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과제 -김 형 석(金亨錫)
모든 사회는 그 시대에 따르는 문제를 안고 있다.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도 여러 가지 과제를 지니고 있다.그 문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하고,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그러나 이 모든 문제보다도 앞서는 것이 있다면,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다.
역사가 옛날로 올라갈수록 개인의 비중이 사회보다도 컸던 것 같다.사회 구조(社會構造)가 개인 중심으로 이루어졌고,산업과 정치가 현대와 같은 복잡 사회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개인이 모여서 사회가 되므로,마치 사회는 개인을 위해 있으며,개인이 사회의 주인인 것같이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는 정치,경제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분야가 개인보다도 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성격을 띠게 되었다.영국을 출발점으로 삼는 산업 혁명(産業革命)은 경제의 사회성을 강요하게 되었고,프랑스 혁명은 정치적인 사회성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19세기 중엽에 탄생된 여러 계통의 사회 과학(社會科學)을 보면,우리들의 생활이 급속도(急速度)로 사회 중심 체제로 변한 것을 실감케 된다.그러므로 옛날에는 개인이 중심이고 사회가 그 부수적(附隨的)인 현상같이 느껴졌으나,오늘에 이르러서는 사회가 중심이 되고 개인은 그 사회의 부분인 것으로 생각되기에 이르렀다.특히,사회가 그 시대의 사람들을 만든다는 주장이 대두되면서부터 그 성격이 점차 굳어졌다.실제로,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생활을 살펴보면,내가 살고 있다기보다는‘우리’가 살고 있으며,이때의‘우리’라 함은 정치,경제 등의 집단인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현대가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정당하며,또 그렇게 되어야 하는가 함은 별개의 문제이다.일찍이 키에르케고르나 니체 같은 사람들은,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강하게 호소한 바 있다.오늘날까지도 사회와 개인에 대한 대립된 견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전부이며 개인은 의미가 없다든지,개인의 절대성(絶對性)을 주장한 나머지 사회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도 모두 정당한 견해가 되지 못한다.오히려,오늘날 우리는 개인 속에서 그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를 발견하며,그 사회 속에서 개인을 발견한다.사회와 개인은 서로 깊은 상호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개인이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으며,사회에 속하지 않는 개인을 생각한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면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어떠한가?어떤 사람들은 둘 사이의 관계를 원자와 물질의 역학적 관계와 같이 생각하는 것 같다.원자가 없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으며,물질이 없다면 원자의 존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그 존재성(存在性)만을 중심으로 본다면,개인과 사회의 관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그러나 그것으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다 설명될 수는 없다.다른 어떤 사람들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세포(細胞)와 유기체(有機體)의 관계와 같이 생각한다.생명적 존재를 위한 생성(生成)원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찰스 다윈의 영향을 받은 스펜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존재나 생성의 과정에 그치지 않는 보다 높은 차원에 속하는 것이다.그것은 존재하면서 생성하며,생성하면서 문화 역사(文化歷史)를 창조해 가는 관계인 것이다.그러므로 그 관계는 발전과 비약을 가능하게 하는 변증법적 관계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정신적 영역에 있어서의 개체와 전체의 관계는 언제나 이렇게 높은 차원에 속하고 있다.이 때에는,개인은 개인으로서의100의 자주성을 가지는가 하면,사회는 사회로서 또100의 위치를 차지한다.그러면서도 서로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개인과 사회의 문제이다.
이렇게 되면,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어떤 때는 서로가 조화를 이루며 서로 협조할 수 있으나,때에 따라서는 심한 대립과 반발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개인이 사회를 위하고,사회가 개인을 위할 때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그러나 개인이 사회를 거부하거나 사회가 개인을 부정할 때에는 갈등과 모순을 피하지 못하게 된다.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들이 자유를 찾아 투쟁했던 역사를 본다든지,독재 국가에서 지성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게 된다.
대체로,이러한 갈등과 불행은 두 가지 경우에 초래된다.하나는,전체로서의 사회가 개체로서의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억압했을 때이며,또 다른 하나는,개인들이 스스로 속해 있는 사회에 반항을 하며 대립을 일으켰을 때이다.어떤 사람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말을 사용했다.그렇다면 도덕적인 사회와 비도덕적인 개인도 문제가 될 수 있다.그러나 현대는 사화를 중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전자에 더 큰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다.
또,이러한 관계는 역사의 과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새로운 역사가 시작 된 뒤,당분간은 개인과 사회가 동질적인 내용을 위해 조화와 협력을 이룰 수 있다.그러나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게 되면,사회는 반드시 현상을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세력과 그에 항거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나뉘게 된다.이 때,새로운 이념과 방향을 추구하는 개인은 언제나 기성의 것에 반발하게 마련이다.그것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헤겔을 비롯한 변증론자들은,이것을 사회와 역사에 있어서의 변증법이라고 설명했다.하나의 현실은반드시 들로 대립되는 상반성을 내포하나,결국은 보다 높은 차원의 현실로지양(止揚)된다는 뜻이다.역사의 변화와 발전의 법칙이 여기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이렇게 선의의 창조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위치는 대단히 귀중한 것이다.이렇듯,개인과 사회의 문제는 항상 복합적인 것이지만,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사회는 언제나 개인을 위하며,개인은 항상 사회를 위한다는 인도적(人道的)관계인 것이다.
