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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인문과학, 사회과학, 철학, 역사, 기타)

인간의 성생활

by 자한형 2022.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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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성생활 - 리비도

이제 나는 여러분께 아동의 성적 활동 중 가장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여러분께 '리비도(Libido)'란 말을 소개해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리비도란 '기아상태' 와 비슷한 것으로 기아가 영양본능에 대한 것이라면, 이 경우의 리비도는 성적본능을 나타내는 힘을 말합니다. 유아의 첫번 성적 흥분은 생활상 중요한 다른 기능들과 관련해서 나타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유아의 주요 관심은 영양섭취에 있습니다. 유아가 배불리 젖을 먹고 어머니의 품에서 잠을 잘 때 가장 만족한 표정이 나타나는데, 이는 후에 성적 쾌감이 극도에 다다르는 경험을 하고 난 후에 다시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아가 실제로 영양섭취를 원치도 않으면서 영양섭취를 하는 데 필요한 동작을 반복하려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들은 배가 고파서 이런 동작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는 이 동작을 함으로써 유아는 기쁨에 넘친 표정으로 다시 잠들게 된다는 점에서, 젖을 빠는 동작 그 자체가 유아에게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확실히 유아는 젖을 빨지 않으면 곧 잠이 안 듭니다. 부다페스트의 늙은 소아과 의사인 린드너(Lindner) 박사는 이러한 과정의 성적 경향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입니다. 유모나 어린이들을 돌봐주는 사람들도 이에 대한 이론적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지만 젖을 빠는 일에 대해서 유사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이 동작의 목적이 쾌감을 얻으려는데 있음을 의심치 않으며ㅡ 이 때문에 이것을 어린이의 '나쁜 버릇'의 하나로 생각하고 어린이가 이른 스스로 고치려 하지 않을 때는 가혹한 방법을 써서라도 억지로 이를 못하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유아가 이런 동작을 하는 것은 쾌감을 얻는 외에 다른 목적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쾌감이 영양섭취를 하는 동안 비로소 경험케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유아는 재빨리 이 조건과 분리된 즐거움을 알게 된 고 믿고 있습니다. 쾌감만족은 입과 입술부분에 관련되어 얻어질 수 있으므로 우리는 이 부분을 성감대(性感帶)라 부르며, 젖을 빠는 데서 얻어지는 쾌감을 '성적인 것'이라 말합니다.

만일 유아가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다면 어머니의 젖을 빠는 동작이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틀림없이 말할 겁니다. 이 말이 그로서는 틀린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동작에 의ㅣ해서 그는 생의 두 가지 커다란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신분석을 통해서 그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를 알고는 놀라지 않을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젖을 빠는 동작은 모든 성생활의 출발점이 되고, 후의 성적 만족에서 얻기 어려운 원형이 되어서 필요할 때는 공상이 자주 이 원형으로 되돌아갑니다. 젖을 빨려는 욕망 속에는, 성욕의 최초의ㅣ 대상인 어머니의 젖에 대한 욕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최초의 대상이 후일 모든 대상을 택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의의를 가졌으며, 전이와 대리작용을 통해서 얼마나 깊은 영향을 정신생활의 가장 원격한 영역에 까지도 나타내는지는 적절히 설명해 드리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아는 곧 이 최초의 대상을 버리고 그 대신 자신의 신체부분, 즉 엄지손가락이나 혀를 빪으로써 쾌감을 느낍니다. 이렇게 해서 외계의 협력과 무관계하게 쾌감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이 성감대들은 똑같은 쾌감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린드너가 말한 바와 같이 유아가 자신의 신체에서 성기가 특히 흥분하기 쉬운 영역을 발견해서 빨기로부터 자위에의 길을 찾아낼 때 이것은 유아에게 있어서 중대한 체험인 것입니다.

빠는 동작의 본질을 이처럼 평가함으로써 우리는 이제 유아적 성욕의 두 가지 결정적인 특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의 성욕은 커다란 생리적 욕구의 만족과 관련되어 나타나며 자기애적(自己愛的)으로 행동합니다.

