나는 지금 산 속에서 몸 전체로 느끼고 있었다. 산의 음전한 저 침묵 속에 감춰진 시간과 그 시간이 수놓은 역사의 피륙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 서울 계시는 학생의 조부님께서도 대단한 어른이셨지만, 증조부 되시는 분께서는 좀 다른 면으로 이름난 어른이셨다더군요."
개화 할아버지의 얘기였다. 증조부는 문중에서 볼 때는 분명히 이단자였다. 읍에다 향교를 지어 제사를 지낼 만큼 유교 사상이 짙은 문중 사람들한테 그 할아버지의 개화병이 먹혀 들어갈 리가 없었다. 우촌면과 하암리에다 외국인 선교사를 불러들여 예배당을 세운 것도 증조부였다. 성황당을 불사르고 마을 사람들의 상투를 자르려 덤볐다. 그리고 상암리 사람들을
사람대접해서 가까이한 것도 증조부였다. 그러한 증조할아버지가 용서될 턱이 없었다. 단신으로 마을을 떠나 만주에서 전전하다가 해방이 되자 거지가 되어 하암리에 돌아와 결국은 선산에 묻히긴 했다. 그 개화 할아버지가 저질러 놓은 문중의 권위 추락에 대한 멍에를 지고 위신 회복에 동분서주한 이가 바로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가 심어 놓은 그 좋지 못한 평판을 씻어 버리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썼던 모양이었다. 면장 자리를 오래 맡아 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는 것이다. 또한 증조부가 상암리 사람들의 버릇을 잘못 들여왔다는 문중의 노여움을 삭이기 위해 상암리 사람들을 마을 길로 다니지도 못하게 하는 등 그 천대가 대단해 그들의 미움을 독판 사는가 하면 두 마을이 전례 없이 사이가 나빠졌다.
"하암리와 상암리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옛날부터 앙숙인가요?"
마 필구 노인이 들려주는 얘기는 내가 대충 들어서 알고 있는 얘기였다. 나는 그의 얘기가 두 마을 관계에 이르렀을 때 말미를 채었다.
"그럴 수 밖에요. 한쪽은 지체 높은 양반이라고 거드럭대는가 하면 한쪽은 또 그들대로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한테 갖는 그 배배 꼬인 속 좁은 생각을 가지고 맞섰으니까요."
정확한 거야 모르지만 상암리에 원래부터 터잡아 앉아 사는 사람들은 그 옛날 대역 죄인을 따라왔다가 떼죽음을 당할 때 어떻게 목숨을 건진 사람들의 자손이라는 거였다.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상암리 마을의 역사는 일제 때 돈 많은 일본 사람이 상암리에다 금광을 벌였을 때 전국에서 모여든 뜨내기 광부들이 섞여 들어 이루어진 마을이란 것이다. 떠도는 사람들이라 다 억세고 또한 그 성깔들이 대단했다. 금광이 바닥나 그대로 눌러앉은 사람들이 당장 먹고살기 위해 날뛰는 꼴은 부촌인 하암리 사람들에게 퍽 위협적인 것으로 보여졌을 게 너무나 당연했다.
상것들! 하암리 사람들은 마음에 담을 쌓고 아예 그들 상암리 사람들과 상종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이 하암리에 내려오는 걸 우정 막고 나섰다. 그러나 상암리 사람들은 곧잘 하암리에 숨어들어 못할 짓을 털이곤 했다. 툭하면 도둑질이었다. 논바닥에 쌓아 놓은 볏단이 축나는가 하면 누우런 마을의 개가 남아나지를 않았다. 부녀자가 상암리에 있는 뽕밭을 마음대로 올라가지 못했다.
뭐니뭐니해도 계일 큰 문제는 선산이 더럽혀지는 것이었다. 그들 상암리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무슨 나무 가릴 것 없이 잘라다가 땔것을 했다. 웬만큼 경사진 산비탈이면 불을 놓아 밭을 일구었다. 워낙 산간 벽지라 관의 손길이 제대로 미칠 수가 없었다. 늘 산불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관을 대신해서 그것을 말리고 나서는 것은 언제나 하암리 문중 사람들이었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들이 김씨 문중의 선산에다 암장을 하거나 혈(血)을 판 다음 쇠꼬챙이 같은 걸 박아 지맥을 끊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실 일본 사람이 상암리 돌산에다 금광굴을 판 것이 김씨 문중의 지맥을 끊은 것이라 해서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병이 돼 죽은 문중의 선조도 있었던 모양이다. 어떻든 문중에서는 사람을 풀어 선산을 지켰다. 그러다 보니 그들 상암리 사람들과 늘 충돌이 생겼다. 상암리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아 거적주검이 돼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일제 말 금광이 바닥이 나 폐광이 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지만 막상 살 방책을 잃자 문제는 한결 심각해졌다. 다른 데 금광을 찾아 떠나야 할 사람들이 모두 그 자리에 주저앉은 때문이었다. 그들은 거기가 자기들이 살아야 할 땅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암리의 그 풍성한 들판과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는 선망 섞인 오기가 뻗치고 일어났던 것이다. 어떻든 그들은 입에 풀칠하기 위해, 옛날부터 터잡아 앉아 움집이나 통나무집을 짓고 사는 토박이 사람들처럼 산을 아무 데나 파헤쳤다. 가막골에 들어가 아름드리 참나무를 베어 참숯을 구워 그것을 읍내까지 내다 팔기도 했다. 양귀비 같은 약재를 심어 읍내 한약방에 대주는 사람도 있었다.
좀 재주 있고 약삭빠른 사람들은 상암리에 있는 하암리 사람의 논을 소작 내어 살았다. 그렇게 눈을 뜨기가 무섭게 호미자루를 잡고 땀을 흘렸지만 그들은 예나제나 똥구멍 째지게 가난했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파 징징거렸고 좀 나이 든 아이들은 칡뿌리나 옥수수 대궁을 씹어 허기를 면하는 게 보통이었다. 상암리 사람들이 가장 기다려지는 것은 하암리의 사람이 죽는 일이었다. 하암리의 장삿날은 상암리의 부녀자들까지 몽땅 내려와 우우 몰려다니며 떡 한 개라도 더 입에 넣으려고 눈을 번들거렸다. 남정네들은 돼지를 잡고, 산역을 맡아 묏자릴 파고, 상여를 메고. 그 장사 뒷설겆이를 하는 궂은일을 맡아 어깻바람을 일으키며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5일장이나 7일장이 다 끝날 때까지 그들은 아예 일손을 놓고 하암리에서 배를 불렸다.
그러나 이것도 다 두 마을이 그런대로 사이가 괜찮은 잠깐 때의 일이었다. 어떤 일로 두 마을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면 적어도 몇 년간은 철천지 원수가 되어 등을 돌리게 마련이었다.
"뭐니뭐니해도,,,,,,"
마 필구 노인이 고개를 오르다 말고 골짜기의 머루덩굴 속 개울로 내려서며 뜸을 들였다. 나도 그를 따라 땀에 젖은 남방 셔츠와 런닝을 벗어 물에 헹군 다음 햇볕 있는 데에 널고 웅덩이에 들어섰다. 내 피부가 그에 비해 너무 희다는 사실이 이상스럽게 거북스러웠다. 뜨거운 대낮인데도 머루덩굴 속 웅덩이의 물은 뼛속까지 찌르르 하도록 찼다. 새끼 손가락만한 피라미들이 거뭇거뭇 몰려와 몸을 톡톡 쪼았다. 정말 겁도 없는 놈들이었다. 마 필구 노인은 돌을 조심스럽게 뒤져 불그죽죽한 가재를 집어들었다가는 곧장 놓아주곤 했다. 그는 꼭 어린애같이 가재잡기를 즐기고 있었다. 가재를 잡아 들고 들여다보는 순간 그의 얼굴에는 고물고물 웃음 같은 게 보S다. 그때 우리들이 들어 있는 웅덩이 저쪽 길 위에 소쿠리에 무엇을 담아 지게에 진 사람 하나가 지나고 있는 게 보였다. 푸르죽죽 줄이 진 참외였다. 나는 갑자기 심한 시장기를 느꼈다.
"뭐니뭐니해도 두 마을이 큰 싸움을 벌였던 건..,..."
가재 잡기 놀이를 하던 마 필구 노인이 길 쪽으로 등을 돌리며, 먼저의 얘길 다시 꺼낼 기세였다. 그러나 나는 시장기를 참을 수 없어 맨몸인 채 그 참외를 진 사람 쪽으로 달려갔다. 팔 것이 아니라 산에 심어 뒀던 걸 오늘 따다가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을 것이란 거였다. 나는 돈 백 원을 억지로 그에게 절러 주고 참외 다섯 개를 얻었다. 웅덩이에 참외를 둥둥 띄우며 내가 말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요,,,,,,"
"줄 참외군요, 이놈이 맛이야 그만이죠. "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참외를 집어 주먹으로 쳐 두 조각을 낸 다음 으적으적 먹기 시작했다.
"내, 이놈의 참외를 꼭 십 팔 년만에 먹어 보는 겁네다."
물에 떠 있는 두 개째의 참외를 집어들며 그가 말했다. 십 팔 년만에 처음 먹는 참외. 나는 참외를 먹다 말고 그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조각 낸 참외를 껍질과 씨도 가려내지 않은 채 걸신스럽게 먹고만 있었다.
"아저씬 어디 외국에서 돌아오시는 거예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처음부터 그가 산과 강을 휘휘 둘러보며 내뱉던 그 탄사의 뜻이 금방 잡혀 들었다.
"외국이요? 흐흐흐."
그것을 웃음이라고 봐 줘야 할는지. 나는 그의 그 괴이쩍은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 좋은 시상이구먼!"
멀리 산기슭 신작로에 읍에서 두 시에 출발했을 구형의 시외버스가 붕붕거리며 기어오르는 게 보였다.
"나 때문에 학생이 저 자동찰 못 타는 게유?"
우리들은 고개의 지름길에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신작로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울음에 대답하는 대신 되물었다.
"옛날엔 여기 저런 버스가 없었을 거 아녜요? 십 팔 년 전 말예요."
"저런 차가 다 뭡니까. 그땐 소달구지 하나 겨우 다닐 정도였는 걸유."
그가 쉽게 대답했다. 십 팔 년 전에 그는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어쩌면 소달구지 위에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십팔 년의 세월은, 한사람의 십 팔 년 세월의 그 역사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예사로이 보이지 않던 이 몰골 형편없는 늙은이에게 서서히 묶여 들고 있음을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고개를 거의 다 오른 산등성이 한 옆에 잔솔밭이 있고 그 가운데 무덤이 대여섯 기 웅기중기 붙어 있었다.
"저 묏자리가 예서 봄 대단찮지만 저 아래서 올려다봄 꽤 좋은 자립네다."
그가 가리키는 대로 고개 아래켠에 눈을 주니, 여름 오후의 햇빛 속에 자우룩 가라앉은 산야의 풍경이 그런대로 그런 듯해 보였다. 문득 마 필구 노인이 아까 웅덩이에서 몸을 씻기 전 꺼냈던 묏자리 때문에 두 마을이 큰 싸움을 벌였다는 얘기를 생각해 올렸다.
"아까 말씀하시던 그 묏자리 때문에 상암리와 하암리 사람들이 싸웠다는 얘기 좀 해주시겠어요? "
실상 나는 우리 옛사람들의 풍수 사상에 대해서 상당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었다. 이를테면 부모와 자식간의 감응(感應)의 원리를 따라 조상의 뼈를 통해서 생기를 얻고자 하는 정신이야말로 가장 동양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나무의 줄기와 뿌리를 튼튼히 하여 좋은 열매를 얻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 장풍득수의 사상이야말로 가장 실질적인 사고방식일 수도 있지 않은가. 생기(生氣)를 얻기 위해서 인간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조상의 뼈를 어느 곳에 묻어야 할까를 심사숙고하는 묘지 풍수야말로 얼마나 웅숭 깊은 지혜란 말인가. 모랫바닥에 내린 나무의 뿌리와 부엽토가 새카맣게 썩어 거름이 된 좋은 흙에 뿌리를 둔 나무의 잎사귀와 열매를 생각해 보면 뒬 것이다. 물기를 얻지 못한 뿌리로 해서 시들시들 고사(枯死)하는 나무를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허망스러운 일인가,
"학생도 으른들헌테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오만---"
그는 잠시 말을 끊고 얘기의 실마리를 잡는 듯 뜸을 들였다. 사실 나는 우리 하암리 김씨 문중의 선산인 은장봉의 묏자리를 두고 문중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찾아와 얘기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는 멀뚱한 눈으로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자세를 하고 누워 있었고 문중 일의 결정은 언제나 아버지가 내렸지만, 할아버지 앞에서, 문중 사람들은 오래 전에 은장봉 묏자리 때문에 상암리 사람들과 충돌이 생겼던 일을 가끔 입에 올렸다. 그 회상적인 얘기를 들어보면 언제나 상암리 사람들의 잘못이었다. 상것들이 분수를 모르고 날뛰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 양보를 해도 그 선산만은 지켜야 합니다. 아버지가 문중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표밭에서 단 한 마을도 다른 당을 지지하는 표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걸 참모들한테 강조하곤 했다. 그런데 상암리틀 비롯한 하암리 근처의 마을이 대단한 기세로 머리를 든다는 문중 참모들의 얘기에 아버지는 모든 걸 다 양보해서라도 표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까짓 선산이 문젭니까? 아버지가 처음에 그런 말을 했다가 문중 사람들이 몰려와 할아버지의 그 넓은 방에서 방바닥을 치며 며칠간 농성을 벌였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외면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문중 참모들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서는 아버지의 마지막일 것이 분명했다. 현명한 아버지였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선산의 단 한 발짝도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아버지의 혀는 신비로왔다. 문중의 어른들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아버지는 물론 그 선산 치산(治山)에 상당한 돈을 넣었다.
내가 알고 있는 묏자리에 관한 얘기는 하암리 쪽의 입장에서 본 고작 그런 정도의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형제들을 항상 우쭐거리게 만드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내가 열 다섯인가 하는 해였습네다. 그때 상암리에서,,,
상당히 오래 뜸을 들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아저씬 그때 어느 마을에 사셨어요?"
내가 말허리를 자르자 그가 말했다.
"좌우지간 내 얘기나 들어보시구설랑---"
그러고 보니 그가 어느 쪽 사람인가 하는 것은 얘기를 듣다 보면 그 추세에 따라 짐작이 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상암리에서 가장 오래 수명을 누리신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실 때 유언을 했지요."
백 두 살까지 장수한 노인이었다. 아흔 아홉 살이 되면서부터 새카만 머리털이 돋아나고 아이들 젖니 같은 게 잇몸을 뚫고 하얗게 솟아나 보는 사람마다 신기해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장수 노인은 죽기 서너 해 전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잡고 유언했다. 사람들은 그의 유언을 들을 때마다 망령된 노인네의 헛소리라고 허수히 들어넘길 수가 없었다.
금광이 생길 때 겨우 열 예닐곱 정도의 나이로 상암리에 들어와 구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상암리에 살면서 단 한번도 마을을 벗어나 보지 못한 노인이었다. 백 두 살까지 장수는 했다고는 하지만 차라리 일찍 죽는 게 나았을 그런 기구한 일생이었다, 상암리에 들어오던 그 해에 독사에 줄려 한쪽 발을 잘라낸 절름발이로 평생을 살았다. 그의 기구한 일생을 아는 사람들인지라 그의 유언을 들을 때마다 터무니없는 청인 줄 알면서도 꼭 그렇게 해주마고 언약을 했다.
'은장봉 김가네 선산 있잖은가, 그 김가네 선산 조금 못미처 골텡이가 끝나는 데 언덕배기가 하나 있지, 상암리와 하암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데야. 게다가 날 묻어 주는 게여.'
그 언덕배기 노송이 둘러선 데 묻히고 싶다는 거였다. 물론 거기 은장봉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자식들한테 넌지시 전하고 죽은 노인은 그 전에도 많았다. 은장봉뿐 아니라 그럴 듯한 데를 미리 점찍어 두곤 입버릇처럼 거기 묻히고 싶다는 얘기들을 해 왔다. 그러나 어느 자식 하나 부모의 그 마지막 뜻을 늘어줄 수가 없었다. 자기들 힘으로써는 어쩔 수가 없는 남의 산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네 문중이거나 국유림이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고인이 원하는 데다 묘를 쓰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를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통해 뼈아프게 터득하면서 아예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 상암리 사람들이 묻힐 수 있는 데는 폐광 너머 돌산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장수 노인은 좀 달랐다. 백 두 살까지 산 노인에 대한 예우도 그래야 했겠지만 그가 살아 생전 그처럼 간절하게 입에 올린 그 묏자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그 노인이 죽어서 거기 묻히는 걸로 그렇게 생각해 왔던 터수였다. 장수 노인은 자기가 4대 독자라 했다. 어떻게 여자 하나를 만나 5대 독자를 낳아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장가를 보냈다. 그 장가간 5대 독자가 바로 장가가던 그해 여름 장마에 은백내 강물에 휩쓸려 끝내 그 시체마저 찾지 못하고 말았다. 다행히 씨는 남기고 죽었다. 그런데 그 유복자가 뱃속에서부터 소경으로 태어났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소경 자식을 낳아 놓은 며느리가 도망을 쳐버렸다. 홀아비 신세에 눈 먼 손주를 그런대로 키워 그 손주 몸에서 7대 독자인 증손자를 겨우겨우 얻어 내면서부터 자기가 묻힐 데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손이 귀한 데다 단명하지 않으면 병신 자식이 생기는 건 조상의 묏자리가 좋지 않아서 그렇다는 거였다. 기왕지사 조상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니조차 모르는 바에야 자기 뼈나마 생기가 순조로운 곳에 묻어 자손에게 영화를 내리고 싶다는, 백 번 수긍이 가는 유언이었다.