개인의 존재와 가치를 무시하는 사회가 되어서도 안 되나,사회적 가치와 의미에 개의치 않는 개인이 되어서도 안 된다.우리 모두는 내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를 위해 창의적 기여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선의의 사랑과 위해 줌을 결(缺)한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언제나 불행한 파탄(破綻)을 가져올 수 있다.
현대 사회가 해결해야 한 또 하나의 과제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사이의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다.
옛날에는 오히려 사회 생활의 비중을 정신적인 것이 더 많이 차지해 왔다.종교,학문,이상 등이 존중되었고,그 정신적 가치가 쉬 인정받았다,그러나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부터 모든 것이 물질 만능주의로 기울어지고 있다.그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며,한국도 예외는 아니다.물론,그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은 현대 산업 사회의 비대성(肥大性)이다.산업 사회는 기계와 기술을 개발했고,공업에 의한 대량 생산과 소비를 가능케 했다.사람들은 물질적 부를 즐기는 방향으로 쏠렸는가 하면,사회의 가치 평가가 생산과 부(富)를 표준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문화 경시의 현실이며,그것이 심하게 되어 인간 소외(人間疏外)의 사회를 만들게 되었다.정신적 가치는 그 설 곳을 잃게 되었으며,물질적인 것이 모든 것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이렇게 물질과 부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면,우리는 문화를 잃게 되며,삶의 주체인 인격의 균형을 상실하게 된다.그 뒤를 따르는 불행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한반도가 공간적으로는 만주의 몇십분의 일밖에 안 되지만,독립된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자주 국가로 남고,만주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중국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음을 잘 알고 있다.문화를 남겨 준 아테네는 삼천 년 이상 인류의 흠모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스파르타는 이미 그 자취를 감춘 지 오래 되었다는 역사도 배우고 있다.상고 시대(上古時代)에는 페르시아나 이집트도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큰 문명권(文明圈)을 만들고 있었다.그러나 공자,맹자와 같은 사상가,우파니샤드와 같은 철학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오늘은 고유의 문화적 전통이 단절되었음을 잘 안다.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모두가 물질적인 경향과 가치만 따르고 있을 뿐,정신과 문화에 대하여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우리는 이 상실된 균형을 하루빨리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모두는 정신적 가치가 속하는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고,학문과 예술적 창조에 참여하여 건설적 가치관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 임하는 일이 시급하다.신라의 문화가 불교에 의한 통일된 가치관에서 탄생되었으며,조선 시대의 문화가 유교 전통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문화적 참여와 그에 따르는 가치관의 확립이다.이 두 가지 조건이 채워지지 않은 채로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얻거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가진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이러한 정신적 가치의 추구와 문화에의 동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물질주의는 향락주의를 이끌어들이며,눈에 보이는 건설이 전부라는 편협한 가치관에 빠져 사회의 불행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이 정신적,문화적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인간 상실의 비운을 면치 못하게 된다.
상당히 많은 역사가와 사상가들이 현대의 비극이 인간 소외와 인간 상실의 결과라고 걱정하고 있다.개인이 조직된 집단 속에서 그 생명력을 상실당하고 있으며,생산의 수단으로 전락되는 현실 때문이다.
오늘과 같이 물질 문명이 모든 것을 지배하며,기계적인 획일적 사고가 우리 생활을 이끌어 가며,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집단들이 일방적인 가치와 사고 방식만을 택하게 된다면,현대인들의 이에서 구출받을 길이 끊기고 만다.매커니즘이 이성의 자율성을 지배하며,그것이 다시 인간성과 인격을 좌우하게 된다면,현대는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비극과 파탄으로 달리게 된다.
우리는 산업이나 생산 자체가 나쁘다는 것도 아니며,기계와 기술의 개발에 따르는 현대 생활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니다.문제는 정신과 물질의 균형이 깨진 사실이며,인격 및 인간성의 상실인 것이다.정신 문화가 물질 문명보다 바람직하며,정신적 영역이 확보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우리는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또 시정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 같다.물론,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인 문제이다.
오늘날,이른바 선진국들 자신도 불균형과 편중을 걱정하고 있는 형편이다.이제,우리도 우리의 정신 생활이 어떻게 영위되어 왔으며,지금은 어떠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우리 사회가 만일 자율적인 정신 문화가 없는 사회,물질 만능주의 사회로 전락한다면,우리가 겪어야 할 혼란과 불행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비문학(인문과학, 사회과학, 철학, 역사,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의 언어 (0) | 2022.06.30 |
---|---|
좋은 글의 요건 (0) | 2022.06.30 |
자본주의의 두 얼굴 (0) | 2022.06.30 |
춤북 명인 이매방 (0) | 2022.06.28 |
교환이 돈을 낳는다 (0) | 2022.06.24 |