 

하며 발견합니다. 영양섭취에서 가장 명백히 나타난 것은 배설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반복됩니다. 우리는 유아가 대소변을 볼 때 쾌감을 경험하며 곧 이에 따르는 성감대 점막층의 흥분이 최대한의 가능한 만족을 얻도록 하기 위해 이 동작들을 조정하기에 힘쓴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리한 직관의 소유자인 루 안드레아스(Lou Andreas)가 지적한 바와 같이 외계는 우선 아동이 쾌감을 얻으려는 욕망에 대해 적대방향으로 작용하는 방해물이 되어 아동으로 하여금 후에 경험케 될 외적·내적 갈등을 어렴풋이 암시해 줍니다. 아동은 배설물을 그가 원하는 시간이 아닌 때에 다른 사람에 의해서 정해진 시간에 배출해야 합니다. 이들로 하여금 쾌감의 원천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배설 기능과 관련된 모든 일들은 추잡스러운 것이며 감추어서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들려 줍니다. 이렇게 해서 유아는 비로소 자신의 쾌감 가치를 다른 사람의 가치와 교환하도록 되는 것입니다.

배설물에 대한 유아 자신의 태도는 처음부터 전연 다른 것입니다. 어린이는 이에 대해 아무런 불쾌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배설물을 자기 신체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으며 자기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배설물을 그가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표시로서 최초의 선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비록 교육의 힘으로 그들이 이런 경향에서 멀어진 후에라도 어린이는 계속해서 배설을 그의 '선물'이나 ''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린이는 그가 소변보는 모양을 특별한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훨씬 전부터 내 얘기를 가로막고서 "그같이 괴상한 얘기는 그만하는게 좋겠다. 배설작용을 유아가 성적 만족의 원천으로 이용하다니! 대변이 그렇게 가치 있는 물질이며 항문이 성기의 일종이라니! 우리는 이 말을 믿지 않지만, 정신분석과 이들 결론을 왜 소아과 의사들과 교육자들이 강력히 배척하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어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생각은 잘못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께 성적도착과 어린이 성생활에서의 사실들을 연관시켜서 얘기하려 했다는 것을 잊으셨나 봅니다. 왜 여러분들은 동성애나 이성애의 성인들에 있어 서 항문이 실제로 성교 때 질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서는 안 될까요? 또 많은 사람들이 배설에 따르는 쾌감을 일생 동안 기억하며 이 쾌감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는 사실도 알아서는 안 될까요? 여러분은 아이들이 이런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그들로부터 직접 배설행위가 흥미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이런 행동을 보는 것에 얼마나 쾌감을 느끼게 되는지를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여러분이 미리 이런 일에 대해 꾸짖으신다면 어린이들은 그런 말을 통 안 하려들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믿지 않으려고 하는 다른 점에 관해서는 분석이나 혹은 아동을 직접 관찰함으로써 나온 증거를 들어 말씀드리겠는데, 이를 지나쳐 버리거나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는 경우를 더하기 위해선 상당한 주의와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의 성적 활동과 성적 도착 사이의 관계를 여러분이 몹시 공격한다 해도 나는 전혀 나쁘게 생각지는 않겠습니다. 이것은 본래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 어린이가 성생활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도착적인 것임에 틀림없겠죠. 왜냐하면 어린이에게는 몇몇의 증후는 별문제로 하고라도, 성욕을 생식기능으로 바꾸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모든 도착증의 공통된 특성은 생식 목적을 포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적 활동이 생식 목적을 떠나서 이와 관계없이 성적 쾌감의 획득만을 추구할 경우, 우리는 이러한 성적 활동을 도착적이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생활의 발달에 있어서 그 차이와 전환점은 생식의 목적에 종속되는 점에 있음을 여러분은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 전환이 일어나기 전에 생긴 모든 일들과, 전환을 거부하고 쾌감 획득을 위해서만 봉사하는 일들은 불명예스럽고 경멸할 만한 '도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로 하여금 어린이의 성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계속하도록 해주십시오. 내가 두 신체 기관에 관해서 말씀드린 것은, 다른 신체 기관을 조사해 봄으로써 보충될 수 있을 겁니다. 어린이의 성생활은 전혀 일련의 '부분본능(部分本能)'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서로 독립하여 일부는 자신의 신체에서, 또 다른 부분은 이미 외부의 대상에서 만족감을 찾는 것입니다. 이들 신체 기관 중에서 성기가 제일 먼저 신속하게 나타나며, 사람들 중에는 타인의 성기나 다른 대상의 도움없이 자신의 성기의 쾌감을, 유아기에 있는 자위 습관으로부터 사춘기에 일어나는 자위 행위에 의해서 얻으며, 이를 사춘기 이후에까지도 계속하는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위의 문제가 쉽게 규명되는 것은 아니며, 이는 다각도의 고찰을 요하는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와 감상