그 장수 노인의 증손자인 육손이는 소경 아버지와 함께 증조할아버지의 유언을 들었다. 마을 어른들을 붙잡고 증조할아버지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막상 장수 노인이 죽고 나니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의 언약을 마음에 걸려 하면서도 선뜻 어떻게 하자는 방도를 내놓지 못했다. 요는 신중을 기하자는 데 의견을 모아. 우선 장수 노인의 손자인 소경을 하암리에 내려보내 사정을 해 보라 했다. 육손이와 함께 하암리에 내려간 소경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 언덕배기 한 귀퉁이만 내주신다면 백골난망 그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그러나 물어 봤자 잇자국도 안 날 일이었다. 그냥 허허로이 쫓겨 올라오는 수밖에. 이번에는 마을의 상노인 대여섯이 내려가 사정사정했다. 역시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하암리 젊은 사람들한테 삿대질까지 당하는 무안을 당하고 수염을 벌벌 떨며 돌아왔다. 이쯤 되자 마을의 젊은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일어섰다. 이를 갈아붙이며 오기로라도 그냥 물러설 수 없다는 거였다. 상여를 메고 은장봉을 향했다. 일이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짐작한 하암리 사람들이 은장봉 초입에 지키고 섰다가 상여를 세웠다. 은장봉에 단 한 발짝도 들여놓을 수 없다는 거였다. 입으로만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마을로 상여를 돌렸다. 그러나 그 밤으로 은장봉 그 언덕배기에다 암장을 했다. 다음날로 당장 파헤쳐진 송장을 여우가 구멍을 뚫어 썩은 내장이 흐치흐치 나왔다. 또 묻고 다시 파헤치고 - 결국은 두 마을 장정들이 몽둥이를 들고 패싸움을 벌였다. 쌍방에 크게 다친 사람이 여럿 나왔다. 그 일로 해서 상암리 사람 하나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그 죽은 사람을 돌산에 묻은 날 저녁에 상암리 사람들이 하암리 사람 하나를 몰매를 놓아 그 자리에서 죽였다. 결국은 관에서 나와 일을 수습했는데 결과는 뻔했다. 상암리의 참패였다. 남의 산에다 암장을 한 죄에다, 여럿이 몰매를 놓아 사람을 죽인 죄였다. 더 억울한 것은 과거에 하암리에서 있었던 도난 사건을 하나하나 조목을 따져 모두 상암리에 덮어씌운 것이다. 상암리 사람 여럿이 일 년여를 두고 그 먼 읍까지 불려 다녔다. 불려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마을의 장정 예닐곱이 몇 년씩 옥살이를 했다. 관은 관대로 상암리 사람들의 목을 죄었는가 하면 하암리에서는 아예 상암리 사람들과 상종을 하려 들지 않았다. 상암리 사람들이 하암리의 마을 한가운데를 다시 지나다닐 수 없게 되고, 하암리 사람의 논을 얻어 부치던 사람이 소작을 떼인 건 물론이다.
"네 증조할아버지가 묻히고 싶어한 데가 어딘지 한번 가 보기나 하자.”
장수 노인의 눈먼 손자가 육손이를 앞세워 은장봉에 올랐다. 여우가 파헤쳐 흐치흐치 문드러진 장수 노인의 시체를 어쩔 수 없이 돌산에 묻고 나서였다. 그때까지 그 소경은 단 한마디의 자기 의견을 내지 않고 마을 사람의 의견을 따랐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의 유언을 못 이루게 된 것이 모두 자기가 눈 먼 병신이기 때문이라고 깊이 체념한 눈치였다. 하암리 사람들을 원망할 게 없다면서. 그는 육손이한테 하암리 사람들을 미워해서는 결국 손해만 보게 될 것이라고 늘 말해 온 위인이었다. 그는 육손이한테 끌려 산을 오르면서 좌우의 지세라든가 전망을 자주 묻곤 했다. 육손이가 눈에 보이는 대로 좌우 지세를 설명해 줄 적마다 그는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은장봉 뒤로 두류산과 팔봉산이 마치 병풍을 떨친 듯 둘러쳐 있다든가, 이 언덕배기애서는 상암리와 하암리가 한마을처럼 가지런히 보이며, 은백내 강물이 띠를 두르듯 주 마을을 감싸고 돈다는 얘길 들으면서 그는 얼굴까지 벌겋게 달구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증조할아버진 보통 분이 아니셔. 여긴 천하에 드문 명당이여, 명당.”
그가 한숨을 길게 늘여 쉬며 말했다.
"저 꼭대기 김가네 묏자리보다두 더 명당이어유?"
육손이는 눈 먼 아버지한테 김가네 족산(族山)의 위치를 일러주었다.
"게나 예나 다 딴 맥인 거여, 어디랄 것 없이 다 좋은 자리지. 같은 지맥이라니까.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몸에 퍼가 고루 흐르고 있듯이 땅 속에도 기가 흐르는 게야. 퍼가 도는 길을 혈맥이라 하듯이 이 땅의 생기가 통하는 길을 지맥이라 하는 게다. 생기가 왕성하게 통하는 곳은 우선 남 주작 북 현무의 형상에다 좌청룡 우백호로 사방 어딜 둘러보나 기가 맥맥히 뻗쳐 나간 지세를 갖추고 있게 마련이야."
육손이 아버지는 움푹 들어간 눈을 껌벅거리며 쩝쩝 입맛까지 다시다가 다시 한숨을 몰아쉬곤 했다.
"그럼 여기다가 우리 상암리 사람들이 묘를 쓰면 저 꼭대기 김가네 지맥이 끊기나유?"
육손이는 하암리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것이 사실인가 알고 싶었던 것이 다.
"말 같잖은 개소리!"
소경이 느닷없이 부르짖었다.
"망할 놈들, 즈 배때기만 부르구 즈 자식새끼들만 잘돼야 허는 법이 어딨다는 거여?"
육손이는 눈먼 이의 이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눈먼 이의 푹 꺼진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디 두고 보라지, 이놈에 하암리 놈들!"
육손이는 아버지의 그런 무서운 얼굴을 보면서 부르르 몸서릴 쳤다.
그 눈먼 이가 결국 몇 해 가지 않아 하암리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았다. 김씨 문중 사당 기둥 밑에 짚으로 만든 목이 없는 꼭둑각시를 묻었던 것이다. 방자를 이에서 끝낸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김씨네 선산 그 묏자리까지 기어 올라가 무덤마다 그 봉분 꼭대기에다 바늘을 쌈지째 묻다가 걸린 것이다, 눈먼 이는 몰매를 맞고 사람들 손에 떠메어 돌아와 앓으면서도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렇게 이를 갈며 뒤척이며 앓던 이가 결국 숨을 거두었을 매 육손이는 몸서릴 쳤다. 김씨 문중에 대해서 그렇게 원망 한마디 없던 이가 그 언덕배기의 산자리를 보면서부터 전연 다른 사람으로 바뀐 사실이 무서웠던 것이다, 새카만 머리털이 돋고 아이들 젖니 같은 게 솟던 증조할아버지의 죽은 귀신이 붙었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느 증조 하라버이 귀신두 무섭지만, 느 아버진 저승에 가서두 눈을 못 뜰 게여. 원통한 눈먼 귀신이 을마나 무서운 줄이나 아냐?"
상암리 사람들이 이제 이십 나이에 들어선 육손이를 부추겼다. 원수를 갚는 게 자식된 도리라는 거였다. 이제 세상 법이 달라져, 관에다 아버지를 때려죽인 하암리 사람들을 고소하면 저놈들이 크게 욕을 보리란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주먹을 부르려고 육손이를 부추겼다.
그러나 육손이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와 혼자 하암리로 내려갔다. 김씨 문중의 종가집 마당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빌었다. 눈먼 아버지의 시체를 옛날 증조 할아버지가 묻히길 원한 은장봉 중턱의 그 언덕배기 한 귀퉁이에 묻게 해달라고 손 모아 빌었다. 증조할아버지가 죽었을 때 눈먼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무릎을 꿇고 그렇게 간절히 빌었던 것이다. 그때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죽은 이를 거기 묻게만 해준다면 백골난망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겠다고 거듭거듭 빌었다. 그러나 김씨 문중 사람들은 오히려 눈을 부라리며, 눈 먼 이가 생전에 한 그 끔찍한 방자를 두고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육손이를 가리키며 그들은, 저놈은 눈까지 멀쩡하니 앞으로 무슨 짓을 할는지 모른다고, 지레 엄포부터 놓았다.
육손이는 그들 앞을 순순히 물러났다, 억울하다거나 원한이 뼛속으로 스미는 그런 물러섬이 아니었다. 마음은 오히려 평온했다. 그들 문중 사람들의 그 꿋꿋하고 그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돌산 할아버지 무덤 옆에 묻으면서도 그는 마을 사람들이 툴툴거림을 오히려 달래려 들었다. 그는 아무래도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암리 사람들을 미워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저씨가 육손이시죠?"
나는 그의 얘기가 거의 종국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순간 단도직입으로 잘라 말했다. 이미 그의 왼손 엄지손가락 근처에 기형적인 손가락 하나가 더 붙어 있는 걸 확인한 뒤였다. 또한 얘기의 흐름으로 보아 그가 감정을 전연 노출시키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얘기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원한의 뿌리 같은 걸 냄새맡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가진 사람에 대해서 품고 있는 그 연연한 선망과 증오가 뒤섞인 마음을 지금 나는 마 필구 노인에게서 읽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 개인의 역사에 너무 깊숙이 끌려들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적어도 그의 편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 필구 노인이 일부러 내 앞에서 할아버지의 얘기를 했음이 분명했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있어 가장 완강한 적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 할아버지는 죽어가고 있다.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을는지 모르지만 할아버지는 벌써 십 년 전부터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할아버지의 대행자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타고 오래 전부터 그 표밭에서 노다지를 캐 왔다. 아버지의 표밭은 막강하다. 그러나 이번 5월 선거에서의 그 압승 뒤의 후유증의 발단은 역시 상암리였던 것이다. 상암리는 아버지의 표밭을 독침처럼 파고드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맑고 잔잔한 눈 그늘 속에 가끔 어떤 열망으로 가득한 빛을 빛내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아저씨가 육손이지요? 그렇게 그의 멱살을 잡아 쥐듯 내가 다그친 것도 할아버지를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죽어 가는데 할아버지의 적은 십 팔 년 세월의 역사를 그 퀭한 눈 속에 담고 이렇게 귀향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그 형편없는 몰골을 어기적어기적 놀려 내 앞을 걷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내 흥분을 눈치 채인 기분이었다. 나는 몹시 흥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 머리 속에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는 이 늙은이에 대해서 나는 서둘러 정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단 한 가닥의 실마리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십 년 전 할아버지의 입에서나 할아버지를 찾아온 문중 사람들에게서 이 늙은이에 대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십 팔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다는, 그의 십 팔 년 세월의 의미가 나를 과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것은 이 순간만이라도 내 가슴속에 오기처럼 뻗쳐 오르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더 나아가서는 하암리 문중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대시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들은 말고개 위에 멈춰 서서 땀을 들이면서 저녁 햇빛 속에 자우룩 갈앉아 보이는 아랫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슬쩍 마 필구 노인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저녁 햇빛 속에 그림처럼 착 갈앉아 보이는 그 아랫마을이야말로 상암리와 하암리였던 것이다. 생각했던 대로 그의 얼굴은 굳어 보였다. 나는 조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는 더 입을 열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자. 그러면 젊은인 먼저 내러가 보시우."
넋 나간 사람처럼 아랫마을을 내려다보고 앉았던 마 필구 노인이 말했다. 나는 몹시 당황했지만 일부러 표정을 감추며 그를 쳐다보았다.
"아저씬 안 가실 거예요?"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처음 만났을 때의 그런 무뚝뚝한 표정을 한 채 고개 아래쪽 여기저기를 굽어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도 여기서 쉬었다가 아저씨 내려가실 때 함께 가겠어요."
내가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그가 곧 내 말에 반응을 보였다.
"괜한 생각 말구 어서 내려가시게유. 참, 재민 으르신네 뵙거든 꼭 잊지 말구 말씀이나 전하셔. 육손이가 또 왔다구요.”
해가 넘어가면서 휘휘한 느낌을 몰아오는 고개 아래 골짜기에서 뻐꾸기 한 마리가 천천한 날개짓을 하며 잣나무 숲으로 날아드는 게 보였다.
워꾹, 워꾹, 워 워꾹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음모를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버지를 보는 할아버지의 눈에 그렇게 적의가 가득할 수가 없었다. 이즈음엔 아예 아버지를 외면하는 할아버지가 아닐까. 은장봉 문중 선산에 묻히길 너무나 당연히 바라고 있는 할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아버지는 그 문제에 대해서만은 눈곱만큼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우리 집에 출입하는 문중 사람들도 할아버지의 묘소를 서울 근교 공원 묘지에 마련해 놓은 아버지의 고집에 그 어턴 당위성을 인정했는지 처옴 고집들과는 달리 순순히 물러섰다. 그 공원 묘지에다 오백 평을 구입해 놓고 아버지는 낚시 도구를 손질하면서 엄마한테 말했다. .그 공원 묘지 아래에 기가 막힌 저수지가 있다구. 월척짜리 붕어가 즐펀하다는 거야. 나는 그때 이미 할아버지가 은장봉에 묻히지 못할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눈은 여전히 잔잔하고 맑게 가라앉은 채 가끔 무엇인가 열망하는 빛을 뿜고 있었다.
고갯길을 투덕투덕 내려오면서 나는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피로를 느꼈다. 그냥 어디에고 주저앉고 싶었다. 그 몰려드는 피로 속에는 외로움 같은 게 섞여 있었다. 나는 정말 외로웠다, 그 마 필구 노인을 고갯마루턱에 남기고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나는 한번도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다. 몇 번이고 돌아다보고 싶은 걸 억제하면서 몇 개의 산굽이를 지났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외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외로움은 부끄러움을 자각했을 때에야 그 뿌리를 보이는 법이다. 나는 부끄러웠다. 죽어 가는 할아버지 앞에서 나는 항상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위해서 내가 한 일은 정말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오히려 나는 할아버지에게 외면 당하고 언짢은 기색을 보이며 나가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아버지, 할아버지는 곧 죽을 거예요-그런 뜻의 위안을 하고 싶어 얼마나 조바심쳤던가. 이미 가 버린 세대의 조그마한 정의를 위해서 나의 전도를 흐리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스크럼의 앞줄에 끼었다가도 나는 늘 쉽게 풀려나곤 했는데 그것이 바로 강자를 선망하는 내 철학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항상 나의 적이면서도 내게는 없어서 안될 나의 힘이었던 것이다. 여름 늦은 오후의 이 깊은 산 속의 휘휘함 속에서 나는 온통 벌거숭이가 된 것처럼 부끄러웠다. 나는 비로소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마 필구 노인과 헤어진 그 고갯마루턱을 을려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저녁 어둠은 내게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2
마 필구 노인은 저녁 어둠에 잠겨 들기 시작하는 고갯길을 터벅터벅 내려가는 김가네 종갓집 사람인 그 젊은이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된 지가 오래됐지만 그냥 일어설 줄을 몰랐다. 고갯길의 산모퉁이를 몇 개 돌아 내려가면서도 결코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 젊은이에게서 새삼 김가네 사람들의 그 결연하고 거오스러운 태도를 되살려내자 마음이 조금은 비어들었다. 그러나 지금 마 필구 노인은 그 젊은이의 얼굴에다 익수의 그렇게도 잡혀 오지 않던 모습을 겹쳐 보곤 했다. 그 젊은이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는 익수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스물 한 살이 됐을 것이다. 그가 익수를 마지막 본 게 그가 세 살 때였으니까.
그는 읍내를 벗어나 시골길을 접어들어 참으로 오랜만에 눈을 흠뻑 적셔 폐부를 싱싱하게 울리는 자연 정취에 도취하면서 가끔 옆에 걷고 있는 젊은이가 익수라고 생각했던 게 여러 번이었다.
그래, 이 젊은 사람처럼 얼굴이 이렇게 깨끗할는지도 몰라. 그는 몇 번씩 젊은이의 얼굴을 홈쳐보았다, 그러나 뭔가 마음에 개운치 않은 게 끈끈하게 삼아있었다. 십 팔 년 세월을 열 몇 군데의 형무소를 옮겨 살면서 늘 마음이 이렇게 개운치 않았다. 딱이 익수의 얼굴이 이런 것이라고 틀에 잡혀 나타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익수의 얼굴은 언제나 그 모습을 달리했다. 십 팔 년간 그 좁은 방 속에서 그려져 그놈의 얼굴은 수천이 넘었다.
마지막 본 세 살 때의 얼굴은 아예 생각을 하지 많기로 마음먹었지만 결국 맨 마지막에 분명한 윤곽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은 세 살 때의 백일해로 정말 피골이 상접한 그런 얼굴이었다. 그 눈이 뀀하고 비쩍 마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마 필구는 항상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머리에 부스럼이 다닥다닥 붙어 진물이 번들거리는 예닐곱 살 아이가 콧물을 빨면서 남의 집 부엌을 기웃거리는 게 보였다. 또 어떤 날은 제 키만한 지게를 지고 은장봉 골짜기의 그 노송 아래 언덕에 서서 하암리를 멀거니 내려다보고 섰는 아이가 머리에 그려졌다. 칡뿌리나 옥수수 대궁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허기를 채우다가 밤나무 밑에 잠이 든 그런 아이 얼굴도 있었다. 더 기막힌 것은 소경 늙은이에게 지팡이를 집혀 가지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아이의 꼬락서니였다. 고작 생각해 낸 익수의 모습이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게 아니야 - 그렇게 생각을 가다듬어 보며 머리에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자기의 어릴 때의 꼬락서니였던 것이다. 그것이 자기 유년 시절의 한 부분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는 익수의 얼굴을 떠올리려는 생각을 단념해야 했다. 그는 그것이 늘 안타까웠다. 그런 시간이 그에겐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당연히 죽을 것으로 체념했던 목숨이 무기 징역 선고로 구제 받았을 때 그는 하늘에 감사했다. 비록 철창 속에서나마 평생을 사람답게 살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러나 징역살이란 한마디로 괴로운 삶이었다. 담과 그 담 속의 벽에 갇혀 바깥 세상의 모든 걸 단념해야한다는 것은 종이 한 장을 불살라 버리듯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기가 계일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자기와 함께 무기형을 선고받은 사상범이 형 선고 3년 뒤에 벽에 머리를 박아 죽은 일을 알고 있었다. 억울해요, 억울해! 그 사상범은 죽기 한 칼 전부터 계속 그 말만 입에 올렸다. 죄에 비해 형이 무겁다는 게 아니었다. 그 사상범은 3년간 상당한 심경의 변화를 보여 모범수로 인정을 받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터무니없는 걸 요구하기 시작했다. 뛰고 싶다, 운동장이나 산 같은 데를 몇 시간이고 뛰게 해 달라, 삶은 계란이 먹고 싶다, 무슨 무슨 음식이 먹고 싶으니 먹게 해 달라, 누구누구의 얼굴이 보고 싶다, 이런 놈을 만나 귀때기를 쑤셔 놓고 싶다, 여자를 품고 싶다, 목욕을 하고 싶다, 면도를 하고 싶다, 단 한 개비의 담배라도 빨게 해 달라, 오늘은 늦잠을 자게 해 다오-이런 잡다한 요구를 했다가 그것이 무시되었을 때 그는 으르렁거렸다. 대개의 무기수들은 사형을 면한 것을 우선 천행으로 알고, 그리고 감옥 생활을 몸에 익히면서부터 차츰 삶에 대한 무서운 집념으로 눈을 번들거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차츰 자기들이 살아 있다는 그것이 인간이 누려야 할 그런 성질의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체득하면서부터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그것이 무기수들의 고비였다.
마 필구 노인은 한창 나이에서 맞은 그런 절망적인 고리의 순간을 이겨내는 방법을 벌써부터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익수의 얼굴을 떠올려 보는 시간이 그에겐 구원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머리 속에 잡혀드는 그것이 고작 자신의 어린 시절의 그 천덕구니 모습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그는 몇 년 세월을 온통 익수의 환상으로 살았다.
그는 차츰 익수의 모습을 머리 속에서 마음대로 바꾸어 놓고 바라다볼 수도 있게 되었다. 하암리 애들이 입는 좋은 옷을 이것저것 입혀 보였다. 그 애들이 다니는 학교 운동장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익수가 보였다, 쟤들처럼 뛰어라, 이눔아! 놈이 말타기 놀이의 말이 되어 사자처럼 뛰어오르는 애들을 허리에 받고 고꾸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자처럼 말 위에 뛰어오른 아이를 얼른 익수 놈으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좀더 어른이 된 익수 놈을 떠올려 보기 시작했다. 우촌면 면사무소 책상에 놈이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저 사람 부친이 마 필구여, 저 상암리 사는 육손이 말이여! 사람들이 익수를 가리켜 보이고 있었다. 그는 단호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면서기 정도로 끝나게 해서는 안됐던 것이다, 마 필구 어른, 저 양반이 자제분이라면서유? 상암리 사람들이 순경 한 사람을 가리켜 보였다. 왜 아닌가, 저것이 내 자식일세. 그런 때 그는 장죽을 어깻죽지에 꽂고 하암리 텃논의 그 질펀한 못자리에 물꼬가 트여 물이 쏟아져 드는 걸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생각은 은장봉 그 언덕배기에 서서 아래를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는 아이에게 이르고 있었다. 육손아 - 함께 꼴을 베러 왔던 상암리 아이들이 언덕 아래에서 그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서면 몇 시간이고 움직일 줄을 몰랐다. 거기만 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어깻죽지로 힘이 뻗치는 것이다. 그는 휘이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멀리 둘러선 높직한 산들이 바람꽃에 뿌우옇게 싸여 있는 게 마치 하암리 김가네 기와집 안방에 둘러친 병풍 속의 그림 같아 보였다. 앞에는 상암리와 하암리를 띠처럼 두르고 도는 은백내 강물이 굽이굽이 했빛 속을 흐르고 있었다. 그는 항상 이렇게 사방을 휘 둘러본 다음 하암리 마을을 내려다보기를 좋아했다. 상암리의 조개껍데기 얼어놓은 것처럼 답삭 내러앉은 집들과는 그 모양부터 달랐다. 정말, 산비탈에 자리잡아 앉은 상암리 마을과 확 트인 들판에 요모조모 볼품 있게 자리잡은 하암리 마을은 비교될 게 아니었다. 나무껍질이 아니면 몇 년섹 이엉을 갈아 얹지 못해 시커멓게 갈앉은 초가 지붕이 덮인 상암리 집들은 누가 보아도 하암리 집들에 딸린 뒷간만도 못해 보였다. 질펀하게 펼쳐진 깻들 들판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을 목넘이 서낭당 있는 데까지가 온통 논이었다. 그 질펀한 논 중간 중간에 크고 작은 집들이 구색 맞춰 들어서 있었다. 수십 아름이 넘는 정자나무가 마을 한가운데 우뚝하고 밤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 고목을 울타리로 두르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서너 채 마을을 번듯하게 중심잡고 있었다. 그 기와집을 중심해서 햇볏짚으로 갓 엮은 노오란 초가지붕이 잘 다듬어진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여 꼭 그림이었다. 추수 끝난 논바닥에 무더기무더기 볏단이 쌓이고 마을 어디에선가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은장봉까지 아리아리 울려오기도 했다.
그는 이처럼 비옥하고 깨끗한 하암리 마을이 좋았다. 그 속에 들어가 어울려 살아보다가 죽는 게 그의 꿈이었다. 그네들처럼 배 부르게 먹고 싶었다. 하암리 아이들처럼 읍내 학교에 다니다가 방학이 되면 마을에 돌아와 원두막에 앉아서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호사스러운 생활까지야 바랄 수는 없다손쳐도 그는 우선 하암리 마을에 빌붙어 살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꼴 한 짐을 베어 괴어 놓고 서서 그는 몇 시간이고 하암리를 내려다보았다. 하암리의 댕기드린 머리채를 너풀거리는 처녀들이 은장봉 뽕나무밭까지 올라와 히히덕대며 뽕을 따고 있었다, 그는 하암리 처녀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나같이 요염하게 고와 보였다. 그가 기억하기에도 상암리의 젊은이가 둘이나 하암리의 처녀를 꿰차고 도회지로 도망을 쳤다. 그러나 그는 떳떳하게 하암리 처녀와 결혼을 하는 게 소원이었다. 서른 한 살이 줬을 때까지 그는 아직 그 꿈을 버리지 못한 채 총각이었다. 몇 대 독자에 병신 집안에다 하암리 사람들한테 매맞아 죽은 소경 귀신이 무섭다고 아예 혼담이 오가지를 않았다. 하긴 눈코 제대로 박히지 못한 여자 쪽에서 중신어미를 넣었지만 그런 경우에 이쪽에서 아예 퇴짜를 놓았다. 자식을 잘 낳는 건 씨도 문제지만 밭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좋은 밭을 찾아 줄기차게 탐을 냈다.
"그놈의 자식 속을 모르겠단 말이야."
하암리 사람들은 자기들을 만날 때마다 필요 이상 허리를 굽히고 굽실거리는 그에 대해서 의아한 표정을 했다. 덩치가 남달리 큰 그가 늘 하암리에 내려와 비실거리자 옛날 일을 마음에 되새긴 하암리 사람들은 지레 경계하는 눈빛을 했다. 그는 그럴수록 자기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그는 하암리 코흘리개 아이들한테도 굽실거렸다. 아이들이 육손이를 놀리느라고 산 벼랑에 있는 새알을 꺼내 오라고 해도 그는 쉽사리 그 청을 들어주었다. 남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암리 사람들의 농사일을 거들기도 했다.
그러한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왔다. 그가 그처럼 원하던 하암리 여자를 아내로 맞게 된 일이다. 은백내 제방에서 꼴을 베고 있었다. 귀응소 있는 데서 무슨 소리가 들려 낫을 집어던지고 달려가 보았다. 귀응소 웅덩이에 사람이 빠져 허위적대고 있었다. 깊어야 허리에도 안 차는 그런 웅덩이였다. 건져 안고 보니 탑골 과부집 딸이었다. 읍으로 시집을 갔다가 며칠만에 소박맞아 친정으로 쫓겨와 사는 처녀나 다름이 없는 여자였다. 간질병 때문에 소박맞았다는 거였다. 아마 웅덩이 물에서 몸을 씻다가 발작이 난 모양이었다. 물을 먹어 눈을 뒤집어쓰고 늘어진 여자를 안고 마을 한복판을 가로질러 뛰었다. 탑골 과수댁은 다 죽은 딸을 봉당에 내려놓고 역시 그 옆에 나가자빠진 육손이를 보고 기절초풍을 했다. 탑골 과수댁은 김씨 문중의 여자였다. 마을 사람들이 육손이를 묶어 놓고 닦달질을 해댔다. 김씨 문중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그때 정황들 아무리 늘어놓아도 막무가내였다. 상암리 상것이 김씨 집안 여자를, 그것도 속속곳만 걸친 젊은 여자를 안고 마을 한가운데를 지났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들은 치를 떨며 으르렁거렸다. 고들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여자를 범하고 나서 그게 무서우니까 물에 처넣었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집으로 데려왔다는 거였다.
"음충맞게스리!"
그들은 둘러서서 발길질을 했다. 기막힌 것은 계 정신이 든 그 물에 빠졌던 여자가 도무지 이렇다 저렇다 경위를 밝히지 않고 입을 다문 일이다. 꼼짝없이 모진 매를 맞고 상암리까지 소달구지에 실려 올라왔다.
그러나 두어 달 뒤 하암리 탑골 그 과수댁이 사람을 보내왔다. 자기 딸을 데리고 살지 않겠느냔 거였다. 간질병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까짓 것이야 이제까지의 그의 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 당장에 데릴사위 겸해서 하암리로 내려앉았다. 그는 드디어 하암리 사람이 된 것이다. 꿩 먹고 알 먹기였다. 정말 꿈만 같았다. 그 젊은 여자는 다소곳하게 남자를 받아들여 남에게 흉스럽지 않을 만큼 남편을 위했다. 장모 되는 그 과수댁 역시 좀 별난 인연으로 딸에 대한 속 근심을 어렵잖게 놓은 데다 산같이 든든한 남정네를 집안에 들이게 되자 하늘을 얻은 듯이 기뻐하는 눈치였다, 더욱 다행한 것은 상암리 상것을 사위로 들인다고 문중에서 손을 휘젓고 나서더니, 일단 짝을 지어 놓고 나니 더 이상 트집이 없다는 거였다. 거기다가 사위 되는 육손이가 어떻게 싹싹하게 문중 사람들 눈에 들었는지 하암리에 내려온지 몇 개월 되자 하암리 일대의 산을 지키는 직책을 맡게 된 일이었다.
"육손이가 은장봉 산지기가 됐대여 ! "
놀란 것은 정작 상암리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자기들 일가붙이가 됐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육손이를 믿어 버린 하암리 사람들을 알 수가 없었다. 어떻든 그들은 자기들 생계와도 직접 관계가 있는 일인지라 산지기가 된 육손이에 대해서 기대와 시샘이 뒤섞인 생각들을 가지고 맞았다.
"참말루 어렵구먼!"
육손이는 산지기 일을 맡고 나서부터 가끔 아내한테 말했다. 문중 산이 워낙 여기저기 많이 널려 있는 데다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맡은 일이 얼마나 어렵고 괴로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의 아내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그네는 문중에서 남편한테 산지기 자리를 준 그 속셈을 어렴풋이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남편한테 눈치채게 하여 턱 없이 사람 좋은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육손이는 상암리에 있는 은장봉 쪽의 산을 둘러보는 게 제일 괴로웠다. 가막골 사람들은 참나무를 마음대로 베어 숯을 구워 읍내로 몰래 날라다 팔았다. 문중에서는 단 한 그루의 참나무도 베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거였다. 가끔 읍에서 들어온 산림 간수가 육손이에게 제 권한의 막중함을 과시하면서 자기 대신 그 일을 해줘야 한다고 어깨를 투덕여 주었다. 이제 국유림까지 온통 육손이의 책임이었다. 그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입장에 놓였다. 마음 복잡하게 쓸 것이 없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암리를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김씨 문중 산에다 화전을 일구다 산불을 낸 상암리 사람을 잡아다가 읍내 관에다 넘기는 일도 서슴없이 해냈다. 백 가마도 더 날 잣이 상암리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수확을 못 거둔다고 해서 육손이는 몽둥이를 들고 잣나무 산을 이리저리 뛰기도 했다. 장마철을 이용해 아름드리 전나무를 도벌해서 은백내 강물에 뗏목으로 띄우는 상암리 사람들과 멱살을 잡고 드잡이를 벌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뭐니뭐니해도 계일 어려운 것은 김씨 문중의 선산을 지키는 일이었다. 선산에 상암리 사람들을 단 한 사람도 얼씬 못하게 하라는 거였다.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묻히고 싶어한 그 언덕배기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선산에서 나무를 베는 것은 물론 검부러기도 못 긁게 해야만 했다. 만약 그들 선산 어느 곳에 상암리 사람들이 암장을 하거나 선산 묘에 불경한 짓을 하는 게 발견되면 그 길로 하암리를 뜰 각오를 하라는, 산지기를 맡길 때의 하암리 사람들의 준엄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어떠한 일이든 마다 않고 하암리 사람들을 위해 충실한 산지기 노릇을 했다. 자기 산이요, 자기가 심고 가꾼 나무인들 그렇게 정성을 들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산과 그 산에 있는 모든 것을 아끼고 보살폈다,
"저런 죽일 놈! 제놈이 그럴 수가 있어?"
상암리 사람들이 이를 갈았다. 제 증조부 일이나 소경 아버지의 그 기막힌 일을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가 있느냔 거였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도 있듯이 제가 비록 하암리에 빌붙어 사는 신세가 됐다고 하더라도 본색이 상암리 놈이 분명한 것이 그렇게 변할 수가 있느냐고 모두 주먹을 부르쥐고 흔들었다. 가막골에서 숯을 구워 생계를 잇던 사람들이 결국은 육손이 등살에 못 견뎌 그곳을 떠나면서 이를 갈았다. 근동 산에서 땔나무를 하지 못하고 아주 깊은 산까지 들어가야만 하게 된 상암리 장정들이 육손이를 만나 몰매를 놓기도 했다. 그러나 육손이는 매맞아 다친 발을 절뚝거리면서 은장봉을 지켰다. 산만 그렇게 열성으로 지키는 게 아니었다. 하암리 부녀자들이 상암리까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사내들한테 희롱을 당하는 눈치면 눈에 불을 켜고 나서서 그네들을 지켜 추었다.
"애 아버이, 그 사람들헌테 그렇게 웬술져서 어떡헐려구 그래유?"
그의 아내가 어린애를 안고 앉아 징징 얼굴에 그늘을 깔았다. 그는 이미 애아버지가 돼 있었던 것이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 그를 쳐다보며 벙글거리고 있었다
"역시 밭이 좋고 물이 좋으니까,,,,,,"
그러나 육손이는 자신의 팔자가 펴고 거기다가 이목구비 멀쩡한 아들까지 두었다는 게 가끔 믿어지지 않았다. 사는 게 재미있으면 있을수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도대체 분수에 넘치는 것만 같아 불안하고 무서웠다. 언제고 자기는 하암리를 쫓겨나 그 지긋지긋한 상암리로 되돌아 갈는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또한 아들놈이 멀끔하게 잘 생긴 그만큼 그는 7대 독자에서 대가 끊일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치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산을 휘휘 헤매다녔다. 산 속에서만은 그는 힘이 뻗쳤다. 마음대로 왝왝 소리도 질러 댔다. 산에서만은 그는 무엇이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쉽게 될 것 같은 자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수없이 상암리 사람들과 맞붙어 싸우게 되었는데, 그들을 상대해 싸울 때마다 하암리 사람들이 상암리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과연 상암리 사람들은 욕먹어 마땅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연히 배배 꼬인 심보에다 사리를 가리려 하지 않는 그들의 무례한 행동거지와 막 돼먹은 성깔의 그 천덕스러움이 눈에 훤히 보였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가진 사람들에게 갖는 그런 우리 깊은 적대심의 그 무모한 맞섬이 안타까운 것이었다. 미워할 전 미워하더라도 일단 서로 인정해 주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해야 할 터인데 두 마을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다. 아주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원수였던 양 서로 헐뜯고 서로 잡아먹으려 으르렁거렸다. 두 마을 사이에는 미움이라는 그 끝의 맞섬이 있을 뿐 화해의 실마리는 찾아볼려야 그 어떤 것에서고 찾을 수가 없었다.
"거, 육손이 그 사람, 생각했던 것보다 신실허이!"
육손이가 상암리 사람들한테 미움을 받는 그만큼 하암리 사람들은 육손이를 좋게 보려 들었다. 육손이의 청이라면 웬만한 일이면 거의 다 들어 줄 정도로 그들은 그를 믿었다. 상암리 사람들이 하암리 장삿날 다시 상여를 도맡아 메게 된 것도 육손이의 공이라면 공일 수도 있었다. 하암리 마을 정자나무 밑을 마음대로 지나다녀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상암리 아이들이 은백내 하류 백송정 모래밭까지 내려와 놀아도 떼 싸움이 붙지 않았다. 하나 둘 다시 상암리에 있는 하암리 사람들의 논을 소작 맡기도 했다. 돈을 모은 상암리 사람이 하암리 사람의 밭을 사기도 했는데 옛날 같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즘말에 밭이 났는데, 자네가 사게."
그는 하암리 사람이 땅을 팔 기미만 보이면 부리나케 상암리로 치뛰어 살만한 사람을 물색해서 귀띔을 했다. 그리고 상암리 사람한텐 아무리 비싼 돈을 내놔도 팔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하암리 사람을 구슬러 흥정을 붙여 일을 성사시키기에 남의 일 같지 않게 열성이었다. 일이 잘 되어 술 한잔을 얻어 마신 날이면 그는 세상을 얻은 듯 거나한 기분이 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상암리 사람들은 육손이에 대해서 마음 깊이 미워하는 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하암리 사람들의 종이 되어 쓸개마저 버린 듯한 육손이가 그들의 자존심을 크게 상처 냈다는 데도 문제가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한 하암리 양반 행세를 하는 고에 대한 아니꼬움 반, 시샘 반의 감정 때문이었다. 분명 육손이의 덕을 본 사람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들이 다 미워하는 그에게서
덕을 봤다는 게 마음에 걸려, 막상 돌아서서는 육손이에 대한 욕을 했다.
"계 놈 증조부 점에 내가 옥살일 몇 해를 했는데, 제 놈이 그럴 수가 있어?"
그들은 옛날 일을 꼬치꼬치 들추어내어 육손이가 옛날을 잊고 오만 불손해진 사실을 떠올리며 분개했다.
"그놈이 다 무슨 꿍심이 있을 게여.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정성일 수가 없다니까 ! "
하암리 사람들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는 육손이를 놓고 사람들은 그에게 다른 엉큼한 욕심이 있어서 그럴 거라는 의견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들 몇 사람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건 6.25사변이 터지던 그 해 봄이었다.
"이놈이 벌써 세 살이여!"
육손이는 아들놈을 배 위에 앉혀 놓고 아이 엄마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늘 아내가 아들을 더 낳아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고개를 젓곤 했다.
"당신네 집안이 손이 귀하다면서---"
"그러니까 빨리 낳아야지!"
"조상의 산 자리가 안 좋으면, 자식이 귀하다던데,,,,,,"
아이를 더 못 낳는 걸 육손이네 조상 탄으로 돌리려는 눈치였다. 그럴 때마다, 이러다간 우리 마치 집안이 멀잖아 대가 끊길 게여 - 이처럼 부성을 해대던 증조할아버지의 말이 생각나 말문이 막히는 육손이였다.
그러나 이즈음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술을 자주 먹고 집에 들어와 큰소릴 쳤다.
"이제 당신 아들딸 주렁주렁 낳을 거니까 염려 말라구!"
"그렇게 맘대루 되나유? 손이 귀한 집안인걸,,,,,,"
"쳇, 손이 귀하다니 ? 이제 두고 보라지, 우리 마씨 집안두 끗발 날릴 날 멀잖았다구! 당신은어서 애나 부지런히 낳아놓기만 해, 다 제 먹을 복은 타구 나는 거니까."
술만 먹으면 큰소리치던 육손이였다, 그러더니 결국 육손이가 저지른 일이 하암리 김씨 문중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일이 너무 엉뚱한지라 사람들은 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했다.
"능지처참을 할 놈 같으니라구!"
"호랭이 아가리에다 개를 꿴 셈이여."
"그놈의 그 응큼한 속셈이라니!"