이 책은 저자가 191517년의 겨울학기에 의사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연한 '정신분석학개론'을 조직적으로 충실히 기록한 것이다. 1880년대에 히스테리의 치료를 연구하면서부터, 점차 정신분석의 방법과 이론을 창시, 발전시켜온 프로이트는 이 강의에서, 그 때까지의 정신분석학 성과를 가장 체계적이면서도 알기 쉬운 형식으로 서술할 수 있게 되었다. 1917년까지 주요 논문으로 발표된 프로이트의 연구는 모두 이 속에 농축되어 있다. 강의 테마의 배열에도 상당한 배려를 하여, 일반독자가 자연히 분석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 가장 일상적인 경험과 현상인 '실착(失錯)행위'''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를 설명한 것이 제1부와 제2부이고, 3부에서는 먼저 '일반신경증학'이라는 제명으로, 신경증의 연구, 이에 관한 정신분석학의 이론을 밝히고, 신경증의 연구, 이에 관한 정신분석학의 방법과 이론은, 18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일관된 역사적 발전을 보이고 있는 바, 프로이트 자신의 연구도 역시, 1880년대부터 1900년까지의, 희스테리 및 기타 신경증에 관한 임상적 관찰과 정신분석요법의 창시를 통해 무의식·억압·저항·감정전이·심적 외상 등의 이론 개념이나 신경증의 병인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 그 견해를 일상생활의 실착행위와 꿈의 연구에 적용시킨 제1, 이어 1900년부터 191020년에 걸쳐, 성본능(소아 성욕) 즉 리비도의 발달·고착·퇴행 및 그 병인로적 의의의 연구가 진행되어, 정신분석학적인 신경증 이론이 어느 정도 완성된 제2, 그리고 융이나 아들러와의 논쟁을 계기로 한, 전체적인 퍼스널리티 구조의 연구, 특히 자아구조의 이론과, 그때가지의 '자기보존 본능''성본능'의 대립설부터 '()의 본능''()의 본능'의 대립을 기초로 한 본능론의 발전 등을 탄생시킨 제3(1910-20-1925)로 발전해 갔던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제2기까지의 프로이트의 입장(각 주요논문)을 총괄한 것으로, 1부와 제2부는, 각각 같은 주제의 저작을 요약한 강의이다. 3부는, 당시 프로이트의 신경증이론과 치료방법의 총괄이다. , 프로이트는, 모든 신경증 증상에는 해석가능한 의미가 감추어져 있는데, 그 의미는 어떤 심적 외상에의 고정과 무의식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여기에서 억압이 작용하여 무의식적인 성적 원망과 억압의 타협형성이 증상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 자신의 의식으로는 이 같은 심적 외상이나, 충동과 억압의 갈등도 해리(解離)하고 만다. 정신분석 요법은 자유연상법이라는 조작에 의해, 이 억압점을 자유연상에 대한 저항이라는 형식으로 인식하고, 이 저항의 배제를 통해 억압을 해결하며, 무의식화된 병인적인 성적충동의 고정과 억압 사이의 갈등을 의식화하여 해결한다. 그런데 이 병인적인 심적 외상으로의 고정과 억압은, 환자 유아기의 성적 발달(라비도의 발달과 성적 편성)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다. 즉 신경증의 발병은, 이같은 리비도 고정점(固定點)으로 향하는 리비도의 무의식적 퇴행과 억압, 그 역동적 갈등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요법은 감정전이현상을 통해 퇴행적인 리비도와 억압의 역동적 갈등을 분석의사와의 대인관계 중에 재현하고, 언어적으로 상기시키며, 의식화함으로써 유아적인 고정과 억압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논술한다.