육손이는 사람들이 내쫓는 대로 마을을 순순히 떠났다. 상암리로 다시 옮겨 앉을 처지는 더욱 못 되었기 때문에 그는 면사무소가 있는 우촌면으로 내려앉았다. 그 이상 더 먼 데로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우촌면에 식구를 데리고 내려온 육손이는 사람이 달라졌다. 술을 퍼마셔야만 잠을 잤다. 십 년 수도를 하루아침에 망친 허망함이 그를 괴롭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해 봄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이 당나귀기침에 걸려 눈을 뒤집어쓰고 컹컹 숨넘어가게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몸은 대꼬챙이처럼 빼빼 말라 가는 게 사람 노릇하기는 다 틀린 듯싶었다. 아이 엄마의 발작도 더 잦아졌다. 그럴수록 그는 술을 퍼마시고 우촌면 장에 내려오는 하암리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행패를 부렸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 엄마의 옆구리를 발길로 질렀다. 모든 게 보기 싫었다. 서러워서, 정말 서러워서 못 살겠다고 술을 퍼마시며 엉엉 울기가 예사였다. 어떤 때는 며칠씩 집을 나가 은장봉 일대의 산을 헤매다가 귀신 같은 모습을 하도 돌아오기도 했다, 갤갤 죽어가고 있는 아들놈을 끌어안고 킁킁거려 울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하암리를 쫓겨난 걸 못 견뎌 했다. 서럽고 원통하다는 생각이 차츰 원망으로 변해 갔다. 이놈의 세상 왜 이다지도 불공평하단 말인가. 갖고 싶은 것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데다가 가진 사람들의 그 당당함 앞에 너무나 무력한 자신을 발견하고 그는 어깻죽지에 힘이 빠졌다.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된 게 있는 것만 같았다, 억울하고 억울해서 가슴을 떨다가 보면, 그 일을 하암리 김씨 문중에게 일러바친 사람에 대한 미움이 치받쳐 올랐다. 그것을 일러바친 것은 상암리 사람이 분명하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상암리 폐광 터 위쪽 돌산 공동 묘지에서 뼈를 파내는 걸 볼 수 있는 건 상암리 사람들뿐이었으니까. 그는 주먹을 부르쥐고 이를 악물었다.
그가 증조할아버지의 뼈와 아버지의 그것을 돌산 기슭에서 파내어 그들이 그처럼 묻히고 싶어한 은장봉 골짜기 그 언덕배기에다 암장을 한 것은 결코 김씨 문중에 대한 적대감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들 하암리 김씨 문중이 말하는 것처럼 그곳에 뼈를 묻어 김씨 문중 선산의 지맥을 끊으려는 그런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가 그 은장봉 골짜기 언덕배기에다 증조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뼈를 몰래 묻은 것은 산 자리에 눈이 트인 한 범부의 욕심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삼 년 간 산지기 직을 맡아 이 산 저 산을 헤매면서 남들이 좋다는 산자리를 눈여겨보게 되면서부터 차츰 웬만한 산세는 가늠해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생기가 뻗쳐 흐를 만한 땅이 눈에 짚였다. 어깨 너머로 익힌 그런 어설픈 장풍득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보더라도 은장봉 김씨 문중의 선산은 더 말할 것 없는 명당이었다. 그 김씨 문중의 선산 바로 밑 언덕빼기는 더 좋은 묏자리였다. 그는 열 예닐곱 살 때 그 언덕배기에 서서 좌우를 쏠아보며 그냥 막연하게 그 자리가 좋다는 것만은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는 은백내 강물을 건너 수리봉 꼭대기에 서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은장봉에 대해서 가슴을 두근거리게 되었다. 수리봉에 오를 때마다 은장봉을 유심히 뜯어보던 그는 어느 날 아하 - 소리를 냈다.
드디어 장풍득수의 그 오묘한 진리의 한 귀퉁이를 터득한 것이다. 눈이 트인 그의 눈에 비친 은장봉은 사람의 형상 그것이었다. 그는 임신한 여자의 벌거벗은 몸뚱아리를 보고 있었다. 김씨 문중의 묏자리가 널려 있는 은장봉 중턱은 바로 그 임부의 젖가슴이었다. 그 풍만한 젖가슴에서 아래로 미끈하게 흘러내리던 능선이 다시 두 갈래로 갈라져 고 허벅지 한쪽은 하암리로 다른 한쪽은 상참리를 딛고 선 형국이었다. 증조할아버지가 백 두 살에 눈을 감으면서까지 그렇게 묻히기를 원하던 그 언덕배기야말로 그 허벅지가 갈라져 내리는 안쪽의 깊숙한 음부의 바로 위쪽 불두덩이었던 것이다. 이제야 그는 김씨 문중 사람들이 그 언덕배기를 놓고 그처럼 펄펄 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잣나무 다보록하게 우거진 그 음부에서 생기가 뻗쳐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그 골짜기에서 비롯된 물줄기는 하암리 은백내 강물에 합류해 들면서 하암리의 그 질펀한 들판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그는 새삼스레 장수한 증조할아버지의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증조할아버지의 그 유언이 결코 망령든 노인의 한갓 망집이 아니었음을 그는 깨달았다. 그치고 소경인 아버지가 그 언덕배기에 서서 마치 눈 뜬 사람처럼 사방을 휘휘 둘러보며 명당이라고 혀를 차던 옛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 언덕배기에 서서 이를 부득부득 갈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슴이 찌르르 했다. 그는 어금니로 쿡쿡 비집고 올라오는 웃음을 억누르면서 일어섰다. 아무것도 생각할 것 없었다. 그는 수리봉을 내려오는 즉시 귀신에 흘린 듯 상암리 돌산으로 갔고, 거기서 죽은 이들의 뼈를 추려 은장봉 그 언덕배기로 올라갔다. 증조할아버지와 소경 아버지의 그 원귀가 씌웠는지도 모른다. 자식을 줄레줄레 낳아 당대에 집안이 번성해 떵떵거리고 살고 싶은 현세욕에 눈이 뒤집혔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그는 쉽게 그 밀을 해냈다. 이상한 것은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 일을 해내면서도 그는 죄의식이나 두려움 같은 걸 전연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마음은 더없이 평온하고 배에 뿌듯이 힘이 잡히기까지 했다.
어렸을 때 그는 하암리를 향해 죽은 닭 세 마리를 들고 걸어간 적이 있었다. 상암리 아이들이 야밤을 타 하암리에 내려가 닭서리를 해 왔던 것이다. 닭을 잃어버린 하암리 사람이 상암리에 올라와 엄포를 놓고 갔다. 닭을 잡아간 놈이 직접 닭을 가지고 와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지 않으면 우촌면 주재소에 고발을 하겠다는 거였다. 하암리 사람들은 개 몇 마리에 닭이 몇 마리가 없어진 옛날 일까지 조목조목 적어 와 그대로 변상을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상암리 어른들이 일이 크게 벌어지는 게 싫었던지 아이들을 모아놓고, 훔쳐 온 닭을 당장 가져다 주라는 거였다.
그러나 어느 아이도 나서지 않았다. 닭을 가지고 내려가면 닭서리에 상당한 벌을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벌을 받지 않는다 해도 누가 스스로를 도둑이라고 자처해서 그 모욕을 참아낼 것인가. 육손이는 함께 닭을 훔친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아이들이 모두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은 닭을 들고나섰다. 당연히 자기가 해야 할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는 죽은 닭을 들고 가면서 앞으로 닥칠 일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그는 이상하게 당당한 기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증조할아버지와 소경 아버지의 뼈를 그 언덕배기에 암장하고 난 그는 가슴속 깊이에 고여드는 희열 같은 걸 겉으로 나타내는 걸 참아내야 했다. 그는 그 사실을 아내한테도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다가 죽을 수는 없었다. 좋은 산 자리에 암장을 했다가 그 자식이 그 사실을 잘 몰라 영원히 조상의 무덤을 찾지 못한 집안을 생각하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수는 없었다. 그는 그의 세 살 난 아들이 어서 커 철이 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단 며칠이 못 가 들통이 나고 만 것이다. 감쪽같이 덮은 뗏장이 들춰지고 뼈가 산자락 여기저기 던져졌다. 그는 파헤쳐져 나뒹구는 뼈를 줍느라 이리저리 뛰었다. 흩어진 뼈를 주워 모으는 것까지는 누구도 막으려 하지 않았다. 은장봉에 하얗게 올라온 하암리 사람들이 뼈를 주워 모으는 그를 향해 욕을 퍼댔다. 당장 때려 죽여야 한다고 펄펄 뛰었다. 놀라운 일은, 그 은장봉 언덕배기에다 뼈를 암장한 것은 육손이뿐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언덕배기 세 군데서나 사람 뼈가 무더기무더기 쏟아져 나왔다. 육손이가 산지기 직을 맡은 뒤에 생긴 일인 게 분명해지자, 이제 육손이는 그 책임까지 져야 할 판이었다. 하암리 사람들은 세 군데서 파헤친 뼈를 한데 모은 다음 빈 쌀가마니에 넣어 가지고 내려갔다. 그러나 상암리 사람들은 은장봉 밑에 웅기웅기 몰려 서서 구경을 할뿐 단 한사람도 그 뼈가 자기네 것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저놈, 저 육손이 농간이여!"
오히려 상암리 사람들은 자기들이 암장을 했다가 들통난 걸 육손이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제 부모의 뼈도 못 추리게 된 사람들이 이를 갈았다. 그는 겨우 주워 모은 뼈를 안고 은장봉을 내려왔다. 이제 증조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뼈는 상암리 그 돌산에도 묻힐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는 은백내 강물을 건너 수리봉으로 올라가 은장봉이 건너나뵈는 으슥한 곳에다 그네들의 뼈를 묻고 일어섰다. 은장봉이 좀더 가까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져 꺽꺽 울었다.
흐, 흐흐
그는 십 팔 년 만에 다시 수리봉 꼭대기에 서서 어둠에 싸여 그 형국이 전연 잡히지 않은 은장봉 쪽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다리에 맥이 빠지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궂은 목숨을 바둥바둥 이어온 것이 아닌가. 처음 무기형을 선고받고, 난리 뒤의 그 틀 잡히지 않은 형무소 속에서 그는 자기가 살아서 나가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차츰 그는 은장봉 잣나무 다보록 우거진 골짜기 위 그 언덕배기를 머리 속에 떠올리면서부터 어떡하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언덕배기만 생각하면 주먹에 힘이 쥐어졌다. 그 날 수리봉 꼭대기에서 은장봉의 맥맥히 뻗쳐오르는 생기를 터득해 보게 된 그 순간의 가슴 두근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처음 몇 년 동안 그 언덕배기를 머리에 떠올리고 그 다음 그 언덕배기를 배경으로 아들놈의 얼굴을 상상해 보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 십 년 세월이 흐른 뒤부터는 그 생각도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모습을 달리했다. 그는 바깥 세상에서는 단 한번도 구경 못한 자가용차를 머리에 그리기 시작했다. 가끔 옥 밖에 사역을 나갔다가 보게 된 까만 빛의 승용차를 본 뒤부터 그 생각은 좀더 구체적이었다. 승용차가 하암리 마을을 들어서는 게 보였다. 차는 마을 어구를 미끄러져 들어가 정자나무 밑을 지나 상암리 쪽으로 내닫는다, 길 옆에 사람들이 죽 늘어서서 손을 흔든다. 만세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상암리 사람과 하암리 사람들이 어울려 있었다. 드디어 차가 은장봉으로 오르는 입구에 멈춰 선다.
이때부터 그의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두려운 것이다. 그는 생각을 더 잇지 못하고 일어서서 좁은 방안을 어정거린다. 애써 다른 생각을 떠올리려 한다. 그러나 모두 헛일이다. 가슴은 더욱 뛰고 숨까지 차 온다. 드디어 더 견디지 못하고 생각의 줄을 탄다. 차가 섰다. 그래, 까만 빛의 승용차가 섰다. 사람들이 우우 둘러서서 차 속을 들여다본다. 좀 나서라구, 썩썩 비켜서라구! 그가 외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극성스레 달라붙는다. 비켜요, 비켜. 여기서 생각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이다. 문을 열 수가 없다. 누군가 전연 낯모르는 사람이 나을 것 같아서다. 지금까지 마음속에 키워 온 그 얼굴이 아닐 것 같은 두려움이다. 이쯤에서 그는 생각을 지워 버리려 안간힘을 쓴다. 얼마쯤 그렇게 생각의 줄을 끊었다가 보면 이번에는 어느새 은장봉 골짜기의 언덕배기가 보인다. 그 언덕배기에 커다랗고 잘 다듬어진 묘가 있고 그 앞 상석 밑에 아들 내외와 그 아들의 몸에서 나온 아이들이 너댓 명 엎드려 있다. 이때부터 가슴이 또 뛰기 시작한다. 그들 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고개를 들 것 같아서다. 그들의 얼굴이 전혀 잡혀 들지 않는다. 겨우 잡혀 든 얼굴은 전연 남이기 예사였다. 여기서 그는 또다시 생각의 줄을 끊고 일어나 서성거린다. 매일매일 거의 똑같은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같은 생각을 되풀이했다. 그는 지치는 일 없이 매일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 까만 빛의 승용차를 기다렸다.
그런 은장봉의 환상이 이상할 정도로 선명한 날이면 어김없이 그의 아내가 면회를 왔다. 십 팔 년 동안 그는 정확하게 아내의 얼굴을 마흔 네 번 볼 수 있었다, 그는 그 마흔 네 번의 수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삼 년 동안 그네는 일 년에 단 한 번씩 면회를 왔다. 그네는 표정 없는 얼굴로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말 한마디 없이 돌아가곤 했다. 그는 일 년에 한 번씩 아내의 얼굴을 볼 때마다 원망스럽다는 말 대신 눈물부터 흘렸다. 그 역시 아내처럼 단 한마디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후 그 네는 만 3년 간 일체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죽지 않았으면 다른 데 재가를 해 갔으리란 생각이 들면서부터 어깻죽지에 힘이 빠지면서 다시 살 의욕을 잃었다, 출소해서 나가는 사람한테 은근히 부탁도 했다. 죽었는지 재가를 해 갔는지 가부나 알았으면 해서였다. 그러나 아들놈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뭔가 어린것한테 부정이 탈 것 같은 위구심에서였다. 그러나 그네가 다시 3년 만에 나타났다,
"익수가 소학교 3학년이에유."
3년 만에 얼굴을 보인 그네가 입을 떼어 말한 것이 그 한마디뿐이었다.
바깥 세상을 떠난 지 실로 6년 만에 듣게 된 아들 소식이었다.
"그놈이 살아 있었구먼!"
그의 가슴은 몹시 뛰었다. 그러나 그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네는 일 년에 네 번씩 면회를 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번씩 나타나는 아내를 향해 그는 여러 가지를 묻고 싶었다. 3년 동안 왜 한번도 오지 않았느냐, 재가를 했으면 지금 어디 가서 살고 있는지, 익수는 누구를 닳았으며 공부는 제대로 하는지 - 사실 그는 그 짧은 면회 시간을 위해 몇 달 전부터 이러이러한 것을 물어 보리라 작정을 하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네를 만나면 단 한마디도 입을 뗄 수가 얼었다, 그네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하면 그는 말문이 막혔다. 그네는 전연 남이었다. 옛날에 몸 섞어 산 그네가 아니었다. 원래 과묵하긴 했어도 그처럼 매몰찬 얼굴은 결코 아니었다. 간질로 해서 음울한 그늘이 깔린 얼굴이긴 했지만 그처럼 철저하게 무표정한 얼굴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그네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다. 자기가 이때껏 살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그네의 신세를 저 꼴로 만들었다는 그런 자책감 같은 건 별로 없었다. 그는 그저 그네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의기소침해졌다. 이제까지 벽 속에서 환상으로 떠올린 그 승용차와 은장봉 묘지의 풍경이 쑥스러워 그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시는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쥑일 년!"
그는 아내를 만나고 돌아서서 복도를 걸으며 중얼거렸다. 주먹에 힘껏 힘이 쥐어졌다. 가슴이 떨렸다. 암장했던 증조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뼈가 파헤쳐지고 곧장 하암리를 쫓겨나 우촌면에 살면서 뻗쳐오르던 살기가 다시 치밀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네 앞에서 단 한마디 입을 열지도 못한 자신에 대한 혐오가 들끓어 올라 그를 괴롭힌다. 그는 그렇게 며칠을 안절부절못하고 끙끙거렸다. 자가용도 은장봉 그 묘지의 풍경도 떠오르지 않았다. 꼭 아내에 대해서만은 아닌 분노가 은 몸 구석구석에서 솟아올랐다. 1는 어떡하든 살아서 밖에 나가오 싶었파. 그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이를 악물면서부터 이상하게 다시 그 은장봉으로 치닫는 까만 빛의 승용차와 묘지의 풍경이 되살아났다. 그때부터 그는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단 한번도 죄의식 같은 걸 느끼지 않았던 그가 갑자기 깊이 참회하는 것 같은 언동거지를 했다. 그의 전향의 기미는 그를 구속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또 그 세상이 된다면 어떻게 살고 싶소?"
그네들이 물었다.
"내 논을 대여섯 마지기 부치면서 자식놈 출세하는 거다 보면서 살고 싶어유."
허허, 허 -그네들이 웃었다.
"그쪽 사람들은 당신이 갖고 싶어하는 그 논을 주지 않을걸요."
"염려 마십쇼, 그놈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거니바유. "
그는 모범수였다. 이제 3년만 더 살면 바깥 세상에 나갈 수 있도록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마지막으로 옮긴 지방의 교도소에 그네가 면회를 왔다.
"이제 3년 남았네!"
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그네의 얼굴이 활짝 펴지는가 싶었다. 그는 용기가 솟았다.
"지금 사는 데가 어디여?"
그런데 그네의 얼굴이 다시 무표정해졌다. 새삼 크는 아내가 많이 늙었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그 지치고 늙은 얼굴을 보자 그는 자신도 그렇게 늙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암리도--- 이젠 많이 변했겠지?"
그는 묻는 방법을 달리했다. 역시 그네가 걸려들었다.
"하암리를 뜬 지 벌써 십 육년두 넘은 걸유."
그렇다면 난리가 끝나면서 자기가 잡혀 들어오고 그네도 곧장 하암리를 떠났다는 결론이 된다. 어떵든 그네가 하암리에 살지 않는 것만은 분명했다.
"익수 아버이, 여기서 나오더라두 자식 찾을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해유."
그 날 마지막 면회에서 그네가 남긴 말이었다, 그 날 이후 출소하는 날까지 3년여를 아내의 얼굴도,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아내가 원망스럽지 않았다. 어쪄면 다시 아들 얼굴을 볼 수 없을는지 모르는 일인데도 허망하거나 절망감이 생기지 않았다. 아내가 출소하는 날까지 얼굴을 내밀지 않았어도 그는 그렇게 된 것이 마땅한 일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평온하게 가질수록 자가용차가 하암리 정자나무 밑을 미끄러져 들어가는 환상이나 은장봉의 그 묘지 풍경이 자주 나타났다.
솔직히 말해 난리가 난 그 해 여름 그가 우촌면에서 다시 하암리로 올라간 것은 한번 여봐란 듯이 뻐기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이다. 실상 그는 금의환향하는 심정이 되어 아내와 아직 당나귀 기침을 앓고 있는 아들을 끌고 하암리로 올라갔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어린 시절 닭 세 마리를 들고 터벌터벌 하암리로 내려가던 그때의 심정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구원받은 느낌이었다. 매일 술에 허해 망나니처럼 우촌면 장거리를 싸다니던 그에게 그 여름 난리는 새로운 세계의 열림이었기 때문이다.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그를 불러냈다. 이제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세상이라 했다. 이제까지 가지고 싶었던 모든 걸 마음대로 가딜 수 있다는 얘기였다.
"동무가 하암리 책임자요."
그의 성분과 하암리에서 쫓겨난 내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감투를 씌웠다. 생각 같아서는 그 감투를 쓰고 당장 하암리로 치뛰고 싶었다. 그때 그의 심정이 그런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더럭 겁부터 났다. 무슨 일이든 풀리지 않고 매몰차게 등을 돌리는 자신의 시운 불행이 뼈저리게 저며 온 때문이다. 그가 감투를 쓰기를 머뭇거리자 그들이 몰아붙였다.
"이 사람, 하암리 살더니, 하암리 사람 다 됐군!"
"하암리 사람한테 거길 맡길 수야 없지!"
"그렇잖구, 이렇게 혁명 정신이 약한 친굴 시켜 봤자."
그러면서 그들은 그에게 씌우려던 감투를 상암리 사람한테 맡겨야 하암리 반동분자를 모조리 잡아낼 거라는 얘기였다. 듣기에 벌써 상암리 사람들이 하암리를 쑥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거 였다 - 거기다가 칼자루까지 쥐어 준다면 얘기는 더욱 달라질 것이었다.
그는 감투를 쌨다. 하암리 인민 위원회 위원장 겸 우촌면 내무서 하암리 연락원이 되어 그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하암리를 향했던 것이다. 그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따라오면서도 기죽은 얼굴을 했다.
"눈이 있으면 봤을 거 아니여. 옛날에 웬수진 놈 찾아 개 패듯 패 죽여두 죄 안 되는 세상이란 말이여."
그런 끔직한 일을 막아내기 위해 자기가 하암리로 가는 거라고 그는 아내한테 말했다. 그의 본심에 그런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니긴 했다. 하암리 사람과 그 하암리의 모든 것에 대해 갖는 그 선망의 마음은 하암리가 상암리 사람들한테 짓밟히는 걸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하암리에서 쫓겨나긴 했어도 뭔가 하암리에 대해서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은 마음 꺼림한 상태였다. 어떻든 그는 붉은 완장을 차고 하암리로 올라가는 구실 하나는 당당히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듣던 대로 하암리는 쑥밭이었다. 상암리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 가지고 마을을 설치고 있었다. 세상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뒤집혀 달라질 수가 없었다. 그는 우선 눈이 뒤집힌 상암리 사람들을 상암리로 올려 보내는 일부터 했다. 어쩔 수 없이 밀려 올라가면서도 상암리 사람들은 그에게 불만스런 얼굴을 보였다. 하암리 반동 분자를 두둔한다고 오히려 역습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하암리에 올라온 그 좋은 구실이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두 마을을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그저 협조만 잘 해주시면,,,,,,"
그는 마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협조만 잘 해주면 자기로서도 마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에 다짐을 두었다. 그런데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눈이 그게 아니었다. 모두가 그를 피하였다. 막상 맞닥뜨리게 되어도 그들은 진심을 주지 않았다. 그 당당하던 얼굴을 감추고 표면에 잔뜩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적당히 얼버무려 자리를 피하려 하였다. 그들은 상암리 사람들에게 얼마 동안 당한 일까지 모두 그에게 뒤집어씌우는 눈치였다. 상암리 사람들도 일단 육손이가 칼자루를 잡고 오자 슬슬 뒤꽁무니를 사리면서 그를 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탑골 그의 집에는 개미새끼 하나 접근하지 않았다. 그의 장모가 장독대에서 떨어져 몸져 누웠어도 누구 하나 문병을 오지 않았다. 세 살짜리 아들은 아직도 기침병으로 컹컹, 껍데기만 남았지만 이런저런 약을 쓰라고 일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서슴서슴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참아 낼 채간이 없었다. 자기 혼자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그 외로움이 안으로 괴었다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곤 했다. 그는 마을 부녀자들을 풀어내어 위에서 시키는 대로 벼나 조 이삭의 그 낟알 수를 세게 하면서도 뻗쳐오르는 부아를 걷잡을 수 없었다. 그는 차츰 면에서 지시가 내리기가 무섭게 마을을 발칵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마을에 숨어든 반동분자를 찾아 눈에 불을 켰고, 감춰 둔 곡식을 찾아내느라 인민군들과 함께 땅을 파헤쳤다. 그는 부지런히 우촌면을 오르내리며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은 외롭지만 언젠가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본심을 알아주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을 사람들의 따돌림에 대해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걸 애써 눌러 삭이면서, 적어도 그런 감정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죄짓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에 거듭 다짐했다. 하암리에 올라오는 즉시 무엇보다 먼저 수리봉에 아무렇게나 묻은 증조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뼈를 파 은장봉 그 언덕배기에 묻어야겠다던 생각을 그는 도저히 실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외로운 것 같았다. 그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그는 더욱 극성스럽게 뛰어다녔다, 사람들의 눈에 그는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미친개였던 것이다.
3
마을은 온통 매미 울음소리였다. 산과 강이 조화롭게 둘러선 오지의 마을은 그처럼 극성스런 개미 울음소리에도 불구하고 강을 따라 질펀하게 누운 들판의 벼 익는 냄새 속에 자우룩 갈앉은 느낌이었다. 시골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도무지 분주스럽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결코 느린 걸음걸이가 아닌데도 마냥 여유가 있어 뵈는 그런 걸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차분하게 갈앉은 마을의 한낮 속에서 시골의 맑은 공기와 아름다움에 빠져들 만픔 마음의 여유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유독 나 혼자만이 초조하고 마음 번뇌스러운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과의 그 신경 곤두세우는 만남을 통해 나는 완전히 마음의 갈피를 잃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에 도착하는 저녁부터 나는 가깝고 먼 것 가릴 것 없이 꽤 많은 일가 친척들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응당 내가 먼저 찾아 나서야 할 어른들마저 나보다 앞서 찾아와 내가 숙소로 잡은 당숙네 안방에 떠억 버터고 앉아 절 받을 채비를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할아버지의 요즘 건강을 꼬치꼬치 캐어묻는 것으로 시작해서 아버지의 근황 쪽으로 화제를 돌려갔다. 그들은 내 입을 통해서 지난번 있었던 선거에서의 문중 사람들의 공로를 확인 받고 싶어하는 그런 눈치들이 분명해 보였다. 또한 그들은 요즘 서울에서 말썽이 되고 있는 아버지의 문제에 대해서 몹시 궁금해하는 그런 얼굴들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내게 부탁한 그 흔해빠진 공치사 한마디도 해줄 수가 없었다.
이미 나는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할아버지의 고향이며 아버지의 표밭의 근원이기도 한 그네들 생존의 터전에 발을 디딘다는 감회로 하여 몸과 마음이 뻣뻣이 굳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대기층을 벗어나 성층권 비행에 돌입한 순간 공기밀도의 감소로 인해 산소 부족을 느낄 때의 그런 공포 같은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눈 그늘 밑에 꺼지지 않고 살아 있는 그 번쩍이는 불씨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아버지가 해 보인 그 기적과 어쩌면 아버지 시대의 종말의 한 서곡이 될는지도 모르는 말썽의 현장에 숨어들어 그 적정을 엿보고자 했던 나의 당초 계획은 말짱 헛것이었다, 그들은 할아버지의 지금 안부가 문제일 뿐 할아버지가 지녔던 옛날의 그 위대함에 대해서 퍽 인색한 편이었다. 더우기 그들은 아버지의 문제에 대해서도 내 입을 통해서 뭔가 캐어내려 기웃거렸을 뿐 자신들의 생각은 거두어 둔 채 철저하게 입을 다물었다. 우촌면이 전국에서 최고의 투표율을 나타냈음은 물론 한 입후보자에게 쏠린 표가 80.9퍼센트라는 이 놀라운 기적에 대한 세간의 그 떠들썩함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현장의 당사자들은 엉뚱한 표정으로 초연해 보이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지난 선거의 얘기나 그 뒤의 후유증 같은 것에 대해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하물며 말썽의 빌미라고 할 수 있는 상암리 사람들의 투표권 박탈이라는 전근대적 사건에 대해서 단 한 가지라도 얻어들으리라 생각했던 나의 계산은 너무나 많이 빗나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물었더라도 그들은 결코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들이 내 물음에 대답했다손쳐도 그것은 내 귀를 간지럽히기 위한 그네들 선심이 다분히 깔린 거짓 증언에 불과했으리라.
마을에 도착하는 그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나절까지 나는 실로 많은 문중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빈 병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공허한 만남이었을 뿐이다. 내 또래의 젊은이들의 그 호의적인 영접조차도 그들은 자기들 앞에 쌓은 벽을 허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견고한 벽을 쌓아 놓고 그 벽 저쪽에서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며 내 눈치를 살폈다. 여차하면 벽 아래로 몸을 감추고 영영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몹시 슬픈 일이었다. 슬프다기보다 허허한 벌관 한가운데서 적에게 둘러싸인 그 조바심과 외로옴이 뒤섞인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네들과의 이런 부자연스런 만남을 통해 분명한 사실을 집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적은 상암리 사람들뿐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확실했다. 내 눈에는 하암리의 문중 사람들도 모두가 아버지의 적으로 보여졌다, 그것은 아버지가 스스로 씨 뿌리고 거둔 결과였다. 아버지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할아버지의 고향에다가 배신의 풀을 키워 왔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멍청한 눈에 가끔 번뜩이는 아버지에 대한 적의는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배신을 노여워하는 언어였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방법에 있어서 다소 무리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거야 꼭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었을 테지."
은장봉 선산을 오르면서 국민학교 교감 선생으로 있는 당숙이 말했다. 사람들과의 그 공허한 만남에 질려 버린 나는 당숙을 재촉하여 마을을 빠져 나와 그럴 듯한 의미를 던져 줄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콘 조상들의 무덤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당숙은 아버지의 표밭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나의 끈질긴 추궁을 용하게도 피해 나갔다. 그의 논리를 따르자면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내 고장을 위해서, 내 나라 내 민족을 위해 몸을 내놓은 그런 선량이었던 것이다. 나는 당숙의 얼굴을 곧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가장 가까이서 많이 알고 있는 나로서는 당숙의 말이 듣기에 여간 거북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아버지의 전부를 알고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아버지는 전형적인 정치가일 뿐 국민의 공복으로서 단 한 순간이라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생각해 보는 고런 우국지사적인 건더기는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위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말하는 당숙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이 진지했다. 당숙이 말하는 아버지야말로 당숙의 머리 속에 이상적으로 그려 온 그런 인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아버지의 실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가 이제까지 아버지의 모든 것을 거역하지 못한 채 오히려 완벽한 그의 편이었던 것처럼 당숙 또한 아버지의 그 권력과 부가 온통 아버지 개인의 현세적 영화를 위해 사용된다는 것을 번연허 알면서도 문중이라는 하나의 결속된 힘의 필요성 때문에 나처럼 아버지의 편에 서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렇지만 그러한 전근대적인 비행이 우리 문중에서 일어났다는 건 용서할 수 없어요."
앞서 걷던 당숙은 걸음을 멈추며 내 말의 진의를 캐려는 듯 내 얼굴을 돌아다보았다.
"무슨 말인가? 비행이라니,,,,,,?"
당숙이 쉽게 걸려들었기 때문에 나는 서슴없이 다그쳤다,
"상암리를 비롯해서 몇 개 부락이 단 한사람도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는데도 선거인 명부에는 물론 투개표 결과에 있어서는 모두 투표를 한 걸로 돼 있다면서요?"
"저쪽 사람들이 그렇게 떠든다고 하데만, 허씨만 흑백이야 법이 가릴 일이지."
"아무튼 아버지가 지나치게 문중을 이용한 게 사실이지요?"
"아닐세, 아버지가 문중을 이용한 건 아니고 문중에서 아버지를 내세운 거라네."
"그럴는지도 모르죠. 허지만 그만큼 큰 힘이면 아버지를 내세워 그런 떳떳지 못한 결과를 얻는 것보다 몇 배 더 당당하고 뜻있는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요."
"바로 그걸쎄. 그런 큰일을 하기 위해 자네 아버님을 내세운 거라네."
나는 당숙과의 이런 무모한 대화를 포기하기로 했다. 당숙의 그 속이 들여다뵈는 위선도 싫었지만 철두철미하게 세속적인 영화를 위해 할아버지가 쌓아 올린 탑을 딛고 서서 할아버지의 성을 서서허 허물어 내려온 아버지의 실체를 마치 남의 얘기처럼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뿐이 아니라 우리들이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당대적이고도 얕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광분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갖는 그런 혐오가 서서히 가슴으로 서려 왔기 때문이다. 왜 그처럼 큰 힘과 그 힘을 뒷받침하는 부를 좀더 크고 미래적인데 돌리지 못하는가. 물론 아버지 같은 사람들은 허울 좋은 명분을 어깨에 주렁주렁 매어 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대로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탐욕의 안개에 의해 시야가 가려진 사람일수록 말의 정치, 말의 종교, 말의 애국을 위해 광분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할아버지가 그처럼 빨리 폐인이 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좀더 옳고 큰 것을 위해 일하는 재목이 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할아버지가 우리가 바라는 것과 같은 그런 크고 옳은 것만을 위해 살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일제 말 할아버지가 가문의 권위를 위해서 그들이 주는 행정직을 맡았던 것은 결코 잘한 일이라고는 할 수 얼을 것이다. 더구나 증조할아버지가 젊은 혈기로 엉클어 놓은 그 인습적인 가문의 권위 추락을 회복하느라 할아버지가 상암리 사람들의 생활과 그 인권까지 짓밟았던 일은 아무래도 떳떳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항상 당당할 수 있었다. 문중을 위해서, 그렇다, 할아버지에게는 그러한 당당한 명분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상암리 사람들에게 못할 일을 했으면서도 그것은 적어도 할아버지 한 개인의 영달을 위한 벗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그 분명한 증거로 할아버지는 폐인이 되어 누워 있는 지금까지 문중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있지 않은 것이다. 문중 사람들이 아니라 상암리의 노인들까지 할아버지를 문병 왔던 걸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랐다. 문중이라는 그 소단위의 영광을 위해서도 아닌, 오직 아버지를 위해서 문중의 그 결속된 힘을 이용했을 뿐이다.
아버지처럼 자신의 이름과 당대의 치부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치고 후세에 추앙 받은 인물은 없다. 아버지에겐 오직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막연히 의식할 때마다 허위와 독선으로 완강한 벽을 쌓고 그 벽 뒤에서 킬킬거렸다. 할아버지든 -그렇다, 그 넓은 방에서 권리를 물려준 대왕처럼 심심하게 숨쉬고 있는 할아버지는 한낱 아버지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 뵈지 않게 하는 하나의 보호색이었을 뿐이다.
선산으로 오르는 길은 활엽 교목이 빽빽이 우거진 사이로 볼품 있게 뻗어 있었다.
"어디쯤에요? 상암리 사람들이 그렇게 탐냈다는 그 명당 말이에요."
막상 산에 들면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나는 그럴 듯한 지점에 이를 때마다 사위를 휘둘러보았다. 산을 오르면서 계속 육손이 노인을 생각해 왔다.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그처럼 묻히고 싶어했던 땅, 그의 눈먼 아버지가 이를 갈아붙이며 저주했던 은장봉 선산이 아닌가.
"백부님께서 하암리를 떠나신 지 벌써 올해루 꼭 십 년째네."
상암리 사람들이 탐냈다는 그 명당의 위치를 묻고 있는 말에 그는 엉뚱하게 나왔다, 아마 과거의 그 달갑지 않은 얘기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속셈인 모양이었다.
"할아버지께선 이제 얼마 안 있음 하암리로 도로 오실 텐데요 뭐."
내가 시치미를 떼면서 말하자 당숙은 무슨 소리냐는 듯 내 얼굴을 돌아다보았다.
"돌아가심 할아버질 여기 은장봉에 모실 거 아녜요?"
할아버지, 제가 하암리 갔다 와서요, 거기 얘기 많이 해 드릴께요. 귀가 막힌 할아버지를 향해 내가 악을 쓰다시피 말했을 때 분명 할아버지의 눈에는 뭔가 번득이는 게 있었다. 나는 늘 그렇게 잔인했다.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할아버지의 의식 속에 아버지를 미워할 본능적인 증오를 불어넣기 위해 음모를 꾸며 온 내 자신이 이제와서 부끄러웠다.
"이제 백부님께서야 여기 와 묻히시긴 틀리잖았는가. 김 의원님이 그 뜻을 바꾸기 전에야. 허지만 아마 김 의원님이 그것만은 양보하지 않을 걸세."
당숙은 그것을 양보라는 말로 나타냈다. 할아버지의 묏자리를 서울 근교의 그 훌륭한 공원 묘지에 마련해 놓은 아버지와의 다툼에서 손을 들어 버린 문중 사람 중에는 당숙도 끼여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완벽한 고집을 꺾지 못한 자기들의 무능을 그들은 양보라는 말로 자위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제 서울로 선거구를 바꿀 생각이신가 봐요. 문중의 간섭이 너무 심하다고 늘 그러시던 걸요. 아버지는 이제 문중의 간섭을 받을 만큼 약하지 않거든요."
당숙은 잠깐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당치도 않은 소리라는 듯, 그러나 그는 내 말에 대꾸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내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당숙은 나를 무서워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할아버지가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이런 경우 나를 향해, 이노오옴! - 추상같이 호령했으리라. 하암리 얘기가 나을 적마다 내 눈에다가 초점을 맞추며 내 속셈을 헤아리려 고심하던 할아버지의 그 눈,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가 폐인이 된 이래 단 한번도 할아버지의 편에 선 일이 없었다.
집안 식구 중에서 할아버지의 곁에 가장 많이 붙어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눈을 의식한 나의 처세학 제 일조가 스러져 가는 세대에 대한 한낱 감상이었을 뿐이다. 그것까지는 헤아리지 못한 할아버지는 당신의 곁에 자주 오는 나를 무척 좋아했다. 그처럼 할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내 신통한 능력을 인정해 주는 것은 역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곁에 있는 나를 신뢰하는 그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삼 형제 중에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너무나 흡사히 닮고 있는 것은 나였다. 아버지만은 내가 스크럼의 앞줄에 끼어 주먹을 내뻗는 내 열정에서 정치가적 그 제스처를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버지보다 한 단수 높은 정치가가 될 수 있을는지 모른다. 내가 아버지만큼의 위치에 있다면 - 나는 가끔 음흉하게 웃곤 했다. 아아, 나는 사람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잣나무 울을 우거진 그 짙푸른 그늘을 벗어나자 치산이 눈에 띄게 잘된 언덕이 나타났다. 자그마한 언덕이 온통 잔디로 덮여 있어 마치 도시 주변의 어느 공원에 은 느낌이었다, 나는 둥당거리는 가슴을 애써 눌러가며 앞서 걷는 당숙을 불러 세웠다.