일반적으로 이 책은 정신분석학을 프로이트 자신이 조직적으로 강의한 대표적인 고전이라 평가한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이나 프로이트 자신이, 이 책의 입장을 극복하고 발전시키면서 현대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 책을 어디까지나 하나의 '고전'으로 평가해야 하며, 이 책을 프로이트의 궁극적인 견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본다거나, 제명 그대로 현대 정신분석학의 입문서로 여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프로이트 자신에 의한 이상과 같은 총괄적인 총론의 시도는 '정신분석학입문'이나 '정신분석학개론(1938)'에서 더욱 보충, 발전되고 있다.

프로이트는 전통적으로 연구되어 온 의식의 심리학에 대항해서 무의식의 심리학을 새로이 발전시켰다. 자유연상법(自由聯想法)이란 특유한 방법으로 정신이상의 환자를 상대로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여 새로운 성격이론과 심리치료법을 만들어냈고, 어떤 의미에서는 철학의 또 다른 국면을 체계화시켰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이론체계의 기본개념의 하나인 리비도에 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을 에너지의 역동체계(力動體系)의 움직임이라고 보고, 여기 작용되고 있는 에너지를 '생의 본능''죽음의 본능'이라는 두 가지로 나누었다. 생의 본능은 에로스(Eros)라고 하여 생명을 유지 발전시키고, 사랑을 하게 하는 본능으로서, 이것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며, 생명을 유지 발전시키고 종족을 유지 번창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죽음의 본능으로서, 생물체가 무생물체로 환원하려는 본능이다. 이 때문에 생명은 결국 사멸되고 살아 있는 동안에도 자기를 파괴하고 처벌하며 타인이나 환경을 파괴시키고자 서로 싸우고 공격하는 행동이 있게 마련이라고 본다.

리비도 - 생의 본능인 에로스의 에너지를 리비도(Libido)라고 한다. 한 개인 속에 저장된 이 리비도의 분량은 일정한 양으로 한정되어 있어, 이것을 무한정하게 사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느 한 가지에 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해 버리면, 다른 쪽으로 유출시키려고 해도 저장량이 없으므로 자연히 결함이 생기게 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 에너지는 정신적인 힘이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며, 더구나 물리화학적인 힘은 더욱 아니다. 이 에너지는 인간생활의 전영역에서 표출되지만, 특히 성활동에서 많이 표출되는 것이 연구되었고, 또 그 표출양상이 전형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리비도의 중요부분을 성적힘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성적이란 말의 뜻은 넓은 의미로는 모든 활동에서 쾌락추구적인 요인이 있을 때 이를 성적이라고 보았지만, 또 좁은 의미에서는 양성(兩性)의 결합과 교섭을 말하는 것이다. 이 후자 역시 궁극적으로는 쾌락추구적인 것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리비도는 출생시부터 나타나 어린이의 행동과 성격을 규정하게 된다.

물론 이 리비도는 역동적이면서 항존하고 있으며, 그 작용은 습성화되는 것으로 본다. 이 리비도가 자기 자신의 내부로 지향하여 행동화될 때 그런 행동을 자기애(narcissism)라고 하며, 타인이나 다른 사물을 향해 리비도가 늘 작용될 때 이를 대상애(對象愛 : objective·love)라고 하며, 비현실적인 공상으로 흐르면 이를 내향성(內向性 : introversion)이라고 한다.

유아시절에 향했던 애정대상에 계속 리비도가 부착되어 있어 성장 후에도 그러한 대상애를 그대로 계속 나타낼 때 이를 고착(fixation)이라고 하고, 또 과거에 지향했던 대상으로 다시금 되돌아가 대상애를 나타낼 때 이를 퇴행(regression)이라고 하고, 또 이런 에너지가 제약 억제당하는 것을 억압(repression)이라고 말한다면, 이타적으로 다른 대상을 향해 이 에너지를 발산시킬 때 이를 승화(sublimation)라고 말한다.

프로이트/정신분석입문Sigmund Freud ; Internationaler Psychoanalytischer Verlag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