"바로 여기가 그 명당 자리군요?"
말해 놓고 나서 나는 몸을 돌려 멀리 윤곽이 뿌우연 수리봉 폭을 바라보았다, 하암리 남단을 지그시 감싸고 도는 은백내 강물 줄기가 햇빛 속에 그 긴 몸체를 번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새삼 사람의 손이 많이 간 흔적이 역력한 언덕의 잔디 위를 서성거렸다.
"여기에다 이렇게 잔디를 심어 깨끗하게 해 놓은 건 저 위쪽 마을 사람들이 암장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겠죠?"
"그런 이유도 아주 없진 않네만, 그거보다 원래부터 예가 예사 데가 아니기 때문일세."
"그럼 저 꼭대기 우리 선조들 모신 데보다 여기가 더 좋은 자리란 말이에요?"
당숙이 선뜻 대답했다.
"당연한 얘기지!"
"그럼 여기다가는 왜 묘를 안 쓰는 거예요? "
"안 쓰는 게 아니라, 아직 여기 묻히실 어른께서 나타나시지 않았기 때문이라네."
“네에?"
"믿어지지 않겠지만, 문중에 절해 내려오는 말씀이 있다네. 여기에 묻힐 분은 정 일품 벼슬 이상이어야 한다는 얘기지."
당숙의 표정은 끝까지 근엄해 보였다. 그러나 이 잔디밭 언덕에 묻힐 어른이 정 일품 벼슬 이상이어야 한다는 말을 할 때의 그의 억양은 어딘가 모르게 겸연쩍어하는 그런 구석이 보였다.
"그럼 그 분이 여기 묻히신 다음엔 우리 문중에서 대통령도 나오겠네요?"
나는 그냥 농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당숙은 얼마 전 겸연쩍어하던 억양을 은폐라도 하듯 잘라 말했다.
"물론이지, 우리 문중이라고 대통령 안 나오란 법 없지!"
그런 면에서 볼 때 아버지는 문중 사람들의 허황한 꿈을 딛고 자신의 성을 쌓아 올리는 음흉한 성주였다. 전해 오는 얘기를 고츠란히 믿고 있는 문중 사람들의 기대를 적실히 이용해 온 아버지야말로 얼마나 현명했던가.
"그렇지만 저 아래 상암리 사람들이 있는 한은 그런 높은 어른이 나오긴 힘들 텐데요?"
"문중에서 높은 어른이 나오는 거하고 상암리 사람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
"상관이 있잖구요. 아버지만 해도 지금 아주 힘들게 돼 있잖아요."
당숙은 다시 내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풀리지 않은 숙제를 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듯 그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그런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릴 필요성을 느꼈다.
"들으니까, 여기 하암리 집안은 산 자리가 좋기 때문에 전염병 같은 것도 한번 안 앓았다면서요? "
"맞는 말이네. 전염병이 어디 문젠가. 난리 태 피난처가 바로 옐세."
"그럼 6.25때 여긴 피해가 없었겠네요?"
“그야 아주 없지는 않았지. 인민군두 지나가구,,,,,,"
"그때는 지방 빨갱이가 그렇게 무서웠다면서요?"
"무섭다마다!"
"그럼 여기두 그런 사람이 있었을 거 아녜요? 특허 상암리 사람들이 대단했을 텐데요."
"무서웠지. 세상이 바뀌고 나니까 모두 제 정신이 아니더군, 허지만 그 미쳐 날뛰던 사람들이 푹 숙으러 들데나."
"어떻게요?"
"진짜 빨갱이가 나타난 거지. 육손이라구, 원래 상암리 사람인데 난리 바로 전까지 하암리에 내려와 살더니만, 좌우지간 여러 모로 수상쩍은 구석이 많던 사람이었네."
"그 육손이란 사람이 어떻게 했는데요?"
그 언덕배기 잔디밭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운 다음 당숙이 몸을 일으켰다. 잔디밭이 끝나는 산기슭은 노송이 대여섯 고루 실한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그 위로는 자잘한 소나무 밭이 펼쳐져 있었다.
"우선은 잘한 일이었지. 미쳐 날뛰는 상암리 패들을 올려 쫓은 것까지야 좋았네만,,,,,,"
"그런데요?"
"계 버릇 개 못 준다던가. 옛날 원한이 그득한 데다가 감투까지 떠억 써 놨으니,,,,,,"
"먼저 날뛰던 사람들보다 더 무서웠나요? "
"뭐 꼭 그렇지만은,,,,,,하긴 난리가 끝나고 나서 일부에서들은 육손이가 하암리를 구했다구들 하데마는."
"그래, 그 육손이란 사람은 난리가 끝나고 어떻게 됐어요?"
"그야, 못할 짓 많이 했으니, 그 죄를 받을 수밖에. 무기 징역을 받아 산다고 하데만."
"아직 살아 있겠구먼요?"
"그거야 낸들 아나!"
"네에?"
"벌써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지 않았는가."
"죽었을는지도 모른다는 얘기군요?"
"죽지 않았으면 살았을 거 아닌가."
당숙은 휭하니 걸음을 빨리 했다. 나는 숨을 헉헉거리며 그 뒤를 쫓아 오르면서 대들듯 다그쳤다.
"어떤 관계로 어울려 살았든 결국 한마을에 살던 사람인데 그럴 수가 있어요?"
송장메뚜기 한 마리가 얼굴에 붙었다. 얼결에 놀라 잡아 떼자 송장메뚜기는 손바닥 속에서 꼼지락대며 끈적끈적한 액체를 뱉어 놓았다.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나는 볼품 없이 으깨어져 죽은 송장메뚜기를 길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럴 수가 없으면? 그래, 그 죄인 옥살이 뒷바라지라도 해 줘야 옳았다는 얘긴가?"
당숙은 걸음을 늦추지도 않은 채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고들 있어야 할 거 아녜요? 하다 못해 이웃집 강아지가 안 들어와도 궁금해 할 판인데, 그래, 수십 년 함께 산 분들이 그럴 수가 있어요?"
당숙이 걸음을 멈췄다. 나를 돌아보지 않은 채 땀을 닦으며 그가 말했다.
"옳은 얘길세. 자네 말대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까맣게 잊고 사는 건 사실이야, 세상 인심이 그런 거지."
당숙이 너무 쉽게 억양을 누그러뜨렸기 때문에 얼굴을 벌겋게 달구던 내 쪽에서 오히려 겸연쩍을 정도였다.
"허지만 그 육손이네 가족은 그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을 거 아녜요?"
"가족?"
"그래요. 그 사람 가족이 지금 어디 살고 있을 거 아녜요?"
땀 젖은 손수건을 남방 칼러 안쪽 목에 둘러대면서 당숙은 반듯하게 놓여진 돌층계를 오르고 있었다. 가치 어느 명소를 오르는 길 못지 않게 품이 많이 든 산길이었다. 산길 양옆으로는 키만큼의 잘 다듬어진 향나무가 도열해 있었다.
"그 사람 가족이야 있지. 헌데 그게 또---"
"어때서요?"
"좌우지간 그 사람 가족이 이 고장에 살고 있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네."
"그럼 지금 어디 살아요?"
"그걸 아무도 모른다니까. 그 육손이 처되는 아주머이하고 아들 하나가 있긴 하네만,,,"
"여길 떠난 지 오래 됐군요?"
"오래 됐지. 육손이가 읍에 잡혀가고 일 년쯤 뒤에 그 아주머이가 애를 데리고 온다간다 말없이 마을을 떠났으니까. "
"마을 사람들 눈총이 무서웠기 때문에 여기서 못 산 거겠죠?"
"결국 그런 셈이지. 그런 경을 두고 설상가상이란 걸 테지만, 그 아주머이 팔자야말로---"
돌층계에 걸터앉으면서 당숙이 그때 일을 말했다. 남편이 잡혀가자 그네는 읍내로 시집갔다가 소박맞아 왔을 때처럼 탑골집에 박혀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장독대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과수댁 역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형편이라 사람 사는 집 같지 않게 휘휘했다. 기침병을 아직 놓지 못한 육손이의 세 살 박이 아들이 가끔 낡은 문창호지를 쥐어뜯으며 손가락을 밖으로 내밀 뿐, 흉가나 다름없이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집이었다. 밤에도 방에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굴뚝에 연기 오르는 걸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발길을 그리 돌려 그 집 형편을 살피러 가기는커녕 서로 쉬쉬하며 아예 그 쪽을 외면하게 마련이었다. 난리 뒤에 부역자 집안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 쓰임이 다 그랬다. 꼭 그 집 식구들이 미워서가 아니고,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세상이 바뀌자 그처럼 엉뚱하게 눈에 불을 켜 날뛰던 당사자에게서 받은 놀램이 막상 난리가 끝나고도 그 집안 식구만 보아도 가슴이 섬뜩해서였을 것이다. 어떻든 그렇게 버려진 채 육손이네 식구들은 그렁저렁 목숨을 붙여 갔다.
"어느 날 새벽인가 마을 사람들이 감두리 버덩에서 육손이 처률 발견하지 않았겠나. 벌거벗은 몸뚱이 위에 미군 담요가 하나 덮여 있었구 또 그 옆에 미국 놈들이 던져 준 깡통이 서너 개 있었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주머이가 밤중이면 먹을 걸 찾아 감두리 미군 부대 주변을 헤맸던 모양이야. 미군들이 쓰는 쓰레기장에서 뭔가 뒤적이다가 깜둥이들한테 당한 거지 뭐나."
당숙이 일어섰다. 그러나 나는 앉은 채 당숙을 척다봤다.
"꼭 깜둥이들이 그랬다고 볼 수만은 없잖아요. 마을 남자들도 많았을 테니까요."
"마을 남자들이 미쳤나? 그리구 그 아주머이는 우리 집안 사람이었네."
"그 여자가 집안 여자면 육손이두 전연 남이 아니잖아요?"
당숙은 내 말에 더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얘기의 원점을 찾기 위해 어조를 누그러뜨렸다.
"그럼 그때 깜둥이들한테 난행을 당하고 나서 마을을 떠나 아직 소식이 없구먼요?"
"단 한번 왔었네. 허리 병신이 된 노인네가 그 다음 핸가 죽었는데, 어디서 그 소식을 들었는지 장사가 다 끝난 다음에야 잠깐 얼굴을 보인 뒤론 종무소식이라네."
"그럼 그 아들도 그동안 여길 한번도 안 왔겠네요?"
"올 리가 있겠나. 아마 죽지 않고 어디 살아 있다면 자네만한 나일 테지만,,,,"
산길에서 만나 잠시 동행한 그 노인이 가끔 나를 쳐다볼 때의 그 퀭한 눈 그늘 밑에 번득이던 게 이제 와서 그 의미가 짚였다. 그는 실로 십 팔 년 만에 자신의 핏줄이 있는 고향을 찾아 그 수려한 강산을 향해 탄사를 발했던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그는 이디 그의 아들이 고향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허위허위 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의 귀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산 아래 원경으로 펼쳐진 마을을 굽어보았다. 두 마을은 어디랄 것 없이 구석구석 조화를 이뤄 말 그대로의 별유천지 비인간이었다.
"저것이 자네 증조부모님을 모신 델세. "
은장농 상봉 조금 못미처 그럴 듯한 구릉들은 모두 무덤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족산이로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 엄연한 역사 앞에서 사뭇 숙연해진 내게 당숙이 규모가 꽤 큰 무덤 하나를 가리켜 보였다.
개화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 엉거주춤 무릎을 꿇었다. 한 가문의 이단자가 되면서까지 개화바람을 일으키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분이었다. 어쩌면 증조부는 눈이 파란 선교사에게 온통 영혼을 주장질 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선교사의 무엇이 증조부의 영혼을 그처럼 잡아 쥐었는가. 그것이 무엇이든 증조부가 그처럼 남의 생활 방식에 탐닉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신 나름대로의 꿋꿋한 마음의 심지가 서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부귀와 영달을 생각했다면 그런 일은 애초에 어림도 없는 일. 오히려 증조부는 당대적인 권위주의와 부귀 영화의 그 어리석고 덧없음을 누구보다 먼저 례뚫어볼 수 있는 깊은 슬기로써 완강한 가문의 그 인습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끝없이 외로운 길일 수밖에.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그러한 슬기를 지녔던 선각은 그 당장은 물론 영원히 아무런 보상도 바랄 수 없는 험하고도 외로운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증조부가 그랬다. 그는 문중으로부터 추방당하자 당신의 웅지를 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만주 황량한 벌판에서조차 끝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삼십여 년 세월을 방황했다, 해방이 되자, 하릴없는 걸인 신세가 되어 고향에 다시 발을 디뎠고, 그때 증조 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그는 조국의 해방이 자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공공연히 부르짖었다. 당신 스스로를 예수라고까지 일컫는 등 증조부가 고향에 돌아와 벌인 행각은 문중 사람들을 아연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결국 증조부는 당신의 아들에 의해 집안에 감금되기에 이르렀다. 집안에 갇히고도 그는 으르렁거리며, 때로는 단식까지 벌여 당신 아들을 괴롭혔던 모양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 왕고모가 늘 하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우리 오라버니 무서운 거야 세상이 다 아는걸. 그처럼 가문을 위해서 어떠한 이단자도 용서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그 길 또한 겉보기처럼 떳떳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어떻든 증조부는 고향에서 눈을 감았고, 당신의 아들 손에 의해 당신이 그처럼 무너뜨리려 발버둥치던 가문주의의 상징인 선산에 묻혔던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증조부의 그 무덤은 마음의 심지를 꽂지 못하고 갈팡거리는 당신의 한 피붙이의 가슴에 뭉클 부딪쳐 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암리에 머문 이틀째 되는 날 나는 문중 사람들의 끈끈한 관심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 있었다. 그것은 전연 뜻밖의, 내게 주어진 자유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긴장의 줄을 온 몸에서 서서히 풀어내며 어정어정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사물의 실체를 정시하기엔 마을의 공기가 너무 들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고작 마을 구석구석까지 흘러 넘치는 소문의 흐름 속에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또 다른 구속이었다. 그 휘휘한 소문의 줄은 내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옥죄어 들고 있었던 것이다.
육손이를 보았다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번지기 시작한 소문은 걷잡을 사이 없이 마을로 떠돌았다. 소문에는 꼬리가 있었다. 꼬리를 문 그 소문은 다시 무서운 기세로 새끼를 쳐 나갔다.
"그 사람이 지서에 왔었다는 게 정말인가?"
내게 조카뻘 되는 김 순경이 당숙네 집에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하암리에 도착하던 저녁 읍에서 온 경비 전화로 이미 내가 올 것을 미리 알고 5시 도착의 버스를 기다렸다가 허탕을 쳤다던 김 순경이었다. 그가 당숙의 물음에 대답했다.
"차석이 직접 만났다니까요."
"차석은 육손일 모를 거 아닌가?"
"그럼요, 알 리가 없잖구요. 그렇지만 그 육손이가 계 입으로 자기 이름이 마 필구라고 하더라니까요."
"그거,,,,,참, 그래 지서엔 뭣하러 왔다던가? "
"그냥 신고하러 왔다고만 하더래요. 마 필구,,,,,,육손이라면 이 근동 사람은 다 알 거라고 하면서."
"신고라니?"
"자기가 교도소에서 출감했다는 걸 알리는 거겠죠."
"그런 걸 꼭 알리게 돼 있나?"
"웬걸요. 그런 출소자는 오히려 우리가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건데."
"거 이상하군. 그래 차석은 뭐라고 했대?"
"뭐라고 하긴요. 마침 읍에서 경비 전화가 와 그걸 받고 보니 그 사람이 온데 간데 업더랍니다."
"그래, 그 사람이 지금 어디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단 말이지?"
"봤다는 사람은 더러 있는데, 그 사람이 일부러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모양이에요."
"도대체 무기징역 산다는 사람이 어떻게 여길 왔다는 겐지. 그거 참."
"아무튼 이제 또 한 번 떠들썩하게 됐다니까요."
"왜?"
"요즘 상암리 사람들 들먹거리고 있는 거 아시잖아요. 게다가 육손이까지 나타났으니 말이에요. 옛날부터 그 사람만 나타나면 틀림없이 무슨 일이 생겼다면서요?"
당숙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서리서리 엉겨 오르는 담배 연기를 멀거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그런 얼굴이었다.
촌수가 꽤 먼 이장이 굳이 점심 대접을 하겠다고 본인이 몇 번씩 찾아와 어쩔 수 없이 그 집엘 따라갔다. 시골집치곤 꽤 갖추어 사는 살림이었다. 영계 백숙에 시골에서 맛볼 수 있는 밭 채소 등을 요모조모 구색 갖추어 차려 낸 솜씨가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선거전에 무슨 일로인가 아버지를 찾아왔을 때의 시골티 꾀죄죄 흐르는 그런 초라한 구석은 전연 보이지 않았다, 약간은 허세 섞이긴 했어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땅땅 큰소리치며 가끔 호쾌한 웃음을 웃어대기도 했다. 나와 함께 초대된 장거리의 변씨란 사람도 아버지를 찾아온 적이 있었던 게 분명한데 그는 일체 내게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떻든 두 사람은 처음에는 나를 의식해서인지 할 소리 못할 소리를 조심조심 가리더니, 낮술이 벌겋게 오르자 입이 걸어지기 시작했다. 화제가 육손이 노인에 이르러 있었다.
"일은 난 거야."
"일 난 건 자네 같은 사람이지. 명색이 이장 아닌가. 어쩔라구 요즘 눈꼴사납게 거드럭대더라!"
"예끼, 이눔아!"
"왜, 겁나지? 더구나 자넨 김씨 집안 대변자라면서? 봐라 이제. 꼼짝없이 오늘 밤 육손일 만나게 될 거니."
"그래, 날 찾아와서 누굴 죽였으면 좋으냐구 물을 게다, 그럴 때 내가 널 잊을 수 있겠냐? 죽일 놈은 장거리 양주장하는 변가 놈이라고 해 줄 테다. 돈 좀 벌었다고 으스대는 꼴이라니?"
“야, 이눔아 돈 번 것두 죄냐?"
"죄가 아니면? 죄 치구 계일 큰 죄다, 이눔아, 다 그러더라. 양심 계대로 가진 놈 돈 버는 거 봤느냐고."
"야, 이눔. 똥줄이 타니까 이젠 되러 앰한 사람 잡으려구 날뛰네."
"두고보면 될 거 아니여. 육손이가 노리고온 게 우리 김씨 문중인지 아니면 너같이 배때기 툭 불거진 놈인지."
"내 배때기보다 니눔 영농 자금 타다가 꿀떡한 거, 그걸 따지러 왔을 게여."
"예끼 이눔아. 생사람 잡지 말어. 남의 얘기 할 게 아니라 이눔아, 가짜 술 만들어 떼돈 번 니놈이야말로......"
"얼씨구 이놈 입 한번 잘 놀린다. 그래, 우리 서루 들춰내기 할려? 우선 이번 선거 때 말이여,,,..."
나는 얼른 자리를 일어섰다. 농으로 시작돼 농으로 끝날 분위기가 틀림없다고는 하지만 얘기의 추세가 그닥 달가울 게 되지 못할 건 뻔했기 때문이다.
마을이 그처럼 달떠 술렁거리는 직접적인 요인이야말로 다름 아닌 마을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은 떼지어 우우 몰려다니면서 저희들끼리 수런수런, 혹은 어른들 앞에서는 더욱 허풍스런 몸짓으로 열을 올렸다. 그 달뜬 아이들에게 가끔 어른들이 불쑥 던져 주는 한마디가 그 아이들의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느덜은 모른다. 옛날 빨갱이가 을마나 무서운 줄은 느덜은 모를 게여. 육손이가 바로 그 빨갱이란 말이여."
아이들은 어른들한테 주워들은 얘기에다 제멋대로 바람을 넣어 붕붕 띄웠다.
"글쎄, 그때 육손이가 마을 사람들을 서른 명두 더 죽였대."
"총알이 아깝다구 상암리 금광굴에다 가둬 놓고 송곳으로 목을 찔러 죽였대드라. 그리구 그 피를 막 빨아 먹구......"
"지금두 비만 오면 그 금광굴 속에서 귀신 우는 소리가 난대잖아."
"우리 큰아버지 팔 하나하구 눈 한 짝 없는 것두 육손이가 그랬대 머."
"공갈치네. 야 임마, 그건 난리가 끝나구 느 큰아버지가 수류탄으로 고길 잡다가 그랬다드라, 치."
한 떼의 아이들이 육손이 노인을 직접 만났던 일로 해서 아이들은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헐떡거리고 있었다.
"저기 있잖아유, 수리봉 아래 송학정 강물에서 우리가 멱을 감구 있었거든유. 어이구 그런데 말이에유. 그 사람이 나타난 거에유. 첨엔 그 사람이 빨갱인지두 몰랐지 뭐여유."
자기들이 옷 벗어 놓은 자갈밭에 웬 늙은이 하나가 쭈그려 앉아 자기들 멱감는 걸 멀거니 바라보고 있더란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다 그 몰골이 사뭇 험악해 보였다. 아이들은 우루루 물 속에서 나와 젖은 몸에다 옷을 서둘러 꿰기 시작했다. 검은 비닐 가방을 가슴에 안은 채 쭈그려 앉았던 늙은이가 허둥허둥 옷을 주워 입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아주 똑같구나. 빼닮았어. "
옷을 제일 먼저 입고 떨어진 운동화를 손에 들어 여차하면 달아날 준비가 된 아이가 그 늙은이를 향해 물었다.
'지가유? 뭐가 똑같아유?"
"느덜 모두가 그려. 느덜 하라버이나 아부이들 애들쩍 모습 그대로여."
"우리 할아버지랑 아버질 아나유?"
먼저의 그 달아날 준비가 다 된 아이가 다시 물었다.
"알다마다!"
그러면서 그 늙은이는 수리봉으로 건너가는 여울목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혼잣소릴 했다.
"옛날보다 강바닥이 퍽 얕아졌구먼."
차츰 그 늙은이의 괴이쩍은 몰골에 눈이 익어진 아이들은 얼마간 경계를 늦추며 오히려 이쪽에서 그를 요리조리 뜯어보기 시작했다. 움푹 들어간 눈자위 밑에서 그의 작은 눈이 어딘가 한 곳을 다부지게 쏘아보고 있었다.
"저기 저 위쪽 수리봉으로 건너가는 여울목 있지? 느덜 옛날에 거기서 사람 죽은 거 알구 있냐?"
그 노인이 바라보고 있는 수리봉 쪽 여울목이 수리봉이 던진 저녁 그늘에 반쯤 잠긴 채 세찬 물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가 죽었는데유?"
먼저의 그 용기 있는 애였다.
"으른들이 그 얘길 안 해 준 게로구나. 바로 저기서 송가네 형제가 죽은 게야."
"송가네 형제가 누군데유 ? "
"옛날에 있었다. 저 아래 물레망앗간 하던 집인데---"
"그런데 그 사람들이 왜 죽었어유?"
"난리 때다. 그 두 사람이 물레방앗간에다가 국군을 숨겨 뒀었다는 걸 알구 우촌면에서 인민군이 잡으러 오니까 절루 도망치다가 총 맞아 죽은 거지."
"인민군이 쐈나유?"
"그래, 인민군이 딱콩총으로 쏴 대니까 저 여울목을 건너던 송가네 형제가 벌렁 나자빠지더구나. 여기 느덜이 멱감던 송학정 물이 온통 핏물이었다."
아이들은 으스스 몸서릴 치며 그 늙은이의 눈을 따라 방금 자기들이 나온 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걸 직접 봤어유?"
한 아이가 다그쳐 물었다.
"그래, 이 눈으로 똑똑히 봤다. 우촌면에서 인민군을 데리고 온 게 바로 나거든."
눌 껌벅거리며 그 늙은이의 말뜻을 새기던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두어 걸음씩 물러섰다.
'거 물 속에서 송가네 형제 시체를 건져다가 묻은 데가 바로 저기 미류나무 안 있냐? 저 미류나무 옆에 불룩한 언덕이 있는데, 바로 거기다가 파묻었다만,,,,,"
아이들은 강변 논 있는 데의 둔덕 우뚝 하늘 높이 치솟은 두어 아름드리 미류나무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직 거기까지는 저녁 산그늘이 먹어 들지 않아 미류나무 옆 돌무더기 위에 덮인 찔레 덩굴이 햇빛을 받아 선명히 드러나보였다.
"다 죄 읎는 사람들이지. 송가 형제들이나 그 머리 빡빡 깎은 나이 어린 인민군들이나."
그 늙은이가 비닐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혼잣소릴 했다. 아이들이 우루루 물러서며 서로 눈짓을 했다.
"세월이 글렀던 게여. 그놈애 나쁜 세월이 죄여."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에 신발을 움켜쥔 채 마을 쪽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뜀질이 시원치 않은 꼬마들은 당장 죽을 것처럼 소리내어 큰 아이들 뒤를 쫓아 붙었다. 간첩이다. 간첩 - 마을이 보이는 강둑까지 올라온 아이들은 숨을 헐떡이며 송학정 쪽을 내려다보았다. 수리봉 산그늘에 완전히 잠긴 그 여울목 한 가운데 쯤에 그 늙은이가 있었다. 그는 수리봉 쪽을 향해 사타구니까지 차 오르는 여울목 물을 옷을 입은 채 철벙철벙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저 가방에 든 게 수류탄이라구!"
그 늙은이는 검은 비닐 가방을 머리에 이고 물을 건너고 있었다. 해 저물녘의 강물의 흐름소리는 무척 휘휘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육손이 노인의 출현으로 하여 마을은 정도 이상으로 뒤숭숭했다. 어른들마저 어린아이들처럼 벌겋게 달뜬 얼굴로 모여 서서 수군거렸다. 그가 이 고장에 나타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문제는 그의 행장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상암리 사람들이 지서까지 와 육손이가 왔다는데 하암리 누구네 집에 머무느냐고 물어옴으로 해서 그가 상암리에 있지 않음도 밝혀진 셈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왜나 뒤숭숭해 하니까 지서에서도 출소자의 소재라도 파악해 둘 양으로 손을 써 봤지만 그가 지서에 나타났던 밤 이후 만 24시간이 지나도록 그가 있는 곳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술렁거림 속에 지서 김 순경이 다시 당숙네 집에 나타났다. 그가 서울 소식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빨리 상경하시라는 전갈입니다. "
"왜, 무슨 일이 있대요?"
조카뻘 되는 사람이지만 나보다 나이가 연장인 그에게 차마 해라를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알면 호통이 떨어질 일이었다.
"읍에서 경비 전화로 연락이 왔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르겠지만요---"
나는 이미 휑뎅그렁한 방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머리 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재민 으르신께서 막내 손자님을 찾고 계신대요."
결국 할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전갈이었다. 나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네들의 고향에 내려온 것은 할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의 파멸을 예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불쑥 치민 것이다. 이제 와서 나는 고개를 저어 그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십 년 전 할아버지가 폐인이 되어 드러눕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문병을 을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해 왔던 것이다.
나는 두 가지를 다 바라고 있었다. 종가 집안의 권위의 상징인 할아버지가 다시 회생하여 불같이 호령하며 아래 사람들을 다스려 줄 것과, 그 인습적인 가문주의의 상징인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집안에서 자취를 감춰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는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내 마음의 충동에 대하여 어느 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는 회색분자다 - 이러한 자각은 결국 내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좌절과 함께 내 교활함에 깊은 상처를 내었다. 그때부터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김 의원님께서 읍으로 직접 연락을 하셨답니다. "
"결국 큰아버님께서,,,"
당숙이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며 심란한 얼굴을 했다. 김 순경이 내게 물었다.
"오늘 밤 올라가시겠다면 산판 차 나가는 것도 있고, 또 변씨네 양주장 스리궈타를 읍까지 이용하실 수 있도록 조처해 보겠습니다만,,,,,,"
"그럴 거 없어요.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쉽게 돌아가시지 않을 거니까요. 낼 아침 9시 버스로 갈 거예요."
할아버지가 정말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지 않을 것이란 화신을 내 마음에 심고 나니까 정말 할아버지는 영원히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일었다. 그러나 나는 김 순경이 대문을 나가는 것을 보면서 어깨에 힘이 쭉 빠져 내리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육손이 노인에 대한 소문의 그 뒤숭숭함 속에 할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소식은 문중 사람들에게 좀 별난 감회를 일으키는 모양이었다.
"그 난리 때 날뛰던 놈들도 큰아버님 앞에서는 입도 벙긋 못했으니까---"
모여든 문중 사람들 앞에서 당숙이 말을 꺼냈다.
"허긴 그때 상암리 놈들이 큰아버님을 묶어 가지고 깻들 송가네 물레방앗간까지 끌고 가긴 했지만서두,,,"
"맞아, 그때 육손이만 우촌면에서 올라오지 않았대두 무슨 일을 당하셨을 테지만, 다 사실 양반이라---"
"내 손으로 죽일 거니 자기한테 맡기라고 하면서 상암리 놈들을 쫓아 보냈을 땐 큰아버님이 꼭 육손이 손에서 죽는구나 했다니까."
"아, 그때 어른께서 육손이한테 또 여북하셨어야 말이지. 니놈이 여길 또 어떻게 왔느냐고 호령호령해 댔으니."
문중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김씨 가문을 위해서 벌인 이 얘기 저 얘기를 순서 없이 엮어 나갔다. 그들에게 있어 할아버지는 가히 우상적인 존재였다. 할아버지 시대의 그 흔들리지 않는 김씨 가문의 전성 시대에 대해서 그들은 꽤나 연연해하는 그런 표정들이었다. 그들은 한숨을 섞어 쉬며 서서히 현실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 으르신네도 결국은---"
"누가 아니래나. 것두 십여 년을 병중에 누워 계시더니---"
"세상에 돈 아니라 뭐루두 으쩔 수 읎는 게 사람의 목숨인 게여."
"그나저나 우리 문중에서 그런 어른 또 나기도 힘들걸세나."
"헌데, 그런 으르신께서 살아 생전 고향에두 한번 못 다녀가시구---"
“말이 났으니까 하는 얘기지만, 어디 돌아가신대두 고향엘 오실 수 있다던가."
“그러게 말이네. 내 바른 말루다 그 문제만은 김 의원이 절대적으루 잘못 생각한 거 같애."
"아 그럼, 잘못 생각이구 말구!"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를 서울 근교의 공원 묘지에 모시겠다는 아버지의 계획에 고개를 끄덕인 그 당사자들이 이처럼 돌변스런 불만을 입 밖에 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놀라고 볼 일이었다. 그것은 가문의 총사령탑인 아버지에 대한 도전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처럼 철저하게 내 앞에서 입을 떼지 않던 지난 5월 선거 얘기를 슬금슬금 끄집어내기 시작한 일이었다.
"세상일이란 다 순리를 따라 이뤄지게 마련인데---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냔 얘기들이 많더라니까."
“세상에 떠도는 얘기에 다 귀 기울일 필요가 없지만서두 맹랑한 얘기가 들리니까 맥살이빠져서 어디---"
“어디 소문뿐이어야 말이지. 그놈에 신문에두 나는 걸 보면, 아주 근거 없는 얘기만은 아니라는 말들두 있다니까. "
'거, 김 의원이 미국으루 재산을 다 빼돌렸다는 소문이 읍에 파다하게 났더라니까 글쎄."
"여기 작은 조카가 와 있네만 큰조카들이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있는 걸 가지구두 말이 많더군."
"아, 젊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떠들데나, 김 의원이 고향을 버릴 심산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가 없다고."
"돌아가신 양반 산소 문젤 가지구 그럴 게여."
“게다가 저번 선거 뒤끝이 영 안 좋단 말씀이야. 처리는 잘 허시겠지만서두, 하두 흉흉해 놓으니까 이거 어디."
"상암리 것들이 내일 읍으로 나간다는 얘기가 들리데. 그 동안 별놈의 문서를 다 만들어 가지고 도장까지 일일이 다 받아 놨다는 게여."
"여기 장터 사람들두 몇이 거기다가 도장을 눌렀다구 하데유."
"저런 상것들 ! "
'서울 김 의원님께서 우리 문중을 너무 경하게 생각하시구 계시니까 그런 거예유. "
젊은 사람까지 껴들었다. 막혔던 물이 터져 흐르듯 그들은 중구난방으로 아버지를 공략했다. 그 동안 자신들의 자존심이 상처 입은 것만큼의 울분을 일시에 터뜨리고 있는 셈이었다. 아마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들은 그런 울분을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내 귀를 겨냥한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카는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에 즈음하여 모인 이네들은 왜 이처럼 불붙어 오르는가. 할아버지의 임종 소식이 아니었다면 이들이 내 앞에서 아버지를 이처럼 신랄하게 허물어 내리는 일을 감히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할아버지의 죽음은 이네들이 그토록 바라고 있었던 당위성 있는 하나의 귀결이 아닌가. 옳지 못한 것을 옳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정의의 구현이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일어나고 있음을 바라본다는 것은 실로 묘한 것이었다. 성주가 쓰러지자 지금까지 성주와 함께 옥쇄할 운명에 놓여 있던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보듯 나는 허물어져 내리는 할아버지의 성 그 밑에 삐죽삐죽 솟아오르는 새싹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직 그것은 성을 버리는 병사들의 그 생명 존중의 의지에 대해 갖는 경외감은 결코 못 되었다. 나는 아직 한 개인의 인권보다 성을 버리는 병사들의 그 신의 없음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하는 윤리적인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가슴까지 벌벌 떨면서 나는 문중 사람들의 배신을 지켜보았다.
"이거 왜들 이래요?"
성주가 쓰러지자 또 다른 지휘자가 칼을 빼어들고 있었다. 당숙이었다. 아직 성은 그렇게 쉽게 허물어지지는 않으리라.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당숙이 어조를 몹시 높였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불안할 지경이었다.
'정치하는 사람한테 그만한 소문 없는 사람 있는 줄 알아요? 그만큼 정적이 많다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 가문에서 김 의원 같은 분 안 나왔다면 지금 우리 가문 명색이나 있을 거 같아서, 누굴 헐뜯고 나무라는 겁니까? 정치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쉽고 간단하지가 않단 말씀이에요. 이럴 때일수록 가문이 똘똘 뭉쳐 그분한테 힘을 보태 줘야 하는 거예요. 더구나 김 의원님은 우리 하암리 김씨 문중만이 뽑은 사람이 아니란 말예요. 두 개 군의 십 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뽑아서 일을 맡긴 분이란 말입니다. 왜들 그렇게 속이 좁아요?"
당숙이 모인 사람들을 향해 윽박지르는 조로 나왔다.
"누가 뭐라는가, 바깥 소문이 그저 그렇다는 얘기지."
창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던 병사들이 다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정말 배에 기운이 빠졌다. 이네들의 처음의 그 기세 등등하던 배반이 백 번 더 나았음을 나는 이제야 깨닫고 있었다. 나는 모두에게 침을 뱉어 주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았다. 병사들의 속셈은 아직 미지수였고, 성은 성주 한 사람이 지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내일 아침 9시 버스로 올라들 가셔야 할 텐데---"
각 집안 대표자가 한 사람씩 올라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얼굴이라도 뵙는 게 도리라면서 상경할 사람들이 십여 명으로 결정되었다. 나는 몹시 우울했다. 이들과 함께 같은 차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게 무척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나를 부른 것은 내가 당신의 심정을 가장 많이 혜아리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의 할아버지에 대해 가졌던 내 자신조차 가늠할 수가 없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할아버지의 임종 자리에 이르기 전에 어떤 명확한 심지를 세우고 싶었다. 그것이 되지 않고는 결코 할아버지의 임종 자리에 앉아 그의 위대한 유음이 잔잔한 눈 그늘로 괴어오르는 것을 받나 간직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새벽녘에 나는 꿈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몹시 불투명한 단상들이 종잡을 수 없이 뒤섞여 나타났다. 무엇인가 나를 괴롭히는 그런 각본들이 뒤죽박죽으로 투영됐다. 무수한 동그라미가 라른 속도로 커지면서 내 가슴속으로 덮쳐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위눌린 그런 상태로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항상 꿈에 쫓기는 편이었다. 나뿐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꿈은 결국 쫓기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을는지도 모른다. 설사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잠 속에서 잠시 이뤘다손쳐도 그것은 꿈이기 때문에 불안하고 끝내는 허망함만을 남겨 놓게 마련이다. 더구나 잠을 깼을 때의 그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은 꿈을 깨고 나서도 상당히 오랜 시간 사람을 멍청하게 만들어 놓는다. 내 새벽 꿈이 그랬다. 잠을 깨면서 나는 내가 무엇에 쫒기고 있었는가 그 실체를 잡으려고 버둥거렸다. 기억에 걸려드는 단 하나는 내가 몸부림치며 울던 일이었다. 고 슬픔의 찌꺼기는 잠을 깬 뒤에도 오래오래 내 전신에 배어 있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울었던가-단 몇 초 동안 머리 속에 그려진다는 그 영상을 되찾기 위해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에 귀를 모았다.
"마 필구가 정말 죽었단 말인가? "
당숙의 목소리였다. 나는 잠자리에서 뛰쳐 일어나 옷을 걸치기 시작했다. 옷을 입으면서도 장지문 밖에다 정신을 쏟아 모았다.
"믿어지지 않는군. 육손이가 죽다니!"
"벌써 다들 거기 올라간 걸요. 이장님이 교감 선생님한테 알리고 오라구 해서,,,,,,"
시계를 보니 7시 10분 전이었다, 이날 따라 늦잠을 잤던 것이다,
"먼저 올라가게. 나 여기서 서울 조카 아홉 시 차 태워 보내고 올라갈 거니까.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야 오늘 가긴 힘들겠구---
나는 장지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다급하게 말했다.
"당숙, 저도 거기까지 가 보고 싶어요. 어딘가요? 육손이 노인 죽은 데가."
전날 당숙과 함께 올랐던 그 은장봉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당숙 앞을 서서 허위허위 치달았다. 풀섶의 아침 이슬이 바짓가랑이에 스며 휘휘 감겨들었다. 우리들 앞뒤로도 마을 사람들이 너분하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허리를 착 꺾은 문중의 나이 든 노인들까지도 장죽을 휘두르며 산을 오르는 길에 있었다. 그 노인들은 우리가 그 곁을 휘휘 지나칠 때마다 가래까지 가르릉거리며,
"글쎄 그놈이 우리 문중을 우습게 봐도 분수가 있지, 우쩔려구 또 그 짓을 했다는 게여?"
그러나 당숙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내 뒤를 따라 걷고 있을 뿐이었다, 햇살이 죽죽 뻗어드는 숲에서 산새들이 푸득푸득 날아올랐다.
처음 오르던 때의 그 멀다는 느낌은 간 곳이 없었다. 우리는 금세 그 현장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생각했던 대로였다. 잣나무 다보록 우거진 그 골짜기의 위쪽 성역처럼 가꾸어 놓은 그 언덕배기의 잔디밭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 아침의 산 속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거기 모여 있었다. 낮이 선 얼굴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상암리 사람들이 분명해 뵈는 사람들의 시선이 숨을 헉헉 몰아쉬며 땀을 쏟고 있는 내 얼굴에 쏘듯 머물렀다가는 다시 잔디밭 한켠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쪽에 사람들이 원을 이루며 둘러서 있었다. 그 둘레에 끼이지 않은 사람들은 언덕배기 여기저기에 모여 앉아 뭔가 숙덕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당숙의 뒤를 라라 그 둘러선 사람들 있는 데까지 다가갔다.
"아까 이 삽 임자가 상암리 누구랬어요? 상암리 누굽니까?"
사람들이 둘러선 그 안쪽에서 처음 보는 순경이 흙 묻은 삽을 쳐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사람들이 모두 뒤를 돌아다보았다. 잔디밭 한쪽에 몰려 앉았던 사람 중에서 얼굴이 유독 검어 뵈는 중년이 엉거주춤 엉덩일 들었다.
"아까 얘기했는데유, 상암리 즘말 사는 용 주세이라구, 좌우간 그 삽은 우리 집 뒷간에 뒀던 게 틀림없습니다유."
"용 주상씨, 이따가 지서까지 좀 함께 내려갑시다."
"글쎄 내가 내준 삽이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시네유. 은제 읎어졌는지두 모르는 걸 가지고설랑,,,,,,"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잔디밭 한쪽에 생흙이 높다랗게 쌓여 있었고 바로 그 생흙을 파낸 웅덩이가 그 옆으로 길쭉하게 파여 있었다. 그 구덩이를 내려다보는 자세로 지서 주임과 이장, 그리고 전연 낯모르는 사람 하나가 엉거주춤 앉아 있었다. 발돋움을 해 보았지만 구덩이 속까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약봉지하고 먹던 소주병 모두 저 가방에 넣었나!"
지서 주임이 둘러선 사람들의 귀까지 겨냥해서인지 꽤 큰 소리로 물었다. 아까의 그 순경이 삽을 생흙더미에 푹 꽃은 다음 검은 비닐 가방을 들어 보였다. 낯익은 가방이었다.
"뭔가, 그건?"
지서 주임이 구덩이 속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 구덩이 속에서 사람 하나가 불쑥 일어나 상체를 드러냈다. 런닝 셔츠 바람의 김 순경이 뭔가 펴들고 읽었다.
"마 필구,,,,,, 오십 육세. 출감일자, 천 구백 육십 구 년 팔월 십오일."
"팔 윌 십오 일 나왔다구? 그럼 바로 며칠 전인데, 그렇다면 저 사람 출감하는 즉시 이리로 곧장 왔다는 얘긴데,,,,,,"
지서 주임이 옆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맞아요, 저 사람이 지서에 왔던 게 팔 월십칠 일, 바로 엊그제 저녁이니까요."
흙더미 옆에서 검은 비닐 가방의 지퍼를 채우고 있던 순경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지서에서 육손이 노인의 신고를 받은 차석인 모양이었다. 내 옆에서 누군가 혼잣소릴 했다.
"제에기랄, 기껏 옥살일 때우고 예까지 와 죽다니!"
그 혼잣소릴 다른 목소리가 받았다.
"죽으러 예까지 온 걸세,"
나는 사람들의 울타리를 뚫고 육손이 노인이 들어 있을 그 구덩이 앞으로 다가갔다. 구덩이 옆에 웅크려 앉았던 지서 주임을 비롯한 세 사람이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며 눈인사를 했다. 나는 우쭐해지는 어깨를 바로 가누며 그들을 향해 두어 번 굽실 허리를 굽혀 보였다. 그러나 뒤통수에 뭇사람들의 근지러운 시선을 받으면서 내가 이 구덩이까지 다가온 것은 정작 육손이 노인의 죽음을 내 자신에게 확인시키기 위해서였다.
구덩이 속에 들어서 있던 김 순경이 나를 위해 한 옆으로 비켜섰다. 육손이 노인은 한 길이 채 못되는 구덩이 그 밑바닥에 있었다, 하늘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누워 있는 그런 자세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후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그것은 시체가 아니었다. 사람이 하나 누울 수 있을 만큼의 넓이였지만 그는 그 좁은 구청이 속을 겨우 반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결코 번듯이 누운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배를 땅에 대고 넓죽이 엎딘 자세도 아니었다. 그는 사지를 최대한으로 오므려 가슴에 박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이마를 땅에 박고 있었다. 그 큰 허위대를 저처럼 작게 오그라뜨릴 수 있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내가 속해 있는 음성 서클의 선배들에게 몰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 이름 있는 집 자식의 그 거오스러움을 죽이는 그들 나름대로의 의식이었다. 사방에서 무자비한 매가 내렸다. 나는 고개를 가슴에 처박고 궁둥이를 하늘로 뻗친, 적의 공격으로부터 내 몸을 지키기 위한 최대의 완벽한 자세를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공을 잡고 넘어지는 럭비 선수가 무섭게 덮쳐오는 적으로부터 공을 지키는 그런 자세였던 것이다.
김 순경이 몸을 굽혀 육손이 노인의 무릎 꿇고 엎드린 가슴께를 손가락질했다. 그 노인이 뭔가 가슴에 끌어안고 있는 게 있었다. 나는 비닐 보자기에 싸인 길쭘한 것들을 잠시 훑어보았다. 뼈로구나! 나는 얼떨결에 한 걸음 물러서며 김 순경의 눈을 찾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김 순경이 눈을 질끔해 보이며 혀를 내둘렀다.
나는 더 이상 거기 서 있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구덩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울타리를 빠져 나와 거기서 좀 떨어진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육손이 노인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나는 충분했다. 그래, 지금 저 노인은 몰매를 맞고 있을 뿐이야. 은장봉 상봉에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내려 노송 가지에 부딪치며 잔디밭으로 흩어졌다. 나는 바싹 마른 입안을 침으로 추기며 내 옆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웅기웅기 모여선 젊은 패들의 말소리에 귀를 모았다.
“야, 증말 한번 안 할 거냐? 느덜
"해애, 하자니까!"
"언제쯤 할래?"
"아무래도 저 죽은 사람 장사는 치르구 나야 할 거 아니니."
"죽은 사람 장사? 왜, 느 하암리 사람들이 상여 메고 요령이라도 흔들어 줄거니?"
"그거야 느덜이 할 일이구!"
"우리가. 우리가 왜?"
"저 사람 원래 상암리 사람이라더라."
"원래 좋아하는구나!"
"그렇잖구! 상암리 사람이 아니고서야 저렇게 볼썽사납게 죽을 수 있어? 그것도 남의 선산에,,,,,,"
"너 말 조심해! 그리구 너희들 자꾸 선산 선산 하는데, 저 양반 죽은 저 구뎅이가 바로 저 양반 무덤이라는 것만 명심하라구, 흙 덮고 밟아 주면 다 되는 거야."
"누구 맘대루, 묻긴 어데다가 묻는다는 게여?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릴---"
"흥, 두고 보면 알 거다."
"야, 느덜이 그렇게 날친다구 우리 문중 으른들이 눈 하나 깜박할 것 같으냐?"
"체, 그 잘나빠진 문중 - 그래서 접때 그런 헙잡 선거를 눈 하나 깜박 안하고 해치웠구나!"
"이 새꺼들이 정말 못할 소릴,,,,,,"
"뭐야? 느덜 지금 세상이 어느 땐데---"
장소와 때가 그런 형편이어서 그런지 그들은 언성을 그 이상은 높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태는 사뭇 험악해 보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한데 어울려 섰던 청년들이 어느새 두 패로 싹 갈라져 있었다.
"야야, 우리 그만 두자. 생기는 거 없이 왜 맨날 이러니? 그보다두 아까 그 얘기나 끝장내구 보자야?"
어느 쪽 청년인가 갈라선 두 패 사이를 가로막고 나섰다. 보기보다 쉽게 양쪽 패들이 어깨에서 힘를 빼고 있었다.
"다음 주 공일쯤 어떠니? 축구볼은 우리가 국민학교서 두어 개 얻어 줄 거니까 느덜은 연습이나 좀 해라. 실력이 비슷해야 할 맛이 나는 거니까."
"연습이야 느덜이 해야지. 왜, 벌써 잊었냐? 작년그러께 느덜 우리한테 삼대 빵 먹은 거, 생각날 거다."
"하지만 올핸 다를걸. 두고보라구. 묵사발을 만들어 줄 거니?"
"좌우지간 붙어보는 거야. 참 느덜 우리하고 축구 시합하는 것두 느 문중 어른들한테 허락받아야 하는 거니?"
"야, 까불지 마!"
"으째튼 좋다구. 한번 뛰어 보자구!"
어느 편에선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들은 손을 잡아쥐고 세차게 흔들어 대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들말고도 그 언덕배기 이곳 저곳 웅기중기 모여 앉은 사람들은 제법 고개까지 주억거러 가며 뭔가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양쪽 마을에서 올라온 노인들만은 아직 서먹한 얼굴로 멀찌기 떨어져 앉아 장죽만 뻑뻑 빨아대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을을 떠날 수가 있었다. 홀가분하다는 것은 십여 명 문중 사람들과 동행하기로 했던 그네들 허례(虛禮)에 의한 서울 나들이를 물리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육손이 노안 사건에 붙잡힌 그네들은 그 일이 어느 정도 매듭지어질 때까지는 임종 전엔 할아버지를 보려고 하던 자신들의 계획을 어쩔 수 없이 늦추어야 할 형편이었으니까.
내가 마을에 내려왔을 때 이미 9시 버스는 떠나고 없었다.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없이 9시 반쯤 떠났다는 얘기였다. 나는 쿡쿡 웃었다. 육손이 노인이 사람들의 발을 묶어 그 버스를 골탕먹인 일이 꽤나 우스웠던 것이다. 당숙모를 비롯한 몇몇 아녀자들의 전송을 받으며 나는 말고개 초입 서낭당을 지나 휘적휘적 전날 걸어 내려온 그 샛길로 들어섰다,
하늘이 조화를 부리고 있었다. 아침에 은장봉에서 본 하늘은 제법 벗겨져 햇살까지 부어내리더니 이제는 어느새 우중충 흐려 갈앉은 하늘이었다.
나는 걸음을 급히 했다. 마음이 그랬다. 말고개 마루턱에서 육손이 노인이 기다리고 앉았을지도 모른다는 허황스런 기대 때문이었다.
그 날 저녁 그와 헤어진 말고개 마루턱에 이르러 나는 얼굴로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서 눈을 감았다, 육손이 노인과의 만남을 위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그 노인은 그 날 저녁부터 이날 이 시간까지 단 한 발짝도 꼼짝하지 않은 채 여기서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를 보기 위해 눈을 떴다. 그러나 나는 짐짓 그 자리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가 앉아 있는 그 자리를 모른 체 지나칠 속셈이었던 것이다. 나는 꿋꿋하게 그 앞을 시치미떼면서 지나칠 수 있었다.
고개 마루턱에서 이제는 내리막길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끝까지 그럴 생각이었다. 한 모롱이를 돌아 내려왔을 때 나는 비로소 내 뒤에 인기척을 느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쿡쿡 웃었다. 이제 내가 이긴 게 분명한 이상 무엇을 더 버틸 것인가. 나는 말하기 시작했다
-육손이 아저씨, 전 말입니다, 신파 같은 걸 좋아하지 않아요. 뭡니까, 그게! 신파가 아니면.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하늘이 그 날처럼 쾌청하지가 않았기 때문에 전날의 그 극성스러운 매미 울음소리는 없었다. 우중충 흐린 하늘에 먹구름 무늬가 잡히면서 북쪽으로 서서히 흐르고 있었다.
-그래요.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에 이르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앞서 간 시대 사람들이 가끔 죽음 그 자체를 하나의 방법으로 택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꼭 옳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북쪽으로 흐르는 구름의 무늬가 점차 짙어지면서 아래로 우우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먹구름이었다.
-너무 허망해서 그래요. 도대체 그런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뭡니까?
우우 흐려드는 하늘 아래의 산은 성하의 한낮이 무색하게 음울한 빛을 띠고 있었다, 길가 북나무 숲이 요란했다. 새끼 떼를 거느린 자가새들이 날개 를 퍼덕이며 그 암팡진 울대로 왜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산새들의 왜자김은 산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산이 자신의 침묵을 잠시 위장해 보이는 소리였을 뿐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심한 부끄러움으로 하여 얼굴이 화끈했다. 감상의 늪에 몸을 담가 서서히 헤엄치며 그것을 즐기고 있는 내 자신의 얄팍하고 왜소한 꼬락서니가 보였던 것이다. 나는 걸음을 빨리 했다. 그 죽은 늙은이를 단연코 뿌리쳐 놓고 볼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육손이 노인의 그 변함 없는 발짝 소리를 듣고 있었다.
-물론 다 알고 있다구요. 아저씨의 그 엉큼한 속셈 말입니다. 맞아요. 그 언덕배기에 묻히고 못 묻히고 그런건 문제가 아니겠지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조상의 뼈를 끌어안고 그 언덕배기에 묻히려고 했던 당신의 그 뜻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애 살아 있길 바랐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은 처음부터 단 한 사람을 겨냥했었을 겁니다. 어디에고 살아 있을 당신의 아들 말입니다.
낮게 뜬 먹구름이 서북쪽으로 더욱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비를 쫓는 바람이었다. 바람이 수수수 충충하게 그늘진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갔다. 그 늙은이와 함께 줄참외를 먹던 웅덩이 물에 주름이 잡히고 있었다. 내 이놈의 참외를 꼭 십팔 년만에 먹어보는 겁네다. 웅덩이 물에 등등 뜬 줄참외를 집어 주먹으로 깨 조각낸 다음 껍데기째 으적으적 씹으면서 그가 말했다. 발끝으로 밀어 넣은 돌이 웅덩이에 굴러떨어져 바람에 쓸리는 물주름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 있잖아요. 아저씨의 막강했던 적장 김 재민씨 말입니다. 할아버지가 나를 찾고 계신대요.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이 지니셨던 그 뜻을 내게 전하시고 싶은 걸 거예요.
비를 쫓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둑 둑, 굵은 빗방울이 얼굴에 느껴졌다. 나는 뛰다시피 급한 걸음을 했다, 할아버지가 당신의 동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눈은 그 넓은 방의 구석구석을 더듬으며 체념으로 갈앉은 그런 침묵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잔잔한 눈 그늘 속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빛을 여러 번 보았다. 학생이 고향에 가신다니까 할아버지께서 기분이 좋으신가봐요. 일으켜 앉히세요. 할아버지를 위해 아버지가 고용한 사람의 말대로 할아버지의 몸을 뒤에서 일으켜 안았다. 얼마 전보다 훨씬 가뿐한 느낌이었다. 할아버지의 감각 있는 쪽 손이 내 손을 힘 주어 잡고 있었다,
-육손이 아저씨, 당신은 거기 은장봉에 묻힐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묻힐 수 있을 거예요. 아버지가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할아버지니까요. 더구나 내가 할아버지의 우군이라는 걸 알게 되면 아버지는 그때부터 나를 달리 대하게 되겠지요. 나는 아버지의 적일 테니까요. 그러면 되는 겁니다. 적이란 서로가 팽팽히 맞설 수 있는 동안은 상대에 대한 경외감을 버릴 수 없는 거지요. 더우기 주종(主從)의 관계에서 오는 그런 불합리한 일도 일어날 수가 없는 법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무섭게 지켜볼 수 있게 될 겁니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권위가 아직 끝날 수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내가 할아버지를 배반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할아버지의 뜻이, 이를테면 할아버지가 은장봉에 묻히고 싶다든가 하는, 그러한 할아버지의 생각이 내 가슴에 담기게 되면, 그리고 그것의 정당성을 내가 거역하지 않는 한 우리는 막강한 동지이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내려와 강을 건넘으로써 나는 샛길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자갈이 깊게 박혀 굳어진 큰길에 이어지는 지점이었다. 나는 수려한 강산의 푸름을 헤치며 구불구불 뻗어나간 큰길에 올라섰다. 빗방울이 제법 후둑후둑 나뭇잎을 갈기고 있었다. 큰길을 따라 흘러내리는 강의 계곡 옆으로 펼쳐진 울울한 숲이 퍼붓는 빗줄기에 잎을 활짝 펼쳐 너울거렸다,
나는 비를 흠뻑 맞으며 큰길 한가운데를 잡아 걸어나갔다. 읍을 향해 가는 자동차가 나타날 경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전제된 내 걸음은 그처럼 절실하고도 당당한 것이었다. 또 한 사람, 우리들 이웃 어딘가에 살아 있을 육손이 노인의 아들을 만나고 싶은 지금 내 가슴 속 열망 또한 할아버지와의 만남 못지 않게 절실한 것이었다.
전상국(全商國: 1940- )
강원도 홍천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행>이 당선되어 등단. 현 강원대 국문과 교수. 대한민국 문학상 수상. 그는 현실과 역사를 넘나들며 귀환 구조와 뿌리 찾기 형식을 지닌 소설로서, 전쟁으로 인한 실향 의식과 삶의 뿌리 찾기 의식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바람난 마을>, <하늘 아래 그 자리>, <외등>, <늪에서 바람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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